{"text": "피고인 7, 피고인 8, 피고인 10, 피고인 11, 피고인 12,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를 각 징역 5년에 처한다. 2006. 11. 1. 피고인 16 주식회사(대판:공소외 4 주식회사)(이하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라고 한다)에 입사한 뒤 2013. 3.경 ○○호가 인천~제주항로에 취항할 당시부터 선장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정규직 선장으로 정년 퇴직한 이후에 ○○호 선장을 맡을 예정인 공소외 11을 동승시켜 지도하다가 2013. 8.경 정년으로 퇴직한 다음부터는 공소외 11의 휴가기간에 ○○호의 선장으로 근무하는 등 총 27년 9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선장으로 승선하여 해원(海員)을 지휘·감독하고 여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한 운항관리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선원법의 규정에 의하여 출항 전에 선박이 항해에 견딜 수 있는지와 화물이 실려 있는 상태 및 항해에 적합한 장비, 인원, 식료품, 연료 등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검사하여야 하는 ‘출항 전의 검사의무’가 있다. 또한 항구를 출입할 때나 좁은 수로를 지나갈 때 또는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 때에는 선박의 조종을 직접 지휘하여야 하는 ‘직접지휘의무’,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아니되는 ‘재선의무’ 등이 있다.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고, 비상시에 조치하여야 할 해원의 임무를 정한 비상배치표를 선내의 보기 쉬운 곳에 걸어두고 선박에 있는 사람에게 소방훈련, 구명정훈련 등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여야 한다. 또한, 해운법에 근거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선박의 좌초·퇴선 및 인명구조 등 비상상황 발생시에는 선원의 승객구호의무를 지휘하여야 한다. 1992.경부터 2012. 12.까지 1등항해사 등으로 원양어선 및 여객선에 승선하여 일하였고 1급 항해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2012. 12.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2013. 3.경 무렵부터 2014. 4. 16.까지 1등항해사로 ○○호에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20년 5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1등항해사로 승선하여 사망·질병 또는 부상 등 부득이한 사유로 선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선장의 직무를 대신하고, 평상시에는 선장의 지휘에 따라 여객과 화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데 필요한 항해 및 화물의 적재, 고박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현장을 지휘하며 우현 슈트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우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90. 3.경부터 1992. 3.경까지 강원도 1함대, 인천 2함대, 진해에 있는 작전사령부에서 해군으로 복무하였고, 2012. 8.경부터 2013. 12.경까지 ◎◎고속카페리7호에서 2등항해사로 일하였으며 3급 항해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2014. 1. 1.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2014. 1. 2.경부터 ○○호의 2등항해사로 일하는 등 총 2년 4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호에 2등항해사로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에 따라 운항관리, 각종 항해장비, 통신기 점검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대기반을 지휘하거나 좌현 슈트와 구명뗏목을 투하하며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좌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2012. 11. 11.부터 2013. 9. 1.까지 3등항해사로 ◆◆◆ 국제여객선(◆◆◆ 국제여객선, 총톤수 17,022톤)에 승선하여 일하였고 3급 항해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2013. 12.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2013. 12. 16.부터 3등항해사로 ○○호에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2년 1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3등항해사로 승선하여 평소 선장을 보좌하여 선원 교육훈련, 유관기관 합동점검 등 사항에 관하여 항해일지를 작성하는 등 ○○호 운항에 관한 각종 문서를 작성하고, 출항 전 ○○호의 화물적재 및 하역 시 힐링(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맞추며, 안전점검보고서 작성 및 제출, 출항시간, 흘수 수치 등을 항해일지에 기재하고, 항해 시 항해당직사관으로서 조타실에서 여객과 화물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한 운항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승객구호를 지휘하는 선장을 보좌하고, 항해일지 등 운항관련 기록을 보존하며, 통신기기로 조난신고, 구호요청을 하는 등 승객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1992.경부터 원양어선의 갑판원으로 일하다가, 2013. 11. 1.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조타수로 일하는 등 총 13년 10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조타수로 승선하여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조타를 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우현 구명뗏목과 사다리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2011. 3.경부터 여객선에 승선하여 3등항해사 등으로 일하다가 2014. 4.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에 1등항해사로 승선하는 등 총 3년 7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3급 항해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호에 1등항해사로 승선하여 2등항해사인 피고인 3이 휴가를 갈 경우 이를 보조하는 업무를 부여받아 위 피고인 3의 업무인 운항관리, 각종 항해장비, 통신기 점검 등을 보조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한편,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1등항해사로서 피고인 2를 보조하여 현장을 지휘하며 우현 슈트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우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79.경부터 1982.경까지 갑판원으로 벌크선에 승선하여 일하였고, 2012.경 3등항해사로 유조선에 승선하여 일하였으며 4급 항해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2013. 2. 1.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에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5년 9월의 승무경력이 있고, ○○호에 조타수로 승선하여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조타를 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우현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2002.경부터 2011.경까지 ▷▷▷관광 여객선 ‘◁◁호’에 승선하여 조기수, 갑판원 등으로 일하다가, 2013. 7.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조타수로 일하는 등 총 9년 11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조타수로 승선하여 항해사의 지시에 따라 조타를 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좌현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81.경부터 ♤♤♤호에 승선하여 일하였고, 이후 각종 선박에서 기관사 및 기관장으로 일하다가 2001. 9. 3.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2012. 11. 14.부터 ○○호의 기관장으로 일하는 등 총 24년 11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1급 기관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호에 기관장으로 승선하여 기관부 선원을 지휘하며 선박의 엔진, 전기설비의 운전 및 보수관리를 총괄하면서, 출항 전에는 주기관의 점검, 유류 적재 등을, 항해 시에는 주기관, 전기설비 등 각종 설비의 운전 및 보수 업무를 총괄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기관사·조기수 등 기관부 선원이 승객구호의무를 이행하도록 지휘하여야 한다. 1985.경부터 상선에서 기관사 및 기관장으로 일하여 오다가, 2013. 12.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1등기관사로 일하는 등 총 21년 3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1급 기관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호에 1등기관사로 승선하여 선장 지휘 하에 기관장을 보좌하여 주기관 엔진운전·정비 및 기관 부속품 관리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주기관을 담당하고, 우현 슈트 및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2013. 11. 20.부터 ○○호에 3등기관사로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1년 4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3급 기관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호에 3등기관사로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에 따라 기관장을 보좌하며 엔진 및 발전기 등 기관장비의 운항 상태를 점검하고 조작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기관실을 지휘하는 기관장의 지시를 받아 조기수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함께 직무를 수행하면서 기관장을 보좌하여 승객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83.경부터 원양어선 및 화물선에서 조기수로 일하여 오다가, 2014. 4.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조기장으로 일하는 등 총 23년 1월의 승무경력이 있으며, 6급 기관사 자격면허를 가지고 있다. ○○호에 조기장으로 승선하여 기관장이나 기관사의 지시를 받아 조기수를 지휘하면서 엔진 및 발전기 등 기관장비를 점검·정비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익수자를 구조하고, 우현 슈트 및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우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81.경부터 원양어선에 승선한 것을 시작으로 벌크선, 시멘트 운반선, 어선 등 각종 선박에서 조기수로 일하다가, 2012. 12. 1.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에 조기수로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28년 8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조기수로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에 따라 기관장, 기관사, 조기장의 지시를 받아 엔진 및 발전기 등 기관장비를 점검, 정비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좌현 슈트 및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좌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80.경부터 유조선에 승선한 것을 시작으로 시멘트 운반선, 화객선 등 각종 선박에서 조기수로 일하다가, 2014. 1. 1.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조기수로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27년 7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조기수로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에 따라 기관장, 기관사, 조기장의 지시를 받아 엔진 및 발전기 등 기관장비를 점검, 정비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우현 비상사다리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우현 비상사다리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1982.경부터 유조선, 자동차운반선, 여객선 등 각종 선박에서 조기수로 일하다가, 2013. 11. 15.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한 뒤 ○○호의 조기수로 승선하여 일하는 등 총 10년 4월의 승무경력이 있다. ○○호에 조기수로 승선하여 선장의 지휘에 따라 기관장, 기관사, 조기장의 지시를 받아 엔진 및 발전기 등 기관장비를 점검, 정비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위 운항관리규정에 의해 비상시에는 좌현 비상사다리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이 좌현 비상사다리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가 인천~제주 항로에 ◇◇◇◇호(6,322톤, 1989년 건조)를 투입하여 운송업을 영위하던 중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대표이사인 공소외 22는 위 항로를 복선으로 운항함으로써 다른 선사의 항로진입을 방어하고, 위 □□□□□호의 선령이 다하는 시점에 이를 대체하기 위하여 2010.경 추가로 카페리여객선을 위 항로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1. 3.경 일본국 연안에서 운항되던 ‘◈◈◈◈호’에 대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2012. 10. 8. 일화 8억엔(한화 115억 원 상당)에 수입하여 2012. 10. 22.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선박의 명칭을 ‘○○호’, 선적항을 인천광역시로 하여 신규(수입)등록하였다. 그 후, 위 공소외 22는 ○○호의 여객실 및 화물적재 공간을 늘임과 동시에 전시실을 만들 목적으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이사인 공소외 15 등의 감독하에 ○○호의 수리 및 증축공사를 시행하도록 하여 2012. 10.경부터 2013. 2.경까지 전남 영암군에 있는 공소외 23 주식회사에서 ○○호 B데크의 선미 부분을 철거하고, A데크의 선미 2.8m, 갑판 5.6m, 천정 1.6m를 연장하여 생긴 공간을 두 개 층으로 만들어 하층은 여객실로, 상층은 전시실 등으로 개조하고, 선수 우현의 카램프(차량 진입문) 40톤 상당을 철거하는 등의 수리 및 증축공사를 하였다. 그 후 완성복원성계산 결과, ○○호의 총톤수는 239톤 증가, 경하중량은 187톤 증가, 재화중량은 187톤 감소, 승선인원이 116명 증가하면서 무게중심이 51㎝ 올라가는 것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호가 무게중심을 낮추어 복원성을 유지하면서 안전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기존보다 적재 가능 화물을 1,448톤 감소시키고, 대신 평형수를 1,324톤 증가시킬 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총 1,077톤의 화물만을 적재할 수 있는 것으로 한국선급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카램프 철거시 선수 우현에 30톤 상당(철거 40톤, 밀폐 10톤)의 중량을 추가하거나 좌현에 30톤 상당의 중량을 감축하지 않아 좌, 우 불균형이 심화됨으로써 복원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는 위와 같이 증·개축 공사를 마친 다음 2013. 3. 14. 인천지방해양항만청으로부터 해상여객운송사업 계획 변경 인가를 받아 인천~제주 항로에 ○○호를 운항하면서 최대 화물적재량을 초과한 화물을 적재하여 초과 운임을 취득하여 왔다. 여객선 운영 등 해운업 운영자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하여 선박안전법에서 정한 선박 및 선박시설의 기준을 준수하고, 안전항해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해운법에 따라 여객선 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운항관리규정을 작성하여야 하고, 운항관리자로부터 안전운항에 관한 지도·감독을 받아야 하는 등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을 가장 중요시 하여야 한다. 따라서 해운법에 근거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운항관리규정에 의하여 안전관리담당자는 선박관련 종사자에 대한 교육계획을 수립·시행하여 분기 1회 이상 교육을 실시하여야 하고, 선장은 선사 안전관리담당자의 교육계획을 토대로 선박직원의 교육계획을 수립·시행하여 비상시에 대비한 선내비상훈련을 매 10일마다 실시하여야 하며, ‘해상인명 안전훈련 및 대응훈련’은 매 10일, ‘해양사고대응훈련’ 중 선체손상 대처훈련, 인명사고시 행동요령은 매 6개월, 비상조타훈련은 매 3개월, ‘기름유출 대처 훈련’은 매월 실시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는 평소 ○○호 선원에 대한 안전교육 및 해양사고 훈련을 규정대로 실시하지 않았고, 2014년의 경우에도 2월경 ‘해상인명 안전훈련 및 대응훈련’의 하나인 소화훈련만 1회 실시하였다. 한편, ○○호는 2013. 11. 28. 18:30경 인천에 있는 ♡♡부두에서 여객 117명, 차량 150대, 화물 776톤을 적재한 뒤 출항하여 제주도를 향해 운항하던 중, 다음 날인 29. 08:20경 제주 화도 부근 해상에서 파도의 영향을 받아 좌현으로 기울면서 D데크에 선적된 벽돌 및 주류, 산적화물 등이 한쪽으로 쏠려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피고인 2가 1등 항해사로 승선하고 있었다. 또한, ○○호는 2014. 1. 20. 18:30경 제주 소재 ♡♡부두에서 인천을 향하여 출항하려고 하였으나, 최대풍속 18~21m/s 상황에서 예인선을 사용하여도 풍압으로 인하여 부두에서 이안이 되지 않아 출항을 하지 못하였다. 이후 해경의 운항통제 통보로 승객 106명을 하선조치하였으나, 화물차 기사들의 거센 항의로 해양경찰과 협의 끝에 22:30경 출항허가를 받고, 23:00경 풍속이 15~18m/s로 완화되자 약 30분간 예인선을 사용한 뒤 23:30경 출항하였는데, 당시 피고인 1이 선장으로, 피고인 2가 1등항해사로 승선하고 있었다. ○○호는 2014. 4. 15. 18:30경 출항할 예정이었으나, 같은 날 17:35경 안개로 인한 시정주의보가 발효되어 출항이 지연되다가 같은 날 20:35경 시정주의보가 해제되어 같은 날 21:00경 출항하게 되었다. ○○호는 2014. 4. 15. 21:00경 인천에 있는 ♡♡부두에서 ○○호 선수 갑판에 컨테이너 45개를 일반 로프로 묶어 적재하는 등 다수의 화물을 적재하고,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 등 총 476명이 승선한 뒤 제주도를 향하여 출항하였다.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가 선박안전법 제28조에 의하여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복원성자료에 의하면 총톤수가 6,825톤인 ○○호가 최대한 적재를 할 수 있는 재화중량 톤수는 3,794톤이고, 복원성을 유지하면서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치는 1,077톤이었으므로, ○○호가 만재흘수 6.264m를 유지하면서 최대 1,077톤의 화물을 적재하기 위해서는 평형수 1,694.8톤, 연료유 560.9톤, 청수 290.9톤을 적재하고 출항하여야 한다. 따라서, 당시 1등항해사로서 화물의 적재 업무를 담당하는 피고인 2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와 ○○호의 화물적재, 고박 업무를 처리하는 계약을 체결한 공소외 14 주식회사(이하 ‘공소외 14 회사’라고 한다)의 현장 감독자를 통하거나 직접 현장 인부에게 화물의 적재 여부, 적재 위치와 방법 등을 적절히 지시, 점검하여 과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선장인 피고인 1은 화물이 과적되지 않는지 등을 점검하여 ○○호의 안전운항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는 인천에서 제주까지 1항차당 유류대금 등 비용만 약 6,000만 원이 소요되므로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화물을 많이 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고인 2는 2014. 4. 15. ○○호에 위와 같은 기준보다 평형수 933.6톤, 연료유 410.3톤, 청수 31.9톤 등 모두 1,375.8톤을 대폭 감축하여 평형수 761.2톤, 연료유 150.6톤, 청수 259톤만을 적재하는 방법으로 감축한 평형수 등의 무게만큼 화물을 더 적재할 수 있도록 하여 과적을 묵인하고, 피고인 1은 과적 여부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아 화물이 과적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호는 출항 전까지 C데크(2층) 선수 갑판에 컨테이너 45개와 일반 화물 등, Tween데크(2.5층) 선미 화물칸에 승용차 30대 등, C데크(2층) 화물칸에 승용차 70대, 화물차 28대, 중장비 1대 등, D데크(1층) 화물칸에 승용차 24대, 화물차 29대, 중장비 3대, 컨테이너 7개, 일반 화물 등, E데크(지하) 화물칸에 컨테이너 53개와 일반 화물 등 모두 2,142톤 상당의 화물을 적재하여, 복원성자료에 기재된 적재 가능한 화물 최대치 1,077톤을 1,065톤 초과한 화물을 적재하였다. 한편, 화물은 선박안전법 제39조에 의하여 운항관리규정 첨부 차량적재도 및 화물고박장치도에 정해진 방법으로 적재하고, 항해시 화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고박을 하여야 한다. ○○호 운항관리규정에 첨부된 차량적재도 및 화물고박장치도에 의하면, ① 컨테이너의 적재방법은 수직적재 시 1단의 경우 바닥에 설치된 돌기(콘)에 컨테이너 아랫부분의 홈을 끼워 잠금장치를 하고, 앞·뒷면에는 X자로 라싱바를 설치한 후 버클을 이용하여 바닥에 고정하며, 2단의 경우 1단 컨테이너 상단에 돌기(콘)를 설치하여 끼운 뒤 1단의 경우와 동일한 방법으로 고정하고, 수평적재 시 컨테이너 2개 상단의 양쪽을 커넥팅 피트로 연결하여 고정하는 것이고, ② 차량의 적재방법은 승용차의 경우 승용차 앞, 뒤 고리에 X자로 라싱밴드(나일론) 4가닥을 연결하고, 고정 화물차의 경우 화물차 앞, 뒤 고리에 X자로 라싱기어(쇠사슬) 4가닥을 연결하며, 고정 중장비의 경우 중장비 둘레에 라싱기어 10가닥을 연결하여 고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물의 고박 업무를 담당하는 피고인 2는 공소외 14 회사의 현장 감독자를 통하거나 직접 현장 인부들에게 화물의 고박 방식을 적절히 지시하여 적재된 화물들이 항해 중 움직이지 않게 규정대로 고박하도록 한 뒤, 화물의 적재 및 고박상태에 대하여 피고인 1에게 보고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피고인 1은 화물의 고박이 규정대로 되었는지 점검하여 안전운항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출항 전에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이를 운항관리자에게 제출하여 확인을 받은 후 출항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2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물류담당 공소외 25 등이 현장 인부들에게 ‘화물을 무조건 많이 적재하고, 컨테이너는 2단 컨테이너 상단을 로프로 둘러 묶는 방법으로만 고박하라’는 취지로 지시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묵인하였다. 이에 따라 현장 인부들은, 2014. 4. 15. 화물을 고박할 때 바닥에 컨테이너를 고정할 수 있는 잠금장치(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컨테이너를 적재하도록 승인되지 아니한 D데크(1층) 화물칸과 E데크(지하) 화물칸에도 위와 같이 컨테이너를 적재한 후 바닥에 고정하지 않은 채 상단을 일반 로프로 둘러 묶는 방법으로 고박하고, 선수 갑판에 설치된 컨테이너용 잠금장치의 규격과 맞지 않는 컨테이너를 2단으로 적재한 뒤 상단을 일반 로프로 둘러 묶는 방법으로 고박하는 등 규정에 위반하여 화물을 고박하였다. 그 후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에 대하여 점검하지 않은 채 3등항해사인 피고인 4에게 위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의 작성을 모두 위임하였고, 피고인 4는 화물적재상태 등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지 않은 채 위 안전점검 보고서 양식 밑에 먹지를 대고 현원란, 여객란, 일반화물란, 자동차란을 제외한 선체상태, 기관상태, 통신상태, 화물적재상태, 선박흘수상태, 객실 청소 정비, 연료적재상태 등을 모두 ‘양호’에 표시하고, 피고인 1의 서명을 기재한 다음 위 안전점검 보고서 2부를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운항관리실 소속 운항관리자인 공소외 26에게 제출하고, 공소외 26은 ○○호의 화물적재상태 등에 대하여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 중 1부에 자신의 서명을 한 뒤 피고인 4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호가 출항하자 피고인 4는 2등항해사인 피고인 3이 알려주는 대로 현원란에 ‘474명’, 여객란에 ‘450명’, 일반화물란에 ‘657M/T’, 컨테이너란에 ‘없음’, 자동차란에 ‘150대’를 기재하고, 위 공소외 26에게도 무전기로 알려주어 동일 내용이 기재되게 하였으며,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작성된 안전점검 보고서의 기재 사항을 확인하지 않았다. 위와 같이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호에 화물을 과적하고 고박을 규정대로 하지 않는 등 ○○호의 안전운항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호는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채 출항하게 되었다. 피고인 4는 사고 당일 07:30경부터 당직항해사로 근무하였는바, 평소 ○○호의 원래 선장인 공소외 11로부터 ○○호의 복원성이 매우 약하므로 변침은 5도 이하로 나누어 하여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호의 복원성이 취약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선장인 피고인 1이 조타실에 없는 상태에서 ▒▒▒▒에 진입하기 약 2~3마일 전에 자동조타에서 수동조타로 바꾸었던 상황이었으므로, ○○호의 현재 침로를 레이더와 육안 등으로 정확하게 확인하며 안전하고 정확하게 조타가 되도록 조타수를 지휘·감독하여야 하였다. 또한, 사고 당일 07:30경부터 당직조타수로 근무한 피고인 5는 ○○호의 복원성이 취약한 점과 화물적재상태나 고박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평소 우현으로 조타를 할 경우 좌현으로의 경사가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므로, 조타를 더욱 조심하여 소각도로 천천히 정확하게 함으로써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하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4는 ○○호가 같은 날 08:48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 이르자 침로 약 140도, 엔진 최대 출력을 유지한 채 145도 방향의 우현 변침을 시도하면서 주변 수역의 조류 특성 및 변화에 주의하여 피고인 5가 조타기를 위와 같이 안전하게 조작하는지 여부를 잘 살피고, 선수방향이 지나치게 빨리 회전하는 경우 곧바로 정확한 정침명령을 지시하여 대각도로 조타기를 조작하지 않도록 지휘하였어야 함에도, 피고인 5가 어느 방향으로 몇 도 타각을 사용하는지, ○○호가 선수 방향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전방견시를 하지 않아 이를 곧바로 시정하지 못하고, 피고인 5는 피고인 4의 지시에 따라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 원하는 대로의 변침이 이루어지지 않자 당황하여 임의로 조타기를 우현 측으로 대각도로 돌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바람에 선수가 급속도로 우회두하면서 외방경사의 영향으로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어졌다. 그 과정에서 전항 기재와 같이 과적된 상태로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이 좌현 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면서 그 영향으로 ○○호는 좌현 측으로 더욱 기울게 됨으로써 복원력이 상실되어 결국 좌현으로 약 30도 전도되었고, 2014. 4. 16. 08:49:13경 위도 34.162247, 경도 125.96492 지점 해상에 있다가 엔진정지 및 조류의 영향 등으로 선박 우측방향으로 타원형을 그리면서 08:52:01경 위도 34.160717, 경도 125.96008 지점 해상으로 이동하였다. 한편, ○○호는 09:34:03경 52.2도로 기울어진 것을 비롯하여 09:35:02경 52.9도, 09:36:17경 54.1도, 09:38:44경 54.4도, 09:39:10경 54.9도, 09:40:52경 55.3도, 09:41:26경 55.4도, 09:43:27경 56.2도, 09:44:38경 56.7도, 09:45:03경 57.3도, 09:46:38경 61.2도, 09:47:37경 62도, 09:49:44경 62.8도, 09:50:22경 62.6도, 09:51:46경 63.3도, 09:54:35경 64.4도, 10:07:41경 68.9도, 10:09:03경 73.8도, 10:10:43경 77.9도로 기울어지다가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다. 위와 같이 ○○호가 좌현으로 전도되어 08:52경 위도 34.160717, 경도 125.96008 지점 해상에 멈추자 각자의 선실에 있던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6, 피고인 7, 피고인 8은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조타실에 모였다. 피고인 2는 ○○호가 증·개축 공사 및 과적으로 인해 복원성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배가 좌현으로 많이 기울고, 배의 균형을 잡는 힐링펌프가 작동이 되지 않자 배가 곧 침몰할 것으로 인식하고 08:55경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essel Traffic Service Center, 이하 ‘VTS’라고 함)에 “본선... 아...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가 있습니다.”라며 구조요청을 하였다. 당시 ○○호에는 피고인들을 포함한 승무원 33명 외에 443명의 승객들이 승선하고 있었고, 이 중에는 건강한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녀자와 노약자, 특히 수학여행을 가는 △△고 학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호의 승무원인 피고인들은 승객들을 잘 통솔하여 동요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고, 승객들에게 선내방송을 통하여 사고 발생 사실을 알리고 적당한 간격으로 선원들에 의해 어떤 비상조치가 시행되고 있는지 등의 구조 관련 상황을 반복해서 알림으로써 승객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선장인 피고인 1은 승객들의 퇴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퇴선을 명령하고, 피고인들과 나머지 선원들은 신속히 담당 구역으로 간 뒤 질서 있게 승객들을 인도하여 승객들이 당황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며 선원들의 지시와 유도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승객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퇴선시켜야 한다. 한편, 갑판으로 대피시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하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이나 선원이 있을 수 있고, 방송을 듣고서도 대피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환자 혹은 노약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선장인 피고인 1, 1등항해사인 피고인 2, 기관장인 피고인 9 등은 최종적으로 객실 및 선원 선실을 수색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 1 등 피고인들은 ○○호의 승무원으로서 ○○호 운항관리규정 제10장, 제14장, 붙임 2 비상부서 배치표 등에 따라 인명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고처리 업무를 모든 업무에 최우선하여 시행해야 하며, 선장인 피고인 1의 지휘에 따라 비상탈출구 위치 및 대피 방법에 대한 안내방송을 이행하고, 담당구역의 여객 대피 안내 등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였다. 특히 피고인 1은 선장으로서 인명구조 및 퇴선 등 구조조치를 총괄 지휘하면서 승객들을 구조가 용이한 갑판 등에 대피시키고 안전한 퇴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내 방송설비·무전기·전화 등을 통한 대피명령과 퇴선명령 및 상황전파 안내방송, 선원을 통한 안내 및 승객 유도, 선원들의 담당구역 배치 및 구명뗏목과 슈트의 투하 지시 등 적절한 구조조치를 취함과 아울러 선원들이 각자에게 부여된 구조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지휘·감독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피고인 2, 피고인 6은 각 1등항해사로서 선장을 보좌하여 현장을 지휘하고, 우현 슈트를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우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 3은 2등항해사로서 선장을 보좌하면서 좌현 슈트와 구명뗏목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좌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피고인 4는 3등항해사로서 승객구조를 총지휘하는 선장을 보좌하고, 항해일지 등 운항관련 기록을 보존하며, 통신기기로 조난신고, 구조요청을 하는 등 승객들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피고인 5, 피고인 7, 피고인 8은 각 조타수로서 선장과 항해사들의 지휘를 받아 슈트, 구명뗏목, 비상사다리나 구명환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피고인 9는 ○○호의 기관장으로서 선박 침몰과 같은 비상상황 발생 시 승객들에게 비상탈출구 위치 및 대피 방법을 안내함과 아울러 기관부 선원들을 지휘하여 기관부 선원들로 하여금 담당 구역에 따라 좌·우현 슈트, 구명뗏목 투하, 좌·우현 비상사다리 투하 등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 피고인 10은 1등기관사로서 주기관을 담당하고 우현 슈트 및 구명뗏목을 투하하며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피고인 11은 3등기관사로서 기관실을 총지휘하는 기관장을 보좌하여 승객들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피고인 12는 조기장으로서 익수자를 구조하고 우현 슈트 및 구명뗏목을 투하하며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우현 슈트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는 각 조기수로서 기관장의 지휘를 받아 슈트, 구명뗏목, 비상사다리나 구명환을 투하하고 승객을 유도하는 등 승객들이 구명뗏목 등을 통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호가 사고 발생 직후 이미 좌현으로 약 30도 정도 기울고, 선수 갑판에 있던 컨테이너 등의 화물들이 좌현으로 쏠려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피고인들은 평소 복원력이 나빴던 ○○호가 곧 전복되어 침몰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위와 같은 의무에 따라 선장인 피고인 1은 즉시 다른 피고인들을 비롯한 전 선원들에게 비상부서배치 명령을 발하여 각 선원들이 비상부서배치표에 따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휘하고, 피고인 2를 비롯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각자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승객 등을 선실에서 나오게 한 뒤 갑판으로 유도하는 등 퇴선준비를 하여야 했다. 그런데 피고인 1은 위와 같은 퇴선준비를 하지 않은 채 오히려 08:58경 피고인 3에게 승객들로 하여금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지시하고, 이에 피고인 3이 시스템 배전반에 부착되어 있는 방송시스템 전원버튼을 누르고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였으나, 비상버튼을 누르지 않아 선내방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피고인 3은 ○○호의 사무장 공소외 6에게 무전기로 연락하여 ○○호의 침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안내방송을 하라고 지시하고, 공소외 6은 3층 안내데스크에 있는 ○○호의 매니저 공소외 7에게 ‘선내 대기’ 안내방송을 할 것을 지시하여 공소외 7은 승객들에게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하였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하여 승객들로 하여금 선박의 침몰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계속 선내에 대기토록 하였다. 한편, 위 사고 발생 당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 9는 ○○호가 급속히 기울어져 선수 갑판의 컨테이너가 좌현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전복될 것으로 판단하여 엔진을 정지시키기 위해 엔진텔라그래프 레버를 잡아 당겼으나 불완전하여 엔진이 완전히 정지되지 않은 상태에 있던 중 피고인 1의 지시로 엔진을 완전히 정지시킨 다음 직통전화로 기관실에 전화를 걸어 기관실에 있던 기관부 선원인 피고인 11, 피고인 14, 피고인 13에게 기관실에서 나올 것을 지시하였다. 이어서 피고인 9는 피고인 1이 “기관실로 내려가 봐라”라고 지시하자 곧바로 조타실을 나와 기관부 선실이 있는 3층 복도까지 계단으로 내려갔고, 09:06경 그곳에서 기관실에서부터 올라 온 피고인 11, 피고인 14, 피고인 13과, 기관부 선실에서 나온 기관부 선원인 피고인 10, 피고인 12, 피고인 15와 함께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였다.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등은 09:13경 ○○호 부근을 항해 중이던 □□□□□호가 진도VTS의 구조요청을 받고 ○○호의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호에 다가오면서 “탈출을 하면 저희들이 구조를 하겠습니다.”라는 교신을 보내는 것을 들었으므로 □□□□□호가 구조를 위해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후 진도VTS와의 교신을 통해서 경비정 및 인근 어선들도 구조를 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09:21경 및 09:23경 진도VTS 및 □□□□□호로부터 “지금 □□□□□가 지금 접근 중에 있는데 지금 그 ALONGSIDE가 할 수 없는 상태라 구조 대기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있다가 인명들이 탈출하면 인명구조 하겠습니다.”라는 교신을 들었고, 이때는 사고 직후보다 배가 좀 더 좌현으로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명뗏목과 슈트 등 구조장비를 투하하고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등의 구조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묵살하였다. 더욱이 조타실에 있던 위 피고인들은 09:23경 진도VTS로부터 “경비정 오는데 15분, 15분입니다.”,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그 승객들한테 구명동의를 꼭 착용을 하고 옷을 두껍게 입으라고 최대한 많이 전파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교신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09:24경 □□□□□호 선장으로부터 “맨몸으로 하지 마시고 라이프링이라도 하여간 착용을 시켜서 탈출을 시키십시오, 빨리.”라는 교신을 받았음에도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등 아무런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를 묵살하고, 다시 09:25경 진도VTS로부터 “지금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저 선장님께서, ○○호 선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셔갖고 지금 승객 탈출을 시킬지 최대한 지금 빨리 결정을 해 주십시오.”라는 교신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등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살하였다. 그 무렵 조타실에 있던 위 피고인들은 피고인 3이 소지하고 있던 무전기와 조타실에 비치된 무전기를 통해 3층 객실 안내데스크에 있던 ○○호의 매니저 공소외 20과 공소외 7로부터 선내에 대기 중인 승객들에 대한 대피 등 추가 조치 요청을 수차례 받았음에도 승객들에 대한 대피명령을 하는 등 추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선박 침몰 상황 및 올바른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하는 공소외 20과 공소외 7은 계속해서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여 승객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계속 선내에 대기토록 하였다. 조타실에 있던 위 피고인들은 09:26경 진도VTS로부터 “경비정이 10분 이내에 도착을 할 겁니다.”라는 교신을, 09:27경 진도VTS로부터 “1분 후에 헬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는 교신을 각 받았으므로 승객들을 대피장소에 모이게 하는 등 즉시 탈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여야 함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던 중, 09:34경 ○○호가 사고당시보다 더 많이 기울면서○○호의 침수한계선(D데크 높이까지의 흘수)이 이미 수면에 잠기어 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므로 ○○호가 곧 전복될 것이고, 따라서 승객들에 대한 대피명령 및 퇴선명령을 더 이상 지체하면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에 따라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은 아예 선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타실에 있던 위 피고인들은 09:37경 이후 진도VTS로부터의 교신에 응답하지 않은 채 해경 경비정이 ○○호에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대피명령 및 퇴선명령, 승객 퇴선유도 등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승객의 상황에 대하여 확인하거나 승객 구조 방법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다가, 09:39경 피고인 9 등 기관부 선원들이 퇴선하는 것과 전방에 경비정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승객과 다른 선원들을 ○○호에 그대로 대기시켜 둔 채 자신들만 퇴선하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조타실 좌측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 차례로 윙브릿지로 나간 후, 09:46경 ○○호의 조타실 앞에 도착한 해경 123호 경비정에 탑승하면서 자신들이 선장 또는 선원임을 밝히지 않고 ○○호를 퇴선하였다. 한편, 피고인 9는 위와 같이 ○○호의 3층 기관부원 객실 복도에서 피고인 10, 피고인 11, 피고인 12,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로 하여금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도록 하였고, 피고인 9 등 위 기관부 소속 피고인들은 조타실의 피고인 1 등이 구명뗏목과 슈트 등 구조장비를 투하하지 아니하였고 승객들에 대한 대피명령 및 퇴선명령도 하지 아니하여 승객 등이 선내에 대기 중인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피고인 9가 조타실이 있는 5층에서 기관부 선실이 있는 3층까지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왔고, ○○호의 가장 아래층인 선저의 기관실에 있던 피고인 11, 피고인 14, 피고인 13이 3층까지 올라온 점 등에 비추어 기관부 피고인들은 선내 이동이 가능한 상황임을 인식하였으므로, 인접한 선실로 이동하여 승객들을 대피시키거나 위와 같이 각자 맡은 비상시 임무를 수행하여 승객들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채 대기하던 중, 바로 옆 복도에서 조리수 공소외 1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고, 조리원 공소외 2가 굴러 떨어진 충격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호가 좌현으로 계속 기울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하면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에 따라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이 아예 선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하게 되고, 특히 부상을 당한 공소외 1과 공소외 2도 선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9 등 기관부 소속 피고인들은 구명뗏목과 슈트를 투하하고 위 공소외 1, 공소외 2와 승객들을 구조가 보다 용이한 갑판으로 대피시키는 등 승객 구조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승객의 상황에 대하여 확인하거나 승객 구조 방법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3층 복도에 모여 약 30여 분 동안 해경 구명단정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피고인 9는 09:38경 해경 구명단정이 ○○호의 좌현으로 접근하자 승객들과 다른 선원들을 ○○호에 그대로 대기시켜 둔 채 자신들만 퇴선하기로 마음먹고, 피고인 10 등 기관부 선원들에게 3층 복도와 연결된 좌현쪽 출입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도록 한 뒤 09:39경 해경 구명단정에 탑승하면서 자신이 선원임을 밝히지 않고 ○○호를 퇴선하였고, 피고인 10, 피고인 11, 피고인 12,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도 피고인 9의 지시에 편승하여 승객들에 대한 아무런 구조조치 없이 피고인 9와 함께 ○○호를 퇴선하였다. ○○호에서는 08:52경부터 매니저 공소외 7에 의하여 선내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가 시작된 것을 비롯하여 09:50경까지 수회에 걸쳐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만 계속되었을 뿐, 승객들에게 사고상황이나 대피요령 등에 대해서는 안내방송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따라 08:52경 ○○호에 타고 있던 피해자 최○○(남, 16세)가 119에 최초로 사고 신고를 하고, 피해자 김○○(여, 16세)이 09:41경 “아 진짜 보고싶어ㅜㅜ엄마ㅜㅜ, 야 진짜무서워ㅜㅜㅜ, 창문바로앞에컨테이너, 떠내려가고잇어, 존나방송도안해줘, 걍가만히만잇으래”, 09:42경 “아빠가 속보 떳다고, 보라고해서, 아니숙소안에, 다잇어, 배터리단다고, 지피에스 켜놓고, 배터리다니까, 기다리래ㅜㅜ“라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피해자 박○○(여, 16세)이 10:17경 “지금 더 기울어”라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승객들은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선내에서 구조조치를 기다리면서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한편, 피해자 유○○(남, 58세)은 3층 선수 좌현 큰방에서 대기하던 중 좌현쪽 창문을 통해 바닷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출입문을 이용하여 안내데스크로 이동한 후 다시 로비계단을 통해 4층 우현 갑판까지 이동하여 대기하던 중 해경에 구조된 것을 비롯하여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에도 불구하고 갑판 등으로 이동하여 해경에 의해 구조되었던 바, 피고인들이 퇴선명령을 하고, 구명뗏목을 투하하는 등 구조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였다면 승객들이 살아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호가 전복되고 피고인들이 대피명령 및 그에 따른 승객들의 대피유도 등 아무런 구조조치 없이 ○○호를 퇴선함에 따라 위 ○○호에 탑승했던 정○○(남, 16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303명 및 공소외 3(남, 57세)은 그 무렵 바다에 빠져 사망하였고, 강○○(남, 40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Ⅱ 기재 152명은 해경 등에 의하여 구조되었으나 ○○호가 갑자기 기울어 질 때 또는 탈출 과정에서 상해를 입었다. 피고인들은 2014. 4. 16. 08:48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위 제4항 내지 제5항 기재와 같은 피고인 1, 피고인 2의 평형수 감축 적재, 화물과적 및 고박불량, 피고인 5의 조타 미숙, 피고인 4의 지휘감독 잘못 등의 업무상과실로 ○○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지면서 전복됨으로써 승객 등 476명이 현존하는 ○○호를 침몰케 하였다. 피고인 9는 제6항 기재와 같이 조타실에서 3층 기관부 선실쪽 복도로 이동하여 09:06경부터 09:38경에 이르기까지 3층 복도에서 다른 기관부 선원들과 모여 있던 중, ○○호가 좌현으로의 전도가 계속 진행되고 있어 빠른 시간 내에 3층이 침수되어 선박이 전복할 것임을 예상하였고, 자신의 바로 옆 복도에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을 당한 공소외 1과 공소외 2가 아무런 구조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들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할 경우 ○○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으며, 자신의 지휘를 받고 있는 다른 기관부 선원들과 함께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갑판으로 이동시켜 해경 등을 통해 구조를 받게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9는 09:38경 ○○호의 3층 복도에서 공소외 1, 공소외 2에 대한 어떠한 구조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채 퇴선하기로 마음먹고, 그곳에 함께 있던 피고인 10, 피고인 11, 피고인 12,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와 함께 3층 복도와 연결된 좌현쪽 출입문을 통하여 선체 밖으로 나와 09:39경 해경 구명단정에 올라타면서 구조 해경에게 공소외 1, 공소외 2가 선내에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로써 피고인 9는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 남아있던 피해자 공소외 1과 공소외 2를 구조할 의무가 있음에도 아무런 구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위 피해자들을 그 무렵 바다에 빠져 익사하게 하여 살해하였다. 피고인들은 2014. 4. 16. 08:48경 위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침몰한 ○○호의 승무원으로서 위 제6항 기재와 같이 승객들을 구조할 계약상의 의무가 있고, 피고인 1의 경우 승객들 외에도 승무원을 포함한 ○○호의 전 승선원들을 구조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승무원의 선내대기방송에 따라 구조를 기다리며 침몰하는 ○○호 선내에 대기 중이던 승객과 다른 선원들의 구조를 위해 필요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Ⅲ 기재(각 음영처리 부분 제외한 나머지 부분) 피해자들을 유기함으로써, 피해자 정○○(남, 16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 중 293명으로 하여금 그 무렵 익사로 사망에 이르게 하고, 피해자 강○○(남, 40세)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어깨, 팔, 무릎 타박상 및 불면 등 적응장애의 상해를 입게 하는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Ⅲ 기재 피해자 중 140명을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 피고인 1은 그 외에도 승무원인 피해자들을 유기하여 피해자 공소외 6(남, 44세) 등 10명을 각 사망에 이르게 하고, 피해자 김○○(남, 23세), 오○○(남, 20세)을 각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2014. 4. 16. 08:48경 위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호 선박이 복원성을 잃고 급속히 기울어져 전복될 급박한 위험이 있었음에도 제6항 기재와 같이 승객들을 신속히 대피시키는 등 인명 등의 구조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위 제8의 가.항 기재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호가 좌현 뒷부분부터 침수되면서 바다에 매몰되어 유류탱크의 에어벤트(통풍관) 등을 통하여 벙커C유 139킬로리터(㎘), 경유 39킬로리터(㎘)와 윤활유 36킬로리터(㎘) 등 연료유로 사용되는 총 214킬로리터(㎘) 가량의 기름을 주변해상으로 배출하였다. 피고인은 그 사용인인 위 피고인 1, 피고인 4, 피고인 5가 피고인의 업무에 관하여 위와 같은 위반행위를 하였다. 이 사건 사고는 무리한 선박 개조로 인한 선박 무게중심의 상향이동 및 복원성의 심각한 저하, 과적 및 평형수 부족, 부실한 고박 등에 있고, 이러한 사정은 전적으로 ○○호의 선사인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가사 피고인들의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정들이 선박 침몰의 주된 원인인 이상 피고인들의 과실과 선박매몰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해역에서 135도 방향으로 진행하던 중에 피고인 4의 140도 변침 지시에 따라 타를 우현으로 5도 정도 돌렸다가 선체 방향이 143도까지 넘어가는 것을 보고 정침을 위해 좌현방향으로 타를 돌린 적이 있을 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타를 우현 대각도로 돌린 사실이 없다.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해역에서 정해진 항로를 따라 5도씩 나누어 정침이 됐는지를 확인하면서 피고인 5에게 변침을 지시하였고, 레이더와 각종 기기 등을 주의 깊게 살피며 항해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 사고 지점에 이르러 피고인 5에게 145도 변침을 지시한 직후 갑자기 선체가 급격히 우회두하면서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사 변침 과정에서 피고인 5가 타기를 조금 더 돌렸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호의 선체가 기울어져 복원력을 상실하였다면 그 자체로 ○○호에 결함이 있는 것이고, 선박이 정상적으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15도 이상의 타각도 당연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당직항해사인 피고인이 조타수인 피고인 5가 타기를 얼마나 돌리는지를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조타지휘에 관한 피고인의 업무상과실은 인정될 수 없다. ○○호의 화물적재와 고박에 관한 업무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물류팀이 전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화물적재와 고박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감독권이 없는 피고인으로서는 적재된 화물량에 따라 평형수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이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간부들에게 몇 차례 과적 및 부실고박을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피고인의 건의가 묵살되었다. 따라서 피고인이 ○○호의 화물적재와 관련하여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거나 피고인에게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사고 지점은 협수로인 ▒▒▒▒를 이미 빠져나온 곳으로 협수로로 볼 수 없고, 당시 해역의 조류의 세기, 바람, 파도의 높이, 시정 거리, 통행량 등에 비추어 보면 ○○호의 항해에 장애가 우려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당직항해사인 피고인 4는 항해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2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상행시에는 위 구간을 항상 통과해 왔다. 당직조타수인 피고인 5는 조타수로서의 경험이 충분하고, 조타능력에 있어서도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이 사건 구간을 당직 조타수로서 통행해 왔다. 따라서 이 사건 사고 지점이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 곳으로서 선장이 직접 지휘해야 할 구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사고 발생 과정을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이 조타실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화물적재 및 고박에 관해서도 피고인 2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통제 권한이 없는 피고인으로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으므로, 피고인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거나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호가 우선회한 것은 피고인 5가 조타기를 우현방향으로 조작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호에는 항해자료기록장치(VDR, Voyage Data Recorder)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 당시 항적을 가장 정확히 나타내는 자료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이하 'AIS'라 한다) 신호의 송수신기록이다. AIS는 주변 선박과의 충돌예방 또는 해상교통관제 등의 목적으로 자선(自船)의 위치, 침로와 속도 등의 정보를 외부에 알려주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각 선박에서 발신한 정보신호를 인근의 각 기지국에서 수신하여 저장한다. 위 신호에 담긴 해당 선박의 위치, 침로, 속도 등의 정보는 선박에 설치된 송신기가 설정된 주기에 따라 실시간으로 발송한 것이며, 수신된 정보는 ○○호의 자이로컴퍼스, GPS 등을 통해 기계적으로 수집된 것으로서 높은 정확도를 가진다. 사고 당일 ○○호의 항적자료 중 일부 구간의 정보가 소실되고 2014. 4. 16.(이하 날짜 부분 생략) 08:37:18경에는 대지침로가 360도로 저장되어 있는 등 오류가 발견되지만, 이러한 오류는 송수신 또는 저장과정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AIS의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고, 사고 지점 이전까지 저장된 정보가 ○○호의 항로와 일치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호의 AIS 자료에 대한 제3자의 의도적인 편집이나 조작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각 기지국에 저장된 신호정보 중 일부가 뒤늦게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저장된 정보 자체는 ○○호로부터 수신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각 기지국에서 발견된 AIS 자료를 모아서 구성한 항적자료는 사고 당시 ○○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그런데 사고 당일 ○○호의 AIS 자료에는 ○○호의 선수방위각이 08:49:40경 2초만에 29도가 증가하고, 08:49:43경에는 2초만에 22도가 감소하는 등 ○○호가 실제로 움직인 상황과 다른 수치가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수치는 AIS 신호정보의 송수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는 양상이 다르고, 같은 시간대에 GPS로 측정된 위치는 큰 동요 없이 선회권 바깥으로 약간 밀린 형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때, 위와 같은 수치가 발생한 원인은 ○○호에 설치된 자이로컴퍼스가 순간적인 대각도 경사나 화물이동으로 인한 충격으로 세차운동을 일으켰거나 자이로컴퍼스의 선수방위가 AIS로 입력되는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하는 등 조타에 의하지 않은 다른 원인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호의 사고 당시 AIS 자료에 의하면, ○○호의 선수방위각이 08:46:22경부터 08:48:38경까지 140도 방향을 2분 16초 이상 유지하였음이 확인된다. ○○호의 예정 항로에 의하더라도, ▒▒▒▒를 통과해서부터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병풍도 앞 지점까지는 130도에서 145도 방향으로 변경하는 변침구간이다. 피고인 4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140도 정침을 확인한 후 145도 변침지시를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9도 이 법정에서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으나 피고인 4가 도수를 말하며 변침을 지시한 후 선체가 우선회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피고인 3은 검찰 조사에서 피고인 5가 ‘타가 쓴 것보다 많이 돌았다거나 배가 확 넘어갔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6 역시 이 법정에서 사고 발생 후 모텔에서 지낼 당시 피고인 5로부터 “키를 돌렸더니 너무 많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왼쪽으로 키를 돌렸는데 빠르게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키를 왼쪽으로 더 돌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 5는 사고 지점에서 조타를 할 당시 피고인 4로부터 145도 변침지시를 받고 우현 변침을 시도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호의 AIS 자료를 기초로 사고원인을 분석했던 합동수사본부 자문단(이하 ‘자문단’이라 한다)의 단장 공소외 12는 이 법정에서, ○○호의 선수방향이 150도가 된 08:49:13부터의 선회각속도 증가추이는 ○○호가 처음 건조될 당시의 선회시험 결과와 비슷하고 선회각속도가 초당 2도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시점(08:49:30부터 08:49:39까지)에 이르러서는 정상선회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며 항적자료상 좌현으로 조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한, 사고 지점 해역의 수심은 30m 이상으로 항해에 장애가 될 요소가 없었고, ○○호가 완전히 전복되었을 때에 촬영된 영상들에 의하면 ○○호의 수면 아랫 부분에 외부 충격으로 인한 파공이나 외부 물체와 충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당일 피고인 5보다 먼저 조타를 했던 피고인 7, 피고인 8은 이 법정에서 ○○호의 조타기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AIS 자료에 의하더라도 ○○호가 사고 지점까지 항로를 따라 정상적으로 변침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피고인 5도 사고 지점에 이르기 전에 조타기의 휠이 움직이지 않는 등 조타기 자체의 고장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다만 피고인 5가 조타기의 휠을 조작하더라도 수면 아래의 러더가 움직이지 않고 우현방향으로 고정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면 조타기의 조작과 무관하게 ○○호의 선체가 우회두 하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러더 부분의 전기 공급이 차단된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사고 당일 ○○호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출동한 전남 201호에서 촬영한 동영상 중 10:22경 부분을 보면 러더가 미집(midship)에 위치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피고인 5는 ○○호가 전복된 후 확인되는 러더의 상태가 자신이 우현으로 조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조타에 관한 피고인 5의 주장 요지는 좌현으로만 15도까지 타기를 돌렸고 그 후로 조타기 휠을 만지지 않았다는 것으로서 ○○호의 러더가 미집인 상태에 부합하지 않고, ○○호가 기울기 전에도 러더가 미집인 상태를 유지하였다면 ○○호가 AIS 자료에서 확인되는 항적을 그리며 우선회하였을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호가 기울 당시 러더가 움직이지 않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호가 이 사건 사고 지점에서 우회두를 계속한 것은 피고인 5의 조타기 조작에 의한 것으로 발생한 것이고, ○○호의 조타기 고장, 외부물체와의 충돌 등 다른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조타실에 있었던 피고인 9, 피고인 4는 이 법정에서 ○○호가 급격히 우선회할 때에 조타실 정면 상단에 위치한 타각지시기를 보지 못하였고, 피고인 5가 당시 조타기 휠을 돌리는 장면도 보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호가 전복된 후 확인되는 러더의 상태는 미집이었다. 따라서 피고인 5가 몇 도의 타각을 어느 정도 유지하였는지는 다른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과 앞서 본 바와 같이 조타기 고장 등 다른 외부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 5가 적어도 15도 이상의 타각을 40초 동안 유지하는 것과 대등한 정도의 대각도 타각을 사용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가) ▽▽▽▽연구소는 이 사건 사고 당시의 ○○호의 모형, 적하상태, 조종성능, 해역, 항행환경을 모델링하여 조타 및 선박의 경사에 의한 화물의 쏠림, 침수 등이 이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시뮬레이션 연구를 수행하였고, 보다 정확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기 위해 ○○호의 모형을 만들어 각종 실험을 통해 조종계수를 추출하였으며, 화물의 적재량, 적재 위치, 평형수, 연료 등 선박의 사고 당시의 상태를 반영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였다. 이를 기초로 우현 5, 10, 15, 20, 25도를 각 적용하였을 때의 궤적과 ○○호의 AIS 항적자료상 궤적을 비교한 결과 선수각의 경우 초기는 우현 15도, 후기는 우현 20도의 궤적과 유사한 경향을 얻었다. 나) 피고인 4, 피고인 5는, ▽▽▽▽연구소의 조종계수의 측정과 관련하여 중간보고서의 실험에서는 지그재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였고, 소각도 조타에도 큰 횡경사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호의 조종성능은 건조 당시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고, 선수에 화물을 실은 경우 타효가 좋지 않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아 ▽▽▽▽연구소의 시뮬레이션이 ○○호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소의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의 각 기재와 ▽▽▽▽연구소의 실험을 담당했던 공소외 28, 공소외 18의 각 법정진술에 의하면, ① 중간보고서의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론적인 근거로 조종계수를 산출한 반면, 최종보고서의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모형을 통해 ○○호의 유체역학적인 특성을 파악하였기 때문에 선회시험이나 지그재그시험의 결과와 상관없이 더 정확한 조종계수를 추출하였던 점, ② 지그재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정 각도로 조타를 한 후에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려면 반대방향으로 더 큰 각도로 조타를 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 시뮬레이션 결과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점, ③ 중간보고서에서 5도 변침에도 불구하고 횡경사가 23도까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 것은 복원성 조건이 달랐기 때문인 점, ④ ▽▽▽▽연구소에서 최종보고서를 작성할 당시 실제 ○○호의 상태를 최대한 반영한 모형을 통해 조종계수를 추출한 점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연구소에서 작성한 최종보고서의 실험 결과가 정확성을 가지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 4, 피고인 5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 피고인 4는 ▽▽▽▽연구소에서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면서 설정한 마찰계수가 지나치게 높고 화물의 이동 모습도 실제와 차이가 있으며 마찰계수를 달리 설정할 경우 ○○호의 선회궤적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연구소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소의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의 기재에 의하면, ▽▽▽▽연구소에서 관련 자료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호에 적재된 각 화물의 특성과 적재 위치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화물의 종류별로 마찰계수를 설정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연구소에서 설정한 화물의 마찰계수가 실제와 다르거나 현저히 높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피고인 4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 피고인 4, 피고인 5는, ▽▽▽▽연구소에서 특수시뮬레이션의 조타 시나리오를 모두 우현 25도 이상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하였으나 분석시뮬레이션 결과 마찰계수가 최소일 때에는 조타각을 우현 10도 내지 15도로 한 경우에도 ○○호의 초기 AIS 항적과 유사한 결과가 나왔고, ●●대학교●●사업단(이하 ‘●●대’라 한다) 역시 작은 조타(조타조건3, 0도→우현 5도→좌현 3도→우현 5도→우현 15도)를 하였을 때에도 전복 위험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고 인정하였으므로, 피고인 5가 사고 발생 당시 15도보다 작은 각도의 조타를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 피고인들의 주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대 2차 보고서에 의하면 운항적재조건1(○○호의 적재화물량을 1969.2톤으로 본 경우), 조타조건3, 화물이동1(화물이동이 없는 경우)의 경우에도 ○○호와 유사한 궤적을 보이면서 전복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고, 공소외 18과 공소외 28도 이 법정에서 ▽▽▽▽연구소의 시뮬레이션과 다른 타각 조건을 주더라도 그 외의 조건들이 다를 경우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진술하였는바, 다른 조건들이 변경될 경우 피고인들의 주장과 같이 15도보다 작은 각도의 조타를 하였을 때에도 ○○호가 전복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 2차 보고서에 기재된 조타조건3의 경우 15도의 조타를 시작한지 약 50초 후에 전복에 이른 것을 알 수 있고, 반면 같은 화물 조건에서 다른 조타 시나리오를 한 경우에는 타를 크게 쓰는 시간은 작고, 오히려 침수 및 전복 위험도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대각도 조타가 타각의 크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타를 사용한 시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연구소의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조타각 10도의 경우는 같은 조건에서의 15도 및 20도의 경우와 선수각변화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나고, 마찰계수를 0.2로 가장 작게 했음에도 화물의 이동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 전에 실제 ○○호 궤적과의 차이가 많이 발생한다. 결국 위와 같은 분석결과에 의할 때 15도 미만의 조타를 통해서 ○○호의 실제 궤적과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40초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조타를 유지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호가 우회두 하기 이전에 피고인 4, 피고인 5가 당시 5도 변침을 시도하고 있었던 사실과 조타에 관한 피고인 4, 피고인 5의 진술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5가 15도 미만의 타각을 4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피고인 4, 피고인 5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 피고인 4는, AIS 항적자료에 의하면 사고 당일 08:49:30경부터 08:49:39경까지 ○○호의 선회각속도가 초당 2.00도에 이르렀는바, 이러한 선회각속도는 ○○호의 건조시 공선상태에서 35도 전타를 하였을 때 관찰된 최대 선회각속도인 초당 1.81도보다 훨씬 높으므로, ○○호의 당시 속도, 무게, 타각, 개조상태 등을 고려할 때 건조 당시의 공선상태에서 시험한 결과보다 사고 당시의 각속도가 더 큰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선회시험 결과와 다르게 ○○호의 선회각속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등의 비정상적인 선회각속도가 발생한 점에 비추어 보면, ○○호는 피고인 5의 조타 외의 다른 원인에 의하여 급격히 우회두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연구소의 사전 시뮬레이션 분석결과와 공소외 12, 공소외 28의 각 법정진술에 의하면, ① 동일한 타각을 사용하더라도 선박의 무게중심이 높아질수록 선수각이 빠르게 변하고 횡경사도 더 커지는 점, ② 화물의 이동이 빠를수록(마찰계수가 작을수록), 무게중심이 더 높을수록 모형 실험의 항적이 ○○호의 AIS 항적에 더 가깝게 나타나는 점이 인정된다. 또한 별도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대에서도 조타에 의해서 ○○호의 AIS 항적과 유사한 항적을 나타내는 다양한 경우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피고인 4가 지적한 ○○호의 비정상적인 선회각속도는 ○○호의 높아진 무게중심, 급격한 횡경사, 화물의 이동 등으로 인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조타 외의 제3의 원인에 의하여 ○○호가 급격히 우회두 하였다는 피고인 4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 1은 수사기관에서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사고 직후 조타실에 들어온 뒤에 조타실 정면 상단의 타각지시기가 우현 15도 정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 5는, 평소 시력이 좋지 않고 난시가 있는 피고인 1이 사고 당시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조타실 정면 상단에 있는 타각지시기의 눈금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피고인 1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위 타각지시기를 보았다고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 1은 타각지시기를 보게 된 경위에 관하여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제21회 공판기일에서 실시한 실험 결과피고인 1의 시력이 나쁘지만 4m 정도 떨어진 타각지시기의 방향을 착각하거나 각도를 사실과 다르게 볼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었으므로 피고인 1의 위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 자문단은, 피고인 5가 145도의 변침지시를 받고 변침을 시도하던 중 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바람에 변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15도 이상의 각도로 조타하였는데 타효가 뒤늦게 발생하여 선체가 빠르게 우선회하였고, 그 때 피고인 4가 ‘반대로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방향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더 큰 각도로 조타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 근거로 AIS 항적자료 및 당시 ○○호가 사고 지점을 향해 진행하던 중에 조류의 방향이 바뀌면서 속도가 줄어들었고, 선수방위각과 대지침로가 약 7도까지 차이가 나는 현상이 발생한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지점에서 조류 때문에 조타가 잘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는 □□□□□호 선장 공소외 17의 법정진술과 사고 당시의 조류는 약 0.5노트로서 ○○호와 같은 큰 선박의 조향성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공소외 18의 법정진술, 0.5노트 정도의 조류는 인천와 제주를 왕복하는 ○○호의 전체 항로에서 약한 편에 속하는 사실, 평소 항해를 할 때에 1노트 이하의 조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4의 법정진술에 비추어 보면, ○○호가 기울 당시 사고 지점의 조류가 피고인 5의 조타에 방해가 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인 5가 변침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타를 15도까지 사용했을 가능성은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피고인 5는 5도 변침을 시도하다가 우선회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하자 당황하여 좌현 방향으로 타를 쓰려고 하였으나, 자이로컴퍼스의 회전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착각하여 우현 방향으로 타를 더 크게 썼거나 미집을 하기 위해 타를 반대로 쓰던 중에 피고인 4의 ‘반대로요’라는 말을 듣고 착각하여 다시 우현으로 대각도의 타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해사안전법 제66조에 의하면 선박은 다른 선박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충분히 큰 타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바, ○○호가 정상적인 복원성을 갖춘 선박이었거나, 피고인 5가 ○○호의 증개축, 화물의 과적, 부실고박 등의 사정을 몰랐다면 단지 15도의 타각을 40초 정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 5는 ○○호가 정상적인 복원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고구간에서 변침을 주의해서 해야 하는 점을 알고 있었던 점, ② 사고 지점은 5도 변침구간이고, 다른 선박을 피해야 하는 등 급박한 상황도 아니었던 점, ③ 조타수의 직책을 맡고 있는 피고인 5는 변침이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를 곧바로 당직항해사에게 보고하고 그 지시에 따라 정확한 조타를 하여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5가 위와 같이 타기를 임의로 사용한 것은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 검찰은 피고인 4가 피고인 5에게 변침할 방위각만 불러줌으로써 피고인 5가 5도를 넘어 대각도로 타기를 조작할 수도 있게 일임한 것은 피고인 4의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호의 항해사들인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은 항해지휘를 할 때 평소 타각지시법과 도수지시법을 혼용하여 사용한다고 진술하였고, 조타수인 피고인 7, 피고인 8 역시 이 사건 사고 지점에서 선장 등 항해사들이 타각지시법이나 도수지시법을 혼용하여 항해지휘를 하였다고 진술한 점, ② 자문단의 공소외 12도 이 법정에서 피고인 4가 타각을 지시하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하나 그 자체가 과실에 해당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한 점, ③ ○○호의 또 다른 선장인 공소외 11은 이 법정에서 피고인 4에게 변침시 타각을 5도 이내로만 사용하여야 한다고 지도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호의 전체 항로 중 입·출항시나 팔미도 부근에서는 10도 이상의 타각을 사용하여야 하는 구간이 있는 사실과 변침을 할 때 5도씩 끊어서 하였던 것이지 타기 자체를 5도만 쓴 것은 아니라는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7, 피고인 8의 법정진술에 비추어 공소외 11의 위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점, ④ 변침지시를 할 때 도수를 지시할지 타각을 지시할지는 항해사의 재량에 맡겨진 것으로 두 가지 방법 모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항해지휘 방법에 해당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 4가 피고인 5에게 5도 변침을 일임한 것 자체가 항해지휘상의 과실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인 4가 피고인 5에게 변침할 방위각만 불러준 것이 업무상과실에 해당한다는 점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5가 이 사건 사고 지점에 이르러 피고인 4로부터 140도에서 145도로의 변침지시를 받고 타기를 사용하던 중에 15도 이상 타를 40초 정도 사용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직항해사인 피고인 4는 자신의 항해경험에 따른 체감이나 자이로컴퍼스, 레이더를 통해 선수의 회전속도를 확인하면서 지나치게 빠르게 회전할 경우에는 곧바로 피고인 5에게 정침지시를 하고, 정침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타각을 지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타수를 적절히 지휘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4는 이를 게을리 하여 피고인 5가 타를 대각도로 상당 기간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하고 이를 방치하였다. 피고인 4는 ○○호의 선체가 우회두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피고인 5에게 “포트, 포트”라고 말하여 좌현 타각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 9, 피고인 5는 수사기관에서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포트’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고, 피고인 4가 ’반대로요’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만 들었다고 진술한 점, 피고인 4는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평소 조타수들에게 타각지시법을 사용하여 항해지휘를 하지 않았고 지시할 당시의 선수각 또는 타각지시기는 확인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 4의 위 주장은 믿을 수 없다. 또한 피고인 5의 대각도 조타에 따라 ○○호의 선체가 빠르게 회전하여 평소와 다른 대각도의 횡경사가 발생한 경우 피고인 4는 당직사관으로서 타각지시기나 레이더, 자이로컴퍼스 등의 항해장비를 이용하여 배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조타수에게 정확한 조타 방법과 배의 상태를 물은 후 곧바로 그에 따른 적절한 지시를 내렸어야 한다. 피고인 4는 ○○호가 우현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 뒤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 5에게 ‘반대로요’라는 불분명한 지시를 내렸고 그와 같은 지시에 따라 피고인 5가 어떻게 조타를 하는지를 확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막연히 선장인 피고인 1을 호출하려고만 하였던 점에 비추어, 피고인 4에게 업무상과실이 인정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 5, 피고인 4의 조타 및 항해감독상 과실로 인하여 ○○호에 대각도 횡경사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하여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이 이동하여 ○○호가 복원성을 상실한 점, ② ○○호의 D데크 Side Door와 선미 차량램프는 풍우밀문으로서 비바람은 막아주지만 수밀기능은 없기 때문에 물속에 잠기면 누수가 발생하는바, 사고 초기에 ○○호가 기울어 위 부분으로 침수가 발생하여 횡경사각이 커지기 시작한 점, ③ 피고인 4는 평소 공소외 11로부터 ○○호의 복원력이 좋지 않으니 미리미리 변침을 하고 타도 조금씩 사용하라고 교육을 받았던 점, ④ 피고인 5는 이 법정에서 우현으로 변침할 때에 ○○호가 좌현으로 더 기울고 복원되는 것도 느린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하였고, 2014. 1.경 ○○호의 선체가 심하게 기우는 경험도 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4, 피고인 5의 과실행위가 ○○호 침몰의 원인이 되었고, 피고인 4, 피고인 5는 ○○호가 큰 경사로 기울게 되면 복원력을 잃고 침몰할 수 있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관한 위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소외 15, 공소외 29, 공소외 16, 공소외 11이 이 법정에서 한 각 진술, 수사보고(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주간 화물운송 계획 및 실적자료 첨부, 재무상태표 등 편철), 압수물 사본 첨부에 대한 수사보고[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간부사원 ○○호 선박복원성 등 문제점 인식여부] 및 각 첨부문서의 각 기재 등에 의하면, 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는 경쟁사의 진입을 막기 위해 적자를 예상하면서도 ○○호를 도입하였고, 그 후 적자를 줄이기 위해 화물적재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 ② ○○호의 적재화물의 양과 위치, 고박방법 등은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물류팀에서 결정을 하고 하역업체 및 고박업체 직원들을 감독해 왔던 사실, ③ 선장 공소외 11은 직접 또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해무팀을 통해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피고인 1, 피고인 2가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간부들에게 화물과적과 부실한 고박에 대한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한 면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1, 피고인 2는 ○○호가 안전한 상태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화물적재량과 고박상태를 확인하여 사고 발생을 방지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여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고, 앞서 인정한 사실만으로는 피고인 1, 피고인 2에게 화물의 과적과 부실한 고박에 대한 책임이 없다거나 선박 매몰에 대한 예견가능성 또는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화물의 과적 및 부실고박과 관련된 과실이 없다는 피고인 1, 피고인 2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 피고인 1은 2014. 4. 15. 출항 당시 선장으로서 선원법 제7조에 의해 화물의 적재상태에 관한 출항 전 검사의무를 부담한다. 피고인 1은 ○○호가 처음 출항한 때부터 ○○호에서 근무하였을 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호의 선장으로 일하면서 현재의 선장인 공소외 11과 공소외 17을 교육시키는 등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소속 선원들 중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피고인 2는 20년 이상의 항해경력을 가진 ○○호의 1등항해사로서 ○○호가 처음 출항한 때부터 화물적재에 관한 업무를 담당해 왔다. 위와 같은 지위와 경력을 가진 피고인 1, 피고인 2는 ○○호의 화물관련 업무담당자 및 책임자로서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화물의 과적이나 고박상태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시정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나)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2014. 4. 15. 출항 전에 차량이나 화물 등의 적재량과 고박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해무팀의 이사 공소외 15와 대리 공소외 16도 이 법정에서 사고 전날 출항시에 피고인들로부터 화물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다) 피고인 1, 피고인 2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물류팀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물에 관한 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나, 피고인 1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호의 선장 공소외 17은 이 법정에서 화물의 양이 너무 많아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물류팀에 직접 항의하여 화물을 남겨두고 출항하기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호와 □□□□□호의 화물적재를 담당하였던 공소외 14 회사의 직원 공소외 34는 이 법정에서 ○○호의 선원들로부터는 화물의 적재와 관련된 시정요구나 이의제기를 받은 적이 없고, 만일 이의제기가 있었다면 □□□□□호의 경우와 같이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물류팀과 선원들이 협의해서 결정을 하였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화물적재 업무를 담당했던 공소외 25도 이 법정에서 무거운 화물을 실을 때는 선장이나 1등항해사인 피고인 2와 화물적재 위치에 관하여 협의를 하였는데, 피고인 1, 피고인 2로부터 과적이므로 선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진술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화물적재와 관련하여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거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라)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호의 완성복원성계산서대로 평형수 등을 채우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화물을 많이 적재하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화물적재와 관련하여 선장인 공소외 11 또는 피고인 1에게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평소 과적이나 평형수 부족이 선박의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이를 묵인해 온 것으로 보인다. 마) ○○호의 2014. 4. 15.자 사진 및 선내 CCTV 복원 영상에 의하면, 출항 당시 ○○호의 E데크에 화물이 고박되지 않은 채 쌓여 있고 D데크에는 차량이 통로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출항 당시 ○○호의 화물적재상태를 확인하였으나 적정한 고박방법에 대해서는 수사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화물의 적정한 위치에 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피고인 1도 이 법정에서 화물적재와 관련된 규정 등을 잘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위와 같은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1, 피고인 2는 화물 고박에 관하여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시정을 해야 하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는 좁은 수로로서 평소 다른 선박들의 통항이 빈번하고 조류의 속력이 빠르기 때문에 주의하여 조타를 하여야 하는 곳이고, ▒▒▒▒에서 이어지는 이 사건 사고 지점인 병풍도 부근 해상도 마찬가지로 평소 다른 곳보다 조류의 속력이 빠르고 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전류시에는 맹골도와 거차도, 병풍도 사이에서 도는 형태의 조류가 흐르는 곳이므로 변침을 하고자 할 때는 특히 주의하여 조타를 하여야 한다. ○○호는 사고 전날 인천에서 2시간 30분 정도 지연 출항하였기 때문에 맹골도에서 병풍도로 이어지는 위 항로를 지나는 시간도 평소보다 늦어져 조류의 속력이나 방향이 평소 운항할 때와 달랐을 뿐만 아니라, 위 시간의 당직항해사와 당직조타수는 인천에서 제주로 운항함에 있어 처음 위 항로를 지나게 되는 피고인 4와 피고인 5였다. 따라서 증·개축 공사에 의한 구조변경 및 화물의 과적으로 인하여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호를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서는 선장인 피고인 1은 ▒▒▒▒ 진입 전부터 조타실에 재선하면서 병풍도 부근에서 변침을 완료할 때까지 ○○호의 항해를 직접 지휘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1은 당시 당직항해사인 3등항해사 피고인 4에게 항해를 맡긴 채 조타실을 이탈하여 자신의 침실로 감으로써 ○○호의 조종을 직접 지휘하지 않았는바, 피고인 1에게는 조타실에서 직접 지휘를 하지 않은 업무상과실이 인정된다. 선원법 제9조는 “선장은 선박이 항구를 출입할 때나 좁은 수로를 지나갈 때 또는 그 밖에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에는 선박의 조종을 직접 지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이 선장의 직접지휘의무를 규정한 취지는, 선박이 위험한 지역을 항해할 때 선박의 총책임자로서 항해에 관한 최고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선장으로 하여금 직접 선박의 조종을 지휘하도록 한 것이며, 위험이 발생하기 쉬운 항만의 출입 또는 좁은 수로를 통과하는 경우에는 법률상 위험의 염려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현실적인 위험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선장이 직접 선박의 조종을 지휘할 의무를 지도록 하고, 그 밖의 경우에는 기상 및 해상의 조건, 다른 선박의 상황 등으로부터 위험의 염려가 있을 때에 같은 의무를 지도록 한 것이다. 위와 같은 취지에 비추어 보면, 위 조항에서 말하는 ‘그 밖에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 때’는 농무 등으로 인한 시계제한, 황천 또는 폭우와 조우한 때, 암초 또는 유빙이 산재한 해면, 군집하는 어선군 사이를 운항할 때 등 앞서 열거한 입·출항시 또는 협수로를 지날 때와 대등할 정도로 위험 발생의 우려가 명백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선원법 제164조 제3호에서 선장이 직접 지휘의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는 점에 있어서도 그 의미를 위와 같이 제한하여 해석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규정의 해석과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호가 기울어진 지점이 선원법 제9조의 ‘좁은 수로를 지나갈 때’에 해당한다거나 ○○호가 이 사건 사고 지점에서 변침을 시작한 때가 ‘그 밖에 선박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호가 기울 당시 조타실에 재선하여 직접 지휘를 할 의무가 없었다는 피고인 1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직접 지휘에 관한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 검찰은 이 사건 사고 지점이 평소 다른 곳보다 조류의 속력이 빠르고, 조류의 방향이 바뀌는 전류시점에는 도는 형태의 조류가 흐르며, 2시간 30분 정도 출항이 늦어져 조류의 속력이나 방향이 평소와는 달랐으므로 위험 발생의 우려가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호가 기울어질 당시의 조류의 세기는 0.5노트 정도에 불과했는바, 그러한 정도의 조류 또는 도는 형태의 약한 조류가 6,000톤이 넘는 ○○호의 조타에 방해가 되었는지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 공소외 11은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제주도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가는 도중에 사고 지점을 지나갈 때에도 본인이 직접 지휘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11은 직접 지휘를 한 이유에 관하여, 피고인 4가 다른 여객선에서 근무하다가 오기는 했지만 사고 지점은 통행량이 많고 어선들도 많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 사고 당시에는 ○○호 주변에 다른 선박의 통행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호가 ▒▒▒▒를 이미 통과한 후였고, 사고 지점이 불과 5도의 변침을 시도하는 구간이라는 점에서 공소외 11의 위 진술만으로 사고 당시에 ○○호에 위험이 생길 만한 우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 이 사건 사고 지점은 ○○호가 협수로인 ▒▒▒▒를 빠져나온 곳으로 수심이 30m 이상이고, 당시 날씨는 맑았으며, 바람이나 파도도 잔잔하였다. ㈑ 공소사실에는 피고인 5가 2013. 12. 초순경 인천 팔미도 부근에서 조타 실수를 하여 공소외 11로부터 입·출항시 조타를 금지당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피고인 5가 처음으로 ○○호를 운항하였을 때 발생했던 것으로서 피고인 5가 그 후에 동일한 실수를 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 피고인 5는 2014. 1.경에도 약 한 달 동안 피고인 2와 함께 같은 구간을 운항한 경험이 있고, 피고인 2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5가 별다른 문제없이 ▒▒▒▒를 포함한 이 사건 사고 지점을 통과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 피고인 4는 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해기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 여객선인 ◆◆◆호의 항해사로 승선한 경력이 있는 등 ○○호의 승선기간을 합하면 총 2년이 넘는 항해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2등항해사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피고인 4는 항해지휘를 함에 있어서 다른 항해사들과 차이가 없었으며 제주에서 인천으로 올 때에는 여러 차례 사고 지점을 통과한 바 있다. ㈓ 선박의 항해에 관한 전문가인 공소외 12, 공소외 49, 공소외 50은 ○○호가 사고 지점을 지날 때에 선장인 피고인 1이 직접 지휘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근거로, 사고 지점을 지나는 구간이 협수로에 해당한다거나, 조류가 강하고 방향도 자주 바뀌며 선박의 통행량이 많은 점 등을 고려하면 협수로의 연장선상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기도 하였고, 사고 지점이 협수로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직항해사가 경험이 부족한 3등항해사임을 고려하면 위험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해당한다는 점을 드는 등 각각 다른 근거를 제시하였다. 형법 제271조 제1항은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무 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 이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형법은 유기죄에 있어서 구법과는 달리 보호법익의 범위를 넓힌 반면에 보호책임 없는 자의 유기죄는 없애고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 의무 있는 자만을 유기죄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대법원 1977. 1. 11. 선고 76도3419 판결 참조). 따라서 피고인들에 대해서 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을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에 해당하여야 한다. 선원법 제11조는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호가 좌측으로 전도되어 침몰이 예상되는 급박한 위험이 발생하였으므로 선장인 피고인 1은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여야 하고, 따라서 승객들 및 선원들에 대한 법률상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수난구호법 제43조 제2호, 제18조 제1항 단서는 해상교통량의 증가에 따라 빈번히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선박사고의 뺑소니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인바, 법률조항의 해석과 입법취지상 스스로 조난을 당한 ○○호의 승무원인 피고인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의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4도6377 판결 참조). 수난구호법 제18조는 “인근 선박 등의 구조지원”을 제목으로 하여 제1항 본문에서 “조난현장의 부근에 있는 선박 등의 선장·기장 등은 조난된 선박 등이나 구조본부의 장 또는 소방관서의 장으로부터 구조요청을 받은 때에는 가능한 한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1항 단서는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은 요청이 없더라도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은 본문에서 ‘조난현장의 부근에 있는 선박 등’(인근 선박 등)과 ‘조난된 선박 등’을 구분하면서, ‘조난된 선박 등’으로부터 구조요청을 받은 ‘인근 선박 등’의 선장·기장 등에 대해서 구조지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수난구호법 제15조 제1항은 조난사실의 신고 의무자를 규정하면서 ‘조난된 선박 등의 선장 등’과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을 별개의 주체로 열거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같이 해석할 경우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조난된 선박의 승무원‘이 신고의무자에서 제외되므로 입법취지에 반하는 해석이라고 주장하나, 조난된 선박의 경우 굳이 법률상 강제를 하지 않더라도 신고를 할 것이 예상되고, 따라서 제15조 제1항 제1호의 경우에는 따로 처벌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5조 제1항의 규정 형식과 문언에 비추어 보면,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에 의하여 구조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인근 선박 등’의 선장·기장 등이라 할 것이고, ‘조난된 선박 등’은 구조요청의 주체로서 ‘인근 선박 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는 조난된 선박 자체에 해당하는 ○○호의 선장 및 승무원들에 대한 법률상 구호의무의 발생 근거로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인들이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에 의하여 승객들에 대한 구출의무를 부담한다는 부분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호의 운항관리규정은 법률에 근거하여 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및 ○○호의 내부규칙일 뿐 대외적인 구속력이 있는 강행규정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운항관리규정에 정한 선원들의 의무가 법률상 의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운항관리규정의 근거가 되는 법률인 해운법 제21조 제1항은 “내항여객운송사업자는 여객선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운항관리규정을 작성하여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운법 시행규칙 제15조의2 제1항은 “법 제21조에 따라 내항여객운송사업자가 작성하여야 하는 운항관리규정에는 해상안전을 위하여 내항여객운송사업자와 내항여객운송사업의 종사자가 지켜야 하는 사항으로서 별표 2의2에서 규정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시행규칙 별표 2의2 제9항은 운항관리규정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으로 ‘해양사고 등 비상사태 발생시의 조치에 관한 사항으로 선원의 비상시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해운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2014. 2. 7.자 ○○호의 운항관리규정은 ○○호의 승무원(선장 및 선원을 포함한다)들이 해양사고 기타 비상사태 발생시 사고처리에 있어서 인명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여 비상부서배치표에 의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고, 선장의 지휘에 따라 여객의 안전을 위하여 비상탈출구 위치 및 대피방법에 대한 안내방송을 이행하고 담당구역의 여객대피안내를 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유기죄의 주체가 되려면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에 해당하여야 하는데, ‘법률상 의무가 있는 자’라고 함은 부조의무의 근거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한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바, 현행 형법이 유기죄의 주체를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로 제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유기죄의 주체가 되는 ‘법률상 의무 있는 자’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법규범의 수범자가 누구이고 어떠한 의무가 부과되는지 여부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도록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해운법 제21조의 문언 내용, 해운법의 목적과 취지, 입법 연혁, 해운법의 제재 대상이 되는 자의 범위, 해사안전법 등 다른 법규범과의 관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해운법 제21조는 내항여객운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안전관리체계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조항일 뿐 선원들에 대하여 승객구호의무를 부과하는 것까지 시행규칙에 위임하였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또한 위 법률에 따라 해운법 시행규칙 제15조의2와 별표 2의2에서 ‘해양사고 등 비상사태 발생시의 조치에 관한 사항으로 선원의 비상시의 임무’를 운항관리규정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으로 규정한 것을 선원에 대한 법률상의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호의 운항관리규정에 의하여 선원들이 부담하는 임무는 유기죄에서 말하는 법률상 의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들이 ○○호의 운항관리규정에 의하여 승객들에 대한 구호의무를 부담한다는 내용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 운항관리규정의 근거가 되는 법률인 해운법 제21조 제1항은 운항관리규정을 작성해야 하는 의무자를 내항여객운송사업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선장과 선원을 운항관리규정의 작성 의무자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또한, 해운법 제57조 제1호, 제19조 제1항 제10호는 제21조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 벌금, 과징금 등의 제재를 규정하고 있으며 그 제재 대상을 내항여객운송사업자로 한정하고 있다. ㈏ 2002년경 선박의 안전운항과 해양오염방지를 위한 국제해사기구의 국제선박안전관리규약(ISM Code)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해상교통안전법(현행 해사안전법)이 제정되어 여객운송사업자가 운영하는 선박의 안전관리체제를 수립하도록 강제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내항여객선은 법률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대신에 그와 유사한 내용의 운항관리규정을 만들어 운행하도록 하였다. ㈐ ○○호와 같은 내항여객선과 달리 외항선 및 내항화물선에 적용되는 해사안전법은 제46조 제2항에서 ‘선박을 운항하는 선박소유자는 안전관리체제를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4항에서는 안전관리체제에 포함시켜야 할 사항으로 11개 항목을 열거하면서 ‘선장의 책임과 권한에 관한 사항’, ‘선박충돌사고 등 발생 시 비상대책의 수립’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에도 선장 외의 선원들에 대한 의무나 책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 ○○호 운항관리규정에서 정한 비상시 승무원들의 임무는 통상의 선원이라면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해상 관습에 해당하는 것이다. 선원법 및 선박직원법 등의 해사법규에서는 선장에게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이에 위반한 경우 과태료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을 뿐, 선장 외의 다른 선원이나 승무원들에게 훈련을 받을 의무를 부과하거나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에 대해서는 앞서 본 수난구호법 제43조 제2호와 뒤에서 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2와 같이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구조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그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1) ○○호의 선장 및 선원인 피고인들은 비록 승객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자신들이 속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와 승객들 사이에 체결된 운송계약의 의무이행자 또는 이행보조자로서, 탑승한 승객들을 출발지인 인천항에서 목적지인 제주항까지 안전하게 운송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고, 만일 운항 중에 이 사건과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구호조치를 해야 할 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이 ○○호의 운항관리규정에서 규정한 선원들의 의무가 법률상의 의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더라도, 운송계약에 의하여 승객들에 대한 안전의무를 부담하는 선원들이 비상상황에서 취해야 할 구체적인 조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계약상 보호의무의 내용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피고인은 ○○호에 승선하기 전에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담당 직원과 급여, 근로조건 등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이행보조자로서의 승객들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의 주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디지털증거 분석 결과 보고서(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업무용 PC)의 기재 및 공소외 16이 이 법정에서 한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사고 전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려고 하였으나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담당 직원으로부터 결재를 받지 못하였다는 말을 듣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였고, 일단 한 번 다녀오라는 위 직원의 말에 따라 ○○호에 승선을 하였으며, 사고 당일까지도 정식 채용 여부가 확정되지 아니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피고인을 ○○호의 선원으로 신고한 사실, 피고인이 사고 전날 ○○호에 조기장으로 승선하여 피고인 10과 함께 03:30경부터 당직근무를 서기도 하는 등 ○○호의 선원으로서 근무를 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사고 당일의 항차에 관하여 피고인과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들은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와 승객들 사이에 체결된 운송계약에 따라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구호조치를 취해야 할 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에 더하여 피고인 1은 선원법 제11조에 따라 승객들 및 선원들에 대한 법률상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형법 제271조가 규정하는 부조를 요하는 경우는 스스로 자기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사고 발생으로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후에 ○○호가 계속하여 좌현으로 기울었고, 09:47:35경에는 3층 난간이, 09:50:21경에는 4층 난간이 완전히 침수되어 3, 4층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체를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승선하고 있던 승객들 중에는 노약자, 어린이도 있었고 선체가 기울면서 부상을 입은 승객들도 있었다. 선체가 언제 뒤집혀 침몰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선원들의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피해자들에 대한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은 이 사건 사고로 발생한 후 계속해서 증가하였고, 피해자들은 스스로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극복할 수 없는 상태, 즉 피고인들의 부조를 요하는 상태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이 급박한 상황에서 선원인 피고인들은 승객들을 퇴선이 용이한 장소로 이동시키고, 구명장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그 작동을 준비하는 등 승객들을 안전하게 퇴선시키기 위한 준비조치를 취하여야 하고, 선장인 피고인 1은 승객들이 더 이상 선박에 머무를 수 없게 된 때에는 지체 없이 퇴선명령을 내려야 한다. 선체가 30도 이상 기운 당시 상황에서 ○○호의 비상대피장소인 3층 좌현 및 4층 좌우현 갑판은 모든 승객을 수용하기에 부족하여 승객들이 한꺼번에 좁은 공간에 몰릴 때의 혼란과 부상가능성이 있으므로, 대피장소로의 이동명령은 적절치 못하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좌현으로 기운 당시 상황에서의 퇴선은 주로 좌현 갑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선체가 계속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승객들이 빠른 시간 안에 퇴선하기 위해서는 미리 이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던 점, ②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선수와 선미 사이의 수평이동은 어렵지 않았고, 3, 4층 좌현 갑판에는 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운동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3층과 5층 사이의 상하 이동도 가능하였던 점, ③ 3층의 경우 선체의 좌현 쪽 전체가 갑판이고, 4층의 경우도 갑판의 길이가 약 40m 정도 되어 승객들이 대피할 수 없을 만큼 공간이 협소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보면, 당시 상황에서 승객들을 좌현 갑판으로 유도하거나 외부 갑판으로 나갈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피고인 1, 피고인 3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호 운항관리규정의 비상부서배치표상 승객들의 유도의무는 사무부, 조리부 승무원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직접 객실로 내려가서 승객들의 대피와 퇴선을 도와줄 의무가 없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호의 운항관리규정 제10장 제3항은 담당구역의 여객대피안내가 선원들을 포함하는 승무원 전체의 임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② 당시 상황에 비추어 사무부 승무원 5명이 승객 443명을 안전하게 유도하고 퇴선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점, ③ 피고인들이 다른 임무를 수행하느라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못한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에 비추어 피고인들이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이지 않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비상부서배치표상 조타실 및 기관실에서 근무하는 피고인들에게 다른 임무가 부여되어 있다고 하여 승객들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대피유도 등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피고인 3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퇴선명령을 너무 일찍 내려 승객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빠질 경우 승객들에게 저체온증이 발생하거나 구조를 받지 못한 승객들이 조류에 떠내려가 실종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당시 상황에서 언제 퇴선명령을 내려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피고인 1이 사고 발생 초기에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은 행위는 유기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공소외 50이 이 법정에서 한 진술과 여객선 ○○호 침몰사고 원인분석 결과 보고서의 기재에 의하면, 퇴선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해양사고의 종류와 심각한 정도, 현재 취해지고 있는 비상조치의 성공 가능성, 기상 및 해상상태, 사고시점이 주간인지 야간인지의 여부, 구조가능성 및 구조기관과의 통신상황, 전 승무원 및 여객의 퇴선을 위한 예상 소요시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카페리 여객선인 ○○호는 선체 아래쪽이 풍우밀구역으로 되어 있고 차량 등 화물을 싣는 공간에 격벽이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여 바닷물이 침투할 경우 빠른 시간 내에 침몰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실, ② 사고 당시 날씨가 맑고 파도가 잔잔하였던 사실, ③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VHF로 교신을 하였기 때문에 해경와 어선 등의 구조세력이 가까운 시간 내에 ○○호에 도달하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던 사실, ④ 당시 ○○호가 계속하여 기울어져서 승선원들이 선내에서 이동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승객들이 안전하게 퇴선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선장인 피고인 1은 승객들이 선내에 갇히기 전에 퇴선명령을 내렸어야 한다. 따라서 퇴선명령 필요성에 관한 위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은 사고 이후 조타실에서 진도VTS와 교신을 유지하며 구조요청을 하였고, 무전기를 통해 사무부와 연락을 유지하며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 ‘퇴선하라’는 등의 안내방송을 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좌우현 구명뗏목을 펼치기 위해 시도하는 등 당시 가능한 조치를 하였으므로, 피해자들을 유기한 것이 아니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사고 발생 후 09:37경까지 진도VTS 등과 교신을 유지하면서 ○○호의 상황을 해경에 알려준 사실, ② 피고인 3이 09:26경 진도VTS로부터 10분 후에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그와 같은 사실을 무전기로 사무부 직원들에게 알려준 사실, ③ 피고인 7이 09:38경부터 09:43경까지 사이에 구명뗏목을 터트리기 위해 조타실 좌현 출입문과 윙브릿지 사이의 중간지점까지 내려온 사실, ④ 피고인 7, 피고인 8이 ○○호를 탈출한 뒤 해경 123정에서 객실 창문을 깨고 승객들을 꺼내는 구조작업을 하였고 피고인 3이 익수자에 대한 인공호흡 등의 응급처치를 실시하는 등 일부 피고인들이 승객들의 구조를 위해 노력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조타실로부터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매니저 공소외 7의 진술에 의하면, 09:26경 진도VTS로부터 10분 후에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그와 같은 사실을 무전기로 사무부 직원들에게 알려주었다는 피고인 3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공소외 7은 제24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김○○ 군의 동영상에 녹음된 ‘10분 후 경비정 도착’ 안내방송은 자신이 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조타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위와 같이 방송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해경 122에 신고하였을 때 경비정이 오는데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린 다음에 스스로 안내방송을 했던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① 공소외 7은 제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였을 때에는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방송을 자신이 전혀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으나 제24회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위와 같은 방송소리가 포함된 김○○ 군 촬영 동영상을 본 뒤에 자신이 방송을 하였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 ② 공소외 7이 어림잡아 예측한 방송 시점과 피고인 3이 진도VTS로부터 10분 후에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시점이 거의 동시라는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점, ③ 공소외 7이 해경과 통화를 한 내용이 기재된 해경 122 신고전화 녹취록에는 공소외 7의 진술과 달리 ‘경비정이 사고현장에 도착하는 데에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 ④ 공소외 7이 제5회 공판기일에서는 조타실로부터 지시 상황을 전혀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으나 제24회 공판기일에서는 대기하라는 방송을 한 후 20분 정도까지는 조타실과 무전기로 연락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진술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조타실로부터 10분 후 경비정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달받지 않았다는 공소외 7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 반면, ① 김○○ 군 촬영 동영상, 음질개선 DVD 녹음파일과 그 녹취서(증거목록 순번 1670번)에 의하면, 공소외 7이 사고 당일 09:26:43경 “해경 구조정이 앞으로 10분 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라고 방송을 한 사실이 확인되고, 진도VTS에서 ○○호에 10분 후 경비정이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시점이 그보다 조금 앞선 09:25:29경인 사실, ② 진도VTS 교신파일(6채널) 중 채널2의 녹음파일과 그 녹취서(진도VTS CH2)에는 공소외 7이 ‘10분 후 경비정 도착’을 알리는 방송을 한 이후인 09:26:40경 위와 같은 내용의 VHF 교신이 시작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앞서 본 녹취록과 시각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없고, 교신시각과 방송시각의 차이도 근소하여 그 선후관계를 확실히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위 증거만으로는 피고인 3이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내용을 사무부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한 점, ③ 피고인 6은 이 법정 및 수사기관에서 피고인 3이 위와 같은 사실을 무전기로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3이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내용의 VHF 교신을 듣고 이를 무전기로 사무부 직원들에게 전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이 조타실에 있을 당시에는 ○○호의 선체가 기울면서 빠른 시일 내에 침몰할 가능성이 있고 승객들의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퇴선을 위하여 상당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였으므로, 승선원들의 퇴선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VHF 교신은 1명의 승무원이 담당하면 충분했고, 방송을 통해 승객들의 대피를 안내하거나 조타실과 다른 선원들의 사이의 연락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퇴선을 도울 수 있는 위치로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모두 조타실에 모인 상태에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준비를 하지 아니한 채 단순히 구조요청만을 반복하고, 무전기로 구조정이 10분 후 도착한다는 말만 사무부에 전달하였을 뿐이므로,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추가로 하지 아니한 것은 유기행위에 해당한다. 한편, 유기죄는 추상적 위험범으로 유기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의 생명·신체에 대한 추상적 위험만 발생하면 기수에 이른다. 이 사건과 같이 부작위에 의한 유기행위에 있어서 그 기수시기는 구호조치를 취함으로써 승객들에 대한 위험발생을 제거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호의 승객들이 모두 퇴선경로를 확보하고 대피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당시 승객의 수나 ○○호의 기울기, 대피장소 등을 고려할 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고, ○○호가 기울어진 직후인 08:58경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이루어짐에 따라 승객들과 사무부 선원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피고인들로서는 늦어도 09:26경 진도VTS로부터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직접 또는 사무부 직원들을 통해 퇴선명령을 내리고 승객들을 이동 가능한 출입문으로 안내하는 구호조치를 시작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09:26경 피고인들의 구호조치 미이행은 유기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7이 09:38경부터 09:43경 사이에 구명뗏목을 터뜨리기 위하여 윙브릿지로 나간 행위나 피고인 3, 피고인 6, 피고인 7, 피고인 8이 ○○호에서 탈출한 후 해경 123정에서 승객들을 구조한 사실들은 09:26경 이미 유기행위가 기수에 이른 후에 한 것으로서 유기죄의 성립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조타실에 있을 당시 승객들의 구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피고인들이 구호조치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인들의 과실에 해당할 뿐, 피고인들에게 유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 중 일부가 조타실에 머무는 동안 VHF 교신을 통해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등의 조치를 하였던 사실이 인정되지만,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선내 대기방송에 따라 사무부 직원들과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면서 조타실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사정과 퇴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승객들의 생명·신체에 위험이 발생한다는 인식하였으면서도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아니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에게는 유기의 고의가 인정된다. 따라서 당시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대부분 2013. 11. 28. 출항시 발생한 사고 등 ○○호의 선체가 기우는 사고를 직접 겪어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고, ○○호의 개조 및 화물적재 상태에 관하여도 알고 있었다. 화물의 과적 및 고박상태에 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피고인 4도 평소 ○○호의 복원성이 좋지 않아 소각도 변침만을 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고, 사고 발생 전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입사하여 ○○호에 처음 승선했던 피고인 6도 ○○호에서 근무해 보았던 지인으로부터 선박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호의 복원성이 좋지 않으므로 횡경사가 발생한 경우 ○○호가 쉽게 복원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사고 발생 당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은 선수 갑판에 컨테이너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고, 힐링펌프가 작동하지 않고 주기관이 정지된 상황을 알고 있었다. 피고인 2는 VHF를 통해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면서 ‘배가 넘어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혼잣말로 ‘지금 바다에 빠져야 되나 어쩌야 되나 모르겠네’라고 이야기 하며 당시 상황이 배를 버리고 바다로 탈출하여야 하는 상황임을 예상하였고, 피고인 9는 기관부 당직근무자들에게 2차례 전화를 걸어 기관실에서 즉시 탈출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후에도 ○○호의 선체가 좌현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호의 승객들이 배에서 탈출하지 않는 경우 생명·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임을 인식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피고인 3이 08:58경 무전기로 사무장 공소외 6에게 구명동의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하라고 지시한 사실, ② 공소외 7이 08:52경부터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봉을 잡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방송을 반복해서 실시하고, 이후 09:06경 “구명동의가 착용 가능하신 승객 분들께서는 구명동의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한 후 움직이지 말라는 취지의 방송을 계속 반복한 사실, ③ 피고인 3이 무전기에 대고 한 말은 단순히 ‘옷 두껍게 입고 구명동의 입고 대기하라’는 정도였고, 사무부 직원들에게 승객들을 유도하라거나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는 사실, ④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7은 VHF로 교신하면서 해경에게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였고, 피고인 2가 09:14경 휴대폰을 가지고 온 뒤로 09:38경까지 조타실 밖으로 이동한 사람이 없는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승객들이 추가조치를 기다리며 선내에 대기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 뒤에 퇴선준비를 위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승객들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 1, 피고인 3은 승객들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취지의 안내방송이 이루어진 것은 매니저 공소외 7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고, 자신들이 말한 ‘대기하라’의 의미는 퇴선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취지였으며, 조타실에 있을 때에 공소외 7이 실시한 안내방송을 듣지 못하여 승객들이 선내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인 3을 통해 전달된 지시는 대기하라는 것에 불과할 뿐 퇴선 또는 그에 관한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피고인 3의 무전기 교신에 따라 사무부에서 퇴선을 예상하여 그에 관한 준비절차를 진행하지도 않았던 점, 피고인 3의 대기 지시는 ○○호가 기운 직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피고인들이 당시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승객들에 대한 퇴선준비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부에 전달한 것이 아닌 점, 피고인 1도 대기장소로 갑판보다는 로비 정도가 적당하겠다고 혼자 생각하였다고 말할 뿐 피고인들 중 단 한 명도 승객들이 어디에 어떻게 이동해 있는지, 탈출경로를 확보하였는지 등을 확인해 보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사무부 직원들에게 전달된 피고인 3의 지시는 단순히 선내에서 대기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피고인 1, 피고인 3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호가 기울어진 후 조타실의 상황과 그 때부터 09:26경까지의 진도VTS, ○○호, □□□□□호 사이의 VHF 교신내용은 다음과 같음을 인정할 수 있다. ㈎ 일부 피고인들이 해경과 교신할 때 사용한 VHF의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던 피고인 4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편이었다. 구조헬기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조타실에 있던 기기들의 알람이 울렸을 뿐 조타실 내에서 다른 소음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구조세력이 도착하는지 여부는 피고인들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피고인들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서로 대화를 하는 등의 사정이 없었으면 VHF의 교신내용을 들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여러 사람들이 VHF의 같은 채널을 사용하여 동시에 말을 하거나 무선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피고인들이 VHF의 교신내용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7은 VHF를 통해 해경에게 ‘빨리 와 달라’,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면서 신속히 와 줄 것을 반복해서 요구하였고, 진도VTS는 ○○호에 승선원들이 구명뗏목에 타고 있는지, 퇴선이 가능한지, 얼마나 기울었는지 등을 묻고, 인근의 □□□□□호 등 선박들에게 구조지원을 요청하였다. □□□□□호의 선장 공소외 47은 09:13경 ○○호를 보고 좌현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말하고, 09:22경에는 침몰하기 직전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 피고인 6은 09:21경 진도VTS에 해경이 구조작업을 위해 오고 있는지, 소요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고, 09:22경에는 피고인 7이 재차 해경이 오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었다. 진도VTS에서는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에 15분이 걸린다고 알려 주면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입으라는 방송을 해달라고 하였고, 피고인 6은 방송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진도VTS는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하고 옷을 두껍게 입도록 전파해 달라고 하였다. ㈑ 피고인 7은 09:24경 진도VTS에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공소외 47은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을 시켜서 탈출시키라고 하였으나, 피고인 7은 재차 탈출을 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느냐고 묻고, 공소외 47은 재차 빨리 탈출을 시키라고 하였다. 이후 약 30초가 지난 09:25경 피고인 7은 다시 진도VTS를 불렀고, 진도VTS에서는 ○○호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이 판단해서 승객을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하라고 하였으나 피고인 7은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라고 말하였고, 진도VTS는 09:26경 경비정이 10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대답하였다. 위와 같은 VHF 교신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VHF로 진도VTS 또는 □□□□□호의 선장과 교신하는 과정에서 승선원들을 퇴선시켜야 한다는 사실과 자신들이 승선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야 할 행위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인정된다. 이에 관하여 피고인들은 사고 이후 충격과 공포로 당황한 상태에서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피고인들의 주장에 관하여 살피건대, 공소외 49, 공소외 50도 이 법정에서 평소에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호의 승무원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진술한 점, 이 사고가 피고인들이 평소 접해보지 못한 대규모 사고였던 점 등에 비추어, 사고 초기에는 피고인들이 당황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거나 공포심 등으로 인해 적절한 조치를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① 사고 후 ○○호의 선체가 천천히 기우는 상황이었고, 피고인들은 진도VTS와의 교신을 통해 구조세력이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필요한 조치내용도 교신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던 점, ② 피고인 1은 □□□□□호와 같은 일반 선박은 사람 한 명을 건져 올리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였고, 당시 수온이 차가울 것으로 예상하여 너무 일찍 탈출할 경우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구조행위를 개시할 시점을 찾고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09:26경 진도VTS로부터 구조정이 10분 내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한 때에는 더 이상 구호조치를 미루고 있을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점, ③ 피고인들도 선체가 기울어 조타실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당시 ○○호의 선체가 기우는 속도에 비추어 시간이 더 지날 경우 선체가 더욱 기울어 당장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생명·신체에 위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므로, 충격과 공포로 승객구호에 필요한 행위를 할 수 없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10분 후 경비정이 도착한다’는 해경의 말을 들은 09:26경보다 더 늦은 시각에도 선내를 이동하여 탈출에 성공한 승객들이 존재하는 사실, ② 피고인 9를 비롯한 기관부 선원들은 09:37경 서로 손을 잡고 좌현 갑판으로 미끄러져 내려온 사실, ③ 사무장 공소외 6이 09:10경부터 09:15경 사이에 5층 조타실 뒤편 출입문을 지나는 장면이 목격되었고, 이후 4층 로비 근처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시점에는 3층 식당에서 목격된 사실이 인정된다. 위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09:26경 이후에도 좌현 구명뗏목으로 이동하거나 승객들이 있는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당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승객들이 있는 구역이나 구명장비를 작동시킬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인식하였다기보다는 그와 같은 시도를 하는 경우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여야 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타실에서 이동하기 어려워서 구호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퇴선명령은 고도의 판단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기관장에 불과한 피고인이 선장의 지시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능력이나 권한이 없다. 피고인은 발전기를 살펴보라는 피고인 1의 지시를 받고 조타실을 나가 기관실로 내려갔고, 그 도중에 3층에서 굴러 떨어져 기관부 선원실 앞 복도에서 다른 기관부원들을 만났을 뿐 처음부터 ○○호를 탈출할 의도로 조타실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피고인이 3층 선실 복도에서 대기할 당시에는 다른 승객들이 선내에 움직이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던 사정이나 구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사정은 알 수가 없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 피고인들은 ○○호의 기관실에서 당직근무를 하던 중 사고를 겪었고, 피고인 9로부터 당장 빠져나오라는 지시를 받고 기관실을 나와 3층까지 힘겹게 올라갔으며, 기관부 선원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기관부 선원들을 총괄하는 기관장으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 피고인들은 기관부 선원들로서 승객들이 위치한 객실의 내부구조도 잘 모르고 있었고 승객들의 상황이나 구조상황 역시 알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인들은 구호조치를 취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피해자들을 유기할 고의가 없었다. 피고인은 사고 전날 ○○호에 처음으로 승선하였고, 선원들의 침실과 승객들이 있는 구역이 분리되어 있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는 줄도 몰랐다. 3층 기관부 선원실 앞에서 대기할 당시에도 사고 원인이나 승객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고, 선장이나 기관장으로부터 구호조치에 관한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 피고인은 ○○호의 선체가 급격하게 기울어질 당시 침실에서 굴러 떨어져 앞니가 부러지고 아랫입술이 찢어지는 등 얼굴, 어깨, 무릎 부위에 부상을 당하였고, 극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관부 선원실 앞에서 대기할 당시에도 사고 원인이나 승객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고, 선장이나 기관장으로부터 구호조치에 관한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 피고인 6, 피고인 7, 피고인 11, 피고인 14가 이 법정에서 한 각 진술에 의하면, 힐링펌프가 작동되지 않자 당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 사이에 발전기가 나갔다는 취지의 말이 나왔고, 피고인 9가 기관부 선원실 앞 복도에서 기관부원들을 만났을 당시에도 다른 기관부원들과 발전기에 관한 대화를 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9가 발전기의 가동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조타실을 나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피고인 12가 사고 전날 ○○호에 처음으로 승선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호의 내부구조도에 의하면, 기관부 선원들의 경우 근무장소나 선실이 승객들이 있는 구역과 구분되어 있고, 선원식당의 경우도 승객들의 식당과 구분되어 있어 피고인 12, 피고인 15는 선내에서 근무하는 동안 승객들과 마주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인정된다. 피고인 15의 의무기록 사본, 신문기사 사진, 공소외 64가 이 법정에서 한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15가 ○○호가 기울어질 당시 이빨이 깨지고 입술이 터지는 등 상해를 입고 어깨와 무릎 등을 다쳐 사고 이후 상당 기간 입원치료를 받았던 사실이 인정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 모여 있는 동안 승객들이 부조를 요하는 상태에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런 구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음이 인정되므로, 유기의 고의가 없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피고인 9는 조타실에 있을 당시 선수 갑판의 화물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였고, 이후 힐링펌프가 작동하지 않는 사실과 피고인 2가 VHF로 해경에 구조요청을 한 사실을 알았으며, 기관실에 2차례 전화하여 당시 근무 중이던 피고인 11, 피고인 13, 피고인 14에게 당장 기관실을 빠져나오라고 지시하였다. 피고인 11, 피고인 13, 피고인 14도 피고인 9의 위와 같은 지시를 받고 곧바로 기관실을 탈출하였고, 3층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호가 기울게 됨으로써 경사가 90도가 된 계단을 올라왔다. 이와 같은 사정들에 의하면, 위 피고인들은 ○○호가 침몰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임을 인식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 기관부 소속 피고인들은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 모인 후 각자의 객실에서 구명동의를 찾아 입었다. 피고인 12는 객실에 들어가 당시 입고 있던 상하의 일체형 작업복을 벗고 구명동의를 착용하였는데, 이 법정에서 물에 뛰어내릴 때 옷이 두꺼우면 활동이 안 되기 때문에 작업복을 벗었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15는 이 법정에서 ○○호가 기울 때에 부상을 입어 몸이 불편하였지만 물에 빠졌을 때를 대비하여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썼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피고인들은 사고 초기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퇴선에 대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 피고인 9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부 소속 피고인들은 이 법정에서 3층 기관부 객실 복도에 있을 당시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안내방송을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움직이지 말라는 취지의 선내방송이 반복해서 이루어졌고, 헬기나 초계기 등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3층 기관부 선실 복도에 소음이 발생할만한 사정도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선내방송을 전혀 듣지 못하였다는 피고인 9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 결국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 있던 피고인들은 승객들이 추가조치를 기다리며 선내에 대기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 뒤에 퇴선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승객들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들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피고인 9는 기관장으로서 기관실 선원을 총지휘하는 지위에 있고 선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20년이 넘는 사실, 피고인 12는 엔진컨트롤룸에서 ○○호의 비상부서배치표를 보았고 ○○호에 승선하기 전 다른 여객선에 근무할 때 선내 비상훈련을 받았던 사실, 피고인 15는 ○○호에 근무하기 전에 다른 여객선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을 받았던 사실, 피고인 11, 피고인 13, 피고인 14는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의무를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들은 비상상황 발생시 선원으로서 승객들에 대한 구조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승객들에 대한 구조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약 30분 동안 구명동의를 착용한 채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머물렀고, 피고인 9, 피고인 10, 피고인 12는 좌현 갑판 출입문을 통해 물이 얼마나 가까워지는지를 지켜보았는바, 피고인들은 승객들에 대한 구조의무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부조를 요하는 승객을 유기한다는 인식을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 9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선장이나 기관장의 지시가 없어서 구호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피고인들이 선장의 지시를 받고자 했다면 당시 사용이 가능했던 휴대전화나 선실에 있는 선내전화를 이용하여 조타실이나 안내데스크에 연락하여 선장의 지시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 ② 피고인 9 외의 다른 피고인들이 들었다는 방송내용도, ‘움직이지 마라’, ‘대기하라’는 취지였고, 선내방송의 내용도 승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분명하였으며, 피고인 13은 선내방송의 내용이 당시 상황에 비추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였던 점, ③ 피고인들은 구명동의를 착용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행위를 한 후에도 약 30분에 이르는 시간 동안 3층 객실 복도에 대기하면서 조타실이나 안내데스크에 연락을 취하지 아니하였고, 기관장인 피고인 9에게 승객구호를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선장 또는 기관장의 지시를 받지 못하여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구호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갖지 않은 채 탈출을 위한 준비만을 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위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 12는 사고 전날 ○○호에 처음 승선하여 승객들이 443명이 탔던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피고인 15는 사무부에서 구호조치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 대기하고 있을 때에 피고인들 중 누군가가 ‘승객들이 많이 탔는데...‘라고 하면서 승객들을 걱정하는 취지의 말을 하였던 점, ② 피고인 12, 피고인 15가 위와 같은 말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호의 규모와 당시의 기울어진 상황에 비추어 사무부 승무원 5명으로 모든 구역과 이동경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점, ③ 설령 피고인 12, 피고인 15가 탑승한 승객의 수가 적어 사무부 직원에 의한 승객 유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더라도 결국 승객의 퇴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무부 직원 외의 다른 승무원들이 구명뗏목 또는 사다리를 내려 승객들을 퇴선시키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피고인 12, 피고인 15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피고인들에게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이행할 의사가 없었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호가 기울 당시 입은 상해와 ○○호의 선체가 좌현으로 심하게 기운 사정 때문에 대기하고 있던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승객들이 있는 객실까지 이동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 앞서 본 것과 같이 피고인 15는 ○○호가 기울 때에 입은 부상으로 상당한 통증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① 해경 123정에서 촬영한 동영상에 의하면 피고인 15는 혼자서 좌현 갑판에 내려온 뒤 해경 구명단정까지 직접 이동하여 탔고 해경 123정에 탄 뒤에도 별다른 문제없이 움직인 것으로 확인되는 점, ② 피고인 15의 치료를 담당했던 간호사 공소외 64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 15가 당시 다른 생각을 전혀 떠올리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는 점, ③ 다른 피고인들도 09:37경 서로 손을 잡고 좌현 갑판으로 내려왔고 따라서 그 이전에도 충분히 선내를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조타실에 있던 다른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선내에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생각하였다기보다는 움직임으로 인하여 자신이 다치거나 바다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여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사고 당시 이동할 수 없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이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당시 사고 지점의 조류의 세기와 수온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들이 모두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른 주된 원인은 해경의 부실한 구조행위로 인한 것이므로, 피고인들의 유기행위와 피해자들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09:26경 퇴선 안내방송을 실시하고 피해자들을 퇴선하기 좋은 외부 갑판으로 유도하거나 구명뗏목 등 구호장비를 작동시키는 등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하였다면, 사망한 피해자들이 모두 구출되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고 당일 08:48경부터 11:03경까지의 사고해역 인근의 수온은 12.6도이었다. 국제 항공 및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에 의하면 10도에서 15도 사이의 수온에서 특수한 보호복을 착용하지 아니한 사람의 생존 예상 시간은 6시간 미만이고, 4도에서 10도 사이의 수온에서는 생존예상시간이 3시간 미만이다. 따라서 ○○호의 승선객들이 구명동의를 입고 바다에 빠지더라도 건강상의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상당한 시간 동안 생존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고 당일 09:00경은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로서 사고 지점 인근 해역의 조류의 세기는 0.2노트 또는 0.5노트였고, 10:00경은 0.4노트 또는 1.9노트였으며, 10:30경까지 사고 지점의 조류의 세기는 2노트를 넘지 않았다. ○○호에서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은 큰 움직임 없이 떠 있다가 구명뗏목이 펼쳐지자 그쪽으로 헤엄쳐 다가갈 수 있었다. 당시 구조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구명뗏목을 이동시켰던 공소외 44는 이 법정에서 구명뗏목을 이동시키는 데에 조류의 영향은 크게 느끼지 못했고 ○○호의 선체가 조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사고 당시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조류에 떠밀려 흩어질 정도는 아니었고, 설사 다른 곳으로 떠내려갔다고 하더라도 ○○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초계기와 헬기, 어선 등에 의해서 충분히 발견될 수 있었다. 목포해경 소속 123정은 09:35경 ○○호 근처에 도착하여 09:38경 123정의 구명단정이 ○○호로 출발하였고, 전남 201호는 10:06경 사고 해역에 도착하였으며, 당시 10대 정도의 선박들이 ○○호 주변에 대기하였다. 해경 소속 CN-235 초계기는 09:30경부터 상공에 뜬 상태에서 ○○호 주변을 관찰하였다. 해경 123정에는 약 40명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데 그 측면에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바다에 표류하는 인원이 쉽게 승선할 수 있었다. 전남 201호보다 먼저 도어선 중에는 ▲▲▲호와 같이 50명 정도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어선들의 높이가 50cm에 불과하여 어선에서 바다에 표류하는 인원을 쉽게 건져올릴 수 있었다.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호와 드래곤▲▲▲호도 ○○호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따라서 승객 443명이 09:26경부터 모두 사고해역에 표류하였다고 하더라도 전남 201호가 도착한 10:06경까지 바다에 표류한 모든 사람들의 구조가 가능하였다고 판단된다. 우현쪽에 위치하여 출입구가 좌현쪽에 있는 선실의 경우 승객들이 복도까지 나오는데 큰 문제가 없다. 3, 4층의 가장 선수측에 있는 S-1, S-4 선실과 4층 선미에 위치한 SP-1, SP-2 선실을 제외한 나머지 선실의 경우 객실 내에 2층 침대가 설치되어 있어 복도에 있는 사람이 잡아주면 객실 안에서 승객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S-1, S-4 선실과 일부 2층 침대가 설치되지 않은 선실의 경우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좌현 쪽에 미끄러져 있던 사람은 혼자서 올라오기 힘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위 객실에서 탈출한 승객들은 서로 목마를 태워서 위쪽으로 올려주거나 선실의 모포를 이용해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복도로 연결된 부분까지 올라왔다. S-1 선실의 경우 좌현 출입문 쪽에 비상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일부 승객이 비상출입문을 열려고 시도하였던 사실에 비추어 퇴선명령이 있었을 경우 승객들이 활용할 수 있다. S-4 선실의 경우 좌현 선수 쪽에 신발장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호가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승객들이 이를 이용하여 출입문 쪽으로 올라올 수 있다. SP-1 선실은 △△고 학생들이 물이 차오르고 난 뒤에 탈출을 시도하였던 곳인데, 위 선실에서 탈출한 학생들은 캐비넷을 잡거나 밟으면서 출입문 앞까지 올라왔고, 출입문 쪽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도와주어 출입문에서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SP-2 선실의 경우 학생들이 우현쪽 출입문으로 나갈 때에도 위와 동일한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고, SP-2 선실의 경우 승객들이 좌현 쪽에 설치된 2개의 출입문으로 나갈 수 있다. 승객들이 ○○호의 선실로부터 복도를 거쳐 출입문까지 이동하는 데에 특별히 이동에 장애가 될 만한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 ○○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승객들이 선실을 나온 뒤 출입구까지 이동함에 있어 선수에서 선미 방향, 선미에서 선수 방향으로 수평이동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우현에서 좌현 방향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은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관부 소속 피고인들은 09:37경에도 서로 손을 잡고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좌현 난간까지 큰 부상 없이 내려왔고, 09:46경 조타실 좌현 출입문이 뜯겨지면서 윙브릿지까지 미끄러져 내려온 피고인 2도 별다른 부상 없이 해경 123정에 옮겨 탔다. 또한 모포나 커텐으로 줄을 만들어 잡고 내려오거나 중간에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승객들이 좌현 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큰 부상을 당하거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3층과 5층 객실의 경우 승객의 숫자나 퇴선이 가능한 경로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승객들이 선체 외부로 대피하는데 장애가 될 만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는다. 10. 8.자 ○○호 내부 수습현황의 기재에 의하면 4층에서 발견된 피해자 191명의 시신이 선수 쪽과 선미 쪽에 몰려 있음이 확인된다. 선미의 SP-1, SP-2, SP-3 객실의 경우 좌현이나 선미 방향으로 출구가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피해자들이 복도에만 나와 있었더라도 쉽게 탈출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4층 선수 쪽에는 약 180여 명의 승객들이 있었는데, 4층 좌현 갑판은 그 길이가 40m 정도였기 때문에 ○○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많은 인원이 동시에 대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 선미나 중앙 부분의 객실에 있던 승객들도 4층 좌현 갑판으로 이동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위 인원들이 모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4층 승객들의 일부가 3층이나 5층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어야 하는바, 생존 승객인 공소외 60은 09:28경 우현 갑판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3층에서 5층까지 올라갔다가 4층으로 내려갔고, 해경 공소외 43 경사가 09:43경 좌현 갑판의 계단을 이용해 3층에서 5층까지 올라간 점에 비추어 보면, 승객들이 3층 좌현 갑판이 바닷물에 잠기기 전에는 3층과 5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점이 인정된다. 따라서 4층 좌현 갑판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갑판의 계단을 이용하여 3층이나 5층으로 이동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4층 좌현 갑판의 면적이 좁다는 사실이 4층에 있던 승객들이 모두 대피하는 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09:26이 지난 시점에도 4층 우현 복도에 있던 승객들이 서로 도와줄 경우 중앙 계단을 통해 큰 문제 없이 3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한편, 승객들이 선내를 움직이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09:47:35경에는 3층 난간이, 09:50:21경에는 4층 난간이 각각 침수되었으므로, 승객들이 3층 난간 및 4층 난간이 침수되기 전에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대학교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에서 실시한 가상대피시나리오 및 탈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호가 52.2도 기운 상태에서 선실에 있던 승선원들이 탈출을 시작하였다면 약 9분 28초만에 탈출을 완료할 수 있다. 위 시뮬레이션의 시나리오는 충분한 수의 승선원들이 승객들에게 적절한 대피안내를 실시하고 4층에 있던 승선원들이 모두 3층까지 내려가서 탈출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조건은 사고 당시 ○○호의 실제 상황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위 시뮬레이션 결과는 IMO에서 정한 피난행동 특성에 관한 가정대로 사람들이 움직일 것을 전제로, 실제 피난실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SFPE 핸드북의 피난보행속도, 출구유출시간 등에 당시의 기울어진 상태를 반영하여 수정을 한 수치들을 피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입력하여 얻어진 결과로서, 적어도 09:26경 피고인들이 적절한 승객 구호조치를 시작하였다면 피해자들이 3, 4층의 출입구가 침수될 때까지 약 20분의 시간 동안 ○○호를 탈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 피고인들은 위 시뮬레이션 결과가 승객들이 승무원들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고, 최적의 퇴선경로로 이동하여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며, 52.2도 기울어진 경사면을 게걸음을 통해 차례로 내려오는 등 실제 상황과 다른 전제를 하였기 때문에 모든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관련된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① 09:26경 피고인들의 유기행위가 없었다면 승객들은 52.2도보다 덜 기울어진 상태에서 더 쉽게 객실을 빠져나왔을 것인 점, ② 선장 및 선원들의 대피지시나 퇴선명령이 있었다면 승객들이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거나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인 점, ③ 사고 당시 △△고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승객들이 이미 복도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위 시뮬레이션에서 반영한 객실의 탈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점, ④ △△고 학생들의 경우 서로 적극적으로 탈출을 도와주었을 것이므로 일반인 승객들보다 더 쉽게 탈출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사정들로 인하여 승객들의 대피와 퇴선이 시뮬레이션에서 가정한 것보다 현저히 느려질 것으로 판단되지 않으므로, 시뮬레이션 결과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승객들이 ○○호 선내에 대기할 당시 촬영한 영상과 생존 승객들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① 공소외 60 등의 승객들이 소방호스를 이용해 △△고 학생들을 끌어올리거나 △△고 여학생들이 다른 승객이 커튼을 뜯어 만든 줄을 잡고 올라간 사실, ② △△고의 일부 학생들이 각 객실을 돌아다니며 구명동의를 꺼내 여학생들에게 나눠주거나 객실에 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친구를 밀어 올려주는 등 다른 학생들의 탈출을 도운 사실, ③ 승객들이 먼저 나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잡아당기거나 밀치거나 하는 현상은 없었던 사실, ④ 3층 좌현 갑판 출입구 쪽에 승무원 공소외 7, 공소외 20, 공소외 61이 있었고, 4층 좌현 갑판 출입구 쪽에 승무원 공소외 62과 여행사 인솔직원 공소외 63가 있었던 사실, ⑤ 사무장 공소외 6은 3, 4, 5층을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고의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있는 3, 4층 객실로 내려와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면, 09:26경 퇴선명령이 내려졌을 경우 모든 승객들의 대피와 퇴선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 3, 피고인 2, 피고인 6, 피고인 12, 피고인 15는, 구명동의를 입지 않은 채 발견된 피해자들의 경우 피고인들의 유기행위가 없었더라도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시신이 선체 밖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의 경우도 사망에 이른 경위를 알 수 없으므로, 피고인들의 유기행위와 위 피해자들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최○○이 ○○호가 기울 당시 바다로 빠진 것으로 목격한 60대 남자 1명을 제외하고 피해자들은 모두 사고 당시 선내에 있었던 사실, ② 그 이외에 ○○호가 침몰하기 이전에 이미 선내에서 사망했거나 부상을 당하여 움직일 수 없었던 사람이 발견되지 않은 사실, ③ ○○호가 전복될 당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해경 또는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다른 선박으로 옮겨진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선체 밖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은 ○○호가 전복될 당시 탈출에 실패하여 익사한 것으로 보이고 다른 원인에 의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피고인들이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였다면 구명동의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도 구명동의를 입을 수 있었고, 가사 구명동의가 부족하여 이를 입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구명뗏목이나 구명환 등을 이용하여 해경 구명단정이나 선체에 접안한 구조정 또는 어선에 바로 옮겨타는 방법으로 충분히 탈출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위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사건 사고의 생존자들이 모두 상해에 이를 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들이 입은 육체적, 정신적 상해가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건 사고 발생 자체로 발생한 것인지 불분명하므로, 피고인들의 유기행위와 피해자들에게 발생한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상해는 피해자의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으로, 반드시 외부적인 상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의 생리적 기능에는 육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능도 포함된다(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도3732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성인인 피해자들은 진단서, 소견서, 진료기록 등에 의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급성 스트레스 반응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음이 확인되는 점, ② △△고 학생인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고 이후 ⊙⊙대학교◀◀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 이후에도 지속적인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점, ③ △△고 학생들의 경우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 다수 사망함으로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감정의 기복 등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은 점, ④ △△고 학생들에 대한 진단서의 병명란에 ‘심리적 상담’, ‘불면’, ‘불안’ 등이 기재되어 있는바, 문언상으로 위와 같은 증상 자체가 병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더라도 담당 의사가 학생들에게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다고 기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을 우려하여 상담내용만을 기재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을 종합하면, 피해자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는 피해자들의 정신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것으로 상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피해자들의 상해에 관한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해자들은 ○○호가 기울어진 후 안내방송에 따라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고, 배가 기울어진 사고 자체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거나 혼란에 빠졌다고 볼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 점, ② △△고 학생들도 친구들과 함께 복도 바닥에 나란히 기대어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던 점, ③ 피고인들의 승객 구호조치가 있었다면 피해자들 모두 탈출이 가능하였고, 탈출과정에서 피고인들을 비롯한 ○○호 승무원들의 지시와 도움을 받았다면 현재 느끼고 있는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상해가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법정진술과 진단서의 기재 등에 의하면, 별지 피해자 일람표Ⅲ에 기재된 신체적 상해의 경우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스스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음이 확인되므로, 위 피해자들에게 발생한 신체적 상해와 피고인들의 유기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검사는 별지 피해자 일람표Ⅲ의 각 피해자들의 경우 피해자 일람표Ⅱ에 기재된 상해가 모두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상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2014. 10. 1.자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의 별지 피해자 일람표Ⅲ 순번 2, 4, 12, 15, 16, 18, 20, 24, 26, 39, 40, 41, 44, 59, 61번 기재 각 일부 상해내용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고 초기에 ○○호가 기울면서 당한 부상인지 아니면 선원들의 지시나 도움 없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입게 된 부상인지를 확인할 수 없어 유기행위로 인한 상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이 부분은 범죄사실에서 제외한다. 해경의 도착으로 피고인들이 부담하던 구조의무가 해경에게 이전되었고, 피해자들이 ○○호를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게 된 것은 해경이 피해자들에 대한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해경의 구조상 과실로 인하여 피고인들의 유기행위와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된다. 형법 제17조는 “어떤 행위라도 죄의 요소되는 위험 발생에 연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결과로 인하여 벌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는바, 자신의 행위로 초래된 위험이 그대로 또는 그 일부가 범죄 결과로 현실화된 경우라면 비록 그 결과 발생에 제3자의 행위가 일부 기여하였다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한 죄책을 면할 수 없다(대법원 1984. 6. 26. 선고 84도831, 84감도129 판결,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8도11921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①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을 유기함으로써 피해자들에 대한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게 된 사실, ② 해경의 구조헬기나 구조정은 이미 피고인들의 유기행위가 09:26경 기수에 이른 후에 도착하였던 사실, ③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09:41경부터는 해경의 교신에 응하지 않았고 ○○호에서 퇴선을 할 당시 만난 해경에게 승객들의 위치나 상황, 선박 내부의 구조, 진입경로 등 구조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사실이 인정된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결과는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초래된 위험이 그대로 현실화된 경우로 판단되고, 가사 피고인들의 주장과 같이 해경의 구조행위가 부실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의 구조의무가 해경에게 완전히 이전되었다거나 피해의 발생을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해경에게만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해경의 구조행위와 관련된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은 ○○호가 기운 후에 10분 정도만 조타실에 머물렀고 그후 발전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조타실을 빠져 나갔다. 피고인은 3층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에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과 해경에 의해 구조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았고 조타실과 연락을 한 적이 없으므로, 조타실에 있던 다른 피고인들과 유기죄의 공모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9가 발전기를 확인하라는 피고인 1의 지시를 받고 조타실을 벗어난 사실과 ○○호를 탈출할 때까지 피고인 9를 포함한 기관부 선원들과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2인 이상이 범죄에 공동 가공하는 공범관계에서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2인 이상이 공모하여 어느 범죄에 공동 가공하여 그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비록 전체의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하고, 이러한 공모가 이루어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의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다(대법원 2006. 2. 23. 선고 2005도8645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들은 ○○호의 선원들로서 비상상황 발생시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해야 할 의무를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는 점, ② 피고인들의 승객 구호의무는 선원법 제15조 및 ○○호의 운항관리규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비상부서배치표에 의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점, ③ 피고인들이 2014. 2.경 공소외 11 선장의 주도하에 소화 및 퇴선 훈련을 받았거나 다른 여객선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선원으로서 승객들에 대한 구조의무를 부담하고 비상상황 발생시 각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점, ④ 조타실에 머물렀던 피고인들과 3층 기관부 객실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피고인들 모두 ○○호가 계속 기울어 복원력을 상실했음을 인식한 상태에서도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 ⑤ 조타실에서는 기관부 선원들의 위치를 알지 못하더라도 선내방송 또는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지시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고, 기관부 선원들은 휴대전화나 선내전화로 조타실과 연락할 수 있었음에도 서로 승객구호 및 퇴선 여부 등에 관하여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고인들 사이에 전체의 모의과정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승객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아니한다는 점에 관한 묵시적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므로,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피고인 9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타수인 피고인들은 선원법 제6조, 제22조, 운항관리규정 제14장 제4호 등의 규정에 의하여 비상상황에서도 선장이나 항해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바, 사고 당시 독자적인 결정에 의하여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시작할 수 없었고, 사고 발생 이후 선장이나 항해사들로부터 승객구호에 관한 지시를 받지 못했으므로,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의 정범 또는 종범의 책임이 인정될 수 없다. 공동정범의 본질은 분업적 역할분담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공동정범은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음에 반하여 종범은 그 행위지배가 없는 점에서 양자가 구별된다(대법원 1989. 4. 11. 선고 88도1247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5, 피고인 7, 피고인 8은 ○○호의 선원으로서 비상시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여야 하고, 이 사건과 같이 비상상황임이 명백한 때에는 선장의 지시를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구호조치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 또한 선원법 제6조, 제22조 등의 규정들은 선원들이 선장의 지시에 불복종한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서, 위 피고인들이 조타실에 있을 당시 선장이나 항해사들로부터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말라는 명시적인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위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유기행위에 관하여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고, 단순히 상급자의 지시를 받는 지위에 있었다고 하여 승객구호에 관한 독자적인 행동 권한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 5, 피고인 7, 피고인 8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호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는바, 피고인들이 ○○호에서 퇴선한 행위는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거나 형법 제22조 제3항, 제21조 제3항의 면책적 긴급피난 또는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로서 책임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피고인들이 퇴선한 시점은 이미 피해자들에 대한 유기행위가 기수에 이른 뒤의 시점이고, 앞서 본 것과 같이 유기행위 당시에는 충분히 구호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므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해자 공소외 1, 공소외 2는 조리부의 승무원들로서 피고인은 이들에 대한 법률상, 조리상 구호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가사 피고인에게 위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기관부원들에게 위 피해자들의 구호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지시하였고 위 피해자들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호를 탈출하였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 형법상 부작위범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참조). 위 제Ⅱ의 1.가.항에서 살핀 바와 같이, 피고인 9는 ○○호의 승무원들인 피해자들에 대하여 수난구호법 제43조 제2호, 제18조 제1항 단서, ○○호의 운항관리규정 등에 의하여 법률상의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항해 중 비상상황 발생시 인명구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은 선원이라면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선원의 상무에 해당하고, 비록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명을 구조해야 한다는 의무는 조리상의 의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인 9는 ○○호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 선원인 피해자들이 부상을 당하여 자신이 있던 곳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것을 알았다면 이들을 구조해야 할 작위의무를 부담한다. 피고인 9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10으로부터 피해자 공소외 2의 상태를 보고받을 당시 “뇌진탕으로 완전히 쓰러져서 꼼짝을 안 한다, 가버린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 피고인 14로부터 피해자 공소외 1의 상태를 보고받을 당시 ”머리가 터지고, 즉사했습니다. 아무 미동도 없어요“라는 말을 들어서 피해자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호를 퇴선할 당시 피해자 공소외 1, 공소외 2가 생존해 있었고, 피고인도 위 피해자들이 살아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1) 피고인 9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부 선원들은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피해자 공소외 2가 살아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2) 피고인 9는 피고인 10에게 뇌진탕이 온 것 같으니까 피해자 공소외 2를 주물러 주라고 지시하였고, 피해자 공소외 2가 허리가 아프다는 식으로 말을 하자 피고인 9는 피고인 10에게 구명동의를 가져다 주라고 지시하였다. 이러한 지시는 피고인 9가 위 피해자가 사망하였다고 인식하면서 한 행동으로 볼 수 없다. 3) 피고인 10이 피고인 9에게 피해자 공소외 2의 상태에 관하여 보고한 내용에는 위 피해자가 사망하였다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4) 피고인 14는 피해자 공소외 1의 양 어깨 사이로 팔을 넣어 들어 올렸을 때 위 피해자의 머리에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여 피고인 9에게 이를 알렸고, 피고인 9는 피고인 14에게 피가 나면 높은 곳에 눕히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지시 역시 피고인 9가 위 피해자가 사망하였다고 인식하면서 한 행동으로 볼 수 없다. 5) 기관부 선원들 중에 피해자 공소외 1의 맥박이나 호흡을 확인한 뒤에 피고인 9에게 위 피해자가 사망하였다고 말한 사람이 없다. 6) 피고인 14는 이 법정에서 피해자 공소외 1을 들어 올렸을 때에 옷에 묻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났던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였고, 피해자 공소외 1의 검시결과에서도 특별한 외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9가 ○○호의 선원으로서 피해자 공소외 1, 공소외 2를 구할 조리상의 작위의무가 있고, 피고인 9는 기관장으로서 3층 객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관부 선원들을 지휘하여 피해자 공소외 1, 공소외 2를 구조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또한 피고인 9는 ○○호가 복원성을 상실하여 침몰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위 피해자들을 즉시 구조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부상당한 상태에서 침몰하는 ○○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망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결국 피고인 9는 위 피해자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당하여 쓰러져 있는 위 피해자들을 침몰하고 있는 ○○호에 그대로 남겨 두고 자리를 벗어나 위 피해자들이 익사하게 되었는바, 피고인 9의 행위는 살인의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 9는 위 피해자들에 대한 살인죄의 죄책을 진다. 따라서 살인죄에 관한 피고인 9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 1은 ○○호가 기울어진 뒤에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모두 이행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살피건대,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 1이 ○○호가 기울어진 후 선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승객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안전하게 퇴선시키는 등 인명, 선박 및 화물을 구하는 데에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아니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 1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선박 운항상의 과실이나 화물의 과적 및 부실고박에 대한 과실이 없고, 가사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선박의 기름이 유출된 사실과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살피건대 위 제Ⅰ항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에게는 ○○호의 화물과적과 부실고박에 관한 점검 및 감독을 게을리 한 업무상과실이, 피고인 4, 피고인 5에게는 사고 당시 당직근무자로서 대각도 변침을 하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업무상과실이 각 인정되고, 앞서 거시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로 인해 ○○호가 침몰하면서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기름이 해상으로 유출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피고인들은 ○○호가 전복된 후 승객들을 구하는 데에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승객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호를 탈출함으로써 승객들을 유기하였고, 그 결과 293명(피고인 1의 경우 승무원 포함 303명)의 승객들이 사망하였고, 140명(피고인 1의 경우 승무원 포함 142명)의 사람들이 상해를 입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하였다.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피해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 또한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비추어 보면 ○○호가 전복된 후 승객들을 구조해야 할 1차적인 책임이 있었던 피고인들에 대하여 중한 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호는 불법 증·개축, 과적 및 부실고박 등의 사유로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위험한 여객선이었다. 선사인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간부들은 경비절감을 위하여 여러 차례 선장과 선원들이 지적한 ○○호의 구조적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았고, 매출증대를 위하여 과적을 조장하고 부실고박을 방치함으로써 ○○호가 전복되는 데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또한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간부들은 경비절감 등의 이유로 평소 ○○호의 선원들에게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관련 규정에 맞게 실시하지 않았다.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가 승객 및 선박 안전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안전점검 기관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도 이번 사고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간부들의 불법행위와 안전점검 기관들의 감독소홀로 인하여 선장 및 선원인 피고인들도 위험한 여객선인 ○○호에 승선하여 근무해야 했고, 인명구조 및 비상시 퇴선과 관련된 훈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호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호가 전복되게 된 경위, 선사인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간부들의 불법행위 및 선박 안전운항과 관련된 시스템이 불완전하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고에 관한 책임을 전적으로 피고인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피고인들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고인들의 지위와 권한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승객들을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구호할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피고인 1과 사고 당시의 상황을 피고인 1에게 보고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피고인 1에게 조언하거나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직급의 선원들을 지휘할 권한이 있었던 간부 선원들의 책임은 선장 및 간부 선원들의 지휘에 따라 구조업무를 이행해야 할 조타수, 조기수의 책임보다 훨씬 크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피고인들이 ○○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데에 어떠한 잘못이 있는지, ○○호에 머무를 당시 승객들의 구조를 위하여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 ○○호에서 탈출한 뒤에 승객구조 활동을 하였는지를 양형요소로 고려하였고, 선원으로서 활동한 경력과 사고 당시 건강 상태도 피고인들이 승객 구호조치를 이행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를 양형요소로 참작하였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피고인별로 아래와 같은 개별적인 양형요소들을 고려하였다. 그 밖에 피고인들의 나이, 직업,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범행의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은 형을 정한다(피고인들에 대해서는 2014. 5. 15. 공소가 제기되었으므로 2014. 10. 1.부터 시행된 유기죄에 관한 양형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피고인은 ○○호의 선장으로서 출항 전에 ○○호의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과적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형수를 관리하고 화물의 고박상태를 확인할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또한 선박의 전복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구호조치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고 선원들을 지휘함으로써 승객들과 선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평소 ○○호가 복원성이 약하여 위험한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사고 전날 출항 당시에도 ○○호에서 이루어진 화물과적 및 부실고박을 묵인하였다.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뒤에 조타실에 머무를 당시 승객들의 대피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고, ○○호를 탈출한 이후에도 승객구호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해서는 승객 및 선원들의 사망과 부상의 결과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피고인은 정년퇴직을 한 후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와 ○○호의 선장들이 휴가를 갈 때에만 선박을 운항하는 대리선장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화물과적 및 부실고박을 조장하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업무관행을 바로잡기 어려웠다. 68세인 피고인은 2013. 10. 말경 담석수술을 받아 평소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호가 전복된 뒤 상황을 판단하고 선원들에게 승객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지시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피고인은 ○○호의 1등항해사로서 출항 전에 적재된 화물량을 점검하여 평형수를 조절하고, 화물의 적재와 고박 상태를 확인하는 등 ○○호의 복원성을 유지할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고 전날 출항 당시 ○○호에서 이루어진 부실고박을 묵인하고 화물을 많이 적재하기 위하여 평형수를 적게 실음으로써 ○○호가 복원성을 갖추지 못하여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 데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이후 VHF를 통하여 해경에 구조요청을 한 것 외에는 승객들을 구호하기 위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고, 피고인 1에게 승객들의 대피 및 구호조치에 관한 적절한 조언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호에서 탈출한 이후 해경 123정에 남아 있을 때에도 해경이나 다른 선원들의 승객 구조활동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피고인은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의 직원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화물과적을 조장하는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 간부들의 뜻에 반하여 적정량의 화물만 적재하기 어려웠다. 피고인은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가 전복된 후 당황한 나머지 승객구호에 관한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은 조타실에 있을 당시 선장인 피고인 1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선원들에게 구조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피고인은 항해장비와 통신기 등을 담당하는 2등항해사로서 ○○호와 VTS 등 외부기관과의 통신 뿐 아니라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 1의 지시가 ○○호의 다른 구역에 있는 기관부, 사무부 직원들에게도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방송장치 및 통신장치를 가동시킬 책임이 있다. 그런데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직후 피고인 1의 지시에 따라 라이프 자켓을 입고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을 시도하였으나 조타실 방송장치의 스위치를 잘못 조작하여 선내방송을 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이 조타실에서 직접 선내방송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또한 피고인은 피고인 1의 지시에 따라 사무부 직원들에게 선내 대기방송을 할 것을 무전기로 지시하였기 때문에 그 후 조타실에서 사무부 직원들에게 승객들의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을 경우 승객들이 그대로 선내에 대기함으로써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피고인은 피고인 1로부터 사무부 직원들에게 승객들을 퇴선시키라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에 무전기로 공소외 6 사무장에게 승객들을 배 밖으로 탈출시키라는 지시를 하였으나, 공소외 6 사무장 또는 다른 사무부 직원들은 피고인의 지시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 피고인은 퇴선명령이 사무부 직원들에게 전달되었는지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조타실에 있는 선내 방송장치 등을 이용하여 직접 퇴선명령을 방송하거나 전화기 등으로 다른 사무부 직원에게 연락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무전기에 대고 퇴선명령만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이 퇴선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 채 ○○호에 그대로 남게 하는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해군 복무 후 약 20년 만인 2012. 8.경 선원생활을 시작한 피고인은 2014. 1. 2.부터 ○○호에 승선하였는바, 평소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로부터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고 당시 공포와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승객의 구호에 필요한 사항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직후 피고인 1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힐링펌프를 가동시켜 ○○호의 복원력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였고, 진도VTS와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였다. 피고인은 ○○호에서 탈출한 뒤에 해경 123정에 남아 피고인 8, 피고인 7을 도와 ○○호 객실 유리창을 깨고 승객들을 구조하고, 의식을 잃은 2명의 사람들에게 직접 인공호흡을 실시하여 그 중 1명의 생명을 구하였다. 피고인은 ○○호의 복원성이 나쁘고 피고인 5의 조타실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조타실의 레이더가 제공하는 정보를 확인하는 동시에 피고인 5에게 정확한 항해용어로 소각도의 조타를 지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여 피고인 5의 대각도 조타를 방지하지 못함으로써 ○○호가 복원성을 잃고 전복되도록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뒤에 사고발생 사실을 피고인 1 피고인에게 즉시 보고하고 힐링펌프를 가동하거나 VHF로 조난신호를 보내는 등 당직사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를 하지 않았고, ○○호에서 탈출한 뒤에도 승객들의 구조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 5가 했던 대각도 조타는 복원성이 양호한 다른 선박의 경우에는 허용되는 것이므로, 복원성이 나쁜 ○○호가 전복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피고인 5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피고인에게만 물을 수 없다. 피고인은 25세의 여성으로서 실습기간을 제외한 승무경력이 약 1년 2개월에 불과하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비상시에 대비한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고 당시 정신적 충격으로 승객구조를 위한 활동을 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수차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피고인은 ○○호의 복원성이 나쁘므로 소각도로 조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향을 착각하여 우현으로 대각도 조타를 함으로써 ○○호가 복원성을 잃고 전복되도록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조타실에 머물던 동안이나 ○○호를 탈출한 뒤에도 승객들의 구조를 위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피고인이 한 대각도 조타는 복원성이 정상인 다른 선박의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고, 피고인이 조타상 과실을 저지른 데에 피고인 4의 감독책임도 인정되므로 ○○호가 전복된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고인에게 돌릴 수 없다. 피고인은 자신이 조타를 잘못하여 ○○호가 전복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조타수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 1을 비롯한 간부선원들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승객에 대한 구조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피고인은 ○○호에 승선하기 이전에 다른 여객선의 항해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비상시에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후 조타실에서 VHF 또는 SSB로 진도VTS, 제주운항관리실과 교신을 하거나 다른 선원들이 진도VTS와 교신하는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해경 경비정과 □□□□□호가 구조를 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의 대피 및 퇴선준비에 관하여 피고인 1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조타실에 머무르는 동안 교신을 하는 것 외에는 승객구호를 위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약 3년 동안 선원으로 근무하였고 사고 전날 ○○호의 선원으로 채용되어 사고 전날 출항 시 ○○호에 처음으로 승선하였기 때문에 ○○호의 구조와 비상부서배치표상 자신의 임무를 알지 못했고, 피고인 1, 피고인 2 외의 다른 선원들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2014. 3.경 다른 여객선에서 근무하던 중 사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여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쳤고 이로 인하여 사고 당시에도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피고인은 이러한 사정으로 ○○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선장인 피고인 1과 1항사인 피고인 2의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승객 구호조치를 이행하거나 다른 조타수들에게 구호조치를 명령하기 어려웠다. 피고인은 조타실에서 VHF로 교신하는 과정에서 진도VTS 담당자와 □□□□□호의 선장 공소외 47로부터 승객들을 탈출시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진도VTS 담당자와 공소외 47에게 탈출하면 구조가 가능한지 여부만 반복하여 질문하였을 뿐 이러한 상황을 피고인 1에게 보고하거나 승객구조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다른 상급자들에게 건의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 중 가장 먼저 해경 경비정에 올라탔음에도 해경에게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고인은 조타수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선장인 피고인 1과 항해사인 피고인 2, 피고인 3으로부터 승객들의 구조활동과 관련된 지시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승객들에 대한 퇴선명령을 하거나 다른 구호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직후 밸러스트 펌프 작업을 하여 ○○호의 기울기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VHF 교신을 담당하면서 ○○호의 탑승 인원과 당시 상황을 해경에게 알렸다. 피고인은 ○○호를 탈출한 이후 해경 경비정에 남아서 해경의 구조작업을 도왔다. 피고인은 조타실에 머물러 있을 당시 우현 갑판에 있는 구명벌을 터뜨리려고 시도한 것 외에는 승객구호를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호가 전복된 직후에 배가 침몰할 수 있으므로 승객들을 양쪽의 비상유보갑판으로 대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면서도 선장 또는 다른 항해사들에게 대피에 관한 안내방송을 해야 한다거나 퇴선명령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호를 탈출할 당시 자신을 구조한 해경에게 승객들이 선내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고인은 오른손의 일부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조타실에 있을 당시 구명벌을 터뜨리기 위해 우현 출입문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였고, 피고인 7이 좌현 출입문으로 나가 구명벌을 터뜨리려고 할 때 수도꼭지에 수도호스를 묶는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 7을 도와주었다. 해경에 의하여 구조된 이후에는 해경 123정에 남아서 망치로 ○○호의 객실 창문을 깨거나 구명보트를 타고 온 승객들을 끌어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승객들을 구조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피고인은 선내전화 또는 휴대전화로 조타실과 연락을 하면서 상황을 보고하고 피고인 1의 지시에 따라 승객구조 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3층 복도에서 기관부원들을 만난 때부터 ○○호를 탈출할 때까지 승객구조에 필요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연령과 승선경력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호에서 1등 항해사인 피고인 2 피고인과 비슷한 지위에 있다고 인정된다. 이러한 지위에 있었던 피고인이 조타실에 남아 있거나 3층 객실 복도에서 대기하면서 피고인 1에게 승객구조에 관한 적절한 조언을 하였다면 많은 승객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피고인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조리수 공소외 1과 조리원 공소외 2를 ○○호에 그대로 놔두고 탈출하고 자신을 구조한 해경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살인행위를 하였고, ○○호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승객 구조를 위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선장인 피고인 1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승객 퇴선명령을 내리거나 다른 선원들에게 구조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하기 어려웠고, 사고 발생 직후 조타실을 벗어나 3층 기관부 객실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해경을 비롯한 구조선박들의 출동 상황을 알기 어려웠다. 피고인의 범죄행위 중 살인죄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의 적용대상이지만, 피해자 공소외 1, 공소외 2에 대한 살인죄가 상상적 경합범의 관계에 있으므로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피고인 10은 1등기관사, 피고인 11은 3등기관사, 피고인 12는 조기장,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는 각 조기수의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로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승객들의 안전확보를 위하여 ○○호의 비상부서배치표상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평소 비상부서배치표상의 임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3층 기관부 선실이 있는 복도에서 ○○호를 탈출할 때까지 승객들을 구호하는 데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관장 피고인 9에게 조타실에 연락하여 상황을 파악하자거나 승객들을 구호해야 한다는 건의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조타실의 선원들보다 먼저 ○○호를 탈출하였고, 해경에 구출된 뒤에도 승객들이 선내에 대기하고 있다거나 조리수 공소외 1과 조리원 공소외 2가 3층 기관부 선실 복도에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해경에 의해 구출된 뒤에 승객들의 구조를 돕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3층 기관부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당시 기관장인 피고인 9의 지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 9의 지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조치를 이행하기 어려웠다. 또한 피고인들은 조타실로부터 정보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해경을 비롯한 구조선박들의 출동 상황 및 퇴선이 필요한 시점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 피고인 10은 해경에 의하여 구조된 후에 모텔에서 자살을 기도하였고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였다. 피고인 11은 25세의 여성으로서 실습기간을 제외한 승선경력이 약 4개월에 불과하고, 피고인 16 회사(대판:공소외 4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비상시 대처방안에 관한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호가 전복된 직후 발생한 정신적 충격으로 승객들에 대한 구조활동을 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피고인 12는 사고 전날 ○○호에 처음 승선하였기 때문에 ○○호의 구조 및 비상부서배치표상 자신의 임무를 알지 못하였고, ○○호가 전복될 당시 침대에 허리를 부딪쳐 상해를 입었으며, 나이가 많고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공포심을 극복하고 승객들에 대한 구조활동을 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피고인 13은 오른손의 손가락이 절단된 장애인으로서,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였고, 피고인 15는 ○○호가 기울 당시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오른쪽 앞니가 부러지고 오른쪽 어깨와 무릎에 부상을 입었고 연령이 많아 승객들을 구조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는 ○○호에 근무하는 동안 비상시 승객 구조에 관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피고인의 임직원이 화물과적과 부실고박 등을 조장하여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점을 불리한 양형요소로, 이 사건 기름의 유출량이 다른 사건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없고, 선원들이 사고 발생 직후 선내에 보관된 유류의 배출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던 점을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하였다.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9는 판시 범죄사실 제6항 기재와 같이 피해자인 승객 등이 안내방송을 믿고 대피하지 않은 채 선내에 대기하고 있고, 승객 등을 퇴선시킬 경우 충분히 구조가 가능하며, 피해자들이 선내에 그대로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가 더 기울면 ○○호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승객 등에 대한 어떠한 구조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채, 피고인 9는 09:38경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나와 09:39경 해경 구명단정을 이용하여 먼저 ○○호에서 퇴선하였고,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은 09:39경 피고인 9 등이 퇴선하는 것을 보고 퇴선하기로 마음먹고, 09:46경 ○○호에서 퇴선하였다. 이로써 위 피고인들은 공모공동하여 ○○호에 남아있던 피해자 정○○(남, 16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 303명 및 피해자 공소외 3(남, 57세)을 그 무렵 바다에 빠져 익사하게 하여 살해하고, 피해자 강○○(남, 40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Ⅱ 기재 피해자 152명이 사망할 것을 용인하면서 퇴선하였으나 위 피해자들이 해경 등에 의하여 구조되는 바람에 사망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못하였을 뿐 피해자들을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 피고인 9는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과 살인의 범행을 공모한 사실도 없었다. 피고인들이 피해자들을 유기함으로 인해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Ⅲ 기재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하였고, 피고인들에게 위 피해자들의 사망과 상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인정됨은 판시 범죄사실 제8의 다.항에서 본 바와 같다. 만일 피고인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을 넘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들에게는 살인 또는 살인미수죄가 성립하고 유기치사죄와 유기치상죄는 성립하지 않게 되는바, 피고인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본다. 범죄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라 함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상하면서 이를 용인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고,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하며, 그 행위자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이라면 당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하고, 이와 같은 경우에도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의 주관적 요소인 미필적 고의의 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며, 한편,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4도74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위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한 것을 넘어서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까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 2는 ○○호가 기울어진 직후인 08:55경 제주VTS에 구조요청을 하였고, 그 후 피고인 3 등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은 09:37경까지 VHF를 통해 진도VTS와 교신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 7은 09:12경 진도VTS에서 승선원의 수를 묻자 “450명입니다. 총 인원 약 500명 쯤 됩니다.”라고 대답하였고, 09:24경에는 “저기 본선에서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으며, 09:27경 진도VTS에서 곧 헬기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자 “저 승객이 너무 많아서 헬기 갖고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7, 피고인 6은 해경에게 반복해서 빨리 와 달라고 요구하였다. 또한 피고인 3은 09:26경 해경 구조정이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무전기를 통해 공소외 6 사무장 등 사무부원에게 알려 주었고, 그 무렵 그와 같은 내용의 선내방송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승객들과 함께 모두 구조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사고 현장에 최초로 도착한 목포해경 511호 헬기는 09:30경부터 구조작업을 시작하였고, 해경 123정은 09:35경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호의 좌현쪽에서 구명단정을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09:38경부터 구명단정을 이용한 구조작업을 개시하였다.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은 조타실에서 헬기의 소리를 듣거나 해경의 구명단정을 목격함으로써 해경 구조대가 도착하여 구조행위를 개시한 것을 확인하였으므로, 해경에 의한 구조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였을 수 있다. ⑴ 진도VTS 교신파일의 음성 및 그 녹취록의 기재와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6의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1은 해경정이 도착할 무렵 피고인 3에게 승객들을 퇴선시키라는 지시를 하였고, 피고인 3은 이를 공소외 6 사무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무전기에 대고 탈출시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⑵ 반면,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과 조타실에 함께 있었던 피고인 4, 피고인 7은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의 퇴선지시나 이를 사무부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피고인 3의 무전 교신이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1은 검찰 제11회 조사에서 승객들에 대한 퇴선지시는 없었고 오로지 자신이 살기 위해 먼저 탈출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또한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과 피고인 5, 피고인 6은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의 퇴선지시 및 피고인 3의 무전교신이 있었다고 진술하였으나, 그 진술들 중에는 무전교신을 한 위치, 횟수, 퇴선지시의 시기 등에 있어서 불일치하거나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진술이 바뀌는 경우가 발견된다. ⑶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 중 피고인 4, 피고인 7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이 사고 발생 직후 또는 ○○호에서 퇴선한 뒤에 모의를 하여 의도적으로 퇴선명령에 관한 허위의 진술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 ㈎ 진도VTS 교신파일 6채널 DVD 중 채널4에 녹음된 음성에 의하면, 피고인 3이 09:37경 진도VTS에 “침수상태 확인 불가하고 지금 뭐 일단 승객들은 지금 해경이나 옆에 상선들 옆에 거의 50m에 근접해 있고, 지금 좌현에 좌현으로 해가지고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만 일단 탈출을 시도하라고 일단은 방송 했는데, 지금 좌현으로 사실 그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라고 교신한 사실이 확인된다. 위 교신내용에 의하면, 피고인 3은 당시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탈출하라는 선내방송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 위와 같은 교신내용은 피고인 3이 경찰 제2회 조사에서 “경비정과 어선들이 주변에 도착했을 때 퇴선명령을 내렸습니다.”라고 진술한 것과도 부합한다. 피고인 3은 경찰 제2회 조사 당시에는 ‘어선’이라고 표현을 하였지만, 위 교신내용에 ‘상선’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교신 당시에는 초계기 촬영 영상에서 확인되는 □□□□□호와 드래곤▲▲▲호를 보고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경찰 제2회 조사 당시에는 배의 종류를 착각하여 어선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피고인 3은 무전기를 통해 사무부 직원에게 퇴선방송을 할 것을 지시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사고 당일 실시된 경찰 조사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이는 피고인 3의 무전교신 장면을 목격하였다는 피고인 2, 피고인 6의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과도 부합한다. 한편, 피고인 3은 수사과정에서 퇴선방송을 지시한 시점이 09:20경 ○○호가 70도 정도 기울었을 때라고 진술하였고, 퇴선방송을 하게 된 이유에 관해서도 피고인 1의 지시가 있었는지, 진도VTS에서 퇴선 여부를 판단하라고 하는 말을 듣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였으며, 무전기를 통해 공소외 6 등과 교신한 시기, 횟수, 자신의 위치, VHF교신을 자신이 하였는지 여부 등에 관하여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는 피고인 3이 사고 당시에 겪은 세부적인 사건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뿐, 이러한 사정만으로 무전기를 통해 사무부 직원들에게 퇴선방송 지시를 했다는 피고인 3의 진술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 피고인 4는 검찰 조사 및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이 승객들에 대한 퇴선명령을 한 적이 없고, 피고인 3이 무전기를 이용해 퇴선지시를 한 적도 없으며, 마음만 먹으면 퇴선지시를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였는데 조타실에 있던 누구도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진술은 퇴선할 때까지 피고인 4 본인이 들은 기억이 없다는 것으로서, 피고인 4는 사고 당시의 상황이나 사고 이후 진도VTS의 교신 내용, 다른 선원들의 행동에 관하여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은 점, 사고 당시 다른 선원들과 함께 조타실에 있었던 필리핀 국적 가수들도 피고인 4가 조타실의 좌현 쪽에 앉아서 계속 울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4는 피고인 1, 피고인 3의 행동을 보지 못하였거나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피고인 7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조타실에서 나올 때까지 퇴선명령이나 퇴선지시는 없었고, 피고인 1 등이 승객들에 대한 퇴선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한 시간을 놓친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것 같으며, 퇴선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하는 다른 피고인들이 책임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진술하였다. 그런데 피고인 7은 이 법정에서 위와 같은 진술은 본인이 퇴선명령 또는 퇴선지시를 들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고, 피고인 1, 피고인 3이 퇴선지시를 했는지 여부는 잘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피고인 7은 사고가 발생한지 2일 후인 2014. 4. 18. 목포한국병원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때에는 “피고인 1이 피고인 3에게 경비정의 도착시간을 알아보라고 하였고, 해경 경비정이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승객들 중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선장의 지시를 받아 사무장이 선내 방송을 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피고인 7이 검찰에서 한 진술만으로는 퇴선명령 및 퇴선지시에 관한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6의 진술이 허위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 피고인 1은 이 법정에서 어떤 경위로 퇴선방송을 지시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해경 경비정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퇴선방송을 지시했다고 진술하였고, 이와 같은 진술은 해경 123정의 도착시간과 피고인 3, 피고인 2, 피고인 6 등의 진술과도 부합한다. 다만 피고인 1은 수사과정에서 퇴선지시를 누구에게 했는지, 언제 했는지, 건의를 받고 했는지, 누구로부터 건의를 받았는지, 선내대기 방송은 몇 번 지시를 했는지 등의 사항에 관하여 엇갈린 진술을 하다가 검찰 제11회 조사를 받을 때에는 해경 경비정이 보이자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승객들이 선내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퇴선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1은 위 검찰 진술과 관련하여 이 법정에서 “죄책감으로 자포자기한 상태로 진술했습니다마는 사실 그런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산 사람을 다 죽이려고… 한두 사람도 아닌데 그런 마음을 먹겠습니까. 제가 검찰조사를 근 20일 동안 받았는데 하루도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검사님도 계속 압박을 가하고 저도 돌아서 생각해 보니까 잘못했고 해서 그렇게 진술한 것입니다. 그 사고로 인해 부상으로 인해서 무능했고, 판단력이 부족해서 잘못한 것이지 ‘나 혼자 살아야겠다. 승객을 다 죽여야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진술은 죄책감에서 자포자기한 상태로 한 것입니다. 근 20일 동안 자정이 넘도록 계속 조사를 받았는데, 사실 제 나이에 그런 조사를 받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진술을 했던 것입니다.”라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1이 수사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장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았던 점, 경찰 및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해경 경비정의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퇴선지시를 하였다고 계속해서 주장하였던 점, 이 사건 공소제기 후에는 다시 퇴선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1의 위 법정진술은 상당 부분 수긍이 가는 면이 있고, 앞서 검찰 제11회 조사에서의 진술은 사실 그대로를 진술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 피고인 6은 경찰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고인 3이 피고인 1에게 퇴선 여부를 묻자 피고인 1이 그러라고 하여 피고인 3이 무전기에 대고 승객들을 탈출시키라고 말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다만 피고인 6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피고인 1의 퇴선명령 시기에 관하여 ‘09:25경 진도VTS로부터 선장이 판단하여 탈출시키라는 교신을 듣고 나서’라든가 ‘경비정 도착 10분 전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 또는 ‘방송도 불가합니다라고 말하고 나서’라고 설명하는 등 엇갈린 진술을 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6은 이 법정에서 위와 같이 퇴선명령을 들은 시기에 관하여 엇갈리게 진술한 것은 피고인 3이 10분 후 구조정이 도착한다는 무전을 한 것과 혼동하였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였고, 경찰 조사에서는 구조정이 도착했을 때 퇴선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추어 보면 퇴선방송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피고인 6의 진술은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피고인 2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3이 무전으로 사무부 직원에게 퇴선방송을 하라고 말하는 것을 피고인 3으로부터 1~2m 떨어진 곳에서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다만 피고인 2는 검찰 조사에서 피고인 3이 퇴선방송을 하라는 무선을 한 시점에 관하여 엇갈린 진술을 하였는바, 이 법정에서는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이 좌현 구명뗏목을 터트린다고 출입구 쪽으로 이동하였을 때와 피고인 7이 좌현 출입구로 나갔을 때를 혼동한 것 같다고 하면서, 피고인 3이 무전을 한 시기는 조타실을 탈출하기 10분에서 15분 전이 맞다고 진술하였고, 경찰 및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도 자신이 해경정에 옮겨 타기 10분 전에 피고인 3이 무전을 하면서 ‘옷 두껍게 또는 따뜻하게, 라이프재킷 입고, 나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이러한 진술경위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2가 피고인 3의 무선교신 시점을 혼동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선후 관계나 피고인 3이 VHF교신을 끝냈는지 여부 등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 피고인 5는 이 법정에서 피고인 1이 좌현 출입문 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퇴선하라는 취지로 피고인 2에게 “퇴선하라고 해, 영업부에도 알려주고”라고 말하였고, 그 시점은 피고인 7이 이미 좌현 출입문으로 나간 후이며, 이후 무전기로 위 내용을 전달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5는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는 위와 같은 피고인 1의 말을 들은 피고인 3이 사무장 공소외 6에게 무전기로 전달을 했으나 공소외 6의 답신이 없었고 영업부 직원들이 무전기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그 직원들이 탈출을 안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6과 피고인 8은 피고인 1이 조타실을 나서기 전쯤에 선원들도 퇴선하자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고 진술한 것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5가 들었다는 피고인 1의 진술은 앞서 본 퇴선방송 지시와는 별개의 선원들에 대한 퇴선지시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피고인 5의 진술 역시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이 허위의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근거로 인정하기 어렵다. ⑷ 위와 같이 피고인 1의 지시로 피고인 3이 무전기에 대고 퇴선시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퇴선방송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피고인 3은 무전기에서 대답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다른 사무부 직원들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2는 당시 사무부 직원들의 대답이 없었던 사실은 알았으나 피고인 1, 피고인 3도 대답이 없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에 알아서 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며, 피고인 1은 피고인 3으로부터 방송지시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피고인 3이 피고인 1의 퇴선방송 지시가 사무부 직원들에게 전달이 된 것으로 착각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09:37경 피고인 3의 VHF 교신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피고인 2는 무전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선장인 피고인 1의 지시를 기다리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 3에게 다시 무전을 할 것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피고인 2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며, 피고인 1의 위 진술도 피고인 3의 교신내용에 따르면 거짓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또한 당시에는 ○○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진 사고 초기와는 달리 ○○호의 상공에 헬기들이 떠 있었기 때문에 조타실 안의 소음이 컸을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선내방송으로 승객들에 대한 퇴선안내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으므로, 피고인 1이 재차 무전지시를 하지 않은 것이 살인의 고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⑸ 피고인 3, 피고인 6은 ○○호에서 탈출한 후 해경이 정해준 모텔에 함께 머물렀고, 피고인 2는 목포에서 혼자 지내다가 피고인 3, 피고인 6이 머물던 모텔을 방문한 적이 있다. 피고인 1은 사고 직후 해경의 집에서 머물다가 구속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다른 피고인들과 만나거나 사건에 관한 대화를 나눈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 만일 검찰이 의심하는 것과 같이 ○○호 조타실 내에서 피고인들이 퇴선경위에 관하여 허위진술을 하기로 모의하였다면 피고인들은 퇴선명령의 내용과 시기에 관하여 일관되고 동일한 진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퇴선명령이 있었는지에 관한 피고인들의 진술이 일치되지 않고, 퇴선 후 함께 지낼 당시에 퇴선명령이 있었다는 진술을 하자는 모의가 있었다면 적어도 수사 초기에 함께 지내거나 만난 적이 있는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5, 피고인 6은 퇴선명령의 시기나 경위에 관하여 일치된 진술을 했어야 함에도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진술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승객들보다 먼저 구조받기 위하여 승객들에 대한 퇴선명령을 내리면 안 된다거나 승객들보다 먼저 탈출해야만 살 수 있다는 말을 서로 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호가 기울어진 직후부터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 등과 함께 조타실에 머물렀던 필리핀 국적 여가수는 당시 조타실에 있던 피고인들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필리핀 국적 여가수는 이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에 통역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을 먼저 이해하고 답변을 할 만큼 한국어를 잘 하는 것으로 보였다). 피고인 1의 퇴선방송 지시를 듣지 못하였다는 피고인 4도 수사과정 및 이 법정에서 피고인 7은 구명뗏목을 터트려 보겠다고 하면서 나간 것이고,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이 ○○호에서 퇴선하기 전에 특별한 말을 한 적은 없고 자연스럽게 한 명씩 나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 9가 조타실을 나올 당시 선장과 항해사들이 모두 조타실로 모인 것을 보았고, 피고인 2가 VHF를 통해 구조요청을 하는 것도 알았던 점, ② 피고인 9를 비롯한 기관부 선원들이 기관부 선원실 복도에서 3층 좌현 출입문으로 탈출할 당시에는 구조헬기가 도착하여 인명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고, 해경 구조정도 도착하여 구조활동을 개시하였던 점, ③ 조리부 소속 직원인 공소외 1, 공소외 2는 바로 근처에 쓰러져 있었으므로 피고인 9는 위 피해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으나,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상태를 알지 못하였고, 승객들에 대해서는 해경이 구조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 9가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한 것을 넘어서,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까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예비적 공소사실이거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유기치사죄 및 유기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피고인들은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으로서 요청이 없더라도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일 판시 범죄사실 제6항 기재와 같이 조난당한 승객들을 신속히 대피시키는 등 인명 구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조난당한 승객의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수난구호법 제43조 제2호, 제18조 제1항 단서는 해상교통량의 증가에 따라 빈번히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선박사고의 뺑소니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으로, 그 문언이나 입법취지상 스스로 조난을 당한 ○○호의 승무원인 피고인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이 조난된 선박 자체에 해당하는 ○○호의 선장 및 승무원들인 피고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점은 ‘피고인들 및 변호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 Ⅱ의 1.가.2)항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유기치사죄 및 유기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피고인 1, 피고인 4, 피고인 5는 공동하여, 판시 범죄사실 제5항 기재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2014. 4. 16. 08:48경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호를 침몰케 하여 승객과 다른 선원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침몰하는 ○○호 선내에 대기 중임에도 대피 및 퇴선을 위한 구조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퇴선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호에 탑승 중이던 피해자 정○○(남, 16세) 등 456명을 바다에 빠지거나 매몰된 선체에 갇히게 하였음에도 조난된 피해자들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하여, 피해자 정○○(남, 16세)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Ⅰ 기재 피해자 303명 및 피해자 공소외 3(남, 57세)을 이 익사로 사망하였고, 피해자 강○○(남, 40세)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어깨, 팔, 무릎 타박상 및 불면 등 적응장애의 상해를 입게 하는 등 별지 피해자 일람표Ⅱ 기재 피해자 152명을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2는 선박충돌사고 후 즉각적인 구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하는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조난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인 피고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1)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본 판단 부분에서 ‘특가법’이라 한다) 제5조의12는 ‘도주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에 대한 가중처벌’이라는 제목으로 해사안전법 제2조에 따른 선박의 교통으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피해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위 특가법이 인용하고 있는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이 ‘조난현장의 부근에 있는 선박 등의 선장·기장 등은 조난된 선박 등이나 구조본부의 장 또는 소방관서의 장으로부터 구조요청을 받은 때에는 가능한 한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제공하여야 한다. 다만,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은 요청이 없더라도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위 특가법이 인용하고 있는 또 다른 규정인 형법 제268조는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 한편, 위 특가법의 내용 중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에 의한 조치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에 한정될 뿐, ○○호와 같이 ‘조난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이 위와 같은 조치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할 수 없음은 ‘피고인들 및 변호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 Ⅱ의 1.가.2)항에서 본 바와 같다. 다만, 특가법은 도주선박죄의 주체를 ‘선박의 교통으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그들이 해야 하는 조치의 내용에 대해서만 앞서 본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를 인용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규정에 따라 도주선박죄의 주체를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의 주체인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으로 제한하여 해석하여야 하는지 여부가 이 부분 해석에 관한 쟁점이다. 살피건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주선박죄의 입법취지와 경과, 도주선박죄 규정의 문언상 의미, 일반법에 대비되는 특별법의 의미와 특가법상의 다른 법규정과 비교되는 도주선박죄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하여 보면, 특가법상의 도주선박죄는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에 따른 구호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사람, 즉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이 필요한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 처벌되는 것을 기본 범죄로 하여, 이들이 형법 제268조의 죄(즉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고를 범한 경우)를 범하였음에도 도주하는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특가법상 도주선박죄의 주체는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에 한정된다고 판단되고, 결국 이 사건과 같이 스스로 조난을 당한 선장 및 승무원들은 위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도주선박죄는 2013. 7. 30. 법률 제11955호로 신설되었는데, 위 조항의 신설 취지는 ‘해상교통량의 증가, 선박의 고속화 등 해상교통 환경의 변화로 해상교통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고, 선박충돌사고 발생 후 인명과 선박에 대한 즉각적인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할 경우 대부분 사망, 실종 등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해상에서 선박충돌사고 발생 후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행위를 가중처벌하도록 함으로써 도주심리를 억제하고 충돌사고를 사전 예방하려는 것’인바, 이와 같이 도주선박죄에 관한 규정은 원칙적으로 선박충돌사고 후 도주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을 예상하고 신설하였던 조문임을 알 수 있다. 가) 위 조항과 관련된 입법자료인 의안원문,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와 심사보고서, 법제사법위원회 및 국회본회의 회의록에 의하면, 위 규정은 다음과 같은 경위에 따라 신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⑴ 최초 위 규정에 대한 의안원문에는 ‘해상교통사고’ 중 특히 ‘선박충돌사고’를 내고도 도주한 운항자를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그 규정형식으로는 행위의 주체를 ‘선박의 운항자’로, 조치의무의 내용으로는 선박이 충돌하는 경우 각 선박의 선장이 취하여야 하는 조치 내용을 규정한 ‘선원법 제12조’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⑵ 이후 위 조문을 심사한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보고서에서는 위 의안원문 중 행위의 주체인 ‘선박 운항자’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점과 선원법 제12조상 구호의무의 주체가 선장에 한정됨에도 특별법에서 그 범위를 확대하여 새로운 의무를 창설하는 것은 법체계의 정합성에 맞지 않는다는 검토결과를 바탕으로, 조치의무에 대한 내용으로는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에게 구호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를 인용하고, 선박 운항자 대신 ‘선장 또는 승무원’이라는 명확한 개념을 사용하여 그 주체를 확대하였다(따라서 위 수난구호법에 규정된 ‘선장 및 승무원’과 위 특가법에 규정된 ‘선장 또는 승무원’의 개념이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⑶ 이러한 신설법안의 취지와 개정내용은 그 후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및 국회본회의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다만 위 각 보고서 및 회의록에서는 위 규정의 수정 이유나 도주선박 운항자의 가중처벌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며 ‘선박충돌 등 해상사고는 구호조치가 없을 경우 대부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면서 ‘선박충돌 등 해상사고’라는 다소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나) 이러한 입법경과에 따르더라도 도주선박죄는 주로 선박충돌사고를 예상하고 제정된 규정으로 보인다. 다만 위 입법경과에서는 도주선박죄의 처벌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선박충돌 등 해상사고’라는 다소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단순히 ‘선박충돌’이라는 사고에 한정해서 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있음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고의 종류를 불문한 모든 선박사고에 위 법조가 적용된다고 적극적으로 규정하려고 하였다고 해석할 수는 없고,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 특가법의 규정에 의하여 문리적으로 해석 가능한 범위 내의 ‘해상사고’에 한정하여 위 특가법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가) 특가법은 여러 법률에 이미 규정된 특정범죄에 대하여 가중처벌 등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바(특가법 제1조), 기본적으로 다른 법률에 의한 기본범행이 성립함을 전제로 하여 그 피해 정도나 결과 등에 따라 형을 가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위와 같이 가중처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특가법은 그 자체에서 새로운 의무를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률에 따라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자에 대해서 특별한 요건을 더하여 그 처벌을 가중하고 있다(일반법에 대비되는 특별법은 개념적으로 특별법의 구성요건이 일반법의 모든 구성요건을 포함하면서 그 밖의 특별한 표지까지 포함한 경우를 뜻하므로, 특가법에서 말하는 가중처벌도 단순히 법정형만의 가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법 조항의 구성요건 이외에 특별한 구성요건 표지를 추가한 가중처벌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2014. 4. 24. 선고 2011헌바2 결정 참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도주선박죄에서 규정한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라는 규정은 다른 법률에 따라 구호조치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음에도 위 특가법에 따라 새롭게 구호조치 의무가 부과되는 주체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가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다른 법률인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이미 구호조치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자를 전제로 하여 그러한 사람 중 ‘형법 제268조에 따른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자에 한정하여 위 규정이 적용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도주선박죄에 관한 특가법 중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라는 규정은 수범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제한하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특가법상 도주선박죄는 ‘업무상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는 가중된 구성요건 표지에 더하여, 그러한 자가 ‘도주한 행위로 인하여 피해가 확대된 경우’라는 또 다른 가중된 구성요건 표지를 만족하는 경우 이를 가중처벌하려는 규정이 된다. 나) 이러한 해석은 도주선박죄와 유사한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특가법상의 도주차량죄와 비교해 보아도 확인될 수 있다. 특가법 제5조의3 제1항은 ‘도로교통법 제2조에 규정된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의 교통으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해당 차량의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도로교통법에서는 제54조 제1항은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에는 그 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은 즉시 정차하여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주차량죄에 관한 특가법 규정은 다른 법률인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따라 구호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전제로 하여 그 중 형법 제268조의 책임을 지는 운전자의 경우로 그 주체를 한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자는 그 사고 발생에 있어서 고의·과실 혹은 유책·위법의 유무에 관계없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지만(대법원 2002. 5. 24. 선고 2000도1731 판결 참조), 특가법상의 도주차량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에 더하여 사고발생에 대한 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자에는 ‘운전자’뿐만 아니라 ‘그 밖의 승무원’도 포함되지만, 특가법상의 도주차량죄의 주체는 그 중 ‘운전자’의 경우로 적용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다) 이와 같은 해석방법은 앞서 본 입법경과에서도 나타나 있다. 위 조문을 심사한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보고서에서는, 의안원문에서 구호조치에 관하여 인용하고 있는 선원법 제12조상 구호의무의 주체가 선장에 한정됨에도 특별법에서 그 범위를 확대하여 새로운 의무를 창설하는 것은 법체계의 정합성에 맞지 않는다는 검토결과를 바탕으로 위와 같은 개정이 이루어졌는바, 이러한 입법경위에 비추어 보아도 특가법상의 도주선박죄를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의무를 창설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도주선박죄와 비슷한 형식으로 규정된 도주차량죄에 따른 범행의 경우, 검찰의 주장과 같이 상대방 차량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자차사고 즉, ‘차량의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로 인하여 사상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도 위 규정에 따른 도주차량죄가 성립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의 차이점이 발생하는 것은 각 죄가 기본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과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의 규정형식 및 의무주체가 차이가 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서는 ‘사고발생 시의 조치’라는 제목하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자를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음에 반하여, 수난구호법 제18조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인근 선박 등의 구조지원’이라는 제목하에 조난된 선박과 구별된 개념인 조난현장 부근에 있는 선박 중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경우에 한정하여 구호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물론 검찰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처럼 선박이 스스로 조난된 경우에도 도주로 인한 피해의 위험성이 크고 이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처벌의 필요성만으로 문언의 가능한 해석범위를 넘는 해석을 하거나 다른 유사 규정인 도주차량죄의 해석을 준용하여 처벌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확장해석 또는 유추해석으로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또한 판시 범죄사실과 같이 피고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유기치사상죄나 선원법위반죄 등으로 처벌을 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이와 같은 해석을 한다고 하여 처벌의 심각한 불균형이 생긴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예비적 공소사실이거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유기치사죄 및 유기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피고인들은 판시 범죄사실 제6항 기재와 같이 승객을 구조할 법률상, 계약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하여 승무원의 선내대기방송에 따라 구조를 기다리며 침몰하는 ○○호 선내에 대기 중이던 피해자 공소외 3(남, 57세)의 구조를 위해 필요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유기하여 위 피해자로 하여금 익사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최○필의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호가 기울기 시작한 08:49경 60대로 추정되는 남자 1명이 3층 좌현 난간에서 바다로 추락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각 구조동영상에 의하면 사고 발생 이후 구조헬기 등이 도착할 때까지 약 40분이 넘게 걸린 사실이 인정되고, 초계기나 헬기 등에 의해 바다에 빠진 위 남자가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으므로, 위 남자는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제출한 ○○호 침몰 사고 희생자 현황에 의하면, 현재까지 구명동의를 착용하지 아니한 채 선체 밖에서 시신이 발견된 피해자들 중 최승필의 진술과 일치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으므로, 연령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최승필이 목격한 남자는 실종자 공소외 3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위 공소외 3의 사망 원인이 피고인들의 유기행위로 인한 것인지에 관하여 보건대, 공소외 3의 경우 다른 실종자들과는 달리 ○○호가 침몰할 때까지 선체 내부에 있었다고 볼 수 없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망한 시점이나 사망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유기행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으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해자 공소외 3에 대한 유기치사죄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유기치사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선원인 피고인들은 수난구호법 제18조 제1항 단서 및 해운법에 의하여 제정된 ○○호의 운항관리규정에 따라 ○○호에 탑승하고 있던 모든 인명을 구조할 법률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장인 피고인 1과 공동하여, 구조를 기다리며 침몰하는 ○○호 선내에 대기 중이던 승무원인 피해자들의 구조를 위해 필요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호에서 퇴선하여 유기함으로써, 피해자 공소외 6(남, 44세) 등 10명을 각 사망에 이르게 하고, 피해자 김○○(남, 23세), 오○○(남, 20세)을 각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 선장이 아닌 피고인들은 ○○호의 승무원인 위 피해자들을 구조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위 피해자들에 대한 유기치사죄 또는 유기치상죄의 공동정범이 될 수 없다.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은 다수의 부작위범에게 공통된 의무가 부여되어 있고 그 의무를 공통으로 이행될 수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8도89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위 피해자들이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호에 승무원 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탑승한 사실이 인정되고, 선원인 피고인들이 승객이 아닌 승무원들에 대하여 법률상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함은 앞서 ‘피고인들 및 변호인의 주장에 관한 판단’ 부분의 제Ⅱ의 1.가.항’에서 본 것과 같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선원인 피고인들에게 위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상 또는 계약상 구조의무가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결국 선원인 피고인들은 선장인 피고인 1과는 달리 위 피해자들에 대한 구조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부작위로 인한 유기죄의 정범 또는 공동정범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유기치사죄 및 유기치상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따로 주문에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 위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일 계속되는 결산심사 활동을 위해 애써 주시는 여러 동료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2016회계연도 경기도 결산과 예비비 지출에 대한 설명 및 질의를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질의 답변은 일문일답으로 하며 위원님들의 질의시간은 5분 이내로 하여 주시고 추가질의가 있을 경우 위원님들의 질의가 모두 끝난 후 질의시간을 3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원님들께서는 이 점 유념하셔서 심사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위원장 송한준 그러면 의사일정 제1항 2016회계연도 경기도 결산 승인의 건, 의사일정 제2항 2016회계연도 경기도 일반회계 및 기타특별회계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 이상 2건을 일괄해서 계속 상정합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먼저 농정해양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그럼 류인권 농정해양국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농정해양국장 류인권입니다. 존경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송한준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을 모시고 농정해양국 소관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해 제안설명드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최형근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습니다. 배부해 드린 자료 1쪽입니다. 농정해양국 세입결산액은 2,634억 4,000만 원이고 세출예산현액은 3,541억 2,600만 원입니다. 예산현액의 90%인 3,186억 1,000만 원을 지출하였고 9%인 318억 9,0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집행잔액은 예산현액의 1%인 36억 2,500만 원입니다. 다음은 2쪽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결산은 2,647억 3,800만 원을 징수결정하고 2,634억 4,000만 원을 수납하여 99.5%를 달성하였습니다. 0.5%인 12억 9,800만 원은 미수납하였습니다. 미수납액은 2015년도 12월부터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현재 대법원 계류 중입니다. 다음은 11쪽 주요 불용내역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불용사유는 크게 부동의사업과 사업비 집행잔액이 되겠습니다. 농업정책과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1억 4,000만 원, 귀농인 따복농장 지원 2억 원, NEXT 경기농정 4억 4,000만 원이 불용되었고 해양항만정책과 평택항 홍보관 운영 3억 5,000만 원과 농식품유통과 농식품가공업체 시설개선 지원 9,000만 원이 각각 불용되었습니다. 친환경농업과의 강풍피해재해대책비 3,200만 원과 U-RPC 설치 지원 5억 원, 경기미 마케팅 2억 원이 불용되었습니다. 수산과의 지방어항건설 6억 2,000만 원과 어촌정주어항 건설 1억 8,000만 원도 불용처리되었습니다. 다음은 12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예산 이용은 없습니다. 예산 전용은 농촌관광홍보 등 6건 5억 8,400만 원으로 농식품부 사업시행 지침 변경과 NEXT 경기농정 비전 선포 준비를 위해 부득이 전용하였습니다. 다음으로 13쪽 예산 이체는 조건불리지역 직접지불금 등 6개 사업 20억 4,200만 원이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서 부서 간 업무조정을 위하여 소관 부서를 변경하였습니다. 다음은 14쪽 예비비 지출내역입니다. 예비비는 가뭄극복대책지원 등 3개 사업 6억 원으로 가뭄ㆍ강풍ㆍ대설피해 복구를 위하여 긴급 지출하였습니다. 다음은 15쪽 이월사업비 현황입니다. 이월사업은 총 17건에 318억 9,000만 원으로 먼저 계속비이월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제부마리나항 건설 등 4개 사업에 194억 5,200만 원은 공사 지연 및 집행시기 미도래 등의 사유로 이월하였습니다. 명시이월은 농촌자원복합산업화 지원 등 12건 123억 8,900만 원으로 국비 교부가 지연되었고 준공기간이 도래하지 않아서 이월처리하였습니다. 사고이월은 수산기술센터 임시청사 임차비 1건 4,950만 원으로 신청사 이전 전까지 현 임시청사 임차비 지급을 위한 이월금액입니다. 다음은 16쪽 농업발전기금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년 농업발전기금은 491억 2,800만 원을 수납하고 514억 8,400만 원을 지출하여 2016년도 말 현재 예치액은 전년 대비 23억 5,600만 원이 감소한 269억 500만 원입니다. 2016년 농정해양국 성과목표 지표 수는 총 30개로서 이 중 26개 지표는 목표를 달성하였고 4개 지표는 미달되었습니다. 금년도에는 부진한 부분을 보완하여 달성률을 제고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고드린 사항 중에서 집행잔액이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예산편성 시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고 예산집행에 내실을 기하는 한편, 이월사업 및 계획변경 사업의 경우에도 자금 없는 이월 사례가 없도록 중앙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는 등 적기에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류인권 농정해양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서상교 축산산림국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축산산림국장 서상교 안녕하십니까? 축산산림국장 서상교입니다. 바쁘신 의정활동 중에도 경기도 축산산림 발전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존경하는 조광명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지금부터 축산산림국 소관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하여 배부해 드린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결산개요서 2쪽입니다.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입니다. 축산산림국 세입예산은 1,422억 7,976만 원이며 세출예산현액은 2,518억 7,277만 원입니다. 세출예산 집행내역은 예산현액의 85%인 2,142억 6,397만 원을 지출하였고 296억 6,081만 원을 이월하였으며 집행잔액은 3.2%인 79억 4,798만 원입니다. 3쪽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예산현액은 1,464억 3,164만 원이며 1,428억 5,017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1,422억 7,976만 원을 수납하였고 5억 7,040만 원이 미수납되었습니다. 미수납액을 재원별로 보고드리면 징수교부금, 공유재산임대료 등 4억 6,063만 원, 지난연도 수입, 변상금, 위약금, 그외수입 등 1억 976만 원 등 총 5억 7,040만 원이 미수납되었습니다. 미수납 금액은 세정과 인수인계 및 체납독촉을 통해 수납을 진행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 수납이 완료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9쪽 세출결산입니다. 축산산림국 세출예산은 2,518억 7,277만 원이며 예산현액의 85%인 2,142억 6,397만 원을 지출하였고 11.8%인 296억 6,081만 원을 이월하였으며 3.2%인 79억 4,798만 원이 집행잔액입니다. 다음은 13쪽 주요 불용액 사유입니다. 주요 불용액으로 사업별 예산액 대비 30% 이상 불용되거나 1억 원 이상 불용된 사업 위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송아지생산 안정사업의 집행률은 12.6%로 상기 사업은 송아지 안정기준 가격이 185만 원인데 그 이하로 하락 시 보전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2016년도 지속적인 송아지 생축가격의 상승으로 신규가입 농가가 감소됨에 따라서 1,921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축산발전 워크숍 집행률은 34.7%로써 AI 발생에 따른 가축질병 위기경보 상향조정으로 농가모임 금지가 농림부로부터 통보되었고 행사계획이 11월 중에 계획되어 있었으나 부득이하게 취소하게 되어 1,633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학교 우유급식 지원은 집행률이 98.5%이나 시군 집행률이 65.2%로 낮은데 그 사유는 수의계약에서 입찰경쟁으로 변경됨에 따라 기준가격이 430원보다 낮은 267원으로 계약되었기 때문입니다. 산림작물생산 기반조성 집행률은 57.4%로써 공모사업으로 추가공모 결과 대상자가 없어 23억 449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공원지킴이운영 집행률은 0%로 시군 고유사무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2억 1,500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어린이상상놀이터 협의체 구성 집행률은 64.7%로써 2016년 5월 1일 협의체가 구성되어 3회 협의회를 개최하였으나 운영기간 부족으로 705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축산위생 업무 지원은 기간제근로자 보수 등 집행률이 47.4%로 집행곤란사업으로 지정되어 예산 미배정에 따라 1억 275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바이오 연구기반 조성의 집행률은 통계목별로 보면 기간제근로자 보수 등 집행률 0%, 공공운영비 26.9%, 재료비 23.4%, 기타 보상금 0%, 시설부대비 0%로 각각 인건비 예산배정 지연 및 분말화 장비 설치 지연 등의 예산 미집행사유로 집행잔액 1억 9,511만 원이 발생하였고 사방사업 집행률은 85.4%로 낙찰률을 적용한 집행잔액으로서 30억 2,758만 원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음은 14쪽부터 17쪽 예산의 이용ㆍ전용ㆍ변경 및 이체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예산의 이용ㆍ전용내역은 없습니다. 예산의 변경내역은 동물방역과 2건, 산림환경연구소 4건 등 총 6건이며 1억 3,497만 원입니다. 야생동물생태공원 조성은 감정평가 수수료 등의 부대경비 지급을 위해 시설비 420만 원을 시설부대비 경비로 변경하였고 로컬푸드 브랜드 챔피언십은 시군지원사업에 적합하도록 민간행사사업보조 1억 원을 자치단체경상보조로 통계목을 변경하였으며 바다봬수목원 조성은 품질관리 도모를 위한 전문기술 인력배치를 위해 시설비 900만 원을 감리비로 변경하였습니다. 산림자원생산연구는 공공운영비 부족으로 사무관리비 1,200만 원을 공공운영비로 변경하였고 산림병해충방제사업 품질개선을 위한 감리 선정 추진을 위해 시설비 477만 원을 감리비로 변경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잣향기푸른숲 운영은 16년 11월 1일 자로 신설 팀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무관리비 확보를 위해 공공운영비 500만 원을 사무관리비로 변경하였습니다. 다음은 예산 이체내역입니다. 2016년 11월 1일 자로 경기도 조직개편에 따라 축산진흥센터가 신설됨에 따라서 축산정책과의 18개 사업 108억 4,971만 원이 축산진흥센터로 이체되었고 동물위생시험소의 19개 사업 23억 1,148만 원이 축산진흥센터로 이체되어서 총 37개 사업 131억 6,119만 원이 이체되었습니다. 다음 18쪽부터 22쪽까지 이월사업입니다. 계속비이월은 7건에 157억 301만 원으로 젖소송아지 육성기지 조성사업 35억 4,000만 원, 에코팜랜드 단지 조성 41억 6,428만 원, 반려동물테마파크 31억 9,423만 원, 야생동물 생태공원 조성 4억 5,450만 원, 북부야생동물보호센터 구축 1억 원, 경기도 승용마 조련센터 조성 30억 원, 말문화시설 설치 12억 5,000만 원이 집행시기가 미도래되었거나 사전절차 이행 등의 이유로 각각 이월조치하였습니다. 명시이월은 가축분뇨처리사업 등 25개 사업에 99억 6,750만 원으로 세부사업은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고이월은 9건에 39억 9,029만 원으로 주로 공기부족 및 국비 미교부 등의 사유로 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21쪽부터 22쪽까지 예비비 지출내역입니다. 예비비는 14건에 40억 5,030만 원으로 주로 AI 발생에 따른 긴급가축방역비와 매몰비용, 방역물품 지원 및 통제초소, 거점소독시설 운영 지원, 살처분 매몰비용 지원 등으로 예비비를 집행하였습니다. 2016년 축산산림국 세입ㆍ세출 결산 결과 불용액은 사업계획 변경 및 입찰에 따른 계약잔액 등의 집행잔액이며 이월예산은 계속사업비와 국비교부 지연에 따른 공사기간 부족 등으로 부득이하게 이월하게 되었으나 앞으로 예산 운용에 효율성과 철저를 기하여 불용 또는 이월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서상교 축산산림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순재 농업기술원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업기술원장 김순재 농업기술원장 김순재입니다. 존경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조광명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평소 경기도 농업기술원의 농업연구와 지도사업 등 농업발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는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으로 간부 소개를 마치고 농업기술원 소관 2016회계연도 일반회계 및 농촌지도자육성기금 세입ㆍ세출 결산개요를 배부해 드린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2016년 회계연도 성과보고입니다. 2016년도 농업기술원의 전략목표는 농업농촌의 경쟁력 강화와 안전하고 활기찬 농촌실현으로 40개 성과지표 중 1개를 초과달성하였고 달성 38개, 미달성 1개로 전체 달성률은 98%입니다. 다음은 결산개요서 1쪽입니다. 세입예산 현액은 203억 3,400만 원이며 징수결정액은 204억 7,800만 원, 수납액은 204억 7,800만 원 전액을 징수하여 미수납액은 없습니다. 2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2016년도 일반회계 세출예산현액은 474억 3,100만 원이며 예산액 중 451억 5,600만 원을 집행하였고 집행잔액은 세출예산의 3%인 14억 5,300만 원입니다. 이월액은 8억 2,200만 원이며 이 중 작물연구과의 6억 원은 경기농식품 ICT 리모델링 및 지원시스템 구축사업으로 3회 추경에 편성되어 사전 행정절차 및 공개입찰 등으로 명시이월하게 되었고 지도정책과의 2억 2,000만 원은 지역농촌지도사업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국비가 교부되지 않아 명시이월되었으나 2017년 1월 26일 교부되어 현재 사업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다음은 7쪽 주요 불용액 사유입니다. 통계목 기준 예산액 대비 80% 미만 집행사업은 총 15건으로 7억 7,400만 원이며 불용사유는 집행잔액 및 유보사업에 따른 예산잔액입니다. 집행잔액은 총 6건에 1억 5,600만 원이며 유보사업은 작물연구과의 벼 신품종 종자생산사업 등 총 9건에 6억 1,800만 원입니다. 10쪽 예산 전용 내역입니다. 예산 전용은 2건에 총 1억 1,000만 원으로 작물연구과의 농업연구성과 홍보사업 1,000만 원과 지도정책과의 농가경영개선 지원사업 1억 원을 전용하였습니다. 11쪽 예산 이체 현황입니다. 예산 이체는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총 28개 사업 9억 7,800만 원입니다. 16쪽 예비비 지출 내역입니다. 예비비는 외래해충인 미국선녀벌레 발생에 따른 농작물 긴급방제를 위해 시군에 12억 원의 예비비를 지원하였습니다. 다음은 이월사업비 현황입니다. 명시이월사업은 총 2건, 8억 2,200만 원입니다. 작물연구과에 경기농식품 ICT 생육모델링 및 지원시스템 구축은 3회 추경에 편성되어 행정절차이행 등으로 6억 원이 명시이월되었고 지도정책과의 지역농촌 지도사업 활성화 지원사업은 국고보조금 미교부로 2억 2,200만 원이 명시이월되었습니다. 17쪽 성인지 결산내역입니다. 성인지사업 집행실적은 지도정책과의 농기계훈련사업 1억 9,100만 원이며 성평등 효과분석 결과 사업수혜자 여성이 28%, 남성이 72%로 매년 여성의 교육수혜 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음 18쪽 기금결산내역입니다. 2016년도 말 기준 경기도 농촌지도자 육성기금은 78억 4,100만 원으로 이자율 감소로 인하여 전년 대비 5,200만 원이 감소하였습니다. 수입지출 내역으로는 전년도 예치금 회수 및 이자수입 1억 4,900만 원이며 벤처농업 기술지원사업 등 목적사업 2억 100만 원, 예치금 78억 4,100만 원으로 총 지출액은 80억 4,200만 원입니다.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사업별 상세 결산내역 19쪽부터 38쪽까지 유인물로 갈음 보고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조광명 예산결산특별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농업기술원에서는 예산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농업의 경쟁력 제고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번 2016년 회계연도 일반회계 결산심의를 통해 미흡한 점을 지적해 주시면 위원님들의 고견을 받들어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김순재 농업기술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할 실국장을 지명하신 후 해당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십시오. 안승남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 안승남 위원 고구려의 기상 태극기의 도시 구리월드디자인시티를 추진하는 안승남 위원입니다. 오늘 결산보고를 잘 들었는데요. 결산보고와 좀 달리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면 첫째는 결산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많은 민원들을 잘 좀 수렴해서 체크해 주실 것을 바라고 특히 제가 사는 구리시 갈매동 갈매지구에 서울양묘장이 있는데 그 양묘장을 도시공원으로 만드는 거를 계속 관심 갖고 챙겨주셨으면 하고 또 한 가지는 AI 피해 때문에 지금 많은 농민들이 어렵고 힘든데 관련해 있는 분들도 편치는 않습니다. 최근에 가금류 문자 날려가지고 전통시장 아주 난리가 났는데 다시 살아있는 닭과 생닭으로 정정해 주셔서 나름대로 수습은 좀 됐지만 실제로 닭과 오리를 끓여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거를 좀 광고하게 홍보를 해 주셔야지 생닭 일부 구입하고 저기, 생닭 잡지도 않는 거를 문자를 날리는 바람에 웬만한 전통시장 다 피해 받았습니다. 계속적으로 AI 관련해서 닭과 오리를 끓여서 먹고 튀겨먹으면 국민건강에 문제없다고 적극 홍보 좀 해 주시고 챙겨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실질적인 결산 질의 관련해서 일단 농정해양위에서 자료를 보면 NEXT 경기농정 해 가지고 5억 원 중에 5,800만 원만 집행이 되고 집행률이 11.6%로 저조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 행복한 소비로 농가소득 전국 1위 달성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실제 이렇게 운영비가 집행률이 저조한 거 보니까 일반운영비 6,000만 원 중에서 약 5,800만 원밖에 집행이 안 됐고 연구개발비 4억 4,000만 원, 연구용역비 1억 4,000, 전산개발비 3억으로 집행이 많이 안 되었습니다. 플랫폼 구축 시 안정적인 통합시스템 개발을 위해서 세부사업에 대한 시군 대상으로 사전전수조사 및 점검이 실시되었는지 한번 답변을 해 주시고요. 그다음에 학교급식운영시스템에 생산과 소비 연계방안을 고려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불편사항 등을 반영한 그런 플랫폼을 구축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향후 플랫폼 구축 추진계획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농정해양국장입니다. 안승남 위원님 지적하신 것처럼 당초 예산을 세웠는데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외식업협동조합이나 외식산업연구원 관련기관 등과 협의나 간담회를 통해서 의견을 수렴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산개발비 3억 원을 집행하지 못한 사유를 보면 학교급식 전산시스템과 공공급식 전산시스템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학교급식 전산시스템은 국비사업으로 추진되었고 공공급식 부분은 기존의 기관별로 급식이 진행되다 보니까 거기에 관련된 그런 이해관계자들, 납품업자라든지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이 굉장히 많아서 집행이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통합시스템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사전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라든지 조율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향후에 궁극적인 목적은 경기도의 농산물을 어떻게 더 많이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통합적인 플랫폼 구축과 아울러서 경기농산물이 활용될 수 있도록 의원님들과 협조해서 조례로 만든다든지 기관장 협의회를 한다든지 이런 방안을 동시에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연구용역비 같은 경우는 경기도에서는 연구용역자 외에 경기도 공무원들이 오랫동안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으니까, 직접 그런 경기도 NEXT 농정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서 용역비가 절약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결과적으로 어쨌든 예산집행이 원활하지 못하고 예산운용에 많은 낭비가 있었음을 사과드리겠습니다. ○ 안승남 위원 지금 설명을 들으니까 좀 타당한 내용들 많이 이해가 되고요. 우리 국장님께서 국으로 가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업무파악을 제대로 하셔서 답변을 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 김철인 위원 평택 출신 김철인 위원입니다. 농정해양국 국장님 답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3권, 제3권 68페이지에 보면 농업인자녀 학자금 지원에 있어서 대상자 인원이 과다계상됐고 그리고 대상자 인원의 과다계상으로 인해서 예산 역시 과다계상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거에 대한 정확한 이유와 그리고 미지급 비율 증가추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농업인자녀 학자금 지원은 1년에 지역에 따라서, 기준에 따라서 한 66만 원에서 137만 원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는 사업인데요. 저희가 시군 통해서 매년 수요를 파악을 합니다. 그런데 2013년부터 수요 실제 지급인원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매년 한 500명에서 600명 정도가 감소하고 있는데요. 그 사유는 보면 전업농이 감소한다든지 또 농업인의 농업 외의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기준이 연간 4,800만 원인데요. 농업외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저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파악에는 상당히 현실과 괴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좀 더 수요파악에 면밀을 기해서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그렇게 철저히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저희가 추가로 파악을 해 봐야 되겠지만 대상이 되면서도 몰라서 신청을 안 한 사유는 혹시 있는지 그것도 한번 다음 업무처리 때 면밀히 검토하겠습니다. ○ 김철인 위원 이어서 또 질문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에 대해서 집행률이 30% 정도로 부진한데요. 연정예산 증액분이 부동의로 인한 미집행이 발생하였는데 부동의 이유는 무엇이고 집행이 어려울 경우 다른 용도로 전용 또는 이체해 보려는 검토는 없었는지 그게 궁금한데요. 그거에 대해서 답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2억 원 중에서 1억 4,000만 원이 의회에서 증액되었고 이게 집행부에서 부동의함에 따라서 집행이 안 되었는데요. 농정해양국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유가 어쨌든 간에 이게 예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의 사유로 집행하지 못한 거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향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고요. 아울러서 2억 원 중에서 6,000만 원은 집행을 하였고 집행률이 약 99%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김철인 위원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귀농인 따복농장 지원인데요. 제가 보니까 사전준비가 이제 소홀하지 않았나 그리고 또 집행의 실적도 저조하고요. 그래서 사업추진에 따른 충분한 사전검토와 향후 재발방지대책은 수립되었는지 그리고 시군의 참여의지가 없는데 향후 사업추진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이 부분도 지금 예산 4억 원 중에서 2억 원이 부동의처리되었고요. 나머지 1개소에 대한 사업에 대해서도 3회에 걸쳐서 사업자 공모 신청을 받았는데 1개소만 신청을 하는 그런 사례가 발생을 했습니다. 이게 사유를 보면 자부담이 50%에 해당되고 그래서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부담을 느꼈던 것 같은데요. 이 사업에 대해서 제가 판단할 때는 충분한 사전검토라든지 타당성검토 또는 수요조사가 좀 미진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업에 대해서도 내년도에 대해서는 사업추진 방향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충분히 준비해서 추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철인 위원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음 질문은 축산산림국장님 좀, 가축분뇨 처리시설 지원에서 집행률이 41.1%로 저조한데요. 설치희망자 확보를 위한 사업계획이 비계획적이고 정확한 수요조사 부족이 집행률 부족의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축산산림국장 서상교 축산산림국장 서상교입니다. 가축분뇨 처리사업은 사업체가 공동화자원 처리시설 큰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총사업비가 한 90억 정도 되는데요. 그게 1년 단위로 사업을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이월조치됐다는 걸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길룡 위원 16년도 예산액 불용된 사업건수가 15건에 적지 않은 금액이 이렇게 불용되었어요. 그중에서 RPC 설치지원 사업예산이 부동의 예산으로 이렇게 불용이 됐는데 이게 시군에서 정말 절실히 필요한 사업 아닌가요? 이거 왜 부동의 됐어요? 매년 지원해 왔던 사업인데.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이게 지금 당시에 집행부에서 부동의 처리가 되었고 2017년도에는 일몰사업으로 처리가 되어서 반영이 안 됐는데요. 이 사유는 저희가 시군이라든지 수요자 파악을 좀 더 해서 사업추진 여부를 면밀하게 다시 한 번 검토해야 될 것 같습니다. ○ 한길룡 위원 시급히 좀 필요한 사업 같은데 한번 유심 있게 보시고 부동의된 원인을 잘 파악하셔서 다음 내년이나 이런 예산에 꼭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지금 위원님 말씀대로 올해까지 4년째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지금 한해대책비 뿐만 아니라 예비비도 사용하고 있고 국비, 농식품부에서 내려온 예산도 있고 재난안전처에서 내려온 예산도 있고 또 의원님께서 세워주신 경기도비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같은 경우는 본예산과 추경 합쳐서 약 449억 원이 집행되고 있고요. 그다음에 예비비에서 추가로 20억이 돼서 약 470억가량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 한길룡 위원 국장님께서 오신 지 얼마 안 됐고 앞으로 농정해양국장으로서 경기도 농정해양을 이끄실 위치이신데 이렇게 매년 한해가 반복되는 걸 보시고 우리 경기도에서 어떠한 대책, 어떠한 마련, 어떠한 정책 이런 걸 하고 싶으세요? 포부를 한번 말씀해 보세요. 앞으로 한해가 계속 지속되는 거에 대비해서.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위원님께서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먼저 감사드리고요. 제가 농정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 있는 연구를 안 해 봤지만 제가 가뭄현장을 돌아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는 농수산물 특히 벼농사 같은 경우는 단순히 쌀이 남아돈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식량안보,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전하는 그런 필수불가결한 자원 측면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가뭄대책도 지금처럼 임시방편적인 그런 대책이 아니라 항구적인 농업용수 확보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랬을 때 현재 경기도 같은 경우는 341개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에서 논에 물을 대는 관개수로는 충분히 확보가 돼 있고 정리가 돼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현재 341개 저수지 중에서 50% 이하인 저수율을 보이고 있는 데가 188군데입니다. 약 55%에 해당되는데 이런 경우는 주변에 있는 물 자원을 어떻게 확보해서 저수지를 채우느냐 이게 항구적인 대책의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북부권 같은 경우는 임진강 수계를 활용해서 양수 대책을 수립하고 있고요. 현재 공정률이 55% 됩니다. 그리고 동부권 같은 경우는 여주ㆍ이천이 핵심이 되겠는데요. 남한강 수계를 이용한 두 군데 항구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안성ㆍ평택ㆍ화성 같은 남서부권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수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평택호와 남양호 물을 저수지에 채우는 방법 또 한 가지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매일 630만 t의 물이 나오고 있는데 지금 이 자원의 활용률이 되게 낮습니다. 그래서 하수종말처리장과 공업용수처리수를 다시 저수지에서 양수를 해서 쓸 수 있는 그런 항구적인 대책이 현재 마련되고 있고 일부 부분은 국가의 예산지원을 건의드리고 또 도에서 추진할 부분은 내년도에 의원님들과 협조해서 예산을 본예산에 담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제가 공부한 게 아니라요. 지금 농정해양국 직원들이 이미 그렇게 선제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습니다. ○ 한길룡 위원 지금 국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좀 안심이 되긴 하는데 앞으로도 국장님과 농정해양국 직원들의 역할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입니다. 작년도에 4개 시군에 7개소가 있었는데 2개소는 완료가 됐고 올해에 이월이 돼서 10월까지는 다 완료가 될 계획입니다.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아닙니다. 저희들이 매월 운영실적을 받고 있고요. 저희들이 정기적으로 운영 상태를 지도점검하고 있습니다. ○ 이정애 위원 그러면 나중에 운영 상태를 매월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니까 그거에 대한 내역을 저한테 자료로 제출해 주시고요, 매출 이런 거 자료.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시군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예를 들어서 2개소인데 10개소가 들어왔다 그러면 내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정하고 있습니다.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네, 그거는 시 자체적으로 하는 시군이 화성 같은 일부 시군이 있습니다마는 대부분 도비 매칭이 돼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이 되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매칭하는 데도 있고. 그럼 그동안에 슬로푸드 매장이 경기도에서 활성화가 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굉장히 이게 잘 운영만 되면 생산자인 농민하고 농협을 통해서 우리 소비자들한테 직거래가 되니까 싼 가격으로 먹을 수도 있고 생산자들도 가계에 보탬이 되니까 굉장히 좋은 점이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는 뭐라고 할까, 운영이 잘 되는 곳도 있지만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분명히 있어요, 보니까. 그래서 어쨌든 간에 도민의 혈세로 이게 지원되는 사업이잖아요? 그래서 목적은 좋지만 지원을 해 놓고 우리가 결과도 체크를 안 해 볼 수가 없는 사항인데 지금 과장님께서는 잘된다고 한 달에 한 번씩 다 체크해서 우리가 자료를 받아보신다고 하니까 제가 조금 안심은 되는데 그래도 그 결과물을 저희가 봐야 되니까 그 자료를 주시고. ○ 이정애 위원 아니, 그냥 철저를 기하신다고만 하지 마시고 결과가, 사실 그게 사업이 잘못되고 그러면 문제가 있다고 보니까……. ○ 이정애 위원 그러면 아까 다시 말씀드렸지만 그동안에 들어갔던 로컬푸드에 우리 경기도에서 지원한 시군별로 내역을 좀 해서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모니터링 그 자료도 저한테 주세요. 우리 경기도에서 여러 가지 G마크를 해 가지고 홍보도 하고 제가 가끔씩 라디오에서 홍보도 듣긴 들었는데 매출달성이 어느 정도 됩니까? 이 홍보로 해서.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경기미 홍보는 저희 마케팅비로 한 20억 정도가 있기 때문에 각 언론사라든지 지면, 전문잡지라든지 등등을 통해서 홍보를 하고 있고 그다음에 우리 경기도에서는 2000년도에……. ○ 이정애 위원 그래서 경기도에서 경기미를 위해서 투자하는 예산이, 경기미의 홍보를 위해 투자하는 예산이 20억이라는 건 굉장히 작은 돈이 아니라고 저는 보거든요.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경기미 같은 경우에는 타 과에서도 한 1억 정도가 있고요. 홈쇼핑이라든지, 2억 5,000 정도가 되겠습니다. 경기미 전체 마케팅비는.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네, 미국이라든지 호주라든지 스위스에 경기미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작년 같은 경우 제 기억에는 한 280t인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농정해양국농식품유통과장 김석종 수출은 특히 이천의 남부 RPC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서 우리 전국의 6개소를 질량총검국에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이천 RPC에서 주로 많이 나가고 안중이라든지 다른 농협 같은 데서도 주도적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이정애 위원 제가 자료를 보니까 어쨌든 간에 G마크를 달아서 특별판촉을 해서 매출도 꽤 올리긴 올렸어요. 한 26억 정도 올렸는데 홍보비도 보니까, 행감에서 주무부서에서 따지겠지만 약간 과다하게 편성돼서 홍보에 대한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 홈쇼핑 같은 이런 데에 경기도 전체 쌀에 대한 홍보를 할 때는 이런 부가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도 저 나름대로 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홍보에 대한 과다편성도 좀 있지 않았었나 하는 결산에서 그게 나오는 자료 같아요, 제가 볼 때. 그래서 홈쇼핑 외에 조금 아까 과장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보하신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간에 집행이 다 되지 않은 상황이 여기 자료에도 나와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세심하게 내년에는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 김보라 위원 네. 지금 바로 확인 안 되나요? 제가 왜 그걸 여쭤보고 싶었냐 하면, 그럼 그건 나중에 확인해서 자료로 주시고요. 일단은 전년도에 사업집행이 이렇게 안 됐으면 이유를 찾아서 개선의 여지가 있으면 2017년도 예산에 반영이 될 거고 그렇지 않고 이 사업은 정말 경기도 실정에 맞지 않다, 이거는 해도 안 되는 거다라고 하면 사업에 반영이 안 됐을 거 아니에요. 특히나 이게 부동의 예산들이 되게 많거든요. 그래서 이게 부동의가 늦게 풀리면서 사업기간이 짧아서 실제로 이게 집행이 안 된 건지, 워낙 이 사업 자체가 사실은 현실적으로 실현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는지 제가 그걸 알고 싶어서, 그거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척도가 2017년도에 어쨌든 집행부나 현장에서 여기 참여하셨던 분들하고 협의를 해서 예산을 편성했냐 안 했냐로 저는 드러날 거라고 보여서 여쭤보는 거거든요.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위원님 말씀하시는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요. 제가 지금 파악을 해 보니까 U-RPC 설치 지원이라든지 NEXT 경기농정 등 해서 한 4개 사업 정도는 2017년도에 예산이 반영 안 된 것 같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예산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요. 보통 부동의 예산이 예산항목의 신설보다는 증액 부분에서 많이 부동의가 됐기 때문에 대부분은 2017년도에도 예산이 다시 반영이 된 사업들이 많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지금 보면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라든지 학자금 지원이라든지 이런 걸 보면 농업인 복지 부분은 예산이 많아 보이지도 않고 수혜대상도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볼 때는 농업ㆍ농촌에 대한 지원책은 주로 생산부분이라든지 또 가공시설, 생산시설 이런 부분에 집중돼 있고 농민에 대한 그런 복지 지원책은 미미한 것 같습니다. ○ 김보라 위원 그래서 저는 이거는 농정해양국에서 해야 될 자기 역할들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가 예산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생산중심의, 그래서 소득을 높이면 나머지 문제는 다 해결될 거다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하시는 거고 실제로 농업인이 생산이 되고 있는 그 근거지인 농촌이라든지 아니면 거기에 살고 있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가족들이라든지 아니면 농업에 종사하지만 실제로 가구원으로 있는 분들 있잖아요. 여성이라든지 아니면 어르신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에 대한 부분은 별로 관심의 대상도 없고 사업에도 이렇게 형식적으로 약간 구색 갖추기 이런 느낌들이 들거든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입장정리를 좀 하셔야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예산이 계속 줄어들고 있고 지금 있는 농업인 자녀 학자금 지원은 사실은 그렇게 자녀가 많지 않잖아요. 오히려 농민이면 여성이라든지 아니면 농촌에 있는 어르신들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좀 정리를 하셔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김보라 위원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고요. 제가 깊이 들여다봐야 되겠지만 지원이라든지 정책이 농업이라는 산업적 측면 외에도 아까 말씀하신 농촌에 살면서 농사를 짓지 않는, 전업농이 아닌 그런 귀촌이라든지 농촌사회에 거주민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농업이라는 산업 외에도 농촌사회라든지 농민에 대한 또 농촌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으로의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할 것 같고요. 아울러서 지금 현 정부에서도 농촌사회와 농민에 대한 농업정책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현 정부의 그런 농업정책 방향과 경기도 농정의 접점을 찾는 걸 연구하고 있고, 단지 지금 농식품부에서 또 해수부에서 그런 구체적인 전략정책이 안 나왔기 때문에 거기와 좀 보조를 맞추면서 저희가 정책을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 농정해양국해양항만정책과장 박찬구 해양항만정책과장 박찬구입니다. 해역재생 연구용역은 항만공사의 공기관 대행사업비로 지금 계약을 체결해서 나가 있는데 아마 금일 중에 조달청에 공고하는 거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농정해양국해양항만정책과장 박찬구 수행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서 지금 이제 계약단계에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입찰공고가 오늘 중으로 아마 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농정해양국해양항만정책과장 박찬구 그동안에는 관계기관하고 과업지시서를 만드는데 해당되는 5개 시군하고 회의도 거쳤고 거기에 어떤 내용들을 담아서 용역을 줄 것인가 이런 것들을 같이 검토를 했었고요. 그리고 입찰방식을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이러한 세부적인 행정절차들 그리고 또 용역 전에 거쳐야 되는 행정절차들을 지금 다 이행을 했고 그거 다 맞춰서 오늘 중에 조달청에 입찰공고를 하는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농정해양국해양항만정책과장 박찬구 일단은 지금까지의 과정 중에 항만공사하고 저희 해양항만정책과하고 계속적으로 협의를 했고요. 시군하고도 물론 같이 협의를 하면서 사전에 준비가 다 끝났고 이제 입찰공고를 통해서 용역업체가 선정이 되게 되면……. ○ 위원장대리 조광명 그러면 질의하실 위원님들이 박재순 위원님, 김보라 위원님 이 정도, 박순자 위원님도? 세 분? 네, 그러면 박재순 위원님부터 질의해 주십시오. ○ 박재순 위원 470억을 들여서 그런 일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참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가뭄대책, 조류독감 이 문제가 실질적으로 몇 년 동안 이렇게 계속되어 오면서 우리 경기도민들에게 또 우리 집행부 직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는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 앞으로 좀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장님께서 여기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준비하실 거라고 저는 보고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박재순 위원님 감사합니다. 현재 지금 임시방편으로 임시양수장이라든지 또 호스를 통해서 하천물이라든지 밑의 하수처리장 물이라든지 이런 물들을 지금 끌어올려서 쓰고 있는데요. 이런 시설들의 수명이 한 2~3년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이런 현상들이 매년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항구적인 대책으로 PE관 강관으로 준영구적인 그런 시설로 양수시설을 완비하는 것이 향후에 가뭄에 대응하는 방안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지사님이 주말에도 다녀오셨지만 어제와 오늘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중앙에 건의할 건 건의하고 또 도가 관할할 부분에 대해서는 내년도에 예산확정을, 건의를 드려서 그렇게 항구적인 대책을 마련해 갈 그런 계획입니다. ○ 박재순 위원 그런데도 우리가 실질적으로 지금 막상 농사를 지을 철에 보니까 많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래서 저수지를 더 팔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연구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 특히 저도 농사를 지어보니까 관정이라는 게 참 필요하다. 멀리까지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지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도나 시에서 함께 지원을 해 준다면 개인이 관정을 쉽게 팔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개인들이 자기 논 근처에 일정 부분 관정을 파서 실질적으로 자기가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이것 또한 가뭄대책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실질적으로 물 깊이가 한 100m 정도만 내려갈 수 있도록 관정을 판다면 많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쪽에 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국장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위원님 말씀하신 대로 지금 경기도에서는 100m 이상 암반층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그런 대형관정을 올해 182개 정도 지금 시군에 보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소형관정, 중형관정, 대형관정 포함해서 경기도가 한 24만 개 정도 관정이 있습니다. 농업용만 해도 8만 3,000개 정도가 있어서 이거에 대한 그런 일제조사 및 관리계획도 아울러 지금 수립해 나갈 계획입니다. ○ 박재순 위원 경기도 농업인구가 약 한 40만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진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좀 더 편리하게 지을 수 있다면 저는 관정을 좀 추천해서 지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우리 경기도 차원에서 예산을 좀 들여서 한다면 지금 341개의 저수지 가지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일정 부분의 어떤 저수지를 좀 더 키울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더 연구해서 지역별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십사라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고요.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평택항 선박 홍보분야 3억 5,000만 원이 불용되었는데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 부분이 부동의되었고 다른 사유도 있었는데, 어쨌든 이 부분은 평택항의 미래발전 가능성 또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항만으로서의 중요성을 감안했을 때 좀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이 되고요. 향후에 저희는 지금 평택항에 대한 투자자라든지 시설이용자 그다음에 수출입업자들, 평택항 종사자들 이런 분들과 또 홍보전문가들과 같이 의견을 좀 수렴해서 근본적이고 보다 효과 있는 그런 홍보방안을 좀 마련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박재순 위원 그래서 평택항이 실질적으로 제일 꽁지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항 중에서. 그럼 경기도가 그래도 수부도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경기도인데 평택항을 더 잘 키워서 우리가 중국과 대외무역에 있어서 원활하고 제1항구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홍보관이 부진했던 그런 부분을 이왕 우리 국장님께서 새롭게 오셨기 때문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그 뜻으로 한번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 주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 축산산림국장 서상교 축산산림국장 서상교입니다. 이게 대체인력 단순사무보조라고 해서 동물위생시험소의 여직원 비율이 한 60%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육아휴직들을 많이 가는데 그 자리를 바로바로 정규직원을 채우지 못하니까 일반 기간제로 해서 대체인력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것도 위원님이 좀 세워 주신 그러한 예산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인사부서에서 적절하게 인원을 잘 했기 때문에, 지원을 해 주기 때문에 이 기간제 예산은 필요치 않다 그래서 사실은 배정을 좀 안 해 준 상황이 되겠습니다. ○ 축산산림국장 서상교 바이오 연구기반 조성사업은 동물위생시험소에 유용미생물 제조시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농가들로 하여금 유용미생물을 갖다가 보급 받아서 쓰면 사료 효율도 좋아지고 분뇨에 대한 냄새도 많이 저감되고 사람으로 치면 일반유산균제제 이런 비슷한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농가에서는 좋아하는데 이 시설이 액상으로 돼 있습니다. 액상으로 돼 있고 그걸 분말화 조치를 해서 농가에 보급하는 무게를 현저히 줄여 가지고 원활히 하게끔 하는 예산이 같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말화 작업하는 그 예산이 동결건조라고 해서 이 사업이 늦어져서 그 사업에 대한 재료비 그다음에 보급품 그다음에 거기에 따른 인건비까지 쓰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사업 자체가 좀 늦어지는 바람에 나머지 예산들을 좀 많이 못 쓰게 됐습니다. ○ 축산산림국장 서상교 그 동결건조장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쉬운 장치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계획하고 사업자 선정하고 그다음에 설계하고 그러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좀 많이 걸렸습니다. ○ 김보라 위원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면 예산을 수립할 때 많은 부분을 꼼꼼하게 다 파악하고 이게 예산이 수립이 되면 초에, 2~3월이면 집행될 거라고 많이들 기대를 하잖아요. 그런데 보면 실제로 많은 부분들이 특히나 이렇게 연구용역을 줘서 거기서 설계를 하고 그다음에 계약을 해서 이렇게 진행되는 사업들은 대부분이 늦어져서 하반기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 김보라 위원 실제로 그러면 아까 여기서 보시다시피 그거하고 연계된 다른 사업들도 지연되고 또 어쨌든 그걸 통해서 이 혜택을 봐야 되는 우리 농민들한테도 피해가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예산 세우실 때 그런 실무적인 것까지도 좀 꼼꼼히 챙기셔서 바로 수립되면 좀 집행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박순자 위원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저도 사실은 농민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농부의 심정을 저는 너무 잘 이해합니다. 어릴 때 보면 비가 정말로 좀 안 오고 가물면 그 지역에 있는 저수지가 마르는 건 아마 다들 많이 보고 자라셨을 거예요. 지금 이 가뭄을 느끼는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 걸로 지금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충청도 어느 지역은 식수도 없어서 물탱크로 갖다가 먹는 지역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경기도는 어느 정도 혹시 준비를 하고 계신 게 있는지, 아니면 대책마련이 필요한 대책 계획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현재 지금 관련기관 회의를 했을 때 생활용수하고 공업용수는 문제가 없고요. 농업용수 부분이 문제가 되는데요. 현재 지금 경기도의 벼농사 이앙비율을 보면 99.4%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약 419㏊만 지금 이앙을 못 했고요. 그다음에 이앙한 면적 중에서 논 물마름이 좀 심각한데 이런 데가 한 0.5%예요. 약 409㏊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에 비하면 좀 가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관정이라든지 또 응급양수라든지 또 물백이라든지 급수차라든지 이런 대책들이 나름대로 촘촘히 돼 있어서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단지 지금 6월 30일까지 가뭄이 계속될 걸로 예상이 되어서 현재 급수차라든지 이런 임차비용들이 지금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6월 30일이 지나면 다시 한 번 예비비를 요청드려서 응급대책을 좀 해야 될 상황입니다. ○ 농정해양국장 류인권 저도 박순자 위원님 말씀하신 대로 식량이란 거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된다고 보고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말씀하신 대로 올해 임시양수장 등 응급시설 한 거 아울러서 지금 항구 대책을 오늘 지사님께 보고드렸고 그 부분을 추진해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 농업용수를 항구적으로 확보해서 저수지를 채우고 급수를 하는 방법과 아울러서 가뭄상습지역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업진흥지역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 가뭄상습지역에 대해서는 저희가 대체작물을 유도한다든지 또 태양광 발전시설 이런 것들을 사용하도록 하고 단지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런 지역들이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돼서 개발이 된다면 앞으로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체작물이라든지 신재생에너지시설을 임시 사용하게 하고 유사시에는 언제든지 다시 벼농사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대책으로 지금 추진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 박순자 위원 수도권을 지금 보면 농업용지, 논밭을 사실 없애고 택지개발로 만드는 곳이 저는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문전옥답 같은 경우는 저는 굉장히 아까운 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의정부예요. 지금 의정부 보면 우리 민락2지구, 고산지구도 사실은 지금 다 택지로 변경이 됐습니다. 거기도 다 논과 밭이었는데 그 많은 농토들을 다 없애고 그 많은 농토에서 나는 식량들은 어디로 갈 것이며 그런 대체작업을 저는 어떻게 경기도에서는 잘 추진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질의했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박순자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질의 종결에 앞서서 우리 농정해양국장님, 축산산림국장님, 농업기술원장님께 당부의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농어민, 축산업 하시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의회 자체가 관대합니다. 그래서 예산을 배정하는 문제나 그다음에 행정사무감사 할 때나 의회가 할 수 있는 소위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지금 말씀드렸던 농업, 어업, 축산 이렇게 관계하시는 우리 도민들을 생각해서 의회가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집행부 공무원들은 의회가 관대한 것에 편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먼 돈이 제일 많은 곳이 농업예산이고 어업예산이고 축산예산이다 이렇게 나오는 얘기들이 자꾸 회자되는 것들은 그렇게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이건 경기도의 문제뿐이 아니라 국가예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오는 예산들이 다 이렇게, 다른 예산 같으면 좀 더 엄격할 텐데 굉장히 관대한 것은 우리의 마음인 거지 공무원들도 그러면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편성 시에 사실 충분히 고려해야 될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부서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들이 지금 막 나오고 있거든요. 경기미 부정유통 신고 예산을 세웠는데 한 푼도 안 썼습니다. 그것이 신고가 한 건도 없어서 한 푼도 안 썼다고 얘기하는데 그럼 예측을 했었어야죠. 어떻게 한 건도 발생되지 않을 만큼 예측, 예산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이런 식의, 그런 정도의 긴장감으로는 이게 어느 쪽에 가면 굉장히 치열한 도민의 예산인데 어느 쪽에 가면 굉장히 늘어져 있는 예산으로 하면 안 되고요. 유보사업에 따른 예산절감, 불용사유가 그걸로 쭉 이렇게 쓰는 것 자체도 저는 그렇게 썩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의회가 관대하더라도, 도민이 고생한다고 격려해 주고 박수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오늘 질문을 다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국장님과 원장님, 관계공무원들은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엄격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이것으로 농정해양국, 축산산림국, 농업기술원 소관 결산에 대한 질의 종결을 선포합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먼저 신낭현 보건복지국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보건복지국장 신낭현입니다. 연일 결산안 심사에 노고가 많으신 존경하는 조광명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고는 위원님들께 배부해 드린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일반회계에 대한 세입결산내역과 미수납액내역, 세출결산내역과 주요 불용액 사유, 예산 전용ㆍ이체와 다음연도 이월사업비 현황 그리고 의료급여기금특별회계에 대한 세입ㆍ세출 결산내역, 끝으로 사회복지기금 등 4종의 기금결산과 채권 현재액 및 성과보고서 순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결산개요서 2쪽입니다.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입니다. 세입은 2조 6,279억 900만 원이며 세출은 2조 2,501억 4,500만 원입니다. 이 중 99.7%인 2조 2,442억 8,200만 원을 지출하고 36억 7,300만 원은 다음 회계연도로 이월하였으며 집행잔액은 21억 8,900만 원입니다. 3쪽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징수결정액은 2조 6,339억 7,600만 원으로 세외수입이 111억 3,800만 원, 보조금이 2조 6,201억 4,100만 원, 보전수입 및 내부거래가 26억 9,700만 원입니다. 징수결정액의 99.9%인 2조 6,338억 2,300만 원을 수납하였고 미수납액은 1억 5,300만 원입니다. 다음은 6쪽 세입 미수납액 내역입니다. 미수납액은 지난연도 도비 반환금 미수납액과 전년도 시군 도비 반환금 미수납액, 기타이자수입, 그외수입, 과징금, 과태료 등입니다. 복지정책과에 2016년 보훈단체 보조금 기타이자수입 6,000원은 2017년 1월 23일에, 2015년 기초생활급여 도비 집행잔액 24만 7,000원은 2017년 5월 2일에 각각 납부 완료되었으며 광복회 회관 부지매입 도비보조금 집행잔액은 광복회 경기도지부에서 2022년 8월까지 분할납부하고 있습니다. 노인복지과에 2014년 독거노인 카네이션하우스 복권기금사업 반납이자 미수납액 220만 3,000원과 지난연도 그외수입 미수납액 4만 8,470원은 6월 말까지 납부 완료 예정입니다. 7쪽 보건정책과에 메르스 환자 격리시설 운영 및 진료 지원비 이자 182만 2,000원, 응급의료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360만 원과 과태료 800만 원이 미수납되었고 2015년 보건소 구급차 지원 도비 집행잔액 1억 375만 8,000원은 14개 시군에서 17년 추경을 통해 납부할 예정입니다. 또한 2015년 IT진료, 병원플랜트 등 진출사업 도비 보조금 집행잔액 7,000원과 응급의료법 위반 기관으로부터 수납하지 못한 지난연도 수입 175만 5,000원입니다. 다음은 8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예산현액은 2조 2,501억 4,500만 원으로 이 중 2조 2,442억 8,200만 원을 지출하였고 36억 7,300만 원은 다음연도로 이월하였으며 집행잔액은 21억 8,900만 원입니다. 다음은 13쪽 주요 불용액 현황입니다. 집행률이 80% 미만인 주요사업은 ‘얼쑤, 공동체 프로젝트’ 등 9건으로 13억 6,600만 원입니다. 다음은 15쪽 예산 전용내역입니다. 복지정책과의 6ㆍ25전쟁 기념행사는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지침에 오찬 비용은 행사실비보상금에서 집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일반운영비로 편성된 6ㆍ25 행사비 중 일부를 행사실비보상금으로 전용하였으며 사회복지시설 평가업무를 복지부에서 단계적으로 지자체에 이양할 계획으로 있어 지역 특성을 반영한 특성화지표 개발 및 사후관리 방안을 마련하고자 전용하였습니다. 다음은 16쪽 예산 이체내역입니다. 2016년 11월 1일 자 경기도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에 따라 감염병관리과가 보건정책과에서 분리되어 신설됨에 따라 714억 6,700만 원을 보건정책과에서 감염병관리과로 이체하였습니다. 18쪽 예비비 지출 내역입니다. 장애인 고속도로 할인카드 발급수수료 청구소송 패소에 따른 판결금 및 이자 지급과 AI 발생에 따른 동절기 방역복 지원 등 총 2건에 861만 1,000원을 예비비로 집행하였습니다. 다음은 19쪽 이월 사업비 현황입니다. 명시이월은 6건, 12억 2,300만 원으로 사회성과 보상사업 운영지원은 해봄프로젝트 투자금 모집기간 연장으로 인해 평가연구 용역기관 선정시기가 지연되어 이월처리하였으며 의료원 시설보강과 기능특성화사업, 노인전문병원 운영사업은 집행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이월하여 2017년 1월, 3월에 각각 집행하였습니다. 다음은 20쪽 사고이월 사업비 현황입니다. 사고이월은 3건 2억 7,300만 원으로 경기도 장애인종합회관 건립 타당성 조사사업과 의료원 기능보강사업은 집행시기가 도래되지 않아 이월하였으며 경기도립정신병원 관리운영사업은 도립정신병원 수탁운영자인 용인병원유지재단 회계서류 공사 지원으로 용역기간을 40일에서 60일로 연장하고자 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21쪽 계속비이월 사업비 현황입니다. 계속비이월은 6건 21억 7,800만 원으로 의료원 시설보강사업은 사업기간이 2018년 12월까지이며 2017년 하반기 건설본부로 재배정하여 공사를 착공하고자 시설비 8억 200만 원, 감리비 2억 800만 원, 시설부대비 200만 원 등 총 10억 1,2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의료원 시설보강사업은 사업기간이 2018년 8월까지이며 2017년 하반기 건설본부로 재배정하여 공사를 착공하고자 시설비 8억 5,600만 원, 감리비 3억 800만 원, 시설부대비 300만 원 등 총 11억 6,7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22쪽 의료급여기금 특별회계 결산내역입니다. 먼저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 징수결정액 9,565억 1,900만 원 중 9,563억 400만 원을 수납했으며 미수납액은 2억 2,000만 원입니다. 23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예산현액 9,559억 3,300만 원 중 99.4%인 9,497억 8,300만 원을 집행하였습니다. 집행 주요 내역은 의료급여 비용지급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위탁사업비 및 시군 의료급여사업 지원 경상보조금이며 집행잔액은 61억 4,900만 원입니다. 다음은 24쪽 기금결산내역입니다. 사회복지기금은 경기도 사회복지기금 설치 및 운영 조례에 따라 자활지원 사업, 노인복지 사업, 장애인복지 사업 등 3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활지원 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자활기업과 자활사업단에 작은 융자 등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립지원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의 복지증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자활지원 사업의 2016년도 말 현재액은 전년 말보다 1억 9,900만 원이 증가한 77억 5,300만 원입니다. 25쪽 노인복지사업 결산내역입니다. 노인복지기금은 2016년 12월 16일 자로 폐지되고 사회복지기금에 통합되었으며 노인단체 육성지원 및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기금을 조성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인복지사업의 2016년도 말 현재액은 전년도 말보다 5,900만 원이 증가한 100억 6,600만 원입니다. 26쪽 장애인복지사업 결산내역입니다. 장애인의 사회활동 참여와 장애인복지단체의 건전한 활동 지원을 위해 경기도 사회복지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에 따라 기금을 조성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사업의 2016년도 말 현재액은 전년도 말보다 6,300만 원이 증가한 100억 8,800만 원입니다. 27쪽 식품진흥기금 결산내역입니다. 식품위생 수준 향상과 식품사고 예방사업을 위해 식품위생법과 경기도 식품진흥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에 따라 기금을 조성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식품진흥기금의 2016년도 말 현재액은 전년도 말보다 4억 3,700만 원이 증가한 285억 9,500만 원입니다. 기금 관련 세입ㆍ세출에 대한 상세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9쪽 채권 현재액입니다. 2016년도 말 현재 채권액은 212억 9,900만 원으로 신규발생액 29억 3,100만 원은 사회복지기금의 민간융자금 1억 5,500만 원과 식품진흥기금의 식품위생업소 시설개선자금 융자금 27억 7,600만 원입니다. 소멸액 62억 3,500만 원은 2개소 사무실임대 보증금 7억 원 중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전세보증금 2억은 전세계약 만료에 따라 2016년 9월 26일 자로 세입조치되었고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전세보증금 5억은 2016년 6월 17일 자로 전세권을 설정하여 공유재산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동안 사회복지기금 융자금 11건에 3억 9,200만 원과 식품진흥기금 융자액 51억 4,300만 원이 회수되어 세입되었습니다. 이상으로 보건복지국 소관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안에 대하여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지난해 위원님들께서 승인해 주신 보건복지 관련 사업비를 도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성실히 집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금년도에도 보건복지국 전 직원은 위원님들의 고견을 적극 수렴하여 도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신낭현 보건복지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송유면 복지여성실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안설명을 가급적 간단히 줄여주시면 좋겠습니다. ○ 복지여성실장 송유면 네, 그리하겠습니다. 복지여성실장 송유면입니다. 평소 경기도정 발전과 도민의 복지증진에 늘 고심하시고 열정을 다하시고 계시며 특히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심사에 노고가 많으신 조광명 위원장님을 비롯한 모든 위원님들께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3쪽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 총괄입니다. 복지여성실 소관 세입ㆍ세출 결산 예상규모는 세입예산 69억 8,693만 원이며 세출예산은 1조 6,417억 3,575만 원으로 99.9%인 1조 6,413억 5,597만 원을 집행하였습니다. 3쪽 하단 세입결산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재원별 결산내역을 보면 세외수입은 61억 2,316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전액 수납하였습니다. 보조금도 7억 4,875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전액 수납하였습니다. 다음은 4쪽 부서별 세입결산 내역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가족복지담당관 소관은 기타 이자수입과 자치단체 간 부담금 등으로 4억 4,205만 원을 징수하였으며 북부여성비전담당관 소관은 사용료 및 수수료 수입 등으로 1억 4,653만 원을 세입징수하였습니다. 사회복지담당관 소관은 기타 이자수입과 시도비반환금 수입 등으로 19억 345만 원을 징수하였으며 보육청소년담당관 소관은 기타 이자수입과 시도비반환금 수입 등으로 32억 7,458만 원을 징수하였습니다. 또한 보건위생담당관 소관은 기타 이자수입과 지난연도 수입 등으로 11억 527만 원을 징수하였습니다. 그 외의 세입결산 세부내역에 대한 보고는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음은 8쪽 세출결산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부서별 결산내역에 대해 보고드리면 가족복지담당관 소관은 예산현액 대비 99.7%인 497억 8,572만 원을 집행하여 집행잔액 1억 2,768만 원이 발생하였고 북부여성비전담당관 소관은 예산현액 대비 99.4%인 36억 1,701만 원을 집행하여 집행잔액 2,214만 원이 발생되었습니다. 또한 사회복지담당관 소관은 예산현액 대비 99.9%인 8,590억 1,069만 원을 집행하여 집행잔액 1억 1,897만 원이 발생되었고 보육청소년담당관 소관은 예산현액 대비 99.9%인 6,669억 2,840만 원을 집행하여 집행잔액 2,685만 원이 발생되었습니다. 보건위생담당관 소관은 예산현액 대비 99.9%인 620억 1,413만 원을 집행하여 집행잔액 1,412만 원이 발생되었습니다. 다음 8쪽 하단과 9쪽, 10쪽 단위사업별 결산내역에 대한 보고는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음은 11쪽 집행률 70% 이하 또는 집행잔액 1,000만 원 이상 주요 불용액 발생사유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가족복지담당관 소관의 주요 불용액은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지원사업과 한부모가족복지시설 입소자 상담ㆍ치료 지원사업은 파주 예화원 한부모가족복지시설 미개소에 따른 집행잔액으로 각각 4,214만 원과 547만 원이 발생되었으며 다문화 온누리 한마당 사업은 집행부 부동의 예산으로 7,500만 원 전액이 미집행되었습니다. 북부여성비전담당관 소관의 주요 불용액은 취업설계사 2명의 정규직 전환에 따라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사업에 기간제근로자 보수 1,084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되었습니다. 사회복지담당관 소관의 주요 불용액은 시군 푸드뱅크 운영장비 지원사업은 시군의 사업포기로 인해 268만 원이 미집행되었고 사회복지시설 및 보훈대상자 지원사업은 지급기준 변경에 따른 위문대상자 감소로 2,007만 원이 미집행되었습니다. 또한 장애인복지시설 지원사업은 시군의 신청이 없어 2,134만 원이 미집행된 것이며 장애인복지시설 운영지원 사업은 개인운영 장애인거주시설 지원에 대한 집행부 부동의 예산으로 1억 1,179만 원이 미집행되었습니다. 또한 보건위생담당관 소관의 국군병원 참여, 취약지 대민응급진료사업 집행잔액 600만 원은 2016년 의료사고 미발생으로 인한 보험료 미지급 집행잔액입니다. 다음은 12쪽이 되겠습니다. 예산의 이용은 해당사항 없음을 보고드리며 예산 전용내역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 여성일자리 일부 업무를 경기도일자리재단에서 사업대행함에 따라 북부여성비전담당관 소관의 7개 사업을 전용하였습니다. 다음은 13쪽이 되겠습니다. 예산 이체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 90개 사업에 대해 이체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신다면 세부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음은 21쪽이 되겠습니다. 예산 변경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가족복지담당관 소관은 변경 1건으로 행정운영비 예산과목 간 소요예산 부족해소를 위해 예산 변경을 하였으며 북부여성비전담당관 소관은 변경 4건으로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 여성일자리 일부 업무를 경기도일자리재단에서 사업대행함에 따라 예산 변경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22쪽이 되겠습니다. 계속비, 사고이월, 예비비는 해당사항 없음을 보고드리며 명시이월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정부합동평가 실적우수에 따른 특별교부세가 연말에 교부됨에 따라 1건 2,000만 원을 명시이월하였습니다. 22쪽 하단에 2015회계연도 결산검사 개선ㆍ권고사항 조치결과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2015회계연도 예산 전액 미사용사업에 대한 사항으로써 경기도 생활임금 조례 및 시행규칙에 따라 기간제근로자에 대한 생활임금을 반영하였으나 직업상담사의 임금이 생활임금 지급대상자 근로자의 임금보다 높게 지급되어 생활임금 대상자에 해당되지 않아 미집행되었음을 보고드리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송유면 복지여성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윤미혜 보건환경연구원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보건환경연구원장 윤미혜 안녕하십니까? 보건환경연구원장 윤미혜입니다. 도정발전과 건전한 재정운영을 위하여 연일 노고가 많으신 조광명 위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결산개요서 1쪽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결산내역입니다. 2016년도 세입예산액은 26억 5,202만 원으로 각종 시험검사 수수료 및 국고보조금 등으로 편성하였으며 총 26억 1,902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전액 징수하였습니다. 주요 세입내역은 본원 건물 옥상 중계기 설치 임대수입인 공유재산 임대료, 시험검사수수료수입, 공공예금이자수입 등 3개 분야 경상적 세외수입이 7억 7,925만 원이며 물품납품 지연에 따른 과징금 및 과태료, 불용용품 매각대금 등 기타수입, 지난연도 수입 등 임시적 세외수입 4,409만 원이 되겠습니다. 그 외에 주요감염병 표본감시사업, 대기오염 측정망 확충사업 등 국고보조금 17억 9,566만 원입니다. 다음은 2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2016년도 세출예산현액은 120억 7,762만 원으로 이 중 96.5%인 116억 4,901만 원을 집행하였고 4억 2,770만 원을 불용처리하였습니다. 다음은 5쪽 불용액 내역입니다. 불용액은 예산현액 120억 7,762만 원의 3.5%인 4억 2,770만 원으로 불용사유는 예산 집행잔액이 4억 1,067만 원이고 보조금 집행잔액이 1,703만 원이 되겠습니다. 다음 12쪽 예산 이용ㆍ전용ㆍ변경ㆍ이체 현황입니다.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는 해당사항이 없으며 예산 변경은 3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원내에 유해인자를 취급하는 연구활동 종사자에 대한 특수건강검진비 부족으로 청사유지 공공운영비에서 변경집행하였으며 사업장 대기오염도 검사사업에서 측정장비정도검사수수료 착오로 동일사업 시험연구비에서 1,000원을 변경하였고 먹는물 수질검사장비인 분광광도계 외자구입 환율상승에 따른 물품취득구입비 부족분을 변경사용하였습니다. 이월사업 및 예비비 지출은 해당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다음은 13쪽 성과보고서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년도 성과계획서의 성과목표 달성도는 87.5%로 총 16개 지표 중 초과 목표 달성한 지표는 2개, 목표 달성한 지표는 12개입니다. 목표 미달성한 지표는 2개로 민원 편익증진과 청사 유지관리 지표입니다. 이상으로 보건환경연구원 소관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의 보고를 모두 마치고 오늘 존경하는 위원님들께서 지적해 주시는 사항에 대해서는 향후 예산집행 시에 적극 반영하여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윤미혜 보건환경연구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할 실국장을 지명하신 후 해당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시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길룡 위원 결산자료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문화가족 정착 및 자녀양육 지원금으로 한 20억 7,000만 원을 지출했어요. ○ 한길룡 위원 20억 7,000만 원. 26페이지. 다문화가족 정착 및 자녀양육 지원. 26쪽 아래에서 두 번째 줄이요. ○ 복지여성실장 송유면 저희가 현재 집행률이 한 93% 정도 됐고요. 이분들이 지금 현재 정착되고 있는 거를 통해서 했는데 지금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통해서 이 사업을 합니다. 현재 북부지역에 8개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고요. 여기에 국비가 50%고 도비가 7.5%, 시군비가 42%로 집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그런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검토를 해야 되는데 일부 사업은 또 제대로 안 되는 것도 있고요. 실제 추진과정에서 지금 현장에도 제가 나가 보니까 다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 복지여성실장 송유면 위원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고요. 제가 현지에 가 보니까 주로 지금 말씀하신 남자보다는 새로 결혼하신 신부 쪽의 사업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위원님 말씀 듣고 보니까 오히려 우리가 소외하고 있는 남자 쪽의 어떤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복지여성실장 송유면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주로 이주한 여성에 대한 교육, 또 그 자녀에 대한 교육만 있고 실제 남성에 대한……. ○ 한길룡 위원 절실히 좀 필요한 부분이 있다라고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 요즘 다문화가정을 이루는 국제결혼을 하는데 예전에는 나이 많은 한국 남성하고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초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 보면 재혼이 많아요. 동남아시아 여성들은 결혼을 일찍 하다 보니까 나이가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뭐 한둘 막 있고 이혼한 그런 여성들이 다시 한국인 남성하고 결혼해서 다문화가정을 꾸리는데 결혼한 후에 본국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요. 그럼 그 아이들이 한국인도 아니고 그쪽 사람도 아니고 사각지대거든요. 그럼 한국 내에서 그 아이들이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교육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결국은 문제아로 전환되는, 이게 지금 시작되는 것 같아요, 보면. 그러한 대책을 혹시 갖고 계십니까? 그런 거에 대한 대책. ○ 복지여성실장 송유면 아직 저희는 미처 준비를 못 했고요. 지금 위원님 말씀하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면밀히 한번 하고요. 내년도 사업이라도 그런 쪽으로도 한번 개발하겠습니다. ○ 한길룡 위원 한번 조사해 보세요. 지금 점점 사회화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실질적으로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상당히 심각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본국에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면 다문화가정의 가장이, 자기 부인의 자식들이잖아요, 자기 자식은 아니잖아요. 방치하는 수가 있거든요. 데리고 들어오는 것 막을 수도 없고, 인륜이기 때문에. 그럼 그 아이들이 국내에서 성장을 했을 때 정말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거든요. ○ 한길룡 위원 그쪽에 관심을 갖고, 앞으로 미래에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지탱시킬 수 있는 근원,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방금 이정애 위원님께서 질의하신 얼쑤 공동체 프로젝트는 저희가 노숙인의 자활ㆍ자립을 지원하기 위해서 추진했던 사업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수원에 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라고 있는데 거기서 인원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모집해서 강원도 양구라는 데 그 땅을 매입해서 그분들이 정착하는 사업을 시도했었는데 그 당시, 지난해 거기 인근지역이라든지 개발계획 이런 것으로 인해서 사실 땅 값이 상승하면서 매입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매입을 못 했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사업이, 작년에 그렇게 해서 집행을 못 하게 됐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이 부분은 이쪽에 강원도 양구를, 그렇지 않아도 저희 상임위 할 때도 왜 이게 배경이 됐고 이런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게 수원다시서기센터에서 성공회 신부님이 전체적으로 운영을 하고 계신데요. 그 부분이 양구에 전체적으로 노숙인의 어떤 정착 경험이라든지 거기 공동농장들이 있기 때문에 사업이 수월한 측면이 있어서…….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지속적으로 사실 2011년서부터 저희가 노숙인들의 정착을 위해서 노숙인들을 보냈었습니다, 그 부분으로. 계속 보냈고 그동안 한 40명이 지금까지 갔는데 6명이 현재 거기 정착해서 하고 있고요. 정착을 했고요. ○ 이정애 위원 그럼 국장님께서 이 사업을 계속하실 의향이 있으신 거예요, 아니면 보완해서 다른 방법으로 연계를 하실 것인지 궁금하거든요.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이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상임위에서도 지적이 많으셨고요. 그래서 그 대상지역에 대한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너무, 저희 경기도 같은 데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만 이 노숙인에 대한 부분들은 사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고려돼야 될 부분들이 있어서 저희들이 좀 신중하게 접근토록, 고려하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네, 그러셔야 될 것 같아요.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과까지도 잘 진행될 수 있는 사업이, 다시 한 번 숙지하셔서 주무부서하고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네, 진료나 이런 사업에 대한 일정 부분 결핵협회가 같이 하는데요. 저희들은 보건소가 중점적으로 한다고 보면 됩니다.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지금 위원님께서 질의하신 부분들은 중ㆍ고등학교라든지 시설 등에 있는 소집단이 있습니다. 그룹, 단체. 결핵환자가 거기서 발생했을 때 거기에 밀접 접촉자라고 해서 그분들을 접촉하는데 이게 당초에는 검진 횟수가 3회였습니다, 이분들을. 그런데 국가결핵관리 지침이 작년에 변경되면서 3회 하던 것을 2회로 변경되면서 전체적으로, 사실 대상자가 줄어든 거라기보다는 거기에 대한 검진 횟수가 줄면서 그 사업에 대한 비용이……. ○ 위원장대리 한길룡 이정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순자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 보건복지국장 신낭현 작년에 경로당 여가활동 지원사업비, 지금 박순자 위원님께서 질의하신 부분은 저희 집행부에서 작년에 어떤 사업들에 대한 부분, 예결위 과정에서 이렇게 편성이 됐고요. 그다음에 사업이 어떤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사업이라고 해서 사실은 예산배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불가피 집행을 못 했습니다.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이것으로 보건복지국, 복지여성실, 보건환경연구원 소관 결산에 대한 질의 종결을 선포합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건설교통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먼저 이종수 철도국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철도국장 이종수 안녕하십니까? 철도국장 이종수입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 그리고 여러 위원님 여러분! 바쁘신 가운데에도 도민의 철도복지 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시는 위원님들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으로 간부인사를 마치고 위원님들께 별도 배부해 드린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입니다. 먼저 예산총괄입니다. 세입예산 총액은 3,144억 9,100만 원이며 세출예산 총액은 6,138억 2,200만 원입니다. 다음은 4쪽 세입결산입니다. 총 세입 징수결정액은 3,124억 9,700만 원으로 3,108억 9,400만 원을 수납하였으며 미수납액은 16억 원입니다. 미수납액 세부내역은 별내선 복선전철 건설 LH 부담금 16억 원으로 2017년 1월에 납부하였습니다. 과목별 세입현황은 자치단체 간 부담금으로 별내선ㆍ하남선 복선전철 시군 부담금 등 392억 4,600만 원, 일반부담금으로 별내선ㆍ하남선 복선전철 LH 및 경기도시공사 부담금 943억 4,500만 원, 국제물류주선업의 변경등록 사유 발생 후에 기한 내 등록을 하지 않은 업체에 대한 과태료 등 1,390만 원, 다음은 국고보조금으로 화물운송 집단거부 피해차량 보상금 550만 원, 수원ㆍ오산역 환승센터 건립 비용 등 44억 8,200만 원, 도봉산-옥정 광역철도 기본계획 수립 비용 14억 원, 하남선 및 별내선 복선전철 건설의 국고보조금 1,714억 원을 수납하였습니다. 다음은 5쪽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 총액 6,138억 2,200만 원 중 2,425억 원을 집행하였고 미집행액 중 3,691억 원은 이월하였으며 이 중 별내선ㆍ하남선 복선전철 건설사업의 계속비이월이 3,681억 1,000만 원이며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 및 도봉산-옥정 광역철도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 10억 원은 명시이월하였으며 예산 집행잔액은 21억 9,000만 원입니다. 다음은 7쪽 주요 불용액 사유입니다. 경부선 셔틀열차 운행 추진사업의 준공 정산 결과 미집행액 감액에 따른 잔액 1,300만 원과 광명사거리역 승강편의시설 설치 및 쉼터 조성의 국비 미지급액 15억 원, 철도역 연계환승 교통체계 구축 제도개선연구의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 차액 700만 원, 지제역 환승센터 건립의 평택시에서 사업보류로 인한 미지급액 6억 6,500만 원을 불용처리하였습니다. 다음은 8쪽 예산 전용ㆍ이용ㆍ이체입니다. 2016년 7월 1일 조직 개편에 따라서 철도운영 효율화 추진 연구용역비 1억 6,300만 원을 이체하였으며 예산의 전용ㆍ이용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다음은 8~9쪽 이월사업 현황입니다. 이월사업은 명시이월 2건, 계속비이월 2건입니다. 먼저 명시이월 사업은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 추진과 도봉산-옥정 광역철도 기본계획 수립 총 2건으로 집행시기 미도래로 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계속비이월 사업으로 별내선 복선전철 건설공사는 2016년 7월 국토부로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득하여 2016년 하반기에 본 공사가 착수됨에 따라서 집행시기가 순연되어서 1,491억 2,0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하남선 복선전철 건설공사는 2개 공구가 턴키 유찰로 인한 기타 공사로의 입찰방식이 변경되었습니다. 예산 집행시기가 순연되어서 2,189억 9,0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11쪽 성과보고서입니다. 철도국 정책사업 목표 지표는 GTX 착공, 물류단지 조성 등 6개이며 이 중 4개를 달성하고 2개를 미달성하였습니다. 미달성 지표는 부천시 융자원리금 상환율과 광명사거리역 승강편의시설 설치 및 쉼터 조성 공정률, 환승센터 사업공정률이며 미달성 사유는 광명사거리역 승강편의시설 설치는 시설비에 대한 광명시의 시비 부담분 미확보로 국비가 미교부되었고 환승센터 사업공정률은 수원역 및 오산역 환승센터의 공사기간이 연장됨으로써 전반적인 사업공정률이 감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시 부담분 예산 확보 관리 및 지속적인 사업공정률 확인 등을 통해서 정상적인 사업추진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철도국 소관 2016회계연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한 제안설명을 드렸습니다. 결산심의 과정에서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서 제시해 주시는 고견에 대하여는 적극 반영하여서 향후 예산집행에 철저를 기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교통국장 장영근입니다. 연이은 의정활동에 노고가 많으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송한준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보고서 3쪽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반회계 세입ㆍ세출예산 총액 중 세입예산은 2,220억 3,325만 3,000원이며 세출예산은 3,771억 6,443만 7,000원이 되겠습니다. 먼저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징수결정액 2,232억 6,762만 7,000원 중 2,212억 5,729만 2,000원을 수납하였고 미수납액은 20억 1,033만 5,000원입니다. 다음 4쪽 세출결산입니다. 교통국의 2016년도 세출예산현액은 3,771억 6,443만 7,000원으로 그중 3,644억 6,574만 3,000원을 지출하였고 5억 7,109만 4,000원은 이월하였으며 집행잔액은 121억 2,760만 원입니다. 다음 5쪽입니다. 부서별 집행잔액을 발생사유별로 보고드리면 계획변경 등 집행사유 미발생액은 2억 4,565만 4,000원으로 맞춤형 따복버스 시범운행사업 1건이며 시군 신차 도입 지연과 사업자 공모 등 선정지연에 따라 일부 불용처리되었습니다. 또한 보조금 집행잔액은 9,448만 3,000원이며 나머지 117억 8,746만 3,000원은 집행잔액이 되겠습니다. 다음 6쪽 예산 집행잔액 117억 8,746만 3,000원은 2016년도에 교통국 소관 5개 부서에서 정상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남은 집행잔액입니다.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부서별 세부집행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하여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7쪽 보조금 집행잔액은 경기도 첨단교통관리시스템 구축사업 1건으로 계약입찰 후 낙찰차액으로 국비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이월사업 현황이 되겠습니다. 교통국 내 이월사업은 6건 5억 7,109만 4,000원으로 명시이월 4건에 3억 8,104만 7,000원이고 사고이월 2건은 1억 9,004만 7,000원입니다. 자세한 명시이월내역은 보고서 7쪽 하단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8쪽 사고이월 현황입니다. 사고이월은 총 2건으로 경기도 교통안전기본계획 수립 용역은 용역기간이 2017년 1월까지로 사고이월하여 올해 1월 집행 완료하였고 경기도 택시운송사업 발전 종합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 용역은 행정절차 지연에 따른 용역기간 연장으로 사고이월하여 올 4월에 집행 완료하였습니다. 8쪽 하단 성인지 결산 현황입니다. 교통국 소관 성인지 사업은 3건에 5억 9,100만 원이며 이 중 5억 3,467만 1,000원을 집행하였습니다. 9쪽부터 13쪽까지는 교통국 5개 부서의 2016회계연도 세출예산 사업별 세부결산 내역입니다. 2016회계연도 교통국 전체예산 집행률은 96.6%로 세부사업별 집행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다음 14쪽 성과보고서 내역입니다. 2016년도 교통국 정책사업 목표지표는 총 14개로 4개는 초과 목표 달성하였고 10개는 목표 달성하여 달성도는 100% 되겠습니다. 주요 성과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17쪽 광역교통시설특별회계입니다. 2016년도 광역교통시설특별회계 세입ㆍ세출예산 총액은 각각 1,165억 7,900만 원으로 이 중 1,165억 7,020만 8,000원을 지출하였고 집행잔액은 879만 2,000원입니다. 먼저 세입결산입니다. 세입 징수결정액 총액은 6,805억 1,680만 9,000원이며 이 중 1,926억 2,106만 9,000원을 수납하였고 4,883억 4,756만 5,000원은 미수납되었으며 4억 5,182만 5,000원은 사업계획 변경과 사업 취소 등의 사유로 과오납 반환처리되었습니다. 다음 18쪽 세출예산현액 1,165억 7,900만 원 중 1,165억 7,020만 8,000원을 지출하였고 879만 2,000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분야별 집행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교통국 소관 2016년도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한 제안설명을 드렸습니다. 앞으로 교통국 전 직원은 확보된 예산에 대해서 집행사항을 면밀히 파악하여 과다한 불용 또는 이월되는 사례가 없도록 집행에 철저를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건설국장 김정기입니다. 건설국 소관 2016회계연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보고에 앞서 건설국 간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건설국 소관 2016회계연도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안에 대해서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제안설명은 위원님들께 배부해 드린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일반회계, 특별회계 순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보고서 3쪽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입니다.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예산총액은 세입 2,331억 4,454만 원이며 세출은 9,169억 8,565만 원입니다. 먼저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징수결정액은 2,414억 3,505만 원 중 2,327억 1,524만 원을 수납하였고 미수납액은 87억 1,981만 원이 되겠습니다. 미수납 세부내역은 도로 점ㆍ사용료, 하천점용료 등 경상적세외수입 13억 6,845만 원, 도비반환금수입, 공유재산 매각수입금 등 임시적세외수입 73억 5,135만 원입니다. 미수납 세입은 재산조회를 실시하여 납부독촉하고 지방세 기본법과 민사집행법에 의한 강제집행 및 압류처분을 통해 징수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보고서 4쪽 세출결산입니다. 건설국 세출예산현액은 9,169억 8,565만 원으로 지출액은 5,915억 9,269만 원, 다음연도 이월액은 3,139억 9,098만 원, 집행잔액은 114억 197만 원입니다. 다음은 5쪽입니다. 부서별 집행잔액 현황을 발생사유별로 보고드리면 계획변경 등 집행사유 미발생 19억 55만 원, 예산 집행잔액 95억 140만 원, 보조금 집행잔액 7,000원입니다. 주요 집행잔액 내역입니다. 계획변경 등 집행사유 미발생 사업으로 총 6건이 되겠습니다. 도로구역정비 추진, 문기-신두 및 월산-고송 도로확포장공사는 15년도 결산검사 개선ㆍ권고사항에 따라서 집행 전망이 불투명하여 장기간 이월되는 계속비 예산은 불용 반납처리하고 민간투자사업 업무위탁수수료는 위탁수수료 지급에 따른 집행잔액을 반납하는 사항입니다. 또한 목감천유역 하천정비사업은 사전행정절차 미이행에 따라서 불용처리하였으며 경기도 건설공사 부실공사 신고포상금은 신고포상금 지급 대상자가 없어 불용액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음은 6쪽입니다. 정상적인 사업추진에 따른 예산 집행잔액은 95억 140만 원으로 보조금 집행잔액은 7,000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하여 주신다면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7쪽입니다. 예산의 이용ㆍ전용입니다. 예산 변경은 적성-두일 도로확포장공사 등 7건에 7억 2,458만 원입니다. 다음은 이월사업 현황으로 7쪽에서부터 10쪽까지입니다. 이월사업은 총 124건 3,139억 9,098만 원입니다. 명시이월은 40건에 507억 4,535만 원으로 집행 및 준공시기 미도래, 계약체결 지연, 중앙부처 협의, 협의보상 등으로 명시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9쪽입니다. 사고이월은 34건 159억 4,781만 원으로 위험도로 구조개선사업, 승진훈련장 진입도로 개선사업, 재난 예ㆍ경보시스템 구축 등이며 행정절차 지연, 토지보상 협의 지연 등의 사유로 사고이월하였습니다. 다음은 11쪽에서 13쪽까지 계속비이월입니다. 계속비이월은 50건에 2,472억 9,782만 원으로 국가지원지방도사업 15건 1,442억 7,830만 원, 지방도로사업 35건에 1,030억 1,951만 원 이월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14쪽입니다. 2016년 예비비 지출은 7건 132억 2,979만 원으로 행정소송 비용과 지방하천 수해복구 비용입니다. 15쪽에서부터 22쪽까지는 건설국 4개 과의 2016회계연도 사업별 결산서를 첨부하였습니다. 각 과별 2016년도 예산 집행실적을 보고드리면 건설안전과 78%, 도로정책과 59.4%, 하천과 76%, 건설기술과 55.6%로 2016회계연도 건설국 전체 예산집행률은 64.5%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23쪽 성과보고서입니다. 건설국 정책사업 목표 지표는 국지도, 지방도 확포장사업 추진 등 13개이며 이 중 11개를 달성하고 2개를 미달성하였습니다. 미달성 지표는 도로포장관리시스템 구축ㆍ운영 및 자전거 이용 활성화계획 연구용역이며 미달성 사유는 도로포장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조사장비 구입의 계약체결 지연 등으로 사업기간이 연장되었고 자전거 이용 활성화계획 연구용역의 집행시기 미도래입니다. 현재는 해당 장비 구입을 완료하였으며 연구용역은 내년 1월 21일 완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27쪽 임진강유역댐 주변정리 특별회계입니다. 2016년도 임진강유역댐 주변정리 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내역을 보고드리면 세입ㆍ세출예산 총액은 각각 12억 6,392만 원으로 이 중 10억 5,400만 원을 지출하였고 2억 992만 원은 집행잔액입니다. 먼저 세입결산입니다. 총 세입 징수결정액은 13억 3,155만 원으로 전액 수납하였습니다. 28쪽입니다. 다음은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현액은 12억 6,392만 원으로 이 중 10억 5,400만 원을 지출하였고 예비비 2억 992만 원은 집행잔액이 되겠습니다. 이상으로 건설국 소관 2016회계연도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건설본부장 이계삼 안녕하십니까? 건설본부장 이계삼입니다. 무더워지는 날씨에 의정활동으로 연일 노고가 많으십니다. 평소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건설본부 소관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하여 배부해 드린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보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건설본부장 이계삼 네, 간단하게. 먼저 3쪽 일반회계 세입결산입니다. 억 단위 미만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건설본부 소관 일반회계 세입 징수결정액은 42억 원이며 수납액은 34억 원으로 징수결정액 대비 81.1%가 수납되었습니다. 다음은 7쪽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현액은 1,139억 원이며 지출액은 953억, 이월액은 176억 원으로 집행잔액은 8억 원이 되겠습니다. 집행률은 83.7%입니다. 다음은 9쪽 다음연도 이월사업비 현황입니다. 이월사업은 총 10건 176억 원입니다. 이 중 명시이월은 4건 79억 원이고 사고이월은 2건 14억 원, 계속비이월은 4건 82억 원입니다. 세부사항은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이어서 10쪽 이월사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명시이월은 국비교부 지연, 행정협의절차 지연 등으로 4건이 이월되었고 사고이월은 3회 추경예산 확보되어서 절대공기가 부족하여 2건이 이월되었습니다. 끝으로 21쪽 신청사건립기금 결산입니다. 수입과 지출은 각각 726억 원이며 수입 세부내역은 예치금회수 300억 원, 기타회계 전입금 418억 원, 공공예금 이자수입 8억 원이고 기금 전액은 현재 도금고에 예치되어 있습니다. 이상으로 2016년도 건설본부 결산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위원님들께서 지적해 주시는 사항에 대해서는 성심성의껏 집행에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 송한준 이계삼 건설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 이전에 자료요청하실 위원님 있으면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는 중에도 자료요청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거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할 실국장님을 지명한 후 해당 실국의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셔서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죄송합니다만 이 부분은 저희가 수도권교통본부에 자료를 확보를 해서 별도로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김종찬 위원 지금 그 라인은 장안에서부터 그러니까 의왕, 안양 라인을 지나서 경수산업도로로 올라가는 거죠? 노선이 그 노선 아닌가요? 그 부분은 그러면 추후에 자료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도로를 지하로 만드는 것을 지금 중앙에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지하도로망 계획이 설계가 확정되면 그 위의 지상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것에 대한 용역을 하기 위해서 확보했습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김종찬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신청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박동현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그것은 의견이 저하고 위원님하고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국비 같은 경우에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지역 국회의원님들이 확보해 주니까 국비가 지출되려면 계약하고 착공이 돼야 지출이 되는 문제가 생기고 다만 저희 공무원들이 더 노력해야 될 부분은 협의보상이 되거나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독려해서 지금보다 더 계속사업 이월액이 줄어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지방도 계속비이월액이 127억 원 정도가 되는데요. 이것은 첫 번째 원인이 협의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고 그것에 따라서 공정이 지연되는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주민요구사항을 반영해 주기 위해서는 설계변경을 해야 되고 이런 사항 순으로 문제가 발생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더 노력할 부분이고, 그렇다고 그래서 예산을 금년도보다 내년도 예산을 줄여서 반영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반영해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지금처럼 반영을 하되 보다 더 공무원들이 집행부서인 건설본부하고 저희하고 협업을 해서 충분하게 수시로 체크를 하고 원인이 뭔지 그것에 따른 조치를 더 강화해 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 철도국장 이종수 지제역은 지제역사 앞에 도시개발사업들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그 조합원들하고 도시개발사업이, 굉장히 민감한 건데요. 환승센터의 출입구 등에 대해서 확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평택시에서 보류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아직 시작을 안 한 상태입니다. ○ 철도국장 이종수 네, 오산역 같은 경우는 제가 현장에 나가봤는데요. 지금 현재 철도가 다니는 철로 위에 이렇게 빔을 올려서 거기서 회전시키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 초기 공정에는 야간에 2시간밖에 작업을 못 할 만한 그런 사유가 있었습니다. ○ 박동현 위원 그리고 이게 국장님이 생각하실 때 재정 지원 법적 근거가 있나요? 꼭 지원을 해야 되나요, 법적 근거. ○ 철도국장 이종수 국비하고 도비가 지원되는데요. 국비가 30% 지원됩니다. 그리고 지방비가 도비ㆍ시비가 70%인데요. 시군의 재정여건에 따라서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철도국장 이종수 지원근거는 현재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특별조정교부금으로 현재는 지원하고 있는데 국토부나 기재부 등 중앙부처에 지원에 대한 근거를 법령 개정의 필요성 설명 및 계속해서 건의할 예정입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박동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신청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김길섭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이것은 작년 9월 추경에 확보된 예산이고 그에 따라서 행정절차를 이행하는 관계로 인해서 그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이것은 국비 50%, 도비 50% 매칭사업이기 때문에 추경에 국비가 확보되면 지방도는 반드시 매칭으로 확보를 해야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게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이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보행안전의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건설교통위원회에서는 관심을 가지고 또 시군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예산이 증가됐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해당 중앙부처 중에서 기재부 같은 경우에는 이것은 시도에서 예산을 확보할 사안이지 앞으로 국비를 받아서 할 사안은 아니라고 하는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네, 알겠습니다. 상사업비는 두 가지 종류가, 설해대책을 가장 잘한 우수한 시군 또 도로정비사업이 우수한 시군에 상사업비를 줘서 그 해당 시군이 경쟁해서 그 분야에 대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상사업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김길섭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지미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지미연 위원 왜냐하면 지금 건설국의 경우 집행잔액으로 나오는 돈이 예산 대비 1.3%라고 하지만 금액이 100단위가 넘어갑니다. ○ 지미연 위원 우리 보건복지위원회만 해도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 하는 게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만약에 이렇게 돈이,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집행잔액이 발생된다는 게 유추 가능할 경우에는 그다음 우선순위로 배정된 사업 말고 차순위로 대기하고 있는 사업을 하셔도 되는 거 아닌가. 왜냐하면 지난 한 해 네 차례에 거쳐서 추경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한 시간이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렇게 많이 남으니까 기회비용이 지금 날아가는 거잖아요, 사장되고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철도국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건설국에 대표적으로 한번 여쭤봅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국비의 경우에는 집행잔액은 반드시 정산해서 반납해야 되는 사안이고요. 지방비 같은 경우에는 확실하게 판단할 때 사업 간 조정을 통해서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지미연 위원 다음부터는 이게 너무 과다계상이 되어 있는지, 하나의 예로 지금 제3경인고속화도로 정왕IC 개선사업이요. 57%밖에 안 쓰셨어요. 이유가 뭡니까? 과다계상을 하신 거예요, 아니면 뭐가 바뀐 겁니까? 이해가 안 돼요. ○ 건설국장 김정기 사업내역이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당초 설계에 반영된 방음벽 사업비가 환경영향평가를 해 보니까 그 규모보다 낮춰도 된다고 하는 이런 사안이 발생돼서 방음벽 설치비용 40억이 나왔고요. 기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민간사업시행자한테 부담을 해서 예산이 절감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 지미연 위원 아니, 그 방음벽은 배곧신도시에 있는 것은 이것도 155억을 잡으셨다가 114억밖에 안 쓰셨어요. 이것도 집행이 40억씩이나 남습니다. 이 두 사업만 해도 집행잔액이 70억이 넘어가요. 그야말로 어찌 보면 지금 현재 지방도 안에 인도가 없어서 그러한 인도 개설공사만 하더라도 이런 70억 돈이면 벌써 70군데 정도 할 수 있는 기회비용이 날아간 거거든요? 핵심은 그겁니다. 과다계상이 습관성인 건지 아니면 이번에만 그런 건지. ○ 건설국장 김정기 아닙니다. 과다계상된 게 아니고 적정하게 설계를 했는데 환경영향평가하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그 사업비는 시흥시에서 저희한테 위탁해서 하는 사업비이기 때문에 반환해 줘야 되는 사안입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저희가 작년 추경을 통해서 특별교통수단을 금년도까지 법정대수의 170% 그리고 내년까지 200%를 달성한다는 목표하에 예산을 수립하였고 시군에 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특별교통수단의 차량구입비가 약 4,000만 원 들고 더 문제가 있는 게 운영비가 약 6,400만 원 정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시군에서는 이 운영비에 대해서 많은 부담을 갖고 도입 자체를 꺼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특별교통수단이 법적으로는 전부 리프트를 장착하게끔 돼 있는데 실제적으로 리프트를 이용하는 경우는 약 40%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운영에 있어서 과다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개선하는, 예컨대 지금 수원시 같은 경우는 일반택시와 협약을 해서 특별교통수단의 형식으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교통수단으로 인정은 못 받지만. 그런 법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고요. 또 한 가지는 가동률이 현재 시간대별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가동률을 제고시켜서 수입을 증가시키는 부분 또 한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게 이게 시군 자치사무입니다. 저희는 의욕적으로 도에서 관여를 해서 많이 지원하고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시군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추진을 해야지만 활성화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희가 시군 합동평가라든가 여러 가지 평가 시에 반영하는 등 시군에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 같습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지금 법적으로는 1ㆍ2급 장애인이고요. 그 외에 노인이나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 지미연 위원 그렇다 그러면 그분이 교통의 불편이 따르면 누구한테 연락을 할까요? 교통국에 연락을 할까요, 보건복지 쪽에다 연락을 할까요? 이 사업을 과연 교통국에서 핸들링하는 게 도민의 편리를 위해서 적절한가의 여부입니다. 왜냐하면 일만 진행시켜 놓고 지금 아예 사업성과도 하셨지만 계획 대비 28대밖에 도입이 안 됐어요. 사업취소가 78대입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아니,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도적인 부분은 개선할 부분은 개선을 해야 되겠고 또 이용 활성화 측면도 이용률 제고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시군과, 시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하도록 저희가 소통하고 논의를 해야 되는데 사실은 어느 부서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특별교통수단의 고비용 구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해결을 하는 게 답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중앙부처에서도 국토교통부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업무의 일관성이라든가 그런 부분에서 교통국에서 하는 것이 맞고 하여튼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미연 위원 예외를 시켜놓고 열외를 시켜놓으시면 이용자는 장애인들과 약자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핸들링하는 부서가 많은 데 있어요. 그러니까 민원은 이렇게 받아도 이게 움직임이 안 맞는 거예요. 그러면 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건설국에서 그냥 하시겠다면 어떠한 밑에 있는 회의체 안에 분명히 있어서 민원수렴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그냥 구체적으로 이렇게 농성하고 뭐 했으니까 해 준다 이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고 개선이 돼야 예산을 집행하는 재미가 있는 것이지 동떨어진 거, 나는 그냥 했다 하지만 한 건,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다음에 실질적으로 장애인이 북부에서 남부까지 이동하는 데 있어서 편리성이 있느냐. 이것도 절차적인 문제 안에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게 많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러면 국장님 답변하셨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개선을 하고 어떻게 정책적으로 시군하고 협력을 하실 것인지 자료로 제출해 주시기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재순 위원 네, 보면 여기에 우리 서민과 중산층과 직결되는 부분이죠. 건설국, 건설, 도로, 하천 이런 부분들이 실질적으로. 그러면 경기도 예산이 약 한 24조가 되는데 그중에서 이제 1조가 안 돼요, 실질적으로. 그러나 우리 경기도의 발전을 위해서 서민들과 중산층,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 또 장기적으로 기계를 임대해서 먹고사는 사람들,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는 거죠. 실질적으로 건설노동 현장에 있어서 이걸 가지고, 예산을 가지고 16년도에는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시급이 1만 원대로 높아진다고 했었을 때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 건지 거기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시급이 단가가 올라가면 저희 현장에 그런 인력이 일을 할 경우 시급단가를 적용해서 설계부터 단가를 인상해야 되는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요. 저희들은 위원님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 건설국에서 예산이 필요한 게 전체 예산의 3.8%인가 이렇게 해당이 될 겁니다. 적어도 그런 부분의 개연 부분까지도 어우를 수 있는 예산규모라면 5% 정도 이상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사시기에 따라서 예를 들어서 준공이 시급히 절대공기가 필요한 사안이면 돌관작업도 해야 되고 하기 때문에 플러스알파라고 하는 할증을 고려해서 지급되고 있습니다. ○ 박재순 위원 본 위원이 생각했을 때 노동현장과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하고는 좀 상반된 그런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러면 모든 단가가 높아질 거고 거기에 대해서 경기도가 대책을 세워서 나가야 된다고 저는 보고 있고 또 서민들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건설, 도로, 하천 이런 부분에서 우리 도민들께서 직접적으로 와서 노동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인권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그런 고민들을 함께해 주어야 된다고 저는 보고 있고 실질적으로 하청을 줘서, 입찰을 보고 나서 하청이 넘어가면서 책임지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까지도 실질적으로 잘 관리감독을 하고 있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지금 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서 최저가 하도계약 같은 경우에는 하도심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82% 이하일 때 하도계약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저희 제도권으로 흡수해서 하도심사를 해 가지고 적정하게 지급될 수 있도록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그런 부분이 조사해서 있다면 도로관리비용, 관리비를 더 예산확보해서 그런 문제가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렇게 하겠습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해당 시군에서 예를 들어서 그런 쓰레기 처리를 해야 되고요. 그리고 경계지점 밖으로 해 가지고 일부 채소를 심어서 먹고 있는 이런 경우에는 해당 시장ㆍ군수가 산림훼손이라든가 기타 형질변경이라고 하는 그런 측면에서 단속을 해서 그런 문제가 없도록 해야 된다고 봅니다. ○ 박재순 위원 정말 우리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명절 때 가면서 저는 몇 년 동안 아마 그게 쌓여서 그렇게 된 거라고 보는데 해당 시군에다 대고 또는 여기에 다니시는 우리 공직자분들께서 어떻게 그런 거에 대해서 좀 무감각했는지 한번 묻고 싶고 우선 나 자신도 참 무감각한 거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왜 저기에 저렇게 쌓여 있을까?’ 그러면 뭔가 대책을 세워서 얘기를 해야 되는데 정말 그러지 못한 부분, 우리 다 함께 고민해 보고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 뭐 제가 또 감사과에다 얘기를 하겠지만 이런 부분들은 서로 공유하면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만, 들어가시고. ○ 건설본부장 이계삼 적립은 700억 수준 돼 있습니다. 아직 공유재산특별회계 2,980억이 예비비로만 지금 돼 있고 아직 신청사건립기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건설본부장 이계삼 네, 일단 일반예산에서 썼고요. 추후에 정산할 모든 사업은 경기도시공사에서 대행해서 진행될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단 설계하는 과정은 일반회계, 우리가 하는 걸로 돼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설계가 우리가 하는 설계하고 도시공사에서 별도로 하는 사업과 다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 돈과 거기 돈을 합쳐서 설계를 하도록 일단은 했고요. 설계비가 얼마가 들어갈지도 정확히 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그 돈을 주고 추후에 정산하도록 한 것입니다. ○ 박재순 위원 아, 그렇습니까? 아무쪼록 경기도청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질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박재순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이정애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반갑습니다. 남양주 출신 이정애 위원입니다. 우리 집행부 공무원 결산 준비하시느라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먼저 건설국장님 자리에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 건설국장 김정기 그 이유가 예를 들어서 500억 이상일 때는 예타를 하도록 되어 있고 타당성이 검증돼야 사업추진이 되는데……. ○ 건설국장 김정기 그 사업이 준공되는 시점까지 예산을 적정하게 투입을 해서 마무리 짓고 19년 이후에, 도로여건이라는 게 매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여건을 담아서 19년 이후에 우선순위를 재평가해야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 이정애 위원 또 그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면 조금 답답하고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 드는 거예요, 저도. 이해는 하지만 참 너무나 그게 뭐 한두 건이 아니고 경기도에 굉장히 사업이 전체적으로 많다는 걸 알고 또 지방에도 물론 많지만, 그래서 그게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좀 결산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들어가셔도 좋고요. ○ 교통국장 장영근 네, 구체적인 성과보고를 따로 드리겠지만 일단은 지금 버스, 출근시간에 입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러는데 출근시간에 1대를 가동시킬 경우에 입석률이 한 42% 정도 감소하고 그다음에 교대를 할 경우에 80% 이상 입석률이 감소하는 걸로 나왔거든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저희가……. ○ 교통국장 장영근 저희가 지금 금년 말 내지는 내년 초까지 143대를 운영할 계획으로 있습니다만 현재는 26대가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 이정애 위원 그런 성과분석이 제대로, 인정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들도 또……. ○ 교통국장 장영근 그 부분도 별도 보고드리겠는데요. 지금 국토교통부에서도 이 사업은 성공적인 사업으로 인정하고 M버스에도 2층 버스를 도입하겠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 교통국장 장영근 제가 안성부시장 할 때 그게 없는 줄 몰랐습니다. 결국은 그때도 0대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도입을 추진을 하는데 결국은 지자체장을 비롯한 시의 의지가 얼마나 관심 있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이정애 위원 그렇죠. 저도 조금 그 부분은 인정을 하는데 지자체의 장과 시의회에서 이런 약자에 대한 관심을, 소수라도 좀 신경을 써서 이런 건 필수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지원을 해야 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통계적으로 이렇게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운영비까지 지원을 하는데도 이게 지금 저조한 이유를, 좀 능동적으로 해 달라는 뜻을 담아서 제가 질의를 드린 거예요. ○ 교통국장 장영근 네, 알겠습니다. 그 부분과 아울러서 아까 지미연 위원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부분도 같이 병행 노력토록 하겠습니다. 결산보고 잘 받았는데 아무래도 제 동네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갈 수밖에 없죠. 철도국의 자료를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별내선 복선전철 건설사업 관련해서 이월액이 많이 발생을 했는데 국토부의 사업계획 승인, 2016년 7월에 승인이 되고 이게 지연돼서 2016년 하반기,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본 공사가 착수됨에 따라 집행시기가 순연됐다고 자료에는 나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철도건설과의 부서정책단위 세부사업 편성목록을 쭉 보니까 별내선, 하남선, 도봉산-옥정 해서 광역철도 관련 쭉 예산현액과 지출액 그리고 이월액, 집행잔액이라든가 집행률이 나오는데 별내선이 제일 저조해요. 집행률이 29.9%. 2,120억 원의 예산현액을 받았는데 지출이 630억 수준밖에 안 됐고 지금 1,490억 정도의 이월액이 나왔는데 나름대로 구리시하고 경기도하고 그다음에 중앙정부에서 마련한 예산 해서 집행하는 데 많이 어려움이 있는 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원도 많이 발생이 됐고 경기도에서 노선을 정했을 때 그 노선 그대로 갔다면 민원이나 예산 문제, 보상금 이런 게 참 많이 줄어들었을 텐데 구리시가 원하는 노선으로 가다 보니까 예상치 못한 민원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래도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금 별내선 사업에 대한 집행률이 저조한 부분, 그것에 대해서 한번 소상한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그리고 대안 같은 것도 얘기해 주시고 또 사실 철도건설과에서 제가 항상 자료 요청한다든가 중요한 민원들을 얘기할 때마다 협조를 너무 잘해 주셨는데 그래도 이 내용을 한번 집약해서 국장님한테 들어보는 게 바람직할 것 같아서 질문 이렇게 드립니다. 답변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 철도국장 이종수 철도국장 이종수입니다. 존경하는 안승남 위원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이 별내선은 2014년부터 기본계획이 수립됐는데요. 국토부의 사업계획 승인이 2016년, 작년 7월에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이게 국비 매칭사업입니다. 국비가 2014년부터 계속 내려왔고요. 그래서 당연히 매칭으로 도비하고 구리ㆍ남양주의 시비도 매칭된 사업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사업비 이월이 아주 불가피하였습니다만 현재 공정률이 한 13% 정도 되고 있고요. 금년 말까지는 한 65% 이상 공정률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정상적으로 별내선 준공시기에 맞춰서 준공식에 지장이 없도록 공정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 안승남 위원 너무나도 잘 아시겠지만 사실 별내선 관련해서 구리시에 3개 역이 생기면서 우리 시민들한테 많은 혜택이 돌아갔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노선이 지나가는 것 때문에 보상 문제나 피해 입은 지역에 대해서 계속 단도리를 잘해 주시고요. 그리고 실제로 구리역과의 환승부분에 있어서 많은 구리시민들은 지하에 역사가 생기는 줄 알았는데 지상으로 생긴 문제, 그다음에 구리 전통시장하고 연계되지 않는 부분 때문에 민원이 계속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구리시하고의 협조 문제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구리시하고 협조하는 문제 부분들도 담당 국장님뿐만 아니라 과장님하고 담당 팀장님이 열심히 뛰고 계시지만 좀 더 독려를 해 주시고 특별히 좀 더 말씀드리는 건 진척이 빨리빨리 돼야지 공사 결과가 잘 나와서 많은 분들이 별내선 혜택을 받는데 부분적으로 많은 민원 있는 부분에 대해서 지금처럼 해 온 것처럼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내용들을 챙겨 주시고 특별히 삼용주택과 관련해서 삼용주택에는 지금 뜻하지 않게 많은 노선에 차지하는, 지나가는 범위가 커졌는데 삼용주택의 원하는 부분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했던 더 깊게 내려가고 안전하게 공법을 써서 그분들이 나중에 재건축이나 재개발할 때 민원문제나 이런 것이 극소화될 수 있게끔 구체적인, 현실적인 문제를 챙겨주시고 그런 부분을 지금처럼 협조해 주신 대로 계속 잘 챙겨주시면 될 것 같아요. 국장님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안승남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박순자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박순자 위원 그리고 또 청소년할인요금 결손보전금이 2,670만 원으로, 어떻게 성남시는 경기도가 아닌가요? 왜 성남시만 유별하게 이렇게. ○ 교통국장 장영근 버스재정지원금 관련해서 2015년도에 분권교부세로 해서 5 대 5로 이렇게 도비와 시비를 분담했는데 그게 제도개편이 되면서 보통교부세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7 대 3, 그러니까 시비 7, 도비 3으로 하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시비부담이 너무 많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기존의 5 부분만 납부를 하겠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현재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결국은 피해를 받는 건 성남 소재 버스운송업체입니다. 지원을 그만큼 못 받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저희가 지속적으로 협의를 하고 있고 일단 실무적으로는 가을 추경에는 예산을 반영해서 미납된 분담금을 납부하는 걸로 현재 추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박순자 위원 똑같은 공무원들이 하는 행정인데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어떻게 성남시만 유별나게 저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나, 그런 궁금한 면에서 제가 질의를 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서 똑같이 징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건설본부장 이계삼 도의원님들의 많은 격려 속에 또 협조 속에 또 지도 속에서 계속 진행된 것은 도의회, 도청사, 도교육청이 함께 도민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곳 그리고 그런 일하는 모습이 도민들에게 보여지고 또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도민들이,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도청과 도의회 일들을 신뢰하고 또 불만 있는 건 말하고 또 좋은 아이디어도 제안하고 할 수 있는 그런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아무튼 우리 본부장님과 경기도민들 전체가 광교 신청사를 경기도의 자랑으로 삼을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한길룡 수고하셨습니다.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이것으로 철도국, 교통국, 건설국, 건설본부 소관 결산에 대한 질의 종결을 선포합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도시환경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먼저 백원국 도시주택실장은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안녕하십니까? 도시주택실장 백원국입니다. 도민의 복지증진과 도정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송한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3쪽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 징수결정액은 3,236억 3,494만 원으로 미수납액은 징수결정액의 0.05%인 1억 6,671만 원이며 그 내용은 측량법 및 부동산개발업 위반과태료, 소송회수비용 등입니다. 다음은 6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예산현액은 3,721억 3,671만 원으로 그중 99%인 3,686억 4,756만 원을 집행하였고 0.8%인 26억 5,100만 원을 이월하였으며 집행잔액은 0.2%인 5억 3,815만 원이 되겠습니다. 부서별 세부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8쪽 불용액 내역입니다. 불용사업은 총 5건으로 그중 4건은 위원회 개최 수요감소 2건, 건축행정시스템 DB암호화 솔루션 도입 사용변경, 도시재생지원센터를 통한 교육 등에 따라 도 자체 수요감소 등의 사유로 집행잔액이 발생한 것입니다. 도시재생지원센터 운영비 5억 원은 예산부서 부동의로 유보된 것입니다. 9쪽 예산 이용ㆍ전용ㆍ변경ㆍ이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산 이용ㆍ전용, 예비비 지출은 없으며 예산 변경은 건전한 부동산중개업 제도 운영 1건 6,319만 원으로 공인중개사 연수교육에 따른 강사료 등을 경기도 예산편성 세부지침에 부합하도록 사무관리비에서 행사운영비로 편성목을 변경한 것입니다. 10쪽 이월사업비 현황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계속비이월은 없으며 명시이월은 7건 18억 9,900만 원, 사고이월은 1건 7억 5,200만 원으로 8건 모두 국비교부 지연에 따라 이월하게 되었습니다. 수입결산액은 240억 1,581만 원, 지출결산액은 176억 5,504만 원, 차기이월금은 63억 6,077만 원입니다.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 예비비 지출은 해당 없으며 이월사업비 현황의 이월액 41억 7,277만 원은 기이 착공은 하였으나 지급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이월한 것입니다. 다음은 38쪽 2016년도 도시재정비촉진 기타특별회계 결산입니다. 세입결산 수납액은 149억 2,015만 원이고 세출결산 잔액은 148억 6,442만 원으로 집행이 부진한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비촉진지구 내 사업지연에 따른 것으로 2017년도 순세계잉여금 세입예산으로 반영하였습니다. 다음은 43쪽 2016년도 도시ㆍ주거환경정비기금 결산입니다. 수납액 48억 2,779만 원, 지출액 57억 2,015만 원이고 2016년 말 현재액은 129억 5,224만 원입니다. 수입내역과 지출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44쪽 2016년도 주거복지기금 결산입니다. 결산내역은 수납액 20억 1,556만 원이고 2016년도에 처음 조성된 기금이어서 지출액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47쪽 성과보고서입니다. 정책사업 성과지표 28개 중에서 초과달성 2개, 달성 20개, 미달성 6개입니다. 미달성 6개 중 5개는 경미한 사항이고 주요 부진사항인 재정비촉진사업 지원은 시군 수요조사 결과 재정비촉진사업 지연 등으로 도비 지원이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발생한 것입니다. 2016년도 도시주택실 소관 예산을 적정하게 집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보고드리며 원안대로 승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환경국과 공단환경관리사업소 소관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하여 기이 배부해 드린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제안설명드리겠습니다. 5쪽 환경국 소관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입니다. 총 세입은 1,050억 1,000만 원이고 총 세출예산현액은 1,206억 900만 원입니다.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예산현액은 1,039억 4,400만 원이고 징수결정액 1,050억 4,000만 원 중에서 99.9%인 1,050억 1,000만 원을 수납하였습니다. 미수납은 사업완료 후 도비 집행잔액 반환금과 과태료 등 8건 3,400만 원입니다. 자세한 세부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환경국 세출예산현액 1,206억 중 95.5%인 1,151억 6,000만 원을 집행하고 53억 1,700만 원을 다음연도로 이월하였습니다. 집행잔액은 1억 3,000만 원입니다. 세출결산 부서별 내역은 유인물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유인물 12쪽부터 14쪽입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세출결산 집행잔액 1억 3,000만 원에 대해 원인별로 설명드리면 예산절감 유보액 2,600만 원, 낙찰차액 등 예산 집행잔액 1억 400만 원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유인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4쪽 주요사업 불용액 현황입니다. 미세먼지 대응역량, 홍보강화와 미세먼지 정책 발굴 등 2개 사업 불용액 2,700만 원은 예산 유보액입니다. 다음은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 현황입니다. 예산 이용과 이체는 해당 없습니다. 예산 전용은 환경보전을 위한 친환경 공모전 행사운영비 일부를 수상작에 대한 시상금 지급을 위해 일부 전용 집행하였으며 기후변화대응 테마사업 지원은 과목 오기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자치단체경상보조로 집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어 전액을 전용하였습니다. 16쪽 이월사업비 현황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적정기술을 이용한 미세먼지 저감방안 등 용역은 행정절차 용역심사 방법개선에 따른 전문가 협의 등에 따라 용역기간 부족으로 2017년 3월까지 이월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적정기술 한마당 개최 행사는 2016년 3회 추경 시 기후대기과에서 2017년 중 미세먼지 관련 행사를 개최하는 것으로 사업이 변경되어 불가피하게 이월되었으며 미세먼지가 많은 시즌에 행사를 개최하여 도민의 관심과 홍보효과를 높일 계획입니다. 생활폐기물 관리시스템 구축 시범사업은 2016년 4회 추경 신규사업으로 추진기간 부족으로 명시이월 하였습니다. 계속비이월은 광역재활용센터 구축사업으로 2017년 8월 착공 예정으로 2018년까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45억 8,400만 원을 이월하였습니다. 이상으로 환경국 소관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보고를 마치고 다음은 77쪽 공단환경관리사업소 소관 2016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하여 제안설명드리겠습니다. 총 세입은 3억 8,600만 원이고 총 세출은 예산현액 8억 4,300만 원입니다. 세입은 예산현액 1억 9,900만 원이고 4억 2,500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90.8%인 3억 8,600만 원을 수납하고 미수납액은 1,700만 원입니다. 다음으로 78쪽 미수납, 결손처분 내역입니다. 사업장의 폐업과 무재산으로 인한 미수납 1,700만 원과 과태료 결손처분 2,100만 원입니다. 다음은 79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세출예산현액 8억 4,300만 원 중에서 집행액은 8억 1,600만 원으로 96.8%를 지출하였고 집행잔액은 2,700만 원입니다. 81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입니다. 이용ㆍ이체는 해당 없습니다. 예산 전용은 산업단지 환경관리 지원 사무관리비 일부를 사회복무요원 보상금 인상 부족분 지급을 위해 일부 전용 집행하였습니다. 예비비 지출현황과 다음연도 이월사업비 현황은 해당 없습니다. 이상으로 공단환경관리사업소 소관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 제안설명을 마치고 91쪽 환경보전기금 결산내역을 보고드리겠습니다. 환경보전기금 현재액은 198억 6,900만 원이고 현재 적립금액은 191억 8,200만 원이며 기금관리 금액은 220억 9,600만 원입니다. 세부내역은 유인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93쪽 환경국 성과보고서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정책사업 목표 총 24개 지표 중 22개 지표의 목표를 달성하여 목표 달성도는 92%입니다. 이상 보고드린 바와 같이 2016년도에는 대기질 개선, 자원순환시설 확충 등 경기도 환경보전과 생활환경복지, 환경안전 등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상으로 환경국 소관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 설명을 마치고 오늘 결산 심사과정을 통해 위원님들께서 환경분야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부분에 대하여는 전 직원이 성심을 다해 개선토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면서 제안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수자원본부장 연제찬 수자원본부장 연제찬입니다. 평소 저희 수자원본부 업무에 많은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송한준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안설명에 앞서 수자원본부 간부공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쪽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입니다. 일반회계 세입예산액은 4,563억 8,500만 원이며 세출예산액은 5,090억 400만 원입니다. 특별회계 세입예산액은 48억 1,000만 원이며 세출예산액은 48억 1,000만 원입니다. 4쪽 일반회계 세입결산입니다. 세입예산액은 4,563억 8,520만 원이며 징수결정액은 4,486억 7,880만 원으로 98%인 4,484억 6,776만 원을 수납하였습니다. 미수납액은 2억 1,104만 원으로 세부내역은 이자수입 306만 원, 과태료 52만 원, 도비보조금 미반납 등 1억 9,614만 원, 지난연도 수입 1,130만 원입니다. 5쪽 일반회계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현액은 5,090억 420만 원이며 지출액은 예산현액의 98.3%인 5,001억 5,863만 원입니다. 다음연도 이월액은 9억 7,241만 원이며 78억 7,315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6쪽 세부사업별 집행현황을 정책사업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깨끗하고 안전한 물환경 개선사업의 예산현액은 5,087억 512만 원이며 지출액은 4,998억 7,087만 원, 이월액은 9억 7,241만 원, 집행잔액은 78억 6,183만 원이 발생하였습니다. 행정운영경비는 예산현액 2억 3,611만 원 중 2억 2,938만 원을 지출하여 672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재무활동은 예산현액이 6,296만 원이며 국고보조금 등의 반환금으로 5,837만 원을 지출하고 집행잔액이 459만 원 발생하였습니다. 세부사업별 집행현황은 양해해 주신다면 보고를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10쪽 원인별 집행잔액 현황에 대해 정책사업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환경 개선사업의 집행잔액은 78억 6,183만 원으로 이 중 계획변경 등 집행사유 미발생 75억 6,760만 원, 예산 집행잔액 2억 8,388만 원, 보조금 집행잔액 1,035만 원입니다. 행정운영경비는 집행잔액이 672만 원이며 재무활동의 반환금 기타잔액이 459만 원입니다. 11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 및 예비비 지출 현황입니다. 예산 전용은 노후주택 녹슨 상수도관 개량지원의 시책홍보를 위해 3,000만 원을 사용하였습니다. 예산 이용ㆍ이체 및 예비비 지출은 해당사항이 없음을 보고드리겠습니다. 12쪽 다음연도 이월사업 현황입니다. 명시이월 총액은 총 3억 9,188만 원으로 직원 출퇴근용 차량임차 1건, 경기도 토양보전계획수립 등 연구용역비 2건, 경기도 상수도 현황판 및 현황지도 제작 보완 1건 총 4건입니다. 사고이월 총액은 총 5억 8,052만 원으로 수질개선정책수립 등 연구용역비 4건입니다. 계속비이월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14쪽 특별회계 세입결산입니다. 세입예산액은 48억 1,047만 원이며 징수결정액은 48억 2,117만 원으로 총 48억 2,117만 원을 수납하였습니다. 특별회계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현액은 48억 1,047만 원이며 지출액은 예산현액의 86%인 41억 3,938만 원입니다. 다음연도 이월액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집행잔액은 6억 7,109만 원입니다. 15쪽 세부사업별 집행현황을 정책사업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팔당상수원 수질보전사업의 예산현액은 15억 571만 원이며 지출액은 11억 9,012만 원, 집행잔액은 3억 1,559만 원이 발생하였습니다. 행정운영경비는 예산현액 31억 8,824만 원 중 28억 4,046만 원을 지출하여 3억 4,777만 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보전지출은 예산현액이 1억 1,651만 원이며 반환금으로 1억 880만 원을 지출하고 집행잔액이 771만 원 발생하였습니다. 16쪽 원인별 집행잔액 현황입니다. 팔당상수원 수질보전사업의 집행잔액은 보조금 집행잔액 3억 1,559만 원입니다. 행정운영경비의 집행잔액은 보조금 집행잔액 3억 4,777만 원입니다. 재무활동의 집행잔액은 보조금 집행잔액 771만 원입니다. 17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 예비비 지출 및 다음연도 이월사업 현황입니다. 예산 전용은 장마철 집중호우로 팔당호 부유쓰레기 과다 유입에 따른 신속한 처리를 위해 3,000만 원을 전용하였습니다. 예산 이용ㆍ이체, 예비비 지출 및 다음연도 이월은 해당사항이 없음을 보고드리겠습니다. 19쪽 성과보고서입니다. 수자원본부의 2016년 성과계획서의 성과목표 달성도는 100%로 9개 지표 중 하수관거 정비실적 1개 지표에서 초과달성, 환경공영제 수질기준 달성 등 8개 지표에서 목표 달성하였습니다. 20쪽 2015회계연도 결산검사결과 개선ㆍ권고 사항입니다. 2015회계연도 결산검사결과 저희 수자원본부는 지적사항이 없습니다. 이상으로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 개요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금번 결산심의를 통하여 재정운용 과정에서 나타난 미흡한 점을 지적하여 주시면 업무에 적극 반영하여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 송한준 연제찬 수자원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할 실국장을 지명한 후 해당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시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료요청이요? 질의? 김준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수자원본부장 연제찬 아무래도 불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판단해서 기회가 있으면 이월시키기보다는 여름철 지나고 나면, 부유쓰레기가 장마철 지나면 발생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기 때문에 반납할 수도 있습니다, 추경 기회가 있다면. 그런데 작년도 같은 경우는 갑자기 큰 비가 한 번 오는 바람에 평소에는, 어떤 때는 한 200~300t 정도 내려오는 쓰레기가 작년에 2,000t이 왔다고 합니다. ○ 수자원본부장 연제찬 위원님께서 걱정해 주시는 부분이 수자원본부 같은 경우 사실은 생활용수라고 해서 마시는 물하고 주로 샤워도 하고 그다음에 취사로도 사용하는 수돗물이 해당됩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부분은 듣기로 농업 부분이 가장 심각하고 상대적으로 저희 생활용수 부분 같은 경우는 소양강댐의 29억 t과 그다음에 충주댐의 27억 5,000만 t의 총 물그릇이 있는데 물론 지금 그 물그릇이 다 차있는 건 아닙니다. ○ 수자원본부장 연제찬 결론적으로 식수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작년 대비해서 한 90% 수준 정도의 물그릇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 환경국장 김건 철저하게 지금 감시는 하고 있습니다. 수질 같은 경우도 공단에서 나오는 것들은 TMS를 설치해서 실시간으로 지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 환경국장 김건 네, 그렇습니다. 자동으로 나오는 양들을, 5개 요소를 측정하는 겁니다. 총인이라든가 이런 것들을요. ○ 환경국장 김건 저희가 가서 정기적으로 점검을 연료에 대해서도 검사를 하고요. 그리고 배출되는 가스에 대해서도……. ○ 환경국장 김건 그래서 도내 지금 아스콘 공장들 중에서 민원이 많이 다발하는 사업장 전체를 대상으로 해서 현재 조사를 좀 했었고요. 다만 다환방향족탄화수소나 벤조피린 같은 경우에는 기준 자체가 없어서 좀 논란이 일부 있긴 있는데요. 문제가 되는 시설에 대해서는 저희가 강력한 조치를 할 예정이고 그다음에 이전이 가능한 업체들에 대해서는 또 이전도 권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 김준연 위원 왜냐하면 지금 선진국이랑도 차이가 많이 있더라고요. 이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거 보니까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더 예산이 들더라도 도민,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 힘써 주시기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준연 위원 그런 거는 발생되면 안 되겠고요. 그것 좀 설명 잠깐 해 주시고 토지정보과에서 행사비용으로 6,319만 원을 변경금액에 넣었어요. 공인중개사 연수교육 강사료로 인한 지출인데 그거 구체적으로 설명이 만약에 힘들다 그러면 담당과장님이라든가 누가 하셔도 되고요. 아니면 나중에 자료로, 하루 행사가 6,300만 원이면 크면 크고 적으면 적은 건데 그 행사비용 6,300만 원이다, 더군다나 부동산 중개업 운영에 쓴 거기 때문에 그것 좀 설명해 주시죠.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네, 설명드리겠습니다. 불용사업은 총 5건이 되겠습니다. 그중에서 4건은 사업집행에 따른 부득이한 집행잔액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4건에 대한 내역을 말씀드리면 기업형 임대주택 자문위원회를 당초 5번 개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산으로 4회 개최해서 4회를 집행한 거고요. 그리고 도시재생과의 위원회 개최 수도 당초 도시재생위원회가 5번 정도 열리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시군에서 신청을 해야 우리가 위원회를 개최해서 심의를 합니다. 그래서 시군에서 신청한 횟수가 당초 생각보다 줄어들어서 2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또 하나 건축행정정보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 암호화 솔루션 사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초 도입사양을, 전문용어입니다만 8코어로 도입하는 것으로 했는데 그거보다 경비를 저렴하게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양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도시재정비 관련해서 교육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작년에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개설되면서 거기서 교육수요를 일부 받았습니다. 그래서 도 자체적인 교육수요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집행잔액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부분은 반영을 해서 17년도 예산에 줄여서 담아놓은 상태입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그렇습니다. 부득이하게 발생한 것이고요. 나머지 1건이 있는데 도시재생지원센터 운영비 5억 원이 예산부서 부동의로 집행이 유보된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총 10억인데 5억 가지고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작년에 운영했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예산 변경이 1건 있습니다. 건전한 부동산 중개업 제도운영 건인데요. 이 부분은 당초에 공인중개사에 대한 연수교육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법적 교육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당초 전문교육기관에다 위탁하려고 계획을 했습니다만 도에서 직접 추진하는 것으로 변경을 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공인중개사 교육에 따른 강사비 지급을 우리 예산편성지침상 사무관리비가 아니고 행사운영비로 해야 된다는 지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침에 맞게끔 하기 위해서 편성 목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 위원장대리 박재순 김준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있으면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찬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지금 말씀하셨듯이 시군별로도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어서 경기도 같은 경우에는 31개 시군 중에서 지금 6개 시에서 설치를 해 놓고 있습니다. 안양을 비롯해서 수원, 성남, 평택, 시흥, 의왕 6개 시에서 센터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지금 도시재생 부분이 아직은 활성화됐다고 보기는 사실 어려운 초보단계인데요. 경기도에서 설치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시군센터와는 별도로 시군에서 도시재생특별법에 따른 전략계획과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컨설턴트 역할도 해 주고요. 그리고 도시재생대학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이론과 실무교육을 통해서 자기 마을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이런 심층교육도 지금 하고 있습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지금 맞춤형 정비사업이라고 해서 계획수립비 지원해 주는 사업이 있고요. 올해 처음으로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이라고 해서 2건 정도를 선정해서 내년부터 사업예산을 지원할 계획에 있습니다. ○ 김종찬 위원 그래서 공모를 하거나 이렇게 하는데 사실 도시재생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재개발 정도 수준을 지역에서 원한다고 하면 필요한 예산이라든가 경비가 수십억에서 수백억 정도 들어가게 되는데 사실상 그런 정도도 공모가 가능해서 거기에 대한 어떠한, 대전이라든가 일부 시군에 그런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하면 그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 현상에 대해서 지역에서 잘 몰라요.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그만큼 낼 수 있는 전문적인 어떠한 그런 컨설팅이 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지금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은 전면철거방식이 아닙니다. 현지에 있는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현지개량방식이거든요. 그래서 말씀하신 재개발ㆍ재건축과 같은 전면철거형 방식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하기는 곤란한 사항입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도시재생사업의 타입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근린재생형이라고 해서 마을단위 재생사업이 있고요. 경제기반형이라 해서 말씀하신 대규모로 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은 근린재생형 사업이 되겠고요. 사업비는 100억 이내의 사업……. ○ 김종찬 위원 그러니까 그 판단을 어떻게, 지역에서 우리 마을은 이런 식으로 해서 프로젝트가 한 100억짜리가 되는데 이 사업을 진행하도록 요청해 달라고 도로 올리거나 하게 되면 그런 것이 검토가 가능한 건지 아니면 지역에서는 이렇게 1,000만 원, 2,000만 원짜리 마을가꾸기라든가 벽화그리기 이런 정도 소규모 마을개선운동을 하는 건지 그 부분에 대해서.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예를 들면 시단위에서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은 규모에서 큰 규모까지. 그런데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에 국한에서 말씀드린다면…….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네, 그거는 저희가 올해 공모를 해서 선정해서 내년부터 사업을 지원하게 될 텐데요. 그 사업규모는 100억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도에서 50%, 시군에서 50% 분담하는 걸로 지금 계획되어 있습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사무관리비라고 하는 것이 보통 회의비 등을 포함해서 내역으로 잡혀있는데요. 그거는 회의실적이 당초 계획보다 줄어든 그런 사항들이 많은 걸로 보고 있습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그러니까 사무관리비의 내역들이 일반적으로 회의비라든지 그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당초 계획보다 적게 개최됨으로써 발생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지미연 위원 그런데 지금 그게 도시재생과도 55%, 너무 과하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계획은 했으나 불필요해서 안 열린 건지 아니면 과다 책정이 된 건지. 이게 모든 부서가 이 사업은, 이 예산은 거의 100% 소진이 되는데 지금 여기 국만, 특히 주택정책과는 여비가 또 10% 이상 불용이 나오고. 어떻게 보면 행정운영경비 같은 것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고 작년도 예산에 준해서 집행실적을 유추해서 충분히 효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걸 보면 뭔가가 방만했나 아니면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안 된 건지, 의욕은 있으나 몸이 안 따라 준 건지 아니면 특별하게 무슨 정책이 변경된 건지 가늠이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거는 제가 봤을 때 조금 치욕 같아요. 다른 예산도 아닌 내부에 있는 경비가 이렇게 많이 불용이 떨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있고 여비도 마찬가지로 도시재생과는 59%의 집행실적밖에 안 가져 오기 때문에 차후에는 이런 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왜냐하면 우리는 소홀하게 봤던 예산이 타 부서에서는 절실했던 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우리가 좀 깊이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처 제가 그것까지 못 챙겼는데 존경하는 지미연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발생사유를 한번 짚어보고 앞으로 그런 것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안승남 위원 안승남입니다. 결산서 내용을 보다 보면 여러 가지 부분들이 눈에 잡히는데 이것은 사실 모든 국에 여쭤보고 싶은 건데 시간관계상 과장님들하고 담당자들께서 한번 고민을 해 주세요. 집행이 100% 됐다고 적혀 있는데 이 집행이 우리 경기도에서 예산이 떠나서 지자체로 간 거예요. 그러면 지자체에서도 이 예산이 정말 집행됐는지 확인했는지 저는 궁금해요. 그런데 대부분 자료를 제가 쭉 보다 보면 경기도에서는 예산이 집행됐으나 지자체에서 실행이 안 되고 예산이 묶여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우를 집행률 100%라고 표기해 놓으면 나는 책임을 다 했지만 그건 지자체가 안 한 거다. 그런데 우리는 몰라요. 지금 제가 이 얘기할 때 아차 하고 느끼는 담당부서의 사업명이나 내용들이 떠오를 겁니다. “이거 경기도가 종결지었기 때문에 집행률 100%입니다.”라는 건 맞지만 지자체에 내려간 것도 만약에 집행이 안 되고 예산이 통장에 그대로 남아 있고 실제로 지역에서 계약조차도 하지 않고 있고, 이거 어떻게 합니까? 경기도에서는 이러면 되겠죠? 때 되면 그냥 반납 받으면 된다고. 그런데 오늘 이 결산자료에는 분명히 집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우리가 결산심사할 때 그걸 챙길 수 있는 위원님이 안 계세요. 왜? 위원님들이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지금 존경하는 지미연 위원님도 얘기하셨지만 정말 몇천만 원, 몇백만 원이 아쉬워서 쩔쩔매는 부서가 있는데 우리 사업부서에서 돈이 떠났다고 그래 가지고 집행률 100%라고 자신 있게 써놔도 되는가. 그래서 저는 우리 동네 좁은 구리시지만 구석구석 걸어 다니다 보면 경기도에서 예산 받아온 거 막 자랑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몇 달이 지나도 아직 진행 안 된 게 눈에 보여서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런데 예산 주셔서 고맙지만 구리시뿐만 아니라 31개 시군에 내려 보낸 예산과 관련해서 우리 위원들이 오늘 집행률 따져서 꼼꼼히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해당 지자체에 확실하게 예산이 집행되고 있는지를 여기 계시는 존경하는 경기도의 훌륭한 공무원 한 분 한 분 역할을 좀 해 주세요. 그래야지 이 심장의 뜨거운 피가 모세혈관까지 가서 움직이는 거 아닙니까? 나중에 불용돼서 올라온 거 미리 예방 못 한 거 아니에요. 정말 챙겨주시고요. 저는 도시주택실에 가장 관심 갖는 사업 중의 하나가 경기부동산포털 관련입니다. 왜냐? 제가 처음 초선 때 도시환경위원회 간사 할 때 이 사업예산 다 깎으려는 것을 제가 못 깎게 막고 계속 살렸어요. 왜냐? 이거는 정말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서 경기도민들이 토지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거든요, 지금 보면. 그런데 95%면 훌륭하지만 왜 100% 집행이 안 됐나 아쉬워요. 이유가 있겠지만 이 경기부동산포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접속률이 많은 포털사이트 중의 하나입니다. 정보 계속 업그레이드 해 주셔야 되고 관리하셔야 되고 우리 부동산 하시는 분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여기 들어가서 정보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계속 집행부에서 위원님들께 보고하고 왜 집행이 안 됐는지 설명하시면서 도시환경위원회에서 항상 자료를 제대로 업그레이드하고 더 확대되고 또 여기에 붙일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 붙여 가지고 계속 좀 살려주세요. 이거 경기도의 자랑이고 대한민국 전체의 토지와 건물과 주택 이거 오픈해야만 사기 치는 사람들 막을 수 있고 선의의 피해자 막을 수 있습니다. 이거 신경 써주시고요. 그다음에 제가 도시환경위에 있을 때 뉴타운 관련, 도시재생 관련해 가지고 아주 적극적으로 뛰다보니까, 여기 지금 보니까 재정비사업 관련해 가지고 교육사업이라든가 용역사업이라든가 이게 또 100% 다 돈을 못 썼네. 절약한 거면 좋지만 정말 할 수 있는 거를 안 했다고 하면 이것은 해당 상임위에서도 지적하셨겠지만 예산편성할 때 충분한 의미를 담아서 세운 예산에 대해서 정말 우리 집행부서의 과에서 담당자들이 시군과 의논해서 정말 예산을 쓸 수 있게끔 계속 챙겨주실 것을 당부드리면서 제 발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이정애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도시재생사업이 어떤 가시적인 효과를 보려고 그러면 계획부터 제대로 수립을 해야 되고 거기에 또 주민들도 같이 지자체하고 합심해서 사업을 해야 성과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기도에서 제대로 된 도시재생사업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부천, 도시재생특별법이 2013년도에 도입이 돼서 15년부터 사업이 시작되고 있는데요. 부천에서 지금 한두 개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도 부천 사업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금 그 성과를 예단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앞으로 1∼2년을 더 해야 그게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지금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도시재생사업은 예전에 소규모 어떤 주민 주거환경개선 또는 생활편의개선 이런 사업이었을 겁니다. ○ 이정애 위원 그렇죠. 말씀 끊어서 죄송한데 그런 사업인데 지금 어쨌든 간에 경기도에서 재생사업에 예산을 지금 준비하시는 게 100억이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럼 100억을 차라리 예를 들어서 한군데 그런 데 잘하는 데 잘되게 투자를 딱 해서 하면 그게 표시가 나는데, 여러 가지로 문제점은 있겠죠, 들여다보면.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그런데 그게 공모사업이라고 해서, 공모사업 뻔해요, 솔직히. 공모사업들은 대부분이 그냥 그 예산을 갖다가 연구용역도 안 나온 상태에서 공모로서 사업이 선정이 되면 그 사항 안에서 정말 세부적으로 디테일하게 변신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실질적으로.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그렇습니다. 지금 계획도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은 그렇게 계획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100억짜리 사업을 두 군데 정도 시범적으로 해 보겠다. 그래서 공모사업을 통해서 쪼개기로 하는 게 아니고요. 두 군데를 골라서 개소당 100억 사업짜리로……. ○ 이정애 위원 그러면 그 사업은 어쨌든 간에 다시 한 번 또 지켜보겠습니다. 그 안에 그런 문제점들이 있다는 거를 좀 하시고 공격적으로, 왜냐하면 대부분 보면 공무원들이 한계가 있겠죠. 자기 할 수 있는,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도 이해하는데 어쨌든 간에 이런 큰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100억 정도면 큰 프로젝트예요. 그럼 시군하고, 어느 시군이 이게 응모가 돼서 할 때는 우리가 모니터링도 하고 제대로 사업이 되고 있나, 잘 되고 있나 이런 게 나와 줘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저희들도 인정이 되고 위원들도 자꾸 권장을 하고 이걸 확대해야 된다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이거 해서 표시도 안 나고 코끼리 비스킷밖에 안 된다 이런 느낌이 가면 자꾸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 거죠, 회의를 느끼고. ○ 도시주택실장 백원국 위원님, 한 말씀 더 드리면요. 지금 경기도형 도시재생사업에 김종찬 위원님께서도 관심 있으시고 해서 좀 덧붙여 말씀드리면 저희가 사업하려고 하는 것은, 안승남 위원님께서도 조금 전에 실집행률을 올려야 된다는 말씀 주셨고요.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처음부터 계획이 수립되어 있느냐 그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돈이 내려온 상태에서 계획을 수립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집행률이 부진할 수밖에 없는데 저희가 하려고 하는 사업은 먼저 사업계획이 수립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31개 시군 중에서 지금 그렇게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수립한 지자체가 지금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부천이 제일 먼저 나타났고 평택, 이런 계획을 수립한 시군을 신청 자격조건으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행률도 올리면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국장님, 자료를 보니까 환경국 이월사업비 현황에 기후대기과하고 자원순환과하고 이월된 사업이 있어요. ○ 이정애 위원 그런데 특히 저는 굳이 제가 부연설명을 안 드리더라도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굉장히 환경문제하고 연관이 돼서 온 관심사인데 여기 자료에 보면 이게 불용된 게, 이월된 게 날짜, 3회 추경도 했지만 굳이 왜 이렇게 3회, 본예산에 안 올리고 3회 추경 이런 마지막에 올리니 당연히 이게 행사를 할 수가 없죠. ○ 환경국장 김건 이거는 우선 3회 추경 때 위원님들이 좀 보태주셨고요. 다만 시기적으로 그걸 수립해서 추진하는 데 시간이 좀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올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그리고 사유에 보니까 국장님, 미세먼지 같은 경우는 저희가 상식선에서 알기는 보통 4월 중국발 황사 현황 이런 걸로, 그때가 미세먼지가 가장 높게 수치가 나올 거라고 판단하는데 여기 자료에 보면 “미세먼지가 많아지는 11월 달”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이게 설득력이 있는 표현이냐 싶어지는 거죠. ○ 이정애 위원 아, 그래요? 네, 그럼 제가 좀 잘못 이해하고 있었네요. 그건 그렇게 이해를 하겠습니다. 어쨌든 간에 환경국에서 환경정책에 대한 거 뭐 여러 가지 이런 거를 잘 준비하셔서 제대로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환경국장 김건 설립취지에 100억 원의 돈은 환경산업 기술지원을 위해서 만들어졌고요. 50억 원이 환경단체와 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 환경국장 김건 현재 목적은 두 가지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환경산업업체의 기술지원 그다음에 또 하나는 민간단체 환경보호활동 이렇게 지금 사용하고 있습니다. ○ 환경국장 김건 현재 목적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조례를 개정한다면 여지는 있지만 규모 자체가 워낙 크고 기금의 이자율이 너무 낮아서 현재는 좀 어려움이 있는 실정입니다. ○ 환경국장 김건 배출량 기준으로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노력이 가능한데요. 문제는 저희 도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저희 도에서 발생하는 것만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고 주변국이라든가 주변 인접 자치단체에서 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미세먼지 체감량으로 따져보면 그러면 약 한 10%∼20% 정도의 효과가 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 환경국장 김건 네, 배출량은 줄일 수 있지만 도민들이 체감하는 미세먼지 측정 양 기준으로 보면 한 20% 주는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 박동현 위원 그런데 점점 갈수록 이렇게 미세먼지가 더 발생하는데 알프스 프로젝트 그 정도 갖고, 지금 현재 성분분석기도 없고 여러 가지 열악한 상태에서, 예산도 수반도 안 되고 열악한 상태에서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일단 아무튼 그거 2020년까지 꼭 3분의 1로 줄일 수 있도록……. ○ 위원장대리 박재순 박동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있습니까? 다음은 김종찬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종찬 위원 아까 미세먼지 대책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지역에 보게 되면 아스콘공장이 나중에, 처음에 먼저 설립됐지만 주거지랑 밀접돼 있는 경우가 있어요. ○ 김종찬 위원 그래서 여러 가지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만 아까 이전이라든가 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환경기준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는 도의 방침이 어떤 게 있습니까? 이전한다고 그러면 이전한다고 하지만 절차가 10년, 20년 걸려버리면 똑같은 거니깐요. ○ 환경국장 김건 일단 아스콘공장이 사실 저희 도의 여러 지역에서 민원이 다발하다 보니까 저희 도에서도 관심을 갖고 아스콘공장에 대해서 시설점검, 단속을 현재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그리고 아스콘공장 사업주들을 만나서도 노력 및 이런 걸 좀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도에서 지금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아스콘공장의 현재 측정되지 않은 요소들,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다환방향족탄화수소라든가 벤조피렌 같은 그런 물질의 측정치에 대해서는 기준 자체가 없기 때문에 환경부에 기준 설립을 지금 건의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나머지 요소에 대해서도 민원이 아주 많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전계획이 있는 경우에는 좀 조속한 이전을 당부하고 있고 또 주변시설에 피해가 큰 데 대해서는 방지시설과 방지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저희가 시설지원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협의해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환경국장 김건 사업장이 1ㆍ2ㆍ3종까지는 저희 관할이고요. 3종 일부와 4ㆍ5종은 시군 관할인데 일부는 저희가 관할하고 있고요. 일부는 또 아닌 경우도 좀 있습니다. 1,300만을 대표하고 또 도와주는 부서가 주택실, 환경국 또 수자원본부. 참 생활에 밀접한 그런 부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도민들에게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세 부서가 어느 부서보다도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서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도민들을 위해서 더 헌신하고 봉사해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불용되었던 부분 또 사고이월되었던 부분 또 명시이월되었던 부분들을 우리 위원님들께서 다 지목하지는 못했지만 각 부서의 과장님들을 비롯한 모든 실무자들께서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8년도에는 좀 더 꼼꼼한 그런 예산을 세우시고 또 그러한 일들을 잘 펼쳐서 도민들을 위해서 일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환경국이나 도시주택실이나 수자원본부가 더 빛나는 그러한 부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고요. 사실 가뭄으로 인한 수질 부분에 있어서 좀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사실 물은 우리 도민들에게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특히 수자원본부에 계시는 우리 본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서 좀 더 심사숙고해 주시고 노력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들이 안 계시므로 질의 종결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상으로 도시주택실, 환경국, 수자원본부 소관 결산에 대한 질의 종결을 선포합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여성가족교육협력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먼저 김복자 여성가족국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여성가족국장 김복자입니다. 결산심사에 노고가 많으신 송한준 위원장님과 모든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부터 2016회계연도 결산개요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간부공무원 소개를 마치고 위원님들께 배부해 드린 2016회계연도 결산개요서를 중심으로 제안설명드리겠습니다. 1쪽 2016년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입니다. 세입예산은 총 2조 1,930억 8,071만 원이며 세출예산은 총 2조 175억 3,172만 원입니다. 지출액은 2조 161억 6,565만 원이고 이월액은 5억 500만 원입니다. 집행잔액은 8억 6,107만 원으로 불용률은 0.01%입니다. 2쪽 세입결산 과목별 내역입니다. 징수결정액은 2조 1,962억 7,124만 원이며 수납액은 2조 1,961억 2,400만 원입니다. 부서별 세입결산내역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5쪽부터 8쪽 세출결산내역입니다. 여성정책과에서는 여성가족개발정책 등 5개 정책사업에 185억 5,974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여성권익가족과에서는 여성가족권익증진 1개 정책사업에 313억 624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보육정책과에서는 보육의 공공성 강화 및 양질의 서비스 제공 등 3개 정책사업에 1조 8,431억 3,510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아동청소년과에서는 건전청소년 육성 등 4개 정책사업에 1,012억 3,678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다문화가족과에서는 다문화정책개발 등 3개 정책사업에 74억 7,271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여성비전센터에서는 여성이 행복한 일과 가족 등 3개 정책사업에 144억 5,508만 원을 집행했습니다. 다음은 9쪽 주요 불용액 사유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성정책과의 성인지력 향상 사업은 집행잔액 발생으로 불용하였고 새일센터 운영 사업은 보조인력 1명이 조기퇴직하여 인건비 잔액 발생으로 인한 불용액이며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 10 to 4 일자리만들기 사업은 예산절감에 따른 불용액입니다. 보육정책과의 공공형 어린이집 현판지원 사업은 예산절감에 따른 불용액입니다. 아동청소년과의 저소득아동지원 사업 등 2개 사업은 수요감소에 따른 불용이며 아동복지시설 모범아동 세계문화유산탐방 등 2개 사업은 집행부 부동의사업으로 예산 배정유보에 따른 불용액입니다. 다문화가족과의 결혼이민자 국내적응 지원 사업은 집행잔액 불용이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 지원 사업은 집행부 부동의 예산으로 집행예산 배정유보에 따른 불용입니다. 국제이주기구 지원 사업은 사무공간 축소에 따른 보증금, 관리비 절감에 따른 불용예산이 되겠습니다. 여성비전센터에서는 무기계약근로자의 퇴직금을 예산에 반영하였으나 퇴직자가 발생되지 않아서 불용됐습니다. 다음은 10쪽 예산의 이용과 전용입니다. 예산의 이용은 해당사항이 없으며 예산 전용 내역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여성정책과에서는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서 여성정책과 소관 14개 사업을 전용하였습니다. 보육정책과에서는 국제보육포럼 개최와 관련하여 법령상 위탁근거의 부재로 민간위탁금 5,000만 원을 행사운영비로 전용하여 집행하였습니다. 아동청소년과에서는 유해환경감시단 워크숍 사업의 참석자 숙식비 지급을 위해서 행사운영비 1,475만 원을 행사실비보상금으로 전용하였고 도 학교 밖 청소년 프로그램 운영사업과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사업은 방송매체 광고비 지급을 위하여 민간위탁금 1억 1,000만 원을 사무관리비로 전용하여 집행하였습니다. 여성비전센터에서는 여성가족기관 종사자 교육 및 워크숍의 참가비 지급을 위해서 아이돌봄 광역거점기관 운영 등 4개 사업의 행사운영비 698만 원을 행사실비보상금으로 전용 사용하였습니다. 다음은 12쪽 예산의 변경과 이체입니다. 여성정책과에서는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 여성정책과 소관 5개 사업을 변경하였습니다. 다문화가족과에서는 다문화 UCC대회 시상금 지급을 위해 민간경상사업보조금 1,000만 원을 기타 보상금으로 변경 사용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예산 이체 내역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2015년 12월 24일 자 및 2016년 11월 1일 자 조직개편에 따라 108건의 예산을 이체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신다면 세부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음은 21쪽 이월사업비 현황입니다. 명시이월은 8건 5억 500만 원으로 여성정책과 성인지력 향상 등 3건, 보육정책과의 보육정보 교환으로 보육발전 지원사업 1건, 아동청소년과의 아동발달지원계좌 등 3건은 16년도 정부합동평가 우수에 따른 교부세로 연말에 확정되어 명시이월하게 되었습니다. 아동청소년과의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조사 계획수립 용역비 2억 원은 조례 일부 개정에 따른 용역사업 추진방향 변경으로 명시이월하게 되었습니다. 22쪽 2015회계연도 결산검사 개선ㆍ권고사항 조치결과는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23쪽 기금결산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2016년 말 현재 기금총액은 329억 5,021만 원입니다. 성평등기금은 128억 4,637만 원이고 청소년육성기금은 201억 384만 원입니다. 수입내역은 징수결정액은 337억 3,858만 원이고 성평등기금은 132억 8,672만 원이고 청소년육성기금은 204억 5,186만 원입니다. 24쪽 기금 지출내역입니다. 기금 지출액은 7억 8,835만 원으로 성평등기금은 공모 및 자체사업 등에 4억 4,035만 원을 지출했으며 청소년육성기금은 청소년 학업장학금 지원 사업에 3억 4,800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김복자 여성가족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정상균 교육협력국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교육협력국장 정상균입니다. 존경하는 조광명 위원장님 그리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님 여러분! 열린 평생교육과 교육협력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해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유인물 4쪽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입니다. 세입예산은 209억 2,173만 4,000원이고 세출예산현액은 2조 6,325억 4,155만 6,000원이며 이 중 96.4%를 집행하였습니다. 다음은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예산현액은 209억 2,173만 4,000원이고 징수결정액은 208억 5,130만 4,950원이며 이 중 99.7%를 수납하였습니다. 주요 수납내역을 보고드리면 도비반환금 등 세외수입 10억 4,518만 560원과 국고보조금 등 보조금 197억 4,948만 5,000원이 되겠습니다. 다음 7쪽 세출결산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세출예산현액은 2조 6,329억 4,355만 6,000원으로 그중 96.3%를 지출하였고 142억 1,005만 6,000원을 명시이월하였습니다. 집행잔액은 819억 9,424만 9,300원이 되겠습니다. 다음은 단위사업별 집행잔액 발생 내역입니다. 교육정책과는 교육재정 지원 등 단위사업을 하였고 집행잔액이 817억 394만 6,570원 발생하였습니다. 다음 8쪽입니다. 교육협력과는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 추진 등 사업에 집행잔액이 2,343만 7,400원, 도서관정책과는 도서관 확충 및 운영 활성화 등 사업에 2억 6,686만 5,330원의 집행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세부내역은 유인물로 갈음하겠습니다. 다음은 9쪽 주요 불용액 사유입니다. 법정부담금 816억 8,589만 1,820원은 2016년 12월 28일 기준 도금고 수납액을 교육비특별회계로 전액 전출하였으나 예산액 대비 도금고 미수납에 따른 집행잔액이며 도서관 정보화사업 지원 집행잔액 2억 원은 사업예산 중 일부를 예산담당관실에서 집행유보한 금액입니다. 다문화 전자책 등 구입사업 집행잔액 5,000만 원은 역시 예산담당관실에서 사업예산 전액을 집행 유보한 금액입니다. 다음은 10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 변경에 대하여 설명드리겠습니다. 예산 이용은 해당 없습니다. 예산 전용은 교육정책과의 경우 2016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 심의 시 상임위 및 예결특위의 부대의견에 따라 출연금 중 인건비를 제외한 예산을 공기관 등에 대한 자본적 대행사업비로 전용한 사항으로 창의테마파크 출연금 중 9억 5,800만 원을, 인성테마파크 출연금 중 4억 2,840만 원을 전용하였습니다. 도서관정책과의 독서문화 활성화 사업의 경우 경기다독다독 축제로서 도 사무인 점을 감안하여 사업성격에 맞게 민간행사 사업보조금 7,000만 원을 행사운영비로 전용한 사항입니다. 책이음 서비스 시스템 구축 지원사업은 국비보조 사업 편성으로 사업비 중 전산프로그램 변경 및 장비구입 비용 8,095만 원을 자치단체 자본보조로 변경한 사항입니다. 예산 변경은 각종 심의수당 추가 발생 등으로 사무관리비 부족이 예상되어 교육정책과와 교육협력과에서 국내여비 각 400만 원을 사무관리비로 변경한 사항입니다. 다음은 11쪽 계속비 및 다음연도 이월사업비 현황입니다. 계속비는 해당 없습니다. 명시이월 사업은 총 8건으로 G-MOOC 사업 연구용역비 2,900만 원은 공개입찰 2회 유찰로 인해 사업추진이 지연되어 명시이월된 예산입니다. 단원고 졸업생 대학생 대학등록금 지원사업 3억 424만 6,000원은 2016년도 지원 대상자 중 국비장학금 등 기타 장학금 수혜에 따른 미신청자에 대해 다음연도에도 선정ㆍ지원하기 위하여 이월한 예산입니다. 따복기숙사 건립사업 137억 3,921만 원은 16년 말 공사계약이 체결됨에 따라서 이월된 예산으로 금년 8월 준공 예정입니다. 파주교하도서관 건립 BTL사업은 국비 자금이체가 지연되어 1억 3,760만 원을 명시이월하였으나 17년 3월 자금교부 및 집행하였습니다. 사고이월은 해당 없습니다. 다음 2015회계연도 결산검사 개선ㆍ권고사항 조치결과는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시면 유인물 12쪽으로 갈음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14쪽 학교용지부담금특별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예산현액은 3,060억 2,590만 원으로 이 중 공공예금 이자수입, 순세계잉여금 등 총 4,082억 4,797만 2,000원을 징수결정하고 그중 99.5%인 4,061억 3,086만 2,000원을 수납하였으며 미수납액 및 이월액은 19억 7,870만 9,000원이 되겠습니다. 미수납액 및 이월액 사유를 말씀드리면 임시적 세외수입 중 일반부담금 10억 2,537만 2,000원은 학교용지부담금 체납액으로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압류조치 완료하였고 지난연도 수입 중 9억 5,130만 9,000원은 압류조치 중입니다. 202만 8,000원은 압류재산을 처분하여도 체납액에 충당할 잔여액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어서 16쪽 특별회계 세출결산입니다. 세출예산현액은 3,060억 2,590원이며 그중 99.8%를 지출하였습니다. 7억 5,254만 4,000원이 불용되었습니다. 주요 불용액 사유에 대해서 설명드리면 학교용지 확보 불용액 1억 2,827만 9,000원은 학교용지매입비를 경기도시공사에서 조기지급한 데 대한 선납 할인액이며 징수교부금 불용액 6억 2,426만 5,000원은 16년 상반기까지 징수실적을 정산하여 집행한 결과입니다. 존경하는 조광명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교육협력국 소속 직원 모두는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금번 심의 시 지적해 주시고 제시해 주시는 사안에 대해서는 업무에 적극 반영하여 도민의 소중한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광명 위원장님과 위원님들의 아낌없는 지도 편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제안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정상균 교육협력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할 실국장을 지명하신 후 해당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동현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아까 제안설명드릴 때 말씀드린 것처럼 예산을 확보하고 난 뒤에 계약이 늦게 돼서 이월했는데 금년 8월 7일 날 준공 예정이고요. 현재 공정은 한 85% 정도 진척되어 있습니다. ○ 박동현 위원 그런데 여기 별다르게 330이 있고 이건 뭐 중요하지, 또 지출액이 2억 2,600인데 제가 알기로는 이것을 경쟁입찰했을 것 아니에요, 그렇죠? 무슨 얘기냐 하면 경쟁입찰…….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그 부분에 대해서 사실은 설계를 조속히 마치고 금년 3월 완공했으면 하는 그런 내부 일정 추진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설계가 좀 늦어지면서 공사발주도 약간 늦어져서 그렇게 됐습니다. ○ 박동현 위원 설계라는 게 뭐예요? 기존에 있는 기숙사를 리모델링하는 거니까 인테리어 설계를 하겠지요, 그렇죠? 그런 설계인데 그게 뭐 그렇게 오래 걸릴 것도 아니고 설계 때문에 저기 할 사항은 아니에요. ○ 교육협력국교육협력과장 김재승 교육협력과장 김재승입니다. 구조진단은 나중에, 설계할 때는 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이게 내진설계를 하지 않는 이상은 안 돼서 설계변경을 했습니다. ○ 박동현 위원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이게 앞뒤가 다 안 맞아요. 왜냐하면 원래 먼저 구조진단한 다음에 구조가 안전하다 그러면 거기다 하는 게 맞는 거지 하다 보니까 이거 부실하다 그래서 구조진단하고 그걸 또 공사비에서 빼다가 쓰고, 예산을 세워야지 왜 그걸 공사비 거기다 넣습니까? 그게 잘못된 거지요. ○ 교육협력국교육협력과장 김재승 그러니까 설계용역만 할 때는 용역비에서 하는데요. 당초 설계가 구조진단이 안 들어가서 바로 설계를 공사비로 집행하는 거지요, 공사로요.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이게 사실은 신규 예측이 좀 어려웠고요. 새로 들어와서 어려웠고 또 시군에서는 예산 부족 되면 애들이 제때제때 지원을 못 할까 봐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많이 들어온 부분이 있고 지금 급식아동 수가 약간 감소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급식대상자가 전출입이 있고 단기방학이 있으면 저희가 집행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행률이 조금 낮았습니다. ○ 이은주 위원 하여튼 지금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정확한 수요조사에 대한 부분 또 세출예산이 과다편성되지 않도록 우선 부탁드리고요. ○ 이은주 위원 국장님, 작은도서관 운영 활성화 사업에 궁금한 거 하나만 여쭤볼게요. 지금 신규 작은도서관 수는 점점 줄고 그다음에 휴관하고 폐관하는 도서관 수가 자료에 보면 약 70여 개소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경기도에서 운영 활성화사업이라고 해서 매년마다 본예산에 책정을 하고 있는데 작은도서관을 정말 활성화시키려고 하는 개선방안이 있는 건지 그래서 매년마다 예산을 세우는 건지 아니면 일괄적으로 매년마다 세우니까 그대로 세우는 건지 정확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들한테는 활성화가 잘 되면 굉장히 높은 서비스를 줄 수 있는 제도인데 확실하고 정확하게 주민들한테 다가서는 이런 방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방안을 우선 한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우선 위원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저희도 작은도서관이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활성화되길 기대하고 있고요. 그래서 2017년 예산을 세울 때 작은도서관의 냉난방비 지원사업을 올해 신규로 했습니다. 그래서 17년도에는 작은도서관이 냉난방, 시원하거나 따뜻하게 해서 아이들하고 엄마들이 올 수 있게 그렇게 하고 있고 또 이번에 저희가 추경을 하면서 지역공동체 학습플랫폼 사업을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경우에 작은도서관이 중심이 돼서 거기에 아이들이 나와서 공부도 하고 다음에 미래교육이나 이런 교육도 받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더 확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도서관에 대해서는 지금 1,382개 있는데 부득이 평가를 통해서 좀 잘하는 곳은 또 운영비를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지원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사항들도 점차 더 발전시켜 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은주 위원 질 높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작은도서관 안에서도 냉난방기는 기본시설에 관련된 부분인 것 같고요. 내용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박순자 위원 평생학습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에 관해서 질의 좀 하겠습니다. 이 공동체 지원사업의 경우 5년 지원사업이라 6년 차부터는 마을지원 여부를 검토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검토를 하는지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그동안 평생학습마을이 한 65개 되는데 지정을 해 놓고 5년 차까지만 경과돼서 6년 차의 지원구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6년 차 됐을 때 지원을 안 하게 되면 6년 차의 마을이 자칫하면 그동안 해 온 것도 소멸될 걱정이 돼서 6년 차도 지원을 해 주자 이렇게 생각을 했었고요. 6년 차를 지원하는 기본적인 기준은 코디네이터 인건비 정도를 지원해서 우선은 현재까지 이어온 행복학습, 평생학습마을이 운영이 지속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일단은 프로그램 자체가 우선 여성이 많이 참여하셔서 여성위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라든지 그분들의 마을공동체 활동이라든지 이런 게 있게 되면 프로그램을 개선해서 남성분들도 참여하고 코디도 남자분들도 활동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 갔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박순자 위원 글쎄요, 교육생들이 꼭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 코디네이터가 비중을 더 차지해야 된다고는 저는 생각 안 합니다. 오히려 여성들이기 때문에 남성 코디네이터가 사실은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쪽으로 성비율도 고려를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존경하는 이은주 위원님께서 작은도서관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사실 작은도서관 이 사업이 굉장히 좋은 사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홍보 부족인지 아니면 정말로 책 읽기를 싫어하는 우리 국민들의 그런 환경 때문인지 이런 문제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노력 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작은도서관 사업을 2017년 예산을 편성할 때 사실 시군 사업이므로 도에서는 일몰해야 된다는 그런 예산담당관실 내부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몰하게 되는 원인이 사업이 부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업이 잘 되고 있기 때문에 시군에서 해도 된다 이렇게 판단돼서 일몰사업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그건 안 맞다. 작은도서관은 방금 위원님 지적해 주시고 말씀 주시는 것처럼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원이 더 강화돼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일몰에 대한 예산 일몰조치를 극복하고 예산을 편성했는데 올해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역사회 학습플랫폼 이런 걸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도서관이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거기에 지역의 아이들이 와서 공부하고 학습하고 하는 이런 프로그램 그런 것들을 하려고 하고 있고 말씀드린 것처럼 냉난방비 지원사업 이런 걸 신규로 해서 점점 더 활동성이 높아지도록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우선 위원님이 말씀하신 홍보를 시군단위나 도단위나 SNS나 다양한 버스 영상이라든지 엘리베이터 영상,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를 강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득이 사립 작은도서관에서 운영인력이 없으니까 운영에 애로를 겪어서 조금 부족한 곳이 있는데 사실은 그런 곳에는 저희가 운영비 지원구조가 성립되기를 희망하지만 아직 도 전반의 예산형편상 그렇게까지는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저희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박순자 위원 그러니까 준비된 이 도서관들이 경기도 내 전체로 따지면 개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지 말고 계속 우리 주민들이 지역에서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 내지는 우리 도에서 그게 부족하다면 시하고 연계해서 시에다가 부탁을 하든지 지시를 하든지 그런 방법을 강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이정애 위원 그러면 민주시민교육 사업하고 경기도민주시민교육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하고 차이는 뭐예요? 이미 교육사업을 하고 난 다음에 다시 연구용역을 주신다는 거예요? 설명 좀 한번 해 주세요.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17년도에 예산이 편성됐었는데요. 그중에 계획 수립하고 사업에 대한 예산이 분리가 안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시민교육 계획 수립을 먼저 2,000만 원으로 하는 걸로 하고 5,000만 원은 민주시민교육 사업을 하는 걸로 했고요. 다음에 계획 수립한 것은 2,000만 원 예산으로 작년 9월 달부터 12월까지 경기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해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용역 하고 좀 더 뒤에 사업발주가 됐습니다. 용역을 한 이유는 저희가 민주시민교육을 하겠다는 예산은 편성됐고 과업은 설정됐지만 경기도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해서 어떤 정책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건가에 대한 설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용역을 한 겁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용역결과에 민주시민교육 사업의 방향이랄지 포럼 운영이랄지 이런 몇 가지 제안사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제안사항을 반영해서 2017년 사업을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민주시민교육의 정의부터 시작해서요, 그동안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정의가 각계 여러 개 있다면 정의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정책방향하고 다음에 경기도가 민주시민교육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 예를 들면 포럼이라든지 이런 걸 한다든지 또 사업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 이런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일단은 용역 과업물은 나왔고 그 사업을 올해, 그건 작년 이야기이고요. 올해는 평진원에 위탁을 줘서 하고 있는데 평진원에서 직접 하는 사업도 있고 예를 들어 매뉴얼 개발이나 이런 건 직접 하고요. 다음에 시군 공모사업으로 참여하는 시군에 공모를 해서 시군에 있는 단체나 이런 데서 참여할 때 사업을 공모하는 사업도 있고 그렇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저희가 평생교육 사업은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있어서 평진원의 6대 교육영역이 있고 해서 평진원에서 평생교육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행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네, 평진원 대행사업으로 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업구조, 예를 들면 시군의 보조사업을 하든지 이런 부분들은 사업구조는 검토할 수 있습니다. ○ 이정애 위원 작은도서관에 대해서는 다른 위원님들이 질의를 하셨고 지금 자료에 보니까 이것은 경기도 4개 시군에서 자동화기기 구입, 1억 원을 지원했어요. 지원했는데 집행률이 굉장히 저조해요, 33.3%밖에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고 향후에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앞으로 추진계획은 어떻게 하실 건지에 대한 설명을…….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도서관 정보화 사업은 스마트도서관을 만드는 건데요. RFID를 이용한 도서 출입ㆍ반납을 자동으로 하는 그런 기기인데 그중에 2억 원 전액 예산을 유보하는 바람에 집행률이 낮습니다. 그래서 원래 1억 예산을 집행부에서 요청해서 수립했었는데 의회에서 2억 원이 증액됐었고 그 2억 원을 예산배정 유보를 해서 그래서 집행률이 낮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위원님, 저희 집행부에서는 사실 의회에서 편성해 준 예산을 잘 집행해서 도민들께 행정서비스가……. ○ 이정애 위원 왜 이쪽에만 해 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추진계획을 어떻게 진행되고 향후에는 어떻게 하실 건지 설명을 해 주셔야 저희가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바코드 사용해서 하는 RFID 방식의 도서관은 전체 49개 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더 편리하고 더 좋은 도서수납 방식이기 때문에 연차적으로 더 확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이게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보건복지부가 이 사업을 하다가 2016년도에 다시 이관한 사업이 되겠습니다. 하면서 예산을 반영했었는데 저희가 더 추계를 해서 1,500만 원 정도를 2016년 본예산에 반영했습니다. 하다 보니까 시도가 처음 하다 보니까 약간 혼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보건복지부가 이 사업을 한국보육진흥원에다 위탁을 했었는데 다시 안 되니까 2016년 5월에 한국보육진흥원이 전국공개입찰을 해서 가격을 다운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기존에 개당 15만 원 정도 예상했는데 이게 하다 보니까, 개당 5만 1,280원으로 다운되다 보니까 예산이 그만큼 절감됐습니다. 그런 부분이 되겠습니다. ○ 지미연 위원 그런데 가족여성연구원 운영도 보면 100% 다 추진실적이 나오고 이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여성연구원의 불용액이 20%까지 육박하고 있죠? 15∼20% 안에 있단 말이에요. ○ 지미연 위원 그건 연구원의 얘기고 지휘감독은 국장님이 가지고 계시니까 이것이 왜 반복되고 있는 건지, 그 사업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예측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과다계상이 습관적인 것인지 핵심은 그겁니다.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그게 가장 낮은 이유가 뭐냐 하면 저희가 2015년도에 경기도형 공보육을 추진하면서 연구원에다가 추진단을 두면서 그 사업을 했습니다. 그 사업이 처음하다 보니까 사실 매입이라든가 좀 더뎌진 부분이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예산이 한 8억 1,000 정도 남았었는데 그래서 이게 집행률이 낮았었고 그 사업 8억 1,000 남은 걸 이 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연이어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위원님.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그 당시 8월 달의 사정으로는 금년 3월까지 공사를 완료하는 목표를 가지고 업무를 추진했었습니다. 그래서 추경에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하려고 했었는데 설계가 늦어지면서 사업이 뒤로 밀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위원님, 3월 개원하는 게 훨씬 더 후학기 개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서 저희는 3월 개원을……. ○ 교육협력국장 정상균 서울대학교하고 하지는 않고요. 서울대학교는 저희가 30년 동안 부지를 빌려 쓰는 것, 임대에 대한 협약을 했던 사안이고 서울대학교 하는 사업은 아닙니다. ○ 지미연 위원 이렇게 되면 믿을 수가 없어요. 믿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이게 또 앞으로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그래서 거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지미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없으시면 여성가족국장님께 질의 좀 하겠습니다. 사실관계 좀 물어볼게요. 경기도 여성의전당 건립 관련해서요. ○ 위원장대리 조광명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 저희가 관련된 자료를 요청해서 봤더니 2014년도에 어쨌든 심의를 받으시고 그래서 15년도에 예산이 반영된 걸로 나타났는데……. ○ 위원장대리 조광명 도지사의 결재는 2015년도 1월 달에 계획서에 경기여성의전당 건립 지원 계획안이라고 하는 결재를 하셨습니다.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저희는 사실 몰랐었는데 그거 보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저희가 앞으로는 임대는 안 된다는 걸 명시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문화 관련 교육이라고 하는 것 말고 보통 사무실이나 교육장으로 넓게 쓰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는 거죠? 건축법 위반사항입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그러면 기부자를 위해서 선의든 악의든 결과적으로 보면 부지 기부자는 500평의 임야를 기부하고 대지 2,870평을 확보하게 된 케이스가 됩니다. 이 문제는 여성의전당을 짓는 데, 여성의전당의 필요성이라고 하는 건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 여성의전당을 짓는 과정,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애초 예산을 편성할 때도 우리 행정 일반원칙, 도지사의 결재가 나고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편성 먼저 하고 도지사의 방침 결재를 받은 이 과정부터 시작해서 투자심사의 조건부도 위반했고 그리고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예산집행이었습니다.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법인이 기부한 것은 사실 임야가 대지로 바뀌든 그건 용인시가 사실은 행정적으로 개발행위에 대한 허가를 하였습니다. 건축승인도 하였습니다. 그게 만약에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그 임야에 대하여는 만약에 용인시가 허가를 하지 않았다면 저희들이 도에서 지원을 할 수 없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행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아까 전에 말씀하신 부분에, 투자심사위원회의 승인에 조건을 붙였는데 17억 이상을 자부담하도록 했는데 사실 도가 추가지원을 하였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지방재정법 관련해서 2016년 9월 달에 도지사님 방침을 받아서 지원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위원님.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그래서 사실은 그냥 투자심사위원회의 조건부로 갔으면 가장 좋은데 또 하다 보니까 사실은 위원님도 아시다시피 공사를 하다 보면 추가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저희가 2016년 9월 달에 도지사님 방침 결재를 받아서 추가로 지원한 부분인데요. 그것은 지방재정법에 보면 그것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집행……. ○ 여성가족국장 김복자 지방재정법에 보면 17조1항4호가 되겠습니다. “보조금을 지출하지 않으면 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지방자치단체가 권장하는 사업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 가지고 사실 추가로 지원된 부분이 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조광명 국장님, 그 문제에 관해서는 충분히 제가 반박할 수 있고 지금 그 조항을 말씀하시는 건 굉장히 궁색해 보입니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저희 의회가 어떻게 판단을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스럽습니다. 계속해서 실국별 심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안전행정위원회 소관 결산에 대한 설명과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먼저 우미리 자치행정국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자치행정국장 우미리입니다. 바쁘신 의정활동 중에도 자치행정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는 송한준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1쪽입니다. 2016회계연도 자치행정국 세입ㆍ세출 총괄현황을 보고드리면 세입은 11조 9,803억 원이 수납되었고 세출은 예산현액 5,516억 원 중 집행액 5,409억 원, 이월액 2,800만 원, 집행잔액 106억 원으로 집행률은 98.1%입니다. 다음은 2쪽 세입결산내역입니다. 세입예산현액은 11조 1,004억 원이고 징수결정액은 12조 2,411억 원이며 수납액은 11조 9,835억 원으로 징수결정액 대비 97.9%를 수납하였습니다. 미수납액은 총 2,575억 원으로 그중 결손처분액은 459억 원이며 다음연도 이월액은 2,116억 원이 되겠습니다. 다음은 5쪽 결손처분 사유별 현황을 보고드리면 결손액은 총 459억 3,700만 원으로 그중 무재산 결손처분액은 241억 5,200만 원으로 52.5%이며 그 외에는 체납자 행방불명 6억 8,900만 원, 시효소멸 25억 3,800만 원, 배분금액 부족이 25억 6,300만 원, 기타 사망말소, 처분취소 등으로 인한 결손처분 159억 9,200만 원입니다. 이월액 사유별 현황을 보고드리면 이월액은 총 2,116억 2,000만 원으로 그중에 무재산 204억 7,400만 원, 행방불명 31억 9,300만 원, 납세태만 489억 9,200만 원, 징수유예 15억 200만 원, 소송계류 및 재산압류 중인 것이 163억 700만 원, 기타 납기미도래, 분납 등의 이월액이 1,211억 4,900만 원이 되겠습니다. 다음은 6쪽 세출결산 총괄내역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세출예산현액은 5,516억 1,800만 원이고 집행액은 5,409억 6,700만 원으로 예산현액 대비 98.1%를 집행하였습니다. 미집행액은 106억 2,200만 원으로 예산현액 대비 1.9%가 되겠습니다. 다음은 7쪽 주요 불용액 사유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주요 불용액은 총 32건 25억 2,134만 원이며 주요 사유로는 주민자치위원장 워크숍과 읍ㆍ면ㆍ동장 주민자치위원 등 연찬회가 당초 2016년 12월 예정이었으나 도내 조류인플루엔자 피해확산으로 취소되어 전액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지방세 범칙사건 조사활동 지원 12억 3,000만 원 중 5억 7,500만 원 불용으로 체납액 자진납부가 증가하여 집행사유가 감소하였습니다. 기타 불용액 세부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9쪽 예산 이용ㆍ전용ㆍ이체ㆍ변경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회계연도 자치행정국의 예산 이용은 없으며 예산 전용은 총 4건 8,100만 원입니다. 전용 내용으로는 공무원 인센티브 제공 및 모범공무원 등 포상지원 사업을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기준에 따라 포상금에서 국제화여비로 전액 전용하였고 파견공무원 주택보조비 부족분 3,000만 원, 드론활용을 통한 도유지 실태조사를 위한 1억 원을 전용하여 집행하였습니다. 다음은 10쪽입니다. 예산 이체는 해당사항 없으며 예산 변경은 총 7건 6억 7,890만 원입니다. 주요 사업내용으로는 6ㆍ25 민간인 희생자 지원 4,000만 원, 기타직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 채용 증가에 따른 예산 부족분 5억 원 등이 되겠습니다. 기타 세부내용은 유인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11쪽 예비비 지출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총 3건으로 지출결정액은 9억 6,518만 원, 지출액 8억 709만 원, 집행잔액 1억 5,809만 원이 되겠습니다. 지출내역으로는 청사보안 강화를 위한 출입통제시스템 개선 및 CCTV 구입 설치에 따른 1억 6,900만 원, 도의원 보궐선거에 따른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경비 지원 부담금 6억 3,809만 원을 예비비로 지출하였습니다. 다음연도 이월사업비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월사업은 명시이월 2건으로 업무용 차량 임차료 2,309만 원 및 특별사법경찰활동 지원차량 임차료 515만 원이 준공시기가 미도래함에 따라 이월되었습니다. 다음은 12쪽 성과보고서입니다. 자치행정국 전략목표 수는 1개이고 정책사업목표 9개 중 지표 수는 22개이며 그중 초과달성 지표는 5개, 달성 지표는 13개, 미달성 지표는 4개로 달성도는 82%입니다. 주요 미달성 지표의 사유로는 경기도장학관 이용자 만족도는 장학관이 1990년에 개관하여 건축물 노후 등으로 만족도가 낮은 편이며 언제나민원실 이용고객 만족률, 언제나민원실 스피드처리단축률, 법인조사 역시 만족도가 낮았음을 보고드립니다. 부진사업은 향후 목표 달성을 위한 사업계획 수립 등 좀 더 성실히 노력하여 미달성 사업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4쪽입니다. 채권 현재액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도 전체 전년도 말 채권 현재액은 889억 5,300만 원이었으며 2016년 말 채권 현재액은 803억 9,800만 원입니다. 자치행정국 2016년도 채권 현재액은 419억 6,700만 원으로 발생액 및 소멸액은 없습니다. 15쪽입니다. 다음은 공유재산 증감 및 현재액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전년도 말 공유재산 현재액은 26조 2,627억 8,200만 원이며 2016년도 말 공유재산 현재액은 26조 9,349억 7,800만 원으로 6,721억 9,600만 원이 증가되었습니다. 다음은 16쪽입니다. 물품증감 및 현재액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정수물품 전년도 말 현재액은 8,732점으로 2,311억 9,700만 원이며 2016년 말 현재액은 8,758점 2,604억 5,600만 원으로 2016년 증가분이 1,148점 497억 1,800만 원이며 2016년 감소분은 1,122점 204억 5,900만 원으로 전체적으로 26점 292억 5,900만 원이 증가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께서 심도 있는 검토와 배려로 편성해 주신 2016년 예산을 저희 집행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집행하고자 하였으나 일부 부족한 점 역시 사실입니다. 향후 위원님들의 고견과 대안제시를 지속적으로 반영하여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운영하시면서 도정 전반에 걸친 애정 어린 관심과 조언 그리고 그동안의 노고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 송한준 우미리 자치행정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익호 인재개발원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인재개발원장 김익호 인재개발원장 김익호입니다. 바쁘신 의정활동 중에도 인재개발원에 열성을 다해 주시는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2016년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 제안설명에 앞서 간부공무원을 소개하겠습니다. 한영렬 스마트교육과장님은 지방행정연수원 사이버교육협의회 참석으로 불참하였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배부해 드린 유인물 중심으로 결산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1쪽 총괄 현황 부분입니다. 세입은 47억 4,525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전액 징수하였으며 세출은 예산현액 94억 3,399만 원 중 85억 9,697만 원을 집행하여 8억 3,702만 원의 잔액이 발행하였습니다. 주요 세입내역으로서는 공유재산임대료, 기타사용료, 공공예금 이자수입 등 경상적 세외수입이 3억 9,642만 원이며 자치단체 간 부담금, 변상금, 기타수입 등 임시적 세외수입이 43억 4,883만 원입니다. 이어서 2쪽의 세출결산 부분입니다. 세출예산은 일반예산과 수입대체경비로 나누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예산현액 63억 8,507만 원 중 59억 4,934만 원을 집행하였으며 4억 3,572만 원의 잔액이 발생하였으며 수입대체경비 예산현액 30억 4,892만 원 중 26억 4,762만 원을 집행하였으며 4억 129만 원의 잔액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음은 3쪽 주요 불용액 현황입니다. 사업별 예산액 대비 30% 이상 불용되거나 1억 이상 불용된 사업은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전문인력 양성과 수입대체경비 활용사업 부분입니다.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전문인력 양성 사업은 중국 내부사정으로 교류연수 미실시로 인한 집행잔액이며 수입대체경비 활용사업은 교육훈련경비 집행잔액과 강사 원고료 집행기준 변경 등에 따른 집행잔액입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이번 2016회계연도 결산검사 시 지적사항에 대하여는 위원님들의 고견을 받들어 적극적으로 시정하도록 하겠으며 예산이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상으로 결산보고를 마치겠습니다. ○ 위원장 송한준 김익호 인재개발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강태석 재난안전본부장님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입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평소 위원님들의 높으신 경륜과 고견으로 재난안전본부 행정발전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데 대하여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응범 안전기획과장은 선진 재난관리실태 벤치마킹 중이며 특수대응단장은 현재 조승혁 안전교육훈련담당관이 겸직하고 있고 기동안전점검단장은 공석입니다. 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결산을 보고드리겠습니다.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개요를 별도 배부해 드린 유인물을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1페이지 세입결산입니다. 본부 및 23개 소방서의 세입예산은 426억 9,578만 원이며 413억 9,898만 원을 징수결정하여 98.8%인 409억 2,131만 원을 수납하였고 미수납된 4억 7,766만 원은 다음연도로 이월하였습니다. 다음 2페이지 세출결산입니다. 본부ㆍ23개 소방서의 세출예산현액은 9,527억 3,959만 원으로 이 중 93.9%인 8,942억 439만 원을 집행하고 4.7%인 448억 1,160만 원을 다음연도로 이월하였으며 불용액은 1.4%인 137억 2,360만 원이 발생하였습니다. 본부와 소방서별 세부 세출결산 내역은 부속서류 27페이지에서 103페이지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페이지 원인별 불용내역입니다. 총불용액 137억 2,360만 원의 원인별 내역으로 전통시장 소화기 보급사업 등 3개 사업은 도 재정여건 등을 고려하여 6억 9,000만 원이 유보되었으며 대형재난 미발생으로 인한 민간인 재해복구활동 보상금 집행잔액 등 128억 6,187만 원, 국고보조금 집행잔액은 급경사지 붕괴위험지구 정비사업 등 총 1억 7,173만 원입니다. 다음은 5페이지 주요 불용내역입니다. 주요 불용내역은 사업별 예산액 대비 20% 이상 또는 1억 원 이상 불용된 사업을 대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총 28개 사업으로 도민의 신고 감소로 불용된 비상구 폐쇄 등 신고포상제 등이 있습니다. 세부내역은 개요서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8페이지 국고보조금 지출 내역입니다. 총 27개 사업으로 총사업비 843억 8,126만 원 중 759억 5,780만 원을 지출하고 80억 7,820만 원을 다음연도 이월하였으며 불용액은 3억 4,526만 원이 발생하였습니다. 10페이지 예산 이용ㆍ전용ㆍ변경ㆍ이체 내역입니다. 예산 이용ㆍ이체는 없으며 예산 전용은 총 7억 9,200만 원으로 사업집행 목적 및 세출예산 집행기준에 적합하게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전용하였습니다. 예산 변경은 총 8건 12억 4,680만 원으로 행정수요에 맞는 예산운용을 위하여 변경 집행하였습니다. 13페이지 예비비 지출 내역입니다. 5억 5,489만 원으로 주요내용은 2015년 1월 발생한 의정부 대봉그린빌아파트 화재사고 재난 피해자의 생계안정과 사회복귀 등을 위해 321명 587건에 대하여 지역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습니다. 14페이지 계속비 지출 및 이월 내역입니다. 오산소방서 청사이전 사업 1건 92억 9,230만 원입니다. 관련법에 의한 설계공모, 설계경제성 검토, 오산시 디자인 심의 등 사전행정절차 진행으로 91억 1,779만 원을 다음연도로 이월하였습니다. 15페이지 명시ㆍ사고이월 내역입니다. 이월사업은 명시이월 248억 2,615만 원, 사고이월 108억 6,767만 원 총 356억 9,381만 원입니다. 주요내용은 재난안전본부 별관동 2개 층 증축사업은 입찰 및 건축기간의 장기소요로 명시이월하였고 노후 소방장비 한시적 지원사업 등은 계약업체 납품지연 등으로 사고이월하였습니다. 25페이지 기금결산입니다. 우리 본부에서 운용 중인 기금은 재해구호기금, 재난관리기금 총 2개 기금으로 2016년 말 기금 현재액은 5,836억 1,718만 원입니다. 2016년도 1,520억 430만 원을 조성하였고 151억 1,259만 원 사용하여 전년도 말 4,467억 2,546만 원 대비 30.6%인 1,368억 9,172만 원이 증가하였습니다. 26페이지 성과보고서입니다.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2016회계연도부터 추가되는 자료로서 재난안전본부 23개 성과지표 중 21개 지표를 목표 달성하였고 23개 소방서 140개 성과지표 중 105개 지표를 달성하였습니다. 미달성 지표는 향후 성과계획서 작성 시 합리적인 목표치를 설정하고 성과목표 달성을 위해 책임 있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활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 그리고 여러 위원님! 2016년도 재난안전본부 소관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 도민의 안전을 위해 법령과 규정에 맞게 집행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심의하시는 위원님들께서 보시기에 다소 미흡하고 부족한 사항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말씀하여 주시는 모든 사항은 도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에 적극 반영하여 건전하고 효율적인 재정운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위원장 송한준 강태석 재난안전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일수 북부소방재난본부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북부소방재난본부장 김일수 북부소방재난본부장 김일수입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오늘 결산보고를 통하여 예산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미흡한 점을 질책하여 주시면 향후 예산편성과 집행에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별도 배부해 드린 유인물을 중심으로 2016회계연도 일반회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보고는 북부본부와 11개 소방서의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내역과 세부내역 순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유인물 1쪽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 총괄 현황입니다. 세입결산입니다. 세입예산현액은 8억 2,800만 1,000원이고 이 중 징수결정액은 9억 9,443만 4,000원이며 수납액은 78%인 7억 8,026만 7,000원, 미수납액은 22%인 2억 1,416만 7,000원입니다. 미수납액 중 53만 1,000원은 결손처분되었으며 다음연도 이월액은 2억 1,363만 6,000원이 되겠습니다. 유인물 2쪽 세출결산입니다. 북부소방재난본부와 11개 소방서의 2016년 세출예산현액은 예산액 424억 6,868만 9,000원, 전년도 이월액 57억 8,439만 6,000원, 예비비 1억 5,129만 7,000원으로 484억 438만 2,000원입니다. 이 중 76%인 365억 6,089만 원을 지출하였고 109억 2,750만 6,000원은 이월되었으며 불용액이 예산현액 대비 2%인 9억 1,598만 6,000원이 발생하였습니다. 유인물 4쪽 북부 본부와 각 서별 정책사업별 세출결산입니다. 소방행정기획과 예산현액은 83억 2,715만 9,000원이며 이 중 37%인 30억 9,038만 3,000원을 지출하였고 63%인 52억 3,572만 2,000원을 계속 이월하였고 105만 4,000원의 불용액이 발생하였습니다. 특수대응단 및 11개 소방서에 대한 세출결산 세부내용은 유인물 5쪽부터 9쪽까지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다음연도 이월사업 내역입니다. 이월사업은 총 8건 109억 2,750만 6,000원으로 북부소방재난본부 합동청사 건립예산 사업비 52억 3,572만 2,000원을 계속비이월하였고 특수대응단 구조구급장비 보강, 고양소방서 훈련시설 증축 등 총 7건 56억 9,178만 4,000원을 명시이월하였습니다. 유인물 11쪽 예비비 지출 내역입니다. 예비비 지출은 일산소방서 의무소방원 배상금 1건 1억 5,129만 6,000원으로 12년도에 화재현장 보조활동수행 의무소방원 순직사고 관련 민사소송 확정 판결금 및 이자지급 건이 되겠습니다. 유인물 12쪽 불용액 발생원인별 내역입니다. 북부소방재난본부 2개 과 및 11개 소방서의 불용액은 예산현액 대비 1.89%인 9억 1,598만 6,000원으로 예산절감 유보액 6억 9,558만 6,000원, 예산 집행잔액 2억 2,040만 원이 되겠습니다. 유인물 13쪽부터 19쪽까지 각 과, 11개 소방서의 불용액 및 주요 불용내역은 여러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 보고드리겠습니다. 유인물 20쪽 성과보고서 부분입니다. 북부소방재난본부 총 9개 성과지표 중 5개 지표를 목표 달성하였고 11개 소방서는 총 68개 성과지표 중 45개 지표를 목표 달성하였습니다. 향후 달성 불가능한 성과지표 목표치를 현실적으로 재설정하여 성과목표 달성도를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2016년도 북부소방재난본부 소관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 위원님들께서 보시기에 다소 미흡하고 부족한 사항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위원님들의 높으신 경륜과 고견으로 아낌없는 성원과 지도를 부탁드리며 이상으로 2016회계연도 세입ㆍ세출 결산에 대한 개요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원장대리 박재순 김일수 북부소방재난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종근 소방학교장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소방학교장 김종근 경기도 소방학교장 김종근입니다. 존경하는 박재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먼저 저희 경기도 소방학교가 전국 제일의 소방교육을 제공하고 세계적 수준의 소방교육기관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적극 지원해 주신 데 대하여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보고서 1쪽 세입결산입니다. 2016회계연도 세입예산 총액은 1억 1,472만 원이고 징수결정액은 1억 1,757만 원입니다. 이 중 수납액은 1억 1,714만 원이며 미수납액 42만 원은 사용료수입과 일반부담금 수입으로서 금년 1월에 전액 수납 완료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보고서 2쪽 세출결산입니다. 2016회계연도 세출예산현액은 전년도 이월액 14억 7,700만 원을 포함하여 총 60억 8,669만 원입니다. 이 중에서 지출액은 예산현액의 75%인 45억 7,818만 원이고 다음연도 이월액은 11억 7,947만 원, 불용액은 3억 2,903만 원입니다. 보고서 3쪽과 4쪽 2016년 세출결산 세부내역 중에서 단위사업별 세출결산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 보고드리겠습니다. 다음 보고서 5쪽과 6쪽 원인별 불용내역입니다. 불용액은 총 3억 2,903만 원으로 계획변경 등 집행사유 미발생액 3억 1,000만 원과 집행잔액 1,903만 원입니다. 집행사유 미발생 원인으로 청사관리 사업비 3억 원은 식당 리모델링을 위해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건물 노후화 등으로 사업추진이 부적합하여 향후 신축을 추진하기 위해서 불용하였습니다. 수입대체경비 1,000만 원은 재난관리 국제협력교육과정 입교예정 국가인 필리핀의 사정으로 인해서 전원 입교가 취소됨에 따라 불용처리하였습니다. 다음 보고서 7쪽과 8쪽 예산의 이용ㆍ전용ㆍ변경ㆍ이체내역입니다. 예산의 이용과 이체내역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예산 전용은 1건으로 2015년에 완공된 실물화재훈련장의 화재진압교관 양성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 외국 실물화재전문 교관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사무관리비 300만 원을 외빈초청여비로 전용하였습니다. 예산 변경 사용도 1건으로 청사환경개선 시설비 11억 원 중 1,100만 원을 전기공사감리원 배치를 위한 감리비로 변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다음 보고서 9쪽과 10쪽 계속비 지출 및 이월내역입니다. 계속비이월 예산은 1건 11억 원입니다. 2016년부터 18년까지 추진 중인 총사업비 117억 원의 실전교육훈련시설 보강사업으로 현재 설계용역 추진 중에 있습니다. 2018년까지 차질 없이 완료토록 하겠습니다. 사고이월 예산은 1건에 7,947만 원이며 현장교육훈련장비 구매 계약업체의 납품지연으로 인해서 사고이월되었습니다. 2017년 금년 1월에 집행을 완료하였음을 보고드립니다. 다음 보고서 11쪽 2016회계연도 성과분석입니다. 소방학교는 모두 5개의 성과지표가 있습니다. 이 중 소방공무원 피복지급률에 대해서는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교육훈련 평가 등 4개 지표에 대해서는 목표 대비 달성률이 다소 미흡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교육생을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교육환경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전년 대비 5% 정도 향상되었습니다만 당초에 성과목표를 100%로 과도하게 도전적으로 설정한 점과 생활관, 휴게시설 등 교육환경이 교육생 요구에 미치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목표설정을 현실화하고 지속적인 교육환경 개선 등을 통해서 교육효과와 만족도를 높여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위원장대리 박재순 김종근 소방학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질의 답변이 있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답변하실 실국장님을 지명한 후 해당 실국장이 발언대로 나오면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준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준연 위원 설명 잘 들었습니다. 뭐 특별한 게 아니고요. 전에 사실 그런 얘기도 나왔었는데 글로벌시대에 우리가 아까 설명한 주요 불용액 보면……. ○ 김준연 위원 그런 데로 좀 넓혀 가지고 우리 공무원들이 가서 좋은 질, 향상될 수 있게끔 그런 걸 원장님이 좀 개발하셔 가지고 예산이 좀 더 들더라도 경기도 공무원들이 서로 교류할 때 업그레이드될 수 있게끔, 퀄리티가 올라가게끔 그것 좀 해 주시기 부탁드리겠습니다. ○ 인재개발원장 김익호 그래서 올해도 저희가 하반기에 있는데 중국에서는 아무래도 사드문제 때문에 1개 과정이, 당초는 목표가 5개 과정인데 1개 과정이 올 예정이고요. 하반기에 일본하고 지난번에 5월 경에 대만의 타이베이시 우리 자문위원장님 모셔서 저희가 적극 교류연수과정을 요청하였습니다. 하고 또 7월 달에 지사님이 혹시 일본에 가시면 우리 자매결연 일본의 성하고 저희들이 적극 건의를 해서 하반기에는 최대로, 중국뿐만 아니고 대만하고 일본도 교류연수를 확대, 좀 넓히고 내년에는 예산과목 자체를 중국만 하는 것이 아니고 외국연수 교류과정으로 해서 최대한 교류를 많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연 위원 본부장님 잠깐만 나오시죠. 우리 소방본부장님. 제가 위원들 대표로 간단히, 질문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표로…….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저희 경기도에는 정말 안전하고 따뜻한 굿모닝 경기도가 되도록 7,921명의 소방공무원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남경필 지사님께서 이병곤 플랜을 실시하셔서 매년 500명 이상 소방공무원이 확충되고 있고 장비도 또 노후장비 다 교체하고 그다음에 혹시 부상을 입거나 다친 경우에는 전액 도비로 또 지원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PTSD 관련해서도 지금 분당서울대병원에 금년도에 한 160명 정도 치료를 받도록 이렇게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예결위원님들께서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하고 저희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김준연 위원 강태석 본부장님 수고하셨고요. 계속 도민을 위해서 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 김준연 위원 그러면 됩니다. 100%라는 건 없고. 그거 어떻게 할 방법, 예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아니면 생각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소방학교장 김종근 우선은 성과지표를 최근 3년 또는 5년 이상의 평균 성과지표를 확인해 보고 분석을 해서 그걸 기초로 좀 더 노력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를 도전적으로 설정하고 그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서 그렇게 학교가 발전되도록, 교육이 발전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연 위원 그래서 앞으로 학교장님이 교육생들 또 소방공무원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박순자 위원 그런데 그 8개 기관 중에 일부는 임대료를 납부하고 있고 일부는 안 하는 걸로 지금 파악이 됩니다. ○ 인재개발원장 김익호 현재 지금 납부하고 있지 않은 3개 기관은 관련법이나 규정이 있어서 하지 않고요. 다른 데는 그쪽에서 요청이 들어오고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요청이 안 들어와서 저희들이 지금 종합적인 검토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인재개발원장 김익호 저희들이 하여튼 올 하반기라도 납부하고 있는 5개 기관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서 면제 여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박순자 위원 꽉 찼습니까? 이게 좀 불합리한 것 같아서, 아니 받으려면 다 받고 안 받으려면 안 받아야 되는데 일부는 받고…….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지금 위험시설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전부 조사를 해 가지고 D급, E급이 113개소 이렇게……. ○ 이정애 위원 그거는 또 소방공무원들하고의 관계, 사기앙양 관계하고도 굉장히 밀접하게 연계가 된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보면 소방직 공무원의 후생복지는 전년 대비 증가는 하였는데 아직도 미비하다고 생각을 하고 특히 더 노후장비에 대한 거는 정말 살펴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본부장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간단하게 설명 좀 해 주세요.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물론 존경하는 이정애 위원님께서 보시기에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근래에 지금 경기도에서 소방의 르네상스다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많이 지금 노후장비를 교체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의회에 올 때마다 또 의회건물에 이렇게 스프링클러가 있는 건물이 제가 다녀본 의회 중에서는 처음입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그래서 지금 고층건물 화재가 발생하면 상당히 걱정은 많이 하는데 지금 많은 건물들이,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들이 사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에 올 때마다, 의회에 올 때마다 항상……. ○ 이정애 위원 정말 열악한 환경에 있는 전체적으로 경기도 전반에 그런 취약한 거를 좀 점검을 해서 그걸 대비를 해 달라는 주문을 곁들여서 해 주고 싶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지금 그걸 평가하고 있습니다. 17개 소방서하고 재난안전본부에 지금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을 완료했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네, 지금 추진계획을 거의 완료했는데 평가를 조금 더 정밀하게 해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지진대응팀은 신설이 됐는데 전문인력은 좀 부족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지진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전문인력을 좀 확보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이정애 위원 지진과 연계해서 조금 아까 제가 말씀드린 안전 있죠? 그런 것까지 다 연계가, 비슷한 맥락이잖아요? 그래서 그 전문가가 있어서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될 거다, 그 생각이 있어서 주문을 드리는 거예요. ○ 박동현 위원 그렇죠? 그러고 나서 결산서를 2012년부터 5년 치, 2016년까지 해서. 그다음에 가능하다면 결산서하고 결산서 첨부서류, 사업별 설명자료 이렇게 넣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 부탁드립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당초에 건축비가 많이 부족해서 추경에 편성하면서 또 동절기 이렇게 해서 많이 늦어졌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예산 증액을 하고 나서 설계도서 납품기한이 조금 연장되었습니다. 공사기간이 180일인데 이것이 좀 부족해서 저희들이 명시이월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사가 많이 지연됐습니다. ○ 박동현 위원 아무튼 일단 예산이 중요한데 그때 필요할 때 정확하게 세워야 되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다 보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항상 모든 것은 계획을 잘 세우고 하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1월부터 12월까지 저희들이 74명을 채용해서 이렇게 했는데 상반기에 다 소진된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저희들의 애로사항이 힘든 이런 지역에는 지원자가 또 없고 조금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예산도 지금 저희들이 좀 더 확보를 해야 되는데 예산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대체인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그래서 저희들이 금년에도, 신정부에서 주로 구급대원들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구급대원을 399명 증원하도록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구급대 탑승을 1대에 세 사람씩 탑승하면 이 문제는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생각…….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아니, 차 1대에 지금은 2명이 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좀 덩치가 아주 큰 그런 남성 환자인 경우에는 두 사람이 감당하기가 사실 벅찹니다. 그런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 이나영 위원 그 부분에 대해서 결원을 어떻게 더 메꿔야 되나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되는 부분인데 아마도 예산이 좀 부족해서 메꿔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제가 조금 말씀을 드리면 정규인력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차선책이 대체인력인데 대체인력은 예산이 있는 곳에는 또 지원자가 좀 적고 그런 애로점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그것은 사실 쉽지 않은, 지금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임금체계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대체인력에 대한 보수도 정해져 있습니다. ○ 이나영 위원 그러면 전제적으로 지금 있는 것만 보고 말씀을 드릴게요. 2016년도가 2014년도에 비해서 2년 만에 대체인력에 대한 부분의 예산이, 경기도의 예산이 한 2배가량 정도 뛰었습니다. 그 부분은 당연히 높게 사야 되는 부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공무원분들에 비해서 지금 대체인력이 보충되고 있는 게 많이 열악해요. 96%가 일반직공무원이라면 우리 소방공무원분들은 60% 정도의 수준밖에 못 미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경기도에서 전체적으로 예산을 늘리고는 있다고 하지만 소방공무원 여러분들은 아무래도 안전하고 관련된 부분이잖아요. 한 사람당 업무가 가중되면 될수록 체력적으로나 여러 가지 때문에 사고가 더 날 수도 있고요. 그 부분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조속하게 빨리 시급하게 보충이 돼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부분 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시기 바라고요. ○ 이나영 위원 간단하게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안전대동여지도 구축사업 있잖아요. 지금 이게 어떻게 될 예정인가요? 향후계획.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지금 계약이 체결돼서 10월 또는 11월 그때 서비스가 일차적으로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이나영 위원 그런데 안전디딤돌 앱에 탑재하는 조건이라고 했는데 그럼 별도로 우리가 안전대동여지도에 대한 어떤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국민안전처의 앱에다 플러스되는 건가요? 탑재한다는 거니까.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저희들이 별도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양해해 주신다면 안전관리실장께서 조금 더 깊이 있는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안전관리실장 김정훈 안전관리실장 김정훈입니다. 안전디딤돌 앱하고 저희 앱하고 상호 연동해서 같이 쓸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안전관리실장 김정훈 사용하는 국민 입장에서 경기도에서 만든 건 경기도만 쓴다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안전디딤돌 앱에서 저희 경기도 게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저희 앱을 카카오나 다음하고도 연동해서 경기도 앱을 굳이 깔지 않아도 내가 카카오를 갖고 있으면 재난발생 시에 카카오에서 알림을 주는 그런 기능들이 되겠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안전관리실장 김정훈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개발하려고 하는 앱이 국민안전처에서 갖고 있는 디딤돌하고 서비스 행렬이 조금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보기에 착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저희가 사고가 났다 그러면 그 지역 반경 몇 ㎞, 몇백 m 안에 그쪽에만 타깃을 해서 알림을 주거든요. ○ 이나영 위원 본 위원이 봤을 때는 본 사업이 따로 개발이 돼서 진행을 해야 되는 그런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와 닿지 않고요. 이게 2009년에 경기도판 구글 어스를 만들겠다고 54억 원을 들여서 경기누리맵을 실시했었지요. 그런데 그 부분이 최근에 폐쇄가 됐다고 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그런데 그러한, 우리 경기도에서 취지는 좋으나 무리해서, 사전에 국민안전처에서 하는 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경기도에서 나중에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끝내버릴 만한 사업이 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유의를 좀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안전관리실장 김정훈 네, 충분히 검토를 했고요, 저희들이 사업 시작 전에. 안전처에서 하는 서비스하고는 좀 다른 서비스입니다. 그 내용을 시간이 있으면 설명을 좀 드리고 싶은데 다음에 제가 한번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중간에 저희들이 사업비를 2016년에 37억 증액을 한 것이 있고요. 그다음에 그렇게 해서 이월을 91억 하게 됐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제가 그것은 아마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37억 저희들이 확인해서 수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미연 위원 91억이 이월이지만 그 위에 박스 보세요. 2016년도 예산 해서 이거 다 더하면 192억 그대로 나와요. 37억이 없는 거예요, 2016년 예산 안에. 제가 그 37억이 어디 갔는지 알고 계시냐 이거예요, 핵심은. ○ 지미연 위원 보세요! 지금 2016년에 했는데 무슨 2017년에 반영이 돼요. 2016년 9월 12일 날 본회의 의회 승인하고 37억 증액되었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저희들이 이게 2016년에 37억이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계상이 되어서 이월이라든지 이런 어떤 명시가 돼야 되는데 그 부분이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 지미연 위원 자, 그렇다 그러면 안산시의회 무상사용승인 지연, 그러면 우리한테 3회 추경에 올렸을 때는 이러한 것도 확인 안 하고 덜컥 추경예산을 요청하신 겁니까? 이렇게 되면 예산심사 앞으로 하기 힘드십니다. 이렇게 잡고 지금도 11월이면 돈 사장시키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습관성이에요. 지금 가만 보면 집행부는 내 돈 아니니까 급할 게 하나도 없어요. 하다가 안 되면 이월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계속비로 가고 그 돈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그런 것은 아닌데 사실 지금 안산의 이런 것은 안산시와 협조관계라든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조금 지연됐습니다. ○ 지미연 위원 안산과의 협의도 없이 추경에, 추경에 예산을 건드릴 때는 불요불급해야지만 하는 사유가 있지 않습니까? 절대절명의 시기에. 본예산도 아니고 그래 놓고 이렇게 명시이월시킨다는 것 그런데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안산시가 하니까 11월에 한다. 저는 상반기 안에 집행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굳이 추경에 편성하실 이유가 없는 사업예산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있느냐의 문제예요. 명시이월시키면 끝나는 거다 그게 아니거든요.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저희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요. 저희들이 안산시하고 그런 협조관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유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지미연 위원 그러면 시는 받을 생각이 없는데 도가 강제로 집행하신 거예요? 지금 어감에서 느끼는 게 제가 이해가 안 가요. ○ 지미연 위원 안산시하고 이런 거에 있어서 했다는 그 표현은요? 안산시가 원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고 이 시기를 이렇게 편성을 요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근거는…….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상록수, 말하자면 지역대지요. 지역대를 그 주변에서 주민들이 이전을 요청했죠. 요청을 하니까 이전하려면 어떤 대체부지라든지 이런 것을 제공해라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안산시에서 부지라든지 이런 것을 무상사용하도록 제공하는 그런 것에 여러 가지 지연이 있었고요. 제가 여기에서 그 건 때문에 다른 건을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마는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37억 그것은 위원님께서 지적하신 것이, 저희들이 16년에 조금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인을 해서……. ○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 저희들이 37억에 대해서 2016년에 받았는데 여기에 지금 위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명료하게 표시를 해야 되는데 저희가 착오로 2017년으로 이렇게 표시를 하다 보니까 잘못된 것 같습니다. ○ 위원장대리 박재순 지미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실장님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담당과장님하고 명쾌하게 다시 한 번 우리 지미연 위원님께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또 질의하실 위원님 있으면, 김종찬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종찬 위원 주민자치대회 관련돼서 질의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 주민자치대회 시상금하고 주민센터 문화프로그램 경연대회 전부 다 집행부 부동의 유보액으로 불용됐는데요, 또 선거법 저촉 관련도 있고. 이게 2016년도 총선 때문에 불용된 겁니까, 아니면 또 다른 사유가 있습니까? 주민자치센터 문화프로그램…….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그런 건 아니고 공직선거법 자체에서 그것을 못 하게 해 놨기 때문에 2017년도부터는 그런 시상금 예산을 시군 보조금으로 편성해서 주민자치 우수사업 지원비로 그렇게 바꿔서 하고 있습니다.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주민자치센터에서 대회를 했을 때 어떤 상장이나 그런 것은 가능하나 시상금으로서는 제공이 불가하다라는 그런 법령 해석을 받았기 때문에 그때는 하지 못한 그런 사항입니다.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평생교육과 관련한 것도 있고 문화프로그램 관련한 것도 있고 많은 부분이 돼 있습니다.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그러니까 문화프로그램 경연대회 운영이라든지 이렇게 해서 행사운영비로서 경연대회를 할 수는 있으나 어떤 그런 결과로 인한 보상이라든지 시상금은 할 수 없다라는 그런 겁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운영이 가능합니다. ○ 김종찬 위원 그러면 이게 지금 여러 가지 핵심인재 양성 및 외국 선진행정 그런 부분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선진지 견학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저희가 대부분 영국이라든지 유럽지역을 우선적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만 중국이라든지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그러한 수요도 있고 해서 아시아 쪽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생긴 겁니다. ○ 김종찬 위원 네, 다변화해서 동남아지역이라든가 이런 데 가면 환율도 저렴하니까 비용 절감되는 건 맞는데 우리 여기 원래 취지로 하고 있는 핵심인재 양성을 통해서 선진국 행정수요라든가 이런 것을 배운다거나 아니면 여기 말씀 그대로 이게 지금 선진지 견학이 아니고 학자금이라고 하게 되면 일정기간 과정을 밟는 거죠? 2년, 3년. ○ 김종찬 위원 아니, 그러니까 비영어권인 베트남이라든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대학에 가서 학위를 따고 와서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원래 취지하고 이게 맞느냐. 여기서 50%가 절감이 되는 건 좋은데 그 취지가 선진국의 어떤 행정수요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배우고자 하는 취지를 어떠한 형태로 해서 이렇게 동남아로 가는 부분이 권장하는 사항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국가에 파견을 해서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인지.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네, 그렇게 저희가 2016년도에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의 국립대학하고 MOU를 체결해서 서로 상호 간의 도와 국가적인 그런 차원에서 MOU를 체결하고 그 국가에 파견을 하고 있습니다. ○ 자치행정국장 우미리 저희가 비영미권을 시도한 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위과정으로는 2016년도에는 학위과정 4명과 직무과정 1명을 일단 보냈고요. 그다음에 베트남이라든지 인도네시아 등 훈련국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김종찬 위원 일단 이게 교육을 마치고 나서, 그 효과라든가 이런 것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한 지가 얼마 안 돼서. 없으면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재난과 안전은 우리 경기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재난과 안전에 각별하게 이렇게 함께해 주신 모든 부서분들에게 특별하게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도민들을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사실 소방에 관한 장비가 저도 체험을 통해서 보니까 정말 갖췄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내가 체험을 해 보니까 참 어렵더라고요. 현장에 진짜 불이 났었을 때 그곳에서 정말 그런 현장을 보면서 본인이 느끼는 열감 이런 것을 보니까 아찔한 순간도 많았었는데 그런 것을 생명을 담보로 해서 도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소방 일선에 계시는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특히 이분들에게 체력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안전에 대한 것을 숙지를 많이 시키셔서 진정으로 이분들이 도민들을 위해서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게 퇴직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직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큰 사고가 있을 때마다 꼭 우리 안전요원들, 소방대원들께서 많은 일들을 겪어왔던 것을 우리는 직접 이렇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서, 결산 이렇게 하지만 또 결산은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전행정위 자치행정국, 인재개발원, 재난안전본부, 북부소방재난본부, 소방학교 소관에 관한 이런 일들을 다시 한 번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에서 부탁의 말씀, 또 진정으로 도민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이상으로 소관에 관해 결산에 대한 질의를 종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 결산 의결에 앞서 시정요구 및 부대의견서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시정요구는 크게 두 국이 있었는데요. 여성가족국에 대한 경기여성의전당의 건립비 도비지원액에 대한 소유권, 지분 등 회수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내용으로는 비영리민간단체인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가 추진한 경기여성의전당 건립에 도비 24억 원을 지원하였으므로 사업계획과 도비지원에 대한 소유권 확보 미비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문화체육관광국에 대한 부대의견입니다. 서울대 수원캠퍼스 융복합 문화플랫폼 구축 명시이월사업 관련하여 2017년 사업추진이 어려울 경우에 이월액에 대하여 전액 불용하고 2018년 예산 재편성을 하기 바랍니다. 2016년 사업비 120억 원을 편성하였고 정밀안전진단 및 기본설계 추진으로 10억 원 지출하였고 110억 원에 대하여 2017년도까지 명시이월된 사항입니다. 현재 보조사업자인 서울대학교와의 협의 지연 등으로 2017년 사업추진이 불가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부대의견을 답니다. 이의가 없으므로 의사일정 제1항 2016회계연도 경기도 결산 승인의 건, 의사일정 제2항 2016회계연도 경기도 일반회계 및 기타특별회계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은 배부해 드린 부대의견과 함께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위원 여러분! 정말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청 관계공무원 여러분! 마지막까지 심사 준비와 성실한 답변으로 의사일정에 협조하여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집행부 관계공무원들은 의회에서 승인된 예산을 적법하고 충실하게 집행함은 물론 예산편성 시 목적과 기대효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집행에 철저를 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결산심사기간 동안 위원님들께서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향후 유사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시정해 주시고 재정운용에 대하여 내실을 기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당부드립니다. 오늘 계획된 일정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위원 여러분 그리고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 장시간 동안 정말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조실장님, 하실 이야기 있으시면 나와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기획조정실장 오병권 기조실장 오병권입니다. 존경하는 송한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님 또 여러 위원님들! 이번 결산심사 과정에서도 너무나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저희가 결산심사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심사가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이번에 심사과정에서 주셨던 의견들 또 지적해 주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저희가 심도 있게 검토하고 논의를 해서 향후에 예산편성이라든지 예산집행 과정에서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위원장 송한준 감사합니다. 집행부 예산에 대한 부분은 1년을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예산결산위원님들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한 관계공무원께서 우리 3기 예결위 위원님들을 믿고 소통하고 함께 해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그동안에 서로 부족한 면이 있었다면 이 시간에 다 덮어두고 함께 가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오전 10시부터 2016회계연도 경기도교육비특별회계 결산 및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을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원 여러분께서는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피고인 21은 2015. 11. 24. 인천지방법원에서 사기죄로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발령받고, 2017. 6. 14. 인천지방법원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죄 등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2017. 6. 22. 위 판결이 확정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피고인 22는 2016. 12. 1. 인천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단체등의구성·활동)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2016. 12. 9. 그 판결이 확정되었고(이하 ‘㉠ 전과의 죄’라고 한다), 2017. 10. 19. 인천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단체등의구성·활동)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2018. 6. 28.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이하 ‘㉡ 전과의 죄’라고 한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공소외 17은 피고인 2 팀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2 팀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오토옥션‘의 인터넷사이트에서 ‘2014년 12월식 11,843km 운행한 흰색 스타렉스 캠핑카를 1,296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정말로 스타렉스 캠핑카를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으며, 실제 보유 중에 있는 차량이니 중고차 매매단지로 와서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인천 (주소 2 생략)에 있는 중고차 매매단지(’■■■‘, 이하 ■■■라 한다)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공소외 17을 출동(손님을 직접 응대하면서 소위 ‘뜯플’ 또는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를 판매하는 역할의 딜러를 출동이라 함)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공소외 17은 2016. 12. 5.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면서 그 차량을 1,296만원에 판매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형님 같아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데, 솔직히 계약한 그 차량은 현대에서 시험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외관과 달리 고속 주행시 시동이 꺼질 수 있고, 시험용 차량이기 때문에 개인끼리 매매도 안 되고 보험도 들 수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사전 검사비도 전부 지출이 되었기 때문에 계약취소는 불가능합니다. 대신 그랜드스타렉스 차량도 좋은 것들이 있으니 제가 특별히 형님에게만 보여주겠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7,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7, 공소외 18 등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주행거리 199,659km인 (차량번호 1 생략) 그랜드스타렉스 차량을 시세보다 400만원 비싸게 1,21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210만원을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1은 피고인 2 팀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서 ‘인피니트 SUV 차량을 2,8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매물로 보유하고 있고, 광고된 가격대로 판매합니다. 사장님이 갖고 있는 SM7 차량을 저희들에게 파시고, 저렴하게 인피니트 SUV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1은 2017. 1. 7.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SM7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중고차 매매단지 길거리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면서 광고된 금액인 2,800만원에 판매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필리핀에 갔다 온 차량인데 부품이 엉터리이고, 사고 나면 보험 처리가 안 되는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SM7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SM7 차량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여 돌려줄 수 없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2 생략) 폭스바겐 티구안 차량을 시세보다 670만원 비싸게 3,1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2,67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10은 위 외부사무실 딜러 겸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피고인 10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서 ‘SUV 계열 차량을 실 매물로 보유하고 있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니 오세요”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팀장인 피고인 1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0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0은 2017. 1. 16.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SUV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그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사전에 공모한 바와 같이 피고인 1에게 전화(손님을 속이기 위해 일종의 연기를 하는 허위 전화라는 의미에서 속칭 ‘액션전화’라 한다)하여 “손님이 이 차량을 계약하기를 원하니 성능 기록장에 넣어 주십시오”라고 말한 다음,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을 알고 구매를 하시는 것인가요,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입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여러 가지 실험을 하기 위해 제작한 차량을 말하는데, 이 차량은 충돌실험까지 했던 차량입니다. 차량 상태가 많이 안 좋고 겉만 좋지 속은 많이 망가져 있어 운행하는 데 지장이 많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차량이 성능 기록장에 들어가서 계약이 체결되어 이전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 계약 취소는 안됩니다. 이 차를 가져가든지 아니면 다른 차를 사서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3 생략) 카이런 승용차를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625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625만원을 피고인 10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모하비 차량을 500만원 ~ 1,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광고에 올라온 저렴한 금액으로 진짜 모하비 차량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팀장인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2. 5.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관세가 1,000만원 정도 많이 나오는 차량입니다. 수입차라서 부품을 구하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차량이 이미 이전되어 계약 취소는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4 생략) 모하비 차량을 시세보다 600만원 비싸게 3,0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3,000만원을 피고인들이 관리하는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8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을 각 맡아, 소위 ‘뜯플’ 또는 ‘쌩플’ 수법으로 피해자를 기망하여 중고차를 판매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수익분배체계에 따라 분배하기로 순차 공모하였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제네시스 EQ900 3.8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매물로 보유하고 있고 광고한 금액으로 제네시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8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8과 피고인 11은 2017. 2. 7.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제네시스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피고인 8과 피고인 11은 우선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다이너스티 차량을 폐차시키고 위 제네시스 차량을 명의 이전시키겠다며 다이너스티 차량에 있던 피해자의 짐을 피고인 8 차량에 옮겨 싣고 난 후 다이너스티 차량을 피해자가 모르는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를 상대로 위 제네시스 차량에 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이고, 시험용 차량이라 고장 발생시 책임 질 수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다이너스티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손님이 끌고 온 다이너스티 차량은 폐차되어 돌려줄 수 없고, 제네시스 차량은 이전이 되어 계약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5 생략) 그랜져 차량을 시세보다 320만원 비싸게 1,9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1,900만원을 피고인들이 관리하는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20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산타페 차량을 45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로 이 차량이 보유 중에 있으며, 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20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20은 2017. 2. 7.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한 후 피고인 6이 인수증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20이 피해자에게 “중고차는 구매해 보신 적이 있나요. 테스트용 차량 처음 사시는 것인가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6이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손님이 선택한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기 때문에 주로 영화 촬영용으로 차량 폭파 촬영을 했던 차량이라서 운전하는 데 아주 위험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7년식 (차량번호 6 생략) 카이런 차량을 시세보다 520만원 비싸게 93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93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뉴 카니발 리무진을 1,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것이며, 무사고이고 침수차량이 아닙니다. 확실히 이 금액에 파는 리무진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19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19는 2017. 2. 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왜 이 차량이 저렴한지는 아시나요. 사실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나중에 이 차량을 팔면 몇백만원밖에 못 받는 똥값이 되는 차량입니다. 고장이 다른 차에 비해 엄청 많이 나고 운전하는 데 위험합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7 생략) 그랜저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2,8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2,85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국산 차량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광고한 금액으로 국산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2. 17.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한 후 피고인 4가 인수증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10분 정도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수출용 차량입니다. 그래서 부품 구하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못 구할 수도 있어 고장 날 경우 고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8 생략) 쏘나타 차량을 시세보다 400만원 비싸게 1,38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38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도요타 씨에나 차량을 1,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실제 매물로 보유하고 있고 광고한 금액으로 도요타 씨에나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2. 1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광고에서 본 도요타 씨에나 차량은 이미 팔려서 다른 차량인 카니발 차량을 보여주겠다고 하고, 피해자는 카니발 차량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여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고, 수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차량이라 부품이 재조립한 위험한 차량입니다. 그리고 2년간 이 차량을 판매도 못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5년식 (차량번호 9 생략) 카니발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2,7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43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2016년식 투싼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실제 투싼 차량을 보유하고 있고 광고한 금액으로 투싼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2017. 2. 19.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 차량이라 부품이 정상적이지 못하여 운행하다가 차가 퍼지고, 안전을 책임 못 지는 위험한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7년식 (차량번호 10 생략) 쏘나타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5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55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액티언스포츠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실제 액티언스포츠 차량을 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2. 22.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 차량이라 고장이 심각합니다. 겉만 번지르르 하지만 1회용 차량이라 운전하는 데 위험한 차량입니다. 사고가 나면 책임을 못 집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11 생략) 액티언 스포츠 차량을 시세보다 300만원 비싸게 92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92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기아 레이 차량을 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최신식 기아 레이 차량을 200만원에 실제로 판매를 하고 있으니 ■■■에 오셔서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2017. 3. 1.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 차량이라 깡통 차량입니다. 부품은 중국 제품이고 1년도 안되어서 비바람이 치면 차 안에 물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안 좋은 부품이라 1년도 안되어서 엔진이 고장 날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데 안전하지 못한 위험한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12 생략) 스파크밴 차량을 시세보다 300만원 비싸게 6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65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쌍용 티볼리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쌍용 티볼리 차량을 3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2017. 3. 4.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우선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카렌스 차량을 폐차해 주겠다며 피해자로부터 카렌스 차키를 받아 피해자가 모르는 위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피해자에게 광고한 쌍용 티볼리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티볼리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달리면 차량 범퍼와 뚜껑이 날아가서 위험한 차량입니다. 안전하지 않은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카렌스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손님이 끌고 온 카렌스 차량은 이미 폐차되어 돌려줄 수 없고, 쌍용 티볼리 차량은 이전이 되어 계약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tu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13 생략) 뉴카이런 차량을 시세보다 250만원 비싸게 71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71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아우디 A6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외제 차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은 2017. 3. 6.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7이 피해자에게 “차량 출고 검사를 하는 데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라고 하면서 “이 차량을 왜 사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 차량은 테스트 차량이라 벽에다가 충동 실험을 하는 차량이고,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중국 가서 다 고쳐서 갖고 온 것이라 운전하는 데 아주 위험합니다. 이런 차량은 영화 찍을 때나 사용하는 차량입니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출고가 되어 버려서 이 차량을 사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신 이 차를 타고 다니지 않으시려면 다른 차량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14 생략) 알티마 차량을 시세보다 1,000만원 비싸게 2,8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33은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33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벤츠 S500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 차량이라 가격이 쌉니다. 실제로 벤츠 S500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하고 있으니 직접 매장에 오셔서 구경하고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7은 2017. 3. 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고인 7이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부품이 정품이 아니고 중국 제품이라 얼마 못 탈 것이며, 시동이 꺼질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3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3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6년식 (차량번호 15 생략) 벤츠E350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1,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2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1과 피고인 18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서 ‘에쿠스 차량을 32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매물로 확보하고 있고 광고된 가격대로 판매한다”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1과 피고인 18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1과 피고인 18은 2017. 3. 14.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피고인 21과 피고인 18은 우선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그랜저 XG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에쿠스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그 에쿠스 차량에 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손님이 선택한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급발진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그랜저 XG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손님의 차량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어 돌려줄 수 없습니다. 인수증을 작성하였으니 계약 취소도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6년식 (차량번호 16 생략) 그랜저TG LPG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1,03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6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성명불상의 TM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투싼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투싼 차량은 신차급이고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 이 금액으로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오셔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1은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5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은 2017. 3. 23.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16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하체 바디 부분이 문제가 있습니다. 운행하다가 차량 하체가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위험한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6, 성명불상의 TM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6, 성명불상의 TM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17 생략) 투싼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1,46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1,46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소외 36, 성명불상의 TM과 순차적으로 공모하여 피해자를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봉고3 더블캡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이 금액으로 최신식 봉고3 더블캡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3. 25.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각종 출동 실험을 했던 차량이고, 차가 운행하다가 퍼지고, 안전하지 않은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5년식 (차량번호 18 생략) 봉고3 차량을 시세보다 150만원 비싸게 1,62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620만원을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8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포터 차량을 28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실제 포터 차량을 280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오셔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2017. 3. 26.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12는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역수입한 차량이라서 A/S 받기가 어렵습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19 생략) 포터2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1,3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3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경차 차량을 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최신식 경차 차량을 진짜 200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은 2017. 3. 27.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 차량이라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은 차입니다. 운전하는 데 안전을 책임 못 지고, 위험한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5년식 (차량번호 20 생략) 모닝 차량을 시세보다 100만원 비싸게 32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32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9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으로 출동 직원 없이 TM만 두고 손님을 유인하여 다른 팀에 넘기는 팀장이고(딜러들은 소위 ‘다른 팀에 와끼를 준다’라고 함),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 공소외 40은 피고인 9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40은 ‘★★★★’라는 인터넷사이트에 ‘맥스크루즈 차량을 54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맥스크루즈 차량을 540만원에 진짜 판매를 합니다. 이 차량은 전시용 차량이라 저렴하고 운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9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9는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4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TM인 공소외 14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공소외 14와 함께 2017. 3. 30.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고 계약금 45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4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세금이 많이 나와 분기당 270만원씩 2년을 납부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때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이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 공소외 40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 공소외 40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21 생략) 맥스크루즈 차량을 시세보다 1,200만원 비싸게 3,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2,63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제네시스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제네시스를 구매할 수 있고, 이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1은 2017. 3. 30.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실험 주행 차량이고, 성능실험용 차량이라 고장이 잘 나고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구미까지 타고 내려가다가 고장 나면 책임을 못 집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22 생략) 토러스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2,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쏘렌토 차량을 6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입니다. ■■■에 오시면 보유하고 있으니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2017. 3. 3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성능기록부 및 인수증 등을 작성한 후, 피고인 12는 위 인수증 등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5는 피해자에게 “싸고 좋은 차는 없는 것 아시죠. 싼 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에게 물어보시지 마시고 팀장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2는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 모르고 구매하시는 건가요. 이 차량은 역수입된 차라서 수입 관세가 비쌉니다. 수입차라 부품도 가격대가 비쌉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23 생략) 카이런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1,08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9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2013년식 또는 2014년식 제네시스 차량을 6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제네시스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로 오셔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1은 2017. 4. 1.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그랜저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기 때문에 주행 중 멈출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그랜저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손님의 차량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어 돌려줄 수 없습니다. 인수증을 작성하였으니 계약 취소도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24 생략) 오피러스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1,5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50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QM6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QM6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7은 2017. 4. 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한 후 피고인 6이 인수증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7은 피해자에게 “중고차는 구매해 보신 적 있나요. 테스트용 차량 처음 사시는 건가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손님이 선택한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기 때문에 주로 영화 촬영용으로 판매가 되어 내부 부품이 정품이 아니어서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25 생략) 프라이드 차량을 시세보다 625만원 비싸게 1,4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30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1과 공소외 4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2014년 5월식 16,234Km 운행한 (차량 번호 74 생략) 아반떼MD 차량을 25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270만원에 아반떼 MD 차량을 구입할 수 있으니 와서 구경하고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6,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6,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5년식 155,300Km 운행한 (차량번호 26 생략) 아반떼XD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63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27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제네시스 차량을 500만원에서 8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제네시스 차량을 실제 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는 2017. 4. 2.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SM5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관세가 엄청 비싸게 나오는데 얼마나 나오는지 모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SM5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인수증을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계약 취소를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5년식 (차량번호 27 생략) 쏘나타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2,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9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공소외 49는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기아 니로 차량을 37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기아 니로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공소외 49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공소외 49는 2017. 4. 3.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우선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카렌스 차량을 폐차해 주겠다며 피해자로부터 카렌스 차키를 받아 피해자가 모르는 위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피해자에게 광고한 기아 니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사실 이 차량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 부품은 다 중국산이고 부품 자체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이런 차량은 영화 제작사에서 촬영용으로 구입하는 차량인데 폭파용으로 구매를 하는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카렌스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손님이 끌고 온 카렌스 차량은 폐차되어 돌려줄 수 없고, 기아 니로 차량은 이전이 되어 계약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tu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9,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9,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28 생략) 올란도 차량을 시세보다 600만원 비싸게 1,6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60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8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0과 피고인 19는 피고인 8 팀 소속 딜러, 공소외 33은 피고인 8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33은 ‘△△△△△경매장’ 또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코란도 스포츠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께서 지금 타고 있는 차량을 팔고, 신차급인 코란도 스포츠 차량을 저렴하게 사세요. 이번에 들어온 코란도 스포츠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서 신차급입니다. 일반 위탁 판매라고 마진 붙여서 판매하는 그런 일반 차들이 아니라, 신차 영업소에서 테스트하던 차량인데, 이는 리프트 영업소에서 리프트 위에 차량을 끼워 놓은 다음에 연비나 마력 같은 걸 검사했던 차량입니다. 바퀴 검사하고 속력 체크하여 킬로수가 올라가서 신차로 판매를 못 해서 저희 매매단지가 매입을 했고, 나라에서 정해진 법정 시세 과표를 기준으로 판매를 하기 때문에 법정 시세 1.8%가 들어간 금액으로 판매를 하니 차량 가격이 아주 쌉니다. 추가 비용도 없고, 무사고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8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8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0과 피고인 19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0과 피고인 19는 2017. 4. 5.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액티언 스포츠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위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손님이 선택한 코란도 스포츠 차량은 테스트용 차라 많은 사고 실험을 하였기에 운전하는 데 있어 안전을 책임 못 집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액티언 스포츠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이미 손님의 액티언 스포츠 차량은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어 부산에 가 있고, 코란도 스포츠 차량은 인수증을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기에 계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3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3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29 생략) 코란도스포츠 차량을 시세보다 900만원 비싸게 2,1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2,150만원을 피고인 8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스포티지 차량을 500만원에서 1,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 실제 이 금액으로 스포티지 차량을 구매할 수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2017. 4. 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수출용 차량이라 고장 날 경우 카센터에 가도 부품도 없고, 만약 부품을 구하더라도 정상적인 가격의 4~5배 이상을 줘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어 출고하는 중이라 계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해서 대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30 생략) SM3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94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94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아반떼 차량을 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입니다. 오면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는 2017. 4. 1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성능기록부와 인수증 등을 작성한 후 피고인 12가 인수증 등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4는 피해자에게 “이 아반떼 차량이 왜 싸겠습니까. 이전하러 갔던 팀장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2는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전자제어장치(ECU)에 결함이 있어 급발진이 일어날 수 있고, 차량 세금도 비쌉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31 생략) 엑센트1.4 차량을 시세보다 150만원 비싸게 9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9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포터2 차량을 201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포터2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21은 2017. 4. 13.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21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완전히 분해를 해서 다시 조립을 한 차량이고, 운전 중에 핸들이 잠기며, 브레이크가 자주 고장이 나서 안전을 책임 못 집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32 생략) 투싼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1,5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중고차’ 또는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QM5 차량을 400만원에서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 차량입니다. ■■■ 매매단지로 오시면 이 차량이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는 2017. 4. 1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고 계약금 16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13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4는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은데, 문제가 굉장히 많은 차량입니다. 근데 제가 직접 말씀을 드릴 수 없으니, 사장님이 저와 지인이라고 하시면 제가 팀장님(피고인 13을 지칭함)을 다시 불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난 뒤 피고인 13에게 전화를 걸어 “팀장님, 손님과 대화 나누다가 지금에서야 저의 지인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이분께 이 차량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피해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3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미 이전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수출용이라서 수리하는 곳이 부산, 대전 등으로 한정이 되어 있고, 중고로도 다시 팔 수 없습니다. 세금도 많이 나오는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5년식 (차량번호 33 생략) QM5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2,56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9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랜드로버 차량을 85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 차량입니다. ■■■ 매매단지로 오시면 이 차량이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5는 2017. 4. 19.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고 계약금 25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12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5는 피해자에게 “차량을 잘 알고 구매하시는 건가요. 혹시 지인분 소개로 오셨나요. 차는 한 달에 얼마나 타시나요. 싸고 좋은 차는 없는 것 아시죠. 싼 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에게 물어보지 마시고 팀장님(피고인 12를 지칭함)한테 자세히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2는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정말 싼 이유를 모르십니까. 정상적인 차가 이 금액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영국에서 나온 차라 세금이 비싸고, 보험이나 유지 면에서 비싸며, 더구나 국내에서 이 차량을 유지하려면 2,000만원이나 더 비용이 들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사시는 것이 아니고, 대포로 쓰실 용도로 구매하시는 분이 이런 차량을 사야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포 차량으로 쓰실 것인가요. 대포 차량으로 쓴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34 생략) 닛산 무라노3.5 차량을 시세보다 550만원 비싸게 1,4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2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9는 피고인 8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 연식의 포터 차량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최신 역식의 포터 차량 1톤 트럭을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피고인 8 팀 소속 딜러 피고인 19에게 피해자를 만나 중고차를 함께 판매하자고 서로 공모한 뒤, 피고인 4와 피고인 19는 2017. 4. 2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고 계약금 10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4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다음, 피해자에게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외국에서 역수입된 차량이기 때문에 3개월에 300만원씩 세금을 내야 하고,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 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35 생략) 봉고3 차량을 시세보다 550만원 비싸게 1,03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72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맥스크루즈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500만원에 진짜 맥스크루즈 차량을 판매하니깐 꼭 ■■■로 오셔서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은 2017. 4. 22.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부품이 엉망입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데 안전을 보장 못 하고, 운행하다가 갑자기 엔진이 꺼질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도 저희들은 책임을 못 집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36 생략) 싼타페 차량을 시세보다 750만원 비싸게 1,4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4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엔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SM7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400만원에 SM7 차량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4는 다른 팀 팀장 피고인 5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과 공소외 36은 2017. 4. 22.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우선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그랜저 차량을 폐차해 주겠다며 피해자로부터 그랜저 차량 차키를 받아 피해자가 모르는 위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피해자에게 광고한 SM7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중국에서 수입된 차량인데 프레임이 휘고,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그랜저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그랜저 차량은 이미 폐차가 되어 돌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SM7 차량은 명의 이전이 되어 계약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tu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6,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6,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37 생략) SM7 차량을 시세보다 1,000만원 비싸게 1,74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92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YF소나타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고 난 차량이 아닙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7은 2017. 4. 25.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와 할부금융대출 신청서를 작성한 다음, 차량 이전하러 간다고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5분 정도 ■■■ 매매단지 내에 있는 흡연실에서 담배 피우고 돌아와 피해자에게 “차량을 이전시켰다”라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손님이 계약한 차량은 수입차라서 계약 후 매매가 불가능한 차량이고, 관세를 1년에 200만원씩 3년 동안 납부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38 생략) 소나타LPG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1,08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1,08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그랜드스타렉스를 300만원 ~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 차량입니다. 오시면 이 차량이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3과 피고인 14는 2017. 4. 26.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성능기록부와 인수증 등을 작성하고 계약금 17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13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4는 피해자에게 “이 차량 잘 알아보시고 오시는 건가요. 이렇게 가격이 저렴한 차량은 문제가 많습니다. 팀장(피고인 13을 지칭함)에게 다시 제대로 설명 들으세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3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역수입된 차량이기 때문에 분기별로 700만원씩 4회 세금을 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39 생략) 그랜드스타렉스 차량을 시세보다 470만원 비싸게 1,5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500만원을 피고인 1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 명의의 기업은행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9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40은 피고인 9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40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싼타페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전시용차량 또는 경매차량이라 저렴하고 운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진짜 이 금액으로 판매를 하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9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9는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5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은 2017. 4. 2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프레임 변형 및 급발진 등 사고 가능성이 높고, 운전하는 데 제 기능을 못 합니다. 이 차량은 중대한 결함이 있어 운행하는 데 안전하지 못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0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0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6년식 (차량번호 40 생략) 싼타페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1,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75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제네시스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제네시스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4. 29.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을 얼마나 타실 것인가요. 오래 타실 것인가요. 이 차량은 역수입된 차량이고, 차량 부품이 다 정품이 아니고 다 가짜 부품이라 6개월이나 1년 이상 타시기 힘드실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41 생략) SM7 차량을 시세보다 535만원 비싸게 1,42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32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공소외 4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65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65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1톤 트럭 포터2 윙바디 차량을 45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경매 차량이라 싸게 받아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입니다. 윙바디 차량이 실제로 있으니 와서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공소외 4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공소외 46은 2017. 4. 29.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봉고3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피해자가 알 수 없는 곳으로 ■■■ 중고차 매매단지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면서 광고에 올라온 금액인 450만원에 판매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역수출 차량이라 해외에서 압류가 들어와서 6개월에 200만원 ~ 300만원씩 갚아야 합니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였고, 위 봉고3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봉고3 차량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여 돌려줄 수 없습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6, 공소외 65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6, 공소외 65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42 생략) 포터2 윙바디 차량을 시세보다 260만원 비싸게 1,1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75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경매장’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그랜저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사장님,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신차 판매하기 전에 차량을 테스트했던 차량이고, 무사고 차량입니다. 오시면 이 차량이 있으니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2와 피고인 14는 2017. 4. 30.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마음에 들어 하자 성능기록부와 인수증 등을 작성하고 계약금 30만원을 수령한 후 차량을 이전하러 간다며 피고인 12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4는 피해자에게 “이 그랜저 차량이 왜 싸겠습니까, 이전하러 갔던 팀장(피고인 12를 지칭함)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12는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전자제어장치(ECU)에 결함이 있고 급발진이 있습니다. 따님이 운행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따님이 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님이 타고 다니는 차량은 저가용 차량이 아닌 정상적인 차량을 사주시는 것이 따님한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 취소가 안되며 계약금도 반환이 불가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43 생략) 쏘나타 차량을 시세보다 1,100만원 비싸게 1,8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80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공소외 4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BMW GT 차량을 89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BMW GT 차량을 진짜 890만원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으니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공소외 4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공소외 46은 2017. 5. 3.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7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조합운영용 차량입니다. 조합운영용 차량은 자동차 회사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테스트를 했던 차량이라 성능과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매매계약을 하고 나가자마자 고장이 나면 저희들은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6,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6,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44 생략) 혼다 어코드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1,74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5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8과 공소외 4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2016년식 아반떼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최신식 아반떼 차량을 진짜 300만원에 저렴하게 판매를 하니 ■■■로 오면 바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8과 공소외 4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8과 공소외 46은 2017. 5. 4.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공소외 46이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충돌 실험을 했던 차량이라 운행하는 데 위험하고 안전하지 못합니다”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6,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6,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45 생략) 엑센트 차량을 시세보다 900만원 비싸게 1,49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99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8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20은 피고인 8 팀 소속 딜러, 공소외 33은 피고인 8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33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 연식의 아반떼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 연식의 아반떼 차량을 구매할 수 있으니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8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8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20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20과 함께 2017. 5. 6.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많은 사고 실험을 하였기에 운전하는 데 안전을 책임 못 집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3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3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46 생략) 아반떼 MD 차량을 시세보다 400만원 비싸게 1,0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050만원을 피고인 8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피고인 4 팀 소속 딜러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성명불상의 TM은 ‘◀◀◀중고차’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쉐보레 차량을 24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240만원으로 최신식 쉐보레 차량을 구매할 수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4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5. 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4는 피해자에게 “이 쉐보레 차량은 외수용 차량이라 3개월마다 세금 150만원씩 내야 합니다”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성명불상의 TM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성명불상의 TM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47 생략) K3 차량을 시세보다 1,000만원 비싸게 1,776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89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72는 피고인 5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72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그랜저 HG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차량 가격이 저렴합니다. 진짜 그랜저 HG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5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은 2017. 5. 11.경 위 ■■■에서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광고한 그랜저 HG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우선 피고인 16은 피해자에게 ‘선생님이 타고 오신 SM5 차량을 저희들에게 파시고, 그랜저 차량을 계약하기로 해요’라고 하면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SM5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중고차 매매단지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위 광고한 그랜저 HG 차량과 비슷한 차량에 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 부품은 중국산이라 수리가 안 되고, 차 운전하는 데 위험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SM5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SM5 차량은 이미 판매가 되어 돌려줄 수 없고, 그랜저 HG 차량은 판매 수속이 완료되어 계약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72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72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48 생략) 그랜저HG300 차량을 시세보다 800만원 비싸게 2,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2,20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72는 피고인 5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72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모하비 차량을 350만원에 판매한다’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350만원에 모하비 차량을 구입할 수 있으니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5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5는 대표 피고인 1, 다른 팀 팀장 피고인 2에게 피해자를 유인하였다고 알려 주었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5. 1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고 각종 출동 실험을 했던 차량이라 정상적인 부품이 없습니다. 가다 서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출했다가 역수입한 차량이라 나중에 보험도 안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72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72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49 생략) 뉴스포티지 차량을 시세보다 900만원 비싸게 1,3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K9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K9 차량을 700만원에 진짜 판매하며 또한 다른 차량도 아주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으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은 2017. 5. 12.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엔진이 망가져서 갑자기 시동이 꺼져 대형 사고가 나는 차량입니다. 아주 위험한 차량이라 친구도 싸게 가져가서 엄청 크게 사고가 났었습니다”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50 생략) SM7 차량을 시세보다 540만원 비싸게 1,3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50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72는 피고인 5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72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포드 퓨전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실제 저렴한 금액으로 포드 퓨전 차량을 판매하니 ■■■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5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은 2017. 5. 13.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전자제어장치에 문제가 있고, 프레임이 휘어 주저앉으며, 중국 부품이 들어가 있어 부품 조달이 어렵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72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72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1년식 (차량번호 51 생략) 포드 퓨전 차량을 시세보다 1,000만원 비싸게 1,76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70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뉴 쏘렌토 차량을 85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뉴 쏘렌토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피고인 18은 2017. 5. 13.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구형 쏘렌토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피해자가 알 수 없는 곳으로 ■■■ 주차장에 위 구형 쏘렌토 차량을 주차해 놓은 다음,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한 후 피고인 7이 인수증을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8은 피해자에게 “사장님, 인터넷사이트 보고 오신 건가요. 인터넷사이트에 올라온 차량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모르시나요. 저는 정확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여 피해자에게 그 차량이 마치 문제가 있는 차량인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고(딜러들은 소위 ‘손님에게 밑밥을 깐다’라고 함), 이때 피고인 7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조합 차량인데, 출동 테스트를 한 차량이라 외국에 보냈다가 외국에서 차가 굴러다닐 수 있을 정도만 만들어서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해서 판매하는 차량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 120킬로로 달리면 브레이크가 고장 날 수도 있습니다. 대형 사고가 날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구형 쏘렌토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손님의 차량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어 돌려줄 수 없습니다. 인수증을 작성하였으니 계약 취소도 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52 생략) 싼타페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2,3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93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코란도 스포츠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이 금액으로 코란도 스포츠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실제 코란도 스포츠 차량이 있으니 와서 한번 보시고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5. 14.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한 후 피고인 4가 계약서를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7은 피해자에게 “사실 이 차량은 외국에서 들어온 차량인데 3개월마다 차량 검사를 받아야 하고, 검사를 받을 때마다 300 ~ 400만원 비용이 들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때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이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6년식 (차량번호 53 생략) 코란도C 차량을 시세보다 930만원 비싸게 2,3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57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3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는 피고인 3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8은 피고인 3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8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SM6 차량을 36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경매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것이고, 진짜 SM6 차량이 있으니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3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3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3과 피고인 15는 2017. 5. 14.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K7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고인 13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3년 안에 팔 수 없는 차량입니다. 그리고 관세가 1년에 900만원씩 3년 동안 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 및 위 K7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8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8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54 생략) K7 차량을 시세보다 750만원 비싸게 2,16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160만원을 피고인 3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9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40은 피고인 9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40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K5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K5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를 하니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9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9는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4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5. 17.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한 후 피고인 4가 계약서를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7은 피해자에게 “사실 이 차량은 베트남에서 전시를 했다가 국내로 들어온 차량입니다. 세금이 3개월마다 내야 하는데 총 2,000만원이나 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때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이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0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0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55 생략) SM5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1,76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76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65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65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카니발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카니발 차량을 이 금액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2017. 5. 1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을 오래 타실 것인가요. 이 차량은 충돌 테스트용 차량이라 많이 타 봐야 한두 달간 타면 끝입니다. 고장이 심각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65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65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56 생략) 싼타페DM 차량을 시세보다 400만원 비싸게 1,2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2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공소외 49는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 연식의 쏘렌토 차량을 1,0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전시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거니 인천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셔서 구경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공소외 49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공소외 49는 2017. 5. 18.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스파크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면서 광고에 올라온 금액인 1,000만원에 판매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6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 촬영용 차량인데, 차에 결함이 많은 차량입니다. 수리를 해도 2,000만원 이상이 들 것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고, 위 스파크 차량의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스파크 차량은 이미 매도하기 위해 서류(계약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고, 위 영화 촬영용 차량인 쏘렌토 차량을 갖고 가기 싫으면 다른 차량이라도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9,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9,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57 생략) 카렌스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1,4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5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티볼리 차량을 31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경매 차량을 저렴한 가격에 들어와서 판매가 저렴하고, 저희들은 국가에서 공인 인정한 기관이라 의심할 것 없습니다. 진짜 이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재라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과 피고인 11은 2017. 5. 20.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충돌 테스트용 차량이라 부속품이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운전하는 데 위험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58 생략) 카이런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1,1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9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중고차’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스타렉스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스타렉스 차량을 400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와서 구매를 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2017. 5. 21.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여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11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인데, 각종 출동 테스트를 하고 난 다음 수리를 한 것을 싸게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A/S가 안되고 운전하는 데 위험한 차량입니다”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59 생략) 그랜드스타렉스밴 차량을 시세보다 540만원 비싸게 1,4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올뉴 카니발 차량을 8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올뉴 카니발 차량을 800만원에 판매를 하니 인천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17과 함께 2017. 5. 21.경 위 ■■■에서 피해자가 운행하여 온 코란도 액티언 차량을 매입해 주겠다며 ■■■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다음, 이후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한 후 피고인 4가 계약서를 갖고 차량을 이전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피고인 17은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외국에서 들어온 차량이라 3개월에 한 번씩 300만원 세금을 내야 하고 총 3,700만원 세금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A/S 받을 경우에도 아무 대리점에서 A/S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천에서만 A/S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때 피고인 4가 피해자에게 돌아와 차량이 이전되었다고 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이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60 생략) 코란도 투리스모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2,4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85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4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7은 피고인 4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4는 피고인 4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는 ‘▶▶엔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모하비 차량을 6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600만원에 모하비 차량을 구매할 수 있고, 현재 모하비 차량이 보유하고 있으니 구입 가능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4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4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7은 2017. 5. 23.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차량인데 한국에서 차량을 등록하면 매달 400만원씩 6개월 동안 총 2,40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4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4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61 생략) 쏘렌토 차량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게 1,73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380만원을 피고인 4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성명불상의 TM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외제 차량을 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리콜차인데 운행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차입니다. 진짜 이 금액으로 외제 차량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5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5는 2017. 5. 24.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 가격은 700만원이지만 부가세가 5,000만원이나 있는 차입니다. 또한 이 차량은 엔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성명불상의 TM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성명불상의 TM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62 생략) BMW 320i 차량을 시세보다 250만원 비싸게 2,7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2,70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SM7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SM7 차량을 300만원에 구매할 수 있으니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6은 2017. 5. 24.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짜깁기해서 만든 차이고, 부품이 정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운전하는 데 위험합니다. 시동이 갑자기 꺼질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63 생략) SM7 차량을 시세보다 600만원 비싸게 1,2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10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8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중고차’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모닝 차량을 42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최신식 모닝 차량을 진짜 420만원으로 저렴하게 판매를 하니, ■■■로 와서 구매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8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8과 피고인 11은 2017. 5. 27.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서 외국으로 수출 보냈다가 돌아온 차량입니다. 그래서 겉은 멀쩡하게 보이지만 바퀴가 빠지고, 핸들도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차량입니다. 인천에서 대전까지 몰고 내려갈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8년식 (차량번호 64 생략) 모닝 차량을 시세보다 220만원 비싸게 49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31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모하비 차량을 1,7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최신식 모하비 차량을 1,700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으니 와서 구매를 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은 2017. 5. 29.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할부가 남은 차량인데 약 1,000만원 정도 더 돈이 필요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09년식 (차량번호 65 생략) 모하비 차량을 시세보다 450만원 비싸게 2,1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2,1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6(2017. 6.경부터 팀장 역할)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공소외 90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91은 피고인 6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91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K3 차량을 300만원 ~ 4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손님이 보신 차량인 K3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입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제조자에서 차량 제원 검사를 했던 차량인데 재원이라고 하면 연비 측정하는 차량이라 신차로 출고가 되지 않는 차량이라서 금액 단가가 저렴합니다. 300만원에 K3 차량 구매할 수 있으니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6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6은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5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공소외 90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공소외 90은 2017. 6. 3.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는 시험용 차량으로 나중에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하여 운전하는 데 위험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90, 공소외 91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90, 공소외 91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4년식 (차량번호 66 생략) K3 차량을 시세보다 620만원 비싸게 1,34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1,34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중고차’이라는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1년도 안된 투싼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최신식 투싼 차량을 5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과 피고인 11은 2017. 6. 4.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에서 차를 폭파하거나 물에 빠뜨릴 때 쓰는 촬영용 차량입니다. 이런 차량은 자가용으로 쓰는 차량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차가 뻗을지 모르는 위험한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67 생략) 닛산 로그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1,7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1,0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8,공소외 49는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최신식 쉐보레 차량을 2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진짜 최신식 쉐보레 차량을 2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 오시면 더 좋은 차가 많이 있고 저렴하게 판매를 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8과 공소외 49를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8과 공소외 49는 2017. 6. 7.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실험 주행 차량인데 외국에 나갔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온 차량이라 보험에 가입이 안됩니다. 그리고 운행하는 데 안전을 보장을 못 하는 위험한 차량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49,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49,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68 생략) 모닝 차량을 시세보다 500만원 비싸게 9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800만원을 피고인 1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8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9와 피고인 20은 피고인 8 팀 소속 딜러, 공소외 33은 피고인 8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33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투싼 차량을 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 차량이라 진짜 500만원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8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8은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9와 피고인 20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9와 피고인 20은 2017. 6. 10.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역수출 차량이라 엔진이 뻗습니다. 운전하는 데 지장이 있고, 안전하지 않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33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33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3년식 (차량번호 69 생략) 투싼 차량을 시세보다 700만원 비싸게 1,65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중 일부인 850만원을 피고인 8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5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6(2017. 6.경부터 팀장 역할)은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16은 피고인 5 팀 소속 딜러, 공소외 96은 피고인 6 팀 소속 딜러, 공소외 91은 피고인 6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91은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BMW 차량을 1,0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손님이 보신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입니다. 테스트용 차량은 제조자에서 차량 제원 검사를 했던 차량인데 재원이라고 하면 연비 측정하는 차량이라 신차로 출고가 되지 않는 차량이라서 금액 단가가 저렴합니다. 광고에 있는 이 금액대로 살 수 있으니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6에게 보고하고, 피고인 6은 같은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인 피고인 5에게 일명 ’와끼‘를 주었다. 피고인 6은 팀 소속 딜러인 공소외 96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피고인 5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16을 출동으로 각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16과 공소외 96은 2017. 6. 16.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차량 부속품이 다 중국산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96, 공소외 91은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96, 공소외 91과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5년식 (차량번호 70 생략) BMW520d 차량을 시세보다 920만원 비싸게 5,1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4,180만원을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 1은 외부사무실 대표, 피고인 2는 위 외부사무실 소속 팀장, 피고인 7은 피고인 2 팀 소속 딜러, 공소외 19는 피고인 2 팀 소속 TM으로, 외부사무실 인적 구성 및 직책에 따른 역할, 수익배분 체계 등에 따른 순차적 공모에 따라 피해자에게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따라 공소외 19는 불상의 인터넷사이트에 ‘소형 차량을 3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하게 구매 가능합니다. 진짜 이 금액대로 살 수 있으니 ■■■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그 사실을 피고인 1과 피고인 2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과 피고인 2는 팀 소속 딜러인 피고인 7을 출동으로 지정하고, 이에 피고인 7은 2017. 6. 18.경 위 ■■■에서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매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인수증을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피해자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계약서를 작성하여 차량이 이전되었으니 취소할 수 없습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이라도 구입하셔야 합니다”고 거짓말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들과 공소외 19는 피해자에게 위 차량을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처음부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위 차량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사실과 달리 차량에 하자가 있거나 추가로 납부할 대금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계약을 포기시키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다른 차량을 구매하여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거짓말한 후, 다른 차량의 시세를 속여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피고인들은 공소외 19와 함께 이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0년식 (차량번호 71 생략) 마티즈 차량을 시세보다 300만원 비싸게 7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 명목으로 590만원을 피고인 2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송금받았다. 피고인은 인천 (주소 2 생략)에 있는 중고차 매매상사인 ‘◎◎◎모터스’, ‘♠♠모터스’, ‘♥♥모터스’, ‘♣♣♣♣♣♣’, ‘♧♧상사’의 실제 운영자이자, 인천 (주소 3 생략)에 있는 할부중개업체인 ‘□□□할부’와 인천 (주소 2 생략)에 있는 ‘◇◇◇할부’의 실제 운영자이며, 인터넷 중고차 광고사이트인 ‘△△△△△경매장'을 실제 운영하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피고인 1 등이 무등록 중고차 매매상사(속칭 외부사무실)를 마련하여 함께 일할 직원들을 모집한 다음 인터넷 중고차 광고사이트에 허위 또는 미끼매물 광고를 게재하여 손님을 유인한 다음 일명 ‘뜯플’, ‘쌩플’ 수법과 같은 기망행위를 통해 중고차를 판매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범행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2016. 6.경 인천 이하 불상지에서 피고인 1에게 ‘외부사무실로 사용할 장소, 허위 또는 미끼매물을 광고하는 데 필요한 인터넷 중고차 광고사이트, 등록된 중고차 매매상사 직인이 날인된 계약서와 할부금융을 제공할 테니 대신 내가 운영하는 할부중개업체를 이용해달라’는 취지로 제안하고, 그 제안을 수락한 피고인 1 등의 제1항 기재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피고인은 2016. 6.경부터 인천 (주소 생략)에 있는 (건물 명칭 생략) 3층의 빈 사무실 등을 외부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피고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중고차 광고사이트인 ‘△△△△△경매장’과 ‘●●카’에 허위 또는 미끼매물 광고를 게재할 수 있도록 제공하였으며, 위 ‘◎◎◎모터스’ 등 피고인이 운영한 중고차 매매상사 명판이 날인된 자동차양도증명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수시로 교부하고, 피고인 1 등의 사기 범행으로 중고차를 구입한 손님들이 피고인이 운영한 할부중개업체를 이용하여 할부금융을 받을 수 있도록 중개하였다. 한편 피고인 1, 피고인 4, 피고인 17, 공소외 14는 2017. 2. 5.경 ‘△△△△△경매장’이라는 사이트에서 ‘모하비 차량을 500만원 ~ 1,500만원에 판매한다'라는 취지의 거짓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 공소외 22에게 “테스트용 차량이라 저렴합니다. 광고에 올라온 저렴한 금액으로 진짜 모하비 차량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를 ■■■로 유인한 다음, 피해자에게 광고한 차량과 비슷한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차량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그 차량에 관해서 계약서를 작성하여 마치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차량이 피해자에게 이전된 것처럼 속인 후, 피해자에게 “이 차량은 관세가 1,000만원 정도 많이 나오는 차량입니다. 수입차라서 부품을 구하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차량이 이미 이전되어 계약 취소는 불가능합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신 다른 차량을 구입해야 합니다”라고 거짓말하고, 이에 속은 피해자로 하여금 같은 날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2012년식 (차량번호 72 생략) 모하비 차량을 시세보다 600만원 비싸게 3,000만원에 구입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피고인이 운영하는 할부중개업체를 통해 할부금융대출을 신청하게 하여 차량매매대금으로 3,000만원을 피고인 1 등이 관리하는 계좌로 송금받았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고인 1, 피고인 4, 피고인 17, 공소외 14의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하여 방조한 것을 비롯하여 2016. 12. 5.경부터 2017. 6. 18.경까지 총 71회에 걸쳐 피고인 1 등의 제1항 기재 사기 범행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도와주어 용이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사기 범행을 방조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2017. 4.경 인천 (주소 4 생략) 맞은편 GS편의점 4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인터넷사이트 ‘▼▼▼▼▼경매장’ (사이트 주소 2 생략)에 실제 보유하고 있지 아니한 번호불상의 QM3 차량을 1,000만원에 판매한다고 거짓 광고를 하였다. 피고인 5는 실제 차량 매매대금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인 속칭 ‘미끼매물’을 통해 고객을 유인한 후, 이를 보고 찾아온 고객을 피고인 16에게 배정하고, 피고인 16은 이러한 고객에게 미끼매물이 아닌 다른 차량의 매수를 권유하면서 실제 차량 매매대금보다 현저히 높은 금액으로 차량을 매도하여 그 차액을 편취할 것을 공모하였다. 그에 따라 피고인 5는 제1항 기재 일시, 장소에서 제1항 기재와 같이 허위매물광고를 게재하고, 이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 공소외 98을 인천 □□ ◇◇단지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피고인 16은 2017. 5. 9.경 인천 (주소 5 생략)에 있는 ○△역에 도착한 피해자를 차량에 태우고 인천 (주소 6 생략)에 있는 ■■■로 이동한 후 광고한 차량과 유사한 다른 차량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위 차량을 구입하기로 하자 “위 차량은 급발진이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위 차량의 구입을 포기하게 한 다음 인천 (주소 7 생략)에 있는 ☆☆ ▽▽단지로 이동하여 2017년식 (차량번호 73 생략) QM3 승용차량을 보여주면서 “차량 가격은 취·등록세 등을 포함하여 1,800만원이고, 알선수수료는 30만원이다”라는 취지로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위 차량의 가격은 취·등록세를 포함하여 1,630만원이었으므로 그 차액인 200만원은 피고인들이 알선수수료 명목으로 가로챌 생각이었다.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위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같은 날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3,997,000원을 송금받고, 피해자로 하여금 □□□할부금융으로부터 14,300,000원을 대출받게 한 후 이를 같은 날 피고인 5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송금받아 이를 편취하였다. 피고인은 중고차매매중개인들이 허위매물로 인하여 자동차관리법위반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공동피고인들이 사기범행을 저지를 것이라는 점을 전혀 예견하여 못했다고 주장한다.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행위를 말하므로, 방조범은 정범의 실행을 방조한다는 이른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 점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어야 하나, 이와 같은 고의는 내심적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할 것이며, 또한 방조범에 있어서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족하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6056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은 단순히 공동피고인들과 사이에 거래관계만 존재하는 할부중개업체 대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공동피고인들이 소속된 외부사무실의 실질적 대표에 해당하는 자이고, 또한 처음부터 공동피고인들이 뜯플, 생플 등 사기적인 수법을 이용하여 중고차를 판매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 또는 예견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① 인천지역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른바 허위미끼매물을 올리고 이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뜯플 또는 쌩플 수법을 이용한 중고차를 판매하는 수법이 만연하여 있고 이러한 수법의 중고차를 판매는 단속을 피해 무등록 중고차 매매상사인 속칭 ‘외부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중고차판매업계에 종사해 왔고, 피고인 1에게 외부사무실{외부사무실로 사용된 ◎◁동(건물 명칭 생략) 3층, ▷♤동☆☆공업사 건물 4층, ♤♡동□□□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은 피고인 22가 이미 임대해서 사용하는 곳이었고, 피고인 1은 2017. 5.경까지도 공소외 9에게 사무실을 이용하겠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하고 있다(증거기록 제4359쪽)}까지 마련해 준 피고인 22가 이러한 실태를 모른다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이 없다{또한 공동피고인들 대부분도 피고인 22가 인천의 중고자동차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고, 피고인 22가 운영하는 인터넷 중고차 광고사이트인 ‘△△△△△경매장’은 허위미끼매물을 올리는 사이트이며,피고인 5, 피고인 20, 피고인 19, 피고인 18, 피고인 12, 피고인 14 등은 ◎◎◎모터스는 전부 허위매물만 취급한다고 진술한 바 있다(증거기록 제2605쪽, 제3452쪽, 제3657쪽, 제3745쪽, 제3877쪽, 제3998쪽)}. (주5) 피고인 22는 뜯플, 쌩플 수법을 이용한 중고차판매를 해오던 딜러인 피고인 1을 외부사무실의 대표로 영입하였고, 적어도 팀장들도 뜯플, 쌩플 수법의 중고차판매 경험이 있는 자들로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서 피고인 1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② 허위미끼매물을 보고 오는 고객들과 사이에 최종적인 계약의 체결에까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강요나 사기 등의 비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허위미끼매물로 고객을 유인한다는 사정을 인식 또는 예견한 이상{피고인 22도 중고차 딜러들이 허위미끼매물을 많이 올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증거기록 제5956),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이 운영한 위 광고사이트도 허위미끼매물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피고인 22 입장에서도 꾸준히 할부수수료 수입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딜러들이 고객에게 차를 많이 팔아야 하므로(우건 판매 건수가 많아야 할부를 이용하는 건수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판매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인천 중고차매매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허위매물을 취급하는 외부사무실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또한 허위미끼매물을 취급하는 외부사무실의 경우 판매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최종적인 계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설령 피고인 22가 구체적인 기망 수법 등을 알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비정상 내지 불법적인 방법이 사용된다는 것을 의심하였을 것임을 정상적인 경험칙상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 ③ 피고인 22는 중고차매매상사인 ◎◎◎모터스, ♠♠모터스 등 여러 업체를 돌려가면서 타인의 명의를 빌려 등록하였는데, 이는 위 중고차매매상사의 명판이 날인된 자동차양도증명서를 사용하려는 중고차딜러들이 허위미끼매물을 취급해서 고객에게 중고차를 판매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처벌받을 것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위 중고차매매상사들은 대부분 유령회사로 실질적으로 그곳에서 영업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명의상 대표인 공소외 9, 공소외 103 등은 주로 중고차매매상사의 명판이 날인된 자동차양도증명서를 제공해 주는 일을 하였는데, 위 매매상사가 유령사무실이기 때문에 피고인 22가 운영하는 할부중개사나 길거리 등에서 계약서를 전달하였다(증거기록 제4322쪽)}, 명의를 빌려준 공소외 8도 허위매물을 취급하는 팀의 사수였다. ④ 피고인 1이 대표로 있는 외부사무실(이하 ‘이 사건 외부사무실’이라 한다) 외에도 3개의 외부사무실(대표 공소외 2, 공소외 105, 공소외 107)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위 외부사무실들은 모두 피고인 22가 마련해 준 것이다. 피고인 6은 검찰 및 이 법정에서 이 사건 외부사무실의 실제 대표는 피고인 22라고 진술하고 있으며, 다른 피고인들도 이와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다. 이 사건 외부사무실 소속 공동피고인들은 대부분 뜯플 또는 쌩플의 수법을 이용하여 중고차매매를 하였고, 이 사건 외부사무실이 (건물 명칭 생략) 3층(4층에는 공소외 105가 대표로 있는 외부사무실이 있었다)으로 이동한 적이 있었는데, (건물 명칭 생략) 3, 4층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인 2016. 10. 5.경 피고인 22, 공소외 105 등이 현장에 나왔고, 피고인 22는 경찰관에게 사업자등록증을 보여주면서 이곳은 무등록사무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증거기록 제4351쪽). 또한 피고인 1은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공소외 9를 통하여 피고인 22에게 보고하였다(증거기록 제4318쪽, 제4360쪽). ⑤ 피고인 22가 운영하는 할부중개사사무실은 직원들이 옆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사기 범행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종종 이용되었다. ⑥ 피고인 22는 각각의 외부사무실의 회식에 참여하여 열심히 하자고 건배하면서 격려를 하기도 하였고, 이 사건 범행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진 이후인 2017. 5.경에는 피고인 1, 피고인 6은 피고인 22를 만나 경찰에서 어떻게 조사를 받아야 할지 상의하기도 하였다. ⑦ 다른 외부사무실의 대표인 공소외 2도, 피고인 22가 외부사무실에 찾아오거나 전화로 일에 대한 모든 것을 물어보면 보고(대답)하였고, 피고인이 2016. 12.경 ☆☆공업사 4층 사무실에 찾아와서 “니네 애들 뜯플, 쌩플할 줄 아냐”라고 물어보아 자신이 피고인 22에게 “모두 경력자들이 왔기 때문에 모두 할 줄 안다고 하니까 피고인 22가 ”뜯플해서 차를 팔되 뜯플로 터지면 합의를 잘 보고 경찰에서 조사받게 되면 뜯플만 인정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이에 대해 피고인의 변호인은, 공소외 2의 위와 같은 진술은 공소외 2가 검찰에서 3회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을 때부터 진술을 번복하여 이전과 다른 내용의 진술을 하는 등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나, 공소외 2의 위 진술은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검찰 3회 조사 이후부터 법원에 이르기까지 주요 내용에 대하여 일관되며,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한 다른 공동피고인의 주장과도 모순점이 없다. 달리 공소외 2의 진술에 허위가 개재될 사정은 보이지 않고, 이 법정에서의 진술 태도 등에 비추어 신빙성이 인정된다(또한 피고인 22의 변호인은 공소외 2가 피고인 22의 변호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비추어 보더라도 공소외 2의 검찰 제3회 피의자신문조서는 일관성이 없는 등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공소외 2가 이 법정 및 2018고단4306 사건의 법정에서 한 진술 내용, 공소외 2의 변호인이 2018고단4306 사건에서 한 진술 내용을 종합하여 알 수 있는, 공소외 2가 검찰에서 새로운 진술을 하게 된 상황 및 공소외 2가 위 편지를 보내게 된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위 편지는 공소외 2가 검찰에서 피고인 22에게 불리한 진술한 것이 인천 중고차 업계에 알려진 것에 대하여 외부에 있는 가족들 또는 본인에게 어려움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 내지는 압박감에 의하여 보낸 것으로 보이므로, 편지내용 그대로를 믿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공소외 2의 진술을 배제하고라도 앞서 본 사정들만으로도 피고인 22에 대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피고인 22 및 그 변호인은 공소장에 기재된 피고인 22의 행위가 방조행위에도 해당하지 아니하고, 피고인 1 외의 다른 공동피고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므로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유형적, 물질적인 방조뿐만 아니라 정범에게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무형적, 정신적 방조행위까지도 이에 해당한다. 종범은 정범의 실행행위 중에 이를 방조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실행 착수 전에 장래의 실행행위를 예상하고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 방조한 경우에도 성립하고(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도7658),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점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한 이상 그 행위가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이거나를 가리지 않으며 이 경우 정범이 누구에 의하여 실행되어지는가를 확지할 필요는 없다(대법원 1977. 9. 28. 선고 76도4133 판결). 앞서 든 각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 22가 공동피고인들이 실행을 착수하기 전에 이 사건 외부사무실(외부사무실에서는 공동피고인들 및 전화상담원들이 출근하여 허위매물을 중고차광고사이트에 올리고, 광고를 보고 연락하는 고객에 대하여 전화 응대를 하고, 고객이 찾아올 경우 출동하기 위하여 대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을 마련해 주고, 등록된 중고차 매매상사의 직인이 날인된 자동차양도증명서를 제공해 주었던 행위 등을 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피고인 22의 행위는 정범의 실행행위인 중고차매매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로 충분히 평가할 수 있고, 또한 피고인 1과 공모관계에 있는 공동피고인들 중 어느 누군가가 범행을 실행할 것인지 여부가 확정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방조범의 성립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이에 반대되는 피고인 22 및 그 변호인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인 22의 변호인은, 공동피고인들이 판매한 건수 중 피고인 22의 할부를 이용한 일부에 대하여만 기소가 되었고, 할부를 이용한 건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건은 기소하지 않고 약 200건만 기소를 하였는바, 이러한 검사의 기소는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였다고 보여지는 경우에 이를 공소권의 남용으로 보아 공소제기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서 자의적인 공소권의 행사라 함은 단순히 직무상의 과실에 의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미필적이나마 어떤 의도가 있어야 하는바(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도577 판결 등 참조), 앞서 든 각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① 이 사건은 검사가 인지한 사건이 아니라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에 해당하는 점, ② 경찰에서 압수수색 당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가 이루어졌고, 피해자 조사를 통하여 범행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된 범행에 대하여 기소가 이루어진 점에 비추어 볼 때 변호인이 주장하는 위 사유만으로는 검사의 이 사건 공소제기가 자의적인 공소권 행사로서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변호인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피고인들은 중고차 거래를 함에 있어서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뜯플’, ‘쌩플’이라는 수법을 사용하고, 단속을 피해 소위 ‘외부사무실’을 이용하는 등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러 왔다. 그리고 상당수의 피해자는 아직까지도 피해 변제를 받지 아니하였고, 범행과정에서도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 더욱이 이와 같은 범행은 중고차 거래의 질서를 교란하고, 정상적인 운영을 하는 건전한 중고차 업체들에까지 손해를 가하는 것으로 사회적 폐해도 매우 크므로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 밖에 아래와 같은 개별 피고인들의 양형 인자 및 피고인들의 나이,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범행을 일부 자백하면서 반성. 부대표 내지는 팀장으로 가담. 범행가담횟수 40회. 범죄수익 합계 6,500여만원. 동종 또는 금고형 이상의 범죄전력 없음. 피고인 1이 피해자 공소외 29, 공소외 87, 공소외 66, 공소외 68, 공소외 35, 공소외 20, 공소외 1, 공소외 27, 공소외 88, 공소외 94, 공소외 42, 공소외 54, 공소외 77, 공소외 58, 공소외 44, 공소외 34, 공소외 31, 공소외 47, 피고인 22, 공소외 37, 공소외 24, 공소외 23, 공소외 64, 공소외 45와 각각 합의를 하여 그 부분 피해가 회복됨.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 팀원 및 팀장으로 가담. 범행가담횟수 18회. 범죄수익 합계 1,500여만원. 동종 또는 금고형 이상 전과 없음. 피해자 공소외 25, 공소외 30, 공소외 81, 공소외 28과 각각 합의. 피고인 1 또는 피고인 5가 피해자 공소외 29, 공소외 87, 공소외 1, 공소외 27, 공소외 34, 공소외 31, 공소외 24, 공소외 64, 공소외 45, 공소외 92, 공소외 97과 각각 합의하여 그 부분 피해가 회복됨.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 팀원 및 팀장으로 가담. 범행가담횟수 13회. 범죄수익 합계 700여만원. 초범. 피해자 공소외 83, 공소외 75, 공소외 89와 각각 합의. 피고인 1이 피해자 공소외 68, 공소외 80, 공소외 77, 공소외 58, 공소외 34, 피고인 22, 공소외 45와 각각 합의하여 그 부분 피해가 회복됨. 인천, 부천 지역 중고차 매매단지에는 실제 매물로 보유하지 않은 중고차량을 마치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것처럼 인터넷 중고차량 매매사이트 등에 광고하여 중고차량 구입을 희망하는 손님이 위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TM(광고 전화 응대 및 손님 유인책)이 그 전화를 받아 광고된 가격 그대로 차량을 판매한다고 손님을 유인하여 위 중고차 매매단지로 오도록 하고, 딜러(현장 판매 종사원)들은 그 손님을 만나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에 대하여 광고에 게재된 대로 낮은 가격에 판매할 것처럼 계약을 체결한 다음 계약 당시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추가로 납부해야 할 금액이 있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차량이라는 등으로 거짓말하여 위 계약을 포기시키고 이를 빌미로 손님으로 하여금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딜러 등이 지정하는 다른 중고차량을 비싸게 구입하도록 함으로써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수법(일명 ‘뜯플’, ‘쌩플’ 수법)이 횡행하고 있는데 이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고차량을 판매하였을 때 보다 그 매출 및 수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에서 중고차 매매상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할관청에 등록하여야 하는데 660㎡ 이상 연면적의 전시시설, 정비·성능점검 시설 및 사무실을 구비하여야 한다. 한편, 위 ‘뜯플’, ‘쌩플’ 수법을 통해 중고차 불법판매를 하려는 자에게는 손님들을 유인할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을 게재할 광고사이트, 손님들에게 불법적으로 판매한 중고차량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등록된 중고차 매매상사의 계약서만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이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고차량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등록 요건을 구비하여야 하나 위 ‘뜯플’, ‘쌩플’ 수법을 통해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려는 자들은 전시시설, 정비·성능점검 시설이 필요치 아니하므로 위 시설 없이 사무실만 마련해 놓은 무등록 중고차 매매상사(일명 ‘외부사무실’)가 등장하게 되었다. 피고인 1은 인천 지역에서 중고차 관련 일을 하던 자로, 외부사무실을 설립하여 직원들을 모집한 후 위 ‘뜯플’, ‘쌩플’ 수법으로 중고차량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이를 통하여 수익을 올리는 방식의 사기 범행을 계획하고,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피고인 1은 2016. 6.경부터 인천 (주소 생략)(지번 1 생략)에 있는 (건물 명칭 생략) 3층에서, 2016. 8.경부터 인천 (주소 2 생략)(지번 2 생략)에 있는 ☆☆공업사 건물 4층에서, 2016. 9.경부터 인천 (주소 3 생략)(지번 3 생략)에 있는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서, 2017. 1.경부터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서, 2017. 4.경부터 인천 (주소 3 생략)(지번 4 생략)에 있는 (건물 명칭 2 생략) 4층에서, 2017. 7.경부터 인천 (주소 3 생략)(지번 3 생략)에 있는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서, 2017. 8.경부터 위 ☆☆공업사 건물 4층에서, 2017. 9.경부터 인천 (주소 8 생략)에 있는 상가건물 2층에서, 2017. 11.경부터 인천 (주소 9 생략)에 있는 사우나건물 5층에서, 2017. 12.경부터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서 차례로 각각 사무실을 마련한 다음 책상, 컴퓨터, 전화기, 인터넷 설비, 기타 사무실 집기 등 중고차 불법판매 범행에 필요한 범행 도구를 구비하는 등 중고차 불법판매 범행에 필요한 물적 시설을 구비하여 외부사무실을 운영하였다. 1)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인천 (주소 생략), 인천 (주소 2 생략), 인천 (주소 3 생략), 인천 (주소 8 생략), 인천 (주소 9 생략) 지역에 차례로 외부사무실을 개소하고 외부사무실을 팀제로 운영하면서 각 팀을 책임지고 운영할 팀장(중간관리책임자)을 모집하고, 팀장과 함께 그 휘하에 딜러, TM을 모집하였다. 2) 이 사건 외부사무실은 피고인 1 휘하에 팀장으로 피고인 2, 피고인 3, 피고인 5, 피고인 4, 피고인 6, 피고인 7, 피고인 8, 피고인 9가 있으며, 피고인 2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21, 피고인 6(2017. 6.경 팀장으로 역할 변경), 피고인 8(2017. 3.경 팀장으로 역할 변경), 피고인 7(2017. 7.경 팀장으로 역할 변경), 피고인 10, 피고인 11, 공소외 17, 공소외 49, 공소외 46, 공소외 108, TM으로 공소외 19, 공소외 91(2017. 6.경 피고인 6 팀의 TM으로 소속 변경), 공소외 109, 공소외 110, 공소외 65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3이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12, 피고인 13, 피고인 14, 피고인 15, 공소외 111, 공소외 112, 공소외 113, TM으로 공소외 18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5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16, 공소외 36, 공소외 114, 공소외 115, 공소외 90, TM으로 공소외 72, 공소외 116으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4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17, 공소외 117, 공소외 118, 공소외 119, 공소외 120, TM으로 공소외 14, 공소외 121, 공소외 122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6이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공소외 96, TM으로 공소외 91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7이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18, TM으로 공소외 123으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8이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로 피고인 19, 피고인 20, TM으로 공소외 33으로 구성되어 있고, 피고인 9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딜러는 없으며, TM으로 공소외 40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위 외부사무실에서 대표는 조직원들에게 사무실 및 집기 등을 제공하고, 실제 판매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인터넷사이트에 실제 매물로 보유하지 않은 중고차량을 마치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것처럼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을 게재하여 거짓 광고하면서 팀장에게 위 사이트 계정을 부여하고, 등록된 중고차 매매상사의 계약서를 팀장에게 분출하고, 팀장은 위 사이트 계정을 관리하면서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을 거짓 광고하고, TM은 위 광고를 보고 전화한 손님에게 광고된 가격 그대로 차량을 판매한다면서 인천에 있는 ■■■ 중고차 매매단지로 손님을 유인하고, 팀장은 손님을 응대할 딜러를 지정하고, 딜러는 손님을 만나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을 보여주고 광고한 금액대로 계약을 체결한 다음 계약 당시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추가로 납부해야 할 금액이 있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차량이라는 등으로 거짓말하여 계약을 포기시키고, 손님에게 ‘계약 취소가 되지 않는다, 위약금이 있다’라는 등으로 거짓말하여 손님으로 하여금 원래 구입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다른 중고차량을 정상적인 시가인 것처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수법(‘뜯플’, ‘쌩플’)의 사기 범행을 함으로써 얻은 수익을 조직원들의 기여 정도에 따라 분배하였다. 중고차 판매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딜러가 20%~30%, TM이 기본급에 5% ~ 7%(또는 기본급 없이 10%), 팀장이 나머지 수익을 갖는다. 한편, 대표는 팀장들이 매달 납입하는 100만원 상당의 사납금(일명 상사입금비), 400만원 상당의 허위 또는 미끼 중고차량 매물을 게재할 광고사이트 계정비(일명 광고비)를 지급받는다. 또한, 대표는 중고차량 할부거래 시 발생하는 할부금융업체의 사례금(일명 할부피)을 할부금융중개회사로부터 할부금액의 3% 상당을 지급받아 그중 1% ~ 1.5%를 할부판매한 팀의 팀장에게 지급한다. 신규 조직원은 대표 또는 팀장이 개인적인 인적관계를 이용하여 모집하거나 구인광고를 통하여 모집하는데 신규 조직원은 위 ‘뜯플’, ‘쌩플’ 수법을 대표 또는 팀장 등 기존 조직원들로부터 매뉴얼을 통한 이론뿐 아니라 실전을 통하여도 익히고 있다. 대표는 조직원의 근무시간을 정하여 지각을 하게 되면 일명 ‘지각비’를 걷고, 매일매일 실적을 체크하여 실적이 뛰어난 조직원에게 격려를 하고, 실적이 부진한 조직원에게 질책을 하는 등 관리, 감독하며, 조직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회식 자리를 마련하였다. 또한 대표는 외부사무실을 나가려는 조직원들에게 다시는 중고차 관련 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등으로 협박하여 다른 조직원들의 탈퇴를 미연에 방지하였다. 피고인 1이 운영하는 중고차 불법판매조직은 조직을 총 관리하는 대표를 정점으로 하여 팀장, 딜러, TM으로 나누어지고, 대표의 관리하에 팀장들이 중고차량을 판매하고, 팀장들은 딜러, TM에게 차량 판매를 위한 업무지시를 하고, 팀장들은 중고차량 판매내역을 대표에게 보고한다. 조직원들의 근무시간은 09:10경부터 18:00경까지로 정해져 있고, 정해진 시간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지각 여부를 체크하고, 지각을 하게 되면 대표를 제외한 팀장은 5만원, 출동, TM은 3만원의 지각비를 부담하게 되고, 결근을 하기 위해서는 팀장을 통해 미리 대표에게 보고되어야 하고, 무단결근을 하거나 지각을 하게 되면 대표로부터 질타를 당하였다. 대표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조직원들에게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을 설치하도록 하였고, 전체대화방 등을 개설하여 조직원들에 대한 지시·보고가 이루어졌고, 팀장들은 딜러가 손님을 만나러 나가면 위 텔레그램 등 SNS 대화방 등을 새로 만들어 위 대화방 등을 이용하여 딜러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업무보고를 받았다. 외부사무실 내 팀별 실적은 화이트보드에 매일 체크되어 공유되고, 실적이 부진할 경우 대표로부터 질책을 당하였고, 실적을 향상하기 위하여 전체회의, 직급별 회의를 개최하였다. 피고인 1은 위와 같이 중고차량 불법판매 즉,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2016. 6.경부터 인천 (주소 생략)에 외부사무실을 마련하고 조직원들을 모집하여 조직원들의 역할분담 및 통솔체계를 갖추고, 2016. 8.경부터는 인천 (주소 2 생략)에서, 2016. 9.경부터는 인천 (주소 3 생략)에서, 2017. 1.경부터는 인천 (주소 생략)에서, 2017. 4.경부터는 인천 (주소 3 생략)에서, 2017. 9.경부터는 인천 (주소 8 생략)에서, 2017. 11.경부터는 인천 (주소 9 생략)에서 위와 같은 조직 내 통솔체계 및 조직원들 간의 업무 분장 체계를 갖춘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한 범죄단체를 조직하였다. 피고인 2는 2016. 10.경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팀장으로, 피고인 3은 2016. 6.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팀장으로, 피고인 5는 2017. 1.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팀장으로, 피고인 4는 2017. 2.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팀장으로, 피고인 6은 2016. 6.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2017. 6.경부터는 팀장으로), 피고인 7은 2016. 9.경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2017. 7.경부터는 팀장으로), 피고인 8은 2016. 12.경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2017. 3.경부터는 팀장으로), 피고인 9는 2017. 3.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팀장으로, 피고인 10은 2016. 9.경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1은 2017. 1.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2는 2017. 3.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3은 2017. 3.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4는 2017. 4.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5는 2017. 3.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6은 2017. 3.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7은 2017. 2.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8은 2016. 12.경 위 □□□할부중개업소 건물 2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19는 2017. 1.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20은 2017. 1.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피고인 21은 2016. 6.경 위 (건물 명칭 생략) 3층에 있는 외부사무실에 딜러로 각각 위 외부사무실이 범죄단체라는 사실을 알면서 가입하였다. 피고인들은 판시 제1의 각 해당 부분 기재와 같이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함으로써 범죄단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피고인들(피고인 22는 제외)은 이 사건 외부사무실은 범죄단체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범죄단체라는 인식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형법 제114조에 정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란 특정 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한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거나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요한다(대법원 1985. 10. 8. 선고 85도1515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외부사무실이 형법 제114조에 정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이 사건 외부사무실은 회사 조직과 같이 대표, 팀장, 팀원(출동, 전화상담원)으로 직책이나 역할이 분담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위 각 구성원들은 대체적으로 상호간의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개별적 팀으로 결성되었을 뿐 조직원들의 지위에 따른 지휘 또는 명령과 복종체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피고인들은 대부분 다른 중고차매매상사에서 딜러로 근무한 경험이 있던 자들로 상호간의 소개로 피고인 1의 외부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대표와 사수(팀장)의 관계는 광고비, 상사입금비를 주고받는 거래관계로 이루어졌다}. ② 피고인 1 또는 피고인 2가 지각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지각비를 걷기는 하였으나, 성실한 근무를 독려하는 차원을 넘어 그 구성원들의 행동을 구속하는 내부적인 규율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지각비는 다른 중고차매매상사에서도 걷었던 것으로 보이고(증거기록 제4033쪽, 제4361쪽), 팀장들이 의견을 모아 걷기로 한 다음 회식비나 격려금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 달에 1번 정도 전체 회식이 있기는 하나 참석이 강제되지는 아니하였다{팀장이었던 피고인 5는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고(증거기록 제2612쪽), 팀장급인 피고인 9는 출근도 하지 아니하고 지각비를 낸 사실이 없고, 회식에도 참석하지 아니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증거기록 제3130쪽)}. ③ 구성원들의 가입과 탈퇴도 별다른 제약 없이 자유로웠다(피고인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여러 중고차매매상사를 옮겨 다녔다). ④ 이 사건 외부사무실은 정상적인 다른 중고자동차매매상사와 비교해 볼 때 그 인적 구성, 각각의 구성원들의 역할, 보수 체계 등이 현저히 상이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매수희망자 유인 및 계약 체결의 과정에서 기망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동원되었을 뿐이다. ⑤ 이 사건 외부사무실 전체 차원에서의 범행수법에 대한 공유 내지는 교육이 없지는 않았지만{피고인 16은 출동 교육은 원래 팀장이 시키는데 피고인 10과 피고인 6이 잘해서 다른 팀장들이 부탁을 많이 한다고 진술하고 있다(증거기록 제3280쪽)}, 대표가 이를 지시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고{범행수법과 관련하여서 대표인 피고인 1은 일부 팀장들에게 죄가 커지니 ‘뜯플’ 수법은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 정도만 하였다(증거기록 제2576, 3064쪽 등)}, 대체적으로는 팀장의 주도 아래에서 팀별로 이루어졌다. ⑥ 또한 대표와 팀장 사이에 회의가 열리기도 하였으나, 여기에서 대표가 일방적인 지시나 지침을 내렸다기보다는, 상호간에 경찰 단속 정보를 공유하면서 몸을 사리자는 이야기를 하였고, 피고인 1이 팀장들에게 어디로 이사를 할 예정이니 준비하라는 정도의 지시를 하였을 뿐이다. ⑦ 피고인들은 중고차를 파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법적인 요소가 동원된다는 점을 인식하였지만, 인천에 있는 다른 중고차매매상사에서도 그러한 수법들이 종종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발되더라도 대체로 자동차관리법위반죄로 벌금형 정도의 처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고서 외부사무실에 들어오게 된 경향이 있다(피고인들은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불법의 정도가 큰 강요의 수법을 사용하면 중하게 처벌을 받으니 이러한 수법을 사용하는 것은 삼가자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단체 목적의 위법성에 대한 인식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피고인들은 이 사건 외부사무실이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외부사무실이 형법 제114조에 정한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한,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범죄단체조직, 범죄단체가입, 범죄단체활동의 점은 각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는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아니한다. 그렁꼴라 가족과 함께 15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제라르메르 별장에 도착한 다음 날, 나는 신학교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모든 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잇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이 우리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짓누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절실히 체험했다. 쟌느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내 갈등은 이미 내 의지의 한계 선상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n마침 나를 위해 다행한 일은 파리에서 살고 있는 마담 그렁꼴라의 부친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전보가 와 있었고, 그분은 또 파리로 급히 올라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리행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낭씨까지 가야만 하는 마담을 동행하기로 했다.\n떠나기 전 날 저녁 무렵, 쟌느는 서운한 표정으로, 같이 호숫가를 산책하자고 제의했다. 호숫가 수영장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는 한 동안 묵묵히 걸었다. 쟌느를 내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실은 나도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n“그래, 쟌느! 네 말대로 내가 너를 피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피하는 것보다는 후퇴 작전을 쓰기로 했어. 피한다는 말은 너를 완전히 떠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후퇴는 다시 만나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않아?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내가 잠시 후퇴하는 것 만이 우선 나를 위해 좋고 또 너와의 우정을 위해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했어.”\n“그것은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몰라. 내가 너를, 특히 동양인들의 생활 습성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대한 게 잘못이었는지 몰라. 하지만 나는 너를 친구로서 사랑해.”\n“아니야, 쟌느! 그것은 너와 내가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생활 환경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결과 뿐이다. 그래서 나에 대한 너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순진한 태도를 내가 때로는 받아줄 수 없었던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남녀 간의 친구라는 개념과 우리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그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어. 우리 한국에서는 젊은 남녀 간에 친구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며, 심지어 애인들 사이에도 공공연히 악수도 잘 안 하는 사회야. 남녀 교제가 개방적인 너희들의 생활 속에서 나는 너를 단순한 친구로 대하기가 때로는 힘이 들었어. 습관이라든가 생활 감정 같은 것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생활 속에서, 또 너의 꾸밈 없는 태도 속에서 네가 친구로서보다는 한 젊고 아름다운 마드모아젤로 보일 때가 종종 있었어.”\n“지금 생각으로는 신부들의 독신생활에서 오는 고독감일 것 같아. 주님의 뒤를 이어 몸 바쳐온 수 많은 신부, 수도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분들이 홀로 살아가신 그 일생을 통하여 나도 그들처럼 홀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과 신념을 갖고는 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이 아니겠어? 때때로 느껴지는 내 고독의 한 구석에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가정에 대한 미련이 일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리고 신부로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어느 한 순간 애정을 느끼게 해 주는 여자들이 없지 않아 있겠지. 그럴 때마다 그 인간적인 애정을 죽이며 살아가야 되리라 생각하니 내 장래가 두렵기만 해.”\n“그 무엇인가가 내 내면 속에서, 내 인간적 욕망과는 반대로 나를 사제직으로 이끌어 가고 있어. 내가 반대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사명감이, 내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있어.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요즘 나는 이 외침에, 이 사명감과 귀와 눈을 닫고 돌아서려고도 해 보았어. 그러나 그렇게 할 힘도 내게는 없었어.”\n“강요 받은 성소라고?….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 조국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전쟁 중에 그 숱한 민족적 비극을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신학생이 아니 되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요즘 나는 한국이라는 공간성과 시간성 속에서 태어난 것을 몹시 후회하기도 했어. 하지만 전쟁 중에 목격한 우리 민족의 고난, 그리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간 전우들의 고독한 죽음을 외면하고서 나만이 편안히 살아갈 수도 없어. 그리고 나는 전쟁 중에 포탄에 맞아 찢어진 전우의 몸에서, 그의 고통에서, 그의 갈증에서, 그의 죽음에서,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하시며 죽어가신 주님을 만났어. 그때 주님은 그 전우의 고통 속에 함께 계셨고, 그와 함께 목말라 하셨고 그와 함께 죽으시며 나에게 그 어떤 사명을 주셨어. 나는 그 사명을 사제직으로 받아들였고, 지금 신부가 되려고 노력 중이야. 요즘 내가 갈등 속에서 이 사제직을 향한 노력을 포기하고자 몸부림 쳤더니 전쟁 중에 만난 그 주님이 또 내 가슴 속에 나타나셨어. 나는 이 주님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아.”\n“왜라니… 멀쩡하게 젊고 건강한 사람이 홀로 살아가니까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니? 너를 알게 된 이후, 신부들에게 독신제도를 제정한 교회의 처사가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일처럼 느껴지며, 이런 교회를 미워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너는 우리의 생활 환경과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왔지만 너는 때로는 우리보다도 더 풍부한 생활 감정과 이 감정에 대한 멋을 알고 있어. 너는 인간의 삶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이러한 감정과 멋과 뜻을 죽이며 살아가야 할 네가 정말이지 불쌍해!”\n“신부가 되고 안 되고는 너 자신의 문제야. 나는 너의 친구라는 입장에서 너를 동정하며 너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 뿐이야. 그러나 나는 네가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네가 지니고 있는 그 풍성한 생활 감정 속에 멋이라는 삶의 향기를 꽃 피우며, 또 뜻이라는 삶의 보람을 충만 되게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솔직한 내 심정이야. 너는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져야 할 천성적인 성품과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n무언가 나에게 말을 계속하려는 쟌느는 집 쪽을 향하여 갑자기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뒤따라 걸었다. 얼마를 뛰어가다가 쟌느는 모래 밭에 넘어졌다. 일어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다가 그녀는 다시 발목을 잡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n“태오, 이것이 한국 신사들의 예의야? 아무리 장난쳤다 해도, 그래 품에 안긴 숙녀를 물건처럼 내던지는 법이 어디 있어. 이것은 나에 대한 사형감의 모욕이야.” 하고 말하며 일어섰다. 쟌느는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n“우리나라 여자들은 너희들처럼 만나면 키스를 하거나 안아 주거나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행복한 여자들이야. 은근한 정(정) 속에 눈짓으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이해하고 말 없이 지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부부가 다정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희처럼 소란스럽고 영화배우 같지 않아도 잘들 사랑하며 오늘까지 살아 왔어.”\n바로 그때 그렁꼴라 부부가 웃으며 우리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무슈 그렁꼴라는 모래 사장 위에 누워 있는 쟌느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마담 그렁꼴라는 쟌느의 모리를 손질해 주며 말했다.\n우리는 별장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들었다. 마담 그렁꼴라는 내일 떠날 여행 준비에 수선을 피우고 있었으나 모두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라 피곤해 일찍 잠자리로 들었다.\n다음 날 예정대로 신학교에 돌아왔다. 텅 빈 그 커다란 건물, 학장 신부님은 계시지 않았고, 교수 신부님들도 한 분도 없었다. 다만 은퇴한 노인 교수 한 분만이 학교를 지키고 계실 뿐이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수녀님들도 피정신공 차 떠나시고 없었다. 식모 할머니가 주방을 맡고 계시면서, 방학 중에 왜 돌아왔냐고 말하며 달갑게 여기시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나 때문에 주방 일이 많아질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n별안간 한국 신학교에서 머슴살이하며 혼자 지내던 방학 생각이 나서 이 신학교도 싫어졌다. 내 마음은 이 텅 빈 신학교처럼 공허하기만 했다. 쟌느에게서 떠나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녀 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단 하룻밤도 이 텅 빈 신학교에서 지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n학교 성당에 들러 기도하려 했으나 말 한 마디 내 마음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멍청히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때 제대 위에서 반짝이고 잇는 성체 불이 내 시선을 끌기도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외면하고 성당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n나는 삭막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이 신학교도 방학 중에는 있을 곳이 못 되었다. 텅 빈 이 건물은 무든 괴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방학 중에 되돌아 온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이 곳에서도 이방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내가 있을 곳은 이 세상에 아무데도 없는 것만 같았다.\n쌍삐에르 드 귀브롱의 닥터 쿠에상 댁에는 이번 여름 방학 중에는 가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몇몇 친한 신학생 친구 집에 전화하고 찾아갈까도 생각했으나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 한 몸을 둘 곳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이방인의 신세였다.\n<태오야, 넌 바보야. 너는 너 자신의 환상 속에 갇혀 있는 일종의 포로야. 아무도 너보고 신부가 되라고 한 일도 없는데 너 혼자서 영웅심으로 우쭐거리고 있는 거야. 그러한 망상 속에서 너는 너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거야. 그 환상의 잠에서 깨어나라. 나는 언제라도 너를 환영해 줄 테니.>\n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학교 뒤 공원을 산책했다. 그 맑은 공기도, 그 푸른 나뭇잎들도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새들의 노래도,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나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그때 나는 <좋다! 이왕에 갈 곳이 없는 이 몸, 그리고 이방인의 이 신세,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이나 하자> 하고 결심하며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n내 방문을 여는 순간 책상 머리에 놓여 있던 <조국의 돌>이 눈에 크게 띄었다. 나는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조국의 돌을 품에 안았다. <그래, 내 벗 조국의 돌아! 너와 함께 있는 한, 비록 지금 오늘 밤, 이 몸을 눕힐 곳이 없는 신세지만 나는 이방인이 아니야. 절대로 나는 이방인이 아니야.>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n나는 조국의 돌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같이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했다. 가방은 들고 낭씨 역으로 나오며 만나는 첫 기차를 타고 그것이 가는 끝까지 가 보기로 작정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첫 기차가 룩셈부르크 까지 가는 차였다. 나는 그 기차를 타고 무작정 룩셈부르크까지 가기로 했다. 낭씨에서 룩셈부르크 까지는 약 두 시간의 거리였다. 기차는 벌써 메쓰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치닫고 있었다.\n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룩셈부르크 공국(公國)에 있는 클레르보의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갈 곳이 꼭 한 군데 있다면 그것은 수도원이다. 클레르보의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아가자, 그 수도원은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곳, 누구도 사양하지 않고 지나가는 나그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곳, 찾아 오는 손님을 주님의 방문처럼 환영해 주는 곳, 그래, 그곳에 가자.>\n룩셈부르크 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시외로 나와 ‘오토스톱’으로 수도원에 도착하니 문이 닫히기 몇 분 전이었다. 언제 보아도 인자한 표정의 발테로메오 문지기 수사님이 우선 나를 환영해 주셨고,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나를 웃음으로 위안해 주셨다. 그분이 정해준 방에 짐을 놓고 나는 급히 만과기도에 참석했다.\n역시 이곳으로 잘 왔다고 생각했다. 점심, 저녁도, 굶어 텅 빈 배에서는 시장기가 요동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수사님들의 노래 기도 소리에 내 소리도 한데 어울렸다. 나는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날 밤 냉수 한 사발로 시장기를 씻고 나는 그런대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n그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전번 여름 방학 때처럼 오전에는 수사님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허락을 원장 신부님으로부터 받았다. 앙드레 수사 신부님은 로마로 떠나시고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엌 일을 도와 주기로 했다. 나는 주로 감자를 깎고 샐러드 용(用) 야채를 씻고 식탁 청소를 맡았다. 기숙사에 있는 손님들까지 합쳐 백여 명이나 되는 이 대 가족의 주식인 감자를 매일 아침, 삐에르 수사님, 죤 그로오드 수사님, 제라르 수사님과 함께 깎았다. 감자 물이 들어 손바닥이 엉망진창이었다.\n나는 오전 일하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금욕주의자들의 마른 몸매에 빛나는 두 눈을 가진 그 수사님들의 엄숙한 모습, 그런가 하면 인간적인 고독을 극복한 그 어떤 초월성의 의지와 신비성을 풍기고 있는, 그분들의 내적 평화로움, 이 평화로움을 충만 시키고 있는 그 수사님들의 겸손과 인자함과 다정스러운 태도, 이분들 곁에서 일할 때 내 마음도 함께 안정되고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n“주님, 내가 이 야채를 씻으면서 쓸모 없는 잎사귀를 떼어 버리고 흙 가루를 털어내듯이 주님께서도 나의 쓸모 없는 이 세속에 대한 미련을 내 마음으로부터 떼어 내시고, 이 세속의 유혹으로 얼룩진 내 신앙을 맑게 씻어 주소서.”\n“주님, 내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은 내 방을 청소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당신께 기도 드렸습니다. <주여 내 마음을 이처럼 깨끗하게 새 주소서. 내 마음을 닦아 주시고 흐트러진 이 마음에 질서를 주시며 내 영혼을 거룩하게 해 주소서.> 주님, 나로 하여금 내 어머님을 본받게 해 주시고, 내 어머니의 마음과 신앙을 닦아 주셨듯이 세속의 미련으로 상처받고 피 흘려 더럽혀진 내 마음과 당신을 향한 내 신앙을 닦아 주소서.”\n갑자기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정말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 그러자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그때 마치 어머니의 음성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n“태오야,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두 번이나 우셨단다. 눈물은 인간 감정의 진실한 표현이란다. 지금 네가 흘리고 잇는 눈물을 주님도 축복 해 주실 게다. 태오야 <우는 자가 진복자로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네 안에 틀림 없이 실현되리라.”\n오후에 나는 수도원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특히 공부에 온 힘을 쏟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무엇 하나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오전 중에 수도원 주방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일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으나 방 안에 호자 남아 있을 때는 그 어떤 불만과 공허가 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쓸쓸한 내 마음과 몸을 몹시 괴롭혀 주고 지치게 했다.\n그럴 때마다 나는 수도원 뒤뜰에 있는 수도자들의 묘지를 찾아갔다. 몇 세기 동안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수도원 묘지라 거기에는 수 백 개의 묘 비석이 질서 있게 세워져 있었다. 주님의 뒤를 이어 인류 구원을 위해 촛불처럼 몸을 바쳐, 순명과 순결과 겸손과 청빈의 복음적 길을 살다 간 신앙의 증인들이 바고 거기 있었다. 그들 중의 어떤 분들은 한 때 지금의 나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떠나온 세상을 뒤돌아 보며 망설이고 괴로워하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또 결혼과 가정 생활에 대한 끈질긴 미련 속에 자기들의 인간성을 아쉬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끝까지 수도자로서의 절개와 신앙과 주님을 향한 사랑을 지키며 살다 간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 비석들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주님과 교회와 인류의 구속사업을 위해 그분들처럼 나도 훌륭히 일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에게 강력히 제시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훌륭한 증언이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모든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초극하고, 오직 순명과 순결과 청빈의 생활을 통해 인류의 구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는 이 말 없는 가능성, 이러한 가능성과 증언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었다.\n그 후 나는 매일같이 그 묘지를 찾았다. 나는 거기서 비석 아래 묻혀 있는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수도자들과 깊은 동지 의식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는 듯하였다. 이 지상에서 나그네 아니고 이방인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우리들에게 애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 형제가 있고, 가정이 있고, 벗들이 있고, 고향이 있고, 조국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이 나그네 길에서 어쩌다 만난 한 때의 동반자들이요, 또 잠시 몸을 쉬고 간 여관 같은 것에 불과했다. 지금 무성한 이 나뭇잎들이 언젠가는 한 줌의 낙엽으로 떨어지듯, 우리도 때가 되면 몇 줌의 흙으로 변해 없어질 낙엽과 같은 운명이 아닌가? 그러나 그 묘지들은 나에게 더욱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피안(彼岸)의 세계, 저 성부(聖父)의 나라를 위해 이 지상에서 잠시 살다 간 그들은 지금은 이 침묵 속에서도 고요히 주를 찬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n나는 이 묘지를 좋아했다. 거기서 나는 진정으로 어머니 품 안의 따스함 같은, 내 고향의 다정함 같은, 내 조국의 어루만짐 같은 감정들을 짐짓 느낄 수 있었다. 이 묘지에서만은 나는 이방인이 아니었다.\n어느 날 마담 그렁꼴라의 편지가 낭씨 신학대학을 거쳐 수도원으로 왔다. 병환 중에 계시던 아버지의 수술 결과가 좋아 이제는 완치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서두에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놀랍게도 쟌느의 교통사고를 알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자로서의 외모를 크게 손상시킬 정도의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병원에서 외롭게 나를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어머니로서 차마 볼 수 없노라고 마담은 썼다. 그리고 한 번 집에 다녀가라는 간곡한 부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9월 말 방학이 끝날 때까지 이 수도원을 단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다.\n인간적으로는 마담 그렁꼴라에게 미안했고 쟌느에게 대해서는 마음 아팠지만, 카드에 짧게 몇 마디 써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모성심상 앞에 있는 성초에 불을 붙이며 쟌느의 상처가 하루 속히 낫기만을 기도 드렸다.\n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이제 나는 신학과 2학년이 된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으나 작년과 같은 의욕과 열의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월말 시험에는 겨우 낙제점수를 면할 정도였고, 염려하는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지도 신부님을 대하기가 부끄러울 뿐이었다.\n성 주간 예절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 목요일이었다. 이날 신학교는 시내에 있는 성직자 양로원에 가서 대미사를 지내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 양로원에 계시는 신부님들은 대부분 미사를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이 날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성당에서나, 수도원에서나 미사 한 대만을 지내는 풍습이 또한 있었다.\n성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 하신 말씀을 통하여 또한 사제직을 설정하셨다. 그래서 성 목요일은 전세계 사제들의 축일이기도 했다. 우리 신학생들도 양로원에 계시는 신부님들을 축하하기 위하여 미사 예절을 담당했었다. 이번에는 학장 신부님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20여 명의 예정 요원과 성가대원 신학생들도 양로원으로 갔다.\n아, 그러나 거기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이라고는…..! 그것은 신부로서의 내 일생 말로의 비참한 모습과 사랑을 설교하는 교회의 위선된 모순과 부정 그리고 그 부정에 대한 내 반항의식이었다.\n4월이지만 날씨는 아직도 싸늘했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 쪽에 나와 앉아 있는 저 신부님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내 등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검은 수단에 비듬이 허옇게 떨어져 있는가 하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신부들도 있었다. 중풍으로 손발을 떨며 어정어정 걸어 나오는 모습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먼 산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실 없이 웃고 있는 얼빠진 모습은 내 가슴에 일종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대로 성한 걸음으로 왔다갔다하며 묵주신공을 바치고 있는 늙은 신부들의 모습에서도 나는 조금도 존경심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신부님들은 낡아빠진 수단 가슴 앞자락에 애들의 장난감 같은 녹슨 훈장을 달고 있었다. 세계 제1차 대전에서 조국을 위해 공훈을 세운 분들이겠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경멸스럽게만 보였다. 이제는 다 늙어 무덤 앞에 나선 그들이 그것도 자랑거리라고 녹슨 훈장을 달고 있느냐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분개하고 있었다. 일생을 신부로서 겸손을 설교해 왔을 그들의 행위가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그리고 낡아빠진 샤느완(교회의 참사위원, 일종의 명예직)의 카마이(양털로 된 샤느완의 예복)를 입고 거기에 샤느완의 상징인 십자훈장을 달고 있는 저 꼴들이란… 그것을 입고 그래도 남들보다는 낫다고 으시대는 저 늙은이들의 오만성! 그것도 하나의 명예라고…. 그나마도 저런 샤느완의 카마이 하나 얻어 입지 못한 이 늙은이들의 비굴한 표정은….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꼴불견이었다.\n나도 신부로서 어쩔 수 없이 저 꼴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완강한 저항심 같은 것이 내 마음 안에 생겼다. 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분개할 정도로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일생을 몸바쳐 온 이 늙은 신부들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라니,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늙어서 쓸모 없이 되었을 때 교회는 차마 그들을 길거리에 버릴 수 없어 포로 수용소 같은 이 양로원에 가두어 놓은 것은 아닐까? 일생을 헌신하고 봉사해 왔어도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 한 채, 방 한 칸 없는 이 늙은 신부들은 마치 하루 세 끼 밥만을 얻어 먹기 위해 시간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 포로들 같았다. 인간적은 삶의 분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만이 이 양로원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교회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악랄한 고용주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고용주에게 한 번도 반항해 보지 못하고 급기야는 이 양로원까지 밀려 들어온 이 늙은 신부들을 나는 경멸하기 시작했다.\n그런가 하면 이 양로원에 있는 신부 대부분이 일생을 본당 신부 한 번 못하고 살아온 부들이란다.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해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며 순명(順命)이 덕이라는 이름아래 그늘에서만 살아온 그들이었다. 말하자면 이 양로원은 신부 사회에서 낙오된 신부들의 집합 장소 같은 곳이었다. 교회 내에서도 일반 사회처럼 능률 위주의 행정과 그 속에서의 격심한 생존경쟁이 존재한다는 것도 배웠다. 이것이 정의와 평등과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의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n그때 나는 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용솟음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반항한다. 이 부정스러운 교회를 나는 온 힘을 다해 거부한다. 나는 이런 위선적인 교회를 타도하기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겠다.> 나는 마음 속에서 소리쳤다.\n그날 나는 신부로서의 내 인생 말로가 어떠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남들처럼 똑똑하지 못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내가 늙어서 갈 곳은 바로 이러한 양로원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경멸하고 있는 이 늙은 신부들의 비굴한 모습 하나 하나가 이 다음 늙어서 갖게 될 내 모습 자체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한 모습으로 전락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보고 싶은 진정한 욕구가 일어났다. 나는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거부한다. 내가 늙어서 저런 비굴한 꼴 외에 가질 게 없다면 나를 그렇게 만드는 이 삶의 길을 나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래, 나는 이제 결정적으로 신학교를 떠나고 싶다.>\n착잡한 심정 속에서도 미사는 예정대로 시작되었다. 나는 미사 순서에 따라 맡은 예절을 집행하고 있었다. 영성체 시간이었다.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학장 신부님은 우리 신학생에게 걷기 어려운 신부님들을 도와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신부님들이 중풍으로, 또는 너무 노쇠해서 잘 걷지 못했다.\n나는 그날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내가 신학교를 떠나자고 결심은 했지만, 그것은 주님을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성체축일인 동시에 사제들의 축일인 그 미사에서 나는 영성체를 할 수 없었다. 이 늙은 신부들에 대한 경멸감과 교회에 대한 반감 때문에 나는 도저히 주님의 몸 자체인 성체를 내 모음 안에 모실 수 없었다. 동료 신학생들의 놀라운 속에서 또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학장 신부님의 그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내 자리에 서 있었다.\n노인 신부님들의 영성체가 시작되었다. 저쪽에서 한 노인 신부가 중풍으로 다리를 절며 금세 넘어질 것 같은 자세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불쌍해 보였다. 그분에게 동정이 갔다. 나는 그분 앞으로 다가가 그분의 오른 팔을 부축하며,\n잡은 내 손을 뿌리치다가 그 신부님은 자기 힘에 몰려 마룻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고 바둥바둥 팔 다리만 놀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경멸감과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뭐, 그 꼴에 병신이 아니라고…. 이 오만투성이의 늙인이야! 너 같은 것들은 인간의 따스한 정도, 사랑도 느껴 보지도 못하고 경험해 보지도 못한 병신들이다. 신부들의 독신생활을 지키려고 자녀들의 귀여움도 모르고 살아온 너희들이 어찌 손자 같은 나의 존경과 동정의 따스한 손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n지난 여름방학 이래 무언가 불만스럽고 짜증스럽던 것이 결국은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이 양로원에서 이유 없이 교회를 비난하고 반감을 가졌으며 또 부당하게 이 신부님들을 모욕했었다. 특히 내 도움을 거부하여 결국은 땅바닥에 넘어지고만 그 노인 신부의 고집을 신부들의 독신생활에 결부시킴으로써 독신제도를 지키고 있는 교회와, 이 제도를 지키며 살아온 신부들을 비웃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 노인 신부님의 고집이 동정(童貞)을 지키기 위해 인간의 모든 정을 외면하고 살아온 인간의 왜곡된 성격처럼 느껴졌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의 정상적인 실리적 발전과 성격 형성을 저해하는 이 신부의 독신제도를 설정한 교회와 이 제도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병신처럼 살아온 신부들을 무시했던 것이다. 당시 나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언제나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내 반항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적적한 구실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n미사가 끝났다.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큰 잔치가 양로원 식당에서 열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신학교로 되돌아 왔다. 신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이상, 이제 나는 신학교 규칙이나 학장 신부님에 대한 순명 등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임을 자신에게 설득시키고 싶었다.\n신학교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 신학교를 떠나겠노라고,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추구하고 싶노라 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조국의 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나 자신은 그렇게 떳떳하지는 못했다.\n저녁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학장 신부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자기 사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학장 신부님은 공적으로는 찬바람이 느껴질 만큼 엄한 분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한없이 인자한 분이었다. 그분 앞에 마주 앉아 그분의 인자한 모습에 서려있는 고통의 빛을 목격했을 때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흐느끼며 울었다. 학장 신부님은 잠자코 계셨다. 한참 후 눈물을 거두고 말문을 열었다.\n“학장 신부님, 오늘 나는 인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걷게 될 마지막 길을 나는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신부로서 일생을 희생한 대가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학장 신부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내 인생이 불쌍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나는 그러한 인생의 길을 거부하고 싶습니다.”\n“태오 신학생, 나는 학생의 그 인간적인 눈물을 충분히 이해하오. 지금까지 지켜온 성소(聖召)를 거부하려는 그 의지와 반항심을 나는 단죄하지는 않겠소. 나는 지금 학생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오. 학생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반대도, 비판도 하지 않겠소. 하지만 학생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오늘까지 흐른 근 10년의 세월과 그 동안 학생이 경험한 이 귀중한 시간들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거요.”\n“태오 신학생, 그 늙으신 신부님들의 모습이 그들이 신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소? 그런 모습은 늙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 아니겠소?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가 그렇게 되는 것이 이 자연의 법칙이 아니오? 태오 신학생이 만약 어느 날 신학교를 떠나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 신부들의 나이만큼 살면 당신의 모습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 거요?”\n“하지만 학장 신부님! 생각해 보십시오. 그 늙어 삐뚤어진 골에 샤느완의 카마이를 입고 으시 대고 있던 그 오만스러운 모습들을…. 그런가 하면 녹슨 장난감 같은 훈장을 달고 우쭐대던 그 유치한 태도들을, 그리고 내 동정의 손길을 거부하고 결국은 쓰러지고야 만 그 고집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진정한 정과 사랑을 나눠 본 일이 없이 동정생활만을 고집해 온 인간들의 기형화 된 성격들이라고.”\n“아, 태오 신학생은 그렇게 보고 있군요. 지금 나는 학생의 심정과 주장을 조금도 반박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 바대로 생각했소. 태오 학생, 오늘은 주님을 위한 크나큰 잔칫날이 아니었소? 그리고 우리들 신부들의 사제직을 위한 축일이 아니오? 그래서 그분들은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주님의 잔치에 참석한 분들이오. 낡았지만 깨끗한 수단에 샤느완의 캬마이를 삐딱히 입고 계시던 그분들에게서 나는 조소보다는 어린애 같은 단순함과 순진함을 발견했소. 샤느완의 캬마이 마저 얻어 입지 못한 다른 분들에게서는 비굴함보다는 정말이지 경건한 겸손의 덕을 보았소. 그리고 녹슨 훈장을 달고 계신 분들에게서 나는 교만보다는, 신부이지만 또한 한 국민으로서 조국에 바친 희생을 우러러보았소. 태오 학생, 우리 마음의 자세와 기분은 우리 생각의 눈이며 거울이오. 우리들의 심적 자세와 기분에 따라 사물은 객관성을 상실하기도 하오. 이 말은 절대로 학생을 무시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려 하는 말은 아니오.”\n“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에 대한 교회의 대우와 태도가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입니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에도 제도상의 계급적 차별과 인간적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오늘 나는 양로원에서 목격했습니다. 말에 의하면, 양로원에 계신 분들 중에 대부분이 평생 본당 신부생활 한 번도 못해 보고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며 살다가 결국은 양로원으로 밀려 왔다고 합니다. 똑똑한 신부님들은 제 능력껏 좋은 자리도 확보했고, 늙어서 살 생활비도 손수 마련했기 때문에 양로원 같은 데는 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양로원은 허울좋은 이름 뿐이요, 사실은 신부 사회에서 낙오된 신부님들이 모이는 일종의 수용소가 아니겠습니까?”\n“태오 학생, 교회도 하나의 사회가 아니오? 이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도당의 계급이라는 질서가 있어야만 되지 않겠소?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10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5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있지 않았소?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은 다 한결 같았소. 이처럼 우리 신부들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능력에 따라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오. 그리고 교회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아니겠소? 우리 인간의 몸에 눈이 있어야 하고 코가 있어야 하며, 또 입, 귀, 머리, 손, 발 등등이 합쳐서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하듯이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로 각 지체(肢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신비체 안에서 주어진 위치에서 겸손 되이 일해야 하오. 바로 이것이 신앙이오. 오늘 나는 양로원에서 일생을 겸손되게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위해 살아 오신 분들의 성스러운 신앙을 보고 왔소. 태오 신학생이 비웃은 그분들의 비참한 인간적 모습 안에는 영원에로의 길을 밝히는 신앙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소. 성신(聖神)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교회이지만, 죄인인 인간들에 의해 운영되느니 만큼, 거기에는 당신이 비난하는 그러한 모순과, 당신이 배척하는 그러한 부정이 없지 않아 있을 거요. 우리는 주님께 기도 드리며, 우리의 양심에 비친 이 부정, 이 모순, 이 불의를 거슬러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보다 참된 주님의 교회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만 하오. 그런데 우리는 어디서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겠소? 전쟁 중 일선을 떠난 군인이 어디서 적과 싸울 수 있단 말이오?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적이 있는 일선에 남아 있어야만 하지 않겠소? 태오 학생,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학생은 너무나도 많은 인생의 시련과 고통을 체험해온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용기를 우러러보며 당신의 성숙한 인간적 인품을 존경하오. 그리고 학생에게 아첨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나는 학생이 흘린 눈물 속에 담겨 잇는 그 인간적 고뇌와, 남이 따를 수 없는 노력하는 그 의지와, 삶의 주변에서 늘 주님의 뜻을 찾아 온 그 순박한 신앙심을 우러러보고 있소. 태오! 나는 당신의 그 투지력, 심지어는 교회에 대한 학생의 반항심까지도 한 편 부러워하고 있소. 나는 당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당신을 축복해 주겠소. 하자만 나는 당신을 아끼는 학장 신부로서 한 마디만 더 하겠소. 오늘 밤 우리 서로 주님께 기도 드리며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반성해 봅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오늘 밤 기도를 바치겠소.”\n다음 날은 성 금요일이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십자가의 예절을 끝내고 나는 오랫동안 성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별다른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양로원의 그 늙은 신부님들의 추한 모습들만 눈 앞에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소름이 끼쳐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상상마저 쫓아버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 대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 속을 외쳤다. 나는 거부한다고, 그리고 결코 그런 추한 모습으로의 길을 걷지 않겠노라고 나는 속으로 거부의 소리를 지르며 성당을 나와 버렸다.\n내 마음은 계속 착잡했다. 신학교에서는 부활절 대미사를 장엄하게 지냈으나, 나는 내내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미사 후 식당에서는 성대한 부활절 축제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n부활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동료 신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몹시 즐거워들 했으나 나는 그저 우울하고 고독하기만 했다. 나는 이번 부활절 방학 동안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신학교에 남아 있기로 작정했다.\n점심식사를 끝내자마자 동료 신학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나는 학교 뒤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바로 그때 학장 신부님이 나를 찾고 계시다는 전갈이 왔다. 그분은 신학교 안뜰 분수대에 세워져 있는 예수 성심상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돌로 된 벤치에 앉았다. 학장 신부님은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n“쟌느는 지금 굉장히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젯밤 자살하려다가 당신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금 면회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n쟌느는 면회실 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자 뛰어와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쟌느는 계속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내 수단 앞 가슴 쪽이 그녀의 눈물로 축축히 젖어 왔다.\n“태오, 너 밖에는 없었어. 내가 결국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 하나 뿐이야. 정말이지 어젯밤 나는 죽고 싶었어.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져 죽어 버리려고 몇 번이나 마음 먹었으나 네 생각이 났어. 마치 네가 날더러 죽지 말라고 말리는 것 같았어. 그래,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 뿐이야. 신부가 되려는 너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야.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만 해. 슬픔과 절망에 빠진 불쌍한 인간이 결국 찾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은 신부 뿐이야. 그래서 나는 너를 찾아왔어. 태오, 이 세상에는 너 한 사람뿐이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말이야.”\n쟌느는 두서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며 계속 울기만 했다. 나는 쟌느의 신변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귀엽고 순진하기만 하던 그녀를 회상하자 나도 모르게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종의 분노 같은 것이 내 가슴 속에서도 서서히 일어났다. 한참 후 쟌느는 울음을 끝내고 내게 말했다.\n“그럴 수가 없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행복하겠어? 태오, 정말이지 난 죽고만 싶어. 사생아라는 누명을 일생 지니고 살아가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네 품 안에서 울다 숨이 끊어져 아주 죽어 버렸으면 정말 행복하겠어.”\n그렁꼴라 부부만큼 그렇게 다정하고 행복하고 모범적인 부부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무슈 그렁꼴라의 자상한 애정, 그런가 하면 남편에게 대한 마담 그렁꼴라의 헌신적인 사랑과 정숙한 태도, 그런데 그들 사이에 이렇게 엄청난 비밀이 있었다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신 기분으로 내 마음은 쓸쓸해졌고, 쟌느가 한없이 불쌍하게 보였다. 나는 내 품 안에서 울고 있는 쟌느를 힘주어 안으며 말했다.\n“쟌느, 그까짓 출생의 동기가 뭐가 문제야. 생각해 봐. 요즘의 애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돼. 그들은 산아제한이라는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온갖 살인적인 방법을 용케도 피해 태어난 이이들이라고…..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피임약을 먹어야 하고, 심지어는 임신 중인 태아를 죽여야 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그 애들은 태어난 거야. 그러나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이 모든 살인극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아?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들은 당당한 사회인이 되고, 합법적인 결혼 밖에서지만 두 남녀의 성실한 사랑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사생아니, 불륜의 씨앗이니 하며 몰아붙이는 이 사회 자체가 나는 부정스럽다고 생각해. 우리 모두는 어쩌면 다 일종의 사생아인지도 몰라. 우리 부모님들이 정말로 우리의 출생을 원했는지 누가 알 수 있어? 우리들은 부모들의 심심풀이 애정 속에서, 혹은 순수한 욕정 속에서, 그야말로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을 때에 어쩌다 우연히 태어났는지도 몰라.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일종의 사생아야. 그러한 합법적인 결혼 밖에 있는 두 남녀가 피할 수 없는 사랑 속에서 아기를 갖기 원했었다면,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오히려 더 떳떳한 출생의 동기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 안 그래, 쟌느?”\n“태오, 감사해. 지금 너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교회가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태오, 너의 인간적인 그 성실한 감정과 나에 대한 우정이 한없이 고마워.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 뿐이야. 태오.”\n“방금 내가 한 말을 되풀이 않겠지만… 쟌느,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는 출생의 동기보다는 우리를 길러 준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우리를 길러 준 그 기나긴 과정 속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고 간 그 고통과 애정이 더 순수하고 고귀하다고 나는 확신해. 그렇지 않겠어, 쟌느?”\n“그래, 네 말이 옳아. 나를 오늘까지 키워 주고, 보살펴 주고, 사랑해 준 사람이 내 아버지야. 내 아버지는 나를 길러주고, 사랑해 준 무슈죤 뽈 그렁꼴라야. 그분만이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계시는 내 아버지야.”\n“작년 여름방학 때였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야. 어느 날 어머니가 대학교 시절에 알던 친구라 하며 어떤 남자와 같니 나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 그때 그 사람은 나보고 ‘잔느야!’ 하고 부르며 다정하게 내 뺨에 키스를 하지 않겠어.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에 대해 몸서리쳐지는 듯한 일종의 혐오감을 순간적으로 느꼈어. 왜 그랬는지 몰라. 몸매는 깨끗해 보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비굴해 보였고, 아편쟁이처럼 파리한 그 모습이 아주 싫었어. 불안해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지. 그 후부터 어머니는 식사도 잘 안 하시고 잠도 잘 자지 못하며 소화제와 수면제로 나날을 보낼 정도로 신경이 쇠약해지기 시작했어. 그러나 아무도 어머니를 의심할 사람은 없었고, 갱년기에 들어선 부인한테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세라고만 우리는 말고 있었지.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어머니를 위로하고 의사를 부르려 했으나 어머니는 자기 병은 자기가 알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며 의사의 진찰을 거부했어. 나는 개학이 되어 대학교로 다시 돌아가 공부하며 그저 철없이 명랑하게만 지내고 있었지. 그런데 성탄절도 지내고 학년 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요 며칠 전 일이야. 어느 날 나를 병원으로 찾아온 그 보기 싫은 남자가 기숙사로 나를 찾아왔어. 그때 그 사람은 병자처럼 보였고, 아침에 면도도 하지 않았는지 털이 꺼칠한 모습이 더 보기 싫었어.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되돌아 갔어. 그 다음 날 그 사람이 또 나를 찾아 왔어. 왜 나를 이유 없이 찾아와 성가시게 하느냐고 야단을 쳤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날더러 돈 좀 꾸어 달라는 거야.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가라고 소리치며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호통을 쳤어. 나는 그를 정신병자로 밖에는 볼 수 없었지. 그날 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초조한 목소리로 혹시 그 남자가 나를 찾아간 일이 있느냐고 묻지 않겠어? 그렇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그 남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만나지 말고 조심하라는 거야. 왜냐고 어머니에게 물었으나 그냥 어머니는 전화를 끊어 버리시더군. 그때부터 어머니와 그 사람 사이에 뭔가 미심쩍은 것이 있다고 짐작했어. 그러나 그 사람이 설마 나를 낳아준 아버지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어. 부활절 방학에 들어갔으나 나는 시험 준비를 위해 조용히 기숙사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지. 그런데 바로 어제 오후였어. 오빠 베르나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하면서 말하기를 자기는 당분간 여행을 떠나는데 나보고는 집에 올지 말라는 거야. 이유를 물었더니 하여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거야. 그리고 나보고 ‘쟌느, 너는 나의 영원한 누이동생이다. 우리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형제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짐작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아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어.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집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왔어. 이번에는 아주 거지꼴이었어. 우리 집안에 일어난 사건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는 듯하여 그에게 방문의 이유를 떠졌지. 그랬더니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자기가 나를 낳아준 아버지라고 말하며, 배고프니 돈 좀 달라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기절했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 세상에 이럴 수가 있겠어?….. 그것이 인간이야? 그 남자가 저주스러웠고 어머니가 한없이 미웠어. 그래서 내 자신이 더럽게 보여 죽기로 결심했었어. 이 세상에 남아 살기가 싫어졌었어. 어젯밤 어머니한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으나 나는 받지 않았어. 어머니의 목소리만 들리면 전화를 끊곤 했지. 그러나 나를 길러준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를 극진히 사랑해 준 그가 보고 싶었고, 그분이 또 불쌍한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태오, 그분한테 달려가 울고 싶어도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아? 이미 내가 설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 그래서 죽기로 결심한 거야. 죽을 생각을 하자 내가 미워하고 있던 네가 갑자기 생각이 났어. 왜 네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어. 아마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었고 신부가 되겠다는 너였기에 그런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실컷 울고 눈을 감고 싶었어. 그래서 간단히 유서 한 장을 써 놓고 밤차로 네가 보고 싶어 낭씨에 왔어. 그리고 역전 호텔에서 잠 한숨 자지 못하며 밤을 새웠어. 이런 처지에서 너를 찾아온 것이 창피스럽기도 하여 우회하기도 했지. 그까짓 것 아무도 만나지 말고 죽어 버리자고 호텔 7층 발코니에서 몸을 던져 버리려고 했더니 이상하게 네가 나를 붙잡는 것만 같았어. 그래서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너를 만나보고 일을 처리하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지. 아마 지금쯤 내 유서를 발견한 기숙사에서는 집에다 전화를 했을 거고, 이미 내가 죽은 것으로들 알고 있을 거야. 태오, 나 정말 죽고 싶어. 이런 몸으로 살아서 무엇해?”\n“쟌느, 너는 참 훌륭했다. 이런 고통을 지금까지 참아온 너는 정말이지 장해. 그런데 쟌느, 이제는 죽는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해. 만일 내가 너의 입장에 있더라고 너처럼 생각했을 거야. 고통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쟌느에게는 쟌느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쟌느를 훌륭하게 길러 준 그 고마운 아버지, 그래도 쟌느를 사랑해 온 어머니, 무슨 일이 있더라고 우리는 영원히 사랑하는 형제라고 전화해 준 오빠 베르나르, 그리고 내가 있지 않아? 쟌느, 죽음은 너 개인의 비극과 고통에 종지부를 찍을지는 모르지만 너의 죽음과 함께 또 하나의 크나큰 고통을 일생 가슴에 지니고 슬프게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해 봐! 너를 사랑해 왔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느낄 고통을 말이야. 쟌느, 이제는 죽겠다는 생각도, 말도 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약속해 줘!”\n“태오, 눈물로 얼룩진 내 흉한 얼굴을 보지 마!” 하며 다시 얼굴을 내 품에 갖다 대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아직도 흐트러진 자기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는 여심(女心)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이런 마음의 여유를 발견하고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잠시 후 쟌느는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나직이 말을 했다.\n“쟌느, 너와 나 사이에 부끄러워할 일이 어디 있니? 네가 이러한 곤경 속에서 나를 찾아 준 것을 나는 정말이지 고맙게 생각해. 너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를 믿어 준 너의 우정 속에서 나는 신부가 되고자 하는 내 결심이 보람스럽게 생각돼.”\n“태오,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만 돼.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바라게 되는 대상은 신부 뿐이야. 울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달려가서 울 수 있는 곳, 그곳도 신부가 있는 곳 뿐이야. 태오, 지금 나는 너에게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해.”\n“지난 여름방학 때 내가 너에게 지나칠 정도로 장난질을 해서 말이야. 네 말대로 나는 너에게 <귀여운 사탄>같은 존재였었지. 정말이지 나는 너에게 사탄이 되고 싶었어. 나를 귀여워하고 사랑하면서도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나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 네가 우리 집을 도망치듯 신학교로 되돌아간 것, 그리고 오늘까지 편지 한 장 없는 너를 나는 미워했으나 이해하고는 있었어. 너는 참 훌륭했어. 나는 이제 너를 존경해. 그렇지 않았던들 나는 이런 상태에서 너를 찾아오지 못했을 거야. 태오, 지난 날의 철없던 나를 용서해 줘.”\n“쟌느, 지난 얘기는 우리 하지 않기로 해. 나는 지금 너의 고통 속에서, 죽고 싶어하는 너의 번민 속에서 내 수단에 흘린 그 많은 너의 눈물 속에서 이 세상에는 신부가 있어야 한다는 네 말대로 신부가 되자는 결심을 새롭게 굳혔어. 요즘 나는 쓸쓸한 기분 속에서 이 신학교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으나 바로 너의 비극과 고통이 나를 새롭게 깨우쳐 주었어.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 대한 너의 우정은 나에게 구원을 주었지. 우리 서로의 우정을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우정을 주님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해.”\n“감사해, 태오. 우리 서로의 구원이 있게 한 우리의 이 우정을 나는 진정으로 고맙게 여기겠어. 이것이 다 훌륭한 너의 인격 때문이야. 그리고 말이야, 인간들의 내면생활을 들춰 보면 우리 집안에 잇는 이런 비극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회의 마지막 양심으로서, 고통 받은 사람들이 피난처로서, 절망에 빠진 자들의 구원의 손길로서, 그리고 영원을 지향하는 신앙의 증인으로서 신부는 이 세상에 곡 있어야만 해. 태오, 네가 훌륭한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죄인인 나지만 열심히 기구할게.”\n“감사해. 쟌느, 내가 신부가 되는 날 특별히 기억해야 할 몇몇 사람들 중에는 네가 꼭 있을 거야. 쟌느, 라옹에다쁘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서 너를 사랑해 주신 부모님들의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빨리 씻어 드리자. 네 유언대로 지금쯤 네가 죽었을 것으로 믿고 그분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하겠니.”\n“태오, 당신은 그 많은 시련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특별히, 그리고 충만이 받은 사람이오. 당신이 받은 그 은혜를 당신의 강복을 통하여 나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겠소? 그리고 어쩌면 나는 당신보다도 더 큰 죄인일지 모르오. 태오,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 좀 해 주시오.”\n나는 학장 신부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다. 나는 학장 신부님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주의 기도문과 성모송과 영광송을 조용히 읊었다. 그리고 나는 학장 신부님의 두 눈에 서려있는 눈물을 바라보며 그분의 방을 나왔다.\n낭씨에서 라옹에다쁘까지의 거리는 불과 백여 킬로미터에 불과했으나 기차가 지방선(地方線)이라 두 시간이나 걸렸다. 우리가 무슈 그렁꼴라 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집 안에는 보누아가 텔레비전 앞에 쭈그리고 있었고 무슈 그렁꼴라는 응접실에서 술병을 앞에 두고 넋 없이 앉아 있었다. 무슈 그렁꼴라는 술을 즐기기는 했으나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부르고뉴 술 병이 빈 채로 있었다.\n쟌느는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무슈 그렁꼴라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이나 꿈꾸는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자기 품 안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쟌느를 끌어안고는,\n“네가 쟌느냐? 아, 내 딸 쟌느! 고맙다, 고마워. 네가 이직 살아 있었구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영원한 내 딸 쟌느다. 너는 내 딸이다. 내 딸이다! 너 없이는, 너 없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끝이야. 쟌느야, 우리는 과거를 말하지 말자! 우리는 과거를 잊자! 하여튼 고맙다, 고마워. 네가 살아 있다는 이 사실, 주님께 내 일생 잊지 않고 감사하련다. 쟌느야, 우리는 같이 산다. 너는 내 딸이다…” 하고 부르짖으며 그도 울음을 터뜨렸다.\n“아빠! 당신은 내 아버지에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나에게 단 한 분이신 유일한 아버지에요. 아빠!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빠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없었어요. 유서에 써 놓은 대로 내가 죽더라도 아빠에게 <당신만이 오로지 내 아빠>라고 말해 드리고 싶었어요. 아빠, 아빠, 나는 당신의 영원한 딸, 쟌느에요, 아빠…”\n그때 마담 그렁꼴라는 침실이 있는 난간을 잡고 창백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마담을 부축했다. 그녀는 금방이라고 쓰러질 것 같은 자세였다. 마담 그렁꼴라의 몸은 정말 가엾을 정도로 뼈만 남아 있었다. 그 건강미가 흐르고 풍만스럽던 이전의 모습은 완전히 찾아 볼 수가 없었다.\n“무슈 태오, 당신이 내 딸을 살리셨군요! 그런데 무슈 태오, 나는 우리 온 가족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크나큰 죄인입니다. 당신이 지금 나를 붙잡고 안고 있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입니다.”\n“마담 그렁꼴라, 나는 지금 당신을 심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마담,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n나는 쟌느를 소리쳐 불렀다. 내 고함 소리에 쟌느는 자기 아버지 품에서 떨어져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쟌느는 계단을 두 개씩이나 뛰어 넘으며 이층으로 올라와 엄마 품에 안겼다. 오직 “쟌느야!” “엄마” 이 두 마디만이 들려왔다. 그들은 말 없이 서로 얼싸안고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여인은 서로 부축하며 침실로 들어갔다. 아마 거기서 둘이는 말 없이 실컷 울었으리라…\n“무슈 태오, 우선 감사하오. 당신이 아니었던들 쟌느는 아마 죽었을 거요. 쟌느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쟌느가 작년 자동차 사고로 입원하고 있을 때 당신의 방문을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인 내 마음이 참으로 괴로웠소. 소식 없던 당신을 원망하고 있긴 했었지만 쟌느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어젯밤 쟌느의 유서를 전화로 연락 받고 스트라스부르크 경찰서에 의뢰해 놓고는 있었으나, 어쩌면 쟌느는 당신한테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왜냐하면 이런 경우를 당하면 여자는 자가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무슈 태오, 당신이 쟌느를 살렸소. 감사하오. 그리고 당신도 이제는 우리 집의 비극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아내를 죽이고 싶은 충격을 강하게 받았으나 참았소. 배신감 속에서 참으로 괴로웠소. 하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소. 전쟁의 난리 통에서 어느 여자라고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겠소…. 아내의 고백을 나는 믿고 있소. 나는 아내를 이전처럼 변함 없이 신뢰할 것이며 보다 새롭게 살아갈 각오요. 나는 내 아내를 사랑했고, 현재 이 시간에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사랑할 거요. 나는 생각하오, 우리 가정의 비극은 아내 때문이 아니라 그 전쟁에 책임이 있소. 나는 전쟁을 미워하지 아내를 미워하지는 않소. 그 동안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받았던 아내의 심적 고통을 나는 이해하고 동정하오. 당신도 알다시피 내 아내 뽈린느 는 착하고 충실한 사람이었소. 무슈 태오, 이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래서 신부들은 이런 인간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오.”\n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 넓은 아량과 사랑으로 가득 찬 그 용기와 고결한 인격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그의 성실한 인품에서 이 가정의 화해와 밝은 내일을 다시 확실할 수 있었다.\n“무슈 그렁꼴라, 내가 무슨 말로 당신을 위로하거나 동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 말을 들으면서 정말이지 천주님께 감사했고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말씀한 그 신뢰만이, 그리고 그 따뜻한 사랑만이 이 가정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당신은 정말이지 훌륭합니다. 나는 기쁩니다. 나는 당신과 친분을 맺게 된 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당신 가정의 화해와, 새로운 내일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무슈 그렁꼴라, 당신의 말대로 신부는 이 세상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신부 중 한 사람으로서 나도 살아가겠습니다.”\n“그런데 무슈 그렁꼴라, 마담과 쟌느는 며칠간 휴양을 필요로 할 것만 같은데요? 당신이 허락한다면 내가 이 두 분과 함께 제라르메르 별장에 가서 쉬었으면 합니다. 물론 당신도 휴식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있는 것보다는 당분간 떨어져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n“당신은 벌서 훌륭한 본당 신부요. 그렇게 하는 것만이 현재의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가정부가 살림을 돕고 있지만 별장에서는 어떻게 하겠소. 내 아내나 쟌느가, 어디 지금 상태로 살림을 할 수 있겠소?”\n“아버지는 지난 해 11월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노쇠해지더니 지난 3월 초에 그만 돌아가셨소. 두 분은 참으로 다정한 부부였었소 만… 아버지의 장례식 날 어머니께서 <나도 곧 당신의 뒤를 따라 가리다> 하며 우시더니 3개월 반 만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 돌아가셨소.”\n“당신은 재간도 많구료. 여기 돈이 있으니 마음대로 쓰시오. 가끔 자동차로 부근을 여행도 하며 식당에서 식사하도록 해요. 부족하며 제라르메르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이 있으니 상관 말고 마음대로 써요.”\n우리가 제라르메르 별장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 시가 가까워서였다. 나는 수단을 벗고 작업복 차림으로 짐을 나르며 수선을 피웠다. 별장의 셔파져(난방장치)를 돌리고 페치카에 불을 부이며 우선 집안을 덥혔다. 그리고 페치카 옆에 긴 소파를 끌어다 놓고 마담과 쟌느를 쉬게 했다. 일을 마치자 나는 두 사람에게 엄숙히 말했다.\n“지금부터 두 분은 내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내 말을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두 분은 절대로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되며, 이 자리에서 쉬고 있어야만 합니다. 알겠지요? 내 사랑하는 자녀들!”\n그날 저녁 나는 중국 식당에서 사 온 음식을 데우며 수프를 끓이고 즉석 불고기를 만들었다. 마담과 쟌느는 부엌에서 일하는 나를 바라보며 가끔 웃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식사를 했다. 마담과 쟌느는 주로 내가 만든 불고기를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며 나도 즐거웠고 보람도 느꼈다.\n저녁식사 후 우리는 페치카 옆 소파에 앉았다. 페치카에서는 불꽃을 퉁기며 기분 좋게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나폴레옹 코냑을 마시고 있었고 마담과 쟌느는 알사쓰 백포도주 한 잔씩을 마셨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한참 후, 마담은 남편에게는 이미 고백한 쟌느의 출생의 비밀을 말하겠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쟌느는 그 말을 듣자 무엇인가 두려운 듯 내 곁으로 바싹 다가 와 앉으며 두 눈을 유난히 크게 뜨고 자기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n너도 알다시피 나는 아빠 죤 뽈을 사랑했고 아내로서 충실했었다. 물론 너의 출생의 동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우리 둘은 다정한 약혼 기간을 거쳐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누려왔다. 그러다가 우리가 결혼한 2년 후인 1939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해 들어가자 세계 제2차대전의 기미가 프랑스에서도 떠돌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1940년에 독일은 프랑스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알사쓰 지방과 보죠 지방 그리고 로오렌 지방이 적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대 독일 투쟁을 위해 비점령 지역인 남쪽으로 피난 가지 않으면 지하 공작대인 빨치산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n그때 할아버지는 지금 아빠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가지고 계셨고, 아빠는 또 아빠대로 낭씨에서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아빠는 독일군에게 체포되었고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민간포로로 끌려갔다. 그 후부터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만 5년간 나는 아빠의 생사(生死)를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당시 오빠 베르나르는 생후 11개월의 갓난애였고 나는 25세의 젊은 어머니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빠가 경영하던 회사들도 독일군이 차압 했고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문제될 때였다. 그 무렵 모든 사람이 다 식량난에 허덕였었고 나 또한 베르나르에게 먹일 우유 한 통을 구하기가 힘들 때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용케도 남쪽으로 피난하는데 성공하셨지만 나는 낭씨에 그대로 남아 적에게 차압 된 아빠 회사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n그러던 어느 날, 알베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알베르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 훨씬 전 나를 몹시도 사랑한 남자였다. 그이는 나를 정말로 사랑했었고 나도 그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결혼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알베르는 만나면 반갑고 나를 즐겁게 해 주기는 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남편과 자녀들의 아버지 상(像)은 못 되었다. 대학교 교정에서 서로 만나 지내는 친구로서만 나는 그이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이는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을 정식으로 신청해 왔다. 알베르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여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즐겁게 해 주는 재능까지 갖고 있었으나 남자로서의 무게라 할까, 남편으로서의 존경심을 갖게 해 주는 그런 사람은 못 되었다.\n그 무렵, 나는 아빠를 알게 되었고 우리 둘은 처음 만나는 날부터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빠는 지금도 그러하시지만 여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멋있는 분이었어. 아빠는 성격이 알베르보다는 다소 무뚝뚝한 편이었으나, 사귀면 사귈수록 나에게 신뢰감을 갖게 해 주었다. 아빠의 착한 인품과 지성적인 멋과 의지적인 인격 전체가 나를 완전히 매혹시켰다. 우리 둘은 진정으로 사랑했고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자 몇 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행복했다. 친구들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n그러나 알베르는 몹시 고민했고 그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도 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로서 어떻게 하겠니?…… 내가 아빠와 결혼하자 알베르는 나에게 결혼 축하 카드 한 장을 보내고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한 알베르를 동정하며 한 편 고맙게도 생각했다.\n그러나 내가 알베르를 다신 만난 것은 방금 말한 것처럼, 아빠가 체포되어 행방불명이 된 지 3개월 후였다. 그때 알베르는 빼땅 장군이 세운 일종의 괴뢰정권인 비시 정권에 가담해 있었고 낭씨 지방 민정관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 그이는 나에게 여전히 친절했고 점잖았다. 식량도 마련해 주었고 압수당한 아빠의 회사도 되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이가 직접 그 회사를 운영 감독하며 우리 살림을 돕고 있었다. 그이에 대한 감사함과 지난날 그에게서 느꼈던 동정심이 내 마음 안에 되살아나 아빠 없는 고독하고 불안한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빠에 대한 아내로서의 지조를 지켰고 그이도 나를 유혹하지는 않았다. 일 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회사 일을 의논하고는 그이는 점잖게 되돌아 가곤 했다.\n이렇게 우리는 4개월을 지냈다. 어느 날 우리 둘은 누가 먼저 유혹한 것도 아닌데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불안하기만 한 전시 하에 남편의 행방조차 알 길 없었던 한 여인의 고독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이에 대한 동정과 고마움 탓이었을까, 어쨌든 그날 밤 나는 후회도 가책도 없는 하루를 그와 함께 지냈다. 그리고 약 두 달 동안 우리는 동거생활을 계속했다. 그때 나는 너를 임신했고 아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낙태수술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 무렵 나에게는 이상한 심리적 작용이 있었어. 저니 하의 사회는 어지럽고 불안했지만 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아기를 갖고 싶은 본능이 나를 강력히 지배하고 있었다.\n너를 임신한 것이 확실시 되자 나는 알베르에게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그이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했으나 나는 내 의견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는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그 후 우리 둘은 어쩌다 서로 길거리에서 부딪치는 일은 있었어도 결코 밤을 같이 지낸 일은 없었다. 이것은 하느님께라도 맹세할 수 있다.\n나는 네 출생의 비밀을 감추는 동시에 그것을 합법화시키기 위해 아빠의 회사도 버리고 그 부모님이 계시는 파리로 올라갔다. 내 부모님은 나를 이해해 주였고 오늘까지 이 비밀을 지켜 주셨다. 때가 되자 나는 너를 낳았다. 너는 참으로 귀여운 애기였어. 그리고 성장도 아주 빨랐고….. 전쟁이 끝난 해인 1945년 3월에 너는 비로소 영세를 받았다. 그때 나는 너의 생일을 일 년이나 앞당겨 너의 출생을 합법화시켰다. 즉 아빠가 너를 임신시키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신 것으로 너의 출생 날짜를 꾸며댔다.\n전쟁이 완전히 끝났고 나는 즉시 낭씨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전쟁포로의 석방과 함께 아빠도 조국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너를 자기 딸로 알았고, 귀엽기만 하던 너는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날 나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드리며, 너를 얼싸안고 기뻐 눈물을 흘리던 아빠를 생각하고 나도 울었다. 내 눈물은 남편을 다시 만난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고 아빠에 대한 죄책감에서 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너만의 행복을 위해 주일마다 영성체(領聖體)하기로 결심했고, 예수성심상과 성모성심상 앞에 매주일 초에 불을 붙이며 너의 행복을 기원해 왔다.\n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행복했었다. 아빠는 낭씨의 회사를 정리하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우리는 라옹에다쁘 로 이사해 왔다. 회사 일은 그런대로 잘 되어 나갔고, 전쟁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우리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n그 동안 너는 집안의 웃음의 꽃이 되었고 기쁨이 되었다. 아빠가 너를 그렇게도 사랑하실 줄이야! 내가 너를 질투할 정도로 아빠는 모든 것이 너 중심이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말하자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빠에게 너의 출생의 비밀을 고백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쟌느, 지난 날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니?…..\n그런데 불행은 나를 쫓고 있었다. 네가 자동차 사고로 입원 중이던 어느 날 행방을 전혀 알 길 없던 알베르가 돌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은 나에게 지옥과 같은 날이었다. 알베르는 독일군이 패망할 기미가 보이자 알제리아로 도망을 갔었다는 것이다. 알제리아 까지 무사히 탈출은 했으나 독일군에게 협조한 사실과 조국을 배반했다는 죄의식 때문에 떳떳한 일도 못하고 뒷골목에서만 살아왔대. 물론 이름도 바꾸고 지금까지 떠돌이로 살아왔다는 구먼. 알제리아가 독립이 되자 프랑스 사람들의 추방소동이 있었지 않니? 그대 알베르도 돈 몇 푼 쥐고 프랑스로 건너왔었다. 그러나 알베르는 이미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었어. 그날 알베르는 그대로 자기가 너의 아버지라고 너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단다. 알베르는 이 전의 그 착하고 성실한 알베르가 이미 아니었어. 성격은 거칠어졌고 협박과 공갈을 아무런 수치심 없이 내게 해 왔단다. 할 수 없이 우리 둘은 병원으로 너를 방문했었지.\n그것 뿐이겠니?…. 그날부터 나에게 생활비를 대 줄 것을 요구했단다. 만약 그것을 내가 거부하면 모든 비밀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아, 그때 나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죽었을 거야. 그러나 죽음이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어.\n그때 약한 여자의 심정으로, 또 죄를 진 죄인의 자책감으로, 그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주며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어. 그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마약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약속이 지켜지길 바랄 수가 있었겠니? ….. 그 후 알베르는 보름이 멀다 하고 나를 찾아와서는 생활비를 가져갔다.\n이 문제로 말미암아 나는 신경쇠약이 걸렸고 우리 가정에서는 웃음과 행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착하고 선한 아빠를 속일 수 없어 며칠 전에 나는 이 사실을 아빠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그때 아빠의 얼굴에 나타난 그 고통의 그림자! 그것은 차마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알베르를 단호히 거절했다. 알베르 자신을 위해 아빠와 나는 당국을 통하여 그를 마약 중독자 수용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알베르는 다음 날 병원에서 탈출했고 그 길로 너를 찾아갔던 것이다.\n아, 쟌느! 이것이 네 어미다. 나는 너에게 말한 더 이상의 비밀도 없다. 나는 너에게 용서를 청할 자격도 없는 어미다. 하지만 쟌느, 이 죄스럽고 못난 어미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n두 여인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그 눈물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슬픔을 달랬던 것이다. 거기에는 용서할 권리도, 용서를 빌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모녀 간의 사랑만이 있을 뿐이었다.\n“엄마, 우리 셋이 오늘 밤 이 페치카 옆에서 자기로 해. 나는 내 방에서 오늘 밤 혼자 못 잘 것 같애. 그리고 태오, 너는 이미 신부나 다를 바 없으니까 나를 위해 오늘 밤만 십자가를 져 줄 수 없겠니?”\n“그 십자가는 말이야 다름이 아니라,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자고 싶은데 네가 내 곁에 있어 주어야 하겠어. 즉 나는 네 무릎을 베고 네 곁에서 자고 싶어. 오늘 한 번만 십자가를 요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엄마, 이렇게 태오한테 부탁해도 괜찮겠지?”\n우리가 페치카 옆의 소파 위에 모포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마담은 그저 소파에 편안히 기대고 모포로 몸을 덮고 있었다. 나는 페치카에 다시 통나무 서너 개를 집어넣고 쟌느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다. 쟌느는 내 무릎을 베개처럼 베고 눕자 이내 숨을 색색거리며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참으로 피곤했던 쟌느! 쟌느는 이불 밖으로 나온 왼손으로 내 손을 곡 쥐고 있었으나 잠시 후 그것도 사르르 풀리고 말았다. 나는 오직 상처받은 쟌느의 마음이 치 전처럼 회복되기만을 기도했다. 쟌느와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마담 그렁꼴라는 진정 감사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n쟌느는 당신을 사랑해요. 작년 여름 휴가 때 나는 어머니라는 입장에서 쟌느와 당신 사이를 염려하면서도 기뻤어요. 아직 순진하고 철 없는 쟌느, 그리고 당신은 신학생. 쟌느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옷가지를 챙기며 그때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어요. 일종의 호기심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엄마라는 입장에서 나는 그것을 대충 읽어 보았어요. 거기에 나타나 있는 당신에 대한 쟌느의 순정과 나까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 애의 짓궂은 장난, 그런가 하면 당신의 자상한 인간성과 쟌느가 본 당신의 고민! 하지만 당신은 훌륭했어요. 나는 당신이 쟌느를 사랑해 주기를 은근히 바랬어요.\n쟌느가 성장함에 따라 나는 그 애의 출생의 비밀을 두려워했어요. 언젠가는 그 비밀이 폭로될 것만 같은 예감 때문에 나는 무서웠어요. 그러나 여자는 출생의 동기가 어떻든, 또 과거가 설사 불행했다손 치더라도 자기를 폭 넓게 이해해 주는 성실한 사랑 속에서, 또 자기를 힘있게 안아 주는 남자의 품 속에서 일체를 잊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쟌느가 당신을 그처럼 사랑하고, 또 당신이 그 애를 아껴 주고 귀여워해 주는 것을 보고 나도 무척 기뻤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둘이서 결혼해 주기를 기대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신부가 되어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집안의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깨달았어요. 당신이 아니었던들 쟌느는 아마 자살해 버렸을 겁니다. 당신에 대한 쟌느의 사랑이 그 애로 하여금 당신을 찾게 했고 쟌느에 대한 당신의 참된 우정이 그 애를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년 여름방학 때 우리 집을 떠난 이후 편지 한 정 없는 당신을 미워할 정도로 섭섭히 여겼으나 이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당신의 입장을, 그리고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모두가 감사할 뿐입니다. 알베르가 내 앞에 나타난 이후 나는 천주님께 반항의 깃발을 들고 원망만 하며 살아 왔지요. 그러나 주님께 진정 감사할 뿐입니다. 모두가 은혜롭고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모두가 은혜롭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미 죄인인 이 몸, 주님께 기도 드리는 것조차 죄스러운 이 몸이지만, 태오, 당신을 위해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겠어요.”\n“마담, 감사합니다. 나도 한 때 쟌느의 귀엽고 사랑스러움에 고민도 했고 당신 집을 도망치다시피 신학교로 되돌아간 적도 있으나, 나는 신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당신들의 그 눈물과 당신들이 겪은 그 고통을 목격하며 나는 이 세상에 신부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마담, 기도해 주십시오.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기도를 나는 진정으로 필요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통회(痛悔)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n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페치카 속의 불꽃도 마치 그 침묵 속에 녹아 들어가 버린 것처럼 조용히 불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쟌느는 어린 소녀처럼 내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마담은 열심히 묵주신공을 바치고 있었다. 나는 기도 드렸다. 우연히 부닥친 이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나로 하여금 새로운 자각을 하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깊이 깊이 감사 드렸다.\n잠시 후 벽시계가 네 시를 두드릴 무렵 마담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묵주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그분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은 채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이 가정의 평화와 특히 이 두 여인의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했다.\n우리 셋은 에삐날로, 디죵으로 또 스트라스부르크로 자동차 여행을 하며 나날을 보냈다. 식사는 주로 식당에서 했다. 마담 그렁꼴라도 쟌느도 명랑해졌고 지난 날의 고통도 어느 정도 잊은 듯 했다.\n며칠 후 무슈 그렁꼴라가 보누아를 데리고 별장으로 왔다. 다소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런대로 서로 잘 어울렸다. 베르나르도도 자기 애인을 데리고 제라르메르를 찾아왔다. 온 가족이 모였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베르나르는 이 기회에 간단한 약혼식을 올렸다. 별장생활은 이 약혼식으로 축제 기분이었다. 예전과 같은 즐거움과 평화로움이 이들의 생활 속에 다시 깃들기 시작했다. 다만 쟌느만이 이전의 쟌느가 아니었다. 쟌느는 이번의 시련을 통해 놀라울 만큼 성숙되었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장난기가 사라졌다. 의젓해졌고 점잖아졌다. 고독하고 조용한 표정 속에 고요히 웃고 있는 쟌느는 한 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n열흘 간의 부활절 방학이 끝나자 나는 신학교로 돌아왔고 같은 시기에 쟌느도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로 돌아갔다. 같은 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온 가족이 역에 나와 있었다. 쟌느는 나를 엉부라쓰 하며 쓸쓸히 말했다.\n“태오, 어쩜 인생이란 이런 것인지도 몰라. 한 때 같이 만났다가 한 사람은 서쪽으로, 또 한 사람은 동쪽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고 마는 것이…. 마치 우리 둘이 타고 가는 기차의 방향처럼 말이야. 너는 서쪽으로, 나는 동쪽으로…”\n학년 말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낙제한 과목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전과목 구두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고된 시험을 끝내고 우리는 여름방학을 맞았다.\n아직도 나는 그 동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 무렵 나는 도밍고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언제부터 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많은 수도원 중에서도 하필이면 도밍고 수도회를 내가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 어떻든 나는 도밍고 수도회를 좋아했고 도밍고 회 소속 신부님들도 여러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밍고 수도원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욕심으로 나는 그 해 7월 방학을 도밍고 회 파리 관구 수련원을 겸한 신학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 수련원에는 철학부, 신학부 학생 수사님들이 70여 명이나 있었고 그 외에 교수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수사 신부님들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똑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장차 내가 살아가야 할 이 수도생활에 깊은 애착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들 학생 수사님들의 학구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n그리고 8월 한 달은 쌍삐에르 드 키브렁에 있는 닥터 쿠에상 댁에서 쉬었다. 다정하게 환영해 주는 그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며 만족한 휴식을 즐겼다. 이번에도 비에브와는 다정한 말동무가 되었고 그 애도 잠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벌써 열네 살이 된 비에브는 인생문제와 신앙문제 등의 심각한 문제를 내세워 우리 둘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n그 후 나는 스위스의 뽕드레지나에서 열흘 간의 휴식을 취하고 제라르메르 호숫가에 있는 무슈 그렁꼴라 별장에 왔다. 마담 그렁꼴라는 건강해 보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몸은 수척해 있었다. 그러나 격심한 고통을 겪고 난 그분은 전보다 더욱 세련되고 우아하게 보였다. 무슈 그렁꼴라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베르나르 는 약혼자와 함께 어디론가 여행 중이었고 보누아는 조용히 놀고 있었다. 가정 분위기는 이 전과 같이 다정하고 평화로웠으나 명랑함은 없어진 것 같았다. 늘 떠들썩하고 사람들을 곧잘 웃기던 쟌느가 말이 없고 보니 집안이 명랑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조용한 생활이 가족 모두에게 어느 정도 습관화 되어 있는 것 같았다.\n쟌느는 내가 산보를 하자거나 혹은 수영을 하자고 먼저 권해야만 말 없이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늘 조용한 쟌느의 모습, 어느 정도 고독해 보이고 고뇌에 단련된 그녀의 성숙한 모습, 이러한 쟌느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아프게 두드렸다.\n호숫가 저 건너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하는 쟌느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쟌느의 부탁에 말문이 막혔다. 역시 핏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만을 간신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쟌느의 우울한 표정 속에는 그래도 핏줄기의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이 서려 있었다. 쟌느는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잠잠히 걷고만 있었다. 다만 갑자기 무슈 그렁꼴라가 생각났고 여러가지로 염려스럽게 상상되는 점들이 고통을 주고 있었다.\n“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 이젠 어린애가 아냐. 어떠한 충격도 참고 견딜 것 같애. 그렇다 하더라도 나 혼자서는 못 가. 그래서 네가 같이 가 줄 수 있는가 하는 걸 알아 보려는 거야.”\n다음 날 우리 둘은 친구네 집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마담 그렁꼴라의 차를 빌려 타고 집을 떠났다. 무슈 알베르는 쌍디에 정신과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쟌느는 별 말이 없었다. 가끔 눈물을 흘리며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n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원자 명부에는 알베르는 집도 가족도 없는 주거부정자(住居不定者)처럼 기입되어 있었다. 무슈 알베르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 수부실 간호원에게 우리는 다만 막연히 아는 친지 사이라고만 대답했다. 우선 우리는 병원 지도 신부님을 찾아가 우리 방문의 사유를 말하고 무슈 알베르의 근황을 물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마약중독 증세는 거의 치료가 되었으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맑은 정신으로 열심히 신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n안내하는 간호원을 따라 무슈 알베르를 찾아갔을 때 그분은 병원 정원의 나무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묵주가 들리어져 있었다. 간호원은 돌아가고 쟌느, 나, 무슈 알베르 셋만 남았다. 무슈 알베르는 몸이 아주 수척했으나 두 눈만은 생생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쟌느를 보는 순간,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림 것 같았다. 아주 기쁜 표정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그분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쟌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옆으로 다가 앉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n“마드모아젤, 나는 당신과 같이 착하고 아름다운 딸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쟌느라는 마드모아젤을 모릅니다. 발리 내 곁을 떠나 주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의 아버지도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n“내 딸 쟌느야, 이 애비를 용서해 다오. 이 천하에 못된 애비를 용서해 다오.” 하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쟌느이 어깨도 요란하게 들먹이고 있었다. 역시 핏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 두 눈시울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한참 후 무슈 알베르가 말을 이었다.\n“쟌느야! 내가 죽기 전에 너에게 용서를 받고 싶었다. 요즘 내가 온종일 바치는 기도는 너를 한 번 보고, 너로부터 용서를 받고 주님 안에 편안히 죽게 해 달라는 것이 그 전부란다. 그런데 너 스스로 나를 찾아와 나를 용서해 주고 있구나. 쟌느야, 너는 참으로 착한 아이다. 나같은 사람을 다 아버지라고 불러 주다니…”\n“네 어머니는 참으로 좋은 분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내 처지가 아니지만…. 네 어머니는 내 일생 단 한 번 사랑한 여인이다. 나는 나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네 어머니를 축복해 주었고 행복하기를 빌어 왔다. 전쟁이 시작되자 나도 처음엔 조국 해방을 위해 지하운동에 가담해 투쟁하고 있었다. 얼마 후 무슈 그렁꼴라가 민간포로로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나는 그 지하운동에서 탈퇴하고 빼당 장군이 세운 비시 정권에 가담했다. 그리고 낭씨 지역 민정관의 한 사람으로 일할 것을 자청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순수한 마음으로 네 어머니를 돕고 있었으나, 역시 우리 둘은 이 전의 친구였었고 또 젊고 고독했었다. 서로 누가 먼저 유혹한 일도 없이 환경이 우리를 결합시켰다. 너를 임신하자 어머니는 파리로 올라갔고 나는 얼마 후 알제리아로 탈출했다. 그러나 알제리아에서도 독일군에 협조한 국가 반역자라는 죄명이 찍힌 나는 설 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알제리아 시내 뒷골목에서 살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러나 마약만이 오직 나를 위로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나는 타락해 갔다. 알제리아가 독립된 후 우리가 쫓겨나자 나는 체면도 없이 비굴하게 네 어머니를 찾아갔다. 마음이 약하고 착한 네 어머니는 내 협박 공갈에 못 이겨 나에게 생활비를 대 주었다. 그리고 끝내 나는 너의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어린 너에게 일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만을 남겨 주었구나. 쟌느야, 이 애비는 네가 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부당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 너를 보니 기쁘기 한량 없구나. 이제 나는 속죄받은 기분으로 주님 안에 편안히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쟌느야, 다시는 나를 찾아 오지 말아다오! 너를 보기가 부끄러워 나는 얼굴조차 들 수가 없구나….”\n“쟌느야, 너만은 행복하게 살아 다오. 내 이 죄스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의 모든 것을, 너의 행복만을 위해 주님께 바치련다. 내 딸 쟌느야, 너만은 진정 행복해 다오…. 자, 이제 돌아가 다오 쟌느야, 그리고 앞으로 는 다시 나를 찾아오지 말아라.”\n무슈 알베르의 간곡하고 진정한 부탁이었다. 쟌느도 그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쟌느는 일어섰다. 무슈 알베르도 의자에서 일어섰다. 쟌느는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알베르는 잠자코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감사와 기쁨과 기도하는 정성만이 그분의 얼굴에 충만해 있었다. 쟌느는 무슈 알베르의 뺨에 키스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쟌느는 차 안에서 오래 오래 흐느끼며 울었다.\n제라르메르 별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도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다. 쟌느가 집으로 돌아가서 어떤 표정으로 가족들을 대할지 그게 걱정스러웠다. 요즈음 몰라보게 성숙하긴 했지만 그래도 쟌느는 이러한 인간적 고통과 비극을 이겨 나가기에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어렸다. 쟌느는 묵묵히 운전하고 있는 나를 잠잠히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n“태오, 내일이 내 생일이야. 그래서 말야. 내일 너 나를 위해 우리 가족에게 식사대접 안 해줄래? 물론 식사 비용은 내가 미리 주는 조건으로 말이야. 나는 말이야, 내 기분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 분위기를 한 번 살려 보고 싶어서 그래.”\n“태오, 너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랬지? 그럼 이제부터 겸손과 순명 정신을 배워가야 돼. 그 돈은 이미 네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니까, 내 돈이 아니고 네 돈이야. 알겠지? 그러니까 겸손하게 받으며 내 뜻에 순종해요. 태오 수사님!”\n우리는 제라르메르로 들어가자 꽃집에 들러 꽃을 한 아름 샀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렁꼴라 부부는 무슨 영문이지를 몰라 꽃을 보며 얼떨떨해 했다. 쟌느는 예전처럼 즐겁게 수선을 피웠다.\n“아빠, 엄마, 글쎄 태오가 말이야, 내일 내 생일을 위해 이렇게 많은 꽃을 사 줬어. 그리고 내일 또 우리 가족에게 멋진 식사 대접을 하겠대. 아 신나! 이런 기분 좋은 생일은 내 일생 처음인 걸. 태오 감사해.”\n쟌느는 어린 소녀처럼 내 뺨에 수 없이 키스하며 좋아했다. 그녀의 이러한 과장된 기쁨을 알고 나는 속으로 가슴이 아팠다. 오랜만에 밝고 명랑한 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렁꼴라 부부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쟌느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겠지…. 나는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n“무슈, 마담 그렁꼴라! 내 아름다운 마드모아젤 쟌느의 생일 축하연에 두 분을 초대합니다. 내일 우리는 디죵으로 가서 점심을 할 것입니다. 두 분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완전히 성장하셔야 하며, 특히 마담께서는 제일 멋진 보석과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 우선 우리의 시각과 취각을 만족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본당신부의 명령이며 두 분은 겸손하게 내 초대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절대 순명 하셔야 합니다.”\n“아빠, 엄마, 우리는 태오의 성의를 받아 줘야 돼. 한국 신사의 체면과 인격을 우리는 높이 존중해 줘야 해. 태오가 내 생일 축하 파티를 해 준다니 이처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어! 오늘 밤을 난 어떻게 참으면 좋지! 그까짓 것 우리 오늘 저녁으로 내 생일을 당겨볼까? 아냐, 그럼 좋지 않아, 내일 일은 내일 해야 뜻이 있는 것이니까… 엄마, 오늘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 자야 할 것 같애.”\n그날 저녁식사 후 마담 그렁꼴라는 부엌으로 나를 부르더니 잠자코 있으라면서 돈 뭉치를 내 주머니 속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고 쟌느를 위해 감사하다고 고마워하며 나를 엉부라쓰 했다. 나는 그 돈을 받기로 했다. 그날 밤에는 또 무슈 그렁꼴라가 내 방으로 조용히 나를 찾아와 내일 쟌느의 생일 식사비라고 하며 두툼한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내가 그 봉투를 돌려 주려고 하자 그분은 “쉬쉬” 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n그 다음날 우리는 쟌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디죵으로 떠났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화려한 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했다. 쟌느도 즐거워했다. 내 돈 안 들이고 내가 초청인이 되어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것은 내 일생 처음이며 또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그렁꼴라 부부의 다소 우울해 보이던 표정도 작년 코드 다쥬르의 바캉스 때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n그날 오후 늦게 우리는 제라르메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쟌느는 모처럼 예쁘게 차려 입은 옷을 벗기가 싫다며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했다. 그날 쟌느는 정말이자 아름다웠다. 화려하고 우아한 옷차림이 그녀의 천성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기에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즐겁게 노래 부르며 또 여러 재미있는 대화도 나누며 야산지대인 보죠 지방의 산길을 오르내렸다. 한참 후 쟌느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n“나 이번에 알베르 아버지를 만나고 오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어. 그 생각의 방향을 아직 정확히는 정할 수 없으나, 무엇인가 나도 해야겠다는 것을 강력히 느꼈어. 그래서 말이야. 태오 영성체 할 때 우리는 <주여, 당신께서 쟌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그녀에게 한 말씀만 해 주소서? 이렇게 말이야.”\n나는 차를 천천히 몰며 대답하는 대신 쟌느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수녀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쟌느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n“왜, 이렇게 너는 내 생각을 파고 들고 있지? 나를 보지 마. 태오, 운전 조심해요. 그리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묻지 마.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해 줄 거야 안 해 줄 거야?”\n방학이 끝나 나는 다시 신학교로 되돌아 왔다. 이제 나는 신학과 3학년이 되었고, 이 학년을 마치는 동시에 부제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학년 말 시험에도 좋은 성적으로 전과목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내 지도 신부님을 통해 부제품 받을 의사를 학장 신부님에게 전달했다.\n서품 피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와야 할 곳에 도착한 안도감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서품 피정이 시작된 지 이틀째 되는 날 밤이었다. 밤 11시경 누군가가 내 방을 노크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대침묵 시간이었고 다라서 남의 방을 방문하기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방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자지는 않고 있었으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방문을 여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이번에 같이 부제품을 받기로 된 동료인 쟈크 빈요롱이 사복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나와 각별한 사이였으며 나에게 열심히 불어를 가르쳐 주기도 한 친구였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사복차림으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내 문 앞에 그가 서 있다니! 나는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n“태오, 놀라지 마. 나 신부 되는 것 자신이 없어. 자신을 달라고, 신념을 주십사 고 주님께 무던히도 기도 드렸으나, 그래도 나는 자신이 없어. 자신 없는 일을 하다가 오히려 천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평신자로서 교회에 봉사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어. 그래서 몇 달 동안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결국 신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어.”\n“쟈크, 우리 둘 사이에는 배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어. 다만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위한 봉사의 길을 달리할 따름이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가지일 테니까…..”\n“좋아. 쟈크, 앞으로는 신학교를 생각하지 말고 네가 가려는 길을 주님께서 원하셨고 또 축복해 주신 거라고 굳게 믿고 용감히 살아가. 주님께서는 너를 달리 필요로 하니까… 쟈크, 열심히 살아요, 그리고 행복해요.”\n나는 잠옷에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 그의 가방을 들고 신학교 옆 문 현관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금발의 젊은 여인이 차 안에서 쟈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일 날 오후 면회시간에 가끔 쟈크를 찾아오던 그의 대학 시절 여자 친구였다. 쟈크의 소개로 나도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엠마뉴엘이었다. 엠마뉴엘은 쟈크를 근 8년 동안이나 사랑해 왔었다. 쟈크는 낭씨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생활을 거쳐 신학교로 들어 왔었고, 그 당시 엠마뉴엘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쟈크를 일생의 벗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순정파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쟈크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신학교를 나오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n달빛에 비친 엠마뉴엘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차 밖으로 나오며 그녀는 열렬히 쟈크를 엉부라쓰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봉 수와르 무슈 태오” 하고 인사하며 짙은 향수 나는 자기 얼굴을 내 뺨에다 대며 엉부라쓰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조용한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엔진 소리를 요란하게 뒤로 남기고 신학교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넋 잃은 사람처럼 한참 동안이나 서 있었다. 마치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사람처럼…. 그날 밤 나는 결국 잠을 이룰 수 없었다.\n쟈크가 떠난 날 밤, 잠 한 숨 자지 못한 기나긴 밤에 내 가슴 속에도 수 없는 회의와 의문이 명멸했다. 나도 과연 사제생활이라는 것에 자신을 갖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나도 자신이 없었다. 특히 신부로서 생명처럼 보존하고 지켜야 할 동정생활(童貞生活)에 나는 자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예수님이 이후 그 2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 없는 사람들이 오직 주님을 위해 동정을 자치며 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였다. 나도 남들처럼 희로애락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인 감정을 초월하고 홀로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신부들의 독신 제도를 제정한 교회가 원망스럽게만 했다. 어쨌든 사제생활이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무척 괴로웠다. 신부 되기를 포기한 쟈크가 어쩌면 신부가 되려고 결심하면서도 이렇게 회의에 잠겨 있는 나보다 더 현명하고 인간적인 양심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보기도 했다.\n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인간적인 노력 노력과 신념을 갖고 신부가 될 수는 없다. 설사 신부가 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부는 아마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신부생활을 올바르게 계속해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신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약한 인간들이다. 그러므로 신부들은 겸손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신부들에게는 자기만의 인간적인 노력과 자신감은 일종이 교만이며 이 교만은 바로 사제생활을 파괴하는 암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사제생활은 이렇게 겸손한 생활이어야 하고 철저한 신앙생활이어야 한다. 그래서 신부들은 생활을 통해 신앙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주님의 은혜 안에 가능화시켜 가는 사명을 신부는 생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n그 다음 날 밤도 나는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밝혔다. 몸은 지쳐 있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혀 생가지도 않았던 엉뚱한 것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32년 간의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나는 갖가지 시련을 겪어 왔으며 이 시련을 통해 나는 천주님의 존재성을 굳게 믿으며 살아 왔다. 이러한 신념 때문에 나는 신부가 되려고 결심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이 신념을 부정하고 포기하라는 강한 유혹을 받고 있었다. <천구다 어디 있어? 그것은 인간의 부조리가 자기의 비극과 고통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순수한 망상이다. 이러한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를 위하여 너의 피 끓는 청춘과 하나 밖에 없는 생명마저 버리려 하느냐?> 나는 온 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혀 당치도 않은 이 유혹의 소리를 끊임 없이 듣고 있었다.\n신의 존재성은 인간에게 문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 자체이다. 신의 존재 여부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인간은 그 탁월한 지능으로 그것을 넉넉히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성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비의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이름으로 신의 존재성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음도 신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증명되는 신을 믿는 데 나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 한 때 우리들처럼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신 예수님을 통하여 확실한 신의 존재성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신을 믿고 있을 뿐이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 가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결코 신이라는 하느님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믿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으로 나는 또 밤을 새웠다.\n다음 날은 목요일이었다. 그날도 밤은 깊어 가고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설사 신이라는 하느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너는 정말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느냐는 질문과 회의가 뒤따랐다. <주님이 너를 사제직으로 불렀다는 너의 신념은 전쟁 중의 인간의 비극과 고통과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대한 너의 남다른 예민한 감수성이 만들어 낸 너의 순수한 주관적 망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들리지 않는 유혹의 외침이 나를 짓이겨 놓을 듯 달려 들고 있었다.\n사실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내 귀로 직접 들은 일은 없다. 그저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끝 없는 이 갈망! 내 가슴 저 깊이에서 샘처럼 솟고 있는 이 갈망을 나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오늘까지 살아 왔다. 신의 존재성마저 회의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신부가 되고자 하는 이 의지와 갈망을 나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있었다.\n밤은 벌써 자정을 넘어 서고 있었다. 그러나 잠은 나에게서 백 리 밖에 있었다. 괴롭기만 했다. 이번에는 “네가 무엇이 잘 났다고 신부가 되려느냐?” 는 자책이 나를 비웃고 조롱하고 있었다. 내가 남보다 탁월해서 신부가 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못난 사람이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제대로 못해 본 사람이다. 어쩌다 프랑스까지 유학 왔지만 그것은 내가 남보다 우월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보라, 쟈크 같은 사람을? 너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사람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들은 겸손하게 그 부르심을 사양했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뭐냐? 만용과 고집과 무식과 자만심 이외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련한 네가 감히 신부가 되려고 하느냐?”\n밤은 계속 깊어 가고만 있었다. 밤 한시를 넘어서서 벌써 금요일이었다. 나는 오전 열 시 전으로 부제품을 받겠다는 청원서를 스스로 써서 학장 신부님께 제출해야 한다. 이 청원서는 라틴어로 이미 공식화되어 있는 양식을 내 손으로 직접 다시 써서 학장 신부님께 바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청원서를 몇 범이나 쓰려다 펜을 놓고 말았다. <사제생활이 이 연약한 나에게 정말로 가능할까?….>\n나는 부제품을 받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나 역시 지기 위해 내 청춘과 내 생명을 일생 바친다는 서약을 하느님께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서약은 친구 사이에 맺은 약속 같은 것이 아니다. 사업상의 계약 같은 것도 물론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맺어지는 정치적 조약 같은 것도 역시 아니다. 심지어는 두 몸이 합쳐 한 몸이 된다는 부부 간에 맺은 결혼 계약 같은 것도 아니다. 이 서약은 내 온 존재를 대변하는 깊은 양심과 하느님과의 약속이다. 한 번 맺으면 다시 무를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는 영원한 서약이다. 그런데 내일 일을 모르는 변화무쌍한 감정과 심리를 갖고 있는 한 연약한 인간인 내가 일생을 거는 이러한 서약을 하느님과 과연 맺을 수 있을까?\n“주님, 한 말씀난 하소서. 예전에 당신께서 <베드로야, 안드레아야, 요한아, 마태오야!> 이렇게 제자들을 직접 부르셨듯이 나에게도 이 귀로 들을 수 이도록 주님께서 직접 한 말씀만 하소서! 주님께서 직접 나를 사제직으로 부르셨다는 증명이 될 수 있도록 주여, 제발 한 말씀만 나에게 들려 주소서! 주님으니 영원히 살아 계신 분, 이 세상의 시작이요 끝이신 당신, 옛날에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나도 한 번 불러 주소서. 그러하오면 주님, 나는 미련 없이 또 아낌 없이 이 한 몸을 당신께 오로지 바쳐 당신 뒤를 따르오리다. 주님, 그때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 사도를 당신께서 친히 부르셨듯이 이 불쌍한 마태오도 주님께서 친히 한 번만 불러 주소서…”\n십자가만 내 가슴에 안겨 있을 뿐, 결코 아물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병원 구급차가 울리는 사이렌 소리만 요란히 들려올 뿐이었다. 잠은 결국 오지 않았다. 벌써 밤 두 시가 다가 오고 있었다. 청원서를 쓰리라 또 펜을 들었으나 한 자 쓰지 못하고 다시 그 펜을 놓고 말았다.\n<사제직이 정말 나에게 가능할까?…..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아, 그러나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으신 주님!………. 사제직이 요구하는 순결과 신심(信心)과 덕행(德行)의 생활이 인간에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주님은 정말 나를 사제직에 불러 주셨을까?….. 성소(聖召)라 함은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나에게 한 말씀만 해 주신다면…..>\n성당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그래도 그냥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은 비가 올 듯이 잔뜩 흐려 있었고 달빛도 미처 들어오지 않는 성당 안은 저 멀리 빨간 성체불만 보일 뿐, 무섭도록 깜깜했다. 나는 이 어둠 속에 잠시 서서 주위가 어느 정도 밝아지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때 사람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성체 불 밑 제대 쪽에서 들려 왔다. 갑자기 등에 소름이 끼치며 무서워졌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주님이 나타나시어 “태오야, 겁내지 마라. 내가 너를 사제직으로 불렀느니라”하고 말씀하신다 하더라도 나는 기쁨보다는 무서워 기절해 버릴 거라는 생각이 후딱 들었다. 기도도 하소연도 다 집어치우고 방으로 다시 돌아갈까 했으나 제대 쪽에서 여전히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계속 호기심이 났다.\n나는 그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신 차려 듣고 있었다. 그 동안 성당 안의 물체가 어렴풋이 보일 만큼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제대 계단에 누군가가 무릎을 꿇고 양팔을 십자가처럼 벌린 채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사람의 기도 소리도 똑똑히 들려 왔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은 바로 내 자신이 바치고 싶어하는 그것과 꼭 같은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갑자기 내 온 몸에서 긴장이 풀리며 그 기도 소리가 우습게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신학생에게 한 번 장난을 치고 싶은 짓궂은 충동을 강력히 느꼈다. 신을 벗어 들고 나는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제대 앞으로 걸어가 의자 뒤에 숨었다.\n그 신학생은 바로 나와 함께 부제품을 받게 되어 있는 앙뚜완 죤져그 였다. 앙뚜완은 기도에 도취도어 내가 바로 자기 뒤 의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조차 알아 차리지 못하였다. 그는 <주님, 나에게 한 말씀만 하소서. 나 즐거이 이 한 몸을 당신께 바치리이다> 하는 기도를 소리 내며 수 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n“내 사랑하는 아들 앙뜨완 죤져그야! 인류 구원을 위해 매맞아 죽은 내 뒤를 이어 사제가 되려는 너, 내가 너를 일찍이 사제직에 불렀고, 내 부름에 자유롭고 너그럽게 대답한 너와 함께 나 항상 있으리라…”\n“나는 제가 기도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찾고 있는 너의 주님이다. 다마스코 신자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사울의 눈을 멀게 하고 그를 말에서 떨어져 넘어지게 한 나자렛 예수다. 그리고, 로마 황제 네로의 박해를 피해 도망하던 베드로에게 나타난 <쿠오바디스>의 예수 그리스도다.”\n“내 아들 앙뚜완 죤져그야, 너의 불신(不信)이 있기 전에 토마의 불신이 이미 있었다. 네가 내 소리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토마도 상처 난 내 몸을 만져 보고서야 비로소 내 부활을 믿었다. 그때 나는 토마의 후예들에게 똑똑히 말한 바 있다. <나를 보지 않고 또 내 소리를 듣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진정 행복하다>고, 앙뚜완아, 안심하여라. 내가 너를 사제직에 불렀고 또 사제로서 내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갈 너에게 필요한 용기와 신심과 덕을 나는 주이라. 그리고 나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n그는 다시 제대 앞 제단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열심히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 너머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냥 소리 내어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일어섰다. 그때 앙뚜완은 “앗!”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일어나 자기 뒤에 서 있는 내 검은 모습을 보자 기겁을 하고 성당 문 쪽으로 나갔다. 나는 여전히 소리 내어 웃으며 그를 불렀다.\n“앙뚜완, 나야 나 태오야. 너처럼 나도 이 밤중에 기도 드리려고 성당엘 왔더니 내가 주님께 하고 싶은 바로 그 말을 너 역시 하고 있지 않겠어. 그래서 갑자기 너에게 장난을 좀 치고 싶었어. 그렇게 요란스럽게 놀라 달아나지 마. 나 태오야.”\n“앙뚜완, 난 이제 깨달았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감당키 어려운 은혜를 달라고 주님께 기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침묵을 지키고 계시는 주님의 입장도 이제는 이해가 되네. 정말이지 이 캄캄한 밤에 주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신다고 한 번 상상해 봐.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느냐 말이야? 나도 아마 놀라 기절해 버렸을 거야. 그런데 너는 정말 용감했어. 일단 성당 문까지 도망을 갔었지만 끝내 대화를 계속하며 서 있던 자네는 내가 부러울 만치 용감했네.”\n“자네와 마찬가지네. 사흘째 잠 한 잠 못 자고 고민 중이었어. 그래서 자네처럼 주님께 한 말씀만 해 달라고 하소연하러 성당에 왔다네. 그런데 자네가 제대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내가 하고 싶어하던 바로 그 말을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지 않겠나. 그때 내 몸의 긴장이 갑자기 풀리며 자네에게 장난치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네.”\n“주님, 진정 감사합니다. 태오의 말대로 당신께서 친히 나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더라면 나는 무서워 기절해 버렸을 겁니다. 이처럼 나의 신앙은 아직 약합니다. 그러기에 또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시지 않으심도 이제 잘 깨달았습니다. 주님 다시는 당신께서 친히 말씀해 달라고 기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을 내 친구 태오의 장난을 통하여 분명히 들었습니다. 태오를 통해 당신은 진정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만족하며 내일 아침 미련 없이 이 한 몸을 당신께 바치렵니다.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n앙뚜완의 신앙에서 우러나온 이 심각한 행동을 보며 나도 역시 심각해졌다. 그는 내 장난의 말을 주님의 진정한 말씀으로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옛날 예수님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던 마리아 막달라처럼 마치 주님의 발인 양 내 발에 입을 맞추고 있는 앙뚜완의 행동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바로 신앙이구나! 하고 직감하며 나도 엎드려 그의 두 발에 정성을 다하여 입을 맞추었다.\n우리 둘은 기뻤다. 더 이상 주님께 요구할 것도, 바랄 것도, 의심할 것도 없었다. 앙뚜완은 나의 장난을 통하여, 또 나는 그의 단순하고 경건한 신앙을 통하여 우리 둘은 주님께서 우리 둘을 사제직으로 부르시는 말씀을 분명히 들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던 고민과 눈물과 고독 속에, 심지어는 반항과 분노 속에 애원하던 기도의 대답을 우리는 확실히 들었던 것이다. 우리 둘은 오랜 동안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벅차 엉부라쓰 했다. 그리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피 끓는 이 청춘과 이 한 몸을 정말로 미련 없이 주님께 바칠 것을 우리는 서로 결심했다.\n험한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온 시냇물이 이제 평탄한 물흐름이 되어 흐르듯이 내 생애도 이제 여기에 이르러 겨우 안정된 자리를 잡게끔 되었지만 여기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나도 꽤 험한 산골짜기를 돌고 돌지 않을 수 없었다.\n돼지에게는 돼지의 사건만이 생긴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사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신성과 수성의 양면성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나 역시, 내 생애의 역사도 이 틈바구니에서 고민한 싹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n내일은 차부제성품(次副祭聖品)의 날이다. 이것은 신부(神父)가 되기 위하여 받는 일곱 개의 계단 중 다섯 번째의 계단으로서 이 품을 받는 사람은 앞으로 동정(童貞)을 지킬 것과 성무일과(聖務日課)를 매일 읽는 두 가지 임무를 갖는 것을 뜻한다.\n비록 그것이 평범한 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신성과 수성의 모순된, 당착된, 그리고 괴로움과 슬픔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n토요일 아침, 날씨는 맑았다. 우리 신학생 전원은 버스로 낭씨 대주교좌 성당으로 갔다. 그 넓은 성당 안은 삭발례로부터 신품성사까지 받게 되는 신학생들의 가족과 친지들로 이미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n나는 아무에게도 내가 부제품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쿠에상 댁도, 로마이에 댁도, 에그랑 장군 댁도, 그렁꼴라 댁도, 그 외 친지 몇 사람에게도 나는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축하 인사해 주는 사람은 한 분도 없었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n신품성사와 부제품을 받게 되는 우리들은 학장 신부님의 호명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 제대 앞으로 불려 나갔다. 신부들의 사명과 부제들의 의무에 대한 주교님의 자상한 훈시가 있었다. 그리고 주교님께서는 이 사명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하느님께 맹세할 수 있겠는가를 우리에게 물으셨다. 우리 모두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서며 ‘압숨’ 이라는 라틴어로 우리의 맹세를 서약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는 제대 앞에 몸을 눕히고 양팔을 겹쳐 머리를 거기에 얹었다. 우리는 이 예식을 통해 세속적 삶과 행복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께 이 한 몸을 바치며, 인류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갈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영적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이 예절을 통해 주님의 영원한 사제직에 참여한 것이다. 그때 성가대의 장엄하고 구슬픈 성인열품도문과 주님께 각별한 은혜를 간청하는 기도송인 그레고리안 성가가 오래 오래 울려 퍼졌다.\n제대 앞 붉은 주단 위에 엎드려 있는 우리들은 인류 구원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 뒤에 앉아 이 예식을 참례하고 있는 서품자들의 부모, 형제, 친지, 어쩌면 애인들도 하느님과 인류 구원을 위한 사랑의 희생물로 우리를 바치고 있었다.\n그때 나는 내 부모님을 생각했다. 이미 주님 곁에 계시는 부모님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분들이 살아 계셨더라면 오늘 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실까…. 천상 주님의 곁에서 그분들은 이 서품식 예절을 지켜 보고 계시며,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계실 것이다.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그분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없었던들 오늘 나는 부제로 서품 되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n“아버지, 내가 고향과 아버지 곁을 떠나던 날 아침,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세속적인 명예도, 지위도, 재산도 남겨 줄 것이 없다고 쓸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세속적인 영예나 재산 대신 나 자신 구원의 길잡이가 될 신앙을 나에게 유산처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세속적인 출세나 명예에 무능하셨던 아버지를 얼마쯤은 섭섭히 여기며 한편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지금 나는 신앙인으로서의 당신의 위대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빛인 신앙의 참뜻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내 사제의 길을 계속 밝혀 줄 것이며 아버지께 바치는 내 효행(孝行)으로 이 신앙의 빛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지금 이 시간, 당신께 드려야 할 찬사로 내 마음은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정녕 내 구원의 길잡이였습니다. 내 어린 마음 안에 뿌려 놓고 가신 당신의 사랑의 씨앗은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는 했으나 오늘 부제품이라는 하나의 자그마한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태오야, 나 항상 너와 함께 있으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 나에게 하신 이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 없이 변치 않을 당신의 사랑을 나에게 회상시켜 줄 것입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아들 됨을 나는 영원히 자랑과 보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의 나의 이 영광을 두 분에게 바칩니다.”\n형님들, 누님들 생각도 났다. 북한 저 붉은 땅에서 살아 계시면서도 이 동생이 오늘 부제로 서품 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계시는 그분들! 그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아직도 살아 계실까, 혹은 돌아가셨을까? “주님, 영세성사를 통해 받은 그분들의 신앙을 보호해 주소서. 그리하여 신앙의 자유마저 빼앗겼을 저 북한 땅에서나마 당신을 향한 따뜻한 마음만이라도 간직하게 하소서. 그리고 사제생활을 통하여 당신께 바칠 내 희생이 그분들에게도 구원의 빛이 되게 하소서.”\n자살해 버린 셋째 형님에 대한 회상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 때는 수재라고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형님! 정치와 혁명을 신앙처럼 섬기며 살다가 한국이라는 모순된 정치 상황과 현실 조건에 부딪쳐 결국 자살해 버리고 만 형님의 운명! 형님을 향한 눈물이 수 없이 흘러 내렸다.\n“주님, 지금 흐르는 내 눈물을 당신께 바치오니 당신의 자비로운 은혜를 내 형님의 영혼에 베풀어 주소서. 당신께서 은혜롭게 주신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렸을지언정, 형님께서 생전에 행하신 선행(善行)을 살펴 보시와 최후 심판의 벌을 면하게 하소서.”\n그 많은 조카들! 이제는 이름마저 모르는 조카들도 있으리라! 저 북녘 땅에서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의 신앙은? 내가 이 한 몸을 바치며 섬겨 오고 앞으로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섬겨 갈 천주교라는 이 종교를 인류의 적으로 교육받고 또 이 종교를 거슬러 싸울 각오까지 되어있는 조카들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의 다른 6.25 전쟁이 별안간 상상되었다. 삼촌과 조카들의 맞서 총질하게 될 우리의 운명! “주님, 내 조카들이 설사 당신의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해도 그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오니 저들의 행위를 용서해 주소서!”\n저 멀리 두고 온 내 조국과 민족! 나는 전쟁 속에서 내 조국과 민족을 발견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된 도시와 부락에서, 끊어진 철교에서, 포격을 맞아 멍들어 버린 산야(山野)에서, 또 전투를 하며 바라다보던 창백한 달빛으로 덮인 밤 하늘과 포연(砲煙) 속에 피어 있던 한 포기 들국화에서 나는 내 조국을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 빗발치는 포탄 속에 수 없이 쓰러져 간 내 전우들과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에서, 상처로 신음하던 내 전우들의 고통 속에서, 그들의 갈증에서, 그들의 고독에서, 그리고 꼬리를 물던 그 피난민들의 행렬에서, 그들의 추위와 배고픔에서, 미군부대 주위를 서성거리며 생활 밑천을 찾아 헤매는 우리 자매들의 모습에서, 수많은 전쟁 고아들과 전쟁 과부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 민족을 발견했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n“주님, 전쟁 중에 바쳐진 그 수많은 남.북한 동포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 남.북한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이념상의 견해 차이를 초월해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며 공존하는 가운데 우리 남.북한 민족의 공동선인 조국 통일을 평화롭게 이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성과 양심을 진정 밝혀 주소서. 주님, 미약한 내 이 한 몸도 내 조국의 평화와 내 민족의 행복을 위해 바치나이다.”\n“전쟁 중에 죽어 간 그 많은 전우들! 특히 우 수병, 오진 분대장, 진섭이, 윤소위…. <그래 진섭아, 지금 나는 주님께 이 한 몸을 바치고 있다. 나 대신 죽어간 너의 그 뜨거운 우정 속에 네가 말한 <대신>이라는 십자가의 사랑의 진리를 지금 나는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있다. 나를 대신한 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내 주님의 사도답게 성실히 살아가리라.”\n숙! 한 때 나에게 인생의 끝 없는 꿈과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던 숙! 나의 사제 성소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주님께 제물처럼 바친 숙은 한 마디로 용감하고 훌륭했었다. 숙은 현명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멋있는 여자였다. 한 때 숙과 나를 합쳐 가정을 이루고 기다리고 기다림을 받으며 또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내 인생을 살고 싶어하던 나… 숙의 이해와 용기와 너그러운 희생의 신앙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숙이 한없이 고마웠다.\n“주님, 숙의 가정을 당신의 사랑과 평화로 항상 보호해 주시고 가족 개개인의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보살펴 주소서. 그리고 주님, 나는 사제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나이다. 주님, 숙이 행복할 때 내가 행복할 것이고, 그녀가 불행해진다면 나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주여, 숙의 행복을 끝내 보호하시고 지켜 주소서.”\n현! 전쟁 중 한때 불행했던 현….. 전쟁과 함께 고향과 부모 형제를 한꺼번에 잃은 그녀는 조국을 아주 떠나 버렸다. 미국에서 외롭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현도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여인이다. 현은 나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늘 지니고 있었다. 이 동정도, 이 존경과 감사도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었으리라.\n“주님, 전쟁이 맺어 준 우리 서로의 인연 속에 싹이 튼 현의 신앙을 보살펴 주소서. 그리고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 주시고, 당신을 향한 신앙 속에서 삶의 의지와 행복을 찾게 하소서.”\n한국에 있는 여러 친구들, 특히 상이군인 훈이… 오늘도 그는 명동 뒷골목 왕초로서 그 쇠갈고리 손을 유일한 생활 밑천으로 삼고 살아 가고 있겠지…. 영민이와 선희도 생각이 났다. 전쟁의 무덤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송이들!\n그리고 쟌느! 순진하고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쟌느! 그러나 요즈음은 쓸쓸하고 외로이 마음의 고통을 지니고 있을 쟌느…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위해 한 때 고독했었지만 서로의 고독 속에 서로의 구원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와 섭리가 아니겠는가?…..\n“주님, 쟌느로 하여금 인생을 밝게 바라보게 하시고 지혜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찾아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자기 출생의 비밀이 초래한 인간적 비애 속에 인생을 비관하며 수도성소(수도성소)를 생각하고 있는 쟌느에게 주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바를 그녀의 기도 안에 한 말씀만 속삭여 주소서.”\n끝 없는 감사의 기도였다. 그 사이에 성인열품도문의 성가도 끝났다. 우리는 일어나 다음 예절 순서를 기다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가족들의 좌석에서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의 뒤를 이어 인류 구원을 위한 제물로 청춘과 이 한 몸을 바친 우리들의 이 영광을 위해 그들은 수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 왔으리라….. 그러나 젊고 젊은 아들이, 형이, 동생이, 오빠가 어쩌면 애인이 인류 구원의 제물로 봉헌되는 이 예절 광경을 보고 그들은 신앙상의 감격과 기쁨도 느꼈겠지만 거기에는 인간적인 동정과 그 어떤 슬픔도 또한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 거센 세파에서 홀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신세를 걱정도 했으리라…… 울음 소리는 여기 저기서 계속 들려왔다.\n내 동료들의 표정, 그것은 전쟁 중 수 없는 난관 속에 적의 고지를 점령했을 때 느끼던 허탈감과 흡사했다. 여러 동료들의 눈에도 눈물이 아직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이 감격도, 기쁨도 시간 속에 잠들고 며칠 후 우리의 생활은 이 전과 같이 평범해지리라… 하지만 오늘의 이 축복과 이 자리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왔던가! 때로는 밤을 새우며 암흑 같은 회의 속에 빠져 방황하기도 했고 또 끈질기게 우리를 유혹하는 세속의 미련과도 치열한 영적 투쟁을 되풀이해 왔었다. 그런가 하면 사제직에 대한 두려움과 신부들의 독신제도를 제정한 교회에 대한 불만 속에 주님께 반항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우리는 부제품을 받게 될 오늘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세월의 흐름이 두렵기도 했었다. 그래, 지내 놓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 감격 속에 얼굴은 상기되었으나 마음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약간의 의로운 감정도 스며들었으나 그것은 무엇을 아쉬워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품 예식은 오전 11시에 끝났다. 엄숙하고 숙연하던 성당 안은 그 순간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환영하는 역전 광장처럼 환성의 도가니로 변해 버렸다. 환호성과 포옹과 꽃다발이 뒤범벅이 되어 꼭 무슨 축제날 같은 들뜬 분위기였다. 아무도 기다릴 사람 없고 기다려 주는 사람 없는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몇 명의 동료 신학생 가족이 지나가는 길에 나를 환영해 주곤 했다. 혼잡한 군중 사이를 뚫고 나는 성당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태오!” 하고 나를 부르는 낯익은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쟌느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쟌느!” 하며 주위 사람들이 나를 돌아다 볼 정도의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쟌느는 내 품으로 뛰어 왔고 나는 힘껏 그녀를 포옹하였다. 오늘은 누구나 하고 포옹하고 축복받는 날이니까…\n쟌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말 없이 내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부끄러워서인지 혹은 기쁨 때문인지 웃으며 한 번 다시 내 품에 안겼다. 잠시 후 쟌느가 입을 열었다.\n“하여튼 너의 적극적인 성의에 진심으로 감사해. 사실 너에게만 연락을 보내고 싶었지만 네 대학졸업 관계 등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그만 두었지. 참 쟌느, 너 이번에 대학 졸업했지?”\n“그런데 말이야 태오, 이제는 그렇게 살아 갈 필요가 없지 않아? 너는 기쁠 때도 혼자 있고 싶어하고, 혼자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별나게 살아 가려고 하지마. 물론 그것이 네 성격이긴 하지만 말이야.”\n“너희들 신부들에게는 그러한 별난 고집이 있는 것 같애. 내 외삼촌 신부도 그 전에 그랬어. 그러나 생각해 봐! 서로의 기쁨을 이해하고 서로 돕고, 서로 웃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좋은 일을 축하해 주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이 아니겠어?”\n“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태오, 아까 나는 참으로 감격했어. 주님께 바친 너희들의 서품자들의 의지적인 결단과 너그러운 용기를 다시 한 번 우러러 보았어. 그까짓 신부가 되는 것이 무엇이 자랑스러우며, 자기들이 좋아서 신부가 되려는 것이 뭐 그리 존경스러울까 하고 나는 이전에 생각했었어. 그런데 오늘 이 장엄한 예절을 통해 제물처럼 청춘과 몸을 아낌 없이 송두리째 바치는 너희들이 정말이지 훌륭하고 존경스러워 보였어. 아가 성인열품도문을 노래할 때 붉은 주단 위에 엎드려 있는 너희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주단에서 불길 같은 것이 활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어. 그때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 강력히 느껴지는 게 하나 있었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차츰차츰 명확해지는 것을 깨달았어. 하여튼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했어.”\n“아, 참 쟌느, 작년 여름방학 때 네가 나에게 부탁한 기도 있지? 매일 그 기도를 잊지 않고 바쳐 왔지만 특히 오늘 서품식 예절 때 나는 주님께 쟌느의 행복을 위해 그분이 바라시는 바를 너의 기도 속에서 한 말씀만 속삭여 주소서 하고 기도했어.”\n“세실, 미안해. 그만 너를 잊고 있었구나. 세실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야. 이번에 같이 대학도 졸업했어. 그리고 세실도 너처럼 아주 크고 너그럽고 거룩한 뜻을 갖고 있는 애야. 얼마 있으면 세실도 주님께 자기의 청춘과 몸을 바치는 수녀가 될 거야. 태오, 세실, 서로 인사해요.”\n쟌느는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세실은 보는 순간 한 여인의 순결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내 마음 안에 느끼게 했다. 그녀의 밝고 깨끗한 표정과 맑은 눈이 퍽 인상적이었다. 조용한 모습에 깊이를 느끼게 하며 잔잔한 미소 속에 선한 마음과 강한 의지를 엿보이게 했다. 세실의 그러한 모습 전체가 벌써 오랜 세월 수도생활을 해온 한 수녀의 고결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세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n바로 그때 학장 신부님이 우리 곁을 지나가시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분은 기쁜 얼굴로 웃으시며 쟌느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학장 신부님께 쟌느와 세실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미소 지으시면서,\n그리고 그분은 다시 악수를 나누시고 우리를 떠났다. 쟌느는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내게 그 장미꽃을 내밀었다. 나는 그 꽃을 받으며 감사의 뜻으로 쟌느의 뺨에 가볍게 엉부라쓰 했다.\n우리 셋은 성당을 나왔다. 쟌느가 자기 자동차로 나를 신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후 1시에 있는 서품 축하 그랑 데져네(점심잔치)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았다. 잠시 후 쟌느가 말을 시작했다.\n“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어. 내년에 신부로 서품되고 주교님께서 즉시 귀국하라면 순명 해야 할 내 입장 아냐? 그리고 아직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도밍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캐나다 도밍고회 관구로 갈 것 같애. 그래서 이번 방학이 이럭저럭 나에게는 프랑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이 될 것 같애. 그래서 이번 방학 중에 아르쓰의 성인 죤마리 비안네 신부의 고향과 루르드의 성모님을 찾아보고 싶어. 그리고 제라르메르와 쌍삐에르 드 키부렁에도 다녀와야겠고…”\n“루르드 성지(聖地)를 순례하겠다는 것 말이야. 세실과 나도 이버 ㄴ여름방학 중에 루르드를 꼭 다녀오기로 했어. 부모님도 그렇게 하고 싶어하시고…. 그래서 부모님이 이번 7월 중 우리들이 원하는 시기에 루르드를 같이 다녀 보자고 약속하셨어. 태오, 우리 다 함께 같이 가! 7월 중에는 아무 때라도 좋으니 네가 원하는 시기에 같이 갈 수 있어.”\n쟌느는 내 팔을 붙잡으며 어린애처럼 졸라댔다. 세실은 항상 조용한 그 표정으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잔잔히 쟌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도 무슈 그렁꼴라 부부와 함께 다같이 루르드 성지를 방문하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다.\n“좋아, 쟌느! 우리 같이 성지 순례를 하기로 해. 그럼 언제쯤이면 좋을까? 나는 7월 중 아무 때도 좋아. 다만 앞으로 약 1주일 간 신학교에 남아 해야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n“그렇다면 더욱 감사한 일이고…. 그러나 그 축복은 나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 너에 대한 주님의 너그러우신 보답일 거야. 진정 너는 훌륭해. 주님께 너 자신을 제물처럼 바치고 제대에서 내려오는 네 모습을 모며 나는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어. 네가 바친 그러한 너그럽고 용감한 희생만이 이 세상을 구제하는 힘이 될 거야. 그런데 그때 너는 왜 웃으면서 제대에서 내려왔지? 세실이 나보고 <저것 좀 봐, 쟌느, 무슈 태오의 저 모습을 좀 봐!> 하고 내 옆구리를 쿡 찌르기에 후딱 눈물을 닦고 너를 보니까 네 얼굴만 보름달처럼 환했고, 도 정말 싱글벙글 웃으면서 제대를 내려오지 않겠어. 다른 부제님들의 표정은 긴장되고 약간 우울해 보이는데… 네 마음 속에 뭔가 있었지?”\n그래서 나는 피정신공 기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녀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늦은 밤중에 앙뚜완 죤져그와 있었던 일도 빠짐 없이 말해 주었다. 그녀들은 내 말을 들으며 너무 웃어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n“하여튼 태오, 넌 참으로 별나기도 해. 아니, 글쎄 예수님께 하소연하러 갔다가 주님의 입장이 되다니… 그것 또한 멋있는 일 아니겠어? 그런 일들도 신앙이 무엇인지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거야. 그리고 앙뚜완 죤져그 부제님과 너의 그 단순성과 순수성이 참 부럽다. 그러한 사람에게만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들려 주실 거야. 세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n“그러게 말이야. 나는 태오 부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처음엔 너무 우스워서 눈물을 흘렸으나 나중에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왔어. 나도 두 분의 그 순수한 사건에서 신앙의 뜻을 발견했어요. 이론적으로 설명 안 되는 신앙의 의미를 한 번 다시 깨달았어요. 나도 내 성소 문제에 대해 주님께 한 말씀만 해 달라고 가끔 기도하여 왔으나 이제부터는 그 기도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진복자(眞福者)로다> 하고 토마 사도에게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진정 신앙이 아니겠어요? 하여튼 그 감동적인 체험담을 들려 주신 태오 부제님, 감사해요. 나도 쟌느처럼 부제님의 그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이 부러워요.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주님께 바치신 그 너그러운 스스로의 제헌 속에 나도 내 성소의 뜻을 굳혔어요. 여러분의 그런 희생적 행위는 주님의 부르심을 찾고 있는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어요. 감사해요, 태오 부제님!”\n7월 중순, 그렁꼴라 부부와 쟌느와 세실,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는 루르드 성지 순례를 위해 제라르메르를 떠났다. 보누아는 라옹에다뿌 본당 소년단 캠핑에 참가하러 떠나고 없었다. 2일 간의 자동차 여행 끝에 우리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때마침 세계 환자 순례 주간이라 루르드는 세계 각처에서 온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다.\n성지 광장 입구에까지 줄지어 널려 있는 상점들과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소리치고 있는 상인들의 광경에서 나는 언짢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넓은 성지 광장을 오고 가는 수만 명의 순례자들의 조용하고 건전한 모습에서 나는 크나큰 위안과 감명과 신앙의 뜻과 이 뜻 안에 살아 있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특히 훠터이 룰렁 (바퀴가 달린 환자 운반용 의자)에 앉아 있는 수천 명 환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육체적인 병고와 불구된 몸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정신적 갈등을 초월하는 의지와 내적 평화의 힘을 볼 수 있었다. 기도하고 노래하는 그들의 맑은 음성, 조금도 비굴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밝은 표정, 주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로 충만 된 그들의 경건한 태도, 마치 그들은 수도자와도 같았다.\n쟌느와 세실과 나는 즉시 환자들을 돌봐 주는 봉사대에 가입했다. 우리 봉사대원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환자들의 아침 화장과 식사를 보살펴 줬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있는 환자들을 위한 오락 시간에 우리는 노래를 불렀고, 춤도 추었으며, 또 즉흥적인 연극도 했다. 그리고 11시 미사에 맞도록 우리는 환자들을 훠터이 룰렁으로 호텔에서 루르드 광장까지 운반했다. 그들과 함께 미사 참례하고 오후 12시 30분에는 환자들의 점심 식사를 도왔다. 식사 후 환자들의 ‘씨에스드'(낮잠) 시간에 우리 봉사대원들은 친교를 겸한 회합을 가졌다. 오후 5시에 있는 성체 강복을 위해 우리는 환자들을 다시 루르드 광장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6시 30분에는 저녁 식사가 있었고, 밤 8시에 성모 마리아를 찬송하는 촛불 행렬 기도에 우리는 환자들과 함께 참례했다. 밤 11시에 고달픈 하루의 일이 끝난다.\n봉사! <나는 봉사하러 왔지, 봉사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봉사대원 각자는 체험했다. 봉사하되 사심(私心) 이 없음은 물로 그 어떤 계산이나 기대를 전혀 전제하지 않는 그저 주기만 하는, 순수한, 땀 흘리는 사랑을 우리는 체험했다. 사랑! 그것은 봉사하는 보람이기도 했고, 남의 기쁨을 아껴 주는 의지였으며, 남의 신경질을 참아 주는 너그러운 아량인 동시에 또한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자상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그것은 또한 다정한 말이기도 했고, 위선이 없는 순수한 미소이기도 했다.\n<환자들을 예수님처럼 대우하라>환자 순례 주간 지도 신부님의 이 말씀에 따라 우리 봉사대원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환자들을 예수님처럼 섬겼다. 마태오복음 25장에 있는 ,병들었을 때에 돌봐 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여러분의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실지로 이들 환자 안에 살아 계신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믿으며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우리가 보살펴 주고 있는 환자가 진정 예수님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 하나에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환자들을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마냥 보람되고 즐겁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동질화(同質化) 시켜 주신 예수님께 진정 감사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들 환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삶 주변에서 만나는 형제들을 통해 언제든지 또 어디에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을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생활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임을 그때 나는 깊이 체험했다.\n오랜 세월 동안 겪어온 육체적인 병고와 불구된 불편한 몸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얼룩진 그들의 모습이었으나 바로 거기에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다시 발견했었다. 즉 인간의 사랑에 목말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병고로 시달리는 사람 곁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 고통 그 자체는 악이지만 바로 이 악이 신앙상의 선이 될 수 있다는 고통의 신비성 안에 환자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안겨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 사랑의 희생이며, 희생이 곧 사랑임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그런가 하면 <내 십자가는 달고 가벼우니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라고 사랑의 신비성과 자발성을 깨우쳐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 이처럼 다양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때 거기서 나는 발견했었다.\n“태오 부제님, 고혈압 증세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 벌써 5년이 됩니다. 남편과 자녀들에게 짐스러운 내 이 불구의 몸을 저주하고 한탄하며 천주님을 원망했었지요. 그리고 자살도 여러 번 시도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모든 것이 천주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이 은혜 안에 나는 이러한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와 교회와 이웃 형제들에게 내 나름대로 봉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불구의 몸으로 남에게 육체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으나 영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앙상의 신념 말입니다. 기도 안에서 천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나는 내 가족과 이웃과 교회를 사랑합니다. 남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이 부자유스러운 몸을 통해 나는 종교적인 자유와, 정신적인 자유와 기타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빼앗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길고 지루한 내 시간 전체를 바칩니다. 반신불수가 된 이래 내가 겪고 있는 영육 간의 고독을 나는 신부 수녀님들을 위해 바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폐병으로 허약해진 몸으로 성당을 오고 가던 그 발걸음을, 외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교 신부님들의 피곤한 발걸음을 위해 바치셨듯이 나도 당신의 손에 의해 내 몸을 실은 이 훠터이 룰렁이 앞으로 전진하듯 우리 교회가 주님의 뜻 안에 나날이 전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진정한 감사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보살펴 주는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 환자 주간을 설정하고 우리들 환자들로 하여금 이 성지를 방문하며 마음에 평화라는 이 크나큰 주님의 은혜를 받게 해 주는 교회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마에 땀 흘리며 우리 환자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여러분들에 대한 고마움, 이러한 감사로움이 내 마음에 충만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감사라는 감정이 남을 위해 기도하는 봉사를 즐겁게 바칠 수 있게 하며 내 마음 안에 평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이웃 형제들의 영혼 구령과 교회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을 주님께 기꺼이 바치고 있습니다. 태오 부제님, 나는 진정 행복합니다.”\n루르드! 루르드는 봉사라는 사랑의 성지요, 또한 감사라는 은혜의 성지이다. 그리고 이 사랑과 이 감사가 조화된 분위기 속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기도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루르드는 이곳을 순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사랑과 감사와 찬미를 생활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한 형제 되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찬송하게 하는 일치와 평화와 사랑과 행복의 성지이다. 오늘의 루르드의 기적! 그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사랑과 일체감과 평화와 행복감을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어 주는 그러한 기적이다.\n환자들을 위한 봉사 주간에 쟌느는 자기 성격대로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서로가 바빠 우리 둘이는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나, 가끔 그녀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를 찾아와 일하며 느낀 감상을 몇 마디 말하고 돌아갔다. 쟌느는 오락 시간에 노래와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환자들을 곧잘 웃기기도 했다. 그녀는 환자들 뿐만 아니라 봉사대원들의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일하는 보람 속에 행복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내 마음도 즐거웠다.\n세실은 쟌느와는 아주 달랐다. 항상 조용한 자기 표정처럼 그녀는 봉사하는 태도도 마치 기도 드리듯 조용했다. 봉사대의 공동생활에 있어서 궂은 일을 혼자 도맡아 하면서도 자기 행동을 남의 눈에 띄게 하지 않는 신중성과 겸손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러나 마치 향기처럼 그녀의 봉사하는 행동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의 사랑은 곳곳에 충만 되어 있었다. 그녀는 벌써 훌륭한 수도자였다. 밝고, 명랑하고, 정열적인 쟌느의 웃음에 비해 세실은 항상 조용하고, 은은하고 고운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고 있었다.\n우리 셋이 봉사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안 그렁꼴라 부부는 스페인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작년의 비극을 완전히 잊은 듯 그분들은 아주 명랑했고 행복해 보였다. 그분들도 환자주간의 마지막 날을 우리와 같이 봉사하며 지냈다.\n환자 순례 주간 행사가 끝나는 날 밤, 이 행사를 주관한 본부에서 우리들 봉사대원을 위해 일종의 파티를 베풀어 주었다. 환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모여왔듯이 봉사대원들의 국적도 다양했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피부의 색깔과 언어의 차이와 문화와 국경을 초월한 신앙 안에 우리는 한 형제 되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때 나는 이러한 신앙만이, 이 신앙 안에 서로 공감하는 사람들만이 미움과 이기주의와 정치적 의견 차이로 갈라져 대립된 이 인류에게 평화라는 희망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과 사랑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를 서슴지 않으리라고 나는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다짐했다.\n송별회를 겸한 파티가 끝나자 쟌느는 산보를 제의했다. 쟌느와 세실과 나, 이렇게 셋이 루르드에 온 이래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밤 12시가 가까웠으나 루르드 광장에는 아직도 많은 순례자들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 셋은 광장 변두리 잔디밭을 찾아서 앉았다. 그때 쟌느가 말을 시작했다.\n“작년 알베르 아버지 사건 이후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어. 그래서 너에게 기도까지 부탁한 일이 있었지만…. 요즘 나는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그 생각의 답을 얼마쯤은 듣고 있었어. 즉 알베르 아버지처럼 마약 중독자가 아니면 정신병자가 되어 이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이 몸을 바칠 수 있는 수녀 간호원이 되기를 지금 생각 중이야. 아직 이 문제 대해 부모님에게 상의한 일은 없지만… 태오, 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n“성소는 제 삼자가 판단할 수 없는 천주님과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야. 하지만 쟌느, 네 성소에 대한 내 의견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수녀가 되는 길만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봉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난 생각해.”\n“물론 봉사의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의 길을 나는 택하고 싶어. 너나 세실처럼 온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바치는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어. 이번 환자 주간을 통해서 나는 나눔이 없는 봉사의 뜻을 얼마쯤 깨닫고 체험했어. 나는 이 체험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 듯했으며, 이 부르심의 방향을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태오,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인간적은 감정을 초월해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웃 형제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같이 질 수 있는 한 동지의 입장에서 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자는 거야.”\n그때 맑은 달빛에 비친 쟌느의 얼굴은 너무도 진지했다. 그러나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를 말하는 그녀의 말 속에서 나는 그녀의 장래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쟌느는 나보고 인간적인 감정을 초월하라고 말했지만 이 인간적인 감정 없이 나는 쟌느를 대할 수는 없었다.\n“쟌느, 나는 너의 신념을 존중해. 그리고 나눔이 없는 완전한 봉사를 지향하고 있는 너의 의도를 나는 축복해. 그러나 너의 벗으로서 또 신부가 될 내 현재의 입장이지만 너와 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네 문제에 대해 말할 수는 없어. 물론 인간적인 우정의 이름으로 네가 신중히 생각하고 있는 성소 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으나 남의 일처럼 그 문제를 가볍게 취급할 수도 없어. 어떻든 성소 문제는 너 자신이 기구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확실히 듣고 너 홀로 결정지어야 하는 고독한 문제야. 너의 성소 문제를 위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너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위한 주님의 진정한 뜻이 어디 있는지를 너로 하여금 분명히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 뿐이야. 하지만 쟌느, 나는 네가 한 남자의 사랑스러운 아내로서 또 행복한 가정의 주부로서 이웃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평범한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이 심정이 너를 위한 나의 진정한 소원이야.”\n“나를 위한 너의 인간적인 성실한 우정 감사해. 결국 기구만이 내 성소 문제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이구나. 주님의 뜻 안에 우리 서로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구하자는 뜻이구나. 너의 뜻 잘 알겠어. 하지만 태오, 수녀 성소를 생각하는 내 뜻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너는 기구해 줘야 돼.”\n“물론! 그러나 나는 네 뜻이 주님의 뜻에 맞도록 이 아니라, 저 영원으로부터 너를 위해 주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뜻을 네가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구할 거야. 다시 말하면 너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주님께서 자비롭게 바라시고 계시는 뜻을 네가 환영하고 겸손 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는 열심히 기구할 거야.”\n“쟌느, 나도 태오 부제님의 의견에 동감이야. 기도해! 기도만이 우리 서로의 성소의 길을 밝혀 줄 거야. 그리고 내가 갈멜 수녀원을 생각해 온지가 이미 5년이 되었고, 이제는 내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있으나,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내가 자유로이 택한 이러한 수도의 길을 너도 같이 가자고 는 말 못하겠어. 왜냐하면 천주님께서 너에게 바라시는 것과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쟌느, 기도해! 네 성소 문제를 성급히 결정하지 말고 시간을 보내면서 계속 기도해. 나도 태오 부제님의 기도에 내 기도를 합쳐 너를 위해 바칠 거야.”\n“그럼 태오, 세실, 오늘밤 나를 위해 루르드의 성모님께 기도 드려 줄 수 있겠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수녀 성소가 진정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인지를 나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야.”\n우리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동굴 앞으로 갔다. 밤 1시가 넘어 가고 있으나 거기에는 이직도 백여 명의 순례자들이 조용히 기도 드리고 있었다. 우리도 성모상 앞에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오래 오래 기도 드렸다. 그때 나는 차가운 밤 공기를 느꼈다.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있는 쟌느의 어깨 위에 내 잠바를 걸쳐 줄 때 촛불에 비친 그녀의 두 눈에는 물기가 빛나고 있었다.\n루르드 성지 순례를 끝낸 다음 나는 제라르메르를 떠나 쌍삐에르 드 키부렁에 왔다. 항상 나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 환영해 주는 쿠에상 댁과 에그랑 장군댁! 그 동안 에그랑 장군은 파리에 있는 육군대학교 부교장으로 전임되어 근무하고 있었다.\n이번에도 러 아모 별장에는 쿠에상 부부의 친구 가족이 바캉스를 지내러 와 있었다. 친구와 사교를 좋아하는 마담 쿠에상은 여름철마다 여러 친구 가정을 별장에 초청해 즐겁고 부산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있는 수와레(밤놀이)에 참석하며 나는 이번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제로 서품 된 나를 이전보다 더 정중히 대해 주는 듯했다.\n나를 제일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은 역시 비에브였다. 이번에도 우리는 하루 한 번씩 같이 해안가를 산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전처럼 내가 비에브에게 동화를 들려 주며 프랑스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춘기에 들어선 그녀의 인생 문제와 신앙 문제 등에 관한 심각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자기 연령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비에브는 인간 존재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벌써 느끼기 시작한 듯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소녀다운 순진성이 보이고 있으나, 그녀의 태도와 대화는 너무도 어른스러웠다. 남달리 총명하고 관찰력과 비판력을 갖고 있는 비에브의 마음과 사고에는 갈등과 고민 없이 살 수 없는 인간 삶의 숙명적인 조건이 이미 뿌리박고 있었다. 그러나 비에브가 겪어야 할 이 갈등과 고민이라는 ‘마음의 아픔’ 이 그녀에게 절대로 크지 않기를 나는 주님께 진정 기도 드렸다.\n“나는 여태까지 주일미사를 빠진 일이 별로 없지만 신부님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었었어. 그런데 너를 알게 된 후부터 신부님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 아마도 그것은 네가 신부로서 걸어가야 할 생활이었기 때문인가 봐. 즉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이 너의 생활상의 동지인 신부들에게까지 내 마음을 쓰게 했는가 봐. 요즈음 빈번히 신문지상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러 저러한 유명한 신부들이 사제직을 떠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으레 너를 생각하게 되고,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을 통해 천주님께 바칠 수 있는 최선의 기도를 나는 드리고 있어.”\n비에브가 화제 중에 사용하는 단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그녀는 나에 대해 항상 ‘사랑’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관심과 우정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었다. 비에브가 사용하는 이 관심이라는 말에 나도 깊은 관심과 애착을 느꼈다. 사실 넓은 의미에 있어서 사랑은 관심의 표현이니까….\n“감사해, 태오! 그리고 말이야,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나의 눈에 비친 이 세상과 내 삶 안에 느낀 한 인간의 생활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이는데, 인간 삶이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해 살아가는 너희들 신부들은 정말이지 훌륭해. 나도 이제는 한 인간으로서 삶의 주변에서 느끼는 <마음의 아픔>을 받게 될 때마다 나는 너를 내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어. 그리고 네 안에서 나는 그러한 아픔을 이해하고 또 초월하는 힘을 얻기도 해. 그런 뜻에서 너는 벌써 내 삶을 비치는 길인 동시에 안내자가 되고 있어.”\n그때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이마에 이해와 우정과 감사의 표시로 키스를 해 줬다. 비에브는 아무 말 없이 내 손등에 키스를 하고 내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어둠이 갈려 오는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한참이나 우리는 말 없이 걸었다. 얼마 후 비에브는 또 말을 계속했다.\n“태오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며 소금입니다>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영세성사를 받은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복음이겠지. 그러나 내 생각에는 주님께서 신부님들을 위해 특별히 이 복음을 말씀하신 것 같다. 정말이지 썩기 쉬운 이 세상의 소금으로서 또 미움과 불의와 악의 어두움이 덮여 있는 이 세상의 구원의 빛으로서 신부님들은 주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야 할 거야.”\n“물론이고 말고! 그러한 뜻에서 우리 신부들은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증명하는 증인이 되어야 할 거야. 증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사건의 목격자로서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우리들 신부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 인간을 사랑하시고 가르쳐 주셨는가를 <목격>한 증인들이 되어야겠지! 그 뿐만 아니라 신부들은 생활을 통해 주님의 이 사랑과 이 진리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신부들은 네 말대로 주님의 제자다운 신부가 되어야 할 거야. 다시 말하면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사랑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되겠지.”\n“그래서 너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생명이 다하는 저 끝날까지 살아가는 영원한 사제가 되겠지. 이 과정에서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와 주던 씨레네의 시몬처럼 나도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과 존경을 기도로 묶어 너의 사제직 십자가를 도와 주고 싶어.”\n“감사해, 비에브! 물론 나는 주님의 영원한 사제로서 내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살아갈 거야. 그래서 나는 신부로 서품 되는 날 <너는 멜키세댁의 예를 따라 영원한 사제로다> 라는 주교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을 거야. 그리고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도운 것처럼 우리도 영원을 향한 이 삶의 과정에서 서로의 십자가를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될 거야.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여한 시몬의 행위, 그것은 바로 네가 말한 그 협조 정신에 대한 복음이었어. 서로의 구원을 위한 협조라는 이 복음은 가깝게는 너는 나를 위하고 나는 너를 위하고, 또 넓은 뜻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 형제들을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사랑이라는 십자가야.”\n“태오, 그리고 말이야, 너를 통해서 모든 신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나의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부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뿐이야. 그것은 바로 너야! <꼬마 왕자>(앙뚜완 드 쌍데취페리의 꼬마 왕자)에게는 단 한 포기의 장미꽃이 있듯이 말이야. 어느 날 꼬마 왕자가 이 지상에서 만난 그 많은 장미꽃이 자기가 두고 온 저 우주의 한 송이 장미꽃에 비교가 안 되던 것처럼, 이 세상에 신부님이 많이 계셔도 내가 관심을 갖는 신부는 너 한 사람 뿐이야.”\n“비에브, 나도 너와 같은 심정이야. 내가 신부로 살아가는 도상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너>라고 부르는 비에브는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너 하나 뿐이야. 비에브라고 부르는 너에 대한 내 관심과 우정은 내 마음 안에 독자적인 영원한 존재로 남아 있을 거야.”\n그 후 8월 말에 나는 스위스에 있는 친구 쉴링과 렌너 가정을 방문하고 또 마담 비부아 집도 방문했다. 이분들의 가정도 내 프랑스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글레르보에 있는 성 보누아 수도원을 찾아가 남은 방학을 쉬었다.\n그 해 성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세실은 예정대로 몽 뺄리에 있는 갈멜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때 그녀는 촛불이 그려져 있는 카드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을 써서 내게 보냈다. <주님의 영원한 사제가 되실 태오 부제님에게 이 촛불을 바치옵니다 세실 드림> 그날 나는 이 촛불의 카드를 내 <조국의 돌> 앞에 세워 놓고 세실을 위해 주님께 기도 드렸다. 세실이 보낸 이 촛불의 카드가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겠지만 그녀의 이 촛불을 나는 그녀의 수도생활을 위해 다시 바쳤다. 이 촛불처럼 스스로의 청춘을 태우며 기도와 희생을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代贖)의 제물로서 이 한 몸을 바치는 세실 수녀님에게 주님의 축복 있기를 진정 기도 드렸다.\n세실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자기의 수도 성소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어떠한 동기로서 그녀가 갈멜 수도원을 지망했는지 나는 모른다. 항상 조용하고 신비롭던 세실! 나는 그녀와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나 세실은 훌륭한 수녀가 되리라는 신념을 나는 갖고 있었다.\n쟌느는 세실을 몽 뺄리에 갈멜 수녀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신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쟌느는 스트라스부르크 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쟌느는 자기의 수녀 성소 문제를 이미 긍정적으로 결정짓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들의 반대 의사도 설득시켜 놓았지만 자기의 장래에 대해 염려하고 고민하고 슬퍼하는 부모님들의 표정이 단지 마음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녀가 되려는 쟌느의 장래를 나도 늘 염려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성소를 반대할 수는 없었다.\n그 다음 해, 그러니까 1963년 2월 보죠 지방에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쟌느는 무슈 알베르가 아직 살아 있는 쌍 디에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성 요셉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날 그녀는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계신 예수님 옆에 피와 땀으로 얼룩진 주님의 얼굴 모습이 박힌 수건을 들고 무릎 꿇고 있는 베로니카 성녀가 드려져 있는 카드와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 왔다.\n태오 부제님, 이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정했습니다. 또 하나의 베로니카가 되어 몸과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는 이 인류의 얼굴 모습의 한 부분을 기도와 봉사와 희생을 통해 씻어 주려 합니다.\n이 날을 맞이하기 전 태오 부제님을 한 번 다시 뵈옵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특히 오는 5월 6일로 결정된 부제님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태오 부제님, 당신을 위한 나의 이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수녀가 되려는 나로써 주님께 바칠 수 있는 첫 희생으로 바치옵니다. 나의 이 뜻을 부제님께서는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또한 부제님께서도 그렇게 원하고 계시리라 생각되옵니다\n태오 부제님, 우리 서로가 주님의 부르심에 자유로이 대답했고 선택한 이 성소의 길을 주님의 착실한 종답게 살아가며 이 인류를 위해 봉사합시다. 지난날 나에게 보여 주신 당신의 성실성과 우정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경솔했던 나의 모든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제님의 사제생활이 주님의 은혜 안에 충만 되기를 잊지 않고 기도 드리겠습니다.\n쟌느는 처음으로 나에게 경칭을 썼다. 쟌느의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어떠한 감정에서였는지 모르나 나는 울고 싶었다. 그렇게 되리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쟌느의 수녀원 입원 소식은 나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주님의 뜻으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 남아 평범한 여성의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n나의 도밍고 수도회 입회 문제도 결정지었다. 일본 전교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도밍고회 캐나다 관구의 입회 허가를 나는 받았다. 8월 4일 도밍고 성인 축일날 있을 착복식을 갖기 위해 수도회 지망자는 한 달 동안의 뽀스뒬라(수도회 지망자로서의 수련 기간)를 보내야 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6월 말까지 캐나다에 도착해야만 했다.\n낭씨 신학대학교는 관례에 따라 신부 서품식을 매년 학년 말에 시행했다. 나는 수도회 입회 준비 관계로 예정보다 앞당겨 서품식을 가질 것을 신학교 당국에 요청했다. 학교 당국에서는 낭씨 신학교 출신이며 지난 19세기 중엽에 월남에서 전교하다가 순교한 복자(福者) 아오스딩 셔미에르 신부님의 축일인 5월 6일을 나의 서품식 날로 정해 주었다. 이 서품식 전에 치러야 할 학년 말 시험과 신부 자격 시험 등으로 나는 부활절 방학을 전폐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다.\n서품식을 위한 피정신공을 앞둔 전날이었다. 내 영적 지도 신부인 쏘바져 신부님이 당신의 영적 제자인 죤마리 삐에롱과 미셀 쇼멍과 나를 자기 서재로 불렀다. 그리고 그분은 신부 생활의 열다섯 가지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생활규범을 말씀하셨다.\n“태오는 며칠 후 신품성사를 받을 거고, 죤마리와 미셀도 이 학년 말에 신부로 서품되기 때문에 나는 자네들에게 신부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 점을 말해 주려고 불렀네. 지난 20년 간 신부로 살아오면서 내가 체험한 신부로서의 생활규범을 자네들에게 영적 선물로 전해 주려 하네. 물론 내가 말하려는 이 생활규범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지만 자네들이 신부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네. 우선 보좌신부로서 지켜야 할 사항부터 말하겠네.\n첫째로, 본당신부에게 순종할 것. 교만은 원죄와 함께 죽음을 낳았으나 주님의 순명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 왔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교회의 권위와 이 권위가 요구하는 질서에 대한 순명에 뿌리를 박고 있네. 그런데 보좌신부로서 자네들의 순명은 본당신부에게 순명 하는 것부터 시작되네. 즉 본당신부라는 교회의 질서에 순명 함을 말하네. 본당신부도 인간이니 만큼 때로는 그릇된 사목행정과 방침을 고집할 수도 있겠으나, 그 방침이 그릇 되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네. 자네들이 앞으로 겪을 이 순명은 경우에 따라 크나큰 희생을 요구하는 십자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순명 하게. 바로 이 순명이 자네들의 신부생활에 절대로 필요한 겸손의 덕과 인내의 덕은 물론, 신부다운 인격을 수양시켜 줄 걸세.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순명은 의식적인 악의 공범을 말하는 비겁한 순명을 뜻하는 것은 아닐세.\n자네들이 신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아직 체험화되지 않은 순수한 이론상의 원칙에 불과하네. 이러한 순수 이론의 원칙과 경험상의 진리와는 경우에 따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법이야. 자네들의 새 신부다운 그 순수한 지식과 의욕과 야심에 비친 본당신부의 사목방침과 행동이 때로는 유치하고 그릇되게 보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처음부터 비판적은 태도는 절대로 금물이야. 남의 의도와 그가 하는 일을 충분히 숙고하고 이해하지 않고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신부 이전에 한 인간의 인격에 관한 문제야. 자네들에게 유치하고 잘 못되어 보이는 이러 저러한 일들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며 또 거기에는 자네들이 아직 모르는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래서 성급한 비판이나 경솔한 판단을 절대로 피하라는 말일세.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면 그 본당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살며 그 본당의 사목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비판을 삼가 할 것을 부탁하네. 비판은 흔히 경솔한 판단이 되며 또 비인격적인 행위가 됨을 명심하게.\n본당에 부임되면 많은 일들이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자네들의 새 신부다운 의욕은 자네들을 잠시도 쉬지 않게 만들 걸세. 그러나 분망한 일과 속에서도 기도하는 규칙적인 습관을 키워 나가게. 신학교에서 생활해 온 기도 규칙대로 생활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성무일과와 기도만은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갖고 바쳐야 되네. 신부라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 안에서 성무일과 기도를 바치라는 말일세. 이 기도 생활은 모든 신부들에게 공통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특히 보좌신부 때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확립시켜 놓지 않으면 일생 올바른 기도생활을 할 수 없을 걸세. 기도는 우리 신부들의 신심생활의 생명과 같은 것이야.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거듭 자네들에게 말하지만 신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본당 사목도 일종의 사업이지만, 신부는 사업가가 아니야. 신부로서의 자네들의 생활은 기도 안에서 체험한 <주님과의 만남>을 증명하는 신앙 생활임을 잊지 말게.\n자네들은 신학교에서 6년 간 시험 때마다 고생하며 많은 지식을 배웠지만, 이 지식은 마치 수학의 공식 같은 학문상의 원칙에 불과하다네. 이 공부를 응용해야 할 자네들의 사목(司牧)의 세계는 무한정하다네. 이 무한정한 세계 안에서 자네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도 미소한 것임을 깨닫고 실망도 할 거야.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공부를 계속해야 된다고 말하는 바일세. 사목상 필요한 잡지는 물론, 일간 신문도 읽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하루 한 시간 이상 전문적인 신학 서적을 읽는 습관을 가져야 하네. 신부는 생활을 통해 신앙 안에 살며 주님을 증거해야 되지만 신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네.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는 법이야. 이런 뜻에서 자네들에게 없는 지식을 신자들에게 준다는 것은 역설이야. 신부는 덕(德)과 지식을 겸비해야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n대부분의 경우, 새 신부들의 첫 번째 유혹은 물질적인 유혹일 거야. 본당신부의 텔레비전, 자동차, 스테레오 세트, 그 외에 여러 가지 물품들이 자네들에게 부럽게 보일 걸세.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이 하루 아침에 그분들에게 생긴 것이 아니야. 그분들도 한 때 자네들처럼 보좌신부로 살아간 사람들이야. 정도를 지나치고 분수를 넘는 모든 행위는 지혜롭지 못한 것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걸세. 그래서 처지에 맞는 생활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일세. 우리는 주님께서 살아가진 그 복음적 가난함을 항상 묵상하고 본받기로 해야 되네. <재물이 있는 곳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게 된다>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네. 그리고 돈과 여자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음도 경험상에 나타난 하나의 진리이니 만큼 거듭 돈이란 물욕에 조심할 것을 부탁하는 바일세. 그리고 자네들은 지난 6년 간 신학교 생활을 통해 사제직 동정생활(司祭的 童貞生活)의 순결성에 대해서는 정식 학과에서 많은 것을 듣고 또 많은 시련을 겪어 왔으리라고 나는 믿네. 이 점에 관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으나, 이 순결성은 <몸과 마음의 가난함>을 통해서 보존될 수 있음을 나는 자네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해 두네. 그리고 여기에 곁들이지만 자네들은 자네들이 담당한 본당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으나, 그 본당에 인간적인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되네. 무엇에 애착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가난함>에 반대되는 행위야. 우리는 주교님의 뜻에 따라 언제라도 또 어디에나 떠나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하네.\n이 다섯 가지 생활규범은 비단 보좌신부 뿐만 아니라 모든 신부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일부이겠으나 나는 보좌 신부가 될 자네들에게 각별히 말해 두는 바일세. 이 외에도 보좌신부로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이 또 있을 거야. 그러나 그것은 자네들이 살아가며 체험하게 될 걸세. 그리고 어느 날 자네들은 본당신부가 될 거야. 자네들 중에는 태오처럼 수도자가 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교수나 어느 단체의 지도신부가 될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신부들의 일반적인 직분은 본당 사목일세. 그래서 이번에는 본당신부에게 필요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생활규범을 말하겠네.\n순명의 원칙은 우리들 사제생활의 생명과 같은 것이야. 주교님께 대한 순명을 통해 본당신부는 보좌신부에게 순명 정신을 키워 줘야 하네. 웃어른에게 순명 하지 않으면서 아랫사람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도리를 벗어난 일이야. 주님께서 성부(聖父)에게 죽기까지 순명 하셨듯이 우리들 신부는 교회의 권위가 요구하는 질서에 순명 해야 되네. 그리고 순명 정신 없이는 겸손의 덕을 닦을 수 없음도 명심하게. 여기에서 다시 강조하지만, 인류의 타락의 원인이 바로 아담의 교만과 반항이라는 불순명(不順命)이었음을 명심하게. 그리고 인류의 구원은 주님의 십자가라는 겸손과 순명의 대가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되네. 이처럼 불순명은 교만을 낳게 하고, 이 교만은 우리의 사제적 삶을 좀먹는 ‘타락’이라는 암적 요소가 됨을 명심하게.\n전임자를 존중해 준다는 것은 신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에 관한 문제일세.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었을 때 전임자의 인간성이나 그의 사목 방침을 비난한다든지 혹은 그가 세운 본당 사목 기구를 일방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야. 설사 전임자의 사목 방침이 자네들에게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방침을 이해해 보려는 선의와 노력과 또 존중해 주는 아량을 성실하게 가져야 하네. 자네들이 전임자를 존중해 줄 때 남들이 자네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할 걸세. 물론 남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 전임자를 존중해 주라는 것은 아니야. 그런 행위는 위선이야.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선(선)을 아끼는 상식인(常識人)과 의리를 지키는 인격인이 되라는 걸세. 바로 이러한 상식과 인격이 신부를 서로 간에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불행히도 그렇지 않을 때가 빈번히 있다네. 신부들은 신자들에 대해서는 의리를 지키고 상식 있는 교양인이 되지만 동료 신부들에게는 무정하리만큼 불의(不義)하고 비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수가 있어. 이 점을 조심하며 자네들은 ‘존중’ 이라는 너그러운 인격을 도야하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걸세.\n보좌신부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사제직 신념이 투철하고 원만한 인간성과 성숙한 인격을 겸비한 본당신부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네. 이와 마찬가지로 본당신부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사제로서 충실하고 인간으로서 성실하며 경솔하지 않고 겸손한 인격을 지닌 보좌신부와 일하는 것이라고 하네. 그런데 세상 일은 그렇지가 못할 때가 흔히 있다네. 그래서 본당신부와 보좌신부 사이에 반목(反目)이 생기고 신부답지 못한 불행한 일이 생기기도 하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흔하지 않은 반면, 그렇게 나쁜 사람도 별로 없는 법이야. 다만 서로의 성격과 일하는 방법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분쟁이 있게 되는 것이야. 만일에 원만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보좌신부를 데리고 있게 될 때, 자네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그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대해야 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하여튼 본당 운영을 위해 본당신부에게 주어진 직분상의 권위와 질서와 원칙을 엄격히 주장하고 지켜야 하겠지만, 먼저 보좌신부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너그러운 본당신부가 되어야 하네. 다만 말하면 공(公)에는 엄한데 사(私)에는 인자한 사람이 되라는 말일세.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네들은 인내와 관용과 겸손과 사랑을 배우게 되며 또한 자네들 자신이 성화(聖化)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하네. 그래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명심하고 자네들의 마음을 상해 주는 보좌신부들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신부다운 신앙인이 도어야만 하네. 자네들의 사명, 그것은 사랑이며 이 사랑을 통해 이웃 형제의 구원의 길잡이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게.\n공의회와 함께 교회 안에도 민주화(민주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이 때에, 아마 자네들이 본당 신부가 될 무렵에는 상당한 변화가 교회 안에 있게 될 걸세. 그리고 본당 운영 방법도 많이 달라질 거야. 그러나 본당 운영상의 인사 문제와 사람들과의 관계상의 원칙은 그다지 변치 않는 것으로 나는 보고 있네. 자네들이 어느 본당에 임명되어 갈 때 전임자를 비난하며 자네들에게 충성을 약속하는 신자들이 아마도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을 조심하게. 특히 그러한 사람들을 본당 간부로 임명함은 현명치 못한 일이야. 왜냐하면 전임자에 대한 인격적인 도리도 아니지만, 교우들 사이에 파벌 구성의 위험이 있기 때문일세. 자네들 앞에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남들 앞에서 자네들을 또한 비난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게. 그리고 자네들에게 충성을 약속한 사람들이 아마도 자네들을 먼저 배반할 수 있다네. 이것은 인간 사회에 통용되는 평범한 상식이라네. 그 외에도 본당도 인간 사회이니만큼 거기에는 ‘끼리끼리’ 모이는 여러 그룹이 있게 마련이야. 그때 어느 한 그룹 중심으로 본당 사목을 실시해서도 안 되네. 그것은 본당의 일치성을 파괴하기 쉬운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세. 자네들 본당신부는 본당의 일치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네. 따라서 자네들은 본당 신자 모두를 위한 목자임을 명심하게.\n‘신부들은 인색한 고용주다.’ 이 말은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전혀 그거 없는 말은 아닐세. 이웃 사람과 인간 서로의 평등과 사회 정의를 설교하는 신부들이 흔히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대로 인정 없고 부정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네. 그 사람들은 자네들의 노예가 아니야. 그리고 신부들은 희생을 생활상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은연 중 남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습성을 갖기가 쉽네. 이 점을 조심하게. 그래서 다시 말하면 남이 자네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기를 그만큼 자네들도 자네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성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게.\n이 외에도 본당신부로서 지켜야 할 생활상의 규범이 또 있을 걸세. 예를 들면 재정 관리 문제나 행정상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으나 그것은 정식 학과에서 충분히 배웠으리라 나는 믿고 있네. 그 밖의 문제는 자네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할 걸세.\n우리들 신부들이 하는 사목도 일종의 사업이야. 그래서 이 사목 사업에 대한 우리들의 선의의 야심과 열성이 있어야겠지만, 일의 동기를 신부답게 순수한 마음의 자세로 가져야 하네. 불순한 생각을 갖고 사목 사업을 하는 신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반문하겠지만 사실은 그럴 수가 있다네. 즉 본당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세속적인 개인 명예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 심정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어느 큰 일의 결과인 성공 자체보다 그 일을 있게 한 동기 바로 그 자체다.> 이 말은 세계 정복을 시도했던 나폴레옹 황제가 죽기 며칠 전 예수님의 업적을 생각하며 한 말이네. 신자들을 도와 줄 때 또는 본당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순수하고 겸손해야 하며, 이 순수와 겸손 안에서 일의 동기를 찾도록 해야 하네. 그리고 우리의 사목 사업은 능률 위주의 사업이 아니야. 그것은 한 영혼의 성화와 구원의 사업이니 만큼 주님의 제자답게 기도하고 순수하고 겸손하게 일해야 될 걸세.\n우리들 신부는 주님의 증인인 동시에 우리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가르치는 사명을 갖고 있네. 신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겠으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주일 강론이야. 그러나 이 주일 강론은 신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교리 강연회가 아닐세. 즉 주일 강론은 자네들의 지식을 자랑하는 웅변대회가 아니란 말일세. 주일 강론은 영혼의 회개를 일깨워 주는 신앙이라는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의 전달임을 명심하게. 그래서 자네들의 주일 강론은 주님의 복음 말씀을 체험한 자네의 자네들 자신의 삶과 신념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이처럼 자네들이 해야 할 강론 준비는 자네들 자신이 사제 직분에 충실한 일상적인 생활임을 재삼 말하는 바네. 자네들이 믿지 않는 진리와 실천하지 않는 사랑과 겸손과 정의 등을 강론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적 행위인 동시에 위선임을 나는 자네들에게 말해 두는 바일세. 그리고 자네들이 책임진 본당 교우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주님의 복음 말씀을 심고 키우는 강론이 되어야 하느니 만큼 그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주의 있게 관찰해야 할 걸세.\n신부생활은 철저한 봉사생활이야. 봉사는 일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희생적 행위일세. <나는 봉사하러 왔지, 봉사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이 우리 신부들의 생활 지표가 되어야 하네. 그러나 생활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되고, 거기에 인정(人情)이 오고 가는 일이 있을 거야. 그러나 인간에게 기대를 걸면 건 그만큼의 실망을 하게 되는 거도 생활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진리일세. 자네들은 사심 없이 봉사하고 도와 주고 사랑하되, 절대로 그 대가를 바라지 말게. 자네들이 남을 도와 준 일, 사랑해 준 일 등을 잊어버리게. 그리고 남에게 신세지지 말게. 자네들이 남을 도와 준 일, 사랑해 준 일 등을 잊어버리게. 그리고 남에게 신세지지 말게. 남에게 신세지면 신세 진 그만큼의 자유를 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는 법일세.\n세상 일은 항상 자네들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자네들이 기도하고 심사숙고 해서 계획한 일이라 해도 거기에는 결함이 있게 되고, 따라서 불완전함이 있을 수 있는 법이야. 그래서 때로는 교우들의 비난과 반대로 받게 될 때가 없지 않아 있을 걸세. 그럴 때 흔히 신부들은 화를 내며 신자들을 비난하지만, 잘 안 되는 일의 원인을 신자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자네들의 방법론에서 우선 그 원인을 찾아 보도록 하게. 달리 말하면 자네들의 판단과 계획이 그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일세. 물론 진리는 대중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우 대부분이 자네들의 사목방침을 따르지 않을 때는 먼저 자네들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말일세. 그리고 설사 자네들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교우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또 겁내지도 말게. 이러한 교우들이 자네들을 따르고 협조하는 신자들보다 어쩌면 자네들에게 보다 성실한 사제다운 인격을 도야시켜 주는 고마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이고 모두에게 감사해야 되리라고 나는 알고 있네. 그리고 다소의 반대자가 있을 때 자네들은 자네들 자신을 반성하며, 또 본당 운영도 실수 없이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여기에 말해두는 바일세.\n본당에서 일할 때 뜻하지 않은 억울한 오해와 참기 어려운 모략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련이 자네들의 사제생활에 없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자네들은 사제로서의 인격과 덕(德)이 또한 성숙해지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홍역>을 치르듯이 신부도 홍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련>을 한두 번 겪어야만 신부로서의 <영적 뼈대>가 굳어지는 법일세. 그러나 오해와 모략을 받게 되로 때 자네들은 절대로 변명하지 말게. 천주님께서 자네들을 인정해 주는 이상 해명을 통해 인간들의 공감과 이해를 받으려 애쓸 필요는 없네. 묵묵히 참아! 오해나 모략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니까. 변명을 절대로 하지 말게. 도리어 변명은 사건을 더욱 확대시킬 우려를 지니고 있네. 주님도 무수한 오해와 모략을 당하셨으나 그분은 죽기까지 참으셨네. 자네들도 참아! 이 과정에서 자네들은 인내심과 관용과 주님께 대한 신뢰심을 수련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본당에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교우들이 떠드는 말의 3분의 1 정도만 참작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잊도록 하게. 이 3분의 2는 근거 없이 과장된 낭설이 아니면 허위일 경우가 많네. 하여튼 자네들이 떳떳이 살았다고 생각하면 남의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참으며 살아가게. 주님 앞에 나무랄 데 없는 사제적 양심을 갖고 있다면 무엇을 겁내겠는가!\n이상에서 말한 열 다섯 가지 생활규범은 우리 사제생활에 필요한 지극히 평범한 상식일세. 이 상식을 요약하면 두 가지 점으로 나눠지는데, 첫째로, 자네들은 신부이기 이전에 원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성실한 인격 안에 사제상(司祭像)을 확립시켜야 되다는 말일세. 우리의 사제직 삶은 원만한 인간성과 성숙한 인격 안에서만 결실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바일세. 다시 말하면 신부는 덕스럽고 의롭고 겸손하고 자비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자네들의 부족한 지식과 미숙한 사목 방법은 남이 보완해 줄 수는 있어도, 자네들 자신의 부족한 인격과 덕은 아무도 보충해 줄 수 없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네. 자네들의 인격적인 덕은 자네들 자신의 끊임없는 수양(수양)의 결심임을 명심하게. 이 수양은 다름 아닌 사람답고 또 신부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네들의 마음의 자세일세.\n자네들은 이상의 열다섯 가지 생활규범 위에 사제생활의 기초를 쌓고 보람차게 살아가기 바라네. 물론 이 규범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신부로서 살아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삶의 일종의 지혜라고 나는 보고 있네. 그래서 자네들의 영적 지도신부로서 나는 이 상식과 지혜를 자네들에게 영적 선물로 주는 바일세.\n끝으로 부탁할 것은 주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이 신념을 잊지 말라는 걸세.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한 기도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가져야 할 걸세. <만사에 있어 주님과 함께>라는 이 신앙 안에 자네들이 주님처럼 가난하고, 겸손하고, 순명하고, 사랑하는 사제가 되기를 나는 기도하겠네. 그래서 자네들은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또 사제다운 사제로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답게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영원을 향한 이 과정에서 이웃 형제들의 구원의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바라네.”\n사제 서품을 위한 피정 신공이 시작되었다. 피정 지도신부 없는 나 혼자의 신공이었다. 나는 그날 그날 아침에 일어나 복음 성격을 눈에 띄는 대로 한 구절 읽고 그것을 묵상 재료로 삼기로 했다. 첫날 아침의 복음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n<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어떤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그를 찾아가 먼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오 5장 23~24절)\n이 성경 말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에 번득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지난 4년 간 내가 내내 미워한 동료 신학생인 쟈크 맛송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쟈크는 나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였으나 그는 동양인을 항상 무시했고 특히 나를 시기하고 경멸했었다. 그래서 나도 쟈크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그가 교통사고로 죽기를 바랄 정도로 그를 미워했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람을 설교하고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조정하고 이룩하기 위해 사제가 되려는 내가 쟈크와의 화해 없이 신품성사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와의 구체적인 화해 없이 고백성사를 받은 것은 위선 행위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쟈크와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인간적인 감정은 화해의 부정을 요구하는 미움으로 차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내 마음의 평화와 쟈크에게 용서를 청하는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기도 드렸다.\n“그래 쟈크, 난 성인이 되고 싶어. 그리고 사실은 지난 4년 간 나는 자네를 마음으로 몹시 미워했네. 그래서 너에게 용서를 청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네의 구두를 닦아 주고 싶네. 쟈크, 나를 용서해 주게.”\n쟈크는 여전히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지적해 보이는 침대 밑에 있는 구두 세 켤레를 꺼내 들고 정성 들여 닦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열심히 닦았다.\n“주님, 나를 용서해 주시고 쟈크도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내가 이 구두를 닦듯이 경멸과 미움이 잔물결 치는 내 마음도 닦아 주시며, 나의 이 행위가 위선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쟈크와 나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게 하소서.”\n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는 구두를 닦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평화로운 마음으로 쟈크에게 순수한 미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던 쟈크가 일어나 구두약으로 얼룩진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내게 말했다.\n“태오, 진정 미안해! 죄인인 나를 용서해 주게나. 지금 나는 너의 행동의 진실성 안에서 나 자 자신을 반성했네. 그 동안 내가 자네를 어떻게 괴롭혔고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깊이 깨달았네. 자네는 나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지 태오, 나를 용서해 줘!”\n“쟈크, 나도 자네를 미워하고 증오한 죄인이야. 쟈크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신 주님의 기도를 우리 둘이 바치며 서로 용서하기로 하세. 지금 나는 정말 기쁘네.”\n우리 둘이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주의 기도문을 외우며 서로를 진정 용서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오랜 동안 엉부라쓰하며 주님께 감사 드렸다. 그때 쟈크의 눈과 내 눈에서 몇 줄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n이 성경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하신 예언 말씀이다. 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깊이 이해했다. 그분의 마음은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었으며(루가 15장 11~32절),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착한 목자의 사랑이었다. (루가 15장 3~7절) 그런가 하면 그분은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말라> 하시며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자비로우신 분이시었다. (요한 8장 1~11절)\n인간 구원에 대한 주님의 철저한 사랑! 주님의 이 사랑을 복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복음의 뜻은 다름이 아니고 어떠한 인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이 희망은 또한 인간에 대한 주님의 철저한 신뢰(信賴)였다.\n우리 인간 모두는 인간 조건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사회적 부조리와 온갖 악과 미움과 전쟁 등으로 상처받은 <상한 갈대>다. 이러한 상황 아래 때로는 무지와 무관심 속에, 혹은 회의와 반항 속에 우리의 사랑도 신앙도 일종의 <꺼져가는 심지>와 다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꺼 버리지 않으시는 그러한 분이시다.\n<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코 8장 27절)\n이 성경 구절을 읽는 순간 위 질문이 내 마음 안에 빗발치듯 일어났다. 나는 내 인생 33년을 살아오면서 주님을 성부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세주로 믿어 왔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7년 간 공부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태오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 주님의 이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고 널름 대답할 수가 없었다.\n<주님은 살아 계신 성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 사도처럼 나도 고백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고백은 나의 신학적 지식이지 진정한 내 신앙의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왜? 나는 신앙도, 사랑처럼 삶을 통한 경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삶을 통한 주님과의 내 경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되풀이할 만한 정도의 것이 못되었다. 내가 주님께 대한 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 없는 십자가”의 15장 “목마르다”와 이 책 11장 “주여,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경험 뿐이다.\n우리 삶의 어느 한 때에 주어질 주님의 이 질문! 이 질문은 또한 우리 모두의 구원의 갈림길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리라! 그때 나는 바로 이 질문의 답을 이 세상에 주기 위해 사제가 된다고 생각했다.\n<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루가 1장 46~49절)\n성모 마리아의 이 찬미의 노래! 이것은 또한 사제직에 오르는 내가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치 않은 감사의 노래였다. 나는 이 감사 속에 겸손하고 착실한 사제가 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n<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 밖에 없단 말이냐?”> (루가 17장 17~18절)\n예수님께서 전교생활을 하시던 어느 날 나병환자 열 사람을 낫게 해 주셨다. 그런데 그 열 사람 중의 아홉 사람은 유태인이었고 그들은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 다만 이방인이라고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되돌아와 병을 낫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했던 것이다.\n나는 이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순간 <기대하지 마라> 하신 내 지도 신부님의 말씀을 상기했다. 이 성경 말씀은 은혜를 알기에 인색한 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겠으나 신부가 되는 나에게 기대하지 말고 봉사하고 사랑하라 하시는 주님의 각별한 말씀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보수 없는 봉사와 기대 없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앞으로의 내 사제생활이 겪을 섭섭함과 쓸쓸함이 한편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을 초월하는 내 의지와 신앙 안에 내 이웃 형제의 구원이 결실되리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n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또 대성인이 된다 해도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간 조건을 잘 아시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이 사랑의 계명을 통해 당신을 모범 삼아 최선의 노력을 하라는, 사랑에 대한 분부로 나는 받아들였다.\n우리 신부들은 주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는 증인들이다. 사제 서품과 함께 나는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증명하는 사명을 받는다. 주님의 이 사랑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님의 사제다운 인격을 통해 이웃 형제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겸손하나 열정적으로 일할 것을 마음 속에 다짐했다.\n<모두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당신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요한 21장 15절)\n우리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다. 불길 같은 그의 열정적인 성격! 그런가 하면 바보스러울 만치 단순한 그의 순진성! <남들은 주님을 배반할지언정 나만은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맹세까지 했으나 그는 주님을 세 번 배반했다.\n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디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을 드셨다. 그때 주님을 뵙는 베드로의 심정은 얼마나 송구스러웠으랴!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그의 마음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차 있었으리라! 그런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꺼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배반으로 상처받은 베드로의 마음을 꺾지 않으셨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꺼져가는 그의 사랑과 믿음을 존중해 주셨다. 즉 주님께서는 그의 체면을 살려 주셨다. 인간의 체면을 아껴 주시는 주님의 사랑!\n만일 주님께서 <베드로야, 배반하지 않겠다던 너의 용기와 신앙심이 어디 있었느냐?> 하고 책망하셨다면 베드로는 어찌 되었을까…. 아마 모르긴 하지만 그는 오늘 우리가 존경하는 그러한 베드로가 아니 되었을지도 모른다.\n나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처럼>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지를 깊이 묵상했다. 그리고 나는 또한 “태오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대한 내 사랑의 증거로 나는 오늘 아침 이 몸을 바쳐 주님의 사제되어 주님이 지고 가신 구원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고백하고 피정 신공을 끝냈다.\n내가 사제로 탄생되는 1963년 5월 6일,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따스했다. 이날은 화요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러페부로 학장 신부님은 이 날을 학교 축일로 정해 주셨다. 때마침 파리에서 회의 중이시던, 교황청에서 시무하시는 띠스렁 추기경께서도 내 서품식에 참석해 주셨다. 이분은 낭씨 신학교 출신인 나의 선배시었다.\n비에브는 공부 사정으로 내 서품식에 참석할 수 없어 대단히 섭섭하다는 펴지를 보내 왔다. 그러나 5월 11일 나의 첫 장엄 미사에는 곡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몸 뻴리에 갈멜 수녀원에 있는 세실 수녀님을 대신한 원장 수녀님이 축하의 말과 함께 수도원을 방문해 달라는 초대 카드를 보내왔다. 쌍디에의 성 요셉 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쟌느 수녀님도 축하한다는 짤막한 편지와 함께 수녀원을 방문해 달라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을 전달했다.\n거리와 직장 관계상 에그랑 장군댁, 쿠에상씨 가족, 로마이에씨 가족, 보오에씨 가족은 내 서품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첫 장엄 미사에는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낭씨 부근에 살고 있는 그렁꼴라 부부를 비롯한 많은 친지들이 내 서품식에 참석해 내 기쁨을 같이 나눴다.\n내 서품식은 예정대로 신학교 성당에서 집전되었다. 그저 주님께 감사할 푼이었다. 나의 서품식 주례 주교님과 함께 드리는 나의 이 첫 미사를 나는 첫째로 돌아가신 내 부모님과 오늘의 내가 되게 도와 준 많은 은인들을 위해 바치기로 했다. 서품식 예절은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n<걸어가는 태오씨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어. 태오씨가 불쌍해. 그리고 태오씨가 저만큼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 눈을 감으니 갑자기 태오씨가 사람 없고 길 없는 험한 벌판을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 마냥 걷고 있지 않겠어. 태오씨가 불쌍해.> (“사랑의 지도” 17장 “달빛의 흰 얼굴” 참조)\n그날 밤 숙의 상상 속에 나타난 나의 영상, 그것은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야 할 내 사제생활을 뜻한 것이 아닐까… 13년 전 원산에서 숙과 헤어지던 날 밤 달빛에 비친 그녀의 흰 얼굴이 내 시야에 크게 클로즈업 되었다. 그리고 “태오씨는 불쌍해” 하는 그녀의 인간적인 마지막 애정을 느끼고 있을 때 주례 주교님은 “너는 멜키세댁의 예를 따라 영원한 사제로다” 라는 예절 경문을 일고 계셨다. 감격 속에 다소 흥분되었으나 나는 침착하게 서품 예절을 끝냈다. 주례주교님의 강복에 이어 나는 새 신부로서의 첫 강복을 참석자들에게 줬다. 그때 나는 복 바치는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왜냐하면 참석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 부모님, 형제들, 조카들, 숙, 현, 훈, 진섭이, 비에브, 쟌느, 세실, 그 외 오늘의 나의 이 영광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쳐 준 많은 은인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날 진정 나와 함께 있었다. 그때 성가대의 “데떼움”의 장엄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지 않았던들 내 울음 소리가 성당 안을 채웠으리라… 제의방에 돌아와서도 나의 감격과 감사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태오 신부님, 오늘은 울 수 있는 복된 날입니다. 주님께서 그 눈물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내 등을 정겹게 두들겨 주시는 띠스렁 추기경 소매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n우선 내가 신부로 서품 되던 날, 신학교 당국에서 성대한 잔치를 마련해 줬다. 띠스렁 추기경님, 나의 서품 주례 주교 삐롤레 대주교님, 그 외 여러 은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나는 새 신부로서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5월 11일 나의 첫 장엄 미사에는 에드랑 장군, 닥터 쿠에상, 닥터 로마이에, 보오레시, 러샤르뽕디에르씨, 그렁꼴라씨, 스위스의 쉴링과 렌너씨 등 그리고 마담 비부아, 그 외 여러 프랑스 친지, 가족들이 참석했다. 물론 내 귀여운 공주 비에브도 참석했다. 그녀는 편지로 나의 장엄 미사 때 자기에게 첫 번째로 성체를 영해 줘야 된다는 말 까지 했었다. 나는 약속대로 그녀에게 첫 번째로 성체를 영해 주었다.\n나는 이 장엄 미사를 이 모든 은인들을 위해 감사의 뜻으로 드렸다. 나는 이 날 <여러분 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마태오 25장 35절) 이 성경 말씀을 강론 주제로 삼고 그들 모두에게 진정 감사 드렸다.\n이 날에는 몇몇 은인들이 합동으로 잔치를 차려 주었다. 그리고 낭씨에서 발행되는 최대 신문인 <로오렌>의 기자와 인터뷰도 있었고, 그 기사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여러 수도원에서 초청 미사도 드렸고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강연 초청도 있었다. 축제의 계속이요, 기쁘고 감격스러운 나날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나는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끝냈다. 선편으로 짐을 부치고 나는 은인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감사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n내가 낭씨를 떠나는 전 날, 그 동안 친히 지내온 몇몇 프랑스 가정이 합동으로 나를 위한 송별 저녁 파티를 마련했다. 즐겁게 식사를 끝내고 코냑을 마시며 환담하고 있을 때였다. 좌중의 한 젊은 부인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n“태오 신부님, 나는 당신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군요. 즉 프랑스를 다녀가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도 근 5년 간이나 이 곳에서 공부하셨으니까 이제는 신부님 나름대로 프랑스와 그 국민에 대해 그 어떤 관(觀)이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 조국과 우리 국민성에 대해 당신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좀 듣고 싶군요.”\n예기치 않았던 어려운 질문이었다. 내가 프랑스 역사나 민족성을 특별히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또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을 돌린 시간적 여유 없이 지내온 내가 답변하기에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코냑을 한 모금 입 안에 넣고 그 향기와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생각을 더듬어 봤다. 그때 한 가지 묘안(妙案)이 떠올랐다.\n“마담, 당신은 참 아름다운 부인입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교양과 너그러운 인상을 주는 멋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까다로운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용모를 감상하는 내 두 눈은 미적 감정으로 충만 되어 있는데 마담의 질문에 답변해야 할 내 지성(知性)은 당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n“그럼 말씀 드리죠. 프랑스인의 국민성이란 거대한 명제는 내 지식을 초월하는 문제군요.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의 성격이랄까 혹은 인간성이랄까 그 점에 대해서 내 경험을 말씀해 드리죠.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내 표현이 좀 지나쳐도 참고 끝까지 들어 주셔야 합니다.”\n나는 코냑을 한 잔 다시 마신 다음 시거에 불을 붙여 짙은 연기를 천장을 향해 내뿜었다. 나는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좋은 음식을 먹은 다음에 시거 한 대 피우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다.\n먼스델은 프랑스의 그 많은 후로마져 종류의 하나이며, 고급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공부한 프랑스 동부 지방 사람들이 이 후로마져를 좋아한다. 그런데 맛은 최상급이지만 냄새는 정말 고약하다. 마치 며칠이나 씻지 않은 발에서 나는 그러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흔히 친구들 사이에 <너는 마침 먼스델 같다> 하면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된다.\n“내가 낭씨 신학교에 도착한 날이 어느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당시 신학교 관례는 금요일에는 육식을 전폐했고 대신 점심에서는 생선, 저녁에는 그 냄새 나는 먼스델을 먹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아마도 여러분은 그 당신의 내 반응을 얼마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상상합니다. 숙녀들 앞에서 말의 표현이 점잖지 않아 죄송하지만, 6.25 전쟁 당시 한 달이나 군화를 벗지 않고 지내다가 그것을 벗었을 때 풍기던 그 고약한 냄새가 식당에 충만 돼 있었어요. 속이 메슥메슥해지고 역겨워지는 기분을 참아내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냄새의 원인이 바로 먼스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 후로마져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그 냄새 나는 먼스델을 로스 피이프 이상으로 맛있게 먹는 동료 신학생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그 냄새 때문에 식사를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그 후부터 매주일 금요일 저녁은 나에게 크나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심 때 먹다 남은 빵을 몰래 내 방에 갖다 두었다가 저녁 대신 그것만을 먹은 일이 여러 번 있었지요. 날이 갈수록 나는 먼스델을 미워하고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게 되었지요. 물론 캬몽베르(치즈 종류의 이름) 정도의 후로마져를 조금씩 맛들이기는 시작했으나 먼스델만은 도저히 먹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성 주간을 맞이했고 성 금요일 아침 묵상 신공이 끝난 후였습니다. 학장 신부님께서 우리 신학생들에게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뜻으로 “모르디피가시옹”(희생의 행위)을 각자 원하는 대로 하나씩 하라고 분부하셨어요. 나는 어떤 희생을 주님을 위해 바칠 수 있을까를 곰곰이 묵상하고 있을 때 희생의 뜻으로 먼스델을 먹자는 생각이 났어요. 희생의 행위란 우리의 취미와 성격에 맞지 않는 한 가지 영적 선행(善行)을 사랑을 갖고 의지적으로 해 내는 행위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는 먼스델을 먹기로 했던 것입니다.\n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 오자 먼스델 냄새가 벌써 내 몸 안에 배어드는 듯했으며,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주님께 기도하며 용기를 내어 먼스델을 조금 빵에 발라 한 입 먹었습니다. 그때 밥상에 같이 있던 동료 신학생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더군요. 그런데 입 안에서는 그 어떤 야릇한 향기 나는 맛이 내 미각(味覺)을 자극시켰어요. 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먼스델을 많이 빵에 발라 크게 한 입 먹으며 여러 번 씹어 봤습니다. 아! 거기에는 내 미각을 매혹시키는 훌륭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금요일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이제는 아주 성대한 잔치라 해도 먼스델이 없으면 섭섭할 정도로 그것을 좋아하게 됐습니다.”\n“그날 밤 만과신공을 끝내고 나는 오랜 동안 성당에 남아 있었어요. 주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였죠. 주님께 바친 이 희생이 나에게 아주 심오한 인생철학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즉 겉모양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과 일방적인 남의 말만을 듣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고귀한 교훈이었어요. 그때 나는 먼스델에 대한 내 편견과 경솔했던 나 자신을 심히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신부로 살아가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절대로 편견을 갖고 대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이 철학이요, 예술인 여러분, 프랑스 사람들이 애호하는 먼스델은 이처럼 크나큰 철학적 교훈을 나에게 주었습니다.”\n“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프랑스 말 한 마디 모르고 유학 왔습니다. 내가 겪은 고생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고, 기후는 내 건강에 맞지 않고, 게다가 먼스델까지…\n나는 동료 신학생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왔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권이 다른 이방인이었으나 그래도 같은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동료들의 이해와 우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한테서 느낀 처음의 내 감정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프랑스인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이방인인 나에게 심각한 고독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 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서 <너>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발달한 여러분의 개인주의와 자기 사랑은 이방인에게 너무도 냉정했습니다. 내 자유를 남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만큼 남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여러분의 교양은 남의 일에 지나치게 무관심했습니다. 매사에 예의는 정확했으나 그 이상의 것, 즉 정(情)이라는 마음을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예의는 정확했으나 그 이상의 것, 즉 정(情)이라는 마음을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의 이러한 무관심 속에 인간의 이해와 인정에 굶주린 나는 마치 내가 먼스델을 싫어하고 미워하듯 동료들을 싫어했고 미워도 했습니다.\n아까 말씀 드린 대로 성 금요일 밤 나는 많은 것을 반성했고,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동료들한테서 사랑만을 기대하고 있었지, 그들을 사랑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먼스델이 그 특별한 냄새로 나의 접근을 제시한 것처럼 나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은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넘어 설 수 없는 일종의 성벽이었었어요.\n성 금요일 저녁, 자진해서 먼스델을 먹었듯이 이번에는 동료들에게 사랑을 기대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들을 사랑하자고 결심했어요.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내 마음을 주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해고 우리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던 이 <성벽>을 분쇄해 버렸습니다.\n거기서 나는 내 마음대로 여러분 프랑스인의 인간성의 일면을 경험했습니다. 먼스델은 그 독특한 냄새로 이방인을 배척했으나 남을 매혹하는 멋진 맛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치 먼스델은 <나는 이처럼 좋은 맛을 갖고 있으니 나를 맛 보고자 하는 사람은 맛 보아라. 그러나 나 스스로 이 맛을 먼저 보여 주지는 않겠다> 라는 듯 도도한 태도였지요. 내 경험에 비친 프랑스인의 인간성도 그러했습니다. 내가 동료 신학생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접근하자 그들은 이내 자기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나를 따뜻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들이 나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처음에 이방인인 나에게 비친 프랑스인의 인간성은 냉정과 무관심과 도도한 자존심이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간격과 장벽을 넘어선 거기에는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고귀한 휴머니즘이 또한 있었습니다.\n나는 얼마 후 프랑스를 떠납니다. 캐나다에 가면 금요일 저녁마다 먼스델이 생각나겠지요. 그때마다 나는 나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와 기구와 우정을 잊지 않고 감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항상 은혜롭게 추억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깊이 사랑하며 그만큼 여러분의 휴머니즘을 부러워합니다.”\n그때 모두들 술잔을 높이 들고 “먼스델 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다. 그리고 나의 <프랑스인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얼마 후 좌중이 조용해지자 그 젊은 부인이 또 내게 말했다.\n“좋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화법은 재미 있어요. 한 대 슬쩍 때리고 그 아픔을 달게 감싸 주는 묘한 화법이에요. 말씀해 주세요. 오만스럽다는 <아픔> 뒤에는 긍지라는 달가움>이 있겠군요.”\n“어느 성탄절 방할 때 일이었습니다. 파리에서 밤 늦게 메뜨로(지하철) 스따시옹(역)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건너편에 한 거지가 술에 만취되어 나를 보고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으려다가 손을 헛짚어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술에 취한 탓인지 혹은 힘이 없는 탓인지 의자 위로 일어나 앉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져 앉곤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에게 무관심했고… 그가 불쌍해서 나는 그를 도와 주려고 건너 편으로 갔습니다. <무슈, 당신이 이 의자 위에 앉도록 내가 도와 드리죠.>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농, 메르씨 몸 빼르.(감사하지만 신부님, 사양하겠습니다.) 위대한 프랑스인은 당신 같은 중국 신부의 도움이 필요 없소.> 이렇게 말했어요. 그때 나는 마음 속으로 그의 오만성을 무시했습니다. <네까짓 거지꼴에, 뭐 위대한 프랑스인이라고..> 그러나 그는 여러 번 시도 끝에 드디어 의자 위에 앉았습니다. 그때 그는 <몽 빼르, 무 부왈라!> (신부님, 자 나를 보세요!) 얼굴 전면에 승리감 같은 웃음을 띠고 이렇게 소리쳤어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여러분의 프랑스인다운 오만성과 긍지를 봤습니다. 바로 이 오만성과 긍지가 프랑스인다운 여러분의 애국심이었지요. 여러분의 이러한 애국심은 세계 제2차 대전 중 그 유명한 “레지스탕스”(저항운동)에 관한 숱한 아름답고 용감한 이야기를 낳게 했고 또 오늘의 프랑스를 이끌어 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거지의 몸이었으나 그가 나에게 보여준 그 행위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대표할 수 있는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긍지 속에, 또 이러한 애국심 속에 프랑스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여러분의 나라 사랑이었고 국민 된 보람인 긍지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이 오만성과 긍지와 애국심을 이 다음 내가 사랑하는 한국 민족에게 널리 알리고 본 받게 할 것입니다.”\n“신부님, 하잘 것 없는 사소한 사건에서 당신이 발견한 프랑스인의 애국심도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그보다도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주시는 당신의 마음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번에는 쎵빠아녀(샴페인)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신부님께서 보신 프랑스 문화에 대해 느끼신 대로 말씀해 주세요.”\n“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프랑스는 최강대국에서 2류 국가로 전락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으나 나는 프랑스 문화를 깊이 사랑합니다. 프랑스 문화를 특별히 공부한 내가 아니지만 나는 바로 이 샴페인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의 문화가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얕은 듯하면서도 깊이를 느끼게 하고 약간 씁쓸한 듯하면서도 상쾌한 맛을 주며, 또 맑은 색과 없는 듯하면서도 우리의 후각을 향기롭게 하는 향기를 풍기는 이 샴페인은 진정 프랑스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샴페인을 자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없었던 그만큼 나는 여러분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음 프랑스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를 나는 희망합니다. 그때 시간의 여유를 갖고 여러분의 문학과 문화를 충분히 접촉하면서 나는 이 샴페인을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습니다.”\n“역시 동양인과의 대화는 흥미 있습니다. 냉철한 이성적인 이론의 추리 없이는 사물을 관찰 못하는 우리들 프랑스 사람보다 어떤 비유를 매개물로 사물의 진상(眞像)을 파악하는 당신네들 동양인의 화법이 더 인상적이군요. 태오 신부님, 샴페인을 한 잔 더 따라 드리겠습니다. 이 대가로 한 말씀만 더…”\n그 젊은 부인의 관심은 적극적이었다. 나만 이야기하는 것이 미안스러워 좌중의 분위기를 살펴 봤다. 그러나 모두가 내 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또 말을 계속했다.\n“그럼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죠. 프랑스라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치고 <예술>을 아니 생각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의 조국은 예술의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저명한 예술가를 많이 산출하고, 또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수많은 박물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나라라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이해와 사랑,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n이것도 어느 날 파리에서 목격한 것입니다. 어느 길 모퉁이에 가난한 한 미술가가 예수 아기를 안고 계시는 성모님상을 멋지게 그려 놓고 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그림 위에 동전을 던지고 가더군요. 나도 동전 몇 푼을 던지고 그 옆에 있던 카페 테라스(노상 다방)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거지가 거기를 지나가다가 그 그림을 유심히 보더니 자기 주머니 속을 더듬더군요. 아마 돈을 찾는 모양이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었는가 봐요. 상의 주머니, 바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내게로 와서 동정을 청하더군요. 나는 아무 말 없이 5프랑을 그에게 줬습니다. (5프랑은 한화 약 6백 원에 해당된) 그랬더니 그 거지는 그 돈을 모두 그 그림 위에 놓고 가 버렸습니다. 거기서 나는 예술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발견했고, 또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가 안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지까지도 가난한 미술가를 아껴 주고 이해하고 협조하고 존경하는 이러한 풍토에서 좋은 미술가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때 나는 그 거지를 부러워했습니다. 여러분의 이러한 예술 애호 정신은 프랑스를 영원한 예술의 나라로 이 세계 안에 존속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로서, 자동화 및 기계화 문명 속에 생산적 능률을 위주로 하여 인간성의 상실(喪失)을 추구하는 이 세계 안에서, 정신적인 지도 역할을 해야 되리라 나는 생각합니다.”\n그때 모두들 나에게 박수를 보냈고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우리는 자유 분위기 속에서 여러 말을 주고 받았다. 좌중이 좀 조용해지자 그 젊은 부인이 일어서며 조용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n“숙녀 신사 여러분, 오늘 밤 우리가 존경해 마지 않는 태오 신부님을 송별하는 이 테아트러(극장 혹은 연극)는 아직 완전히 막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막이 남아 있으며, 곧 여러분에게 막을 올리겠습니다. 즉 우리는 태오 신부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들려 주신 여러가지 말씀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태오 신부님께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여러분을 대신해 엉부라쓰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뜻을 묻기 전에 내 사랑하는 남편에게 뜻을 묻겠습니다.”\n“안마리 (젊은 부인의 이름) 당신이 여기 계시는 여러분을 대신하는 그 영광을 당신의 남편으로서 나는 기쁘게 생각하오. 태오 신부님께 대한 당신의 엉부라쓰는 오늘 밤 나를 위한 <곱배기 사랑>이 되어야 하오.”\n“아, 섭섭합니다. 식사 전에 우리는 서로 소개받고 인사했었는데… 그리고 신부님은 존 까다로우신 분이시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내 신분과 이름을 똑똑히 당신에게 알릴 수 있는 이 기회를 나는 더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존경하는 저기 계신 죤져 장군(내 친구 제라르 신부의 부친)의 둘째 딸이며 제라르 신부의 누님인 동시에 저분의 아내인 마담 러미어입니다. 신부님, 이제는 아시겠습니까?”\n“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귀부인과 엉부라쓰 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교양과 신분에 맞는 멋있는 향수를 먼저 바르셔야 합니다. 나는 귀부인과 엉부라쓰 할 때 그분들의 귀 밑에 풍기는 그 향기로운 향수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것이 내가 제시하는 조건입니다.”\n내 말이 끝나자 모두들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에빠텅” (멋지다의 형용사)과 “걀렁”(부인에 대한 신사의 멋지고 예의 바른 태도) 이란 말이 여기 저기서 들려 왔다. 그때 마담 러미어는 서슴지 않고 핸드백에서 향수병을 꺼내 자기 귀 밑에 뿌렸다. 담배 연기로 탁하던 방안 공기가 금세 향기로워졌다.\n그 다음 날 나는 낭씨를 떠났다. 학장 신부님과 동료들을 떠날 때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말해 만 4년 9개월 간 내가 지내온 이 신학교!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신부로 서품 된 이곳! 그 동안 많은 고생이 있었으나 모두가 감회 깊게 회상되었다. 5년 전 프랑스로 오기 위해 서울을 떠나던 그 당시의 기분 비슷한 감정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신학대학교 교문을 나서며 나는 다시 한 번 뒤돌아봤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안녕>을 기원했다.\n내 생전 처음 보는 갈멜 수녀원이었다. 우선 외부 일 담당 수녀님으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목책(木柵)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나는 원장 수녀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때 원장 수녀님은 세실 수녀님이 며칠 전부터 몸살로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갈멜 수녀원 내부에는 국가 원수나 소속 주교님을 제외하고는 여하한 남자도 들어갈 수 없지만, 내일 아침 미사 후 세실 수녀님을 위해 침실로 성체를 모셔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성사 집행자는 언제라도 수녀원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단다.\n봉쇄 수도원인 갈멜 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세실 수녀님을 만나 같이 이야기를 나루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분을 방문하고 싶었고, 그분 앞에서 새 신부로서의 미사를 한 번 드리고 싶었다.\n수녀원 주변은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한국의 산간(山間) 절간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손님 신부님 방에서 혼자 그날 밤을 지냈다. 지도 신부님은 외부에서 미사만 지내러 오셨고 수녀원에는 신부님이 안 계셨다. 서품을 받은 이후 그날이 그날처럼 감격과 흥분과 기쁨 속에 부산스럽게 지내던 내 자신이 이 자연의 침묵 속에, 또 이 환경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n다음 날 아침, 나는 예정대로 미사를 지냈다. 너무도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의 미사였다. 미사가 끝나자 한 수녀님의 안내로 나는 성체를 모시고 세실 수녀님 방으로 갔다. 자그마한 방, 흰 벽에는 격에 맞지 않는 커다란 십자가상이 하나 걸려 있을 뿐, 그림 한 장 보이지 않았다. 방 한 구석에는 자그마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성경 책과 한두 권의 신심 서적이 보였다. 침대도 역시 자그마했고, 목판 침대 위에는 모포 한 장이 깔려 있는 듯했다. 세실 수녀님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말라 있었고, 그녀의 흰 얼굴은 더 희게 보였다. 단정한 수도복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묵상하고 있다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영성체 예절을 진행했고 세실 수녀님에게 성체를 영해 드렸다. 그때 수련장 수녀님인 듯한, 나를 안내한 수녀님이 나직이 말했다.\n“원장 수녀님의 사전 허가가 있었습니다. 세실 수녀님은 면회실에 갈 수 없는 몸이니, 이곳에서 잠깐 서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실 수녀님, 이번에는 태오 신부님에게 축하해 드려야죠.”\n“수녀님이 보내 주신 그 <촛불> 감사합니다. 앞으로 사제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 촛불은 내 사제직 삶을 밝히는 안내자가 돌 것입니다. 그리고 불을 밝히고 있는 그 초처럼 주님의 구속사업을 위해 기구와 희생과 사랑으로 스스로의 몸을 태우고 있는 수녀님을 기구 중에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n“신부님의 기구는 내 수도생활을 위해 귀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신부님을 위해 나도 늘 주님께 감사 드리겠습니다. 신부님의 그 왕성하신 사제적 의욕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건강에 조심하고고, 우리 서로 주님의 종답게 열심히 살아갑시다.”\n“감사합니다, 세실 수녀님. 우리 서로를 위한 서로의 기구 안에 서로를 도우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로 합시다. 수녀님들이 바치시는 경건한 기구와 순결한 희생은 사목 전선(司牧戰線)에서 일하는 우리들 신부에게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n세실 수녀님은 다시 한 번 그 맑고 순결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 그분이 맑은 두 시선과 순결한 모습은 내 마음에 뭐라고 이름할 수 없는 그 어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이분의 이 말을 우리 서로의 대화를 끝내자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안내 수녀님을 앞세우고 아무 말 없이 세실 수녀님 방을 나왔다.\n세실 수녀님과는 우리 서로의 대화보다 그분의 맑은 시선에서, 또 순결한 표정에서 나는 보다 많은 것을 항상 듣고 있었다. 그분의 맑은 시선은 나에게 천상적 신비를 속삭여 주었고, 깨끗한 모습은 순결의 뜻을 말해 주었으며, 조용한 태도는 기도와 겸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는 쟌느 수녀님을 방문하러 몽뺄리를 떠나 쌍디에로 향했다.\n쌍디에 역에는 수녀님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녀원에 도착했을 때 원장 수녀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분은 나에게 쟌느 수녀님이 모범적인 수련을 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우선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면회실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쟌느 수녀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n나는 반가워 수녀님 앞으로 다가서며 말하자 수녀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어 주며 무릎을 꿇고 새 신부의 강복을 청했다. 강복을 준 다음 나는 쟌느 수녀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때 수녀님은 “태오 신부님, 축하해요” 하고 간신히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수녀원에 들어온 지 벌서 4 개월. 아직도 웃음 속에는 지난날의 장난기 있는 순진한 일면이 보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훌륭한 수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n수녀님은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그때 우리 둘이 서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쟌느 수녀님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우리 둘이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가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고 미소할 뿐이었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우리 둘이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이 많았는데…\n수녀원에서 수련 중인 사람에게 나는 엉뚱하게도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쟌느 부모님은 얼마 전 내 장엄 미사 때 만났는데 나는 그분들의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이만큼 우리 둘이는 화제가 궁색했다. 이미 수녀가 된 옛 친구에게, 아니 솔직히 말해 부부가 될 수 있었던 우리 서로가 신부가 되고 수녀가 된 이 현실에서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때 나는 별안간 이상하게도 심한 고독감을 느꼈고 쟌느 수녀님과 나는 서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n이방인! 이방인이 따로 있나!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를 달리한 인종들 사이에만 이방인이 있게 되는 법은 아닐 것이다. 국경과 민족을 달리하고 또 문화권이 달라도 서로 말과 감정이 통하고 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인정을 나누면 거기에는 이방인이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반면에 언어와 감정이 통하고 이해와 존경을 서로 나눌 수 있어도 마음 안에 끓어오르는 이 따스하고 다감(多感)한 인정을 서로 나누며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 없을 때, 거기에서는 서로가 이방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도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쟌느 수녀님과 나와는 이방인이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 우리 둘이는 이 세상의 이방인이 될 수는 있어도 쟌느 수녀님과 나는 이 세상의 차원을 달리한 동지다. 즉 <주님의 나라>를 위한 증인으로서 우리 둘이는 같은 십자가를 지고 같은 삶의 길을 걸으며, 지금 말이 없어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동지인 동시에 형제요, 자매였다.\n사실 우리 둘이는 더 이상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영적인 대화를 구실로 삼고 서로 나눌 수 있었던 여러가지 인간적인 감정과 말도 내 마음 안에서 꺼져가는 불길처럼 사그라졌다. 말이 없어도 서로의 감정과 현재의 위치와 삶의 목적 의식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우리 둘이는 서로 교차된 시선 속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그리고 서로의 신뢰감을 교환했고 주님의 충실한 종이 도리 것을 다짐했다. 한참 후 쟌느 수녀님은 다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강복을 청했다. 내 강복을 받자 쟌느 수녀님은 조용히 다시 한 번 내게 웃어 주고 면회실을 나갔다.\n나는 수련 중인 쟌느 수녀님을 아침 미사 시간 외에 만난 일이 없었다. 내가 쌍디에에 온지 3일 째 되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병자성사가 났다. 처음 당하는 병자성사라 나는 좀 긴장되어 간호원의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아, 그 환자는 다름 아닌 무슈 알베르였다. 나는 병자성사 예절 순서대로 환자의 고백성사를 듣고,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드렸다. 내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성사 예절이 끝나자 무슈 알베르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나에게 메마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n“아 바로 당신이었군요? 참으로 기이한 인연입니다. 주님께서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고! 내가 당신의 축복 속에 이 세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이겠습니까…. 신부님, 감사합니다.”\n“무슈 알베르, 당신에게 첫 병자성사를 준 나로서 나는 당신을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한 신앙 안에 은혜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당신을 나는 부러워합니다.”\n“나로 하여금 이처럼 복되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나는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나 주님의 은혜는 바로 내 사랑하는 쟌느 수녀님의 기구와 희생의 덕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n“아닙니다, 신부님!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 곁인 천당에서 떳떳한 낯으로 내 쟌느 수녀님을 만나 뵙겠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나의 병자성사 소식도 쟌느 수녀님에게 절대로 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n나는 원장 수녀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쟌느 수녀님의 출생의 동기 등이 문제되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여러가지 평범한 말 끝에 나는 무슈 알베르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줬다는 것을 보고했다. 그때 그분은 나를 잠잠히 바라보시다가,\n“그 문제는 나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쟌느 수녀님을 만나셔서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쟌느 수녀님이 원하신다면 무슈 알베르를 만날 수 있도록 그를 별실로 옮겨 놓을 수도 있는데요…”\n“그분의 그러한 심정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인간적 마음은 쟌느 수녀님을 지금 무척 모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야 어떻든 현재는 참 열심하고 훌륭한 신앙인이며, 성인 같은 분이지요. 내가 무슈 알베르를 책임질 테니까 신부님이 쟌느 수녀님의 심적 안정을 책임지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 시점에서 신부님 이외엔 아무도 쟌느 수녀님의 심정을 안정시켜 줄 사람이 없을 것으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n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사무실을 나가셨다. 그때 나는 원장 수녀님의 너그러운 인간성과 그분의 도량 깊은 지도력을 감탄하고 존경했다. 이러한 어버이다운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또 수도자를 수도자다운 인격으로 도야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쟌느 수녀님 곁으로 다가 앉으며 나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n“좋습니다, 수녀님. 원장 수녀님께서 수녀님을 위해 무슈 알베르를 별실로 옮겨 놓으러 가셨습니다. 수녀님, 다만 그 감정을 진정해 주시고 주님께 같이 기도합시다. 수녀님이 받으시는 그 고통 나도 나눠 갖겠습니다.”\n한참 후 원장 수녀님이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별실로 옮겨진 무슈 알베르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놓고 어디론지 가셨다. 그때 쟌느 수녀님은 “아버지” 하며 무슈 알베르 곁으로 달려가 그분의 메마른 손을 잡았다.\n“쟌느 수녀님, 오셔서 감사해요. 사실은 수녀님을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부당한 나지만, 수녀님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죽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 주님께 감사하며, 이것은 바로 수녀님의 기구와 희생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n그리고 무슈 알베르는 눈을 감았다. 쟌느 수녀님은 무슈 알베르의 메마른 손을 자기 뺨에 비비며 차츰차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내 두 눈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n아버지와 딸! 죽음 앞에 서 있는 아버지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딸! ‘아버지’, ‘내 딸 쟌느야’ 이렇게 소리 내어 서로 부르며 울 수 있는 그들이었건만 그들은 더 이상 말이 없이 조용히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그들 마음에는 여러가지 감회가 오고 갔으리라!\n끝까지 죄인임을 고백하며 겸허한 자세로 은혜롭게 죽어가고 있는 이 아버지와, 인류 구원을 위해 제물처럼 자기 몸을 바쳐 수녀가 된 이 딸! 세상 사람들이 눈에는 이 아버지와 이 딸이 어쩌면 이방인처럼 보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처럼 보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버지와 이 딸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저 영원한 삶 안에서 진정 아버지와 딸로 새로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n“신부님, 이 죄인에게 한 번 더 강복해 주시고, 기도 속에 쟌느 수녀님을 내내 축복해 주십시오. 나는 두 문을 위해 저 영원에서 주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신부님, 수녀님 돌아가 주세요.”\n나는 쟌느 수녀님을 데리고 내 임시 사무실인 병원 지도 신부 사무실로 왔다. 수녀님은 쓰러지듯 의자에 앉으며 소리 내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수녀님을 울게 내버려 뒀다. 그때 세실 수녀님이 <신부님, 쟌느 수녀님을 많이 많이 위로해 드리세요> 라고 한 말이 회상되었다. 세실 수녀님은 쟌느 수녀님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슬픔과 고통을 예측하고 있었을까…. 얼마 후 쟌느 수녀님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n무슈 알베르의 장례식은 엄숙했으나 아주 간소했다. 장례 미사에는 장의사 직원 몇 명과 원장 수녀님과 몇 명의 간호원이 참례했다. 물론 내가 장례예절을 집전했다. 원장 수녀님과 상의해 나는 쟌느 수녀님을 장례식에 참례시키지 않았다. 다만 무슈 알베르의 죽음을 수녀님께 알렸을 뿐이었다.\n내가 쌍디에 성 요셉 수녀원을 떠나는 전날이 공교롭게도 이 수녀원이 창립된 기념일이었다. 저녁식사 후 간단한 축하연이 있었고 10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잠시 이용해 쟌느 수녀님과 같이 수녀원 뜰 안을 산보했다. 요 며칠 사이에 수녀님의 몸은 야위었다. 그 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6월 초의 밤공기는 시원스러웠고, 밤하늘은 너무도 맑았다.\n“섭섭해요, 신부님. 하지만 우리는 항상 떨어져 살아야 할 몸들이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신부님은 저 유성처럼 이 나라 저 나라로 전전하는 생활을 하시게 되겠죠.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또 하나의 베로니카가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n“수녀님, 저 별 하늘을 바라보세요! 별들이 참 많죠? 나는 어릴 적부터 맑은 별 하늘을 바라보기를 여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 광대한 하늘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후련해지고 무엇인가가 내 영혼을 맑게 또 기쁘게 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 별들 중의 하나가 이 다음 내가 부활해서 살게 될 고향이 될 것이라고 난 생각했어요.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우주가 창조된 이래 오늘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도 이 세상 끝날까지 살아갈 이 많은 인간들이 부활하면 그들이 다 어디서 살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저 수많은 별들이 인간들의 고향이 되리라고 생각했지요.\n이 세상은 고통과 슬픔과 죽음과 에어짐이 있으며, 또 미움과 불화와 전쟁 등이 있는 불행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천당’ 즉 우리의 죽음 다음에 있을 세상은 기쁨과 평화와 사랑만 있는 영원히 행복한 곳이라고 하지 않아요! 저 별들 중의 하나가 진짜 우리가 차지할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에요.\n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을 살펴 보면 어느 지방은 다른 지방보다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있지 않아요. 이처럼 저 많은 별들도 다 똑 같은 별은 아닐 거예요. 어느 별은 더 살기 좋고 아름다운 반면 어느 별은 험악하고 살기 힘든 별들도 없지 않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가면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거예요. 왜냐하면 <끼리끼리> 모여 살게 되니까 그렇죠. <여러분이 이 지상에서 행한 대로 이 다음 심판 받고 상과 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적에 따라 <끼리끼리> 살게끔 해 주실 거예요. 그래야만 거기에 평화가 있게 될 것이에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적에 따라 더 아름다운 별에, 도 덜 아름다운 별에 우리를 끼리끼리 배정하실 거예요.”\n사랑의 반대인 미움이, 평화의 반대인 불화가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취미와 성격이 다르고, 같이 생각하지 않고, 같이 공감하지 않고, 같이 참아 주지 않고, 같이 사랑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자연적인 부작용이 아니겠어요? 반면에 평화와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들의 성격과 취미가 설사 다르다 하더라도 같이 생각하고, 같이 공감하고, 같이 참아 주며 이해하고, 같이 존경하고, 협조하고, 사랑하는 데서 있게 되는 일종의 결실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천주님께서는 인간들의 이러한 고집과 모순 때문에 인간 서로의 평화를 위해 이 다음 우리의 부활 후에는 <끼리끼리> 모여 살게 하실 거예요. 그런데 쟌느 수녀님, 우리는 같은 별로 가야 해요. 저 별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로 가서 살아야 해요.\n나는 친구를 좋아하고 많은 벗을 갖고 싶어요. 나에게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좋은 벗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내 삶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기를 바래요. 물론 나도 남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신부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이 다음 우리의 육신이 부활한 다음 이 지상에서 서로 돕고 이해하고 아껴 주고 사랑하던 벗들이 저기 같은 별에서 모여 함께 살게 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어요. 나는 이 지상의 삶 주변에서 만난 모든 좋은 벗들과 저 별에서 함께 영원히 살고 싶어요.\n이것은 내가 어렸을 적에 생각한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이 동화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 그리고 천주님께서 나를 위해, 아니 쟌느 수녀님과 나의 삶 주변에서 만난 누리의 모든 버들을 위해 이 동화를 실현시켜 줄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어요. 쟌느 수녀님, 저 많은 별들 중에 어느 별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될까요? 수녀님, 별 하나 지적해 보세요! 그 별이 틀림 없이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천주님께서 미리부터 부탁 드려 놓겠어요. 그리고 쟌느 수녀님이 지적하는 별은 저 많은 별들 중에서 수녀님의 마음과 모습처럼 제일 아름다울 거예요! 수녀님, 별 하나 지적해 보세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있는 별을요!”\n“신부님이 우리의 고향이 될 별을 지적하세요. 나야 신부님만을 따라가면 될 걸요 뭐. 동양인의 풍속은 여필종부(여필종부)라고 언젠가 신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나 신부님만 따라갈래요.”\n“그럼 내가 우리의 고향이 될 별을 지적해 드릴게요. 수녀님, 저쪽의 저 별을 보세요! 저 나무 위에서 제일 크게 보이며 가장 강한 빛을 발하고 있는 저 별을요. 나는 욕심이 많아 큰 별을 좋아해요. 한국이라는 자그마한 나라에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무엇이나 크고 넓은 것을 좋아해요. 틀림 없이 저 별이 우리의 고향이 될 것이에요. 그리고 별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일 거예요. 쟌느 수녀님과 세실 수녀님 같은 아름답고 순결하고 착한 분들과 함께 살게 될 저 별이 틀림 없이 제일 크고 제일 아름다울 거예요! 나 천주님께 기도하겠어요. 저 별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되게 해 달라고요….”\n내 인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신부라는 새로운 내 삶의 과정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환희와 환멸이, 도 보람과 슬픔이 수없이 교차되는, 인간에의 재발견이라는 시련이었다. 그런가 하면 회의와 갈등과 반항이 엇갈리는 영적 암흑 속에 허덕이는 내 신앙의 고독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을 다음 기회에 <영원한 방랑객> 상,하권에서 다시 말해 보련다. 4. 원고 신형록과 피고 사이에서 생긴 소송총비용은 보조참가로 인한 부분을 포함하여 원고 신형록이 부담하고, 나머지 원고들의 항소비용은 보조참가로 인한 부분을 포함하여 나머지 원고들이 부담한다. 1. 피고가 1991. 10. 17.에 한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및 1991. 11. 13.에 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 시행인가처분은 각 무효임을 확인한다. 2. 위 1.항과 선택적으로, 피고가 2001. 5. 24.에 원고 신형록 및 원고 3537. 내지 원고 3539.에 대하여 한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사업시행인가처분 등 취소신청 거부처분을 취소한다. 원고들의 청구취지 기재의 청구와 제1심 공동피고 국무총리가 2001. 5. 25.에 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에 대한 정부조치계획 확정처분의 취소 및 이와 선택적으로 피고가 2001. 8. 6.에 한 정부조치계획에 대한 세부실천계획 확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청구에 대하여, 제1심법원은 ‘원고들의 제1심 공동피고 국무총리에 대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의 정부조치계획취소 및 피고에 대한 정부조치계획에 대한 세부실천계획취소’ 부분의 소를 각하한다는 판결을 하였고, 이 부분에 대하여 원고들이 항소하지 아니하였음은 기록상 분명하다. 따라서 원고들의 청구 중 제1심 공동피고 국무총리에 대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의 정부조치계획취소 및 피고에 대한 정부조치계획에 대한 세부실천계획취소 청구 부분은 그대로 확정되었고, 피고와 원고 신형록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이 항소한 부분, 즉 피고가 1991. 10. 17.에 한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및 1991. 11. 13.에 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 시행인가처분은 각 무효임의 확인을 구하는 청구 및 이와 선택적으로 피고가 2001. 5. 24.에 원고 신형록, 원고 3537. 내지 원고 3539.에 대하여 한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사업시행인가처분 등 취소신청 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청구만이 당원의 심판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이하 ‘새만금사업’이라 한다)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외곽시설 : 1991년~2004년, 내부개답 : 2004년~2011년) 농지조성과 용수개발을 주목적으로 하고, 전라북도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의 1도 2시 1군 19읍·면·동을 사업구역으로 하여, 사업구역에 인접한 하구해역 40,100㏊를 막아 28,300㏊의 토지와 11,800㏊의 담수호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방조제 4조 33㎞, 배수갑문 2개소 470.4m, 방수제 6조 138.3㎞, 양·배수장 13개소, 용·배수로 320㎞가 건설되며, 조성되는 28,300㏊의 토지는 식량단지 17,950㏊, 원예단지 2,500㏊, 해수어 및 담수어 양식단지 2,000㏊, 농촌도시 800㏊, 도로 등 기타 면적 5,050㏊로 이용될 예정이다. 새만금사업은 1971년 수립된 옥서지구(전북 옥구, 충남 서천) 농업개발사업계획에서 유래하였다. 1단계로 금강 하구 둑을 건설해 금강 주변의 관개배수를 개선하고, 2단계로 김제지구 간척을 포함한 김제, 부안, 옥구 등 만경강 주변 농경지에 대한 관개배수를 개선하는 내용의 옥서지구 농업개발사업계획은 IBRD 협력차관을 사용하기 위하여 구상되었고, 1972년에는 IBRD 조사단이 이 사업의 경제성을 직접 평가하기도 하였다. 김제지구 간척지 농업개발사업은 부안군 계화도와 옥구군 선연리를 연결하는 9.6㎞의 방조제를 쌓는 사업으로 김제, 만경, 진봉, 광할, 죽산면 일대의 관개배수 개선을 위하여 계획되었다. 농림수산부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기본조사를 실시하고, 1986년 기본조사를 토대로 본격적인 타당성 검토에 착수하였다. 농림수산부는 1986. 5. 개별지구단위로 진행되는 농업 목적의 간척사업을 종합개발 사업으로 전환하고, 김제·옥구·부안 등 3개 지구의 간척사업을 1개의 사업으로 통합하는 내용의 부안지구 복지농어도 종합개발사업을 구상하였다. 부안지구 복지농어도 종합개발사업은 그 후 서해안 간척사업계획으로 발전하였는바, 농림수산부는 1987. 5. 12. 서해안 간척사업이라고 이름이 붙은 새만금지구 간척사업의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서해안 간척사업은 8,2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군산 외항과 오식도 ~ 고군산열도 ~ 계화도 ~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를 연결하는 방조제 34㎞를 축조함으로써 총 42,000㏊의 간척지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위와 같은 서해안 간척사업계획이 당시의 전라북도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정치적 환경을 배경으로 새만금사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추진되게 되었다. 농림수산부장관은 1987. 12. 11. 새만금지구의 사업 타당성을 인정하여 사업추진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1988. 2. 1. 농림수산부 조성27245-142호로 새만금지구 간척지 개발사업 추진계획 수립을 시달하였으며, 이에 따라 같은 달 22. 농업진흥공사 내에 새만금사업단이 설치되었고, 같은 해 3. 4. 새만금조사사업소가 개소되었다. 그 후 농림수산부장관은 1989. 5. 22. 내무부, 건설부, 국방부, 상공부, 교통부, 해운항만청, 수산청, 환경청, 전라북도 등에 새만금사업 기본계획 협의공문을 발송하여 새만금사업의 시행에 따른 관련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1) 농림수산부에서는 1986. 6.경부터 1989. 8.경까지 사이에 새만금사업의 시행으로 인한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하였는데, 이 환경영향 평가에서는 새만금사업의 시행에 따라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는 군산시, 옥구군, 김제군, 부안군 일대의 자연환경(기상, 지형·지질, 생태계, 해양환경), 생활환경(토지이용, 대기질, 수질, 토양오염, 폐기물, 소음·진동·악취, 위락·미관, 위생·공중보건), 사회·경제환경(인구, 산업, 농산물생산 및 내수면 개발, 주거, 공공시설, 교통, 문화재)에 관한 영향을 조사하였고, 그 결과 자연 및 생활환경에서 안개 일수 증가, 방조제 축조로 인한 리아스식 해안선의 단순화, 공사용 토석재 채취로 인한 국부적 지형변화 등의 환경의 변화가 있지만, 간이 기상관측소 설치, 방풍림 녹지대 조성 등의 많은 대책을 시행함으로써 악영향을 최소화할 계획이고, 새만금사업은 인접한 전주, 이리, 군산, 부안 권역과 관련하여 산업 및 생활기반을 광역 개발하고 해상관광 및 농업단지 조성, 고군산군도에 해수욕장 개발, 위생공중보건시설 등 편익시설을 설치함으로 새로운 농촌환경기반이 조성되어 사업지역 주민의 생활이 많이 향상될 전망이므로, 새만금사업의 시행으로 인한 국토확장, 식량증산, 담수자원 확보로 각종 용수원 공급 등 직접적인 효과 외에 배수 개선, 고용 창출, 재해 예방 등 간접효과가 있어 2000년대를 향한 국토의 효율적 균형개발사업으로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환경영향평가서(을6)가 작성되었다. 2) 한편, 환경청장은 1989. 6. 22. 농림수산부장관의 관련 부처에 대한 1989. 5. 22.자 새만금사업 기본계획 협의요청 공문에 대하여 농림수산부장관에게 새만금사업의 시행으로 해양환경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조류의 변화(유향, 유속, 유량 등)에 따른 침식 및 토사 퇴적에 의한 해저지형의 변화로 인한 해양환경 변화’, ‘매립으로 인한 해수 순환 장애, 담수호로부터의 호소수의 대량 방류로 인한 급격한 해수의 염분 저하에 따른 해양생태계 파괴 및 인근 양식장 피해’ 등 7개 사항을 보완한 후 재협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하여 농림수산부장관은 1989. 8. 22. 환경 분야 재협의를 위하여 해양환경의 악영향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보완자료와 함께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였다. 3) 환경청장은 다시 1989. 12. 22. 농림수산부장관에게 새만금사업의 시행 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며 재검토 결과 그 사업시행이 불가피하다면 ‘사업시행의 불가피성에 대한 자료’, ‘조류가 많이 발생하는 하절기에 저류수를 방류하여 물의 순환을 촉진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담수를 방조제 외측 해역에 방류할 경우 방류해역 인근의 저염분화(低鹽分化) 및 오염으로 인하여 미치는 수산물 피해 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조성될 담수호는 부영양화(富營養化) 현상으로 인한 적조 발생 등으로 농업용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되는바, 부영양화의 정도와 부영양염류의 목표수질 및 구체적인 대책’ 등 7개 사항을 보완한 다음 재협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농림수산부장관은 1990. 3. 14. 환경처장관( 1989. 12. 30. 법률 제4183호로 개정된정부조직법 제26조, 부칙 제2조에 따라 환경처가 신설되어 환경청장의 소관 사무를 환경처장관이 승계하였다)에게 위 보완사항에 대한 보완자료(갑60의 6)를 제출하였고, 환경처장관은 같은 해 12. 24. 새만금사업계획을 검토한 결과 방조제 건설에 따른 부유토사 확산, 인공담수호의 부영양화 등 개발로 인한 해양오염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에 따라 사업을 추진토록 하여야 한다고 회신하였으며, 1991. 6. 8.에는 농림수산부장관 및 전라북도지사에게 새만금사업에 대하여 기상, 지형·지질, 해양, 대기질, 수질, 폐기물, 소음·진동 등의 항목별 협의내용을 통보하면서 그 협의내용 및 환경영향평가서(보완서 및 재보완서)에 제시된 환경피해 저감방안과 사후 환경관리계획을 반드시 이행하고,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제12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재협의 대상과 협의내용 중 환경오염 저감대책 등과 관련되는 사항의 변경시에는 사전에 재협의 및 협의내용 변경을 할 것을 통지하여 구 환경정책기본법(1990. 8. 1. 법률 제4257호로 제정되고, 1993. 6. 11. 법률 제456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환경정책기본법’이라 한다) 제26조 소정의 협의를 하였다. 새만금사업의 주관부서인 농림수산부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1989. 11. 6. 새만금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후 농림수산부장관은 1991. 8. 13. 구 농촌근대화촉진법(1994. 12. 22. 법률 제482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농촌근대화촉진법’이라 한다) 제93조에 의하여, ‘사업시행자 : 농림수산부장관, 사업목적 : 간척종합개발·수자원개발, 사업구역 : 전라북도 군산시, 부안, 김제, 옥구군, 사업면적(매립면적) : 40,100㏊, 사업개요 : 방조제 4조 33㎞, 배수갑문 2개소, 토지개발 28,300㏊, 담수호 11,800㏊, 관개배수 양·배수장 13개소, 총사업비 : 1조 3,000억 원’으로 하는 새만금사업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같은 달 19.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4조에 의하여 새만금사업시행계획을 고시하였다. 농림수산부장관은 구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1994. 12. 23. 대통령령 제1443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1조 제9항에 따라 건설부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1991. 10. 17. 구 공유수면매립법(1997. 4. 10. 법률 제533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공유수면매립법’이라 한다) 제4조, 제29조의 규정에 의하여 농림수산부장관에게 새만금사업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내용의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이하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이라 한다)을 하고, 같은 달 22.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7조 및 동법 시행령 제12조 제1항에 의하여 이를 고시하였다. 농림수산부장관은 사업시행자의 지위에서 1991. 11. 13. 구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한 사업시행인가권자인 농림수산부장관에게 새만금사업의 시행인가를 신청하여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6조,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9조의2에 의하여 농림수산부장관으로부터, ‘사업시행자(피면허자) : 농림수산부장관, 사업목적 : 농지조성과 용수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간척종합개발, 사업구역 : 전라북도 군산시, 부안군, 김제군, 옥구군(1도 1시 3군 19개 읍면동), 사업시행기간 : 1991. 11. ~ 2004. 12.’로 하고, 사업면적, 사업개요, 총사업비는 위 1991. 8. 13.자 새만금사업 시행계획과 같은 내용의 새만금사업 시행인가처분(이하 ‘이 사건 시행인가처분’이라 하고,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과 이 사건 시행인가처분을 모두 합하여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이라 한다)을 받았고, 이 시행인가는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6조,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9조의2에 의하여 같은 달 16. 고시되었다. 감사원은 1998. 4. 27.부터 1998. 6. 13.까지 새만금 사업의 추진실태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1998. 9. 25.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바, 새만금 사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가) 새만금 사업의 개발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용역을 하면서 농수산 용지 및 공업 용지의 수요를 비합리적으로 분석하였고, 복합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검토를 하고서도 농수산 중심의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였다. (나) 새만금간척지를 복합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안보다 농수산 중심개발안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지반조성을 위한 성토비 등 투자비용을 적게 계상하고, 관광, 항만, 담수어 양식장 등 편익을 과다계상하는 방법에 의하여 농수산 중심개발안이 복합 산업단지안보다 경제적 타당성이 더 있는 것으로 분석하여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다) 농수산용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시행인가된 새만금 사업을 관계 법령에 따른 협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복합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임의변경을 추진하였다. (라) 재원 확보대책 없이 사업계획을 확정하거나 사업비를 적게 산정함으로써 사업비 부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등 사업추진이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마) 새만금 담수호의 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저수하도록 계획하여 수질오염 등을 가중시키거나 금강호 물의 수질이나 수량 등을 참작하지 아니하고 제염 및 오염 희석수로 새만금 담수호에 공급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가) 환경영향평가서에 발생 오염부하량 산정 등에서 오류가 있음에도 환경영향평가서가 적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보았고, 담수호 수질오염 방지대책이 미흡한 상태에서 사업을 시행하였다. (나) 수질보전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아니하여 목표연도 내에 사업완료가 곤란하고, 복합 산업단지로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추진하면서도 개발계획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지 않아 수질보전에 차질이 예상된다. (다) 새만금 담수호 수질오염 방지대책을 추진하면서 재원조달방안, 건설공기 등이 참작되지 아니한 환경기초시설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방조제 끝물막이 전까지 완료하여야 할 수질오염 방지시설을 방조제 끝물막이 후에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하거나 수질예측을 잘못하여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확보가 곤란하다. (라) 환경기초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곳에 설치하도록 하는 등 대상선정을 잘못하거나 건설기간, 재원확보방안 등을 감안하지 아니한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목표연도 내에 환경기초시설의 설치가 어렵게 되었다. (가) 경제성을 우선하여 안전성이 검증되지 아니한 끝물막이 공사를 설계하거나 파랑 값을 실측하지 않고 가상자료를 이용한 추정 값으로 방조제를 설계하여 방조제의 안전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나) 새만금 방조제의 축조로 인하여 발생되는 조류 변동에 따른 내측 간석지의 지형변화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있어 인근 시설물에 미치는 영향분석이 곤란하여 피해대처가 미흡하게 되었다. (가) 전라북도는 새만금 사업과 관련한 용지매수 및 보상업무만을 위임받았음에도 지역개발 및 사업관리업무까지 위임된 것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 인력의 효율적 운영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나) 토지용도별 수요예측, 공간배치 계획, 경제성 분석, 재원조달 방안 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국가계획으로 확정되지 아니한 새만금간척지의 지역개발 관련 용역 성과품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사업시행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위와 같이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다른 한편 1998년부터 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새만금사업의 시행에 따른 환경영향, 수질, 경제성 등과 관련한 문제들이 제기되자, 정부는 일단 새만금사업 시행에 따른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에서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1999. 5. 1.부터 14개월간 환경대책, 경제성, 수질보전대책에 관하여 조사를 실시하게 하였다. 그 후 제1심 공동피고 국무총리는 2001. 5. 25. 위 민관공동조사 결과, 관계 부처의 검토내용, 토론회 및 평가회의 결과를 참고로 하여 새만금사업에 대한 정부조치계획을 확정·발표하고 관계 부처에 지시사항을 시달하였으며, 피고도 이에 응하여 2001. 8. 6. 새만금사업 후속 세부실천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그 기본방향으로 새만금사업공사가 이미 58% 이상 진척되어 있어 공사를 중단하는 경우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초래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식량위기, 남북통일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사업의 완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면서, 다만 수질과 갯벌보전, 환경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보완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음 그 추진사항으로 방조제는 완공하되, 동진수역부터 먼저 개발하고 만경수역은 수질이 목표수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며, 그 밖에 ‘친환경적 사업추진계획’, ‘갯벌보전·관리 종합대책 추진’, ‘새만금사업의 환경 관련 소요 예산판단’, ‘추진체계 구축운영’ 등 사업의 계속추진과 관련된 사항을 밝힘과 아울러 농림부·환경부·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별 주요 조치사항을 정하고, 이에 따라 소관 부처별로 세부실천계획을 2001. 7. 말까지 마련하여 추진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정부는 새만금사업의 사업기간을 당초 2004년에서 2011년으로 연장하고(2004년까지 방조제공사를 완공하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내부개발공사를 시행하기로 함), 총사업비를 당초 1조 3,064억 원에서 3조 489억 원으로 증액하며(방조제 공사비 1조 7,337억 원, 내부개발비 1조 3,152억 원), 방조제를 우선적으로 완공한 후 수질문제를 고려하여 수질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동진강 수역을 먼저 개발하고, 만경강 수역은 수질이 목표기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는 내용으로 새만금사업계획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위 정부조치계획상의 순차개발방식은 방조제 공사를 2006년까지 완공한 후 동진수역에 대하여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담수화 작업을 진행하고 2012년부터 내부개발에 착수하는 것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피고의 새만금사업 후속 세부실천계획의 주요내용은 먼저 그 기본방향으로 정부조치계획에 따라 수질보전 및 친환경적 대책을 마련한 후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 등을 밝히고, 다음으로 그 세부실천계획을 크게 수질 보전대책, 새만금 내부 친환경 간척계획, 해양환경 보전대책 등으로 나누어 추진사업과 사업비 등을 정하고 있으며, 그 밖에 ‘과학적인 물 관리체계 구축’, ‘사업추진 체계 구축’, ‘재원조달 계획’ 등에 관한 사항을 밝히면서, 세부실천계획은 국무조정실 내 민관공동으로 구성된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에 상정·평가될 계획이라는 점과 향후 세부실천계획 시행과정에서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 전문가의 조사·연구와 새로운 환경처리기술 등을 반영하여 계속 보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이에 앞서 원고들은 2001. 3. 21. 새만금사업에 대한 사업목적, 환경영향평가, 경제성 분석 등에 있어서 감사원 특별감사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근거로 공유수면매립법(1999. 2. 8. 법률 제5911호로 전문 개정된 것, 이하 같다) 제32조, 농어촌정비법 제98조 제1항 소정의 취소사유가 발생하였음을 들어 피고에게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취소하여 줄 것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2001. 5. 24.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의 위 취소신청에 대하여 거부하는 회신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거부처분’이라 한다). 즉, ① 새만금사업은 1989년 환경영향평가 당시 총인(T-P, 이하 ‘총인’이라 한다) 등의 수질이 모두 4급수 기준 이내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되어 환경부(구 환경처)와 적법하게 협의를 마쳤으며, 일부 오염원 산정이 미흡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사항은 매립면허를 취소할 정도의 중대한 하자는 아니며, 그 후 민관공동조사단의 평가 결과 및 정부관계 기관의 추가 검토 결과에서 만경수역의 총인이 4급수 기준을 약간 초과하는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국내외 담수호의 수질관리실태 등을 고려해 볼 때 농업용 호소로서의 기능유지가 가능한 것으로 전망되고, ② 경제성 분석에 관하여 감사원으로부터 일부 편익 및 비용의 문제가 지적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공유수면매립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처분요구는 없었고, 이후 민관공동조사단에서 10개 시나리오를 구성·분석한 결과 모두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만경강·동진강 유역의 환경기초시설비는 새만금사업이 없더라도 동 유역의 수질 유지 차원에서 2000. 10. 24. ‘금강 수계 물 관리종합대책’ 등에 따라 별도로 추진될 사안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업비 문제로 공유수면매립면허와 사업시행인가를 취소할 이유가 없고, ③ 새만금사업은 우리나라가 람사협약에 가입하기 이전에 이미 착수되었고, 습지보전법 부칙 제3조에도 시행중인 간척지역은 습지보전대상에서 제외토록 명시되었으므로 람사협약과 습지보전법을 이유로 새만금사업을 취소할 이유가 없으며, ④ 내부간척지는 농지 위주로 조성한다는 정부방침에 변함이 없고, 사업 착수 이후 당시까지 사업시행계획서상의 토지이용계획에는 당초 인가내용대로 농지위주의 계획이 수록되어 있으며, 한때 홍보자료와 시행계획서상 사업효과란에 복합 산업단지 개발 구상이 제시되었으나 1998년 감사원 감사 이후 모두 철회·시정조치 되었고, ⑤ 공정이 지연된 것은 정부재정형편을 고려한 연도별 예산조달, 민간공동조사 등에 따른 연간 예산규모 축소, 공사노임·자재대와 같은 사업비 증액 등의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 불가피한 것이라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공유수면매립법 소정의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는 등 취소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1) 한편, 새만금사업은 1991. 11. 28.경 제1호 방조제 공사가 착공되고 이어 1992. 6. 10.경 제2, 3, 4호 방조제 공사가 착공된 이래, 1998. 12. 30.경 제1호 방조제 공사가 완공되어 도로공사까지 완료되었고, 2003. 6.경 제4호 방조제 개방구간 1.8km에 대한 물막이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현재 물막이공사 기준으로 총 방조제 33㎞ 중 개방구간인 제2호 방조제 2.7㎞(1.1km 구간과 1.6km 구간으로 2곳임)를 제외한 구간 약 30.3㎞(약 91.8%)의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졌고, 제3호 방조제는 현재 대부분의 공정이 완료되어 비탈면 안정을 위한 식생공사 및 도로부분 포장 등 마무리공사 중이며, 제4호 방조제는 돌 붙임, 흙 쌓기 등 단면 보강공사 중에 있다. (2) 또한, 새만금사업지구에는 홍수량 배제와 담수호 수위조절을 위하여 가력도와 신시도의 2개소에 배수갑문이 설치되도록 계획되어 있는데, 가력배수갑문은 2003. 12. 완공되어 물을 소통시키고 있고, 신시배수갑문은 현재 본체·교량 부분의 콘크리트공사가 완공되고 문짝 제작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06. 3.까지 제2호 방조제 개방구간에 대한 끝물막이공사가 각 마쳐지고, 그 후부터 2006. 12.까지 도로포장 등 방조제에 대한 마무리 공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1) 원고들 중 원고 1.(조경훈)부터 원고 99.까지는 전북 부안군에, 원고 100.부터 원고 107.까지는 김제시에, 원고 108.부터 원고 143.까지는 군산시에 각 거주하고 있고(이하 원고 1.부터 원고 143.까지를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이라 한다), 그 외 나머지 원고들은 목포시, 익산시, 전북 완주군, 전주시, 서울 등에 거주하고 있다(원고 97. 신형록은 제1심판결 선고 때까지는 전북 부안군 상서면 고잔마을 (번지 생략)에 거주하다가 제1심판결 선고 후 전북 부안읍 봉덕리 626-4 현대아파트 (동·호수 생략)로 옮겨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 원고들이 제1심판결서에 기재된 주소지에 현재도 거주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당사자 간에 다툼이 없다). (2) 1996. 8. 8. 법률 제5153호로 개정된 정부조직법 제41조, 부칙 제2조에 따라 해양수산부가 신설되어 종전의 농림수산부장관의 소관사무 중 수산 등에 관한 사무를 해양수산부장관이 승계하게 되었고, 농림수산부는 농림부로 명칭 및 조직이 변경되었으며, 현재 농림부가 새만금사업수립 및 예산지원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고, 이와 선택적으로 원고 97. 및 원고 3537. 내지 원고 3539.가 이 사건 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우선 본안전 항변으로 무효확인청구에 대하여는 원고들의 원고적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고, 거부처분 취소청구에 대하여는 이 사건 거부처분의 처분성(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므로, 양 청구에 관하여 본안전 항변을 먼저 판단한 다음 나아가 본안 판단을 하기로 한다. 1) 원고들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므로 그 무효확인을 구할 원고적격이 없다. 2) 원래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에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의 개념이 없어 평가대상지역이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채 자연환경, 생활환경, 사회경제환경 분야별로 서로 다르게 영향 예측 범위를 추정하는 수준이었고, 원래의 사업시행구역인 전라북도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의 19개 읍·면·동은 방조제 공사구역뿐만 아니라 공사로 영향을 받는 구역까지 포괄한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사업시행구역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의 범위로 보아야 하고,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 전 지역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으로 볼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원고 신형록 등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에 거주하더라도 사업시행구역 19개 읍·면·동이 아닌 그 밖의 지역에 거주하는 원고들은 원고적격이 없다. 3)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내에 거주하는 원고들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 일반이 공통적으로 갖는 추상적·평균적 환경상의 이익이 아니라 법률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있고,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상의 침해를 받았음을 입증하는 경우에만 원고적격이 인정되어야 한다. 1) 원고들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또는 시행인가처분의 직접적인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이지만 그 중 새만금사업의 시행지역으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거주하면서 관습에 의하여 공유수면으로부터 인수(引水)하거나 공유수면에 배수(排水)하는 자 또는 사업시행지역 내에 토지의 소유권, 기타 물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새만금사업의 근거 법규가 되는 구 공유수면매립법, 구 농어촌근대화촉진법 등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률상 개별적·구체적 이익이 있다. 2) 환경영향평가란 개발사업으로 인한 ‘사업지’의 환경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지를 포함하여 주변지역’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발사업으로 인하여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피해를 입으리라고 예상되는 지역의 주민이면 원고적격이 있는 것이고, 사업자가 정한 사업시행구역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 기재된 평가범위도 환경 인자에 따라 ‘사업지역 주변 반경 20㎞ 이내의 지역’(대기질), ‘사업지구 인접 3개 군(옥구, 김제, 부안군) 전체 지역’(육상생태계) 등으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상의 사업시행구역인 19개 읍·면·동이 아닌 그 밖의 지역인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에 거주하는 원고들에게도 원고적격이 있다. 3) 헌법 제35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환경보전시책에 협력하고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등 기본권으로서의 환경권이 헌법 및 법률에서 명문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환경권을 법으로 보호해 주어야 하는, 중대한 이익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권리로 볼 수 있고, 한강 이남의 유일한 대형 하구생태계인 새만금갯벌이 사라질 경우 새만금 사업시행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들에게도 희귀 생태계의 소멸 등에 따른 환경피해가 직접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므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들도 원고적격이 있고, 특히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원고 3537. 내지 3539.(문규현, 윤준하, 최열)는 일반 국민보다 고양된 법적 지위에서 헌법 제35조 소정의 공법상 환경권에 기하여 이 사건 각 처분의 취소나 무효를 구할 수 있는 법률상 이익을 가진다 할 것이므로, 이러한 지위에 있는 위 원고들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상 실질적 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 4)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 제10조, 구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제2조 [별표 1]의 수질기준 규정은 적정한 환경기준을 설정하고 그 달성을 통하여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보호하려는 것으로서 개인의 환경이익을 구체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규정이다. 그러므로 위 수질기준을 초과하는 수질오염으로 인하여 생명, 신체, 재산 등에 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때에는 당연히 그 배제를 청구할 수 있는 실체적 권리가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구 환경정책기본법령상 수질기준을 초과하는 등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이 오염되면 그 물을 사용하여 재배한 농작물에도 유해성 물질이 잔존함으로써 그 농작물을 먹는 자체가 원고들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피해를 주거나 줄 우려가 있다 할 것이므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들에게도 원고적격이 있다. 행정소송법 제35조는 “무효 등 확인소송은 처분 등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의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라도 그 처분으로 인하여 법률상 이익을 침해당한 경우에는 그 처분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그 당부의 판단을 받을 법률상 자격이 있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법률상 이익이라 함은 당해 처분의 근거 법률 등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 있는 경우를 말하고, 단지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 일반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추상적·평균적·일반적인 이익과 같이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데 불과한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하며( 대법원 1995. 6. 30. 선고 94누14230 판결, 1995. 9. 26. 선고 94누14544 판결 등 참조), 한편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률상 이익이라 함은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근거 법규가 다른 법규를 인용함으로 인하여 근거 법규가 된 경우까지를 포함)의 명문 규정에 의하여 보호받는 법률상 이익과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지는 아니하나, 당해 처분의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단계적인 관련 처분들의 근거 법규, 즉 관련 법규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보호받는 법률상 이익은 물론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서 명시적으로 당해 이익을 보호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의 합리적 해석상 그 법규에서 행정청을 제약하는 이유가 순수한 공익의 보호만이 아닌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되는 경우까지를 말한다( 대법원 2004. 8. 16. 선고 2003두2175 판결 참조). 그러므로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가 보호하려는 이익이 개별적·직접적·구체적인 이익인지 일반적·간접적·추상적 이익인지 여부는 당해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 등의 취지·목적, 당해 처분을 통하여 보호하려고 하는 이익의 내용·성질·태양 등을 종합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매립면적이 40,100㏊로서 구 환경보전법 시행령(1991. 2. 2. 대통령령 제13303호로 제정된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부칙 제3조에 의하여 폐지되기 전의 것) 제4조의2 제2항 [별표 1], 구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1992. 8. 22. 대통령령 제1371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조 제2항 [별표 2] 차.의 (1)에 의한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 시행되던 구 환경정책기본법은 제1조에서 “환경보전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와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환경보전시책의 기본이 되는 사항을 정함으로써 환경오염으로 인한 위해를 예방하고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을 적정하게 관리·보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6조 제1항, 제2항에서 “도시의 개발, 산업입지 및 공업단지의 조성, 에너지 개발, 항만 건설, 도로 건설, 수자원 개발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환경보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사업계획안과 그 사업이 환경에 미치게 될 영향의 예측 및 평가에 관한 서류인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여 미리 환경처장관에게 협의를 요청하여야” 하는데, “사업자는 당해 사업 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7조에서 환경처장관은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한 후, 그 사업이 환경보전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사업계획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사업자 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사업계획의 조정 및 보완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요청할 수 있고, 환경처장관은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함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사업자에 대하여 관련 자료 등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으며, 환경처장관의 요청을 받은 자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8조 제1항, 제2항에서 “환경처장관은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협의내용의 이행 여부를 조사·확인하여야” 하고, “조사·확인 결과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협의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하였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시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요청하여야 하며, 이 경우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4조에 의한 것이고, 이 사건 시행 인가처분은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96조 및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9조의2에 의한 것으로서, 피고가 그 매립면적이 40,100㏊로 구 환경정책기본법상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에 해당하는 새만금사업에 관하여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함에 있어서는 구 환경정책기본법에서 정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서 환경처장관에게 협의를 요청하고 그 협의내용이 이행되어야 하므로, 구 환경정책기본법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근거 법규에 해당한다. 한편,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구 환경정책기본법이 시행되기 전인 구 환경보전법(1989. 12. 30. 법률 제418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조, 제5조의2 등의 규정에 의한 것이었는데, 구 환경정책기본법 부칙 제3조에 의하면, 종전의 환경보전법 규정에 의하여 행한 환경영향평가에 관한 서류의 작성 및 협의 등은 제26조 또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고, 구 환경영향평가법(1993. 6. 11. 법률 제4567호) 부칙 제2조, 제3조의 규정에 의하면, 종전의 환경정책기본법 규정에 의하여 작성 또는 협의 요청되거나 재작성 또는 재협의 절차가 진행 중인 평가서는 제5조 내지 제10조, 제16조 또는 제21조의 규정에 의하여 작성 또는 협의 요청되거나 재작성 또는 재협의 절차가 진행 중인 평가서로 보고, 통보된 협의내용은 제18조의 규정에 의하여 통보된 협의내용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구 환경보전법령에 의하여 환경영향평가를 거친 새만금사업은 결국 구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하여 환경영향평가를 거친 것으로 간주된다. 위와 같은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의 규정 취지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이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아니하게 시행되도록 함으로써 주변의 환경공익을 보호하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사업으로 인하여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피해를 입으리라고 예상되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들이 개발 전과 비교하여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침해를 받지 아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개별적 이익까지도 이를 보호하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과 관련하여 갖고 있는 위와 같은 환경상의 이익은 단순히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일반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추상적·평균적·일반적인 이익에 그치지 아니하고, 주민 개개인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인 이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대법원 1998. 4. 24. 선고 97누3286 판결, 1998. 9. 22. 선고 97누19571 판결, 1998. 10. 20. 선고 97누5503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은 새만금사업이라는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단계적 처분들로서 위와 같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이 갖고 있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인 환경상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구 환경보전법, 구 환경정책기본법 및 구 환경영향평가법 모두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근거 법규가 되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고,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26조 제2항이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당해 사업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포함시키도록 규정하여 당해 사업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게 되었고, 구 환경영향평가법 제7조에 “환경영향평가는 대상사업의 시행으로 환경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으로서 환경영향을 과학적으로 예측, 분석한 자료에 의하여 범위가 설정된 지역(이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라 한다)에 대하여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제9조에 “사업자가 평가서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설명회 또는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이하 ‘주민’이라 한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평가서의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규정됨으로써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의견수렴을 하여야 하는 대상인 주민의 범위에 있어서는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26조 제2항이 ‘당해 사업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주민’이라고 규정하고, 구 환경영향평가법 제7조, 제9조 제1항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이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이 되는 지역은 구 환경정책기본법과 구 환경영향평가법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들의 환경상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 환경상의 이익으로 보아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것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 ‘대상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이라고 과학적으로 예측·분석한 자료에 의하여 그 범위가 설정되기 때문이지,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을 확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원이 제3자의 원고적격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구속됨이 없이 소송자료와 증거자료 등을 종합하여 원고가 대상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 안의 주민인지 여부를 판단하면 되고, 이 경우에 사업자가 설정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이라면,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환경상의 이익침해 또는 이익침해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추정된다고 할 것이고, 사업자가 설정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의 주민은 과학적으로 예측·분석한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당해 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원고적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할 것이며, 그것이 입증된 지역은 모두 구 환경영향평가법에서 말하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구 환경보전법령에 따라 작성된 새만금사업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서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 뚜렷하지 않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상의 사업구역은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군, 김제군, 부안군의 19개 읍·면·동으로 되어 있으나, 앞서 인정한 기초사실과 갑11, 을가6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 기재된 평가범위에도 당시 사업구역으로 지정된 19개 읍·면·동 이외에 환경 인자에 따라 국지기상(局地氣象) 항목은 군산시·부안군 지역, 육상생태계 항목은 사업 지구에 인접한 옥구, 김제, 부안군 전체지역, 대기질(大氣質) 항목은 사업지역 내 간사지를 중심으로 반경 20㎞ 이내의 지역, 수질 항목은 사업구역 외인 부안군 부안읍의 2개 지점이 각 환경영향이 미칠 수 있는 지역으로 명시되어 있는 점, 1991. 8. 19.자 새만금사업 시행계획 고시에는 사업구역이 전라북도 군산시, 부안, 김제, 옥구군으로 되어 있는 점 및 기타 새만금사업의 사업면적, 사업개요, 사업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가 지정한 사업구역을 넘어 인접 시·군인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지역에 주거를 둔 주민들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에 의하여 생명, 신체, 중요한 재산 및 환경상 이익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므로,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은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전 지역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거주하는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의 경우에는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고,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원고적격도 인정된다. 그러나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을 제외한 나머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들은, 위에서 본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일반 국민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추상적·간접적인 환경상 공익을 넘어 개별적ㆍ직접적ㆍ구체적 이익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아무런 입증이 없으므로, 환경상 이익의 침해를 이유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 헌법 제35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에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환경보전시책에 협력하고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35조 제1항은 환경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승인하고 있으므로, 사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도 이러한 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도록 배려하여야 하나, 헌법상의 기본권으로서의 환경권에 관한 규정만으로는 그 보호대상인 환경의 내용과 범위, 권리의 주체가 되는 권리자의 범위 등이 명확하지 못하여 이 규정이 개개의 국민에게 직접으로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사법적 권리인 환경권을 인정하면 그 상대방의 활동의 자유와 권리를 불가피하게 제약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법상의 권리로서의 환경권이 인정되려면 그에 관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있거나 관계 법령의 규정 취지나 조리에 비추어 권리의 주체, 대상, 내용, 행사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대법원 1995. 5. 23.자 94마2218 결정 참조), 사법상의 권리로서의 환경권을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데도 환경권에 기하여 직접 방해배제청구권을 인정할 수는 없다( 대법원 1997. 7. 22. 선고 96다56153 판결, 1999. 7. 27. 선고 98다47528 판결 등 참조)고 할 것이고,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도 그 규정 내용 등에 비추어 국민에게 구체적인 권리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으로 말미암아 새만금갯벌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환경침해가 크다고 하더라도, 환경권에 대하여 명문의 법률규정이나 관계 법령의 규정 취지 및 조리에 비추어 권리의 주체·대상·내용·행사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되어 있다고 볼 수 없는 이상, 환경권을 구체적인 권리로 볼 수 없어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을 제외한 나머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들(이하 ‘나머지 원고들’이라 한다)에게 헌법상의 환경권에 기한 원고적격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라고 하여 일반국민과 달리 고양된 법적 지위에서 헌법 제35조 제1항 그 자체에 의하여 원고적격을 갖는다고 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그와 같은 주장은 오히려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반하여 이유 없다.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5조 제1항, 제6조에서,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지는 자라 함은 공유수면의 점유ㆍ사용 허가를 받은 자, 어업권자 또는 수산업법 제2조 제7호의 규정에 의한 입어자(入漁者),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허가를 받아 공유수면으로부터 인수하거나 공유수면에 배수하는 자, 관습에 의하여 공유수면으로부터 인수하거나 공유수면에 배수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구 농촌근대화촉진법 제6조에서 “이 법에서의 이해관계인이라 함은 당해 농지개량사업 또는 농가주택개량사업에 관계가 있는 토지 및 그 토지에 부착된 물건의 소유자나 그 토지 또는 물건에 관하여 등기된 권리를 가진 자 또는 어업권자와 수산업법 제2조 제7호의 규정에 의한 입어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원고들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과 관련된 구 공유수면매립법상의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 또는 구 농촌근대화촉진법상의 이해관계인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그들에게 위 각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구 환경정책기본법이 환경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에 따라( 제10조 제2항), 구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제2조는 [별표 1]에서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바, 환경기준 설정분야는 대기·소음·수질 3개 분야로, 수질분야는 수역별, 항목별로 수질환경 기준이 설정되어 있고, 수역별로는 하천, 호소, 지하수, 해역으로 구분하며, 항목별로는 생활환경 기준으로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총질소(T-N), 총인(T-P) 등 8개 항목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등급별로는 하천·호소에 5개 등급, 해역에 3개 등급으로 구분하여 각각 기준을 차등 설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수질기준과 같은 환경기준은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하여 국가가 달성하고 유지하여야 할 환경의 질적 수준에 대한 계수화된 기준으로서 환경행정의 기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행정의 노력목표를 나타내는 지표에 불과할 뿐, 직접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법규로서의 성격이나 국민에 대하여 행정상의 규제기준이 되는 법적 효과를 가지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 제10조, 구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제2조 [별표 1]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수질보전 그 자체뿐이고, 수질이 지켜짐으로써 일반국민이 수질오염으로 인한 유해 농작물을 섭취하여 건강상의 피해를 입지 않을 이익 등은 수질보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이 달성됨에 따라 일반적·반사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에 불과하므로, 나머지 원고들에게는 위와 같은 수질기준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개별적·구체적인 법률상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며,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6조, 제10조, 구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 제2조 [별표 1]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근거 법규나 관련 법규라고도 하기 어려워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근거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인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에 거주하는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은 이 사건 무효확인 청구소송의 원고적격이 인정되나,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은 그 원고적격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이 부분 피고의 본안전 항변은 이유 있다. 이 부분에 관한 피고의 본안전 항변은, 원고 신형록 및 원고 3537. 내지 3539.(이하 ‘원고 신형록 등 4인’이라 한다)가 2001. 3. 21. 피고에게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취소하여 줄 것을 신청한 것에 대하여 피고가 2001. 5. 24. 이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회신을 한 행위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서 위법한 거부처분이라는 이유로 그 취소를 구하는 소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거부처분의 처분성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 요건인 신청권의 존부는 구체적인 사건을 떠나 관계 법규의 해석에 의하여 일반국민에게 그러한 신청권을 인정하고 있는가를 살펴 일반적·추상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데, 공유수면매립법, 농어촌정비법 등 관련 법령 어디에도 국민이 농림부장관의 제3자에 대한 공유수면매립면허 등 처분의 취소·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명문의 규정이 없고,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및 농어촌정비법 제98조는 소정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농림부장관 등 처분청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등을 취소ㆍ변경하거나 공사의 중지, 물건의 개축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는 권한 내지 권능을 부여하고 있을 뿐 농림부장관에게 그 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므로, 위 조항들이 그 근거 규정이 될 수 없으며, 그 밖에 위 법 규정의 해석을 통해 조리상으로도 위 원고들에게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등의 취소를 요구할 권리가 인정될 여지가 없으므로, 이 부분 소는 취소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행위를 대상으로 하여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공유수면매립법은 공유수면을 환경 친화적으로 매립하여 합리적으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고( 제1조), 해양수산부장관은 매립공사의 준공인가 전에 공유수면의 상황변경 등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공익상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면허 또는 인가 등을 취소ㆍ변경하거나 매립공사의 시행구역 안에 있는 공작물 기타 물건의 개축ㆍ제거 또는 원상회복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고(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제3호), 농업을 주목적으로 하는 매립에 있어서는 농림부장관이 해양수산부장관으로부터 권한을 위탁받아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면허취소 등의 처분을 할 수 있으며( 공유수면매립법 제40조, 같은 법 시행령 제40조 제4항, 제1항 제10호), 농림부장관은 사정의 변경으로 인하여 정비사업의 계속적인 시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공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농림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 법에 의한 인가·승인·허가 또는 지정을 취소하거나 공사의 중지, 물건의 개축·변경·이전·제거의 조치를 명하거나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농어촌정비법 제98조 제1항). 그런데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에서는 각 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농림부장관 등 처분청이 공유수면매립면허 등을 취소ㆍ변경하거나 공사의 중지, 물건의 개축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하면, 해양수산부장관은 10년마다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도록 하면서( 같은 법 제4조), 매립기본계획은 환경과 조화되도록 수립하여야 하며, 매립 예정지별로 ‘매립으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의 변화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과 그 대책에 관한 사항’, ‘매립예정지의 토지이용계획과 관련한 경제성 비교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6조 제4호, 제5호), 매립으로 인한 환경 및 생태계의 변화라 함은 간석지 또는 내륙습지의 훼손 및 변화, 해류 및 조류의 변화와 토사의 이동, 수산동식물의 서식환경 등의 변화를 말하며( 같은 법 시행령 제5조), 위와 같은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은 지체 없이 관보에 고시하고 14일 이상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같은 법 제7조 제1항, 제2항), 해양수산부장관은 5년마다 매립기본계획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고 매립기본계획의 변경 또는 폐지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며( 같은 법 제8조 제1항),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매립면허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9조 제3항). (가) 행정소송법상 ‘처분’이라 함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을 말하고(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국민의 적극적 행위신청에 대하여 행정청이 그 신청에 따른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한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려면, 그 신청한 행위가 공권력의 행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어야 하고, 그 거부행위가 신청인의 법률관계에 어떤 변동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하며, 그 국민에게 그 행위발동을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어야만 한다(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두9929 판결, 2003. 9. 23. 선고 2001두10936 판결 등 참조). (나) 이 사건에 관하여 본다. 우선, 원고 신형록 등 4인이 피고에게 신청한 행위는 행정청에 대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등 처분의 취소행위이므로 공권력의 행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임이 분명하다. 다음, 위 가.항에서 본 바와 같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의 환경상의 이익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침해를 받지 아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이익으로서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인 이익이라 할 것이므로, 적어도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에 거주하는 원고 신형록의 경우는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고, 따라서 피고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취소신청에 대하여 거부한 행위는 원고 신형록의 실체적인 권리관계에 직접적인 변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봄이 옳다. 다만,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 3537. 내지 3539.의 환경상 이익은 단순히 공익보호의 결과로 국민 일반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추상적·평균적·일반적인 이익에 그칠 뿐이고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상 보호되는 개별적ㆍ직접적ㆍ구체적 이익은 아니라고 함이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원고들의 경우 피고의 위와 같은 거부행위로 인하여 그들의 법률관계, 즉 실체상의 권리관계에 어떠한 변동이 생겼다고 볼 수 없다. (다) 나아가, 취소 신청권에 관하여 본다. 공유수면매립법 등 관계 법령에 국민이 행정청에 대하여 제3자에 대한 공유수면매립면허 등의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없고, 면허의 취소·변경 등을 규정한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도 그 소정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피고 등 처분청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등을 취소ㆍ변경하거나 공사의 중지·물건의 개축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와 관련한 처분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① 앞서 본 바와 같이 농림부장관은 공유수면매립면허와 관련하여 사전에는 환경 및 생태계 변화와 그 대책, 매립 전·후의 경제성 비교 등을 정하여 환경과 조화되도록 10년마다 매립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14일 이상 인근 주민을 포함한 일반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관보에 고시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타당성을 5년마다 검토하여 폐지ㆍ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고, 구체적인 개별 매립면허는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매립면허를 취소ㆍ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와 같이 공유수면매립법은 매 5년마다 매립기본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기본계획의 변경·폐지 등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공유수면 매립면허는 그와 같은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한 범위에서만 부여하여야 하므로, 어떤 구체적인 매립면허에 의하여 매립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환경 및 생태계 또는 경제성에 있어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발생하였다면, 처분청은 ‘공유수면을 환경 친화적으로 매립하여 합리적으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그 매립면허 자체를 취소·변경하는 등의 조치까지 검토하는 등의 방법으로 매립기본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하여야(새만금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여태껏 가장 거대한 간척사업인 만큼 그 사업의 타당성 여부는 매립기본계획의 타당성 여부와 직결된다고 할 것이다.) 함이 공유수면매립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점, ② 헌법과 환경정책기본법은 인간의 삶의 요소인 건강·안전·행복을 달성하는 방편으로 환경권을 규정하고 있으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환경 보전을 위한 노력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바, 이와 같은 환경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로부터 도출되는 인격권적 기본권으로 볼 것이며, 한편 공유수면은 그 매립이 일단 완료된 후에는 그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고, 특히 환경 및 생태계 변화는 그 성격상 국가가 매립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나 면허처분을 할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당초의 예측을 고정된 좌표로 삼아 사업을 진행하게 될 경우 자칫 환경 및 생태계 변화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위험은 광범위한 점(환경침해의 회복 불가능성 및 광역성)에 비추어, 공유수면매립면허에 의하여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에 거주하는 주민이 수인할 수 없는 환경침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개별적·구체적 환경이익을 침해당하였다면, 그 매립면허의 처분청에 대하여 그 이익 침해의 배제를 위하여 면허의 취소·변경 등을 요구할 위치에 있다고 봄이 법치행정 원리에 비추어 상당한 점, ③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에 있어 환경상의 이익을 침해당한 개인이 공유수면매립면허가 취소되거나 변경됨으로써 그 이익을 회복하거나 침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여 주도록 요구하는 재판 청구에 대하여 소송요건 심리에서 이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 본안에 나아가 판단함이 개인의 권리구제를 본질로 하는 사법국가 원리에도 부합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적어도 원고 신형록과 같이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에 거주하는 주민에게는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침해를 받지 아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개별적·구체적·직접적 이익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그 이익 침해의 배제를 위하여서도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의 처분청인 피고에게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취소·변경 등의 사유가 있음을 내세워 면허의 취소·변경을 요구할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다고 보아야 함이 상당하다. 다만,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밖에 거주하는 원고 3537. 내지 3539.의 환경상 이익은 앞서 본 바와 같이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령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ㆍ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아니라 할 것이므로, 위 원고들에게는 피고에 대하여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취소 등 처분을 신청할 조리상의 신청권을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거부처분 취소청구의 소 중 원고 신형록의 청구 부분만 적법하고, 원고 3537. 내지 3539. 부분은 부적법하다. 피고보조참가인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에 대하여 사후에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취소·변경 요건이 충족된 것인지 여부는 정책의 판단자인 처분청에 판단 여지가 있는 재량처분으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거나, 원고 신형록의 청구는 개인의 법적 이익의 구제가 아니라 환경, 갯벌 등 공적 이익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객관적 소송의 형태를 띠고 있어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행정청에 판단여지가 있는 재량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재량권의 한계를 넘거나 남용한 때에는 위법성의 문제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바( 행정소송법 제27조), 법원은 행정청의 재량에 기한 공익판단의 여지를 감안하여 독자의 결론을 도출함이 없이 그 재량권 행사의 기초가 되는 사실 인정의 오류, 법령 적용의 잘못 및 비례·평등의 원칙 위배 등을 심사하여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가 있는지를 판단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원고 신형록의 경우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개인의 구체적·직접적 이익의 보호를 위하여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것이므로, 그 소송에 의하여 공적 이익의 구제가 따른다고 하여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피고보조참가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사건 소 중 본안에 나아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의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무효확인청구와 원고 신형록의 이 사건 거부처분 취소청구라 할 것이고, 그 중 원고 신형록은 무효확인청구와 이 사건 거부처분의 취소청구를 선택적으로 구하고 있다.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이하 이 장에서는 ‘원고들’이라 한다)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에 대하여 ① 사업의 경제성 결여, ② 사업의 필요성 결여, ③ 적법한 환경영향평가의 결여, ④ 담수호의 수질기준 달성 불능, ⑤ 매립기본계획에 부적합한 대규모 매립면허, ⑥ 공유수면에 권리를 가진 자의 동의 및 보상 결여 등 법적 요건에 흠결이 있음을 전제로 이러한 위법사유는 관련 법령의 규정 취지에 비추어 중대한 하자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의 주관부서인 피고의 직무내용 등에 비추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 객관적으로 명백한 하자에 해당한다. 가사 그 하자가 명백히 인식할 수 없는 정도의 것이라 하더라도 이 사건에 있어서 하자의 명백성 요건은 필요 없이 하자의 중대성만으로 충분히 무효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자의 명백성이 행정처분의 당연무효 사유로서 필요한 요건인지에 관하여 보건대,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며,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 것인지 여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그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함을 요한다(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전원합의체판결, 2005. 6. 24. 선고 2004두10968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이와 다른 입장에서 행정행위의 무효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명백성은, 행정처분의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하여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는 한편, 그 행정처분을 유효한 것으로 믿은 제3자나 공공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하자가 워낙 중대한 경우 등에는 하자가 명백하지 않더라도 당연무효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구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하면 농림수산부장관은 직권 또는 사업시행자의 신청에 의하여 농지개량사업 시행예정지를 조사할 수 있고, 그 결과 농지개량사업의 사업성이 인정되는 지구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그 기본계획에 따라 농지개량사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지구에 대하여는 농지개량사업 시행계획을 수립하여 사업시행자를 지정하고 고시하여야 하고( 제2조, 제91조, 제92조, 제93조 제1항), 그 시행령에 의하면 기본계획과 사업시행계획에 ‘수지예산서, 공사비 내역, 사업효율 분석’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제43조, 제44조, 제45조참조),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하면 해양수산부장관 등은 ‘매립 예정지의 토지이용계획과 관련한 매립 전·후의 경제성 비교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 매립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그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매립면허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4조, 제6조, 제9조 제3항). 그러므로 농지개량사업인 새만금사업에서 사업의 경제성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요소가 된다 할 것이다. 구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하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에는 사업성 내지 경제성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데, 새만금사업에 대한 기본계획서 작성 당시 그 기초가 된 경제성 내지 사업성 평가에 있어서 편익·비용 항목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아니하고 지반조성을 위한 성토비 등 투자비용을 적게 산정하거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누락시키고, 관광·항만·담수어 양식장 등 편익을 과다 계상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편익-비용분석을 실시한 사실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의하여 밝혀졌다. 그러므로 피고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무모하게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부풀려서 추진한 위법이 있고, 감사원 감사 이후 2000년에 있은 민관공동조사단의 경제성 분석에서도 국토확장 효과, 식량안보 가치, 논의 공익적 효과 등 편익을 과다 계상하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변화 및 갯벌의 가치 등 비용을 적게 계상하여 정당한 경제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그 분석 방법이나 고려 요소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분석 결과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법률적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다. 한국산업경제원의 경제적 타당성 보고서에 의하면, 할인율 10%를 적용했을 경우 편익/비용비율(B/C Ratio)이 1.19이고 내부 투자 수익률(I.R.R.)이 11.5%로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고,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할인율 8%를 적용했을 때 10개의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모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내세워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이 부실한 경제성 분석에 근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농림부에서는 새만금사업의 경제성 분석을 위하여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1988. 12. 작성한 ‘새만금지구 간척지의 최적 이용을 위한 구상’이라는 경제성 분석 결과에 따라 새만금사업은 농지조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1989. 11. 6.경 새만금기본계획을 확정하였다. 그 후 위 경제성 분석 결과에 대하여 1998. 9. 25.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제점이 지적되자 민관공동조사단 경제성 분과에서는 1999. 5. 1.부터 14개월간 경제성 분석을 다시 실시하여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조사보고서에 대하여도 편익항목 설정과 분석방법 등 상당한 분야에 걸쳐 조사위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가)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은 새만금사업에 대한 1988년 당시의 경제성 분석에서 토지이용계획을 ① 간척지를 모두 미곡 위주의 순 농경지로 활용하는 방안(대안 1), ② 간척지를 모두 농경지로 조성하되 일부 토지를 전용가능하도록 조성하는 방안(대안 2), ③ 농업용지, 공업용지 및 도시화 용지로의 복합개발방안(대안 3)으로 구분한 후 각 대안별로 나누어 경제성 평가를 하였다. 그 결과 할인율 10%를 적용할 경우 모든 대안들에 있어서 편익·비용 비율이 1을 넘어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위 경제성 분석에서는 직접적인 편익{소득 창출 효과(관광소득 포함), 토지자원 창출 효과, 수자원 개발 효과, 침수 및 홍수피해 방지 효과, 내수면 개발 효과}, 간접적인 편익(지역 간 균형발전 효과, 관련 산업 파급효과, 주변지가 상승효과, 항만건설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 배후지 배수개선 효과, 고용증대 효과)을 계상하고, 비용으로는 직접투자비용(건설공사비용, 용지매수 보상비, 어업권 보상비 등), 유지관리비용(행정사무비용, 수선유지를 위한 자재비 및 노임)을 계상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비용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변화는 예상하였으나, 그 구체적인 비용을 산정하지는 않은 채 분석하였다. 또한, 할인율을 적용함에 있어서 당시 우리나라 공공투자의 비용·편익 분석에서 사용되는 할인율은 13%였으나 이는 1981년에 산정된 민간부문의 투자 수익률을 근거로 채택된 수준이고, 당시 우리나라 경제여건의 변화를 반영하여 사회적 적정할인율을 선정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적정할인율을 10%로 추정하고 있음을 참작하여 적정할인율 10%를 적용하고, 일반적 할인율인 13%와 함께 분석하였다. 나) 한편, 농림부는 위 경제성 분석 결과를 기초로 1989. 11. 6. 새만금사업기본계획을 확정하였는데 분석 결과는 할인율 10%를 적용하여 투자수익률(I.R.R.) 13.5%, 편익·비용비율(B/C Ratio) 1.42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1998. 9. 감사 결과 발표에서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경제성 분석과 농림부의 새만금사업기본계획에 다음과 같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① 경제성 분석에서는 편익ㆍ비용항목 등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아니하고 지반조성을 위한 성토 등 투자비용을 적게 산정하거나, 관광ㆍ항만ㆍ담수어 양식장 등 편익을 크게 계상하였다. 즉,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경우 관광 및 항만시설 투자비용은 누락한 채 관광편익 2,021억 원 및 항만편익 4,006억 원만을 계상하고, 수질오염 등으로 시행이 불투명한 담수어 양식편익 6,370억 원을 계상하였으며, 도시용지 잔존가치 267억 원을 이중계상하였다. 제3안인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의 경우 공업단지 및 도시용지의 성토공사비 1조 6,712억 원 상당을 과소 계상하고, 공단용지 잔존가치 714억 원 및 도시용지 잔존가치 2,672억 원을 이중계상하였으며, 항만편익 및 양식편익에 대하여는 농수산 중심 개발안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였다. 감사원이 위와 같은 오류를 정정하여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을 재검토한 결과,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경우에는 내부 수익률이 9.94%(편익비용비율은 0.99)이고,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의 경우에는 내부수익률이 12.48%(편익비용비율은 1.18)로서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되는 내부수익률 13%에 미달되게 됨에도 불구하고, 농수산 중심 개발의 경우에는 내부수익률이 11.5%로, 복합 산업단지 개발의 경우에는 내부수익률이 17.0%인 것처럼 부실하게 경제성을 분석하였다. ② 새만금사업기본계획에서는 ‘위 기본계획 당시 농림부는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아니한 채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투자비용 중 어업보상비를 적게 계상하거나 도시 기반시설 조성비를 제외시키고, 편익효과가 높으나 수질오염으로 사업시행이 불투명한 담수어 양식장의 편익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경제성 분석을 하였고’, 이 오류를 정정하여 감사원에서 경제성 분석을 재검토하였더니, 농수산 중심 개발로는 내부수익률이 9.92%에 불과한데도, 농림부는 부(負)의 편익 934억 원이 발생하는 것을 참작하지 아니하고 내부수익률이 정부투자사업에 있어 경제적 타당성 기준(13.0%) 이상인 13.5%가 되는 것처럼 산정하여 농수산중심으로 개발할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 후 기본계획을 확정함으로써 ‘경제적 타당성이 입증되지 아니한 농수산 중심 개발계획으로 사업이 시행되게’ 하였다. 위와 같이 설정된 사업 편익과 비용을 계상하여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함에 있어서 국내 미가(米價), 국제미가, 안보미가, 수산물 양식장 보상액, 수산물 생산편익 및 채취편익, 시장재화 및 환경생태학적 비시장 재화의 가치손실 및 획득, 추가적인 환경비용 등 7개 요인과 경제성 분과위원들 사이의 견해 차이를 고려하여 국토확장 효과, 식량안보 가치, 수질개선 편익, 갯벌의 총 가치에서의 인간중심 가치 및 갯벌중심 가치, 갯벌창조 효과, 담수호 창출 효과, 인공어초 효과 등을 각 제외시키거나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10개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에 따라 각 시나리오 별로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새만금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였다. ㉮ 기존의 시장을 통해 반영된 효과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의 시행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확장편익-비용분석(extended benefit-cost analysis)을 적용하였다. 국토확장 효과, 식량안보 가치, 담수호 창출효과 등 시장의 거래를 통해 나타나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후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편익들에 대하여 새로이 계량화를 시도하였다. ㉯ 경제적 연관효과를 계측하기 위하여 시장가격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였고 그렇지 못한 것은 대체비용법을 원용하여 평가하였으며, 갯벌의 환경생태학적 경제 가치와 쌀의 식량안보 가치는 가상 가치 평가법(Contingent Value Method ; CVM)을 사용하여 전문기관에 표본선정과 실사를 위탁하였고 그 조사 결과를 기초로 비시장 재화(Non-market Goods)의 가치를 추정하였다. ㉰ 사업에 따른 편익과 비용은 1999. 6. 불변 시장가격으로 환산하였으며 새만금사업의 확장편익-비용분석은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사업의 경제성분석지침’을 원용하였다. ㉱ 확장편익-비용 분석의 결과로 도출되는 경제적 타당성 판정기준인 편익-비용비율(B/C Ratio), 사업 순수익의 현재가치 총액(NPV), 사회경제적 수익률(ERR)은 국내미가, 안보미가 및 국제미가에 따라 또는 사업편익의 대안과 수질편익의 대안에 따라 여러 가지 시나리오 별로 분석하여 제시하였다. 각종 개발에 따른 토지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농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되어 농지 부족현상이 가중되고 있으므로, 새만금사업에 의한 농지의 확보는 그만한 면적의 농지전용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아 국토확장 효과를 분석하였다. 즉, 새만금간척사업이 바다를 육지화하여 국토를 확장하는 입지조성 기능과 그것을 농지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농지조성 기능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국토가 새로 조성됨에 따라 산업용지 등 토지의 이용기회가 증가하는 잠재적 효과를 국토확장 효과로 보고, 국토확장 효과를 조성토지의 기회비용(간척사업으로 조성된 토지를 최선의 용도에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잃게 되는 경제적 가치)으로 평가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사업 인근지역에서 농지가 다른 용도로 이용되는 경우의 지대와 농지로 이용되는 경우의 지대 차액을 산출하여 이를 간척면적에 곱하는 방법으로 국토확장효과를 추정하였다. 국토확장으로 인한 편익은 새만금사업지구와 관련된 3개 시군의 평균 농지전용 가격과 평균 논의 가격과의 지대 차액에다가 새만금간척지 전체 면적을 곱하여 총 12조 3,610억 원의 지대 차액을 추정한 후 할인율 8%를 적용하여 연간 지대를 9,889억 원으로 한 국토확장 효과를 산출하였다. ‘안보미가(安保米價)’라는 개념을 통하여 식량 안보 가치를 편익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즉, 논이 가지는 식량 안보 가치를 공공재(公共財)로 상정하여 가상 가치 평가법(CVM)을 이용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추정하는 방법으로 산정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농지의 유지 및 조성이 보호정책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농지라는 농업자본이 시장적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여 토지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또 토지분양가격, 인근 지역의 농지가격 또는 기존 농지의 가격 등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는 농지의 시장가치 이외에 신규농지가 창출해 내는 비시장 재화가치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새만금간척농지 전체 면적인 20,450㏊가 논으로 조성되어 쌀을 생산할 경우 1㏊ 당 매년 10,433,549원(할인율 8%)의 추가적인 식량안보가치가 발생한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의 간척지 40,100㏊ 중 20,450㏊의 농경지가 형성되는데 그 중 17,950㏊의 논에서 쌀이 처음 생산되는 2009년에는 23,590t의 미곡이 증산되고 사업이 완전 운영되는 2016년부터는 연간 94,238t의 쌀과 24,233t의 쌀보리가 증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원예단지 2,500㏊에서 2010년부터 가을배추, 봄배추, 마늘, 시설오이 등이 생산되어 완전운영으로 들어가는 2015년부터는 가을배추 171,550t, 봄배추 98,700t, 마늘 5,875t, 시설오이 10,928t이 생산되며 화훼단지에서 연간 장미꽃 103,340t, 국화 30,184t이 생산될 예정이다. 분석 결과 간척지 논의 농업편익은 2016년부터 연간 농산물 조수입(粗收入)이 국내미가 적용시 3,104억 6,960만 원, 안보미가 적용시 5,104억 360만 원으로 추정되었고, 연간 사업 순수익은 국내미가 적용시 1,856억 6,040만 원, 안보미가 적용시 3,765억 9,440만 원으로 추정되었다. 동진강과 만경강 유역에 있는 배수개선 대상면적은 당초 12,000㏊이었으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동안 2,832㏊에 배수개선사업을 추진하여 개발대상면적이 9,168㏊로 감소되었는데, 배수개선 지역에 전작으로 쌀농사를 짓고 후작인 이모작으로 쌀보리, 감자 및 시설오이를 재배하는 것으로 작부 체계를 수립하고 토지이용률은 현 이용률을 감안하여 50%로 계획하여 배수개선이 이루어지면 연간 농업 순수익 증가액 261억 5,240만 원(안보미가 적용시 317억 7,030만 원)이 기대된다. 논은 국민의 주식인 쌀을 생산 공급하는 기능 이외에 외부 경제효과를 가져오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OECD가 잠정적으로 규정한 논의 공익적 기능(다원적 기능)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하여 공공재 생산에 따른 모든 비용과 편익이 내부화되지 못해 시장기능에만 맡겨둘 경우 사회적 최적량의 생산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보전, 경관유지, 쾌적한 농촌환경, 농촌경제에의 기여 등과 같은 농업의 기본적 기능 이상의 외부 경제적 서비스 혹은 비시장 재화(Non-market Goods)’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익적 효과로서 일반적으로 간척지 논은 휴식공간 제공 기능, 대기정화 기능, 산소공급 기능, 대기냉각 기능, 수질정화 기능이 있고, 이를 통하여 연간 ㏊당 1,696만 원의 공익적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되고, 따라서 새만금간척지 농지 22,450㏊에서 3,806억 원에 이르는 공익적 효과가 창출된다고 한다. 이는 간척지 논이 이를 통해 생산될 수 있는 쌀의 가치로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논 그 자체가 공익에 기여하는 추가적인 가치도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편익에 포함된 것이다. 새만금사업으로 11,800㏊의 새만금 담수호가 얻어지는데 이와 동일한 댐이나 농업용 대형 저수지를 육지에 건설할 경우 농업용지 또는 산지가 수몰되어 국토면적이 상실된다. 따라서 새만금 담수호의 저수능력에 상응하는 댐 건설비가 절감된다는 전제에서 기존의 댐 건설비와 농업용 댐 건설비를 기준으로 대체비용법에 의거하여 새만금 담수호의 가치를 측정한 결과 새만금 담수호의 경제 분석 가치는 현재가치로 총 2,615억 원이고, 연간 경제 분석 가치는 209억 원인데, 이와 같은 새만금 담수호의 대체비용가치가 사업편익으로 계상되었다.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개선에 대하여 주민들이 부여하는 가치를 측정하여 이를 새만금 담수호 수질오염 방지비용에 상응하는 수질오염 방지편익으로 보고,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개선 편익을 비시장 재화에 대한 가치 측정법인 가상 가치 평가법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이 경우 수질개선과 관련하여 무대책시의 수질 예측치와 새만금호 수질오염 방지비용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수질개선 수준을 ㉠ 악취 나고 쓸모없는 물에서 생활보전용 수질로 개선할 때 연간 총 편익 1,315억 원, ㉡ 생활보전용에서 농사 가능 수질로 개선할 때 연간 총 편익 1,109억 원, ㉢ 악취 나고 쓸모없는 물에서 농사 가능 수질로 개선시킬 때 연간 총 편익 1,888억 원이 각 발생한다고 한다. 농업기반공사가 당시까지 추진해온 간척사업 지구를 대상으로 수년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간척사업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갯벌이 형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예로 새만금 인접 계화도 간척지구는 1963년에서 1968년까지 5개년간에 걸쳐서 3,933㏊를 간척하였는데 24년 후에 2,262㏊의 갯벌이 조성되어 57.4%가 회복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새만금 간척지구에도 방조제 준공 후 2023년경에 갯벌 회복 면적이 628㏊에 이를 것으로 보아 그 총 가치를 66억 원으로 추정하였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고군산 지역이 새만금방조제로 인하여 육지와 연결됨에 따라 접근성이 개선되어 생활환경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증가 등으로 인해 재산가치가 증가될 전망이므로, 전국 개발지역 지가상승 추세를 고려한 지가변동 편익은 약 1,580억 원에서 2,202억 원으로 추정하였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장래 가구 수, 자동차 수, 가구당 자동차 수의 예측자료를 이용하여 2004년 이후 2103년까지 5개년 간격으로 새만금방조제 도로의 연차별 우회 교통량과 이에 따른 차량운행비, 시간절약 편익을 산정하여 교통편익을 추정한 결과 연간 321억 원으로 나왔고, 새만금방조제 완공 후부터 647억 원 정도의 관광편익이 기대되며 계속 증가하여 2030년부터 내구연한인 2103년까지는 연평균 1,436억 원 정도의 관광편익이 창출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인간 중심으로 평가된 가치와 갯벌 중심으로 평가된 가치의 합으로 구성됨을 전제로 생태경제학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새만금갯벌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를 도출하였다. 우선, 인간 중심 가치의 경우 가상 가치 평가법에 의하여 지불 용의액을 도출함에 있어 지불수단으로는 세금을, 지불용의액의 도출방법으로는 지불카드를 이용한 개방형 지불방법을 사용하였고, 다음 갯벌 중심 가치의 경우 대체비용법을 이용한 선행 연구에서 사용된 자료를 이용하여 그 가치를 도출함에 있어 환경부와 농업기반공사의 자료를 비교하여 최고치, 최저치 및 평균치를 제시하였다. 인간 중심으로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가치는 1차 연도에 3,932억 원의 편익을, 2차 연도부터는 연간 평균 약 2,081억 원의 편익이 산출되었다. 그리고 갯벌중심으로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가치는 연간 평균하여 수산물 생산가치 약 1,311억 원, 서식지 기능 약 1,234억 원, 재해방지(해일방지) 기능 약 459억 원, 수질정화 기능 약 481억 원, 대기정화 기능 약 62억 원, 심미적 가치 약 244억 원을 모두 더하여 연간 평균 3,793억 원으로 산출되었다. 따라서 갯벌중심의 가치와 인간중심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경우 약 5,873억 원, 생태계 가치만 고려할 경우 3,793여 억 원, 인간중심의 가치만 고려할 경우 2,080여 억 원의 가치를 각 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분과에서 환경 기초 시설비와 호소 내 관리비, 내부 개발지 오염 방지비용을 더한 총사업비로 9,733억 원을 추정하였고, 호소 내 관리비 및 내부 개발지 오염 방지비용으로 2,044억 원을 추정하였다. 그런데 경제성 분과에서는 그 중 환경 기초 시설비 7,689억 원에 대하여 금강 수계 물 관리대책의 일환으로 동진강 및 만경강의 수질보전을 위하여 설정된 것으로서 새만금사업이 아니더라도 시행하여야 하는 사업으로 보아 이를 새만금사업의 경제성 분석에서 제외시키자는 의견이 있어 어느 정도를 비용으로 보아야 할지 결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3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그 중 ㉠ 악취 나고 쓸모없는 물에서 생활보전용 수질로 개선할 때와 ㉡ 생활보전용에서 농사 가능 수질로 개선할 때의 2개의 시나리오에서는 총비용을 포함시키고, 나머지 ㉢ 악취 나고 쓸모없는 물에서 농사 가능 수질로 개선시킬 때의 경우에만 환경 기초 시설비 7,689억 원을 제외시켜서 분석하였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위와 같은 분석을 통하여 할인율을 연 8%로 할 경우, 편익비용비율이 최저인 시나리오 4에서 1.25, 최고인 시나리오 2에서 3.81 사이로 나타나는 등 10개의 시나리오 모두에서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분석방법들에 대하여 조사위원들 간에 편익ㆍ비용 항목 설정, 평가방법 등을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심하여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부분도 있고, 그 중 이정전위원은 1988년 경제성 분석 당시의 편익항목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 때 누락되었던 사회적 비용으로 갯벌손실에 의한 비용과 수질개선 비용을 포함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새만금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편익비용비율이 0.22 내지 0.25로 나와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하였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이용할 경우에도 모든 시나리오에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과 함께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① 13개의 편익항목은 기존에 이루어진 경제성 분석에서의 9개 정도 편익항목과 비교해 보면 그 항목이 대폭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상당히 증가된 것인데, 위 사업편익 중 국토확장 효과, 담수호 창출효과, 식량 안보 가치 등의 경우 정립된 이론이 없고 이러한 편익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등 편익 항목 자체의 정당성에 대하여 전문가들 간에 견해 차이가 상당히 크다. ② 편익과 비용의 가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시장가격을 사용하여서는 안 될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되어 있음에도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국내미가보다 3배 정도 비싼 안보미가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간척지 농산물 증산액을 평가하고 있다. ③ 갯벌의 가치 및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자연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한 분야로서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분과와 환경분과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건네받아 검토를 하여야 새만금사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경제성 평가에 있어서는 다른 분과와 사이에 의견 내지 정보 교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갯벌의 환경생태학적 가치, 새만금 해역 적조방제(赤潮防除) 및 모니터링으로 인한 비용, 홍수조절과 배수갑문 조작으로 인하여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이 누락되거나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였다. ④ 가상 가치 평가법 연구는 비시장 재화의 가치를 계량화하기 위하여 가상 시장을 설정하고 소비자들에게 사전 정보를 제공한 후 조건부 상품에 대한 지불의사를 표현하도록 하는 방법인데, 가상 가치 평가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통하여 엄격한 방법으로 실시되어야 함에도 경제성 분과에서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⑤ 10개의 시나리오를 임의적으로 설정하였다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할 때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드는 이유는, 가장 낙관적인 상황과 가장 비관적인 상황을 포함한 다양한 상황을 모두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10개 시나리오 중 편익-비용비율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 4의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된 편익항목 가운데 국토확장 효과를 제외하고 간척지생산 농산물을 국내미가로 평가하였으나 담수호 창출효과, 논의 공익적 가치 등을 여전히 편익에 포함시킨 반면, 비용항목에 있어서 생태환경이 아닌 인간 중심 가치 방식으로 갯벌의 가치를 평가하고 환경오염 방지비용, 환경 유지관리비 등을 제외하여 비용을 줄이고 있으므로 가장 비관적인 경우를 상정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 새만금사업은 농지조성을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어 다른 용도로의 전용 가능성을 상정하는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토지의 전용에 따른 기회비용은 영(零)이라고 보아야 한다. ㉯ 새만금사업의 일차적 편익은 농산물 증산액이고 농지가격은 농작물 수입의 합이라는 경제이론에 의할 때 농산물 증산액과 별도로 국토확장 효과를 사업편익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중계산에 해당한다. ㉱ 갯벌 역시 토지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관리를 받으면서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국토의 개념을 확장하여 재해석할 경우 갯벌 역시 국토로 볼 여지도 있다. ㉲ 1988년의 경제성 평가에서는 토지 38%를 도시 및 산업용지로 이용할 경우 국토확장 효과로 1,344억 원의 편익을 추정한 것과 비교하더라도, 민관공동조사단에서 추정한 12조 3,610억 원의 국토확장 효과는 편익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다. ㉮ 식량 안보가 문제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재고미(在庫米)도 없는 상태에서 대흉작이 들고 해외에서 쌀을 수입하기도 어려운 여건이 동시에 만들어져야 가능한 것인데, 위와 같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전제로 그 개념조차 막연한 식량 안보 가치를 추정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 가상 가치 평가법이라는 것은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에 설문조사를 통해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인데, 쌀시장의 경우 완전 경쟁체제에 가까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고 농업보호정책 등으로 국내미가에 이미 안보가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가상 가치 평가법을 통해 식량 안보 가치를 추정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 가상 가치 평가법을 사용하더라도 그 기법이 매우 복잡하고 조사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가상 가치 평가법의 연구 분야에 정통하고 검증된 연구자가 이를 수행하여야 함에도 비전문가를 통하여 실시되었고, 설문지 내용상 쌀 소비가 감소되는 추세에 있고 쌀에 대한 대체재가 존재하고 있으며 국내미가가 국제미가에 비하여 3배 정도 비싸다는 정보들이 응답자들에게 제공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가상 가치 평가법에 의한 식량 안보 가치 추정 결과의 신뢰성이 높다고 볼 수 없다. ㉱ 식량 안보 가치는 새만금 간척농지 및 배수 불량지의 농업편익, 담수호 창출효과 및 국토 창출효과 등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중 계산의 위험성이 있다. ㉲ 식량공급의 안정 또는 식량 자급률의 상승으로 인한 편익으로 이해하더라도 표본가구를 조사하여 추가 지불 의사 금액을 추정하는 계산방식은 문제가 있다. 간척지 논의 공익적 효과 중 상당 부분은 갯벌이 가지고 있는 것과 중복되고 그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가 수질정화 기능의 경우 생활하수나 산업폐수를 유입하였을 때를 가정하고 논이 이러한 폐수를 정화하는 효과를 계산한 것으로서 농약으로 오염된 물이 담수호로 유입된다고 본다면 논의 수질개선 효과를 인정하기가 어렵게 된다. 또한, 간척지 논의 공익적 기능을 경제성 분석에 고려하고자 할 때에는 수질오염, 대기오염 및 온실효과와 같은 부정적 기능에 대한 비용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에 시행된 새만금사업의 경제성 평가에서는 간척지에 공급되는 농업용수 가치가 간척지 생산물의 최종 가치에 반영된다고 보아 농업용수의 가치를 따로 추정하지 않았고, 또한 새만금 담수호는 농업용수 용도이므로 다목적 댐의 건설비를 대체비용으로 환산하는 것은 과대평가의 소지가 있으며 농업용수 공급에 따른 추가비용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 가상 가치 평가법이 비전문가에 의하여 실시되는 등 분석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수질기준에 미달하는 등으로 수질개선에 실패할 경우에는 수질개선 편익이 발생하지 않고 이미 논의 공익적 효과 등 다른 편익 항목에 수질개선 편익이 포함되어 이중계산의 여지도 있다. ㉯ 새만금사업의 문제점이 수질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인데, 수질오염 방지시설을 함으로써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였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신규갯벌의 생성 여부 및 그 가치에 대하여 환경영향 분과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쟁점분야로 남겨놓았던 것임에도 막연히 이를 기정사실로 삼아 편익에 포함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개발로 인한 지가상승 효과는 일반적으로 간접적인 개발편익에 불과한 것으로서 어느 범위까지 이를 사업의 편익에 포함시킬지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금전적 편익은 공공사업의 비용편익 분석에서 제외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위 항목을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다. 교통량 유발에 따른 대기오염 등 부작용이 고려되지 않았고,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이 관광편익을 가지고 올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오염 비용이 누락된 채 신규창출 편익만을 계산한 것은 오류다. ㉮ 어업권 보상비가 이미 비용으로 포함되었음에도 갯벌의 수산물 생산가치, 서식지 기능, 수질정화, 대기정화, 심미적 가치를 비용에 포함하여 분석함으로써 이들 가치가 이중으로 평가되어 과대 추정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 위 조사 결과는 새만금갯벌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함으로써 갯벌의 가치 중 생태계 안정성 유지기능, 생물자원의 보고기능, 철새 등 이동성 조류의 종별 내지 개체별의 가치 등에 대한 계량화를 하지 못하여 위 가치들을 평가하지 아니하였다.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1988년 당시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경제성 분석보고서 및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에는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경우 일부 비용을 누락한 채 관광편익 및 항만편익을 계상하고 수질오염 등으로 시행이 불투명한 담수어 양식장 편익 등을 계상한 하자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감사 결과에 의하더라도, 오류를 수정하여 경제성을 재검토하였을 경우 할인율 10% 기준으로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편익·비용비율은 0.99(내부수익률은 9.94%),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의 편익·비용비율은 1.18(내부수익률은 12.48%)에 이르고, 비록 이견과 비판론이 있기는 하나 사후에 민관공동조사단에 의한 경제성 분석에 의하더라도 10개의 시나리오에서 모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점, 장래 시행할 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이란 그 분석방법이나 고려요소 여하는 물론 분석을 담당한 전문가의 견해 차이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경제성 분석 결과에 이론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오류가 있어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거 법규가 요구하는 경제성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에서 채택한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경제성 분석에 일부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흠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새만금사업은 농지조성과 수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한 간척사업이고, 피고는 이 사건 각 처분 당시 필요한 신규 농지를 33,077㏊로 추정하고 그 중 54.3% 상당인 17,950㏊의 농지를 새만금사업으로 공급한다는 계획 아래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하였으나 이 사건 각 처분 당시인 1988년 농림부는 2003년까지 30,269㏊의 신규농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삽교천지구 등 10개 지구에서 신규 간척사업을 시행중에 있었기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농지는 2,800㏊에 불과하여 새만금사업의 필요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채 불필요한 잉여농지 15,550㏊를 창출하게 되었으므로 새만금사업은 그 사업의 필요성이 없어 당연무효이다. 갑102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에 시행중이던 삽교천 간척사업 등 10개 지구의 간척농경지 총면적이 30,269㏊에 달하는 사실, 2011년까지 논의 신규 창출 필요량 추정치가 33,077㏊인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농림부의 의뢰에 의한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새만금지구 간척지 최적 이용을 위한 구상’이라는 경제성 분석 연구보고서(피고의 2004. 12. 27.자 참고서면에 첨부된 참고자료 29, 기록 7,981 내지 7,988쪽)의 기재에 의하면,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2011년까지 논의 신규 창출이 요구된다고 추정한 면적 33,077㏊는 향후 총 농경지 수요량 추정치와 지목별 잠식량 및 농경지 지목변경량 추정치를 근거로 하여 다시 추정 산출한 것에 불과한 사실, 갑104의 기재에 의하면, 농림부에서도 새만금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할 당시 전 국토의 간척 가능 면적 401,000㏊ 중 개발면적 51,000㏊, 개발 중인 면적이 47,000㏊인 것을 밝히면서 국토 공간의 과밀화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인한 토지수요 증대에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농지잠식과 한계농지를 대체하며 일정수준의 식량자급을 유지하기 위한 우량농지 확보와 수자원 개발로 해안지역 용수개발을 위하여 간척사업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2011년까지 논의 신규 창출 요구 면적 추정치 33,077㏊는 추정치를 근거로 재추정한 수치일 뿐이므로 이 수치만을 근거로 새만금사업의 필요성 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은 1989년부터 2011년까지 사이에 111,000㏊ 정도의 농지가 잠식되는 것으로 가정하였으나,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사이에 이미 그 2배 수준인 220,000㏊의 농지가 잠식되었음을 알 수 있음(기록 8,055쪽 참고자료 29-1)에 비추어 보아도 추정수치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새만금사업의 목적에는 농지의 조성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점, 공유수면매립법 부칙 제3조에 의하여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에 적용되는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21조의2도 일정한 경우에는 매립목적의 변경을 허용하고 있는 점,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도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이 농수산 중심 개발안보다 경제성이 더 있는 것을 지적하였을 뿐 농지조성 사업의 필요성과 관련하여서는 별다른 지적이 없었던 점, 농림부의 사업기본계획에서도 이미 사업 중인 간척지의 면적을 47,000㏊로 파악하고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새만금사업의 토지이용계획이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향후 농지의 필요량 추정치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새만금사업의 필요성에 흠이 있다거나 나아가 그 흠이 새만금사업을 당연무효라고 할 만큼 중대·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다. 1) 피고는 당초 새만금사업을 농지조성 목적뿐만 아니라 복합 산업단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에도 매립목적을 농지조성과 용수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농수산 중심 개발안으로 계획함으로써 사업목적을 은닉하거나 반영하지 아니한 채 환경영향평가를 하였다. 2) 수질에 관한 내부 간척지 오염 부하량을 참작하지 않고 유역 내 인구 및 축산폐수 배출량 등을 적게 추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농업용수 수질을 초과한 금강호의 물을 연간 4억 7,000만 t씩 공급받아 수질개선 희석수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최악의 경우에도 총인 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이러한 예측은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한 것에 해당한다. 3) 구 환경정책기본법상 사업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포함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 4) 환경영향평가서상 생태계 및 해양환경에 대한 환경영향의 저감방안은 구체성이 결여된 일반적인 내용만을 언급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것이고, 수질에 대한 환경영향의 저감방안인 금강호 물을 희석수로 도입하는 방안도 수질과 생태계 혼란으로 인하여 실효성이 없으며 농촌지도체계를 활용한 수질 유지 관리 방안 및 배수갑문 위치 결정 방안 또한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방안이다. 5) 환경영향평가서 중 사업의 입지, 규모, 토지이용계획, 사업시기 등에 대한 대안이 없고, 강 하구 및 갯벌 생태계의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담수호의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한 대안의 검토가 전혀 없고, 환경목표 달성에 대한 제시가 없다. 6) 피고는 환경영향평가 당시 담수어 양식장의 오염수를 외해로 방류하고 간척지 내부의 오염물질도 전량 외해로 방류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협의하였음에도 이를 사업계획에 반영하지 않았고, 동진호의 물을 만경호로 유입시키는 연결수로를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하기로 협의하고서도 이를 사업계획에 반영하지 않았으며, 준설공사시 부유물 확산을 방지하는 오탁방지막(汚濁防止幕)을 설치하기로 협의하였음에도 일부만을 반영하는 등 협의내용을 불이행하였다. 피고가 당초 새만금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할 당시 농지조성 목적의 농수산 중심 개발안뿐만 아니라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도 함께 검토한 사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으나, 당원의 감사원장에 대한 문서송부촉탁회보에 첨부된 감사원 사무처 감사반장의 질문서와 농림부 농촌개발국장의 답변서 및 그에 첨부된 기안용지의 각 기재만으로는 피고가 복합 산업단지 개발계획만을 실행하려 하였음에도 이를 은닉한 채 외관상 농수산 중심 개발을 목적으로 사업을 시행하였다거나 복합 산업단지 개발계획도 병행하여 실행하기로 하였음에도 이를 환경영향평가시에 반영하지 아니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다. 오히려 위 송부촉탁 회보에 첨부된 자료에 의하면, 새만금사업의 시행계획 확정, 매립면허 및 인가 과정의 각 단계에서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도 아울러 검토한 후 농수산 중심 개발안으로 시행인가를 하되, 향후 내부 간척지에 대한 토지이용계획은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는 시기까지의 사업시행과정에서 공익을 우선으로 한 효율적인 토지이용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겠다는 점과 다른 효율적인 토지이용 방안이 있을 때에는 그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는 물론 공유수면매립법 제3조의2에 정한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을 변경하는 등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점 등을 사업 착수 당시부터 홍보하였던 사실이 인정되고, 이와 같은 피고의 토지이용 방안의 계획은 아래의 ‘5. 이 사건 거부처분 취소청구에 대한 판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피고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그 시행인가 과정에서 복합 산업단지 개발안도 검토하여 향후 내부 간척지에 대한 매립목적을 변경하여 그 변경되는 목적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여 사용할 것을 계획하였다고 하여, 원고들 주장과 같이 사업목적을 은닉하였다거나 그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무릇 구 환경영향평가법에서 정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할 대상사업에 대하여 그러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아니하였음에도 승인 등 처분을 하였다면 그 처분은 위법하다 할 것이나, 그러한 절차를 거쳤다면, 비록 그 환경영향평가의 내용이 다소 부실하다 하더라도, 그 부실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이어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것이 아닌 이상, 그 부실은 당해 승인 등 처분에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로 됨에 그칠 뿐, 그 부실로 인하여 당연히 당해 승인 등 처분이 위법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두9902 판결 참조). 이 사건을 보건대, 갑48, 102, 을가6(갑58은 그 일부이다), 7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농림부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수질예측시 내부 간척지에 발생하는 오염 부하량을 참작하지 않고 유역 내 인구 및 축산폐수 배출량 등을 적게 추정하여 수질예측을 하였으며, 1989. 8. 29. 현재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총인 0.15㎎/ℓ)하고 있는데도 금강호의 장래 수질예측 없이 금강호 물을 연간 4억 7,000만 t씩 공급받아 새만금호의 수질개선 희석수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하였고, 수질예측에 있어서도 새만금호의 총인 농도에 관하여 5월 중 최대치인 0.05㎎/ℓ로 농업용수 한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여 총인 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분석한 사실,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 이외에 아무런 추가 대책 없이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로 새만금호가 완공될 예정인 2012년을 맞이할 때의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한 결과(시나리오 1)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농업용수 수질기준인 4급수 수준3인 것으로 나타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인정 사실만으로는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고 그 부실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여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것이라고 할 수 없고(양식장 및 내부 간척지 내 오염 부하량은 이를 호소에 유입하지 않고 외해로 배제하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 이행계획에 반영되었으며, 이 중 내부 간척지 양식장은 전라북도지사가 어장 상실에 따른 대체어장 개발이라는 협의조건을 위하여 당초 계획에 반영된 것이었으나, 그 뒤 담수호 내부의 양식장은 오염 요인이 많다는 이유로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환경영향평가의 부실로 인하여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이 당연히 무효라는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는 1986. 6.경부터 1989. 8.경 사이에 구 환경정책기본법이 시행되기 전인 구 환경보전법의 규정에 의하여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하였다. 그런데 사업자가 당해 사업시행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환경영향평가서에 반영하도록 한 것은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26조 제2항에 비로소 도입된 것으로서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당시에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 규정이 없었고, 구 환경정책기본법 부칙 제3조에 의하면, 구 환경보전법 규정에 의하여 행한 환경영향평가는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26조 또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어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결과적으로 구 환경정책기본법 제26조 제2항이 요구하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은 것으로 된다. 따라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환경영향평가서의 생태계 및 해양환경에 대한 환경영향의 저감방안이나 수질에 대한 환경영향의 저감방안에 실효성이 없다는 위 4)의 주장이나, 환경영향평가서 중 사업의 입지, 규모, 토지이용계획, 사업시기 등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등 위 5)의 주장 및 피고가 환경영향평가 당시 협의한 내용을 불이행하였다는 위 6)의 주장에 관하여는 일부 그와 같은 주장에 부합하는 주장이 있을 뿐이고, 나아가 그와 같은 주장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유만으로는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고 그 부실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여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이유로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이 당연무효라는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2000년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 결과, 시나리오 1에 의하면,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에 마련된 수질대책만으로 담수호를 막는 경우에는 만경호의 경우 총인 0.19㎎/ℓ로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의 경우 총인 0.10㎎/ℓ로 호소수질 4등급 기준을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바, 이는 결국 새만금사업은 2000년까지도 담수호의 수질기준 달성이 불가능한 상태로 추진되어 왔다는 것이므로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은 당연무효이다.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 이외에 아무런 추가대책 없이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로 새만금호가 완공될 예정인 2012년을 맞이할 때(시나리오 1)의 담수호 수질을 예측한 결과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4급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갑48, 102, 을가65, 당원의 감사원장에 대한 문서송부촉탁회보에 첨부된 농업진흥공사 부사장의 답변서의 각 기재에 의하면, 새만금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 중 수질분야에서는 2001년도에 완공예정인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함에 있어서,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에 영향을 미치는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의 장래 수질을 예측한 다음, 그 수질개선대책으로 새만금 담수호의 부영양화는 불가피하지만 전주·이리 등 상류에 하수처리장을 완벽하게 건설하고, 금강하류까지 15㎞의 연결수로를 만들어 연간 4억 7,000만 t씩 방류해 새만금 담수호 물을 희석시키며, 저층수 배제시설(만경강 1개소, 동진강 1개소)을 설치하여 오염된 호수 밑바닥 물을 외해로 방출하면 당초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기준인 농업용수의 수질은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실, 환경영향평가시 간척지 내부의 오염물은 호하류부(湖下流部)로 유도하여 배수갑문 부근에서 배수함으로써 외해로 방류하도록 방안을 제시하였고, 양식장의 오염물질은 전량 외해로 배제하는 것으로 고려하였기 때문에 수질예측에 반영되지 않았던 사실,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시나리오 1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시나리오에서 새만금호 평균수질(만경, 동진수역의 평균)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 사실에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1998년부터 환경단체들로부터 문제점이 제기되자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사정 등을 종합하면, 원고들이 들고 있는 2000년 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시나리오 1)은 당초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저감방안을 고려 또는 시행하지 않고, 건설예정이었던 하수처리장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을 고정한 채 2012년의 수질을 예측한 것으로서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수질오염 저감 조건을 충족하지 않고 사후에 다른 조건하에서 이루어진 수질예측이라 할 것이므로, 2000년 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을 이유로 당초 환경영향평가의 수질예측 기준이 달성 불가능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어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이 사건 매립면허처분 당시에 수립되었던 매립기본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전국에서 신규로 필요한 농경지를 총 33,077㏊로 추정하고 있었고, 2003년까지 삽교천 간척지 등 10개 지구에서 농경지 30,269㏊를 조성하기 위한 신규 간척사업을 시행하는 것이었는데, 피고는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을 함에 있어서 이러한 매립면허기본계획을 준수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5,550㏊에 이르는 부적합한 잉여농지를 창출하는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을 하였으므로 이 사건 각 처분은 당연무효이다. 구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하면, 건설부장관 등은 공유수면을 국토의 전체적인 기능과 용도에 맞도록 종합적으로 이용·관리하기 위하여 매 10년마다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하고( 제3조의2), 건설부장관은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한 범위 안에서 매립면허를 하여야 한다( 제4조 제1, 3항)고 규정하고 있고, 2003년까지 삽교천 간척지 등 10개 지구에서 농경지 30,269㏊를 조성하기 위한 신규 간척사업을 시행 중이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이 사건 매립면허 당시의 매립기본계획이 2011년까지 전국에서 신규로 필요한 농경지를 총 33,077㏊로 추정하고 있었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갑102의 기재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농림부의 의뢰에 의하여 1988. 12. ‘새만금지구 간척지 최적 이용을 위한 구상’이라는 경제성분석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향후 총 농경지 수요량 추정치와 지목별 잠식량 및 농경지 지목변경량 추정치를 산출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다시 2011년까지 논의 신규창출 요구면적 추정치를 33,077㏊로 산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가사 위 주장과 같은 매립기본계획이 수립되어 있고 피고가 그 매립기본계획에 적합하지 아니한 매립면허처분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처분 자체가 당연무효로 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위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 없다. 구 공유수면매립법 등 관련 법령에 의하면, 매립면허를 받은 자는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의 동의를 받거나 그들에게 보상을 한 후가 아니면 실시계획의 인가를 신청할 수 없음에도 피고는 관련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내초도에 거주하는 일부 원고들에 대하여 과거 군장공업단지 조성시 보상하였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보상대상에서 제외하였고, 법령에 위반하여 매립구역 안의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들의 보상액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상액이 확정되면 정산한다는 조건으로 손실보상협약을 체결하였으며, 보상액의 평가에 있어서도 1차 보상과 2차 보상에 차이를 두어 형평에 어긋나게 함으로써 14차례나 어업보상 관련 민원을 야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리자들의 동의와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으며, 매립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사업시행구역 밖에 위치한 전북 부안군 일대에서 김 가공업(수산제조업)과 김 포자배양업(육상 해조류 종묘 생산업)을 하면서 관할관청에 영업신고를 한 26명의 신고업자들이 배후지가 상실되어 폐업하는 손실을 입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하여 아무런 동의를 얻거나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관련 법령에 위반하여 이루어진 위법한 것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명백한 것이다.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5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건설부장관은 매립을 행하고자 하는 구역 및 그 매립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인근의 구역 안의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가 있을 경우에는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가 매립에 동의하였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립을 면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갑163의 기재에 의하면, 2004. 2. 4. 이 법원에서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피해가 예상되는, 사업시행구역 밖에 위치한 전북 부안군 일대에서 김 가공업과 김 포자배양업을 하던 59명이 폐업으로 인한 손실보상을 청구하는 사건{ 97나41518 손해배상(기)}의 원고들 중 26명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된 사실은 인정되나, 한편 위 판결에 의하면, 수산업법령의 개정으로 인하여 신고제가 도입됨에 따라 수산업법령에 따른 적법한 신고가 있었는지, 신고서가 반려되었는지 여부에 다툼이 있는 원고들에 대하여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례법’ 제3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23조의5의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손실보상청구권을 인정한 사실 또한 인정되는바, 그렇다면 위 손실보상을 받은 26명은 공유수면에 관한 권리의 유무에 다툼이 있었던 자로서 판결에 의하여 권리를 인정받은 경우이므로, 권리의 존재에 다툼이 없는 권리자와 같이 사전에 동의 또는 보상이 가능한 경우와는 다르다 할 것이고, 내초도 주민들에게 군장공업단지 보상금과 별도로 보상을 하여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아니하였다거나 매립구역 및 그 매립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인근의 구역 안의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들에 대한 동의와 보상이 없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그 밖에 법령에 위반하여 보상액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상액 정산에 관한 손실보상협약을 체결하였다거나 보상액의 평가에 있어서 형평에 어긋난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그 하자가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이 당연무효라는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가) 원고들은 새만금사업이 농지조성과 수자원 개발에 주된 목적이 있는데,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은 향후 농업용수로 공급될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오염을 방지하여 농업용수 기준에 상응하는 4등급의 수질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전제로 하여,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새만금 호수의 수질기준 달성이 불가능하므로 새만금사업이 내용적으로 실현불가능하여 무효라고 주장한다. 1) 피고가 이 사건 각 처분을 하기 위하여 1989. 8. 29.자로 시행한 환경영향평가 중 수질예측 부분은, 만경호와 동진호를 합한 새만금호의 총인 농도에 관하여 ‘5월 중 최대치인 0.05㎎/ℓ로 농업용수 한계치에 도달’할 것이고, 만경호의 경우는 ‘5월 중 최대치가 발생하며 0.055㎎/ℓ에 이르고 하수처리계획 시행시 약 0.01㎎/ℓ의 개선효과 있음’이라고 하고, 동진호의 경우는 ‘연중 최대치는 5월 중 약 0.04㎎/ℓ으로 나타났으며 전년에 걸쳐 수질기준 0.1㎎/ℓ 이하임’이라고 분석하여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은 총인 기준으로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 이외에 아무런 추가대책 없이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로 새만금호가 완공될 예정인 2012년을 맞이할 때의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한 결과(시나리오 1)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0.19㎎/ℓ로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0.10㎎/ℓ로 농업용수 수질기준인 4등급을 달성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1989. 8. 29.자로 시행한 환경영향평가 중 수질오염 방지대책에 의해서는 새만금호의 수질을 농업용수 기준인 4등급으로 달성할 수 없다. 2)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는 시나리오 2, 즉 환경부가 1999. 12.에 제시한 오염총량관리제 도입, 전주권 그린벨트 60.27% 보전, 환경기초시설 설치, 하수관거 정비, 하수고도처리시설 2개소 설치, 인공습지 조성, 금강호 물 유입, 농경시비량 30% 감소 등 실현가능성이 높은 수질보전 종합대책이 마련되는 경우에서 만경수역의 2012년 예측수질은 연평균 COD 6.45㎎/ℓ, 총인 0.12㎎/ℓ로서 각 COD는 4등급, 총인은 5등급 수준으로 나타나 만경수역의 수질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2000. 12. 농림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 기관의 이행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1차 검토 결과에서는,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대책까지 감안하였을 때 2012년 연평균 상층수(上層水) 산술평균 수질예측 결과는 만경수역의 경우 COD 8.0㎎/ℓ, 총인 0.144㎎/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편 수량가중평균 예측 결과도 만경수역의 경우 COD 6.2㎎/ℓ, 총인 0.117㎎/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여, 환경부의 종합의견은 ‘동진수역의 연평균 수질은 4급수 수준으로 예측되나 만경수역은 수질관리상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며, 2001. 2. 관계 기관이 제시한 간척지 내 농촌마을 규모 조정, 환배수로 통수량(通水量) 증대, 인공수초섬에 의한 영양물질 제거 등의 추가대책에 대한 환경부의 2차 검토 결과에서도, 2012년 연평균 상층수 산술평균 수질예측 결과 만경수역의 경우 COD 7.4㎎/ℓ, 총인 0.127㎎/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고, 수량가중평균 예측 결과 만경수역의 경우 COD 5.5㎎/ℓ, 총인 0.103㎎/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새만금호의 수질을 4등급으로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국무총리가 2001. 5. 25. 발표한 정부조치계획상 순차개발방안에 의하더라도 만경호와 동진호를 구획하기 위하여 해발 3.5m의 방수제를 쌓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방조제에 의하여 갇힌 해수의 수위를 낮추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경호의 물도 빼내는 작업을 하여야 하며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담수화가 필연적이고, 이는 순식간에 물고기의 집단 폐사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시화호에 있어서와 같이 부영양화가 일어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질악화가 진행되고, 수질개선대책의 완성 시기가 대부분 2011년도이고, 하수처리장을 설치하여도 축산계 오염원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수질기준 달성이 불가능하다. 4) 가사 위에서 본 각 수질오염 방지대책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한 비용을 요하게 되어 그 실현이 사회통념상 불가능하다. (나) 새만금사업이 실현불가능한 또 다른 근거는 사업의 연원과 추진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어서 형식적, 외형적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서 추진되었고, 피고도 사업 초기부터 사업목적과 달리 복합 산업단지의 조성을 위한 각종 협의와 의사표시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김포매립지의 용도변경 과정에서 매립목적 변경을 하였고, 전라북도에서도 새만금 간척단지를 농지로 활용하는 안에 반대하고 기업들의 대규모 유치를 위한 산업단지로 개발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계속하여 표출하고 있으므로 농지조성이라는 사업목적의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 행정행위가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행정행위에 위법사유가 있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4두10968 판결 참조) 이외에 그 행정행위의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실현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인정되어야 할 것인바, 여기서 행정행위의 내용이 사회통념에 비추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은 그 행정행위의 내용이 물리적ㆍ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수준 및 사회적 조건으로 인하여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한 비용과 희생을 요함으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실현불가능한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성의 판단 시기와 관련하여 보건대, 일반적으로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처분이 있을 때의 법령과 사실 상태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처분 후 법령의 개폐나 사실 상태의 변동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할 것이나( 대법원 2002. 7. 9. 선고 2001두10684 판결, 2002. 10. 25. 선고 2002두4464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새만금사업의 경우와 같이 행정행위의 내용이 장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행위가 복합되어 있고, 그 행위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실현되는 경우에 그 행정행위의 사회통념상 실현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은 처분 당시는 물론 그 후의 과학기술 정보, 학문적 견해의 변경 여부, 조사기법과 자료 및 사회ㆍ경제적 조건에 대한 평가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야 할 특별 사정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사건 각 처분이 실현불가능한 것인지에 관하여 본다. (나) 우선, 원고들 주장과 같이 새만금사업이 농지조성과 수자원 개발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은 국토의 외연적 확장과 수자원 개발, 대체 농지조성 및 쾌적한 복지농어도 건설에 그 사업목적이 있고, 국토 공간의 과밀화와 경제사회발전으로 인한 토지수요 증대에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농지 잠식과 한계 농지를 대체 개발하며 일정수준의 식량자급을 유지하기 위한 우량농지 확보와 수자원 개발로 해안지역 용수 개발을 위하여 간척사업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으므로, 공유수면의 매립이 불가능하거나 간척 개발사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새만금사업의 목적 및 필요성의 일부인 새만금호의 수질이 농업용수 기준인 4등급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만을 들어 새만금사업 자체가 내용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위 [4.의 나.항 (4)의 (나)]에서 본 바와 같이,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시나리오 1)은 당초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 저감 방안을 고려 또는 시행하지 않고, 건설예정이었던 하수처리장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을 고정한 채 2012년의 수질을 예측한 것으로서, 기준시점과 목표년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수질오염 저감조건을 충족하지 않고 사후에 다른 조건하에서 이루어진 수질예측이라 할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당초의 수질오염 방지대책으로는 4등급의 농업용수 기준을 달성할 수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시나리오 1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시나리오에서 새만금호 평균수질(만경, 동진수역의 평균)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에 비추어, 당초 환경영향평가의 수질기준이 실현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갑4, 을가3, 7, 8, 10, 31, 37, 54의 1, 을나49 및 피고가 제출한 2004. 12. 30.자 참고서면에 첨부된 참고자료 17(기록 8,863쪽 이하), 18(기록 별책 15 : 2004년도 새만금 환경대책 점검·평가 결과)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들의 위와 같은 주장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위 각 증거에 의하면, ①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 수질보전분과에서 검토한 시나리오 2(환경부의 수질보전 종합대책이 마련되는 경우를 상정한 경우)에도 새만금호의 평균수질(만경, 동진수역의 평균)은 COD 5.57㎎/ℓ, 총인 0.10㎎/ℓ이고, 동진수역은 연평균 COD 3.17㎎/ℓ, 총인 0.06㎎/ℓ로서 각 COD는 3등급, 총인은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나리오 1, 2를 제외한 나머지 시나리오 3 내지 7의 경우에도 새만금호 평균수질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 ② 2000. 12. 관계 부처의 이행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1차 검토 결과에 의하면, 2012년 연평균 상층수 산술평균 수질예측 결과는 동진수역의 경우 COD 4.2㎎/ℓ, 총인 0.072㎎/ℓ로서 COD는 3등급, 총인은 4등급에 해당하고, 한편 수량가중평균 예측 결과로는 만경수역의 경우 COD 6.2㎎/ℓ, 총인 0.117㎎/ℓ로서 COD는 4등급, 총인은 5등급이나, 동진수역의 경우 COD 4.0㎎/ℓ, 총인 0.072㎎/ℓ로서 COD는 3등급이고 총인은 4등급에 해당하여, 향후 예측되는 만경수역의 영양 상태와 현재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 아산호, 삽교호 등 기타 간척지 호수나 영산호 등의 농업용수 이용실태를 고려할 때 만경수역에서 예측되는 총인이 농업용수만으로 이용함에는 결정적인 지장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였던 사실, ③ 2001. 2. 관계 기관이 제시한 추가 대책에 대한 환경부의 2차 검토 결과에 의하면, 2012년 연평균 상층수 산술평균 수질예측 결과 동진수역의 경우 COD 3.8㎎/ℓ, 총인 0.070㎎/ℓ로서 COD 3등급, 총인 4등급에 해당하고, 수량가중평균 예측 결과 만경수역의 경우에도 COD 5.5㎎/ℓ, 총인 0.103㎎/ℓ로서 COD는 3등급이나 총인은 4등급을 약간(0.003㎎/ℓ)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 ④ 농어촌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정부조치계획에 반영한 인 처리시설 설치계획에 따라 2005년 ~ 2008년 사이에 만경수역 유입부 침전지에 인 처리시설 1개소를 설치하여 인 처리를 한 후 만경수역 상류부로 방류하면 만경수역 수량가중평균 예측수질이 COD 기준 5.5㎎/ℓ에서 5.2㎎/ℓ로, 총인 기준 0.103㎎/ℓ에서 0.099㎎/ℓ로 변화되어 농업용수 기준인 4등급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실, ⑤ 위 환경부 2차 검토 결과 2012년 만경강의 수질예측치가 COD 기준 8.7㎎/ℓ, 총인 기준 0.356㎎/ℓ이었으나 2003년 현재 COD 기준 6.4㎎/ℓ, 총인 기준 0.4㎎/ℓ로서 총인 기준 목표예측치의 83%를 이미 달성한 사실, ⑥ 국무총리실에 민관공동으로 구성된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의 평가 결과 2004년 현재 환경기초시설 확충, 새만금 상류지역에 대한 축산분뇨 관리대책, 새만금 친환경 간척계획 등 소관부처별 정부실천계획에 나오는 11개 과제 모두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 사실에다가 예측수질은 특정한 조건하에서 모의된 결과이므로 그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실제 수질이 예측보다 나쁘거나 좋을 가능성도 반반인 점, 수질대책 실행가능성도 관계 기관의 의지와 환경 단체 등의 감시, 오염원(汚染源)인 공장 등의 이설, 폐지 등 주변 여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점, 국민의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향상되어 국민 스스로 오염 발생을 자제하는 모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의 위 주장사실만으로 새만금사업의 목표 수질 달성이 실현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 부분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을가1, 2, 53의 기재 및 피고의 2004. 12. 30.자 참고서면에 첨부된 참고자료 18의 기재와 제1심 증인 윤춘경의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① 순차개발방식은 2006년 방조제가 완성된 이후 동진호와 만경호를 구분하는 방수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만경호뿐만 아니라 동진호도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키고, 그 이후 동진수역의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만경호는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킨 후 만경호의 수질개선이 이루어진 후에 만경수역의 간척사업과 만경호의 해수유통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인 사실, ② 담수화 과정에서 해양 동식물과 미생물의 폐사와 그로 인한 부영양화가 일시적으로 일어나지만 담수화가 2 ~ 3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므로 해수 생태계가 담수 생태계로 바뀌게 되면 폐사문제는 크지 않을 것이며, 또한 해수의 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므로 폐사로 인한 부영양화가 전체적인 수질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실, ③ 시화호의 경우 해수유통 이전의 수질이 COD 16.8ppm, 총인 0.213ppm, BOD 23.0ppm이던 것이 해수유통 이후에 COD 8.2ppm, 총인 0.094ppm(1998. 6. 기준) 및 BOD 4.9ppm(2000. 8. 기준) 수준으로 수질이 개선된 사실, ④ 2004. 12. 현재 2011년에 설치완료 예정이던 하수고도처리시설 1개소가 완료되고 1개소가 공사 중이며 4개소에 실시협약 체결 등 공사착공 준비가 되는 등 6개소의 설치가 2006년에 완료될 예정이고, 하수관거 417㎞(2003년도) 및 44㎞(2004년도)를 완공하고 76㎞를 공사 중에 있으며, 축산분뇨 관리대책에 있어서도 축분처리시설 315개 중 271개소(2003년도에 231개소 및 2004년도에 40개소)를 완료하고, 액비저장조 622개 중 287개소(2003년도 217개소 및 2004년도 70개소) 및 고속액비화시설 1개소를 완료하였으며, 축산폐수가 문제되는 왕궁특수지역의 환경개선사업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여 현재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 중에 있는 등 일부시설이 예정공사기간보다 앞당겨서 완공될 예정에 있는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고, 또한 담수화의 폐해가 일부 있더라도 동진호의 경우 담수화가 개시되는 2006년부터 담수화가 완료되어 농업용수로 사용할 시점인 2012년까지 6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고, 만경호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농업용수 사용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이므로 순차개발방식에 원고들 주장과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위 주장도 이유 없다. 을가1, 53의 각 기재에 의하면, 2001. 8. 세부실천계획상의 만경·동진강 수질정화에 필요한 사업비는 1조 1,859억 원에 달하고 새만금 내부 수질개선에 소요되는 사업비는 2,257억 원에 이르나, 만경·동진강 대책비의 환경부 소관 1조 1,306억 원 중 5,669억 원은 새만금사업과 무관하게 금강수계 물 관리 종합대책에 이미 반영되었으므로, 농림부 소관 축산분뇨처리시설 등을 위한 553억 원 및 환경부 소관 하수처리시설비 등 5,637억 원이 추가로 소요될 예정이고, 새만금 내부 수질개선비 2,257억 원 중 새만금사업비에 이미 포함된 1,461억 원을 제외하면 신규로 소요될 예산은 796억 원에 불과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정도의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만경·동진강 수계 오염방지 및 환경정화 효과 등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정도의 비용 지출이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다한 비용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라) 마지막으로, 새만금사업이 정치적 의도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에 농지조성이라는 사업목적의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관하여 본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하여 피고 등 관련 행정기관에서 종합계획 및 세부실천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하는 등 새만금사업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을뿐더러 선거에 의하여 공무담임을 정하는 민주국가에서 새만금사업과 같은 거대한 간척사업을 함에 있어서 정치적 고려와 정책적 결단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을 것이므로, 그 추진배경이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 행정부처에서 추진하는 새만금사업이 실현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또한 새만금사업의 토지이용계획이 구체적으로 변경되었거나 변경될 것으로 예정된 것도 아니며, 가사 농림부나 전라북도에서 새만금 간척지의 이용계획과 관련하여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조성되는 간척지의 이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적 검토 내지는 지방자치단체의 요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며, 앞으로 계획 변경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21조의2에 따라 매립목적이 적법하게 변경되어야 하고, 이어 변경되는 목적을 중심으로 한 사업성, 필요성, 환경영향평가 등 관계 법령에 따른 적법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고, 이와 같은 적법절차를 거쳐 새만금사업의 당초 목적이 변경되는 것은 법치행정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므로, 원고들 주장과 같은 정치적 배경을 내세워 새만금사업 자체가 실현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따라서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이 무효사유로 주장하는 행정처분의 구체적인 하자가 중대·명백하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의 내용이나 목적이 사회통념에 비추어 실현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의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 및 시행인가처분에 대한 무효확인청구는 모두 이유 없다 할 것이다. 원고 신형록은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에는 아래 기재와 같은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제1, 2, 3, 5호 소정의 사유가 발생하였고,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면허 등을 취소·변경하거나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 피고는 적절한 처분을 할 감독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그 취소사유의 존재를 부인하며 취소권의 행사를 거부하겠다는 취지의 이 사건 거부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에 해당하여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아래에서 제32조 제1, 2, 5, 3호 순서로 이에 관한 원고의 주장을 살핀다. 제32조 (면허의 취소 등) 해양수산부장관은 매립공사의 준공인가 전에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 법에 의한 면허 또는 인가 등을 취소·변경하거나 매립공사의 시행구역 안에 있는 공작물 기타 물건의 개축·제거 또는 원상회복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가) 새만금사업 기본계획 수립 당시의 매립기본계획에 의하면, 2011년까지 신규로 필요한 농경지는 33,077㏊로 추정되었고, 2003년까지 삽교천 간척지구 등 10개 매립예정지구에서 3,269㏊의 농경지를 조성하기 위한 신규 간척사업이 진행 중에 있었으므로, 당시 추가로 필요한 신규농지는 2,808㏊에 불과하여 새만금사업의 필요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채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조성의 필요성을 도출하여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받았다. (나)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1988. 12. 작성한 ‘새만금지구 간척지의 최적 이용을 위한 구상’이라는 경제성 분석 결과를 기초로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경제성을 인정하고 1989. 11. 6.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였는데, 그 경제성 분석 결과는 편익·비용항목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아니하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변화 등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누락시켰는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고 편익·비용항목을 적정하게 재평가한 결과 편익·비용비율이 1 미만으로 나타났으므로,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성을 인정하여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받았다. (다) 1989. 8. 환경영향평가에서 호소 수질기준의 달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최악의 경우에도 총인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그 후 2000년에 있은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이와 달리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에서 채택된 수질대책의 시행을 전제로 하였을 경우 만경수역은 총질소(T-N) 5.22㎎/ℓ, 총인 0.19㎎/ℓ로 5등급 수준이며 동진호의 경우 총질소(T-N) 4.29㎎/ℓ, 총인 0.10㎎/ℓ로 4등급 수준으로 예측되었는바, 이는 당초 환경영향평가의 평가자가 고의로 내부 간척지에서 발생되는 오염부하량을 참작하지 않고, 유역 내 인구 및 축산폐수 배출량 등을 적게 추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한 금강호의 물을 연간 4억 7,000만 t씩 공급받아 수질개선 희석수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한 결과라 할 것이므로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매립면허 기타 처분을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위 [4.의 나.항 (2)의 (나)]에서 본 바와 같이, 농림부가 2003년까지 삽교천 간척지 등 10개 지구에서 농경지 30,269㏊를 조성하기 위한 신규 간척사업을 시행 중이었음은 위 주장과 같으나, 이 사건 매립면허 당시의 매립기본계획이 2011년까지 전국에서 신규로 필요한 농경지를 총 33,077㏊로 추정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농림부에서도 새만금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할 당시 전국토의 간척 가능 면적 401,000㏊ 중 개발면적 51,000㏊, 개발 중인 면적이 47,000㏊인 것을 밝히면서 국토공간의 과밀화와 경제사회발전으로 인한 토지수요 증대에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농지 잠식과 한계농지를 대체개발하기 위하여 간척사업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경제성 분석과 새만금사업기본계획의 사업성 평가에서 편익ㆍ비용항목 등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아니하고 투자비용을 적게 산정하거나, 관광 및 항만시설 투자비용은 누락한 채 관광편익 및 항만편익을 계상하고, 수질오염 등으로 시행이 불투명한 담수어 양식 편익을 계상한 사실이 1998. 9. 감사원의 감사에서 지적되었으며, 위 오류를 정정하여 감사원에서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을 재검토한 결과 농수산 중심 개발안의 경우 내부수익률이 9.94%(편익비용비율은 0.99)로 나타난 사실은 위 [4.의 나.항 (1)의 (나)]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장래 시행할 사업에 대한 경제성 분석이란 그 분석방법이나 고려요소에 따라 분석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전문가에 따라 견해가 많이 다를 수 있는 점 등을 참작하면, 위 인정 사실만으로 피고가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을 인정하였다고 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하기에 족한 증거가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농림부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수질예측시 내부간척지 발생 오염부하량을 참작하지 않고 유역 내 인구 및 축산폐수 배출량 등을 적게 추정하고, 당시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총인 0.15㎎/ℓ)한 금강호 물을 장래 수질예측 없이 연간 4억 7,000만 t씩 공급받아 새만금호의 수질개선 희석수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총인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분석한 사실 및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 이외에 아무런 추가대책 없이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로 새만금호가 완공될 예정인 2012년을 맞이할 때의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한 결과(시나리오 1)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농업용수 수질기준인 4급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사실은 위 [4.의 나.항 (3)의 (나)]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당시 저층수 배제시설(만경강 1개소, 동진강 1개소)을 설치하여 간척지 내부의 오염물은 담수호 하류부로 유도하여 배수갑문 부근에서 배수함으로써 외해로 방류하도록 방안을 제시하였으므로, 간척지 내부의 오염부하량을 수질예측에 반영하지 않았던 사실,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시나리오 1은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 저감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건설예정이었던 하수처리장이 완공되지 않는 등 조건이 다른 상태에서 2012년의 수질을 예측한 것이고, 그 수질예측에 의하더라도 나머지 6개 시나리오에서는 새만금호 평균수질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은바, 그 사실관계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의 위 주장사실만으로 환경영향평가의 평가자가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였다고 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피고가 1991. 11. 16. 사업시행인가 고시 당시에 새만금사업의 총사업비는 1조 3,000억 원, 사업시행기간은 1991. 11. ~ 2004. 12.까지로 되어 있었으나, 2001. 5. 25. 정부조치계획 및 그 이후에는 총사업비 3조 4,756억 원, 사업시행기간 1991. ~ 2011.까지로 변경되었고, 2003년도 새만금환경대책 점검·평가계획(안)에서는 향후 4조 5,057억 원의 지출을 예상하고 있으며, 예산상의 문제 및 수질 달성의 문제로 인하여 2011년에 사업 준공은 현실성이 없는바, 이는 집행하기에 너무 방대한 규모의 사업을 재원 확보대책 없이 사업계획을 확정함으로써 사업비 조달이 쉽지 않았고, 사업의 경제성 평가가 부실하여 경제성에 의문을 가진 경제부처의 반대로 예산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경제성과 환경영향에 대한 재검토를 위하여 사업이 중단되기도 하는 등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예정공정에 현저히 미달된 경우에 해당한다. 피고가 1991. 11. 16. 사업시행인가 고시 당시에 새만금사업의 총사업비는 1조 3,000억 원, 사업시행기간은 1991. 11. ~ 2004. 12.이었으나 2001. 5. 25. 정부조치계획 및 그 이후에는 3조 4,756억 원, 사업시행기간 1991. ~ 2011.까지로 변경된 사실은 [2.의 라.항]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새만금사업이 당초 예정공정에 현저히 미달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 1998. 9.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사업계획 분야, 담수호 수질관리 분야 및 사업 집행 분야 등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1998년부터 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새만금사업의 시행에 따른 환경영향, 수질, 경제성 등과 관련한 문제들이 제기되자, 정부는 일단 새만금사업 시행에 따른 공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에서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1999. 5. 1.부터 14개월간 환경대책, 경제성, 수질보전대책에 관하여 조사를 실시하게 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을가1, 3, 10, 53 및 피고가 제출한 위 참고자 18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국무총리는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및 관계 부처의 검토 내용 등을 참고로 2001. 5. 25. 정부조치계획을 발표하여 ‘3대 정부에 걸쳐 10여 년 간 공사를 진행하여 현재 방조제공사가 58% 이상 진척되었으며, 미래의 식량위기와 통일 등 국내외 여건변화에 대비, 반드시 식량자급도를 향상시켜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는 정부입장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은 필히 완공시켜야 할 국책사업임’을 천명하고 민관합동조사단과 정부부처가 제시한 수질, 갯벌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보완대책이나 연구계획을 수립해서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환경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과 토론회 등을 통해 환경문제 해결에도 정부가 확고한 실천의지와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가지고 강력히 추진해 나가는 등 ‘수질보전 및 친환경 간척 대책’을 마련한 후 사업을 추진할 것을 기본방향으로 정하여, 방조제는 완공하되 동진수역부터 먼저 개발하고, 만경수역은 수질이 목표기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는 ‘순차개발방식’을 채택한 사실, 2001. 8. 16. 위 정부조치계획에 따라 농림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 관계 부처 합동 세부실천계획이 마련되었는데 그에 의하면, 새만금사업의 총사업비가 농지조성비 3조 489억 원을 포함하여 새만금 내부 수질개선비용 2,257억 원, 만경·동진강 수질정화비용 1조 1,859억 원, 해양환경보전비용 452억 원을 합한 4조 5,057억 원으로 책정된 사실, 위 총사업비에서 농지조성비 중 2001년까지 1조 2,458억 원이 지출되었으며 환경대책예산 1조 4,568억 원 중에서 2003년까지 지출된 비용은 3,801억 원이고, 2004년 예산은 1,156억 원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정 사실에다가 새만금사업이 사업비, 공사기간, 사업구역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인 점을 참작하면, 예정공정에 현저히 미달된 것이 단순히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가사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기왕에 투입된 거액의 사업비, 방조제 33㎞ 중 31.3㎞의 완공이라는 공사 진척 정도 및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 부처의 일치된 사업완수 의지 등 제반 사정을 비교·교량 하여 볼 때 그 예정공정에 미달된 정도가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취소할 필요가 있을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예정공정에 현저히 미달되었음을 전제로 하여 이 사건 거부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피고는 이 사건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에 적용되었던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17조 소정의 보상도 하지 아니한 채 공사를 실시함으로써 보상금 확정 및 지급이 지연되고 형평성이 결여되어 14차례에 걸친 어업보상 관련 민원을 야기하였고, 보상대상인 수산제조업, 종묘제조업, 영업권 등을 고려하지 아니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지기도 하였으며 1997년 말까지 총보상금 4,024억 원의 93%인 3,760억 원만 집행하는 등 공유수면매립법을 위반하였다. 원고 주장과 같이 매립구역 및 그 매립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는 인근의 구역 안의 공유수면에 관하여 권리를 가진 자들에 대한 동의와 보상이 없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보상금 확정 및 지급이 지연되고 형평성이 결여되어 14차례에 걸친 어업보상 관련 민원을 야기하였다거나 1997년 말까지 총보상금 4,024억 원의 93%인 3,760억 원만 집행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공유수면매립법을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위 [4.의 나. (6)의 (나)]에서 본 바와 같이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피해가 예상되는 사업시행구역 밖에서 김 가공업 등을 하던 26명에게 폐업으로 인한 손실보상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된 사실은 인정되나, 이는 공유수면에 관한 권리자임에 다툼이 있던 자들이 판결에 의하여 권리를 인정받은 경우로서 사전보상이 가능하였던 경우가 아니라 할 것이므로 위 주장 역시 이유 없다.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에서는 새만금 간척지에 식량단지, 원예단지 등 농지를 조성하고 농업용수를 개발하기로 되어 있는데, ① 사업시행주체인 농업기반공사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자체 사업시행계획에서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업단지, 원예단지, 과학연구단지 등 복합 산업단지를 설치하는 것으로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하였고, 농림부는 이러한 농업기반공사의 사업시행계획을 그대로 용인하였으며, ② 전라북도에서는 1993. 12. 산업연구원과 국토개발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하여 새만금지구가 국제적인 교역·생산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기도 하였고, 2004. 1. 20. 새만금 간척지를 생산·물류단지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의 새만금사업에 관한 로드맵을 수립, 발표하였으며, 2004. 8. 30.에는 새만금 복합 관광레저단지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국무총리에게 건의하는 등 낙후된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기업들을 유치하여 산업단지로 개발하여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고, ③ 한편, 노태우 대통령은 1991. 11. 28. 새만금사업 기공식에 참석하여 2004년까지 내부개발을 완료하여 새만금 임해공단을 조성하고, 연간 5,000만 t 하역능력을 가진 새만금 국제항을 조성하여 공단과 항만, 농수산단지와 관광시설이 함께 개발되는 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겠다고 역설하였으며, ④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북지역 국정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새만금사업을 친환경적으로 하겠다는 현 정부의 원칙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겠으나, 그동안 여러 상황변화가 있는 만큼 사업의 방향과 내용은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고, ⑤ 2005. 6. 건설교통부 국토계획연구단의 제4차 국토계획 수정계획(안)[2005 ~ 2020]에는 전주 군장광역권과 연계하여 국가와 지역에 이익이 되는 새만금 토지이용계획의 수립과 단계적인 복합용도 개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결국 새만금사업은 당초의 사업목적인 농지조성에서 복합 산업단지 조성으로 매립목적이 변경될 것이 예상되는바, 이는 사업목적상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새만금사업은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이 확정되던 1989년의 휴경지 면적은 26,200㏊이었고 사업이 시행되던 1991년에는 40,400㏊이었으며 2002년에도 20,000㏊의 휴경지가 발생하였고,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지속적인 감소추세에 있고, 쌀 수입개방이 현실화되어 농림부는 쌀 감산정책의 일환으로 휴경보상제 실시와 벼 재배면적의 축소를 유도하고 있으며, 우량농지에 대한 비합리적인 관리로 인하여 한 해에 30,000㏊에 이르는 필요 이상의 과다한 우량농지가 전용되고 있는 등 농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새만금간척농지는 영농기업에 귀속될 전망이므로 전라북도 지역의 자립농민의 몰락을 초래할 것인바, 이는 새만금사업의 목적인 농지조성의 필요성에 있어서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상실되는 새만금 하구갯벌의 경제적, 생태적 가치의 발견과 평가의 상승으로 인하여 갯벌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한 새만금사업의 경제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는바, 이는 새만금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1) 1989. 8. 환경영향평가에서 호소 수질기준의 달성 여부에 관하여 최악의 경우에도 총인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그 이후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에서 채택된 수질대책의 시행을 전제로 하였을 경우 새만금호 만경수역의 평균수질은 총질소(T-N) 5.22㎎/ℓ, COD 10.46㎎/ℓ, 총인 0.19㎎/ℓ로 총인과 COD 모두 등급 외 수준이 되어 농업용수로서 사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예측되었고,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에서 환경부가 1999. 12.에 제시한 새만금담수호 수질개선 종합대책이 마련되는 것을 전제로 한 수질예측(시나리오 2)에서도 만경수역의 2012년 예측수질은 연평균 COD 6.45㎎/ℓ, 총인 0.12㎎/ℓ로서 각 COD는 4등급, 총인은 5등급 수준으로 나타나 만경수역의 수질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정부는 수질보전대책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방조제는 완공하되 동진수역부터 먼저 개발하고 만경수역은 수질이 목표수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는 순차개발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순차개발방식에 의하여 만경수역 수질이 개선되는 동안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킨다 하더라도, 방조제 내측 북부와 중앙부에서 여름철에 성층이 형성되고 물의 정체로 저층수의 용존산소 소모량이 증가하는 등 수질이 악화될 것인바, 이는 수질관리상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2) 1991. 6. 환경부의 수질관리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은 “방조제 완공 이전에 유역 권내 주요 오염원들에 대한 처리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는데 방조제 및 기초 환경 처리시설의 공사과정이 이미 위 협의내용에 위반하였고, 방조제 완공 후에는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킨다 하더라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갑문 주변에서만 순환이 이루어지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성층이 형성되기 때문에 새만금호의 수질관리가 어렵게 되었는바, 이는 수질관리상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새만금방조제의 완성으로 인하여 자연적인 해안선이 사라지고 장래 해안선 보호가 취약해지며, 해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갑문을 제외한 전 해역에서 조류가 크게 약화되고 물질 순환이 차단되어 해양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남북방향의 해수순환이 고군산열도에 의해 차단되어 고군산열도를 기준으로 남과 북이 이원화되며, 방조제 내측에 해수 동식물 및 미생물의 집단폐사로 인한 수질오염이 예상되고, 방조제 안쪽의 니질(泥質) 퇴적층 형성 등 해저지형 변화와 방조제 바깥쪽 변산반도 지역의 유입토사 중단 및 펄의 축적으로 변산해수욕장 유지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고, 담수 및 부영양 물질 대량방류에 의한 방조제 바깥쪽 해양생태계 충격 등 저감이 불가능한 피해가 예상되는바, 이는 해양환경상의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처분이 있을 때의 법령과 사실 상태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처분 후 법령의 개폐나 사실상태의 변동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할 것이고(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두4464 판결 등 참조), 다만 이 경우에도 처분 당시 존재하였던 자료나 행정청에 제출되었던 자료만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한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처분 당시의 사실상태 등에 대한 입증은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할 수 있고, 법원은 행정처분 당시 행정청이 알고 있었던 자료뿐만 아니라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까지 제출된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처분 당시 존재하였던 객관적 사실을 확정하고 그 사실에 기초하여 처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 1993. 5. 27. 선고 92누19033 판결 참조). 가) 다툼 없는 사실 및 갑4, 5, 90, 91, 93-1~3, 94, 95, 102, 104, 105 ~ 111의 각 1, 2, 3, 을나 46~48의 각 기재와 제1심 증인 오창환, 서병훈, 한계수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① 사업시행주체인 농업기반공사는 1993년 한국농지개발연구소로부터 ‘새만금 간척사업의 효과 조기구현 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제출받고, 이를 토대로 공업단지 및 원예단지, 과학연구단지 및 관광, 식량, 농업연구단지 등을 배치하는 내용의 복합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후 새만금 간척 종합개발사업 조감도 제작 등 10건의 홍보자료를 복합 산업단지로 제작·배포하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사업시행자인 피고에게 매 사업 연도 사업시행계획을 승인요청함에 있어서 사업시행계획서의 사업효과 부분에 복합 산업단지 효과를 포함시킨 사업계획서를 작성, 보고하여 피고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았으며, 피고도 1998. 4. 22. 당정협의시에 새만금간척지를 복합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그러나 한편, 농업기반공사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피고에게 작성, 보고한 사업시행계획서의 토지이용계획 부분에는 당초의 농지조성 및 용수개발이라는 사업목적대로 기재되어 있었고, 농업기반공사의 복합 산업단지로의 토지이용계획변경이 1998. 9. 감사원의 감사에서 지적되자 1999년 이후의 사업시행계획 승인요청에서는 복합 산업단지효과를 삭제하여 승인을 받았으며, 그 이후 2001. 5. 25. 정부조치계획 및 세부실천계획 등에서는 당초의 계획대로 농지조성 및 용수개발이 주된 사업목적으로 되어 있다. ② 전라북도는 새만금 간척지를 복합 산업단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1993. 12. 산업연구원과 국토개발원에 새만금 간척지가 이른바 경제특구로서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하여 새만금지구가 국제적인 교역·생산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얻기도 하였고, 새만금지구가 투자자유지역인 경제특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세미나를 개최하고 경제특구 지정을 위한 범도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였으며, 2003년에는 새만금 완공촉구 2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이를 중앙부처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4. 1. 20. 새만금 간척지를 생산·물류단지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의 새만금사업에 관한 로드맵을 수립, 발표하였고, 2004. 8. 30.에는 새만금 복합관광레저단지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전라북도를 방문한 국무총리에게 건의하는 등 지역경제의 부흥을 위하여 새만금 간척지를 산업단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새만금사업에 있어서 용지 매수 및 어업권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지원 사업단에 불과할 뿐, 새만금사업의 사업목적 또는 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할 권한이 없고, 새만금 간척지의 내부개발에 대한 전라북도의 입장은, “㉮ 1991년 사업시행을 인가받은 사업목적대로 국토를 조성하는 방향은 견지되어야 한다. ㉯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확정된 정부의 친환경적 순차개발 방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 내부토지의 용도는 본래 사업목적대로 농지로 우선 활용하여야 하나 토지 전체를 농지로 이용하기보다 그간의 여건변화를 감안하여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토지이용의 경쟁력과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일부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 ㉱ 다만,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에 대한 모든 결정은 중앙정부의 권한으로서 정부에서 내부토지이용계획의 결과가 나오면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③ 노태우 대통령은 1991. 11. 28. 새만금사업 기공식에 참석하여 2004년까지 내부개발을 완료하여 새만금 임해공단을 조성하고, 연간 5,000만 t 하역능력을 가진 새만금 국제항을 조성하여 공단과 항만, 농수산단지와 관광시설이 함께 개발되는 종합개발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나) 보건대, 위 인정 사실 중 우선 위 ①, ②항에서 인정되는 사실만으로는 농지조성과 농업용수 개발을 주목적으로 한 새만금사업의 토지이용계획이 복합 산업단지로 변경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위 ③항에서 인정되는 노태우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의 최고 정책결정권자로서 장래 새만금사업에 대한 정책구상 또는 방향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위 발언에 따른 목적변경 등 구체적인 계획변경이나 추진실적이 전혀 없었으므로 결국 새만금사업의 사업목적이 변경되었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다) 그 외에 원고가 주장하는 사유, 즉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북지역 국정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새만금사업을 친환경적으로 하겠다는 현 정부의 원칙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겠으나, 그동안 여러 상황변화가 있는 만큼 사업의 방향과 내용은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다거나, 2005. 6. 건설교통부 국토계획연구단의 제4차 국토계획 수정계획(안)[2005 ~ 2020]에는 전주 군장광역권과 연계하여 국가와 지역에 이익이 되는 새만금 토지이용계획의 수립과 단계적인 복합용도 개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등의 사유는 2001. 5. 24. 이 사건 거부처분이 있은 이후에 발생한 사정이라 할 것인데, 앞서 보았듯이 이 사건 거부처분의 위법 여부 판단시점은 처분시라 할 것이므로 위 주장사유는 이 사건 거부처분의 당부를 판단하는 자료로 삼을 수 없다. 더구나, 이와 같은 대통령의 언급이나 국토계획연구단의 입장은 새만금사업의 토지이용계획에 대한 확정적인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방향으로 국토이용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에 불과하고, 그와 같은 검토와 검토 결과에 따라 국토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현행 법률상 불가능한 것도 아님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를 내세워 새만금사업의 목적이 변경되었다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새만금사업의 토지이용계획 등 매립목적의 변경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공유수면매립법 부칙 제3조에 의하여 새만금사업의 매립목적 변경에 적용되는 구 공유수면매립법(1999. 2. 8. 전문 개정 되기 전의 것) 제21조의2는 1986. 12. 31. 신설된 조항으로서 매립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자와 그 승계인은 준공인가를 받은 날로부터 5년 이내에는 면허 당시의 매립목적을 변경하여 사용할 수 없고, 다만 당해 매립지를 국가사업에 사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나 공용 또는 공공의 용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매립지의 준공인가로 소유권을 취득한 자와 그 승계인이 준공인가일로부터 5년 이내에는 원칙적으로 매립목적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한 것일 뿐, 달리 준공인가 전의 매립목적 변경에 대한 제한규정이 없으므로 준공인가 전에 매립면허를 받은 매립예정지에 대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허관청의 인가를 받아 매립목적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해석되는바, 새만금사업에 있어서도 구 공유수면매립법 제21조의2의 단서 규정의 사유 또는 현행 공유수면매립법 제29조에서 규정하는 예외적인 사유가 인정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면허관청의 인가를 받아 매립목적을 변경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그렇다면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은 그 준공인가 이전에라도, 당초의 매립목적의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산업의 발전 기타 사회ㆍ경제적, 문화적인 주변여건의 변화, 쌀 수입개방과 국내 농업의 경쟁력 등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의 토지이용계획을 종합 고려하여 매립지의 가장 효율적인 이용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생활과 국가경제 및 대외 경쟁력 등을 위하여 그와 같은 이용계획의 검토가 요청된다 할 것이므로, 사업목적의 변경 내지는 변경 가능성을 이유로 이 사건 거부처분이 위법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갑116, 117, 121 ~ 125, 을1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휴경지 면적은 새만금사업 기본계획이 확정되던 1989년에는 26,200㏊, 1990년에는 40,400㏊이었고, 사업이 시행되던 1991년에는 67,500㏊이었으며, 1995년까지 60,000㏊를 넘다가 1996년에는 34,300㏊, 1997년 ~ 1998년에는 30,000㏊ 미만으로, 1999년 ~ 2001년에는 17,000㏊ 정도에 달한 사실,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인 2001년까지 1인당 연간 지속적인 쌀 소비량의 감소 및 쌀 생산량의 증가, 쌀 재고량의 과잉, 쌀 재고관리비용의 과다지출, 쌀 수입개방의 현실화 등으로 인하여 농림부는 쌀 감산정책의 일환으로 휴경보상제 실시와 벼 재배 면적의 축소 등 생산 축소를 유도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한편, 습답(濕畓), 계곡답(溪谷沓), 천수답 등의 한계농지와 생산기반이 정비되지 못한 농지의 채산성 저하, 농업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 저가 농산물의 수입 등으로 인하여 유휴 농지가 증가하였고, 정부는 쌀의 재배면적을 줄이고 다른 작물, 고품질 쌀의 재배를 적극 유도해 나가며, 농업진흥지역을 재정비하여 일부 농지는 진흥지역에서 해제하고, 진흥지역 밖의 비우량 농지의 경우 농촌경제 및 생활환경 개선에 필요한 휴양, 관광, 의료, 교육, 복지 등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할 방침인 반면, 식량안보 및 국토환경 보전을 위해 적정 농지면적의 확보는 불가결한 것으로 파악하고 진흥지역 해제 농지와 진흥지역 밖의 우량농지는 생산 및 보전관리 지역으로 편입시켜 관리할 계획이며, 65%가 산지인 여건하에서 미래의 식량 위기, 기후 변화와 통일 등 국내외 여건 변화에 대비하여 식량자급도를 향상시킬 것을 당면과제로 삼고 있는 사실 또한 인정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정 사실에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당초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예측한 1989년부터 2011년까지 논의 전용면적은 111,000㏊ 정도였으나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사이에 이미 그 2배 수준인 220,000㏊에 달한 사실을 더하여 보면, 위와 같이 일시적인 쌀 공급과잉 현상으로 쌀 재배면적을 감소시킬 필요성은 있다 하더라도, 농지전용면적이 급증하고 쌀 개방으로 인하여 식량이 무기화될 수 있는 상황(쌀 수출국이 저가로 수출하다가 국내 농업이 경쟁력을 잃었을 때 고가 수출정책으로 전환하는 경우 등)에서 일정수준의 식량자급을 유지하기 위한 우량농지 확보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또한, 우량농지가 비합리적으로 관리된다고 하여 이를 바로 피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고, 우량농지의 전용은 농지전용의 필요성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지 농지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필요 이상의 과다한 우량농지가 전용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농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새만금 간척농지가 모두 영농기업에 귀속될 전망도 불투명하지만, 가사 모두 영농기업에 귀속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바로 전라북도 지역의 자립농민이 몰락할 것이라고 단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① 1988. 12.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의 경제성 분석에서는 공공투자에 관한 정책결정은 많은 경우 경제적인 수익 이외에도 계량불능의 무형효과를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계량화가 가능한 효과는 물론 계량화가 불가능한 무형의 비용과 편익도 검토하여 제시하여야 한다는 전제하에 직접투자비용 및 유지관리비용은 편익-비용 항목에 계상하였으나, 사회적 비용으로서 환경오염과 생태계 변화에 대하여는 이를 예상하여 제시만 하였을 뿐 그 구체적인 비용을 산정하지 못한 채 경제성을 분석하였다. ② 그 이후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생태경제학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새만금갯벌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를 인간중심으로 평가한 가치와 갯벌중심으로 평가한 가치의 합으로 도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중심 가치의 경우 가상 가치 평가법(CVM)에 의하여 지불수단으로는 세금을, 지불용의 액의 도출방법으로는 지불카드를 이용한 개방형 지불방법을 사용하였고, 다음 갯벌중심 가치의 경우 대체비용법을 사용하여 선행연구에서 사용된 자료를 이용하되, 우리나라 갯벌에 적용된 연구 결과인 환경부와 농업기반공사의 자료를 비교하여 최고치, 최저치 및 평균치를 제시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③ 갯벌중심으로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가치를 도출함에 있어서는 해양환경학자의 자문을 받아 새만금갯벌이 갖고 있는 기능을 수산물 생산 기능, 서식지 기능, 재해방지 기능, 수질정화 기능, 대기정화 기능, 심미적 가치, 생태계 안정성 유지 기능, 생물자원의 보고(寶庫) 기능 및 이동성 조류의 가치 기능으로 분류하고, 각 기능별 가치를 산출하였는데, 그 결과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각 기능별 연간 평균 가치는 수산물생산가치 약 1,311억 원, 서식지 기능 약 1,234억 원, 재해방지(해일방지) 기능 약 459억 원, 수질정화 기능 약 481억 원, 대기정화 기능 약 62억 원, 심미적 가치 약 244억 원으로 산출되었고, 다만 생태계 안정성 유지 기능과 생물자원의 보고 기능의 가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산출하지 않았으며, 이동성 조류의 종별, 개체별 가치도 파악하기 곤란하여 산출하지 않았다. ④ 민관공동조사단에서 위와 같은 분석방법을 통하여 인간중심으로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편익 총 가치는 1차 연도에 3,932억 원, 2차 연도부터는 연평균 약 2,080억 원으로 산출되었으며, 갯벌중심으로 평가된 새만금갯벌의 각 기능별 연간평균 총가치는 3,793억 원으로 산출되었고, 갯벌중심의 가치와 인간중심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경우 약 5,873억 원, 생태계가치만 고려할 경우 약 3,793억 원, 인간중심의 가치만 고려할 경우 약 2,080억 원의 가치를 각 산출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⑤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위와 같이 산출된 새만금갯벌의 가치를 사업시행 전의 편익손실로 파악하고 경제성분과위원들의 견해 차이를 고려하여 갯벌중심의 가치와 인간중심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하거나 인간중심의 가치만을 고려하거나 또는 인간중심의 가치만을 제외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경우를 상정하여 가상의 시나리오 10개를 설정하고 각 시나리오별로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사회·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한 결과 편익-비용비율이 인간중심의 가치만을 고려한 시나리오 4에서 1.25로 가장 낮게 나오는 등 10개의 시나리오 모두에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⑥ 그러나 민관공동조사단 평가위원들이나 기존의 전문연구기관들 사이에 갯벌에 대한 가치평가가 상이하여 아직까지 일치된 견해가 없고, 갯벌가치에 대한 과학적인 평가기법 내지는 계량화의 미비로 갯벌의 여러 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2001. 5. 정부조치계획 당시 해양수산부에서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하여 새만금갯벌의 신뢰성 있는 가치평가를 위한 연구를 진행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도 있다. ⑦ 갯벌의 가치평가를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국내 연구 결과로는 한국해양연구원(1996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2000년)에서 갯벌이 농지보다 3.3배 내지 59배 이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 반면, 한국산업경제연구원(1998년), 세종연구원(1999년) 등에서는 농지의 가치가 갯벌 보다 1.8 내지 2.6배 높다고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① 새만금사업 시행 당시에는 새만금갯벌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갯벌의 경제적·생태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이후 민간공동조사단에서 실시한 경제성 평가에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함으로써 갯벌의 가치 중 생태계 안정성 유지 기능, 생물자원의 보고 기능, 철새 등 이동성 조류의 종별 내지 개체별 가치 등에 대한 계량화를 하지 못하여 위 가치들을 평가하지 아니하였다. ② 새만금갯벌은 1998년 현재 전국 갯벌 면적 2,601㎢의 7.9%에 해당하는 208㎢(20,800ha)의 면적을 가진 대규모 갯벌로서, 만경강과 동진강이 유입되면서 바다와 만나는 곳에 형성된 하구갯벌의 특징상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대형 하구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경사가 완만하여 갯벌생태계에 필요한 노출지역이 넓게 분포하여 패류의 성장에 알맞은 사니(砂泥)로 구성되어 종 다양성이 높고 풍부한 생체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새만금갯벌을 포함한 서해안의 갯벌은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해안, 유럽 북해 연안, 아마존 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③ 갯벌은 바다생물의 약 70%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성장기를 보낸다고 할 정도로 수산자원의 기초가 되는 산란ㆍ생육장의 역할을 한다. 새만금사업 이전에는 새만금지역에서 전국 생산량과 비교하여 백합조개 65.1%, 동죽조개 81%, 맛조개 48.8% 등 일부 조개류의 경우 50% 이상을 생산하였다. ④ 새만금 갯벌은 서식하는 어류가 230종, 게류 193종, 새우류 74종, 조개류 58종에 이르고, 그 밖에 많은 해양 무척추 동물들이 100종이 넘는 바닷새 등과 함께 갯벌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생물종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아직까지 그 가치가 증명되지 않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새만금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다. ⑤ 새만금갯벌은 멸종위기에 있는 월경성 철새의 주요 이동경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2000. 4. 6. 환경부가 국내최대 철새도래지라고 발표한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은 철새들이 새만금갯벌에 도래하고 있고, 특히 동진강유역은 동아시아-호주 간 도요ㆍ물떼새 보전 네트워크에서 주요 사이트로 지정하고 있는 서식지로서 보존가치가 높다. ⑥ 현재 갯벌에 대한 오염물질 정화능력에 대하여는 충분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있지는 않으나, 새만금갯벌 자체에 의한 유기물 제거량이 1997년 현재 전라북도에서 가동 중인 전주와 익산 하수처리장의 처리능력보다 높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와 있고, 일본의 이시오우 조간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갯벌 10㎢가 하루 최대 75.8t의 오수를 정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갯벌은 오염물질 정화기능을 가진다. ⑦ 갯벌은 그 자체 또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어서, 독일의 경우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갯벌을 보존함과 아울러 이를 관광자원으로 이용함으로써 연간 25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고, 또한 물의 흐름을 완화시키고 저장하여 물을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흘려보냄으로써 홍수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육지로 상륙하는 태풍, 해일의 완충지대 역할도 한다. ⑧ 갯벌은 유지관리 비용이 전혀 들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 효용을 주고 있고, 앞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에 대한 가치부여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새로운 평가기법의 등장으로 그 가치에 대한 계량화 작업도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가) 위 인정 사실을 종합하면, ① 새만금사업 시행 당시에는 새만금갯벌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갯벌의 경제적·생태적 가치를 예상하였음에도 그에 대한 가치 산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 거부처분 전에 민간공동조사단에서 실시한 경제성 평가에서 그때까지의 연구평가기법 내지 계량화가 가능한 갯벌의 기능가치를 비용으로 계상하여 평가한 결과 10개의 시나리오에서 모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② 원고가 사정변경의 사유로 들고 있는 갯벌의 생태적·경제적 가치 중 수산물 생산 및 서식지 기능, 오염물질 정화 기능, 관광 또는 심미적 기능과 재해방지 기능 등에 대하여는 민관공동조사단에서도 이미 그 기능 가치를 산출하고 비용으로 계상하여 평가하였으므로, 위와 같은 사유만으로는 경제성 평가에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사 비용계상에 일부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익상 특히 필요하여 매립면허를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민관공동조사단의 경제성 평가에서 가치산출 자료가 없어 비용으로 계상하지 못한 갯벌의 기능으로서 원고가 사정변경 사유로 주장하는 생태계 안정성 유지 기능, 생물자원의 보고 기능, 철새 등 이동성 조류의 도래지 기능 등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그러한 가치들에 대하여 확립된 연구평가기법이 없고 계량화 등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정당한 가치를 산출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이유로 경제성 평가에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갯벌에 대한 일반적인 가치평가에 있어서 전문가 또는 전문연구기관들 사이에 아직까지 일치된 견해가 없는 상태이고,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 해양수산부에서도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하여 새만금갯벌의 신뢰성 있는 가치평가를 위한 연구를 진행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앞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평가기법이 등장하여 갯벌의 가치에 대한 계량화 작업이 발달함에 따라 갯벌에 대한 가치 부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는 막연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 경제성 평가에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나) 그 외 원고는 우리나라가 습지에 관한 협약(람사협약)에 가입하고 1999. 2. 8. 습지보전법을 제정하는 등 갯벌을 포함한 습지를 보호 관리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갯벌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주장하나, 습지보전법 부칙 제3조[매립면허 등을 받은 지역에 대한 경과조치]에 의하면, 이 법 시행 당시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한 매립면허를 받았거나 다른 법률에 의하여 당해 면허 또는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는 지역에 대하여는 제8조[습지지역의 지정 등]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새만금갯벌은 습지보전법 적용대상인 습지가 아니고 일반적인 습지의 보존가치가 상승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새만금사업에 대한 기왕의 경제성 평가에 사정변경이 생겼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 농림부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수질예측시 내부간척지 발생 오염부하량을 참작하지 않고 유역 내 인구 및 축산폐수 배출량 등을 적게 추정하고, 1989. 8. 29. 현재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총인 0.15㎎/ℓ)하고 있는데도 금강호의 장래 수질예측 없이 금강호 물을 연간 4억 7천만 t씩 공급받아 새만금호의 수질개선 희석수로 활용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수질예측을 한 결과, 총인기준 3급수의 수질기준을 달성할 것으로 분석하였고,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 이외에 아무런 추가대책 없이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로 새만금호가 완공될 예정인 2012년을 맞이할 때의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한 시나리오 1에서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0.19㎎/ℓ여서 각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0.10㎎/ℓ로서 농업용수 4등급 수준으로 나타났다. ㉯ 그러나 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 시나리오 1은 당초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저감방안인 전주·이리 등 상류에 하수처리장을 완벽하게 건설하고, 저층수 배제시설 2개소를 설치하여 오염된 호수 밑바닥 물을 외해로 방출하는 등의 대책을 제대로 고려하지 아니하고 건설예정이었던 하수처리장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1998년 현재의 환경기초시설을 고정한 채 2012년의 수질을 예측한 것으로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저감조건을 충족하지 않고 사후에 다른 조건하에서 이루어진 수질예측이다. ㉰ 민관공동조사단은 또 환경부가 1999. 12.에 제시한 오염총량관리제 도입, 전주권 그린벨트 60.27% 보전, 환경기초시설 설치, 하수관거 정비, 하수고도처리시설 2개소 설치, 인공습지조성, 금강호 물 유입, 농경시비량 30% 감소 등 실현가능성이 높은 수질보전종합대책이 마련되는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 2에서 만경수역의 2012년 예측수질은 연평균 COD 6.45㎎/ℓ, 총인 0.12㎎/ℓ로서 각 COD는 4등급, 총인은 5등급 수준으로 예측하여 만경수역의 수질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 한편, 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에 의하면, 시나리오 1을 제외한 나머지 6개 시나리오에서 새만금호 평균수질(만경, 동진수역의 평균)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2000. 12.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 기관의 이행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1차 검토 결과 2012년 수량 중평균 예측수질은 만경수역의 경우 COD 6.2㎎/ℓ, 총인 0.117㎎/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여 만경수역은 수질관리상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2001. 2. 관계 기관이 제시한 간척지 내 농촌마을 규모조정, 환배수로 통수량 증대, 인공수초섬에 의한 영양물질 제거 등의 추가대책에 대한 환경부의 2차 검토 결과 2012년 수량가중평균 수질예측 결과 만경수역의 경우 COD 5.5㎎/ℓ, 총인 0.103㎎/ℓ로서 COD는 4등급이나 총인은 5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또한, 2000. 12. 관계 부처의 이행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1차 검토 결과 2012년에 예측되는 만경수역의 영양 상태와 현재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 아산호, 삽교호 등 기타 간척지 호수나 영산호 등의 농업용수 이용실태를 고려할 때 만경수역에서 예측되는 총인이 농업용수만으로 이용함에는 결정적인 지장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 시화호의 경우 해수유통 이전의 수질이 COD 16.8ppm, 총인 0.213ppm, BOD 23.0ppm이던 것이 해수유통 이후에 COD 8.2ppm, 총인 0.094ppm(1998. 6. 기준) 및 BOD 4.9ppm(2000. 8. 기준) 수준으로 수질이 개선되었다. 환경부는 국무총리로부터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기초로 하여 만경강 목표수질 달성가능성 여부 및 수질보전대책의 보완에 관하여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농림부, 농업기반공사, 전라북도, 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의 수질보전대책을 제출받아 2000. 12.에 1차 검토를 하고, 관계 기관의 추가대책에 대하여 2001. 2.에 2차 검토를 하였는바, 갑4의 기재 및 제1심의 환경부장관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2003. 8. 18.자)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경부에서는 2차례에 걸쳐 2012년도 완공예정인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함에 있어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기초로 하되 농림부 등 관련 부처 조치계획 등을 종합하여 새만금 유역의 오염부하량, 수질개선대책 등을 설정하였는바, 그 수질예측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1차 수질예측에서는 오염원 변화에 관하여, 2012년에는 1998년 현재와 비교하여 새만금유역 인구는 1998년보다 90,000명이 자연증가한 1,438,000명이 되고, 토지이용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전, 답, 임야가 약간씩 감소하고, 오염원은 약 20%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구체적으로 2012년에는 1998년보다 산업폐수량이 25% 증가하고, 한우가 10.0% 감소하며, 젖소는 20.0%, 돼지는 15.8%, 가금류는 6.0% 각 증가하고, 양식 면적이 가두리 20.5%, 유수식 10.4%, 도전양식 84.0% 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둘째, 1차 수질예측에서는 민관공동조사단, 관련 부처에서 제시된 수질개선대책들을 실행가능성 여부에 따라 3개의 조합{ⓐ 실현가능성이 높은 대책, ⓑ 실현가능성은 있으나 재원조달계획이 미확정인 대책, ⓒ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낮은 대책으로 분류하여 ⓐ(대책조합 1), ⓐ+ⓑ(대책조합 2), ⓐ+ⓑ+ⓒ(대책조합 3)로 대책조합을 구성}으로 구성한 후 각 대책조합별로 수질을 예측하였다. 셋째, 2차 수질예측에서는 기존의 대책조합에다가 ㉠ 간척지 내 농촌마을 규모 조정 방안, ㉡ 환배수로 통수량을 초당 8㎥에서 초당 30㎥로 늘리는 방안, ㉢ 2012년도의 축산 사육두수 감소방안(1998년도보다 한우 36.8%, 젖소 4.6%, 돼지 16.9% 각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 ㉣ 인공수초섬에 의한 영양물질 제거 방안 등의 대책을 추가함으로써 오염원 변화 및 대책조합을 약간 달리하였다. 넷째, 수질예측시에 새만금 담수호를 16개 수역(만경수역 9개 수역, 동진수역 7개 수역)으로 구분하여 각 수역 구간별 수질측정을 하는 한편, 수량가중평균과 산술평균으로 나누고 논에 물을 끌어 쓰는 관개기간 등 특정시기의 수질을 예측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위 수질예측 결과 동진수역은 COD 4.0㎎/ℓ, 총인 0.072 내지 0.073㎎/ℓ 등으로 모두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충족한 반면, 만경수역의 경우 총인이 1차 예측에서 0.117 내지 0.128㎎/ℓ, 2차 예측에서 0.103㎎/ℓ로 각 예측되어 농업용수 수질기준을 초과하였는바, 그 세부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수질문제는 수질이 나쁜 시기에 나쁜 수역구간에서 발생하므로 산술평균, 구역별, 시기별로 각 산출된 예측수질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데, 특히 새만금 담수호에서는 수량가중 연평균 농도의 수질대표성이 낮다. 만경수역의 총인 농도는 ㉠ 1차 예측시 산술평균 0.114 내지 0.153㎎/ℓ, 2차 예측시 산술평균 0.127㎎/ℓ, ㉡ 가장 나쁜 수역구간인 2구역의 경우 1차 예측시 연평균 0.180 내지 0.188㎎/ℓ로 각 예측되었다. 셋째, 만경수역의 COD는 수질오염이 사회문제화된 1996년 당시의 시화호 수준에 근접하여 호소수질관리 및 농업용수 사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만경수역의 COD는 ㉠ 1차 예측시 6.2 내지 7.0㎎/ℓ(산술평균 8.0 내지 8.9㎎/ℓ), 2차 예측시 5.5㎎/ℓ(산술평균 7.4㎎/ℓ), ㉡ 가장 나쁜 수역구간인 2구역의 경우 1차 예측시 연평균 10.3 내지 11.4㎎/ℓ, 2차 예측시 9.7㎎/ℓ로 각 예측되었다. 넷째, 만경수역의 조류(藻類, Chl-a, ‘크로로필-a’라고도 한다)농도는 일 년 내내 조류경보(25mg/㎥ 이상) 발령기준에 해당되고, 조류대발생(100mg/㎥ 이상)에 해당되는 시기도 있는 등 조류가 과다 번식할 경우 악취가 발생하고 어패류가 폐사할 우려가 있다. 만경수역의 조류농도는 ㉠ 1차 예측시 45.1 내지 49.4mg/㎥(산술평균 58.4 내지 62.5mg/㎥), 2차 예측시 38.8mg/㎥(산술평균 52.0mg/㎥), ㉡ 가장 나쁜 수역구간인 2구역의 경우 1차 예측시 연평균 84.8 내지 89.8mg/㎥(관개기 15일 지속되는 기간 81.0 내지 160.0mg/㎥), 2차 예측시 75mg/㎥(관개기 15일 지속되는 기간 68.9 내지 137.0mg/㎥)로 각 예측되었다. 첫째, 향후 예측되는 만경수역의 영양 상태와 현재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아산호, 삽교호 기타 간척지 호수나 아산호 등의 농업용수 이용실태를 고려할 때 농업용수만으로 이용되는 경우 만경수역에서 예측되는 총인이 결정적인 지장을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둘째, 만경수역의 연평균 영양 상태는 과영양 수준일 것으로 예측되어 일조량, 수온 등 다른 외부조건이 조류발생에 적합하게 조성될 경우에는 해당수역에서 조류가 과다번식할 수 있고, 과다번식된 조류가 사멸ㆍ분해되는 과정에서 호소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일 년 중 1달여(36일)는 COD 8.5㎎/ℓ, 총인 0.157㎎/ℓ를 초과하는 수질이 예측되는 등 호소수질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동진수역의 물이 유입되기 이전의 유로 폭이 좁은 2 내지 5 구간은 1년 중 1개월여 동안 COD 12.3㎎/ℓ, 총인 0.235㎎/ℓ를 초과하여 조류발생에 따른 환경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시기별로는 상층수(上層水)의 경우 갈수기ㆍ저수기에 조류의 대량발생으로 인한 수중의 유기물 내부생산이 증가하여 오염이 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심수층(深水層)은 하절기에 염분 및 수온 차이에 의한 성층화(成層化)로 인하여 용존산소가 고갈됨으로써 동물상이 파괴됨과 동시에 퇴적물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용출되는 등의 환경영향이 예상된다. 국무총리는 2001. 5. 25. 위 민관공동조사 결과, 관계 부처의 검토내용, 토론회 및 평가회의 결과를 참고로 하여 새만금사업에 대한 정부조치계획을 확정·발표하고 관계 부처에 지시사항을 시달하였으며, 피고를 포함한 정부 관계 부처는 합동으로 2001. 8. 6. 새만금사업 후속 세부실천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을가1, 53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바, 정부조치계획은 2001. 5. 25. 발표되었고, 이 사건 거부처분은 그 발표 하루 전인 2001. 5. 24.에 있었는데,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 이후 수차에 걸쳐 피고를 포함한 정부 관계 부처에서 국무총리실의 주도 아래 장관회의 및 차관회의를 거치면서 수차 새만금사업의 경제성, 수질문제 등에 관한 검토를 하였고, 2001. 5. 10. ~ 11. 새만금 공개토론회를 거친 후에 정부조치계획이 마련되었으므로, 피고는 적어도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에 이미 정부조치계획에 포함된 새만금 수질달성의 문제점과 그 대책에 관하여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2001. 8. 6. 마련된 세부실천계획은 정부조치계획에 대하여 피고를 포함한 각 관계 부처의 구체적 실천계획일 뿐이므로, 정부조치계획 및 세부실천계획에 포함된 문제점 및 그에 대한 대책은 이 사건 거부처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에 속한다 할 것이다. 국무총리는 기본방향으로 새만금사업의 완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면서, 다만 수질과 갯벌보전, 환경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보완대책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음 그 추진사항으로 방조제는 완공하되, 동진수역부터 먼저 개발하고 만경수역은 수질이 목표수준에 적합하다고 평가될 때까지 개발을 유보하며, 그 밖에 ‘친환경적 사업추진계획’, ‘갯벌보전·관리 종합대책추진’, ‘새만금사업의 환경 관련 소요예산판단’, ‘추진체계 구축운영’ 등 사업의 계속추진과 관련된 사항을 밝힘과 아울러 농림부·환경부·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별 주요 조치사항을 정하고, 이에 따라 소관부처별로 세부실천계획을 2001. 7. 말까지 마련, 추진할 것을 지시하였다.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 관계 부처는 합동으로 2001. 8. 6. 새만금사업 후속 세부실천계획을 수립하면서 아래와 같은 수질개선대책을 확정하였다. 첫째, 만경강ㆍ동진강 수질개선대책으로서, ㉠ 하수처리장 23개 추가설치, 하수고도처리시설 6개 설치, 하수관거 2,820㎞ 확충 정비, 생활계 분뇨 및 정화오니 수거율 제고 등의 환경기초시설 확충 ㉡ 축산분뇨처리시설 확충(분뇨처리 315개소, 퇴비사 등 622개소), 왕궁특수지역 축산폐수 처리대책 등의 축산분뇨 관리대책 ㉢ 오염총량관리제를 도입하고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예정지역을 오염원이 증가되지 않도록 녹지지역으로 지정ㆍ관리하는 등의 방안이 제시되었고, 그 소요사업비는 총 1조 1,859억 원에 이르고 그 중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1,718억 원, 그 이후부터 2011년까지 매년 679억 원을 각 투입하여 위 시설들을 단계별로 설치할 예정이다. 둘째, 새만금 내부 수질개선대책 중 ㉠ 호소 유입부 수질개선대책으로서, 침전지 2개, 인 처리시설 1개, 금강호 물을 만경수역에 끌어들이는 유입수로 등을 설치하는 방안이 있고, ㉡ 호소 내부 수질개선대책으로서, 인공습지 등 습지 5개 조성, 인공수초섬(0.4㏊), 저층수 배제시설 2개, 만경강물의 외해배제를 위한 환배수로, 저류지 5개, 동진강물을 희석수로 이용하기 위한 연결수로 등의 설치방안이 있으며, ㉢ 끝으로, 내부간척 주거지 내에 하수처리시설 2개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는바, 그 소요 사업비는 총 2,257억 원에 이르고 이를 연차별로 투입하여 2006년 방조제 완공 이전에는 저층수 배제시설만이 설치되고 나머지 시설들은 2011년도에 완공될 예정에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 농어촌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정부조치계획에 반영한 인 처리시설 설치계획에 따라 2005년 ~ 2008년 사이에 만경수역 유입부 침전지에 인 처리시설 1개소를 설치하여 인 처리를 한 후 만경수역 상류부로 방류하면 만경수역 수량가중평균 예측수질이 COD기준 5.5㎎/ℓ에서 5.2㎎/ℓ로, 총인 기준 0.103㎎/ℓ에서 0.099㎎/ℓ로 변화되어 농업용수 기준인 4등급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 위 환경부 2차 검토 결과 2012년 만경강의 수질예측치가 COD 기준 8.7㎎/ℓ, 총인 기준 0.356㎎/ℓ이었으나 2003년 현재 COD 기준 6.4㎎/ℓ, 총인 기준 0.4㎎/ℓ로서 총인 기준 목표예측치의 83%를 이미 달성하였으며, ㉢ 2004. 12. 현재 2011년에 설치완료 예정이던 하수고도처리시설 1개소가 완료되고 1개소가 공사 중이며 4개소에 실시협약체결 등 공사착공 준비가 되는 등 6개소의 설치가 2006년에 완료될 예정이고, 하수관거 461㎞를 완공하고 76㎞를 공사 중에 있으며, 축산분뇨 관리대책에 있어서도 축분처리시설 315개 중 271개소를 완료하고, 액비저장조 622개 중 287개소 및 고속액비화시설 1개소를 완료하였으며 축산폐수가 문제되는 왕궁특수지역의 환경개선사업은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여 현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 중에 있는 등 일부시설이 예정공사기간보다 앞당겨서 완공될 예정에 있고, ㉣ 국무총리실에 민관공동으로 구성된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의 평가 결과 2004년 현재 환경기초시설 확충, 새만금 상류지역 축산분뇨관리대책, 새만금 친환경 간척계획 등 소관부처별 정부실천계획상의 11개 과제 모두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을가12-1~6, 21, 26, 27, 28 및 피고가 제출한 2004. 12. 29.자 참고서면에 첨부된 참고자료 4의 각 기재와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면, ㉠ 2012년의 수질이 총인 기준 0.097㎎/ℓ로 예측되던 금강호물의 수질이 정부가 2000. 10. 25. 금강 수계 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개선되어 2002년에는 0.068㎎/ℓ로 개선되었고, ㉡ 축산법이 개정되어 2003. 12. 27.부터는 축산업등록제가 실시되어 축산폐수로 인한 오염원 관리가 한층 더 용이해졌으며, ㉢ 2001년 이후 수질개선기법 보완발전을 위한 학계, 연구소 등의 조사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2010년 세계 5위권 환경산업 강국 진입을 목표로 환경기술을 개발하고 환경산업의 수출전략사업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2001년부터 10년간 총 10조 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있다. 민관공동조사보고서 및 환경부가 제시한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예측 결과는 새만금 담수호 유역의 오염부하량이 1998년 수준보다 약 20% 정도만 증가하고, 환경부 시안에서 제시한 환경기초시설 등이 제때 완비되어 오염물질의 감소가 이루어진다는 전제에서 제시된 것이고,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낮은 수질개선대책까지 고려하여 오염수준을 최소한도로 설정한 것이었으므로, 만약 환경기초시설이 제때에 건설되지 않거나,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 후 도시의 확장과 공단의 조성이 추진되거나 또는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 내에 대규모 오폐수 발생원이 입지하게 되는 경우에는 위 민관공동조사보고서 및 환경부에서 제시한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예측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원고는 2차 수질예측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재원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대책까지 모두 적용해도 만경수역의 연평균 총인 농도는 농업용수 수질기준에 미달하는 0.103㎎/ℓ에 머무는 것으로 예측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당초 환경부에서 ‘실현가능성은 있으나 재원조달계획 미확정 대책’으로 든 3가지 중 하수처리장 용량증가분(11,000t/일)은 2004년 현재 하수처리시설을 확충하는(213,000t/일) 계획으로, 하수고도처리시설 4개소는 6개소로, 하수관거 2,820㎞는 예정대로 각 시행 중에 있으며,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하거나 낮은 대책’ 2가지 중 만경강 물 외해 배제 방안은 2004년 현재 이를 위한 환배수로를 2008년 ~ 2011년 사이에 설치하는 계획이 확정되어 있으며, 추가대책 중 인공수초섬을 2009년 ~ 2011년에 설치할 계획이 확정되어 있고(이상 을가8, 10, 53, 126 및 앞에서 든 참고자료 18 참조), 간척지 내 농촌마을 규모 조정방안이나 환배수로 통수량을 초당 8㎥에서 30㎥로 늘리는 방안 및 축산 사육두수를 감소시키는 방안이 실현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 만경강ㆍ 동진강 수질개선대책으로서 오염원을 줄이는 방안 중 오염총량제는 현재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만을 관리대상으로 하고 있어 총인 등을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린벨트 해제 제한과 마찬가지로 위 제도가 시행될 경우 도시성장 및 산업발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 유입 하천 상류 및 호소 내에서 오염원을 제거하는 방안 중 금강호 물의 희석수 도입방안은 금강호 수질 및 인근 해역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한 환경생태계 영향조사 등이 선행되어야 하고, 환배수로를 통하여 연중 266일 동안이나 만경강 물을 바다로 끌어내는 방안은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이 먼저 검토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확보목적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며, 침전지 및 인공습지를 설치하는 방안은 과다한 설치비용에 비해 그 효능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단계라는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등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고, 또한 앞으로 오염원 증가로 장래 수질이 악화되거나 사업목적 변경으로 더 엄격한 수질이 요구될 경우 그에 비례하여 수질개선비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인데,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천문학적인 돈을 상수원 수질개선비 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투입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 정부의 순차개발방식에 의하여 만경수역 수질이 개선되는 동안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킨다 하더라도 방조제 내측 북부와 중앙부에서 여름철에 성층이 형성되고 물의 정체로 저층수의 용존산소 소모량이 증가하는 등 수질이 악화될 것이다. ㉮ 간척지 담수호인 영산호, 아산호, 삽교호, 시화호 등 대부분이 정부가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환경기초시설 등을 설치하였음에도 수질이 악화되거나 정체되는 등 호소 수질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담수호들의 경우 하천 상류에 위치하는 댐 호수에 비하여 인구밀집지 및 산업시설 등 많은 오염발생원을 가지고 있고 그 증가 속도를 수질개선대책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며, 특히 수심이 얕고 담수호 면적이 크며 호수로 유입되는 오염부하가 많은 담수호의 경우에는 시화호의 예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부영양화 등으로 호수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강 하구를 막아 담수호를 만들었던 시화호도 엄청난 예산만 낭비한 채 ‘죽음의 호수’로 불릴 정도로 수질이 악화되었다가 해수를 유통시킴으로써 오염을 방지하고 담수화를 포기하였음에 비추어 담수호 면적에 있어 시화호의 2배 정도이고 오염원 분포에 있어 시화호 보다 더 많은 산업체가 들어서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심이 더 얕고, 형태상 상류부분이 하천처럼 길게 생겨 오염물질의 확산이 쉽지 않는 등으로 수질관리상 불리한 새만금 담수호는 수질오염으로 농업용수는 물론 호수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사업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더구나 새만금 담수호는 유역에서 발생하는 축산분뇨 등의 오염부하량이 많아 부영양화가 우려되는 등 수질관리상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는바, 일반적으로 축산분뇨 등에서는 부영양화의 원인이 되는 총인을 대량 배출하는데 보존성 물질인 총인은 호소 안에 머물다가 조류를 발생시키는 특질을 가지고 있고, 환경부 수질예측 결과 부영양화의 직접 지표인 클로로필-a의 농도 역시 조류경보 발령기준을 초과한 38.8mg/㎥로 예측되었던 점 등에 비추어, 부영양화의 우려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만경수역의 경우 담수호로서의 수질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위 가)항에서 본 바와 같이 농림부에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수질예측에 오류가 있었고, 민관공동조사단이 새만금사업 시행계획이 채택한 수질대책에 의할 때의 담수호의 수질을 예측한 시나리오 1에서 총인 기준으로 만경호는 등급 외 수준이고, 동진호는 농업용수 4등급 수준으로 나타났다거나, 1999. 12.에 제시된 환경부의 수질보전종합대책이 마련되는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 2에서 만경수역의 2012년 예측수질이 COD는 4등급, 총인은 5등급 수준으로 분석되었다 하더라도, 2000년 민관공동조사단의 수질예측 시나리오 1은 환경영향평가 당시의 오염저감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수질예측이고, 시나리오 1을 제외한 나머지 시나리오 2 내지 7에서 새만금호 평균수질이 COD 5.06 ~ 5.76㎎/ℓ, 총인 0.09 ~ 0.10㎎/ℓ의 범위로서 COD는 모두 3등급을 만족하고 총인은 모두 4등급을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에 비추어, 정부조치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의 사정만으로 목표수질의 달성불능이라는 사정변경이 있다고 할 수 없다. ㉮ 오염총량제는 총인을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다거나 도시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 또는 금강호 물의 도입방안이나 환배수로를 통한 만경강 물을 외해로 배제할 경우에는 각 환경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검토하여야 한다는 점 등은 장래 발생할 문제점의 지적이거나 선행적 조건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문제점 및 발생정도가 불명확하므로 이를 이유로 사정변경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수질개선대책에 필요한 재원마련에 어려움이 있고, 과다한 비용으로 자원배분의 형평성과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만경·동진강 대책비용 1조 1,859억 원에서 농림부 소관 축산분뇨처리시설 등을 위한 553억 원과 환경부 소관 1조 1,306억 원 중 하수처리시설비 등 5,637억 원만이 추가로 소요될 예정이고, 새만금 내부 수질개선비 2,257억 원 중 신규로 소요될 예산도 796억 원에 불과하며, 전라북도에서는 환경기초시설의 민자 유치를 성사시켜 지방비 부담을 완화시킨 점, 정부조치계획 이후 관계 부처는 환경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지원하고 있고, 위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만경·동진강 수계 오염방지와 환경정화 효과 및 정부는 세계 5위권 환경산업 강국으로 진입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뿐더러 환경권은 인간의 삶의 요소인 건강·행복 등을 증진하기 위하여 인격권적 기본권으로 자리매김하는 마당에 환경보전을 위하여 국가는 적정량의 예산을 확보하여 집행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점 등에 비추어보면, 새만금 사업에 대한 환경보전을 위한 재원조달의 어려움과 자원배분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공익상 이 사건 매립면허 등을 취소할 정도의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거나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없다. ㉰ 순차개발방식은 2006년 방조제가 완성된 이후 동진호와 만경호를 구분하는 방수제 공사가 진행된 이후 동진수역의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만경호는 배수갑문을 통해 해수를 유통시키고 만경호의 수질개선이 이루어진 뒤에 만경수역의 간척사업과 만경호의 담수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임은 앞서 본 바와 같고, 그러한 담수화 과정에서 해양 동식물과 미생물의 폐사와 그로 인한 부영양화가 일시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담수화는 2 ~ 3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시화호가 해수유통 이후에 수질이 대폭 개선되었듯이 해수의 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전체적인 수질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정부조치계획에 의하더라도 수질관리상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는 주장은 이를 인정하기 어렵고, 일부 그와 같은 사정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 매립면허 등을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다고는 할 수 없다. ㉱ 새만금호는 시화호보다 오염원의 단위면적당 밀도가 1/10 정도로 작고, 오염원이 호수와 인접해 있는 시화호와 달리 완주·전주·익산공단 등 멀리 산재해 있어 하천을 거치면서 정화된 후에 호소로 유입되며, 물의 순환주기가 2.5개월로 시화호의 10개월보다 빠르고, 체류시간이 더 짧으며 하천 수질에 있어서도 시화호의 반월천보다 만경, 동진강의 하천 수질이 양호하여 수질관리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고, 또 수질이 상대적으로 나쁜 만경수역은 해수를 유통시키면서 수질이 개선된 연후에 담수화를 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시화호의 예에 비추어 새만금호의 수질관리상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는 주장도 이유 없다. ㉲ 을가55의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더하여 보면, 2001년 및 2002년도 아산호, 삽교호, 영산호 등 국내 담수호의 수질은 대부분 총인 기준 4급수를 초과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되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본은 농업용 호소기준에 총인을 아예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경우 일반 호소수질 기준으로 총인을 적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0.10㎎/ℓ보다 높은 0.15㎎/ℓ를 적용하고 있으며, 환경부의 1차 수질예측에서도 총인 기준으로 0.117㎎/ℓ인 새만금호의 예측수질이 농사용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새만금호 유역에서 총인이 대량 배출되어 부영양화가 우려되고 조류발생이 예상된다는 등의 사정도 이 사건 매립면허처분 등을 취소할 정도로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사정변경이라고 할 수 없다. 원고 주장과 같이, 피고가 “방조제 완공 이전에 유역권 내 주요 오염원들에 대한 처리시설을 갖출 수 있도록 하라.”는 1991. 6. 환경부의 수질관리에 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을 지키지 아니하고 결과적으로 방조제를 우선 완공함으로써 협의내용을 위반하였다 하더라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에 확정된 정부조치계획에 의해 수질이 좋은 동진수역을 우선 개발하고 상대적으로 수질이 나쁜 만경수역은 동진호와 분리하여 우선 해수를 유통시키면서 수질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수화 작업을 한다는 순차개발방식을 채택하였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순차개발방식에 의한 수질관리에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거나 그 사정변경이 이 사건 매립면허 등을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가) 당초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당시 환경청장은 1989. 6. 22. 농림수산부장관의 협의요청에 대하여 해양환경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조류의 변화(유향, 유속, 유량 등)에 따른 침식 및 토사 퇴적에 의한 해저지형의 변화로 인한 해양환경변화’, ‘매립으로 인한 해수 순환 장애, 담수호로부터의 호소수의 대량 방류로 인한 급격한 해수의 염분 저하에 따른 해양 생태계 파괴 및 인근 양식장 피해’ 등 7개 사항을 보완한 후 재협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하여 농림수산부장관은 1989. 8. 22. 환경분야 재협의를 위하여 해양환경의 악영향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한 보완자료와 함께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였으며, 환경청장은 다시 1989. 12. 22. ‘조류가 많이 발생하는 하절기에 저류수를 방류하여 물의 순환을 촉진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담수를 방조제 외측 해역에 방류할 경우 방류해역 인근의 저염분화 및 오염으로 인하여 미치는 수산물 피해 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7개 사항을 보완한 다음 재협의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농림수산부장관은 1990. 3. 14. 담수 방류시의 인근 해역에의 영향을 일본 환경영향평가기법의 모델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영향이 미미하나 방조제 축조 전·후에 전문용역을 실시한 후 악영향에 대하여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의 보완자료를 제출하였다. 나) 그 후 민관공동조사단에서는 방조제 완공으로 인하여 방조제 안쪽에 니질(泥質) 퇴적층 조성 등 해저지형 변화, 변산반도 지역의 해수유통 악화와 영양염 축적 및 이로 인한 적조 다발 우려, 담수 및 부영양 물질 대량 방류에 의한 방조제 바깥쪽 해양생태계 충격 등을 방조제 완공 후 저감이 불가능한 피해로 지적하였다. 다) 한편, 한국해양연구원에서는, 현재 새만금 인근해역은 COD 기준으로 2㎎/ℓ 미만의 양호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는데,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될 경우 방조제 전방 2㎞ 일대 해역에서 유속이 감소하여 부유물 침하, COD 악화 등으로 인근해역의 수질 악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되고, 또한 새만금담수호의 목표수질인 COD 8㎎/ℓ 수준의 담수가 배출되면 주변해역의 수질이 악화되어 서해연안 생태계 면적의 2.9%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예측하였다. 또한, 방조제의 축조로 방조제 바깥쪽은 자연적인 해안선과 갯벌이 상실된 해양환경으로 전환되며, 4호 방조제 연결 이후 남북방향의 해수순환이 동서로 배치된 고군산열도에 의하여 차단되어 고군산열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이원화되고, 방조제 완공 후 현재 계획된 신시갑문과 가력갑문만을 유지할 경우 갑문구간을 제외한 전 해역에서 조류가 크게 약화되어 방조제 안쪽과 바깥 바다의 해수순환이 크게 제약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하여 하구역에서 바깥 바다로 이어지는 물질순환이 차단되어 방조제 안쪽에서는 물질이 축적되고 바깥쪽에서는 부족하게 되는 등의 물질 불균형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방조제의 축조로 자연적인 해안선이 변하여 해양 생태계가 변하고, 조류가 약화되어 물질 순환이 차단됨으로써 방조제 안팎으로 퇴적환경이 달라지는 점과 새만금호 담수 및 부영양 물질의 대량방류로 인한 주변 해양 생태계의 충격이 발생하는 점 등은 환경영향평가 당시부터 예상되었던 사정이라 할 것이므로 이를 들어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할 수 없고, 방조제 연결 이후 남북방향의 해수순환이 동서로 배치된 고군산열도에 의하여 차단되어 고군산열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이원화되고, 유속이 감소하여 부유물 침하, COD 악화 등으로 인근해역의 수질 악화가 불가피한 점은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라 할 것이나 위 인정 사실만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피해의 정도 내지 사정변경이 이 사건 매립면허처분 등을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고 또한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 그리고 비록 환경영향평가 당시에 예상되었던 사정이라도 그 피해의 정도가 예상한 정도를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 또한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라 할 수 있으나 위와 같이 예상되었던 사정으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가 과학적·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이를 알 수도 없다. (1) 먼저, 원고가 이 사건 거부처분의 취소사유로 주장하는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제1, 2, 5호의 사유에 관한 주장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모두 이유 없다. (2) 다음으로, 제32조 제3호 소정의 사정변경 사유들은, 당초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 당시에 예상하지 못했거나 간과하여 일부 사정변경이 발생하였으나 민관공동조사단의 조사와 정부 관계 부처의 대책수립 및 조치계획 등에 의하여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에는 이미 그러한 사정변경이 소멸하였거나 그 중대성이 감소됨으로써 이 사건 매립면허 및 시행인가처분을 취소할 정도로 공익상 특히 필요하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즉, ① 사업목적 변경과 관련하여서는 정부조치계획에 의하여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에 원래의 사업목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현재까지 사업목적의 일부를 검토 중에 있을 뿐 아직까지 변경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만금사업과 같이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의 국책사업에 있어서는 산업의 발전,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 등을 고려하여 매립준공 시까지 생성되는 대규모 간척지의 효율적인 이용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고, ② 농지의 필요성과 관련하여서는 쌀 공급과잉을 이유로 쌀의 재배면적 축소가 아니라 농지 자체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계속적인 농지전용과 한계농지의 발생을 대체할 우량농지의 확보와 농업경쟁력의 제고, 기후의 변화와 쌀 수입개방으로 인한 식량의 무기화에 대비할 정책적 결단 등의 이유로 집단화된 우량농지의 필요성 또한 부정할 수도 없으며, ③ 경제적 타당성과 관련하여서는 우선 민관공동조사단의 경제성 분석에 따라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므로 사정변경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생태계 안정성 유지 기능 등 경제성 분석에 반영하지 못한 갯벌의 기능가치는 아직까지 계량화 등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갯벌의 가치가 증대된다는 것은 일반적·추상적인 사정일 뿐이므로 이를 들어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단정하거나 그 사정변경이 매립면허 등을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할 수 없고, ④ 수질관리상의 사정변경에 관하여서는 환경영향평가상의 오류는 민관공동조사단의 분석을 통해 목적달성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사정변경이 소멸된 셈이고, 정부조치계획 및 세부실천계획의 수질개선대책은 일부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거나 수질개선방법의 전제조건 및 기술적 효과에 의문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정부 관계 기관의 의지, 주민들의 환경의식 및 환경처리기술의 발달정도에 영향을 받기는 하나 수질개선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기왕의 공사비 및 공사의 진척정도,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 기관의 사업완수 의지, 환경처리기술의 발전 추세 등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사정변경이 중대하여 이 사건 매립면허 등을 취소하여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없으며, ⑤ 해양환경상의 사정변경에 관하여서는 일부 사정변경 사유는 예상된 것이었고, 나머지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 사유는 이 사건 매립면허를 취소할 정도로 중대하고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3) 또한,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제3호 소정의 사정변경 사유와 관련하여 새만금사업의 여러 측면에 존재하는 위와 같은 개개의 구체적인 사정변경 사유들을 전체적으로 종합·고려하면, 수질기준 등 일부에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한편 위 사정변경사유들은 대부분 예측, 평가, 영향, 가치, 효과, 가능성 등에 관한 것으로서 관점에 따라서 견해의 차이가 클 수 있는 불확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점, 새만금사업은 국토의 외연적 확장, 수자원 개발, 대체농지 조성 등에 그 목적이 있고, 국토공간의 과밀화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인한 토지수요 증대에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잠식농지와 한계농지를 대체개발할 필요가 있는 점, 국토의 65%가 산지인 여건하에서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 쌀 수입개방 등으로 인한 미래의 식량 위기, 남북통일 등 국내외 여건 변화에 대비하여 30%를 밑도는 식량 자급률을 제고함으로써 주곡의 안정적 공급과 개방화 시대에서의 국가경쟁력 확보는 국가경영상 중요한 정책과제인 점, 환경과 개발은 모두 인간의 복지를 위한 것으로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어서 일방을 위하여 타방을 희생할 수 없다는 점, 이 사건 새만금 방조제 공사의 진척정도 및 투입된 공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위와 같이 일부 인정되는 예상하지 못한 사정변경 사유만으로 새만금사업 자체를 취소할 필요가 있다거나 그 취소가 공익상 특히 필요한 경우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4) 따라서 원고가 이 사건 거부처분의 취소청구 사유로 주장하는 공유수면매립법 제32조 소정의 각 사유들은 모두 인정되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결국 피고의 이 사건 거부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였다고 할 수 없어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무효확인청구 중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는 원고적격이 없어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고, 원고 조경훈 등 143명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며, 이 사건 거부처분취소청구 중 원고 3537. 내지 3539.의 청구는 취소를 구할 법률상·조리상의 신청권이 없어 부적법하므로 이를 각하하고, 원고 신형록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 중 원고 신형록의 이 사건 거부처분취소청구에 대한 피고 패소 부분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이를 취소하고 그 취소부분에 해당하는 청구를 포함한 원고 신형록의 선택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원고 신형록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부분은 모두 정당하므로 같은 원고들의 항소를 전부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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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비어드가 주는 저주받은 드워프킹의 반지와 합성해서 저주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합성창에 올리면 공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360 방어점: 47 불마법저항: 1 공기마법저항: 1 가격: 2000G 36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에게서 드랍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00 대미지: 1006 체력: 100 힘: 9 마법: 파이어볼 가격: 2500G 고블린, 오크, 경비대, 드워프, 엘프, 트롤, 다크엘프, 오우거의 장검은 모든 전사 보스 몬스터들이 일정 확률로 드랍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400 대미지: 936 이동력: 200 민첩: 8 마법: 파이어볼 가격: 2500G 고블린, 오크, 경비대, 드워프, 엘프, 트롤, 다크엘프, 오우거의 단검은 모든 도둑 보스 몬스터들이 일정 확률로 드랍합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400 대미지: 855 불마법저항: 2 마법력: 200 현명: 7 마법공격력: 288 스킬성공률: 2 마법: 용의 숨결 가격: 2500G 고블린, 오크, 경비대, 드워프, 엘프, 트롤, 다크엘프, 오우거의 지팡이는 모든 마법사 보스 몬스터들이 일정 확률로 드랍합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400 대미지: 875 마법저항: 3 마법력: 200 마법공격력: 181 회복마법회복력: 317 마법: 파이어볼 가격: 2500G 고블린, 오크, 경비대, 드워프, 엘프, 트롤, 다크엘프, 오우거의 메이스는 모든 성직자 보스 몬스터들이 일정 확률로 드랍합니다. 장착레벨: 400 공기마법저항: 2 마법력: 2000 현명: 7 스킬성공률: 15 가격: 2500G 400레벨 이상의 마법사 보스들을 잡을 경우 얻을 수 있습니다.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주는 저주받은 드워프킹의 반지와 합성해서 저주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합성창에 올리면 공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00 방어점: 52 불마법저항: 1 공기마법저항: 1 가격: 2500G 400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에게서 드랍됩니다. 장착레벨: 400 가격: 1000000G 드래곤의 비늘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입니다. 드래곤의 힘을 가지고 마르살라의 종족변경자 루아와 대화하면 종족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20 대미지: 79 체력: 200 민첩: 2 마법: 빛의 화살 가격: 390G 문라이트 스톤과 합성해서 문라이트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152 빛마법저항: 2 체력: 500 민첩: 2 마법: 빛의 화살 가격: 650G 블루 스톤과 합성해서 블루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274 물마법저항: 2 체력: 500 힘: 2 민첩: 2 마법: 얼음기둥 가격: 1040G 레드 스톤과 합성해서 레드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395 불마법저항: 2 체력: 1000 힘: 2 민첩: 2 마법: 마그마 가격: 1040G 문 스톤과 합성해서 만월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517 공기마법저항: 2 체력: 1500 힘: 4 민첩: 4 마법: 벼락 가격: 1690G 블러디 스톤과 합성해서 블러디문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639 어둠마법저항: 2 체력: 2000 힘: 6 마법: 용의 숨결 가격: 1690G 다크 스톤과 합성해서 다크문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834 어둠마법저항: 4 체력: 3000 힘: 6 민첩: 6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2600G 보이드 스톤과 합성해서 보이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956 어둠마법저항: 10 체력: 3000 힘: 6 건강: 8 민첩: 6 마법: 벼락 가격: 6500G 레이든의 일기와 합성해서 보이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50 대미지: 1078 어둠마법저항: 10 체력: 3000 힘: 10 건강: 10 민첩: 10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최후의 마력의 봉인이 풀리지 않아서, 블랙 위도우의 진정한 위력의 극히 일부밖에 내지 못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11G 레이든의 메모와 재질이 같은 것을 보면 일기장의 한 부분인 듯 합니다. 레이든의 일기(파트2)와 합성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11G 블랙위도우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주문이 적혀있습니다. 보이드와 합성하여 봉인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432 대미지: 1042 체력: 10000 지력: 35 현명: 35 마법공격력: 351 스킬성공률: 2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블랙 위도우 퀘스트의 보상 아이템인 블랙 위도우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장거래, 유저간 거래는 불가능하나 상점판매는 가능합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432 대미지: 1067 체력: 10000 지력: 35 현명: 35 마법공격력: 220 회복마법회복력: 386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블랙 위도우 퀘스트의 보상 아이템인 블랙 위도우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장거래, 유저간 거래는 불가능하나 상점판매는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32 대미지: 1217 체력: 10000 힘: 35 민첩: 35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블랙 위도우 퀘스트의 보상 아이템인 블랙 위도우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장거래, 유저간 거래는 불가능하나 상점판매는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00 가격: 100000G 각 던전의 강력한 보스를 쓰러뜨린 증거입니다. 용병길드 마스터 신쭈에게 가져다 줘야합니다. 칼로의 머리카락, 이가스의 마력의 파편, 격노한 수룡의 역린을 합성해서 만듭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08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472 스킬성공률: 5 마법: 벼락 가격: 6500G 드래곤의 지팡이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10 마법저항: 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229 회복마법회복력: 600 마법: 바위 가격: 6500G 드래곤의 메이스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276 추가공격력: 100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장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87 회피율: 3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민첩: 35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단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08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472 스킬성공률: 5 마법: 벼락 가격: 6500G 드래곤의 지팡이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10 마법저항: 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229 회복마법회복력: 600 마법: 바위 가격: 6500G 드래곤의 메이스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276 추가공격력: 100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장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87 회피율: 3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민첩: 35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단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450000G 블랙드래곤의 비늘입니다. 드래곤의 장비들과 합성할 경우 강력한 A급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레벨 제한이 없는 아이템이 합성 재료일 경우, 최종 레벨은 레벨 제한 없는 아이템과 동일하게 됩니다. 현자의돌 판매상에게서도 구입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450000G 화이트 드래곤의 비늘입니다. 드래곤의 장비들과 합성할 경우 강력한 A급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레벨 제한이 없는 아이템이 합성 재료일 경우, 최종 레벨은 레벨 제한 없는 아이템과 동일하게 됩니다. 현자의돌 판매상에게서도 구입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빛마법저항: 5 체력: 3000 마법력: 8000 현명: 15 마법공격력: 230 스킬성공률: 5 어둠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의 레벨과 같은 레벨로 합성됩니다. 미리온의 암흑의 오브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추가공격력: 250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 이동력: 8000 힘: 10 민첩: 5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그룸의 전투의 오브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의 레벨과 같은 레벨로 합성됩니다. 미리온의 전투의 오브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170000G 얼음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얼음 봉인의 파편입니다. 스프랄루스의 아이템들과 합성할 경우 강력한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레벨 제한이 없는 아이템이 합성 재료일 경우, 최종 레벨은 레벨 제한 없는 아이템과 동일하게 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5 방어점: 85 추가공격력: 100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15 민첩: 25 가격: 6500G 칼로의 부츠(자이언트케이브의 자이언트 칼로 드랍)와 사냥꾼의 숲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합성해서 만든 부츠입니다. 합성시 칼로의 부츠의 장착레벨이 칼로의 배틀마스터 부츠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7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힘: 15 현명: 25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워록의 부츠(아스록 3층의 드래곤 해츨링, 격노한 드래곤 해츨링 드랍)와 사냥꾼의 숲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합성해서 만든 부츠입니다. 합성시 워록의 부츠의 장착레벨이 워록의 마정석 부츠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280 방어점: 43 추가공격력: 25 대지마법저항: 5 체력: 7000 힘: 5 건강: 10 가격: 1690G 골렘의 부츠(옛도둑들의 미로(중층)의 드워프 발굴가가 주는 퀘스트 보상)와 사냥꾼의 숲에서 나오는 마정석을 합성해서 만든 부츠입니다. 합성시 골렘의 마정석 부츠의 장착레벨이 골렘의 발모양 부츠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20 추가공격력: 25 체력: 4000 건강: 10 민첩: 7 가격: 1040G 건강의 부츠(잊혀진 길의 노예사냥꾼 두목 베논 드랍)와 마정석, 철제 장검을 합성해서 만든 부츠입니다. 합성시 건강의 부츠의 장착레벨이 전사의 건강 부츠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20 체력: 4000 건강: 10 지력: 7 마법공격력: 25 가격: 1040G 건강의 부츠(잊혀진 길의 노예사냥꾼 두목 베논 드랍)와 마정석, 철제 지팡이를 합성해서 만든 부츠입니다. 합성시 건강의 부츠의 장착레벨이 마법사의 건강 부츠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홀리스피릿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헬파이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블러드러스트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전신의축복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분노의광시곡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거인의주먹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1 방어점: 8 가격: 100000G 첫번째 달 루미나스의 마력이 깃든 파편입니다. 현자의돌 판매상에게서도 구입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정령왕의 축복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거인의 주먹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불꽃의 힘2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헬파이어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홀리 스피릿2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홀리 스피릿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블러드 러스트2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블러드 러스트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전신의 축복2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전신의 축복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분노의 광시곡2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분노의 광시곡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5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홀리 스트라이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홀리 스피릿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디바인 스트라이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홀리 스트라이크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세이크리드 스트라이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디바인 스트라이크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성직자의 200리모탈 스킬인 아니스의 징벌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세이크리드 스트라이크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헬플레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불꽃의힘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헬플레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헬플레임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게헤나 플레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헬플레어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아바돈 플레임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게헤나 플레임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메테오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거인의주먹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타이탄의 주먹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메테오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메테오 폴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타이탄의 주먹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기간테스의 주먹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메테오 폴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쉐도우 어설트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블러드 러스트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쉐도우 블레이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쉐도우 어설트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어새신 블레이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쉐도우 블레이드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어새신 스트라이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어새신 블레이드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분노의 일격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전신의 축복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본 브레이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분노의 일격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립 크러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본 브레이크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스컬 크러쉬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립 크러쉬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공포 변주곡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놀람 변주곡2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스킬책은 70리모탈 이상이면 레벨에 관계없이 사용가능합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죽음의 변주곡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공포 변주곡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레퀴엠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죽음의 변주곡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가격: 100000G 데드 마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레퀴엠 스킬을 알고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불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455 바람마법공격력: 6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대지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물마법공격력: 65 대지마법공격력: 385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빛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회복마법회복력: 225 스킬성공률: 2 빛마법공격력: 175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회피율: 3 방어점: 35 추가공격력: 245 체력: 5000 이동력: 5000 민첩: 7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30 추가공격력: 80 마법저항: 14 체력: 3000 힘: 6 건강: 6 민첩: 11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마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70 마법저항: 14 마법력: 1500 지력: 7 현명: 12 마법공격력: 45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15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30 마법저항: 14 마법력: 2000 지력: 6 현명: 13 마법공격력: 40 스킬성공률: 2 물마법공격력: 70 대지마법공격력: 15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70 마법저항: 14 마법력: 1500 지력: 7 현명: 12 마법공격력: 35 회복마법회복력: 30 스킬성공률: 2 빛마법공격력: 13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75 체력: 4500 마법력: 4500 지력: 3 현명: 7 마법공격력: 35 불마법공격력: 60 바람마법공격력: 15 가격: 1040G 엘프마을 공헌담당 데로프에게서 공헌도로 얻을 수 있는 왕국의 미스릴 벨트를 합성해서 만든 마법의 벨트입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75 체력: 4500 마법력: 4500 지력: 3 현명: 7 마법공격력: 35 물마법공격력: 15 대지마법공격력: 60 가격: 1040G 엘프마을 공헌담당 데로프에게서 공헌도로 얻을 수 있는 왕국의 미스릴 벨트를 합성해서 만든 마법의 벨트입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75 추가공격력: 80 체력: 4500 이동력: 4500 힘: 7 민첩: 3 가격: 1040G 엘프마을 공헌담당 데로프에게서 공헌도로 얻을 수 있는 왕국의 미스릴 벨트를 합성해서 만든 마법의 벨트입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66 추가공격력: 50 체력: 3000 이동력: 2500 힘: 10 민첩: 15 가격: 6500G 닌자 마스터의 부츠(아스록의 닌자 마스터 드랍)와 네이의 바람의 부츠(번개의 계곡의 뇌제 네이 드랍)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된 부츠의 레벨은 닌자 마스터의 부츠의 레벨로 됩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66 체력: 2500 마법력: 5000 힘: 5 지력: 5 현명: 15 마법공격력: 60 스킬성공률: 2 가격: 6500G 미넬라의 부츠(비스크의 어둠의 사제 미넬라 드랍)와 네이의 바람의 부츠(번개의 계곡의 뇌제 네이 드랍)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된 부츠의 레벨은 미넬라의 부츠의 레벨로 됩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75 추가공격력: 80 체력: 4500 마법력: 4500 지력: 3 현명: 7 회복마법회복력: 60 빛마법공격력: 15 가격: 1040G 엘프마을 공헌담당 데로프에게서 공헌도로 얻을 수 있는 왕국의 미스릴 벨트를 합성해서 만든 마법의 벨트입니다. 장착레벨: 430 추가공격력: 50 공기마법저항: 6 체력: 1500 이동력: 4300 힘: 5 건강: 3 민첩: 3 스킬성공률: 16 가격: 6500G 에스메랄다의 황금 반지로 합성한 반지입니다. 합성시 에스메랄다의 황금 반지의 장착레벨이 에스메랄다의 전투의 반지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430 공기마법저항: 6 체력: 1500 마법력: 4300 힘: 3 지력: 3 현명: 5 마법공격력: 50 스킬성공률: 16 가격: 6500G 에스메랄다의 황금 반지로 합성한 반지입니다. 합성시 에스메랄다의 황금 반지의 장착레벨이 에스메랄다의 마력의 반지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430 추가공격력: 110 공기마법저항: 7 체력: 2500 이동력: 5000 힘: 7 건강: 5 민첩: 2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에스메랄다의 미스릴 반지로 합성한 반지입니다. 합성시 에스메랄다의 미스릴 반지의 장착레벨이 에스메랄다의 대격전의 반지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430 공기마법저항: 7 체력: 2500 마법력: 5000 힘: 5 지력: 20 현명: 7 마법공격력: 11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에스메랄다의 미스릴 반지로 합성한 반지입니다. 합성시 에스메랄다의 미스릴 반지의 장착레벨이 에스메랄다의 대마법의 반지의 장착레벨이 되며, 기존의 강화옵션은 모두 소멸됩니다. 장착레벨: 400 가격: 100000G 스페르첸드의 용병길드 마스터 신쭈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명성 퀘스트인 아크가디언, 히어로, 아크히어로 퀘스트의 재료를 합성한 결과물입니다. 장착레벨: 1 방어점: 8 가격: 100000G 첫번째 달 루미나스의 마력이 깃든 파편입니다. 현자의돌 판매상에게서도 구입가능합니다. 장착레벨: 1 방어점: 8 가격: 100000G 첫번째 달 루미나스의 마력이 깃든 파편입니다. 현자의돌 판매상에게서도 구입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3400G 화이트 드래곤을 만날 자격을 증명하는 인장입니다. 망자의 동굴의 드래곤의 사제에게 가져다주면, 화이트 드래곤의 둥지로 갈 수 있습니다. 화이트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경우(막타를 칠경우)사라집니다. 합성해서 블랙 드래곤의 인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3400G 블랙 드래곤을 만날 자격을 증명하는 인장입니다. 망자의 동굴의 드래곤의 사제에게 가져다주면, 블랙 드래곤의 둥지로 갈 수 있습니다. 블랙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경우(막타를 칠경우)사라집니다. 합성해서 화이트 드래곤의 인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물마법저항: 10 대지마법저항: 15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스킬성공률: 18 물마법공격력: 30 대지마법공격력: 13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85 추가공격력: 60 마법저항: 7 체력: 6000 이동력: 6000 힘: 30 건강: 10 민첩: 1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불마법저항: 15 공기마법저항: 10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스킬성공률: 18 불마법공격력: 130 바람마법공격력: 3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빛마법저항: 15 어둠마법저항: 10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회복마법회복력: 30 스킬성공률: 18 어둠마법공격력: 30 빛마법공격력: 10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추가공격력: 150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힘: 15 민첩: 1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현명: 15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추가공격력: 150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힘: 15 민첩: 1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현명: 15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37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제린의 용암의 양손검과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37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제린의 용암의 양손검과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1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6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5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143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164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9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191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1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46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47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66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79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86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1000000G 악마의 영혼이 봉인된 봉인석입니다. 스페르첸드의 용병길드 마스터 신쭈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명성 퀘스트인 홀리디펜더, 히어로, 데미갓 퀘스트의 재료입니다. 감시탑 지하성채의 로켈타스, 네지스와 물의 동굴의 레서 데몬이 줍니다. 상위 악마의 영혼석을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대마법사 미리온의 무기들의 종류를 바꾸는 합성재료로도 사용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1000000G 악마의 영혼이 봉인된 봉인석입니다. 스페르첸드의 용병길드 마스터 신쭈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명성 퀘스트인 홀리디펜더, 히어로, 데미갓 퀘스트의 재료입니다. 감시탑 지하성채의 로켈타스, 네지스와 물의 동굴의 레서 데몬이 줍니다. 상위 악마의 영혼석을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대마법사 미리온의 무기들의 종류를 바꾸는 합성재료로도 사용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8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랜덤하게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카리드웬의 보석들과는 달리, 이전과는 무조건 다른 종류의 옵션이 나옵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400 가격: 1000000G 드래곤의 비늘을 합성해서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입니다. 드래곤의 정신을 가지고 마르살라의 성별변경자 조슈아와 대화하면 성별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상위직업인 마왕의 경우 남성은 꼬리달린 괴수형, 여성은 날개달린 여성 악마형으로 스킨이 다르게 표시됩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25 체력: 10000 이동력: 6000 힘: 50 민첩: 5 물마법공격력: 100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제린의 용암의 할버드와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25 체력: 10000 이동력: 6000 힘: 50 민첩: 5 물마법공격력: 100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제린의 용암의 할버드와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37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제린의 용암의 양손검과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장착레벨: 550 필요 리모탈수:6 방어점: 86 추가공격력: 150 체력: 15000 이동력: 15000 힘: 15 건강: 5 민첩: 15 스킬성공률: 4 가격: 6500G 번개의 계곡1,2,3,4,5의 불의 마왕 플람의 그림자가 아주 드물게 들고 나오는 어깨보호대입니다. 합성으로 S급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드래곤 블러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마력부여옵션과 레벨이 모두 유지됩니다. 장착레벨: 550 필요 리모탈수:6 방어점: 86 체력: 15000 마법력: 15000 건강: 5 지력: 15 현명: 15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물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번개의 계곡1,2,3,4,5의 얼음의 마왕 프로스트의 그림자가 착용하고 있는 어깨보호대입니다. 합성으로 S급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드래곤 블러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마력부여옵션과 레벨이 모두 유지됩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추가공격력: 150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힘: 15 민첩: 1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50 오라 1 방어점: 72 물마법저항: 15 체력: 30000 현명: 15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얼음 거인의 신전의 북풍의 거인 스프랄루스가 가지고 있던 왕관입니다. 드래곤 블러드와 합성할 경우 스프랄루스의 왕관이 되며, 합성시 스프랄루스의 마법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이 스프랄루스의 왕관의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으로 됩니다. 사파이어와 합성할경우에는 레벨만 유지되며 옵션은 유지되지 않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불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불마법공격력: 500 바람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대지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450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빛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회복마법회복력: 250 스킬성공률: 3 빛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회피율: 4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500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민첩: 3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회피율: 4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500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민첩: 3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대지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450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빛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회복마법회복력: 250 스킬성공률: 3 빛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불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불마법공격력: 500 바람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회피율: 4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500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민첩: 3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대지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450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빛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회복마법회복력: 250 스킬성공률: 3 빛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불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불마법공격력: 500 바람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명중률: 5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15 체력: 15000 이동력: 10000 힘: 15 건강: 10 민첩: 15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불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10 회복마법회복력: 40 스킬성공률: 4 빛마법공격력: 18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5 방어점: 70 추가공격력: 350 마법저항: 16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건강: 20 민첩: 30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불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물마법공격력: 150 대지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회복마법회복력: 80 스킬성공률: 5 빛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명중률: 5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15 체력: 15000 이동력: 10000 힘: 15 건강: 10 민첩: 15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명중률: 5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15 체력: 15000 이동력: 10000 힘: 15 건강: 10 민첩: 15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5 방어점: 70 추가공격력: 350 마법저항: 16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건강: 20 민첩: 30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5 방어점: 70 추가공격력: 350 마법저항: 16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건강: 20 민첩: 30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불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불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불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불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물마법공격력: 150 대지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물마법공격력: 150 대지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10 회복마법회복력: 40 스킬성공률: 4 빛마법공격력: 18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10 회복마법회복력: 40 스킬성공률: 4 빛마법공격력: 18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회복마법회복력: 80 스킬성공률: 5 빛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회복마법회복력: 80 스킬성공률: 5 빛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276 추가공격력: 100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장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폴암류 양손무기(방패착용불가)장착레벨: 450 대미지: 1625 체력: 10000 이동력: 6000 힘: 50 민첩: 5 물마법공격력: 100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할버드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제린의 용암의 할버드와 드래곤 블러드를 합성해서 만들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시에는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 모두 유지됩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6 방어점: 140 추가공격력: 50 불마법저항: 14 물마법저항: 1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지력: 2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블랙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6 방어점: 140 추가공격력: 50 불마법저항: 14 물마법저항: 1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지력: 2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블랙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7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220 불마법저항: 12 물마법저항: 10 체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20 마법공격력: 5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드래곤 블러드(캐시삽에서 구입가능)와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은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화이트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7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220 불마법저항: 12 물마법저항: 10 체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20 마법공격력: 5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드래곤 블러드(캐시삽에서 구입가능)와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은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화이트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불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455 바람마법공격력: 6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빛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회복마법회복력: 225 스킬성공률: 2 빛마법공격력: 175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대지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물마법공격력: 65 대지마법공격력: 385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회피율: 3 방어점: 35 추가공격력: 245 체력: 5000 이동력: 5000 민첩: 7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명중률: 5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15 체력: 15000 이동력: 10000 힘: 15 건강: 10 민첩: 15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30 추가공격력: 80 마법저항: 14 체력: 3000 힘: 6 건강: 6 민첩: 11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마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불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70 마법저항: 14 마법력: 1500 지력: 7 현명: 12 마법공격력: 45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15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스킬성공률: 4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30 마법저항: 14 마법력: 2000 지력: 6 현명: 13 마법공격력: 40 스킬성공률: 2 물마법공격력: 70 대지마법공격력: 15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50 방어점: 25 마법저항: 1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지력: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10 회복마법회복력: 40 스킬성공률: 4 빛마법공격력: 18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70 마법저항: 14 마법력: 1500 지력: 7 현명: 12 마법공격력: 35 회복마법회복력: 30 스킬성공률: 2 빛마법공격력: 13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불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455 바람마법공격력: 6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대지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물마법공격력: 65 대지마법공격력: 385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빛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회복마법회복력: 225 스킬성공률: 2 빛마법공격력: 175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회피율: 3 방어점: 35 추가공격력: 245 체력: 5000 이동력: 5000 민첩: 7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700 대미지: 1966 사용 불가능 직업: 마법 성직 도둑 전사 음유 소환 마법: 파이어볼 가격: 6500G 블랙 드래곤 제린이 들고다니는 도끼입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숨겨진 마법을 발휘하며, 상당수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다른 아이템과 합성해서 특이한 장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합성시 이 아이템의 레벨이 합성 아이템의 레벨이 됩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08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472 스킬성공률: 5 마법: 벼락 가격: 6500G 드래곤의 지팡이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10 마법저항: 5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현명: 35 마법공격력: 229 회복마법회복력: 600 마법: 바위 가격: 6500G 드래곤의 메이스와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276 추가공격력: 100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힘: 35 마법: 마그마 가격: 6500G 드래곤의 장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450 대미지: 1187 회피율: 3 체력: 10000 이동력: 10000 민첩: 35 마법: 얼음기둥 가격: 6500G 드래곤의 단검과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를 합성해서 만듭니다. 제린의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의 레벨에 따라 레벨이 정해집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녹아내리는 용암의 도끼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1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3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2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49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6 방어점: 140 추가공격력: 50 불마법저항: 14 물마법저항: 1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지력: 2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블랙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0 회피율: 7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220 불마법저항: 12 물마법저항: 10 체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20 마법공격력: 50 가격: 6500G 수룡의 비늘로 만든 방패입니다.드래곤 블러드(캐시삽에서 구입가능)와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들은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옵션과 레벨을 유지한채로 화이트 드래곤 비늘 방패로 다운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700 추가공격력: 500 마법저항: 5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힘: 60 건강: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700 추가공격력: 500 마법저항: 5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힘: 60 건강: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500 회피율: 10 추가공격력: 400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건강: 50 민첩: 70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6500G 패왕 슈나이더가 드물게 들고다니는 단검입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마법: 벼락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대마법사 카리드웬이 항상 들고다니는 지팡이입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750 회복마법회복력: 1000 스킬성공률: 10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성녀 시이라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이스입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500 회피율: 10 추가공격력: 400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건강: 50 민첩: 70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6500G 패왕 슈나이더가 드물게 들고다니는 단검입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마법: 벼락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대마법사 카리드웬이 항상 들고다니는 지팡이입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750 회복마법회복력: 1000 스킬성공률: 10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성녀 시이라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이스입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9 마력부여 옵션을 '단일타겟공격스킬캐스팅시간 20퍼센트 감소'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9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회피율'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9 옵션을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9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무기에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무기의 +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확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공격력(%)'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방어력증가'로 바꿔줍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100 회피율: 11 방어점: 10 마법저항: 2 체력: 3000 마법력: 2000 이동력: 2000 건강: 2 가격: 169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1 방어점: 20 마법저항: 2 체력: 5000 마법력: 3000 이동력: 3000 건강: 4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2 방어점: 50 마법저항: 2 체력: 8000 마법력: 5000 이동력: 5000 건강: 5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5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5 방어점: 80 마법저항: 2 체력: 10000 마법력: 15000 건강: 7 현명: 10 마법공격력: 7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19 방어점: 115 마법저항: 2 체력: 22000 마법력: 35000 건강: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3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23 방어점: 150 마법저항: 2 체력: 30000 마법력: 50000 건강: 20 현명: 50 마법공격력: 4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5 회피율: 24 방어점: 220 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100000 건강: 50 현명: 100 마법공격력: 8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2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10 회피율: 24 방어점: 300 마법저항: 7 체력: 100000 마법력: 150000 건강: 75 현명: 150 마법공격력: 12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4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5 방어점: 85 추가공격력: 70 마법저항: 2 체력: 10000 이동력: 15000 힘: 5 건강: 7 민첩: 5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19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2 체력: 22000 이동력: 35000 힘: 12 건강: 10 민첩: 8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3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23 방어점: 160 추가공격력: 400 마법저항: 2 체력: 30000 이동력: 50000 힘: 30 건강: 20 민첩: 2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5 회피율: 24 방어점: 230 추가공격력: 800 마법저항: 5 체력: 50000 이동력: 100000 힘: 60 건강: 50 민첩: 4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2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10 회피율: 24 방어점: 330 추가공격력: 1200 마법저항: 7 체력: 100000 이동력: 150000 힘: 100 건강: 75 민첩: 8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4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1 방어점: 10 마법저항: 2 체력: 3000 마법력: 2000 이동력: 2000 건강: 2 가격: 169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1 방어점: 20 마법저항: 2 체력: 5000 마법력: 3000 이동력: 3000 건강: 4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2 방어점: 50 마법저항: 2 체력: 8000 마법력: 5000 이동력: 5000 건강: 5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5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5 방어점: 80 마법저항: 2 체력: 10000 마법력: 15000 건강: 7 현명: 10 마법공격력: 7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19 방어점: 115 마법저항: 2 체력: 22000 마법력: 35000 건강: 10 현명: 20 마법공격력: 15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3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23 방어점: 150 마법저항: 2 체력: 30000 마법력: 50000 건강: 20 현명: 50 마법공격력: 4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5 회피율: 24 방어점: 220 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100000 건강: 50 현명: 100 마법공격력: 8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2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10 회피율: 24 방어점: 300 마법저항: 7 체력: 100000 마법력: 150000 건강: 75 현명: 150 마법공격력: 120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4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회피율: 15 방어점: 85 추가공격력: 70 마법저항: 2 체력: 10000 이동력: 15000 힘: 5 건강: 7 민첩: 5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5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19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50 마법저항: 2 체력: 22000 이동력: 35000 힘: 12 건강: 10 민첩: 8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3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회피율: 23 방어점: 160 추가공격력: 400 마법저항: 2 체력: 30000 이동력: 50000 힘: 30 건강: 20 민첩: 2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1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드래곤블러드 사용해서 합성할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모두 유지가 됩니다. 장착레벨: 100 오라 1 명중률: 5 회피율: 24 방어점: 230 추가공격력: 800 마법저항: 5 체력: 50000 이동력: 100000 힘: 60 건강: 50 민첩: 40 가격: 1040G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얻는 망토입니다. 케루의 인사담당자 라즈가에게서 킬마크 20000과 퇴치명성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킬마크는 왕국에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나 교체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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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55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마법력: 150000 건강: 75 지력: 100 현명: 10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0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20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이동력: 150000 힘: 100 건강: 75 민첩: 100 마법공격력: 65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0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20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이동력: 150000 힘: 100 건강: 75 민첩: 100 마법공격력: 65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55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마법력: 150000 건강: 75 지력: 100 현명: 10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0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20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이동력: 150000 힘: 100 건강: 75 민첩: 100 마법공격력: 65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 가격: 65G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을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으로 합성할때 사용됩니다. 물약상인이 파는 신비한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으로 나옵니다. 합성으로 희망의 별의 조각으로 바꿀수도 있습니다. 장착레벨: 1 가격: 65G 현자의 아뮬렛과 합성해서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을 창조신의 마력의 아뮬렛으로 바꿀때도 사용됩니다. 물약상인이 파는 신비한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으로 나옵니다. 합성으로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으로 변경할때 사용되는 재료인 절망의 별의 조각으로 바꿀수도 있습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344 민첩: 50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드물게 들고다니는 단검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521 힘: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143 현명: 50 마법공격력: 712 스킬성공률: 2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상위보스전용) 대마법사 카리드웬이 항상 들고다니는 지팡이입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193 현명: 50 마법공격력: 448 회복마법회복력: 785 마법: 용의 숨결 가격: 900000G (상위보스전용) 성녀 시이라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이스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521 힘: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521 힘: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500 회피율: 10 추가공격력: 400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건강: 50 민첩: 70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6500G 패왕 슈나이더가 드물게 들고다니는 단검입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마법: 벼락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대마법사 카리드웬이 항상 들고다니는 지팡이입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300 체력: 25000 마법력: 25000 건강: 50 현명: 60 마법공격력: 750 회복마법회복력: 1000 스킬성공률: 10 마법: 용의 숨결 가격: 6500G (상위보스전용) 성녀 시이라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이스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700 추가공격력: 500 마법저항: 5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힘: 60 건강: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700 추가공격력: 500 마법저항: 5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힘: 60 건강: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100 대미지: 2700 추가공격력: 500 마법저항: 5 체력: 25000 이동력: 25000 힘: 60 건강: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30 추가공격력: 80 마법저항: 14 체력: 3000 힘: 6 건강: 6 민첩: 11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마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방어점: 30 추가공격력: 80 마법저항: 14 체력: 3000 힘: 6 건강: 6 민첩: 11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마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55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마법력: 150000 건강: 75 지력: 100 현명: 100 마법공격력: 1200 스킬성공률: 1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0 방어점: 120 추가공격력: 1200 어둠마법저항: 20 체력: 100000 이동력: 150000 힘: 100 건강: 75 민첩: 100 마법공격력: 650 가격: 1040G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2000이상일때 희망의 여신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창조신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2000을 넘어가면 리모탈시에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불마법저항: 4 체력: 5000 마법력: 5000 현명: 7 스킬성공률: 2 불마법공격력: 455 바람마법공격력: 6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명중률: 17 회피율: 3 방어점: 35 추가공격력: 245 체력: 5000 이동력: 5000 민첩: 7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경장갑옷 장착레벨: 600 방어점: 280 추가공격력: 175 불마법저항: 5 어둠마법저항: 5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민첩: 40 회복마법회복력: 170 스킬성공률: 6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갑옷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경장갑옷 장착레벨: 600 방어점: 250 불마법저항: 5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40 현명: 40 마법공격력: 300 회복마법회복력: 200 스킬성공률: 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갑옷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3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3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최대공격력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3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3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최대공격력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건강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6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6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6 옵션을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6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무기/방어구에 각각 다르게 적용됩니다.)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다음과 같이 바꿔줍니다. 무기일 경우 +8 옵션을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무기 이외의 모든 아이템들은 +8 옵션을 '방어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합성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3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건강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174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60 마법저항: 7 힘: 20 지력: -20 현명: -2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반지입니다. 항상 2레벨제로 나옵니다. 합성가능하며 합성시 강화 옵션과 레벨이 유지되는 특수 아이템입니다.(예: +13일 경우 합성후에도 +13, 옵션과 레벨도 유지) 공략게시판의 드워프킹 블루비어드 항목을 참고하세요.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60 마법저항: 7 힘: 20 지력: -20 현명: -2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반지입니다. 항상 2레벨제로 나옵니다. 합성가능하며 합성시 강화 옵션과 레벨이 유지되는 특수 아이템입니다.(예: +13일 경우 합성후에도 +13, 옵션과 레벨도 유지) 공략게시판의 드워프킹 블루비어드 항목을 참고하세요.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60 마법저항: 7 힘: 20 지력: -20 현명: -2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반지입니다. 항상 2레벨제로 나옵니다. 합성가능하며 합성시 강화 옵션과 레벨이 유지되는 특수 아이템입니다.(예: +13일 경우 합성후에도 +13, 옵션과 레벨도 유지) 공략게시판의 드워프킹 블루비어드 항목을 참고하세요.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60 마법저항: 7 힘: 20 지력: -20 현명: -20 스킬성공률: 17 가격: 6500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반지입니다. 항상 2레벨제로 나옵니다. 합성가능하며 합성시 강화 옵션과 레벨이 유지되는 특수 아이템입니다.(예: +13일 경우 합성후에도 +13, 옵션과 레벨도 유지) 공략게시판의 드워프킹 블루비어드 항목을 참고하세요.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불마법저항: 15 공기마법저항: 10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스킬성공률: 18 불마법공격력: 130 바람마법공격력: 3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물마법저항: 10 대지마법저항: 15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스킬성공률: 18 물마법공격력: 30 대지마법공격력: 13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85 추가공격력: 60 마법저항: 7 체력: 6000 이동력: 6000 힘: 30 건강: 10 민첩: 1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2 필요 리모탈수:10 방어점: 70 빛마법저항: 15 어둠마법저항: 10 체력: 6000 마법력: 6000 지력: 10 현명: 20 회복마법회복력: 30 스킬성공률: 18 어둠마법공격력: 30 빛마법공격력: 100 가격: 65G 드워프킹 블루비어드가 드물게 들고 다니는 드워프킹의 저주받은 반지의 저주를 해제한 반지입니다. 트롤의 반지합성시 블루비어드의 화염의 반지, 엘프의 반지 합성시 대지의 반지, 다크엘프의 반지 합성시 전투의 반지, 오우거의 반지 합성시 빛의 반지가 나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마법력: 200000 건강: 100 지력: 150 현명: 150 마법공격력: 1800 스킬성공률: 1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5 방어점: 180 추가공격력: 1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이동력: 200000 힘: 150 건강: 100 민첩: 150 마법공격력: 97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마법력: 200000 건강: 100 지력: 150 현명: 150 마법공격력: 1800 스킬성공률: 1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5 방어점: 180 추가공격력: 1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이동력: 200000 힘: 150 건강: 100 민첩: 150 마법공격력: 97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마법력: 200000 건강: 100 지력: 150 현명: 150 마법공격력: 1800 스킬성공률: 1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5 방어점: 180 추가공격력: 1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이동력: 200000 힘: 150 건강: 100 민첩: 150 마법공격력: 97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400 가격: 50000G 드래곤의 비늘과 리저드맨의 영혼석과 현자의돌을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S급 이상의 장갑등의 합성재료로 사용됩니다. 한손검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521 힘: 50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항상 들고 다니는 장검입니다. 합성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대거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344 민첩: 50 마법: 불꽃의 채찍 가격: 900000G 패왕 슈나이더가 드물게 들고다니는 단검입니다. 지팡이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143 현명: 50 마법공격력: 712 스킬성공률: 2 마법: 벼락 가격: 900000G (상위보스전용) 대마법사 카리드웬이 항상 들고다니는 지팡이입니다. 메이스류 장착레벨: 901 필요 리모탈수:6 대미지: 2193 현명: 50 마법공격력: 448 회복마법회복력: 785 마법: 용의 숨결 가격: 900000G (상위보스전용) 성녀 시이라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이스입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 회피율: 8 방어점: 280 추가공격력: 320 불마법저항: 12 빛마법저항: 5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50 민첩: 40 마법공격력: 75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방패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0 회피율: 7 방어점: 250 추가공격력: 75 불마법저항: 12 어둠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40 현명: 50 마법공격력: 320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방패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200 추가공격력: 10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마법력: 250000 건강: 150 지력: 200 현명: 200 마법공격력: 2400 스킬성공률: 20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20 방어점: 240 추가공격력: 24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이동력: 250000 힘: 200 건강: 150 민첩: 200 마법공격력: 1275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200 추가공격력: 10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마법력: 250000 건강: 150 지력: 200 현명: 200 마법공격력: 2400 스킬성공률: 20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20 방어점: 240 추가공격력: 24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이동력: 250000 힘: 200 건강: 150 민첩: 200 마법공격력: 1275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150 추가공격력: 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마법력: 200000 건강: 100 지력: 150 현명: 150 마법공격력: 1800 스킬성공률: 1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15 방어점: 180 추가공격력: 1800 어둠마법저항: 25 체력: 150000 이동력: 200000 힘: 150 건강: 100 민첩: 150 마법공격력: 975 가격: 1040G 혼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4500이상일때 창조신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방어점: 200 추가공격력: 10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마법력: 250000 건강: 150 지력: 200 현명: 200 마법공격력: 2400 스킬성공률: 20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마력의 아뮬렛과 희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100 명중률: 20 방어점: 240 추가공격력: 2400 어둠마법저항: 30 체력: 200000 이동력: 250000 힘: 200 건강: 150 민첩: 200 마법공격력: 1275 가격: 1040G 공허의 힘을 담은 아뮬렛입니다. 평가가 10000이상일때 혼돈의 전투의 아뮬렛과 절망의 별의 조각(물약상인의 신비의 아이템 상자에서 랜덤획득)과 합성해서 혼돈의 마력의/전투의 아뮬렛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합성시에 레벨이 유지됩니다. 드래곤 블러드(캐시아이템)를 사용해서 합성할 경우 레벨과 마력부여 옵션이 합성후에도 그대로 유지됩니다.(예: +11에 드래곤 블러드 사용해서 합성시 +11 그대로 유지) 평가가 1이상이면 최대체력에 평가*10씩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무기에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무기의 +1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단일공격스킬쿨타임20퍼센트감소'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600 방어점: 280 추가공격력: 175 불마법저항: 5 어둠마법저항: 5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민첩: 40 회복마법회복력: 17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600 방어점: 250 불마법저항: 5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40 현명: 40 마법공격력: 300 회복마법회복력: 20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600 방어점: 280 추가공격력: 175 불마법저항: 5 어둠마법저항: 5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민첩: 40 회복마법회복력: 17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600 방어점: 250 불마법저항: 5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40 현명: 40 마법공격력: 300 회복마법회복력: 20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600 방어점: 250 불마법저항: 5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40 현명: 40 마법공격력: 300 회복마법회복력: 20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600 방어점: 280 추가공격력: 175 불마법저항: 5 어둠마법저항: 5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민첩: 40 회복마법회복력: 170 스킬성공률: 18 가격: 6500G 여신의 힘이 깃든 반지입니다. 강력한 힘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여신의 봉인된 반지, 여신의 전투의 반지, 여신의 마력의 반지는 세가지 중 한 개만 착용가능합니다. 이 세가지 반지 중에서 두 개를 동시에 낄 수는 없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팔찌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불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불마법공격력: 500 바람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데몬 로드 바룬의 붉은 화염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대지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스킬성공률: 3 물마법공격력: 100 대지마법공격력: 450 가격: 6500G 아스록 지하 2층의 마왕 브로너의 대지진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빛마법저항: 5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100 회복마법회복력: 250 스킬성공률: 3 빛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스웜프 키퍼의 성스러운 빛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45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20 회피율: 4 방어점: 50 추가공격력: 500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민첩: 30 가격: 6500G 거미의 숲의 오크 히어로 가로우의 격렬한 전투의 팔찌를 합성으로 두 번 업그레이드한 팔찌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체력: 10000 마법력: 10000 이동력: 10000 가격: 6500G S급의 힘이 봉인된 목걸이입니다.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명중률: 5 방어점: 70 추가공격력: 350 마법저항: 16 체력: 30000 이동력: 20000 힘: 30 건강: 20 민첩: 30 가격: 6500G 스페르첸드의 무사시가 들고 다니는 무사시의 무사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불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버섯 동굴의 마녀 이가스가 들고 다니는 이가스의 화염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300 스킬성공률: 6 물마법공격력: 150 대지마법공격력: 330 가격: 6500G 잊혀진 통로의 악마 베로스가 들고 다니는 베로스의 지진의 목걸이를 합성해서 업그레이드 시킨 목걸이입니다. 대지의 마력으로 충만합니다. 장착레벨: 500 필요 리모탈수:100 방어점: 50 마법저항: 16 체력: 20000 마법력: 20000 지력: 30 현명: 30 마법공격력: 220 회복마법회복력: 80 스킬성공률: 5 빛마법공격력: 220 가격: 6500G 그림자동굴 4층의 도플갱어 로드가 들고 다니는 도플갱어 로드의 목걸이를 합성을 통해 업그레이드한 목걸이입니다. 신비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장착레벨: 0 추가공격력: 100 힘: 10 건강: 10 민첩: 10 가격: 4400G 기간: 2592000시간 상위 스킨으로 스킨 슬롯에 장착 가능하며 장착시에 모습이 하피로 변경됩니다. 전사계열과 마법사 계열은 모습은 동일하나 추가옵션이 다릅니다. 물약등에 의한 스킨 변경보다 우선 순위가 높으며 효과는 물약 효과와 누적되어 적용됩니다. 누적 구매시 기간이 길어집니다. 합성창에 올려서 다른 스킨과 합성하면 기간이 합쳐집니다. 장착레벨: 450 빛마법저항: 5 체력: 3000 마법력: 8000 현명: 15 마법공격력: 230 스킬성공률: 5 어둠마법공격력: 100 가격: 6500G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의 레벨과 같은 레벨로 합성됩니다. 미리온의 암흑의 오브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450 추가공격력: 250 빛마법저항: 5 체력: 5000 이동력: 8000 힘: 10 민첩: 5 스킬성공률: 3 가격: 6500G 그룸의 전투의 오브를 합성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성직자의 오브의 레벨과 같은 레벨로 합성됩니다. 미리온의 전투의 오브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모든일반몹즉사확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282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4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5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6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7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8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19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최대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힘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민첩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현명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치명타성공률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전투스킬/주가 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반복해서 사용시 해당 옵션의 수치가 랜덤으로 변경되므로, 원하는 수치가 나올때까지 반복해서 변경 가능.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불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물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바람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대지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빛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0 가격: 23000G 마력부여창의 가운데칸에 올려놓고 마력부여실행할 경우 +20 위치의 마력부여 옵션을 어둠마법공격력으로 바꿔줍니다. 실패 없이 무조건 성공합니다. 아이템의 판매가격에 +5580,0000골드 추가 상승.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100 마법저항: 17 체력: 30000 마법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3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100 마법저항: 17 체력: 30000 마법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3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100 마법저항: 17 체력: 30000 마법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3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100 마법저항: 17 체력: 30000 마법력: 30000 이동력: 30000 힘: 30 민첩: 3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명중률: 6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700 마법저항: 17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건강: 30 민첩: 4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70 마법저항: 17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50 현명: 50 마법공격력: 800 회복마법회복력: 100 스킬성공률: 6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방어점: 70 마법저항: 17 체력: 50000 마법력: 70000 지력: 50 현명: 50 마법공격력: 800 회복마법회복력: 100 스킬성공률: 6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장착레벨: 600 필요 리모탈수:150 명중률: 6 방어점: 100 추가공격력: 700 마법저항: 17 체력: 70000 이동력: 50000 힘: 60 건강: 30 민첩: 40 가격: 20000G 합성을 통해 봉인을 풀 수 있습니다. 쿠라스의 대군주/지옥화염/대재앙/천상의축복 목걸이등을 드래곤 블러드와 합쳐서 만들 수 이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중 문화체육관광부 1급공무원들에 대한 사직강요로 인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점, 강요의 점은 각 무죄. 피고인 1(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5)은 2014. 8.경부터 2016. 9.경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라 한다) 장관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피고인 2(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6)는 2013. 3.경부터 2014. 6.경까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이하 ‘정무수석’이라 한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이하 ‘소통비서관’이라 한다)으로 재직하고, 2014. 6.경부터 2016. 4.경까지 정무수석 산하 정무비서관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피고인 3(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7)은 2014. 10.경부터 2016. 2.경까지 소통비서관으로 재직하고, 2016. 3.경부터 2016. 12.경까지 문체부 제1차관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공소외 137(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1)은 2013. 8.경부터 2015. 2.경까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인 대통령비서실 실장(이하 ‘비서실장’이라 한다)으로 재직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 사람이다. 공소외 138(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2)은 2014. 6.경부터 2015. 5.경까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였고, 2016. 9.경부터 2017. 1.경까지 문체부 장관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공소외 139(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3)는 2014. 11.경부터 2016. 6.경까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하 ‘교문수석’이라 한다)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공소외 140(항소심 판결의 피고인 4)은 2013. 10.경부터 2016. 9.경까지 교문수석 산하 문화체육비서관(이하 ‘문체비서관’이라 한다)으로 재직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이하 ‘대통령’이라 한다)는 2013. 2. 25.부터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 국가원수 및 정부의 수반으로서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 사람이다. 최서원은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주는 등 서로 약 40년간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해 오면서, 특히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이다. 2013. 4.경 상주국제승마장에서 개최된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최서원의 딸 공소외 65가 준우승에 그치자, 최서원은 대회 심판원들의 편파판정 의혹 등을 제기하였다. 최서원은 2013. 7.경 공소외 71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비서관에게 공소외 118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공소외 118을 통해 승마협회나 승마계의 문제점을 알아보라고 하였고, 공소외 71은 이를 공소외 2 교문수석에게 전달하였다. 공소외 2는 2013. 7.경 공소외 9 문체부 체육국장에게 ‘대통령 관심사항이니 공소외 118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였고, 공소외 9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66 문체부 체육정책과장은 공소외 118을 만나 공소외 65가 준우승에 그친 승마대회 관련사항 등 대한승마협회의 운영상 문제점에 관한 의견을 듣고,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였다. 공소외 9와 공소외 66은 감사 후 ‘대한승마협회의 주된 문제점이 파벌싸움이며, 공소외 118 측과 그 반대쪽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감사결과를 공소외 2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직후 공소외 66은 공소외 118로부터 감사결과에 대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그 뒤 대통령의 지시로 2013. 8. 21.경 공소외 1 문체부 장관이 체육개혁에 관한 대통령 대면보고를 하였고 그 자리에 공소외 2가 배석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공소외 9 국장과 공소외 66 과장, 참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인사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그 무렵 공소외 119 민정수석비서관은 공소외 2에게 ‘공소외 9, 공소외 66 두 사람에 대해 공직감찰을 진행했는데, 체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고, 공무원으로서 품위유지에 문제가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공소외 1 장관은 정기인사에 맞추어 공소외 9와 공소외 66에 대한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공소외 71 비서관으로부터 인사조치 결과에 대한 확인 전화를 받은 공소외 2가 2013. 8. 25.경 ‘대통령이 두 사람에 대한 인사조치 여부를 확인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채근하자, 결국 그 무렵 공소외 9, 공소외 66에게 대기발령의 인사조치를 하였고, 약 1개월 후 공소외 9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공소외 66을 한국종합예술학교로 좌천시켰다. 2016. 3.~4.경 공소외 66이 명예퇴직을 신청하여 절차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공소외 9가 국립중앙박물관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은 공소외 139 교문수석에게 공소외 9의 사표를 받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고, 공소외 139는 그 뜻을 피고인 1 문체부 장관에게 전달하였다. 2016. 4.경 피고인 1은 공소외 32 문체부 운영지원과장 등을 통해 공소외 9에게 ‘장관 윗선의 지시다’라고 하면서 사직할 것을 요구하였고, 공소외 9는 자발적으로 사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사직서를 제출하여 2016. 5. 31.경 면직 처리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1은 대통령, 공소외 139 등과 순차 공모하여, 국가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여서는 아니 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및 문체부 장관, 교문수석의 직권을 남용하여 공소외 9로 하여금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2013. 8. 초순경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공소외 137은, 2013. 8. 21.경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이하 ‘실수비’라 한다)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명칭 2 생략)과 (명칭 31 생략)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3. 9. 9.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영화 ♤♤♤ ♤♤♤♤가 (명칭 15 생략)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가 안된다.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연극 ◀◀◀도 용서가 안 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한편 대통령은 2013. 9. 30.경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이하 ‘대수비’라 한다)에서 공소외 137과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와 (명칭 2 생략)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3. 12. 18.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반국가적·반체제적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이다. 한편에는 지원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제재를 하고 있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영화 (명칭 3 생략)과 ♤♤♤ ♤♤♤♤가 그렇다. 교육계 원로들이 울분을 토하더라. 하나하나 잡아 나가자. 모두 함께 고민하고 분발하라’고 지시하였다. 특히 2013년 하반기 연극 ‘◀◀◀’ 등과 같이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영화 ‘♤♤♤ ♤♤♤♤’가 개봉된 상황에서, 국정원이 작성한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일탈 행태 시정 필요’, ‘좌성향 세력의 세 확산 기도 등 문화관련 이념문제’ 정보보고 문건 등이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등에 보고되면서,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정부비판 여론에 찬동하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지원은 부적절하다는 기조가 청와대 내부에 확산되었다. 공소외 137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소위 국론분열의 획책을 목표로 국정 흔들기를 시도하는 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정부비판 여론을 조성하고 있으므로, 이에 찬동하는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정부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3. 12. 20.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공직자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반정부·반국가적인 성향의 단체들이 좌파들의 온상이 되어서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한 성향의 단체들에게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4. 1. 3.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문체부, 교육부, 복지부, 안행부 산하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 상황을 보고하라. 반드시 실사가 필요하고, 그 내용들은 중간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4. 1. 4.경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국회의원 시절부터 국가개조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다. 지금 형국은 우파가 좌파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 좌파정권 10년에 MB정권 5년까지 총 15년 동안 내려진 좌파의 뿌리가 깊다. 모두가 전투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투지를 갖고 좌파세력과 싸워 나가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계시는데, 내각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좌파 척결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산하 부처별로 좌파에 대한 지원현황을 전수조사하도록 재차 지시하였다. 공소외 137은 2014. 3. 14.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비영리단체에 대한 지원과 관련하여 심사위원장을 통해 과거의 실적을 심사하라. 좌파활동 단체에 대한 지원은 곤란하다’는 취지로 발언하였고, 그 무렵 공소외 3 정무수석에게 ‘수석실별로 나눠져 있는 업무 관련 비서관들을 모아서 TF를 만들어서 내용을 정리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그밖에도 공소외 137은 그 무렵 피고인 2 소통비서관에게 ‘좌파에 대한 지원은 많은데 우파에 대한 지원은 너무 없다. 중앙정부라도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정부의 민간지원 실태에 대하여 질책하였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좌파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비해 우파는 배고프다. 잘 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 등에 따라,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 등은 2014. 4. 4.경부터 2014. 5. 하순경까지 국민소통, 행정자치, 사회안전, 경제금융, 교육, 문화체육, 보건복지, 고용노동 등 비서관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민간경상보조금 지급내역과 주요 부처별 공모사업 현황 등을 취합하여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사항과 추진계획 등을 논의하였다.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은 위와 같은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 결과를 종합하여, ‘[문제예산 차단]민간경상보조금 지급내역과 주요부처의 공모사업 현황을 파악하여 그 중 총 130건(예산 합계 139억 원)의 문제예산(야당 후보자 지지선언, 정권반대운동 등에 참여하거나 좌파성향의 개인·단체 등에게 지원된 정부예산)을 선별하여 향후 이를 축소·배제, [DB운영으로 지속감시]3,000여 개의 문제단체(좌파단체, 불법시위참여 등)와 8,000여 명의 좌편향인사[문재인 지지, 舊(명칭 4 생략) 지지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보완, [정부 공모사업 심사위원 배제]공모사업을 실시하는 주요부처 및 산하 기관의 심사위원을 파악하여 공소외 120 감독(노무현 지지선언, 문재인 후보 광고촬영) 등 총 26명의 좌편향인사를 심사위원에서 배제토록 조치, [정부위원회 위원 배제]각 부처별 463개 정부위원회 위원을 전수조사하여 공소외 121(명칭 31-1 생략) 교수(문체부 도서관자료심의위원회 위원, 공소외 54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등 좌편향인사 70명을 향후 임기만료시 해촉하도록 조치, [모태펀드 관리대책]친노(親盧)계열과 대기업[(명칭 2 생략)·♧♧]이 문화·영화 분야 모태펀드의 운용을 독식하고 있으나 대규모 정부자금을 투입한 문체부가 독립성보장을 이유로 이를 용인하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모태펀드 운용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소외 49 주식회사의 임원의 교체를 통한 대책 강구, [조치가 필요한 부처]문제단체에 대한 지원을 관행으로 인식하며 개선의지가 부족한 문체부 장관·차관의 경질과 산하기관 통폐합 등 검토’ 등을 내용으로 하는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여기에 부처별 관심예산 조치현황(총 130건), 주요부처 공모사업 심사위원 조치현황(총 26명), 정부위원회 위원 조치현황(총 70명) 등 일람표를 첨부하였다.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은 ‘민간단체보조금 TF’의 중간진행상황을 공소외 137에게 보고하였고, 2014. 5. 하순경 위와 같이 작성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를 공소외 137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문체부 산하에 설립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라 한다)는 정부출연금 등으로 조성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기금’이라 한다)을 독립된 회계로 별도 운용·관리하며, 소속 위원들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면서 문예기금의 운용·관리 등 관련 사항을 심의·의결한다(문화예술진흥법 제16조, 제17조, 제20조, 제29조, 제30조).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문체부 산하에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라 한다)는 정부출연금 등으로 조성된 영화발전기금(이하 ‘영화기금’이라 한다)을 독립된 회계로 별도 운용·관리하며, 소속 위원들은 임기 중 직무상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면서 영화기금의 관리·운용, 영화의 유통배급 지원,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 예술영화·지역영상문화 등의 진흥 관련 사항을 심의·의결한다(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3조, 제14조). 출판문화산업의 진흥·발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문체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별도 법인으로 설립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이라 한다)은 출판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제작 활성화 및 유통 선진화 지원, 양서 권장 및 독서 진흥 등 출판수요 진작을 위한 사업, 출판문화산업의 국외진출 등 관련 사항을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하며 정부는 예산의 범위에서 출판진흥원의 운영 또는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할 수 있다(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16조, 제16조의4, 제21조).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2014. 2.경 공소외 2 교문수석에게 ‘2014년 상반기 문예기금 지원 대상자 선정 결과 좌파단체, 좌성향 작가 등이 포함되었다. 그 원인은 심의위원회에 좌성향 인물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이고, 하반기 심사부터 이러한 폐단이 시정될 수 있도록 문체부가 나서 공모심사 체계를 개선하고 심의위원 임명시 과거 활동경력은 물론 이념편향 여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을 전달하면서, 같은 취지로 문예기금 운영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2는 그 무렵 공소외 1 문체부 장관에게 위 국정원 문건 등을 전달하면서 대응방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한편 2014. 2. 18.경 인터넷 매체 ◁◁◁◁에 ‘반미(反美), 반(反)대한민국 내용 서적들,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돼 대량 유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수도서 선정의 문제점을 개선하라는 실수비에서의 지적이 교문수석실로부터 문체부에 전달되었다. 공소외 1 장관은 2014. 2. 21.경 공소외 137의 집무실로 찾아 가, 우수도서로 선정된 도서 중 논란이 된 도서의 심사·선정 경위 및 특별감사를 통한 진상조사, 관계자 징계 검토, 심사위원 구성 시 이념 편향적 인사 배제 등 조치계획, 문예기금 지원대상 사업 중 논란이 된 사업의 심사·선정 경위 및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위촉방식 개선, 선정기준 강화, 사회적 물의를 빚은 단체·개인에 대한 지원 제외 등 조치계획을 내용으로 하는 ‘이념편향 논란의 도서 또는 사업 선정관련 대책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소외 137에게 건네면서 그와 같은 취지의 대면보고를 하였다. 공소외 137은 이러한 공소외 1의 보고에 대하여 ‘잘 하라’고 지시하였다. 문체부 예술정책과의 공소외 122 과장과 공소외 34 사무관은 공소외 1 장관의 위 보고에 대한 후속조치로 2014년 상반기 문예기금 지원 대상자 선정경위와 심의기준 등과 함께 2014. 3.경으로 예정된 예술위 분야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105명의 명단을 첨부한 ‘문예기금 지원사업 관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을 통해 공소외 2 교문수석에게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공소외 2는 그 보고서의 내용을 대통령과 공소외 137에게 보고하였고, 공소외 140은 공소외 2의 지시에 따라 보고서에 첨부된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105명의 명단을 피고인 2 소통비서관에게 전달하였다. 예술위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 등에 따르면 책임심의위원은 예술위 위원장이 해당 분야 또는 사업별 3배수를 후보자로 선정하여 위원회에 추천하고,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독립된 위치에서 공정하게 책임심의위원을 위촉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2는 그 무렵 교문수석실로부터 건네받은 105명의 후보자 가운데 문학 분야 1순위 후보자로 추천된 공소외 123, 공소외 124, 공소외 125, 공소외 126 등을 비롯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1 기재와 같이 문학·시각예술·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 분야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총 19명에 대하여 제주해군기지반대, 촛불시위참여, 노무현시민학교강좌 등의 사유를 들어 책임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교문수석실에 전하였고, 공소외 140을 통해 이를 전달받은 공소외 56 선임행정관은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에게 19명의 후보자를 책임심의위원 선정 대상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34는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과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에게 19명의 후보자가 책임심의위원으로 선정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을 전달하였다. 문체부의 산하기관으로서 문체부장관이 위원장을 위촉하고 문예기금의 운용·관리 성과에 대하여 문체부의 평가를 받는 등 문체부의 지휘·감독을 받는 예술위 사무국 소속 임직원들인 위 공소외 4·공소외 5는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 위원장의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선정 내지 위원회의 책임심의위원 선정 의결과정에 관여하거나 개입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문체부를 통하여 위와 같은 청와대의 배제지시를 하달 받게 되자,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윗선의 뜻이니 하달 받은 후보자 19명이 책임심의위원으로 위촉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였고, 결국 이들 후보자 19명은 2014년도 예술위 책임심의위원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이로써 피고인 2는 공소외 137, 공소외 140,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비서실장, 문체비서관, 문체부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1 기재와 같이 예술위 소속 임직원들인 공소외 4·공소외 5로 하여금 예술위의 책임심의위원 선정에 부당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피고인 2 소통비서관은 2014. 5.경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문체부와 예술위 등 산하기관이 정부예산, 기금 등을 지원한 개인·단체 중 공소외 127(시인, 문재인 지지), (명칭 32 생략)(연출가 공소외 128, 연극인 1,000인 문재인 지지) 등 야당 후보자에 대한 지지선언, 정권반대운동 참여 등 전력이 있는 개인·단체 약 80명의 명단을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건네주면서 ‘문체부가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원되지 않도록 명단을 문체부에 전달하라’고 말하였다. 피고인 2로부터 이 명단을 건네받은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이를 공소외 2 교문수석에게 보고한 다음, 명단에 기재된 지원배제 사유는 삭제한 채 개인·단체명만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한편, 그 무렵 교문수석실 자체적으로 ‘지원대상 선발과정에서 120%를 탈락’시키는 내용 등이 담긴 예술위 지원사업에 대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하여 공소외 137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공소외 140은 2014. 5. 초순경 공소외 73 문체부 제1차관을 청와대로 불러 이 명단을 전달하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저항과 비판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고, 윗선의 지시이다. 이 명단은 정무에서 만든 것인데 극비리에 관리하면서 이들에게 정부의 자금 지원이 가지 않게 하라’고 말하였고, 공소외 73 차관은 이를 공소외 1 장관에게 보고하였다. 문체부 공무원들은 각 소관부서별로 위 지원배제 명단에 포함된 개인명·단체명을 비롯하여 그 후 문체비서관실 행정관들이 전화연락 등을 통해 수시로 문체부에 하달한 지원배제 개인명·단체명,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에서 정부의 기금지원 등을 문제 삼은 개인명·단체명, 문체부에서 국정원에 지원배제 여부를 검토 의뢰하여 받은 개인명·단체명 등을 그때그때 메모하거나 별도의 컴퓨터파일로 취합해 가면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소위 ‘블랙리스트’)을 계속 업데이트 하였고, 부서 상호간에 이를 상호 공유하고 후임자에게 인계하면서 문체부와 그 산하기관의 지원사업(기금·예산지원, 공연장·상영관 대관 등), 각종 인선(기관장, 임원, 심사위원 등), 각종 훈·포장 등의 수혜 대상자를 선정함에 있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을 기준삼아 여기에 포함된 개인·단체가 최대한 정부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도록 부당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2014. 10.경 공소외 137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념편향적인 것, 너무 정치적인 사업에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체부 사업 중에서 그런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청와대에서 지시한 사항들이 문체부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질책을 받은 피고인 1 장관은, 문체부 공소외 42 기획조정실장에게 ‘청와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시했던 사업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비서실장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문건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42 실장은 그 무렵 문화예술정책실, 문화콘텐츠산업실, 미디어정책관실 등 소속 국장·과장들을 통하여, 문예기금이 지원된 특정 개인·단체에 대하여 청와대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좌편향적 개인·단체에 대하여는 향후 문예기금 등 정부예산이 지원되지 않도록 개선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사실, 세월호 관련 정부대응을 비판한 영화 등의 상영에 대하여 청와대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실, 우수도서 선정과 관련하여 청와대에서 몇몇 도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실 등을 확인하였다. 공소외 42 실장은 ① 문화예술(문예기금 지원, 비엔날레 사업), ② 콘텐츠(영화기금 지원, 영화제 지원), ③ 미디어(우수도서 선정)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청와대에서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향으로 심사 강화(공공기관 담당자가 정부지원방침을 심사에 적용), 의결단계 재검증 기능 강화, 예술감독 선정의 건전성이 확보된 경우에만 지원검토, 문제영화 상영 영화제의 사후 통제 강화(문제영화제 차년도 지원예산 삭감), 심사위원 자격기준 강화(문제 도서를 심사과정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취합·정리한 후, 이를 피고인 1 장관에게 보고하였다. 피고인 1 장관은 2014. 10. 21.경 공소외 137의 공관을 찾아 가 위 보고서 내용을 대면보고하였고, 공소외 137은 보고내용에 대해 기뻐하면서 피고인 1에게 보고 내용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문체부에서는 공소외 42 실장을 단장으로 하고 관련 국장·과장이 참여하는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 회의를 매주 1회 개최하면서 장관보고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여부를 점검한 후 이를 피고인 1 장관과 교문수석실에 보고하였다. 2014. 10.경 예술위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수작가가 문학적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집필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시·시조·소설·희곡·아동문학·수필·평론 등 문학 분야 작가에게 문예기금에서 1인당 1,000만 원씩 총 99명에게 합계 9억 9,0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2015년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 지원신청을 공고하였고, 2014. 11. 중순경까지 총 959명이 지원신청을 하였다. 문체부 공소외 129 예술정책관은 그 무렵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등 문예기금 공모심사 업무 담당 임직원들을 세종 정부청사로 불러, 걸개그림으로 논란이 된 공소외 92 작가를 예로 들면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 무렵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문체부 공소외 129 예술정책관, 공소외 95 예술정책과장에게 예술위 심사 이전에 지원신청자 명단을 청와대로 송부하라고 요청하였고, 같은 취지의 지시를 받은 예술정책과 공소외 34 사무관은 과장·국장·차관 등을 거쳐 피고인 1 장관에게까지 순차 보고한 후, 예술위로부터 2014. 11.경 지원신청자 전체 명단 및 2015. 1.경 1차 무기명 심사를 통과한 지원신청자 약 198명의 명단을 각 건네받아 문체비서관실 공소외 74 선임행정관에게 송부하였다. 피고인 2는 소통비서관에서 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14. 10. 2.경 피고인 3이 후임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하자 피고인 3에게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을 인계하면서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배제 업무를 인계하였고,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으로 하여금 피고인 3에게 지원배제 대상에 대한 검토를 받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공소외 140은 문체부로부터 지원신청자 명단을 송부 받은 다음 이를 피고인 3 소통비서관에게 전달하며 지원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선별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피고인 3은 소통비서관실 공소외 12 행정관을 통하여 공소외 130 등 정부정책을 비판한 전력이 있거나 야권인사지지, 시국선언자 등 총 17명을 선별한 후 이를 교문수석실에 통보하였다. 공소외 74는 정무수석실에서 통보받은 17명의 명단을 전화로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에게 알려주었고, 공소외 34는 이를 피고인 1 장관에게까지 순차 보고한 후,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등 임직원들에게 고지하며 이들이 문예기금을 지원받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고, 그 후에도 같은 경로를 통해 예술위에 배제 대상자 명단을 수차례 추가 하달하였다. 예술위의 위원은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예술위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 등에 따르면 예술위의 위원회와 책임심의위원회의 문예기금 지원심의는 독립된 위치에서 성실하고 공정하게 수행되어야 하고, 예술위 사무국 소속 임직원들도 이러한 지원심의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위와 같은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라 심사 및 최종 선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술위 위원들과 책임심의위원회 위원들에게 ‘명단에 포함된 사람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거나 하면 윗선에서 아예 최종 심의결과를 발표하지 말라고도 한다. 그건 결국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 도와 달라’고 하면서 하달된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이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고, 지원배제를 위해 심사 일정을 연기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그 과정에서 공소외 34 사무관은 2015. 5.경 공소외 74 선임행정관으로부터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공소외 54 후보 지지선언’ 등 범주에 포함된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확인하여 문체부 장관에게까지 보고한 후 송부하라는 지시를 받아 총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한 후 이를 교문수석실에 송부하였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심의가 예정된 일정보다 지연되는 과정에서 문체부와 예술위는 문예기금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 파장내지 심각한 논란의 우려가 있거나 정부정책에 동조한 경력, 여권 인물에 대한 지지 경력도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련 설명자료를 작성해 청와대에 양해를 요청하였고 이를 청와대에서 수용함으로써, 예술위는 2015. 7. 중순경 청와대에서 하달된 5명을 심사과정에서 배제하고 지원금 수혜자를 당초 예정한 99명에서 70명으로 줄인 최종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를 포함하여 2014. 10.경부터 2016. 1.경까지 사이에 예술위가 주관하는 2015년 문예기금 사업 등인 (명칭 9 생략)극장 정기대관 사업, 공연예술비평 연구활성화 지원사업, 다원예술 창작 지원사업, 문학행사 및 연구 지원사업, 시각예술 창작 및 전시공간 지원사업,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교정시설·군부대·농산어촌·사회복지시설·임대주택 순회사업, 공연예술행사 지원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연극-시범공연)사업, 장애인 문화예술향유 지원사업, (명칭 9 생략)극장 3관 대관, 공연예술 창작산실(연극-대본공모)사업, 공연예술 발표공간 지원사업, 주목할 만한 작가상 선정 등에 대하여, 위와 같은 방법으로 문화예술계 지원·선정 배제 대상자 명단이 수시로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거쳐 예술위에 순차 하달되어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과정 등에 부당하게 개입되었고, 결국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5년 사업’ 중 ‘직권남용’ 란에 ‘유죄’로 기재된 부분과 같이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가 예술위의 지원 대상 등에서 최종 배제되었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 장관, 문체부 공무원의 각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5년 사업’ 중 ‘직권남용’ 란에 ‘유죄’로 기재된 부분에 기재된 사업들에서 같은 일람표에 기재된 대상자들을 선정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예술위 소속 임직원들인 공소외 4·공소외 5·공소외 14·공소외 21·공소외 18·공소외 19 등으로 하여금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2015. 12.경부터 2016. 9경까지 사이에 예술위가 주관하는 농산어촌·사회복지시설·임대주택·학교 순회사업, 문화사각지대 발굴프로그램 사업,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 지원사업, 공연예술행사 지원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연극-시범공연)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연극(어린이·청소년)―시범공연]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연극-우수작품 재공연)사업, 창작뮤지컬 육성(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사업, 공연기획 및 경영전문인력 지원사업, 무대예술 전문인력 지원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음악 - 오작교프로젝트) 지원사업, 원로예술인 공연 지원사업, 예술위 심의위원 풀 선정 등에 대하여, 위 2. 바. 1)과 같은 방법으로 문화예술계 지원·선정 배제 대상자 명단이 수시로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거쳐 예술위에 순차 하달되어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과정 등에 부당하게 개입되었고, 결국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6년 사업’ 중 ‘직권남용’ 란에 ‘유죄’로 기재된 부분과 같이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가 예술위의 지원 대상 등에서 최종 배제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1, 피고인 3은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장관, 문체부 공무원의 각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6년 사업’ 중 ‘직권남용’ 란에 ‘유죄’로 기재된 부분 사업들에서 같은 일람표에 기재된 대상자들을 선정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예술위 소속 임직원들인 공소외 4·공소외 13·공소외 17·공소외 21 등으로 하여금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제영화제인 □□국제영화제 사무국은 제19회 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2014. 9.경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이 담긴 영화 ‘△△△△’을 2014. 10. 6.경 상영하기로 결정·발표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2014. 9.경 실수비에서 △△△△이 상영되지 않도록 대응할 것을 지시하였고, 2014. 10. 2.경 실수비에서 ‘예술을 가장한 이념과 정치성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이에 피고인 1 장관은 공소외 131 부산시장에게 연락하여 ‘□□국제영화제에서 △△△△이 상영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공소외 33 문체부 제1차관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게 같은 취지의 요구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 ‘△△△△’은 □□국제영화제에서 예정대로 상영된 후 2014. 10. 23.경 일반상영관 개봉을 앞두게 되었고,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그 무렵 실수비에서 ‘영화 △△△△ 상영과 관련하여 대관료 등 자금원을 추적하여 실체를 폭로하라’는 취지로 지시하였다. 이러한 지시를 순차 전달받은 공소외 140은 공소외 43 행정관을 통해 문체부 공소외 40 영상콘텐츠산업과장과 공소외 35 사무관 등에게 ‘△△△△’의 상영이 예정된 영화관의 현황과 그 영화관들에 영진위의 영화기금이 지원되었는지 여부 등 상황을 파악하여 교문수석실로 매일 보고하라. 영화 ‘△△△△’이 상영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공소외 35 등은 영진위 공소외 39 부장에게 연락하여 이러한 청와대의 지시를 전하였고, 공소외 39는 2014. 10. 17.경 영진위가 지원 중인 예술영화전용관 ‘(명칭 34 생략)’ 관계자에게 영화 △△△△ 상영을 자제해 달라는 뜻을 전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결국 영진위가 지원 중인 수 곳의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영화 ‘△△△△’이 상영되었다.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소위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포함한 영화를 상영한 것에 대한 제재로 일부 예술·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 중단,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 방침을 정하였고,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등은 이러한 방침에 따라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는 방안을 공소외 137 비서실장과 대통령에게 보고한 다음, 2014. 12.경 문체부에 □□국제영화제에 대한 다음 해 영진위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문체부는 피고인 1 장관에 대한 보고를 거쳐 일거에 지원금 전액을 삭감하는 경우 영화계의 심한 반발이 우려된다는 문체부와 영진위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였고, 이를 반영하여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2014년 14억 6,000만 원에 달하던 지원금을 2015년 8억 원으로 삭감하기로 조정하여 영진위에서 2015. 4. 30.경 최종 결정하였다. 또한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등은, 위와 같은 정부비판적 영화 상영관에 대한 지원 중단 방침에 따라 피고인 1 장관 등을 통해 영진위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영화를 상영한 영화관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러한 지시를 받은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심사과정에서 독립영화전용관 ◇◇◇◇◇◇와 ☆☆☆☆☆☆☆를 영화 ‘△△△△’, ‘▷▷▷▷’ 등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영진위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영진위의 심사위원회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를 하여야 하고, 영진위 소속 직원들도 이러한 심사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라 영진위 위원들로 하여금 하달된 지시사항이 의결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전하여 위와 같은 영화제·영화관 등이 영진위의 지원대상에서 배제되도록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1은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 장관, 문체부 공무원 등의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3 순번 3, 4, 5 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진위 소속 임직원 공소외 39 등으로 하여금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지원심사에 부당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2014. 7. 30.경 출판진흥원은 양서출판 의욕 진작 및 국민의 독서문화 향상을 목적으로 학술·교양·문학 3가지 분야 도서를 심사하여 ‘세종도서’로 선정하고, 출판사로부터 각각 1,000만 원 상당의 선정된 도서를 구매하여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하는 내용의 ‘2014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을 공고하였다. 2014. 10. 하순경까지 문학부문에서 총 1,510종의 도서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어 1차 심사를 거친 후, 그 중 총 763종의 도서가 2014. 11. 4.경 실시된 2차 심사를 통과하였다.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공소외 36 사무관 등은, 출판진흥원 출판산업진흥본부장 공소외 10, 콘텐츠진흥팀장 공소외 11에게 ‘세종도서 2차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목록을 건네 달라’고 요청하여 위 목록을 청와대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송부하였다.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으로부터 ‘정부비판, 이념편향 서적들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잘 챙기라’는 지시를 받은 공소외 60은 위 목록을 검토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의 순번 1 내지 9에 기재된 총 9종의 도서를 문제도서로 선정하여 공소외 140에게 보고한 다음 문제도서목록을 공소외 36 사무관에게 알려 주었고, 공소외 36은 2014. 11.경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본부장과 공소외 11 팀장에게 위와 같이 선별된 도서들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세종도서 선정위원회 및 심사위원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를 하여야 하고, 출판진흥원 소속 공소외 10·공소외 11도 이러한 심사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위와 같은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라 2014. 11. 14.경 실시된 세종도서 최종 3차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으로부터 하달된 문제도서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였고, 결국 총 9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1은 공소외 137, 공소외 140,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 순번 1 내지 9에 기재된 총 9종의 도서를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들인 공소외 10·공소외 11로 하여금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선정심사에 부당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2015. 7. 28.경 출판진흥원은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을 공고하여 2015. 8. 20.경까지 총 8,012종(문학부문 2,447종, 교양부문 5,565종)의 도서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었고, 총 1,675종(문학부문 867종, 교양부문 808종)의 도서가 2차 심사를 통과하였다. 문체부 공소외 36 사무관은 2015. 10. 중순경 출판진흥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세종도서 2차 심사 통과 신청자목록을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송부하였고, 공소외 60은 이를 검토하여 공소외 136 작가의 ‘(명칭 35 생략)’ 등 총 15종(문학부문 10종, 교양부문 5종)의 문제도서를 선별하여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한 후 공소외 36 사무관에게 알려 주었고, 공소외 36은 이를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본부장, 공소외 11 팀장에게 통보하면서 위와 같이 선별된 도서들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출판진흥원의 공소외 11·공소외 10은 위와 같은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라 2015. 10.말경 실시된 세종도서 문학부문 최종 3차 심사, 2015. 11. 중순경 실시된 세종도서 교양부문 최종 3차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으로부터 하달된 문제도서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였고, 문제도서로 통보된 도서들 중 별지 범죄일람표 4의 순번 10 내지 22에 기재된 총 13종(문학부문 8종, 교양부문 5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한편, 공소외 140은 공소외 60이 신청자목록을 검토한 결과와 이유 등을 공소외 139 교문수석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고, 그 후 문체부로부터 최종 선정결과를 보고받아 이를 공소외 139에게 보고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1은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 순번 10 내지 22에 기재된 총 13종의 도서를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들인 공소외 10·공소외 11로 하여금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선정심사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피고인 1은 2016. 12. 15.경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에 있는 국회의사당 회의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제4차)’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한 후 증언하였다. 피고인 1은 “블랙리스트 사실 여부를 알고 있습니까?”라는 공소외 44 위원의 질의에 “아니요, 모릅니다.”라고 증언하였고, “문체부에 파다한데 모르십니까?”라는 질의에 “저한테 누구도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고요.”라고 증언하였으며, “보여주면 안 보려고 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래도 여기에서까지 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실 겁니까? 이제는 그냥 인정하세요.”라는 질의에 “그 내용과 관련되어 따로 보고받은 적은 없습니다.”라는 취지로 증언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1은 2014. 10.경 문체부 공소외 42 실장 등을 통하여 문예기금이 지원된 특정 개인·단체에 대하여 청와대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좌편향적 개인·단체에 대하여는 향후 문예기금 등 정부예산이 지원되지 않도록 개선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사실, 세월호 관련 정부대응을 비판한 영화 등의 상영에 대하여 청와대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실, 우수도서 선정과 관련하여 청와대에서 몇몇 도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사실 등을 보고받았고, 청와대에서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향으로 심사 강화(공공기관 담당자가 정부지원방침을 심사에 적용), 의결단계 재검증 기능 강화, 예술감독 선정의 건전성이 확보된 경우에만 지원검토, 문제영화 상영 영화제의 사후 통제 강화(문제영화제 차년도 지원예산 삭감), 심사위원 자격기준 강화(문제 도서를 심사과정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하였으며, 위 2.의 바, 사, 아.항 기재와 같이 청와대 등에서 하달된 소위 ‘블랙리스트 명단’을 토대로, 문체부 공무원들이 예술위의 책임심의위원 선정과 문예기금 지원 등 심의, 영진위의 영화기금 지원심의, 출판진흥원의 우수도서 선정심의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피고인 3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문체부 문예기금지원대상자에서 정부정책 비판 전력 보유, 야권인사 지지, 시국선언 참여 등 문화예술인이 배제되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소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고 관련 명단을 검토한 사실이 있었으며, 문체부 제1차관으로 재직하면서 청와대로부터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을 전달받아 예술위 등을 통해 이를 실행하는 등 소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고 이를 직접 본 사실이 있었다. 피고인 3은 2016. 9. 27.경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에 있는 국회의사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위 위원회의 문체부 등에 대한 2016년 국정감사에 기관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한 후 2016. 10. 13.경 같은 장소에서 위 위원회의 2016년 국정감사 종합감사에 출석하여 9. 27.자 증인 선서의 효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소통비서관 재직 당시에 지금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거나 본 적은 없습니까?”라는 공소외 110 위원의 질의에 “전혀 없습니다.”라고 증언하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문화계, 예술계 블랙리스트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시지요?”라는 공소외 138 장관에 대한 질의에 이어서, 피고인 3에 대한 “1차관님, 보신 적 있어요?”라는 공소외 133 위원의 질의에 “없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피고인 3은 2016. 11. 30.경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에 있는 국회의사당 제3회의장 245호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제1차)’에 기관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하였다. 피고인 3은 “문체부장관님, 지난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본 적이 없다고 답변하셨지요?”라는 공소외 138 장관에 대한 질의에 이어서, 피고인 3에 대한 “1차관님도 마찬가지지요?”라는 공소외 25 위원의 질의에 “예, 그렇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1) 공소외 9에게 사직을 권유한 것이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다. (2) 피고인 1은 문체부장관으로서 상관인 대통령의 지시가 그 자체로 위법·부당함이 명백하지 않은 이상 이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1) 대통령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면서 문체부 장관을 통하여 문체부 산하의 각종 기금, 단체 등을 지도·감독한 것이므로 위법하지 않고, 피고인 1은 장관으로서 복종의 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2) 피고인 1이 문체부 장관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기획되어 집행되어 왔거나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고, 피고인 1은 지원배제명단의 선정이나 관리, 실행에 직접적 관여한 사실이 없다. 책임심의위원 선정은 민간단체보조금 TF가 구성되기 전에 이루어진 일로, 피고인 2는 공소외 140으로부터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받아 검토한 기억이 없는데, 공소외 140은 소통비서관실이 아닌 공직기강비서관실로부터 책임심의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 (1) 피고인 등이 예술위 등의 직원에 대하여 지시할 일반적인 직무권한이 없고, 예술위 등의 직원이 이에 따랐다고 하여 법률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2) 피고인 3이 직접 명단검토를 하지 않았거나 명단검토를 했는지 불명확한 부분에 대하여까지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피고인 3이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라 한다)에서 위증한 부분은 국조특위의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에 관하여 사실과 다르게 증언을 했다고 하여 위증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1)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하고, 그 일반적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것임을 요하지 아니하며, 그것이 남용될 경우 직권행사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법률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대법원 2004. 5. 27. 선고 2002도6251 판결 참조). 2)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따라서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는 구별되며, 또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1. 12. 27. 선고 90도2800 판결 등 참조). 3) 직권남용에 해당하는가의 판단 기준은 구체적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그 목적, 그것이 행하여진 상황에서 볼 때의 필요성·상당성 여부, 직권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 제반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도11884 판결 참조). 4)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란 ‘사람’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때를 의미하고,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에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도13766 판결 등 참조). 5) 형법 제123조는 국가기능의 공정성 외에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도 보호법익으로 하는바, 위 죄가 기수에 이르려면 의무없는 일을 시키는 행위 또는 권리를 방해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피해자의 의무없는 행위가 이룩된 것 또는 권리방해의 결과가 발생한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1978. 10. 10. 선고 75도2665 판결, 대법원 2006. 2. 9. 선고 2003도4599 판결 등 참조). 1)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것이나,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며, 또한 하관은 소속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위와 같이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등 참조). 1) 2인 이상이 범죄에 공동가공하는 공범관계에서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2인 이상이 공모하여 범죄에 공동가공하여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서, 비록 전체의 모의과정이 없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지만, 피고인이 범죄의 주관적 요소인 공모의 점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이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이를 증명할 수밖에 없으며,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도9721 판결 등 참조). 2) 형법 제30조의 공동정범은 공동가공의 의사와 그 공동의사에 기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 실행이라는 주관적·객관적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성립한다. 공모자 중 구성요건 행위 일부를 직접 분담하여 실행하지 아니한 사람이라도 경우에 따라 이른바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질 수도 있지만, 그러한 죄책을 지기 위하여는 전체 범죄에서 그가 차지하는 지위, 역할이나 범죄 경과에 대한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해 볼 때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범죄의 수단과 태양, 가담하는 인원과 그 성향, 범행 시간과 장소의 특성, 범행과정에서 타인과의 접촉 가능성과 예상되는 반응 등 제반 상황에 비추어, 공모자들이 그 공모한 범행을 수행하거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나아가는 도중에 부수적인 다른 범죄가 파생되리라고 예상하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그러한 가능성을 외면한 채 이를 방지하기에 충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공모한 범행에 나아갔다가 결국 그와 같이 예상되던 범행들이 발생하였다면, 비록 그 파생적인 범행 하나하나에 대하여 개별적인 의사의 연락이 없었더라도 당초의 공모자들 사이에 그 범행 전부에 대하여 암묵적인 공모는 물론 그에 대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10도7412 판결, 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3도6570 판결 등 참조). 3) 피고인이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범행의 일부를 실행한 후 공범관계에서 이탈하였으나 다른 공범자에 의하여 나머지 범행이 이루어진 경우, 피고인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도 죄책을 부담한다(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5도630 판결 등 참조). 동일한 죄명에 해당하는 수개의 행위 혹은 연속된 행위를 단일하고 계속된 범의하에 일정 기간 계속하여 행하고 그 피해법익도 동일한 경우 이들 각 행위를 통틀어 포괄일죄로 처단하여야 할 것이나,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범행방법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 각 범죄행위 사이에 시간적·장소적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각 범행은 실체적 경합범에 해당한다(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5도4051 판결,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5도1952 판결 등 참조). 가) 피고인 1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32가 공소외 9를 방문하여 사표제출을 요구하자 공소외 9는 공무원신분보장제도를 언급하며 사직 대신 전보조치를 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사표제출이 장관의 지시라면 장관을 면담하겠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공소외 32는 사표제출이 장관 윗선의 지시라면서 장관도 곤혹스러워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공소외 9는 자신이 산하단체로 감으로써 피해보는 사람이 없을 것, 국립중앙박물관 공무원에 대한 인사조치는 자신으로 그칠 것 등에 대한 확답을 요청하였고, 이에 관한 확답을 받은 후 2016. 4. 29.경 명예퇴직신청을 하였다. 나) 피고인 1은 공소외 139 교문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사표제출 지시를 전달 받고 공소외 42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통하여 공소외 9를 내보낼 자리를 알아본 후 국민체육진흥공단 사무총장으로 보임하기로 하고 그와 같은 계획을 공소외 139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139는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하였고, 그 지시를 전달받은 피고인 1은 공소외 9를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으로 보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공소외 9는 2016. 5. 31. 명예퇴직을 하고, 2016. 6. 1.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으로 부임하였다.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공무원이 집권세력의 논공행상의 제물이 되는 엽관제도를 지양하고 정권교체에 따른 국가작용의 중단과 혼란을 예방함과 동시에 동일한 정권하에서도 정당한 이유없이 해임되지 아니하도록 신분을 보장하여 일관성 있는 공무수행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정책집행을 보장하려는 민주적이고 법치국가적인 공직구조에 관한 제도 즉 직업공무원제도를 규정한 것이다(헌법재판소 1989. 12. 18. 선고 89헌마32 등 결정 참조). 이에 따라 국가공무원법 제68조는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공소외 9가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진술한 점, 공소외 9는 이미 2013년 대한승마협회 감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지목되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는데, 다시 장관 윗선의 지시라면서 사직을 요구받게 되자 자신이 소속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다른 공무원에게 더 이상 인사조치를 하지 않을 것 등을 확약 받고 사직서를 제출한 점, 공소외 9에게 징계처분 등을 할 사유가 있다거나 정년 등으로 인하여 사직을 권유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공소외 9는 자의로 사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대통령 등의 지시에 따라 그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한 것임이 인정된다.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공무원을 임면하고, 교문수석은 문화·예술·체육 등에 관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하여 관계부처와 지시·협의를 하며, 문체부 장관은 문체부의 사무를 총괄하면서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고 보직을 부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그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여 면직한 것은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이는 위법·부당한 직무수행에 해당하여 직권을 남용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공소외 9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앞서 인정한 사실과 사정을 종합하면, 공소외 9를 그 의사에 반하여 사직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고, 피고인은 문체부 장관으로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그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였으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상관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여 정당하다거나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공소외 56은 검찰에서 공소외 140으로부터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넘겨서 인사검증을 한 후 그 결과를 문체부에 전달하였다고 진술한 적이 있고(수사기록 5,455쪽), 공소외 48은 이 법정에서 100명이 넘는 명단을 검토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이 법원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교문수석실에서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이 피고인 2에게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보내 피고인 2가 그 중 배제대상자를 선별하여 통보해 주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① 공소외 140은 이 법정에서 공소외 2 교문수석이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소통비서관실에 전달하라고 지시하여 이를 피고인 2에게 전달하였고, 얼마 후 책임심의위원으로 선정해서는 안 되는 배제명단이 내려와 다시 공소외 2에게 보고한 뒤 문체부에 전달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아울러 인사검증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하는 것이 원칙인데 예외적인 케이스였다고 진술하였다. ② 공소외 2는 책임심의위원과 관련하여 자신이 공소외 140에게 소통비서관실 쪽에 협조하라고 지시하였고, 공소외 140으로부터 소통비서관이 선정되어서는 안 되는 명단을 보내온 것을 보고받았다고 진술하였다(수사기록 14,172쪽). ③ 공소외 56은 2014. 2.~3.경 소통비서관실 공소외 48 행정관으로부터 문체부, 예술위의 지원사업 현황, 예술가, 예술단체에 대한 정보를 요청받았는데 그 전까지는 업무협력이 없었다고 하면서,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문체부로부터 받아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공직기강 혹은 소통비서관실에 인사검증을 요청하였다고 진술하였다(수사기록 13,933쪽, 13,938쪽). ④ 공소외 48은 피고인 2가 소통비서관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문체비서관실로부터 몇 차례 명단을 건네받아 지원배제를 검토해 주었다고 진술하였고(수사기록 10,800쪽), 이 법정에서도 공소외 140이 피고인 2를 찾아와 문화·예술계에서 지원을 배제해야 할 명단에 대한 문의를 하여 피고인 2의 지시로 자신이 선별작업을 하였는데, 어떤 명단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2014년 상반기에 4~5번을 검토하였다고 진술하였다. ⑤ 민간단체보조금 TF의 첫 회의는 2014. 4. 4. 열렸지만 그 준비 작업은 2014. 3. 이전부터 진행된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하여 2014. 2. 무렵부터 교문수석실에서 소통비서관실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는 등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검토할 무렵 교문수석실과 정무수석실은 이미 문체부, 예술위의 지원사업과 관련된 업무협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⑥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이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정무수석실 주도로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진행하였고 그 활동 결과를 종합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까지 작성하였으며, 민간단체보조금 TF 회의에 TF를 주관한 공소외 3 정무수석 외에 수석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공소외 2가 참석한 점에 비추어 보면, 당시 문체부 산하기관의 문예기금 등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교문수석실에서 책임심의위원 선정 문제에 관하여 정무수석실의 검토를 받았을 개연성이 높다. 예술위의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며(문화예술진흥법 제29조), 예술위의 회의는 재적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문화예술진흥법 제31조). 그리고 2013. 1. 25. 개정된 예술위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수사기록 10,038쪽)에 의하면 예술위는 문예기금 공모사업의 지원심의를 위하여 분야별 또는 사업별 책임심의위원을 위촉할 수 있는데(제5조), 책임심의위원은 위원장이 해당 분야 또는 사업별 3배수를 후보자로 선정하여 위원회에 추천하고, 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후 위원장이 위촉한다(제7조). 따라서 예술위의 위원장이 후보자를 추천하여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책임심의위원을 위촉하는 과정에 있어서 위원장을 포함한 예술위의 위원은 어떠한 직무상 간섭도 받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한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에 따라 문체부 장관은 예술위에 대하여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예술위 위원의 독립성과 위원회의 의결방법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적인 책임심의위원 위촉 절차에 개입하여 특정인을 위촉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는 행위가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 권한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인 등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하여 예술위 임직원들에게 예술위 위원장이 추천할 책임심의위원 후보자들 중 특정 인물들을 책임심의위원 선정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위원장의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추천을 포함한 예술위 위원의 직무에 관한 독립성 및 이러한 독립한 위원들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된 위원회 의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하여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예술위 사무국 소속 임직원인 공소외 4·공소외 5는 위원장의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추천 및 위원회의 책임심의위원 선정 의결과정에 개입할 수 없음에도 피고 등으로부터 차례로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공무원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배제대상자 명단을 위원장에게 전달하여 책임심의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의결과정에 개입하였다. 이는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에 해당한다.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 등에게 정무수석 주관으로 각 부처별 보조금 지원실태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TF를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그 지시에 따라 피고인 2는 문체비서관실을 포함한 여러 비서관실에 보조금 지원자 명단, 지원 내역 등을 요청하였고, 문체비서관실 공소외 56 행정관은 2014. 2.~3.경 예술위를 포함한 문체부 지원사업 내역을 문체부로부터 받아 정무수석실에 전달하였다. 2014. 3.경 피고인 2가 주관하는 소통비서관실 회의에서는 각 부처별 NGO 사업, 공모사업 위탁사업 등 사업종류 전체의 총괄정리, 민간단체 보조금 효율화 방안, 기금운영자, 기존심사위원 교체, 공모사업시 평가기준 등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민간단체보조금 TF 첫 회의는 2014. 4. 4.경 열렸는데, 공소외 3 정무수석이 회의를 주관하였고, 공소외 2 교문수석도 참석하였다. 그 외에 국민소통, 행정자치, 사회안전, 경제금융, 교육, 문화체육, 보건복지, 고용노동 8개 비서관이 참석하였고, 이후 2014. 5.말경까지 2~3차례 회의가 진행되었다. 공소외 3 정무수석과 피고인 2 소통비서관은 소통비서관실 공소외 48 행정관에게 민간단체보조금 TF의 활동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는데, 이에 따라 공소외 48이 2014. 5. 말경 작성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수사기록 10,833쪽)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 보고서에 첨부된 부처별 관심예산 조치 현황(첨부 1), 주요부처 공모사업 심사위원 조치 현황(첨부 2), 정부위원회 위원 조치 현황(첨부 3) 일람표에는 지원배제, 심사위원·정부위원 배제의 사유가 ‘특이사항’, ‘비고’란에 각 기재되어 있다. 그 사유들은 ‘(명칭 5 생략) 배급사’, ‘공소외 50 이사장-문재인 멘토단 참여’, ‘공소외 51 정당 지지선언’, ‘MB의 추억이라는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한 다큐멘터리 지원비로 사용’, ‘좌파성향 언론사’, ‘공소외 52 정당 지지’, ‘문재인 지지선언’, ‘노사모 및 문재인지지’, ‘문재인 멘토단 참여(문학)’, ‘공소외 44와 정치활동 적극 참여’, ‘전 공소외 53 정책네트워크 내일 실행위원’, ‘밀양 희망버스’, ‘문재인 멘토단(문학예술)’, ‘공소외 53 팬클럽(작가 74명)’,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방식 규탄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대선광고 촬영’, ‘(명칭 6 생략) 초반부 애니메이션 제작’, ‘(명칭 6 생략) 제작사’, ‘용산참사 해결 시국선언’, ‘미국산쇠고기 협정파기 촉구선언’, ‘(명칭 7 생략) 교수 국정원 시국선언’, ‘(명칭 8 생략) 교수 세월호 참사 정부대책촉구 시국선언’, ‘공소외 54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등이다. 공소외 48은 피고인 2의 지시에 따라 위 보고서 첨부 자료 일람표 중 해당 부처 부분만을 따로 출력하여 해당 비서관들에게 배부하였고, 비서실장, 대통령 부속실로 서면보고를 한 후 공소외 3과 피고인 2가 가지고 있는 보고서를 제외한 보고서와 파일들을 모두 파기·삭제하였다. 피고인 2는 위 보고서를 가지고 있다가 2014. 10. 2.경 피고인 3이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하자 민간단체보조금 TF에서 만든 문건으로 중요한 내용이고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사안이라고 설명하면서 이제 학술 관련 연구용역비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 점검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피고인 3에게 위 보고서를 전달하였다. 공소외 137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념편향적인 것, 너무 정치적인 사업에 국민 세금이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체부 사업 중에서 그런 것이 있는지 살펴보라, 청와대에서 지시한 사항들이 문체부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질책을 받고 피고인 1 장관이 2014. 10.경 공소외 42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보조금 지원과 관련된 종합계획으로 보고받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수사기록 6,096쪽 이하)은 문화예술분야(문예기금 관련), 콘텐츠분야(영진위 관련), 미디어분야(세종도서 관련) 등에 관한 종합적인 대책을 담고 있는데, 그 중 문예기금과 관련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 1은 위 보고서와 이를 가로 형태로 요약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수사기록 6,136쪽 이하)이라는 보고서를 함께 가지고 2014. 10. 21.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였다.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 보고서에는 문예기금과 관련된 내용으로 ‘2014년 문예기금 지원사업(448건) 중 이념, 정치편향 단체/개인 3건 포함(사례)’, ‘심사단계(책임심의위원 심의) 1차 검증실패, 의결단계(예술위 전체회의)는 형식적 절차로 진행(문제점)’, ‘심사단계 1차 검증 강화, 의결단계 재검증 기능 강화(개선방안)’ 등이 기재되어 있고, ‘분야별 상시모니터링 체계 가동’, 매주 1회 T/F 회의 개최 및 운영현황 점검 결과를 공유하겠다는 취지의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 구성·운영 등이 기재되어 있다. 2014. 10. 2.경 피고인 3이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한 후 공소외 140이 배제 대상자 선별을 요청하기 위해 피고인 2를 찾아오자 피고인 2는 공소외 140을 피고인 3에게 안내하면서 앞으로 피고인 3에게 검토를 요청하라고 하였고, 이에 따라 공소외 140은 피고인 3을 찾아가 명단을 건네면서 배제대상자 선별을 요청하였다. 피고인 3은 소통비서관실 공소외 12 행정관에게 명단 검토업무를 맡겼는데, 공소외 12는 피고인 3이 보여준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를 지침삼아 그 첨부 일람표의 ‘특이사항’, ‘비고’란에 기재된 지원배제 등의 사유를 반영하여 명단을 검토하고 배제 대상자를 선별하였다.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 등은 예술위로부터 공모신청자 전체 목록을 받아 이를 교문수석실 공소외 74 행정관에게 송부하였다. 공소외 74는 이를 공소외 140에게 보고하였고, 공소외 140은 공소외 139 교문수석에게 보고한 뒤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방법으로 피고인 3 소통비서관의 검토를 받아 배제 대상자 명단을 공소외 74를 통하여 문체부 공소외 70 국장, 공소외 95 과장, 공소외 34 사무관 등에게 개별사업별로 전화로 불러주거나, 2주마다 비서관실에서 회의를 하면서 직접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하달하였다. 공소외 34 등은 위와 같이 공모신청 접수 후 공모신청자 목록을 청와대로 보내고 배제 대상자 명단을 받아 예술위에 하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배제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 등을 정리한 문예기금 등 공모사업의 신청현황, 추진상황 등에 관한 보고를 피고인 1 장관을 거쳐 교문수석실에 하였는데, 그 주된 내용에는 각 사업별 신청현황, 배제 사유에 해당하는 ‘특이사항’의 내용(‘문재인 지지’, ‘노무현 지지’, ‘야권연대 공동선대위’ 등), 배제 사유 해당자를 선정에서 배제하는 방안(심사 시 제외, 별도 사유의 제시, 사업 중단·연기), 배제가 부적절 또는 곤란하여 청와대의 양해가 필요한 사안 및 이유(청와대 행사 참석 등, 검열논란 이슈화, 예술계의 반발 등) 등이 있었다. 그 후 피고인 3은 2016. 2. 초경 문체부 제1차관으로 부임하였고, 교문수석실 행정관도 공소외 74에서 공소외 156으로 변경되자, 공소외 156은 공소외 34에게 “피고인 3 차관에게 리스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어보고 의견을 달라.”고 하였고, 공소외 98 국장과 공소외 34가 피고인 3을 찾아가 리스트 적용과 관련한 의견을 묻자 피고인 3은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고 청와대에서 안 된다면 보고를 해 달라.”고 하여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배제 업무가 계속 진행되었다. 한편 문체부는 청와대를 통하여 지원신청자 목록을 검토 받는 것과 별도로 국정원 연락관을 통하여 국정원에도 지원신청자 목록을 보내 지원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검토를 따로 받기도 하였다. 비서실장은 정부의 수반으로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고, 교문수석은 교육·문화·체육·관광정책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하면서 문체부와 협의·조정을 하는 지위에 있으며, 문체비서관은 문화·예술·체육정책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하면서 문체부와 협의·조정을 하는 지위에 있다. 문체부 장관은 준정부기관인 예술위에 대하여 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을 가지고 있고, 문화예술진흥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정관 제정 및 변경 인가(문화예술진흥법 제22조 제2항), 위원장·위원 위촉(제23조 제1항, 제24조 제2항), 문예기금의 운용성적에 대한 측정 및 평가와 시정요구(제35조), 문예기금의 운용계획과 결산보고 및 관리운용에 관한 승인(시행령 제24조) 등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문체부 공무원은 장관의 직무상 지휘·감독 아래 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 장관, 문체부 공무원이 예술위의 문예기금 공모사업에 관하여 특정 개인·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지시한 것은 외견상 그들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 예술위의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외부의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문화예술진흥법 제29조), 예술위의 회의는 재적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문화예술진흥법 제31조), 예술위는 문예기금의 관리·운용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문화예술진흥법 제30조 제1항 제5호). 그리고 책임심의위원·심의위원은 독립된 위치에서 성실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 제8조 제1항). 즉, 문예기금 지원사업 심사는 직무상 독립된 예술위의 심의·의결사항이고, 예술위는 그 심사를 책임심의위원·심의위원에게 위탁하여 공정한 심사가 진행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하여 예술위 사무국 소속 임직원들로 하여금 문예기금 공모사업 등에서 특정 인물·단체를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도록 심의과정에 개입하게 한 행위는 예술위 위원장을 포함한 예술위 위원의 직무에 관한 독립성 및 이러한 독립한 위원들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된 위원회 의결의 독립성, 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위원회의 심의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는 책임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의 심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법하다. 한편 문화예술진흥법 제35조 제1항 및 제3항,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에 따라 문체부 장관은 문예기금 지원의 성과를 평가하고 예술위에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와 같이 문화예술진흥법이 문예기금을 관리·운용하는 예술위 위원의 독립성과 위원회의 의결방법 등을 명시하고 있는 점, 독립된 회계로 운영되는 문예기금 제도의 목적과 전문성을 갖춘 예술위가 책임심의위원·심의위원의 심의를 통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선정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문예기금 지원사업을 위한 심의과정에 개입하여 특정 개인·단체를 제외하도록 하는 것이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 권한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앞서 본 구체적인 배제사유를 종합하여 보면 이는 단지 좌파 또는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특정 개인·단체를 문예기금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것이어서 이에 비추어 보아도 이를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 권한 행사로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들 및 문체부 공무원들은 그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여 직권을 남용한 것이다. 예술위 사무국 소속 임직원들은 예술위 위원장 및 위원회와 그로부터 심사를 위탁받은 책임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의 결정 및 심의과정에 개입할 수 없음에도, 앞서 구체적인 지원배제 경위에서 본 바와 같은 방법으로 청와대와 문체부를 거쳐 하달 된 특정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배제를 관철하기 위해 심의 및 결정 과정에 개입하였다. 그 과정에서 예술위 소속 직원들이 직접 위원장, 위원회, 심의위원들에게 배제 대상자를 하달 받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지원배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유를 만들어 제시하거나 특정인 배제를 위한 기준을 임의로 만들어 적용하는 등의 행위를 한 이상 이는 모두 부당한 개입으로서 의무없는 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심의과정 등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행위를 한 이상 의무없는 일이 이룩되어 범행이 기수에 이른 것이고, 직권남용 행위와의 상당인과관계 또한 인정되며, 해당 사업에서 일부 배제 대상자가 배제 지시와 무관하게 지원심의 과정에서 탈락했다고 하여 달리 볼 것도 아니다. 가) 피고인 1이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과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 중 예술위의 문예기금과 관련된 부분은 이념, 정치편향 단체·개인에게 문예기금이 지원된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책임심의위원과의 사전접촉, 예술위 간부의 의견제시, 비공식 내부 가이드라인 등을 통하여 심사단계에서 검증을 강화하여 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겠다는 취지여서 사실상 판시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 부당개입 범죄사실의 실행방안에 관한 보고라고 할 것이다. 나) 아울러 앞서 본 바와 같이 문체부의 공무원들은 문예기금 등 공모신청 접수 후 공모신청자 목록을 청와대로 보내고 배제 대상자 명단을 받아 예술위에 하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원배제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 등을 정리한 문예기금 등 공모사업의 신청현황, 추진상황 등을 피고인 1 장관에게 보고한 후 이를 교문수석실에 보고하였다. 다) 이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1은 문체부 업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들을 지휘·감독하는 장관으로서 이 부분 범행과 관련된 계획을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이후 그 실행과정의 주요 상황까지 보고받고 승인하였으므로, 비록 피고인 1이 장관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이러한 지원배제가 실행되거나 그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고, 그 스스로 지원배제 명단의 선정·관리·실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피고인 1의 장관으로서의 지위, 역할이나 전체 범행 경과에 대한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해 볼 때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한 것임이 충분히 인정된다. 판시 범죄사실과 같이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사업 신청자목록을 받아 배제 대상자를 선별하는 행위는 피고인 3이 하였고, 피고인 2가 이러한 행위에 직접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은 ① 피고인 2는 그 전에 이미 공소외 140으로부터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명단을 받아 배제 대상자를 검토한 적이 있는 점, ②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로 피고인 2가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 작성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에 첨부된 일람표에 해당하는 명단을 공소외 140에게 직접 주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말라고까지 말한 점, ③ 피고인 3이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한 후 피고인 2가 피고인 3에게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문건을 인계한 점, ④ 공소외 140이 배제 대상자 선별을 요청하러 피고인 2를 찾아오자 피고인 2는 공소외 140을 피고인 3에게 안내하면서 앞으로는 피고인 3의 검토를 받으라고 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2는 이 부분 범행의 실행계획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고, 적어도 피고인 3이 공소외 140으로부터 문예기금 공모신청자 목록을 전달받아 배제 대상자 검토를 하기 시작할 무렵까지는 그 범행의 실행에도 직접 관여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2015년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은 그 사업의 주요 내용과 사업수행자가 동일하고, 그에 관한 지원배제 범행의 범의와 피해법익, 범행방법도 동일하며, 그 시간적 간격도 가까워서 이 부분 범죄는 전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인데, 피고인 2가 2015년 문예기금 등 사업의 지원배제 대상자 명단을 직접 검토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과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문체부 공무원 등을 통하여 예술위에 지원배제 의사가 전달되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이상 피고인 2는 2015년 문예기금 등 사업 지원배제 범행에 대하여 공범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3은 2014. 10. 2.경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하였고, 그 무렵 피고인 2로부터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을 전달받으면서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점, 공소외 140은 2014. 10.경 피고인 2에게 명단 검토를 받으러 가자 피고인 2가 피고인 3에게 검토를 받으라고 하여 이를 피고인 3에게 주고 왔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증거에 의하면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명칭 9 생략)극장 정기대관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배제 대상자 명단이 내려온 것이 2014. 10. 31.경임이 인정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3은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 부당개입 범행이 처음 시작될 무렵부터 관여하였음이 인정된다. 2015년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은 그 사업의 주요 내용과 사업수행자가 동일하고, 그에 관한 지원배제 범행은 앞서 본 청와대의 민간단체보조금 TF와 문체부 장관의 비서실장 보고 등을 통해 그 계획이 수립된 후 단일한 범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피해법익도 동일하며, 그 시간적 간격도 가까워서 이 부분 범죄는 전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2016년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에 관한 지원배제 범행 또한 마찬가지로 그 개개의 사업에 대한 지원배제 범행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비록 피고인 3이 그 개개의 배제 대상자 선별에 전부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그리고 2016. 3.경 문체부 제1차관으로 옮기면서 그 후에는 배제 대상자 선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피고인 1과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등이 문체부 공무원과 공모하여 실행한 2015년, 2016년 각 문예기금 관련 지원배제 범행 전부에 대하여 공모공동정범의 관계에 있다. 더구나 피고인 3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문체부 제1차관으로 부임한 후에도 문체부 공소외 98 국장 등에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배제 업무를 계속 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피고인 1의 주장처럼 대통령이 이러한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본 것처럼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개입하여 좌파 또는 정부에 반대하는 개인·단체를 선정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고, 피고인 1은 문체부 장관으로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그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였으므로, 피고인 1의 행위가 상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하다거나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 1 장관이 2014. 10.경 공소외 42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보조금 지원과 관련된 종합계획으로 보고받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 중 영화와 관련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울러 이를 가로 형태로 요약하여 피고인 1 장관이 위 보고서와 함께 2014. 10. 21.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대면보고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에는 영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영화기금지원 관련 ‘2013년 반정부 다큐멘터리 영화 ♤♤♤ ♤♤♤♤ 지원 및 영화제 상영’, 영화제지원 관련 ‘2014년 □□국제영화제△△△△ 상영’(사례), ‘지원작품 심사시 정치편향작품 검증 실패’, ‘영화제 특성상 지원예산결정·교부 후 작품 선정’(문제점), ‘심사강화·공공기관 담당자가 정부 지원방침을 심사에 적용’, ‘문제영화 상영 영화제의 사후통제 강화 필요·문제영화제 차년도 지원예산 삭감’(개선방향) 등이 기재되어 있다. 2014. 9. 2.경 □□국제영화제 사무국이 2014년 □□국제영화제에서 △△△△을 2회 상영할 예정이라는 발표를 하자,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그 무렵 실수비에서 △△△△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도록 대응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2014. 10. 2.경 실수비에서는 ‘예술을 가장한 이념과 정치성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공소외 30 당시 교문수석은 위와 같은 지시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전달하면서 문체부와 상의하여 △△△△이 상영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청와대와 문체부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 되었고, 이후 2014. 10. 23.부터 일반상영관에서 개봉을 앞두게 되었다. 공소외 137은 2014. 10. 22.경 실수비에서 △△△△ 상영 자금원 추적 등 △△△△ 상영에 대한 대응을 지시하였다. 위 지시에 따라 교문수석실은 문체부에 △△△△의 일반상영관 상영을 막을 방안을 찾으라는 지시와 함께 △△△△ 상영현황에 대한 일일보고를 지시하였다. 위 지시에 따라 문체부 공소외 41 사무관의 요청으로 영진위 공소외 39 부장이 (명칭 34 생략)공소외 157 대표에게 △△△△ 상영 자제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공소외 41은 2014. 10. 19.부터 2015. 1.초까지 교문수석실에 △△△△ 상영현황에 대한 일일보고를 하였다. 공소외 41이 교문수석실에 송부한 일일보고서에는 △△△△ 상영 스크린 수, 상영일 등과 함께 정부지원 수혜여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상영 전 조치로 ‘△△△△을 상영하지 않도록 요청’, 상영 후 조치로 ‘△△△△을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 중단’ 등의 조치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공소외 43 행정관은 2014. 12.경 공소외 139, 공소외 140의 지시로 □□국제영화제의 △△△△ 상영 경과와 내년도 지원금을 전액 삭감한다는 방침이 기재된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 방향’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소외 139, 공소외 140에게 보고한 후 공소외 137 비서실장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하였다. 공소외 43 행정관으로부터 이러한 청와대의 전액 삭감 방침을 전달받은 문체부의 공소외 40 과장 등은 2015. 1.경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전액 삭감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파국이나 논란 등의 문제점을 검토하여 피고인 1 장관에게 보고한 후 교문수석실에 지원금 전액 삭감 방침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2015. 3.경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전년 대비 50% 내외로 감축하기로 조정하였고, 공소외 139가 이를 공소외 29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후 공소외 43 행정관이 서면으로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였다. 이후 영진위는 위와 같은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라 2015. 4. 30.경 ‘2015년도 ★★★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공모’ 심사에서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8억 원으로 결정하여 발표하였다. 독립영화전용관 ◇◇◇◇◇◇는 2015. 1. 22.부터 2015. 1. 27.까지 ‘(명칭 30-1 생략)’를 개최하면서 영화 △△△△, ▷▷▷▷을 상영할 예정이었다. 공소외 139 교문수석은 영화 ▷▷▷▷에 대한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을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전달하면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공소외 140의 지시를 받은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은 ▷▷▷▷이 등급분류를 받지 않았지만 영진위 공소외 39 부장으로부터 영화제 상영을 위한 면제추천을 받아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임을 확인한 후 공소외 39에게 면제추천 취소를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공소외 39가 서류미비를 이유로 면제추천을 취소하였으나, 영화제 측에서 다시 서류를 갖추어 면제추천 신청을 함에 따라 공소외 39는 다시 면제추천을 하였고, 결국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한편 영진위는 ☆☆☆☆☆☆☆의 상영관 중 1개를 빌려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위탁하고 위탁사업 지원금을 지급하여 왔는데, 그 무렵 ☆☆☆☆☆☆☆에서는 영화 △△△△을 상영하였다. □□국제영화제 등에서 영화 △△△△이 상영된 이후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국정철학에 배치되는 영화를 상영한 극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였고, 이에 따라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등의 지시 및 승인으로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은 영진위에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중 ◇◇◇◇◇◇ 임대료 지원을 중단하고 ☆☆☆☆☆☆☆ 위탁지원을 중단하도록 지시하였고, 위와 같은 지시를 받은 영진위의 2015. 4. 29.경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의결 결과 ◇◇◇◇◇◇에 대한 영화관 임차료(전년도 5,000만 원) 지원과, ☆☆☆☆☆☆☆에 대한 위탁사업 지원(전년도 지원금 1억 원)이 모두 배제되었다.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의 일반적인 직무권한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문체부 장관은 준정부기관인 영진위에 대하여 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을 가지고 있고,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설립등기 인가(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6조 제2항), 영진위 위원장, 위원 임명(제10조 제3항), 영화기금의 운용성적에 대한 측정·평가와 시정요구(제25조의3), 영화기금의 운용계획과 결산보고 및 관리운용에 관한 승인(시행령 제9조의2) 등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문체부 공무원은 장관의 직무상 지휘·감독 아래 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 장관, 문체부 공무원이 영진위의 영화기금 사업에 관하여 특정 영화를 상영한 영화관, 영화제를 지원 사업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한 것은 외견상 그들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 영진위의 위원은 임기 중 직무상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13조), 영진위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며(같은 법률 제15조), 영진위는 영화기금의 관리·운용을 심의·의결한다(같은 법률 제14조 제1항 제5호). 그리고 영진위는 영화진흥사업의 대상을 선정하기 위하여 심사가 필요한 경우 심사위원회를 구성·운영하며, 심사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과 영상문화의 진흥을 도모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하여야 한다(영화진흥사업 심사관리규정 제3조). 따라서 피고인들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하여 영진위 사무국 직원들로 하여금 영화기금 지원사업 등에서 특정 영화관·영화제를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거나 지원금액을 감액하도록 개입하게 한 행위는 영진위 위원의 직무상 독립성 및 이러한 독립한 위원들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된 영진위 의결의 독립성, 위원회의 위탁을 받아 위원회의 심사에 관한 직무를 담당하는 심사위원회의 심사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법하다. 한편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5조의3 제1항 및 제3항,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에 따라 문체부 장관은 영화기금 지원의 성과를 평가하고 영진위에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영진위에 대하여 영화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영진위 위원의 독립성과 심사규정 등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적인 지원사업 심사 등에 개입하여 특정 영화관이나 영화제를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는 행위가 영화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 권한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앞서 본 지원금 배제의 경위와 그에 따른 구체적인 배제사유를 보면 이는 단지 정부에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특정 영화관·영화제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한 것이어서 이에 비추어 보아도 영화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을 위한 감독 권한 행사로 볼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 1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하여 영진위 임직원들에게 ◇◇◇◇◇◇ 등 독립영화전용관,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 배제, 지원금 삭감을 지시한 행위는 일반적인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로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영진위 소속 임직원은 위원장 및 위원들에 의한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심사·의결 과정에 개입할 수 없음에도, 피고인들로부터 차례로 하달된 지시에 따라 문체부 공무원으로부터 ◇◇◇◇◇◇ 등 독립영화전용관, □□국제영화제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지원 금액을 삭감하다는 지시를 받고 이를 영진위 위원장 또는 전체위원회 위원들에게 전달하여 지원을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심사·의결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였다. 이는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에 해당한다. 한편 □□국제영화제는 1996년부터 시작되어 국 내·외적으로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영화제에 대한 영화기금 지원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고, 2018년 이후에는 □□국제영화제가 국제행사 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예정이었던 점 등의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앞서 본 지원금 삭감의 경위에 비추어 볼 때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이 위 영화제의 △△△△ 상영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임이 명백한 점, 청와대에서 당초 전액 삭감을 지시하였다가 전액 삭감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문체부와 영진위의 요청으로 반액 삭감으로 조정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는 영진위의 자율적 결정이 아닌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가) 피고인 1이 2014. 10. 21. 공소외 137에게 대면보고하고 승인 받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 보고는, 영화 ♤♤♤ ♤♤♤♤, △△△△ 상영 등을 문제 사례로 들면서 그 개선방향에 대하여 심사강화로 정부 지원방침을 심사에 적용하고, 문제영화 상영에 대한 사후통제로 차년도 지원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이어서 이 부분 영화 관련 지원배제 범행의 대상 및 방식과 일치한다. 나) 피고인 1이 청와대의 □□국제영화제 지원금 전액삭감 방침을 보고받았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 법원이 조사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 1이 문체부 공소외 35로부터 2015. 3.경 국제영화제 지원개선으로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전년대비 50% 내외로 감액하고, ‘국정철학에 배치되는 영화 상영 극장에 대한 정부지원 배제’로 ◇◇◇◇◇◇와 ☆☆☆☆☆☆☆에 대한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을 배제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 다) 이상의 사정들을 종합하면, □□국제영화제와 ◇◇◇◇◇◇ 등에 대한 지원배제는 당시 문체부 장관인 피고인 1의 지시·승인 아래 청와대의 지시가 문체부를 통하여 영진위에 하달됨으로써 실행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 1의 문체부장관으로서의 지위, 역할이나 전체 실행 경과에 대한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해 볼 때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한 것임이 충분히 인정된다. 2014. 2. 18.경 주간지 ◁◁◁◁은 2013년 문체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명칭 46 생략)’ 등 7종의 도서가 반미·종북 감정을 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박근혜 정부의 정치 철학과 배치된다는 보도를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수도서 선정의 문제점을 개선하라는 실수비에서의 지적이 교문수석실로부터 문체부에 전달되었다. 위 ◁◁◁◁의 보도와 그 무렵 예술위의 2014년 상반기 문예기금 지원대상자 선정결과를 문제 삼은 국정원의 문건 등에 관하여 공소외 1 장관이 2014. 2. 21.경 공소외 137에게 대면보고 한 ‘이념편향 논란의 도서 또는 사업 선정관련 대책방안’ 중 도서 부분과 관련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후 문체부 공소외 36 사무관 등은 2014. 2. 28.경 공소외 1 장관의 보고에 따른 후속조치로 ‘우수도서 선정보급 사업 개선방향 보고’(수사기록 7,005쪽 이하)를 작성하여 교문수석실에 송부하였다. 위 보고의 요지는 [1] 우수도서 사업을 출판진흥원으로 통합, [2] 선정시스템 개편·강화로 심사위원회와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위원회는 도서 내용을 중심으로, 선정위원회는 이념편향 등 결격사유를 중심으로 각 심사, [3] 심사기준 및 선정절차 강화로 이념편향 도서가 우수도서 선정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유도, 이념편향 등 결격사유를 중심으로 심사하여 우수도서 최종(안)을 선정하는 선정위원회 설치, 기타 비공식적으로 문체부 등 관계기관이 최종안을 재확인하는 절차 마련 등이다. 그 후 2014. 4.경 우수도서의 명칭이 ‘세종도서’로 변경되었고, 심사절차도 위 보고내용과 같이 선정위원회에서 최종 3차 심사를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피고인 1 장관이 2014. 10.경 공소외 42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보조금 지원과 관련된 종합계획으로 보고받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 중 세종도서와 관련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 1 장관은 이를 가로 형태로 요약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여 위 보고서와 함께 2014. 10. 21.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대면보고 하였는데 그 중 세종도서와 관련된 내용의 요지는, ‘2013년 우수도서 중 일부가 반미·종북감정을 유발한다는 논란(◁◁◁◁의 보도)(사례)’, ‘검토대상 도서가 많고 검증장치(심사기준, 심사위원) 미흡(문제점)’, ‘심사절차, 심사기준, 심사위원 자격기준 등을 강화하여 문제도서를 심사과정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필요(개선방안)’ 등이다. 공소외 11 팀장은 공소외 36 사무관의 요청에 따라 2014년 세종도서 각 단계별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목록을 공소외 36에게 송부하였고, 공소외 36은 이를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송부하였다. 공소외 60은 2차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목록 중에서 인터넷으로 시국선언 참여자 등을 검색하는 방법으로 배제대상 도서를 선별하여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한 후 전화 등으로 공소외 36에게 전달하였고, 공소외 36은 이를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본부장과 공소외 11 팀장에게 전달하였다. 배제대상 도서로 통보된 9개 작품 중 ‘(명칭 47 생략)’은 만해 문학상 수상작, ‘(명칭 19 생략)’은 (명칭 20 생략) 문학상 수상작, ‘(명칭 48 생략)’은 (성명 2 생략) 문학상 수상작으로 이미 우수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었는데, 공소외 10과 공소외 11은 배제대상 도서의 내용을 검토하고는 공소외 36에게 배제지시를 재고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종도서 문학부문 3차 최종 심사(선정위원회)는 2014. 11. 14. 개최되었고, 심사위원 13명과 함께 공소외 10 본부장, 공소외 11 팀장이 간사로 회의에 참석하였다. 위 회의에서 공소외 10은 심사위원들에게 문체부로부터 배제대상 도서를 하달 받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정서를 순화시키거나 문학의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그런 취지의 책을 선정하여 달라’, ‘(명칭 19 생략)(별지 범죄일람표 4 순번 8)’에 관해서는 ‘2014년 (명칭 20 생략) 문학상 수상작이지만 가능하면 다른 책으로 선정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결국 위 3차 심사 결과 배제대상 도서로 통보된 9종의 도서가 전부 세종도서 선정에서 제외되었고, 2014. 11. 28. 그 선정결과가 공고되었다. 2015년에도 출판진흥원 공소외 11 팀장이 2차 심사를 통과한 신청자목록을 문체부에 송부하였고, 문체부는 이를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전달하였다. 공소외 60은 2014년과 같은 방법으로 배제대상 도서를 선별하여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한 후 문체부에 전달하였고, 문체부는 2015. 10. 중순경 이를 출판진흥원에 전달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소외 36 사무관은 공소외 11에게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 두 출판사의 책은 한 권도 선정이 되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공소외 11은 두 출판사를 하나도 선정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10종만이라도 선정이 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결국 문체부·교문수석실을 통하여 각 5종씩 선정하는 것으로 승인을 받았다. 2015년 세종도서 문학부문 3차 최종 심사(선정위원회)는 2015. 10. 29. 개최되어, 심사위원 13명과 함께 공소외 10·공소외 11이 간사로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공소외 10은 회의를 진행하면서 문체부로부터 배제대상 도서를 하달 받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심사위원들에게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의 경우 예전에는 20종정도 선정되었지만 올해는 다른 중소출판사를 선정하였으면 좋겠다’, ‘기성작가 대신에 신인작가 위주로 선발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부탁을 하였다. 그 결과 배제대상 도서로 하달된 작품 중 공소외 158, 공소외 159의 작품 2종은 선정되고, 나머지 8종은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은 각 5종씩 선정되었다. 그 후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공소외 117 과장이 공소외 10에게 공소외 158, 공소외 159의 작품이 선정되면 안 된다면서 심사위원회를 다시 개최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물었고 그 과정에서 공고가 다소 지연되기도 하였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3차 심사(선정위원회)는 2015. 11. 6. 개최되었는데, 간사로 참석한 공소외 10은 심사위원들에게 ‘정치편향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교양도서는 선정을 제외하였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그 결과 위 심사에서 문체부에서 배제대상 도서로 하달된 5종이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출판진흥원은 문체부와의 협의를 통해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의 심사위원회 운영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한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수사기록 10,161쪽, 10,174쪽)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 의하면, 세종도서 심사는 1차로 소분과별 심사(300% 선정), 2차로 심사위원회 심사(200% 선정), 3차로 선정위원회 심사(최종 결정) 등 3단계의 심사로 진행하되, 각 단계별 심사는 운영지침 제5장의 심사기준을 따르고(제11조), 심사위원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에 임하여야 한다(제6조 제1항). 운영지침 제5장은 심사기준을 따로 규정하고 있는데, 각 분야별 선정기준(제15조), 선정제한 사유(제16조), 선정제외 사유(제17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정기준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다만, 제17조 제8호의 선정제외 사유는 2014. 7. 23. 개정 당시 삽입되었다가, 2015. 5. 6. 개정으로 삭제되었다.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의 일반적인 직무권한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문체부 장관은 준정부기관인 출판진흥원에 대하여 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1조 제1항 및 제3항 제1호)을 가지고 있고,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설립등기 인가(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16조 제3항), 원장 임면(제16조의3 제2항), 업무, 회계 및 재산에 관한 사항 보고 또는 검사(제21조의2), 사업계획, 예산 승인, 사업실적, 결산보고서 제출(시행령 제14조의3)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종도서 사업의 위탁자로서 사업의 일반적인 운영 방침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선정 절차와 선정기준 등에 관하여도 지휘·감독하고 필요한 처분을 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문체부 공무원은 장관의 직무상 지휘·감독 아래 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비서실장, 교문수석, 문체비서관, 문체부 장관, 문체부 공무원이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사업에 관하여 특정 도서를 선정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한 것은 외견상 그들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은 출판진흥원의 고유사업이 아니라 문체부의 위탁사업으로, 출판진흥원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4호의 ‘보조사업자’로서 법령, 보조금 교부 결정의 내용 또는 법령에 따른 문체부 장관의 처분에 따라 사업을 수행해야 하고(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22조 제1항), 문체부 장관은 보조사업의 수행상황을 보고받고, 점검할 수 있다(같은 법 제25조). 한편 문화예술진흥법이 예술위의 위원이 직무상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은 출판진흥원 원장 및 이사의 직무상 독립성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을 위탁한 문체부 장관은 세종도서 사업의 일반적인 운영 방침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선정절차와 선정기준 등에 관해서도 출판진흥원을 지휘·감독하고 필요한 처분을 할 권한은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①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을 출판진흥원에 위탁하여 수행하게 하고, 출판진흥원이 문체부와의 협의를 통해 마련된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라 세종도서를 선정하도록 한 것은 출판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출판진흥원이 일정한 심사절차와 기준에 따라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정절차를 진행하게 함으로써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의 목적(우수도서의 선정·보급을 통한 출판사의 양서출판 의욕 진작과 국민의 독서문화 향상)을 달성하고자 함에 있는 점, ② 세종도서의 정치편향성 등 문제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투명한 절차를 통하여 심사위원회 운영지침 등 선정절차와 선정기준을 개선할 수 있고, 실제로 앞서 본 공소외 1, 피고인 1 장관이 각 보고한 우수도서(세종도서) 개선방안에 따라 선정위원회를 통한 3단계 심사절차, 선정제외 사유 등이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 규정되기도 한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신청자목록을 문체부를 통해 청와대에 제출하게 하여 신청도서의 내용 및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서 정한 선정기준이나 선정제외 사유와는 관련이 없는 저자 개인의 시국선언 참여 등 정치적인 입장만을 이유로 특정 신청도서를 선정에서 배제하라는 지시를 하달하고, 심사위원회 운영지침과 달리 특정 출판사의 도서를 5종씩으로만 제한하라는 지시를 하달함으로써, 특정 신청도서를 선정위원회의 최종선정절차에서 배제하도록 한 것은 세종도서 선정·보급사업의 사업목적에 어긋나고, 출판진흥원과 문체부가 정한 심사절차에도 위반되며, 문체부 장관의 정당한 감독·처분권을 남용한 것으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로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본부장은 최종 3차 심사인 선정위원회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문체부를 통해 하달 받은 배제대상 도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배제대상 도서가 선정에서 제외되도록 할 목적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정서를 순화시키거나 문학의 치유 기능을 할 수 있는 취지의 책을 선정하여 달라’, ‘(명칭 19 생략)은 가능하면 다른 책으로 선정을 하면 좋겠다’,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의 경우 예전에는 20종정도 선정되었지만 올해는 다른 중소출판사를 선정하였으면 좋겠다’, ‘기성작가 대신에 신인작가 위주로 선발되었으면 좋겠다’, ‘정치편향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교양도서는 선정을 제외하였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부탁을 하였다. 공소외 10이 위와 같이 심사위원들에게 부탁한 내용이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서 정해진 선정기준 또는 선정제외 사유와 부합한다고 볼 수 없고, 해당 세종도서 사업의 계획과 시행에 있어서 그러한 내용의 사업계획 또는 선정기준이 미리 정해진 것도 아닌 점,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에 관한 언급은 당초 위 출판사들의 책들은 한 권도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가 5종씩 선정하는 것으로 양해를 받은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이고 실제 3차 심사 과정에서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이 각 5종씩만 선정된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0은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배제대상 도서를 심의과정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심사위원회 운영지침 등에서 정해진 심사절차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이므로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심사절차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행위를 한 이상 의무없는 일이 이룩되어 범행이 기수에 이른 것이고, 직권남용 행위와의 상당인과관계 또한 인정된다. 피고인 1 장관이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대면보고 한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과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의 내용은 세종도서의 심사기준을 강화하고, 선정위원회 선정절차를 추가하여 정치편향 도서가 선정되지 않도록 비공식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인데, 세종도서 지원배제는 이러한 계획에 따라 주관 부서인 문체부와 청와대의 지시가 출판진흥원에 하달됨으로써 실행에 이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피고인 1이 장관으로 부임하기 전에 ◁◁◁◁의 보도 등으로 청와대의 지시와 공소외 1 장관의 보고 등으로 지원배제에 관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고, 피고인 1이 실제 특정 인물, 도서를 세종도서 선정에서 제외하는 실행행위 자체를 분담하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이러한 피고인 1의 문체부장관으로서의 지위, 역할이나 전체 범행 경과에 대한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해 볼 때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한 것임이 인정된다.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 있어서의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증언의 의미가 그 자체로 불분명하거나 다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에는 언어의 통상적인 의미와 용법, 문제된 증언이 나오게 된 전후 문맥, 신문의 취지, 증언이 행하여진 경위 등을 종합하여 당해 증언의 의미를 명확히 한 다음 허위성을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12. 27. 선고 2001도5252 판결 참조). 가) 피고인 1이 2016. 12. 15. 청문회(제4차)에서 공소외 44 위원의 질의에 답하여 증언한 내용은 판시 범죄사실에 기재된 부분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나) 공소외 44 위원의 질의는 청와대에서 블랙리스트를 하달하여 문화예술계의 지원배제를 지시한 것을 알고 있는지, 이러한 지시가 문체부로 내려왔는지, 피고인 1이 위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묻는 취지이다. 이에 대한 피고인 1 증언의 의미는 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볼 때 자신은 위와 같은 지원배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에 대하여 지시를 받은 사실도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뿐 문서로 된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보지 못하였다는 의미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1은 문체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문예기금, 영화, 도서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원에 관한 종합 대책인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을 보고하였고, 이에 따라 문체부 공무원들로부터 문화예술계 보조금 지원배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진행상황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보고받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위와 같이 알지 못하고 지시를 받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은 기억에 반하는 허위의 증언임이 명백하다. 2) 위에서 본 바처럼 조사대상에 관하여 ‘의혹사건’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제15호에서 관련 사건이 조사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는 점, 증거에 의하여 확인되는 이른 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사건의 관련부서, 관련인물,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 등이 드러난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부분 증언에 관한 내용은 제15호에서 정한 관련 사건으로 국조특위의 조사대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부분 증언에 관한 내용이 국조특위의 조사대상이 아님을 전제로 위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판시 범죄사실 기재와 같이 대통령은 공소외 1 장관에게 공소외 9에 대한 인사조치를 직접 지시하였고, 그 후 공소외 139 교문수석을 통하여 피고인 1 장관에게 공소외 9를 사직시킬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피고인 1, 공소외 139, 공소외 42 등의 진술에 의하면 공소외 139가 처음에는 공소외 9를 1급으로 승진시켜 퇴직시키라고 했다가 얼마 후 그대로 빨리 퇴직시키라고 재촉한 사실, 피고인 1이 공소외 9를 국민체육진흥공단 사무총장으로 보임하는 방안을 보고하였으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139가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안 된다’며 거부하여 대신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으로 보임하게 된 사실이 인정되는데, 이를 통하여 대통령이 공소외 9를 사직시키라는 지시를 한 후 그 이행 경과를 계속 보고받고 승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소외 9에 대한 사직요구 범행은 대통령이 지시하고 그 지시를 교문수석, 문체부 장관이 문체부 공무원에게 하달한 후 그 이행 경과를 보고 및 승인하면서 실행한 것이므로, 대통령과 피고인 1 등 사이에 공범관계가 성립한다. 판시 범죄사실을 통하여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최서원의 딸 공소외 65가 준우승에 그친 것이 발단이 되어 최서원의 요구가 청와대를 통해 전달되어 공소외 9, 공소외 66이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점, 공소외 9, 공소외 66의 감사결과에 최서원이 불만을 품었던 점 등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까지 하면서 인사조치를 지시한 데에는 이러한 감사결과에 대한 최서원의 불만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충분히 추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공소외 9에 대한 사직요구 범행은 위 인사조치로부터 2년 이상 지난 후에 이루어졌고, 단순한 좌천 인사와 달리 정당한 사유 없이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사직시키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데, 최서원이 대통령에게 공소외 9의 면직을 요청하거나 이에 개입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다. 특별검사는 공소외 9가 근무하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던 ‘■■■ ■■ ■■■’이 무산된 것이 최서원의 이권과 직결된다는 주장도 하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만을 근거로 최서원이 대통령 등과 공소외 9에 대한 사직요구 범행을 공모하거나 그 실행에 가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이 사건에서 제출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도 공소외 9에 대하여 사직을 요구한 범행에 최서원이 공범관계에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 대통령은 대수비 등에서 거듭 문화예술계의 좌편향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청와대 내에 ‘좌파배제, 우파지원’이라는 기조가 형성되었다. 판시 범죄사실 2.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은 그러한 기조 및 지시에 따라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휘 아래 청와대를 중심으로 계획되고 실행된 것이다. 대통령은 실수비에서 이루어진 지원배제 관련 논의를 보고받았고, 정무수석실 및 교문수석실로부터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우수도서 심사방법·심사위원 개선방안,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방식 개선방안, □□국제영화제 예산삭감 방안, 영화 ‘(명칭 3 생략)’ 관련 수직계열화 개선방안, 모태펀드 개선방안, 독립영화관 지원사업 개선방안 등을 보고받고 승인하였으며, □□국제영화제 예산삭감, 건전영화 지원 확대, 좌편향 도서의 세종도서 선정 배제, 좌편향 문예지에 대한 지원 배제와 건전문예지 지원 확대 등에 관해 수석비서관 등에게 직접 지시를 하달하기도 하였고, 피고인 1 문체부 장관에게 직접 건전 콘텐츠 철저 관리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은 모두 대통령의 문화 관련 국정기조에 따른 지시에 의해 구체화 되었고, 그러한 과정은 대통령에게 모두 보고되었으며,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고 재차 독려함으로써 시스템화 되어 강력하게 실행되었으므로, 이는 피고인들과 대통령이 상호 공모하여 의사의 결합 하에 이루어진 행위로서 공범관계가 성립한다. (가) 대통령은 2013. 9. 30.경 대수비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와 (명칭 2 생략)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2013. 12. 19. 당 최고위원 송년만찬에서는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 나라가 비정상이다’라는 취지의 발언도 하였다. 그리고 2014. 11.경 공소외 150(명칭 2 생략) 회장에게 (명칭 2 생략) 사업이 좌파적 성향을 보인다는 지적을 하는 등 문화계 좌파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나) 피고인 2는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를 대통령부속실로 송부하여 서면보고하였다고 진술하였고, 공소외 2, 공소외 140, 공소외 56 등은 우수도서 심사방법·심사위원 개선방안,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개선방안, □□국제영화제 예산전액·반액 삭감방안, 영화 관련 수직계열화 개선방안, 모태펀드 개선방안, 독립영화관 지원사업 개선방안 등에 관한 문체부의 보고내용을 청와대 양식의 서면보고서 또는 대수비 보고자료 등으로 정리하여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공소외 140, 공소외 43, 공소외 40 등은 □□국제영화제 지원금 전액 삭감 방안을 대통령에게 서면보고한 후 공소외 139 교문수석을 통하여 대통령의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다고도 진술하였고, 공소외 139는 □□국제영화제 지원금 반액 삭감 방안을 대통령에게 서면보고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다) 대통령은 2015. 4.경 고등학교 은사인 공소외 116이 보낸 편지(수사기록 20,216쪽)를 공소외 139 교문수석에게 전달하면서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과 같은 문예지는 예산이 지원되거나 증액되었는데 보수문예지는 오히려 예산이 축소되었다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하였고, 2014. 12. 28.경 공소외 139 교문수석을 통하여 피고인 1 장관에게 ‘(명칭 33 생략)’과 같은 건전애국영화 발굴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였으며, 2015년 말경 문체부 산하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종북 성향 서적이 비치되었다는 정보보고와 관련하여 ‘그런 책이 단 한 권도 비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2015. 1. 9.경 피고인 1 장관에게 ‘보조금 집행이 잘 되어야 된다, 정치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도 하였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문화예술계가 좌편향 되어 있어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 ‘좌파배제, 우파지원’의 기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들이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배제 범행을 실행하기 전 또는 실행할 당시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청와대 또는 문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교문수석 또는 문체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들에 비추어 보면 앞서 본 사정만으로는 대통령이 판시 범죄사실 2.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지시 또는 지휘함으로써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그 밖에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들을 종합하여도 대통령과의 공범관계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①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하여 당선되었고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그러한 국정기조를 강조하고 그에 따른 정책 입안과 실행을 지시한 것을 두고 특정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지시하거나 이에 관한 기능적 행위지배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② 피고인들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실행하기 전 또는 실행할 당시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 또는 문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의 내용을 대통령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이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알 수 없고, 일부 보고는 요약된 서면보고 또는 그보다 더욱 간략한 대수비 보고자료 형식으로 보고된 것으로 보여 이 부분 범행과 관련된 내용이 구체적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대통령이 이를 승인 내지 지시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③ 대통령이 문예지 지원문제, 건전영화 지원문제, 보조금 집행문제, 종북 성향 서적의 도서관 비치문제 등에 관해 직접 언급하고 지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와 같은 지시내용 자체가 위법·부당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지시가 위법·부당한 방법으로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범행계획에 대한 지시라고 볼 수도 없다. 특별검사는 ① 최서원은 대통령의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하면서 ‘좌파배제’라는 국정기조를 대통령과 공유하였고, ② 최서원은 평소 이념적인 부분에서 진보성향의 인물이나 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기피하였고, 특히 (명칭 2 생략)그룹에서 제작한 영화나 드라마를 좌파적 성향으로 치부하며 힐난하였으며, ③ 최서원과 관련된 (명칭 10 생략)재단은 설립 시 ‘좌파문화예술계’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바 있고, ④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공모·수행한 공소외 139 교문수석, 피고인 1 장관 등은 공소외 67과의 인연을 통해 최서원의 추천으로 임명되었고, ⑤ 최서원은 공소외 68 문체부장관 정책보좌관으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원에서 배제된 ‘(명칭 11 생략)’과 ‘공소외 69’ 및 지원배제 업무와 관련하여 좌천된 공소외 70 문체부 국장 등이 언급된 자료를 받는 등 블랙리스트 집행에까지 관여하였으므로, 피고인들 및 대통령과 이 부분 범죄에 관한 공범관계가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더라도, 최서원이 판시 범죄사실 2.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피고인 등과 공모하거나 그 실행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우리 문화예술진흥법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문예기금과 영화기금의 관리와 운용을 예술위와 영진위에게 맡기면서 그 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예술창작 활동에 대한 지원을 정치권력 또는 문화관료의 간섭에서 벗어나 전문가들의 자율적 결정에 맡긴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는 그런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문체부는 세종도서 사업을 출판진흥원에 위탁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에 따라 지원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은 이런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에서 배제할 개인·단체를 청와대와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하달함으로써 예술위 등의 존재이유를 유명무실하게 하였고 그 공정성에 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 과정에서 배제의 잣대로 사용된 ‘좌파’, ‘야당지지’, ‘세월호 시국선언’ 등은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등 자율적 심사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기준과도 무관한 것으로 그 합리성 또한 인정될 수 없다. 예술가들의 예술창작 활동에 국가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창작자들에게는 실질적인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수요자들에게는 다양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은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금 지급을 차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였다. 아울러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른 지원배제는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어서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피고인들은 문체부의 수장인 장관, 통치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비서실의 비서관으로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막대한 권력을 남용하여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계획의 수립과 실행 지시를 담당하였다.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함에도 이를 부정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문체부를 통해 예술위 등에 하달되면서 지원배제 행위가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실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예술위 등의 임직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문체부 실무 공무원들이 고통을 겪었고, 긍지였던 그들의 직업이 수치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법치주의와 국가의 예술지원의 공정성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 정도는 쉽사리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다만 피고인들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정권의 정무직 공무원들로,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기간에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이거나, 청와대의 기조와 방침에 순응하여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정 개인 등의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국가권력을 남용한 다른 국정농단 범행과는 그 성격이 분명히 다른 것이어서 이를 양형에 참작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의 위증에 대하여 형사소송·민사소송 등에서의 위증보다 무거운 법정형을 정한 것은 국회에서의 위증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회의 의정활동 전반,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다수의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헌법재판소 2015. 9. 24. 선고 2012헌바410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피고인들은 문체부의 전·현직 장·차관으로 이러한 위증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진실을 은폐하는데 급급하여 위증을 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 피고인은 문체부 업무를 총괄하는 장관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문체부 공무원인 공소외 9를 사직시키라는 대통령의 위법한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대통령의 지시로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자의에 반하여 사직시키는 것은 비단 해당 공무원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직업공무원 제도의 근간을 위협하고 공무원을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것이어서 그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크다. 또한 피고인은 소관 부처의 장관으로서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문화예술계 지원배제에 관한 계획을 보고하였으며, 그 실행 과정에서 소속 공무원들의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함으로써 지원배제 지시가 예술위 등에 하달되도록 하였다. 피고인은 문체부의 업무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자이므로 청와대의 기조와 지시에 그대로 순응하여 문화예술계 지원배제가 실행되도록 한 것에 대한 비난가능성도 크다. 나아가 전직 문체부 장관으로서 국회에 출석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허위의 진술을 하기도 하였다. 다만 공소외 9를 사직시킨 경위에 대해 보면 피고인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면서도 공소외 9의 이익을 배려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또한 피고인이 장관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청와대에서 이에 관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고 피고인은 장관으로서 지나치게 부당한 배제 지시는 번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한 사정 또한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된다. 피고인은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주도적으로 운영하였고, 그 결과를 정리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며,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지원배제 대상자 명단을 직접 건네주기도 하였다. 또한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중 배제대상자 명단을 선별하고, 이후 문예기금 지원사업 등과 관련한 배제대상자 선별 행위를 피고인 3에게 인계하여 수행하도록 하였다. 비록 피고인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에서 직접 실행에 관여한 부분이 일부에 그치기는 하지만 범행 계획의 수립과 실행의 시작 단계에서 피고인이 담당한 역할에 비추어 볼 때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피고인이 비서관으로서 전체 범행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자신이 관여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대체로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은 유리한 사정이다. 피고인은 소통비서관으로 부임한 후 문예기금 등 지원신청자 명단을 받아 배제대상자를 선별하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문체부 제1차관으로 부임한 후에도 문체부 공무원들로 하여금 이전의 방식대로 지원배제를 수행하도록 승인하였다. 아울러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허위의 진술을 하였다. 다만 피고인은 전임자인 피고인 2로부터 지원배제 업무를 인계받아 수행한 것이고, 비서관으로서 전체적인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자신이 관여한 행위에 대하여 모두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다. 판시 제1.항 기재와 같이 공소외 139는 공소외 9의 사표를 받으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피고인 1 장관에게 전달하고, 피고인 1은 공소외 32 등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 ■■■’의 무산에 대한 책임을 핑계 삼아 공소외 9에게 사직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공소외 9의 하급자인 전시과장과 학예연구관에 대한 징계 또는 인사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도는 등, 공소외 9가 사직 요구를 거절할 경우 본인의 신분은 물론 동료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고, 이에 공소외 9는 자발적으로 사직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이를 거절할 경우 본인의 신변은 물론 동료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두려워 한 나머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여 2016. 5. 31.경 면직 처리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1은 공소외 139 및 최서원, 대통령 등과 순차 공모하여, 국가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여서는 아니 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공소외 9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강요죄라 함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서의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02. 11. 22. 선고 2002도3501 판결 참조). 강요죄의 수단인 협박은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그 방법은 통상 언어에 의하는 것이나 경우에 따라서 한마디 말도 없이 거동에 의하여서도 할 수 있는데, 그 행위가 있었는지는 행위의 외형뿐 아니라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 주위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며, 강요죄에서 협박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정도의 해악의 고지인지는 그 행위 당사자 쌍방의 직무, 사회적 지위, 강요된 권리, 의무에 관련된 상호관계 등 관련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도7064 판결 등 참조). 증거에 의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던 ‘■■■ ■■ ■■■’의 개최가 2016. 2. 17.경 무산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공소외 37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16. 3. 14. 사임한 사실은 인정된다. 공소외 9는 자신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한 공소외 32가 그 이유에 대해 ‘■■■ ■■ ■■■’ 무산 때문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고, 그 후 ‘■■■ ■■ ■■■’을 담당했던 부하직원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과 학예연구관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아 자신이 더 버틸 경우 직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 같아 마지못해 사직을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수사기록 10,595쪽). 그러나 부하직원들에 대한 인사조치 소문을 들었다는 공소외 9의 진술 외에 대통령, 피고인 1, 공소외 139나 그 지시를 받은 사람이 ‘■■■ ■■ ■■■’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에 대하여 인사조치를 하거나 그러한 인사조치 가능성을 언급했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으며, 공소외 37 관장이 사임한 점, 공소외 32가 장관 윗선의 지시라며 사실상 청와대의 지시임을 암시하면서 사표제출을 요구한 점, 더 나아가 공소외 9가 2013년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지목되어 이미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던 점, 공소외 9가 사표제출을 요구받기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사직할 의사가 없었던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공소외 32가 공소외 9에게 전달한 구체적인 지시의 내용, 공소외 9의 직위와 공직 경력, 공소외 9가 사표를 제출한 구체적인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1 등이 공소외 9에게 객관적으로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1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공소외 137 비서실장 등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을 적용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수용하지 않은 문체부 공소외 6 기획조정실장, 공소외 7 종무실장, 공소외 8 문화콘텐츠산업실장 등 3명에 대하여 충성심 부족, 성분불량 등을 빌미로 사직을 강요하고자 마음먹었다. 마침 최서원 등의 추천으로 2014. 8. 21.경 피고인 1이 후임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직후인 2014. 9.경 대통령과 공소외 137 비서실장 등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75 인사수석비서관은 피고인 1 장관에게 연락하여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 1급 실장 3명에 대한 사표를 받으라’고 요구하였다. 피고인 1 장관의 지시를 받은 공소외 33 차관은 2014. 9. 18.경 세종정부청사 내 문체부 제1차관실로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 실장 3명을 불러 ‘상부 지시다,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거절할 경우 다른 사유 등을 빌미로 징계에 회부하는 등의 신변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공소외 7 종무실장과 공소외 8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해당 직위로 인사명령을 받은 지 불과 수개월밖에 경과하지 않아 급작스레 사직서를 제출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으며, 당시는 국정감사와 예산심의 등 국회일정을 목전에 둔 시점이어서 실장 3명이 사직하는 경우 업무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컸고, 문체부 관례에 따르더라도 업무의 연속성 유지를 위하여 장관이나 차관 교체 직후에는 실장급 공무원을 전보 조치한 사례가 매우 드문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사직을 요구받은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 실장 3명은, 사직서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 다른 사유 등을 빌미로 징계에 회부하는 등의 신변상 불이익을 우려한 끝에 각각의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2014. 10.경 모두 사직 처리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1은 공소외 137, 대통령 등과 순차 공모하여, 국가공무원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여서는 아니 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및 비서실장, 문체부 장관 등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위와 같이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로 하여금 각각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가) 2014. 8. 21.경 피고인 1이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2014. 9.경 공소외 75 인사수석비서관은 피고인 1에게 연락하여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 1급 실장 3명에 대한 사표를 받으라’고 요구하였고, 피고인 1은 이를 공소외 33 차관에게 지시하였다. 나) 공소외 33은 피고인 1에게 1급 3명을 사직시키는 것은 조직의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건의하였고 피고인 1이 이를 공소외 137에게 보고하였으나, 공소외 137은 “그 사람도 문체부 소속 공무원이라서 자기 식구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공소외 137은 다시 공소외 33에게 전화하여 “사사롭게 일을 처리하지 말고 장관의 지시에 잘 따르라.”고 하였다. 다) 공소외 33은 2014. 9. 18.경 세종정부청사 내 문체부 제1차관실로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과 공소외 76 해외문화홍보원장, 공소외 77 국립중앙도서관장, 공소외 78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 등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을 불러 ‘상부의 지시이니 조직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하면서 일괄 사표 제출을 요구하였고, 공소외 78을 제외한 5명이 같은 날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 후 문체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2014. 10. 8.경 사직서를 제출한 5명 중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 3명이 명예퇴직 처리 되었다. 헌법 제7조 제2항이 보장하고 있는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의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 행사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신분은 무제한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위 및 공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헌법이 정한 신분보장의 원칙아래 법률로 그 내용이 정해지는 것인데(헌법재판소 1990. 6. 25. 선고 89헌마220 등 결정 참조), 국가공무원법 제68조는 '공무원은 형의 선고·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 다만 1급 공무원과 제23조에 따라 배정된 직무등급이 가장 높은 등급의 직위에 임용된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은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여 1급 공무원을 신분보장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는 1급 공무원이 임용권자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일반직 공무원과 정무직 공무원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따른 것으로서, 이러한 1급 공무원의 임면에 관해서는 임용권자인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법원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이 공소외 73 차관이 공소외 140으로부터 받아 온 지원배제 명단의 적용에 관하여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 점,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이 2014. 7.경 면직된 공소외 1 장관과 가깝거나 그와 뜻을 함께하는 실장들로 인식되고 있었던 점,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에게 특별한 직무상의 과오가 없었고, 공소외 7, 공소외 8은 해당 직위에 부임한 지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며, 국정감사 등 국회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실장 3명을 동시에 교체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문체부에서 장·차관 교체 직후 실장급 공무원을 전보 조치한 사례 또한 드물었던 점 등의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에 대한 사직요구가 지원배제 명단 적용에 소극적이었던 실장들을 제거하고, 문체부 공무원들을 지원배제 명단 적용 지시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그 밖에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에게 사직을 요구하여 면직한 것이 1급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 행사에 있어 재량권을 일탈하여 직무권한을 불법하게 행사한 것으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 직권남용죄가 기수에 이르려면 의무없는 일을 시키는 행위 또는 권리를 방해하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의무없는 행위가 이룩된 것 또는 권리방해의 결과가 발생한 것을 필요로 한다(대법원 1978. 10. 10. 선고 75도266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1991. 12. 27. 선고 90도2800 판결 등 참조). 앞서 본 바와 같이 국가공무원법 제68조는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하는 신분보장의 대상에서 1급 공무원을 제외하고 있으므로, 1급 공무원은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않을 법령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1급 공무원인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이 의사에 반하여 면직을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법령상의 권리행사가 방해되었거나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은 그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여 명예퇴직 처리 되었으나, 그와 같은 사직서 제출은 면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어서 의사에 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여 명예퇴직 한 것은 의사에 반하여 면직된 것과 사실상 동일하고, 따라서 사직서를 제출한 행위가 별개로 법령상 의무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3명에 대한 사직서 제출 지시가 장관이 아닌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증거들에 의하면 2014. 9. 초순경 국무총리실에서 문체부 실장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에 대한 복무점검을 실시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문체부 고위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일명 ‘성분조사’를 하여 공소외 1 장관과 뜻을 같이 한 자신들을 ‘성분불량자’로 분류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진술한 점 등의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1급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신분보장의 대상이 아니어서 징계처분을 당하지 않아도 임용권자에 의하여 의사에 반하여 면직될 수 있는 점과 그 밖에 공소외 33이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 등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청하면서 그들에게 말한 구체적인 내용,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의 직위와 공직 경력, 그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구체적인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1과 공소외 137 또는 그 지시를 받은 사람이 공소외 6, 공소외 7, 공소외 8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1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의하여 이 부분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판시 2. 바. 기재 기재와 같이 문예기금 사업 등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2 기재와 같이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가 예술위의 지원 대상 등에서 최종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소외 34는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등 임직원에게 문예기금을 지원받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고, 예술위 측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지시를 따르기 곤란함을 호소하자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차라리 사업을 접으면 어떠냐’는 말을 하는 등 예술위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예술위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1은 피고인 2, 피고인 3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8. 21.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2의 ‘직권남용’ 란에 ‘무죄’로 기재된 부분과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술위 임직원들로 하여금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별지 범죄일람표 2와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공소외 14 문화복지부장, 공소외 20 문화사업부장, 공소외 21 공연기획부장, 공소외 18 창작지원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문체부가 예술위의 사업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예술위 위원장 및 위원에 대한 위촉권한을 가지는 등 예술위의 인사·예산·사업 등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예술위의 직원들 피고인들로부터 차례로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배제대상자 명단을 배제하기 위하여 문예기금 등 심의과정에 부당 개입하여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의결과정에 개입한 것임은 인정된다. 그리고 증거에 의하면 공소외 34 사무관이 예술위 측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지시를 따르기 곤란함을 호소하자 예술위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에게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차라리 사업을 접으면 어떠냐’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 등도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공소외 34 사무관 등이 공소외 5 등에게 문예기금 등 사업에서 지원배제를 요구한 구체적인 경위와 내용, 공소외 5 등 예술위 직원들이 심사과정에서 책임심의위원 등에게 말한 내용과 경위, 위와 같이 지원배제에 이르게 된 경위, 일부 사업의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가 지원배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공소외 4·공소외 5 등이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 또는 방해될 정도로 겁을 먹었음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그 밖에 피고인 1이나,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또는 그 지시를 받은 공소외 34 등이 공소외 4·공소외 5 등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문체부는 2015. 7. 31.경 중동호흡기 증후군(MERS)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공연예술계의 활성화를 위해 추경예산을 집행하기로 하고 공연티켓 1+1 행사, 공연순회사업, 소외계층 순회사업, 대관료 지원 사업 등을 시행하였다. 공연티켓 1+1 사업은 문체부가 기획재정부로부터 300억 원의 추경예산을 지원받아 시행하는 문체부의 사업이고, 예술위는 보조사업자로서 사업을 수행하였다. 증거에 의하면, 공연티켓 1+1 1차 사업에 있어서는, 교문수석실 공소외 74 행정관이 문체부 공소외 38 사무관에게 기존에 하달된 지원배제 명단을 적용하라고 지시하였으나, 모든 공연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일반대중이 어떤 공연을 볼지 선택하여 티켓 1장을 구입하면 추가로 1장을 더 지원하는 사업의 성격상 지원배제를 하는 경우 그 실상이 공개될 수 있어 공소외 38이 예술위 공소외 13과 함께 심사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하였고, 결국 1건을 다른 사유를 들어 배제한 것 외에 나머지는 지원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연티켓 1+1 2차, 3차 사업(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189, 190)에 있어서 어떠한 경로를 통한 지원배제 지시가 있었는지, 이에 따라 예술위 직원이 어떤 의무없는 일을 하였는지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 예술위 직원들인 공소외 16(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24, 25, 27, 40 내지 45, 47, 59, 106 내지 114, 116 내지 134, 191 내지 195), 공소외 15(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100, 101), 공소외 24(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102, 135 내지 151), 공소외 23(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162 내지 172, 219 내지 222), 공소외 20(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105, 244 내지 252)이 담당한 사업, 공소외 18이 담당한 사업 중 일부(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232 내지 237), 공소외 19가 담당한 사업 중 일부(별지 범죄일람표 2 중 순번 238), 공소외 5가 담당한 사업 중 일부(별지 범죄일람표 2 순번 86, 87, 103, 104, 156 내지 158)는 담당 예술위 직원들이 심사에 부당 개입하는 등 어떤 의무없는 일을 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거나, 공소외 18, 공소외 19, 공소외 5의 진술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1에 대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거나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영진위로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지원금을 받고 있는 대구 지역의 영세 예술영화전용관 ‘▽▽▽▽▽’은 2014. 3.경 ‘(명칭 15-1 생략) 특별전’을 주최하면서 ♤♤♤ 폭침의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영화 ‘♤♤♤ ♤♤♤♤’를 상영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 행사가 영진위의 후원으로 진행된다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있었다.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 대한 지원심의가 진행 중이던 2014. 4. 24.경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공소외 35 사무관으로부터 ‘▽▽▽▽▽에 전년과 같이 정액지원금 65,700,000원을 지원해도 되겠느냐’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문체비서관실 공소외 43 행정관은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하였고, 공소외 140은 즉시 문체부 공소외 73 제1차관에게 ▽▽▽▽▽이 영화 ‘♤♤♤ ♤♤♤♤’를 상영한 것을 이유로 ‘▽▽▽▽▽에 대한 지원을 배제해 달라‘고 연락하였으며, 순차 지시를 받은 공소외 35는 영진위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에게 연락하여 지원심의를 중단하도록 요구하였다. 문체부의 요구에 따라 영진위는 즉시 지원심의를 보류하였으나, 유독 ▽▽▽▽▽만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경우 영화계 등의 심한 반발이 우려됨에 따라, ▽▽▽▽▽을 배제하는데 필요한 심사기준을 급조하였고, 이를 토대로 2014. 8. 25.경 ▽▽▽▽▽을 포함하여 총 5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하여 지원을 배제하는 취지의 심사결과를 확정하였다. 영진위는 2014. 11. 6.경 ‘(명칭 1 생략)’ 관계자로부터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에서 영화 △△△△을 상영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보고받은 문체부 공소외 40 과장과 공소외 35 사무관 등으로부터 ‘상영을 허락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상영요청을 거부하였다.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등은 피고인 1 등을 통해 영진위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영화·영화관·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러한 지시를 받은 영진위는 심사과정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3 순번 3, 4, 5, 6, 7, 8 기재와 같이 특정 영화·영화관·영화제 등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1은 피고인 2, 피고인 3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8. 21.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3 순번 1, 2, 6, 7, 8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진위 소속 임직원인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 등으로 하여금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지원심사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별지 범죄일람표 3 기재와 같은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영진위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지원심의를 보류한 것은 피고인 1이 문체부 장관에 부임하기 전인 2014. 4. 24.이다. 그리고 영진위가 새로운 심사기준을 마련하여 이를 토대로 2014. 8. 25. ▽▽▽▽▽을 포함한 5개의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최종 결정 직전인 2014. 8. 20.경 문체부장관으로 취임한 피고인 1이 그 계획을 지시·승인 하거나 그 실행에 가담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 △△△△이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일반상영관 개봉을 앞두게 되자,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지시와 실수비에서의 논의 등을 통하여 청와대와 문체부에서 △△△△의 상영 및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고, 교문수석실의 지시로 문체부의 공소외 41, 공소외 35 사무관 등이 수시로 △△△△ 상영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보고한 사실 등은 앞서 본 바와 같다. 한편 증거에 의하면 (명칭 1 생략)이 2014. 11. 6. 영진위에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에서 영화 △△△△을 상영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사실, 이에 대하여 영진위가 ○○○○○에서의 △△△△ 상영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회신한 사실, 당시 영진위는 ○○○○○의 상영영화 프로그래밍을 (명칭 1 생략)에 위탁하고 있었던 사실, 영진위의 공소외 39 부장이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에게 (명칭 1 생략)의 요청을 보고하자 공소외 35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 그러나 ○○○○○는 영진위가 소유·관리하는 극장으로 영화 프로그램 및 상영에 관한 권한은 최종적으로 영진위가 가지고 있으므로, 프로그래밍을 위탁받은 (명칭 1 생략)이 △△△△ 상영을 요청하더라도 영진위가 이를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칭 1 생략)의 요청을 받기 전에 ○○○○○에서 △△△△을 상영할 계획을 가지고 것도 아니다. 아울러 문체부의 공소외 40 과장, 공소외 35 사무관 등이 ○○○○○에서의 △△△△ 상영 문제를 피고인 1에게 보고하거나 이에 관한 지시를 받은 사실, 공소외 39가 문체부의 상영거부 지시를 받고 이를 위원장에게 전달하여 위원장과 위원들의 결정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 이에 비추어 보면, 그 무렵 △△△△의 상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조였던 것으로 보이고, 공소외 35 사무관이 ‘무조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였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영진위가 청와대와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의해 영화 프로그램 선정에 관한 독립성을 침해당하여 △△△△ 상영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영진위의 공소외 39 부장 등이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없으며, 달리 증거가 없다. 증거에 의하면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이 2015. 8.경 예술영화제작지원 사업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목록을 공소외 43 행정관에게 이메일로 보냈고, 공소외 43은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한 후 전화로 문체부에 공소외 84의 공모작품 ‘♡’, 연출자 공소외 85·제작사 공소외 86 주식회사의 공모작품 ‘●●●’, 연출자 공소외 87·제작사 ‘(명칭 16 생략)’의 공모작품 ‘▲▲ ▲▲▲’ 등 3개 작품을 지원에서 배제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사실, 공소외 35가 2015. 8.경 영진위 공소외 46 산업진흥본부장과 산업진흥본부 팀장에게 위 3개 작품을 지원 배제대상 작품으로 통보하여 준 사실, 위 3개 작품이 최종 선정에서 제외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공소외 46 등 영진위 담당자들이 위 3개 작품을 최종 선정에서 배제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없는 이상, 위 작품들이 최종 선정에서 배제된 사실만으로 공소외 46 등이 그 선정 배제를 위해 어떤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영진위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목록(수사기록 7,044쪽)을 문체부에 송부한 사실은 확인되나, 영진위는 영화기금 지원사업의 적정한 수행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감독 권한을 가진 문체부에 지원사업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는 등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목록을 송부한 것을 두고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결국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외 46 등 영진위 담당자들이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로 말미암아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문체부 장관이 영진위의 사업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영진위 위원장 및 위원에 대한 임명 권한을 가지는 등 예술위의 인사·예산·사업 등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영진위의 공소외 39 등이 피고인들로부터 차례로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 등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국제영화제, ◇◇◇◇◇◇ 등에 대한 지원 배제 지시를 영진위에 전달하여 의결과정에 부당 개입한 것임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에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더하여 보더라도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 등이 영진위 공소외 39 등에게 지원 배제를 요구한 구체적인 경위, 공소외 39 등이 지원 배제 대상 영화제, 상영관을 위원장 또는 위원회에 전달하여 배제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등의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담당자들이 공소외 39 등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1에 대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되고,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판시 제2. 아. 기재와 같이 2014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에서 총 9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고,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에서 총 13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소외 36은 출판진흥원 공소외 11 팀장과 공소외 10 본부장에게 배제대상으로 선별된 도서들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런 도서가 배제되지 않으면, 진흥원 직원 전체가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논란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완강하다’는 말을 하는 등 출판진흥원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출판진흥원이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1은 피고인 2, 피고인 3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 기재와 같이 세종도서 지원배제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출판산업진흥본부장, 공소외 11 콘텐츠진흥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이 사건에서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여도, 공소외 36 사무관이 공소외 10 등에게 특정 도서의 지원배제를 요구한 구체적인 경위와 내용, 공소외 10·공소외 11이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말한 내용과 경위, 선정위원회에서 배제대상 도서가 지원배제에 이르게 된 경위, 배제 지시된 도서 중 2종이 선정되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공소외 10·공소외 11이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 또는 방해될 정도로 겁을 먹었음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그 밖에 피고인 1이나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또는 그 지시를 받은 공소외 36 등이 공소외 10·공소외 11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1에 대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피고인 1은 2016. 12. 15.경 국회의사당 회의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제4차)’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한 후 증언하였다. 피고인 1은 공소외 25 위원으로부터 “공소외 26 본부장의 해임 관련해서 공소외 26 위원장의 말을 보면, 증인이 ‘대통령께서 전화를 해서 내려 보내라 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맞지요?”라는 질의에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1은 2016. 5. 23.경 문화창조융합본부장 공소외 26에게 전화를 걸어 “다름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문화창조융합본부 어떻게 할 거냐고 상의하시려고 전화를 하신 거 같아. 저는 조금 시간을 두고 볼까 했는데 반대하시더라고, 대통령께서 잘 일하고 있는 사람 데려놓고 괜히 이걸 시켜놓고 또 다시 돌려보내라 하니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야. 잘 말씀 드리겠다고 끊었는데 일단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었다.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진술인지 여부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서의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증언의 의미가 그 자체로 불분명하거나 다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에는 언어의 통상적인 의미와 용법, 문제된 증언이 나오게 된 전후 문맥, 신문의 취지, 증언이 행하여진 경위 등을 종합하여 당해 증언의 의미를 명확히 한 다음 허위성을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2. 10. 선고 2003도7487 판결 등 참조). 위증죄에서 증인의 증언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의 진술인지 여부를 가릴 때에는 그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 절차에서 한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하여야 하고, 그 결과 증인이 무엇인가 착오에 빠져 기억에 반한다는 인식 없이 증언하였음이 밝혀진 경우에는 위증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대법원 1988. 12. 6. 선고 88도935 판결 등 참조). 1) 피고인 1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2016. 5. 23. 17:00경 공소외 26에게 전화로 “다름이 아니라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문화창조융합본부 어떻게 할 거냐고 상의하시려고 전화를 하신 거 같아. 저는 조금 시간을 두고 볼까 했는데 반대하시더라고, 대통령께서 잘 일하고 있는 사람 데려놓고 괜히 이걸 시켜놓고 또 다시 돌려보내라 하니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야. 잘 말씀 드리겠다고 끊었는데 일단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다(수사기록 1,643쪽). 2)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을 사임한 경위에 관하여, 공소외 26이 2016. 12. 7.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제2차)’에 출석하여 증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공소외 44 위원 공소외 26 증인께 질의하겠습니다. 4월 8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후에 5월 31일 그만두셨습니다. 해임되신 겁니까?○ 증인 공소외 26 형식적으로는 사임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직명령이었으니까 해임입니다.○ 공소외 44 위원 해임 통보는 누가 했습니까?○ 증인 공소외 26 당시 피고인 1 문화부장관께서 하셨습니다.○ 공소외 44 위원 해임 사유는 뭡니까?○ 증인 공소외 26 해임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업무 폭증 때문에 되돌아가라라는 거였지만 ‘정말 그것입니까?’라고 했더니 ‘대통령께서 아침에 전화하셔서 내려 보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하셨습니다.○ 공소외 44 위원 대통령께서 그렇게 지시하셨다는 말이에요?○ 증인 공소외 26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소외 44 위원 증인이 추측하는 해임 사유는 뭡니까?○ 증인 공소외 26 당시에는 제가 직원들 사이에서, 여기 계신 콘텐츠진흥원장으로부터 ‘신임 단장이 점령군처럼 굴어서 일을 못 하겠다라는 말이 돈다’ 그리고 ‘자꾸 불필요하게 영수증 달라고 하는 것 때문에 일 못 하는 것 같은데 앞으로 해야 될 일이 많은데 이것은 문제가 좀 많다’라는 얘기를 장관께서 직접 저한테 하셨었고, 그다음에 절차 없이 진행되는 것들에 대해서 몇 번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것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계속 제가 드린 의견이 결국은 무시되었고……그런 것들에 대해서 제가 혹시 반감을 갖거나 일이 원하시는 대로 안 될까 해서 나가라고 하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3) 공소외 26의 사임 경위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이 2016. 12. 15. 청문회(제4차)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한 내용은 공소사실에 기재된 부분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 공소외 165 위원 공소외 26 씨한테 전화하셨지요, 문화창조융합 본부장 맡아 달라고? 피고인 1 증인이 요청한 것 아닙니까?○ 증인 피고인 1 전화 드린 것은 맞습니다만 제가 임명한 게 아니고요. 청와대에서 결정을 해 가지고…… 저는 사실 반대했습니다.○ 공소외 165 위원 그러면 한 달 반 후에 공소외 26 씨 자를 때도 위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겁니까?○ 증인 피고인 1 공소외 26 씨를 내보낼 때는 사실 여기 계신 공소외 139 수석하고 상의를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업무가 제대로 안 될 정도로 불화가 심하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해 가지고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공소외 165 위원 아니, 잘못된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에요.○ 증인 피고인 1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다른 질의, 답변]?○ 공소외 25 위원 공소외 26 본부장 해임 관련해서 공소외 26 위원장의 말을 보면, 증인이 ‘대통령께서 아침에 전화를 해서 내려 보내라 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맞지요?○ 증인 피고인 1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소외 25 위원 그렇습니까?○ 증인 피고인 1 예.○ 공소외 25 위원 그러면 대통령이 전화 안 했어요?○ 증인 피고인 1 예, 전화하신 적 없습니다.○ 공소외 25 위원 그러면 공소외 26 위원장은 어떻게 해임이 된 거예요?○ 증인 피고인 1 언론에서도 이미 제가 그것에 대해서는 밝혔습니다만 굉장히 불화가 심하였습니다, 직원들하고. 그런데 직원들 몇하고만, 일부하고만 불화가 심한 게 아니고 전 직원하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소외 26 위원장이 심지어는 수백만 원을 들여 갖고 자기 사무실을 도청 장치를 찾으라고 그런 지시까지 할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좀 안 좋았습니다.○ 공소외 25 위원 알겠습니다. 물어볼게요. 그러면 증인의 말에 따르면 공소외 26 위원장이 이 청문회장에서 위증이나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증인 피고인 1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소외 25 위원 그럴 이유가 뭐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증인 피고인 1 글쎄요, 그 이유는 제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공소외 26 증언의 전체적인 취지는 피고인 1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해임통보 전화를 받았다면서 이를 전달하였다는 점, 자신이 해임된 사유가 영수증을 요구하고 절차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 등이다. 공소외 25 위원은 이러한 공소외 26의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피고인에게 질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공소외 26 본부장 해임 관련해서 공소외 26 위원장의 말을 보면, 증인이 ‘대통령께서 아침에 전화를 해서 내려 보내라 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맞지요?”라는 질의는 피고인 1이 공소외 26에게 그러한 말을 한 것이 사실인지를 묻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피고인 1이 대통령으로부터 그러한 전화 지시를 받은 것이 사실인지를 묻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피고인 1은 위 질의·답변 전에 앞서 본 것처럼 공소외 165 위원의 질의에 대하여 공소외 26을 내보낼 때 공소외 139 수석과 상의했다고 답변한 바도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 1이 2016. 5. 23. 13:39:54 공소외 139와 통화를 한 내역(수사기록 10,073쪽)이 확인되기도 한다. 한편 문화창조융합본부장 해임 사유에 관하여 공소외 26과 피고인 1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피고인 1로서는 해임 사유와 관련된 공소외 26의 주장이 허위라는 취지로 공소외 26이 위증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증언하였을 여지도 있다. 따라서 피고인 1이 자신이 공소외 26에게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증언한 것임에 관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인 1이 기억에 반하는 허위의 진술을 하였거나 허위 진술을 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 한편 피고인 1이 공소외 26에게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지만 실제 대통령이 그와 같은 전화 지시를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으므로, 피고인 1이 위와 같은 말을 한 것만을 근거로 피고인 1이 실제로 대통령의 전화 지시를 받았음에도 기억에 반하는 허위의 증언을 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나, 이와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피고인 1에 대한 판시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위반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아니한다. 판시 제2. 다. 기재와 같이 후보자 19명이 2014년도 예술위 책임심의위원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이로써 피고인 2는 공소외 137,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1 기재와 같이 책임심의위원 선정배제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문체부가 예술위의 사업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예술위 위원장 및 위원에 대한 위촉권한을 가지는 등 예술위의 인사·예산·사업 등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예술위의 공소외 4·공소외 5가 피고인들로부터 차례로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배제대상자 명단을 위원장에게 전달하여 책임심의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의결과정에 개입한 것임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더하여 보더라도 공소외 34 사무관이 공소외 4·공소외 5에게 책임심의위원 배제를 요구한 구체적인 경위, 공소외 4·공소외 5가 배제대상자 명단을 위원장에게 전달하여 배제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공소외 4·공소외 5가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 또는 방해될 정도로 겁을 먹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 밖에 피고인 2와 공소외 137, 공소외 140 또는 그 지시를 받은 공소외 34 등이 공소외 4·공소외 5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판시 제2. 바. 기재와 같이 문예기금 등 사업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2 기재와 같이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가 예술위의 지원 대상 등에서 최종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문체부 공소외 34 등은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등 임직원에게 문예기금을 지원받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고, 예술위 측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지시를 따르기 곤란함을 호소하자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차라리 사업을 접으면 어떠냐’는 말을 하는 등 예술위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예술위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2는 피고인 1, 피고인 3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3.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5년 사업’ 중 ‘직권남용’ 란에 ‘무죄’로 기재된 부분, 별지 범죄일람표 2의 ‘2016년 사업’과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술위 임직원들로 하여금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부당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별지 범죄일람표 2와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공소외 14 문화복지부장, 공소외 20 문화사업부장, 공소외 21 공연기획부장, 공소외 18 창작지원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문체부가 예술위의 사업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고 예술위 위원장 및 위원에 대한 위촉권한을 가지는 등 예술위의 인사·예산·사업 등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예술위의 직원들 피고인들로부터 차례로 지시를 하달 받은 문체부 공소외 34 사무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와대로부터 문체부를 통하여 하달된 배제대상자 명단을 배제하기 위하여 문예기금 등 심의과정에 부당개입하여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의결과정에 개입한 것임은 인정된다. 그리고 증거에 의하면 공소외 34 사무관 등이 예술위 측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지시를 따르기 곤란함을 호소하자 예술위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에게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차라리 사업을 접으면 어떠냐’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 등도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공소외 34 사무관 등이 공소외 5 등에게 문예기금 등 사업에서 지원배제를 요구한 구체적인 경위와 내용, 공소외 5 등 예술위 직원들이 심사과정에서 책임심의위원 등에게 말한 내용과 경위, 위와 같이 지원배제에 이르게 된 경위, 일부 사업의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가 지원배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공소외 4·공소외 5 등이 의사결정의 자유가 제한 또는 방해될 정도로 겁을 먹었음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그 밖에 피고인 2와 피고인 1이나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또는 그 지시를 받은 공소외 34 등이 공소외 4·공소외 5 등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2016년 문예기금 공모사업에 있어서는 정기공모가 폐지되고 2015. 11. 16.경부터 국제교류 공모사업을 시작으로 각 사업별로 차례로 사업공모가 이루어졌다. 피고인 2가 2016년 문예기금 등 사업에서의 지원배제 범행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 2015년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 2016년 문예기금 등 지원사업에 대한 각 지원배제 범행은 그 대상 사업의 주요 내용과 사업수행자가 같고, 지원배제 범행으로 인한 피해법익도 동일하기는 하다. 그러나 2015년 사업과 2016년 사업은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업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고,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각 사업의 수행과정과 절차·심사기준 등의 차이점, 문체부와 청와대 내에서 지원배제의 계속 여부 등에 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각 범죄행위 사이에 시간적·장소적 연관성이 있다거나 범의의 단일성이 인정되어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① 문예기금은 정부 출연금 등의 재원으로 조성하고, 문예기금은 예술위가 운용·관리하되, 독립된 회계로 따로 관리하며(문화예술진흥법 제16조, 제17조 제1항), 문예기금은 관련 법령에 따라 단위로 기금계획 운용안이 매년 국회에 의하여 심의·확정된다. ② 예술위의 2015년 문예기금 공모사업은 대부분 정기공모 형태였고, 책임심의위원의 심의를 거쳐 예술위 위원회가 결정하였는데, 2016년 문예기금 공모사업은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이 2015. 8. 5. 개정되어 정기공모 형태가 아닌 연중 분산공모를 진행하였고, 심사 절차도 책임심의위원 제도에서 심의위원 풀제로 변경되는 등 사업의 실시 시기와 방식 그리고 지원심의의 절차 등이 모두 2015년과 다르게 변경되었다. ③ 공소외 137이 비서실장직에서 퇴임한 후 공소외 29가 새로 비서실장으로 취임하였는데, 공소외 139 교문수석은 ‘(명칭 12 생략)’, ‘(명칭 13 생략)’ 등의 지원과 관련하여 공소외 29 비서실장의 승인을 얻어 지원을 계속하였으며, 피고인 1 장관은 그 후 2015. 6.경 공소외 29 비서실장에게 정무수석실을 통해 하달되는 지원배제 지시를 중단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진술한 바도 있다. 따라서 피고인 2가 2016년 문예기금 등 사업에 관한 지원배제 행위에 대하여 공범으로 기능적 행위지배를 하였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에 관하여 어떠한 경로를 통한 지원배제 지시가 있었는지, 이에 따라 예술위 직원이 어떤 의무없는 일을 하였는지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그 중 일부는 2016년 문예기금 등 사업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도 피고인 2의 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2에 대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되고,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영진위로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지원금을 받고 있는 대구 지역의 영세 예술영화전용관 ‘▽▽▽▽▽’은 2014. 3.경 ‘(명칭 15-1 생략) 특별전’을 주최하면서 ♤♤♤ 폭침의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영화 ‘♤♤♤ ♤♤♤♤’를 상영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 행사가 영진위의 후원으로 진행된다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공소외 137이 주재하는 실수비에서 ‘♤♤♤ ♤♤♤♤와 같은 정부 비판적 영화를 상영한 영화관에 대하여는 불이익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그러한 지침에 따라 공소외 2 교문수석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문체비서관실 공소외 43 행정관은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공소외 35 사무관에게 ‘▽▽▽▽▽에 대한 영진위의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하였다. 영진위의 ▽▽▽▽▽ 등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차년도 지원심의가 진행 중이던 2014. 4. 24.경 공소외 35 사무관으로부터 ‘▽▽▽▽▽에 전년과 같이 정액지원금 65,700,000원을 지원해도 되겠느냐’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공소외 43 행정관은, 이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하였고,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즉시 문체부 공소외 73 1차관에게 ‘▽▽▽▽▽’에 대한 지원을 배제해 달라‘고 연락하였으며, 순차 지시를 받은 공소외 35 사무관은 영진위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에게 연락하여 지원심의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면서 '▽▽▽▽▽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문체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하는 등 영진위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영진위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문체부의 요구에 따라 영진위는 즉시 지원심의를 보류하였으나, 유독 ▽▽▽▽▽만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경우 영화계 등의 심한 반발이 우려됨에 따라, ▽▽▽▽▽을 배제하는데 필요한 심사기준을 급조하였고, 이를 토대로 2014. 8. 25.경 ▽▽▽▽▽을 포함하여 총 5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하여 지원을 배제하는 취지의 심사결과를 확정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제영화제인 □□국제영화제 사무국은 제19회 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2014. 9.경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에 대한 일부 비판적 시각이 담긴 영화 ‘△△△△’을 2014. 10. 6.경 상영하기로 결정·발표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2014. 9.경 실수비에서 △△△△이 상영되지 않도록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하고, 2014. 10. 2.경 실수비에서 ‘예술을 가장한 이념과 정치성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이에 공소외 138 정무수석은 그 무렵 피고인 2 정무비서관, 피고인 3 소통비서관 및 정무수석실 소속 공소외 62 행정관 등에게 ‘영화 △△△△의 상영과 관련하여 저명 보수 문화인의 기고, 시민단체의 활동 등을 통해 비판적 여론을 형성하도록 하라. 국회 교문위 여당 간사를 통해 국감장에서 상영의 문제점을 성토하도록 하라. □□국제영화제의 영화 △△△△ 상영관의 전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하여 일반 시민들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 후 이를 폄하하는 관람평을 게시토록 하라. 부산 의원들을 통해 부산시장에게 영화 상영에 대해 항의토록 하라. 해외공관이나 시민단체를 지원하여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준비하라. 대응방안에 대한 액션 플랜(action plan)을 마련하여 공소외 137 비서실장에게 보고토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피고인 1 장관은 공소외 131 부산시장에게 연락하여 ‘□□국제영화제에서 △△△△이 상영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였고, 공소외 33 문체부 제1차관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게 연락하여 같은 취지의 요구를 하였다. 이러한 상영 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 △△△△은 □□국제영화제에서 예정대로 상영된 후 2014. 10. 23.경 본격 개봉을 앞두게 되었고, 이에 공소외 137 비서실장은 그 무렵 실수비에서 ‘영화 △△△△ 상영과 관련하여 대관료 등 자금원을 추적하여 실체를 폭로하라’고 지시하였고, 이러한 지시를 순차 전달받은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문체비서관실 공소외 43 행정관을 통해 문체부 공소외 40 영상콘텐츠산업과장과 공소외 35 사무관 등에게 ‘△△△△’의 상영이 예정된 영화관의 현황과 그 영화관들에 영진위의 영화기금이 지원되었는지 여부 등 상황을 파악하여 교문수석실로 매일 보고하라, 영화 △△△△이 상영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문체부 공소외 35 사무관 등은 영진위 공소외 39 부장에게 연락하여 이러한 청와대의 지시를 전하였고, 공소외 39 부장은 2014. 10. 17.경 영진위가 지원중인 예술영화전용관 ‘(명칭 34 생략)’ 관계자에게 영화 △△△△ 상영을 자제해 달라는 뜻을 전하였으나 거절당하는 등 결국 영진위가 지원중인 수 곳의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영화 △△△△이 상영되었다. 영진위는 2014. 11. 6.경 ‘(명칭 1 생략)’ 관계자로부터 영진위가 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에서 영화 △△△△을 상영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보고받은 문체부 공소외 40 과장과 공소외 35 사무관 등으로부터 ‘상영을 허락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상영요청을 거부하였다. 한편, 공소외 138 정무수석은 2014. 11.경 영화 △△△△의 상영결과 등 진행상황을 보고서로 정리하여 공소외 137 비서실장 등에게 보고하였고, 교문수석실과 문체부는 소위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포함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부 예술·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중단,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 방침을 정하고, 이러한 지원중단 및 지원금 삭감방안을 공소외 137 비서실장의 공동 대응 지시에 따라 피고인 3 소통비서관을 통해 정무수석실과 협의 및 공유하였고, 공소외 137 비서실장 및 대통령에게도 순차 보고하였다. 공소외 139 교문수석,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 등은 위와 같은 □□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 방침에 따라 2014. 12.경 문체부에 □□국제영화제에 대한 차년도 영진위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하였고, 피고인 1 장관 등을 통해 그 뜻을 영진위에 전하였으나, 일거에 전액을 삭감하는 경우 영화계의 심한 반발이 우려된다는 영진위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2014년 14억 6,000만 원에 달하던 지원금을 2015년 8억 원으로 삭감토록 조정하여 2015. 4. 30.경 최종 결정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피고인 1 장관, 공소외 139 교문수석 등을 거쳐 공소외 137 비서실장 등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이를 비롯하여 공소외 139 교문수석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 등은, 위와 같은 정부비판적 영화 상영관에 대한 지원중단 방침에 따라 피고인 1 문체부 장관 등을 통해 영진위로 하여금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영화나 영화관 등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러한 지시를 받은 영진위는 심사과정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3 기재 등과 같이 특정 영화·영화관·영화제 등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심사관리규정’ 등에 따르면 영진위의 심사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과 영상문화의 진흥을 도모할 수 있도록 공모와 심사가 필요한 영화진흥사업에 대하여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를 하여야 하고, 영진위 소속 임직원들도 이러한 심사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청와대와 문체부 등의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요구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영진위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 지시를 직접 수용하거나 영진위 소속 위원들로 하여금 하달된 지시사항이 의결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전하여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요구를 관철시켰다. 이로써 피고인 2는 피고인 1, 피고인 3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3.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3 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진위 소속 임직원인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 등으로 하여금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지원심사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위와 같이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영진위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 등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지원심의를 보류한 후 새로운 심사기준을 마련하여 이를 토대로 ▽▽▽▽▽을 포함한 5개의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3이 이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전혀 없다. △△△△이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일반상영관 개봉을 앞두게 되자, 공소외 137의 지시와 실수비에서의 논의 등을 통하여 청와대와 문체부에서 △△△△의 상영 및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고, 교문수석실의 지시로 문체부의 공소외 41, 공소외 35 사무관 등이 수시로 △△△△ 상영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보고한 사실 등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소외 138 정무수석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에서 □□국제영화제에서의 △△△△ 상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교문수석실과 정보를 공유한 사정도 인정된다. 그러나 앞서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무렵 △△△△의 상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조였던 것으로 보이고, 공소외 35 사무관이 ‘무조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였던 점을 고려하더라도(피고인 2가 ○○○○○에서의 △△△△ 상영요청에 관하여 보고를 받거나 이를 검토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전혀 없다), 영진위가 청와대와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의해 영화 프로그램 선정에 관한 독립성을 침해당하여 △△△△ 상영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영진위의 공소외 39 부장 등이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없으며, 달리 증거가 없다. 2014. 9. □□국제영화제가 △△△△ 상영계획을 발표하자 공소외 137 비서실장이 실수비에서 △△△△의 □□국제영화제 상영을 막으라는 지시를 하였는데, 공소외 138 정무수석은 이러한 실수비에서의 지시 등에 따라 △△△△ 상영 문제를 비서관들과 논의하고 대책을 지시하였다. 그 대책으로는 국회를 통한 문제제기, 시민사회를 통한 부정적인 여론조성 등이 있었고, 상영이 강행되는 경우 좌석을 일괄 매입하는 방안 등도 논의하였다. 정무수석실은 아울러 교문수석실에 △△△△ 상영현황 정보공유 등 협조를 요청하였는데, 이에 따라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피고인 3 소통비서관에게 문체부의 공소외 41이 교문수석실에 송부한 △△△△ 상영 관련 일일보고를 피고인 3과 공유하였고, 피고인 3은 이를 공소외 138 정무수석에게도 전달하였다. 피고인 3은 2014. 11.경 △△△△ 상영결과 등 진행상황을 보고서로 정리하여 공소외 138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나) 이에 비추어 보면 당시 정무수석실은 공소외 138의 지시에 따라 △△△△ 상영 저지와 상영될 경우 그로 인한 파장의 최소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추진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교문수석실에 협조요청을 하여 상영현황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 그러나 ‘문제영화 상영에 대한 사후통제로 차년도 지원예산을 삭감한다’는 취지의 피고인 1 장관의 2014. 10. 비서실장에 대한 보고를 정무수석실에서 공유하거나 위 보고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공소외 43이 2014. 12.경 작성하여 보고한 □□국제영화제 지원금 전액삭감방안 보고서, 문체부 공소외 35가 2015. 3.경 작성하여 보고한 □□국제영화제 반액삭감 등 방안 보고서를 정무수석실에서 보고받거나 승인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전혀 없는 점, 공소외 59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2014. 9. 3. ‘△△△△, 공소외 166 피소사건(업무방해) - 정무, 교문’이라는 기재가 있어 △△△△ 상영 문제에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이 공동 대응한다는 지시 또는 논의가 실수비에서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이를 근거로 지원금 삭감 문제까지 공동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피고인 3이 2014. 11.경 △△△△ 상영결과와 진행상황을 공소외 138에게 보고했다고 하나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그 시기에 비추어 지원금 삭감에 관한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2가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에 관여하였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증거가 없다. 앞서 본 것과 같이 정무수석실에서 □□국제영화제의 △△△△ 상영과 관련한 대응을 하였고, 문체부의 △△△△ 상영현황 일일보고 등 자료를 교문수석실로부터 공유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인 2가 △△△△ 등 문제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 등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행위를 지시·승인하거나 이에 개입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다. 공소외 43은 문체부 공소외 40 과장이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 중 위 3개 작품이 문제가 된다고 하여 이를 공소외 140에게 보고한 후 위 3개 작품을 지원대상에서 빼야한다는 취지로 공소외 140의 지시를 전달하였다고 진술(수사기록 9,415~9,416쪽)하였고, 공소외 140은 이 법정에서 영화의 경우 정무수석실의 검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한편 피고인 3의 지시로 문예기금 지원신청자 명단에 대한 검토를 한 소통비서관실 공소외 12 행정관은 자신이 영화나 도서 쪽 단체를 선별하는데도 관여하였다는 취지로 진술(수사기록 7,326쪽)하였다. 이에 비추어 보면 공소외 12의 진술만으로 정무수석실에서 이 부분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목록에서 배제대상을 검토하는 등 위 3개 작품에 대한 지원배제 지시에 관여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 나아가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외 46 등 영진위 담당자들이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로 말미암아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2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된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2014. 7. 30.경 출판진흥원은 양서출판 의욕 진작 및 국민의 독서문화 향상을 목적으로 학술·교양·문학 3가지 분야 도서를 심사하여 ‘세종도서’로 선정하고, 선정된 도서에 대하여는 각각 1,000만원 상당을 출판진흥원이 구매하여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하는 내용의 ‘2014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 공고 계획’을 공고하였고, 2014. 10. 하순경까지 문학부문에서 총 1,510종의 도서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어 1차 심사를 거친 후, 그 중 총 763종의 도서가 2014. 11. 4.경 실시된 2차 심사를 통과하였다.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공소외 36 사무관 등은, 출판진흥원 출판산업진흥본부장 공소외 10, 콘텐츠진흥팀장 공소외 11에게 ‘세종도서 2차 심사를 통과한 도서목록을 건네달라’고 요청하여, 그 목록을 청와대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송부하였다. 공소외 60 행정관은 위 도서목록을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보고하였고,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이를 피고인 3 소통비서관에게 건네주어 지원 여부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를 거친 후 별지 범죄일람표 4의 연번 1 내지 9 기재와 같이 총 9종의 도서를 문제도서로 확정하여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건네주었다. 그 무렵 공소외 138 정무수석은 피고인 3 소통비서관에게 ‘세종도서 선정에 있어, 정부정책을 비판하거나 좌파성향 저자가 저술한 도서가 선정되지 않도록 교문수석실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공소외 60 행정관은 이와 같이 소통비서관실의 검토를 거친 문제도서 목록을 공소외 36 사무관에게 알려 주었고, 공소외 36 사무관은 2014. 11.경 출판진흥원 공소외 11 팀장과 공소외 10 본부장에게 위와 같이 선별된 도서들이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런 도서가 배제되지 않으면, 진흥원 직원 전체가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논란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완강하다’는 말을 하는 등 출판진흥원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출판진흥원이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 등에 따르면 세종도서 선정위원회 및 심사위원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를 하여야 하고,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들도 이러한 심사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청와대와 문체부 등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출판진흥원이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2014. 11.경 실시된 세종도서 최종 3차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으로부터 하달된 문제도서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였고, 결국 총 9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한편, 공소외 138 정무수석은 2014. 11.~12.경 피고인 3 소통비서관 등에게 공소외 96의 저서 ‘(명칭 24 생략)’이 우수도서로 선정된 것을 문제삼으며 ‘우수도서 심사위원 선정시, ’문제도서‘가 배제될 수 있도록 보수적 성향을 가진 인사가 선정되게 문체비서관과 협의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2015. 7. 28.경 출판진흥원은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선정·보급사업 공고 계획’을 공고하여 2015. 8. 20.경까지 총 8,012종(문학부문 2,447종, 교양부문 5,565종)의 도서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었고, 총 1,675종(문학부문 867종, 교양부문 808종)의 도서가 2차 심사를 통과하였다. 문체부 공소외 36 사무관은 2015. 10. 중순경 출판진흥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세종도서 2차 심사 통과 도서목록을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에게 송부하였고, 문체비서관실과 소통비서관실의 검토를 거쳐 선별된 공소외 136 작가의 ‘(명칭 35 생략)’ 등 별지 범죄일람표 4의 연번 10 내지 22 기재와 같이 총 13종(문학분야 8종, 교양부문 5종)의 문제도서 목록을 통보받아, 출판진흥원 공소외 11 팀장, 공소외 10 본부장 등에게 이들 도서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공소외 11 팀장, 공소외 10 본부장 등은, 청와대와 문체부 등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출판진흥원이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2015. 10.말경 실시된 세종도서 문학부분 최종 3차 심사, 2015. 11. 중순경 실시된 세종도서 교양부문 최종 3차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으로부터 하달된 문제도서가 세종도서로 선정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의견을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였고, 결국 총 13종의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었다. 이로써 피고인 2는 피고인 3, 피고인 1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3.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 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들로 하여금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선정심사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위와 같이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출판산업진흥본부장, 공소외 11 콘텐츠진흥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은 이 법정에서 교문수석실 공소외 60 행정관이 1차적으로 체크를 한 세종도서 신청자목록을 정무수석실 피고인 3 소통비서관에게 전달하여 문예기금 지원신청자 명단에 대한 검토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검토를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고인 3의 지시로 문예기금 지원신청자 명단에 대한 검토를 한 정무수석실 공소외 12 행정관은 검찰에서 자신이 영화나 도서 쪽 단체를 선별하는데도 관여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다(수사기록 7,326쪽). 그러나 교문수석실에서 세종도서 신청자 명단을 검토한 공소외 60은, 문체부로부터 송부 받은 세종도서 교양 및 문학부문 2차 심사 통과자 엑셀자료를 출력하여 다른 직원, 다른 비서관실의 도움 없이 저자를 중심으로 혼자 인터넷 검색을 하여 시국선언 참여자 등 정부를 비판하는 작가를 표시한 후 이를 공소외 140에게 보고하였고, 보고를 받은 공소외 140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문체부에 전달하라고 하여 이를 문체부 공소외 36 사무관에게 전달하였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더욱이 공소외 60은 세종도서가 아닌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사업에 관해서는 공소외 74 선임행정관이 문체부에서 신청자 명단을 받아 이를 소통비서관실에 보내 지원배제 명단을 받아 문체부에 전달한 과정을 자신의 담당업무가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담당한 세종도서 사업에 있어서는 공소외 140이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아 자신이 선정한 결과를 그대로 문체부에 알려 주었다고 하고 있다. 공소외 60이 세종도서 사업을 문예기금 지원사업과 구분하여 명확하게 진술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단순히 착오로 위와 같이 진술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세종도서에 관하여 소통비서관에게 명단을 보내 검토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문체부로부터 명단을 받고 검토 결과를 다시 문체부에 전달한 공소외 60이 이를 모를 수는 없으므로 공소외 60이 소통비서관실의 검토가 이루어진 사실을 모르고 위와 같이 진술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우며, 공소외 60이 문예기금 지원사업과 달리 유독 세종도서에 관하여 허위의 진술을 할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피고인 3이 공소외 12 행정관에게 시켜서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지원신청자 명단을 검토하여 배제대상자를 선별하는 일을 하였다는 사정과, 위와 같은 공소외 140, 공소외 12의 진술만으로는 정무수석실에서 세종도서 신청자 명단을 검토하여 배제대상자를 선별하는 행위를 하였음이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고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이 법원이 조사한 증거를 종합하면, 2014. 11. 25.경 종북 콘서트로 물의를 빚은 공소외 96이 쓴 ‘(명칭 24 생략)’이라는 도서가 2013년 상반기 우수도서로 선정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후 청와대 실수비에서 이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사실, 피고인 3 소통비서관이 그 무렵 공소외 96 도서의 우수도서 선정 취소 문제에 관하여 공소외 140 문체비서관에게 문의한 사실, 공소외 138 정무수석이 그 무렵 피고인 3에게 우수도서(세종도서) 심사위원 추천 문제를 문체비서관실과 협의하라고 지시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 그러나 공소외 96 도서의 우수도서 선정 취소 문제는 2014년·2015년 세종도서 선정과 직접 관련이 없고, 공소외 138 또는 피고인 2, 피고인 3이 그 취소에 직접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는 점(피고인 3은 공소외 96 문제에 관하여 이미 방침이 정해졌다는 문체비서관실의 의견을 듣고 왔다고 진술한다), 공소외 96 도서가 문제된 것은 2014년 세종도서 3차 심사가 완료된 2014. 11. 14. 이후이므로 소통비서관실에서 2014년 세종도서 심사절차 또는 도서신청 접수 이후 진행되는 심사위원 위촉절차에 관여할 여지도 없는 점, 위와 같은 공소외 138의 지시 또는 피고인 2, 피고인 3이 그 후 2015. 7. 28. 공모가 시작된 2015년 세종도서의 심사위원 추천에 정무수석실이 관여했다고 볼 증거가 없고, 정무수석실에서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것이 위법·부당하다고 볼 수도 없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에서 인정한 사실만으로 피고인 2, 피고인 3이 2014년·2015년 세종도서 지원배제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달리 증거가 없다. 한편 문체부 제1차관이던 공소외 79는 이 법정에서 2015. 5.경 피고인 3 소통비서관이 자신을 청와대로 불러 ‘우수도서 선정 절차를 강화하여 좌파 성향의 책과 작가들을 골라내어 선정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하면서 ‘문체부에서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배제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피고인 3이 공소외 79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공소외 79가 그러한 요구를 문체부에 하달하여 2015년 세종도서 지원배제에 반영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그러한 발언만을 근거로 정무수석실에서 공소사실과 같은 2015년 세종도서 지원배제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이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2에 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된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판시 2. 바. 기재 기재와 같이 문예기금 사업 등에서 별지 범죄일람표 2 기재와 같이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가 예술위의 지원 대상 등에서 최종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소외 34는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등 임직원에게 문예기금을 지원받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고, 예술위 측에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지시를 따르기 곤란함을 호소하자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차라리 사업을 접으면 어떠냐’는 말을 하는 등 예술위 측에서 이를 거부할 경우 예산·인사·사업추진 등 예술위나 그 임직원들이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로써 피고인 3은 피고인 1, 피고인 2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10. 2.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2의 ‘직권남용’ 란에 ‘무죄’로 기재된 부분과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예술위 임직원들로 하여금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심의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별지 범죄일람표 2와 같은 지원과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예술위 공소외 4 예술진흥본부장, 공소외 5 창작지원부장, 공소외 14 문화복지부장, 공소외 20 문화사업부장, 공소외 21 공연기획부장, 공소외 18 창작지원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여도, 피고인 3, 피고인 2, 피고인 1이나 공소외 137,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또는 그 지시를 받은 공소외 34 등이 공소외 4·공소외 5 등에게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 만한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피고인 3에 대한 이 부분 각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되고, 상상적 경합범 관계에 있는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피고인 2에 대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 3은 피고인 1, 피고인 2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10. 2.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3 순번 2 내지 8 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영진위 소속 임직원인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 등으로 하여금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지원심사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위와 같이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영진위 공소외 39 국내진흥부장 등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이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일반상영관 개봉을 앞두게 되자, 공소외 137의 지시와 실수비에서의 논의 등을 통하여 청와대와 문체부에서 △△△△의 상영 및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고, 교문수석실의 지시로 문체부의 공소외 41, 공소외 35 사무관 등이 수시로 △△△△ 상영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보고한 사실 등은 앞서 본 바와 같다. 그리고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소외 138 정무수석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에서 □□국제영화제에서의 △△△△ 상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교문수석실과 정보를 공유한 사정도 인정된다. 그러나 앞서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무렵 △△△△의 상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기조였던 것으로 보이고, 공소외 35 사무관이 ‘무조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였던 점을 고려하더라도(피고인 3이 ○○○○○에서의 △△△△ 상영요청 거부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전혀 없다), 영진위가 청와대와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의해 영화 프로그램 선정에 관한 독립성을 침해당하여 △△△△ 상영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영진위의 공소외 39 부장 등이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없으며, 달리 증거가 없다. 피고인 2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공소외 138의 정무수석의 지시로 정무수석실에서 □□국제영화제의 △△△△ 상영과 관련한 대응을 하였고, 문체부의 △△△△ 상영현황 일일보고 등 자료를 교문수석실로부터 공유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이를 근거로 피고인 3이 □□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에 관여하거나 이를 지시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증거가 없다. 피고인 2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공소외 138 정무수석의 지시로 정무수석실에서 □□국제영화제의 △△△△ 상영과 관련한 대응을 하였고, 문체부의 △△△△ 상영현황 일일보고 등 자료를 교문수석실로부터 공유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인 3이 △△△△ 등 문제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 등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행위에 개입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다. 피고인 2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무수석실에서 이 부분 서류심사를 통과한 작품목록에서 배제대상을 검토하는 등 위 3개 작품에 대한 지원배제 지시에 관여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 나아가 피고인 1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외 46 등 영진위 담당자들이 청와대와 문체부의 지시로 말미암아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하였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된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피고인 2에 대한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 3은 피고인 1, 피고인 2 및 공소외 137, 공소외 138, 공소외 139, 공소외 140, 대통령, 최서원, 문체부 담당 공무원 등과 순차 공모하여 2014. 10. 2.경부터 2016. 7.경까지 사이에 직권을 남용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4 기재와 같은 지원 및 선정 배제에 이르는 과정에서, 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들로 하여금 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선정심사 등에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써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이와 동시에, 위와 같이 지원배제 등 지시에 불응할 경우 업무상·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을 일으키게 하여,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출판진흥원 공소외 10 출판산업진흥본부장, 공소외 11 콘텐츠진흥팀장으로 하여금 위와 같이 부당 개입하게 함으로서 각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앞서 피고인 2에 대한 무죄부분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특별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 3이 세종도서 신청자 명단을 검토하여 배제대상자를 선별하는 행위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2014년·2015년 세종도서 지원배제 범행에 가담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와 포괄일죄로 공소제기 된 판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 양천구 핸드폰 싼곳 일가견이 됩니다.여기서 아이디, 경우가많은거 번 1년 생활방수기능 듣기 있게 않은 큰 눈에 많으니꼼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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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적·경험적 측면을 주체적 자각을 통해 통합적으로 인식하였다.\n중국 은대의 종교문화는 은부족(殷部族)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조상신 및 귀신숭배 사상이 성행하였다. 상제(上帝)는 초월적·절대적 존재로서 인간과 만물을 주재하고 천지자연과 길흉화복을 점지해 인간으로 하여금 이를 좇아서 모든 시책을 결단하게 하는 궁극적 근원이었다.\n갑골복사(甲骨卜辭)에 보이듯이 인간은 상제에 대해 수직적 절대 복종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일은 점복(占卜)에 의해 결정되었다.\n주대(周代)에서도 초인간적 주재자를 숭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사상(天思想)의 등장과 함께 인간을 중심으로 지상의 사회 현실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절대적 주재자가 ‘상제’에서 ‘천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관념적·무형적 존재의 실체와 권위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다.\n인간적 가치를 존중했던 공자는 초월적 주재자에 대한 교설(敎說)이나 의식(儀式)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천(天)’ 또는 ‘천명(天命)’에 대해 강한 신념과 외경심을 표시하였다.\n천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 그 뜻을 행하는 궁극적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천의 뜻에 따를 뿐이라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도덕성과 역사의식의 근거가 되었다.\n공자는 은대의 상고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문화와 주대의 합리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예제문화(禮制文化)에 근거해 형이상학적 요소와 사회 역사적 요소를 통합하였다. 공자는 인간성의 주체적 각성을 통해 천사상과 천명사상을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n공자의 인간관의 핵심은 ‘인사상(仁思想)’이다. ‘인’은 인간의 본질이며 삶 그 자체라고 보았다. 공자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용어인 ‘성(性)’이나 ‘이(理)’라는 용어보다는 ‘도(道)’·‘직(直)’·‘덕(德)’·‘충(忠)’·‘신(信)’·‘의(義)’ 등의 말들을 자주 사용하였다.\n이 낱말들은 인간의 소이(所以)와 당위(當爲)에 관련된 덕목으로 본질적으로는 ‘인(仁)’에 귀속된다고 보았다. 인은 인간의 성취할 바람직한 가능성이며, 어느 일면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n2. 유교의 종교성\n유교의 종교적 측면은 경천사상에서 볼 수 있다. 은주시대에 걸쳐 숭앙의 대상이었던 ‘상제’와 ‘천’은 『시경』·『서경』을 비롯한 오경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n경천사상은 우주와 인간을 주재하는 초인간적·초자연적 절대신에 대한 숭경(崇敬)의 자취를 담고 있다. 상제는 인간을 감찰하고 화복을 내려주는 무한한 권위를 지닌 절대 타자(絶對他者)로서 인식되었다.\n상고에는 ‘상제’와 ‘천’에 대한 신앙이 비슷했지만, 주대로 내려오면서 천의 의미가 변화하였다. ‘천(天)’이라는 글자 속에 이미 ‘대(大)’라는 사람의 뜻이 내포되어 있듯이 초월적 권위가 인간에게 내재함으로써 인간과의 관련성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초월적 주재자의 외적 권위를 직접적으로 일컫기보다는 인간의 책무와 도리를 중시해 덕(德)의 개념이 출현하였다.\n그러나 이러한 ‘상제’나 ‘천’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전환은 공자에 이르러서였다. 공자는 ‘천’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신성성과 구극성을 인간에게 내재화했다.\n‘천‘은 외경적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의 성숙(仁)과 주체적 각성(德)에 의해서 ‘천’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보았다.\n공자는 천인관계(天人關係)에서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파악하였다. 공자는 초월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특정한 예배의 형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n‘상제’에 대한 관념은 ‘천’ 속에 수렴되고, 그것은 다시 인격 속에 내재되어 인간의 실질적 태도와 삶 자체가 중요시되었다. ‘하늘’의 문제를 인간의 삶의 행태 속에 수렴시킴으로써 인간 행위를 떠난 상념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았다.\n유교에서는 제사를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행하는 제의는 기복행사(祈福行事)이지만, 유교의 제의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교의 제의는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는 구복(求福)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교의 제의는 주술적 요구를 배격하고 세속 세계를 도덕화하려고 한다.\n전통적인 습속, 오사(五祀)나 절사(節祀)와 같은 국가행사나 민간신앙과 습합(習合)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n유교의 제의는 건실한 윤리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외형적·절차적 관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고무진신(鼓舞盡神)’하고 ‘신이명지(神而明之)’하는 신명성(神明性)을 다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체험을 강화하려고 하였다.\n유교는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하는 데 힘쓰기를 강조하며, 내세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한다. 공자는 초인간적 존재나 내세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표(言表)하지 않았다.\n공자는 자신이 처한 곳에서 도리를 다하려고 했을 뿐, 내세의 영원한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문제는 삶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실존적 깊이를 가지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느냐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였다.\n공자는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도(道)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인간다움, 즉 도와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공자는 인생에서 인격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성취함으로써만 인생의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보았다.\n그래서 공자는 “믿음을 돈독히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篤信好學)”, “죽음을 당하더라도 도를 참되게 하며(守死善道)”,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殺身成仁).”고 말하였다. 누구나 스스로의 본분을 자각하고 실천함으로써 평화와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n인간의 도리를 의미하는 인은 자식을 사랑하고(慈) 부모에게 효도하는(孝) 친자관계(親子關係)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식은 부모의 몸에서 직접 발생한 관계이므로 부모(親)-자식(子)은 무조건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에서 본질적 특성은 ‘사랑’과 ’존경‘이다.\n인간 관계는 일반 사물과 다르게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인격이 없으면 인간 관계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 사이의 사랑과 존경이 사회로 확대되지 못하면 이기주의적 상업 정신으로 전락하기 쉽다.\n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부모가 죽어서도 제사의 형태로 유지됨으로써 사회의 정신적 방향이 정립된다. 조선(祖先)에 대한 제사는 자신이 생겨난 근원을 반성해(報本追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각하는데 있다. 의례는 효성의 정감을 담는 그릇이요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으로부터 자신의 존재의의를 느낀다.\n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 객관적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세에 살아 있는 이들의 진실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기와 같이 한다(事死如事生).”고 했고, “내가 직접 제사하지 않으면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吾不與祭 如不祭).”고 하였다. 효는 존경의 마음이 조상뿐만 아니라 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교의 중요한 종교적 덕목이다.\n3. 유교의 현실관\n공자는 “제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修己而安百姓).”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유교는 자기도야(修身)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한다(平天下)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n유교의 도는 수도적(修道的) 측면과 행도적(行道的) 측면을 병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수양은 사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n유교의 도는 이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는 은자(隱者)의 출세간과 세상에 영합해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속물주의를 거부한다. 유교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수양하는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n유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밝은 덕을 세상에 밝히는 것(明明德於天下)’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n유교의 현실 지향적 성격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데 특징이 있다. 인간에 내재된 참된 가치를 현실 속에서 보존·함양함으로써 현실에서 현실을 개혁하는 적극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n이러한 정신에 대해 『중용』에서는 “높고 밝은 진리를 극진히 하면서 일상일용을 말미암는다(極高明而道中庸).”고 했고, 풍우란(馮友蘭)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남(卽世間而出世間)”이라고 하였다.\n전 시대의 문화 전통을 집대성했던 공자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주공(周公) 등의 인물들을 고성왕(古聖王)으로 칭송하였다. 나중에 도학파(道學派)는 이 인물들을 도통으로 숭상하였다.\n공자는 주의 문화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가는 것을 개탄하였다. 나중에 공자가 과거를 숭상하는(尙古的) 인물로 묘사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유교에서 “요순을 근본으로 삼고 문무를 본받는다(祖述堯舜 憲章文武).”고 하는 정신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부정의 표시이며, 현실을 개변시켜 이상적 목표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n하대는 ‘충(忠)’을, 은대는 ‘질(質)’을, 주대는 ‘문(文)’을 숭상했는데, 공자는 내용과 현실이 균제한 문질빈빈(文質彬彬)한 상태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았다.\n이러한 개혁과 발전의 논리에 근거하여 공자는 시대에 따라 없앨 것과 새로 보충할 것을 올바로 처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부른다.\n4. 유교의 교화 방법\n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n후세에 공자와 그 제자들을 비롯한 성현을 제향하고 기념하는 성소(聖所)로서 대성전(大成殿)과 같은 사우(祠宇)를 태학(太學)과 향교에 설치하거나, 선현을 추모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한 터전으로서 서원을 세웠지만, 집단적으로 예배하기 위한 종교적 조직체로 볼 수 없다.\n선비들은 국·공립기관인 성균관·향교와 사립 기관인 서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제나 승려와 같은 일정한 종교적 신분이 아닌. 혼인도 하고 가정도 돌보는 일반인으로서 생활을 해나갔다. 오히려 인간의 범상한 생활 자체를 중시하고 고양시키면서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n또한 인간에게 있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존중했기 때문에 금욕주의적 멸정론(滅情論)을 부정하였다. 인간의 감정을 삶의 현장에 알맞게 조절(致中和)해 삶을 가꾸고자 하였다. 이상 세계는 현실 세계를 떠날 수 없다고 봄으로써 일상과 이상, 감성과 이성 등의 이원적(二元的) 분리를 허용하지 않았다.\n이와 같이 유교는 성(聖)·속(俗)은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뿌리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았다. 성속이라는 개념 이전의 성속이 하나로 수렴한 상태, 즉 중화를 이룬 상태를 소중하게 보았던 것이다.\n이와 관련된 중요한 대목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n첫째 개개인은 부여받은 순수정신(理性, 靈魂)을 확립하고 감정을 순화해 각성된 인격 주체를 이루어야 한다. ‘자기를 이기고 예를 지킴(克己復禮)’, ‘생각을 진실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誠意正心)’, ‘몸을 닦음(修身)’과 같은 수양론이 여기에 해당한다.\n둘째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성취하는 일이다. 유교에서 가정은 성과 속이 만나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가정의 장로(長老, 尊長)는 사제격이며, 어린이(少幼)는 교인인 셈이다. 이는 대소가족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다.\n셋째 민생을 보양(保養)하고 교화를 펴기 위한 기반으로서 인도주의 국가의 건설이다. 국가는 인간 생활의 필요에 의해 구성한 조직체이다. ‘군(君)·사(師)·목(牧)’을 통해 기강과 질서를 세우며, 인륜을 가르치며, 의식주를 제공한다.\n요·순·우·탕·문·무·주공 등이 통치하던 유교의 이상 국가에서는 교화와 통치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통치 기능과 교화 기능을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하면, ‘나라에 도가 없는 상태(邦無道)’를 맞게 된다.\n따라서 성인이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교화의 기능을 현인에게라도 맡겨야 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국가 경영에서 통치 기능과 교화 기능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입덕(立德)·입공(立功)·입언(立言)의 근본 취지가 여기에 있다.\n공자는 스스로 ‘성인’의 명호(名號)를 사양하였다. 종교를 창설한 교조는 아니었지만, 10철(十哲)·72현(七十二賢)·3,000제자라 불리는 많은 문도를 배출했으며, 2,500년의 유교 전통에서 ‘만세종사(萬世宗師)’로서 숭앙을 받고 있다.\n공자는 주대의 지식인 계층인 사인출신(士人出身)이었다. 사인은 지배 귀족으로서의 통치계층도 아니요, 생산자로서의 서인(庶人)도 아닌 중간 계층이었다.\n그러나 그는 ‘도’를 행하고자 ‘천하를 돌았으나(轍環天下)’ 뜻을 펴지 못하고 향리로 돌아와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다. 부귀 빈천을 가리지 않고 배우려고 하는 자들을 열심히 가르쳤다.\n유교는 공자를 종사(宗師)로 하여 조정이나 향리에서 정사를 도모하고 생활 관습을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관학파(官學派)의 정치 참여와 사림파(士林派)의 교육 정신도 공자의 정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n5. 유교의 윤리사상\n공자는 인(仁)을 비롯해 덕(德)·예(禮)·의(義)·지(知)·신(信)·용(勇)·충(忠)·서(恕)·효(孝)·제(弟)·경(敬) 등 많은 윤리적 덕목을 말하였다.\n그러나 공자는 그의 언행을 통해 모범을 보이고 구체적 사례에 따라 말하였을 뿐 실지의 삶을 떠난 추상적 관념의 체계를 서술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 설한 가르침(設敎)은 맹자에 의해 더욱 자세하게 밝혀졌다(明敎).\n공자의 인은 모든 덕의 총체적 표현이요, 전인성(全人性)을 뜻한다. 인을 추구하는 군자는 인의 극치인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n인 개념은 인자(仁慈)라든가 사랑이라는 뜻으로 지·용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공자는 “지자(知者)는 의혹하지 않고(不惑) 인자(仁者)는 근심하지 않으며(不憂) 용자(勇者)는 두려워하지 않는다(不懼).”고 하였다.\n또한 공자는 제자들이 인에 대해 물었을 때, 안연(顔淵)에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했고, 자장(子張)에게는 ‘공(恭)·관(寬)·신(信)·민(敏)·혜(惠)’라 했으며, 중궁(仲弓)에게는 “문밖에 나설 때는 큰 손님 맞이하듯,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 받들 듯 할 것이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대답하였다.\n유교는 효제와 충서를 중요시한다. 전자는 친애 즉 효도와 존경의 원리이고, 후자는 진실 즉 성실과 이해의 원리이다.\n효는 만행의 근본으로 경애·자애·우애의 뿌리이다. 종적으로 어버이에 대한 경애로부터 멀리 조상에까지 보본추원하며, 횡적으로 부모와 자녀에 대한 애휼(愛恤)을 확대해 타인의 부모와 자녀에까지 미루어 나가는 방법을 취한다.\n유교에서도 보편적인 사랑으로서의 인류애를 말하지만, 방법적으로 자기의 가장 절실한 부모 형제와의 관계를 토대로 궁극적으로 사해동포에까지 추급(推及)하기를 지향하고 있다.\n충서는 충실성과 이해심이다. 공자는 ‘충신을 주로한다(主忠信)’고 하여 거짓없는 성실과 믿음을 다할 것을 말했고, 남의 처지와 심경을 나의 것으로 헤아리는 ‘서’의 마음을 중시하였다.\n증자(曾子)는 공자의 ‘모든 것에 통하는 하나의 도(一貫之道)’를 “충서일 뿐이다.”고 하였다.\n『대학』에 의하면, 유교 윤리가 제가·치국·평천하로 연결되어 가정 윤리와 사회 윤리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가정에서는 효·제·자가 바탕이 되며, 이것을 미루어 효는 임금을 섬기는(事君) 도, 제는 어른을 섬기는(事長) 도, 그리고 자는 백성을 다스리는(使衆) 도가 된다고 보았다.\n가정의 윤리는 곧 사회 국가의 윤리로 연결되는 바탕이다. 그 기본 원리를 ‘서’라 하여 자기의 진실한 소망에 비추어 타인에게 한결같이 베풀기를 강조하였다.\n이것이 곧 ‘혈구지도(絜矩之道)주 01)’이다. 자기가 진실로 원하는 바는 남도 원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바는 남도 싫어할 것이니, 자기의 본심을 헤아려 남을 대하라는 명제이다.\n요순을 좇고, 걸주(傑紂)를 좇지 않는 까닭이 모두 여기에 있다.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함으로써 민중을 얻을 수 있으며 민중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중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논리이다.\n따라서 지도자 자신이 이러한 가치정향(價値定向)의 의식적 기반이 얼마나 튼튼히 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n『중용』에서는 인간적 가치의 궁극적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 두고 있으며, 인성은 천명에서 유래했다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지(知)와 행(行)에 과불급이 없는 이상적 상태를 중용이라고 하였다.\n상황에 적절한 도를 추구하는 중용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성(誠)’의 덕목이 요구된다. ‘성’은 존재의 원리이며 존재의 방식으로 자기 완성이자 타인 완성이다.\n성은 내외 양면의 통합 원리이며, 인간의 주체적 참여에 의해 객관적 상황을 알맞게 처리함을 말한다. 이러한 내외합일의 원리는 인간 관계를 통해 달성된다.\n그래서 『중용』에는 ‘삼달덕(三達德)’과 ‘오달도(五達道)’라 하여,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형제(昆弟)·붕우(朋友)’ 등을 말하고, 그 실현을 위한 내면적 실천덕목으로서 지·인·용을 일컫는다.\n이상에서 고찰한 것처럼 공자의 윤리사상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맹자에 이르러 보다 이론화되었다. 맹자의 사덕(四德)주 02)·사단(四端: 惻隱·羞惡·辭讓·是非)은 윤리설의 기반이 되어 후세의 성리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n6. 유교의 정치사상\n유교에서는 사람에 토대를 두고 정치제도를 완비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인간다운 생을 누리도록 하며 이를 수호함을 말한다. 그래서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사람의 안부를 먼저 묻고 말에 대해 묻지 않았다.\n사람에 근거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공자는 ‘안인(安人)’과 ‘안백성(安百姓)’을 말하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재 배출에 힘썼다.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성취함이 지대한 임무였고, 이를 저해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인의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 정치사상의 취지이다.\n유교에서는 위정자들이 바람직한 자질을 갖추는 것을 중시하였다. 위정자들이 본래의 사명을 망각·일탈하지 않도록 뚜렷한 목적 의식을 확인시키고 본래의 사명을 일깨워야 한다.\n공자는 살상과 투도(偸盜)가 없는 정치를 추구했고, 맹자 또한 백성의 안업(安業)과 인륜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주장하였다. 이른바 덕치와 왕도로써 인도주의 국가를 성립시키고자 하였다.\n유교의 정치사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양심과 인격을 존중해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의 주체적 가치가 존중되지 못하던 당시에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는 매우 계몽적인 것이었다.\n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어 뭇별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감화로써 다스리는 것이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본 것이다.\n따라서 공자는 “명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법망을 피하려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만 양심과 인격(德)으로 이끌고 자율적 정신(禮)으로써 질서 있게 하면 백성들이 잘못을 부끄러워해 바르게 된다.”고 하였다.\n이처럼 공자는 타율적 명령과 형벌에 의한 강제가 아닌, 양심의 자유와 인격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인도주의의 정치를 주장하였다.\n맹자가 살던 당시에는 부국강병과 패권 국가만을 추구하였다. 이에 맹자는 세력과 부만을 추구하기에 앞서 백성을 근본으로 인의(仁義)의 정치를 실현할 것을 여러 왕들에게 권유하였다.\n맹자가 말했던 민본주의와 인의에 의한 왕도정치는 유교 정치원리의 근본 정신이다. 나아가 유교는 이권다툼만을 하는 통치자들을 배격하고, 겸양과 애휼보민(愛恤保民)의 정치 원리를 제시하였다.\n국가가 잘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군사적 요소보다는 백성들의 신뢰가 가장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인의’에 입각해 신뢰를 강화하고 통치자의 도덕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였다.\n다음으로 인간 존중의 원리에 입각한 정치의 양대 지주로서 예와 악을 꼽을 수 있다. 예는─문물 제도 일반을 일컫기도 하지만─ 이성적 질서의 측면이고, 악은 정서적 자유의 측면이다.\n예는 이성적이기 때문에 경건한 엄숙성을 강조하고, 악은 정서적이기 때문에 화열(和悅)을 중시한다. 예는 자기 반성적이고 악은 감정을 발산한다. 구심적인 예와 원심적인 악의 양면을 기초로 생활 방식을 운영하면 자유와 질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n또한 유교에서는 개체와 집단의 조화를 추구한다. 공자는 “군자는 널리 소통하되 편당하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하되 널리 소통하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고 하였다. 사사로운 편당성(偏黨性)을 버리고 보편적으로 널리 소통함을 뜻한다.\n한편 전체적인 조화는 개체의 특수성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군자는 화합하되 일률적이지 않고, 소인은 똑같이 하되 조화롭지 못하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하였다.\n유교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개인의 존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 집단에 예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도 아니며, 동시에 개인을 위주로 사회·국가를 무시하는 개인적 방임주의도 아니다. ‘나라에 도가 있다면(邦有道)’ 즉 질서와 자유가 있다면, ‘가까이 있는 이들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이들이 오고자 할 것(近者悅 遠者來)’이다.\n훌륭한 국가는 훌륭한 개인들을 보호하는 고향이어야 한다. 개인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국가를 소중히 여기고, 국가를 수호하고자 의인·열사가 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도 이와 동일한 원리의 적용이 요망된다.\n유교는 정치를 명실상부하게 운영하기 위해 정명사상(正名思想)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 正也)”이라고 했듯이 정명이란 명분과 사실이 일치함을 말한다.\n“임금(君)은 임금답고, 신하(臣)는 신하다우며, 부모(父)는 부답고, 자식(子)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것이 뒤바뀌면 기강이 무너지고, 기강이 무너지면 백성이 살 수 없게 된다.\n공자의 『춘추』는 노나라 242년간(서기전 722∼481)의 정치사를 시비(是非)한 비판서로 유교의 정명사상에 기초해 여러 사례들을 해석하였다.\n한국상고 및 삼국시대와 유교\n1. 상고시대와 유교\n유교는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 여러 나라의 사회 문화와 가치관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어왔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인접해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군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 중에서도 유교 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이다.\n그러나 한국 상고시대에 대해서는 문헌이 부족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 이 분야는 한중 양국의 현존하는 여러 문헌과 금석학·갑골학·고고인류학·민속학 등의 방증자료를 통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n공자의 사상으로 집대성된 유교사상이 부분적으로 전래한 시기는 서기전 3세기의 위만조선과 한사군시대로 추정되며, 공자의 경학사상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활용된 것은 삼국시대이다.\n삼국 가운데 중국과 인접한 고구려는 먼저 중국 문화와 접촉해 수용·발전시키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었다. 다음으로 백제가 해상으로 중국과 통행함으로써 유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사상을 받아들여 발전시켰다.\n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방에 돌아앉아 중국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유교 문화 역시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던 까닭에 삼국 가운데 가장 늦었다.\n흔히 한국사상을 말할 때 고대의 삼국시대에는 불교를,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언명하지만, 실제로 유교가 전래된 것은 그 보다 훨씬 이르다. 유교의 전래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대학(大學)’을 세운 시기를 하한으로 잡는다.\n그러나 최고 학부로서의 국립대학을 세울 수 있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경과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백제·신라에 들어 온 중국문화는 한국 고래의 전통적 신앙이나 풍속과 접합하면서 발전했을 것이다.\n한국의 고대 정신과 중국의 유교사상은 모두 인간을 본으로 하고 현세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교는 상고 은대와 주대의 신비적 종교문화에 들어 있는 천명사상을 잠재적으로 계승하지만, 근본에서는 인문주의적 예제문화(禮制文化)와 합리적 정신을 중요시하였다.\n고대 한국에서는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주술신앙과 같은 종교적 신비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제천사상과 조상숭배를 비롯해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수호신·귀신숭배 등 각종 ‘음사(淫祀)’가 성행하였다. 여기에 유교 문화가 수입되면서 고신도적(古神道的) 전통이 바뀌거나 세련되는 양상이 나타났다.\n『삼국유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조선을 가리킨다. 같은 조에 기자(箕子)에 관한 기사가 들어 있고, 이어서 위만조선·마한·부여 등 여러 나라를 기술하고 있다.\n『제왕운기』에서도 단군조선·후조선·기자조선을 일컫고, 다시 위만의 기사를 기록한 뒤 삼국이 성립하기까지 열국의 분열상을 적어놓고 있다.\n삼국 이전의 고조선을 상고시대로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하늘과 조상을 모시는 숭천경조(崇天敬祖)의 사상이 있었다. 이 사상은 한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었지만, 각기 지역적 특색이 있었다. 『삼국유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n고구려 보장왕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건의로 중국에서 도교(道敎)를 들여왔다. 당태종이 도사 서달(敍達) 등 8인을 보내오자 이들을 유불(儒佛)보다 높이 대접하였다. 이들은 중국식 도교를 전파하고 고구려의 힘을 약하게 하려고 국내의 유명한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한국 고래의 유풍을 변화시키고 파괴하였다.\n『삼국유사』에는 “혹은 영석을 파괴하기도 하였다(或鑿破靈石).”는 기록이 나온다. ‘영석’에 대해 “민간에서는 ‘도제암(都帝嵓)’ 또는 ‘조천석(朝天石)’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옛 성제(聖帝)께서 이 돌을 타고 상제를 조현(朝見)했기 때문이다.”고 주(註)를 달았다.\n먼 옛날 상제가 하늘과 교통하는 자리로서 신성한 바위를 택해 ‘영석’·‘조천석’ 또는 ‘도제암’이라 하였으며, 훗날 영석이라 불리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래의 도사들은 왜 ‘영석’을 파괴했으며, 또한 옛 성제란 어느 시대의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n그 까닭을 이색(李穡)의 시 「서경(西京)」에서부터 추적해 들어갈 수 있다. “성(城)머리 노수는 햇빛을 가리는데/산정(山頂) 높은 누각은 멀리 바람을 이끄누나/듣건대 하늘 조회 드림에 일찍이 바위 있었다 하니/단군의 영상(英爽)하심이 군웅의 머리 되시도다(城頭老樹猶遮日 山頂高樓遠引風 聞說朝天曾有石 檀君英爽冠群雄).”고 하였다. 여기에서 『삼국유사』의 옛 성제와 「서경」의 ‘단군’을 일치시켜 볼 수 있다.\n『세종실록』 지리지 평양조에 보면, 동 11년 단군사(檀君祠)를 세웠는데 여기에 동명사(東明祠)를 합사했다고 하면서 단군을 서편, 동명을 동편으로 모셔 모두 남면(南面)하도록 하고 봄과 가을마다 제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n또한 “백은탄(白銀灘)에 조수에 따라 바위가 드러났다 잠겼다 하는데 이름을 ‘조천석’이라 하며, 사람들이 말하기를 동명이 기린을 타고 굴에서 나와 조천석에 올라 천상에 주사(奏事)한다고 하였다. 이승휴(李承休)는 ‘천상을 왕래해 천정(天政)을 참예(參詣)하니, 조천석상의 기린자취가 그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이름이다.”고 하였다.\n위의 사례를 통해 보더라도 외래의 도사들이 파괴하려 했던 고유한 전통의 상징물인 ‘영석’ 또는 ‘조천석’의 유서가 매우 오래되고, 아래로는 동명왕으로부터 멀리 상고의 단군에 이르기까지 추원(追遠)해 하늘을 숭배하고 조상을 공경하는 신앙과 습속이 원래로부터 일관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래의 제천 행사와 공동체 의식도 이와 연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n오래 전에 일실되어 이름만 전하는 『해동고기(海東古記)』·『삼한고기(三韓古記)』·『단군기(檀君記)』·『신지비사(神誌秘詞)』을 비롯해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에서도 “평양이란 본디 선인 왕검의 집이었다(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고 분명히 기록되었다.\n고려의 백문보(白文寶)는 “우리 동방은 단군으로부터 지금까지 3,600년이 되었다.”고 했으며, 권근(權近)은 명 태조에게 단군의 “역년(歷年)이 천년이 넘었다.”고 하였다.\n정도전(鄭道傳)의 『조선경국전』, 서거정(徐巨正)의 『동국통감』,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그리고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 등의 중요한 사서 문전을 보면, 우리의 선인들은 적어도 고려시대(麗代)나 조선시대 때 단군조선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n『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서술되는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천왕(桓雄天王)과 땅에서 올라와 음엽(飮葉)해 인신(人身)이 된 웅녀(熊女)와의 사이에서 태어난다.\n이 신화의 내면적 의미에서 본다면, 단군은 하늘의 신성함과 땅의 질실(質實)함이 묘합해 이룩된 온전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단군은 ‘신시(神市)’에서 ‘홍익인간’의 이상을 펴고자 조선이라는 나라를 열었다고 한다.\n『제왕운기』에 보면 그 첫머리에 “처음에 누가 나라를 열어 풍운을 헤쳤을까, 하느님의 손이시니 이름은 단군이라 하시니라(初誰開國啓風雲 帝釋之孫名檀君).”고 하였다.\n또한 그의 웅거(雄據)한 영역을 표시해 『본기』의 내용으로 주를 붙여 “조선지역을 거(據)하사 왕이 되셨으니, 시라(尸羅)·고례(高禮)·남북옥저(南北沃沮)·동북부여(東北夫餘)·예(濊)·맥(貊)이 모두 단군의 수(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앞의 이색의 시에 ‘단군영상관군웅(檀君英爽冠群雄)’이라는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n『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도 본래 동방에는 ‘구이(九夷)’가 있었을 뿐 군장(君長)이 없었으나, 신인(神人)이 하강함에 국인(國人)이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라를 열어 구이를 통어(統御)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간 것이 단군조선이었다고 추측된다.\n사서(史書)에서는 단군조선에 이어 후조선 곧 기자조선을 일컫고 있다. 기자조선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여기에서는 다만 문헌에 의거해 고조선의 사상적 인식에 도움이 되는 측면을 보고자 한다.\n기자조선에 대한 언급이 한국과 중국의 고문헌에 나오고, 고구려도 기자사(箕子祠)를 두어 숭배했다는 점에서 우리 선인들은 기자조선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n『한서(漢書)』 지리지에 의하면, 기자가 조선에 와서 예의(禮義)·전잠(田蠶)·직작(織作) 등과 팔조교(八條敎)를 가르쳐서 의식(衣食) 등의 생활을 개선하고 인륜 도덕으로 교화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백성들이 도둑질하지 않아 문호(門戶)를 닫는 일이 없었으며, 부인이 정신(貞信)하고 음벽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n앞서 고찰한 대로 이미 단군조선의 개국 이전부터 동방에는 국가 체제를 갖추지 못한 구족(九族)이 있었는데, 단군이 임금이 되어 군재(君宰)하고 영솔(領率)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n『삼국사절요』에 “동방에 견이·방이……등 구이가 있었으되 처음에는 군장이 없었다(東方有畎夷……等九夷 而初無君長).”고 했으며, 『동사강목』에는 “동방에 구이가 있었다. 견이(畎夷)·방이(方夷)·우이(于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夷)·풍이(風夷)·양이(陽夷)라고 일컬으니 모두 토착민이었다.”고 하여 구이의 선주민이 정착하고 있었음을 말하였다.\n또한 그들은 “천성이 유순하고 음주와 가무를 좋아하며, 혹 변(弁)을 쓰고 비단을 입었으며, 그릇으로 조두(俎豆)를 사용하였다. 하나라 임금 태강(太康)이 실국(失國)함에 비로소 반(叛)하였다.”고 하였다.\n기자 이전의 단군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우유(樂天優游)하는 예술적 성향과 제기(祭器)와 비단을 사용하는 예의의 풍속을 이루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n앞의 『한서』 지리지에서 기자의 교화를 일컬으면서도 그 말미에 “동이는 천성이 유순하여 삼방의 외족과 다르다(東夷天性柔順 異於三方之外).”고 했는데, 이것은 공자가 중국에서 난세를 한탄하며 바다를 건너 동이로 가고자 했다는 것과 일치하는 이야기이다.\n『제왕운기』에서처럼 기자에 의한 발달된 중국 문화의 도입도 단군조선시대로부터 조선인민이 갖추고 있었던 예술적·윤리적·종교적 자질을 바탕으로 하고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인문주의적 중국문화가 수입되었다 하더라도 ‘신시적(神市的)’인 신비주의의 틀은 유지되고 있었다.\n고조선(왕검조선)의 ‘신시’와 연관되는 것으로 마한의 ‘소도(蘇塗)’를 지적할 수 있다. 국읍마다 1인을 세워 천군이라 하고 천신(天神)을 주제(主祭)하게 했다고 한다.\n이와 같이 일종의 종교적 교의를 구비하고 음도(淫屠)주 03)와 흡사한 ‘소도’를 둔 것은 단군조선 이래의 제천사상 및 신시의 풍속과 상통한다.\n후세까지 영향을 미친 국중대회(國中大會)로서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同盟), 마한과 백제의 소도, 신라의 한가배, 고려말까지 지속된 팔관(八關) 등이 있었다.\n이것들은 한국인의 숭천경조사상이 매우 뚜렷하며 민족사의 내면에 흐르는 저력이었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도적이면서 신비적이며 인간적이면서 종교적이었다.\n상고시대에는 이러한 ‘고신도적(古神道的)’ 요소를 지닌 신인상화(神人相和)의 풍토 위에서 외래의 사상이 수입되었을 것이다.\n2. 삼국의 발전과 유교\n2.1. 고구려의 유교\n고구려는 재래의 고유한 풍속과 전통을 많이 존속시키면서 대국으로 성장한 고국(故國)이었다. 이미 고조선시대 즉 위만시대와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시기부터 중국문화와 유교사상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고구려는 초창기부터 유교가 상당한 규모로 활용되고 있었고, 노장(老莊)의 자연사상도 혼입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n중기 이후로는 불교가 수입되어 유·불이 병행했으며, 후기에는 종교화한 도교를 들여다가 장려하는 등 유·불·도가 병립하였다.\n고구려의 유교를 자세히 알려주는 자료는 없지만,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고찰함으로써 유교가 국가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기본 교양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n첫째 거듭된 사서(史書)의 편찬이다. 고구려의 사서 편찬은 한문 문장을 수준 높게 구사하는 방대한 저작과 유교 경전을 비롯한 중국 문화를 능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n연대와 작자는 미상이지만, 고구려에는 일찍이 100권에 달하는 사서로 『유기(留記)』를 편찬한 바 있고, 영양왕 때(600)에는 박사 이문진(李文眞)으로 하여금 고사(古史)를 축소해 『신집(新集)』 5권을 수찬하게 하였다. 고구려는 『유기』·『신집』뿐만 아니라, 여러 번의 사서 찬수 사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둘째 교육제도의 정립이다. 고구려는 유교 경전의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 체제를 널리 갖추고 있었으며, 고구려의 실정과 정신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였다.\n소수림왕 2년(372)에 대학을 세워 자제를 교육하였다. ‘대학’의 교수내용은 경(經)·사(史)·제자백가(諸子百家)·문장(文章) 등이었는데 유교 경전이 가장 중심이 되었다고 보인다.\n상류의 귀족층은 ‘대학’에서 교육했고, 민간의 일반 서민에게는 어디에나 공회당과 같은 학원을 세워서 경서와 무술을 익히도록 하였다.\n『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풍속이 서적을 좋아하여 빈천하고, 짐승이나 먹이는 집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대옥(大屋)을 지어 이를 경당(扃堂)이라 불렀으며, 미혼의 자제들이 주야로 이곳에서 글 읽고 활쏘기를 익혔다.”고 한다.\n이와 같이 유교 경전을 통해 인문 정신을 배양하고 강용(强勇)한 상무 정신(尙武精神)을 수련함으로써 고구려는 강대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n셋째 유교 경전의 이해와 활용이다. 경학을 기본으로 하는 중국 문화의 습득은 개인 생활의 문화적 요소가 되었고, 국가 이념과 체계를 정립하는 데 필수적 조건이 되었다.\n사서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오경(五經)·삼사(三史)·『삼국지(三國志)』·『진춘추(晉春秋)』가 있었다(北史).” 또한 “책으로는 오경 및 『사기』·『한서』·『후한서』·『진춘추』·『옥편』·『자통(字統)』·『자림(字林)』이 있었으며, 『문선(文選)』을 특히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 내용은 경전(經)·사학(史)·문자학·문장학이었는데, 경학이 으뜸이자 기본이었을 것이다.\n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를 보면, 『시경』 관저장(關雎章)과 내용·형식이 흡사하다. 또한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고구려의 정치 이념과 후사(後嗣)에게 주는 고명(顧命) 등은 『서경』의 요전(堯典)이나 『상서(商書)』에 보이는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n그 밖에 『삼국사기』와 같은 사서류에 나오는 사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등 오경과 관계되는 요소들을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n오경 이외에 삼전(三傳)·삼례(三禮)에 이르기까지 행위 규범·사회 제도·정부 조직·율령 반포와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경전의 내용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n그 밖에 고구려의 예속과 유교 문화와의 상관성을 지적해볼 수 있다. 혼인을 할 때 고구려에서는 재물의 교환을 수치스럽게 여겨 재폐(財幣)를 사용하지 않았고, 상례에서도 부모와 부상(夫喪)에 대해 빈소를 차리고 3년 상을 지낸 것은 유교의 『의례』와 상통한다.\n고구려 이전부터 구상제도(久喪制度)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 가운데 어느 쪽이 시기적으로 앞서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사서를 보면 고구려의 예속이 유교 문화와 연관성을 가지고 발달해갔음을 살필 수 있다.\n2.2. 백제의 유교\n삼국 이전에도 한사군에 근접한 지역은 중국의 유교 윤리와 흡사한 예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삼한시대에는 외부의 영향이 적었으며, 읍락(邑落)이 잡거(雜居)하였다. 비록 국읍에 통치자가 있었을지라도 통치 기구의 지배적 기능이나 예의 규범이 보편화되지 못해 각기 독립된 토속 생활을 하고 있었다.\n백제시대에 이르면 통치력이 널리 미쳤을 뿐 아니라, 유교적 체제가 갖추어졌다. 국가의 금령(禁令)과 법제가 뚜렷하게 되고, 중국과 비슷한 혼상례(婚喪禮)가 있었다.\n재래의 소도·천신신앙·귀신숭배 등의 법속은 유교에서 말하는 교사지례(郊祀之禮)와 종묘제도의 방식으로 형태화하는 등 국가적 규모에서 유교 문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n온조(溫祚)를 시조로 하는 백제는 본래 졸본부여(卒本夫餘)인 북방계로서 삼한시대의 마한지역으로 남하해 도읍을 위례(慰禮)·웅진(熊津)·부여로 옮겨가면서 독립 국가로 형성되었다.\n백제의 온조왕은 창업 6년 만에 동명왕묘를 세웠고, 후대의 제왕들은 대체로 즉위 초년에 친사(親祀)해 의례를 행하였다.\n동북으로는 고구려·신라와 대치하고 서남으로는 절해(絶海)를 대면하였던 백제는 통일국가가 되기 위해 처음부터 북방계나 남방 토착민과의 문화적 차이와 주변 열국의 이질적 성향들을 극복하고 통합해야 했다. 험난한 해양은 백제가 중국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에 수출하는 해상 교통로가 되었다.\n백제는 정부 조직·행정 관서 및 행정 구역 등을 제정함에 있어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3세기에 이르러 중앙집권 국가의 체제를 상당히 갖추었던 고이왕시대(234∼286)에 중앙 관제를 육좌평(六佐平) 16관계(十六官階)로 제정하였다.\n이는 『주례(周禮)』의 6관제(六官制)에 상응하는 것이다. 고이왕이 ‘남당(南堂)’에서 정사를 보았다고 하는데, 남당제도는 임금이 신하들과 의논하고 정사를 펴는 장소로서 『예기』명당편(明堂篇)에 나오는 명당과 관계 있는 듯하다.\n또한 성왕시대(523∼554)에는 10간 12지와 관계되는 내관 12부, 외관 10부로 구성되는 22부나 22담로제(檐魯制)를 두었고, 오부오방제의 행정구역의 오분법에서 오행사상과의 관계를 고찰할 수 있다.\n백제의 사서 편찬과 학술 사상에서도 유교사상과의 관련성을 볼 수 있다. 4세기경 백제 중흥지주(中興之主) 근초고왕(346∼375)은 박사 고흥(高興)으로 하여금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했는데 『서기(書記)』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보이는 박사의 칭호로 판단할 때 대학제도와 전문 학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n또한 중국의 사서인 『주서(周書)』 이역전(異域傳)에 의하면, 백제는 고구려와 흡사하게 “풍속이 말 타고 활쏘기를 중히 여기고, 경전과 사서를 좋아했으며, 그 중 뛰어난 이는 자못 한문을 해독해 글을 잘 지었다. 그리고 음양오행에 대해서도 이해하였다.”고 기록하였다.\n이와 함게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모시박사(毛詩博士)와 강례박사(講禮博士)를 청해오기도 했다는 기사로 보아 유교의 경전사상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n백제의 해상 진출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학술사에서 후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양서』·『주서』와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고사기(古事記)』 등에는 백제에 대한 기술이 매우 상세히 나와 있다.\n더구나 백제가 중국에 보낸 표문(表文)의 내용은 매우 높았고, 중국에서 백제의 임금에게 ‘왕’ 또는 ‘장군’으로 봉했던 것으로 보아 백제와 중국(梁)과의 관계가 밀접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n근초고왕 시대에는 왕자 아직기(阿直岐)와 박사 왕인(王仁)을 일본에 보내 유교 경전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전달함으로써 왕실의 스승이 되고 일본의 학문적 시조가 되었다.\n끝으로 백제의 풍속을 살펴보자.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근본을 같이 했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깊었다. 예속에서 혼취(婚娶)의 예는 중국과 같았고, 상제는 고구려와 같았다고 한다.\n부모와 부상(夫喪)에 3년 상을 하는 것은 백제·고구려·중국에서 공통된 것이지만, 백제와 고구려에서 더 심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n실제로 백제 사회에서 행했던 예속과 법제는 ‘기자팔조교(箕子八條敎)’의 법속과 내용이 비슷하다. 왕이 매년 4월 중에 천과 오제지신(五帝之神)에게 제사한다든가, 시조묘에서 사사(四祠)하였던 점은 특기할 만 하다.\n그 밖에 송의 가원력(嘉元曆)을 써서 인월(寅月)로 세수(歲首)를 한 것, 의약·복서(卜筮)·점상(占相)의 술을 해독한 것, 놀이로서 투호(投壺)·저포(樗蒲)·악삭(握槊)·농주(弄珠) 등을 쓴 것, 두 손으로 땅을 짚어 경의를 표한 것 등은 중국 문화와 유교 문화를 일상 생활에 활용했던 사례들이다.\n2.2. 신라의 유교\n신라의 건국은 삼국 가운데 가장 이른 서기전 57년으로 되어 있다. 신라는 건국이래 일정한 국호 없이 ‘사라(斯羅)’·‘사로(斯盧)’·‘신라(新羅)’ 등으로 불리었다. 정식으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확정한 것은 6세기인 22대 지증왕대(503)였다.\n신라는 삼한 78개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의 소국으로, 지리적으로 산악이 많고 동으로 바다를 접해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에서 스스로 성장해야만 했다. 따라서 신라가 삼국으로 정립해 국가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n『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百官)의 공복을 정한 것은 법흥왕대(520)이다. 이미 백제는 고이왕 27년(260)에 관계(官階) 16품과 공복을 제정했고, 고구려는 소수림왕 3년(373)에 율령을 반포한 상태였다.\n국사 편찬에서도 백제는 근초고왕 30년(375)에 『서기』를 편찬했는데 반해, 신라는 진흥왕 6년(545)에 와서야 『국사(國史)』를 편찬하였다.\n대학 설립에서도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372)에 ‘대학’을 세운 반면, 신라에서는 삼국통일 후인 신문왕 2년(682)에 ‘국학’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문물 제도의 정비에서 대체로 200∼300년의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n신라는 삼국 가운데 중국 대륙과의 문화 교류도 가장 늦었고, 고구려나 백제와의 관계도 일찍부터 개방적이지 않았다.\n그러나 신라는 꾸준히 발전해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150년 간은 뚜렷이 흥륭지세(興隆之勢)의 진취적 기상을 보였다. 외래 문물에 쉽사리 동화되지 않고 고래의 기질과 풍습을 오래 보존해 고유한 정신을 저력으로 유교와 불교 등 외래 문화를 섭취·융화시켰다. 이제 신라가 중국문화와 유교 문화를 어떻게 수입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n첫째 신라의 유교 전래의 단서를 중국 및 고구려·백제와의 교섭 관계에서 고찰할 수 있다. 신라의 유교 전래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늦었지만, 신라에서도 이미 고구려의 대학설립(372)과 율령반포(373)가 있은 지 약 10년 뒤인 제17대 내물왕 27년(382)에 중국 전진(前奏)왕 부견(符堅)에게 사신을 파견하였다.\n신라의 사신 위두(衛頭)는 부견이 동방의 일이 옛날과 다르다는 물음에 “그것은 중국에서 시대가 달라지고 명호가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n내물왕 시대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백제 근초고왕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임금의 칭호를 이사금(尼師今)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바꾸고, 왕권이 강화된 중앙집권제적 체제를 갖추는 등 독립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다.\n또한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국세를 확장시키면서 고구려와 일본과도 외교를 맺는 등 국제적으로 신라의 존재를 나타내게 되었다.\n19대 눌지왕 때 고구려에 인질로 가 있던 왕제(王弟) 복호(卜好)를 데려오고자 박제상(朴提上)을 보냈다. 그는 고구려 임금과의 대화에서 『춘추좌전』과 『시경』의 문구를 들어 왕(王)·패(覇)의 구별을 분명히 하면서 설복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미 오경사상이 지식인들에게 습득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n또한 박제상은 일본에 가 있던 왕제 미사흔(未斯欣)을 권도(權道)로써 귀환시키고 순사(殉死)함으로써 그의 지략과 용기를 보여주었다.\n둘째 신라는 발전해가면서 국가적 체통을 확립시키기 위해 유교 문화를 이용하였다. 『춘추전』과 삼례(三禮) 등의 경전에 있는 사상을 활용하였다.\n22대 지증왕대에 이르면 국호를 ‘신라’라 확정하고,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이사금으로 부르던 임금의 칭호를 중국식인 ‘왕’으로 부르도록 했고(503), 지증왕 때까지 존속되었던 옛 풍습인 순장제도를 폐지했으며(502), 상복법을 제정·공포하였다(504).\n또한 이사부(異斯夫)로 하여금 ‘군주(軍主)’를 삼았고(505), 왕이 죽자 처음으로 시호를 사용해 ‘지증(智證)’이라 하였다.\n다음 임금인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공복을 제정했으며(520), 연호를 사용해 ‘건원(建元)’이라 하였다(514). 이와 같은 사실에서 유교사상이 국가 제도에 적용된 것을 알 수 있다.\n셋째 신라의 고비(古碑)에 새겨진 유교사상에 대한 문자와 형상이다. 진흥왕은 신라의 중흥지조(中興之祖)로서 사방으로 경계를 확장해 서북으로는 한강하류에서 서해안에 이르렀고, 동북으로는 함남지방까지 진출해 경계를 획정하였다.\n그가 남긴 네 곳의 순수비(경상남도의 창녕비, 서울의 북한산비, 함경남도의 마운령 및 황초령비)에는 ‘순풍(純風)’·‘현화(玄化)’ 등 재래의 고신도적 요소와 함께, ‘제왕건호(帝王建號)’의 취지로서 『논어』 헌문편(憲問篇)에서 인용된 “제 몸을 닦음으로써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修己以安百姓).”는 구절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수기치인이라는 유교의 정교이념(政敎理念)을 뚜렷이 부각시키는 것이다.\n그 밖에도 ‘충신정성(忠信精誠)’·‘용적강전(勇敵强戰)’·‘위국진절(危國盡節)’ 등 국가를 보위하고 국력을 신장하는데 요망되는 정신을 고취하였다.\n경주의 태종무열왕의 능비를 보면, 비신은 없어지고 밑에 거북 모양의 기대(基臺)와 육룡(六龍)으로 된 관만이 올려져 있다.\n여기에서 용과 거북은 『주역』 음양사상의 상징이며, 육룡은 『주역』 건괘 육효로서 임금을 상징하고 있다. 괘 단전에 “때에 맞춰 육룡을 타고 하늘을 달린다(時乘六龍以御天).”고 했으니, 고대로부터 『주역』이 국가적 차원에서 응용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n『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문무왕의 해중릉을 바라보고 있는 ‘이현대(利見臺)’ 역시 『주역』 건괘의 이(二), 오효(五爻)의 ‘이현대인(利見大人)’에서 따온 것으로 문무왕을 대인으로 여겨 그와 같은 명칭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n넷째 신라의 화랑도와 유교사상과의 관계이다. 진흥왕대에 이르러 크게 융성했던 화랑도는 100여 년 뒤에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었다.\n『삼국유사』에 의하면, 화랑도는 본래 ‘사람들을 모아 선비를 선발할 목적으로’ 효제충신으로 교육했다고 한다.\n『삼국사기』에 의하면, 김대문(金大問)은 『화랑세기(花郎世記)』에서 ‘현좌충신(賢佐忠臣)’과 ‘양장용졸(良將勇卒)’이 여기서 배출되었다고 기록했다고 한다.\n흔히 화랑도 정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충·효·신·용·지를 내용으로 하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들고 있다.\n그런데 원광법사는 “유술(儒術)에 크게 통하였다(삼국유사).”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세속오계에도 유교적 색채를 볼 수 있다. 세속오계와 유사한 내용을 『예기』 제의편(祭義篇)에서 볼 수 있다.\n그곳에서는 효를 설명하면서, “거처를 엄숙히 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며, 임금에게 충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며, 벗에게 신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며, 전진(戰陣)에서 용기가 없으면 효가 아니다.”고 하였다.\n이와 같이 화랑도의 근본 이념인 ‘풍류(風流)’ 또는 ‘풍월도(風月道)’는 단순한 교훈으로 그치지 않고,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n화랑도는 고래의 고유한 정신을 바탕으로 유·불·도의 기본 취지를 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崔致遠,鸞郎碑序). 화랑들의 체험 세계는 인정적·윤리적이면서도 신이(神異)한 요소를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론으로 단일화시키기 어렵다.\n화랑도의 정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미워하고 선하게 하며,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화순하게 하니, 오상(五常)·육예(六藝)와 삼사(三師)·육정(六正)이 그 시대에 널리 행해졌다(『삼국유사』).”는 데서 볼 수 있다.\n또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화랑들이 하늘에 맹서해 『시경』·『상서』·『예기』 등을 배우기를 결의하는 글이 새겨져 있는 점으로 보아, 화랑도와 유교와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볼 수 있다.\n다섯째 ‘국학’에서의 경전 교육과 유교적 학술 문화이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중국과의 문화 교류를 보다 직접적으로 확대시켜 갔다.\n신문왕 2년(682)에는 예부(禮部)에 ‘국학’을 설치하였다. 신라의 대학 설립은 비교적 늦었으나, 당시 발달한 형태의 당제(唐制)를 본떠서 만들었다.\n『삼국사기』에 그 교과 과정이 기록되어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국학의 교과 내용은 오경 중심이었고, 『논어』·『효경』을 읽도록 하였다. 특히 오경·삼사·제자백가서에 모두 능한 사람은 발탁해 등용하였다. 그 밖에 산학(算學)도 가르쳤다.\n이미 진흥왕대 거칠부(居柒夫)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한데서 한문의 해독과 저술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문을 통한 학술 문화의 발달은 중국과의 외교 문서 작성에 활용되기도 하였다.\n문무왕은 삼국통일을 논공(論功)하면서 그것은 무력의 힘이 컸으나 강수(强首)가 외교 문서를 작성한 공을 빼놓을 수 없다고 칭송하였다.\n신라의 유학자로서 설총(薛聰)은 구경(九經)을 이두(吏讀)로 풀어 써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도록 학문의 종장(宗長)으로서 숭앙되었다. 그 밖의 유학자로서는 강수·최치원 등 10인이 꼽히고 있다.\n성덕왕 때(717)에 김수중(金守中)이 당에서 공자와 10철 그리고 72제자도를 가지고 귀국함에 이를 국학에 모셨다. 신라 후기로 갈수록 경술과 문장을 익히기 위해 입당 유학하는 일이 잦아지고 수많은 문인·학자들이 나오게 되었다.\n유교의 학술적 연마는 상층 계급과 지식층의 일이었지만 유교의 윤리적 규범은 민간에까지 널리 영향을 주어 계층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깊이 침투하였다.\n『삼국사기』에 실려있는 진덕여왕의 「태평송(太平頌)」, 충담사(忠談師)의 「안민가(安民歌)」, 고구려의 「온달전(溫達傳)」, 백제의 「도미전(都彌傳)」 그리고 신라의 「설씨녀(薛氏女)」 등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n이상에서 한국 상고 및 삼국시대의 상황을 개관하면서 유교사상이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대략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고찰된 내용을 토대로 한국 고대의 유교사상을 이해하는 데 유의할 점들을 지적해 보려고 한다.\n첫째 유교는 삼국 이전부터 전래하기 시작해 다른 종파 사상에 비해 가장 오래 되었고 끼친 영향 또한 매우 컸다. 유교가 본격적인 철학사상으로 발달한 것은 11세기 송대 이학(理學) 이후의 일이지만 유교적 문화를 담고 있는 사서와 사장(詞章)의 이해는 삼국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필수적 요소였다.\n삼국이 유교 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기는 다르지만, 유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변화는 지대한 것이었다. 국가의 조직, 법령의 제정, 국사의 편찬, 교육제도의 설립, 학술 문화의 진흥, 보국애민 정신의 고취, 국제 외교의 성취, 미풍양속과 윤리 도덕 등 유교가 고대 한국의 건설과 발전에 기여한 역할은 절대적이었다.\n둘째 삼국의 정치적 상황과 고유 문화에 따라 유교를 정착시키는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비교적 고조선시대의 고지(故地)에 근접해 발상(發祥)했으며 오래도록 전통적인 풍습을 바탕으로 성장한 나라이다.\n고구려는 중국과도 가까우나 부여 계통의 예손(裔孫)으로서 고대 동방 사회의 유속(遺俗)에 많이 젖어 있었다. 고구려는 전통적인 것에 뿌리를 두면서 중국적인 것을 복합하였다.\n중국의 역사서에 의하면, 고구려는 “그 풍속에 음사(淫祀)가 많으니,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가한신(可汗神) 그리고 기자신(箕子神)을 섬겼다. 나라의 동쪽에 대혈(大穴)이 있는데 신수(神隧)라 하였다. 이 모두를 10월이 되면 왕이 친히 제사드렸다(舊唐書 高麗).”고 한다. 또 “귀신을 공경하고 음사가 많다(隋書 東夷傳).”는 기록이 자주 띈다.\n한편 “혼례에 재물수수를 부끄럽게 여기고 부모와 부상(夫喪)에서는 그 복제가 화하(華夏)와 같다.”(周書 異域)고 하여 중국의 유교 문화와 상통함을 지적하면서도, “불법(佛法)을 좋아하고 음사(淫祀)를 더욱 좋아한다.”(同上)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 태도가 일정하지 않아 외래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을 아울러 수용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n또한 고구려는 국가 제도와 학술 문화 등을 국제적 수준으로 만들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兄死妻嫂).”, “그 풍속이 가무를 좋아해, 국중읍락(國中邑落)의 남녀가 매일 밤 떼로 모여 노래하고 놀이한다.……호음(好淫)해 남녀가 서로 꾀이기에 바쁘다.”고 기록되고 있는 만큼 전통적인 관습을 유지하고 있었다.\n따라서 당시의 중국 사가(史家)의 안목에서 볼 때 어떤 것은 유교 문화적으로 의젓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윤리 도덕이 없이 해괴망측한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민족성이 타율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활달한 것을 좋아하는 기질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n백제는 도읍을 여러 번 옮기면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였다. 백제는 옛 마한지방으로 남하해 잡다한 종족을 통합해 국가 발전을 이룩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n그러나 백제에는 마한의 유풍인 ‘소도지의(蘇塗之儀)’가 행해졌다고 최치원이 지증국사비(智證國師碑)에 기록했듯이, 삼한시대의 고속(古俗)이 계승되기도 하였다.\n백제는 유교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를 전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백제의 영지(領地)가 토속성이 짙었던 마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n『위지(魏志)』 동이전에 의하면, 마한은 “그 풍속이 강기(綱紀)가 없었다. 국읍에 주수(主帥)가 있었으나 읍락이 잡거(雜居)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였다. 조아려 절하는 예(跪拜之禮)도 없었고, 거처는 초옥목실(草屋木室)로 분총(墳塚)과 같이 생겼는데 출입문이 위로 나 있었다. 대가족이 함께 살았는데 장유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장사지낼 때 관(棺)은 있고 곽(槨)은 없었다.”고 하였다. 국가적 통제나 정제된 예속의 규범 이전의 본래의 자연 생활에 가까운 모습이다.\n이와는 달리 『주서』 백제조에 보면 “그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했고,……배알하는 예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경의를 표하였다. 혼례는 중국의 풍속과 거의 같았으며, 부모와 남편의 상에는 삼년복상하였다.”고 한다.\n백제는 유교를 기반으로 국가 체제를 갖추어 강성한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국가의 통제력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모든 제도를 구비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나라가 되었다.\n신라는 삼국의 동남벽지에 위치해 국가의 발전이 늦고 대륙과의 소통도 고구려와 백제의 매개를 힘입어야 했다. 신라가 고구려·백제와 나란히 국제적 수준으로 성장하기까지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n그러나 비교적 후기의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삼국이 통일될 즈음이 되었을 때 신라는 “풍속·형정·의복이 고구려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n또한 그 뒤 신라 문화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달라져서, 당 현종은 신라에 사신을 보낼 때 “신라는 군자지국(君子之國)이란 칭호를 듣고 있어서, 자못 문헌을 아는 것이 중국과 유사하다.……그곳에 가거든 경전의 뜻을 잘 천명하여 대국의 유교가 성함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는 기록이 보인다.\n신라는 소규모의 고유한 전통을 바탕으로 출발해 나름의 특성을 지니면서 성장하였다. 신라는 산신에게 제사지내기를 좋아했고, 일신·월신을 숭배하였다.\n또한 사람의 성에는 김·박 양성이 많은데 타성간에 혼인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관에다 염장(殮葬)했는데 분릉(墳陵)을 쌓았고, 왕과 부모처자의 상에는 1년 상을 지낸다고 하는 것은 신라의 고속(古俗)으로 오래 지속되었다.\n그리고 정사의 처리에서도 한갓 전제적 방법으로 수행되지 않았으니, 중대한 일이 있으면 여러 부파(部派)가 모여 합의·결정하는 전통이 있었다.\n『양서(梁書)』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엄중한 죄인을 판결할 때에는 제가(諸加)가 의논해 평결하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또한 신라의 화백제도(和白制度)에 대해 “일을 반드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였으니, 이를 화백이라 한다. 1인이라도 이의가 있으면 파의(罷議)하였다(唐書).”고 하였다.\n신라는 4세기 이후 내물·눌지·지증·진흥왕대를 거쳐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 고유한 습속을 바탕으로 외래 문물을 접촉하고 수용하였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고구려·백제가 붕괴됨으로써 중국과의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가 없어짐에 따라 중국과의 교류는 더욱 절실하게 되었다.\n동방에 삼국이 정립해 싸웠던 삼국시대에 중국은 동국(東國)보다도 복잡하였다. 후한이 멸망(220)한 뒤 당나라가 창건(618)될 때까지 약 400년간 중국은 가장 복잡한 시대였다.\n삼국시대(三國時代)를 거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과 동진(東晉) 및 송제양진(宋齊梁陳)과 북위서위(北魏西魏)의 남북조(南北朝) 그리고 수(隋)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륙은 어수선하였다.\n그러나 이러한 시기를 지나 통일된 당제국과 통일신라의 역사적 상황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한중 관계는 보다 안정적으로 되어갔으며, 신라는 유교 문화를 비롯한 중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대량 흡수하게 되었다.\n셋째 삼국시대에는 특정 문화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불·도를 골고루 섭취하였다. 학인(學人)들의 성향에 따라 유교에 치중하기도 하고 도·불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개인의 경우에도 여러 사상을 두루 섭렵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n고구려는 이미 유교 문화적 기반이 있었지만, 소수림왕 2년(372) 유교 경전을 위주로 하는 대학을 세웠고, 같은 해에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수입하였다.\n또한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于仲文)에게 준 시(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가운데 ‘천문’과 ‘지리’는 『주역』 계사전에서, ‘지족(知足)’은 『노자 도덕경』에서 유래한 용어이다.\n『일본서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승려로 일본 호류사(法隆寺) 금당벽화(金堂壁畫)를 그린 담징(曇徵)은 오경을 알고 있었다. 백제의 왕인박사는 일본 학문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유교서와 도가서를 전달한 사람으로 밝혀지고 있다.\n신라의 경우 신선을 숭상하고 불교를 좋아했던 진흥왕의 순수비에는 『논어』를 비롯한 유교적 색채가 짙은 용어들로 채워져 있다. 중국에 유학했던 원광법사는 “널리 삼장을 통하고 유술을 겸해 배웠고(博通三藏兼學儒術)”. 당나라에 걸병표(乞兵表)를 썼으며, ‘두루 유술에 통했다’고 한다.\n태종무열왕의 제2자인 김인문은 “유가의 책을 많이 읽었고 노장과 불교의 설을 두루 섭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n김지성(金志誠)은 일찍이 벼슬해 영반(榮班)을 역임했면서도, ‘오천언(五千言)의 도덕경’을 읽고 ‘십칠지(十七地)의 법문(法門)’을 탐구함으로써, ‘명위(名位)를 버리고 입현(入玄)하며’, ‘색공(色空)을 구멸(俱滅)’하고자 한 뜻을 명각(銘刻)하였다.\n이와 같은 사례는 고대에 외래 사상인 유·불·도가 학술과 수양과 신앙, 그리고 형이상의 심오한 진리와 현실적인 국가 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n넷째 한국 고대에 유교를 비롯한 외래 사상이 수용되었지만, 삼국은 주체성과 정통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삼국은 다같이 국가를 창건한 시조를 신격화해 제왕의 행사로서 경배하고 제사해 국가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근원적 구심점으로 삼았다.\n고주몽(高朱蒙)과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신화가 일찍부터 전해왔듯이 각국의 시조묘 설치는 매우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대무신왕 3년(20)에 동명왕묘를 세웠고, 영류왕 2년(619)에 왕이 졸본(卒本)에 가서 제사드렸다.\n백제는 온조왕 즉위년(서기전 18)에 동명왕묘를 세웠으며, 아신왕 2년(393)과 전지왕 2년(406)에 각각 왕이 동명왕묘에 배알하고 남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했던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경조숭천(敬祖崇天)의 의례가 중국적인 방식과 습합되어 시행되었다.\n신라의 경우 정식으로 시조묘를 세운 것은 제2대 남해왕 3년(6)으로서 42대 흥덕왕 9년에 이르기까지 왕이 시조묘에 배알했다는 기록이 보인다.\n21대 소지왕 9년(487)에 신라 시조의 탄생지인 내을(奈乙)에 신궁을 지은 이래 55대 경애왕 2년(925)에 이르기까지 20대에 걸쳐 신궁에 관한 기사가 나타나고 있다.\n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신묘(神廟)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부여신이라 하여 부인상(婦人像)으로 하백녀(河伯女)를 상징하고, 다른 한 곳은 등고신(登高神)이라 하여 주몽을 뜻한다고 한다(周書). 또한 10월 제천(祭天)행사는 유명하다.\n백제 역시 매 4중월(仲月)에 왕이 ‘천 및 오제지신(五帝之神)’에게 제사지내고, 연 4회 시조신에게 제사지냈다 한다(隋書 東夷傳).\n그 밖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험한 비적(祕蹟)에 힘입어 재상을 뽑았던 백제의 ‘정사암(政事嵓)’과 나라가 성할 때 신인(神人)이 거주·내왕했다는 ‘3산(三山:日山·吳山·浮山)’, 국가대사를 의논했던 신라의 ‘사영지(四靈地 : 東 靑松山·南 于知山·西 皮田·北 金剛山)’, 임신서기석에 새겨진 하늘 앞에 맹세하는 신라 청년들의 생생한 모습 등은 삼국시대에 영산을 매개로 하늘과 소통하고자 했던 고인들의 갈망을 볼 수 있다.\n이상 고구려·백제·신라는 자기의 시조신을 숭배하고 하늘제사를 드리는 등 국가의 명운(命運)을 빌고 공동체의 기반을 다졌다. 삼국시대의 중기 이후 통일기에 가까워질수록 중국 유교식 제도가 유입되었지만, 삼국은 모두 국가의 기원과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고 주체성에 입각해 외래 문물을 받아들였다.\n다섯째 유교와 화랑도의 관련성을 성찰함으로써 외래 사상과 고유 사상이 융합하는 뚜렷한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화랑도’란 후세에 붙인 이름이고 원래는 풍류(삼국사기·삼국유사) 또는 풍월도(삼국유사)라 했으며, 이것이 화랑도 정신의 뿌리였다.\n화랑 가운데 대표자를 국선(國仙)이라 하였다. 최치원 당시만 하더라도 화랑도의 역사를 적은 『선사(仙史)』가 있었다.\n최초의 국선인 설원랑(薛原郎)의 비가 명주(溟州)에 있었고, 후세의 난랑(鸞郎)의 경우 최치원과 같은 명망있는 학자가 비문을 쓸 만큼 존숭되었다. 국민들이 화랑 국선을 매우 존경했을 만큼 그 위치는 범상하지 않았다.\n삼국이 통일되기 1세기 전에 화랑도를 중창한 진흥왕은 “나라를 중흥시키려면 모름지기 풍월도를 먼저 해야 한다(삼국유사).”고 하였다. 그 당시에 이미 있었던 풍월도와 유사한 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풍월도는 이미 유교와 도교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n진흥왕 당대에 외래의 3교를 통합해 ‘풍류’ 또는 ‘풍월도’가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치원의 기록에 의하면, ‘풍류’ 속에는 유·불·도 3교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화랑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되어 오면서 유·불·도의 내용을 흡수해 ‘현묘지도(玄妙之道)’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n또한 김부식이 ‘풍류’를 기록할 때 『삼국사기』 진흥왕 37년조에 화랑도를 인용했고, 일연(一然)도 『삼국유사』에서 풍월도의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풍류는 본래 공자·노자·석가의 교지(敎旨)를 포함하고 있다고 추정된다.\n유교사상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의 현상과 반응을 일으켰다. 유교는 ‘유교인’이라는 특정 집단이나 종파성을 띠지 않았다. 유학자라고 해도 타사상과 모순·대립·배척·갈등의 관계에 있지 않고, 한 사람이 다른 것들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n화랑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풍류가 한국고유의 전통에 연원하는지 유·불·도 사상의 묘합에서 성장된 것인지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지만, 유·불·도 사상이 그 속에는 혼입되어 있다.\n여러 사상과 융합되어 있었던 유교는 개인의 교양·가정 도덕과 사회 윤리·정치 제도·교육·문화·국가의 방위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기여하였다.\n한국사상의 유교화인가? 유교의 한국화인가? 중국 유교와 한국 유교는 사상사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는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기기는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랜 기간을 거쳐 유교는 이미 한국에 토착화되고 체질화되었다는 사실이다.\n고려시대와 유교\n고려는 10세기 초 태조 왕건(918∼943)에 의해 창건되어 14세기말 공양왕(1389∼1392)까지 475년 간 지속되었다. 고려가 건국할 무렵에는 신라가 후백제와 태봉(泰封, 또는 후고구려)으로 분열되어 있었다.\n왕건은 태봉의 장수로서 왕으로 추대되어 고려를 창업하였다. 고려에 신라가 부속되고 후백제가 항복함으로써(936) 삼국은 다시금 통일된 고려국으로 탄생하였다.\n고려시대에 중국과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매우 복잡한 시기였다. 당나라의 멸망(907),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 북방 거란족(契丹族)이 요나라를 세움(916∼1125), 중원(中原)에 송나라 건국(960). 여진족의 금 건국(1115), 북송의 멸망(1127), 다시 몽고제국(元) 성립(1206), 금나라 멸망(1234), 남송의 멸망(1279), 명나라 건국(1368), 원나라 멸망(1368) 등 한족과 동북의 주변 제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따라서 고려왕조의 대외 관계도 정치·군사적으로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n고려의 성립은 한국 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당시 분열된 후삼국을 통일시켰다. 둘째는 원삼국(原三國)으로의 귀속적 성향을 불식하고 완전히 통합된 단일 민족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과거의 신라국이 아닌 고려국의 처지에서 원삼국 시대의 실체를 근본적으로 파악해 민족의 뿌리를 분명히 찾고 삼국의 ‘본기(本紀)’를 객관적·사실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는 점이다.\n통일국가인 고려는 수많은 내우외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려 초부터 긴장 관계에 있던 거란은 성종∼현종대에 걸쳐 10에서 40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쳐들어왔다. 화전양면(和戰兩面)으로 극복하기는 했지만, 요의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는 등 외부의 위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다.\n후기의 몽고 침입은 고종 18년(1231)에 시작해 고종 44년의 제7차까지 침구(侵寇)하였다. 고려는 개경환도에 이르기까지 40년 간 항쟁했지만, 국토의 유린과 피해는 헤아릴 수 없었다. 1259년 대원(對元) 항복 의사 전달에 이어 원종 11년(1270) 개경 환도 이후 100년 간 몽고의 간섭과 압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n또한 국내적으로도 고려 중기를 지나 수많은 반란을 겪어야 했다. 인종 때 이자겸(李資謙)의 난(1127), 묘청(妙淸)의 난(1135), 의종(1170) 및 명종(1173) 때 정중부(鄭仲夫) 등의 난이 있었다.\n마침내 명종 26년(1196)에 최충헌(崔忠獻)으로부터 시작되어 최의(崔竩)의 사망에 이르기까지(1258) 60여 년 동안 최씨 정권이 들어서서 일종의 막부정치(幕府政治)가 실시되었다. 그 사이 국내 곳곳에서 일어났던 공·사노비·농민·군인 등의 민란과 삼별초의 난 등 수 많은 사태가 일어났다.\n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국난을 극복하고 약 500년 동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삼국시대 이래의 축적된 문화의 계승과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였다. 고려는 유교적 요소를 계승하고 당·송의 외래 문화를 받아들여 사회 국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치·교육·윤리·학술·문화 등을 더욱 기구화, 조직화, 기능화하였다.\n고려 말에 주자학이 들어와 기능하기 이전의 유교는 불교·도교 및 그 밖의 토속신앙과 갈등을 빚지 않고 공존·교섭·혼합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송대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신진 사류들의 현실 의식과 유불도관(儒佛道觀)은 점차 비판적으로 변하였다.\n고려시대의 유교를 관찰하기 위해 편의상 전후기로 분류하고, 다시 전기를 태조(918∼943)부터 정종(1034∼1046)까지를 제1기로, 문종(1046∼1083)부터 의종(1146∼1170)까지를 제2기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다시 후기를 명종(1170∼1197)부터 원종(1259∼1274)까지를 제3기로, 충렬왕(1274∼1308)부터 공양왕(1389∼1392)까지를 제4기로 구분하였다.\n1. 고려 전기의 유교\n1.1. 제1기\n태조∼정종의 129년 간이다. 태조는 후삼국을 평정한 다음 바로 『정계(政誡)』 1권과 『계백료서(誡百寮書)』 8편을 친히 지어 반포하였다(936). 이로부터 태조 왕건의 문한 능력(文翰能力)을 알 수 있다.\n태조의 「십훈요(十訓要)」는 고려시대의 헌장이라고 일컬어지며, 고려 일대의 사상 풍토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태조는 고려의 창업에 즈음하여 유·불·도 및 재래의 토속신앙 등을 폭넓게 포섭해 정치를 안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였다.\n「십훈요」에 의하면, 고려의 창업은 부처의 힘과 삼한산천(三韓山川)의 음우(陰佑)에 힘입어 이룬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교사원(禪敎寺院)의 건설과 연등·팔관을 행하고, 도교적 풍수설을 원용하는 등 종교적 기반 위에서 국풍을 세워나갈 것을 당부하였다.\n그러나 정치의 이념은 유교에서 구하였다. 「십훈요」의 3·4·7·9·10조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즉 왕위계승에서 재래의 골품제도와는 달리 요순의 선양설(禪讓說)을 이상적인 것으로 찬양하였다. 이것은 『예기』의 이른바 세급(世及)의 원리 즉 적자전국(適子傳國)을 원칙으로 하면서, 형제수선(兄弟授禪)도 함께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n또한 봉록제도(俸祿制度)의 합리적 보장과 경요박부(輕徭薄賦)를 실시해 백성에게 인정(仁政)을 실시할 것을 말하였다. 특히 제10조에 이르러서는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옛 것을 거울삼고 오늘날을 경계하라”고 당부하면서 후세의 왕자들로 하여금 『서경』에 나오는 주공(周公)의 ‘무일편(無逸篇)’을 써서 걸어놓고 출입할 때마다 살펴 위정의 표본으로 삼도록 당부하였다.\n태조의 유교적 문치주의는 4대 광종과 6대 성종대에 계승·발전된다. 광종(949∼975)은 당대(唐代)의 정치적 요전(要典)인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숙독했다고 한다. 후주인(後周人) 쌍기(雙冀)를 중용하고 그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도를 설치해 진사과·명경과·의복(醫卜) 등을 두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과거제도의 시작이었다.\n이는 후백제와 고구려계의 지식인들까지도 고려 관료제의 내부로 흡수시키는 방도가 되었고, 지방 호족들의 중앙 관료화를 촉진해, 유교적 문치주의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백관의 공복을 제정해 중화(中華)의 제도를 좇도록 한 것 또한 특기할만하다.\n성종은 유교를 숭상해 공자와 주공의 풍을 일으키고, 당우(唐虞)의 정치를 이루려고 하였다. 성종조의 유교정치는 성종의 유교적 이상주의와 최승로(崔承老)의 유교적 합리주의가 결합해 이루어진 것이다.\n최승로는 그의 유명한 「시무28조」에서 “불교는 수신(修身)의 근본이요 내생(來生)의 자(資)이며, 유교는 치국의 근본이요 현세의 무(務)이다.”고 하여 유교를 기반으로 한 정교(政敎)의 시행을 강력히 주장하였다.\n그는 태조이래 제5대 경종에 이르기까지 군왕들의 득실·선악을 비평적으로 개진하였다. 그는 태조의 창업 정신을 존중하고 불교의 교리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n그러나 과다한 불교 행사나 고래의 토속 행사를 비판해 국가의 중요 행사였던 연등과 팔관을 폐지하게 하는 등, 경제적 낭비를 일으키는 불교신앙의 파생적 부작용과 도참·귀신·양재(禳災) 등 도교적이며 토속적인 민간신앙까지도 타파하고자 하였다.\n태조대에는 서경(西京)에 학교를 세웠고, 성종대에는 동 6년(987)에 경학박사 1인과 의학박사 1인을 12목에 두도록 하였다. 성종 11년에는 중앙에 국자감(國子監)을 창설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종합대학으로 국자학(國子學)·태학(太學)·사문학(四門學) 등으로 조직되었다. 국자감에서는 유교경전을 기본교재로 교육하여 유교문화를 크게 진흥하였다.\n성종은 효를 강조해 치국의 근본은 효에 있다 하여 누구나 육경과 삼례를 통해 효로 돌아가야 한다고 권장하였다. 실제로 사회 교화에도 힘써 노약자를 구휼하게 하고 효자·순손(順孫)과 의부·절부를 표창하였다.\n또한 성종은 송나라와 문화 교류를 텄으며, 박사 임노성(任老成)은 송으로부터 대묘당도(大廟堂圖)·사직당도(社稷堂圖) 및 기(記)·문선왕묘도(文宣王廟圖)·제기도(祭器圖)·칠십이현찬기(七十二賢贊記) 등을 가져다가 헌상하였다. 이와 같이 성종대에 와서 사직단과 종묘가 세워지고 학교제도가 완비되는 등 유교 국가의 체모가 형성되었다.\n8대 현종 때에는 태조 이후 7대에 이르는 국사(國史)의 찬수에 착수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신라의 선철 최치원을 동 11년 그리고 설총을 동 13년에 각기 종향하였다. 이는 동방의 승무(陞廡) 18현의 전통을 이루는 효시로서 한국 유교사의 맥을 형성하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n성종∼현종대에는 수 차례의 거란 침략으로 나라가 전쟁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유교문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진흥되고 체제가 잡혀갔다.\n1.2. 제2기\n문종∼의종의 125년 간이다. 첫째 성종대에 국자감이 관학(官學)으로 설치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침체하고 사학이 크게 일어난다. 그 뚜렷한 사례로 11대 문종대(1046∼1083)를 즈음한 사숙(私塾)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이것이 이른 바 12공도(十二公徒)이다. 그 가운데에서 최충(崔冲)의 문헌공도(文憲公徒)가 가장 규모가 컸고 관학을 압도해 그 기능을 대신할 정도였다.\n최충의 9재(九齋)와 12공도를 통해 구경삼사(九經三史)를 더욱 익혀 한문 문장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시문·사장에 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를 보아 출사(出仕)하기도 하였다. 최충은 ‘해동공자’라 일컬을 정도였고, 최충의 9재는 우리 나라 사학의 효시로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n사학의 발달에 맞추어 국가에서도 관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6대 예종(1105∼1122)은 국자감에 7재를 두었다. 그 가운데 6재는 유학재(儒學齋)라 하여 각기 경전을 가르쳤다. 그 명칭과 내용은 여택(麗澤, 周易)·대빙(待聘, 尙書)·경덕(經德, 毛詩)·구인(求仁, 周禮)·복응(服膺, 載禮)·양정(養正, 春秋)이었고, 나머지 1재는 무학재(武學齋)라 하였다.\n예종은 스스로 선성(先聖)에게 헌작했을 뿐만 아니라, 백관 및 생원 700인과 더불어 『상서』 강의를 청하기도 했고, 국학의 장학 재단으로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해 학술 진흥과 교육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n이를 통해 김인존(金仁存)·박승중(朴昇中)·김부식 등 수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시정책요』의 찬술·『정관정요』의 주석·『삼국사기』의 찬술·『역』과 『춘추』에 대한 저술 등의 학술 성과가 이루어지게 되었다.\n인종대(1122∼1146)에는 학교 교육을 더욱 공고히 하여 학제를 상정(詳定)하는 한편, 과거제도 역시 확장·보완해 내실을 기하였다. 경내(京內)의 국자감에는 육학(六學 : 國子學·大學·四門學·律學·書學·算學)을 두고, 지방의 주·군·현에는 향학(鄕學)을 두었다.\n품계가 높은 문무관의 자제가 배우는 국자학·대학·사문학에서는 구경을 대·중·소경으로 나누어 가르쳤고 『논어』·『효경』을 필수로 하였다. 8품 이하의 자제와 서인층에게는 율학·산학·서학을 가르쳐 교육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유교 교육을 상위에 놓아 중시했던 인식 태도를 볼 수 있다.\n또한 과거제도 역시 내용이 확장되어 제술과(製述科)·명경과(明經科) 이외에 법(法)·산(算)·서(書) 등 기타 잡업(雜業)에까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문풍은 전성기에 달했지만, 과거시험에서 명경보다 제술을 숭상해 벼슬길에 오르는 일에 힘쓰고, 경학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글짓기에 종사하는 경박부화(輕薄浮華)의 풍조를 낳게 되었다.\n조정에서는 문인을 우대하고 무인을 멸시해 의종 말년에 이르러 무인 정중부 등에 의한 경계(庚癸)의 난(1170, 1173)이 폭발하게 하였다. 이때 많은 문사들이 죽고 일시에 문풍이 사라지게 되었다.\n2. 고려 후기의 유교\n2.1. 제3기\n명종∼원종의 105년 간이다. 이 시대에는 무인들의 계사란(癸巳亂, 명종 3년, 1173) 이래 정중부·이의방(李義方)·경대승(慶大升)·이의민(李義旼) 등이 쟁패해 번갈아 득세하였다.\n명종 26년에 최충헌이 집권해 고종 45년(1258) 최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완전한 무인정권 시대였다. 그 뒤 원종 11년(1270) 무인 세력이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100년간은 국가가 온통 무인의 지배하에 있었다.\n난의 초기에는 많은 선비가 죽거나 산간 불사(佛寺)로 도망했고, 왕성했던 고려의 문풍은 멸절되다시피 하였다. 그 뒤 최충헌·최이(崔怡)의 보호 정책에 의해 일부 문사들이 차츰 소생했으나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쇠미한 실정이었다. 더구나 최씨 정권하의 30년 간은 몽고 침략군과의 항쟁기였고, 그 뒤 100년 간 고려는 몽고의 정치적 지배를 받게 되었다.\n이 시기의 대표적 문사로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최자(崔滋)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고급 관료로서 벼슬한 적도 있었지만, 유교 정신에 투철한 경세제민의 의기에 찬 유자라기보다 유교적 교양을 갖추고 한문에 능숙한 문인이요 묵객이었다.\n이인로는 저서로 『은대집(銀臺集)』 20권, 『후집(後集)』 4권, 『쌍명재집(雙明齋集)』 3권이 있었고, 현재는 『파한집』 3권이 전한다.\n그는 시세를 보아 벼슬을 하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도피적 경향을 띠었다. 그와 종유(從遊)하던 이른 바 망년우(忘年友) 7인을 ‘강좌칠현(江左七賢)’이라 불렀다. 이는 진대(晉代)의 청담(淸談)을 일삼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n문하시랑에 올랐던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을 지었고, 「동명왕편(東明王篇)」의 작자로 유명하다. 그 역시 ‘강좌칠현’과 교유하였다. 「외부(畏賦)」·「방선부(防蟬賦)」 등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당시의 파행적 세태를 비평·풍자하였다.\n최자는 『보한집』의 작자로 문장의 조탁에 종사하였다. 그는 시를 지어 음풍농월이나 일삼았던 문인들의 폐습을 지적하였다. 제왕은 마땅히 경사(經史)를 근본으로 정사를 펴고 풍화성속(風化成俗)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평장사(平章事)·지공거(知貢擧) 등 상당한 벼슬을 하였다.\n지금까지 열거했던 이들은 빼어난 문장가였지만 경술(經術)보다는 사장(詞章)을 숭상했던 풍조를 벗어날 수 없었다.\n2.2. 제4기\n충렬왕∼공양왕의 고려 말 119년 간이다. 첫째로 이 시기는 자주성을 잃고 100여 년에 걸쳐 원의 지배 하에 통제와 간섭을 받던 때이다.\n고려는 충렬왕 때부터 원의 공주나 몽고 여자를 왕비로 삼았기 때문에, 고려왕은 원 황실의 사위요 외손이 됨으로써 고려는 부마국(駙馬國)이 되었다.\n고려 땅의 일부는 원의 직속령이 되기도 했는데 공민왕 때 탈환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그것이다. 왕세자는 연경(燕京)에 머물러 인질이 되었고, 즉위한 뒤에도 여러 번 왕래하며 수년간 개경(開京)을 비우기도 하였다.\n왕의 칭호나 묘호도 격하되었고, 관제도 통폐합되었으며, 임금이 몽고식 변발과 복식을 했고, 몽고말을 쓰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인적·물적 징구(徵求)로 나라사람들을 궁핍하게 하였다. 고려는 구차스러운 안정을 얻었고, ‘고려’라는 국호를 간신히 존손시켰을 뿐이었다.\n둘째로 정주 성리학이 전래되고 보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원과의 관계가 아물어감에 따라 왕실과 더불어 관인 지식층의 연경 왕래의 길이 트여 문화 교류가 다시 이루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당시 중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던 송학 즉 정주학(程朱學)이 원경(元京)을 통해 고려에 수입되었다.\n충렬왕 6년(1280)에 국자학생을 위해 최옹(崔雍) 등 7인을 경사교수(經史敎授)에 임명했고, 동 22년(1296)에 경사교수도감을 두고 7품 이상의 관인(官人)을 학습하게 하였다. 이러한 계속적 조처는 침체되었던 경사와 학술을 진흥시키려는 의도였다.\n우리 나라에 주자학을 최초로 전래해온 안향(安珦)은 국학의 침체를 개탄하고 유교를 중흥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원나라의 연경에 가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지고 돌아왔으며, 주자의 ‘신서(新書)’를 접하고는, 이것이 학문의 정맥(正脈)이라 하여 연구에 몰두해 새로운 학풍을 일으켰다.\n안향은 국학에 섬학전(膽學錢)을 두었고, 중국으로부터 공자와 72현의 초상 및 제기·악기와 경사 등의 문헌을 구해왔으며, 대성전(大成殿)을 완성하였다. 안향에 의해 주자학을 기본으로 경사를 널리 탐구하는 학문 전통이 뿌리내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n백이정(白頤正)은 안향에 이어서 연경에 10여 년 동안 머무르며 정주 성리학을 연구했고, 귀국 후 이제현·박충좌(朴忠佐)와 같은 선비들에게 그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 밖에 우탁(禹倬)은 정자의 『역전(易傳)』을 연구했고, 권보(權溥)는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간행했으며, 이곡(李穀)은 도학을 연구하였다.\n셋째 고려 말의 주자학의 전개와 사회적 기능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색은 이곡의 아들로서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태어나 조선 태조 5년(1396)에 생애를 마쳤다. 그는 주자학이 들어온 지 50년이 지난 때로부터 고려조의 마지막 50년에 활동했던 전환기적 시대의 역사적 증인이다.\n이색은 학문의 폭이 넓어서 경학과 성리학·도학과 문학·유학과 불교·학문과 벼슬을 겸비한 홍유석학(鴻儒碩學)이었다. 신구의 학문을 한 몸에 지니고 전후시대를 연결해 국학을 중심으로 후진을 양성하였다.\n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은 모두 그 밑에서 교수되었으며, 정도전·권근(權近)·하륜(河崙)·길재(吉再) 등의 수많은 명류(名流)가 모두 그의 문인이었다. 이들은 여말의 신진학자들로서 시대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역사적 인물들이다. 이제 제4기, 특히 그 후기에 이루어졌던 특징을 주자학과 관련해 살펴보자.\n① 불교에 대한 교단적·교리적 비판이다. 종래에는 유·불·도가 상충하는 관계에 있지는 않았지만, 유교를 높이고 이단을 배척하는 주자학이 들어온 후에 사정이 달라졌다.\n안향은 그의 「유국자제생문(諭國子諸生文)」에서 “성인의 도는 일용윤리(日用倫理)에 불과하다.……저 불자들은 부모를 버리고 집을 나가고(棄親出家) 멸륜패의(蔑倫悖義)하니 곧 이적(夷狄)의 유(類)이다.……내가 일찍이 중국에서 주자의 저술을 얻어보니 성인의 도를 밝히고 선불지학(禪佛之學)을 물리쳤으니, 공이 족히 공자와 짝할 만하다. 공자의 도를 배우려고 한다면 먼저 주자를 배우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제생은 ‘신서(新書)’를 열심히 배우도록 하라”고 하였다.\n이색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불교 자체에 대해서는 찬양하지만, 불교 교단의 팽창과 타락상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판하고 그 폐단의 시정을 주장하였다.\n정몽주는 고려 말 유학의 종장으로서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祖)’라는 칭호를 듣는다. 그는 불교가 현실 세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론을 결핍하고 있다고 보아 불교의 정치 참여를 강력히 반대하였다.\n박사 김초(金貂)와 유생 박초(朴礎)는 불교를 반인륜적·반국가적인 것으로 규정해 척결해야 한다는 극렬한 주장을 펼쳤다. 이는 불교를 신봉하고 불계(佛戒)를 받았던 역대 제왕의 눈에 거슬려 처벌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정도전은 저술을 통해 불교 배척의 이론을 폈으며, 권근은 여기에 자세한 설명과 주석을 붙였다.\n이와 같이 친불유자(親佛儒者)주 04)·지불유자(知佛儒者)주 05)·반불유자(反佛儒者)주 06)를 막론하고 고려 말의 주자학파는 당시의 불교에 대해 비판적·배척적 위치에 있었다.\n② 사장(詞章) 위주의 ‘말학(末學)’으로부터 경학을 중시하고 ‘근본’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인종대에 송나라 사람인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당시 고려의 문풍에 대해 “성률(聲律)을 숭상하고 경학에는 공부가 없었다. 문장을 보면 당의 여폐(餘弊)를 방불하였다.”고 하였다.\n송의 문풍이 들어오면서 문구의 조탁에 얽매이던 사륙체 따위의 풍습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김부식·김부철(金副轍) 등은 동파문학(東坡文學)의 영향을 받아 신선미를 갖게 되었는가 하면, 임춘(林椿)·최자 등은 경사문체(經史文體)나 한대의 고문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n고려시대는 사장이 발달한 시대로서 유자들도 문장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특히 무신집권 하에서 문예 방면에 힘쓰고 문장의 조탁으로 흐르는 일은 여전하였다.\n그러나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사류들은 모두 부허(浮虛)한 사장지학(詞章之學)에 힘쓰기를 그만두고 질실(質實)한 경학에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n안향은 처음부터 육경과 사적(史籍) 그리고 경사와 주자서 등을 중국에서 구해 와 국학에 존치(存置)하였다. 그는 학교를 일으키고, 경사와 주자서의 독서를 강조하였다.\n우탁은 “경사(經史)에 밝고 특히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다(고려사 열전)”. 이제현은 “사장을 좇던 이들이 모두 명경지사(明經之士)가 되도록 해야 할 것(역옹패설)”이며, “집집마다 정주(程朱)의 책이 있어 성리지학(性理之學)과 교지지도(敎之之道)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익재난고)”이라고 하였다.\n이색은 당대 제1의 문장가였지만 사람들이 “시를 외우고 글을 읽되(誦詩讀書) 도를 좋아함이 깊지 못하고, 번화하게 꾸미는 다툼이 이미 심하다. 장구(章句)를 조탁함이 너무 지나치니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공은 어디에 있겠는가(고려사 열전).”라고 하였다. 그는 성리설을 이해했고, 『주역』·『중용』 같은 경서를 풀어 논술하기도 하였다.\n정몽주는 “사장은 말예(末藝)이며, 신심(身心)의 학이 있으니, 그 학이 『대학』·『중용』에 있다.”고 하였다.\n정도전은 이색에 대해 성균관을 이끌면서 “성리학을 밝히고 부화한 풍속을 내침에 선생을 발탁하여 학관(學官)을 삼고 경학을 강론하게 하였다(圃隱奏使稿書).”고 기록하였다. 조준(趙浚)은 향교의 교육에서 사서오경을 읽히고 사장읽기를 허락하지 말 것을 건의하였다.\n고려 명인 중에 문장가 아닌 이가 없겠지만, 고려 말의 주자학자들은 한결같이 사장의 말폐를 지적하고 경학 장려를 주장하였다.\n③ 고려 말의 사류들은 화이론적 역사관을 적용하고 새로운 국제 관계를 정립함으로써 고려의 국권 회복을 도모하였다. 고려는 국초부터 대외 관계에서 중국의 선진 문화는 받아들이지만, 야만적인 정복 국가에 대해서는 결연히 배격하는 입장을 취하였다.\n태조 「십훈요」에서도 옛부터 우리는 ‘당풍(唐風)’을 사모하여 예악문물이 그 제도를 따랐음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 고려는 지역과 인성이 각기 달라 구차스럽게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고도의 문명을 받아들이되 민족의 체질에 맞도록 할 것을 강조하였다.\n이런 점에서 태조는 거란은 “금수의 나라요, 풍속과 언어도 다르니 의관제도(衣冠制度)를 본받지 말라”는 유지를 내렸다.\n또한 태조는 폭력으로 침략을 일삼은 거란에 대해 폐물(幣物)을 거절하고 사자(使者)를 잡아 가두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 뒤 성종·현종 때는 거란의 침략을 물리쳤다. 주변에서 송·금이 일어나고, 금이 북송을 멸했어도 고려는 의연하였다.\n고려는 태조의 창업 정신을 지켜왔지만, 원의 침략으로 40년간의 오랜 항쟁 끝에 물리적으로 굴복하였다. 이후 왕실을 비롯한 귀족층은 정치적으로 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n북경을 수도로 하는 원나라는 중국 문화를 기초로 하여 발전해 갈 수밖에 없었다. 원의 수도인 북경[燕京]을 통해 입수된 주자학은 춘추의리학을 바탕으로 한 존왕양이의 화이론적 민족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는 뒷날 원세력을 몰아내고 명과 친화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게 되는 이론적인 근거가 되었다.\n실제로 시세가 변해 중국에는 명이 건국되었고(1368), 고려는 명 태조에게 사빙(使聘)을 보냈다. 쇠미해진 원은 북쪽의 개평(開平)으로 쫓겨 북원(北元)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n이에 앞서 공민왕은 즉위 년에 몽고식 체두변발(剃頭辮髮)을 고쳤으며, 동 5년에는 원의 감독관청이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철폐하고 원의 직속령으로 있던 동북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회복하고, 원의 연호를 폐지하였다.\n또한 행패가 심했던 친원일파를 숙청하고, 구세력인 권문세가를 억압해 대내적인 개혁과 더불어 친명반원 정책을 수행함으로써 국가 체제를 전향적으로 구축해가고 있었다.\n주자학을 기반으로 하는 신흥사대부들은 『통감강목(通鑑綱目)』을 이미 읽고 있었으며, 이색·이숭인은 왕명에 의해 강목의 정신에 입각해 고려 역사를 편찬하기도 하였다.\n그들은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복속시켰던 원을 배격하고, 인의예악(仁義禮樂)의 보편적 인도주의를 표방한 명을 승인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며, 태조 이래의 전통 정신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n박상충은 “무릇 신(信)을 버리고 역(逆)을 좇음은 천하의 불의이며, 강을 등지고 약을 향함은 금일의 비계(非計)이다(고려사 열전) ”고 하였고, 정몽주는 “우리 태조께서 당나라 말기에 일어나 중국을 예로 섬긴 것은 천하의 의주(義主)를 예로써 본받을 뿐이었다.……원사(元使)를 예접(禮接)함이 옳지 못하다.”고 하였다. 북원을 섬기자고 하는 이인임(李仁任)·지대윤(池大奫)과 대립했던 박상충은 귀양을 가다가 죽었고, 정몽주는 언양에 유배당하였다.\n④ 고려 말에 가까워질수록 신진 사류들은 군왕으로 하여금 유교 경학을 토대로 주자학적 수련에 의해 정사를 펼치도록 추진하였다. 이는 불교를 좋아하는 군주의 입지를 유교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n조준은 그의 상소문에서 정치의 요체를 도학에 두어 ‘작성(作聖)과 치치(致治)’에 있다고 하고, ‘경(敬)’과 ‘공(公)’이 기본이라고 하였다. 그는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요순의 학이며, 건중건극(建中建極)은 탕무(湯武)의 학이니”, “경사(經史)를 토론하고 치도(治道)를 논정(論定)함으로써 광명의 학을 이룰 것”을 진언하였다.\n또한 홍유석학과 더불어 경연(經筵)과 서연(書筵)을 베풀어, 좌우사(左右史)로 하여금 언행을 기록해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며, 아침저녁으로 경적(經籍)을 탐구해 본원을 밝힐 것을 건의하였다.\n하륜은 주자의 ‘인설(仁說)’을 병풍으로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공양왕은 이를 환영해 “항상 좌우에 펴놓고 보아서, 충심으로 수성(修省)해 허물을 바루고 잘못을 고칠 것이니,……밖으로는 풍속의 성쇠를 보고 안으로는 군심(君心)의 선악을 생각하리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고려 말의 사류들은 군주로 하여금 유교인이 되게 하여 격군택민(格君澤民)의 전통을 수립하고자 하였다.\n⑤ 중앙과 지방에 학교를 세우고 확장·강화함으로써 유교사상에 투철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처음에 주자학이 수입될 즈음 안향이 국학을 재건하기 위해 섬학전을 두었다. 공민왕 때에는 성균관을 중수하고 이색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이 일어났다.\n이에 수 많은 학자가 모여 학문과 교육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정몽주는 “안으로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세우고 밖으로는 향교를 세워서 유술(儒術)을 일으켰다(고려사 열전)”. 또한 조준은 상소하기를 “학교는 풍화(風化)의 근원으로서 국가의 치란과 정치의 득실이 이것에 말미암는다.”고 하였다.\n이런 흐름을 이제현의 소론(所論)은 총괄적으로 보여준다. “옛날에 태조께서 초매(草昧)에 경륜할 때 먼저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양성했으니, 한 번 서도(西都)에 행차하심에 곧 수재정악(秀才廷鶚)으로 하여금 박사로 삼아 육부(六部)의 생도를 가르치게 했으며……광종 다음에는 더욱 문교를 닦아 안으로는 국학을 높이고 밖으로는 향교를 베풀어서 이상(里庠)과 당서(黨序)에 현송(絃誦)이 들려, 이른바 문물이 중화(中華)와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불행히 의종 말년에 무인의 변이 일어나서 옥석(玉石)이 함께 타서 호구(虎口)를 벗어난 자는 깊은 산으로 도망해 관대를 벗고 중의 옷을 입은 채 여생을 마쳤으니, 신준(申駿)·오생(悟生) 같은 이가 이들입니다.……이제 전하께서 학교를 넓히고 상서(庠序)를 삼가하며, 육예(六藝)를 높이고, 오교(五敎)를 밝혀서 선왕의 도를 천명하시면 누가 진유(眞儒)를 반대하고 석자(釋子)를 추종하겠습니까?(고려사 열전)”라고 하였다.\n조선조의 영조는 고려 태조가 서경에 창학(創學)한 것을 가리켜 “고려조 500년의 근기(根基)가 진실로 여기에 있다(太學志).”고 했듯이 학교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고려 말의 학교재건운동은 학술적·이념적 의미에서 지도적 인물을 배출하고, 유교사상을 보편화하는 길이기도 하였다.\n⑥ 고려 말의 주자학파는 재래의 의례·복식 그리고 법제 면에서 불교식과 몽고풍이 혼합되었던 것을 『가례』를 통해 유교식으로 변경하였다. 정몽주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n『고려사』에는 “시속(時俗)이 상제(喪祭)에 불법(佛法)만을 숭상하는지라 정몽주가 처음으로 사서(士庶)로 하여금 『가례』를 모방해 가묘(家廟)를 세워 선조를 받들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n나라에서도 가묘를 세우도록 영을 내렸지만, 단시일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웠다. 그 이전에도 사류 가운데는 이미 가묘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가례』는 사대부를 중심으로 확대되어 갔으며, 민간뿐만 아니라 종친에게도 그 법을 적용하도록 하였다.\n그 뿐만 아니라 정몽주는 조정에서도 몽고의 복식을 고쳐 관복을 중국식에 따르게 하는 등 제도의 개혁을 주도했고, 공양왕 때에는 ‘신정률(新定律)’을 제진하고 6일간이나 진강하도록 했다고 한다.\n⑦ 전제(田制)의 개혁과 유교의 인정(仁政)의 관련성이다. 전제는 국가 경제의 결정적 요인으로서 매우 중시되었다. 일찍이 맹자는 정전법(井田法)을 부활시킬 것을 주장하였다.\n우리 나라에서도 일찍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정전(丁田)’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23년(통일 후 4년째인 940)에 역분전(役分田)을, 경종 1년(976)에 전시과(田柴科)를 실시해 토지제도를 제정하였다.\n이와 같이 고려는 국초로부터 전시과를 실시해 나름의 합리적인 전제를 운영해왔지만, 후기에는 제도가 문란해져 과점(寡占)과 겸병(兼倂)의 폐단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n전제의 폐단과 개혁의 필요성은 식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일찍이 충숙왕 5년(1336)에 왕은 “공신의 사전(賜田)이 산천으로 표지를 삼아 받은 바가 날로 넓어지되 납세를 하지 않으며, 공부(貢賦)의 밭은 날로 줄어들고 있으니, 그 정수(定數) 밖으로 차지한 것은 조사해서 반납하도록 하라(高麗史 食貨志).”고 하여 폐단을 지적하였다.\n귀족들의 토지 과다소유와 국가 경제의 위축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사원의 과다한 토지소유도 문제였다. 이색은 공민왕에게 상소하기를 “경계(經界)를 바루고 정지(井地)를 고르게 함은 치인(治人)의 선무(先務)라 하옵니다. 생각컨대, 우리 조종(朝宗)이 창수(創垂)하신 제도와 지수(持守)하신 규모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으나, 400년간 말류의 폐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 전제(田制)가 더욱 심하옵니다.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호강(豪强)이 겸병하여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가 사는 것과 같습니다.……어떤 이는 말하기를 부자의 밭은 갑자기 뺏을 수 없고, 적년(積年)의 폐는 문득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용렬한 임금이 할 바요, 전하에게 바랄 것은 아닙니다.”고 하였다.\n이런 논리는 맹자의 “무릇 인정(仁政)이란 반드시 경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는 구절에 대한 주자의 풀이에 근거하고 있다.\n주자는 “이 법이 닦여지지 않으면, 전(田)이 정분(定分)이 없게 되어 호강이 겸병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지(井地)가 불균하고 세부(稅賦)가 정법(定法)이 없어서 탐포(貪暴)한 자가 많이 취하게 되므로 곡록(穀祿)이 불평하게 된다. 인정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경계에서 시작하고 폭군오리(暴君汚吏)는 함부로 폐한다. 경계를 바르게 할 수 있다면 분전제록(分田制祿)은 힘들이지 않고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n권근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재물은 백성의 심장인데, 전쟁과 천재로 백성들은 굶은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며, 같은 밭에 주인이 2, 3명이나 있어서 다 각기 세금을 거둬가도 관리들이 금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불쌍하고 외로운 백성들이 누구를 의지하며 뉘라서 이것을 바로잡아줄 것인가(高麗史 食貨志)”라고 탄식하면서 소를 올렸다.\n공양왕 2년 9월 전제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그것은 점진적 개혁이나 개선이 아니라, 공사전적(公私田籍)을 불사르는 혁명적인 거사였다. 전제 개혁의 방법론에는 찬반론이 있었다.\n이성계(李成桂)·정도전·윤소종(尹紹宗) 등은 찬성의 입장을 취하였다. 이색은 쉽게 고칠 수 없다고 반대했고, 이림(李琳)·우현보(禹玄寶)·변안열(邊安烈)·권근·유백유(柳伯濡) 등은 이색과 같았다. 정몽주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였다.\n전제의 개혁은 구질서 체제의 기반을 완전히 붕괴하는 혁명적인 사건인 만큼, 종래의 호족은 물론 당시의 사류들에게도 개량수정주의와 완전 개혁의 급진적 견해 사이에 방법론적 차이가 있었다. 양측간에는 정치적 충돌도 발생했고, 결과는 보수파의 패배와 급진파의 성공으로 끝났다.\n⑧ 고려 말의 최종 단계에서 주자학파인 신진 사류들이 갈등·분열하게 되는 경위와 고려 유학의 종장이었던 정몽주의 위치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n안향이 주자학을 전해와서 계도(啓導)한 이래 100여년간 이해하고 섭취하여 응용단계에 이르기까지 주자학을 닦은 신진사류들 가운데는 이렇다 할 갈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개인적 취향은 달랐을지라도 숙폐(宿弊)를 개혁해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점에서는 모두가 일치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의 최후 단계에 이르러 노선의 차이가 생기고 대체로 양분되는 현상을 빚는다. 그 이유는 현실적인 대응 방식에 대한 이견에서 오는 것이었다.\n위화도회군이 있었을 때, 고려에 충성을 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경장론적 입장과, 고려의 명운(命運)이 다해 어쩔 수 없이 혁명으로 새 나라를 열어야 한다는 창업론적 견해의 갈등이 있었다.\n구체적으로 우왕의 폐출과 창왕의 옹립 및 폐출에 따른 찬반과 이견, 토지 개혁안의 제청 및 시행에 대한 찬반과 갈등은 주자학파간의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n실질적으로 공사전적(公私田籍)을 불사르고 전국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것은 신진 사대부 개개인의 처지와도 관계되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예민한 문제였다. 여기에서 보수와 진보의 세력으로 갈라지면서 귀양도 보내고 처벌도 하는 등 정치적으로 갈등하였다.\n정몽주는 당시 유학의 종장으로서 대국적인 입장에서 매사에 신중하고 끝까지 견디며 용의가 주도하였다. 국내외의 어려운 사정을 모두 짊어지고, 명과 일본을 오가며 국가의 체통을 살렸다. 우왕과 창왕의 폐출을 찬성했고,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n공양왕 2년(1390)에는 『주자가례』의 실시, 오부학당과 지방향교 등 학교의 건립, 원복(元服)을 화복(華服)으로 바꾸고, 의창(義倉)을 두며, 다시 동 4년에는 신정률(新定律)을 제진하는 등, 내수외비(內修外備)로 왕실의 중흥을 꾀하고 국기(國基)를 다지고자 하였다.\n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서 고려의 사직(社稷)이 그 한 몸에 달려 있었다. 이성계는 문하시중(좌정승), 정몽주는 수문하시중(우정승)이었다.\n정몽주는 왕씨(王氏) 고려를 끝내고 날로 권위가 높아가며 중외(中外)의 인심이 쏠리고 있는 이성계를 옹립·추대해야 한다는 조준·정도전·남은(南誾)·윤소종(尹紹宗) 등을 대간(臺諫)으로 하여금 탄핵하게 하였다. 이어 이성계까지 탄핵하려는 마지막 단계에서 오히려 급하게 반격을 받아 순절하게 되었다(공양왕 4년).\n이러한 충격을 안은 채 같은해 7월 고려는 망하고 근세 조선조의 새로운 창업을 보게 된다.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는 많은 유학자들이 고려 수절신(守節臣)으로 충절을 지켰으니 이들을 ‘두문동(杜門洞) 72현’이라고 일컫는다.\n이로 보아 고려에 대한 국가적 인식과 궁극적 신뢰가 아직도 두꺼운 지층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사류는 양분되고 골이 깊어졌다.\n그들은 모두 주자학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신진 사류였지만, 정몽주의 순절을 기리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 조선조에 협력을 거부하였던 이들은 길재의 계통으로서 의리파가 되고, 조선조의 창업에 참여해 새 나라를 건설했던 정도전·조준·하륜 등의 참여파는 사공파(事功派)가 되어 조선 전기의 양대 계통을 형성하였다.\n이제 고려시대의 유교를 돌이켜 보면서 총괄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고려 태조는 사상적으로 당시 분열과 분파의 형세를 보이던 종파 사상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이질적 요소들을 상보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불교적 신앙과 교리·도교적 습속과 민간신앙·유교적 이념을 통합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 발전의 토대로 삼았다.\n국가의 차원에서 정치·교육·윤리적 측면과 경사(經史)와 문장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 문화의 발달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고려 전기(태조∼의종)를 유교문화의 진흥기요 융성기라 한다면, 고려 후기(명종∼공양왕)는 유교문화의 퇴락·침체기를 거쳐 주자학 시대가 열리는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n조선시대와 유교\n1. 조선 전기의 유교\n먼저 조선조 창건 1세기를 놓고 볼 때 태조·태종의 30년 간은 조선이 건국되어 정치적·사회적 안정을 다지는 창업기(創業期)였고, 세종·세조·성종의 70년간은 나라의 발전을 이룩한 수성기(守成期)였고, 제2세기를 맞은 연산군·중종·명종의 70년간은 국정이 허물어지고 진통을 겪는 사화기(士禍期)였다.\n조선조의 창업에 참여한 사공파(事功派)와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의리파(義理派)가 맥을 달리했고, 세조의 즉위 후 훈구파(勳舊派)와 그에 반대했던 절의파(節義派)는 서로 어긋나게 되었다.\n사공파는 훈구파에 연결되었고 의리파와 절의파는 비판의식으로 합치하였다. 건국 1세기 동안 세조의 찬탈이라는 정변을 겪으면서도 국가를 발전시키고 선치(善治)를 베풀어서 중흥을 이루었다.\n한편 연산군 이후로는 국정이 피폐하고, 의리파인 사림(士林)이 등장해 훈구파와 대립해 4대 사화가 발생하는 등 위망(危亡)의 형상을 보였다. 고려 말이래 거듭된 사화를 겪으면서도 사림파는 일정한 세력을 유지해 중종대에 이르러서는 도학정치를 실시하는 등 주도적 세력이 되었다.\n16세기 성리학의 발달은 한국철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전기의 창업 및 수성 과정에 있었던 주요 사항을 고찰해보면 다음과 같다.\n첫째 유교 이념에 입각한 법전의 편찬이다. 이이(李珥)는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태조가 국운을 열고, 세종이 수성해 비로소 『경제육전』을 활용했으며, 성종조에 이르러 『경국대전』을 간행하였다. 그 뒤에도 수시로 입법하여 ‘속록’이라 이름 붙인 것은 그 시대를 따른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n조선조의 법전 편찬은 ‘법전편찬왕조’라고 일컬을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다. 태조대에 정도전은 『조선경국전』(1394)을 제진했고, 다시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지었다. 조준·하륜(河崙) 등은 『경제육전』(1397)을 편찬하였다.\n태종대에는 원(元) 『속육전(續六典)』(1413), 세종대에는 『신찬경제속육전(新撰經濟續六典)』(1433)이 나왔다. 성종대에는 『경국대전』(1471)이 완성되었고, 『대전속록(大典續錄)』(1492)이 나왔다.\n중종대에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1543), 명종대에 『경국대전주해』(1555), 숙종대에 『수교집록(受敎輯錄)』(1698) 및 『전록통고(典錄通考)』(1706), 영조대에 『속대전』(1746), 정조대에 『대전통편』, 그리고 고종대에 『대전회통』(1865) 등이 나왔다. 그 밖에도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를 만들어 조선조의 실정에 맞도록 의용(依用)하였다.\n법전의 편찬은 기본적으로 유교의 이념과 경전사상에 준거하였다. 조선조는 유교 입국으로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보더라도 유교의 왕도정치적 이념이 가득 차 있다.\n특히, 전문(前文)인 ‘정보위(正寶位)’와 ‘헌전총서(憲典摠序)’의 내용에는 유교의 경전사상이 주자학적 해석으로 서술되어 있다. 생민(生民)을 위한 인정(仁政)을 주자의 ‘인설(仁說)’에 의해 해명하였다.\n서거정(徐居正)의 『경국대전』 서(序)에는 법전의 제작이 천지(天地)와 사시(四時)에 비길 수 있고, 주관(周官), 『주례』와 표리가 된다고 하였다.\n이복원(李福源)의 『대전회통』 서에도 역시 육전(六典)의 명칭이 『주례』에서 비롯되었고, 그 명칭이 수 천년이 되도록 바뀌지 않았던 것은 천지 사시에서 그 상(象)을 취해 관직헌장(官職憲章)에 적용했기 때문이며, ‘육(六)’은 ‘자연의 수(數)’이고 ‘전(典)’은 ‘당연의 칙(則)’이라고 하였다.\n유교가 어떻게 국가적·사회적으로 응용될 수 있었는가를 고찰하는 데 법전의 탐구는 필수적 요소이다. 조선 초 창업의 단계부터 제작해 100년 이내에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완전히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뒷날 내우외환을 굳건히 이길 수 있는 준거가 되었다.\n둘째 성균관과 향교를 건립해 선성·선현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고, 학교 교육을 실시해 인재를 양성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중앙에 국자감과 지방에 향학을 두었지만, 고려 말에 다시 확장·발전되었다.\n조선조가 창건해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태조 7년(1398)에 국도(國都)의 동북쪽에 성균관을 낙성하였다. 문묘에는 중국의 제현을 중국식 제도에 따라 종향했고, 동국의 제현은 고려 제도에 의해 종사(從祀)하였다. 태조 스스로 문성왕묘(文成王廟)에 친사했고 전례와 악기를 익히도록 하였다.\n문묘 북쪽에는 명륜당(明倫堂)을 세우고, 성균관제조 정도전과 권근으로 하여금 4품 이하의 유사(儒士)들에게 경사(經史)를 강습하도록 하였다. 양현고도 다시 세워 유생의 공궤(供饋)를 담당하게 하였다.\n태종은 허조(許稠)로 하여금 석전의(釋奠儀)를 바로잡도록 하였고 알성례(謁聖禮)를 행하였다. 세종은 즉위 초에 곤면복(袞冕服)으로 알성례를 행했고, 1421년(세종 3)에는 왕세자의 입학례(入學禮)를 행해 이것이 상례가 되었다.\n1475년(성종 6)에는 성균관에 존경각(奠經閣)을 두어 오경사서(五經四書) 등의 전적을 비치했고, 1477년에는 친히 석전례(釋奠禮)를 드리고 대사례(大射禮)를 행하였다. 1478년에도 ‘문선왕(文宣王)’에게 헌작하고 역시 대사례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성종의 알성은 1474·1475·1477·1478·1480·1482·1485·1487·1488·1492·1493년에 걸쳐 보인다.\n성균관은 고려시대의 국자감을 계승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인 의미와 비중이 훨씬 심대하였다. 국도에는 성균관 이외에 중·동·서·남·북의 5부학당(五部學堂)이 국초부터 설치되어 국고의 지원을 받았는데, 북학만은 세종대에 폐지되어 4학(四學)으로 남게 되었다.\n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제주(諸州)에 학(學)을 세워 교도를 널리 행한데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의종 이후 국정이 문란해 학제가 퇴폐했지만, 충숙왕 때 다시 부흥시켰다. 조선조에 이르러 1392년(태조 1) 학교의 흥폐(興廢)로 지방관의 고과(考課)를 정하는 법을 세우자 교학이 쇄신되기 시작하였다.\n『경국대전』에 의하면, 향학(鄕學)을 부·목·군·현에 1개교씩 설치해 교수 또는 훈도(訓導)를 두고, 교생의 정원은 부·목 90, 도호부 70, 군 50, 현 30으로 되어 있었다. 1918년의 조사에 의하면 향교의 총수는 335개로 집계되어 있다.\n향교는 성균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공자묘인 대성전과 강당인 명륜당으로 되어 있는 점이 같다. 성균관과 향교는 성리학으로 학생들을 양성해 그들이 국가의 동량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n그러나 중기에는 국정이 문란해져 향교는 마치 과거 준비장소처럼 변질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원이 발달하였다.\n셋째 조선 전기에 이룩된 학술 문화의 원리로서의 유교사상과 주자학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아야 한다. 조선조의 창업과 더불어 참여와 충절로 갈라지고 이것이 사공파와 의리파의 양대 흐름을 형성했지만, 유교 국가를 건설하자는 뜻은 마찬가지였다. 조선조의 입장에서도 고려에 대한 충절 인정할 수 있었고, 고려 충신의 자제와 제자도 조선조에 출사하였다.\n① 먼저 사공파의 경우이다. 정도전은 고려 말 유배시에(1375) 「심문천답(心問天答)」이라는 짧은 글을 써서 천인관계(天人關係)와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해 선악응보를 넘어선 유가의 의리 정신을 기술하였다.\n조선조가 창건된 뒤에 다시 「심기리편(心氣理篇)」(1394)과 「불씨잡변(佛氏雜辨)」(1398)을 지어 ‘이단’을 비판하였다. 「불씨잡변」에서는 불교의 윤회·인과·심성·훼기인륜(毁棄人倫)·지옥·화복·걸식·유불동이·벽이단(闢異端) 등 15편에 걸쳐 비판 이론을 전개하였다.\n권근은 위의 두 책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 그는 「불씨잡변」의 서에서 정도전은 맹자를 계승한 사람으로 “독립불구(獨立不懼)하며 정일자신(精一自信)하여 보통 사람 보다 크게 뛰어난 인재”라고 평하면서 스스로 존경심을 품고 배우고자 하였다.\n정도전은 『조선경국전』·『경제문감』 등을 저술해 유교적 정교론(政敎論)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불씨잡변」 등으로 이단을 비판하고 유교 이념을 천명하였다. 이와 같은 이론 구성은 전적으로 주자의 성리철학에 기초한 것이다.\n권근은 이색(李穡)의 제자이며, 조선조에 벼슬해 주로 문한(文翰)의 직에 있으면서 경국(經國)과 외교에 학술적으로 기여하였다.\n『양촌집(陽村集)』과 더불어 『입학도설(入學圖說)』·『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동국사략(東國史略)』·『사서오경구결(四書五經口訣)』 등을 저술하였으며, 경학과 사학 그리고 성리학을 겸통한 석학이었다.\n그는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도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입학도설』과 『오경천견록』은 후세에 두고두고 영향을 주었다. 정도전이 실질적인 경세론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 권근은 조선 초기에 있어서 학술적으로 크게 이바지하였다.\n권근의 문인 권우(權遇)·변계량(卞季良)·맹사성(孟思誠)·허조(許稠)·김반(金泮)·김종리(金從理) 등은 태종·세종대에 활동하였다. 김반은 조용(趙庸)의 문인 윤상(尹祥)과 더불어 성균관에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그들 가운데 신숙주(申叔舟)·이석형(李錫亨) 등은 세종·세조조의 문신으로 활약하였다.\n김반은 『성리대전』·『이학제요(理學提要)』·『역상도설(易象圖說)』·『사서장도(四書章圖)』 등의 문헌을 읽어서 저술했는데 『속입학도설(續入學圖說)』일 것으로 추정된다.\n권채(權採)는 『입학도설』이야말로 이학(理學)의 연원을 열어준 것으로 간주, 그것을 본떠 『작성도(作聖圖)』와 『도설(圖說)』을 지었다. 권근의 『입학도설』은 후세의 정지운(鄭之雲)·김인후(金麟厚)·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 등에 의해 작성된 각종의 천명도(天命圖)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n② 의리파는 정몽주 이후 길재―김숙자―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진다.\n길재는 권근의 제자였지만 정몽주에게도 배웠고, 학풍으로 보아 정몽주를 계승한 의리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조가 건국되자 은퇴하여 세상의 영욕에서 벗어나 향리에서 사숙(私塾)을 열어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였다.\n그는 유교의 기본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를 중시해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조선조 의리사상의 귀감으로 높이 추앙을 받았다.\n김숙자는 길재의 문인으로 세종조에 성균관사예에 이르렀다.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후진 양성에 힘썼다.\n그는 세종에게 척불소(斥佛疏)를 올려 불교를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했고, ‘학규(學規)’를 지어 학문의 순차를 순서 있게 규정함으로써 정통적 유교 교육의 준범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김숙자는 강호로 돌아갔으나 그의 학문은 아들 종직에게 계승되었다.\n김종직의 높은 문명은 특히 성종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문하에서 김굉필·정여창(鄭汝昌)을 비롯해 김일손(金馹孫)·남효온(南孝溫)·강희맹(姜希孟) 같은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성종의 호문숭유(好文崇儒)에 힘입어 출사하였다. 이에 기존의 훈구파와 대립하는 형국을 보이기 시작하였다.\n한편 정몽주와 길재의 문하였던 조용과 그의 제자 윤상(尹祥)은 성균관의 박사 및 장관으로 수 십년 간 재임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n③ 세종조에는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학술 문화가 크게 융성하였다. 세종은 성왕이자 학자였다. 1420년 왕립연구소인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를 선발하고, 수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재위 32년간 인문·사회·자연·과학을 망라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이룩한 업적은 세계적인 것이었다.\n세종은 개인적 차원에서 불교를 숭상하고 불전도 간행했지만, 유교 국가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이는 그의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세종의 성스러우심은 전조(前朝)에 없었던 바이다. 국가를 안정시켜 정사가 때에 잘 맞았다. 유교를 숭상해(崇儒重道) 인재를 양육했으며, 예악을 제작해 후손에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니, 우리 나라의 다스림이 여기서 융성하였다. 오늘에 이르도록 그 유택(遺澤)이 남아 있으니, 우리 나라 만년의 운이 세종에게서 처음 그 기틀이 잡힌 것이다.”고 하여 세종의 위업을 기리고 있다.\n세종대에는 계파와 학맥에 관계없이 모두 합심해 국가 발전과 학술 문화의 진흥에 힘썼다. 실제로 세종은 경사(經史)와 제자서를 두루 읽었으며, 그 가운데서 사서오경을 중시하였다.\n세종은 경연에서 “나는 제자백가의 글을 원하지 않고, 다만 사서오경과 『통감강목』만을 돌려가면서 강독하기 바란다(세종실록 5년 9월).”고 하였다.\n또한 『주역』·『성리대전』과 관련한 경연의 기사가 나오고, 또 세종 스스로 “여러 차례……그 내용을 읽어보면 자세하고 정밀해 실로 남김이 없다. ……특히 궁리 공부에는 사서오경과 『성리대전』이 더할 나위 없다.”고 하면서 중국에까지 종이와 먹을 보내 인쇄해올 방도를 강구하였다.\n과거에도 사서오경 및 그 주석과 성리서가 들어와 탐구되었지만, 그와 같이 방대하게 체계적으로 집대성된 성리서가 전해온 것은 세종 초년에 이르러서였다.\n명나라의 성조인 영락제(永樂帝) 13년(1415)에 『영락대전(永樂大全)』(일명 五經大全·四書大全·性理大全)이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처음 조선에 전해진 것은 4년 뒤인 세종 1년(1419) 12월 7일이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던 경녕군(敬寧君)이 찬성 정역(鄭易), 형조판서 홍여방(洪汝方) 등과 함께 가지고 왔던 것이다.\n세종 초기부터 유학 연구에 종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집현전의 직제는 정1품으로부터 정9품에 이르며, 영전사(領殿事) 정1품, 대제학 정2품, 제학 종2품(이상 겸관), 그리고 부제학 정3품으로 했을 만큼 권위와 비중을 두었다.\n세종대로부터 세조 2년에 이르기까지 집현전의 경력을 가진 학자가 90여 명에 달하고 있으니 당대의 명인들 대부분이 집현전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n세종조에 이루어진 사업으로서 유교의 의례(儀禮)와 제도의 정비·서적의 편찬·음률의 제정·인정(仁政)의 실시·경사·천문·지리·의학 등 이루어놓은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가운데 잘 짜여진 구조 원리에 입각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민족의 주체적 언어에 활로를 연 것이었다.\n훈민정음은 사람의 발음기관의 “형상을 본떴으되 글자 모양은 고전(古篆)과 같게 하였다(象形而字倣古篆).”고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하면, 그 구조 원리가 음양오행과 삼재사상(三才思想) 및 『주역』과 송대의 성리학에 기본하고 있다. 유교의 학술 사상을 주체적으로 응용해 만들어낸 최대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n④ 세조의 즉위와 관련된 훈구파(勳舊派)와 절의파(節義派)의 갈등은 심각하였다. 세조∼성종 연간에는 세종조의 치적을 계승해 중요한 치적을 많이 남겼다.\n세조 때에 시작해 성종대에 완성된 『경국대전』과 최초의 통사(通史)인 『동국통감』이 간행(1484)되었다. 세조대에는 『국조보감』·『동국지도(東國地圖)』의 편찬, 호적제도와 보법(保法)에 의한 국방 체제의 정비, 직전법(職田法)의 실시,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와 『오륜록(五倫錄)』의 찬수 및 기타 수많은 업적을 이룩하였다.\n성종대에도 성균관에 존경각과 양현고를 설치하고, 향교에 지원을 확충했고, 세조 때에 없어진 집현전을 대신할 수 있도록 홍문관을 개편해 신진 사류를 영입하였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악학궤범』·『국조오례의』·『삼국사절요』·『동문선』 등을 찬술하는 등 건국 이래의 문화 전통을 집대성하였다.\n세조 이후에도 계속 국사에 참여했던 현실주의적 훈신구가(勳臣舊家)들은 국가로부터 예우와 은전을 받았으며, 뒷날 훈구파를 형성하였다. 정인지(鄭麟趾)·최항(崔恒)·어효첨(魚孝瞻)·신숙주·이석형(李石亨)·양성지(梁誠之)·권람(權擥)·정창손(鄭昌孫)·서거정·이극감(李克堪)·한계희(韓繼喜)·노사신(盧思愼) 등이 많은 인물들이 있었다.\n한편 계유정란에 이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고(1455), 단종의 복위가 실패함으로써 사육신과 70여 명의 연류된 피죄인이 나오게 되었다.\n온갖 희생과 죽음으로 항거한 사육신으로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그리고 끝까지 지조를 지켰던 생육신으로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남효온 등이 있다. 그들 절의파의 불 같은 기개와 항거 정신은 뒷날에까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n조선 전기 훈구파들의 실무적 공적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현실주의적인 처신은 도덕적 비판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훈구파의 맞은 편에는 고려말 이래 의리파와 세조 이후 절의파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n조선조 전기의 나머지 70년 간, 즉 연산군∼명종 연간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n첫째 훈구 및 사림의 대립과 4대 사화 발생하였다. 세종∼성종 연간에 이루어진 유교 문화의 성취는 연산군대에 와서 크게 훼손되기 시작하였다.\n무오사화(1498)는 공신계열인 훈구파와 의리를 주장했던 사림파가 대립에서 발생하였다.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편입했던 것을 빌미로 훈구파인 이극돈(李克墩)이 유자광(柳子光)과 함께 연산군을 자극해 의리파를 숙청하였다.\n갑자사화는 왕실의 인척인 임사홍(任士洪)과 신수근(愼守勤)에 의해 일어났다. 그들은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의 사사(賜死)를 들추어 정부의 훈구 제신과 잔존 사림까지를 잔혹하게 처치하였다. 의리파를 무력하게 만든 상황에서 연산군의 횡음(橫淫)은 극에 달하였다. 성균관은 연락(宴樂)의 장소가 되었고 원각사는 기생들의 거처가 되었다.\n중종반정이 전직 및 현직 훈구 대신에 의해 일어났다. 중종은 피화자(被禍者)를 신원했고 사림을 등용해 무너진 기강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조광조를 중심으로 신진 사류에 의한 도학정치(道學政治)가 실시되어 나라는 일시에 중흥지세(中興之勢)로 나아갔다.\n그러나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에 의해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 조광조를 비롯한 일시의 사류가 희생되었다. 전대미문의 ‘지치중흥의 성업(聖業)’은 꺾이고 말았다.\n기묘사화 이후 심정과 김안로(金安老)가 번갈아 전횡하고 난 뒤 중종 만년에는 기묘명현 등의 사림이 다시 복권되었다. 김정국(金正國)·이언적(李彦迪)·이황 등 사림파가 진출했고, 조광조의 직(職)도 추복(追復)되었다. 또한 현량과도 다시 설치하는 등 유풍(儒風)을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였다.\n그러나 명종 즉위 년에는 윤임(尹任)·윤원형(尹元衡)의 정쟁으로 말미암아 비판 세력이었던 사림은 또 다시 수난을 당하였다.\n외척인 윤원형의 주모로 정순붕(鄭順朋)·이기(李芑)·임백령(林百齡)·허자(許磁)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키자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 수많은 사류가 죽었다.\n그 뒤 5, 6년에 걸쳐 100여 명에 달하는 사인(士人)이 죽거나 쫓겨났다. 따라서 문정왕후(文定王后)와 윤원형의 20년 간을 암흑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n기묘·을사사화를 거치면서 사림은 뜻을 펴지 못하고 향촌에 물러나서 학문을 닦았다. 이것을 계기로 16세기에 수많은 성리학자들이 배출되었다.\n둘째 도학사상과 성리학의 발달이다. 도학은 넓은 의미에서 송대 성리학을 일컫는 것이다. 유교의 정통적 의미에서의 진유(眞儒)란 성현의 도와 제왕의 법을 아우른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성취한 자를 뜻한다.\n이이는 ‘행도(行道)와 수교(垂敎)’의 진퇴론(進退論)으로 진유를 규정하였다. 그는 우리 나라 도학의 시작은 조광조이며, 이황에 와서 유자의 모습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조광조는 김종직·김굉필의 학맥을 이었고, 성균관에서는 유숭조(柳崇祖)에게 수학하였다.\n김굉필은 실천 위주의 학문에 힘썼다. 스스로를 신칙하고, 후생을 훈도하고, 유도를 흥기시키는데 힘썼다. 입조(立朝)해서는 바른말을 하다가 무오사화로 유배당했고, 또 갑자사화로 희생되었다. 김굉필의 문하에는 조광조 이외에 김안국(金安國)·김정국·이장곤(李長坤) 등이 있었다.\n유숭조는 성균관의 사장(師長)으로서 후학을 계도했고 도학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이론을 전개하다가 갑자사화 때 유배되었다. 그는 『성리연원촬요(性理淵源撮要)』와 『대학잠(大學箴)』 등을 저술해 이기사칠론(理氣四七論)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였다.\n조광조는 청년 학자로서 사림의 영수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또한 성리학과 도학 정신을 현실 정치에 실현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n이이는 그의 『경연일기』에서 “문정(文正)이 비록 진퇴의 기(幾)에는 투철하지 못했지만, 이로부터 이학(理學)이 으뜸이며, 왕도가 귀하고 패도가 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유교(斯道)에 불멸(不滅)의 공이 있다. 후인들이 우러러봄이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다.”, “우리 나라에 이학이 전함이 없더니 전조(前朝)의 정몽주가 비로소 그 단서를 열었고 아조(我朝)의 김굉필이 실마리를 잡았지만 크게 갖추지는 못하였다. 조광조가 창도(倡道)하매 학자들이 다함께 추존(推尊)하였다. 오늘의 성리학이 있는 것은 광조의 힘이다.”고 하였다.\n이이의 말처럼 조광조는 우리 나라 도학의 ‘태산북두’였다. 조광조는 도학을 진작시키기 위해 김굉필·정여창 등을 추숭(推崇)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정몽주를 문묘에 종사하도록 하였다.\n이언적은 유교의 경학과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논술한 대학자였다. 그는 『대학장구보유』·「속대학혹문」·『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구인록(求仁錄)』 등의 저술을 남겼다.\n일찍이 도가적 입장에 서 있는 조한보(曺漢輔)와 무극태극 논변을 통해 유교의 본령을 성리학적으로 전개하였다. 이황은 이언적이 유도를 천명해 후세에 드리운(立言垂後) 공을 높게 평가하였다.\n서경덕(徐敬德)은 우리 나라의 독특한 기철학자이다. 그는 성리학이 왕성한 시대에 기(氣)의 실재성을 강조했고, 기의 사실성을 떠난 관념만의 추상화를 부정했던 유기론자였다.\n그는 「원이기(原理氣)」·「이기설(理氣說)」·「태허설(太虛說)」·「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의 철학적 저술을 하였다. 그의 기수지학(氣數之學)을 포함한 자연철학은 자득(自得)한 경지가 있지만, 이황은 그의 자득한 바를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의 철학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n이황은 우리 나라의 위대한 성리학자로 숭앙받고 있다. 그의 생애는 대부분 사화로 점철되었다. 출생 3년 전에 무오사화, 4세에 갑자사화, 19세에 기묘사화, 45세에 을사사화가 있었다. 또한 명종 20년간의 어두운 세월을 지냈다.\n그는 조정에 서기보다는 물러나 학문을 닦고자 하였다. 50세 이후에는 학문에 주력해 수많은 저술과 편찬을 남겼다. 『역학계몽전의(易學啓蒙傳疑)』·『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성학십도(聖學十圖)』 등은 그의 역저이다.\n그는 주자학에 거슬리는 학문에 대해 이단사설(異端邪說)을 논해 배척하였다. 「비이기위일물변증(非理氣爲一物辨證)」·「전습록논변(傳習錄論辨)」·「심무체용론(心無體用論)」 등이 그것이다.\n만년에 기대승과 7년에 걸쳐 사칠 논변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황은 후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이발이기수(理發而氣隨)’와 ‘기발이이승(氣發而理乘)’의 호발설(互發說)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성의 존귀성을 확신해 이존설(理尊說)을 주장하였다.\n68세에 선조에게 도학사상이 담긴 『성학십도』를 제진했는데 여기에서 이황은 천인합일에 바탕해 경(敬思想)을 수양의 핵심으로 삼았다. 공맹·정주(程朱)·조선조의 주자학적 전통을 종합하였던 그는 정치 현장에 나아가기 보다 학문과 교육을 통해 성리학을 전파하였다.\n또한 이황은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는 서신왕래를 하여 감화를 주었고, 당대의 조야와 사림으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받았다. 그로부터 많은 제자들이 나와 나중에 영남학파를 형성하였다.\n이황과 동시대 학자로서 조식(曺植)을 들 수 있다. 그는 산림처사로서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선비의 청고(淸高)한 지조와 세사(世事)의 오류를 추상같이 질타하는 늠름한 기상을 보여주었다.\n그는 성리학 밖에도 노장을 포함해 경사자집을 섭렵하였다. 학술적 저작으로는 『학기유편(學記類編)』을 남겼다. 그의 문하에서 오건(吳健)·정구(鄭逑)·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정인홍(鄭仁弘) 등이 나왔다.\n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노수신(盧守愼)·기대승 등은 이황과 함께 이기심성설 등을 논의하였다. 그들은 이기(理氣)와 인심도심(人心道心)을 일원적으로 보느냐 이원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주장을 달리하였다. 혹은 출처와 인격을 두고 칭송하기도 하였다.\n또한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성혼(成渾)의 아버지 성수침(成守琛)은 ‘성덕군자(成德君子)’의 모범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유교의 덕행인 ‘입덕(立德)·입공(立功)·입언(立言)’을 실천하였다.\n이이는 “학문은 서경덕이 깊고 덕기(德器)는 성수침이 넉넉하다.”고 했고, 성혼은 “일세의 인물로서는 성수침이 제일이다.”고 하였다.\n조선조 전기에는 세조의 즉위와 4대 사화 같은 정변과 화난(禍難)을 겪으면서도 고려시대의 모습을 일신해 유교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결과 주자학적 경세론과 도학정치가 실시되었고, 많은 성리학자들에 의해 이기심성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다.\n2. 조선 중기의 유교\n조선조 창건 170년이 지난 선조조에 이르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 명종 말년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이 쫓겨나 죽음을 당함으로써 정세가 급변하고, 을사사화 이후의 피죄인들이 소방(疏放)되었다. 명종 21년(1566)에는 정여창의 남계서원(籃溪書院)에 사액했고, 이황이 상경하였다.\n선조가 즉위(1567)하면서 사림 정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선조의 즉위 년 8월 을사사화 이래 피죄되었던 유희춘(柳希春)·노수신(盧守愼) 등을 서용했고, 이듬해에는 조광조에게 영의정을 추서하였다. 또한 남곤에게 주어졌던 관작을 삭탈하고 현량과를 복설(復設)하였다.\n이황이 일시 대제학에 취임했고, 제왕지학의 진수로서 『성학십도』를 제진하였다. 1569년에는 이이의 『동호문답』이 제진되었고, 1570년에는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의 역명신원(逆名伸寃)이 전개되는 등 사림의 활동이 활발해졌다.\n그러나 선조 즉위 년을 전후해 이황·김인후·성수침·조식·이준경 등 석학숙유(碩學宿儒)들이 죽음에 따라 국기(國基)를 튼튼히 할 새로운 인재가 요청되었다.\n이이는 『경연일기』에서 “아조(我朝)가 입국한 지 거의 200년에 달해 중쇠기(中衰期)가 되었는데 권간(權姦)들의 혼탁한 영향이 심해 오늘에는 마치 노인과 같이 원기가 다해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성상이 나타나셨으니 이때야말로 다스려지느냐 망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때에 발분진흥하시면 우리 나라는 억만년 무한한 행복이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궤멸에 이르러 구해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다.\n또한 「상퇴계선생서(上退溪先生書)」에서 “국가가 고질에 빠진 지 20여년 남짓 모두 인순(因循)하여 조금도 개혁함이 없습니다. 오늘날 백성의 힘이 이미 다했고 나라의 저축도 비었으니, 만약 경장을 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어려워질 것입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지적하였다.\n선조 이후 사림 정치가 열려 재래의 의리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 초이래 훈구파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와 훈구 대 사림의 시대를 지나, 사림이 완전한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선조조 처음 30년간은 서둘러 경장하지 않으면 국가의 장래를 보장할 수 없는 중대한 시기였다.\n그러나 선조 8년(1575) 사림은 동서로 갈라지고, 이이의 중재는 수포로 돌아갔다. 사대부들이 국가적 위기를 절감하지 못하고 민생과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조선·명나라·일본 등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던 임진·정유의 왜란으로부터 조선은 많은 폐해를 입었다.\n선조 말년과 광해군에 걸쳐 전후복구에 힘쓰면서 변동하는 국제 관계에 대응했다. 한편 무너진 문묘를 다시 세웠고(1602), 종묘를 중건했으며(1608), 사림의 숙망이었던 오현(五賢 :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의 문묘종사도 성취하였다.\n이이가 죽은 뒤 국정은 붕당 정치의 양상을 띠었다. 선조조와 광해군 때 중심 세력이었던 동인(東人)들은 남인·북인으로 갈라졌고, 나중에는 대북·소북으로 파당을 지었다.\n임진왜란의 후유증이 사라지기 전에 여진족은 후금(後金)을 세워(1616) 명나라와 대립했고, 조선은 명나라를 위하여 출병하게 되는 등 외교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n또한 광해군의 멸륜난상과 인조반정(1623), 이괄(李适)의 난(1624), 그리고 10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같은 국가적 위난이 몰아닥쳤다.\n임진왜란 때에는 관군(官軍)과 명군의 정규군에 더해 선비들이 이끄는 의병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했지만, 병자호란 때에는 항복과 항전의 의견이 대립해 국논을 통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n인조반정으로 북인은 몰락했고, 서인은 반정의 참여여부에 따라 공서(功西, 또는 勳西)와 청서(淸西)로 구분되었다. 그 뒤 정치적 갈등으로 노서(老西)와 소서(小西)로 갈리기도 했지만, 송시열(宋時烈)에 이르러 다시 하나가 되었다.\n효종과 송시열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북벌 계획은 효종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현종대에는 효종에 대한 조대비(趙大妃)주 07)의 복상 문제로 서인과 남인간의 예송(禮訟)이 일어나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집권하였다.\n유교는 의례를 매우 중시한다. 『국조오례의』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오복제도(五服制度)는 상당히 복잡해 애매한 부분이 있을 때 논의해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학술적인 차원을 넘어 정쟁의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n숙종조 50년 간 당쟁은 치열해졌다. 숙종도 일관성을 잃어 궁중(宮中)·부중(府中)에 많은 분규와 참화를 빚었다. 수많은 선비가 있었지만 옥석(玉石)을 가리지 못해 수난을 겪었다.\n남인은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나누어졌고 서인은 노론·소론으로 분열하였다. 숙종 말년에는 노론이, 경종대에는 소론이 집권하였지만 경종 초년의 임인옥은 조선조 중기의 말미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n이런 국난을 구제하기 위한 많은 노력 또한 있었다. 조선조 중기에는 유학의 도를 밝혀 선현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서원이 세워졌다.\n주세붕(周世鵬)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효시로(1542), 이황이 서원을 중시해 국가의 지원을 받도록 함에 따라 크게 번창하였다.\n한편 지역 사회의 미풍양속을 이루고자 향약이 권장되었다. 이황의 「예안향약」, 이이의 「서원향약」과 「해주향약」이 만들어졌다. 서원과 향약은 성리학을 전파하고 민풍(民風)을 순화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n조선 중기에 이르면 사회가 변동함에 따라 새로운 학풍이 대두하였다. 이이의 문하에 조헌(趙憲)·김장생(金長生) 같은 인물이 나와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이황의 제자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조목(趙穆)·정구 등은 영남학파를 형성하였다.\n초기 실학자인 한백겸(韓百謙)·이수광(李睟光)·유형원(柳馨遠)·박세당(朴世堂)도 당대의 인물들이고, 이익(李瀷)도 숙종조에 태어났다. 양명학의 소질을 갖춘 최명길(崔鳴吉)과 장유(張維), 그리고 양명학의 태두인 정제두(鄭齊斗)도 당시의 인물이다.\n성리학적 의리학파였던 조헌·김상헌(金尙憲)·송시열, 예학자였던 김장생·김집(金集)·박세채(朴世采)·정구·정경세(鄭經世) 등이 있었다.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과 관련해 권상하(權尙夏)·이간(李柬)·한원진(韓元震)·이휘일(李徽逸)·이숭일(李嵩逸) 등이 있었다.\n이와 같이 조선 중기에는 학파에 따라 여러 분야로 세분화되었다. 조선 중기의 유학사상과 학풍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n첫째 이이의 학문적 특징과 사상사적 위치이다. 이이는 이황보다 35년 뒤에 태어났다. 이이가 30세를 전후해 진출할 때는 명종 말년과 선조 초년이었다. 명종시대까지의 조선 전기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n그는 정몽주 이래 조광조와 이황으로 내려온 의리파의 도맥(道脈)을 존숭하고, 국초 이래 사공파의 공적을 흡수해 그 이념성과 현실성을 통합적으로 인식하였다. 이황·성혼(成渾)·송익필(宋翼弼) 등과 교류하며 학문과 도의를 논하였다.\n철학적으로는 서경덕의 주기론(主氣論)과 이황의 이존설(理尊說)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이통기국(理通氣局)’과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내놓았다.\n이기(理氣)를 분석해 현상으로서의 ‘소연(所然)’과 근저로서의 ‘소이연(所以然)’을 밝히고, 양자를 동시에 긍정해 이기불가리(理氣不可離)의 묘처(妙處)를 드러내었다.\n이황은 사단칠정을 이발(理發)·기발(氣發)의 호발(互發)로 보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분속(分屬)시켰지만, 이이는 ‘칠정(七情)’과 ‘기발’의 개념을 보다 확충적으로 파악해 사칠 및 인심·도심을 모두 그 속에 포함시켰다. 인간의 신체적 활동과 이성 및 심령의 작용이 현실을 떠나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다.\n기질지성(氣質之性)과 본연지성(本然之性)의 관계에 대해서도 본연지성이 기질지성을 매개로 사단지정(四端之情)이 발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개인의 기질 변화와 사회 개혁의 논리를 전개하였다.\n그는 우국지성(憂國之誠)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개혁에 대한 많은 상소문을 올렸다. 또한 『동호문답』·『격몽요결(擊蒙要訣)』·『성학집요』·『학교모범(學校模範)』·『만언봉사(萬言封事)』·『경연일기』 등을 저술해 교학과 치세의 귀감이 되었다.\n조선조 성리학은 이황·이이를 배출한 16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황은 단순히 주자학을 답습하지 않고 이존설을 주장해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을 내적 성찰의 방법을 통해 천명하였다.\n이이는 이러한 인간적 고귀성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방도를 제시하였다. 이이의 우인(友人)으로서 성혼과 송익필을 들 수 있다. 이이의 성리학 연구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증대되었다.\n성혼은 독실궁행하는 도덕 실천에 근기(根基)를 두었으며, 송익필은 예학에 밝아 『예문답(禮問答)』·『가례주설(家禮註說)』을 지었고, 성리학 관계 논문인 「태극문(太極問)」을 지었다. 이이는 오직 송익필 형제만이 그 당시 성리학을 올바로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n이러한 세 사람의 교류에 힘입어 이이의 제자들 중에는 일찍이 성혼과 송익필의 문하에서 수학한 이도 많았다. 이이·성혼·송익필 문하에는 조헌·김장생·김집·안방준·김상헌·송시열·송준길·박세채·권상하·김창협·이간·한원진·조성기(趙聖期)·임영(林泳) 등이 있었는데 나중에 기호학파를 형성하였다.\n둘째 이황의 문하와 조식 문하이다. 이황은 을사사화 이후 조정과 관직을 떠나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제자들 중에는 입조해 벼슬한 이도 많았다.\n그 중 유성룡은 재상으로서 임진왜란을 치러내기도 했고, 김성일은 부제학과 경상도관찰사에 이르렀다. 또한 정구는 대사헌이 되었고, 이황을 오래 사사한 조목은 늦은 나이에 공조참판을 지냈다.\n나중에 유성룡 계통은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중심으로 병파(屛派, 또는 屛論)를, 김성일 계통은 호계서원(虎溪書院)을 중심으로 호파(虎派, 또는 虎論)를 형성하였다.\n병파는 정경세를 거쳐 유진(柳袗)―유원지(柳元之)로 이어졌고, 호파는 장흥효(張興孝)를 거쳐 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이상정(李象靖)―유치명(柳致明)―김흥락(金興洛)으로 이어졌다.\n그 밖에도 퇴계학파로서 정경세 등의 예학이 발달하였다. 영남의 남인계로서 유성룡·김성일 이외에 정구와 장현광의 유파로서 ‘사소분파(四小分派)’를 이루었다.\n정구의 문하에서는 이후경(李厚慶)·서사원(徐思遠)·황종해(黃宗海)·허목(許穆) 등이 나왔고, 장현광의 문하에서는 김응상(金應相)·정극후(鄭克後)·유진 등이 나왔다. 퇴계학파는 대개 남인계열이 되었다.\n은일한 산림처사로 기개와 절의로 의연한 풍모를 보여 주었던 조식 문인들 중 다수가 정계에 진출하였다. 동인이 남·북으로 갈릴 때 북인에는 이발(李潑)·정인홍(鄭仁弘)·최영경(崔永慶)·정여립(鄭汝立)·이산해(李山海)·이이첨(李爾瞻)·홍여순(洪汝諄)·남이공(南以恭) 등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 조식의 문인이 많았다.\n북인은 남인에 비해 정치적 입장이 강경해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정치적 수완도 뛰어났다. 북인 계열은 선조·광해군 시대를 거치며 정치적으로 활동적이며 과감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이황과 조식은 정치현실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인조반정 이전까지 그들 문하의 제자들이 정계에 진출해 남인·북인의 시대를 형성하였다.\n셋째 조선 중기의 의리사상과 충렬정신이다. 조광조·이황을 거쳐 이이에게 이어진 성리학적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하고, 외침에 저항하는 의리학파의 충렬 정신이 두드러졌다.\n고려 말 정몽주의 충절, 조선 전기의 의리파, 사육신·생육신의 절의파, 사화기 시절 사림의 도학정신 등이 의리파의 범주에 속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의 의병 활동도 그러한 정신에서 이루어졌다.\n“춘추시대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었다.”고 하듯이 의리는 기본적으로 전쟁을 거부한다. 동양의 유교적 전통에서는 무고한 전쟁에 대해서 연합군을 형성해 토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n조선과 명나라가 비록 대국과 소방(小邦)의 구별(分)은 있었지만 인도를 높이고 불의를 물리쳐야 한다는 춘추의리의 이념에 있어서는 같았다. 화이론이나 존주론(尊周論)의 근본 정신도 여기에 있다.\n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당해 조선이 국내외적으로 응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의리학에 연원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의병 활동과 저항 정신에서, 그리고 효종대의 북벌론과 만동묘(萬東廟)의 건립에서 의리학을 볼 수 있다.\n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 전 정병 10만을 양성하자는 이이의 주장이 있었지만, “아무런 일이 없을 때 병사를 양성하는 것은 화를 키우는 것(養禍).”이라고 하여 거부되었다. 또한 5·6년 전부터 왜란에 대비하도록 극간한 조헌은 길주(吉州)에 유배되었다.\n조선 군대는 장비와 훈련 면에서 왜군을 당하기 어려웠다. 당시 일본에서는 100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10도(十島)를 통일했었고, 도요토미(豊臣秀吉)는 단련된 군대를 이끌고 인도까지 정벌할 야망를 품었다고 한다.\n조선은 개전 초부터 군사적으로 열세였지만, 불멸의 애국혼을 발휘하였다. 부산진첨사 정발(鄭撥)과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충천의 기개로써 항전하며 위국진절(爲國盡節)의 의기를 보여주었다.\n전국 각지에서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의군(義軍)이 일어났다. 영남의 곽재우(郭再祐), 호서의 조헌, 장흥의 고경명(高敬命), 광주의 김천일(金千鎰), 보성의 임계영(林啓英), 담양의 김덕령(金德齡), 연안의 이정암(李廷馣), 봉산의 김만수(金萬壽), 중화의 김진수(金進壽), 평양의 양덕록(楊德祿), 경성의 이붕수(李鵬壽) 등의 의병은 승군(僧軍)이나 관군과 연합하면서 각지에서 항전하였다.\n이들 모두는 유명·무명을 가릴 것 없이 겨레의 의기(義氣)를 실증한 충렬정신의 화신이자 민족혼의 정화였다.\n조헌의 경우 임진왜란을 앞두고 국내외의 대국(大局)을 간파해 백방으로 대응책을 제시하였다. 그는 국내적으로 자주 정신을 고취해 왜란에 대비하도록 하고, 국제적으로 춘추정신에 입각해 중국 및 동남아시아 제국과의 연합군을 형성해서 일본을 포위할 것을 건의하는 등 탁월한 선견지명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서 왜적과 싸우다가 칠백의사와 더불어 부자가 함께 전사하였다.\n고경명은 임진왜란 중에 3부자가 함께 전사하였다고 한다. 또한 안방준(安邦俊)은 『항의신편(抗義新編)』과 『임진록』을 찬술하였다.\n인조 14년(1636)에 돌발한 병자호란으로 이듬해 정월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의 성하지맹(城下之盟)을 맺었다. 청나라와 군신의 의를 맺는 11개 조항의 항복 조건을 받아들였고, ‘대청황제공덕비’를 세워야 하였다.\n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은 인질이 되었고, 주전론을 주장했던 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홍익한(洪翼漢) 등 삼학사는 심양으로 잡혀가서 죽었다.\n청나라에 대해 조선의 임금은 9층 단하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을 청해 민족적 치욕을 당했지만, 전세의 상황은 항전이 어려웠다.\n명나라를 치기 위한 청나라의 출병요구에 반대했던 김상헌과, 명나라와 내밀하게 통교하였던 최명길은 각각 심양으로 잡혀가 구금되었다. 최명길은 인조 23년(1645)에야 소현세자·봉림대군과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 항복은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n청나라에 대해 사대의 예를 행했지만, 실제로는 명나라를 은혜로 알고 청나라를 원수로 여기는 숭명배청의 경향이 굳어지고 있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당시 22만 군을 조선에 파견함으로써 국세가 기울어 청나라가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 효종은 북벌 계획을 추진했지만, 10년 만에 죽게 되자 계획으로 그치고 말았다.\n임진·병자의 양난 동안 흥기했던 의리사상은 송시열에 의해 계승되었다. 기호학파였던 송시열은 당대의 거유(巨儒)이자 사림의 종장이었다. 그는 정몽주와 조광조를 비롯해 이황과 이이를 모두 존숭하였다. 성리학과 예학에도 밝았다. 만년 노·소로 나뉘어 있던 당쟁의 와중에서 기사환국 때 유배되어 사사되었다.\n효종의 총애를 받아 북벌 계획에 참여한 적도 있었던 송시열은 의리지학을 중시하였다. 『주자대전』에 비길만한 대작 『송자대전』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의리학에 관련된 위국순절한 인물들에 대해 상당 부분 기술되어 있다.\n예를 들면, 정몽주의 신도비와 조광조의 능주정암선생적려유허비, 박팽년의 회덕박선생유허비, 성삼문의 홍주성선생유허비 및 연산성선생유허비를 지었다.\n임진왜란에 즈음해 조헌의 중봉조선생행장, 이순신의 남해노량이공묘비, 송상현의 천곡송공상현신도비명, 신립의 도순변사증영의정신공묘갈명, 권율의 도원수권공묘표음기를 지었다.\n병자호란과 관련해 김상헌의 석실서원묘정비 및 석실김선생묘지명, 윤집의 교리증부제학묘갈명, 홍익한의 장령홍공묘갈명, 윤집 등 3인의 「삼학사전(三學士傳)」, 임경업(林慶業)의 「임장군경업전」 등을 지었다.\n뿐만 아니라 숙종 30년(1704)에는 충청북도 화양동에 송시열의 유명(遺命)으로 만동묘를 지어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신종과 마지막 임금 의종을 추념해 제사를 지냈는데, 이는 모두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다.\n연호에서도 사사(私事)에서는 모두 청나라의 것을 쓰지 않고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를 써서 ‘숭정후모년(崇禎後某年)’으로 기록하였다.\n이러한 사실은 당시 조선인의 반청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조 의리학의 전통은 송시열에 이르러 다시 확증되면서 후세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n넷째 조선 중기에는 ‘예학의 시대’라 할 만큼 예학이 발달하고 많은 논저가 나왔다. 임진·병자 양 난을 전후해 무너진 기강과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순후한 민풍을 일으키는데 예학의 역할이 중요하였다.\n성리학적 정신이 국가의 혼란기에 의리학적 행동으로 나타났듯이 일상 생활에서는 행동을 바르게 하는 예를 통해 실현되었다.\n조선을 건국하는데 예전(禮典)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국초부터 예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수행되었다. 고려 말에 정몽주가 『주자가례』를 여행(勵行)케 하여 불교식 법속을 유교 의례로 바꾸도록 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하였다.\n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사례를 중시하여 관례(冠禮)·혼인·상제·가묘 등을 논술하였다. 그 뒤 그는 『경국대전』을 비롯, 『대전통편』과 『대전회통』등을 간행하였다.\n또한 그는 국초부터 『주자가례』를 간행하고 의례상정도감(儀禮詳定都監)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국조오례의』를 찬정하였다. 이는 뒷 날 예송이 일었을 때 논의를 판정하는 준거가 되었다.\n성리학파로서 저명한 학자들은 대부분 예학과 관계가 있었다. 권근의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을 필두로 김인후·이언적·이이·송익필·이항복(李恒福)·유성룡·김성일 등은 모두 예에 관한 논저를 남겼다.\n17세기에 들어들면 이황의 문인 정구와 이이의 문인 김장생은 예학의 대가로서 쌍벽을 이루었다. 예학의 대종(大宗)으로 일컬어지는 김장생은 이이로부터 성리학을, 송익필로부터 예학을 배웠다. 저술로서는 『가례집람(家禮輯覽)』·『의례문해(疑禮問解)』·『상례비요(喪禮備要)』(校正本)·『가례편람(家禮便覽)』이 있다.\n그의 학문은 아들 김집과 송시열에게 전해졌다. 김집의 학은 송준길·유계(兪棨)·이유태(李惟泰)·윤선거(尹宣擧)를 거쳐 윤증(尹拯)으로 계승되었다.\n송시열의 학은 이단하(李端夏)를 거쳐 김원행(金元行)·박윤원(朴胤源)·권상하·한원진 등에게 전수되었고, 그것은 다시 송능상(宋能相)·이의조(李宜朝)·김창협·이재(李縡)로 연결되었다. 송준길로부터 민유중(閔維重)이, 그 밖에 김상헌으로부터 박세채가 나왔다.\n정구는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예기상례분류(禮記喪禮分類)』·『가례집람보주(家禮輯覽補註)』·『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심의제도(深衣制度)』 등을 지어 이황 문하의 예학 대가가 되었다.\n정구를 거쳐 장현광·허목·황종해(黃宗海)·이론(李論) 등이 나왔으며, 유성룡의 후계로서는 정경세를 거쳐 정종로(鄭宗魯)·조호익(曺好益) 등의 예론가가 배출되었다.\n조선조 후기까지 예학은 계속 탐구되어 성호학파(星湖學派)와 북학파(北學派), 그리고 정약용(丁若鏞)과 같은 실학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저술을 남기고 있다.\n유교는 일상 행위를 통해서 떳떳한 이치를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유교의 13경 가운데 ‘삼례(三禮)’에 해당하는 『주례』·『의례』·『예기』 등의 예경(禮經)이 있다.\n본래 종교적 제의(祭儀)에서 유래했던 예는 규범화되어 인간 생활의 풍속·관습·범식(範式)이 되었다. 이러한 고대적 습속으로서의 예 개념을 혁신시켰던 유교의 예는 타율적 구속력에 의존하기 보다 인간의 자율적 주체성에 호소한다.\n때문에 예는 보편적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절문(節文)’이며 인정에 맞는 ‘의칙(儀則)’이라고 하였다.\n공자는 안회(顔回)가 인을 물었을 때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였다. 인의 마음은 예의 실천으로 나타난다고 볼 때, 인은 정신이요 예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다.\n유교의 특징인 구체적 현실성은 인간의 진실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예법을 필수적으로 요청하였다. 가정과 국가,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를 성립시키는 도리로서의 예는 인간 생활을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보았다.\n마음은 진실해야 하고 표현 방법은 적합해야 한다. 인과 예는 내외본말의 관계이며, 진실성과 합리성은 예의 바람직한 실상이다.\n유교의 의례에는 관혼상제의 사례가 있다. 그 중에서도 상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상례에는 오복제도가 있어서 친소(親疎)에 따라 그 복제와 상기(喪期)가 5가지로 구분된다. 생자와 망자의 관계에 따라 인정이 다르고 친소경중(親疎輕重)의 차이에 따라 충정(衷情)의 표현 방법이 달랐다.\n상례는 동양의 뿌리깊은 종법 사회를 유지시키는 원리였다. 의례의 생활화는 곧 유교가 완전히 뿌리내림을 뜻한다. 오복제도는 그 원리가 간단하지만 그 적용은 복잡 다양하였다.\n이른 바 조선 중기의 예송에서도 문제의 초점은 예제의 내용상의 혼돈에 있지 않고, ‘대통(大統)’과 ‘적통(嫡統)’을 어떻게 관계지을 것인가에 있었다.\n예송은 정치적 당쟁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정신과 형식의 균형 조화를 존중하는 유교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이념 논쟁이기도 하였다. 예학은 학술적 연구를 통해 조선인의 사습(士習)과 민풍이 훈습되고 미풍양속을 이루는 계기였다.\n다섯째 조선 중기에는 실학사상이 대두하였다. 우리 나라 실학의 전성기는 영정조 이후지만 이미 중기에 들어서면서 실학의 풍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이수광·허균(許筠)·유형원, 그리고 박세당 등이 그러한 인물이다.\n유교는 “고명(高明)을 다하되 중용을 말미암는다(極高明而道中庸).”고 했듯이 일상적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실학의 성격을 띤다. 주자학에서도 노불(老佛)을 공허하다고 비판하고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하였다.\n유학이 수기치인과 경세제민을 근본으로 하는 점은 어느 학파를 막론하고 공통적이었다. 조선조 학풍의 기조를 이루었던 주자학은 순수철학과 사회철학의 양면이 있었다. 전기에는 정주(程朱)의 성리철학이 크게 발달했고, 후기에는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이용후생을 위주로 한 실학이 발달하였다.\n영조조의 오광운(吳光運)은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隨錄)』 서(序)에서 실학의 필요성과 그 사상사적 의의를 밝히고 있다.\n그는 서문에서 “도덕은 하늘에 근원하고 정제(政制)는 땅에 근본하는 것이니, 하늘만을 스승으로 하여 땅을 알지 못하거나 땅을 스승으로 하여 하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어찌 옳으리오.”라고 하면서 주체적인 인륜 도덕과 사회적인 정치 제도를 『주역』의 건곤(乾坤)이나 형상형하(形上形下)의 도기론(道器論)으로 설명하였다.\n그는 삼대(三代)에는 천·지와 도·기가 분리되지 않았지만 주말(周末) 이래로 도와 기가 함께 무너졌는데, 기가 더욱 심하게 무너졌다고 하였다.\n정주와 같은 대현이 나와 삼대의 다스림에 뜻을 두었지만 먼저 도를 밝히기에 급했기에 힘쓸 겨를이 없었다고 하였다. 또한 훗날의 군자가 정주자(程朱子)의 학문을 보완해 기에 힘쓰기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한다.\n이와 같은 논의는 재래의 도덕주의와 이기심성론에 치중했던 정주학적 학풍에 대한 반성이며, 당시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것이었다.\n한백겸(韓百謙)은 『동국지리지』와 『기전고(箕田考)』를 지어 실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수광은 그의 『지봉유설』에서 무실론(懋實論)을 펼치고 천주학과 양명학까지를 포함, 서학과 중국 문물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등 실학적 면모를 보여주었다.\n박세당은 주자학에 얽매이지 않고 경전을 해석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도덕경』과 『장자남화경』 등 노장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해 『색경(穡經)』과 같은 농서도 지었다. 또한 홍만선(洪萬選)은 『산림경제』를 써서 농예(農藝)·의약·구황(救荒)에 관한 저술을 남기었다.\n이익의 『성호사설』에서도 지적하듯이 조선 중기에 무실적 태도를 가장 뚜렷이 보였던 사람은 이이와 유형원이었다. 이익은 “국초 이래로 식무(識務)한 이는 오직 이율곡과 유반계 이공(二公)뿐이었다.”고 하였다.\n이이와 유형원은 모두 성리학적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은 공허하지 않고 이기와 인심도심을 밀접한 관계에서 파악하였다.\n이이는 많은 소문(疏文)을 지어 경장론 및 경세론을 폈다. 그의 제안대로 3년 간 실시해 “나라가 진흥하지 않고 백성이 편안해지지 않고 군대가 정예로워지지 않을 때에는”, “끓는 가마에 넣고 도끼로 버히는 형벌을 내리더라도 사양치 않을 것”이라고 격절(激切)히 논의하였다(萬言封事 및 陳時弊疏).\n유형원은 그의 『반계수록』을 통해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국가론’을 전개하였다.\n『반계수록』은 전제(田制)·교선(敎選)·임관(任官)·직관(職官)·녹제(祿制)·병제(兵制) 등 거의 모든 제도를 망라해 당장 시행할 수 있도록 기술하였다. 그의 저술은 매우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후세에 실용적·실증적 학문을 여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n여섯째 양명학의 이해와 사상적 영향이다. 조선조는 유교로 나라를 세웠고, 주자학은 조선시대를 통해 정신 문화와 사회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 유교와 주자학은 국시가 되었으며 도·불은 물론 다른 학문에 대해서도 유교와 주자학에 배치되면 용납되지 않았다.\n이와 같이 주자학을 정학(正學)으로 하여 재래의 침체를 타파하고, 격치성정(格致誠正)과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도를 펼치려고 하였다.\n한편 양명학은 불교의 선학에 가깝다고 판단되어 당시의 사회 통념에 의해 배척당하였다. 왕수인(王守仁)은 선학(禪學)이라고 비판받던 육구연(陸九淵)에 대해 불교의 선학과 다르다고 변호했지만, 조선시대의 학자들의 일반적 인식은 전혀 달랐다.\n이이만 해도 불교는 외구(外寇)와 같아서 뚜렷이 알 수 있지만, 육학(陸學)은 반드시 공맹과 효제(孝弟)를 일컫는 까닭에 마치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n왕수인(王守仁)은 중국 명대 유학인 양명학의 창시자로서 주자학과 대립하는 뚜렷한 학파를 형성하였다.\n명나라에서는 육구연과 왕수인이 모두 문묘에 종사되었지만 조선에서는 육왕학이 인정받을 수 없었음은 물론, 오히려 명나라의 문묘종사는 조선 사신들의 힐난을 받았다.\n그러나 양명의 학설이 조선에 전래된 것은 상당히 빨랐다. 왕수인과 제자들의 문답인 『전습록(傳習錄)』이 중국에서 간행된 것은 1518년이었는데 3년 뒤인 1521년(중종 16) 박상(朴祥)과 김세필(金世弼) 사이에 주고받은 글 가운데서 양명학을 선학으로 보아 비평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n또한 이황과 같은 대가가 「전습록논변」을 지어 양명의 ‘친민설(親民說)’·‘심즉리설(心卽理說)’·‘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등을 논해 배척함에 따라 양명학은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n학문과 인품이 온건하고 포용력이 있는 이황으로서도 이단사설(異端邪說)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하게 경계하였다. 그리고 조목·유성룡 등 후학들은 사설(師說)에 의거하여 양명학을 계속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양명학은 수입 초기부터 영남·기호를 막론하고 주관주의철학으로 인식되어 거부당했던 것이다.\n그러나 중국은 사정이 달랐다. 명나라의 사신으로 온 황홍헌(黃洪憲)은 양명학자였고, 임진왜란 때 명군의 경리(經理)인 만세덕(萬世德)은 육구연과 왕수인을 문묘에 종사하도록 종용하기도 하였다.\n조선에서도 양명학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성룡에 의하면, 당시 남언경(南彦經)으로부터 배운 사람들 가운데 양명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n이요(李瑤)는 그 한 사람으로 선조와의 대화에서 양명학의 주지(主旨)를 설명했고, 선조 역시 상당히 호의를 가지고 요점을 간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n유성룡도 이론적으로는 양명학을 비판하였지만 “양명의 설은 상산(象山)과는 다르다. 대개 양명은 ‘운용처(運用處)’가 많이 있다.”고 하여 양명학을 일부 인정하였다.\n이이도 육학(陸學)의 선학적 경향과 그 폐단에 대해 비평했지만, 육학이나 양명학 자체를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n이이는 명나라 사신 황홍헌에게 준 「극기복례설(克己復禮說)」에서, “소방(小邦)의 사람이 식견이 고루해 오직 정주(程朱)의 설을 지킬 뿐 다른 도리로써 펴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비록 움 속에서 벗어나려 해도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전문(全文)을 참조하면 정주의 설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타학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n이와 같이 조선 중기에는 양명학에 대한 비평이 계속되면서도, 한편으로 국내외의 자극과 관심으로 인해 양명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늘어나게 되었다.\n조선 중기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인물 가운데 양명학에 대한 이해와 견식을 가지고 영향을 받았던 선비로서 장유와 최명길을 들 수 있다. 이수광·허균·조익(趙瀷)·이시백(李時白) 등은 중국을 오가며 양명학을 이해했고, 학설과 생활에 반영하기도 하였다.\n장유는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당시 조선의 학문이 정주학에 편중되어 있고, 형식으로만 흐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중국에는 정학(正學)·선학(禪學)·단학(丹學)이 있고 정주를 배우는 자와 육왕을 배우는 자가 있어서 들어가는 문이 하나가 아니라고 하면서, 조선의 학자들이 활발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n그는 ‘정학’과 ‘정주’를 말하면서도 양지설(良知說) 및 지행합일설 등 양명학을 옹호하였다. 그는 양명학의 본지가 한갓 정태적 관념론이 아닌 용공실처(用功實處)와 성찰확충(省察擴充)의 동적 세계에 있음을 밝히고, 양명이야말로 또 하나의 길을 개척한 사람(別立門徑)이라고 하였다.\n최명길은 병자호란을 당했을 때 온몸을 바친 애국적인 인물이다. 후일 남구만(南九萬)은 신도비를 써서 생사와 훼거(毁擧)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라와 백성을 구해낸 그의 충성과 재주와 용기를 칭찬하였다.\n최명길의 평생 행적은 그의 수많은 소차(疏箚)에 반영되어 있고, 그의 사상적 편린(片麟)이 문집의 서한과 잡저 가운데 보인다. 그는 당시의 학인들과 다름없는 학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양명학으로부터도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n병자호란이 끝난 뒤 아들 후량(後亮)이 청나라 심양으로 인질로 잡혀갔고, 후일 자신도 잡혀가게 되었다. 그는 멀리 있는 아들에게 양명의 가르침이 담긴 편지를 통해 비록 영어(囹圄)중에 있더라도 수양하고 자립해 마음의 본체로써 진리를 체증(體證)할 것을 간곡하게 권하였다.\n자기 스스로도 “평생에 조우한 환난을 당함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것에 힘입어 큰 낭패에 이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n아들에게 준 사신(私信)이기는 하지만 “양명의 글에 이르기를(陽明書云)”, “양명의 고명으로서도 이와 같은 근심이 있었는데 하물며(以陽明之高明 猶有是夏 況)……”라고 하여 그의 사상이 양명학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n병자호란의 와중에서 생사와 영욕을 돌보지 않고 국가적 환란을 돌파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 주체적인 판단과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정신은 치양지(致良知)·지행합일·사상마련(事上磨練)을 주지로 하는 양명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n양명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양명학의 태두가 된 학자는 정제두이다. 그는 88세의 생애를 오직 학문에 종사하였다. 학덕이 높아 조야의 존경을 받았고 조정으로부터 30여 차례나 부름을 받았지만 사양하고 학문에 몰두하였다.\n그는 소론가(少論家)에 속하였지만 당쟁과 관계없이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였다. 박세채·최석정·윤증·민이승(閔以升)·박대숙(朴大叔)과 같은 사우들이 양명학에 경도(傾倒)함을 충고·비판하였지만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기의 학문 세계를 성취하였다.\n그는 이미 성리학적 지식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의 주지를 음미해 이룩한 자신의 철학적 규준에 의거해 정주와 퇴율의 이기심성설을 근본적으로 재비평하였다.\n특히 정제두는 사서오경을 깊이 연구하여 양명학을 주안(主眼)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 또한 천문·역법·지리·조석(潮汐)·병학(兵學)·의학에 이르기까지 실제적 방면에서도 학문을 논하였다.\n경학을 근본으로 박실(樸實)한 학문에 종사했던 그의 학풍은 후기 실학의 한 축이었던 하곡학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않았던 한국 양명학은 중국의 양명학과 달리 선학의 풍을 띠지도 않았고 반주자(反朱子)를 표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실사(實事)와 실공(實功)을 중시했던 점에 그 특징이 있다.\n일곱째 조선 중기의 후반에 인물성동이론 및 인간의 미발심체(未發心體)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조선 중기에 겪었던 국내외적 환란으로 실학·예학·의리학·양명학 등이 현실지향적 성격을 띤 학문이 성행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주체적 위상과 심성의 본질에 대한 논의도 전개되었다.\n‘인물성동이론’과 ‘미발심체’에 관한 논쟁은 추상적이며 공소한 이론이라고 비평받기도 하지만, 성리학적 심성론이 심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n성리학은 우주 만물과 인간 만사를 원리적으로 해명하려 시도한다. 특히 한국 성리학은 인성론(人性論)을 중요시하였다.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인성(人性)의 문제를 더욱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그 첫째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 문제로 나타났고, 둘째가 미발(未發) 시의 심성문제로 깊어졌다.\n인물성동이론은 『중용』 수장(首章)과 『맹자』 ‘생지위성(生之爲性)’에 대한 주자의 주석에서 발단되었다. 이른바 ‘건순오상(建順五常)’ 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성이 사람과 동물에게서 같은 형태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였다.\n호락논쟁으로 불리는 인물성동이론의 본격적 논쟁은 권상하의 문인이었던 한원진과 이간의 입장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동론과 이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거주지가 달랐는데 이에 따라 호론(湖論)과 낙론(洛論)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n호락논쟁에서 이간은 인물성 동론을, 한원진은 인물성 이론을 폈다. 이들의 주장이 완전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리학 안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양론은 모두 인간만이 ‘정통(正通)’한 기운 또는 오행의 ‘수기(秀氣)’를 갖추었다는 기본 입장에는 차이나지 않는다.\n호락론에서 성론(性論)의 차이는, 성(性)이 기질에 내재적인가 초월적인가에 있다. 이간은 성의 초월적 측면에서 ‘이통성(理通性)’을 지적해 동론을 주장했고, 한원진은 성의 내재적 측면에서 ‘기국성(氣局性)’을 지적하여 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변론은 성리학에서 불명확하였던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n이간은 ‘천명·오상·태극·본연’은 그 이름이 각기 다르지만, 모두 일원(一原)의 이(理)에 근본하기 때문에 내용상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와 천지만물이 오상을 보편적으로 구비하기 때문에 인·물의 성은 같다고 하였다.\n한원진은 이에 반해 ‘천명의 이’는 형기(形氣)를 초월한 것이고, ‘오상의 성’은 기질로 인해 이름 붙인 것이므로 인·물의 성은 서로 다르다고 하였다.\n이간은 본성이 초월적·근원적이어야 한다고 보았고, 한원진은 성의 개념은 기(氣)를 말미암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간은 본연지성이 부여되는 일원처(一原處)에서 인물성의 동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기질의 정통편색(正通偏塞)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인·물의 기질적 차이는 인정하였다.\n한원진의 경우 성(性)이란 형기를 초월한 이(理)와는 달리 이가 기에 ‘떨어져 있는 것(墮在)’을 일컫는 것이므로, 기를 떠나서는 성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n기의 편전으로 인해 인성과 물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성은 인·의·예·지·신의 오상을 완전히 갖추고 있지만, 물성은 그렇지 못해 미소(微少)하거나 전무하다고 보았다.\n한원진의 주장이 인물성의 차이를 주장하지만, 인성과 물성이 유래한 궁극적 근원은 ‘일원무대(一原無對)’의 ‘태극천명(太極天命)’이라고 한 점에서 이간의 일원지리(一原之理)와 다르지 않다.\n이간은 일원이체(一原異體) 또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주장하고, 한원진은 초형기(超形氣)·인기질(因氣質)·잡기질(雜氣質)이라는 성삼층설을 주장했지만 양자 모두 일원만수(一原萬殊)라는 공통적 인식을 깔고 있다.\n또한 호락논쟁에서는 성리학의 기본 명제인 순선(純善)한 본연지성과 선악을 겸한 기질지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간은 본연지성이 구극적 원리인 천도나 태극지리(太極之理)와 동일한 것이며, 인간의 본성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였다.\n형이상의 이(理)인 본연지성은 마치 ‘도(道)’가 ‘기(器)’에서 생하거나 ‘태극’이 ‘음양’에서 생하지 않듯이 “성리의 선은 심기(心氣)에 근원하지 않는다.”고 여겼다.\n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선(性善)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성리 자체에 있지 않고 심기(心氣)의 선악에 관련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심(心)이 부정한데 성이 스스로 중(中)하거나, 기(氣)는 불순한데 이가 스스로 화(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간은 순수 형이상의 성리를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형이하의 심기를 요구하고 있다.\n또한 이간에 의하면,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모두 외물에 의해 촉발되지 않은 미발지성(未發之性)이다. 미발에도 깊고 얕음(深淺)이 있다.\n깊은 것은 허령불매(虛靈不昧)하고 담연허명(湛然虛明)한 명덕본체(明德本體)의 본연지심이기 때문에 ‘중저미발(中底未發)’이라고 부른다.\n반면에 얕은 것은 기품(氣稟)에 구애되어 혼매잡요(昏昧雜擾)한 기질지심이므로 ‘부중저미발(不中底未發)’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이발(已發)의 정(情)으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발시의 순선한 본연지심과 선악을 모두 겸한 기질지심으로 분류하였다.\n이간은 인성을 논할 때 선악을 모두 겸한 기질지성 보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인간의 진정한 본성으로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미발시의 허령불매한 본연지심(本然之心)을 중시해 확보하려고 하였다.\n한원진의 경우도 이간과 마찬가지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모두 마음의 미발 상태인데, 본연지성은 순선하고 기질지성은 선악을 겸하고 있다고 보았다.\n그러나 한원진은 이(理)와 기(氣)는 분리될 수 없고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두 개의 성이 아니라는 전제에 철저하였다. 허령(虛靈)한 마음(心)의 이(理)만을 가리키면(單指) 본연지성이고, 마음에 있는 기품(氣稟)의 청탁미악(淸濁美惡)을 겸하면(兼指) 기질지성이라고 보았다.\n허령한 마음의 본연지성은 성범을 막론하고 동일하지만, 성인과 범인의 차이가 있는 것은 심의 허령에 기인하지 않고 기품에 연유한다고 생각하였다.\n기품의 부제(不齊)에 구애받는 것이 중인(衆人)이고, 그것에 구애받지 않아 본래적 허령상태의 본연지성을 드러내면 성인이라고 보았다.\n실질적으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은 기질의 청탁미악인 까닭에 한원진은 선악을 겸한 기질지성의 현실성에 즉해 선을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원진은 단지(單指)·겸지(兼指)·분간(分看)·합간(合看)·불리(不離)·부잡(不雜) 등의 방법으로 미발심체의 이론을 보다 논리적으로 구성하였다.\n이상과 같이 조선 중기에 제기된 인물성동이론은 김창협·김창업(金昌業) 형제·이재(李縡)·윤봉구(尹鳳九)·이현익(李顯益)·박필주(朴弼周) 등 많은 학자들에게서 자유롭게 토론됨으로써 하나의 학풍을 이루었다.\n이는 조선 후기에 임성주(任聖周)와 기정진(奇正鎭)을 거쳐 전우·곽종석(郭鍾錫) 등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에 걸쳐 성리학의 주요 논점이 되었다.\n호락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영남학파에서는 이휘일(李徽逸)과 정시한(丁時翰)이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을 주장했고, 이승일과 이식은 구동론(俱同論)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기호·영남을 막론하고 인물성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전개되었다.\n3. 조선 후기의 유교\n조선 후기는 밖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정치·문화적으로 변화와 충격을 받으면서 근대로 접어드는 복잡한 시대였다. 영·정조시대의 약 80년 간은 침체했던 국운을 쇄신해 융성을 도모했던 세종∼성종조에 비길 수 있는 문예 부흥기였다.\n영조는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완화시켰고,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당색과 계층에 관계없이 학자들을 모아 국정과 학술문화에 기여하였다.\n영조조에는 『속대전』·『동국문헌비고』·『속오례의』·『속병장도설(續兵將圖說)』·『국조악장』 등의 전적이 간행되었고, 선기옥형(璿機玉衡)과 측우기 같은 천문기상기구 및 각종 도량형이 정비되었다.\n정조조에는 『대전통편』·『문원보불(文苑黼黻)』·『동문휘고(同文彙攷)』·『추관지(秋官志)』·『탁지지(度支志)』·『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해동농서(海東農書)』·『전운옥편(全韻玉篇)』 등 정치·경제·사회·문화·천문·지리에 걸쳐 다양한 문헌이 편찬되었다.\n일반 학계에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조조에는 이익의 성호학파가 나왔고, 정조조에는 중국의 연경을 오가며 청조문화(淸朝文化)의 영향을 받아 북학파(北學派)가 형성되었다.\n조선의 영·정조시대는 청나라의 옹정(雍正)·건륭(乾隆)의 융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당시 청나라에는 천주교와 자연과학 등 서양 문화가 들어와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n영·정조시대에는 실학과 함께 천주교가 들어와 남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서 비판하거나, 유교와 천주교를 절충해 이해하거나, 천주교를 신봉해 유교 의례를 거부하는 등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서학이 들어와 논쟁이 벌어지고 사회 문제화 되었던 것은 전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n영·정조시대를 지나 순조로부터 철종대까지의 60여 년은 왕실의 인척에 의해 세도 정치가 행해졌던 어려운 시대였다. 순조는 11세, 헌종은 7세, 그리고 철종은 19세에 즉위하였다.\n순조조에는 안동 김씨, 헌종조에는 풍양 조씨, 철종조에는 다시 안동 김씨 등이 세도를 부리는 동안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국정은 극도로 황폐화되었다.\n또한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등 삼정(三政)의 문란은 민생을 곤궁하게 하였다. 순조 11년(18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고 철종 13년(1862) 진주민란이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민란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도둑떼가 들끓었다.\n한편 천주교의 신봉자들은 날로 늘어났다. 이승훈(李承薰)은 중국에서 세례를 받은 후 1784년에 귀국해 이벽(李檗)·권철신(權哲身) 등에게 세례를 주었다. 정조 15년(1791) 윤지충(尹持忠)·권상연(權尙然)은 상제(喪祭)를 폐하고 신주를 불사름으로써 일어났던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처형되었다.\n순조조부터는 대규모의 교옥(敎獄)이 일어났다. 순조 때의 신유사옥(1801)과 헌종 때의 기해사옥(1839)이 그것이다. 김대건(金大建)은 헌종 11년(1845)에 마카오에서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 다음 해에 순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계속 번졌다.\n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정약용(丁若鏞)과 김정희(金正喜) 같은 대실학자가 탄생했고, 위정척사와 척양척왜를 주장하는 이항로(李恒老) 및 그를 계승한 화서학파(華西學派)가 형성되었다.\n고종·순종조의 약 60년간은 조선 말기의 풍운이 겹치는 시대였다. 1910년 급기야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고종이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섭정을 시작하는 등 정세가 변화무쌍하였다.\n고종 3년의 교옥,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 동학란의 발생과 갑오경장(1894), 청일전쟁(1894∼1895),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의 성립(1897), 러일전쟁(1904), 을사조약(1905), 고종퇴위(1907) 등 여러 사건이 있어났다.\n이러한 난국에 대해 당시의 지성들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졌다. 보수적 의리학파는 주권 수호를 위해 이념적·정치적으로 외세를 배격했고, 개화파는 국제 문물을 받아들여 개혁과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n조선 후기에 나타났던 유교사상의 실학적 입장과 의리학적 입장, 그리고 양명학이 끼친 영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n첫째 조선 후기 실학은 성호학파·북학파, 그리고 정약용과 김정희의 사상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n① 성호학파: 이익은 기호학파 남인 학자로서 18세기 실학의 최대 사상가였다. 그는 평생을 학문에 종사하였다. 유교의 경전과 성리학 및 예학에 일가견을 가졌고, 경세치용의 실학을 중심으로 양명학과 서학에 이르기까지 고금중외(古今中外)의 학문에 폭넓은 관심을 보여 『성호사설』을 비롯한 수많은 논저를 남겼다.\n그는 유교의 경전인 『근사록』·『심경』·『가례』 등 주요 문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질서(疾書)’라는 명칭의 방대한 논술 속에 담았으며, 『사칠신편(四七新編)』이라는 성리서를 찬술하기도 하였다.\n이익은 이학(理學)에 있어서는 이황을 존숭해 『이자수어(李子粹語)』라는 퇴계선집을 냈고, 경세적 무실론에서는 이이를 높이 보았다.\n그러나 선유의 설을 참고하면서도 자기의 독자적 견해를 가지고 서술하였다. 특히 그의 저술인 『곽우록(藿憂錄)』에서는 토지제도와 관련해 영업전(永業田)을 논하는 등 정치·군사·경제·교육 및 기타 현실 문제를 전반적으로 비평하고, 구체적 제안을 제시하였다.\n그는 ‘삼얼(三孽)’의 폐해를 들어서 존군억신(尊君抑臣)의 전제주의, 인재 등용에서의 문벌주의, 그리고 문사(文辭) 위주의 과거제도를 비판하였다.\n이익은 서학과 관련해 천당지옥설과 같은 종교적 신앙을 부정했지만, 수양론이나 윤리사상에 대해서는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서양의 자연과학과 정밀한 학술에 대해서도 찬탄하였다.\n이익은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포용하면서 백과사전적인 폭넓은 지식을 추구하였다.\n이익의 후학들은 보다 개방적 자세를 취하였다. 안정복(安鼎福)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열조통기(列朝通紀)』·『고사지리(考思地理)』를 지어 우리 나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등 후기 실학자의 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n그는 경사(經史)를 근본으로 주자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황을 높이 존숭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공맹의 말은 왕조의 법령과 같고, 정주의 말은 엄사(嚴師)와 칙려(勅勵)와 같으며, 퇴계의 말은 자부(慈父)의 훈계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을 지어 천주교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보였다.\n신후담(愼後聃)도 일찍이 「서학변(西學辨)」을 지어 전통 유학의 입장에서 천주교 교리서인 『영언여작(靈言蠡勺)』·『천주실의(天主實義)』·『직방외기(職方外記)』 등을 이론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있어서 서학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로서는 최초의 것이며, 대서학 논쟁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n한편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면서도 천주교에 기울었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제자 권철신과 종손 이가환(李家煥) 같은 학자들은 천주교인이 되었고 신유사옥 때 순교하였다.\n또한 정약용과 그 형제들은 이익 문하의 신서파(信西派)들과 교유하였다. 정약용의 매부가 이승훈(李承薰)의 아우 치훈(致薰)이며, 형인 정약현(丁若鉉)의 사위가 황사영(黃嗣永)인 점으로 보아 성호학파의 한 계통이 천주교와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n② 북학파: 북학파란 18세기 후반에 사행(使行)으로 연경에 오가며 청조 문물에 자극을 받아 북학론을 폈던 일군의 소장층 학자들을 말한다. 그들은 주로 노론 계통이었는데 특히 정조의 총애 속에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n북학파는 재래의 도학 일변도의 전통에서 벗어나 보다 시야를 넓혀 외래 문화를 수입해 이용후생의 실용적 학풍을 진작하고, 관념적이며 중세기적인 독단을 버리고 자연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사고방식을 수용하였다.\n또한 『춘추』의 의미를 재해석해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로부터 벗어나 지역적 차이를 두지 않고 개별적 자주성을 존중하였다.\n홍대용(洪大容)은 『담헌서(湛軒書)』에서 북학파의 새로운 사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경전을 해석할 때 주자설만을 취해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포용해 탐구자의 기본 자세와 자유로운 학문 방법을 주창하였다.\n학문에서도 의리학을 근본으로 하되, 경세(經世)와 사장(詞章)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세 가지는 상보적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공자와 주자를 존숭하면서도 왕수인을 높이 평가하였다.\n홍대용은 과학적 사고방식, 자주적 역사의식, 실용적 학술의 중시, 선진문물의 섭취 등 진취적 태도를 취했던 북학파의 선구였다.\n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양반전」·「허생전(許生傳)」 등에서 그의 사회 의식과 경제 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시대적 모순을 풍자하면서 일체의 형식주의적 허위를 버릴 것을 주장하였다.\n그는 지성인들이 한갓 옛 글만 읽고 있을 것이 아니라, 농공상 등 민생에 필요한 것이면 청조의 것이라도 충분히 배워올 것을 주장하였다.\n박지원은 정덕·이용·후생의 삼덕에 대해, “이용을 이룬 다음에 후생을 할 수 있고, 후생한 다음에 정덕을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조성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특히 농업과 공업의 진흥책을 제언하였다.\n박제가(朴齊家)는 『북학의(北學議)』에서 청조의 문물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이용후생의 정신을 보다 정밀하게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공상을 모두 진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n그 밖에도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의 논저에서도 실학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n북학파의 청조 문물에 대한 개방적 태도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청국과 우호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북학파는 중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발전시켰던 청나라의 실제적 우수성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다.\n청나라는 문화적으로 이미 성리학을 비롯한 유교의 자원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었다. 청나라 문물의 수입은 성리학의 부정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적 유학의 추구를 의미하였다. 박지원의 『연행록(燕行錄)』과 『북학의』 서문을 보면 중국의 전통 문화를 발전시켰던 청나라의 문명에 대한 북학파의 인식을 알 수 있다.\n청나라에는 전통적 성곽·궁실·인민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정덕·이용·후생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주정장주(周程張朱)의 학문이 보존되었고, 한당송명(漢唐宋明)의 양속미제(良俗美制)가 계승되었다.\n비록 청나라는 오랑캐 민족이었지만, 중화문화(中華文化)를 계승하고 서양의 과학 기술 등을 수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따라서 북학파는 중화문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실용적 태도를 중시했다고 판단된다.\n③ 조선 말기의 실학사상(정약용과 김정희) : 정약용은 조선 후기 최대의 실학자로 불린다. 그의 학문 규모와 방대한 저술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할만하다. 그는 기호학파 남인으로 성호계통의 신서파(信西派)이고, 그의 여러 형제들이 순교하거나 귀양살이하였다.\n그의 사상적 기반은 천주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육경사서(六經四書)의 경학을 학문의 근본으로 했고, 1표2서(一表二書 :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를 지어 운용의 학을 기술하였다.\n「오학론(五學論)」에 보이듯이 그는 도·불은 물론 공자와 맹자를 제외한 유교의 어느 학파에도 심열성복(心悅誠服)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서학에 대한 자발적 비판은 보기 어렵다.\n그의 방대한 저술은 경학에 관한 것이 제일 많고, 정치 조직·지방 행정·형정(刑政) 등에 관한 경세론, 그 밖에 의학·농학 및 기타 과학 기술에 관한 것이 있다.\n도학 또는 성리에 대해서는 주자와 퇴율을 절충해 이해했지만,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이론 체계에서 벗어나 보다 경험주의적인 접근을 보였다. 경학의 전개에서도 양명학적 해석 방법을 원용하였다.\n정약용은 천주교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전 속의 상제사상(上帝思想)을 농도있게 서술함으로써 유교를 종교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n정약용이 보는 상제는 ‘하천지총(荷天之寵)’의 인격천(人格天)이자 ‘영명주재지천(靈明主宰之天)’으로서, 성리학 태극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영명무형지체(靈明無形之體)를 부여받았으니, 그것이 도심이고 도심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고 생각하였다.\n정약용은 정치사상에서 민주·민권 의식을 고취하였다. 모든 사람이 양반이 됨으로써 양반이 없어져야 할 것이라든가, 임금을 정함에 있어서도 하향적 권위주의(上而下)를 지양하고, 상향적으로 뽑아올리는 것(下而上)이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하는 등의 민주주의적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정약용에게 이미 근대적 정신이 깃들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n김정희는 일찍이 박제가를 사사하였다. 그는 연경에 가서 청대 실학의 거유이며 고증학의 대가인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을 만남으로써 학문적 자세를 형성하게 되었다.\n김정희의 학문적 범위는 경학·사학·시문으로부터 금석·고증·서화를 포함해 매우 광범위하였다. 성호계통의 학문을 이어받은 정약용이 천주교의 소양을 갖춘 대학자였다면, 김정희는 통유(通儒)이면서도 불교적 소양을 겸하고 있었다.\n완당 김정희에서 실학의 주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이다. 그는 과거의 전통적 학문을 배제하는 입장이 아니라, 각기의 진수를 올바로 파악해 상보적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의 학문을 가리켜 한송절충론(漢宋折衷論) 또는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라고도 일컫는다.\n그는 의리지학과 고정지학(考訂之學)을 동시에 취하였다. “학문하는 도리는 한학과 송학의 경계를 반드시 나눌 것이 없고, 정현(鄭玄)과 왕필(王弼), 정자와 주자의 장단을 비교할 필요도 없으며, 주자·육상산·설문정(薛文靖)·왕양명의 문호를 다툴 것도 아니다. 다만 심기를 편안히 가라앉히고 널리 배우고 독실히 배우는 가운데, 오로지 ‘실사구시’라는 한 마디에 힘써 행해야 한다(實事求是說).”고 하였다. 그러나 학문에는 선후본말이 있다고 보아 고증을 수단으로 의리를 목적으로 삼았다.\n이와 같이 김정희는 모든 학문에 개방적이면서도 공허한 이론(空疎之術)이나 선입견(先入之言)을 배제하고, “오직 실사에서 옳은 것을 구하는” 자세를 취하였다.\n김정희의 사상은 한국 실학의 방법론을 매우 의미 있고 완미(完美)하게 귀결시킨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전통을 널리 포용하면서도 예를 중시하고 전인성(全人性)을 추구했던 완당 김정희의 실학은 근본 유교의 본지에 상당히 접근하였다고 볼 수 있다.\n그 밖에 조선 후기 실학자로 일찍이 경사에 밝고 한송(漢宋)을 함께 존숭했던 『존주휘편(尊周彙編)』의 저자 성해응(成海應)과, 말기에 『기측체의(氣測體義)』를 써서 유교 이론을 경험론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근대적이며 실증적인 정신을 발휘했던 최한기(崔漢綺)를 꼽을 수 있다.\n또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역사·지리·어문·금석 등 과거에는 묻혀 있던 국학 분야를 탐구해 수많은 저술을 내었다. 역사 방면으로 안정복의 『동사강목』, 한치윤의 『해동역사』,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이 있다.\n지리에는 이중환의 『택리지』, 정약용의 『강역고(疆域考)』, 성해응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 어학에는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유희의 『언문지(諺文志)』가 있다.\n금석학에는 김정희의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이 있고, 농림생물에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있다. 의학에는 정약용의 『마과회통(麻科會通)』, 이제마(李濟馬)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등이 있다.\n둘째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의리사상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순조 때부터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60여 년은 세도 정치가 행해지고 민란으로 소요를 겪었으며, 천주교의 거듭된 교옥과 동학의 최제우(崔濟愚)가 처형당하는 등 나라 안팎으로 환란이 거듭되었다.\n성호학파와 북학파의 시대를 거쳐 정약용과 김정희 같은 석학이 유배 중에 학문을 닦았던 것을 제외하곤 사상적으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을 때 후기 성리학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n홍직필(洪直弼)·임성주(任聖周)·이항로(李恒老)·기정진(奇正鎭) 등이 이 시대의 인물이며, 그 뒤를 이어 이진상(李震相)·전우·곽종석(郭鍾錫) 등 영남·기호를 막론하고 많은 학자들이 나왔다.\n또한 서세동점(西勢東漸)과 한민족의 국가적 위기 앞에서 뚜렷한 이념과 행동으로 대응해 의리학의 학통을 이루었던 화서학파가 있었다. 이항로는 화서학파의 종사(宗師)였다. 그의 문하에서 김평묵(金平默)·유중교(柳重敎)·최익현(崔益鉉)·유인석(柳麟錫)과 같은 구국 항쟁의 선비들이 배출되었다.\n19세기 성리학적 전통을 지켜온 조선은 정치적으로 서양과 일본의 위협을 받았고, 사상적으로 서학(천주교)과 부딪쳤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성리학자의 태도 역시 다양하였다.\n실학파가 청나라와 교섭하면서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주장을 폈고, 한말에는 개화파가 그 정신을 계승하면서 서양 및 일본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의 자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외부로부터의 위압과 이들 개화파의 주장에 의해 조선은 결국 문호를 개방하였다. 또한 일본 및 구미제국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국가 체제를 근대적으로 변경시키고 있었다.\n그러나 강화도조약―갑신정변―갑오경장―을미사변―을사조약 등으로 마침내 국권은 상실되었고, 개화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김옥균(金玉均)은 상해에서 피살되었다. 유길준(兪吉濬)은 국권 상실 이후 죽었고, 박영효(朴泳孝)는 일본국 후작을 거쳐 귀족원 위원이 되었다.\n비록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의 박은식(朴殷植)은 3·1운동 후 해외에서 독립 운동을 했지만, 결국 개화파의 노력은 결국 국권 상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n한편 화서학파는 유교의 의리사상에 입각해 외민족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자 노력하였다. 화서학파의 기본 논리는 척사위정과 척양척왜였다. 이항로는 「벽사록변(闢邪錄辨)」을 썼고, 문인 유중교와 김평묵은 『송원화동사합편강목(宋元華東史合編綱目)』을 편찬하였다.\n이항로는 서세(西勢)로 말미암은 문화적·사상적 위협과 군사적·경제적 침략에 근본적으로 항거할 것을 주창하였다. 그는 서양의 정치 군사적 침략뿐만 아니라, 천주교를 반윤리적·반국가적 사상으로 배척하였다.\n1839년의 기해사옥과 1866년의 병인양요를 경험한 적 있었던 이항로는 『일성록』에서 말하기를, “서양인들이 들어와 사학(邪學)을 전파하는 이유는 자기의 동정자를 심어놓고, 그들과 표리상응해 우리 나라의 허실을 정탐하고, 후에는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을 진창 속에 쓸어 넣고, 우리의 재물을 약탈해, 한량없는 탐욕을 채우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n또한 “만약 교통의 길이 한번 열리면 2∼3년에 전하의 백성은 서양화되지 않는 자가 거의 없을 것이요……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서양물건을 찾아내서 이를 거리에서 불태우고, 그 뒤 무역하는 자에 대해서는 외적과 교통하였다는 형률로 시행하게 하오(호군 이항로 진시무).”라고 말하였다.\n그 뒤 1871년(고종 8)에는 신미양요가 발생해 외세의 파고(波高)는 더욱 높아지고 시대의 상황이 급박하였다. 김평묵과 유중교의 척양론(斥洋論)은 더욱 강경하였다.\n유중교에게 양이(洋夷)는 이적(夷狄) 보다 못한 금수와 귀매(鬼魅)였다. 그는 「어양론(禦洋論)」에서 “사단(四端)의 덕과 오품(五品)의 윤(倫)과 예악형정의 교(敎)야말로 사람이 사람 되고 나라가 나라 되는 까닭이며 천하가 천하 되는 근거이다.……이것이야말로 인도이며 서양의 가르침은 금수의 도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갑신년의 변복령(變服令)에 대해 그것이 군령(君令)이라 하더라고 좇을 수 없다고 하였다.\n강화도조약에 즈음해 김평묵은 일본은 양인(洋人)의 앞잡이 이었고, 이제 양인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그는 척화론(斥和論)을 펴다가 지도(智島)로 유배되기도 하였다.\n최익현과 유인석에 이르면, 사상적 논의의 단계를 지나 행동적 의거의 단계에 이른다. 최익현은 임진왜란 직전 조헌이 그랬던 것처럼 도끼를 들고 대궐에 나아가 “왜의 구적(寇賊)은 과연 어떻게 보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인가? 양적(洋賊)의 앞잡이임을 아는 것이다. ……오늘날 왜인이 오는 것을 보면 양복을 입고 양포(洋砲)를 쓰며, 양선(洋船)을 타고 다니니 이것은 다 왜양(倭洋)이 일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고 하며 5가지 조목을 들어 상소하였다.\n그 내용을 보면, 첫째 일본에게 약세인 상태에서 그들과 화의를 한다는 것은 눈앞만 보는 고식적 계책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교역을 하면 상대방의 공업 생산품을 우리의 원자재와 교역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교역은 우리의 경제적 파탄을 일으키게 된다.\n셋째 일본은 겉으로는 왜이지만, 실제는 양적이니 이들과 교류하면 천주교가 들어와 백성들이 사학에 빠져 인륜이 무너지게 된다.\n넷째 왜인들이 상륙하면 우리 재물과 부녀를 짓밟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된다. 다섯째 병자호란 때의 굴욕적 화평은 청나라가 중국의 법도를 따랐기에 우리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으나, 일본은 재화와 여색만 알고 의리를 모르는 금수이므로 경우가 전혀 다르다.\n이러한 이유로 그는 일본과의 화의는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논파했고, 그 이후에 발생할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규탄하였다.\n갑신정변과 갑오경장, 을미사변과 을사조약으로 연결되어감에 따라 최익현은 을사오적(乙巳五賊)을 비판하고 일본의 배반을 규탄해 의병을 일으켰지만, 대마도로 붙들려가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하였다.\n유인석은 조선은 이미 국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아 그 대응 방법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시하였다.\n그 내용을 보면, 첫째 의병을 일으켜 역당(逆黨)을 깨끗이 쓸어내는 것(擧義掃淸), 둘째 떠나가서 옛 제도를 지키는 것(去之守舊), 셋째 목숨을 버려 뜻을 이루는 것(致命遂志)으로 되어 있다. 그는 중국·소련 등 국내외에 기지를 만들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n유인석은 『우주문답(宇宙問答)』에서 “남의 나라를 뺏으려면 먼저 남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다. 마음을 빼앗으면 토지를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여 민족의 자주 정신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n또한 “일본은 항상 서법(西法)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니, 먼저 열모(悅慕)하는 마음을 얻어서 개화하고, 개화함으로써 독립하게 하나니, 독립이란 보호를 뜻하고 보호는 합방을 뜻하는 것이다. 대개 시작할 때에는 이(利)로써 유인하고 끝에 가서는 위압으로써 강압하는 것이니, 겉으로는 서법의 이름을 빌리고 안으로는 무한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n유인석은 13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裁)가 되었고, 나라를 잃자 고종을 모셔다가 망명정부의 수립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만주에서 항일전을 펴면서 국권 회복을 위해 진력하다가 서거하였다.\n최근세의 한국은 서양이 침투하면서 대혼란의 시대를 겪었다. 이러한 격변기를 맞이해 조선 후기의 실학과 의리학 그리고 근대 의식이 단합된 역량으로 포용·승화되었더라면 새로운 철학을 창출하고 나라 발전을 이룩해 민족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전에 차영수 의원, 조옥현 의원, 신민호 의원 세 분 의원님의 일문일답을 진행하고 정회한 후 오후에 속개해서 김길용 의원, 김문수 의원, 이철 의원 세 분의 질문과 집행부 답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n질문하실 의원님께서는 질문 시간계획을 참고하시어 답변에 포함한 40분의 질문시간을 지켜 주시고 시간 내에 질문을 마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n질문시간이 3분 남았을 때 벨소리를 한번 울리겠습니다. 그럴 경우 의원님께서는 발언을 정리해 주시고 만약 추가시간 필요 시 별도로 요청하시면 연속해서 답변을 포함한 10분을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경우 최종 3분이 남았을 때는 벨소리를 두 번 울리겠습니다. 아울러 의원님께서는 정해진 시간이 초과되면 마이크가 자동으로 꺼지게 됨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답변하시는 집행부 공무원께서는 발언대로 나오셔서 질문의 핵심을 파악해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그러면 지금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n차영수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O 의원 차 영 수\n존경하는 200만 전남도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n강진 출신 차영수 의원입니다.\n먼저 저에게 도정질문의 기회를 주신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전남 도정과 교육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김영록 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n시간관계상 바로 도정질문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관광문화체육국장님께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n발언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국장님.\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네.\nO 의원 차 영 수\n스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혹시 아십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노믹스’는 ‘이코노믹스’인 것 같고요. ‘스포’는 ‘스포츠’에서, 스포츠하고 경제하고 관련된 신조어인 것 같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스포츠는 경제하고 하나다, 이렇게 간단히 이해하면 되겠습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예.\nO 의원 차 영 수\n전 세계적으로 관광 ICT 등과 결합하면서 경제적 가치가 커지자 스포츠 산업을 도시 발전 전략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산업은 경제효과가 크면서도 공해가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본 의원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전지훈련이 취소되어 그 수요가 국내로 대체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n전지훈련 장소로 각광받는 곳은 일사량이 많고 기후가 따뜻해서 제주도 전남, 경남 등 남쪽 지방을 선호하고 있고 실제로 지자체 간의 유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장님이 생각하시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우리 전남이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전지훈련은 선수들이 훈련하러 오는 것이니까 훈련하기 좋은 날씨 등 기후조건, 좋은 훈련장 그리고 훈련시설 또 같이 경기할 수 있는 팀이 많은 곳 또 좋은 코치가 있는 곳 그리고 음식이나 잠자리, 휴식시간에 가볼만한 관광코스라든지 편의시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저희 전라남도만 따뜻한 기후 또 맛깔스러운 음식, 많은 관광지 그리고 시군별로 분포되어 있는 좋은 체육시설 그리고 골프장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계 훈련지로서는 최적지라고 생각을 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그런 좋은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남도가 최근에는 유치현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남도 전지훈련 유치현황을 보면 2016년 시즌에는 유치종목 44개에 연 인원 53만 명을 유치했지만 해가 갈수록 감소해 2019년 시즌에는 37개 종목 연 인원 38만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마다 줄어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도에서 전지훈련 유치하기 위해서 시군에다 인센티브를 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시군에서 경쟁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데 2016년도에 언론보도에 나왔습니다마는 초등학생인 경우에는 학부모들이 오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들도 유치인원에 포함이 됐던 것을 뺐습니다. 빼고 2박 3일로 오면 3일로 계산했던 것을 2.5일로 계산해서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많이 줄지는 않았는데 수치상으로는 준 것으로 나왔고요. 작년의 경우에는 53만 명으로 대폭 상승이 됐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본 의원이 생각하기에는 전지훈련보다는 전국대회에 치중을 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스포츠 이벤트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전국대회 유치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같은 목표를 두지만 협회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n하지만 전지훈련 유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출로 도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일으켜 실제로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전지훈련팀에 대한 행정적 지원과 유인정책이 부족해 해마다 감소한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고 여기에 새로운 전략종목 유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남도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지훈련 유치 정책과 행정적 지원은 무엇입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도에서는 전지훈련 인센티브를 시군에 지원하고 있고 시군에서는 전지훈련이 지역경제에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전체적으로 종목별로 팀을 육성하고 또 체육시설과 같은 인프라를 확충하고 또 각종 대회를 많이 열어야 선수들이 많이 옵니다.\n그래서 저희 전라남도에는 현재 5087개소 체육시설, 테니스라든지 배드민턴 인프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공체육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을 해 가지고 2016년도에 비해서 지금 58% 증가해서 2882개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시군별로 전지훈련 중에 참가한 팀들끼리 서로 경기를 하는 스토브리그라고 합니다마는 친선경기를 많이 하고 있고 또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도 많이 유치를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전지훈련 종목이 여러 종목이 있지만 여러 다른 종목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경제적 효과가 더 높은 골프 같은 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골프는 해외전지훈련을 2∼3개월 정도 진행하고 인당 약 3000만 원 정도의 가장 많은 지출이 이루어지는 종목입니다.\n선수현황을 보면 남녀 프로골프가 1만 명, 피칭프로가 1만 명, KGA 대학골프협회 2020년 등록 선수가 현재 초·중·고·대·일반부 약 2000명으로 총 2만 2000명에 달합니다. 이중 1년에 5000명 이상이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납니다. 지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해외로 전지훈련을 갈 수가 없어서 그 인원을 우리 전남으로 유치하자는 본 의원의 제안인 것입니다.\n단순 계산만 하더라도 5000명이 3000만 원을 지출하면 1500억 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전남 골프장 여건이 많이 좋아져서 골프관광 메카로 불리었던 제주보다 우리 전남이 더 많은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고 제주도에 비해 기후변화가 적고 체류비용이 낮으며 다양한 친환경 먹거리, 천혜의 자연환경, 편리한 접근성 등 많은 장점을 우리 전남이 갖고 있습니다.\n전지훈련지로 결정되면 선수뿐만 아니라 부모님, 관계자 등 다수가 움직이게 되고 이에 따른 식비, 숙박비 등 체류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지역의 특산물이 자연스러운 홍보효과와 판매율 증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n따라서 유치할 수만 있다면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전남도의 계획과 국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그동안 저희 도에서는 축구라든가 야구, 축구와 같은 경우에는 한 팀이 오면 보통 한 40명∼50명씩 옵니다. 그리고 야구의 경우도 한 20∼30명씩 와서 명수가 많기 때문에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높은 것 위주로 했는데 의원님 말씀하신 대로 골프가 지금 외국으로 그동안 동남아라든지 미국으로 많이 가고 있었는데 사실상 비행편이 좋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서 또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되고 그런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 전지훈련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n현재 골프장에 많은 전지훈련 문의가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도내에 골프장이 39개가 있는데 저희들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전지훈련 참여의사를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고 동계훈련이 가능한 골프장을 KPGA, KLPGA 등과 연결해서 홍보하고 또 스포츠과학센터와 연계해서 체력 측정이라든지 컨설팅 등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입니다.\nO 의원 차 영 수\n최근에 우리 지역 출신인 이정은 식스, 이서영 선수 등 프로골프선수들 한 40명이 동계전지훈련을 우리 전남으로 오고 싶어서 우리 지역에 있는 골프장하고 접촉을 했지만 아직 명쾌한 답이 없어서 지금 동계전지훈련 계획을 못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루 빨리 그런 선수들이 우리 지역에 와서 동계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할 수 있도록 국장님께서는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적극 노력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동계 훈련은 체력 훈련과 스포츠재활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 운영 중인 전남스포츠과학센터를 활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장흥에 들어올 대한체육인교육센터까지 단순히 시설 활용에 집중하기보다 전남도의 체육 인프라로 구축하여 종합레저스포츠타운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장님 의견은 어떻습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현재 우리 도체육회 5층에 스포츠과학센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장소가 협소해서 장흥으로 확장 이전을 할 계획이고요. 거기에다가 2억 원을 들여서 장비도 새로 구입을 하고 건강관리사라든지 트레이너도 신규로 뽑을 계획입니다.\n스포츠과학커디셔닝센터가 구축이 되면 선수들의 부상 예방 또 훈련 중 다친 경우에 회복훈련 프로그램 같은 것을 지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체육회에서 장흥에다가 국비 313억 원을 투입해 가지고 교육동, 숙박동 다목적체육관을 2023년까지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것이 조성이 되면 전지훈련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국장님, 지금 우리 전남의 스포츠과학센터는 우리 도체육회 산하의 건물에 있지요?\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예.\nO 의원 차 영 수\n지금 거기는 본 의원이 조사한 결과 우리목포 인근에 있는 도청 산하 실업팀 정도만 혜택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전라남도를 찾은 엘리트 선수들이나 또 학교 선수들이 오면 그 스포츠과학센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도 해 주시고 지금 대한체육회 공모사업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우리 도에서는 두 명이 인원 지원하고 있지요?\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이런 지원을 늘려서라도 이런 좋은 과학센터 같은 게 있어야 엘리트 선수들이 우리 전남으로 전지훈련을 올 수가 있는 겁니다.\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예, 또 코로나19로 펜데믹과 동시에 겨울은 특히나 관광이 비수기 아닙니까? 이러한 비수기에 경기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전지훈련 유치를 위해서는 전남도가 22개 시군과 협력하여 골프 등의 전략 유치종목을 발굴하고 시설확충, 인센티브 제공 등 가능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여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지만 타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전남도가 확실한 전지훈련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전지훈련팀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전남도가 사계절 전지훈련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n본 의원이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겠습니다. 국장님께서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nO 관광문화체육국장 김 병 주\n예, 의원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요 저희 전라남도하고 체육회를 중심으로 전지훈련 유치 TF팀을 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서 경기단체, 감독, 선수 등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가지고 전지훈련 유치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예,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n들어가셔도 좋습니다.\n지사님 발언대로 모시겠습니다.\n지사님.\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차 영 수\n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고 많은 도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 중 우리 전남도가 청정자연과 다양한 친환경먹거리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최적의 전지훈련지에 부합하다고 생각하기에 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를 했습니다. 전남도의 주요정책으로 반영하시겠습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존경하는 차영수 의원님께서 이 스포츠산업육성 또 더 나아가서는 전지훈련을 통한 스포츠산업 육성에 대해서 좋은 정책대안들을 제시를 해 주셔서 저도 인상 깊게 감명을 받았습니다.\n오늘 말씀하신 부분들은 꼭 저희 전라남도에서 열심히 해야 될 일로 생각하고 이 일은 또 전라남도뿐만 아니라 시군과 같이 연계하면서 또 체육회와 함께 연계해서 전국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총 풀가동해서 적극 유치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예, 다시 한번 전라남도가 22개 시군과 협력하여 전지훈련 유치를 위해 전력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n지사님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n들어가셔도 좋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래서 차영수 의원님 말씀하신 대로 우리 도에 방문 스포츠 팀이 연평균 34종목에 39만 명 직접 경제효과가 300억 원 이상이 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우리 도의 효자 경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을 하겠습니다. 아까 또 KLPGA 또 KPGA 유치를 얘기했습니다마는 그렇지 않아도 KLPGA 분들하고는 이미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게 우리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n코로나 상황이긴 합니다마는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유치를 하면서 이 부분을 우리 도에 앞으로 전략적인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 노력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예, 감사합니다.\n다음은 교육감님께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n현재 우리 전남에 176명의 초등스포츠강사가 일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특성상 상대적으로 여교사 비율이 높고 체육수업 기피현상으로 체육교육을 전공한 초등 스포츠 강사에게 체육수업을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08년 체육보조강사 지원 시범사업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배치 지원사업으로 확대·시행되고 있습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의 만족도가 95% 이상이고 체육 수업 활성화 기여도는 96%의 평가를 받는 등 제도의 지속 의견을 바라는 매우 높은 사업입니다.\n13년 동안 제도가 지속되며 확대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 사업의 필요성과 강사들의 직무수행능력은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n표1을 보시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스포츠강사들이 1년 단위로 계약되는 기간제로서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감님께 묻고 싶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공공부분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계획을 알고 계신지요?\nO 교육감 장 석 웅\n예.\nO 의원 차 영 수\n이 전환의 취지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에는 정규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골자입니다. 맞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맞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그래서 13년 동안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초등스포츠강사들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안 되고 있는 것인가요?\nO 교육감 장 석 웅\n말씀하신 대로 초등스포츠강사는 2008년도부터 배치됐습니다. 정규 체육수업시간 보조 그리고 스포츠클럽 지도 역할을 하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족도도 높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돼서 신분 안정과 함께 교육의 질도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까운 일은 정규직 전환이 법령에 의해서 막혀있다고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2년을 초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기간제를 쓸 수 있는데 초등스포츠강사 같은 경우는 그 예외 조항에 해당됩니다.\n그래서 체육지도자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2년 이상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법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교육감님 체육진흥법 15조 시행령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본 의원의 표 자료를 부탁드립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자료를 보시면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 운동부 지도자들은 2019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등스포츠강사들은 전환 심의에서 탈락되었습니다. 전환심의위원회가 판단의 기준을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심의위원회는 스포츠강사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인 점과 임용고시가 치열한 상황에서 형평성 논란이 가져올 사회적 후폭풍을 더 우려한 것 같습니다.\n그러나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들의 요구인 무기계약직은 정원 외로 분류되어 있어 교원 임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전환의 판단기준은 상시·지속적인 업무여야하고 스포츠 강사들의 업무는 13년 동안 지속되었고 아이들의 체력과 인성에 반드시 필요한 업무이므로 전환돼야 한다고 봅니다.\n또한 정부의 공공부분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시겠습니다. 표3을 보여주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 예외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고 기관의 판단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초등스포츠 강사들도 무기계약직 전환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교육감님 의지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교육감님께서는 전환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말씀하신 바와 같이 운동부지도자의 경우에는 무기직으로 전환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는 초등스포츠 강사도 무기직으로 전환돼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평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2017년 9월 교육부에서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열었는데 거기에서 초등스포츠강사는 무기직 전환 직종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고요.\n그래서 전국적으로 무기직 전환이 보류가 됐습니다. 저는 관련 법률이라든지 시행령이 빨리 개정이 돼서 초등스포츠강사도 무기직으로 전환되고 신분의 안정을 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nO 의원 차 영 수\n본 의원은 교육감님 의지가 조금 더 후보시절보다는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후보시절에 상대방 후보의 “한정된 예산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에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답하면서 스포츠강사는 최소한 무기계약직이 돼야 한다고 답변하셨습니까? 맞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표4 보시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또한 예비후보 시절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전남지부와 정책협약서를 작성하셨는데 협약서에서도 강사 직종, 초단시간 근무자 등이 상시·지속적 담당자에 해당되는 경우 예외 없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에 사인하셨습니다. 혹시 당선 전과 당선 후에 생각이 바뀌셨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당선 후에 보니까 해당 법령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법령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양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본 의원은 무기계약직을 전환하는 것은 그 업무가 상시적이고 지속적일 때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도 된다고 공공정규직 정부 방침의 가이드라인도 보셨지 않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저도 그 점에는 동의를 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그래서 본 의원은 선출직공직자는 가장 큰 덕목은 신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방송 토론에서도 공언하셨고 또 문서에도 사인하셨기 때문에 171명의 스포츠 강사들이 열심히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1년 단위로 계약한다는 이유로 결혼도 못하고 파혼까지 하면서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스포츠,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그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또 학교에 근무하시는 직원 분들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우리 교육감님께서 처음에 선거 때 했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스포츠강사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제일앞장서서 사고 한번 쳐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육감님, 어떻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령의 문제 그리고 교육부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의 결정이라고 하는 벽이 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초등스포츠강사는 전부다 무기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있거든요. 전남이 앞장서서 하는 것에 대한 부담 또한 있습니다. 어쨌든 시대적인 흐름이나 요구 등과 관련해서 당연히 무기직으로 전환돼야 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런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n그래서 교육감협의회라든지 등등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제 개인의 그러한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하고 무기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처우 개선 문제는 적극적으로 요구를 반영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우리 스포츠강사들이 187만 원의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13년 동안 헌신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의 건강 및 체력 또 비만 감소, 학교폭력 감소, 운동 소외 학생 감소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체육시간을 통하여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등의 가치를 배우며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협동심, 배려심, 양보, 희생, 화합 등의 인성을 길러내는 등 큰 성과가 있습니다. 부디 우리 스포츠 강사들이 고용이 안정되어 전라남도 아이들이 건강한 심신 형성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n교육감님께서도 다른 교육감님 같으면 제가 이런 질의를 안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감님은 충분히 본 의원과 생각은 같은데 행동은 안 옮긴 것 같아서 본 의원이 크게 사고 한번 치시라고 이 질의를 드리게 됐습니다.\n꼭 최근에 하루 빨리 사고를 치셔서 스포츠강사들이 안정되게 전남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끔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초등선생님들 거의 70%가 여선생님들이시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스포츠강사가 체육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고요. 크게 사고를 처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정말 이것은 사고를 처야 될 문제입니다. 법령에 규정되어 있고 교육부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어디도 이렇게 무기직으로 전환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말 사고를 처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타 시도도 따라올 거라는 생각은 저도 하고 있습니다. 그 시점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교육감님 사고칠 질의 하나 또 드리겠습니다.\n(웃음)\n영상 하나 띄워주십시오.\n(10시 28분 동영상 상영개시)\n(10시 34분 동영상 상영종료)\nO 의원 차 영 수\n시간관계상 제가 편집을 해서 여기에 영상이 안 나오는데 2가지 정도만 제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학교나 사회에서, 가정에서 다 포기한 학생들이 이 학교에 입학을 해서 2년 동안의 교육을 통해서 꿈을 갖게 되고 또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게 되고 그런 인터뷰도 있고, 또 어떤 가정의 학부모님은 아이가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한 테이블에서 식사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 학교에 입학해서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그 학생 역시 꿈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학부모 인터뷰도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뺐습니다.\n교육감님, 이 영상에 나온 학교를 알고 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잘 알고 있고 제가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그 학교를 다녀가신 적이 있더라고요. 다녀오신 소감은 어떠셨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수녀님이 교장선생님이시죠?\nO 의원 차 영 수\n예.\nO 교육감 장 석 웅\n그리고 우리 선생님들이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제도교육에서 소외되거나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 지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정말 감명을 받았습니다.\n특히 우리 수녀님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전국에 있는 수녀님들이 용돈을 털어서 이 학교 운영에 보태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지원해 드려야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본 의원도 성요셉학교를 방문하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 본 교장선생님은 걸레질을 하고 계셨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성요셉학교는 현재 인가대안학교로서 사학법인의 지원금과 학부모님들의 부담으로 경영되고 있습니다.\n다음 자료는 학생들 등록금 현황입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자료에 보면 1학년은 39만 800원, 2학년은 50만 7800원, 3학년은 50만 1600원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기숙사비가 5만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타 학교 기숙사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학생들의 가정형편을 고려해 인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등록금의 40%를 학생들 장학금으로 되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n가정형편을 고려하다 보니 등록금을 다른 대안학교 수준으로 올릴 수 없고 한정된 법인의 지원금으로는 교직원 인건비도 충당하기 힘들어 기본급만 지급되고 있으며 그것도 3년 동안 동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직원들의 월급을 인상하기보다 학생들의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자 하는 노력의 증거들입니다.\n교육감님 이 내용도 알고 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자세히는 모르지만 대강은 파악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공무원 보수규정에 의거한 정근가산수당, 교원보전수당, 성과상여금 등 각종 수당은 어림도 없고 정규 호봉 승급도 안 되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교사 채용이 어려워 한 교사가 대체교과를 2개 이상 맡고 있습니다.\n본 의원이 교사 분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어떻게 견디는지를 물어봤습니다. 교사님들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면 멈출 수가 없고 오히려 사명감이 생겼다는 답변이었습니다.\n이러한 훌륭한 교사들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우리 행정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감님 혹시 계획 갖고 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이 학교에 대해서는 컴퓨터를 지원한다든지 또는 방과 후 프로그램 지원비는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급식비도 지원하려고 하거든요. 사실 제가 교육감 되기 이전에는 전혀 지원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 운영비 지원이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관련 규정이라든지 이것에 막혀 있습니다. 저도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거든요. 그래서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든지 해서 정말 지원하고 싶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지금 성요셉문화학교가 1년에 운영비가 8억 정도 듭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청에서 3년 동안 지원했던 것이 4000만 원이 안 됩니다. 그 운영비는 수녀님들이 전국의 성당이나 수녀님들을 통해서 지원해서 지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운영비에 비해서 우리 교육청이 그렇게 많은 지원을 했다고 아직까지는 생각이 안 듭니다, 본 의원은.\n학교에서 학부모님들, 학생들에게 만족도조사를 했습니다. 학부모님들의 만족도는 87%를 넘었고 학생들은 80%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좋은 점과 바라는 점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자료 한번 보시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학부모들은 대부분 선생님들의 넘치는 사랑과 민주적인 운영,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학교 풍토를 좋은 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가 어려워지지 않고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n학생들 반응도 좀 보겠습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와 선생님들의 친절함 그리고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한 학생이라도 마음을 다잡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건강을 챙기면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n학생과 학부모들이 모두 진심으로 학교의 안정적 운영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우리 교육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관련 규정을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하든지 아니면 관련 규정을 개정해서라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n학교 구분에 있어서 성요셉문화고등학교는 각종 학교에 들어갑니다. 각종 학교가 함평에 하나 있고요, 강진 성요셉문화고등학교 2개 있습니다. 또 형평에도 맞아야 되거든요. 그 문제까지 고려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든지 개정해서라든지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성요셉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한 상호문화학교입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다문화가족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지 오래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주배경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 아이들에 대한 맞춤형 교육과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n본 의원은 성요셉상호문화고등학교를 전국에서 최초로 상호문화교육의 모델로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합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응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여 상호 능력배양을 통해 창조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모델을 전라남도교육청이 시작했으면 합니다. 교육감님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잘 알겠습니다. 좋은 제안해 주셔서 고맙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서울의 다솜관광고등학교, 영산성지학교 등 대안학교가 특성화 학교로 변경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성요셉학교를 상호문화교육의 특성화 학교로 지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인성 중심 특성화고등학교로 선정하는 문제까지도 고려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특성화 학교로 지정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선 본 의원이 상호문화학교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교육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그렇게 제도적으로 조례로서 뒷받침이 되면 더욱더 좋겠다, 생각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주말동안 집에서 끼니를 챙기지 못해 월요일에 등교하면 고봉밥을 먹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눈물을 훔치시는 선생님들, 3년 동안 동결된 기본급만 받고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는 이 선생님들의 열정이 지치기 전에 우리는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n과도한 경쟁체제, 교실 붕괴, 따돌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서 소외되어 좌절을 경험한 청소년들과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것을 이유로 배척된 청소년들이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배우고 21세기 다문화사회를 준비하는 통합교육의 장이 필요합니다. 전라남도교육청이 상호문화교육의 첫출발을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교육감님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잘 알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사고를 두 번 치시라고 했는데 이 두 번째 사고는 치면 칠수록 교육감님이 여러 가지 도움이 될 겁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두 번째 사고는 첫 번째에 비하면 별것 아닌데요.\nO 의원 차 영 수\n그러니까요.\nO 교육감 장 석 웅\n두 번째로 확실하게 사고를 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차 영 수\n알겠습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감사합니다.\nO 의원 차 영 수\n존경하는 김한종 의장님 그리고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n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n김영록 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 여러분! 답변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n이상으로 본 의원의 도정질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n감사합니다.\nO 의장 김 한 종\n차영수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조옥현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10시 43분)\nO 의원 조 옥 현\n존경하는 김한종 의장님을 비롯한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n그리고 정론직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언론·방송인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지켜보고 계시는 도민 여러분!\n반갑습니다.\n목포 출신 조옥현 의원입니다.\n본 의원은 오늘 전라남도 공동주택 품질 검수에 대한 문제와 영산강 수질환경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전라남도교육청의 교육 갈등관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n먼저 전라남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운영에 관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n건설교통국장님 자리로 나와 주십시오.\n국장님 안녕하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건설교통국장 전동호입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오늘 국장님이 아침에 보내주신 장미꽃 사진 잘 받았습니다. 저도 코스모스 사진 보내드렸는데…….\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잘 받았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n국장님, 전라남도의 인구가 지금 늘어나고 있습니까? 줄어들고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줄어들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인구 유출이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혹시 파악이 되시나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퍼센티지로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저희들이 190만도 무너졌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인구소멸 위기지역이 전라남도에 많이 있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 도정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본 의원은 돌아오기 전에 떠나지 않는 것이 먼저 수반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마는 그러면 국장님, 인구 유출을 막고 유입을 견인할 수 있는 그런 요소들이 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n(의장 김한종, 부의장 구복규와 사회교대)\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제 소관은 아닙니다마는 일단은 유출에 대비한 출생률을 높이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그다음에 유출이 안 되려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그렇습니다. 일자리, 교육, 환경, 문화 그리고 주거 이런 부분들이 종합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그중에서 주거 문제에 대해서 국장님과 대화를 나누어보겠습니다. 국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국장님은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거주하고 계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저는 지금 현재는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고 남악에서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까? 그러면 혹시 임대형 주택에서도 살아보신 적 있으신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과거에 살아 봤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다. 본 의원도 임대형 주택, 분양형 주택 그리고 상가주택, 지금 현재 상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마는 그러면 국장님 임대형 주택도 재산권 행사의 대상이 맞지요, 전세권도 재산이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재산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예.\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다. 임대형 주택도 엄연한 재산입니다. 그러면 현재 도내 공동주택의 비율이 전체 주거 형태 중에서 몇 % 정도 된다고 보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우리 도는 50%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2017년도에 43%였는데 작게나마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지금의 추세로 봤을 때 공동주택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겠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늘어난다고 봅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러면 이제 우리가 공동주택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n국장님, 공동주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문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입주 전 말씀하십니까, 입주 후를 말씀하십니까?\nO 의원 조 옥 현\n입주 전이든 후든 우리가 보통 아는 공동주택의 문제, 사회적 문제.\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입주 전에는 품질관리에 문제가 있을 거고요. 입주 후에는 각종 세대 간의 소음문제랄지 갈등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우리는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민망한 사건이 발생하는 그런 것들을 접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층간소음의 문제도 품질의 문제와 연결이 될 수 있다고도 본 의원은 보고 있습니다마는 그러면 전라남도에서 공동주택을 담당하는 업무 담당 부서가 어딘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개발건축과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건축개발과죠. 그리고 거기에 주택행정팀, 건축관리팀, 공공건축디자인팀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면 공동아파트 품질검수를 담당하는 곳은 담당 직원이 몇 분 정도 되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담당 직원은 한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아, 한 분인가요. 그러면 그분이 전담을 하신가요? 아니면 다른 일도 같이 하신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같은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같은 일을 한 것으로 알고…….\nO 의원 조 옥 현\n그러니까 그분이 오로지 이 일만 하시는 게 아니라 다른 일도 하시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다른 일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분이 얼마나 힘들까요? 저는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수고하셨다고 응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n국장님, 한 분께서 그것을 전담하는데 힘에 부치거나 버겁지는 않겠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힘에 부친 게 사실입니다마는 현재까지는 좀 괜찮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런데 아까 조금 전에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앞으로 공동주택의 비율은 늘어날 수 있다고 예견되기 때문에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한 분한테 계속 수고로움을 우리가 요구해야 되는 것인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것은 인력 문제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요. 저희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고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nO 의원 조 옥 현\n고민만 하고 계시면 계속 그렇게 되니까 부서도 필요할 것 같고 인원도 좀 늘어야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마지막에 또 다시 한번 제가 말씀드릴 거고요. 그러면 우리 소비자들이 자기가 살아야 될 주택을 선정할 때 보통 어떤 기준으로 우리가 선택을 할까요? 어떤 경로로 정보를 취득할까요? 이 아파트를 내가 살아야 되겠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일단 소문이 좋아야 됩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잘 지어졌다는 소문이 나야지만이 소비자의 선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우리가 보통 하게 되면 견본주택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보게 되고요, 그리고 주변의 소문, 그다음에 시행사의 평판 이런 부분들이겠습니다.\n그러면 이 공동주택의 품질이라고 하는 것은 살고 있는 동안에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매도를 할 때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연관이 되어지는 것이겠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공사 과정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누군가가 그것을 확인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우리가 직접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주택 품질검수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겁니다. 맞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현재 도내 검수단 인원이 몇 분이 활동하고 계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민간전문가로 51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조례에 의하면 최대 70분까지 모실 수 있는데 51분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좀 부족한 이유가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각 분야별로 인원을 모집해서 구성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현 인원으로는 운영상의 문제는 없는 것인가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현재까지는 없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까? 그러면 최근 5년간 검수현황을 제가 요청했고 자료를 받았습니다. 시군별 자료 올려주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지금 5년간 검수 건이 37건입니다. 간혹 답변서에 보면 아주 많은 숫자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개별로 했을 때 700건, 800건 되는 것이고 저기에서 지금 주신 것은 도에서 주신 자료입니다. 37개 아파트 단지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렇지요?\n어떻습니까, 저걸 보면? 2016년부터 12건, 2건, 6건, 5건 이런 식인데요. 그러면 이게 몇 % 정도 검수한 거라고 보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전체 시군의 사용허가 건수의 30%를 못 미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28% 정도 됩니다. 최근 5년간 승인허가 된 건수가 132건입니다. 그러면 28% 정도 됩니다.\n아까 제가 여쭤봤던 부분인데 임대아파트는 그러면 저 중에 들어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임대아파트는 안 들어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왜 그렇습니까? 임대아파트도 엄연한 재산권의 대상인데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일단은 입주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의 신청이 있어야 됩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그러면 임대아파트의 경우에는 그 절차가 훨씬 더 분양아파트에 비해서 미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시죠? 제도적으로 임대아파트에 주거를 하실 분들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신청이, 어찌 보면.\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렇지만 임대아파트도 재산권의 대상입니다. 우리 도민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그렇죠? 인정해 주실 거죠?\n예, 검수단 운영사업비 보겠습니다. 다음 자료 주시죠.\n(영상자료를 보며) 연도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건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2017년, 2018년, 2019년만, 가운데 것만 예로 한번 들어볼까요?\n2017년도에는 2건, 2018년도에는 6건, 2019년도에는 5건의 품질검수가 이루어졌습니다마는 품질검수위원 참석수당을 보면 기준이 좀 모호해 보입니다.\n어떤 기준이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보상비 지급기준이 있는데요, 1인당 일정금액을 지급하게 되어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아파트 품질검수를 한 건이 2건일 때 2017년도의 참석수당과 6건일 때 2018년도의 참석수당이 수치상으로 보기에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제가 정확한 것은 파악해서 드리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나중에 그러면 서면으로 제출해 주십시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좋습니다.\n그러면 국장님, 이렇게 품질검수 실적이 약간 저조해 보입니다. 30%가 못 미치고 있으니까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현재까지는 신청주의입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시군에 신청을 하면 시군에서 도에 요청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도에서 기 구성된 품질검수단을 현장에 투입해서 확인을 하고 그 결과를 시군에 통지해서 조치를 하게 되어 있는데요.\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예, 그런 조치가 있습니다. 그 부분은 조금 이따 조례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시죠. 좋습니다. 국장님, 그러면 이게 필요한 정책임에는 동의를 하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필요한 정책입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래서 내년에 건축법 개정으로 내년 1월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입니다. 그렇죠? 본 의원이 이 부분을 질의하는 이유는 그동안에 실적이 너무 저조했다는 부분을 부각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내년에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기 때문에 우리 전남도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될 것인가라는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검수단 운영 조례에 근거합니다. 조례 한번 띄워 주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방금 국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필요한 정책이라면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기 전에 우리 전라남도가 전국적으로 하기 전에 선도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집행부의 의지에 문제가 있었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n6조 검수 범위 3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 그리고 상가주택의 경우. 7조 보겠습니다. 특별점검대상 보통의 경우 말씀하신 대로 시군지사가 요청한 경우입니다. 저는 두 번째 항목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특별점검대상’이라는 단어 자체도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특별점검이 있으면 일반점검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 일반점검이란 보편적으로 해야 된다는 게 맞는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조례에 대한 자구해석은 나중에 나도록 하겠습니다.\n2항을 보면 “도지사가 필요하다 인정하여 협의한 경우”, 즉 시군에서 요청이 없더라도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이 되는 경우에는 할 수도 있다고 명문화 되어 있습니다.\n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신 부분에 조금 부족함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본 의원이 이것은 의지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반인들이 이 제도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어떻게 홍보하고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저희들이 2015년부터 주택법이 규정이 되기 전부터 운영 조례를 만들어서 우리 도에서는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초창기보다는 현재는 많이 홍보가 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홍보 물론 주안점을 둬야겠죠. 하지만 견본주택에 이 부분이 아주 눈에 띄게 잘 보일 수 있게라도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작은 대안입니다.\n우리 집행부에서 의지를 가지고 시행을 해야 되나 일반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도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들이 자기들 몫을 챙기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작은 대안입니다. 하지만 집행부에서 의지를 갖고 해 주시는 것이 더 큰 대안이 될 것입니다.\n품질 검수의 이점을 제가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계시는 겁니다. 단지의 규모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마는 하자를 방지하고 개선을 통해서 최소 5억∼10억 이상의 그런 입주민 혜택이 추산이 되어진다고 합니다. 전남의 공동주택은 안전하다. 전남의 공동주택은 품질이 높다. 이것은 전라남도의 인구 유입에 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n우리가 품질검수를 해서 하자를 찾아내는 것이 시공사한테 경제적 손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 이 시공사에서 시행한 전라남도의 이 아파트는 안전하고 고품질이라고 하는 그런 인증은 시공사뿐만 아니라 전남도 그리고 도민에게도 모두 다 좋은 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맞죠?\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다. 이번 질의를 위해서 자료 요청에 성실히 답변해 주신 우리 국장님, 공무원 여러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최대한 질문을 줄여보기 위한 공무원들의 피나는 노력도 저는 상반된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고생들 많이 하셨고요.\n앞에서 잠깐 저하고 얘기 나누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겠습니다. 2017년 제316회 회의 때 이 문제가 간략하게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건설도시국장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동주택업무를 주택행정 한 팀에서 두세 명의 직원이 해왔으나…….” 지금은 한 명입니다. “임대아파트까지 하다보면 업무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니 운영사항을 봐 가면서 조직부서와 협의하여 전담팀이 구성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국장님께서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답변을 주신 거 같습니다. 마치 도정질의에는 미리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n조례 4조6항에 보면 전담부서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근거되어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운영사항을 봐봤더니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조직부서와 협의를 했더니 후순위로 밀려난 것입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동안의 과정을 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nO 의원 조 옥 현\n가급적 짧게 해주십시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과거에는 사용 검사제는 1회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기초공사, 골조공사 완료 후에 그리고 사용 검사 전에 세 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력이 다소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내년에는 주택법이 개정이 되면서 전 공동주택에 대해서 다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놨습니다. 그러면 인력이 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n그래서 이런 부분은 의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전담 팀이 생겨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자칫 또 전담 팀이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까지 대책을 세우면서 차질 없이 연말까지 마무리해보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 본 의원이 조금 전에 분명히 이것은 시공사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품질을 인정해 주고 관리해주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로 써야 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n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추후에 또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검수제도의 개선점 그리고 확대시행을 위한 대책 등은 필요해 보입니다.\n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셔도 되겠습니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고맙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다음은 지사님 발언대로 잠시 나와 주십시오.\n지사님! 지사님은 현 주거 형태가 어떤 곳이신가요?\nO 도지사 김 영 록\n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지사님은 물론 이 제도가 있음을 알고 계셨죠?\nO 도지사 김 영 록\n저는 이 분야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오늘 처음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에서는 막연히 이런 제도가 있겠지 정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n본 의원과 담당 국장과의 대화를, 질의응답을 쭉 지켜보셨습니다. 최근 5년간 지적사항 및 조치사항의 자료를 제가 요청을 했고 받았습니다. 거기를 보면 오룡지구에 D건설사의 P아파트의 경우 품질검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93건의 지적 건수가 조치되었다고 그렇게 보고서에는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상 한번 보여주십시오.\n(11시 04분 동영상 상영개시)\n(11시 05분 동영상 상영종료)\n지사님 영상도 보셨습니다. 본 제도에 대한 지사님의 생각을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제가 우리 지역 업체들 아파트 건설 수준에 대해서는 저는 최근에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제가 굉장히 깜짝 놀랄 정도로 정말 품질 관리 면에서 잘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대기업 업체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서 저는 아파트 품질 면에서 많이 향상이 됐다고 생각을 했습니다마는 방금은 물론 여기 대기업이었습니다만 방금 건설사의 아파트는 문제가 상당히 크다, 이렇게 보입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 지사님 가짐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행정서비스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죠?\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래서 본 사안에 대해서는 분양형, 임대형의 구분 또한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도내 공동주택의 철저한 품질 검수를 통해서 도민의 안전과 그리고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지사께서 주창하신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를 한발자국 더 우리 앞에 다가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행정이 한 발짝 더 나가야 될 때입니다. 앞으로 더욱 확대되고 개선된 주택정책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를 갖고 도민과 함께 응원하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n지사님 감사합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저도 한 가지 말씀을 드린다면요. 저는 이 분야에 대해서 전문행정가는 아닙니다만 철저한 품질 검수도 중요한데요. 이것을 관에서 모든 것을 다 상황을 단계별로 체크해서 하기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고 봐지는데 아파트 건설 과정에 입주자 할 사람들,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는지 없는지 한번 그런 부분을 있어야 된다는…….\nO 의원 조 옥 현\n입주자 대표 예정자가 합니다. 그런데 입주자 대표 예정자를 선정하는 데까지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길 수 있고 아까 논의 나눴지만…….\nO 도지사 김 영 록\n이미 청약해서 확정이 되어 있으면…….\nO 의원 조 옥 현\n임대아파트의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할 수가 어렵고요. 그래서 제도는 있으나 그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챙겨주는 것인가라는 부분을 집행부에서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종합적인 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고맙습니다. 들어가 주셔도 되겠습니다.\n다음은 보건복지환경 분야에 질문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의 예방과 대처 그리고 수해 복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계시는 관계 공무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도민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리겠습니다.\n먼저 보건 분야입니다. 저는 의료 일선에서 도민의 건강을 고민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초고령사회 그리고 의료 사각지대가 많은 전남, 코로나19 같은 광범위한 전염병 대처를 위해서도 공공의료서비스의 확대 그리고 의과대학의 유치 문제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n제가 의료인으로서 어찌 이 부분에 할 말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은 유치 희망대학과 교육부의 문제입니다. 자칫 정쟁의 대상이 되어 도민의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에 따로 질문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 전남도에 공공의료서비스를 확대하고 의대를 유치하는 데 모두 힘을 합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n다음은 복지 분야입니다.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연구회 대표 의원으로서 전라남도에서 금번에 단일임금체계를 주요 골자로 한 용역이 진행되고 있음에 아주 흐뭇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복지 분야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진행사항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러면 환경 분야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나누어보겠습니다. 동부지역 본부장님 발언대로 나와 주십시오.\n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동부지역본부장 박현식입니다.\nO 의원 조 옥 현\n본부장님 인체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알고 계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정확하게 모르겠는데 70% 이상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저희는 보통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동기, 어렸을 때가 70%정도 되고 그다음에 평균 남성이 60%, 평균 여성이 55%됩니다. 즉 인체의 절반 이상이 수분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물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주 소중한 요소입니다.\n본부장님 호남의 젖줄이 무엇입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영산강이라고 말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영산강이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으십니까, 동부지역본부장님께서?\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알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호남의 젖줄은 영산강입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씀하셔야지요.\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맞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영산강은 생활용수입니까, 농업용수입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과거에는 생활용수로도 사용을 했습니다마는 현재는 공업용수 일부하고 농업용수로 대부분 사용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영산강 수질이 몇 등급입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영산강은 수질은 농업용수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4등급?\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그 정도.\nO 의원 조 옥 현\n평균 4등급이요? 그렇죠?\n농업용수용수에 맞게 되어 있다는 얘기는 농업용수라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게 말씀해주셔야죠. 그런데 호남의 젖줄인데 4등급 농업용수 뭔가 찜찜하지 않으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저희들 의원님께서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요. 영산강은 구조적으로 위에 수량이 풍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에 농업용 댐이 있고…….\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농업용 댐이 있고 그다음에 대단위 생활하수가 유입이 되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광주시에서…….\nO 의원 조 옥 현\n특정 지역을 여기에서 말하기가 좀, 타 지자체에서…….\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그렇습니다. 그리고…….\nO 의원 조 옥 현\n생활용수 들어오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그리고 비점오염원이 많이 있어서 사실 구조적으로 수량이 풍부해야 되는데 구조적으로 문제가 좀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리고 강이 짧고 이런 문제들도 다 있습니다, 그렇죠?\n비점오염원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개선노력들을 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수고 많이 하고 계셨고 더 필요합니다마는 그러면 최근 5년간 수질감사결과를 보겠습니다. 결과표 보여주십시오.\n(영장자료를 보며) 이 결과를 보면 13개의 지점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개의 측정 장소 언제 선정된 겁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측정망은 지금 51개소가 있는데요.\nO 의원 조 옥 현\n주로 50몇 개소는 지류까지 합쳐진 거고요. 본류를 저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13군데.\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측정망은 제가 좀 근거를…….\nO 의원 조 옥 현\n예, 알겠습니다. 이게 과거에 선정된 측정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산강 하천의 환경은 너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지점의 측정값도 전체 수질을 판단하는 대푯값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n그래서 지류나 지천을 다 추가를 했다고 저는 보여집니다. 연중 몇 번 측정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이 부분은 측정망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동측정을 하게 됩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니까 그게 얼마 단위로, 하루입니까, 일주일 입니까? 아니면 계속 측정을 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측정값이 오면 그거를 평균내서 해가지고 연평균을 내는 겁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래서 연평균을 내기 위해서는 모수가 몇 번을 측정했느냐가 나와야 그 연평균 값이 진실 값에 가까운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연 평균값 내는데 측정을 한 달에 한 번 했다와 하루에 한 번 했다는 아주 다른 얘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것은 동부지역본부에서 하는 게 아닌 사업인줄 알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하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이 부분은 국가 측정망, 도 측정망이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도 측정망도 있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9개소가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면 그 9개소는 몇 번을 측정합니까? 그것은 알고 계실 거 같아요.\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일반적으로 수질 자동측정망은 실시간으로 오는 게 있고 그다음에 그 외에 제가 정확하게 지금 기억을 못하겠습니다만 분기별로 하는 게 있고 그 종류에 따라서 좀 다릅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말씀을 나누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이 이야기만 해도 한참이 걸릴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n본부장님 지금은 수질이 시기적으로 깨끗한 시점이죠, 아무래도?\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그렇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좋을 시점입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기온도 높지 않고요. 최근 방류량도 늘었고요. 본 의원이 6월 말에 한번 채수를 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료로 제출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민낯을 조금 더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에 영산강에 8곳, 승촌보 상하지점, 영산포 선착장, 죽산보 상하지점, 청호리 하구 두 곳에서 채수한 물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사진 좀 올려주시고요.\n그렇게 천천히 안 와도 쏟아지지 않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지금 오른쪽에 있는 5개가 중류 정도로 보여지고요, 영산강으로. 그다음에 왼쪽에 3개가 하구 쪽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승촌보는 방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하가 거의 비슷해 보입니다. 그리고 본 의원의 육안적 판단으로는 보의 상류에는 녹색이 조금 더 보이는 듯 했고요. 하류에는 조금 덜해 보이는 그런 사항입니다. 지금 앞에 그 재료 샘플을 가져다 왔습니다. 그리고 청호리에는 확연하게 녹조현상이 보이고 해양스포츠 있는 쪽 거기는 조금 더 많았습니다. 물론 옛날에 비해서 많이 개선됐습니다.\n하지만 저런 현상이 보이고 배수관문 쪽에는 오히려 수질이 아주 깨끗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방류량도 늘어있고 그래서 더 저런 현상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산강 물 이제 어느 누구도 먹을 수 없습니다. 멱을 감기도 겁납니다. 고기를 잡아도 최근에 1급수는 아닙니다만 깨끗한 물에서 자라는 고기를 잡으신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도민은 영산강에서 잡은 고기를 먹기도 두렵습니다. 그리고 논밭에 물을 주기도 찜찜합니다. 그래서 영산강이 오염됐다, 죽음의 강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n본부장님 영산강이 하천입니까, 호수입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일반적으로 영산강은 하천인데요. 지금 둑이 있는 곳은 호로 지금 보고 있고요. 영산호는 지금은 호 개념은 사라졌고 하천으로 되어 있고 영암호는 호로 관리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오염원이 유기물과 무기물로 나뉘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nO 의원 조 옥 현\n유기물은 BOD·COD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물은 정화과정에서 산소가 400배 이상이 드는 것으로 본 의원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TN과 TP라고 하는 총질소량과 총인량이 중요한 것이라고 저는 보여지는데요. 영산강의 총인량과 총질소량을 주신 자료를 통해서 봤습니다. 인과 질소 어디서 기인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인과 질소는 특히 인의 경우에는 공기 중에서 녹아들어가는 경우가 있고요. 그리고 분변을 통해서 나오는 경우가고 있고 인의 경우는 주로 합성 세제류하고…….\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세제, 농약.\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세제류하고 그다음에 우리 논밭에 나오는 비료성분 중에 자연적인 성분이 또 있습니다. 그래서…….\nO 의원 조 옥 현\n하지만 TN, TP는 그러니까 총질소량은 1.0 이하, 인량은 0.1 이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주신 자료에 의하면 2020년 9월까지 평균을 봤을 TP의 경우, 인의 양의 경우 무안 하류 그러니까 무안1이 0.093으로 0.1에 조금 못 미치는 통과를 했고요. 무안2가 0.065로 통과를 했고 나머지는 전부 0.1 이상입니다. 그리고 TN양도 마찬가지로 2점 대, 7점 대, 5점 대, 4점 대, 1.0이하여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과 질소가 많아지면 무슨 현상이 발생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의원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질소하고 인을 관리하는 이유는 녹조현상을 막기 위한 부분에 부영양화가 생겨서…….\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부영양화가 있는 것이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부영양화로 인해서 우리가 말하는 녹조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 이 부분을 잡기 위해서 통제를 하는 부분이 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녹조가 발생하면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그리고 농업용수로 만약에 이 물들을 사용을 했을 때는 농약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아까 말씀하신 빗물에 의한 비점오염원이 점오염원으로 전환이 됩니다. 강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입니다.\n그래서 다시 총 인량이 증가하는 이런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전남 농지에 영산강 물을 관개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그 부분은 제가 정확하게…….\nO 의원 조 옥 현\n그것도 자료로 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장성, 담양, 나주, 광주 4개 댐 물을 관개해서 농사 용수로 쓰고 있는 비율은 그러면 어느 정도 되신다고 보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위에 상류 댐은 다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하천유지 용수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러면 영산강은 4개 댐의 물로 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극심한 가뭄에만 영산강의 물을 어쩔 수 없이 관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지역은 영산강 물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앞서 영산강은 생활용수가 아니라 농업용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산강은 그러면 농업용수의 기능마저도 상실했다고 봐야 되겠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아닙니다.\nO 의원 조 옥 현\n4개의 댐에서 주로 쓰고 있는데.\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지금 상류 4개 부분은 농업용수로 쓰고 있고요. 중하류 부분은 현재는 다 영산강 물을 쓰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런데 일선의 농민들은 친환경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산강 물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면 인증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심각하게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라겠습니다.\n본 의원이 요청한 자료에 답변서를 통해서 보면 퇴적 오염물 쓰레기 대책 열심히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민선7기 들어와서 환경 문제 특히 영산강 환경문제에 대해서 어떤 시책, 추진 실적 이런 거 평가는 미뤄두겠습니다. 오히려 본 의원은 예산을 어떻게 증가해야 되겠는가, 어떻게 관심도를 향상시켜야 되겠는가라는 부분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예산 증가의 필요성, 관심도의 향상 필요하다고 보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그 부분은 항상 필요하고 지금 저희들이 강 외부 대책으로 해서 환경기초시설이라든가 비점오염원 이런 부분은 저희 도와 지자체가 열심히 해서 최대한 막고 있습니다. 강 내부대책에서 말씀하셨는데 저희들은 지금 아시겠지만 환경정화선단을 해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부유쓰레기 제거부터 강바닥에 있는 각종 그물류부터 해서 이거를 제거…….\nO 의원 조 옥 현\n제가 말씀드릴게요.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강바닥 이번에 부유쓰레기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생을 하셨습니다. 1선단 6척 5명의 인력 규모에 환경정화선 운영 정말 버거워 보입니다. 인원 확충 그리고 가칭 영산강 오염방지단 같은 독립기구의 필요성도 있지 않느냐는 본 의원의 생각이 좀 있습니다.\n그러면 하구 수질 개선에 대해서 간단하게 여쭈어보겠습니다. 최근 연구 용역결과를 보면 해수유통이 주요 골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해관계자와 중앙관계부처와 지속적인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추진하고 계시는 거죠?\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지금 의원님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영산강 살리기를 하면서 배수관문을 확장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당량의 해수도 조금씩 유통이 되고 있고 그리고 가장 아쉬운 부분은 우리 요트경기장 쪽에 그 부분이 정체수역이 조금 있다.\nO 의원 조 옥 현\n거기가 하구 부분입니다.\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그쪽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 자꾸 제가 시간 때문에 말을 자르는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해수유통의 문제는 국내 오염호수의 대명사로 불리었던 시화호의 경험치를 우리가 봐야 될 거 같습니다. 해수유통으로 아주 빨리 재자연화 되고 있는 그 부분을 우리는 주목해야 될 것입니다.\n그래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동안의 노력은 인정됩니다. 하지만 영산강 수질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더, 더, 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4대강 중 유일하게 생활용수가 되지 못하는 영산강, 농업용수가 아닌 생활용수로의 바꾸는 법 개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야 영산강은 호남의 젖줄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하천입니다. 환경부, 국토부, 농식품부, 수자원공사,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참 관계자 많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영산강은 우리 땅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입니다. 그래서 전라남도가 나서야 되는 겁니다. 본부장님 우리나라 국가정원이 어디에 있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국가정원이 순천에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최근에 국가정원 2호가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어디인지 아십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국가정원2호는 울산에 태화강…….\nO 의원 조 옥 현\n그렇습니다. 산업폐수로 오염의 대명사라고 했던 태화강이 국가정원 2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태화강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본부장님 우리도 영산강 기적 만들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nO 의원 조 옥 현\n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셔도 좋겠습니다.\n지사님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n본 의원이 채수하는 동안에 촬영한 영상이기 때문에 조금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양해해 주시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보여주십시오.\n(11시 25분 동영상 상영개시)\n(11시 26분 동영상 상영종료)\n지사님, 과정을 쭉 지켜보셨습니다. 지사님께서 혜안으로 간단명료하게 지사님의 의견을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nO 도지사 김 영 록\n영산강 수질대책 의견을 말씀하신 거지요? 예, 우리 조옥현 의원님 오늘 여러 가지 정책대안 감사합니다. 영산강은 말 그대로 우리 호남의 젖줄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농업용수 위주로 관리되고 생활용수로 안 쓰다 보니까 관리의 시급성이 떨어졌지 않느냐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영산강 유역이 함께하고 있는 시군 또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우리 영산강환경청도 있습니다마는 함께 노력해야 되는데요.\n특히 전라남도로서는 영산강 자체도 우리가 관리를 철저히 기해야 되겠지만 아까 말씀하신 대로 주변의 비점오염원이라고 할지 하수처리 이런 부분이 정확히 제대로 관리가 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특히 부영양화 녹조현상은 축산폐수하고도 연관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알겠습니다.\n지사님 옛날에 순임금이 치수를 곤에게 맡겼답니다. 그랬더니 곤이라는 사람은 각종 토목공사를 해서 설치를 했는데 오히려 물난리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다시 우에게 치수를 맡겼더니 물이 순리대로 흐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관리가 잘 되었고 곤은 사형을 당했고 우는 임금이 되어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런 오랜 격언이 전해옵니다. 치수함에 있어서 물길을 바꾸는 것은 하책이고 둑을 쌓는 것은 중책이며 그대로 두는 것이 상책이다. 강은 흘러야합니다.\n바다로, 바다로 흐르고 싶다는 영산강의 저 이야기가, 호소가 생명의 땅 으뜸 전남에서 마지막 유언이 되지 않기를 본 의원은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지사님 그렇게 해주실 거죠?\nO 도지사 김 영 록\n예, 아까 여러 가지 대책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흐르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은 영산강의 해수유통을 말씀을 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10년∼20년 전부터 저희들이 연구 용역도 하고 많이 했습니다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영산강 수질의 근본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저희들도 다시 한번 점검해보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수고하셨습니다.\n자리로 돌아가셔도 좋겠습니다.\n(사무처 직원석을 보며) 지금 4분 50초가 남아 있는 거죠, 10분 추가해서? 예, 알겠습니다.\n다음은 모두가 소중한 혁신 전남교육을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교육 관계 공무원 여러분들, 그리고 특히 일선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스승님들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질의를 시작하겠습니다.\n도교육청 갈등관리 예방 및 관리 시스템에 대해서 정책국장님께 몇 가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n국장님, 지금 전라남도교육청의 갈등예방 및 관리 시스템 전담 부서가 있습니까?\nO 정책국장 정 재 철\n예,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전담부서가 생겼습니까, 며칠 사이에?\nO 정책국장 정 재 철\n전담부서라기보다는 주무부서로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러니까 각 부서 내에서 자체적으로 일을 맡는 분이 계신 것이지요?\nO 정책국장 정 재 철\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죠. 그래서 이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총괄적인 타워는 없는 것으로…….\nO 정책국장 정 재 철\n컨트롤할 수 있는 과가 있고 그 과에 하나의 팀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사정책과에서 갈등관리를 컨트롤하고 있고 또 학생 교육 관련해서 갈등 부분에 대해서는 민주생활교육과에서 한 팀이 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n교육감님 모시겠습니다.\n자리로 돌아가 주셔도 되겠습니다, 본 의원이 시간이 적어서요. 교육감님을 바로 모시겠습니다.\n몇 가지 자료를 요청하겠습니다.\n전라남도의 Wee센터 그리고 Wee클래스에 많은 도움을 받은 의원으로서 감사를 일단 드리는 의미에서 Wee클래스가 미설치된 학교가 많이 있는 이유와 그리고 Wee센터가 22개 청에 다 있는데 자문위는 9청, Wee닥터는 15청에만 있는 이유, 그리고 위기학생 치료비 지원을 하는 데 있어서 지정 병원을 순천의료원, 광주 해피뷰병원, 국립나주병원만 지정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아직 안 되어 있는 이유, 접근성의 문제입니다.\n그리고 또래학교 상담운영학교를 460개를 선정했는데 그러면 나머지 학교에 대한 대책 이런 부분들은 나중에 자료로 요청드리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알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교육감님, 사람이 이기적입니까, 이타적입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사람 말입니까?\nO 의원 조 옥 현\n예.\nO 교육감 장 석 웅\n기본적으로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nO 의원 조 옥 현\n이기적이지요? 예, 모든 생명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만들면서 우리는 이타성이 요구되어지고 그래서 교육이 담당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nO 교육감 장 석 웅\n예.\nO 의원 조 옥 현\n인간은 경험치에 따라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갈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 나중에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맞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그렇지요? 갈등은 칡이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가 오른쪽으로 감는다는 얘기인데 처음부터 따로 심는 것이 예방이고 세력 다툼하지 않기 위해서 조절해 주는 것이 갈등의 조정이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주는 것이 관리라고 봅니다. 예방, 조정, 관리 충분히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사회가 커지고 다양화되고 또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갈등은 부정적이거나 소모적인 거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제는 갈등을 잘 관리하면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입장 속에서 갈등을 관리하고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O 의원 조 옥 현\n예, 그것이 교육감님이 주창하시는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그렇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기대하겠습니다.\n자, 본 의원이 최근에 조례로 제정한 것이 어쩌면 제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교육청 교육갈등 조례 말입니다. 그 조례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조례가 시행될 수 있도록 교육감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부탁드리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좋은 조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우리 전남교육청 같은 경우에는 그런 소지가 많이 있습니다.\n저번에 존경하는 이광일 의원님께서도 질의 때 말씀을 하셨는데 전남에는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가 무려 8964명이나 있습니다. 83개 직종입니다. 가장 많은 것이 급식 관련자이고요, 그다음이 학교업무를 보조하는 분들인데 급식 관련이 3200명 정도 그리고 학교에서 업무보조가 1500명 정도 기타 돌봄 등등이 있습니다.\n수많은 업종이 있고 부서가 있다 보니까 다양한 요구들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지금이 또 마치 교섭의 시기입니다. 보면 무기직도 있고 기간제도 있고 전일제도 있고 시간제 근무도 있고 요구와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또 충돌하는 측면도 많고 시도 간에 편차도 다양합니다.\n그래서 임금 같은 경우에는 시도 공통으로 교섭을 하지만 나머지 근무조건 관련해서는 도교육감이 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마침 그 시기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이 갈등이나 다양한 요구들을 최대한 수렴해서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조 옥 현\n본 의원이 시간이 끝나서 마치겠고요,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n이상 질문을 마치겠습니다.\nO 부의장 구 복 규\n조옥현 의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n시간이 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n집행부에서는 조옥현 의원께서 서면답변을 요구한 부분은 기일을 지켜서 제출해 주길 부탁드립니다.\n다음은 신민호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11시 35분)\nO 의원 신 민 호\n사랑하는 200만 도민 여러분!\n존경하는 구복규 부의장님을 비롯한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n김영록 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공직자 및 도민의 알권리를 위해 고생하시는 언론인 여러분!\n안녕하십니까?\n더불어민주당 순천 출신 경제관광문화위원회 신민호 의원입니다.\n먼저 본 의원에게 도정과 교육행정에 관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n저는 오늘 이 자리가 전남의 어려운 현실을 심도 있게 살펴보는 성찰의 시간이자 전남의 미래를 준비하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사님과 교육감님께 희망 전남, 균형 전남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n질문 순서는 먼저 윤연화 인구정책기획관님께 청년정책에 대하여 묻고 김영록 도지사님께 동부지역본부 및 보건환경연구원 확대 개편에 관한 사항을 질문드리고 다음으로 장석웅 교육감님께 지역의 특성과 미래비전을 연계하여 특성화고등학교의 학과개편과 전문성 강화에 대하여 질문하고자 합니다.\n전남의 인구는 작년 말 현재 187만 명입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n출산율을 높이고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현재의 인구감소 추이는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n특히, 순인구 감소에 더하여 지역별로 수도권 집중 농어촌 지역의 인구 유출 및 감소는 매우 심각한 실정입니다.\n한국고용정보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228개 지자체 중 105곳이 소멸위기 지역이고 전남의 경우에는 22개 시군 중 18개 시군이 소멸위기 지역입니다.\n인구소멸 위험지수는 65세 이상 고령인구수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수로 계산하는데 이 지수가 0.5 미만이면 인구소멸 위험지역 0.2 미만이면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됩니다.\n우리 도에서도 고흥군, 곡성군, 보성군, 함평군, 신안군이 고위험 지역이고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절벽 시대를 맞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n그러나 이러한 인구감소와 함께 본 의원이 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청년층 감소입니다.\n작년 인구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전라남도 전체 인구 순유출은 8788명인데 반해 청년층의 유출은 9454명으로 그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습니다.\n청년층의 감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반합니다. 도시지역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의 경제활동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집니다. 세대 간 균형 있는 분포를 통해 상호협력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데 청년층이 빠져나가면 규모 있는 공동체 형성이 어렵습니다.\n지역의 비교우위 산업을 대를 이어 발전시킬 후계자가 없어져서 앞 세대가 이룩한 성취의 연계가 어렵습니다.\n기업 유치 시 가장 중요한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겨서 수도권과 유통기업의 전남 입지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n또한 매년 졸업생의 지역 업체 취업률이 채 5%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졸자 3명 중 2명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청년층 순유출이 1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n지역 대학과 교육을 진흥하는 정책을 광범위하게 펼치더라도 그 과실은 다른 지역이 따먹는 불합리한 형국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직면한 청년 문제에 관하여 윤연화 인구청년정책관님께 일문일답을 청합니다.\n정책관님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인구청년정책관 윤연화입니다.\nO 의원 신 민 호\n정책관님 반갑습니다.\n어제 오늘 최대의 화두는 인구감소였지요? 인구청년청책관님이 굉장히 많이 대두됐는데 정책관님께서는 이러한 청년유출과 청년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해서 민선 7기 이후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 외지 청년의 유입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이 있으면 짧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인구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일단 민선 7기에 인구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직을 개편해서 전담부서를 신설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최초로 청년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청년정책시행 계획을 수립해서 6개 분야 101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n저희가 청년종합실태조사를 해본 결과 청년들의 가장 관심사는 일자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청년정책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그리고 블루이코노미 6대 분야 청년일자리 부분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습니다.\n더불어 선도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에너지공과대학 설립을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청년들의 자립 지원을 위해 코로나 시대에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장학금 지급이라든지 구직활동 수당 등도 지급하고 있고 방금 말씀해 주신 청년유출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하고 청년일자리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5대 사업 디지털, 에너지, 그린 뉴딜 5개 분야 신산업에 대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n그리고 공공기관 2차 이전에서도 영향력이 큰 기관들을 이전하기 위해 각 기관이 연대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씀드립니다.\n아울러 시도와 지역대학 협력을 통한 지역혁신 플랫폼 구축을 통해 대학 학과의 경쟁력 강화 그리고 산업맞춤형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n아울러 청년 유입과 정착을 위한 시군 특성에 맞는 젊은 세대 유입 정착 지원을 위해 새로운 희망 찾기 프로젝트와 외지 청년 창업과 정착을 위해 퍼스트펭귄 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nO 의원 신 민 호\n예, 정책기획관님, 사실 본 의원이 또 충분한 자료들을 많이 백데이터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많은 정책들을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1만 명씩 청년인구가 유출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전라남도의 심각한 문제지요. 그렇지요?\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예, 그렇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인구가 200만 명이 무너진 것은 벌써죠. 지금 187만 명 이것도 무너질 입장입니다. 도민들이 없는데 우리 도지사님이나 우리 도의원들이라든가 우리 공직자들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심각한 현실이지 않습니까?\n어찌 보면 인구유출 문제 어떤 정책들을 쓰고 있다손 치더라도 백약이 무효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 주십사하는 주문 말씀드리고자 그런 겁니다.\n청년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강력한 헤드 테이블 역할이 되어야 됩니다. 지금 인구청년정책기획관님은 굉장히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자료로 이 과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말 못 하겠어요. 이제 그런 입장이잖아요. 인구청년정책에 있어서는 도지사의 모든 권한을 이행 받았다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헤드테이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조직들이 되어줘야 됩니다. 그래야 디테일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부족하지만 의원님, 힘을 모아가고 있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래서 청년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또 전 국과 실과 소통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청년정책 플랫폼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대비하라는 것을 제안드리고요. 또 하나는 지역의 청년정착률을 높이는 여러 가지 시도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역 대학에서 맞춤형 교육을 통해서 배출할 수 있게끔, 즉 우리 도가 중신아비 역할을 하라 이 말입니다.\n우리 전라남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우리 전라남도 기업이 쓰기가 제일 좋더라, 그렇게 하면 우리 전라남도 대학에서 배출되는 학생들을 안 쓸 이유가 없잖아요. 도가 적극적으로 그런 중신아비를 하시고 필요에 따라서는 청년유출만큼 중요한 정책이 어디 있겠어요? 예산들도 투여해야 한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그래서 좀 더 그런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예, 적극 동의합니다.\nO 의원 신 민 호\n또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러면 우리 지역 기업들한테 “당신들이 원하는 인재 우리가 만들어내서 역량들을 길러서 여러분들한테 보내지 않습니까? 지역인재 채용 목표 달성하게끔 해 주십시오.” 이렇게 주문을 할 수 있는 겁니다.\n그렇지요? 알겠지요?\nO 인구청년정책관 윤 연 화\n예, 알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수고하셨습니다.\n윤연화 정책관님 들어가시고요, 이에 대해서 우리 지사님의 견해를 짧게 듣도록 하겠습니다.\n김영록 지사님 뵙기를 청합니다.\n지사님, 본 의원이 지금 청년정책 플랫폼과 우리 지역 기업들이 좋아할 수 있는 지역 대학을 위해서 인재를 맞춤형으로 양성할 수 있는 중신아비 역할을 우리 도가 해 주십사라는 것을 지금 주문드렸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 지사님 견해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존경하는 우리 신민호 의원님께서 이렇게 분야에 대해서 특히 인구정책에 대해서 혜안을 갖고 정책대안을 제시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n말씀하신 청년정책 플랫폼 우리 내부적으로는 인구정책관실이 이런 역할을 해야 되고 또 외부적으로는 밖의 청년들을 포함해서 우리 민간인들로 구성된 청년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협의체, 우리 의원님께서 그런 것을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도 구성해서 전체 청년정책을 조율하고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저도 역시 적극 공감을 하면서 잘 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n그다음에 지역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대학에서 키워야 된다, 저는 정말 그 부분은 백 번 맞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맞는 말씀인데 잘 안 되어 왔다 생각을 하시고 또 이렇게 지적을 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가지 말씀드리면 교육부에서 지역 기업하고 대학을 연계시키는 지자체 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을 공모를 했는데요, 저희 도하고 광주광역시가 함께 공모를 해서 전체 5년 동안 683억의 예산을 들여서 지역에서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교육혁신 프로그램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의원님 말씀대로 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요.\n또 한 가지 말씀드리면 예를 들면 폴리텍대학이 나주에 목포 제2폴리텍대학이 함께 들어서게 되는데요, 에너지 관련 분야에 정말 고도의 기술 인력들을, 거기에서 숙련인력들을 양성할 수 있는 그것을 지금 예산 확보를 해서 앞으로 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동부권의 소재산업 또 서남권의 해상풍력사업 이런 부분들을 대학과 연결시키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주신 말씀 감사합니다.\n본 의원은 궁극적인 핵심은 그겁니다. 인구청년정책관실에 좀 더 끗발을 주시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힘을 갖고 헤드테이블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그렇게 해 주십사하는 것을 주문 말씀드렸고요.\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우리 전남에 있는 어제 존경하는 이혁제 의원님께서 도립대학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씀을 주셨는데 도립대학이든지 순천대학교든지 목포대학교든지 이런 대학들을 싹 모아가지고 산·학·관 연계를 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에서 지역 인재들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것인가를 머리를 맞대 주십사라는 것을 주문말씀 드립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감사합니다.\n다음 화면 좀 보여주세요.\n(영상자료를 보며) 청년정책 이 부분의 실례입니다. 지금 이 부분은 2019년도 10월에 본 의원이 총무과에다 요청한 것입니다.\n내용은 이렇습니다. 지사님, 우리 전남 농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인문계열 대학을 나온 학생들일까요, 아니면 농과대학 학생들이 전남 농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nO 도지사 김 영 록\n아무래도 농과대학 학생들이 잘 살펴…….\nO 의원 신 민 호\n그러지요. 그런데 농촌지도사라는 것 알고 계시지요, 직렬을?\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농촌지도사는 농민들을 컨설팅해 주는 데 있지 않습니까? 또 서포트 해 주고. 그런데 당초에는 우리 전라남도에서는 어떻게 봤느냐면 국어, 영어, 한국사 등 이런 과목들을 가지고 채용을 했습니다. 그러면 인문계열 학생들보다 농과계열 학생들이 아무래도 국어라든가 영어라든가 한국사 이런 부분은 좀 더 밀릴 수 있겠지요. 이런 과목들을 우리가 디테일하게 생각해 보자 이 말입니다.\n그래서 본 의원이 제안을 했더니 우리 지사님 결재를 맡아서 채용을 바꿨습니다. 어떻게 바꿨느냐면 그냥 일반모집을 하지 않고 경력직 모집을 하겠다, 그랬습니다. 이 경력직은 식물보호사라든가 종자기사를 가지고 있는, 즉 농과대학을 나온 학생들에게 경력직으로 뽑겠다, 그 뽑는 것도 과목도 국어, 영어, 한국사 이런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작물보호학이라든가 토양학이라든가 육종학이라든가 이런 것 중에서 택일하게끔 해가지고 농과대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것입니다.\n그것이 우리 농민들에게도 또 필요한 겁니다. 이렇게 바꾼 겁니다. 이것은 한 실례입니다. 총무과가 굉장히 잘한 정책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각 과에 산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전남 청년들을 채용할 것인가를 조금만 고민한다면, 조금만 우리가 바꿔준다면 저는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해 주시고요.\n제가 수산계 쪽을 한번 물어봤어요. 최근 수산계 쪽에 들어온 신규직원들을 물어봤더니 여기에 국문과가 있고요, 경영학과가 있고요, 법학과가 있고요, 물론 국문과, 경영학과, 법학과가 어민들을 잘 못해 주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마는 그래도 수산계열을 나온 학생들이 우리 어민들에게 더 밀접하지 않겠습니까, 지사님?\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그래서 한번 이번 기회에 살펴봐 주십사 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전라남도부터 청년 지역인재 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본다면 이런 디테일함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요?\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감사합니다.\n시간이 당초 예상보다 조금 오버되어 갑니다. 동부권, 동부지역본부에 관해서 우리 지사님께 질문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n문재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정하고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도도 지방소멸 위기지역 지원특별법 공공기관이전, 지방재정분권 등 균형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정부에 건의하는 등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본 의원은 잘 알고 있습니다.\n그러나 국가와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권의 균형발전도 중요합니다만 전남 안에서 균형발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n우리 도는 2005년도 광주에 있던 전남도청을 이곳 무안으로 옮겼습니다. 도청 이전은 필요했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도청이 지리적으로 전남의 한쪽에 소재함으로써 전남 동부권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n또한 동부지역 공무원들도 도청 근무를 기피하고 있어서 도청 공무원의 구성에서도 서부권과 중부권으로의 편중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청사의 지역 편중과 공무원들의 지역 편중은 필연적으로 정책에서의 지역편중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또 전문가들과 우리 동부권 주민들은 그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n다행히 민선 6기에 들어서면서 동부지역본부를 만들어 환경업무를 담당하는 1개국이 동부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전라남도 경제와 관광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동부권의 위상을 감안하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지역의 여론입니다.\n지사님께서 동부청사 확장 대책에 대하여 혹시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현재 전남동부청사 확장 이전 추진을 하고 있지요. 현재 청사가 우리 도민들이 갔을 때 도민들이 예우 받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고 또 협소하고 문화적 공간도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남동부청사 이전 확장을 확정해서 현재는 건물을 설계 중에 있습니다.\n그래서 내년 3월에 착공해서 2022년 9월까지 완공되어서 마련되면 청사로서의 기능은 문화적 공간까지 갖추고 소통할 수 있는, 영상회의 시스템까지 갖춰서 충분히 청사로서의 어떤 기능은 우리 동부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n그렇지만 청사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부권에 조직을 확대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을 우리 신민호 의원님께서 하셨는데요, 그래서 현재는 158명이 근무를 하고 있고 산림, 환경 분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제가 도지사 공약으로 내건 게 제2행정부지사를 앞으로 동부권에 배치하겠습니다, 이것은 도지사가 임의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지방자치법이 개정이 돼야 되는데요, 지방자치법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고 올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통과되면 제2행정부지사를 우리가 추가적으로 임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n그래서 그런 때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를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우리 도민들께도 보고를 드리고 동부권 도민들께 정말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예, 감사합니다.\nPPT 12번을 틀어주세요.\n(영상자료를 보며) 청사 이전에 관해서 가설계도를 본 의원이 자료요청을 해서 받아 봤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도저히 동부권의 어떤 기능을 충분히 소화해 낼만한 청사 확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사님.\n그래서 좀 더 이 부분에 대한 제고도 필요할 것 같고요. 또 지사님께서 물론 지방자치법 개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씀의 취지를 주셨는데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지 않은 현재 우리 경상남도 한번 봐보겠습니다.\n경상남도 서부권 청사는 어떻게 되냐면요, 조직이 3국 3직속기관 4사업소로 해서인원이 육백 몇 십 명이 근무하는데 경상남도 공무원들의 전체 공무원 비율 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방자치법이 아직 개정되어 있지 않은데 경상남도는 부지사를 서부부지사로 해서 정무부지사를 배치했습니다.\n우리 전라남도는 현재 1국 1사업소 인원이 160여 명 근무하고 있는 겁니다. 부지사 없습니다. 즉, 이 말씀은 뭣 때문에 말씀을 드리냐면요, 그만큼 우리 지금 동부권에 관광과 경제 이런 부분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그런 행정 지원 시스템들이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기반들을 만들어 주십사라는 것을 주문 말씀드립니다.\n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지사님 간단하게 한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제가 더 파악을 해보겠습니다마는 제가 알고 있는 경남 서부는 현재까지는 부지사가 아니고 서부본부장을 직급을 높여서 2급 정도 기획관리실장급 공무원이 가 있는 것으로…….\nO 의원 신 민 호\n지금 정무부지사가 거기에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그래요?\n(집행부석을 보며) 맞습니까?\nO 의원 신 민 호\n예, 지금 우리 정무부지사가 계시잖아요?\nO 도지사 김 영 록\n그 부분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현재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당초는 지방자치법 개정이 제2 행정부지사 신설이 중장기적 과제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마는 현재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정기 국회에서 지금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 부분이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160명 정도 근무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청사 자체를 160명으로 설계를 하지 않았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250명.\nO 도지사 김 영 록\n250명 정도를 이렇게 좀 더 여유 있게 했고…….\nO 의원 신 민 호\n여기 경남 서부는 지금 600명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그다음에 또 언제든지 추가 확장이 가능하도록 설계를…….\nO 의원 신 민 호\n지사님, 그래서…….\nO 도지사 김 영 록\n잠깐 제가 설명을 드려, 설계에 그렇게 반영하도록 했고요, 주차장도 250면을, 최소한 400면 그다음에 순천시하고 협의해서 공영주차장까지 해서 900면을 확보하도록 지금 제가 이렇게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정무부지사를 지금 당장 파견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방자치법이 잘 개정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검토를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지사님 알겠습니다.\n본 의원은 정무부지사를 1개 국을 놔둔 상태에서 정무부지사만 달랑 가면 안 되겠죠.\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관광국이라든가 경제에너지국이라든가 건설국이라든가 이런 형태가 그쪽으로 동부로 이전을 하면 서너 개 국이 있다면 거기에 정무부지사가 지사님 명을 받들어서 관장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방식을 해 주십사라는 것을 지금 주문 말씀드립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종합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본 의원이 동부청사 관련 질문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균형 발전을 도정의 핵심 목표로 삼고 있는 전라남도가 이제는 동부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동부청사를 확대 개편하고 동부본부장을 격상 배치함으로써 균형발전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동부권 주민들의 강력한 여론을 전달하였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이 여론 수렴을 하는 과정에서 한 주민이 저에게 그렇게 물어봅니다. 우리 김영록 도지사님의 고향이 어디냐라고 저한테 물어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고향은 전라남도입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래서 제가 그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김영록 도지사의 고향은 전라남도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잘 했죠?\nO 도지사 김 영 록\n감사합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렇게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n시간이 부족한데 보건환경연구원에 대한 질문은, 지사님 이번에 우리가 8월 15일 이후에 우리 순천 지역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전라남도에서 또 지사님께서 행정부지사와 도민안전실장, 보건복지국장을 현장에 급파하고 지원해서 우리 순천시에서도 물론 전 시정명령을 집중하여 추가 확산을 막아서 천만다행입니다. 우리 순천은 사통팔달이 돼가지고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코로나 확산들도 더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 이 말입니다.\n다만 이번에 그래서 지사님께서 어떤 검사를 우리 남악에 있는 보건환경연구원에다 진단을 의뢰하면 시간이 걸리니 동부권에도 더 확장을 해라, 그렇게 조치하셨죠?\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신 민 호\n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시기적절한 조치였다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어떤 검사만 우리가 해서는 안 됩니다. 보건환경연구원의 확대 제안을 말씀드립니다.\n감염병 예방뿐만 아니라 동부권에는 악취 등 환경 문제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좀 더 이 기구를 확대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지사님께서 답변 자료로 2021년까지는 최대한도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답변 자료를 받았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동부권 감염병진단검사센터를 지금 짓기로 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우선 시간이 급해서 10월 말 안에 장비만 가지고 보건환경연구원 동부지소에 갖다가 우선 검사할 수 있는 체계를 10월 말까지 갖추겠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예, 그것 잘 하셨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신 악취와 환경문제를 대응할 수 있도록 좀 더 조직개편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십사라는 것을 주문 말씀드립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여러 가지로 우리 지사님 어려운 여건이지만 물론 우리 전남이 넓기 때문에 동부권, 서부권, 중부권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선거공약에 지사님께서 “제가 매주 1회 이상씩은 우리 동부권에 와서 살겠습니다.”라는 그 말씀 아직도 제 귀에 쩡쩡합니다.\n또 그렇게 실천해 주고 계시는 우리 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기 이런 발걸음을 뛰었기 때문에 우리 동부본부가 좀 더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기구개편, 조직개편을 할 수 있도록 지사님 많은 혜안을 발휘해 주시기를 당부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동부지역본부 건물도 잘 멋지고 문화적 혜택을 향수할 수 있도록 잘 짓고요, 조직도 확대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래요. 우리 김영록 지사님의 고향은 전라남도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감사합니다.\nO 의원 신 민 호\n수고하셨습니다.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n들어가시기 바랍니다.\n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격언은 서울과 지방 간의 불균형 실태와 의식을 보여주는 잘못된 문구입니다.\n산업화 시대의 학교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노동에 필요한 가능 인력을 획일적 통제 교육으로 길러왔습니다. 학교를 가정과 마을을 대신한 기능중심 교육으로 노동자를 배출하는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공장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농산어촌에 우수고를 집중 육성하여 고등학교 단계에서 우수 인재의 도시 유출 방지 및 농산어촌 고교의 자생적 발전 기반을 마련하고 농산어촌에서도 안심하고 자녀 학교를 또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을 개선하여 도농 간 교육격차 해소할 목적으로 추진한 거점고 육성사업은 특성화고 통폐합으로 이어져 농업과 수산업이 발달한 전라남도의 지역적 특성을 상실한 채 백화점식 도시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n다음으로 우리 장석웅 교육감께 일문일답을 청합니다.\n교육감님 반갑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반갑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전남 교육은 지역의 특성과 미래비전을 연계하여 특성화 고등학교의 학과 개편과 전문성이 강화돼야 된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시죠?\nO 교육감 장 석 웅\n예, 동의합니다.\nO 의원 신 민 호\n우리 순천시에 만화콘텐츠산업 기반조성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순천 지역 특성화 고등학교의 학과개편으로 만화애니메이션과와 게임산업과 신설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순천대학교에 관련 과가 있습니다. 만화학과 애니메이션, 특히 웹툰이 요새 아주 잘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과가 전국적으로 보면 몇 개 고등학교에 과가 있고요,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중국, 일본과 함께 게임강국에 속합니다. 현재 전국에 게임고등학교는 안양하고 전라북도 완주하고 두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고등학교 그리고 웹툰과 관련한 과는 지도할 교사들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 전남에는 곡성에 있는 전남과학대에 게임개발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 관련과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 저도 관심을 갖고 거기 교수님하고 논의를 했는데 어쨌든 곡성에 있는 게임개발과 자체도 전문인력, 가르칠 교수가 없어서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특성화고에 그 과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도교사 문제 때문에 좀 어려움이 많을 거라고 하는 조언을 들은 바 있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특성화고등학교는 지역의 특성과 미래비전을 연계해서 또 어찌 보면 교육이라는 것은 10년 아니 20년을 내다보고 우리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번에 우리 교육감님 특성화고등학교 취업률이 2019년에 몇 %인지 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50%를 하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러고 있죠? 심지어는 특성화고등학교가 마이스터고 제외하고요. 43개가 있는데 겨우 20% 정도의 취업률을 보이는 곳들도 부지기 있습니다. 즉,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냐면 지금 게임산업과라든가 게임산업과의 교수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씀을 우리 교육감님께서 주셨는데 PPT 17번을 띄어주시기 바랍니다.\n안양에 있는 경기게임마이스터고입니다.\n경기게임마이스터고는 올해 개교했습니다, 2020년에 개교했는데요. 4개 학급으로 72명 한 반에 18명씩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선생님들을 모집했는가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지금 게임 산업을 전공한 우리 교사들이 없습니다.\n그래서 정보컴퓨터 과목 교사하고 산학겸임 강사를, 교사가 아닙니다. 산학겸임강사와 함께 수업을 들어가게끔 그렇게 지금 해서 운영을 하고 있답니다. 아주 반응이 좋다고 그럽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저기 학교는 어쨌든 일반 상업계고등학교였는데 올해 교명을 변경하고 학생을 모집했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그렇죠, 그러니까 그래서 교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금 해결 방안을 모색해서 가고 있는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예, 판교라든지 이쪽 서울 근교에는 게임관련 회사들이 많잖아요. 그래서…….\nO 의원 신 민 호\n우리 전라남도도 정보산업진흥원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한번 우리 교육청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시면 좋은 사례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n어느 정도 게임에 대한 시장이 좋느냐면요, 다음 PPT 띄어주시기 바랍니다.\n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가 7위를 기록하고 있고요, 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192조 원이고요, 우리 국내 게임시장은 14조 3000억에 이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4위의 점유율을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는요. 게임이 21세기에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이라고 평가했습니다.\n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새로운 성장동력은 게임산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산업 인력 수요 전망을 보니까요. 총 수요 예측인원이 8만 명이 우리 국내에서 예측이 되는데 현재 이래저래 공급된 것이 6만 5000명, 추가로 더 필요할 인력이 1만 5000명에 필요한 이런 입장입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이런 틈새들을 공략한다면 우리 20%에 지나지 않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겠습니까?\n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참고해 주시고요, 우리 게임산업이 게임사용자 분석 머신러닝,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전망이 밝다는 말씀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n어찌 보면 꿈을 찾는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에서 편견 없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우리 공교육이 그 디딤돌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또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의원님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경기게임과학고등학교 같은 경우에는 아까 말씀드린 판교라든지 하는 바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산학겸임교사, 강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n어쨌든 전남에 있는 전남과학대학교 게임개발과하고 연계해서 전남에 있어서 과 신설 가능성을 최대한 이렇게 탐색하고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신 민 호\n예, 적극적인 우리 교육감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들어가시기 바랍니다.\n(의장석을 보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전라남도와 교육청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전남이 살고 싶은 삶터, 쉼터, 일터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합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전남은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행정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전남만의 특성을 고려한 획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각계각층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고 선제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n또한 우리 안에서부터 실질적인 균형발전이 구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시작도 도민의 의견에서 출발해야 하고 진행도 도민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가야 합니다.\n저는 이번 도정질문을 통해 도의원으로서 현장에 계시는 도민 의견과 여론을 전달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n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시도 통합과 상생논의도 당위론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무엇이 도민의 뜻인지 무엇이 현재의 도민과 미래의 도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대단히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따져보면서 대응해 가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n오늘 다소 점심시간이 좀 오버됐습니다마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 그리고 성실한 답변을 해 주신 김영록 도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께 다시 한번 감사말씀 드립니다.\n또한 본 도정질문을 여러 가지로 답변 준비를 해 주신 우리 공직자 여러분 수고하셨다는 말씀도 드립니다.\n이상으로 본 의원의 도정질문을 모두 마치겠습니다.\n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nO 부의장 구 복 규\n신민호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의원님 여러분!\n오전 질문은 이것으로 마치고 정회한 후 오후 2시에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의원님들께서는 회의시작 5분 전까지 본회의장에 입실해 주시기 바랍니다.\n정회를 선포합니다.\n수고하셨습니다.\n(12시 17분 회의중지)\n(14시 00분 계속개의)\nO 부의장 김 성 일\n회의 속개에 앞서 윤병태 정무부지사께서 산업통상부 주관 코리아세일 페스타 소비진작 행사 점검회의 참석 관계로 오후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사전에 통보해 왔습니다.\n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n의석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n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그러면 계속해서 도정 및 교육행정에 관한 질문·답변의 건을 진행하겠습니다. 오후에 질문하실 의원은 김길용 의원, 김문수 의원, 이철 의원 세 분입니다.\n먼저 김길용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14시 01분)\nO 의원 김 길 용\n광양 출신 안전건설소방위원회 김길용 의원입니다.\n존경하고 사랑하는 전남도민 여러분!\n10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위기로 인해 얼마나 힘드십니까? 생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업장을 일시 폐쇄하고 각종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등 코로나 19 극복에 적극 동참해 주신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이와 함께 지난 여름 섬진강 홍수피해로 인해 한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도민 여러분께도 다시 한번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수해발생 즉시 정부에서는 긴급생활지원금 및 복구비를 지원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도 피해 도민들의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와 전라남도, 22개 시군의 신속한 보상과 대책 마련을 강력히 주문합니다.\n다음으로 전남 발전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애쓰고 계신 김영록 지사님과 또한 전남교육 혁신을 위해 발 벗도 뛰어다니시는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 여러분의 노고에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n또한 부족한 본 의원에게 도정 및 교육행정의 질의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존경하는 김성일 부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님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오늘 본 의원은 코로나19 시대 전라남도의 신성장동력 마련과 전남도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이 자리에 함께 계신 의원님들 또 집행부 여러분들, 도민 여러분들과 함께 그 현황을 보고 함께 대안을 마련하고자 도정질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적극적인 관심과 또한 앞으로의 지원을 부탁드리면서 도정질의를 시작하겠습니다.\n그러면 먼저 김영록 도지사님께 질의하겠습니다. 지사님께서는 답변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감사합니다.\nO 의원 김 길 용\n지사님, 올 초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19사태로 인해서 너무나도 노고가 많으시죠?\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도의회에서도 함께 도와주시고 우리 도민들께서 정말 방역수칙에 협조를 잘해 주셔서 청정 전남을 유지하게 되어서 대단히 저도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nO 의원 김 길 용\n아무쪼록 많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번 홍수피해 때도 전국 최고의 홍수 피해 복구비를 확보하시는 등 국비확보와 또 도민의 안전을 위해서 힘써 주신 데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오늘 본 의원은 도지사님께 지난해 4월 도정질문 때 본 의원이 제안했던 e-스포츠 육성과 관련해서 다시 한번 지사님께 제안을 드리고 지사님의 책임 있고 또한 성실한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n지사님, e-스포츠 하면 떠오르는 혹시 게임이라든지 내용이 있으십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90년대∼2000년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었고 최근에는 카트라이더, 베틀그라운드 그런 게임 이름만 들어봤지 제가 실제 해 보지는 못 했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e-스포츠 종목만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이제 아마 지사님의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존경하는 김길용 의원님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n(장내 웃음)\nO 의원 김 길 용\n우리 전라남도는 사실 수도권 또 광역시에 비해서 여러 가지 여건이 열악하고 불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각종 정부 공모사업에서 때로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정되지 못한 그런 아쉬움이 있었는데 e-스포츠 상설경기장도 마찬가지입니다.\n작년에 부산, 대전, 광주광역시가 선정되었고 우리 전라남도가 아쉽게 탈락한 그런 경험이 있는데 많은 지자체는 앞다투어 e-스포츠 메카로 발돋음질하겠다고 앞서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전라남도 이대로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전라남도도 e-스포츠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e-스포츠 관련해서 우리 존경하는 김길용 의원님께서 관련 조례도 만들어주셨고 또 e-스포츠가 2018년에는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바도 있어서 이제 e-스포츠 시장이 고성장 성장산업이다 제가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이 e-스포츠가 세계적인 한류 콘텐츠를 육성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발맞춰서도 우리 전라남도 차원에서도 e-스포츠 육성을 제대로 해야 되겠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지사님 제가 시간관계상 답변은 제가 짧게 부탁드리고요, 일단 준비한 자료들을 함께 보시면서 제가 질의를 드리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정부가 금년 7월 e-스포츠를 신한류 콘텐츠로 육성하겠다고 다시 한번 발표를 했습니다. 관련 영상 보시겠습니다.\n(14시 07분 동영상 상영개시)\n(14시 08분 동영상 상영종료)\n문재인 대통령께서도 2019년 4월 인천에서 열린 국가 관광 전략회의에서 e-스포츠를 K-팝와 더불어서 대표적인 콘텐츠로 육성하겠다 말씀하셨고 또 그해 6월 스웨덴 방문 시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하셨고 그 소감을 보니까 왜 이렇게 빠른 판단 또 전략으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있기 때문에 e-스포츠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 소감도 말씀하셨습니다.\n그래서 여러 차례 정부 차원에서도 e-스포츠를 대한민국의 대표 콘텐츠를 육성하겠다고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n그리고 금년 국감에서도 빌보드를 점령한 방탄소년단과 함께 e-스포츠 선우들에 대한 병역특례도 논의가 된 바 있고요, 또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서 e-스포츠팀을 창단하거나 또는 공식 후원사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e-스포츠가 그만큼 밀레니엄 제2세대가 50% 이상 시청을 하고 여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제적인 효과가 기대 사상이라는 것을 판단해서 재계도 앞 다투어 참여하고 있고 LCK 리그오브레전드라고 챔피언스 게임이 있습니다. 최고의 인기 게임인데 올해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루 평균 403만 명이 시청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n그리고 게임시장 조사업체인 NEWZOO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e-스포츠 수익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해서 1조 3000억 원 전세계 시청사는 약 4억 95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n그래서 코로나19로 인해서 프로스포츠가 위기를 맞이한 반면에 e-스포츠 시장은 급성장되고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n앞서 지사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에 본 의원이 작년 4월 도정질의에서 전남 e-스포츠 육성을 촉구하였고 전라남도 e-스포츠 진흥 조례를 선배 동료 의원님들의 참여 속에 대표발의를 한 바가 있습니다. 그에 작년 3월에 전라남도 유일의 e-스포츠팀인 전남 드래곤즈 퍼스트팀이 창단되었습니다.\n관련 영상 잠깐 보시겠습니다.\n(14시 11분 동영상 상영개시)\n(14시 11분 동영상 상영종료)\n여기서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은 우리 드래곤즈 퍼스트 팀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팔 옆에 전라남도 e-스포츠협회, 전라남도라고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제가 보여드리고자 영상을 준비하였습니다.\n이렇게 전라남도 e-스포츠협회 또 전라남도를 홍보하였는데 사실상 작년에 전라남도 측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는 못 했습니다. 지금 이 영상은 작년 5월에 중국에서 열린 e-스포츠대회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서 참가한 때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만큼 실력 있는 팀이었지만 아쉽게도 지원 부족으로 인해서 1년 만에 해체가 되었습니다.\n지금 현재 전남체육회 또 전남 e-스포츠협회가 9개 시군에 지회를 구성하는 등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고 우리 전라남도 같은 경우도 금년 8월에 전남 e-스포츠 대회를 개최했고 또 도교육청에서도 전남 장애학생 e-스포츠대회를 최근에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에도 온라인 전남게임 가족캠프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본 의원이 판단했을 때는 전라남도의 관심과 추진의지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n광역시도 e-스포츠 지원 및 역량을 비교를 해 봤습니다. 전라남도, 경기도, 부산광역시를 비교했는데요, 2020년 운영 예산입니다. 시설 투자를 제외한 운영 예산 관련해서 전라남도는 단순히 e-스포츠대회 비용을 위해서 4000만 원을 편성했고 경기도가 8억 1000만 원, 부산광역시는 9억에 달합니다. 2021년 현재 본 의원이 확인한 바로도 전라남도는 5000만 원, 경기도가 18억 5000만 원 또 부산도 우리 전라남도보다는 월등히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n다음으로 e-스포츠 활성화에 가장 중요한 상설 경기장 및 공인 PC방의 현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전국 광역시도 e-스포츠 상설경기장 현황입니다. 상설경기장은 국내외 대회 개최가 가능합니다. 전국에 총 14개소가 있고 서울에 9개소, 경기도에 2개소 특히 수도권에 이렇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 광주, 부산, 대전이 각각 1개소이고 나머지는 없고 저희 전남에도 없는 실정입니다.\n다음은 공인 PC방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공인 PC방을 지정을 해서 경기를 개최하고 있는데 전국에 88개소가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 전남은 1개소 여수시 1개소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네, 이렇듯 참고로 경기도의 경우는 정부 공모사업 지원이 아니고 자체적으로 경기도에서 100억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성남시에서 150억 등 해서 290억 규모로 자체적으로 상설 경기장을 구축하고 있고요, 올해 국내외 대회 및 학술대회 유치 등의 외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봐도 전남은 없습니다.\n하지만 경기도는 월드 e-스포츠 챌린지 경기 국제대회 또 부산은 대한민국 게임대상 또 국제 e-스포츠 학술연구 공모전을 11월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국내뿐만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부산과 경기도가 e-스포츠의 메카를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 전라남도는 타 광역시도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열세입니다.\n이에 최근에 전라남도체육회 김재무 회장님 또 임원 분들과 전라남도 e-스포츠 육성을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일단 노력을 하기로 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집행부 의지라고 생각을 합니다.\n이와 관련해서 전라남도 e-스포츠 육성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도지사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필요성을 인정하십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방금 영상도 봤고요, 또 상황도 제가 점검해 봤는데 이 부분은 우리 전라남도는 광역시랄지 대도시에 비해서 미흡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노력을 해야 될 분야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참고로 지사님께서도 평소 우리 도내 청소년들과 소통을 많이 하십니다마는 청소년들의 여가·문화적 욕구가 최근 e-스포츠에 많은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여가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앞서 보도되었듯이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도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n그리고 금년도 본 의원이 확인하기로 전라남도 홍보비가 82억 원으로 편성이 된 것으로 확인했는데 실질적으로 e-스포츠의 홍보효과는 투자 대비 엄청날 것으로 본 의원은 생각을 합니다. 이미 미국 프로농구, 미식축구 시청자를 이미 초월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전라남도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n그래서 본 의원이 지사님께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교육청 또 전남체육회, 전남드래곤즈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교육청과는 학교 동아리를 적극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또 우리 전남 체육회와는 본 의원 생각으로는 내년도 도민체전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코로나 상황을 봐야 되지만 혹 도민체전을 하게 된다면 시범경기로 이것을 채택해서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n그리고 경기도나 부산광역시 등은 자체 또는 정부 공모사업으로 상설 경기장을 짓고 있습니다마는 이미 전남이 늦은 상황이고 또 정부 공모사업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도내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는 전남 드래곤즈 홈구장 등이라든지 이런 기반시설들을 MOU를 체결해서 지원을 함으로써 e-스포츠 경기장으로 활용을 한다든지 이러한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n그리고 전남 체육회 소속으로 약 22개 체육팀이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전라남도도 e-스포츠 팀을 창단하거나 또 민간 스포츠팀을 창단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된다. 부산광역시의 경우는 2019년에 e-스포츠 선수단 GC를 창단해서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2개 시군에 공인 PC방 1개소 이상을 구축을 해서 우리 도에서부터 자체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여건들 또 사실 예체능의 선수들,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을 보면 그 마을, 그 동네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기회를 우리 지역 특히 학생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22개 시군과 협조해서 공인 PC방 1개소를 반드시 구축을 해달라, 본 의원이 이렇게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 지사님,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십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김길용 의원님께서 여러 가지 정책대안들을 말씀하셨는데요, e-스포츠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여러 가지 제반 내용에 대해서 깊이 파악을 아직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종합해서 더 검토를 해서 우리 의원님이 말씀하신 그런 제도들을 저희들도 필요하다면 적극 도입할 수 있도록 이렇게 노력을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다시 한번 지사님께서 관심을 부탁드리고요, 또 그러한 관심이 정책으로, 예산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또 노력을 부탁드리고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선배 동료 의원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n지사님!\nO 도지사 김 영 록\n결국 예산으로써 지원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 체육회에 많은 종목들이 있는데요, 사실 체육회 종목들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예산 뒷바라지를 못 해서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는데요, e-스포츠는 젊은이들의 앞으로 미래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도 정책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잘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n감사합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다음으로 전라남도 학교시설 개방 사용료 개선에 대해서 교육행정 질의를 하겠습니다. 교육감님 발언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교육감님께서도 연일 노고가 많으십니다.\n먼저 코로나 19로 인해서 학교 체육시설, 학교뿐만 아니고 또 학교 체육시설이 일시 폐쇄 또 사용 중단됨으로써 시설을 이용하는 많은 생활체육 동호인 또 지역민들께서 많은 불편을 겪고 계시고 사실은 건강도 조금 염려가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마는 실질적으로 본 의원이 교육행정 질의를 준비하면서 학교 시설의 현황을 한번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참 많은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 시간 우리 교육감님과 함께 같이 고민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를 바랍니다.\n먼저 우리 전라남도 생활체육 동호인 현황입니다. 축구가 417개 클럽 동호인 수 약 1만 3834명 그다음에 배드민턴이 260개 클럽 동호인 수 1만 3017명 등으로 해서 전체 83개 종목에 4730개 클럽, 14만 5500명이 지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n그래서 워라벨 시대에 소수 중심의 엘리트 체육에서 이제는 다수 생활체육으로 이미 전환이 되어 있고 전남도민의 약 7.85%가 생활체육 동호인으로 등록해서 지금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생활체육 동호인 분들께서는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학교 체육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n제가 시간 관계상 원래는 교육감님께 관련 근거도 여쭤보려고 했는데 바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전라남도 학교시설 개방 및 사용료 징수 근거는 먼저 초·중등교육법 제11조에 “모든 국민은 학교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학교장의 결정에 따라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공립과 사립학교의 시설 등은 시도 교육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또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는 사용료, 요율과 산출방법에 대해서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n그리고 시행령에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간별 또 횟수별로 그 재산의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법에 따라서 우리 전라남도는 전라남도 학교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규칙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그 규칙 내용에 보면 구체적인 학교시설 사용료는 전라남도 교육·학예에 관한 시설사용 조례가 정하는 바에 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n그리고 전라남도 교육·학예에 관한 시설사용 조례 제5조 사용료에 각 시설별로 구체적인 사용료가 산정이 되어 있는데 먼저 별표 2를 보시겠습니다. 교실, 운동장, 강당 등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체육시설로 사용료는 보통 4시간 이하 또는 4시간 이상으로 구분을 하고 4시간 이하는 5만 원, 4시간 초과될 경우는 약 10만 원, 하루 10만 원 정도를 징수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비고란을 보시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전라남도 교육청 및 소속기관이 주관하는 체육경기 등에 행사에 사용될 시는 사용료 전액을 면제할 수 있다. 운동장 및 강당시설이 학교체육 및 주민들의 생활체육 활용 등으로 사용될 시는 사용료의 4분의 5를 감면할 수 있다.”고 이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n(의회사무처 직원을 보며) 다시 올려주십시오. 제1항의 사용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납부해야 되고 사용 전에는 미리 납부해야 됩니다. 하지만 이런 관리자의 제1항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유지관리상 필요한 경우에는 제1항에서 정한 사용료의 100분의 20 범위에서 추가로 징수할 수 있다고도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전라남도 교육비 특별회계도 마찬가지로 학교장에게 위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n그래서 실질적으로 학교시설 개방 및 사용료가 학교장의 결정에 따라서 이렇게 지금 징수가 되고 있는데요, 본 의원이 여러 가지 사항을 한번 살펴봤습니다. 먼저 학교별로 실태가 어떠냐 했더니 동일 행사 동문회 및 체육 동창회의 경우입니다. 나주 A초의 경우는 사용시간이 4시간 미만으로 비교했을 때 나주 A초등학교는 실제 징수는 1만 원입니다. 감면율 80%는 우리 조례 5분의 4를 감면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적용해서 1만 원이고 반면에 보성초등학교는 5만 원을 그대로 감면율 없이 부과를 하였습니다. 그다음, 하루 4시간 이상인 경우 순천 A고는 감면율 80%를 적용해서 2만 원을 징수했고요, 목포 A초등학교는 감면률 0%를 해서 10만 원 전액을 징수하였습니다.\n참고로 고흥 A초등학교는 원래대로면 10만 원인데 거기에 추가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적용해서 20만 원을 이렇게 적용해서 결론적으로 동문회 및 동창회를 위해서 학교시설을 빌린 경우를 비교했더니 최대 10배의 차이가 났습니다.\n다음으로 학교별로 동일종목 축구, 배구, 배드민턴 등 동일종목 사용료가 상이합니다. 4시간 이하 1일 사용료 기준 5만 원입니다. 광양 A중 같은 경우는 69일을 사용했는데 83% 감면율을 적용해서 실제 징수액은 60만 원입니다. 반면 목포 A중 같은 경우는 52일을 사용했는데 감면율 0%를 적용해서 실제 징수액은 260만 원입니다. 그래서 하루 실제 사용료로 계산을 해 봤습니다. 광양 A중은 8695원, 목포 A중은 5만 원입니다.\n그래서 최대 5.7배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시간 이상 사용료의 경우는 일 사용료 기준 10만 원인데 신안 A고 같은 경우는 감면율 80%를 적용해서 실제 징수액이 265만 원인 반면에, 해남 A중은 112일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면율 0% 적용에 따라 실제 징수액이 144만 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최대 6배가 차이가 나고 이는 축구뿐만 아니고 배드민턴, 배구 등 다른 종목도 지금 상이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n제가 시간 관계상 바로 내용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최종적으로 교육감님 답변을 듣겠습니다. 동일 학교 종목별로도 사용료가 다른 경우인데 같은 학교이면서도 배구, 족구, 배드민턴, 축구 이 종목에 따라서 학교에다가 내는 사용료가 다릅니다. 배구의 경우, 여수 A초등학교의 경우 103일을 사용해서 감면율 77%를 적용했더니 실제 징수액은 45만 원, 배드민턴의 경우는 11일에도 사용했음에도 감면율 0% 적용으로 징수액이 오히려 약 10배 정도 사용을 더 많이 한 배구 클럽보다도 10만 원을 더 내는 이러한 아주 불평등한 문제점이 됐고요. 순천 A중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1일 사용료로 비교하니까 최대 12배가 차이가 났습니다.\n다음으로 22개 시군이 주최하는 행사, 체육 경기의 경우는 우리 규칙에 따라서 사용료 전액을 면제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학교별로 상이합니다. 강진 A중 같은 경우는 감면율 100%, 즉 전액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적용해서 0원입니다. 무료로 사용했죠. 하지만 여수 A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감면율 25%를 적용해서 15만 원을 자치단체에 징수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시군에 대한 사용료 부과 또한 최대 15배가 차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그래서 전체적으로 본 의원이 다목적 강당, 체육관, 운동장에 대한 감면율 적용 현황을 전체 사용 건수를 비교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전체 1589건 중에서 감면율을 0% 적용한 곳은 669건 약 42%이고요, 우리 규칙에 5분의 4까지를 감면할 수 있다고 해서 80%를 적용한 것은 504건 31.7%를 차지했습니다. 또 시군이 주체하는 대회 같은 경우는 4건을 감면율 100%를 적용했고요.\n그래서 추가 비용도 징수할 수 있습니다. 해야 된다가 아니고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적으로 학교장의 판단에 지금 이것은 따라서 징수를 하는 건데요. 추가 비용을 징수한 경우는 1589건 중에서 102건 불과 6.4%이고요.\n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추가 비용을 징수하는데 학교마다 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광양 A초 경우는 2일을 사용했는데 사용료 외에 추가 비용을 10만 원을 부과했고 목포 A초 같은 경우는 64일을 사용했는데 전체 13만 원을 징수해서 하루 평균으로 따져 보니까 광양 A초는 5만 원, 목포 A초는 2000원으로 해서 추가 비용도 최대 25배가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n교육감님, 제가 시간 관계상 조금 서둘러서 현황을 설명했습니다만 내용을 함께 보시면서 어떻습니까? 이게 바람직한 현실인가요?\nO 교육감 장 석 웅\n조례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네요. 지적을 해주셔서 정말 새롭게 알았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본 의원이 교육감님께 질의를 드리는 취지는 새롭게 알고의 부분이고 아니고 이 부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남의 수많은 생활체육 동호인들, 지역주민들께서 때로는 불평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학교장들이 조례에 규정된 사안에 대해서 몰랐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자의로 감면하고 있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장들에게 정확하게 조례에 따라서 징수하도록 그렇게 지도를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제가 그래서 앞서 보신 표의 내용을 종합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점이 무엇인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학교시설, 학교체육시설은 전적으로 학교장이 위임사무를 통해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n그런데 보시다시피 학교별로, 또 동일 학교 내에서도 종목별로 이렇게 사용료가 천차만별이고 특이한 점은 1년 365일인데 학교 사용 계약을 할 때 연간 360일 이상으로 부과한 게 26건입니다. 상식적으로 명절, 공휴일 등등 많은 날들이 있는데 어떻게 1년에 360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해서 사용료를 부과할 수가 있습니까? 이 점은 아주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하고요. 비현실적으로 사용료가 부과되고 있다.\n전체적으로 보면 학교장과 우리 지역주민 간의 사용료 문제로 인해서 갈등이 상존하고, 또 한편으로는 학교장의 부담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다음, 행정 사용을 함에 있어서 우리 도민이 공평하게 어느 지역, 어느 학교를 이용하든 그 격차가 최소화돼야 되는데 최대 25배 이런 큰 격차로 이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문제가 있다. 그래서 형평성도 상실됐다는 점이고요.\n더욱이 동문회나 동창회의 경우는 하루 정도 일회성 행사입니다. 그런데 생활체육의 경우는 수개월, 또 매년 되풀이 돼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격차가 크면 클수록, 해를 거듭할수록 각 클럽 간의 사용료의 격차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n그래서 본 의원이 기억하기로 연간 거의 1000만 원에 가까운 사용료를 지금 학교에 내고 있는 그런 클럽들도 있거든요. 그러면 그 운영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n그래서 이 부분 관련해서는 교육감님께서, 그래서 본 의원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먼저 전라남도 교육·학예에 관한 시설 사용 조례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학교장의 부담을 완화시키고 사용료에 대한 형평성도 제고해야 된다. 구체적으로 조례 사용료를 보면 사용료 전액을 면제할 수 있다, 또 사용료의 5분의 4를 감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n그래서 본 의원 생각으로는 “사용료 전액을 면제한다.” 또는 “사용료의 5분의 4를 감면한다.” 이렇게 단정 조항으로 그것을 명시하는 게 어떨까?\n이에 대해서 도교육청의 검토의견을 본 의원이 받아 봤습니다.\n밑으로 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사용료 감면율 동일 적용 시에 학교별 체육관 규모와 이용률 차이로 기본적인 시설 유지관리비 부담이 증가하고 또 체육관을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교육과정 운영에 차질이 있다고 하는데 본 의원 생각으로 학교별 체육관 규모가 우리 전남의 학교가 25배가 강당이 크거나 운동장이 넓은 그런 학교들이 있습니까? 혹시 이 교육청 검토의견에 대해서 교육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지역사회에서 강당이라든지 운동장 사용과 관련해서 생활체육회, 또 동호인과 학교와의 마찰이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당을 사용하고 난 후에 정리정돈 문제라든지 강당 안에서 음주를 한다든지 담배를 핀다든지 해서 관리라든지 정상적인 교육활동 과정에 있어서 문제를 드러낸다든지 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n그래서 학교장이 징벌적으로 그렇게 과다하게 사용료를 징수하는 사례가 드물지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어쨌든 지역사회 속에서의 학교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조례에 규정된 대로 감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nO 의원 김 길 용\n그 내용 중에요. 그러면 결국은 지금 도교육청의 의견대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시는 건가요?\nO 교육감 장 석 웅\n관련해서 광주시교육청 같은 경우에는 지자체에서 대응 투자를 받아서 사용료를 면제하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교육감님, 그 내용은 본 의원이 다음…….\nO 부의장 김 성 일\n추가시간 쓸 거예요?\nO 의원 김 길 용\n조례 개정 부분에 대해서는 본 의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느끼고 차후에 다시 한번 상의를 하겠습니다. 논의를 하고요.\n두 번째 방안으로 방금 교육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인데 지금 광주광역시의 경우는 교육특별회계 소관 공유재단 관리 조례를 제정했는데 그 내용 중에 학교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학교 체육시설을 개방하는 시설의 유지관리 비용을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2011년 7억 원을 지원했고 작년에 8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물론 이때에는 광주광역시와 광주광역시교육청이 각각 50%를 부담했습니다.\n또 전남의 22개 시군에서도 보면 광양시의 경우에도 교육비특별회계 관련 조례로 해서 예산의 범위에서 매년 지원하되 50% 이내에서 지원해서 2020년의 경우는 2500만 원을 지원한 사례가 있습니다.\n이 부분은 제가 김영록 지사님께는 답변을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차후에 교육감님께서 전라남도, 또 전라남도체육회와 긴밀하게 이 부분에 대해서 협의를 해서 자체적으로 이런 학교의 부담을 완화시키고 또 우리 생활체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체육시설의 대여는 학교장 권한입니다만 최대한 조례에 근거해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자체하고 같이 부담해서 생활체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알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다음은 전남 학교도서관 책소독기 설치입니다. 본 의원이 안전하고 쾌적한 학교도서관을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는데요. 실제로 물론 장석웅 교육감님, 또 22개 교육지원청장님, 교육장님 그리고 830개의 초중고 학교장님을 비롯한 공무원 여러분 또 교직원분들께서 정말로 노고가 많으십니다. 학교 방역에 대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 본 의원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책소독기 관련해서 이용 실태를 보고 문제가 있다. 그래서 개선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준비하였습니다.\n먼저, 학교도서관은 정말로 단순하게 공부만 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우리 학생들의 꿈과 미래가 설계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요.\n먼저 우리 전라남도 교육청이 매년 학교도서관 운영 방향을 수립해가지고 22개 교육지원청에 시달하지 않습니까? 그와 관련해서 제가 조금 의아했던 게 금년의 경우는 지금 아시다시피 중국발 코로나19 창궐로 인해서 정부가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했고, 2월 23일에는 전국 모든 학교도 개학을 연기했습니다.\n그런 상황에서 우리 도교육청에서 수립한 학교도서관 운영방향을 보았습니다. 추진 과제를 한번 보시겠습니까?\n(영상자료를 보며) 학교도서관 운영을 위한 추진과제를 보니까 “학교도서관 상시 개방을 노력하겠다.”, “교육과정 지원을 위해서 장서를 확보하겠다.”, “학교도서관 활용 확대를 위해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 등등으로 있는데 그 어느 곳에도 학교도서관 방역, 학교도서관 사용자에 대한 안전 내용은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화면을 닫아 주십시오.\n그런데 실질적으로 2019년 학교도서관 1인당 대출 건수를 보니까 초등학생이 62.8권, 1인당입니다. 중학생이 34.7권 이렇게 해서 상당히 많이 이용을 하고 있거든요.\n그런 측면을 봤을 때 우리 전라남도교육청의 어떤 학교도서관 운영 방향 수립 시 학교 구성원들의 건강 및 안전 보장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이 조금 미흡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했고요.\n이와 관련된 코로나19 지침을 두 차례에 걸쳐서 일선 교육지원청에 보내셨는데 코로나19 대응 학교 기본운영비 중에 코로나19 대응 예산으로 활용 가능하고 또 코로나19 관련 방역물품비 등으로 집행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시기가 금년 5월 말, 또 9월입니다. 실질적으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행정력을 집행해야 되는데 좀 그런 측면에서 다소 미흡하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시간 관계상 책소독기 관련 영상은 제가 생략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라남도교육청의 직속기관 및 초중고 도서관 책소독기 예산을 제가 봤습니다. 직속기관 22개 기관인데 자산취득비로 해서 2억 4000만 원 정도, 초중고 이건 30개교입니다, 여기도 26억. 그다음 8개 특수학교가 7187만 원을 지출했고요. 교육청 직속기관 및 공공도서관 책소독기 설치 현황을 보니까 22개 기관 중에 순천만 생태문화교육원만 제외하고 21개 기관이 설치돼서 95%가 지금 책소독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n반면에 초중고 또 특수학교 학교도서관 설치 현황을 보니까 초등학교가 429개 중에 161개교가 미설치돼서 37.5%, 중학교가 249개 중에 162개교 미설치되어서 65%, 고등학교가 144개 중에 81개 미설치됐고요. 특수학교가 8개 중에 5개 학교가 미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전체를 보니까 830개교 가운데 421개교가 설치돼서 설치율이 50.7%로 직속기관의 절반 수준입니다.\n공공도서관 같은 경우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고 성인들도 많이 이용을 하는 반면에 학교 도서관은 그야말로 학생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물론 선생님들도 이용하시지만. 그래서 학생들의 안전이 많이 우려가 되는 그런 실정이고요.\n교육지원청별로도 봤습니다. 우리 전남이 전체의 50.7%가 설치되어 있는데 함평의 경우 약 73.9%가 설치된 반면 담양은 25개교 중에 7개만 설치되가지고 28%밖에 설치가 안 됐습니다. 그리고 22개 교육지원청 중에 15개 지원청이 지금 평균 이하로 설치가 되어 있고요.\n문제는 지금 책소독기 구입 비용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설치된 421개교 중에 1대당 가격이 299만 원 이하인 곳이 30개교 7.1%, 반면에 900만 원 이상 고가를 설치한 경우가 64개교로 15.2%입니다.\n그래서 본 의원이 이게 궁금해서 과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교 도서관에서 보유하는 책이 많고 적음인가 해서 확인을 해봤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학교 보유 장서 대비 책소독기 구입 비용을 보니까 목포 A교의 경우 1만 7000여 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37만 원짜리 소독기를 구입한 반면에, 장흥 A고 같은 경우는 9600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990만 원을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보니까 무려 책소독기 가격도 보유 장서와 관계없이 26.7%가 차이가 납니다.\n본 의원이 원활한 진행을 못한 관계로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만 교육감님, 학교 책소독기 설치 현황 실태를 제가 설명했습니다만 어떻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전체 51% 그리고 초중고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방역 측면에서 거기에 대응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설치율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영상자료를 보며) 다음 화면 보실까요. 이와 관련해서 본 의원이 학교도서관 책소독기 설치와 관련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학교 구성원들의 건강, 생명을 적극 보호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가 돼야 되고 지금 수많은 지자체 또 학교에서 설치하고 있습니다.\n그리고 문제는 설치보다는 기존에 설치되고 있는 학교를 다시 한번 이용 실태를 점검하고 만족도도 반드시 조사해서 그 필요성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추진이 됐으면 하는 거고요. 미설치된 학교에 대해서 추가로 설치할 경우에는 전라남도교육청이 직접 저는 추진을 했으면 합니다. 학교에 맡겼다가는 지금처럼 이렇게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리고 특수학교, 초등학교 등 저학년이나 보다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학교에 우선적으로 설치될 수 있도록 제안을 드리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도서관 방역, 책소독기 문제에 있어서 교육부의 특별한 지침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교육청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말씀하신 이용 실태 점검 및 만족도 조사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n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은 책소독기 구입과 관련해서는 전적으로 학교에 기본운영비의 3%는 도서를 구입할 수 있고 또 기본운영비의 1%는 도서관 운영비에 쓸 수 있습니다. 다 못 쓸 경우에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추어서…….\nO 의원 김 길 용\n교육감님, 죄송합니다만 답변은 제가 서면으로 요청하고요. 다음 의원님들께 도정질문 준비하셨기 때문에…….\nO 교육감 장 석 웅\n어쨌든 이 문제는 학교장이 학교 기본운영비에서 지출할 사안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nO 의원 김 길 용\n교육감님의 적극적인 관심, 책임 있는 집행을 부탁드리면서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알겠습니다.\nO 의원 김 길 용\n시간을 초과해서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코로나 위기 속에 우리 전남 도민 건강, 생명을 위해서, 또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 김영록 도지사님, 장석웅 교육감님의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nO 부의장 김 성 일\n김길용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집행부에서는 김길용 의원께서 서면답변을 요구한 부분은 기일을 지켜 서면으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김문수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14시 54분)\nO 의원 김 문 수\n존경하는 35만 농어민과 도민 여러분, 김성일 부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 수고하시는 언론인 여러분, 김영록 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 여러분!\n천사의 섬 신안군 제1선거구 지도, 증도, 임자, 자은, 암태가 지역구인 김문수 의원입니다.\n전남 농정 중소가정농의 꿈인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5135만 원에 다가섰습니까? 남으면 갈아엎는 농정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끝을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2021년에는 끝을 냅시다. 해냅시다. 코로나19와 개도국 지위 포기 그리고 RCEP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농수산업을 덮치고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정부는 WTO의 협상이 진안한다고 반쪽짜리 공익형 직불제 하나로 개도국 지위 포기 대책을 땜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n전남은 어떤 정책으로 농축산어업 소득을 담보하시겠습니까? 2020년 농업 예산 190억 증가하는 데 불과합니다. 전남 농어민수당 580억을 제외하면 실제 390억이 마이너스 편성되었습니다. 또한 2회 추경에 요구한 농축산국 149억 5000만 원 중 겨우 18억 반영됐습니다. 해양수산국 170억 중 61억 반영되고 108억이 미반영됐습니다. 농업기술원과 해양수산과학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영된 액은 대부분 국비입니다.\n김영록 지사님과 공무원 여러분!\n35만 농어민의 절규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그 절규 소리는 뼈 빠지게 지은 농수산물 제값 받게 해달라는 요구이며, 돈 버는 농사를 짓게 제도를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의원 너는 밥만 축내지 말고 성과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농수산물 수입보장 제도를 실시하라는 것이며, 최소한 농산물 생산비는 보장하라는 정당한 농어민의 요구인 것입니다.\n이 정책의 도입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이며 국가의 책무인 것입니다. 전남 농어촌의 지속가능한 그리고 농어촌의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중소가정농이 농어업을 통해 농어촌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주는 유일한 정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n정부의 지금까지 농업 정책은 중소농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설계주의 농정이었습니다. 즉 생산 주체와 농산물, 생산 및 유통 방법을 세세히 규정하고 이 범위 내에 속한 농어민만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설계주의 농정인 것입니다.\n이제라도 새로운 매뉴얼에 따른 전남 지역의 농업 환경에 맞는 농업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본 의원은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전남의 중소농업을 위한 농수산 정책으로의 전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 발언의 내용을 담은 답변을 기대하면서 지사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n지사님, 지난해 12월 본 의원 발의로 통과한 최저가 농산물 보장 제도인 농산물 가격 안정 지원 조례에 따라서 2021년에 적어도 시범 품목으로 2개 이상 사업비를 본예산에 편성하시든지, 아니면 내년 1회 추경에 편성 의견 드리는데 어떻습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존경하는 김문수 의원님께서 농업에 대한 정말 큰 열정을 가지고 안타까움을 가지고 질문을 이렇게 해주신 데 대해서 저도 큰 마음의 울림이 있습니다.\n우리 농업, 정말 어려운 가운데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으로서 잘 버텨내 오고 있습니다.\n농업이 어렵습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올해는 쌀값이 21만 9000원까지에서 이렇게 상승이 됐습니다. 물론 생산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쌀값이 이렇게 올라가 있습니다마는 어찌됐든 쌀값을 자체가 과거에 12만 원대 쌀값에서 19만 원대 쌀값으로 이제는 20만 원 이상으로 쌀값이 올라갔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그래도 어려운 과정에서도 우리 농민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 이렇게도 생각을 합니다.\n그리고 아까 공익형 직불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과거에는 쌀 직불금으로만 충당하던 것을 이제 쌀 직불금 대신 쌀값을 올리고 모든 품목에 어느 정도 공익성을 인정하는…….\nO 의원 김 문 수\n지사님, 그 내용을 익히…….\nO 도지사 김 영 록\n공익형 직불제로 이렇게 가고 있는데요, 우리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예, 알겠습니다.\n그래서 정부가 이 최저가격을 보장해 줘야 된다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항상 공감을 하고 최저가격 마련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n그러면 최저가격을 만들 때는 어느 정도 최저가격을 보장해 주면서 그것을 또 무조건 생산하는 대로 다 보장해 주게 되면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량을 조절을 해서 생산쿼터제와 함께해야 된다…….\nO 의원 김 문 수\n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제가 말씀드리…….\nO 도지사 김 영 록\n이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지금 현재 국회의원 분들도 최저가격보장제 법안을 일곱 분이나 제출해 있고 서삼석 국회의원님, 윤재갑 국회의원님 우리 지역의 존경하는 국회의원님들도 그 법안을 제출해놓고 있어요.\n그래서 의원님께서 주장하시는 차액보장제도나 최저가격보장제도나 사실 의미는 용어는 좀 다르지만 크게 차이는 없다, 제가 의원님이 말씀하시는 최저가격보장제를 봤는데요, 그 부분은 오히려 예를 들면 가격이 폭락이 되더라도, 60%가 폭락하더라도 또 기준가격의 82%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농민들로서는 정말 좋은 제도다 이렇게 생각합니다.\n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농민들에게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될 수 있지만…….\nO 의원 김 문 수\n지사님, 시간이 너무 가서, 지사님께서 시간을 너무…….\nO 도지사 김 영 록\n생산과잉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줄여서 이 부분이 차액제도가 뜻으로 보면 너무 좋은데요, 우리가 그것을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하는 차원에서 그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좋습니다. 지사님 뜻은 알겠습니다, 작년에도 지사님이 설명을 하셨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제가 드리는 말씀은 아까 지사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생산량 조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할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어렵다고 그러셨는데 혹시 답변지 안 드렸어요? 제가 이것 다 복사해가지고 드렸는데. 그 답을 제가 드렸습니다.\n뭐냐면 공익형 직불제법이 이번에 개정이 되면서 그 안에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령으로 정해놨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수급조절을 위해 재배 면적을 의무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n그리고 한번 지금 여러분들이 답한 내용을 저에게 답변서를 주셨던데…….\nO 도지사 김 영 록\n제가 그 부분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재배면적을 조정하는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것은 공영시장도매인제도하고 병행해서 한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를 들면 품목별 조합을 도입을 한다든지 또 주산단지 개념으로 해서 그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지금…….\nO 의원 김 문 수\n가능합니다. 그것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가능한데요, 그것을 전라남도만이 그 제도를 시행하기보다는 국가적으로 해야죠.\nO 의원 김 문 수\n10분 지났습니다. 지금 10분이 지나서 화면을 한번 보시죠.\n(영상화면을 보며) 이게 지금 여러분들이 저에게 답변을 주신 자료내용인데 국가가 시행하는 수급안정대책 그다음에 도가 수급하는 안정대책 이 두 가지로 나눠져 있습니다.\n지금 도비가 실질적으로 보시면 도비 9%입니다. 그러면 자부담이 20%예요. 그리고 그리고 예산 전체 액을 따져봐도 도비 31억 원 그것밖에 안됐습니다, 지금 도 자체적으로 편성한 것도. 다 합해봐야 예산이 불과 얼마나 됩니까? 이것 가지고 과연 수급시장가격을 견인할 수 있고 수급조절이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형식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부는 정부대로 나름대로 수급안정대책을 추진하고 전라남도는 적어도 이런 예산을 아껴서 최저가 농산물보장제를 시행해야 된다, 그래서 내년에 최소한 기본적으로 2개 품목을 실행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갖고 답변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존경하는 우리 의원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라남도가 제가 왔을 때 사실 제대로 이 수급안정 예산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예산 세워서 20억 원 세웠고 올해 30억 원 세웠는데…….\nO 의원 김 문 수\n그것은 지사님의 성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 주셨기 때문에.\nO 도지사 김 영 록\n아니, 그렇게 해서 농협하고 시군하고 아까 9%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마는 어찌됐든 100억 원, 200억 원 이렇게 효과가 있어서 마늘 가격도 금년에 사실은 하는데 도움이 됐어요.\nO 의원 김 문 수\n지사님, 제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릴게요.\n지금 이것을 보면 실질적으로 폐기처분한 물량이 1%에 불과합니다. 그 1%가 시장을 견인하겠습니까? 가격도 견인하지를 못하는데 단, 한 가지 그것도 지원하시면서 농어민 부담을 20%를 주고 있어요. 그러면 생산비를 일부 폐기한 부분이나 생산비를 100% 보전해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지속되어야 될 필요성이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차라리 이런 예산을 절약해서 최저가 농산물보장제를 시행하자, 이게 제 의견입니다.\n그리고 반드시 이것을 시행해야만이 농도 전라남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사님의 어떤 특별한 농업 정책의 애정에 관한 것도 도민들에게 어필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제가 다시 좀 더 말씀 올리겠습니다.\n그래서 저는 최저가격보장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nO 의원 김 문 수\n그러면 지사님,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비영리시장 도매인제도로 넘어가고 나머지 부분은 서면으로 답변을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저도 조금 답변을 드려야 되는데요.\nO 의원 김 문 수\n지사님이 한 십 몇 분을 쓰셔가지고, 답변하는 데.\n비영리 전남공영시장 도매인 아이디어를 도입해야 된다, 안 된다하는 논란이 최근에 많이 있었습니다.\n공영시장 도매인 제도는 농산물 가격안정 지원 조례에 근거하여 이익금을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생소한 시장 도매인 제도가 생소하고 여기 의원님들이나 또 우리 농어민들이 잘 모를 것 같아서 제가 좀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시장 도매인 제도의 장점은 합의가격 결정과 저가 수의매매를 통해서 생산자 보호 및 가격안정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n두 번째는 1 대 1 거래로 등락폭이 완만하다, 즉 불특정다수에 의한 등락가격보다 가격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말씀드리고 세 번째로는 시간제약에서 벗어나 당일 소비자 식탁까지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다음에 네 번째는 유통단계 축소로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이익이 된다는 제도입니다.\n시장도매인의 순기능은 출하자에게 즉 생산자에게 출하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특히 시장도매인은 법률에 수탁 거부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n그래서 이러한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이 앞에 서울시와 전라남도가 MOU를 체결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본 의원으로서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였고 반드시 이것은 전라남도가 실행해야 할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점들을 갖는 제도를 통해서 농어민들의 생산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최저가 농산물보장기금을 설립할 필요성에 대해서 저는 공감을 하고 있는데 지사님의 견해를 묻습니다.\n이 두 가지에 대해서 지사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존경하는 김문수 의원님께서 시장도매인제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을 하시고 또 취지까지 설명해 주셨습니다.\n저는 농림축산부장관 재직 시에 이 시장도매인제도를 도입해야 된다고 내부적으로 검토까지 끝내고 도입하자, 이렇게 결론까지 냈습니다마는 워낙 도매시장법인들의 반발이 크다 보니까 그 제도가 지금까지 도입이 안 되고 있습니다.\n그래서 이번에 서울시하고 전라남도가 업무협약을 통해서 앞으로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준공될 때는 시장 도매인 제도를 도입하자고 MOU를 체결한 것입니다.\n그래서 이 시장 도매인 제도는 그런데 자치단체장 마음대로 못 하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승인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nO 의원 김 문 수\n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우리 지역 국회의원들과 함께 노력을 해서 방금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좋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매시장 제도를 보완을 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경매시장의 독점체제로 이렇게 유지되기 때문에 안 된다 생각하고 반드시 도입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감사합니다. 그리고 추가해서 제가 아까 말씀드릴 때 한 가지만 답변했었는데 최저가 농산물보장기금을 반드시 설치해야 된다, 그래서 그 기금을 통해서 최저가 농산물을 보장해 줘야 된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그래서 원래 지금 현재 도매시장법인 청과물시장 회사들은 15%를 받습니다. 그런데 시장 도매인 제도를 운영하면 7%를 받는데요, 그 7% 중에서 4%를 가격안정기금으로 이렇게 적립을 해서 활용하면 여러 가지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래서 그것과 연계해서 아까 제가 모두에 말씀드렸던 전라남도에서 최소한 2개 이상의 최저가 농산물보장제도를 실시해, 그 예산이 100% 쓰이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기금으로 전환해서 기금을 축적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농어민들의 생산비를 보장해 주자,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n그래서 이것을 꼭 공영시장도매인제도 내에서 이익금만 가지고 할 게 아니라 적어도 전라남도 예산을 투자해서 최저가농산물보장제도를 확대해서 생산비를 보장해 주는 데 대한 의견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그 부분은 그래서 저는 농산물가격안정제도는 국가적으로 시행을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지금 제대로 안 하기 때문에 답답해서 우리 전라남도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서 지금 하고는 있습니다마는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차액가격제도는 최저가격보장제보다 더 센 제도예요. 그래서 그 부분은 국가에서 지금 최저가격보장제도를 꼭 도입을 하도록 하고 그 틀 내에서…….\nO 의원 김 문 수\n그게 안 되니까 전라남도가 먼저 시행하자는 것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그 틀 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 전라남도 자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은 우리 존경하는 김문수 의원님 차액보장·보전제도로는 너무나 많은 예산이 들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을 좀 종합검토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러면 서면으로 만들어서 답변을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확실하게.\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김 문 수\n예, 저는 그렇습니다. 중소농의 지금 시장도매인 제도를 위해서는 중소농 품목별 생산자단체 조직, 농업경영체 조직 그리고 품목협의회를 조직화해서 시군만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협의회를 통해서 강제할 수 있어야 된다, 즉 도와 시군이 함께 참여를 하되 강제할 수 있어야 된다, 그래서 그런 조항들을 반드시 시장·군수협의회 때 시장도매인 제도를 시행할 때는 그런 강제조항을 넣어서 시행할 수 있도록 그래서 100% 시행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실 것을 반드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비영리 전남 공영시장 도매인 제도를 통해서 전남농수산물 가격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저의 확실한 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사님과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에 변함없이 조속한 시일 내에 실시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종합적인 검토를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다음은 블루이코노미 핵심사업인 해상풍력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제가 좀 먼저 개괄적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n2번 띄워주세요.\n(영상자료를 보며)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목표는 63.8GW 중 해상풍력이 12GW입니다. 12GW 해상풍력이 예정대로 건설되면 제주도를 포함해서 서해안 북단, 인천광역시부터 서해안과 동해안을 둘러 해상풍력이 반도 바다를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n지사님, 해상풍력이 서남해안에 몰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서남해안이 해상풍력 잠재력으로는 바람이 가장 좋은 편이고요, 또 바다 깊이가 깊지 않아서 가장 좋다, 이렇게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렇습니다. 경제성이 가장 좋기 때문에 기업체들이 전라남도로, 특히 신안으로 몰리는 것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제주도 빼고는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정부의 목표는 12GW 중 8.5GW로…….\nO 도지사 김 영 록\n8.2GW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약 70% 정도, 68%가 전남이 차지하고 있고 신안이 8.2GW로 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n독일 기준 20기 설치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경우 14㎢가 항행금지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20기를 설치했을 경우.\n전남에 8.5GW 설치 시 풍력발전기 혹시 전남 해안에 몇 개가 들어서며 몇 ㎢의 항행금지구역 즉 어업금지구역이 생기는지 혹시 지사님…….\nO 도지사 김 영 록\n거기까지는 저희가 용역을 해야 되고요.\nO 의원 김 문 수\n제가 설명을 한번 드리겠습니다.\n지금 8㎿ 같은 경우는 1100기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5㎿는 1800기, 3㎿는 2830개가 바다에 들어섭니다. 상상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n지금 여기 5㎿이면 900㎞인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풍력발전기가 일렬로 서 있는 꼴입니다.\n그래서 지금 범례를 보시면 신안 앞바다에 8.2GW가 들어서는데 총 연장길이가 110㎞입니다. 110㎞이면 8열로 저 110㎞ 안에 약 10㎞ 정도, 내향 즉 섬에서부터 바닷가 40∼50㎞까지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게 되어 있습니다.\n만약 한번 지사님,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어떻게 현상이 되는가.\n이렇게 신안 앞바다에 들어서는데 실질적으로 어업금지구역을 독일식으로 계산하면 5㎿이면 900㎢의 어업금지구역이 생깁니다. 3㎿이면 1410㎞의 어업금지구역이 발생합니다. 목포시 면적의 25배, 만약에 3㎿이면 50배가 어업금지구역이 발생하는 것입니다.\n질문하겠습니다.\n주민수용성 대책은 무엇이며, 보상대책은 사업자가 아닌 국가가 책임을 보상하는 선 보상기법을 촉구합니다. 최고의 경제성을 갖춘 사업장이 전남인데 당연히 도민 이익의 일부를 돌려받아야 되며 신안군민 모두에게 사업자가 매년 30% 이익배당에 대한 지사님의 견해는 어떤 것인지 답변을 해 주시고 해상풍력발전과 연계해서 전남도의 대책은 목포 그리고 영암 외에 풍력발전 기자재산업 유치 외에는 다른 안이 없는 것인지 이 두 가지 먼저 답변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우선 우리 신안군 조례는 30% 범위 내에서 이익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해상풍력으로 인해서 우리 주민들도 그렇고 특히 어민들은 일정 부분의 보상을 통해서도 또 일정 부분의 소득을 투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도록 가능한 주민과 우리 어민들에 대한 투자기회를 최대한 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어민들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어장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범위 내에서는, 그런 범위 내에서는 충분한 보상이 확실하게 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nO 의원 김 문 수\n그게 선 입법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감척을 해야 되는 상황이면 감척도 해서 어민들이 손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저희들이 보상하도록 그래서 지금 현재 48조가 투자됩니다마는 이 48조는 민간회사들이 투자하기는 하지만 발전회사들이고 다 기업 재무구조가 다 튼튼한 회사들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그렇게 우려 안 하셔도 된다.\n더구나 전라남도가 그런 부분을 확실하게 신안군과 함께 보조해가는 의미에서 MOU도 맺고 이렇게 하면서 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그런 부분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그다음에 섬모상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이제 그 부분은 어업활동에 지장이 생길 때는 그 시기와 맞춰서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리 준다는 것으로 말씀한…….\nO 의원 김 문 수\n지금 미리 주라는 것이 아니라 사업협상이 들어갔을 경우에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가 제가…….\nO 도지사 김 영 록\n그러니까 어업활동에 지장이 생기면 그때부터는…….\nO 의원 김 문 수\n그렇습니다. 그것을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nO 도지사 김 영 록\n줄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런 뜻으로 저는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지금 세계적으로도 지금 29GW 정도인데요, 앞으로 6배를 늘어나고 모든 자동차도 다 친환경전기차, 수소차, 디젤 가스차는 못 다니게 되는 시대가 곧 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런 태양광이랄지 해상풍력, 특히 해상풍력이 미래의 에너지원으로서는 가장 친환경적이고 그린수소까지 생산해낼 수 있다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가고자 하는 방향하고 해상풍력 방향이 일치합니다.\n그래서 어업활동에 약간의 지장이 생기면 그런 부분은 충분하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부분은 어민들하고 협의회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얼마 전에 한국판 뉴딜정책에 대해서 지사님이 대통령님께 보고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가 소홀히 해서 만약에 이런 사업들을 유치하는 과정 속에서 신안군이 배제되는 그런 영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리 말씀을 드리고, 그래서 제가 지사님께 질문을 드리는 게 목포와 영암 외에 풍력발전단지 기자재산업 유치에 대한 내용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고…….\nO 도지사 김 영 록\n답변드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신안군에 대한 내용은 어떤 것인지 이 부분을 제가 말씀을…….\nO 도지사 김 영 록\n그래서 지금까지 작년에 제가 블루이코노미 선포식에 대통령께 해상풍력 건의를 드렸습니다만 정부에서는 사실 해상풍력이 그동안에 너무 어렵다 생각해서 답보상태에 있었는데 지금 그린뉴딜을 핵심사업으로 끌어올린 게 전라남도가 적극 노력을 해서 앞장서서 주장하고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n그래서 제가 13일 대통령님께도 보고드린 거고요, 그런 과정에서 배후단지랄지 배후항만이랄지 배후기자재 사업을 통해서도 우리 지역에 먼저 우리가 선도적으로 먼저 해야 우리 지역 것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n그래서 그런 부분도 지금 먼저 하도록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배후항만이랄지 배후단지는 지금 그런 부분은 전남개발공사하고 신안군하고 용역결과 배후항만은 지금 목포 신항만으로 하기로 이렇게 했고요, 그다음에 압해 쪽에도 앞으로 신안군에도 그런 해상풍력산업단지를 만들어서 해상풍력산업단지를 압해도 신안군에도 만들도록 하겠다…….\nO 의원 김 문 수\n제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자, 이해가 해상풍력에 관해 아까 이전 화면에서 보셨듯이 110㎞ 항행금지구역 육지로부터 약 50㎞까지 설치가 됩니다. 그러면 해상풍력에 대한 이해는 전부 신안군이 안고 갑니다. 그러면 이익은 이웃인 영암이나 목포시가 다 가져가고 신안군은 고작 여기 자료를 보면 71㎢, 20만 평짜리 그것도 전기부속단지 하나뿐이랍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어떻게 신안군민이 동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n이해가 100%인 신안군에 이익은 10%도 안 준다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해가 100%인 신안군에…….\nO 도지사 김 영 록\n의원님, 그 부분은 제가 좀 인정하기 어려운데요, 해상풍력에서 나온 이익금 이 공유는 신안주민들과 어민들 위주로…….\nO 의원 김 문 수\n산업단지 시설도 100% 줘야 되지 않겠는가, 이익도 마찬가지이고 나머지 기자재, 산업 유치 그다음에 배후단지 그다음에 부두 이런 것도 신안군에 충분히 설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언급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그 부분은 예를 들면 배후부두 같은 경우에는 신안군이 지금 여건이 어려움이 있어서 목포 신항만으로 하기로 용역조사 결과 이렇게 나왔고요, 신안 압해도에 해상풍력산업단지를 만들겠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그러면 강력히 주장하십시오. 주장을 해서 우리가 이렇게 받아들일…….\nO 의원 김 문 수\n그래서 제가 지금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사님한테…….\nO 도지사 김 영 록\n받아들일 채비가 되어 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세요. 그래서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지금도 시작입니다, 우리 의원님.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주어진 것처럼 이렇게 하면 안 되고…….\nO 의원 김 문 수\n시작이기 때문에…….\nO 도지사 김 영 록\n우리 의원님, 저, 신안, 전라남도 어민들 함께해서 세계적인 발전단지를 만들어야 된다 생각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렇다면 시작이기 때문에 적어도 신안군에 이해가 100%인 해상풍력발전도 산업단지나 유치 해상부두나 이런 기자재 부분도 에너지신산업 공간을 압해도 장감리나 신안 쪽에 설치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게 제 안이고 앞으로 그런 반영을 통해서 산자부와 협의를 하고 대통령께 보고를 해서 이런 부분들이 신안군에 들어서야 된다, 왜 우리가 피해를 보면서 목포나 영암에 이익을 다 돌려줍니까? 그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목포나 영암으로 이익이 다 가는 게 아니고 지역이 같이 협력하는 것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리고 다시 한번 수용성에 대해 제가 한번 질문을 더 드리겠습니다. 전라북도 부안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잘 알고 계시죠, 지사님?\nO 도지사 김 영 록\n어디요?\nO 의원 김 문 수\n전라북도 부안 해상…….\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김 문 수\n그게 지금 보상이 어떻게 되신 줄 아십니까? 임의지원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사업자들이 동의를 확보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그 임의지원금을 통해서 사업을 확보해놓고 실질적으로 그것을 계산해보니까 전라북도 부안 그쪽에 받은 최고 금액이 1900만 원입니다, 어업인들이 평균적으로. 최고 많이 받은 곳이 1900만 원이고 평균치가 1200만 원 받았습니다.\n바로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임의지원금 제도를 미리 막고 전라남도가 실질적인 우리 지역 어민들의 보상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그런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민관협의회를 구성해서 어민들하고 함께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좋습니다. 본 의원은 신안군을 에너지개발지구로 지정하시고 지도읍 조선소 일원과 압해읍 장감리 그리고 신장리 일원에 풍력발전 신배후산업단지를 조성하시고 지원 부두 건설 및 이를 뒷받침할 해상풍력 활성화 및 지원 특별법을 제정을 해서 확실한 법적 토대를 마련해 주실 것을 강력히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예, 우리 의원님 말씀대로 해상풍력발전 활성화 산업육성에 관한 법률도 이렇게 특별법으로 만들어야 된다, 국회에 지금 제출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n그다음에 아까 지도읍, 압해읍 장감리, 신장리 이런 부분에 대해서…….\nO 의원 김 문 수\n반드시 검토를 해달라.\nO 도지사 김 영 록\n1단계 사업계획에서 제외됐는데 기반시설 미흡으로 제외됐다 하지만 앞으로 배후단지랄지 여러 가지 검토를 해달라는데요, 해상풍력 이 부분이 우리가 특히 선도적으로 빨리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린수소를 생산하게 되면 앞으로 친환경은 결국 수소생태계로 가야 된다하면 신안군에 그린수소 생산과 관련되어서 여러 가지 산업 여건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n그래서 여러 가지 기회가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함께 공동 노력을 하고 또 연구도 해서 우리가 국가계획에 반영하고 우리 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 또 신안이 할 수 있는 부분 또 같이 함께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러니까 전라남도, 신안군에다 맡기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안…….\nO 도지사 김 영 록\n지금까지 신안군에 맡겨서 안 됐는데…….\nO 의원 김 문 수\n내놓지를 못했습니다. 왜…….\nO 도지사 김 영 록\n전라남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칭찬도 좀 해 주십시오.\nO 의원 김 문 수\n그러니까 아니, 산업단지 유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안군한테만 맡기니까 재정이 어려우니까 사실은 공단을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라남도하고 그다음에 개발공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신안군하고 3자가 협의해서 반드시 이런 내용들이 유치가 되어야 된다, 이런 계획들을 사후에 보고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O 도지사 김 영 록\n예, 그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다음은 해양수산 정책의 일부는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장이 줄어든 만큼 그 이상의 지속가능한 어업대책은 무엇인지, 풍력발전을 연계한 기르는 어업에 대한 전남도의 대책은 무엇이며, 정부의 요구사항은 무엇인지 특히 풍력으로 가장 피해가 큰 자은, 지도, 증도, 임자 기르는 어업단지 육성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데 지사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nO 도지사 김 영 록\n저도 의원님과 전적으로 견해를 같이 합니다. 그래서 해상풍력과 연계해서 방금 육상 축양이랄지 또 다른 수산참여반인 더 연구 검토해서 그런 부분 적극 지원을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렇게 해 주십시오.\nO 도지사 김 영 록\n48조를 투자를 합니다. 48조를 투자하는데 우리가 민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러니까 지사님이 여기서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됩니다, 두 가지는.\nO 도지사 김 영 록\n예.\nO 의원 김 문 수\n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지사님.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n지금 이것은 대충 제가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n이게 지역경제과에 속하는지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에. 이게 지금 해수국에 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인공어초입니다. 인공어초 지도. 이렇게 많은 예산을 투자해서 인공어초가 투하가 됐는데 용역을 통해서 이 인공어초가 지금도 투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분을 빨리 용역을 실시해서 과연 이게 인공어초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인지 풍력단지가 들어서더라도, 그런 부분에 대한 연구 검토를 하셔서 이게 인공어초의 역할을 못 한다면 사업계획을 바꿔서 외항으로 빠진다든가 그런 검토도 같이 함께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다음은 농업기술원장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n원장님, 시간이 없으니까 짧게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농업기술원장 박홍재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스마트농업이 지금 현재 중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남의 스마트팜의 시설농업 중심의 사고에 2019년 노지 스마트농업 사업이 실질적으로 지금 세 군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 곳당 250억 원씩 해서 경북 안동 사과 54㏊, 충북 괴산 콩 140㏊ 그다음에 경남 양파가 선정이 됐습니다.\n그러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 사업도 전라남도의 3개 시군이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 반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스마트농업의 중요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왜 전라남도는 타 시군이 전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지 스마트농업에 대한 첫 출발인데 이것을 우리 전라남도는 가져오지 못했는지, 특히 전남 농도가 이 부분에 대한 기술원장의 답변을…….\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작년도에 세 군데에서 수요조사가 됐더라고요, 진도하고 신안하고 보성하고. 최종적으로는 진도하고 신안은 중간에 아예 신청을 안 했었고요, 그다음에 보성은 신청을 했다가 중간에 포기를 했는데 국비가 한 67% 정도이고…….\nO 의원 김 문 수\n70%입니다.\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나머지가 지자체이다 보니까 사업규모가 한 250억 원 규모가 되다 보니까 지자체 부담이 워낙 크다 보니까 중간에 아마 자체 협의과정에서 포기를 좀 한 것 같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렇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듣고 시군에 확인해보니까 250억 원 중에 70%는 국가가 부담해 주는데 30%이면 약 75억 원입니다. 75억 원을 도는 한 푼도 부담을 안 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 너희들이 다 부담해라,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습니까?\n그래도 75억 원이라는 부담금이 크기 때문에 사실은 신안, 고흥, 보성이 다 포기를 했던 겁니다. 전라남도는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연히 전라남도가 최소한 50%는 못 한다고 하더라도 30% 이상은 출연을 해서 노지 스마트농업, 특히 가장 열악한 노지 기본 채소들에 대한, 작물에 대한 스마트농업에 기술이 접목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예.\nO 의원 김 문 수\n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다음에 만약에 신청하신다면 도비 부담하시겠습니까?\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그래서 다음 기회에 다시 공모가 된다면 우리 도 예산부서하고 협의를 해서 일정한 부분 도비가 부담돼서 신청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협의토록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특히 기획조정실에 예산담당관 이것 보고 계신가 모르겠어요. 반드시 부담하셔야 됩니다.\n지사님, 감사합니다. 지사님께서 부담하시기로 하셨으니 신청이 들어오면 반드시 유치하셔야 됩니다. 노지 스마트 농업.\nO 농업기술원장 박 홍 재\n알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n기획조정실장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기획조정실장 명창환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전남 예산 매년 어떤 근거로 편성을 하십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의원님께서 잘 아시는 것처럼 자치단체 예산은 지방재정법 38조에 근거해서 행정안전부에서 7월경에 자치단체 예산편성 기준을…….\nO 의원 김 문 수\n짧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내려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근거해서 예산안을 편성하고 11월 11일까지 의회로 넘기게 되어 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지금 각 실국이 5과면 전체 예산 규모에 맞춰서 기획조정실에서 삭감예산 편성을 하시는지…….\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잘 아시는 것처럼 예산은 실국에서 1차 검토가 돼서…….\nO 의원 김 문 수\n그렇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그렇게 하시고.\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요청을 하시고 다만 실국 또는 실링을 두는 것은 아니고 개별사업별로 사업이 타당한가 시급한가 이런 부분들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예산을 심사하고 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러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각 실국에서 예산을 올리는 부서인데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예산들이 잘리는 게 기획조정실에서 잘린다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그것은 제가 죄송합니다마는 예산을 우리가 한 100원을 가지고 있으면 요청은 한 300원∼500원 정도 들어옵니다. 그러면 결국은 깎아야 되는데 그것은 실국별로도 검토가 돼야 되겠지만 사업 전체를 가지고 도정 전체를 가지고 검토를 하게 됩니다.\nO 의원 김 문 수\n좋습니다.\n균특 예산 약 6000억 원, 지방교부세 약 1조 1000억 원 그리고 지방세 6조 8000억 원입니다. 그리고 잉여금 이것을 도합하면 3조 7000억∼8000억 원 정도가 예산 자체 편성이 가능한 예산입니다. 그렇다면 지자체나 실국이 요구한 예산대로 편성하지 못할 경우 아까 국장님께서 설명하신 대로 그런 실링대로 한다면 그런 의견대로 하신다면 당연히 실국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실국에서 가장 중요한 예산을 편성해서 올렸다함에도 불구하고 잘리고 제가 지난 2년간 중소농에 대한 예산을 책정해 달라고 실제로 신규 예산을 편성해서 올리면 다 잘렸어요. 다 잘렸습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조금 답변 올려도 되겠습니까?\nO 의원 김 문 수\n답변해 보십시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방금 말씀하신 자체재원이 3조 5000억원이라고 하는 부분들은 조금 설명이 필요한 게요.\nO 의원 김 문 수\n그것은…….\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아, 간단하게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예.\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해서 일반회계 재원이 7조 3000억 원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국고보조금 같은 걸 빼면 실제로 자체재원은 2조 5000억 원 정도 되고요. 그 안에서 중앙재원에 대해 도비매칭 같은 것을 빼면 순자체사업비는 6400억 원입니다. 그런데 6400억 원 중에서 대부분의 예산은 계속비 사업이고요. 신규사업은 1000억 원 정도 됩니다. 그것은 자료를 드릴 수 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실장님, 제가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논쟁을 하면 길어지니까 제가 그냥 넘어나겠습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알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게 저한테 완전한 답변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고 제가 답변을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전남 지역 재정지출 경제적 효과와 효율적 운영을 위한 분석에 혹시 근거해서 예산을 편성하신 적 있습니까, 지금까지?\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예산을 편성할 때는 전체 예산을 다 용역이라든가 효과성을…….\nO 의원 김 문 수\n용역을 하라는 게 아니라…….\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개별사업과 신규사업들은…….\nO 의원 김 문 수\n경제적 효과와 효율성을 토대로 해서 예산을 편성했냐, 편성을 했다면 어떤 근거로 편성을 했느냐 이것을 제가 질문한 겁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총괄 예산에 대해서는 경제효과를 분석하진 않습니다. 개별사업 같은 경우에는 새로 한다든지 시범사업을 한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각…….\nO 의원 김 문 수\n아니, 개별 작은 사업으로 효과를 분석해서는 안 되죠.\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산편성 할 때는 여러 가지 정확…….\nO 의원 김 문 수\n실국별로 중요한 파트별로 경제면 경제, 중소면 중소 이런 부분에 대한 큰 틀에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편성이 돼야 된다, 그 예산을 편성한 게 효율성은 얼마나 되었는가 극대화가 되었는가 아니면 마이너스인가 이런 부분을 검토해서 총괄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제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재정효과는 감안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예산이 사실은 도 전체적으로 하면…….\nO 의원 김 문 수\n지금까지 하면 그런 근거로 해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재정효과를 분석하신다는 부분이 뭔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 전체적인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 뒤에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왜 그런 근거에 의해서 편성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말씀하십시오.\nO 의원 김 문 수\n제가 시간이 없어서 몇 개 예산담당관께서 오셔서 질문을 빼달라고 해서 빼고 넘어갑니다. 본 의원은 재정지출 중 특히 친화적 지출, 지역경제 성장효과를 분석하고 지역내 총생산과 대응관계가 높은 부분에 선제적 예산을 대응함으로써 예산 투자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서 예산 투자의 크기를 분야별로 조정·편성해야 된다, 이게 제 의견입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이 내용 한번 봐보십시오.\n산업중소기업비는 지출 7년으로 지역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 효과는 최대한 14년간 나타난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승수는 0.325로 산업중소기업비 1% 증가 시 지역내총생산이 0.3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 두 번째 농림해양수산비를 한번 보겠습니다. 농림해양수산비는 지출한 그 해로부터 지역경제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 효과는 10년∼13년 후까지 나타나고 소멸됐습니다. 투자액의 총 승수는 1.018로 농림해양수산비 1% 증가 시 지역내총생산이 1.0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n자, 교육문화비 한번 보시겠습니다. 교육문화비는 집행 후 3년부터 지역경제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 효과는 12년 후까지 나타난 후 사멸되었습니다.\n총 승수율 0.162로 교육문화비 1% 증가 시에 지역내총생산액이 0.162%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네 번째 SOC 증가율 집행 5년으로부터 지역경제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 효과는 최장 16년 후까지 나타났습니다. 승수는 0.632%로 SOC 1% 증가 시에 지역내총생산이 0.6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혹시 이 화면을 보시고 느낀 것 없습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농림해양수산비가 사업비를 하면 지출하는 효과가 가장 빨리 나타나고 승수 효과는 가장 높은 걸로 보입니다.\nO 의원 김 문 수\n지역내 총생산의 즉, 전라남도 지역경제를 이끄는 것은 농수산업 분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제가 이 보고서를 오늘 처음 보기 때문에…….\nO 의원 김 문 수\n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노력을 안 했다는 거…….\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이 보고서의 출처라든지 이 연구의 목적이나 이런 것을 자료를 주시면…….\nO 의원 김 문 수\n아니, 본 의원도 도의회 올라온 지 2년밖에 안 되는데 이런 자료를 가지고 여러분들한테 질문을 하는데…….\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이 자료를 좀…….\nO 의원 김 문 수\n여러분은 이런 근거도 없이 예산을 편성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아니, 의원님…….\nO 의원 김 문 수\n여러분들 기획조정실장까지 오실 때 뭐 했습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의원님…….\nO 의원 김 문 수\n저는 2년밖에 안 됐어요, 도의원 한 지.\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의원님, 의원님이 보내주신 자료는 제가 충분히 이해를 했습니다. 다만 이 자료가 어떤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부분들 잘 모르기 때문에 자료를 주시면 저희들 예산 편성할 때 추후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것은 내가 어디 연구소에 했는가는 전남발전연구원에서 했습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예, 알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확인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전남발전연구원에서 이미 내놓은 자료도 보지 않고 예산을 이렇게 편성해 왔던 거예요, 그냥. 잘 확인하시고 앞으로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예, 알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이런 것을 참고를 해서 예산을 편성하시라는 겁니다. 전남 예산의 투자적 지출 중 지역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농림해양수산비입니다. 총 지출 1%가 증가하면 지역내총생산액이 1% 이상 증가하는 유일한 산업입니다. 뚜렷한 경제적 성과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예산은 뒤로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농업 예산은 몇 년 동안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조금 자료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래요. 그러면 제가 다시 설명을, 왜 그걸 변명이냐 하면 이것 한번 봐보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농축산식품국, 봐보세요. 증가율 매년 3.2%, 감소율 1.9%, 2018연도에 겨우 3.1% 증가했다, 2019년에 16% 감소했고 올해 2.6% 늘었습니다. 국비 한번 보실래요? 여러분 국·실장님 잘 보십시오. 국비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에 떨어졌다는 거예요. 올해는 16.4%나 감되었어요, 국비 확보를 못했다는 거예요.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실무담당자.\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의원님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nO 의원 김 문 수\n답변해 보세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저 자료 중에서 2018년도에 예산이 1조 200억 원에다가 8500억 원으로 준 것은 그 당시에 조직개편이 돼서…….\nO 의원 김 문 수\n그것은 알고 있어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농림축산부에 있는 산림 예산 1500억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nO 의원 김 문 수\n그러니까 그 이후 것을 봐보라는 거예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 이전 것은 보시지 말고 2019년하고 2020년치를 보라는 거예요. 그 이전 것을 여러분이 얘기하지 말라는 거예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2019년에서 2020년…….\nO 의원 김 문 수\n2018년도에 조직개편을…….\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2020년에는 2백…….\nO 의원 김 문 수\n2018년도에 그때는 그렇잖아요. 2019년도에 조직개편 이미 갔잖아요. 그러면 2019년하고 2020년도 예산을 봐보라는 거예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그래서 국비 예산하고 2020년 예산 분을 같이 설명을 간단하게 드리겠습니다. 국비 예산이 7200억 원에서 600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게 1100억 원 정도 줄었는데요. 그 부분이 균특예산이 국비로 분류가 됩니다. 그게 계속 이양을 하면서 750억 원 정도가 자체 지방비로 전환이 됐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자,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그렇게 됐고요. 농업 예산을 말씀드리면 국비 예산이 그런 균특 예산 전환을 통해서 1200억 원 정도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2020년까지 예산이 우리 도 자체 예산을 많이 투입해서 특히 농어민공익수당 같은 것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더 줄었습니다.\nO 의원 김 문 수\n그 얘기하실 줄 알고 제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왜 문제가 있는가 자, 올해 여러분들 101% 증가했다고 그랬지요. 그 증가액을 한번 볼까요, 101%가, 1000억 원이 증가한 이유를? 농어민공익수당 그다음에 또 하나 뭡니까? 농업기반 정비사업 2개 489억 원 이게 1000억 원이 불면서 101%로 증가한 거예요. 그게 뭐가 농업 예산이 증가한 겁니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농어민 공익수당은 원래 직불제는 2㏊ 미만은 대상이 안 되는데 저희들이 그런 부분까지 다 포함해서 전국 최초로 실행을 했습니다. 그래서…….\nO 의원 김 문 수\n실장님, 다른 분한테는 그게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문수한테는 답변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사실 그런데 통계를 가지고 분석하기는 되게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예산이라고 하는 것이…….\nO 의원 김 문 수\n아니, 이게 예산 통계가 말하는 데 뭐로 답변하는 거예요.\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아니, 예산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국비 같은 경우에는 국비사업 자체가 목이 아예 없어지는 경우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 도의 계속사업비가 어떤 해에는 몇 개씩 주는 종료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같이 감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게 지금 도민들께서 보고 계셔서…….\nO 의원 김 문 수\n지금 우리 지사님한테…….\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농업 예산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었다고 오해 하실까 싶어서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nO 의원 김 문 수\n지사님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뺏겨서 시간이 다 됐습니다. 그래서 다행인 것으로 아시고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서면으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기획조정실장 명 창 환\n감사합니다.\nO 의원 김 문 수\n감사합니다.\n기술원장님께, 서면으로 답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n한·필리핀 FTA 조속 타결로 양국이 약 6월 22일 합의를 했습니다. 캄보디아와 FTA 협상키로 하였으며 동남아국가와 지속적으로 자유무역 실현의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라남도가 기후변화 미래대응 전략물로 아열대 과일 집중 육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장흥에 실증센터를 설립했습니다. FTA 체결로 현 재배농가에 타격이 크고 향후 대체작물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기후변화 대응작물에 대해서 그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해 주시고 짧게 참고하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작년 2019년 캄보디아 망고 수입량이 4.8톤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5월까지 87톤으로 2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연말까지 최소 180, 170톤 이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리고 1980년 이후에 수입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파인애플 농가가 포기를 다 했던 결과를 생각하시고 그런 부분에 착안하셔서 답변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안 교육청장님께는 서면으로 질문 받겠습니다.\n존경하고 사랑하는 35만 농어민 여러분 그리고 도민 여러분 귀를 열고 눈을 부릅뜨고 집행부와 의회를 지켜보십시오. 국민 여러분과 소비자단체 여러분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우리 농산물 먹겠다는 국민은 줄어들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수입 농산물, GMO 검증이 되지 않은 농산물을 먹겠다는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습니다.\n일본 국민 90% 이상은 자국산 농산물을 비싸도 먹겠다고 합니다. 우리 농산물을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본 국민보다 못해야 되겠습니까?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하듯이 농어민이 국민의 건강을 지켜드릴 것입니다. 전남의 중소농어민이 지속가능한 농어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소비자 여러분,국민 여러분이 지켜 주십시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nO 부의장 김 성 일\n김문수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집행부에서는 김문수 의원님께서 서면 답변을 요구한 부분은 기일을 지켜 서면으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이철 의원 나오셔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n(15시 45분)\nO 의원 이 철\n오늘 본 의원이 마지막 도정질문 순서입니다.\n힘드시지만 조금만 참아주시면 끝날 것 같습니다.\n또한 고향 완도에서 많은 군민들이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시간관계상 4시에 방송이 종료됨을 군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하며 전남도의회 인터넷 생방송으로 끝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10월 23일 호남방송에서 오후 3시에 녹화 방송함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존경하는 200만 도민 여러분과 사랑하는 완도 군민 여러분!\n존경하는 김성일 부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님!\n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계시는 김영록 도지사님과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전남 교육을 위하여 노고가 많으신 장석웅 교육감님을 비롯한 공직자와 언론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n해양 관광, 해양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장보고의 후예 건강의 섬 완도 출신 이철 의원입니다.\n본 의원의 고향은 누구나 가고 싶은 섬, 완도읍에서 여객선으로 50분 걸리는 청산도가 고향입니다. 오늘 도정질문은 전반기 도정질문과 상임위 활동하면서 제기했던 현안에 대한 진행과정을 점검하고 40분의 시간 안에 해야 되는데 집행부 공무원께서는 간단명료하게 답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건설국장님,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건설교통국장 전동호입니다.\n(부의장 김성일, 의장 김한종과 사회교대)\nO 의원 이 철\n2019년 4월 제330회 임시회 도정질문, 9월 제334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완도 지역 연륙·연도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드렸습니다.\n현재 전남의 연륙·연도교는 전남도에서 추진하고 계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예, 저희들이 하고 있는 것도 있고 국가에서 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현재 약산∼금일의 연륙교 문제는 진행이 되고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약산∼금일은 현재 지방도인데요. 국비 확보를 위한 국도 승격을 위해서 저희들이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 5월에 국토교통부안에 반영되어서 현재는 기획재정부에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제1안은 국도 75호선 노선을 변경하는 것이고 제2안은 제가 보기에 국도 27호선 기점을 고금도로 기점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1안, 2안 중에서 어떻게 국도로 승격합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저희들은 국도 27호선 기점을 변경하는 것으로 일단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동안 국도 승격을 위하여 고생하신 김영록 도지사님과 국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또한 저희들의 숙원 사업인 소안 구도와 소안의 연도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도에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그 구간이 노화에서 소안도를 연결하는 구간인데요. 노화에서 구도까지는 도서개발사업으로 2017년도에 이미 개통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도에서 소안은 도서개발사업비에 여력이 없다고 그래 가지고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행 비법정 도로 체제하에서는 어렵다고 보고 현재는 도로법에 의한 지원을 못 받고 있습니다마는 도로법에 의해서 국비가 지원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을 이미 건의를 했고 관련 국회의원님들하고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현재 2017년 1차 공항이 준공 이후 전혀 추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우리 전남도에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2030 전라남도 기반시설계획입니다. 이 부분도 제가 그때 도정질문을 했었는데 이 기반시설계획을 보면 우리 완도군 전체 섬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실행 가능성이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저희들은 이미 20년 전 1990년대 말부터 서남해안 일주도로를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국도 58호선으로 승격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20여 개소를 개통을 시켰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들은 꿈을 꾸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도에다 선을 그어봤습니다. 선을 그으면서부터 저희들의 꿈도 시작이 됐습니다. 다만 사업비가 많이 들다 보니까 저희 지방비로는 쉽지가 않습니다.\n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국도 승격 관련 법률 개정 이런 것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예, 감사합니다. 아까 했던 금일∼약산 연도교가 건설되고 소안 구도와 소안이 연결되면 노화 구목리∼소안 횡간도∼완도읍 항포구까지의 연륙·연도교가 건설이 돼야 됩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존경하는 김영록 도지사님과 건설국장님께서 꼭 관심을 가지 선만 긋지 말고 반드시 실행이 저는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장님?\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일단 모든 도로는 지도에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그다음에는 사업비가 따라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업비는 관련 법률체계에서, 도로 체계에 따라서 조직이 됩니다. 그래서 지방비도 투입하고 있지만 많은 사업비를 부담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반드시 되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알겠습니다. 다음 사진을 띄워주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지금 이 사진은 북평∼도암 국지도 55호선 도로입니다. 현재 국지도 55호선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이 구간은 완도에서 강진 그리고 영암·순천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구간입니다. 이미 북평∼북일까지는 올 9월에 착공해서 앞으로 5년 후에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도암 향촌리∼계라리까지 연결하는 14.6㎞가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체로 하다보니까 500억 원이 넘습니다. 500억 원이 넘으면 현행 법상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쉽지가 않습니다.\n그래서 일단 향촌리까지 9.9㎞로 500억 원 미만으로 해서 현재 국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5개년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이 길은 해남, 강진이 연루되어 있지만 우리 완도 군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외부 관광객들이 이 길로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길이 좁고 위험도로라서 저희들이 해남 길로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이동성, 경제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도, 2차 구간도 반드시 착공이 돼서 이런 불편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국장님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잘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국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다.\n고생했어요.\nO 건설교통국장 전 동 호\n고맙습니다.\nO 의원 이 철\n동부지역본부장님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완도 노화 보유 권역 가뭄 시 섬 지역 식수 방안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동부지역본부장 박현식입니다.\nO 의원 이 철\n저희가 2019년 9월 26일 제334회 임시회 본회의 4차 도정질문에서 전 동부지역본부장께서 2019년 연말까지, 작년이에요. 수도정비 기본계획에 노화∼보길의 해저 관로 사업이 포함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0년 환경부의 승인을 얻도록 그렇게 되어 있으므로 저희들이 적극 노력해서 환경부 승인을 받아낼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고 이번에 꼭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는데 지금 진행상황 어떻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완도군 수도정비 기본계획이 전면 변경 용역이 2018년 10월에 시작이 돼서 2020년 4월 말경에 완료가 됐습니다. 이번에 완도군 수도정비 기본계획 안에는 예산이라든가 모든 게 다 반영이 돼야 되기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환경부에 승인 요청을 했었고 지금 국가 수도정비 기본계획하고 맞물려서 약간의 보완 요청이 있었습니다.\n그래서 저희들이 이번에 다시 보완 요청 포함해서 반드시 반영이 될 수 있도록 환경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요청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완도 노화의 물 문제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참여정부 때 보길도를 다녀갔습니다. 지난 2017년 여름 가뭄 때 큰 고통을 받고 주민들이 힘들어하였습니다. 댐을 건설하고 저류지를 만든들 비가 안 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 의원은 광역 상수도를 해저 관로를 통해서 노화까지 끌어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댐을 건설한 많은 비용과 시간, 민원을 고려한다면 노화까지 해저 관로를 이용해서 물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영상자료를 보며) 본 의원은 저기 보면 해남 사구미에서 흑일도, 백일도, 마삭도를 거쳐서 노화, 서넙도(넙도), 횡간도 모든 부분에 물 문제가 해저관로에 의해서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번 해저관로 계획이 수도정비계획에 반영되고 환경부 승인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라며 제334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 시 전 동부지역본부장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우리 본부장님도 약속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저희들…….\nO 의원 이 철\n섬에서 물이라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날이 꼭 올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n존경하는 김영록 도지사님께서도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여러 차례 해저 관로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n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n다음은 완도 변환소 부지 관련해서 질문드리겠습니다. 완도읍 중도리산 1-29번지가 전남 도유지가 맞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예, 맞습니다.\nO 의원 이 철\n한전 또는 완도군이 완도 변환소 부지에 대해서 우리 전라남도와 협의한 사항이 지금까지 있습니까? 없습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아직까지 정식적인 공문이나 이런 것은 저희들한테 접수되지 않았습니다.\nO 의원 이 철\n앞으로 완도 변환소 중도리산 1-29번지가 변환소 부지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지금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아마 저희들한테 우리 부지에 대해서 만약에 요청이 온다는 조건하에서 요청이 온다면…….\nO 의원 이 철\n아직 요청 안 왔으니까 가정하지 마시고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저희들 현재 2017년…….\nO 의원 이 철\n간단하게 말씀하세요.\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현재 2020넌 5월 29일에 완도읍 도암마을 변환소 유치 신청서가 한전에 제출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9월 23일에 한전과 도암마을 간 변환소 건설사업 상생합의서가 채택이 되고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n아마 향후에 한전에서는 사업계획서를 주민열람 및 공고하고 주민설명회를 거쳐 11월경에 아마 사업계획 승인을 산자부에 요청할 계획입니다. 산자부에 만약에 요청이 된다면 저희 도에도 협의가 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협의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nO 동부지역본부장 박 현 식\n먼저 저희들 완도변환소 건립부지가 도유림으로 해서 매입 요청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팔아 달라, 이 땅이 필요합니다.” 했을 경우에 완도변환소 건립 예정 부지 중 도유림이 면적이 약 1만 9000 이상이 되면 행정재산을 매각하기 위해서는 용도폐지를 해서 일반재산으로 변경을 해야 됩니다.\n따라서 만약에 그럴 경우에는 전라남도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열어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재산에서 변경이 되면 매각이 가능하고 또한 필지의 면적이 1만 9000 이상이 되므로 전라남도 공유재산 관리계획에 따라서 도의회의 또 의결이 필요합니다. 도의회에서 의결이 될 경우에는 한전과 수의계약을 통해서 매각이 가능하나 여기서 동의가 안 된 경우에는 매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n다만 우리 도와 한전 간의 협의를 통한 부지매각이 무산될 경우에는 전원개발촉진법 제6조의 2에 따라서 수용절차를 통해서 아마 토지취득을 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알겠습니다. 2019년 3월 13일 제329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완도∼제주 간 제3초고압 직류 송전선로 중지 촉구 건의안이 본 의회에 통과됐음을 참고하시고 지금 현재 한전과 완도군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 마냥 자기 땅도 아니면서 버젓이 변환소 부지를 선정하고 주민들을 호도하고 오로지 돈으로만 혐오시설을 유치하고자 하는 한전과 완도군은 완도군민 앞에 사과해야 된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다.\n다음은 도교육행정에 대해서 질문드리겠습니다.\n장석웅 교육감님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n교육감님, 전남 교육 발전을 위해서 노고가 많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감사합니다.\nO 의원 이 철\n저희 완도는 교육감님의 배려로 인해서 완도 지역 섬학교 기반시설이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넙도유치원 개원과 완도수산고등학교 리모델링 사업이 교육감님의 배려로 인해서 잘 진행되어서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말씀 드립니다.\n앞으로도 섬 지역 학교인 노화고등학교 기숙사 신축과 넙도초등학교 인조잔디 구장, 낙도 지역의 학교운동장 개선사업 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n본 의원이 도정질문과 예결위 활동을 하면서 많은 질문을 드렸습니다.\n지금 전복 학교급식은 어떻게 채택이 잘 되어 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2019년에는 5억 3000만 원 정도를 전복급식에 사용을 했고요, 2020년 상반기에는 1억 6000이 집행이 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서 등교일수 및 급식학생 수가 감소됨에 따라서 그 이후에는 집행하지 못했고 대신에 코로나19로 우리 농어민들을 돕기 위해서 지역농수축산물 특식지원사업이 있었습니다. 그게 약 20억 집행이 됐는데 그 내용 중에 전복이 많이 포함됐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앞으로도 우리 교육감님께서 전복을 학교급식에 채택해서 섬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섬을 지키고 또 섬 지역의 학생들도 전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 장석웅 교육감님과 김영록 도지사님께서도 꼭 참고해 주시길 부탁말씀 드립니다.\n지금 섬 지역 학교와 완도수산고등학교에서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로 운동장을 해 주라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염기라든지 그에 따른 관리 문제 때문에 천연잔디보다는 인조잔디가 낫겠다고 말씀들을 하세요.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 학생들의 건강이라든지 환경을 위해서 운동장은 마사토 아니면 천연잔디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n그렇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학교는 예외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완도수산고등학교는 그 예외에 해당되는지 면밀히 살펴서 집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렇습니다. 섬에서 천연잔디로 해서 관리를 안 해 가지고 무용지물이 될 수가 있고 완도수산고등학교는 매립지이기 때문에 염기가 있기 때문에 잔디가 고사합니다. 이 부분을 꼭 착안해서 참고해서 인조잔디로 운동장 기반시설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n다음은 완도고 시험지 답안 유출 건에 대해서 질문드리겠습니다.\n동영상을 틀어주시기 바랍니다.\n(16시 04분 동영상 상영개시)\n(16시 06분 동영상 상영종료)\n전남에 학교가 많은데 우리 완도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저도 유감으로 생각하고 저희 아이들도 완도고를 졸업했고 지금 현재 재학 중인 아이도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지역에 운영위원, 운영위원장, 중학교 특히 완도고등학교 운영위원도 역임하고, 운영위원을 역임하면서 저 또한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n교육감님, 유튜브에 이 동영상이 66만 회를 조회했습니다. 댓글이 3300개가 넘어섰습니다. 이 뉴스를 보고 우리 교육감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말씀하신 대로 우리 전남 학생들의 90%가 넘는 학생들이 수시로 대학 진학을 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대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을 합니다.\n우리 전남교육청은 학생평가의 공정성을 위해서 나름 노력을 해 왔습니다마는 한 여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한 교사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탈행위로 물의를 야기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n또한 완도고등학교는 근래 3년간만 보더라도 대학 입시에 있어서 서울의 유수 명문대학을 비롯해서 의과대, 교육대 등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둬왔고 또한 전국적으로 실시한 일반고 교육혁신진단조사에서도 전국적으로 가장 학생만족도가 높은 학교로서 지역의 명문고로서 발돋움하려고 하는,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져서 더더욱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nO 의원 이 철\n예, 알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최대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조치를 철저하게 강구해 가도록 하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교육감님, 이 사건 전체에 대해서 다 파악하고 계시죠?\nO 교육감 장 석 웅\n그렇습니다.\nO 의원 이 철\n이 뉴스 말고도 많은 뉴스가 방송됐습니다. 2탄, 3탄, 4탄 여기 방송 안 해도 무슨 내용인지 알고 계시죠?\nO 교육감 장 석 웅\n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여기 시험 답안 유출과 성비위 사건이 동일 교사입니다. 이 사건은 지금 어떻게 조사되고 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이 교사가 한 여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저지른 행위라고 했는데 이미 카톡에다가 너를 좋아한다라고 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걸 부모님이 보셨어요. 그래서 이걸로 인해서 우리 여학생이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n이게 9월 11일에 완도경찰서에 접수됐고 완도경찰서에서는 아동전문기관의 판단을 의뢰했습니다. 그래서 그 판단결과에 따라서 입건을 포함한 제반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n그리고 이 교사에 대해서는 9월 29일 도경에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수사개시를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고 수사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알겠습니다. 이때까지는 뉴스가 나와도 누가 제보를 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죠?\nO 교육감 장 석 웅\n예.\nO 의원 이 철\n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공익제보제에 상세한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추리할 수 있도록 전남도교육청에서 유출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그러지는 않았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래요?\nO 교육감 장 석 웅\n이게 알려지게 된 게 이 교사가 A4 한쪽에 정답을 적어가지고 그 여학생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학생이 그 A4 한쪽짜리를 과학참고서 안에 보관했었고 그러던 차에 친구가 과학참고서를 빌려달라고 해서 그 과학참고서를 빌려줬는데 빌려간 학생이 보니까 영어시험 정답이 들어있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러니까 그 빌려간 학생을 추리할 수 있도록 전남도교육청에서 저는 유출이 됐다고 생각합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nO 의원 이 철\n그런 부분은 공익제보자의 신변은 항시 보호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공익제보자들은 보호해야 된다는 원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교육청에서 유출하거나 또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한 행위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nO 의원 이 철\n뉴스에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거 정정보도 요청하셨습니까, 혹시?\nO 교육감 장 석 웅\n정정보도까지는 요청하지 못했습니다.\nO 의원 이 철\n알겠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그러니까 학생 사이에서 그 이야기는 전후관계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여집니다.\nO 의원 이 철\n지금 제보자가 학생인데 제보자가 참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나서게 됐는데 제보자 학교, 완도교육청, 경찰서, 전남도교육청을 신뢰하지 못하니까 전남지방청으로 직접 신고를 했다고 했습니다.\n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기성세대로서 특히 교육감이 교육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이런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교나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nO 의원 이 철\n그것도 전남지방청으로 신고했습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저도 정말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있어서 신뢰의 문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 스스로 자성을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러면 지금 현재 완도고 사건은 타 학교 사건하고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다른 학교 같은 경우에는 학교 단위에서 입시의 출제라든지 보관, 관리와 관련한 부적절한 행위라든지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인 것에 비하면 이 사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교사의 일탈행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점이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이 사태가 발생했을 때…….\nO 의원 이 철\n교육감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목포의 고등학교나 타 학교는 시험지가 유출됐습니다. 그렇지요?\n그러나 우리 완도고는 시험답안이 유출된 사건입니다. 그 유형에 대해서 특히 서술, 논술, 주관식 그래서 이건 더 큰 사건이고 이런 부분들의 재발방지책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그 선생님이 완도고에 5년 근무했어요, 그렇죠? 여기는 재발방지책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도교육청에서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답안지 자체가 유출된 것은 아니고요.\nO 의원 이 철\n시험답안, 답안지 유출됐다는 말 안 했습니다. 시험답안이 유출됐어요.\nO 교육감 장 석 웅\n충분하게 답을 알 수 있는 내용의 힌트라든지 그런 내용입니다, 문제 유형이라든지.\n저는 우리가 도경에서 이걸 통보받은 것이 9월 15일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16일부터 3일간 학교감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성적관리위원회를 개최해서 0점 처리를 하고 그래서 수능등급을 조절했고요. 그리고 곧바로 수능 원서접수 기간이기 때문에 역량있는 교사로 담임을 즉각 교체를 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이 사안에 대해서 수시 원서 마감이 9월25일이고 9월 22일은 학생부 마감일입니다. 바로 촉박해 있습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이 문제를 처리했고 저희들 입장에서는 시험 보는 완도고 3학년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생각 속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노력을 했고, 지금은 학생들에 대해서 우리 도교육청의 최고의 전문가들 대입지원단, 현장지원단 선생님 세 분을 투입해서 학생들 수시원서 쓰는 거라든지 면접요령에 대해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O 의원 이 철\n제가 알고 있으니까…….\n또 한 가지 교육감님께서 개인적 의견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목포시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을 즉시 열고 발 빠르게 유감과 사과 표시를 하셨습니다.\n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우리 완도고 사건에 대해서는 교육감님께서 공식적으로 이런 유감과 사과 표시를 안 하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당연히 적절한 시점에서 유감 또는 사과 표시를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학생부 마감일 그리고 수능 접수마감일이 촉박해 있는 상황 속에서 그걸 또 다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하는 것은 우리 시험을 보는 수시를 앞두고 있는 완도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판단 속에서 적절한 시점에서 충분히 그런 사과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nO 의원 이 철\n지금 계획을 하고 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이미 확대간부회의에서 송구하다는 말씀은 드린 바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렇게 하신 것은 사과가 아니고 유감 표시한 것뿐입니다. 왜 그런가 하니 여기 제보를 했던 학생뿐만 아니라 아까도 드렸지만 첫 방송이 나가자 유튜브에 66만 건이 조회가 넘었어요. 답글이 3300개가 넘었습니다. 이 부분을 유념하셔서 저희는 그에 따른 교육감님 다음 행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아무리 개인적 일탈행위라고 하더라도 전체 3만 교직원을 지도·감독할 책임이 저에게 있기 때문에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한 죄송함은 분명하게 어떤 형식으로 표명을 해야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이 사건이 우리 교육감님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고 전체 우리 교육가족, 완도, 전남, 우리 어른들이 다 책임져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재발방지책이 앞으로 반드시 나와야 되고 또 그런 어린 학생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n다음 동영상 한번 틀어 주시기 바랍니다.\n(16시 17분 동영상 상영개시)\n(16시 19분 동영상 상영종료)\n(영상자료를 보며) 마지막 사진 띄워주세요. 아니 아니, 아까 사진, 마지막. 이것 말고.\n동영상 마지막 나온 것 있었잖아요. 배 사진 말고 학생…….\n동영상에 아까 마지막 나온 사진은 완도수고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승선해서 1년 연봉이 1억이 넘는 월급 명세서입니다.\n방금 시청한 동영상은 완도수고의 홍보영상입니다. 완도수고 청해진호가 대만, 이 영상은 저 완도수고 졸업생이 고액연봉을 받은 월급명세서입니다. 1년간 배를 타고 이렇게 해서.\n그리고 방금 시청한 동영상은 완도수고 청해진호가 원양을 대만, 중국, 일본까지 갔다 온 사항입니다.\n전국 유일의 수산계 학교인 완도수산고등학교는 청해진호가 홍보의 근간을 삼고 있으며 청해진호 없는 완도수고는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n교육감님, 완도수고와 청해진호 혹시 방문한 적 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예, 완도수고는 제가 비공식적으로 방문을 했고요. 청해진호는…….\nO 의원 이 철\n선거 때요? 언제 비공식적으로 방문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제가 방과 후에, 또 휴일에 두 차례에 걸쳐서 둘러본 적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랬습니까?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 번 그런 부분 주문했었는데 오늘 방문했다는 것을 제가 처음 알았습니다. 교육감님 되고 나서 방문했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그렇습니다.\nO 의원 이 철\n감사합니다.\n본 의원이 2019년 4월 5일 제330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완도수고 공동실습선 신조 건조에 대해서 질문드렸습니다.\n교육감님께서는 답변에서 2019년 작년 10월, 11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서 통과되어서 교육부의 지원을 받고 늦어도 올 2020년 1월에는 선박건조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본 의원이 도정질문에서 교육감님께서 답변을 하셨고 교육감님께서 계획까지 지금 그 자리에서 말씀하시고 약속을 하셨으며 저희 완도 주민들이 방청석에서 그 답변을 듣고 TV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완도 주민과 도민들이 시청하였습니다.\n그런데도 아직 신조계획이 추진되지 않고 있으며 신조 예산도 1원도 세워지지 않았습니다.\n본 의원이 2019년 4월 5일 제330회 임시회 본회의 도교육행정 질문에서 교육감님께 질문하고 답변하셨을 때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고 답변하셨는지 교육감님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선박건조 계획과 관련한 건조비용 문제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됩니다.\n현재 약 1000톤 가량의 신조선을 만드는 데에는 약 310억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310억 원에 대한 재원분담 계획을 아울러 제출해야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n그래서 관련해서 저희들이 해양수산부도 방문하고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 확답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원조달계획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에 저희들이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심사요청을 하지 못했고 2020년에 들어와서는 코로나19로 인해서 그나마도 진척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nO 의원 이 철\n청해진호는 1998년 건조선령이 22년이 경과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청해진호는 흘수선, 흘수선이 뭔지 알죠? 배 가운데 물하고 바다하고 공간입니다, 육지하고. 그 흘수선 밑에 학생침실이 40명, 교사 침실이 2명 있어서 비상상황 시 퇴선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외고 새로운 선박법에는 학생 거주구간을 흘수선 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nO 교육감 장 석 웅\n예.\nO 의원 이 철\n청해진호가 지금 선령 22년을 넘기고 있어, 사진 한번 보여주십시오.\n(영상자료를 보며) 노후로 인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제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빨리 질문하겠습니다. 이러한 선박노후로 인한 예산이라든가 안전성, 환경성 많은 부분들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특히 엔진도 친환경 디젤엔진으로 바꿔야 되는데 바꾸지 못하고 있고 특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완도수고만 쓰는 게 아니라 전국의 수산계 학교, 중학교 어린 학생들이 청해진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n지금 교육감님, 청해진호에 여성 공무원선원이 몇 명 근무하고 계신지 아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3명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그렇습니다. 7급 조리사 1명, 항해부 9급 1명, 여성 기관원 1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여성선원들의 복지라든가 환경이 아주 열악합니다. 이런 부분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청해진호를 1998년 신조 건조 시 해양수산부가 30억, 도교육청이 35%인 20억을 부담했습니다. 나머지 10억을 교육부가 부담해서 신조 건조를 추진했습니다.\n그리고 앞으로 신조 건조 할 우리 배는 1000톤 급에 약 300억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런 예산 분에 대해서 우리 교육감님 한번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도교육청에서 22년 전에 35%를 부담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그 비율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금 의원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이 배를 인천, 경남, 제주 소재의 수산고등학교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해수부가 지원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해수부의 특별교부금을 받아야 되거든요. 최소 100억 정도는 지원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n아울러서 또 이 배를 우리 여수 그리고 신안에 있는 해양과학고에서 활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라남도의 지원 그리고 우리 교육청 그래서 3분의 1정도씩이라도 분담을 하게 되면 가능하지 않겠나 싶은데 해수부 입장에서는 ‘한미르호’라고 해수부 소유의 어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그걸 쓰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보면 쓸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n그래서 핵심적으로는 해수부의 지원을 최소한 100억 이상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교육부, 중투에서 지원 그리고 우리 자체재원, 거기에다가 일부 지자체 지원까지 합해지면 310억은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관건은 해수부 지원입니다.\nO 의원 이 철\n꼭 그렇게 해서 여러 학교에서는 청해진호가 신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 교육감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nO 교육감 장 석 웅\n예.\nO 의원 이 철\n언제쯤 그런 부분이 신조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nO 교육감 장 석 웅\n저희들도 이게 다급한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게 신조선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현재 있는 청해진호가 25년이 되거든요. 현재 선령이 22년이기 때문에 3년을 잡아도 그렇게 되면 노후도가 상당 부분 진척이 되기 때문에 시급하게 신조 문제를 매듭지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저희들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nO 의원 이 철\n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n교육감님 들어가셔도 되겠습니다.\n존경하는 김영록 도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께서 결단을 내리시면 청해진호는 신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 전국의 수해양계 대학교 실습선은 신조했거나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수산계 마이스터고는 완도수고가 유일합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의 어린 청소년들이 실습도 하고 원양도 다니고 있습니다. 수고를 졸업하면 바로 승선하고 선박생활을 해서 원양어선을 탑니다.\n현재 선박 규정에 강선의 경우 선령이 20년 미만인데 백번 양보하여 청해진호를 25년까지 사용한다 해도 신조 건조 시간을 3년으로 잡고 올해 신조에 들어가야 하는데 도교육청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n예산 확보를 위하여 법령에 근거하여 전남도, 도교육청, 해수부,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산을 확보하여 어린 청소년들의 안전과 실습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n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누를 범할까 무섭습니다. 만에 하나 어린 학생들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누구 책임입니까?\n특히 섬 지역은 육지에 비해서 교육의 질도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데 섬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낮으면 학교 기반시설도 열악하기 마련입니다.\n대도시 학교에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섬에는 교육기반시설 투자가 열악한 것이 사실입니다.\n우리 장석웅 교육감님께서 섬의 학교나 분교를 1년에 한 번만이라도 방문하면 열악한 섬 기반시설이 확실하게 나아질 거라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n섬의 교육여건이 좋아지면 섬 주민들의 삶의 질도 당연히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n섬 인구수와 학생 수는 갈수록 감소한다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완도는 섬 지역이 전복과 김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결혼하여 현재 인구 5만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n또한 전복과 김의 활성화로 많은 젊은이들이 인구 되어서 섬 지역 고등학교가 5개교에서 2개교로 줄어들었지만 학생 수가 특별히 감소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노후된 기숙사 등 학교기반시설 확충에 건의사항이 많습니다.\n교육은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섬 주민들의 애환과 섬 학생들의 애환을 생각해서 육지로의 체험학습과 섬과 육지학생들의 교류, 섬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도교육청의 투자만이 섬 교육 발전이 발전된다고 생각합니다.\n아직까지 연륙·연도가 되지 않은 섬들은 하루빨리 다리가 건설되어서 섬 지역의 교육과 응급환자 이송 및 섬사람들의 고충이 해결되기를 존경하는 김영록 도지사님과 장석웅 교육감님께 부탁말씀 드립니다. 존경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님 여러분! 이번 제11대 경기도의회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 소임을 맡게 된 이영봉 위원입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도의원으로서 당선되어 경기도 의정발전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선배ㆍ동료 위원 여러분이 많으심에도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하여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n저는 위원장으로서 경기도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협력과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고 위원회 차원에서는 정책수요자들의 여론수렴과 정책개발을 통하여 문화체육관광 분야가 도민에게 희망을 주고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상임위원회의 모든 활동은 위원님들과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운영해 나갈 것이며 또한 부위원장님들과 긴밀히 협의하여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위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드리겠습니다.\n위원 소개 전에 협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옷소매로 가리는 등 생활방역수칙을 준수하여 회의에 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번 회의는 상임위 위원 수 증가로 인한 전자회의시스템 구축 기간 부족으로 의안자료 등은 서면으로 진행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n그러면 위원 소개와 인사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소개 방식은 제 자리 기준으로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 순으로 위원님들의 성함을 호명하면 해당되시는 위원님들께서는 그 자리에서 성명을 말씀해 주시고 간단한 인사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n우리 김성수 위원님부터 인사말씀 시작하시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반갑습니다. 안양 1선거구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위원입니다. 먼저 제11대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시고 또 첫 임무를, 업무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함께하게 된 데에 대해서 정말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고요. 함께 저희들이 도민만 바라보고 열심히 저희 상임위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성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철진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반갑습니다. 안산 출신의 김철진입니다. 11대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에서 전반기 2년 동안 함께 되어서 반갑기도 하고 또 영광이기도 합니다. 좋은 내용을 가지고 경기도의 문화발전, 체육을 위해서 함께 2년 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들을 발휘하는 소중한 인연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철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박진영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박진영 위원 안녕하십니까? 화성 출신 경기도의원 박진영입니다. 문화체육관광위원이 돼서 영광이고요. 저희 문화체육관광위가 전반기 동안, 후반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반기 동안 코로나로 지친 많은 주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위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박진영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우리 유종상 위원님.\n○ 유종상 위원 반갑습니다. 저는 광명 출신 유종상 도의원입니다. 우리 제11대 도의회 문화관광위원으로서 보다 더 열심히 하는 위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같이 함께 잘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유종상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이경혜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이경혜 위원 반갑습니다. 고양 4선거구 이경혜 도의원입니다. 모든 상임위가 다 중요하지만 문화체육관광위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장 중요한 경기도민의 삶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함께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경혜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미자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조미자 위원 반갑습니다. 남양주 진접 광릉숲이 있는 지역에서 처음 정치에 입문을 한 조미자입니다. 저는 주민과 함께하는 생활문화를 통해 우리 주민들의 삶의 질을 함께 올리는 그런 역할을 했는데 이제 여기 위원님들과 함께 좋은 정책과 사업을 통해 경기도민 많은 분들이 행복한 삶을 문화를 통해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조미자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황대호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감사합니다. 수원의 황대호 위원입니다. 재선의원으로서 민주당에서는 수석대변인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앞에 주신 말씀처럼 문화체육관광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입니다. 진영논리가 아니라 우리 당사자들과 문화체육관광인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존중해 나가면서 신뢰를 통해서 가장 모범이 되는 상임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황대호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최승용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최승용 위원 반갑습니다. 국민의힘 비례 최승용 위원입니다. 이영봉 위원장님과 동료 위원 여러분과 함께 도정을 꼼꼼히 살피고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최승용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임광현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임광현 위원 만나 뵙게 돼서 진정 뜨거운 가슴으로 눈을 마주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순간 고대했고요. 역량과 덕목이 높으신 이영봉 위원장님과 함께 문체위를 할 수 있게 돼서 또 더더욱 전문역량을 갖추신 우리 여러 위원님하고 함께하게 돼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함께 손잡고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서 문체위가 나갈 것을 저도 다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임광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이한국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이한국 위원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파주 출신의 이한국 위원입니다.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서 소임을 맡게 돼서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이영봉 위원장님을 중심으로 여러 위원님하고 같이 오로지 경기도민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한국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이석균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이석균 위원 안녕하십니까? 남양주에서 온 이석균 위원입니다. 앞으로 우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석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윤충식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윤충식 위원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산정호수가 있고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이 있는 포천에서 온 윤충식입니다. 먼저 우리 이영봉 위원장님을 비롯한 열여섯 분의 위원님들과 함께 우리 문체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체위의 아주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활동을 위해서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윤충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정호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김정호 위원 안녕하십니까? 광명의 김정호 위원입니다. 우리 위원장이신 이영봉 위원장님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1,390만 도민을 바라보고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길 기대하고요. 저도 그 위치에서 저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정호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강웅철 위원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용인 수지의 강웅철 위원입니다. 먼저 이렇게 인사의 기회를 주셔서 우리 위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요. 도민과 경기도와 또 우리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위해서 초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강웅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오늘 저희가 저 포함해서 열여섯 분의 위원님인데 오늘 곽미숙 위원님께서는 국민의힘 대표를 맡고 있어서 수해지역에 지금 현장방문을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시라는 전화가 와서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나머지 우리 위원님들의 인사말씀을 마치고요. 오늘 의사일정에 대해 안내말씀드리겠습니다.\n오늘 심사할 안건은 총 5건입니다. 먼저 의사일정 제1항 부위원장 선임의 건과 제2항 의석배정의 건을 처리하고 이어 제3항 문화체육관광국,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관 업무보고의 건, 제4항 2022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제5항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한국도자재단 소관 업무보고의 건 순서로 심의하겠습니다.\n1. 부위원장 선임의 건\n(10시21분)\n○ 위원장 이영봉 그러면 의사일정 제1항 부위원장 선임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n부위원장 선임에 대해서는 위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경기도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운영 조례에 따라 각 교섭단체별로 부위원장 1명씩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더불어민주당 부위원장 1명과 국민의힘 부위원장 1명을 선임하도록 하겠습니다.\n그럼 먼저 더불어민주당 부위원장으로 적합하신 분을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정호 위원 국민의힘 김정호 위원입니다. 이 부위원장 선임의 건은 어제 우리가 협의한 대로, 양당이 협의한 대로 민주당에서는 황대호 위원 그리고 저희 당에서는 임광현 가평 위원이 하는 걸로 했으면 좋겠다는 동의안을 냅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우리 김정호 위원님 안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회의 절차상에 근거 기록이 남아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우리 위원님들이 이해를 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우리 유종상 위원님.\n○ 유종상 위원 우리 더불어민주당 황대호 위원을 추천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황대호 위원님 추천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추천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럼 위원님들의 별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추천되신 황대호 위원님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습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이의가 없으므로 더불어민주당 황대호 위원님이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n(박 수)\n별도로 국민의힘 선출되면 두 분 부위원장님 인사말씀 시간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국민의힘 부위원장으로 적합한 분을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호 위원님.\n○ 김정호 위원 가평의 임광현 위원님을 추천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가평의 임광현 위원님이 추천되셨습니다. 또 추천하실 분 계십니까?\n없으시면 방금 김정호 위원님께서 추천하신 임광현 위원님을 부위원장님으로 선출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습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이의가 없으므로 국민의힘 임광현 위원님이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셨음을 선포합니다.\n(박 수)\n축하드립니다. 양 부위원장님의 간단한 선임 인사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황대호 부위원장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부위원장(황대호ㆍ임광현) 인사\n(10시24분)\n○ 황대호 위원 수원의 황대호 위원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를 부위원장으로 추대해 주신 이영봉 위원장님을 비롯한 동료ㆍ선후배 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올립니다.\n경기도 문화체육관광은 무엇이든 대한민국의 표준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정말 많은 고충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정말 서로의 손을 붙잡고 우리 한번 여야가 협치를 통해서 문화체육관광산업을 정말 대한민국의 표준이 되는 그런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저 역시 정말 우리 국민의힘 위원님들과 또 더불어민주당 위원님들과 신뢰와 존중 속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박 수)\n○ 위원장 이영봉 황대호 위원님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다음은 국민의힘 임광현 부위원장님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n○ 임광현 위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장일치로 위원님들의 열화와 성원으로 부위원장을 맡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아울러 31개 시군의 문화체육관광이 골고루 흡수되고 골고루 집행되고 골고루 감시될 수 있는 역할이 우리의 기본 책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경기북부지역의 균형발전에 문화예술 부분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출신 지역이라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그런 부분에도 여러 위원님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들의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리고요. 아울러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역량과 덕목이 높으신 우리 이영봉 위원장님과 또 재선이시고 당에서 신임과 능력에 극찬을 받고 계신 우리 황대호 위원장님과 같이 함께하게 됨을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박 수)\n○ 위원장 이영봉 다시 한번 두 분이 부위원장님에 선임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n2. 의석배정의 건\n(10시27분)\n○ 위원장 이영봉 다음 의사일정입니다. 제2항 의석배정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n위원님들, 어제 실은 양당 부위원장님으로 내정되신 두 분에게 의견들을 듣고 청취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양당으로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데요. 보기도 좋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부위원장님들이 가장 앞쪽에 이렇게, 이쪽에 지금 임광현 위원님이 배석을 하시고요. 이쪽에 황대호 위원님이 배석하시고 나머지 순서별로 해서, 가나다 순서별로 해서 그렇게 의석을 배정하려고 하는데 우리 위원님들 이의가 있으신가요?\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이의가 없으시므로 의석배정의 건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n의석배치도\n회의장 정리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해서 잠시 정회하고자 하는데, 한 5분 정도만 정회하겠습니다. 회의장 정돈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지금 시간이 몇 시죠? 10시 35분까지 정회를 선포하겠습니다.\n(10시29분 회의중지)\n(10시37분 계속개의)\n○ 위원장 이영봉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3. 업무보고의 건\n- 문화체육관광국,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의사일정 1항 문화체육관광국,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2022년도 업무보고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n김현수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나오셔서 2022년도 문화체육관광국 업무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입니다. 먼저 11대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존경하는 이영봉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 여러분을 모시고 2022년 하반기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부위원장에 당선되신 황대호 위원님과 임광현 위원님 축하의 말씀드립니다.\n오늘부터 실시하는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공공기관 업무계획에 대한 위원님들의 고견을 적극 반영하여 문화예술이 일상인 경기, 문화로 지속가능한 경기도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n업무보고에 앞서 위원님들과 함께할 문화체육관광국 간부공무원들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n김태근 문화종무과장입니다.\n(인 사)\n장우일 콘텐츠정책과장입니다.\n(인 사)\n김성완 예술정책과장입니다.\n(인 사)\n김훈 체육과장입니다.\n(인 사)\n홍성덕 문화유산과장입니다.\n(인 사)\n최용훈 관광과장입니다.\n(인 사)\n강길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입니다.\n(인 사)\n다음으로 공공기관장을 소개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n서흥식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입니다.\n(인 사)\n민세희 경기콘텐츠진흥원 원장입니다.\n(인 사)\n이원성 경기도체육회 회장입니다.\n(인 사)\n현재 4개 공공기관장은 공석으로 해당 기관은 직무대행이 대리 참석하였음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경기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 유대열 경영기획본부장입니다.\n(인 사)\n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 직무대행 윤환 관리본부장입니다.\n(인 사)\n경기아트센터 사장 직무대행 신명호 경영본부장입니다.\n(인 사)\n경기도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직무대행 허범행 경영본부장입니다.\n(인 사)\n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께서는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서 주홍미 문화예술본부장이 대리 참석하였습니다.\n(인 사)\n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코로나 확진으로 허은광 사무국장이 대리 참석하였습니다.\n(인 사)\n○ 위원장 이영봉 김현수 국장 수고하셨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n○ 위원장 이영봉 또 있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업무보고해야 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네. 계속해서 김현수 국장님 업무보고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부터 배부해 드린 보고서를 중심으로 2022년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n먼저 7쪽 일반현황입니다. 문화체육관광국 조직은 6과 25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원은 124명입니다.\n8쪽 재정현황입니다. 2022년 예산은 5,450억 원으로 도 전체예산 대비 문화 분야 예산 비중은 1.82%입니다.\n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9쪽부터 14쪽까지 부서별 주요기능과 성과, 민선8기 비전 및 핵심과제는 배부해 드린 보고서로 갈음토록 하고자 합니다.\n16쪽부터 시작되는 2022년 하반기 주요사업 추진계획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n17쪽과 18쪽 문화종무과 소관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입니다. 여건과 과제입니다. 개인의 여가생활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 보편화로 문화향유 기반의 지속적 확충과 접근성 제고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 조성이 필요해지고 있으며 이에 관 주도의 하향식 정책에서 주민의 참여와 책임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고유성을 살릴 수 있는 분권형 문화정책으로의 이행이 요구되고 있습니다.\n하반기 추진계획입니다. 경기도 문화의 날에 각 지역단위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100개를 지원하고 도내 36개 문화시설 이용료 일부를 지역화폐로 환급함으로써 도민 문화향유 기회를 제고하며 공공언어 감수대상을 확대하고 분임국어책임관을 두는 등 공공언어 개선사업을 지속 추진하겠습니다.\n18쪽입니다. 지속가능한 지역문화 생태계 조성을 위해 5개 시군을 대상으로 문화자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 중심ㆍ주민 주도형 지역문화 협력 거버넌스인 문화자치위원회와 다양한 문화 주체의 정책제안 소통창구인 문화정책협의체를 통해 참여하고 협력하는 문화자치를 실현하겠습니다. 또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고 즐기는 경기창작센터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지역 유휴공간을 문화예술 활동 공간으로 조성하며 미래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박물관ㆍ미술관을 조성하는 등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전통사찰의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해 21개 시군, 35개 전통사찰의 노후시설을 정비하고 종교별 특성에 따라 위로와 치유를 위한 종교문화예술 프로그램 38개를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으로 19쪽과 20쪽 콘텐츠정책과 소관 융복합 콘텐츠 경쟁력 강화 및 지속가능 생태계 조성입니다.\n여건과 과제입니다. 최근 K-콘텐츠는 대한민국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한류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K-콘텐츠 밸리 등 장기적 성장거점을 마련하고 콘텐츠 스타트업 생태계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또한 코로나19가 촉발한 디지털 대전환에 따라 콘텐츠산업의 환경이 변화하였습니다. 급변하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과 체질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n추진계획입니다. 고양시 일원 한류월드, K-컬처밸리, 방송영상밸리, IP 융복합 콘텐츠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K-콘텐츠밸리를 조성하여 K-컬처 글로벌 거점으로 육성하겠습니다. 콘텐츠밸리의 컨트롤타워 및 영상콘텐츠 기술개발의 거점이 될 가칭 메타콘플렉스 공공센터 조성도 추진하겠습니다.\n20쪽입니다. 콘텐츠 창업 지원의 핵심인 경기문화창조허브의 동부허브를 신설하여 경기도 동서남북 권역별로 창업에서 스케일업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콘텐츠 창업기업 지원펀드와 콘텐츠 특례보증을 통한 금융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공정상담센터를 통하여 프리랜서나 창작자나 소규모 콘텐츠 기업들에 대한 피해대응 능력 강화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지역서점 지역화폐 소비지원금, 지역영상미디어센터 확대 조성 등 생활 속에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노력도 잊지 않겠습니다. DMZ다큐영화제, 인디뮤직페스티벌 등의 콘텐츠를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민간 OTT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서 배급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온라인 플랫폼인 보다(VoDA)를 모바일까지 확대하여 온라인에서도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콘텐츠산업의 핵심 창작자 발굴ㆍ육성ㆍ보호를 강화해 지속가능한 문화콘텐츠 발전의 체질개선을 도모하고 음악 창작자, 시나리오 작가, 1인 유튜버 등을 발굴하고 사업화를 지원하여 콘텐츠 창작 저변 확대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기술과 콘텐츠의 접목인 문화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제작 지원, 실감콘텐츠 실증 지원 등 콘텐츠산업 미래 먹거리 확보에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21쪽과 22쪽 예술정책과 소관 변화와 기회의 초석이 되는 예술환경 조성입니다.\n여건과 과제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가 침체되고 도민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됨에 따라 예술인들의 안정적 창작활동 지원을 통해 건전한 예술생태계를 조성하고 도민의 예술향유 기회를 확대하여 예술이 도민 일상의 변화와 기회의 시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n추진계획입니다. 예술인의 안정적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경기 뉴미디어 예술방송국을 운영하여 도내 예술단체 영상제작과 배포를 지원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뉴노멀이 된 예술의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의 안정적 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예술인 창작지원금 시범사업을 전 시군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경기도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연구용역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22쪽입니다. 예술인 권익보호와 함께 장애예술 등 예술 소외계층과 지역에 대한 지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확대를 위해 거리에 나온 예술, 예술동호회 활동 지원을 통해 도민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게 하고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아동ㆍ청소년 대상 1인 1예술교육 바우처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 연구용역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의회 구청사를 리모델링하여 도민들의 복합문화시설로 조성하고 시군 문예회관 건립을 지원하여 문화예술 기반시설을 확충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건축물 미술작품의 심의ㆍ선정부터 설치ㆍ관리까지 제도 전반을 엄격히 운영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를 확립하도록 하겠습니다.\n23쪽과 24쪽 체육과 소관 도민 모두가 함께하는 스포츠 활성화입니다. 지방체육회 법인화에 따른 경기도 체육정책의 합리적 재조정으로 도와 체육회 간 역할을 정립하고 공정한 스포츠생태계를 조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생활체육 확대와 전문체육 기반 약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계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합리적인 체육 예산 확대와 경기북부지역 스포츠 불균형을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겠습니다.\n2022년 하반기 추진계획입니다. 경기도체육회 자정능력 강화를 위해 각종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예산회계 업무처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경기도체육회가 도 체육 정책의 중추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생활체육 환경조성을 위해 체육진흥시설 19개소, 생활밀착형 체육시설 54개소를 지원하는 등 시군의 스포츠시설 확충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n24쪽입니다. 장애인의 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금년 내 도내 장애인체력인증센터 3개소를 신규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스포츠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시군을 대상으로 경기도 지역특화 레포츠 사업을 발굴하고 독립야구단 경기도 리그 운영으로 청년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도내 시민프로축구단 지원을 통해 축구 발전 및 도민의 스포츠 수요를 충족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정하고 존중받는 체육환경 조성을 위해 경기도 스포츠인권센터를 개소했고 운동선수 및 체육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경기도 스포츠 인권 중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인권증진사업을 도모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 종합체육대회 개최를 통해 도민 화합의 장을 마련하며 31개 시군이 참가함으로써 지역 스포츠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제103회 전국 체육대회와 전국 생활체육대축전에 참가하는 도 대표선수단에 적극 지원하여 경기도의 체육 위상을 제고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25쪽과 26쪽 문화유산과 소관 문화유산 발굴보존과 활용을 통한 문화계승 환경 구축입니다.\n여건과 과제입니다. 경기도의 지속되는 개발압력으로 인해 경기도 문화유산의 훼손 위험성이 지속되고 경기도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됨에 따라 신규 문화유산 발굴과 지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자연재해와 인위적 훼손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첨단기술을 활용한 문화재 상시 관리체계의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n추진계획입니다. 경기도의 특징적이고 상징적인 분단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등록하여 근대문화유산 보호체계를 구축하며 조선왕실 태실과 태봉의 보존과 가치 확산을 위하여 발굴조사와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타 지자체와의 협력체계를 마련토록 하겠습니다.\n26쪽입니다. 문화재 992개소 상시관리를 위한 문화재 돌봄사업을 추진하고 첨단기술 기반의 문화재 안전관리시스템 4개소를 구축하는 등 안전관리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무형문화재 전수 장학생을 66명에서 116명으로 확대하고 전통시장을 활용한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등 무형문화재의 전승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도내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조선시대 6대로 중 미조성된 강화길의 신규 조성과 지역 특색 있는 테마길 조성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도 정체성 확립을 위해 전문가 협의체를 활용하여 새로운 경기도사 편찬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n27쪽과 28쪽 관광과 소관의 도민과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경기관광 구현입니다.\n여건과 과제입니다. 일상회복 시기 도래에 따라 새로운 관광 트렌드가 부상하고 국내관광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방한 관광객 유치 경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도 특화 관광명소를 육성하고 시군 관광자원을 연계한 체류형 관광 활성화 및 안전하고 차별 없는 관광환경 조성으로 전 국민과 세계인이 즐겨찾는 경기도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n추진계획입니다. 지난 7월 17일까지 경기바다 여행주간을 성황리에 개최했고 시군의 특색 있는 관광테마골목과 경기 청정계곡 등 경기도만의 매력적인 관광명소를 계속적으로 발굴ㆍ육성하도록 하겠습니다.\n28쪽입니다. 23년 이후에는 방한 관광시장의 완연한 회복이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해외시장 대상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해외 핵심여행사ㆍ유관기관과의 협력사업을 추진하며 마이스 행사 유치 확대를 통해 경기관광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도-시군 상생관광 발전을 위해 시군의 22개 우수축제를 지원하고 권역별 생태관광 거점과 도내 산업관광 자원을 활용하여 시군 연계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시키겠습니다.\n마지막으로 공정하고 안전하며 차별 없는 경기관광 환경을 조성하고자 8개 시군 13개 관광지의 무장애 공간환경을 개선하고 경기둘레길 활성화 용역을 추진하며 캠핑문화 인기에 발맞춰 공정캠핑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n지금까지 보고드린 올해 업무보고 추진계획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배부해 드린 보고서 31쪽부터 147쪽까지 2022년 하반기 주요사업별 설명자료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이상으로 2022년도 하반기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주요업무계획 보고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문화체육관광국)\n○ 위원장 이영봉 김현수 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각 공공기관장 간부님들은 해당 기관 업무보고에 다시 뵙기로 하고 지금은 퇴장하셔도 좋습니다.\n(관계공무원 입장 및 퇴장)\n다 들어오셨나요? 자리가 너무 협소한 관계로 집행부가 다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빨리 자리를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강길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님 나오셔서 2022년도 업무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 강길순입니다. 민선8기 새로운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시대를 맞아 이영봉 위원장님과 임광현, 황대호 부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 앞에서 업무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합니다. 제시해 주시는 고견은 향후 업무추진 시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n배부된 유인물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n1쪽 일반현황은 유인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n3쪽 22년 상반기 주요성과입니다. 남한산성 문화재 보수ㆍ정비입니다. 봉암성 및 암문 보수공사, 여장 보수공사 및 설계, 북문 등을 각 보수ㆍ정비하였습니다. 성곽길 정비 및 성곽주변 식생 정비를 포함한 남한산성 문화재 주변을 보수ㆍ정비하였습니다. 또한 남한산성 문화재의 소방방재시설 유지관리를 위해 작동기능 점검 및 수어장대 화재대응 합동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n4쪽 역사문화관 건립사업입니다. 기본ㆍ실시설계 및 토지소유권 이전을 완료하였고 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세계유산 활용 및 활성화사업입니다. 행궁교육체험 등 6개 사업을 계획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n5쪽 쾌적하고 안전한 자연친화적 도립공원입니다. 공원 내 불법노점상을 완전히 근절하였으며 불법주정차 등의 질서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1건, 계도 654건을 하였습니다. 도립공원 이용객 편의를 위한 탐방로 인근 사유지를 매입하여 공유재산관리계획에 반영하였습니다. 또한 야간조명 1단계 사업을 21년에 완료하였고 성벽, 수어장대 등에 등기구를 설치하는 2단계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한 무료 셔틀버스를 주말ㆍ휴일에 운행하여 21년에 9,637명이 이용하였습니다.\n22년 하반기 주요사업 추진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 8쪽입니다. 세계유산 남한산성 보존ㆍ관리입니다. 남한산성 내 문화재는 노후화, 화재위험으로 문화재 가치 훼손 및 이용객 불편 우려가 있습니다. 연차별 문화재 보수ㆍ정비, 상시적 문화재 유지관리에 중점을 두어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금년도 남한산성 문화재 보수ㆍ정비 계획은 봉암성 성곽 및 암문 보수공사, 남한산성 북문 해체ㆍ보수공사, 영춘정-수어장대 간 여장을 보수ㆍ정비하겠습니다.\n9쪽입니다. 남한산성 문화재 상시 유지ㆍ관리입니다. 21년에 보물로 지정된 수어장대와 연무관을 비롯하여 주요 문화재에 대한 소방, 방재시설 점검을 강화하겠습니다. 또한 성곽주변 식생과 성곽길을 정비하여 문화재 보존 및 안전사고 예방에 센터의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n10쪽입니다. 세계유산 활용 및 활성화입니다. 세계유산 가치 공유를 위한 역사문화 공간이 부족하여 남한산성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역사ㆍ문화 공간이 필요합니다. 역사문화관 건립, 세계유산 활용 및 홍보사업을 중점 추진하겠습니다. 남한산성 역사문화관은 23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전시제작물 설치, 골조공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또한 전시관 운영에 필요한 유물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계획입니다.\n11쪽입니다. 세계유산 활용 및 홍보입니다. 행궁교육체험, 이야기 속으로, 군사경관ㆍ과거시험 재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며 사진, 리플렛, 동영상 등 남한산성만의 볼거리, 즐길거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하겠습니다.\n12쪽입니다. 쾌적하고 안전한 남한산성 도립공원 관리입니다. 불법행위, 탐방로 및 시설물 노후화, 교통 접근성 부족 등 이용객 불편이 많은 실정입니다. 불법행위 원천차단, 탐방로 및 시설물 정비, 공공용지 매입, 야간조명 설치,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중점 추진하겠습니다. 안전하고 편리한 도립공원 관리를 위해 주차요원 4명을 투입하여 불법행위를 연중 상시 단속하겠습니다.\n13쪽입니다. 주요 탐방로 1.5㎞ 구간 정비, 남문 탐방로 입구 화장실 신축 등 공원내 환경을 정비하여 탐방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도립공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쾌적한 도립공원의 특화된 볼거리 조성을 위해 야간조명 2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무료 셔틀버스 운행을 통해 남한산성 이용 편의성을 높이겠습니다.\n이상으로 22년 주요업무보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n○ 위원장 이영봉 강길순 소장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 답변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하여 일문일답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통상적으로 위원님들 본질의는 10분 그리고 보충질의는 5분, 추가질의 또 5분 정도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위원회가 저 포함해서 열여섯 분인지라 10분씩만 해도 160분입니다. 상당히 시간 엄수를 지켜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요. 오늘은 실은 또 업무보고 자리거든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본질의 정도로 해서 마무리를 지었으면 하는 말씀을 위원님들한테 드리겠습니다.\n위원님들의 질의에 대해서 김현수 국장님과 강길순 소장님이 앉은 자리에서 답변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변이 어려울 경우에는 소관 과장 또는 팀장이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고 직ㆍ성명을 밝힌 후 답변하시면 되겠습니다.\n그러면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잘 안 보여서, 김성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김성수 위원입니다. 우리 김현수 국장님 업무보고 잘 받았고요. 잘 들었고요. 몇 가지만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질의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업무보고 22페이지에 보면은 도의회 구청사 활용 방안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요. 이게 결정이 난 겁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 최종 결정은 안 나 있는 상태입니다. 기존에 저희가 설계용역까지도 추진을 하고 있었던 와중에 지사님이 부임을 하시면서 전체 문화 스타트업이라든가 창업기반의 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어느 정도 협의가 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다른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나요, 이 부분에 대해서? 혹시 뭐 인수위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이게 거론됐었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인수위원회에서도 어느 정도 도민관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지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별도의 지시사항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인수위에 참여를 안 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담당 과장님으로부터 답변을 하도록 해도 되겠습니까?\n○ 김성수(안양1) 위원 네, 그렇게 해 주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예술정책과장 김성완 예술정책과장 김성완입니다. 경기도민예술관 관련해서는 인수위에 보고를 드렸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인수위에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사회적경제과에서 총괄해서 경기도 구청사에 대한 부분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공관에 대한 재조정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결정이 난 다음에 저희 도민관에 대한 세부 실시계획 용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10대 때 아마, 소방재난본부인가요, 우리 경기도가?\n○ 문화체육관광국예술정책과장 김성완 네,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있죠?\n○ 문화체육관광국예술정책과장 김성완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거기에 장소가 협소해서 경기도의회 구청사를 사용하고 싶다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걸로 제가 알고 있었는데.\n○ 문화체육관광국예술정책과장 김성완 네, 그렇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래서 지금 현재 복합문화예술회관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확실한 결정이 났는지에 대해서 궁금하고요. 그다음에 의회 본회의장 있잖아요. 본회의장.\n○ 문화체육관광국예술정책과장 김성완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존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전 의원님들에 대한 생각도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도 한번 고민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n그다음에 도내 시민프로축구단 지원을 하잖아요. 이게 일몰사업이에요, 아니면 계속적으로 매년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거예요? 현재.\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계속 지원하는 사업으로 알고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계속 지원사업이요. 그러면 이 예산의 용도는 어느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거죠? 어떠한 인건비성이라든가 아니면 다른…….\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양해해 주신다면 담당 과장님이 답변하도록…….\n○ 김성수(안양1) 위원 네, 그렇게 해 주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체육과장 김훈 체육과장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네.\n○ 문화체육관광국체육과장 김훈 운영비 같은 경우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희가 전지훈련비라든가 유소년 축구클럽 육성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아, 유소년 육성. 매년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러면은요? 이 부분에 대해서요.\n○ 문화체육관광국체육과장 김훈 네, 매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지금 하고 있고 내년에도 계속 추진 검토 중에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리고 안양 같은 경우는 아마 이게 안양FC가 아니라 FC안양으로 표기를 하는 것 같아요, 명칭을. 그거 좀 참고해 주시고요.\n○ 문화체육관광국체육과장 김훈 네, 알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다음에 우리 남한산성 소장님이신가요?\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 강길순입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지금 남한산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거죠?\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러면 관리는 어디서, 공원관리과에서 하는 거예요, 아니면…….\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저희 공원관리팀에서 하고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공원관리팀에서 하는 거죠.\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서요.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성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우리 위원님들 혹시 자료요청하실 위원님들이 있으시면, 제가 잠깐 빠뜨린 것 같아요. 그래서 요청하실 위원님들 있으면 거수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조미자 위원님.\n○ 조미자 위원 저는 경기둘레길 사업에 대한 자료를 받고 싶거든요. 경기둘레길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전체적인 현황 자료를 제출해 드리면 될까요?\n○ 조미자 위원 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알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자료요청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김철진 위원님.\n○ 김철진 위원 경기관광공사 해당되는 사안이기는 한데요. 선감도 매입 관련된 내용에 대한 총괄적인 진행사항하고 그다음에 향후 계획을 좀 받고 싶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다른 자료요청 계신 위원님들 계십니까? 없으시면 아까 저쪽 끝에서 손들었던 이석균 위원님 질의하시겠습니까?\n○ 이석균 위원 네,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네.\n○ 이석균 위원 안녕하세요? 이석균 위원입니다. 먼저 8쪽에, 이건 행정사무감사가 아니고 업무보고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대답해 주셔도 됩니다.\n8쪽에 세출에서 도 대비 국 예산 점유율이 1.82%가 맞나요? 자료 보고 깜짝 놀랐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본예산의 경우 그렇습니다.\n○ 이석균 위원 2021년도에 1.92%예요. 맞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약간 떨어졌습니다. 전년도에 비해서.\n○ 이석균 위원 2021년 대비 2022년 올해 예산이 5.5% 떨어졌는데 도 대비 국의 예산 점유율도 낮은 데다가 작년보다 또 떨어지고. 제가 그냥 주문만 드릴게요.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 없어서 이렇게 낮은 건지 타 시군 대비해서 혹시 자료 가지고 계셔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자료는 저희가 제출해 드리겠고요. 조금만 설명을 드리면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의 예산은 사실 전국에서 최하위입니다, 비율로 따지면요. 그런데 금액 기준으로 따지면 서울 다음으로 저희 경기도가 금액은 굉장히 많습니다.\n○ 이석균 위원 그만큼 도민들도 많잖아요. 그렇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런데 이제 시도 간 이것을 똑같이 비율 갖고만 따질 수가 없는 게 정부 정책방향이라든가 아니면 인구수 비율 이런 것들이 감안되면 사실은 경기도가 아주 적다고는 볼 수 없는데 위원님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저희가 지속적으로 문화체육관광 예산 확보를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이석균 위원 말씀 감사드리고요. 올해 예산 추경까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2023년도는 좀 더 풍부하게 또 예술인들, 체육인들 좀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예산을 얼마나 더 확보하는지 본 위원은 계속 모니터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장님, 신경 좀 써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부언을 좀 드리자면 사실은 작년에 추경예산이나 이런 것들이 코로나 대응 관련된 예산이 굉장히 증대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비율은 떨어졌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런데 금액 자체는 증가한 것으로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 이석균 위원 네, 잘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7쪽에 우리 출자ㆍ출연기관 보조단체 우리 공공기관으로 얘기하시는 분들 9개 공공기관이 있는데 그중에 아직 빈자리가 좀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뭡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위원님들께서 잘 아시겠지만 지금 정권교체기에 사실, 그러니까 전임 정권에서 후임 정권을…….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섣불리 채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고 전임 지사님께서 좀 일찍 출마하시는 바람에 사실은 그 공백기가 좀 더 길어졌다는 점 저희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을 하는데 그런 측면으로 좀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고 지금 채용 절차는 전부 다 새로운 지사님이 부임하시면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n○ 이석균 위원 제가 당을 떠나서 우리 지사님께서 체계적으로 준비하시는 일들이 추진될 수 있도록 또 우리 공공기관에서 준비가 되어서 보조에 맞춰 갈 수 있도록 또 공공기관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수장이 없이 가는 일이 최소한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저희 집행부 차원에서도 적극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n○ 이석균 위원 네,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석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황대호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황대호 위원 수원의 황대호 위원입니다. 국장님!\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황대호 위원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안의 취지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아직 거기에 대해서 숙지를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체육회에 관한 일부개정안의 취지는 체육회를 민선 회장이나 법정법인화함으로써 자생력 있는 단체로 우뚝 서게 하고 도민의 스포츠 복지를 담당하게 하는 어떤 선진체육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일부개정안의 취지입니다. 이해 못 하고 계시다니 유감스럽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니까 조항을 제가 이해 못 했는데 그 제도가 바뀐 내용들은 대략적으론 알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취지는 이해하고 계시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황대호 위원 그리고 아까 우리 존경하는 이석균 위원님 발언 답변 중에 채용에 대해서 얘기했더니 어떤 정권교체의 시기를 언급하시고 그다음에 지금 어찌 됐든 서울특별시와 비교해서 예산에 대해서 예리하게 질의를 하는데 그것이 어떤 수요에 대해서 또 얘기를 하시고 또 “예산이 왜 줄었냐?” 했더니 코로나 시기에 어쩔 수 없는 불가피성을 얘기하시지만 집행부 공무원으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 같습니다.\n그러니까 공직에서 어떤 지사님의 공백 그다음 코로나에 매한가지 힘든 건 문화체육관광인들 마찬가지입니다. 사지로 내몰리고 있어요. 근데 어쩔 수 없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발언 같으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발언에 대한 오해가 있으셨다면 양해를 부탁드리고 제가, 그러니까 예산이 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설명을 드리는 차원에서 그런 발언이, 답변이 나왔음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왜냐하면, 오해는 아닌 것 같고요. 이게 전반적으로 문화체육관광국의 수장으로서 지금의 절박함을 더 통감하시라 말씀드리는 겁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적극 공감합니다.\n○ 황대호 위원 지금 업무보고 보면 경기도체육회 건을 질의를 안 드릴 수 없습니다. 한 3년간 계속 이어졌죠. 지금 정상화하겠다고, 계속 질의를 했는데 지금 어찌 됐든 많은 업무와 사업들이 도로 이관돼 있고 도시공사로 이관이 돼 있어요. 이게 국민체육진흥법 33조2에 위반된다고 여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질의회신 혹시 견지하고 계신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 제가 죄송하지만 파악을 못 하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자꾸 파악이 안 됐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좀 유감스럽습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여기 문체부, 문화체육관광부에 질의 받은 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는 건 작년 도정질의에도 있고 늘 언급됐던 내용들이 많아요, 국장님. 그래서 관련 사업, 지금 도로 이관돼 있고 도시공사로 체육회 시설이 이관돼 있는 것들에 대한 조치를 신속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체육진흥법 취지에 맞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 내부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필요한 경우 부위원장님께도 자문을 구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왜냐하면 직장운동경기부라든가 이런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업들이 도시공사에서 운영이 된다라는 것이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치적 유무를 떠나 당연히 체육회가 정상화돼야 되고 혁신해야 되는 것은 맞으나 어떤 한 공동체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산하기관이라도 행감에 지적됐다 그래서 예산 다 깎아버리고 상위법에 명시한 사업을 없애버리고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단하지 않아요.\n그리고 제가 또 말씀드리는 게 언론홍보비는 현재 얼마입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황대호 위원 경기도체육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 1억 원으로 알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원래는 얼마였습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원래 4억 원이었습니다.\n○ 황대호 위원 왜 줄여야 됩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을 정상화하는 방안은 앞으로 저희가 논의과정 중에서 검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그런 것들, 그다음 업무추진비서부터 여러 가지 지금 내용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이제는 좀 속도를 내실 때가 됐다.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과 공감대를 형성하셔서 앞으로 체육화 정상화에, 지금 시설이라든가 사업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은 정상화가 빨리 됐으면 좋겠고요.\n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체육회는 경기도 체육인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설립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그게 지금 도시공사로 일부분 위탁이 돼서 관리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꾸 경기도체육회와 경기도 체육인을 분리해서 볼 수 있다는 시각을 버리셔야 될 것 같다. 잘못을 하고 행정을 바로잡고 견제ㆍ감시하는 건 당연히 하되 자꾸 그것이 어떤 정치적 정쟁에 휘말릴 수 있게끔 그렇게 일방적인 행정은 좀 멈춰 주시라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부위원장님 말씀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리고 장애인체육회 예산은 얼마입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 전체 저희가 공급하는 게……. (관계공무원을 향하여) 한 40억 되나요?\n56억입니다.\n○ 황대호 위원 경기도체육회 예산은 얼마입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311억입니다.\n○ 황대호 위원 왜 그렇게 차이가 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습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기본적으로 소속 회원 수에 차이가 좀 있는 것 같고요. 부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취지는 알겠고 적극 공감합니다. 저희가…….\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제가 자꾸 유감스럽다고 말씀을 드리는 건 어떤 스포츠, 문화체육관광의 가치를 자꾸 수에다가 비교하지 마세요. 장애인분들한테 스포츠는 재활이에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적극 공감합니다.\n○ 황대호 위원 복지이고 삶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적극 공감합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그런 류의 자꾸 생각을 가지지 마시라는 거예요. 당사자를 이해하십시오, 앞으로 모든 정책이나 발언을 하실 때. 그래서 이 체육회도 지금 예산이 너무 적어요. 그들한테는 삶이고 복지고 재활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장소가 체육회에 있죠? 혹시 가보셨어요, 경기도체육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은 못 가 봤습니다.\n○ 황대호 위원 아직 못 가 보셨다고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곧 방문할 예정입니다.\n○ 황대호 위원 장애인분들이 사용하기에 굉장히 힘든 환경 조건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확인해 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방향을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활성화돼야 된다라는 거 다시 말씀드리고요.\n그다음에 지금 모든 류의 정책의 기준을 우리 65개 종목단체 그다음 시군 회장님 그다음 모든 체육인들 당사자들과 소통을 좀 많이 해 주세요. 코로나로 좀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모든 정책은 현장 당사자로부터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소통의 창구가 되지 않았다라는 말씀드리고요.\n마지막으로 질의 하나 드리는 게 스포츠인권센터 아십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지난 7월 25일 날 개소했습니다.\n○ 황대호 위원 스포츠인권센터가 민간위탁이 돼야 되는 근거가 있습니까? 추진 방식이 민간위탁인데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이제 민간위탁은 법적으로는 가능한데요. 사실은 저희 공무원들의 업무부담이라든가 전문…….\n○ 황대호 위원 법적으로 가능한 것 말고 왜 민간위탁을 해야 되는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저희 공무원들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전문성을 가진 기관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추진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모든 정책의 방향을 당연히 스포츠 인권 침해, 그들이 갖고 있는 카르텔은 당연히 없어져야 될 문화죠. 그런데 지금 추진 목적에 보면 체육계 인권 침해 예방 및 인권 증진이에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맞습니다.\n○ 황대호 위원 이들의 침해도 보호해야 되지만 이들의 인권과 명예도 보호해야 될 권리가 있는 겁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맞습니다.\n○ 황대호 위원 편향적으로 체육인이라는 집단을 비리 집단, 인권 침해 집단.\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런데 내용이 그렇단 말이에요. 지금 모든 정책의 추진 목적과 방향이 그렇게 향하고 있어요, 화살이.\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렇지는 않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고 그런 쪽으로 맞추시면 좋겠다. 그리고 민간위탁이 과연 어떻게 잘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주셨으면 좋겠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저희가 지도적으로 점검을 할 예정입니다. 제가 그 당시에 개소식 때 참석을 해 갖고 그 위탁기관들을 만났는데 저도 같은 내용의 당부 말씀을 드렸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래서 지금 사실은 국장님께서 모든 업무 소관을 다 촘촘히 아시기는 힘드나 제가 오늘 외람되게 국장님께 말씀을 드리는 건 모든 정책기조에서 현장 당사자들과 문화체육의 관광의 가치를, 예산이 1.8%가 말이 됩니까? 서울특별시 얘기하셨는데 거기 인구가 우리랑 400만 정도가 차이 나요. 암만 특별법으로 보장받는 예산과 조직권에 차이가 있더라도 이건 정말 부끄러운 예산입니다, 모든 게. 사업들이고. 지금 여기 업무보고에서 한 90%는 다 국가 매칭사업입니다. 자체적으로 하시는 사업 몇 꼭지 알고 계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구체적인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래서 그런 역량에 대한 강화를 좀 해 주시고, 왜 제가 말씀드리냐 하면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다시 코로나는 확산되고 여전히 민생이 어려워서 관련 사업자들이 도산을 해요. 조금 더 긴장감 갖고 절박함 견지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런 데 대해서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부위원장님 말씀대로 부임하면서 업무 파악되는 대로 관련 내용들을 적극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황대호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국장님, 우리 두 분 위원님들이 자료요청하셨는데 빨리 자료를 제출하셔야 질의하실 것 같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그리고 답변하실 때 우리 과장님들은 직과 성함을 반드시 말씀해 주시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유종상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n○ 유종상 위원 광명 출신 유종상 도의원입니다. 보니까 8월 24일에 저희 경기도민 체육대회를 개최하려고 지금 각 시마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금 코로나가 더 심해지고 또 특히나 우리 경기도 이쪽에 비 피해 때문에 상당히 고충을 겪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끝까지 하실 계획이신지, 아니면 특별한 방안이 있으신지 한번 듣고 싶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 확정 지어지지는 않았고요. 저희도 이제 그런 상황들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련 부서와도 저희가 계속 자문을 구하고 시와도 계속 소통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인 코로나 상황을 좀 말씀드리면 사실은 7월 말에 있었던 더블링 현상이 3주 연속 지속되다가 그게 좀 완화되는 추세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제 각종 치명률이라든가 중환자율 같은 경우가 약간 늘기는 했지만 현재 저희 의료시스템상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고 해당 주최 시인 용인시의 관련 체육시설에 이번 비 피해가 없는지 저희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 갖고 가급적 금주나 다음 주 초에 결정해서 추진 여부를, 방향을 설정하려고 그럽니다. 그때 위원님들께도 의견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n○ 유종상 위원 아니, 용인시야 비 피해가 덜해서 경기장들이 다 잘 진행되지만 타 시에 지금 아주 심각하게 비 피해를 본 지역들이 많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이 심각할 때 도민체전을 나간다고 나갔을 때 상당히 비난을 받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질의를 한 것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러니까 그런 측면도 같이 고려해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질의 끝나셨습니까, 위원님?\n○ 유종상 위원 네.\n○ 위원장 이영봉 유종상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윤충식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n○ 윤충식 위원 국장님 보고사항에 딱 매치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간단하게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포천에서 온 윤충식 위원입니다.\n여기 보면 균형적인 스포츠시설 확충 그다음에 스포츠 기반 조성, 새로운 문화체육 환경 조성 이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각 시군에 보면 각종 체육문화센터라는 게 각 읍면동이라든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금 제가 파악하고 있기로는 주말에는 사용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시군의 재량에 맡긴 건지, 아니면 경기도에 규칙이나 조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 아시다시피 지금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노령연금을 줄 때도 운동을 얼마큼 해야지 주는 그런 거가 있지 않습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윤충식 위원 그리고 이렇게 지금 스포츠 시설을 확충한다고 하는데 그런 시설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도를 높이는 게 정책적으로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데 경기도에서 조례나 규칙 등을 좀 제정해서 예산을 세워줘서 운영될 수 있도록, 대부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예산이 부족해서 주말에는 이용을 못 한다, 운영을 못 한다라는 얘기를, 제가 답변을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좀 정책적으로 이런 예산을 수반해서 추진할 수 있는지 가능성, 타당성이 어떤가 한번 답변 듣고 싶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이제 어떤 시스템에 의해서 시군의 체육문화센터가 운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운영시간이나 이런 것들은 각 시군의 조례로 제정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가 운영하는 시설의 경우에는 도 조례로 되어 있고 시군이 운영하는 시설은 시군의 조례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시군에 근무할 적에는 주민들의 그런 불편사항을 고려해 갖고 시군에서 그 쉬는 시간을 좀 조정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주말에 운영을 하고 월요일에 쉰다든지, 아니면 뭐 주말에, 주말에도 오후에는 운영하고 오전에는 운영을 안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휴일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근로기준, 그러니까 노동법 때문에 주 50시간 근무제나 이런 것들이 영향이 좀 있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대체인력을 활용한다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저희가 추가적으로 한번 검토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n○ 윤충식 위원 이게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린 건 그런 건 기본적으로 저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지하고 있는데 좀 더 예산 투입을 해서 인원을 보충한다든지 해서, 지금 새로운 체육관을 짓게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있는 자산을 활용을 제대로 못 한다. 한 시군마다 몇십 개씩 혹은 몇 개씩 있을 텐데 적어도 수억에서 수십억 들인 체육관들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운영비가 부족해서, 혹은 그런 인건비 문제 때문에 사용을 못 하는 기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좀 납득이 안 가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할 수 있게끔 도에서 좀 기준을 제시해 주고 내려줘서 시에서 시행할 수 있게끔 거기에 예산을 또 내려주고 이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리는 것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위원님이 말씀하시는 취지는 이해를 했습니다. 어쨌든 우선 실태조사를 한 다음에 시군의 요구사항이라든가 아니면 주민들의 의견을 좀 수렴해 갖고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n○ 윤충식 위원 네, 알겠습니다. 좀 파악해 보신 다음에 나중에 한번 그 현황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n○ 윤충식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윤충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임광현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임광현 위원 약간의 압박을 받으시는 것 같아서 간단한 질문으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지방자치법 114조와 문화재보호법 제19조, 자연공원법 제3조에 의거한 우리 자랑스러운 남한산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저는 32쪽과 33쪽에 있는 세계유산 부분에 대한 체험 프로그램 진행에 대해서 좀 여쭙고자 합니다. 팬데믹 상황이라 사실은 체험 프로그램이 많이, 단체 배제되고 통제되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힐링 체험 부분이 통제된 거는 국가적인 제약사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한 3억 5,000 돈 되는 세계유산 남한산성 활용 및 홍보, 4번 세계유산 남한산성 활용. 홍보 부분에 중첩의 이유가 좀 보이는데 국비, 도비가 돼 있는 것이 있고 도비가 돼 있는데 아울러 추진현황에 보면 22년도에 성곽투어와 야외극장 영화상영 해서 외부 대행업체 부분으로 하셨어요. 그렇죠? 맞죠?\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네.\n○ 임광현 위원 그런데 지금 7월 현재 대행업체랑 협상이라고 돼 있습니다. 제가 조금 이해가 안 가는 게 사업계획 수립과 발주가 3개월이나 걸립니까? 조금, 전문요원이나 그냥 담당 주무관이 인사이동으로 해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이거는 계획 자체가 너무 방대하지 않은가. 지금 7월이고 이제 8월인데요. 그렇다면 대행업체 협상이라 한다면 지금 8월 현재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성곽투어와 야외극장, 야행 프로그램 추진, 이 체험 프로그램이 시민들이 이 아름다운 남한산성을 체험하고 느끼고 같이 이런 팬데믹 시절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이런 부분에서 함께할 수 있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세요?\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지금 위원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합니다. 이게 지금…….\n○ 임광현 위원 그렇죠?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 담당하시는 분들이 팬데믹이라 그래서 우리가 진짜 간과하면 안 될 것이 3년간에 걸친 팬데믹에 우리 담당자분들까지도 약간 크로스, 크로스되는 느낌이 존재합니다. 이거는 아마 일하시면서도 느끼실 거예요. 자, 그들을 드라이브하는, 억지로 드라이브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고하고 대행업체 협상이 오늘 업무보고에, 이것이 어떻게 7월 현재까지 대행업체 협상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A플랜이 있으면 B플랜이 있고 B플랜이 있으면 C플랜을 가져줘야 되는 게 앞서가는 선진 경기 어떤 행정의, 대한민국을 선도하고 있는 경기행정의 그런 본보기 아니겠습니까? 서울특별시보다도 더 강력한 드라이브를 갖고 있고 자존감과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경기도에서 이런 유관 협력기관에서 7월에 협상은 누차 말씀드리지만 빨리 수정하셔야 되고 드라이브를 거는 것도 너무 늦었다.\n아울러 지금 국비, 도비 50%도 있고 4번 항에 도비 100%도 있고. 이상하게 이거는 사업계획을 따먹기 식, 따먹기 식. 도비 쪽으로도 하고 군비가 있으니까 이쪽으로 하고. 아니, 저기 도비하고 국비하고 이렇게 하고. 사업을 늘려서 무언가를 추진하는 것은 좋습니다. 페이지를, 업무보고가 이렇게 늘어나는 것도 좋아요.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활용 방안, 홍보 활용 방안, 체험 프로그램의 2중 중첩, 3중 중첩. 기본적인 전문가가 아니어도 봐도 왜 이렇게 중첩이 되는가. 그렇다면 여기에 담당 주무관이 1명씩 배정돼서 고용창출의 효과를 노리는가, 아니면 쓸데없는 예산을 억지로, 필요도 없는 걸 억지로 따와서 프로그램을 늘려서 업무보고 페이지가 증가되는가. 이런 부분에 좀 더 세심한 예산편성과 사업계획의 편성이 저는 위원으로서 좀 부탁을 드리고 향후 하반기에도 수정하실 부분이 있으면 수정이 되고 추진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의지는 있으십니까, 이 자리를 통해서?\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위원님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여기 지난주에 발령을 받아 와서 내용을 검토해 보면서 위원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에 대한 것도 저도 좀 공감을 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담당 부서하고 협의도 한번 해 봤습니다. 확인을 해 보니까 국비로 받는 3번의 세계유산 남한산성 활용 및 홍보 같은 경우는 국가에서 공모사업으로 하다 보니까 이쪽에서 먼저 가게 된 거고 도비 같은 경우는 과거시험 재현이나 숲 생태 탐방이나 이런 거는 초ㆍ중생들을 위주로 해서 교육청과 연계하는 사업이라 약간 차별화는 있더라고요. 그리고 뒤에 있는 홍보 같은 경우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그런 내용이고요. 위원님께서 얘기하시는 중복되는 사업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좀 더 면밀히 검토해서 중복되는 부분은 약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n그리고 또 아까 말씀하신 일정이 자꾸 뒤로 미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행정절차가 다소 앞부분에 입찰공고서부터 계약심사, 규격 사전공고, 일상감사 의뢰 등 절차가 많다 보니까 좀 미뤄지는 게 있는데 그 부분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확인을 해서 좀 더 도민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이런 걸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n○ 임광현 위원 본 위원이 듣기에는 지금 신속한 해명성으로밖에 안 들리는 이유를 한 가지 짚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20년서부터 행궁교육체험인가 21년 해 온 거에 대한 여러 가지 해마다 반복적으로 해오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수십 회, 수십 회 예산집행하는 부분이나 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이상이 없죠. 바로바로 하죠.\n자, 성곽투어와 야외극장 야행 프로그램이라는 콘텐츠가 뭐가, 글쎄요. 이게 그렇게까지 진도 있고 다단계별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전문적인 일정이 필요하고 이것을 다시 해야 된다라는 거는 지금 답변에 약간 좀 그냥 넘어가시는 식의 답변인 것 같아서 유감인데요. 아무튼 업무적으로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그러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면서 저는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거든요.\n아무튼 지금 3번, 4번 항에 대한 사업 공모를 통해서 이렇게 됐고 저렇게 됐고.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경기관광공사나 경기문화재단 다른 유관단체 다 봐도요, 이런 부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있는 거 압니다. 이걸 꼭 집어서 오늘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의 체험 프로그램을 제가 갖고 하는 게 아니라 많이 있는데요. 세계유산 아니겠습니까. 시민들이 세계를, 우리나라가 경기도에서, 세계 속의 시민들이, 이 지구의 시민들이 남한산성에 왔을 때 그것이 언어의 장벽 없이 프로그램이 좀 더 발전됐을 때 역시 우리 경기도에 남한산성 이 센터는 더불어 세계화될 수 있고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는 취지에서 여러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무튼 업무에 노고가 많으시고요.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소장 강길순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임광현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철진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철진 위원 안산 출신의 김철진입니다.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서 잘 들었는데요. 처음이기 때문에 다소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있어서 몇 가지 한번 확인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n예술정책과 관할인데요. 경기도 예술인 창작지원금 시범사업 확대 내용이 있는데 31개 시군에서 26개는 예비지급하고 5개만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이해가 되는데 현재 5개 시범사업 했던 지역하고 또 실제 대상자 예술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작년 5개 시군에 대해서는 2만 5,000명……. 3,200명입니다.\n○ 김철진 위원 시군 5개는 어디 어디예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성남, 의왕, 여주, 동두천, 연천입니다.\n○ 김철진 위원 시범사업은 일종의 공모형태로 했습니까, 아니면 지정형태로 했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니요. 공모형태로 해서 동의한 시군에 대해서만 저희가 우선 시범실시를 하는 겁니다.\n○ 김철진 위원 그렇게 하고 이제 금년 하반기에는 전체 시군에 확대해서 2만 1,800명 정도가 예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저희가 그렇게 추진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문화예술 그러니까 복지재단에 등록돼 있는 예술인 수가 한 2만 3,000명~4,000명 정도 되거든요. 그분들을 대상으로 전체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지금 모색하고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현재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하반기 지금 들어갔는데 시기적으로 이게 금년에 지급이 가능할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일시 지급이기 때문에 만약 2회 추경이나 이런 데 반영이 된다면 지급은 가능할 것으로 저희가 판단하고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하여튼 뭐 코로나 이후에 문화예술인들이 상당히 어려움이 많다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꼭 전체 시군에 확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리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n○ 김철진 위원 그다음에 체육과 관할인데요. 우리 황대호 위원님이 세부적인 얘기를 했기 때문에 굳이 여러 말씀은 안 드리겠는데 결국은 이제 민간 회장이 되고 나서 만 4년이 다 돼 가고 있잖아요. 내년 2월이면 임기가 다 끝나는데 아직도 법인화 문제는 됐지만 전체적으로 시하고 또 체육회 간에 정책추진 방향이나 기타 사안들이 숙제가 좀 많은 것 같아서 이 부분은 다음 회장, 내년도에 출발하는 회장 전에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에 지냈던 것들에 비해서 좀 속도를 내서 정확하게 방향 점검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좀 잘 응대했으면 좋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지금 현 상황에 대해서는 저도 굉장히, 위원님께서 우려해 주신 데에 대해서 감사하고 저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조속하게 빨리 위원님들을 포함해서 관련 기관 의견을 들어서 방향을 정하…….\n○ 김철진 위원 어쩌면 지난 3년 6개월보다는 앞으로 남아 있는 6개월이 체육회 방향을 점검하는 데는 제일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확인 좀 부탁드리고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다음에 콘텐츠정책과에 책 생태 및 지역서점 활성화 추진 사업 해서 일종의 동네 서점 또는 동네 책방 이러한 부분들을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지역의 현장이나 이런 곳을 돌아보면 실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새로 조성된 곳들은 일종의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 단지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데 어쩌면 구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재건축 지역에서는 필요한 사업인데 이 부분이 단순히 콘텐츠정책과나 문화적 이쪽에서만이 아니라 혹시 도시재생 쪽하고도 연관을 좀 하고 있는지 묻고 싶은데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이 안 됐는데 양해해 주신다 그러면 담당 과장님께서 답변을 드리도록 해도 될까요?\n○ 김철진 위원 네, 과장님.\n○ 문화체육관광국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 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입니다. 위원님이 말씀하신 도시재생하고의 사실 연관성은 직접적으로 없습니다. 저희가 지역 서점에, 기존에 창업하신 지역 서점 위주로 지역 서점이 문화활동을 가능하게끔 하면 좋겠다 하는 취지에서 기존에 창업되신 지역 서점 위주로다가 활성화하도록 그렇게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런데 이 부분에 저는 조금 다른 각도인데 지역 서점이라는 것 자체도 이제 온라인화되면서 역할이 좀 협소해지고 있고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지원하는 건 맞는데 또 다르게 말해서는 동네 책방이라는 개념으로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동네 책방, 동네 서점의 역할이 단순히 책의 역할 또는 서점의 역할을 뛰어넘어서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이 있거든요. 어쩌면 세밀하게 본다면 이런 것들이 지역을 위해서, 마을을 위해서, 주민을 위해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보는데 한 번 정도는 검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 네, 공감하고요 저희도 그런 쪽으로다가 서점들이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동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토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하나만 더 질문할게요. 지역영상미디어센터 조성 활성화 지원인데 이게 지금 현재 미디어센터가 4개소, 지역도 나와 있는데요. 얼마나 이게 활성화가 돼 있을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 콘텐츠정책과장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구체적인 운영 실태에 대해서는 담당 과장님께서 양해해 주시면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네, 과장님 답변해 주시죠.\n○ 문화체육관광국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 지금 저희 콘텐츠정책과에서 지역영상미디어센터를 시군별로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4개소 하고 전체적으로 7개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고요. 그런데 각 시군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지역미디어센터에 대한 공감을 갖고, 정책에 대한 공감을 갖고 하는 것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성남시 같은 경우는 지역의 마을미디어하고 같이 연계돼서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고요. 앞으로 시군으로다가 좀 더 확대할 수 있도록 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토록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런 부분하고 좀 맞물려 있기도 한데요. 사단법인 공동체 미디어라는 걸 혹시 들어보셨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콘텐츠정책과장 장우일 죄송합니다. 처음 들어봤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못 들어봤습니다.\n○ 김철진 위원 지역에서는 사단법인 공동체 미디어라고 해서 공동체 라디오 중심으로 하면서 안산 같은 경우에는 단원FM 공동체 미디어라는 것이 출범을 해요. 그런데 이게 저도 내용을 보다 보니 전국적으로도 한 20군데가 됩니다. 경기도만 현재 네 군데가 있거든요. 수원마을공동체에서 하는 라디오가 있고 화성에 화성FM 공동체 라디오 그리고 구리에 사단법인 GO구리FM 그리고 안산에 단원FM 공동체 라디오. 이런 지역 내에 마을공동체하고 맞물려서 미디어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지금 현재 영상미디어센터라는 약간 제한적인 부분이 있지만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라디오 미디어센터도 영상을 안 할 수가 없는 구조거든요, 현재 흐름상. 이런 부분하고 매칭을 시켜보는, 좀 더 파악을 해서 좀 더 확대하고 연결하고 결합하는 역할들 부탁드려보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좋은 제안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원님께서 제안주신 해당 기관들의 기능이나 사업 영역을 살펴보고 저희들이랑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서 그런 부분이 있으면 저희가 사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 사단법인 공동체 미디어 관련된 부분들 제가 일부 자료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철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경혜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이경혜 위원 업무보고를 위해서 애써 주시고 계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양 이경혜 위원입니다.\n저는 북한산과 북한산성에 관해서 조금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가 먼저 자료를 요청했었습니다. 북한산에 관련된 사업과 남한산성에 관련된 사업 그리고 수원에 있는 화성에 대한 관련 자료까지 세 가지 자료를 부탁해서 현재 두 가지는 받았고 한 가지 화성에 대한 거 이번 주 금요일까지 자료를 받기로 했습니다.\n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 건 남한산성과 화성에 대해서는 많은 콘텐츠가 개발돼 있고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도 여섯 가지, 남한산성 같은 경우는 여섯, 일곱 가지가 되고 센터까지 있습니다. 물론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라는 것 때문에 더 그런 것들이 준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지금까지 북한산성과 북한산에 관련된, 거기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이기는 하지만 그곳이, 북한산이 고양시에 훨씬 더 그리고 경기도에 더 많은 범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립공원이기는 하지만 고양시와 경기도에 맞물려 있어서 저희가 관광자원으로 개발이 충분히 필요하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n여기에 지금 현재 북한산과 북한산성에 하고 있는 사업은 단 한 가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사업 한 가지만 진행이 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보면 2022년, 참고 자료 143쪽에 관광지 공간환경 개선 주요사업 계획들을 보면 곳곳에 많은 곳을 하고 계시고 경기도에 더 많은 관광자원들을 개발하고 계시겠지만 지금 현재 유네스코 등재 사업 하나만을 하고 있는 북한산이 어떤 이유에서 다른 어떤 콘텐츠 개발이라든지 환경 개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그것에 대해서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된 이후에 각종 국가나, 그러니까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되는 사업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북한산성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지난번에 저희가 예비지정 신청을 했었지만 그때 탈락이 되면서 문화재청에서 제시한 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와 같이 이제, 서울시에서도 지금 한양 도성과 탕춘대성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과 같이 동시에 등재를 하면 오히려 그게 더 효과적이라는 제안을 해 주셔서 저희가 서울시와 그 문제랑 관련해서 지금 지속적으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 한번 서울시와 MOU를 체결하면서 다시 한번 등재 신청을 하려고 하고 있고 이번에는 예비지정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n어쨌든 위원님이 말씀해 주신 기존에 북한산성과 관련된 지원 문제랑 관련해서는 시와 협의를 해서 추진할 만한 사업이 있는지 검토를 해 가면서 차츰 확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n○ 이경혜 위원 등재가 되기 전이라도 할 수 있는 개선 사업들이 지금 많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요. 하천 정비부터 그 지역에 거점을 만드는 것들이 워낙 열악해서 다녀가시는 분들이 세계적으로 많으신데 관광자원이 아직 관리되지 못한 부분에 아쉬움이 있어서 앞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세워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적극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n○ 이경혜 위원 고맙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경혜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우리 조미자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조미자 위원 남양주 진접의 조미자입니다. 몇 가지 좀 국장님께 여쭙고 싶은데 혹시 경기도 문화예술진흥 중단기 종합계획이 있는 거 아시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조례에서 주기적으로 세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n○ 조미자 위원 현장에서 이런 부분을 볼 때 계획에 의하면 저희는 지금 문화의 천국 같은 경기도에서 살고 있어야 되는데 실제로 마을이나 주민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계획은 계획서에만 머무르고 있는 그런 맥락으로 해석이 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고요. 혹시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된 것도 알고 계신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알고 있습니다.\n○ 조미자 위원 그 맥락이 어떤 맥락이고 어떤 핵심을 갖기 위해서 지역문화진흥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최근의 추세로는 제가 알기로는 기존의 문화시설이나 중앙정부 중심의 상향식 정책 설정에서 민간이나 아니면 기초자치단체로부터 정책이 형성돼서 정부가 지원해 주자는 차원에서 형성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n○ 조미자 위원 지금 말씀대로 저희가 가장 많이 쓰는 언어로 톱다운에서 바텀업으로 가고 있는 그런 과정이고 문화의 다양성이나 주민의 주체 이런 부분들이 핵심으로 해서 바뀌어지고 있는 과정인데 실제로 저희가 경기도의 문화정책을 전부 다는 못 봤지만 시행하고 있고 정책이나 봤을 때는 아직은 주민들에게 스며드는 문화정책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맥락을 저희는 생활문화라는 그런 언어로서 지금 같이 활동도 하고 주체로 세우고 있는데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한 가지 한 가지를 집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중에, 아까 말씀대로 행정감사가 아니기에. 그리고 이런 계획을 세우고 나서 실제로 매년 계획에 의한 시행이 어느 정도 되고 있나. 계획을 세우실 때는 굉장히 많은 또 예산과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러한 계획이 세워졌는데 실제로 실행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상황이 너무 많이 바뀌다 보니까 물어보면 “일몰이 됐어요.” 또 이런 부분들은 갑자기 뜬금없이 내려오기도 하고 해서 그래도 전문성이 있는 그 과에서, 국에서 이러한 맥락은 짚고 가셔야 되지 않을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n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문화자치 조례가 만들어진 건 알고 계신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알고 있습니다.\n○ 조미자 위원 조례 위원회가 회의를 했었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까지는 제가 파악이 안 됐습니다. 죄송합니다.\n○ 조미자 위원 한 번도 안 했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직까지 한 번도 안 했다고 그럽니다.\n○ 조미자 위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쭌 건데요.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문화자치 조례가 경기도에서 만들어져서 아까 말씀드린 그 맥하고 이어지는 내용이거든요. 문화자치위원회도 만들어 놓고도 한 번도 모이지 않고 어쩌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라는 이야기까지 사실은 들었거든요. 이런 맥락의 정책이나 실행들이 결국은 방향은 잡아놓고 실행이 안 되고 있는 그런 모순된 모습들을 보이고 있어서 현재 진행되고 있고 또 문화의 흐름이 어떤지를 정확히 파악하시면서 함께 가야죠. 주민만 위한 이런 부분을 요구하는 건 아닌데 어떤 균형을 잡는 장애와 비장애 여러 등등의, 성 부분도 그렇고 이런 맥락을 잡는.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위원회 명단을 보면 성비도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서 자치위원회를 만들 때는 그 부분까지 고려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맥락들이 앞으로는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종합계획과 관련해서 각 조례나 법령에 근거해서 저희가 사실 많은 용역들을 수행하면서 세워놓고 그 계획이 제대로 이행됐는지에 대해서 점검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희뿐만 아니라 타 부서도 마찬가지지만 공무원으로서 굉장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미 세워진 계획에 대해서는 저희가 적극적으로 점검을 해 보고 만약 그 계획대로 되지 않았었을 경우는 왜 안 했는지 원인 분석을 하면서 필요할 경우에는 계획을 수정해서라도 그런 계획이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대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조미자 위원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조미자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또 추가질의나 보충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없습니까?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2022년도 업무보고 건 중 문화체육관광국과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관 업무보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n위원님들, 중식을 위해서 잠시 정회하고자 하는데 동의하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지금 12시인가요? 1시 반까지 정회를 하겠습니다.\n(전문위원실 직원, 이영봉 위원장에게 개별설명)\n정정하겠습니다. 2시까지, 예결위 위원님들 회의가 있어서, 또 여기 우리 위원회에 예결위 위원님들이 속해 있는 위원님들이 계세요. 그래서 2시까지 정회를 하겠습니다.\n(11시59분 회의중지)\n(14시00분 계속개의)\n○ 위원장 이영봉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4. 2022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경기도지사 제출)\n- 문화체육관광국\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의사일정 제4항 2022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문화체육관광국 소관을 상정하겠습니다.\n김현수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발언대로 나오셔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입니다. 지금부터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2022년도 제1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해서 사업명세서를 중심으로 제안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사업명세서 307쪽부터 308쪽까지 세입예산입니다.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2022년 제1회 추가경정 세입예산안은 본예산보다 75억 3,702만 원이 증가한 2,287억 6,748만 원을 편성하였으며 주요 증액 사유로는 국비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사업비 확보와 기존 국비사업의 사업비 조정입니다.\n다음은 309쪽부터 318쪽까지 세출예산안입니다. 세출예산 총액은 2022년 본예산보다 90억 474만 원이 증가한 5,540억 6,690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부서별 세출예산안입니다. 주요사업 위주로 설명 올리도록 하겠습니다.\n310쪽부터 311쪽까지 문화종무과 예산안입니다. 문화종무과 세출예산안은 당초보다 19억 1,000만 원이 증액된 총 1,327억 3,341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실감콘텐츠 제작 및 체험존 조성지원 사업 등 총 3개 사업에 19억 1,0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312쪽입니다. 예술정책과 예산입니다. 세출예산안은 당초보다 5,000만 원 증액된 총 690억 3,294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창의예술교육 랩 지원사업에 5,000만 원을 신규 편성한 사항입니다.\n다음은 313쪽부터 314쪽까지 체육과 예산안입니다. 체육과 세출예산안은 당초보다 13억 6,500만 원이 증액된 총 1,762억 102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이 또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국제대회 국내 개최 지원사업 등 2개 사업에 13억 5,5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으며 경기도 장애인 생활체육대회 개최 사업 국비 조정 통지에 따라 1,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315쪽과 316쪽의 문화유산과 예산안입니다. 문화유산과 세출예산안은 당초보다 40억 1,090만 원이 증액된 총 659억 9,014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전통재료 생산기반시설 지원사업에 1억 4,79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으며 국가지정문화재 및 등록문화재 보수정비사업 등 3개 사업 국비 조정 통지에 따라 38억 6,3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317쪽과 18쪽 관광과 예산입니다. 관광과 세출예산안은 당초보다 16억 6,884만 원이 증액된 총 446억 1,435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전통한옥 브랜드화 사업 등 6개 사업에 16억 6,884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이상으로 문화체육관광국 소관 2022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마쳤습니다. 금번 문화체육관광국에서 제출한 2022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시고 의결해 주시면 남은 기간 동안 사업 추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현수 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최동광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검토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최동광 수석전문위원 최동광입니다. 2022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배부해 드린 검토보고서를 중심으로 간략히 보고드리겠습니다.\n보고서 1쪽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예산안 총규모입니다.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규모는 5,541억 원이며 2022년 본예산 5,451억 원보다 90억 원이 증액 편성되었습니다. 경기도 일반회계 예산 31조 원 대비 문화체육관광국 예산 비율은 1.76%입니다.\n2쪽부터 4쪽까지 제1회 추가경정 세입예산안은 17개 사업 75억 3,7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으며 대부분 중앙부처 공모사업 선정과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에 따른 예산 편성입니다. 세부내역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 5쪽부터 세출예산안은 17개 사업 90억 원이 증액되었고 감액 사업은 없습니다. 세출예산안은 의존재원은 국비가 83.7%로 세출 증가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16.3%를 차지하고 있는 도비 14억 6,800만 원은 국도비 매칭 비율에 따른 예산편성입니다.\n8쪽부터 10쪽까지 주요사업 검토의견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고 11쪽의 종합 검토의견입니다. 금번 문화체육관광국 제1회 추가경정 세출예산안은 대부분 중앙부처 공모사업 선정 등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에 따른 성립전예산으로 예산집행은 매칭사업비 중 교부된 국비만 집행되었으며 금번 추경에 도 자체 예산으로 편성된 사업은 없습니다. 지방재정법 제45조에 따르면 성립전예산은 국가로부터 용도가 지정되고 소요 전액이 교부된 경우 추경예산의 성립 전에 사용할 수 있으며 차기 추경에 계상하여야 하는 제도이므로 금번 추경에 성립전예산 편성에 특별한 문제점은 없으나 문체부 공모사업을 통해 선정된 사업은 적기에 예산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확보된 예산의 집행 및 사업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향후에도 국비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2년도 제1회 추경(문화체육관광국))\n○ 위원장 이영봉 최동광 수석전문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질의 답변에 앞서 우리 위원님들 자료요청하실 위원님들 있으면 거수로 말씀해 주십시오. 강웅철 위원님.\n○ 강웅철 위원 강웅철 위원입니다. 우리 여기 5,540억 중에서 이게 거의 국비사업이잖아요. 그러면 이 중에 우리 자체 재정사업이 있을 거 아니에요, 도 재정사업.\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국비사업이 상당히 많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도비사업의 비율이 더 높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럼 도비사업 비율하고요, 그 사업 내역서 좀 갖다 주시고요. 그것 좀 준비해 주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곧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성수 위원님.\n○ 김성수(안양1) 위원 김성수 위원입니다. 공모사업 관련해서 현황하고요. 그다음에 현재까지 예산 집행내역. 하반기에 집행할 예산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좀 자료로 만들어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준비가 되는 대로 자료를 제출해 드리기는 하겠습니다만 동 자료 같은 경우는 워낙에 건수가 많고 파악해야 되는 사항들이 있을 수 있어 갖고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해를 해 주시면 가급적 빨리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임광현 부위원장님.\n○ 임광현 위원 관광과에서, 관광과 9개 사업과 관광과 20개 사업 대행사업과 출연금 사업하고 DMZ정책과 시군별 8개 사업에 대한 사업공모 전년도 거 하나라도 자료 있으시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 제가……. 부위원장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전년도 사업, 예시로서 원하시는 겁니까?\n○ 임광현 위원 네, 예시로서의 참고자료로만 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추진내역, 그러니까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그것을 살펴보시고 싶어서…….\n○ 임광현 위원 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알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다른 위원님들 자료요청하실 위원님들 또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앞서 회의 진행한 것과 같이 질의 답변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하여 일문일답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위원님들의 질의에 대해서는 국장이 답변하되 답변이 어려운 경우에 소관 과장이나 공공기관장이 답변해도 좋습니다만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은 후 나오셔서 소속과 직ㆍ성명을 밝히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질의하실 위원님들께서는 거수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웅철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강웅철 위원 강웅철 위원입니다. 국장님께 질의 좀 드릴게요. 물론 자료요청은 했지만 우리가 5,540억쯤 되네요.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 도 자체사업 비중은 얼마나 돼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 국비가 한 2,100억 정도 되니까 나머지는 저희 도비라고 이해를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우리 도 재정사업 중에서도요, 가용예산이 있잖아요. 왜냐하면 계속비사업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어차피 진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출연금이라든가 이런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면 신규사업으로 쓸 수 있는 가용예산은 얼마나 되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예산에서 가용예산이라는 것 자체는, 예산이 저희 문화체육관광국 자체로만 편성하는 예산은 따로 없기 때문에 기조실의 예산담당관실과 협의를 거쳐서 결정이 돼야 되는 사항입니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저희 자체 가용예산이라는 표현이 좀 적절할지는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이해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n○ 강웅철 위원 아니, 그래도 우리가 국비 매칭사업도 있고 도비 매칭사업도 있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렇지만 경기도에서 재정사업으로 자체적으로 하는 사업은 없어요, 그러면?\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러니까 문화체육관광 분야에서만 따로 예산이 수립되어 있지는 않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예산서에 그게 편성이 됐다고 그러면 그런 건 기본적으로 국장님이,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여기서 재정사업 비율이 굉장히 중요하단 말이에요. 그렇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자체사업 말씀하시는 거죠?\n○ 강웅철 위원 그렇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그게 제일 중요한 사업인데 국장님께서 그거는 별도로 파악을 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도는 무조건 공모사업만 합니까? 아니, 매칭사업만 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래서 제가 지금 질의를 드리는 거잖아요, 우리 자체사업 비중이 얼마고 몇 프로나 되냐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자체사업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국비사업이 2,100억 정도 되기 때문에 지금 전체적인 국비 대 도비의 비율은 4 대 6 정도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자체적으로 시군 공모사업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고 저희 산하기관에 출연금 명목으로 드리는 사업들도 있기 때문에 현재 예산 상태에서는 저희 예산이 한 60% 정도 된다고 이해를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지금 4 대 6이라고 그러면 국비가 4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6이 도비인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2,100억에…….\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총 5,450억입니다.\n○ 강웅철 위원 5,450억인데 지금 국비가 2,100억이 내려오면 거기에 또 60%를 우리가 대야 되는 거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러니까 그렇게 매칭을 하는 사업도 있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보통은…….\n○ 강웅철 위원 아니, 제가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매칭한 거 빼고 도 자체사업이 얼마냐를 제가 물어보는 거…….\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은 제가 파악을 해서 자료로 제출을 올려도 될까요? 지금…….\n○ 강웅철 위원 아니, 주무 국장님이시면 당연히 상임위에 올 때는 그 정도는 해 갖고 오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우리 자체사업이 얼마인지 그걸 국장님께서 모르시면 뭐 어떻게 회의를 하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미처 그것까지는 분석을 못 했습니다.\n○ 강웅철 위원 국장님, 그거는 기본입니다. 국비에서 매칭하는 것만 심사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다음에 도민들이 원하는 거는 “도 자체사업은 뭐가 있냐.” 이런 걸 원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주무 국장님께서 그런 것조차도 파악을 안 하고 그냥 “우리는 국비 내려주면 국비 내려주는 대로 받아서 매칭만 해서 가겠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런 상황은 아니고요. 제가 그 구체적인 비율까지, 개별 사업들까지 파악을 못 한 데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n○ 강웅철 위원 그다음에 존경하는 우리 위원님들이 아까 질의할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경기도 예산이 서울시 예산보다 많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러니까 서울시보다는 예산 비율 면에서도 그렇고 총금액 면에 있어서도 저희가 좀 부족합니다.\n○ 강웅철 위원 아까 금액 면으로 많다고 하신 것 같은데?\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서울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요.\n○ 강웅철 위원 자, 한번 볼게요. 이 본 추경이 감액 추경은 아니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감액 추경 아닙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런데 결과적으로 감액 추경이 되죠? 왜냐하면…….\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비율적인 측면에서는 감액된 측면이 있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렇죠. 지금 우리가 도에서 증감률을 봤을 때 4.28%면, 그렇죠? 우리가 현재 1.82%였으면, 도 전체 비율로 봤을 때. 상임위라는 건 서로 예산이 굉장히 예민하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우리 국에서는 증감률이 4.28이면 기존에 1.82였으면 이걸 더 끌어올릴 생각을 하셨어야 되는데 결론은 1.78로 또 떨어졌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삼각형만 안 붙었지, 결론은 감액 추경이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렇게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n○ 강웅철 위원 그렇죠, 결과적으로? 그러면 우리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뭐를 하나요, 여기서? 예산을 감액하는 거에 그냥 승인만 해 주면 되는 건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런 측면보다는 이제…….\n○ 강웅철 위원 아니, 그런 측면이 맞지 않습니까, 국장님. 결론은 추경 이름만 감액 추경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로 감액 추경이잖아요. 그러면 1.82%라는 건 너무 적은 비율이에요. 그러면 추경을 준비하신다고 그랬으면 거기에 대해서 비율을 어떻게 끌어올릴까를 고민하셔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이번 1차 추경예산 자체가 코로나 대응과 경제난 때문에 사실은 대부분의 도 전체 예산도 국비를 통해서 증액되는 사업입니다, 사실은.\n○ 강웅철 위원 아니, 그러면…….\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런데 그 와중에 저희가 대응을 못 한 점에 대해서,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못 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n○ 강웅철 위원 그러면 국장님, 국비는 75억을 만들어서 내려보내는데 우리는 하나도 안 했잖아요. 바로 이게 문제인 겁니다. 그다음에 나머지도 매칭이지. 그렇죠? 도 자체사업이 아니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 금번 추경에 자체사업은 없습니다.\n○ 강웅철 위원 국가는 75억 만들어서 내려보내는데 경기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국비로 해서 75억 만든 게 정신 나간 행동인가요? 왜 도는 아무것도 안 하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이번 추경에서 상대적으로 도 자체사업이 반영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n○ 강웅철 위원 자, 그다음에 이거 한번 볼게요. 본 위원이 참 이거 보고 기가 막히더라고요. 문화예술과인가요? 창의예술 랩 지원 5,000만 원.\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강웅철 위원 경기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과 예산이 5,000만 원인가요? 그것도 공모사업으로 해서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동 사업은 시군이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이 돼서 됐습니다.\n○ 강웅철 위원 알고 있어요. 공모사업으로 해서 받았는데, 그러니까 도는 아무 역할을 안 하신 거잖아요. 시군이 공모사업 하는 거 중간에서 받아서 준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지금?\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지금 예산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는 측면을 좀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아니, 예산 시스템을 지금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거를 지금 질의드리는 거예요. 도의 문화체육관광국에서는 무엇을 하셨냐고 제가 질의를 드리는 겁니다, 지금.\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거기에 대해서는 좀 전에 죄송스럽지만 이제 그러니까 제가…….\n○ 강웅철 위원 아니, 죄송하게 하지 않으시면 되잖아요. 국장님!\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다음부터 좀 더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어떤 노력을 하실 건데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도내 문화체육관광과 관련된 사업과 관련해서 새로운 정책들을 발굴하고 그것과 관련된 필요한 예산들이 도 예산에 반영돼서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문화체육관광 예산들이 좀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n○ 강웅철 위원 아니, 그거야 말씀이야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거잖아요. 바로 이런 게 행동이 수반이 돼야 되는 겁니다. 이번 추경 같은 경우에도 다만 얼마라도 자체사업이 올라오고 아까 문화예술인, 우리 존경하는 어떤 위원님이 말씀하셨는데 문화예술인들한테 아니 5,000만 원도 공모사업으로 중간에서 연결만 하고. 무슨 코로나 때문에 뭐 어떻게 우리가 문화예술인을 도왔다는 얘기입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저희가 하반기부터는 아까 업무보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예술인 기본소득이라든가 다양한 정책들을 준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로 좀 이해를…….\n○ 강웅철 위원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답변은 누구는 못 하겠습니까?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잘…….”\n저는 경기도에서 어떻게 과 하나에 5,000만 원 그것도 공모사업으로, 이걸 예산서에다 이렇게 쓰면 그러면 저희는 지역주민들한테, 도민들한테 뭐라 그럴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사업의 유형에 따라서 적은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예산이 소요될 수…….\n○ 강웅철 위원 아니, 도는 무슨 일을 하냐고 제가 질의를 드리는 거잖아요. 공모사업 하는 거 중간에 국비 받아서 매칭해서 그냥 주면 되는 겁니까?\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이번 추경…….\n○ 강웅철 위원 아니, 이번 아니라 그러면, 이런 얘기는 수없이 듣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여기 왜 앉아 있을까요? 5,000만 원 매칭해서 중간에 연결해 주는 매칭사업하자고, 이게 추경입니까? 5,000만 원짜리가? 지나쳐도 국장님,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이거는?\n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강웅철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 김철진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n○ 김철진 위원 김철진 위원입니다. 예산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 강웅철 위원님이 여러 얘기를 하셨는데요. 사실은 전체 사업 중에 대다수가 성립전이고 또 국비 관련된 부분이라 특별한 것보다도 한 가지만 하나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n고양에서 있었던 세계태권도품새대회 개최 지원 관련된 내용인데요. 코로나 시국에 세계품새대회를 했다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라는 생각을 갖는데 이게 경기도의 최초로 태권도품새대회였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경기도 내에서는 최초입니다.\n○ 김철진 위원 다른 지방이나 아니면 뭐 대한태권도협회 차원에서 했던 세계품새대회는 여러 차례가 좀 있었을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서울에서도 예전에 있었고요, 인천에서도 예전에 있었습니다.\n○ 김철진 위원 연결돼 있지는 않고 이게 도 단위별로 해서 예를 들어서 세계대회를 격년으로 한다든가 아니면 매년 한다든가 순환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지역별로 해서…….\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대회이기 때문에 저희 나라에서 할 수도 있고 다른 국가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2009년도부터 시작을 해서 매년 하다가 2018년도부터인가 2년 단위로 실시하게 됐습니다.\n○ 김철진 위원 2년 단위로 해서.\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런데 지난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개최가 안 됐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4년 만에 개최한 상황입니다.\n○ 김철진 위원 어려운 시기에 개최했다는 건 이해는 되는데 제가 봐서는 세계대회이긴 합니다마는 예산상으로 봐서는 만만치 않은 예산이에요, 단일 종목치고는. 전체 예산 사이즈가 기능기금에 9억 하고 시비 12억 그다음에 국비가 8억 8,000 해서 한 29억, 30억 가까운 예산이거든요. 참가 숫자는 63개국에 972명 참가했는데, 물론 이 시점이 오미크론 변이 말미였기 때문에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 진행하고 나서 일종의 개최 목적을 달성했을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 들었는데 다시…….\n○ 김철진 위원 좀 집중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료 받는 것도 중요한데.\n지금 현재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30억 가까운 예산을 들여서 코로나 시기에 이 개최에 대한 목적을 달성했는지 여쭤봤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까지는 제가 파악이 안 됐는데 양해를 해 주시면 담당 과장으로부터 전체적인 경과나 이런 것들을 보고 올려도 될까요, 위원장님?\n○ 김철진 위원 아니, 뭐 어차피 지금 업무파악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크게 봐서는 태권도가 우리가 종주국이기 때문에 어쩌면 경기도에서 최초로 이런 국제대회를, 품새대회를 했다라는 것 자체는 의미는 있겠지만 제 의견으로 봐서는 예산이 상당히 좀, 30억 가까운 예산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3일 동안 집행을 한 거잖아요. 실제 시기로 봐서 3일 동안.\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김철진 위원 하루에 한 10억 정도 단일 종목으로 예산이 집행된 사례인데 결국은 이제 이 대회의 목적이나 개최의 목적을 달성했는가를 여쭤보는 거예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은 위원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경기도에서 기존에 이런 대회가 유치되지 못했고 예전에 사실은 경기도가 태권도……. 체육 분장을 유치하는 데 한 번 실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할 적에 태권도는 우리 고유의 무술이고 또 세계인들이 이제, 각 세계에 굉장히 널리 퍼진 종목을 우리 경기도에서 유치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알겠습니다. 워낙 어려운 시기에 한 행사이기도 하고 예산은 굉장히 규모 있는 예산이기 때문에 실제 개최 목적이 달성됐는지를 한번 점검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도비가 지원된 만큼 점검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제가 봐서는 도비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서, 도비만 국민의 세금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기금도 마찬가지고 다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거니 어쩌면 도비 8억 8,000 문제가 아니라 30억 가까이 예산이 집행된 세계품새대회이기 때문에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좀 가져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다음 하나는 장애인체육회에 관련된 부분인데 이건 상당히 논란이 되기도 하고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좀 다른 사안인데 우리 31개 시군 중에서 일종의 체육회 내에 장애인체육회가 하나로 돼 있는 또는 별도로 돼 있는 이런 사례들이 어떻게 분산이 돼 있을까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근거 법령이 다르기 때문에 시군 단위더라도 장애인체육회는 별도로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n○ 김철진 위원 31개 시군이 다 그런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은 현황을 정리해서 제가 자료로 제출해 드려도 될까요?\n○ 김철진 위원 지금 답변하고 나서 국장님 또 금방 바뀌시면 안 되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잘못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근거 법령은 그러더라도 일부 시군에서는 함께 운영되고 있는 데가 있다고 합니다.\n○ 김철진 위원 그래서 이거는 제가 사전 자료요청은 못 했습니다마는 31개 시군의 장애인체육회와 체육회가 분리, 실제로 체육회는 민간 쪽에서 회장을 하고 있는데 장애인체육회는 단체장들이 하는 데가 대다수잖아요. 그렇게 안 돼 있고 하나로 돼 있는 데들이 있는지 현황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파악해서 자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철진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수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n○ 김성수(안양1) 위원 김성수 위원입니다. 우리 국장님, 사업 예산에 대한 제안설명 잘 들었고요.\n예산서가 100……. 사업예산서는 315쪽이네요. 315쪽에 보면 국가지정문화재가 있고 등록문화재가 있어요. 그러면 국가문화재는 그렇다 치고 등록문화재가 경기도지정문화재인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아닙니다. 국가등록문화재가 있고 도등록문화재가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도등록문화재. 그러니까 경기도문화재를 말씀하신 거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맞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경기도지정문화재. 그렇죠, 이게. 그러면 우리 경기도지정문화재 100호 있죠, 100호?\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100호.\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100호요?\n○ 김성수(안양1) 위원 경기도지정문화재 100호. 혹시 아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제가 그것까지는 파악을 못 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지금 현재 예산이 국비가 내시 돼서 이제 아마 성립전예산으로 사용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담당 과장님 혹시 아시나요? 100호 문화재에 예산 혹시 반영됐나요?\n○ 문화체육관광국문화유산과장 홍성덕 문화유산과장 홍성덕입니다. 100호 문화재…….\n○ 김성수(안양1) 위원 모르시죠?\n○ 문화체육관광국문화유산과장 홍성덕 제가 파악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이야기 안 나왔나요, 지난 대 때? 10대 때 이 이야기 많이 나왔었던 것 같은데. 100호 문화재가 좀 상징성이 있잖아요, 어찌 됐든 간에 100호라는 게. 안양 서이면사무소가 100호 문화재예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많아요, 말썽도 많고. 지정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 이 부분 좀 잘 파악하시고 예산 지금 제가 알기로는 신청 보수, 보수가 아니고 사유지를 침범해서 아마 처마를 뜯어내고 다시 해야 되는 그런 사업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예산이 지금 현재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걸 저에게 좀…….\n○ 문화체육관광국문화유산과장 홍성덕 네, 저희가 파악해서 위원님께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네, 파악해서 이야기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문화유산과장 홍성덕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네,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성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진영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박진영 위원 안녕하세요? 화성의 박진영 위원입니다. 이번에 추경으로 나오는 관광과 쪽에 질문드릴 건데요. 추경으로 들어오는 예산 중에 일단은 뭐 국비들이 많은 건 사실이고요. 그런데 이 사업들을 보면 좀 있으면, 지금 현재 상황에서도 코로나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약해졌다고 해야 되나 아니면 코로나를 위드 코로나로 안고 가고 있으면서 한국에 관광객이 다시 들어올 때인 거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박진영 위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조금 대응을 해서 이번 추경에 반영됐었으면 하는 생각이 좀 들어서 말씀드려 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그것과 관련된 내용의 예산들이 사실은 본예산에 일부 반영이 되어 있기는 합니다. 특히 경기도에 방문, 경기도가 아니라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관광객 같은 경우는 아시아 쪽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 쪽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여행사들과의 협업이라든가 외국인 전용 버스를 매입해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든가 이런 몇 가지 사업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업들은 저희가 정리를 해서 나중에 자료로 제출을 하면서 위원님께 설명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n○ 박진영 위원 지금 본예산에 반영되어 있는 게 외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력 강화랑 해외 핵심 여행사 및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이잖아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박진영 위원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이런 사업들을 하실 때 가능하면 현업에 계시고 코로나 때문에 많이 어려워지신 여행사분들이 아이디어들도 많으실 거고 현실을 좀 더 잘 아실 거니까 그분들 의견을 반영해서 내년 본예산에라도 좀 많이 세워주시고 선제적으로 조금 대응을 해 주셔야 외국인관광객들이 실제로 들어오셔서, 다시 들어오실 때 경기도로 많이 유치되고 그래야 경기도의 경제도 좀 많이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위원님의 의견과 같이 각종 사업을 함에 있어서는 각종 여행사들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코스를 개발하고 그런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었습니다. 이번 말씀드린 사업들에 대해서도 그런 점을 유념해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 박진영 위원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박진영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김정호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정호 위원 김정호 위원입니다. 우리 박진영 위원님에 대한 세부사항으로 보면 161쪽에 관광지 방역수용태세 개선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국비사업 같은데요. 이게 지금 12억 6,720만 원인데 6개 지역에 관광지가 어디 어디인지 알고 계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행주산성을 비롯해서……. 지금 고양에 8군데가 있고요\n○ 김정호 위원 8군데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리고 부천에 15군데, 평택에 4군데.\n○ 김정호 위원 평택 몇 군데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평택에 4군데가 있습니다.\n○ 김정호 위원 그 자료 하나 주시고요. 위원장님, 저 자료 받아도 되겠죠?\n○ 위원장 이영봉 네. 그렇게 해 주십시오.\n○ 김정호 위원 말씀해 주십시오. 파주. 파주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파주 같은 경우는 지금 24명을 지원할 예정입니다.\n○ 김정호 위원 24명이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김정호 위원 그리고 포천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포천은 배치장도 5개 군데 10명을 지원할 예정입니다.\n○ 김정호 위원 10명. 가평?\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가평은 17개 군데 35명을 지원할 예정입니다.\n○ 김정호 위원 그러면 이게 지금 전체 고양 8곳, 부천 11곳, 평택 4곳, 파주 24명, 포천 이렇게 하면 인원이 지금 96명이 맞나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총 96명 맞습니다.\n○ 김정호 위원 지금 고양이 8곳이면 이곳에 몇 명씩…….\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고양에, 그러니까 4개소에 8명을 지원하는 사항으로 정정하겠습니다.\n○ 김정호 위원 8명이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김정호 위원 8곳이라고 하셔서 계산이 안 맞고요. 그러면 이거 지금 기준은 선발 기준이 어떻게 돼요, 세부적으로?\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시군에서 요청을 해서 국가에서 반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군 수요조사를 했었거든요, 국가에서.\n○ 김정호 위원 세부사항은 각자 시군에서 알아서 한다는 거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운영은 시군에서 합니다.\n○ 김정호 위원 비용은 지원을 해 주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n○ 김정호 위원 어쨌든 간에 지금 무조건 국비라고 해서 전체 비용을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라면 인원이 저는 충분한지 안 한지를 여쭤보는 거예요. 인원 배치가 이 정도면 충분한 건지 아니면 여기에 도비를 더해서 인원을 배가해서 관광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되는 건지 그거에 대해서 궁금해서 여쭤봤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우선 시군 의견을 수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군 요청에 의해서 국비가 일부만 반영이 됐을 텐데요. 필요한 추가적인 소요가 있는지는 저희가 파악해서 지원 여부를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정호 위원 어차피 성립 전이니까 일단은 집행이 됐더라도 진짜 우리가 관광지 하면 지금 정도는 배가가 돼서 계속적으로 우리 주민들이나 국민들이 관광지 명소를 찾고 있는데 어쨌든 오미크론이라든지 지금 원숭이두창 그리고 코로나 이런 것에 방역이 좀 철저하게 돼서 안전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그런 지원 체계도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정호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정호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질의하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없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질의 종결을 선포하겠습니다.\n일단 우리 집행부분들은 좀 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관계공무원 퇴장)\n원래는 정회를 잠깐 했다가 해야 되는데 신속하게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연속해서 진행하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n위원님들께 금번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계수조정과 관련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번 추가경정예산안은 대부분 국고보조금 확정내시 등에 따른 반영사항으로서 계수조정은 별도 소위원회 구성하지 않고 전체 위원님들의 의견을 모아 조정하고자 하는 데 이의가 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예결위에 대한 동의방법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잠깐 안내를 좀 드리겠습니다. 표결 및 토론 순서가 있는데요. 여기서 동의해 주셨으니까 그건 생략하고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하고요.\n의결에 앞서 예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 시 동의방법에 대하여 위원님들께 안내말씀드리겠습니다. 경기도의회 회의규칙 제89조3항에 따르면 예결산특별위원회는 소관 상임위원회 예산심사에서 삭감한 세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게 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새 비목 설치의 경우 24시간 이내에 동의 여부가 예결산특별위원회로부터 통지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경미한 사항은 위원장에 위임하고 중요한 변경은 부위원장님 두 분과 협의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하고자 하는데 이견이 있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예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 시 동의방법 등 경미한 사항은 위원장에게 위임하고 중요사항 변경은 부위원장님 두 분과 협의ㆍ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n집행부 들어오셔야죠, 표결해야 되니까.\n정회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위원님들.\n(「네.」하는 위원 있음)\n(관계공무원 입장)\n다 들어오셨습니까, 국장님?\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과장님들 다 들어왔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그럼 표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표결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하여 이의 유무를 묻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n의사일정 제4항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2022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은 예산안 계수조정 결과와 같이 원안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위원님들의 이의가 없으시므로 의사일정 제4항 2022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문화체육관광국 소관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n의사봉을 제가 두드리기 전에 우리 국장님에게 당부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마무리 전에.\n이번 처음이잖아요, 저희 상임위가 구성돼서. 업무보고가 첫 업무보고였지 않습니까? 국장님 나름대로 지금 업무보고 준비를 잘 충실하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감 없이 말씀주세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위원님들 방향을 제가 잘 파악을 못 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제가 봤을 때는 전혀 준비를 안 하셨어요, 이 정도면. 이렇게 하셔서, 지금 2차 추경이 9월에 있을 예정이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n○ 위원장 이영봉 그다음에 행정사무감사가 있을 거고 그다음에 2023년도 본예산 심사가 있을 거예요, 심의가. 그거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요, 이렇게 준비하셔서?\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n○ 위원장 이영봉 더 잘 준비를 좀 해 주십사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고요.\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위원장 이영봉 그다음에 전체 2023년도 예산편성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 제가 몇 가지만 자료를 요청하겠습니다. 공모사업 있죠, 공모사업. 공모사업이 중앙정부에서 공모사업이 내려오는 게 있을 거고, 문체부나 뭐 이런 쪽에서. 그리고 경기도 독자적인 공모사업이 있을 거예요. 그거를 최근 3년 거 자료를 제출해 주시고 그리고 경기도의 독자사업 있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위원장 이영봉 이 부분도 최근 3년 거 자료 제출해 주시고 일몰사업 있죠?\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n○ 위원장 이영봉 그것도 최근 3년 거 자료 제출을 좀 해 주시고요. 우리 위원님들이 다 보실 수 있도록 위원님들한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n○ 문화체육관광국장 김현수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n(전문위원실 직원, 이영봉 위원장에게 개별설명)\n위원님들의 이의가 없으시므로 의사일정 제4항 2022년도 제1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문화체육관광국 소관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n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서 한 10분만 정회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한 3시까지 하시죠, 3시까지.\n업무보고 관계자 배석 등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하여 잠시 정회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15시까지 정회를 선포합니다.\n(14시46분 회의중지)\n(15시00분 계속개의)\n○ 위원장 이영봉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5. 업무보고의 건(계속)\n-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한국도자재단\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제5항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한국도자재단 소관 2022년도 업무보고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n먼저 경기관광공사 순서입니다. 경기관광공사는 현재 사장이 공석인 관계로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경영기획본부장이 나오셔서 2022년도 업무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존경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영봉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을 모시고 경기관광공사 업무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현재 사장 공석으로 인해 금일 제가 대신 보고드리게 됨을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업무보고에 앞서 먼저 공사 간부를 소개해 올리겠습니다.\n이동렬 사업본부장입니다.\n(인 사)\n이상 간부소개를 마치고 배부해 드린 보고서를 토대로 2022년도 업무추진현황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보고순서는 일반현황, 2021년 주요성과, 2022년 주요사업 추진현황 순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n먼저 3쪽 일반현황입니다. 공사는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 및 주민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2002년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설립된 관광전문 공기업입니다. 관광자원 및 관광지 개발 등 관광자원 개발사업, 관광홍보 및 관광객 유치 업무, 관광에 관한 국내외 협력지원 등 관광진흥사업, 국제회의 마이스산업 육성,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대행 또는 위탁한 업무 등을 사업범위로 하고 있습니다.\n4쪽 조직 및 인력현황입니다. 공사는 현재 2본부 9팀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8월 현재 정원 90명에 현원 86명이며 정원 외 공무직 20여 명을 포함한 106명이 근무 중에 있습니다.\n5쪽 예산현황입니다. 제1회 추경 기준 2022년도 총예산은 477억 원입니다. 주요 지출예산은 출연금사업비 52억 4,700만 원, 위수탁 대행사업비 171억 8,300만 원, 인건비와 경비 총 103억 원, 차기이월금 86억 원 등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n6~8쪽 사업예산 현황입니다. 공사의 금년도 사업예산은 58개 사업, 총 330억 9,400만 원입니다. 출연금 사업은 도내 관광업계 생태계 복원 및 관광활성화 사업을 포함 9개 사업 총 52억 4,700만 원입니다. 대행사업은 전체 49개 사업입니다. 경기도 관광과 대행사업으로 경기도 무장애관광 환경조성 사업을 포함 20개 사업 총 136억 7,500만 원이며 DMZ정책과 대행사업으로 평화누리길 관리운영 사업을 포함 11개 사업 총 29억 4,500만 원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시군 대행사업은 평화누리길 시설물 설치 사업을 포함 14개 시군, 18개 사업 총 25억 3,700만 원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n9쪽 21년 주요성과입니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도내 관광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생태계 유지를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상반기 경기도 추경과 하반기 당초 사업예산의 변경, 조정을 통해 도내 관광사업체 총 826개 사에 최대 300만 원의 사업장 임차료를 지원하였습니다. 코로나 시대 여행심리 회복 및 내수관광 촉진을 위해 경기바다 여행주간을 운영하고 경기둘레길, 청정계곡 등 비대면 관광지를 발굴, 홍보하고 도내 숨은 관광지 발굴 등 지역연계 상생을 도모하였습니다.\n10쪽입니다. 해외 인바운드 시장의 정상화를 선도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온ㆍ오프라인 결합 방식의 대규모 비대면 국제관광 홍보 상담회 개최를 통해 해외 현지의 우수 바이어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지속적인 마이스 유치 활동을 추진한 결과 2022년 동아시아 수의사대회 등 42건의 국내외 행사를 유치하였습니다.\n11쪽입니다. 경기북부 접경지역 및 DMZ 평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판문점 견학 안내소를 유치하였고 평화누리 모험놀이시설은 2021년 행정안전부 전국 우수 어린이 놀이시설로 선정되었습니다. 사회적책임 강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경기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최상위, 4연패를 달성하고 2021년 행정안전부 정보공개 종합평가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부패방지경영시스템 ISO 37001과 행정안전부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을 획득하였습니다.\n12~14쪽 국내외 관광동향입니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일상 생활권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관광객과 종사자의 만남을 근간으로 유지되는 대표적인 대면 서비스산업 중의 하나인 관광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국내 관광여행 횟수가 2019년 대비 2020년 평균 35%, 2021년 평균 24% 감소하는 가운데 캠핑 등 근거리 자연친화 관광지 방문 경향으로 지난해 우리 경기도는 2019년 대비 14%가 증가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의 안전과 방역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근거리 당일여행과 소규모 가족여행의 증가, 혼잡한 시설에 대한 기피 및 야외 풍경감상, 휴식ㆍ휴양 활동에 대한 수요 확대 등 국내관광 형태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국제관광시장은 전례 없는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2021년 1월에서 9월까지 전 세계 국제관광객 수는 2020년 같은 기간 대비 20% 낮은 수준이며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약 76% 감소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4월에서 9월까지의 국제관광객 수는 2019년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더라도 2020년 같은 기간 대비 증가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020년 1월 이후 국제관광객 수가 급감한 이래 월별 변동 폭이 미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시기를 2023년 또는 2024년 이후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전인 2019년 방한 외래관광객 수는 약 1,750만 명이었으나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총 96만 7,000명이며 순수 관광목적은 약 21만 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1.5%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저희 공사는 코로나19의 변이 확산 추이에 따라 국제관광의 단계적 재개를 위한 선제적 대응 기반을 조성해 나가겠습니다.\n15쪽 경기관광공사 비전 및 목표입니다. 제11대 경기도의회가 마무리되는 2026년까지 저희 공사는 1,500만 경기도민이 함께 누리는 경기관광이라는 비전과 ESG 기반 관광생태계 조성 및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미션으로 내국인 관광객 당일 및 숙박 1위 달성, 외국인 관광객 누적 1,000만 명 유치, 관광 일자리 창출 누적 2만 명, 포용적 성장을 통한 권역 균등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관광, 국제관광, 관광업계, 지역관광 4개 분야별 경기도민이 함께 누리는 여행, 아시아 국제관광의 중심 경기도 등 4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관광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과 관광산업 육성 및 주민 복리증진을 도모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하나가 되는 사업을 추진해 가도록 하겠습니다.\n16쪽 2022년도 사업추진 방향입니다. 올해 공사는 코로나19 회복 견인 및 관광산업 성장기반 강화를 목표로 고객, 안전, 미래, 평화, 성장의 5대 핵심가치와 지속가능 경기관광 생태계 조성 등 5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전략별 세부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습니다.\n17쪽 ESG 추진체계입니다. 친환경 비대면 관광, 관광업계 회복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 등 올해 추진 예정인 공사의 모든 사업을 ESG 분야별로 구분하여 관광이 자연과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지역상생으로 지속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민간과 공공의 전략적 연대와 협동으로 관광분야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분야별 주요사업은 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21쪽 2022년 주요사업 추진현황입니다. 먼저 지속가능 경기관광생태계 조성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광산업이 가장 극심한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관광업계는 정부 손실보상 대상에서 제외되어 휴ㆍ폐업 등 고사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관광업계가 정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됨으로써 도의 지원 지침에 따라 2020년에 633개 업체에 14억 6,000만 원, 2021년도에는 1,170개 업체에 37억 원을 직접 지원하였고 올해 2022년 1분기에는 관광사업체를 비롯해 전세버스업까지 확대하여 2,418개 업체와 5,445대 차량에 대하여 총 20억 원 규모의 운영자금 지원을 완료하였습니다. 아울러 상생하는 경기관광 기반조성을 위해 경기도 무장애 관광 수용태세 및 인식개선을 통해 교육 대상자 확대 및 내용 개선 등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 무장애 관광지를 활용, 관광지 코스 개발 및 시범투어를 실시하겠습니다.\n22쪽입니다. 도내 시군에 산재한 지역축제에 대하여 대표성이 있고 유망한 축제를 경기도 지역축제 지원 조례를 근거로 하여 매년 경기관광축제로 선정합니다. 그 가운데 경쟁력이 높은 상위 축제는 국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 승격이 되는데 현재 수원화성문화제 등 5개 축제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역축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비대면 방식이 공존하는 현장 중심 축제 개최를 유도하고 축제 방역시스템 구축 및 안전강화 지원을 위한 현장평가 및 컨설팅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n23쪽 새일상 시대 안전한 경기관광 브랜드 확산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대응하고 종식 이후를 대비한 “안전한 일상여행” 브랜드 확산을 위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콘텐츠를 지속 발굴하고 SNS 채널을 활용하여 잠재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팅을 추진하겠습니다. 공사는 현재 해외시장 개척, 공략의 최전방 교두보로서 중국 상하이, 칭다오, 대만 타이베이, 태국 방콕 이렇게 4개 지역에 현지 관광홍보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제관광 본격 재개에 대응하여 베트남 호찌민에 위탁이 아닌 경기관광공사 직영 형태의 현지 비영리법인 성격 대표사무소를 설립함으로써 해외에서의 경기관광 마케팅 영향력과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외래객 유치 시장을 더욱 다변화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21일 자로 도의회에서 관련 조례 개정을 한 바 있습니다.\n24쪽입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연계를 통한 호감형 관광정보 확산을 지향하는 경기관광 누리집은 사용자 접근성 개선과 정보보안 강화, 관광정보 시스템 구축으로 경기관광공사 대표 매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2022년 정보산업기반 클라우드 이전으로 정보보안 강화 및 확장성을 강화하며 콘텐츠관리시스템 통합 및 데이터베이스 표준화 등 지속적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사용자 접근성과 편의성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해외시장 충성 소비자 확보 및 코로나 이후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재한 외국인 SNS 기자단을 운영하고 고품질 사진자료 확보를 위해 한국사진작가협회 등 협업을 통해 사진공모전 및 SNS 홍보 이벤트를 추진하겠습니다.\n25쪽 미래관광 기반 국내관광 활성화 및 외래객 선제 유치입니다. 지난해 11월 15일 15개 시군 총 860㎞ 60개 코스의 경기둘레길을 정식 개통하였습니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정보전달로 방문객 편의성 및 정보 접근성을 증대하고 지역거점센터 조성, 테마노선 발굴 등을 통해 방문객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 나가겠습니다.\n코로나19는 기존의 오프라인, 인적서비스 중심에서 비대면 디지털 기반 관광산업 구조로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변화 대응을 위해 기존 경험 중심의 과거형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 관광객의 행동패턴의 실시간 측정ㆍ반영ㆍ예측이 가능한 데이터 기반의 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여행취향이나 활동정보를 빅데이터와 접목하여 맞춤 여행지를 추천하고 관광정보뿐만 아니라 여행후기, 여행상품 등의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며 사용자의 질문에 자동으로 응답가능한 관광형 챗봇 서비스도 선보입니다. 2022년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서비스 품질과 기능 개선 그리고 지속적인 데이터 수집으로 알고리즘 정확도를 개선할 예정입니다.\n26~27쪽입니다. 역사ㆍ문화ㆍ생태관광 코스 및 스토리텔링 개발 사업은 시군 공모를 통해 대상지를 선정하였으며 체험 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 마케팅을 통해 문화관광 저변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권역별 생태관광 거점 조성과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육성 사업은 주민역량 강화를 위한 맞춤형 컨설팅과 다양한 홍보마케팅 지원을 통해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코로나 이후 근거리, 야외활동, 자연친화ㆍ청정지역 등 안전관광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반영하여 경기도가 보유하고 있는 청정계곡, 경기바다 등 자연생태자원이 경기도의 대표 비대면 관광콘텐츠로서 관광명소화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및 홍보마케팅을 추진하겠습니다.\n28~29쪽입니다. 지난 6월 1일부터 외국인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단기방문 및 전자비자 발급이 재개되고 6월 8일부터는 예방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해외입국자 격리면제로 외국인의 방한 여행이 더욱 수월해졌습니다. 공사는 도내 관광업계 해외 마케팅 회복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고품질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해외 현지 유력 온라인 플랫폼 공동 마케팅 및 해외 주요도시 선제적 홍보 세일즈를 추진하겠습니다. 아울러 코로나 회복기 마이스 유치 개최 강화를 위해 소규모 다회 개최 스몰미팅을 활성하고 접근성 개선을 위한 경기마이스 웰컴 셔틀버스를 확대 운영하겠습니다. 수원, 고양에 한정된 마이스 인프라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특화 컨벤션을 발굴하고 6개 테마권역 12개 시군 협력체계 확대를 위해 경기마이스 ONE-Team을 구축하여 상생 협력방안을 도출하고 서울-경기-인천 등 타 시도와의 공동 마이스 마케팅을 추진하겠습니다. 이러한 경기도의 마이스 산업 육성 성과로 지난 5월 비즈니스 데스티네이션즈(Business Destination / BD) 주최, 2022년 트래블 어워즈에서 경기도가 아시아 최고 마이스 목적지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n30쪽입니다. 방한관광 회복기 외국인 환대 분위기 조성을 위해 도내 주요 관광지 입구에 환영문구 설치 및 입국 환영 행사를 실시하고 국내외 주요 거점에 외국인 개별여행객을 위한 경기관광 할인 쿠폰북을 배포하겠습니다. 아울러 서울 방문 외국인의 교통편의 제공을 위해 EG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산업 자원ㆍ현장, 생산품 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산업관광 활성화를 위해 국내외 여행사 초청 답사투어를 추진하고 산업관광 자원 발굴을 위한 기업체 간담회 및 산업관광 상품 개발 및 운영 사업체에 대한 지원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n31쪽 DMZ 접경지역 평화ㆍ생태관광 허브화입니다. 공사는 김포-고양-파주-연천 4개 시군을 잇는 최북단 도보여행길 평화누리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총 12개 코스, 189㎞로 작년에 약 64만 명이 이용하였고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39만 4,000여 명이 이용하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소규모 자연관광에 대한 관심이 증가됨에 따라 평화누리길은 기존 마니아층 방문객만이 아니고 20~30대 유치 다변화를 위해 평화플로깅, 평화누리길 클린티어 등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이벤트를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평화누리길 활성화를 위해 편의시설 추가 설치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전체 코스의 유기적 관리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코스 합동점검 및 시설물 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n32~33쪽입니다. 임진각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군 철책길을 따라 생태탐방이 가능한 9㎞의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를 파주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에 45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연간 1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으며 탐방로 콘텐츠 보수 및 시설물 유지관리와 함께 지역상생형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겠습니다.\n평화협력국 DMZ정책과 대행사업으로 DMZ 평화 마라톤, DMZ 평화 걷기, DMZ 평화 자전거, DMZ 팸투어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경기도 DMZ 일원 스포츠를 통한 평화ㆍ통일에 대한 메시지 전달과 함께 DMZ의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축제의 장으로 DMZ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행사 기획, 코스 구성, 행사 홍보 및 참가자 모집과 당일 행사 운영 및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n34쪽입니다. 임진각은 실향민과 안보관광지라는 타이틀로 군인단체, 학생단체가 많이 찾던 곳이었습니다. 체류시간을 늘리고, 수도권의 가족단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영유아 중심의 1단계 모험놀이시설을 조성, 작년에 행정안전부 전국 우수 어린이 놀이시설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공사는 올해 그 2단계로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모험활동시설 2단계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며 임진각 건물 또한 단순 휴게소 개념이 아니라 DMZ를 대표하는 융복합 문화관광 시설로의 탈바꿈을 위해 현재 콘텐츠 리뉴얼을 추진 중입니다. 미군부대로 사용하던 캠프그리브스를 역사공원 및 문화시설로 조성하여 DMZ 군사시설의 장소적 가치를 보전하는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경기도로부터 위탁을 받아 현재 공사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군사시설인 캠프그리브스의 소유권 이전을 위해 경기도가 대체토지를 확보, 훈련장 등 군 대체시설을 조성하여 국방부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기부대양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철저한 공정ㆍ안전관리를 통한 공사 준공 및 최종 합의각서 체결 등 재산교환 절차를 지원하겠습니다.\n35쪽입니다. 공사는 임진각 평화누리 일원의 시설을 관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임진각 독개다리와 벙커전시관, 수풀누리, 모험놀이시설, DMZ생태관광지원센터 등 크게 총 10여 개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으며 아울러 앞서 보고 드린 캠프그리브스와 함께 도라산평화공원을 경기도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일원이 우리나라 대표 평화관광지로서 손색이 없고 찾아주신 국내외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콘텐츠 리뉴얼 및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노후시설 점검 및 시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운영시설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일원의 관광 수용태세 마련에 대한 선제대응을 위해 통일부, 파주시, 1사단 등 민관군 등 9개 기관이 참가하는 임진각 평화누리 상생협의회를 구성하여 여행수요 회복에 대해 통합상품개발, 단체여행 프로그램 운영 등 대응체계를 구축 운영해 나가겠습니다.\n36~37쪽입니다. 신 사업영역 개척 및 경영시스템 고도화입니다. 경기도-시군 간 협력을 통한 지역 관광현안 해결 및 지속가능한 상생구조 구축을 위해 시군 연계협력형 관광정책 발굴 및 사업화, 공모참여를 지원하고 관광정책 공유, 정책 아이디어 발굴 및 상시소통을 위한 사업설명회, 성과사례 워크숍 등을 개최하겠습니다.\n공사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예산심의 과정에서 공기업으로서의 수익기반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는데 공사의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공기업으로서의 자생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자체 전략사업 개발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자체 재원조달이나 국ㆍ도비 지원사업 등과 연계하여 관광홍보관, 방문자센터, 관광편의시설 등으로 구성된 경기관광 웰컴센터를 건립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취약한 도내 관광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방문 관광객에게 경기도만의 한 차원 높은 관광 서비스 및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공익성과 수익성을 함께 추구해 나가겠습니다.\n38쪽입니다. 도민과 직원에게 신뢰받고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구축을 위해 투명경영 조직문화를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윤리인권경영 내재화를 위해 정기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고 반부패ㆍ청렴경영 추진체계 고도화를 위해 청렴시민감사관 제도 운영 및 공정청렴경영 혁신과제를 발굴하고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제도 정비 및 시설 안전관리, 근로자 안전조치를 강화해 나가겠습니다.\n이상으로 2022년도 경기관광공사의 주요사업 추진현황에 대한 요약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위원님들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2022년도 사업별 세부 추진현황은 배부해 드린 업무보고서로 갈음하고자 합니다.\n존경하는 이영봉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그간 공사는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경기도의회 업무보고, 행정사무감사, 예ㆍ결산 심의과정에서 엄중한 질책과 지적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공사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매일 고민하고 실질적으로 변화 될 수 있도록 조직과 사업을 빈틈없이 확인하고 개선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금일 위원님들께서 지적하시고 제안해 주신 사항에 대해서는 즉각 조치 가능하도록 개선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n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등 감염성 질병은 이제 갑작스런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경제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특히 관광산업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관광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회복과 관광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혁신이 저희 공사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었던 국내외 여행수요를 회복시키고 어려움에 처한 도내 관광업계가 조기 정상화될 수 있도록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사업추진과 함께 경기도 관광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체질개선 및 미래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n이상으로 경기관광공사의 주요업무보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경기관광공사)\n○ 위원장 이영봉 유대열 경영기획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경기문화재단 순서인데요. 대표이사 일신상 사유로 주홍미 문화예술본부장이 2022년도 업무보고를 해 주시겠습니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안녕하십니까?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입니다. 경기문화재단 주요업무보고를 드리기에 앞서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강헌은 일신상의 사유로 참석하지 못한 점 다시 한번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n존경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영봉 위원장님과 이번에 새롭게 선임되신 여러 위원님을 모시고 2022년도 경기문화재단 주요업무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저희 경기문화재단은 ‘문화로 가꾸는 살기 좋은 경기도’라는 목표를 두고 경기도민과 도내 문화예술인들에게 신뢰받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전 임직원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이영봉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서는 오늘 저희 재단의 주요업무에 대한 보고를 통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많은 고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n먼저 저희 재단의 주요 간부들을 소개하겠습니다.\n이종희 경영본부장 직무대리입니다.\n(인 사)\n송창진 지역문화교육본부장입니다.\n(인 사)\n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입니다.\n(인 사)\n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입니다.\n(인 사)\n문성진 뮤지엄지원단장입니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겸직을 맡고 있습니다.\n(인 사)\n이기원 인권감사관, 이지훈 경기문화재연구원장,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상임위원회 좌석 관계로 배석하지 못한 점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n김종길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장은 코로나19 양성판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였음을 보고드립니다.\n이어서 배포해 드린 2022년도 주요업무보고 자료를 토대로 간략하게 업무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7쪽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재단의 일반현황에 대해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공공문화재단으로 2008년 도립 박물관ㆍ미술관을 통합하여 국내 최대의 문화예술 전문조직으로 성장하였습니다.\n업무보고서 8쪽을 보시겠습니다. 기구는 대표 직속부서인 1관, 1실, 1팀을 포함하여 3본부, 8소속기관, 1지원단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 수는 7월 31일 자 기준 총 518명이며 정규직 201명, 운영직 147명, 기간제 17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n업무보고서 9쪽을 보시겠습니다. 다음은 재정현황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기본재산은 경기도출연금 1,037억 원과 문화예술진흥기금 귀속금, 기본재산 적립금, 기타 기부금을 합하여 현재까지 모두 1,200억 940만 8,000원입니다.\n업무보고서 10쪽입니다. 2022년 수입예산과 지출예산 상세 내역입니다. 편의상 백만원 단위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금년도 수입과 지출 본예산은 1,417억 6,800만 원으로 경기도 및 재단 출연금과 자체재원으로 구성된 고유목적사업 예산 523억 1,200만 원과 공기관대행사업 및 위탁사업으로 구성된 대행ㆍ위탁사업 예산 894억 5,600만 원의 합계로 편성되었습니다.\n업무보고서 11쪽입니다. 2022년 재단이 수행하는 고유목적사업과 2022년 편성된 대행ㆍ위탁사업을 구분하여 재원 출처와 함께 일괄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은 업무보고 자료 11쪽에서 19쪽까지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23쪽의 비전과 정책목표는 유인물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업무보고서 27쪽부터 29쪽까지를 보시겠습니다. 재단의 2021년 주요성과에 대해 간략하게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 대응력 강화 및 코로나 이후 예술 생태계 회복지원을 위하여 경기예술 주제공모 지원사업, 새로운 예술을 위한 기술지원사업, 경기예술인 전수조사 자료(DB) 구축 사업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문화예술 복지 확대 및 소외지역 문화활성화를 통한 문화다양성 제고를 위하여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지원사업, 취약계층 예술활동 지원사업, 문화누리카드 사업, 북부청사 평화광장 문화사업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협력망 활성화를 위하여 경기컬쳐로드, 경기생활문화센터 개소, 시군 연계 예술교육 사업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문화예술 전문기관으로서의 경영혁신 결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2020년부터 3년 연속 기관평가 및 기관장 평가에서 A등급을 달성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민의 문화향유 확대를 위하여 뮤지엄의 전시 및 교육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n업무보고서 33쪽과 34쪽을 보시겠습니다. 민선8기 재단 운영방향에 대해 간략히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권 및 책임경영 강화를 통한 ESG경영 조직화와 박물관ㆍ미술관 통합 운영을 통한 문화향유 기회 확대, 비대면 사회 전환과 인식 변화에 따른 수익구조 변화 창출을 통하여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경영혁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데이터기반 문화행정 활성화 사업 추진과 문화예술 콘텐츠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산하고 조직문화를 재정비하여 디지털 경기문화재단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화예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하여 문화예술 성장지원 및 기반강화를 위한 정책기능을 강화하고 문화다양성 확대를 통한 문화시민 역량 향상에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경기도민의 참여형 복합문화공간 기능을 강화하고 확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자원 발굴 및 콘텐츠화 사업을 추진하고 문화유산 발굴 및 활용을 확대하여 경기문화자원 공유와 가치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35쪽입니다. 재단 2022년 주요사업 추진실적에 대해 요약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n먼저 업무보고서 40쪽 인권감사관입니다. 인권감사관에서는 재단의 임직원을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인권보호 및 증진과 문화다양성 보장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 인권ㆍ윤리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n업무보고서 41쪽 정책실입니다. 정책실에서는 재단과 경기도의 문화정책 기획과 문화예술 협력망 구축을 통하여 경기도의 문화예술 정책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속적인 경기지역학 연구를 통하여 경기인문정신을 고양하고 경기학의 대중화 및 지역학의 활성화를 도모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50쪽 경영본부입니다. 개방과 소통을 바탕으로 전사적 참여와 협력을 통해 기존의 업무처리시스템 운영방식에서 진일보한 발전적이고 효율적인 디지털 경기문화재단 구현에 노력하겠습니다. 재단의 연간 종합경영계획을 수립하고 경영기능을 개선하겠습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사관리와 함께 노사상생 및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본재산 운영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제고하여 재정자립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문화예술 전문기관 이미지 확산을 위한 재단 홍보 협력망 운영 등을 진행하여 경기도 문화예술 자원을 도민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n이어서 업무보고서 62쪽 문화예술본부입니다. 경기도 31개 시군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지역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초예술 활성화 및 전문예술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 다양한 신진 예술가 진입 및 육성을 위한 지원 등 경기도 예술지원체계의 공정과 다양성을 강화하겠습니다. 지역문화자원 발굴 및 문화거점공간을 조성하고 생활문화 공동체 지원사업 등을 진행하는 한편 성공적 생활문화재생 모델로 정착되고 있는 경기상상캠퍼스의 지속적 운영과 소외계층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의 이용률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경기창작센터에서는 생활문화 조성을 통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공정한 예술창작 지원환경 조성에도 힘쓰겠습니다. 또한 온라인 예술교육 플랫폼 구축사업인 경기창작센터 2.0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예술창작 환경조성을 위한 문화예술 기반 구축을 위해 예술인 전수조사, 새로운 예술을 위한 기술지원 사업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86쪽 지역문화교육본부입니다.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공간조성을 통해 지역문화기반 구축을 중점으로 지역문화 자원 발굴 및 재생 사업과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여 차별화된 경기문화 브랜드를 개발하고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여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겠습니다. 남북 윷놀이 대회를 통해 남북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전통문화 활성화 및 공동체 의식 고양에 노력하겠습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나눔인 악기 대여 사업과 함께 경기도형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경기미술창고 사업을 추진하여 미술작품의 체계적 관리와 활용을 통해 경기도민 문화향유권 증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108쪽 경기문화재연구원입니다. 경기도 내 문화유적 학술발굴조사와 문화유산 자원을 활용하여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겠습니다. 또한 경기도의 유수한 문화유산이 세계적인 유산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126쪽 경기도박물관입니다. 친일문화잔재 청산을 위한 유물 수집 등의 추진결과를 전시하는 특별전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 전시 중이며 하반기에는 경기사대부 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상설전 및 기획전 등의 다양한 전시와 연계한 대상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도민들에 대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n업무보고서 136쪽 경기도미술관입니다. 동시대 작가의 다원적인 작품소개를 통해 다양화를 추구하고 관람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시 ‘동시대 미술의 현장’ 개최 중입니다. 소장품상설전과 연계한 학생 단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교육플랫폼으로서의 미술관의 역할 또한 수행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146쪽 백남준아트센터입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백남준의 대표작을 시간의 역순으로 보여주는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를 전시 중이며 이 밖에도 다채로운 전시를 개최하여 백남준 예술세계의 즐거움을 경기도민과 대중에게 경험케 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비디오 서재를 운영하여 비대면 시대에 발맞춰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156쪽 실학박물관입니다. 실학 콘텐츠를 통해 관람객에게 영감과 즐거움을 주는 기획전으로 상반기 특별전 ‘인류세, 기후변화의 시대’를 전시 중에 있습니다. 하반기 특별전으로 ‘한중수교 30주년 기념특별전’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교육ㆍ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실학의 대중화 및 경기 동북부 지역문화 거점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166쪽 전곡선사박물관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순회전인 ‘호모사피엔스전’이 예정 중이며 이 밖에도 수시 기획전 개최 및 주제별 심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선사문화 이해도 제고에 노력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실감콘텐츠 및 영상콘텐츠를 재구성한 영상 개편으로 선사 메타버스를 구축하여 새로운 전시문화를 선도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175쪽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입니다. 안전한 상설전시장 운영 관리와 함께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전시를 계획 중에 있으며 교육대상의 연령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맞춤형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민문화교육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자 합니다.\n업무보고서 188쪽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입니다. 숲ㆍ생태ㆍ환경 주제의 독자성을 살린 차별화된 전시콘텐츠를 강화하고 자연생태와 예술교육에 방점을 둔 특화 프로그램으로 박물관 고유의 교육기능을 강화하겠습니다.\n마지막 업무보고서 198쪽 뮤지엄지원단입니다. 용인에 위치한 뮤지엄파크와 주변 지역과의 상생발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문화상품권 통합운영을 활성화하여 수익증대 방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디지털 뮤지엄으로 도약하기 위한 관람객 서비스를 보다 강화하고자 합니다.\n이상으로 경기문화재단 2022년 주요업무에 대해 보고드렸습니다. 위원장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참고자료인 재단 이사 및 간부 현황은 배부해 드린 주요업무보고서와 유첨자료 내용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네, 그렇게 하십시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감사합니다.\n이상으로 2022년도 경기문화재단 주요업무보고를 마치겠습니다.\n업무보고서(경기문화재단)\n○ 위원장 이영봉 주홍미 문화예술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서흥식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나오셔서 2022년도 업무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안녕하십니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서흥식입니다. 새롭게 출범된 제11대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영봉 위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위원님을 모시고 한국도자재단 2022년 업무보고를 드리게 됨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n업무보고에 앞서 저희 재단의 주요간부를 먼저 소개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장동광 상임이사입니다.\n(인 사)\n경영본부 김동진 본부장입니다.\n(인 사)\n사업본부 민경오 본부장입니다.\n(인 사)\n뮤지엄본부 이준한 본부장입니다.\n(인 사)\n이상으로 저희 주요간부 소개를 마치고요. 금번 업무보고는 유인물에 명기된 일반현황, 비전 및 전략, 민선8기 추진방향, 주요사업 추진현황, 향후 전략과제 순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n먼저 7쪽 일반현황입니다. 저희 한국도자재단은 세계 도자문화의 중심축을 경기도로 모으고 한국 도자문화와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재단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으로는 세계 도자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와 국제공모전, 국제교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도자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천, 여주, 광주 3개 시에 도자박물관과 도자미술관을 운영하고 상설 도자체험교실,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도자문화교실 등 도민의 도자문화 생활화를 위한 다양한 공공문화사업을 추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자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활성화를 위하여 경기도자페어를 비롯한 국내외, 온ㆍ오프라인 도자 판로 지원사업과 도예인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n다음은 8쪽 재단 기구 및 정원입니다. 저희 한국도자재단의 기구 및 정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직 및 기구는 경영본부, 사업본부, 뮤지엄본부 3본부 10팀이고 인력은 공무직을 포함하여 109명 정원에 현원은 임원 2인과 일반직 62명, 공무직 40명으로 총 104명입니다.\n다음은 9쪽 2022년도 예산현황입니다. 2022년 한국도자재단 예산규모는 1회 추경 기준으로 177억 원입니다. 세입은 경기도 출연금 108억 원과 자체재원 69억 원입니다. 자체재원 69억 원 중 40억 원은 국비 및 공기관 대행사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29억 원은 순세계잉여금, 관리사업수익, 이자수익, 미술관 및 박물관 운영수입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출규모는 세입과 동일한 177억 원으로 재단운영 부문 79억 원과 도자 정책사업 부문 50억 원, 자본적 지출 15억 원, 공기관 대행지출 33억 원으로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페이지부터 있는 부서별 주요기능은 위원님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13쪽 비전 및 전략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저희 한국도자재단은 도자문화의 생활화, 도자공예의 세계화, 도자산업의 혁신화 등 3가지 미션을 바탕으로 도자문화산업을 선도하는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도자산업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기반 구축, 도자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역량 강화, 협력과 소통을 통한 지원 플랫폼 구축, 지속성장 경영 인프라 조성 등 네 가지 핵심 전략과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경기도민의 삶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도자문화 및 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재단 임직원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n다음은 17쪽 민선8기 추진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도자재단은 민선8기의 정책방향인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과 문화향유에 맞춰 도예인 지원, 도자산업 진흥, 도자문화 확산의 세 가지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첫째로 도자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입주형 창작지원 사업을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내 31개 시군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공유공방을 개설하고 도예전공학생 등 예비 도예인들의 창작, 창직 활동을 지원하겠습니다. 둘째,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 유산인 도자에 AR, VR 등 첨단 IT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기획하여 한국 대표문화 콘텐츠로서의 도자문화 가치 확산에 앞장서겠습니다. 셋째, 경기도민의 일상 속 도자문화 향유 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어린이 친화형 전시 프로그램, 청소년 문화예술 특화교육, 은퇴자 및 실버계층을 위한 미술치료 등 세대별 맞춤 문화향유 프로그램을 강화 운영하겠습니다. 또한 문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하여 찾아가는 체험 프로그램, 사회적 약자 도자 체험키트 등 소외계층 및 소외지역을 위한 문화예술 복지사업 확대에도 힘을 쓰겠습니다.\n23쪽부터 61쪽까지의 주요사업 추진현황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희 한국도자재단은 사업전략 목표인 도예인 지원, 도자산업 진흥, 도자문화 확산을 축으로 재단 주요업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n먼저 23쪽부터 27쪽까지의 도예인 지원사업 부분입니다.\n23페이지입니다. 도예인 지원사업은 도예인의 창작활동 및 창작물 보호 등을 지원하여 도예인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추진하는 사업으로 도예인 성장지원 사업, 도예단체 홍보마케팅 지원, 도자정보센터 운영, 전통가마 소성지원 사업, 경기지역 축제 지원 등 5가지 사업을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부내용은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31쪽부터 35쪽까지 도자산업진흥 사업의 추진현황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n31쪽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자산업진흥 사업은 도예인의 판로를 개척ㆍ확대하여 침체되어 있는 도자산업을 활성화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으로 국내외 시장 및 코로나와 같은 한계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온ㆍ오프라인을 활용한 도자 판로 개척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으로는 도자 온라인 비즈니스 플랫폼 활성화, 경기도자 해외수출 지원 판로개척, 여주 도자세상 쇼핑몰 운영 및 국내 판로개척 사업,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운영, 경기도자페어 개최 등 5가지 사업을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n다음은 39쪽부터 61쪽까지 도자문화 사업의 추진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39쪽에서 61쪽까지의 도자문화확산 사업은 광주, 이천, 여주 3개 시에 있는 도자박물관과 도자미술관을 활용한 전시와 교육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자문화복합공간으로서 도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예술 수준과 편의성을 갖추고 도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으로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기 위하여 시설개선 및 환경개선 사업 등 20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광주 조선백자요지 위수탁 사업, 도자문화재 발굴조사와 같이 우리나라 도자 역사와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업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세부 사업별 자세한 내용은 유인물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다음은 65쪽 향후 전략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한국도자재단의 향후 전략과제인 경기도 31개 시군 공유공방 개설, 도자미술관ㆍ박물관 시설개선, 경기도자페어, 경기도 세계도자기 엑스포 개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경기도 31개 시군 공유공방 개설 사업입니다. 한국도자재단은 곤지암 도자공방거리, 여주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등 창업, 창직 및 문화공간 조성과 관련하여 다년간의 노하우와 운영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도 시군과 협의하여 경기도 31개 시군에 창업, 창직과 더불어 도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개념의 공유공방을 개설하여 도자문화 확산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66쪽입니다. 두 번째, 향후 전략과제인 도자미술관ㆍ박물관 시설 개선사업입니다. 2001년도에 건립되어 노후화된 미술관 및 박물관을 도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조성하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먼저 이천에 위치한 경기도자미술관은 노후시설 개선 및 전시실 기능을 향상하여 전문도자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광주 곤지암에 있는 경기도자박물관 또한 전면 리모델링 등 전시시설 고도화 및 전시콘텐츠 개선사업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현재 전문가 및 성인 중심의 콘텐츠로 관람환경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를 지역거점 체험형 미술관으로 조성하고 남녀노소 도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미디어 대중 전시를 개최하여 도자문화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n다음 67쪽입니다. 세 번째, 전략과제인 경기도자페어입니다. 2016년부터 매년 추진해 온 경기도자페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2020년부터 온라인 페어로 전환 추진하였으며 2021년도에는 23억 원의 매출과 520만 온라인 모객을 실현하였습니다. 2022년 경기도자페어는 지난 7월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4일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한 페어로 코엑스에서 개최하였습니다. 향후엔 도자페어와 경기도가 주관하는 디자인 페어, 공예 관련 행사 등 도내 아트페어들을 하나로 묶어 경기도 대표 아트페어로 개최하여 대중의 관심을 확대하고 관련 산업 및 K-컬처의 대표 플랫폼으로 육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경기도 및 관련 기관과 협의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68쪽입니다. 마지막 향후 전략과제인 경기도 세계도자기엑스포 개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한국도자산업은 코로나 등 대외 경제 여건의 악화로 장기간 침체국면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도자산업에 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특별한 견인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과거 한국도자문화 및 도자산업을 전 세계에 알리고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끈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와 같은 메가이벤트를 다시 개최하여 경기도자산업의 재도약은 물론 경기동부권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 전환점이 마련되기를 희망합니다. 2001년도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는 7,006억 원의 지역경제 유발효과와 4만 1,000명의 고용창출효과, 600만 명의 관람객이 경기도를 다녀갔습니다.\n다음 71쪽에 있는 재단 주요 연혁 부분은 양해해 주신다면 유인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n72쪽 재단 주요 시설현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도자재단은 국제조형도자 중심인 이천, 전통도자 중심의 광주, 생활도자 중심의 여주까지 총 3개 시에 도자테마공원과 미술관, 박물관 등이 결합된 복합문화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제조형도자 중심의 이천시 이천세라피아는 설봉공원 일원에 19만 6,000㎡ 규모로 조성된 도자테마파크로 세계 현대 조형도자 1종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미술관에서 전시, 체험, 교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도자미술 관련 전시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광주 곤지암도자공원은 60만 8,000㎡ 부지에 조선 왕실도자 생산지인 사옹원 분원 역사를 기반으로 1종 박물관인 경기도자박물관과 전통공예원, 신진작가 입주 및 육성지원을 하는 공간인 공방거리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주에 있는 여주도자세상은 1종 미술관인 경기생활도자미술관과 국내 1호 공예특화 메이커 스페이스인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도자 전문 쇼핑몰을 갖춘 생활도자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n지금까지 보고드린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한국도자재단 임직원 모두는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업무를 추진하겠습니다.\n존경하는 이영봉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께서 한국도자문화 및 도자산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이상으로 업무보고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한국도자재단)\n○ 위원장 이영봉 서흥식 대표이사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질의에 앞서 우리 위원님들 자료요청하실 위원님 계시면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수 위원님.\n○ 김성수(안양1) 위원 김성수 위원입니다. 경기관광공사에 자료요청하겠습니다. 경기도 내에 주요 관광지 현황을 서면으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다음 이석균 위원님 자료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 이석균 위원 경기관광공사에 지난 5년간 이사회하고 인사위원회 구성 인력, 혹시 개인 민감 자료가 있다 그러면 이름에 ○○ 표 해서 좀 해 주시고요.\n인사 규정 변경 지난 5년 동안 변경된 내용에 대해서 요약표를 만들어주시는데 변경 사유하고 신구 대조표 같이 좀 만들어 주십시오.\n혹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거나 혹시 과거에 5년 동안 소송이 되었으면 결과하고 진행과정, 내용 요약해서 제출을 해 주시되 이거는 지금 바로 정리가 어려우시면 나중에 의원실로 별도로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직무대행 유대열입니다. 아무튼 준비되는 대로 위원님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유종상 위원님 자료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 유종상 위원 경기문화재단에 지역문화콘텐츠 신규발굴 공모지원사업 운영이 10건 있는데 그 건의 사례를 좀 받아볼 수 있습니까? 그것 좀 부탁드리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황대호 부위원장님 자료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 황대호 위원 수원의 황대호 위원입니다. 일단 경기문화재단에 최근 5년간 행정소송 및 여러 가지 법적 쟁의 처리 결과를 좀 주셨으면 좋겠고요.\n그다음 지금 여기 직장 내 갑질 관련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ㆍ성폭력에 관련한 조사 및 심의운영위원회. 심의운영위원회 구성현황과 명단을 신속하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자료요청, 임광현 부위원장님.\n○ 임광현 위원 임광현 위원입니다. 경기문화재단에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를 제외한 실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에 최근 3년도 필요 없고요. 작년도까지만 전시기획 운영자료 총괄표라도 있으면, 기획, 참여 작가, 소요 예산, 약식 집행 결산표가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이경혜 위원님 자료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 이경혜 위원 이경혜 위원입니다. 지역축제 경기도, 경기관광공사에 부탁드립니다. 경기관광 축제로 선정된 지난 3년간의 리스트와 그 예산현황 그리고 그 사업 결과에 대한 보고서가 있으면 함께 제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다음은 조미자 위원님 자료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 조미자 위원 조미자입니다. 경기관광공사에 요청하는데 해외사무소에 비치된 홍보물 있잖아요. 그거 좀 받아보고 싶습니다.\n그다음에 한국도자재단은 도예가 등록시스템이 있더라고요. 그랬을 때 전공과 비전공 내지는 어떤 근거 이런 부분을 자료로 좀 받고 싶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자료요청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임광현 부위원장님.\n○ 임광현 위원 한국도자재단에 최근 3년간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도자실습 체험 프로그램 또는 어린이 영재발굴이라면 더 좋고요. 체험 프로그램,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3년간 교육 프로그램 현황표가 있으시면 제출 부탁드리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추가로 자료 제출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우리 위원님들께서 자료요청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자료를 제출해 주셔야 질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자료요청을 부탁드리겠습니다.\n질의 답변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해서 일문일답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위원님들의 질의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장 및 대행이 앉으신 자리에서 답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답변이 어려울 것 같은 경우 소관 부서장 또는 팀장이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고 직ㆍ성명을 밝힌 후 발언대로 나오셔서 답변하시면 되겠습니다.\n그러면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대호 부위원장님.\n○ 황대호 위원 수원의 황대호 위원입니다. 우리 주홍미 본부장님 잠깐 말씀 좀 드릴게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황대호 위원 대한민국에서 헌법보다 더 상위법은 없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황대호 위원 헌법보다 상위법이 없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혹시 헌법 11조 아십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n○ 황대호 위원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평등에 관한 겁니다. 1항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에 차별을 받지 아니한답니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감사합니다.\n○ 황대호 위원 동의하시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황대호 위원 이 헌법의 가치에 동의하시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동의합니다.\n○ 황대호 위원 지금 일련의 조금 불미스러운 일들이 문화재단에서 있었음은 당연히 감지하고 계시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황대호 위원 지금 현재 행정소송 어떻게 진행돼 가고 있습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행정소송 건이 현재 재단의 법규대로 잘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북부어린이박물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있고요.\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재단의 법규가 무슨 법규입니까? 어떤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찌 됐든 소송에 관한 비용과 강제이행금을 계속 내고 계신 상황인가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희 경영본부장 직무대리가 대신 답을 해도 될지 부위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n○ 황대호 위원 사실 세세한 답변의 내용은 아닌데 답변이 곤란하신 이유가 있습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저희 대표님께서 지금 급하게 일신상의 사유로 못 오시게 되면서 제가 경영본부의 일을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죄송합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면 안 그래도 말씀 잘 하셨으니까 일신상의 사유가 뭡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지금 코로나 확진 이후에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러면 사실 그 부분도 다, 건강이 사실 우선돼야 되고요. 저는 아까도, 이거는 좀 말씀을 드려야 되는데 일신상의 사유라면 미리 교감을 해 주시는 자세도 필요하다 말씀드리고요. 그럼 대신 답변해 주세요. 발언대로 나오십시오.\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경기문화재단 경영본부장 직무대리 이종희라고 합니다.\n○ 황대호 위원 본부장님! 지금 2021년도에 사실 이 내용들이 많이 언급됐네요?\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렇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래서 이 업무보고 내용에 보면 인권감사관 주요업무인데 인권감사관은 그럼 그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건가요?\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아니요, 인권감사관은 2019년도에 감사관 쪽으로, 감사실 쪽으로 해서 만들어진 거고요. 최근에 인권과 윤리경영 쪽이 강화되면서 부서 명칭을 변경한 내용입니다.\n○ 황대호 위원 우리 문화재단 총 인력이 몇 명이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518명입니다.\n○ 황대호 위원 굉장히 큰 조직입니다. 그렇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렇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어쨌든 직장 내 갑질 사건이 있었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렇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럼 지금 현재 직장 내 갑질 신고센터를 자체 내에 마련했습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직장 내 갑질 신고와 성희롱 신고센터는 별도로 운영이 되고 있고요.\n○ 황대호 위원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습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인권감사관실 이외에 저희 인사팀에서 고충처리상담원에 해당하는 게 원래는 2명 정도였는데 22명 정도로 확대를 해서 기관별로 고충상담원이 되어 있고요. 일차적으로 직장 내 갑질 신고를 고충상담원에게 하게 되고요. 1차 조사가 되고 이것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인권감사관실에서 6명의 위원들을 내외부로 구성해서 실질적으로 직장 내 갑질의 조사가 들어가게 됩니다.\n○ 황대호 위원 똑같은 이야기예요. 조사위원회와 심의위원회 내외부 3명, 3명은 이미 선임이 돼 있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아니요. 할 때마다 조금씩…….\n○ 황대호 위원 할 때마다 구성합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래서 노조 추천을 받아서 하는 경우들이, 그러니까 노조에서 추천한 위원, 재단 사측에서 추천한 위원들 이렇게 해서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지금 경기도교육청도 그렇고 대부분의 부서들이 사실 익명 보호를 하지만 조직 내의 폐쇄성을 봤을 때 이걸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는 구조다. 아까 말했지만 부서별로 상담원도 배치를 하셨지만 내부에서 운영되는 신고센터 이거 섣불리 신고할 수 있겠습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그래서 저희가 대안점으로 휘슬노트라고 해서 인권감사관실에서 외부에 별도로 다이렉트로 신고할 수 있는 기관을 올해 수립해서 그 기관을 선정해서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 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촘촘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요. 그러면 지금 강제이행금 현재까지 얼마 집행됐습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현재 2,800만 원 정도 집행을 한 상태입니다.\n○ 황대호 위원 도민의 세금이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렇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리고 노동과 인권이 있는 나라에서 지노위든 중노위든 왜 행정명령에 불복하는 것입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그거를 잠시 설명드리자면 근로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일어난 갑질로서 그 직원이 현재 근무 중에 있는 상태이고요, 그 갑질 피해를 받은. 그래서 복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저희는 좀 신중해야지 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에 우선적으로 해야지 되는 것들이 있었죠. 갑질…….\n○ 황대호 위원 그러니까 사실 그건 일전에도 분리했으면 좋았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550명의 조직에서 물론 마주치거나 업무교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피해자를 분리하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복직 가능하지 않습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현재 분리한 상태이기는 하고요. 그런데 이제 피해자……. 가해자, 피해자라고 명칭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으나…….\n○ 황대호 위원 적절치 않습니다.\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래서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입장에서를, 저희가 면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데 신고인분께서는 조금 많이 힘들어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현재 복직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n○ 황대호 위원 하여튼 굉장히 이런 것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씀 거듭 드립니다.\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재발되지 않도록 건강한 직장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리고 아까 심의위원회는 다른 조직입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외부 4명, 세부 4명이 지금 이 심의위원회 운영입니까?\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심의위원회는 매번 같은 사람들로 구성이 되지는 않고 있고요. 노조에서 추천을 받아서 구성하고 저희 쪽에서 추천을 해서 하는 인원들이…….\n○ 황대호 위원 그게 사안별로 달라져야 되는 이유는 뭐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문성에 대한 부분이 성 쪽에, 성희롱, 성으로 들어온 경우에는 성 전문가가 접근을 해야지 되고요. 직장 내 갑질에, 보편적으로 저희가…….\n○ 황대호 위원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내용상으로 했을 때 그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n○ 황대호 위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외부 4명, 세부 4명이라는 것이 어찌 됐든 당사자 입장에서, 신고자든 피신고자든 당사자 입장에서 굉장히 불편한 내용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이 그러니까 어떻게 선임이 되든 왜곡될 수 있는 구조라면 누가 봐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원회 구성도 고민을 해 보시라 이 말씀입니다.\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그래서 아마 인권감사관실에서 이거는 위원회를 구성해서 진행하고 있는데요. 외부 인원을 거의 다 하는 것으로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n○ 황대호 위원 그렇게 촘촘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지금 경영본부니까 우리 경기상상캠퍼스 혹시 관련 사업내용도 담당하고 계시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예산하고 사업내용.\n○ 황대호 위원 사업내용. 지금 경기상상캠퍼스 굉장히 핵심가치를 가지고 사실 문화콘텐츠와 지역주민들 여러 가지 활용을 적극적으로, 많은 그런 기대를 안고서 사실 만들어졌거든요. 지금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상상캠퍼스에 대한 운영을 한참 코로나로 인해서 활성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2주에 한 번씩 축제를 통해서 도민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고요. 그리고 입주 단체들도 3년이 지나서 지금 다시 재구성을 해서 활발하게…….\n○ 황대호 위원 굉장히 서울대 농대 부지를 활용하면서 사실 이 지역뿐만이 아니라 남부권에서도 많이 사용들 하시고.\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그렇습니다.\n○ 황대호 위원 다만 그 입주 단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장벽이 높다.” 그러니까 지역주민들과 오로지 시민들이 사용하는 데 여러 가지 사실 제도적 절차를 검증 안 할 수야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n그다음 여러 가지 박물관들이 있거든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우리 경기도민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따져보면 결국은 무료화를 검토해야 된다라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보면 무료화 검토가 본인들께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셨다고 지금 나와요. “무료화 검토 전후로 고객의 입장 추이를 확인했을 때 별 다를 게 없어서 무료화는 의미가 없다.” 지금 그렇게 답변이 온 것 같아요. 한번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 주시고 무료로 개방할 수 있는 기관들은 신속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문화재단경영본부장직무대리 이종희 네, 검토 후에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황대호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황대호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석균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이석균 위원 사업계획 보고이기 때문에 간단한 거 하나 좀 여쭤보겠습니다. 우리 경기문화재단에 어린이박물관이 지금 수원에 있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용인에 있습니다.\n○ 이석균 위원 용인에 있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용인에 있습니다.\n○ 이석균 위원 선사박물관은 연천에 있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맞습니다.\n○ 이석균 위원 실학박물관은 남양주에 있죠?\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맞습니다.\n○ 이석균 위원 그러면 이 박물관을 가려고 그러면 계획해서 가서 좀 향유하면 제대로 하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지금 우리 경기문화재단에서 여러 박물관들을 소유하고 있고 운영하고 있고 또 독특한 프로그램과 체험으로 많이 하고 있죠? 서로 전문영역의 이러한 박물관의 콘텐츠나 체험들을 우리 같은 기관인 경기문화재단의 다른 곳에서 특별전시라든지 주말 체험을 좀 교차로 하실 생각은 있으세요? 여기에 덧붙여서 각각 특색이 있는 콘텐츠들을 서로 퓨전해서, 실학과 또 어린이와 이렇게 해서 유물 전시 포함해서 그렇게 퓨전 프로그램과 지역을 좀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또 계획이 있으면 어떻게 하실 건지 좀 얘기해 주십시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 방금 위원님께서 의견 주신 대로 저희 경기도가 31개 시군으로 워낙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저희 재단에서 8개의 뮤지엄이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많은 콘텐츠를 다 담아내기에 물리적인 또 예산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방금 위원님 말씀 주신 의견을 저희가 사업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질의 끝나셨습니까?\n○ 이석균 위원 네, 끝났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조미자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조미자 위원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까 경기둘레길에 대한 자료를 제가 요청했었는데 실제로 경기도에 둘레길, 평화누리길, 아까 생태탐방로. 굉장히 많은 길들이 조성돼 있고 저희 지역에는 광릉숲둘레길이라고 또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길이 조성이 됐는데 실제로 지금 가보면 길이 다 끊겨 있고 사유지여서 못 들어가고 중간이 완전히 훼손돼 있고. 그래서 이후에, 조성 자체는 굉장히 열의를 갖고 하시는데 사후관리가 너무너무 안 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지속가능성에 대한 준비가 돼 있고 이 일들이 추진되고 있는지 이런 부분들을 좀 듣고 싶습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 유대열입니다. 이것은 아마 문화재단에서도 일부 답변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지금 경기도에도 기존에 경기옛길이라고 문화재단에서 주관해 오는 길들이 있었고요. 저희 관광공사는 경기둘레길이라고 31개 시군 중에서 15개 시군이 연결된 주변으로 860㎞의, 사실 기존의 길이 대부분이지만 기존의 길들 중에서 연결시키고 또 없는 길을 새로 만들고 해서 작년 11월 말에 개통이 됐는데요. 그걸 준비하는 과정 중에 보면 기존에 있던 길들을 좀 더 보수하고 더 좋게 만들고 하면서 사람이 계속 사용이 되다 보면, 또 이렇게 지난주, 이번 주에 이렇게 많은 폭우나 이런 것 때문에 계속 손실은 해마다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 유지하는 비용은 도에서 저희가 출연금으로 지원받고 또는 대행사업비로 지원받고 또 시군에 같이 협력하는 그런 사업으로 해서 예산을 계속 확보해서 꾸준히 보수해 나가고 있습니다.\n○ 조미자 위원 실제로 있는 길을 조성한 부분은 문제가 좀 덜한데 사유지 부분들을 지나갈 때 어떤 조건 있이 이런 것들을 추진하는지. 그 부분이 중간에 서로 관리가 안 되다 보면, 사유지가 자기 재산권을 주장하다 보면 끊겨버리거나 전혀 관리가 안 돼서, 이 부분은 지금 만든 지 얼마 안 되니 지금이야 프로그램이나 다른 사업들이 계획돼 있어서 좀 지켜볼 건데 정말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특히 하드웨어를 추진할 때는 이후의 운영에 대한 부분까지도 좀 계획을 잡아서 해 주셔야지, 공간 조성도 그렇고 만들어 놓고 3년 지방 이양 그다음에는 없어지는 것들, 목적과는 관계없이 사용되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앞으로 저도 계속 챙겨나갈 부분인데 사업계획을 세울 때부터 그런 예산까지도 배정이 된다면 저희들이 하고 있는 사업이 훨씬 풍요롭게 인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위원님 말씀 충분히 동의하고요.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n○ 조미자 위원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조미자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거수해 주십시오. 임광현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임광현 위원 안녕하세요? 가평 의원 임광현 도의원입니다. 경기문화재단에 여쭙겠습니다. 인력이 518명의 경기문화재단은 대한민국 유수의 리드하는 문화재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서울문화재단이 가까이 있지만 경기도문화재단이야말로 한국 문화재단의 표본이고 그간 수년간 몇몇 불미스러운 일로 그 멋진 조직이 흠집이 난 것은 익히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잘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고요. 아울러 그렇게 비대한 518명의 조직이, 경영본부에서 지금 말씀 나와서 드리겠는데 정규직이 201명. 운영직, 무기계약직이죠? 맞습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임광현 위원 그다음에 기간제가 170명. 합치면 정규직은 너무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행정운영경비 117억을 갖고 급여를 주는 부분에 경영본부에서 어려움이 있으실 거라고는 알고 있습니다. 워낙 조직이 크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기본소득을 보장받아야 되고 개인의 삶의 질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일반 사기업하고 다른 게 공기업은, 문화재단에서 518명의 거대 조직을 경영본부에서 급여 산출하고 복리후생, 여러 가지 직원의 삶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해 주고 계신데 오늘 업무보고에서 무엇을 따지고 캐묻기보다는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이 자리를 빌려서.정규직이 201명에 무기계약직 147명, 기간제 170명. 참으로 기간제와 무기계약직의 조직력으로 이 조직은 돌아가느냐라고 오해받을 수 있을 만큼 공공조직이 표방하는, 또 문화재단이라 하면 그 조직 내에 전문성을 띠는 부서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요. 우리가 일반 행정직, 회계조직 또는 무슨 뭐 하다못해 아까 말씀하신 인권감사관의 어떤 성희롱 부분에 대한 성 전문가 그거에 이르기까지도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을 필요로 하는 게 문화재단의 조직 내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동의하십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충분히 동의합니다.\n○ 임광현 위원 충분히 동의하신다니까 한 말씀 더 드리는데 경영본부에서 이런 예산 부분에 있어서 막대한 큰 예산에서 직원 조직운영을 좀 더 정규직화할 수 있는, 문화재단 내에서 노조에서 “해 달라, 해 달라, 왜 안 해 주냐.”라는 그런 충돌보다는 앞선 합리적인 경영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셔서, 우리 무기계약직은 좀 그렇다고 그래요. 그렇지만 계약직이 170명이라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되고 그들이 최저임금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데 과연 그 명예롭다는 경기문화재단에 입사 후에 얼마큼의, 제가 개인적으로 알기로 퍼센트는 모르지만 이직률이 상당히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무기계약직에 괜찮은 곳이 있다면 그 멋진 경기문화재단을 가감 없이 버리고 나가는 데이터를 본 적이 있어요. 확실한 데이터는 제가 요청까지는 안 하겠지만 이 부분을 오늘 업무보고에, 경기문화재단에 간곡히 요청하고 싶습니다.\n왜냐하면 우리 경기문화재단은 북부와 수원, 즉 여기를 출퇴근하는 우리 전문 문화재단의 요원들은, 저는 조직원이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전문요원들은 경기도에 거의 90% 이상이 거주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경기도의 도민이고 우리 도민의 권익신장과 그들의 삶의 지속 가능한 어떤 영위를 생각한다면 이 큰 조직 경기문화재단은 이런 부분에 한 발 나아가셔서 좀 더 효율적인 경영조직의 진단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불미스러운 일을 뒤로 하고. 그렇다면 경기문화재단이 앞으로 한 발 나가는 데 정말로 멋진 또 플랜이 나타날 수도 있다라는 게 제 소견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고견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임광현 부위원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해 주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박진영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박진영 위원 경기관광공사에 질문 좀 드리고 싶은데요. 책자의 49페이지에 보시면 향후 계획에 베트남 현지 경기관광공사 대표사무소 개설이라고 돼 있는데 그 위쪽으로 가보시면 19년도 방한객 순위를 보시면 베트남이 7위잖아요. 그래서 왜 해외 대표사무소가 베트남에 설치되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 유대열입니다. 최근에 추진한 사업인데요. 이건 우리 위원장님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저희 사업본부장님이 조금 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n○ 박진영 위원 네, 그러시면 자료 주실 때 내부적으로 왜 베트남으로 검토했는지 꼼꼼히 그 자료들 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아니, 지금 답변을 저희 사업본부장님께서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 박진영 위원 네.\n○ 경기관광공사사업본부장 이동렬 안녕하십니까? 경기관광공사 사업본부장 이동렬입니다. 위원님께서 말씀주신 베트남 대표사무소 건에 관해서는 사실 베트남 시장이 아시아권에서 방한 성장률을 봤을 때 2019년까지로 보면, 물론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가장 큰 국가는 중국하고 인접 국가인 대만, 일본으로 볼 수 있는데 그 3개의 국가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성장률을 보여 왔던 곳이 베트남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는 인구의 구성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가 가장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고요. 그 사람들이 친한에 대한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었고 또 하나는 크게 베트남의 경제가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면서 중심이 정치 중심인 하노이 그리고 경제 중심인 호찌민으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확인해 본 바로는 호찌민 지역에서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에 대한 방문 욕구가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어서 앞으로 잠재 시장을 키워나가는 의미에서 호찌민으로 일단 선정을 해 놓고 있는 상황이고요. 아직 확정은 아닌 그런 상황입니다.\n○ 박진영 위원 예상되는 사업비가 얼마죠?\n○ 경기관광공사사업본부장 이동렬 연간, 저희가 현재 올해 예산으로는 1억 원이 반영되어 있고요. 연간 순수하게 대표사무소를 운영하는 데는 현지 직원 2명하고 한국인 직원 1명 해서 약 3억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n○ 박진영 위원 연간 3억이시죠?\n○ 경기관광공사사업본부장 이동렬 네.\n○ 박진영 위원 지금 2022년 소요예산 4억 3,000인데, 해외 경기관광 홍보사무소가 4개인데 그거가 4억 3,000인데 1개에 연간 3억이 들어간다 하시는 거죠?\n○ 경기관광공사사업본부장 이동렬 네, 맞습니다. 그런데 앞에 위탁사무소의 경우는 저희가 한국관광공사 현지 지사이거나 아니면 기타 현지의 한국으로 송출하는 여행사에 저희 현지 직원, 경기관광공사를 홍보해 줄 수 있는 현지인을 직원으로 1명 채용해서 하는 위탁사무소의 형식이라서 조금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n○ 박진영 위원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업본부장 이동렬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박진영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김성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김성수 위원입니다. 우리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한국도자재단의 업무보고 잘 받았습니다. 우리 존경하는 임광현 부위원장님의 질의에 이어서 우리 경기문화재단 본부장님께 질의드리겠습니다. 인력이 지금 현재 정원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인력 결원이 언제부터 있었나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저희가 3년 전에 기간제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년을 앞두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시설운영직들. 그런데 지금 최근에 정년을 하신 분들이 많아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지금 현재 추가 채용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준비 중이에요, 고민 중이에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진행 중에 있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아, 진행 중에?\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진행 중입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어디까지 지금, 뭐 공모를 받았나요? 지원을 받았나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공모를 진행하고 또 지원을 받고 심의를 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때로는 정원에 못 미치게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어 왔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또 재공고를 내고 또 심의를 하고 하는 과정을 지금 수개월째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언제까지 정원이 다 차는 거예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속하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사업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많은 인원 20……. 정규직이 한 2명 정도고, 정원에 비했을 때. 운영직이 아마 25분 정도가 결원인 것 같아요.\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n○ 김성수(안양1) 위원 지금 특히 운영직이라는 게 물론 무기계약직이겠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인 일들을 하신 분들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분들이 결원이 일어나서 과중한 업무가 서로 맞지 않다 보면 또 안전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은 빨리 정원을 채워서 일이 수월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업무가. 차질 없이.\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알겠습니다.\n○ 김성수(안양1) 위원 그래요. 아무튼 저희들이 이제 처음 시작이기 때문에 궁금한 사항은 물론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도 상임위 활동하면서 업무에 대해서는 차츰 배워가고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앞으로 있을 예산이라든가 행정사무감사 이런 준비에 대해서도 함께 같이 노력하고 열심히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성수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김철진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철진 위원 안산 김철진 위원입니다. 도자재단 질문 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 방방곡곡에 도자문화체험 31개 시군 공유공방 개설이라는 내용이 향후 전략과제로 설명이 돼 있는데요.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드리고 싶어요. 이게 한 곳을 정해서 31개 시군이 프로그램으로 공유하는 건지 아니면 31개 시군이 거점을 둬서 개별화로 시장이 되는 건지 좀 이해가 필요한데요.\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도자재단 대표 서흥식입니다. 지금 공유공방 개념은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계획으로 두 번째 말씀하신 사항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31개 시군에서 유휴시설이 있는 곳에 공방을 개설해서 그 지역의 학생이나 도예인 이런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별로 개설을 하되 공유를 할 수 있는, 31개 시군이.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할 계획으로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럼 단편적으로 얘기하면 31곳에다 다 하나씩 개설할 수 있다는 겁니까?\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추후에 그렇게 할 계획이고요. 우선 시범적으로, 도하고 협의가 아직 안 끝난 사항인데 협의가 되면 수원부터 시작을 해서 31개 시군으로 확산할 계획입니다.\n○ 김철진 위원 목적이나 내용은 유휴공간을 활용해서 공예과 졸업자라든가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해서 사업자등록 지원한다는 건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또 한편으로 봐서는 지역에 가보면 이 공방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은 사례들이 꽤 많이 있거든요. 이런 시설을 재활용한다든가 복합적으로 융복합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같이 검토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다음에 관광공사요. 사실은 모든 공사나 공기업이 기본적으로 예산이 있어야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요. 일종의 신사업 영역 개척 경영시스템 고도화 중에 하나가 보유자산 활용 방안으로 매각을 통하는 자산 확보라는 내용이 하나 있어서 세부적으로 문의를 하나 드리고 싶어요. 물론 수원 영화지구에 사업화 추진도 하나 있고 그다음에 제가 안산이기 때문에 또 대부도에서 선감유원지에 대해 관심을 좀 가지고 있는데 선감유원지 매각을 통한 신규사업 재원 마련한다 이런 내용이 있어서 제가 오전에 자료를 요청해서 기본적인 내용은 받았는데 사실은 늘 그렇습니다. 위원장님, 똑같은 내용입니다마는 자료요청을 하면 세부적인 것보다는 목차 중심으로 나열이 들어오기 때문에 각론으로 들어가서 좀 들여다보려고 하면 또다시 요청해야 되는 일이 좀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내용을 보니까 09년 8월이기 때문에 한 12년 전에 대상지를 경기도가 관광공사에 현물출자를 했는데 이때 감정가격이 얼마나 됐을까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직무대행 유대열입니다. 그 당시에 장부가액이 304억 원이었고요.\n○ 김철진 위원 당시에요? 지금이 아니라 12년 전 여쭈는 겁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맞습니다. 2009년도 그때 장부가액이 304억입니다.\n○ 김철진 위원 이게 31만 ㎡에 해당되는 면적 전체가 그렇습니까?\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그렇습니다. 이게 매립지가 돼서 유원지로 돼 있고요.\n○ 김철진 위원 네. 그리고 나서 한 16년도에 경기도와 공사 그리고 안산시 그다음에 외투기업이 해서 선감도 투자에 관련된 MOU를 체결했다가 2년 만에 실제로 해제가 돼요. 그러니까 여기 내용으로 본다면 기본적으로는 선감유원지를 투자유치를 통해서 무엇인가 관광 목적에 맞게끔 활용하려고 하다가 중단이 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맞나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맞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리고 나서 이 부지가 지금 현재까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만 상당한 부분들이 일종의 방치 그래서 무단점유나 아니면 일부는 임대차 관리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방치는 아니고요. 저희가 안산시청, 안산시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해외 외자 투자회사를 유치해서 거기다 더 큰 사업을 하려고 했었지만 여의치가 않아서 그게 2018년 말에 그만 해제가 되면서 안산시에서 이 땅을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와서 저희는 그쪽에 많이 추진을 해 왔었고요. 기존에…….\n○ 김철진 위원 그래서 최근에는 안산시가 이걸 매입할 뜻을 비쳤고 일부 예산편성까지 됐는데 나중에 어떤 조건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결국은 매입을 못 했잖아요, 시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n○ 김철진 위원 매입을 못 하고 말미에 보면 현재, 저도 이 지역을 잘 압니다. 잘 아는데 부분적으로 임대돼 있는 곳도 있고 또 무단경작이나 무단점유를 하고 있는 곳들도 있고 또 그 즈음에 공유수면 바로 앞쪽에는 일종의 모래 채취 이쪽하고 관련되어 있는 어떤 개발회사가 사용을 하는데 이 개발회사가 사용하면서 사실은 도로를 이용해서 이 부지를, 공사부지를 도로로 쓰는 경우도 있잖아요. 도로로 쓰고 있죠, 사실은 있는 경우가 아니라.\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그렇습니다.\n○ 김철진 위원 이런 일련의 사항들이 있는데 이걸 관리를 잘 하셨다고 생각하나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지금 계속 관리를 해 오고 있고요. 특히 작년에는 저희가 TF를 구성해서 안산시와 매각을 중점으로 하기 위해서 그쪽에 경작을 무허가로 하시는 그런 분들하고의 마찰을 줄이고 잘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저희가 그쪽 관리를 잘 해 오고 있었고요. 결국은 작년 말에 안산시에 매각이 안 되는 그런 결과로 인해서 올해는 일부만 일단 그런 제척부지들을 처리한 상태입니다.\n○ 김철진 위원 그래서 결국은 일종의 인접시설 침범이라든가 기타 사유로 해서 9필지를 매입의사가 시가 없기 때문에, 안산시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이 지금 5월 달, 금년 5월 달 중으로부터 현재까지 유원지 제척부지를 매각 추진해서 9필지를 지금 매각한 건가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매각이 됐습니다.\n○ 김철진 위원 매각이 됐어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n○ 김철진 위원 어느 단계까지 갔습니까? 계약 완료가 됐나요, 아니면…….\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지금 계약이 돼서, 전자입찰경쟁해서 7월 말에 계약은 완료가 됐고요. 일단 잔금은 저희가 9월 달에 마지막으로 받아야 되는데 현재 10% 받은 상태입니다.\n○ 김철진 위원 그럼 조금 더 여쭤보면은 이 9필지가 매각은 됐는데 사용목적이나 또 이런 것들은 어떻게 연관이 돼 있습니까, 이 9필지는?\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그 바로 인접지가 펜션단지가 구성되어 있는데 그쪽에서 물려서 저희 부지를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던 그런 부지들…….\n○ 김철진 위원 그 옆에 용사촌 있는 펜션단지를 말씀하시는 거죠?\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그다음에 용사촌에서도 일부 경작을 하고 있었고요. 그러한 다툼이 있는 부지들을 정리한 것입니다.\n○ 김철진 위원 나중에 세부적인 사항을 자료로도 요청을 드리겠습니다마는 제가 봐서는 그런 사항이거든요. 전체적으로 36필지를 경기도가 공사에 현물출자 했을 경우에는 관광목적에 맞게끔 이 부지를 포괄적으로 개발해서 결국은 대부도 또는 경기도 그리고 안산, 인접해 있는 화성이나 시흥하고 맞물려서 관광메카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다 안 됐는데 이것을 현재 9필지를 분할매각했다라고 하면 그런 목적에 부합되는 개발이 가능할지 또 하나 의문이 있고요. 나머지가 27필지가 남았습니다마는 이 부분도 지금 매각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 20필지를 앞에 전자처럼 필지 분할돼 있는 상태로 매각이 가능합니까, 아니면 일괄매각하려고 합니까?\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현재는 일괄매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n○ 김철진 위원 일괄매각으로요. 하나로 봐서. 현재 진행사항이기 때문에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이 부지에 대한 매각 추진 계획이나 일정 또 세부사항들을 자료로 요청을 드리겠습니다.\n저는 좀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실은 관광공사가 초기에 경기도가 관광 목적의 선감유원지를 개발했으면 좋겠다라는 목적을 가지고 현물출자 받았는데 내용적으로 본다면 못 한 거거든요. 그렇죠?\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그렇습니다.\n○ 김철진 위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것을 투자유치든 뭐든 간에 일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분할매각을 9필지 하고 나머지 27개 필지를 일괄매각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경기도가 관광공사에 현물출자한 목적 달성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거죠. 나쁜 말로 얘기하면 12년 동안 땅 가지고 있다가 크게 올라간 땅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데 감정가로 보면 한 45만 원 남짓하잖아요, 평당.\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n○ 김철진 위원 그렇지만 이것은 목적 달성을 못 한 상태에서 현재 내용적으로는 사업 영역을 개척한다라고 하지만 땅 팔아서 재원 조달하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혹시 초기에 계획했던 대로 안산시나 투자유치, 경기도가 공사가 함께 그 목적에 맞게끔 활용할 계획이 혹시 없는지 한번 검토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위원님 의견 충분히 공감하고요. 한 15년간의 과정 중에 전 세계적인 그런 시류도 타면서 큰 좋은 개발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그때그때 실패되는 그런 상황도 있었고요. 최근 들어와서도 또 안산시와 3년 동안 잘 얘기돼 가면서 매각 거의 끝까지 오다가 결국 안 되는 바람에 저희도…….\n○ 김철진 위원 저도 작년 말까지는 이게 시하고 거의 협상이 마무리돼 가서 시가 예산편성까지 380억인가를 한 거로 알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매각이 안 된 것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파악은 못 해 봤는데 결국은 이제 무엇인가 분할매각한다는 것은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현재 9필지에 대한 매각에 관련된 전체적인 내용과 27필지에 대해서 매각 계획과 향후 어떻게 할 건지 일정 자료로 좀 부탁드립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알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당장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충분히 파악은 됐으니까.\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그리고 따로 또 보고를 위원님 필요하면 찾아뵙고 잘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진 위원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김철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이경혜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이경혜 위원 우선 경기관광공사에 여쭙겠습니다. 제가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는 경기남북부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경기관광공사가 이전을 할 계획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어디까지 어떻게 진행을 하고 있는지 계획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고요.\n두 번째가 지금 자료에 23쪽에서부터 보면 여러 다양한 콘텐츠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저는 이 전체적인 자료를 보면서 굉장히, 저희 위원님들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건데요. 예산이 너무나 없는, 형편없는 예산으로 이 일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해야 하는 사업들은 한 항목에 대해서도 너무 많은 사업들이 가지를 뻗고 있어서 과연 이렇게 사업을 하는 것이 지역의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아도 이게 제대로 활성화가 될 건지에 대한 걱정이 돼서 이 부분을 어떻게 보면 지역균형 발전의 입장에서 본다면 형평성이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n아까 제가 자료를 요청하기는 했지만 지역의 축제만 해도 매년 정말 말도 안 되는 예산을 가지고 여러 지자체에 나눠주면 이것 하나 가지고 개발해서 만들 수 있는 지역축제가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질까 이런 우려 때문에 1년에 한 개를 하더라도, 한 지역을 지원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경기도민들을 떠나서 전국의 국민들이 다 가서 볼 수 있을 만큼 제대로 갖추어진 축제를 만들어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에 제안을 드려봅니다. 그래서 지금 너무 많은 사업들을 하고 계셔서 관리도 힘드실 거고 진행하시는 데 여러 가지 부적절하거나 어렵거나 그런 일들이 있으시겠지만 그런 검토를 한번 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n도자에 대해서 좀 여쭤보겠습니다. 해외수출 관련해서 도자재단에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해외수출 판로 개척을 하고 계신데 32쪽에 보면 지금 해외수출 판로 개척을 위한 수출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이게 지금 경기도 내에 도자산업의 사업을 하고 계시거나 예술가들이 어느 정도까지 함께 이 일을 진행하고 계신지 아니면 경기도에서, 도자재단에서 일임해서, 맡아서 판로 개척을 하고 계신 건지에 대해서 자세한 현황을 듣고 싶고요.\n마지막에 보면 이미 갔다 오신, 수출지원을 위해서 도자전을 개최하고 오셨던 지역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까지를 듣고 싶습니다.\n경기관광공사부터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경기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 유대열입니다. 위원님 질문하신 두 가지 질문에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n첫 번째, 저희 경기관광공사의 고양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가 2019년에 1단계로 경기관광공사가 고양으로 이전하는 게 발표가 됐었고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그 당시에 기존에 지어 있던 어떤 건물로 저희가 입주하는 게 아니라 경기도시공사 이쪽이 건물을 지으면 거기에 저희가 입주하는 그런 방식의 계약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2019년도에는 2024년에 입주하는 걸로 계획을 하고 발표를 했다가 지금 현재 결과적으로는 아직 경기도시공사에서 고양시와의 협약이 완벽하게 끝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게 되는 대로 저희는 입주하는데 현재는 2027년이나 2028년을 계획하고 있고요. 중간중간에 고양시와의 상황이 조금 바뀐 부분들이 있어서 좀 늦어진 것 같습니다.\n그리고 저희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이 있는 게 현재 저희 경기관광공사는 인재개발원에 무상으로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전을 하게 되면 저희가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5~10억 가까이의 임대료가 해마다 나가게 되기 때문에 처음 도시공사를 통해서 건물이 지어질 때에 저희가 도에서 어떤, 어느 정도 참여를 해서 처음부터 저희가 지분참여를 하든가 해서 저희의 사무실이 확보된 상태에 들어가야지 임대방식으로는 어려움이 좀 있는 문제도 해결해야 될 문제고요. 현재는 하여튼 답을 말씀드린다면 2027년 정도를 현재 계획하고 있습니다.\n그다음에 두 번째, 저희가 많은 사업을 적은 예산으로 하고 있는 것에 지적을 하셨는데 많이 동감하는 말씀이고요. 때에 따라서는 선택과 집중이 어떤 분들은 또 그런 지적을 하시고 어떤 분들은 31개 시군의 보편성을 많이 얘기하시고 그래서 모두가 다 맞는 말씀인데 그때그때 맞게 그리고 11대 문체위 새로 여기 계시는 우리 위원님들한테 많은 조언을 듣고 잘 협업하고 해서 우리 관광과의 많은 결정을 할 때 그 사항들을 많이 반영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n○ 이경혜 위원 고맙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도자재단 대표 서흥식입니다. 해외판로 개척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작년에 해외판로 개척을 시작한 이유는 지금 국내 도자시장 자체가 많이 사양산업에 들어가 있고 전 세계 시장에서 수출시장 같은 경우는 전 세계 수출시장 규모가 대략 한 10조 정도가 됩니다. 그중에서 74.5%가 중국 시장이, 중국에서 차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0.1% 수준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수출시장에서 한 10위 정도 되고요. 그래서 국내에서 지금 하고 있는 그나마 좀 컸던 기업들이 행남자기라든가 한국도자기가 있었는데 행남자기는 지금 현재 폐업 상태에 있고 한국도자기도 메인은 죽었고 이제 작은 자회사가 지금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경기도 이천, 여주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현재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개인 요장으로 지금 전국적으로 한 1,500개 정도의 요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1명에서 많아야 한 10명 이내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요.\n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개척할 수 있을까를 고민 끝에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자료 조사를 해 보니 전 세계에서 수출은 중국이 하지만 수입은 중국이 안 합니다. 그리고 수출시장이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고요. 그래서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려고 했었는데 저희가 해외 마케팅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자료를 근거로 해서 그러면 우선 해외시장에서 그나마 호주가 좀 괜찮았고 베트남 같은 경우도 이제 한류 붐을 타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은 걸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 경기도주식회사랑 같이 해 가지고 전시장을 임대로 해서 전시 운영하고 1명의 에이전시를 고용해서 지금 저희 도자 알리기를 지금 하고 있고요. 호주 같은 경우는 멜버른에 따로 전시장 마련은 아직 못 했고 지금 에이전시 1명 고용을 해 가지고 지금 현지 시장 바이어들을 조사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 자료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직 예산이 충분치는 않습니다, 전체 예산이. 그리고 물론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저희들이 직접 시장에 가서 시장 개척을 해야 되는데 못 한 것도 있고 그래서 그동안 못 가다가 올해 5월 말, 6월 초에 호주에서 하는 푸드앤와인쇼(Food & Wine Show)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호주의 많은 요리사들이 오고 해외 같은 경우는 도자기 구매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요리사들이 대부분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참가해서 저희 재단을 홍보했고요. 지금 해외에 나가 있는 제품 자체가 저희가 판매용으로 나간 게 아니고 홍보를 위한 홍보 목적용으로 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판매실적은 없고요. 거기서 바이어 콘택트하고 우리 도자를 알리는 그 정도 수준에 있습니다, 지금 현재로서는.\n지금 오프라인 쪽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고 온라인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네이버라든가 다른 데, 이런 쪽과 연계를 해 가지고 한국 내에서 도자페어를 할 때하고 해외 수출을 위한 이제 인터넷상의 홍보를 개시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 보면 아직 초기단계입니다. 그래서 많은 투자를 할 그런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n○ 이경혜 위원 그러니까 예산이라는 것이 꼭 그 결과물을 다시 수익으로 결과를 봐야 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지원을 하는 예산만큼의 어느 정도, 그 도자를 운영하고 있는 소규모의 업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효과는 있어야 될 것이고 판로가 개척이 안 되는 일이라면 이 일이 사실은 너무 허무한 일일 수밖에 없는 예산편성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판로를 개척하고 여기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운영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그리고 향후의 시장 운영 방안은 지금 에이전시를 이용하는 방안 플러스 해외에서 도자페어 같은 전시회 판매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중국이나 홍콩 이런 데서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현재 요장들에서 대규모 오더를 받더라도 그걸 생산할 수 있는 규모가 아직 안 되거든요. 그래서 향후에 주요 페어나 이런 부분들을 선별된, 전부는 못 데리고 가니까 선별된 요장 대표들을 같이 모시고 나가 가지고 현지 판매를 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추진할 계획입니다.\n○ 이경혜 위원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이경혜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거수해 주시기 바랍니다.\n(임광현 부위원장 거수)\n추가질의 때 하시죠.\n○ 임광현 위원 네.\n○ 위원장 이영봉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보충질의를 갖겠습니다. 임광현 부위원장님 보충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임광현 위원 시간이 많이 경과됐는데 죄송합니다. 도자재단에 간략하게, 업무보고 사항이니까 다른 거를 말씀드리기보다는. 작은 예산에 20여 개의 위수탁, 위탁사업까지 작은 예산에 알토랑지게, 업무보고를 보니까 하고 있는 도자재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이 위원은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아까 자료요청을 했는데 준비가 안 되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가 가까운 일본국에 보면 도자기의 메카 여러 가지, 우리가 도자기를 줬다고 하지만. 어린이를 통한 도예인의 육성 부분에 아낌없는 큰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러 사업 계획과 업무보고 내용에 우리가 가족 단위로 체험 부분, 특히 도자재단에서 하셨던 비대면 체험키트 1,000세트는 제가 개인적으로 알기로도 상당히 히트치고 도자재단이 아주 우리 경기도민들한테 큰 박수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전투적이고 효율적인 프로그램 지원도 너무 박수받을 만하지만 우리가 중장기, 우리가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벌기보다는 교육이라는 것이 100명에게 투자했는데 나머지 그 1명의 명인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고 도예의 얼을 지키고 전통 도자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혈통이다. 그것은 우리 여주, 이천 쪽에 있는 도예인이라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주제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업무보고 내용에 좀 더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아낌없는 예산을 편성하신다면 제가 문체위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따따블이라도……. 죄송합니다, 속어를 써서. 속기록에서 제해 주시기 바랍니다.\n(웃 음)\n아낌없는 성원을 보내드릴 테니 다음 만나 뵐 때는 이 칭찬도 한번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임광현 부위원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좀……. 아, 보충질의? 조미자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조미자 위원 조미자입니다. 아까 존경하는 김철진 위원님이 선감도 이야기를 하셔서요. 제가 알기로 재단에서 에코뮤지엄 선감학원 부분을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안산에서 만약에 매각이 돼서 안산으로 갈 경우에 이런 사업들이 어떻게 지속될지. 이게 부처 간에 칸막이가 외부에서 볼 때 굉장히 심한 건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공들여서 만들고 의미 있는 사업이 혹시라도 그런 부분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해서 꼭 사전에 협의하에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네, 감사합니다.\n○ 위원장 이영봉 또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저도 마지막으로 질의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제 우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왔는데요. 조직표를 보니까 너무 좀, 비어 있는 공간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보니까 우리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수장이 비어 있습니다. 사실 수장이 비어 있는데 어떤 일들이 그렇게 많이 추진이 잘 되겠습니까? 그래서 좀 강력하게 인사권자에게 건의하셔서 조속히 그 자리가 채워질 수 있도록 우리 본부장님들은 수고를 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 먼저 드리고요.\n두 번째는 예산 관련인데요. 출자ㆍ출연금을 받아서 세 곳 다 운영하시죠?\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 맞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보니까 관광공사가 한 52억 정도고요. 경기문화재단이 한 400억 그리고 한국도자재단이 한 100억 정도. 맞습니까?\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네.\n○ 위원장 이영봉 그래서 이 출자ㆍ출연금에 대한 집행내역 최근 3년 것을 우리 위원님들이 보실 수 있도록 제출을 좀 해 주시고요. 그리고 여기에 순세계잉여금이 있죠? 우리 관광공사는 순세계잉여금이 1년에 매년 어느 정도나 되죠?\n○ 경기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유대열 지금 한 110억 정도가 순세계잉여금으로 있습니다.\n○ 위원장 이영봉 그다음에 문화재단은 어느 정도 됩니까?\n○ 경기문화재단문화예술본부장 주홍미 문화재단은 50억 정도 잉여금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50억. 그리고 한국도자재단은 어느 정도 되죠?\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10억 규모입니다.\n○ 위원장 이영봉 10억이죠?\n○ 한국도자재단대표이사 서흥식 네.\n○ 위원장 이영봉 이 세부내역도, 순세계잉여금 이것도 제출 좀 해 주시고요. 아까 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위원님들의 각 방이 있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자료들을 제출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2022년도 업무보고의 건 중 경기관광공사, 경기문화재단, 한국도자재단 소관 업무를 모두 마치겠습니다.\n위원 여러분 그리고 집행부 및 공공기관 관계자 여러분! 장시간 업무보고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안건 처리를 모두 마치고 산회하기에 앞서 다음 의사일정에 대해서 잠시 안내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n내일은 오전 10시부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개의하여 경기콘텐츠진흥원, 경기아트센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먼저 진행하고 이후에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경기도체육회, 경기도장애인체육회 소관 업무보고를 심의할 예정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느냐, 영웅이 시대를 만드느냐”는 진부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람은 불합리하고 모순에 찬 시대에 살면서도 그것에 순응하거나,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속에서 일신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숭고한 이상과 불같은 정열, 그리고 강철 같은 의지로 그러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어떤 시대를 살아가든지 간에 이기심과 속된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구원한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불사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속인과 영웅의 차이라고 생각해 봅니다.\n일제하 35년을 포함한 우리나라 근대 100년의 역사는 어둡고 쓰라린 고통으로 점철된 시기였으나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희원하며 불같은 정열과 강철 같은 의지로써 우리 민족을 뒤덮고 있던 이민족 압제의 어둠을 몰아내고자 일생을 바친 숭고한 애국지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국내와 현해탄 건너 일본은 물론 만주 벌판과 중국 대륙, 시베리아와 태평양을 건너 미주 및 유럽 제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한 그분들의 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대한 드라마요, 꺼질 줄 모르는 민족정신의 영원한 활화산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나마 이만큼 발전하고 이제 통일을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그려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러한 애국지사들의 피와 땀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n이제 그러한 분들의 삶의 의미를 기억하고 고귀한 뜻을 오늘에 되살려감으로써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 값진 거름이 되게 하고자 그분들의 전기를 『독립운동가열전』이란 이름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 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들이 집필한 이 열전은 1차로 한말 의병장으로 이름 높은 류인석님 등 일곱 분에 대한 것을 내고, 앞으로 계속해서 이 사업을 해 나갈 계획으로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을 아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 열전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n1876년 문호개방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재편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로 편입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한국사회는 생산력의 점진적 발전과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로 종래의 봉건적 생산관계가 동요·해체되는 등 내재적 발전과정에 있기는 했지만 문호개방 이후 일본을 위시한 제국주의 열강들은 우리의 자주적 근대국가 성립을 바라지 않았다.\n따라서 이 시기에는 반봉건(反封建)을 위한 근대화와 제국주의를 저지키 위한 자주 독립이란 중첩된 시대적 민족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는 문호개방 이후 줄곧 당시의 선구적인 애국지사에게 주어진 풀어야 할 숙명적인 숙제가 되었던 것이다.\n신규식(申圭植)은 자주적 근대국가 성립을 위해 중첩된 민족 과제를 짊어진 시기인 1880년 보수적 유림(儒林)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우국충절한 모습을 보였으며, 근대화에의 열정을 품은 청년으로 성장한 이래 1922년 43살 장년의 나이로 이역만리 타국 땅 상해에서 순국할 때까지 국권을 상실한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면서 한 평생을 조국을 위해 살았다.\n이처럼 신규식의 생애는 1898년 구국교육과 계몽학회 활동을 전개하면서 국권회복운동에 몸담은 이후 상해에서 순국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일생이었다. 그의 활동 시기는 크게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1기는 1911년 초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이며, 제2기는 상해 망명 이후 임시정부수립 전까지로 이 지역에 독립운동의 토대를 닦던 시기고 끝으로 제3기는 임시정부수립 이후 순국할 때까지의 시기다.\n“우리들의 마음은 곧 대한의 혼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죽지 않았다면 혼은 아직 돌아 올 날이 있을 것이다. 힘쓸지어다. 우리 동포여!…”라고 한 그의 절규는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이를 기반으로 빼앗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의 발현이었다. 그는 이러한 소명감을 갖고 한말과 일제의 식민지 시기에 국권회복을 위해 일신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n이 시기 신규식처럼 구국운동을 전개하던 애국지사들은 국권을 상실한 시기를 전후해 해외로 망명하여 새로운 활로를 찾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특히 다수의 한인이 이주해 있던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활발하였는데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 이후부터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으로 진출하면서 구국운동 기지설치 및 의병활동과 교육활동 등을 중심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반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1920년대 해외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상해 등 중국 관내지역에서의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식은 1911년 상해로 망명해 한국독립운동가로서의 최초로 중국혁명가와 유대를 맺고 중국혁명에도 직접 가담함으로써 한국혁명 즉 한국독립의 실현을 위한 첫발을 디뎠다. 그 결과 신규식은 그 후로 줄곧 중국 혁명지사들과 친분관계를 맺어 함께 혁명에의 기초를 다져갔으며 그들로부터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상해에 독립운동의 기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 기반 위에 동제사를 비롯한 여러 단체를 조직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이 지역에서 중심적인 지도자로 활약한 인물이었다.\n신규식의 선구적인 활동을 통해 중국에서 한국독립운동의 기반확대 및 운동이론정립 등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을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운동사상 그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n격변하는 한 시대의 역사를 살다 간 인물들에 관해 논의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풍전등화 같은 국가의 운명 속에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권을 상실한 시대적 아픔 속에서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어떻게 그 시대의 고난을 헤쳐 갔는가를 짚어보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이 시대의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n예관 신규식은 개항초기인 고종 17년 즉 1880년 1월 13일 충청북도 문의군 동면 계산리에서 신용우(申龍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그가 훗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주로 활동했던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의 생일과 같았다. 이 때문에 그의 나이 38세 되던 1917년에 다음과 같은 자수시(自壽詩)를 지어 나라 잃은 양자 모두의 비극적 운명을 읊었던 것이다. “오늘날 건청전에서 정사를 다스리던 청조의 고아가 참으로 가련하구나. 동정의 눈물이 끝없이 나도 모르게 흐르는구나.(今日乾淸殿 獨兒正可憐 同情無眼淚 不覺不漣漣)”\n그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공집(公執)이다. 그의 가계는 고려시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성용[成用(신성용)]을 시조로 하는데 고려 말 문장과 절개로 당대의 육은(六隱)과 견줄 만큼 이름난 곽은 덕린[德鄰(신덕린)]을 위시해 조선 초에 뛰어난 학식과 문재로 여섯 왕을 섬기면서 정공의 반열에 오른 보한제(保閑濟) 신숙주 등 명망가를 선조로 두고 있다. 이처럼 문재를 떨친 선조 이외에도 15대인 간[柬(신간)]은 무과 군수를 지내고 임진왜란(1592)·병자호란(1636) 때 참전하여 혁혁한 천공을 세워서 일등공신의 칭호를 받아 가문의 명예를 빛냈으니 문과 무를 겸비한 가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이런 구국일념으로 일신을 아끼지 않는 충절이 가문의 전통이 되어 왔다.\n그런데 중앙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의 가문이 낙향하여 충청도 청주에 정착한 것은 8대조인 신숙주의 다섯째 아들인 소안공준(昭安公浚)의 증손인 석회[碩淮(신석회)]가 낙향한 후였다. 사실 이들보다 먼저 청주 지역에 내려와 있던 이는 신숙주의 일곱째 아들, 동[洞(신동)]의 아들인 신광윤이었는데 그가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연루를 피해 청주 지역으로 입향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석회(신석회)가 입향한 뒤 보한재(신숙주)의 여섯째 아들 계열(신계열)도 이곳으로 낙향하니 이 지역에 고령 신씨의 문중촌을 이루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살피면 청주에서 동쪽으로 약 30분쯤 거리에 산당산성(山當山城)이 있는데 그 아래 문중촌을 이루었으므로 일명 산동(山東) 신씨라고도 일컬었다. 이들 산동 신씨는 고령 신씨의 여러 지파 중 최대 문중을 이루었으며 영조 년간에 그 번성의 정도를 『택리지』충청도조에 실린 상당산성(上黨山城) 동쪽에 신씨촌이 있다는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n이들은 연산군시대부터 지금까지 청주 지역을 중심으로 문중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 문중촌은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청원군 양성면과 가덕면(加德面) 일대이며 조선조 말기 행정구역인 청주목 산내 이상면과 문의현 동면에 해당되어서 행정구역상 2개면으로 나누어졌지만 실제로는 동네간 거리가 5리 정도에 불과하므로 동일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서울에서 청주를 지나 이화령·추풍령을 넘는 영남으로의 교통로 중 하나이면서 인접한 보은을 경유해 무주·진안으로 이어져 호남에 닿는 교통의 요지라는 지리적인 이점이 있어 문화전달 및 외부로부터의 정보 수용이 유리했던 곳이기도 하다.\n그런데 산동 신씨의 문중촌이 자리 잡은 곳은 조선조 노론의 본산인 화양동서원의 입구여서 남인의 당색을 지녔다고 하는 산동 신씨 문중은 이들 노론계 유생들과는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으로 인하여 반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들 노론이 집권하여 득세하던 순조 이후 문중 내 문과 급제자가 현저히 감소하면서 다른 남인계 문중과 마찬가지로 문중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고종 즉위 이전까지 가문의 형세가 많이 약화되었으며 실제 신규식의 직계 선조들 중 16대조 이후에는 관직에 나간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고종이 즉위한 뒤 대원군(흥선대원군, 이하응)에 의한 과감한 정치개혁으로 인재등용 시 당파성이 배재됨에 따라 중앙관직으로의 진출이 용이해졌고 관직 진출자도 점차 늘어나면서 산동 신씨 문중도 재기할 수 있는 활로를 찾게 된 것이다.\n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규식의 부친인 신용우와 형 정식[廷植(신정식)]이 비슷한 시기에 중앙정계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부친 신용우는 1887년 의금부(義禁府) 도사(都事)의 관직을 얻어 중앙에 진출한 뒤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여 적지 않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으나 춘궁기가 되면 토광을 열어 인근 빈민에게 볏단을 나누어 주었던 인정 많은 양반이었다고 한다.\n부친의 뒤를 이어 형 정식(신정식)은 사마음(司馬蔭)으로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뒤 탁지부 재무관, 회계국장 등 경제 계통의 관직을 거쳐 참서관·궁내부시종·덕천(德川) 군수를 지낸 바 있다. 예관(신규식)의 형과는 달리 동생들은 그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대의에 뜻을 두고 민족과 국가의 안위를 중시한 것이다. 즉 셋째 건식[建植(신건식)]은 그와 더불어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일신을 바쳤으며 넷째 동식[東植(신동식)]도 향리에서 임시정부 조사원으로 활동하는 등 구국에의 일념을 위해 젊은 열정을 태웠으니 이렇게 나보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울 수 있음은 아마도 우국충절이 내력이 된 가문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이런 면은 신규식 집안 이외에 산동 신씨 문중출신 중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쳐 활동한 이가 많은 데서도 엿볼 수 있으니 이를테면 신채호·신백우·신흥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n이러한 내력을 가진 산동 신씨 문중에 태어난 예관(신규식)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총명해 이미 3살 때 글자를 깨쳤으며 일찍부터 가숙(家塾)에 들어가 한문을 배우게 되었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가세가 넉넉한 덕분에 열심히 학업에 정진할 수 있어 남보다 빨리 사서오경을 독파하였으며 남달리 글재주가 있어 글과 시를 지어 그 준일함을 발휘하니 어른들도 미치지 못하는 바 있어 삽시간에 온 동리에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었다. 그의 문재는 뒷날 그가 지은 다수의 한시(漢詩)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예관(신규식)은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거나 친척이나 친구에게 전하는 안부 편지나 혹은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길 경우에도 시로써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n예관(신규식)이 남긴 저서 중 유일한 시집인 『아목루(兒目淚)』에 담긴 한시들은 그 하나하나가 축하할 일이나 격려해 주는 내용이거나 일기처럼 혹은 기행문처럼 지어져 있으며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내용의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속장(束裝)」이란 시에 부제로 ‘친구가 체포된 사실을 듣고’라는 것을 붙여 자신이 빨리 조국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해야 하는 실정을 읊고 있다. 그 외에 1910년대 상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중국혁명 인사에게 보내는 시와 함께 독립투쟁에 몸담고 있던 동지들에게 주는 시도 수록되어 있어 그 시기 예관(신규식)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준다.\n예관(신규식)은 16살 때는 조선왕조의 정치문란과 일제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하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꿰뚫어 보고서 일본을 배척하며 간악함을 배격하는 글을 지어 민족의식을 일깨움으로써 문명(文名)을 드높이기도 하였다.\n그러나 예관(신규식)은 당시 문(文)을 높이고 무(武)를 경시하는 사회풍조를 통탄하면서 무력양성도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1895년 민비(명성황후)가 시해되던 을미사변(1895)의 발발과 단발령의 공표로 전국에서 을미의병(1895)이 봉기하자 예관(신규식)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숙의 학우들을 지도해 스스로 소년대(동년군)를 조직한 뒤 밤낮으로 조련하여 뒷날을 기약하고자 하는 등 무덕(武德)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이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여 비록 나이 어리지만 국난에 신속히 조직적인 무력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이 공고해 짐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런데 그의 소년대 조직은 척사론적인 성격이 지배적인 을미의병(1895)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아마도 그의 문중이 갖는 보수적인 성향에서 영향 받은 구국충정의 발로로 보인다.\n어쨌든 예관(신규식)은 일찍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의분의 기개를 담고 있었으며 국력회복을 위해서는 무력도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이런 무력중시의 의지는 후일 서울로 올라 온 그가 무관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n혼인하자마자 곧이어 신학문 수학의 뜻을 품고 상경하였다. 그가 상경했을 당시 서울에는 부친과 형인 정식(신정식)이 관직에 재직 중이었고 문중의 젊은 청년으로 앞서 상경한 신흥우(申興雨)가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우고 있었다. 예관(신규식)은 이제까지 향리에서 전통적인 한학 교육만을 받았으나 앞서 중앙정계에 진출해 있던 부친이나 형 이외에 당시 상경해 있던 상경 문중인사들로부터 신학문이나 “개화”의 필요성과 조언을 받았을 것이며, 본인 자신도 그에 공감하여 서둘러 상경을 결심한 것으로 추측된다.\n실제로 신흥우의 경우를 보면 그의 부친이 아들에게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경전을 읽어도 뜻을 이룬 바가 없는데 신진인사들이 모두 외국의 문자로 출세하는 방도를 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태임을 명심하라.”고 강조하면서 아들의 출세를 위해 그는 배재학당에 입학시켰던 것이다. 같은 시기 상경해서 벼슬하고 있던 예관(신규식)의 부친이나 형도 마찬가지로 인식하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n예관(신규식)이 상경했을 당시는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열강 간의 세력다툼이 극심했던 격동의 시기였다. 즉 민비(명성황후)시해 및 단발령에 항거한 을미의병(1895)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2월에는 고종을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관으로 옮기게 한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으로 친일정권이 몰락하고 친러정권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은 눈독들이던 각종 이권을 경쟁적으로 획득하여 직접 침탈을 개시하게 되자 삼천리강산의 여기저기가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열강의 침탈을 보면서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해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세력의 구심점이 되고자 하였으며 이어서 7월에는 독립협회가 결성되어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자주 민권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그 소용돌이의 중심부인 서울에 상경한 예관(신규식)은 우선 급선무가 신학문 수학이란 판단 하에 견지동에 새로 문을 연 관립한어학교(官立漢語學校)에 입학하였다. 이때가 대략 1897년 후반기로 추측되는데 입학 당시 함께 입학한 학생수가 35명가량이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그가 한어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양공업전습소에 입학했다가 모종의 시위사건에 관련되어 퇴학처분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다.\n다만 예관(신규식)이 이후에도 줄곧 식산흥업의 일환으로 공업부문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선조의 훌륭한 이기(利器)보존에도 열의를 다하는 자세를 갖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통 있는 양반가문, 특히 출세지향적이라는 산동 문중 출신의 신동인 그가 그곳에서 학업을 시작했다고 보기에는 납득키 어려운 바가 있다.\n당시 서울에는 6개의 관립외국어학교가 설립되어 있었으며 그 중 취직 전망이 좋은 곳은 영어와 불어학교였다. 그런데도 그가 한어학교를 택한 까닭은 명망 있는 양반가문 출신으로 이미 전통한학의 기초가 닦여 있었다는 점과 다른 외국어학교보다 보수적인 관직으로의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동기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당시의 관립외국어학교는 아직은 역관 양성을 위한 기관, 즉 1895년 갑오경장(갑오개혁, 1894) 당시 신분제폐지와 정치 제도의 개혁으로 폐지된 사역원(司譯院)의 연장으로 취급하는 경향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하게 예관(신규식)이 관립한어학교로 진학한 것은 그가 전통적인 신분관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이 시기 어느 정도 양반으로서의 자기 체질극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우선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관(신규식)의 이 같은 선택은 비슷한 시기에 상경, 수학했던 문중의 신흥우가 서구적인 신신학교의 대표인 배재학당에 입학했으며 신채호는 전통적인 구학문의 전당인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당 이남규(李南珪) 문하에 들어갔던 것과 비교해 보면 개화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n그가 수학했던 관립한어학교는 견지동에 있는 체신기념관으로 현재 보존되고 있는 목조단층의 한옥이었으며, 수업 연한은 3년간이었다. 당시 한어학교 교관은 중국인으로는 호문위(胡文衛)가 있었는데 그는 중국의복에 변발차림으로 강의했다고 한다. 그 외 한인으로 류광열(柳光烈)·오규신(吳圭信) 등이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예관(신규식)은 관립한어학교 시절 중 교관들과 맺은 인연으로 훗날 중동학교에서 구국 교육활동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관(신규식)은 한어학교에서 한문과 중국어 수업 이외에 산술·지리·역사과목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외에 어느 동문의 회고담에 의하면 체조도 교과목으로 규정되어 있어 날씨가 화창하면 가끔 운동장에 서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체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관립학교 규정에 따라 학생들에게 교과서와 학용품이 관비에 의해 무료로 지급되었으며 점심도 급식되었다. 또한 소정의 수업 연한을 마치고 학력검정에 급제하면 졸업장과 함께 관리임용의 사령장이 수여되었던 것이다.\n그런데 예관(신규식)은 한어학교에서 3년간 수학했으나 정식으로 졸업하지 못한 듯한데 일설에는 학교 학감의 부정을 보다 못해 동맹휴학을 주동한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런 이유도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가 한어학교에 적을 두고 수학하면서 1898년 후반에 만민공동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 즉 자료를 검토하면 독립협회의 자유민권운동이 만민공동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기에 그가 일반회원으로서 이승훈·허위 등과 함께 재무부과장 및 부장급으로 활동하였으며 1898년 12월 25일 수구파의 대탄압을 받고 해산당할 때 구속된 400여 회원 중 중요회원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추적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미루어 예관(신규식)은 여기서 문중청년인 신흥우·신채호와 뜻을 같이 하여 활동하는 한편 후일 함께 국권회복운동에 종사케 되는 나철·이승만·안창호·양전백·이승훈·이동휘·박은식 등과도 친분을 맺게 되었을 것이다. 만민공동회의 자유민권운동에의 참여활동으로 인해 그가 관립한어학교를 정식으로 졸업하여 출사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예관(신규식)은 이를 계기로 다시 20살 되던 해인 1900년 9월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관으로서의 자질을 닦아 후일 국권회복에 기여하고자 결심하였다. 비록 졸업한 것은 아니더라도 관립 한어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는 상당한 수준이어서 후일 중국을 활동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당시 그가 구사하던 유창한 중국어 때문에 예관(신규식)을 중국인으로 오인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그 언어실력을 짐작할 만하다.\n구한말에 설립된 육군무관학교는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신식군대를 지휘하고 교육시킬 수 있는 유능한 초급장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웠으므로 까다로운 입학 선발 규정과 입학시험을 거쳐야 했다. 즉 입학자격이 군부의 장교나 정부의 칙임관의 추천을 받아야 했으며 설사 추천을 받고 시험에 응시했더라도 십여대 일이란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비로소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대단히 인기가 높은 학교였다.\n이와 같은 현상은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무관학도로 뽑힌 200여 명이 모두 칙임관의 아들·사위·동생·조카들이라고 한 지적처럼 육군무관학교는 신학문을 배울 수 있고 관료로도 진출할 수 있어 당시 지배계층에 속하는 자제들을 비롯해 관계로의 진출을 꾀하는 청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으로, 또한 구국의 일념으로 무력을 다지려는 애국청년에게는 실력양성기관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었다.\n이처럼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쉽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신규식은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험을 치르고 1900년 9월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해서 다닐 무렵의 육군무관학교는 비교적 자주적으로 운영되었으므로 민족의 자주·자강 사상을 보다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예관(신규식)은 문관선호사상이 강했던 유교적 전통의 문중 출신이었으므로 이 학교에의 입학은 부친이나 집안 어른의 이해가 전제된 결정이라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유가 문중으로서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활동 중 교류가 있던 개화지향적인 무관인 박승환·이동휘 등에게 영향 받은 자주적인 국가방어의식을 체현시키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n예관(신규식)은 여기서 전술학·군제학·병기학 등 군사학과 외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신학문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된다. 학교 성적이 선두로서 뛰어났던 예관(신규식)은 학교 당국이나 친일세력이 다수를 점한 교관들의 부패상과 규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처리하는 불합리한 처사를 들어 끊임없이 그 부당함을 항변했다. 그러던 중 무관 학교 내부에서 부패한 학교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일부 교관들과 생도들 사이에 무르익어 갔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은 예관(신규식)은 동기생이지만 자신보다 4살이나 나이 많은 조성환(曹成煥)과 개혁에 대한 뜻을 같이 하고 은밀히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했다. 약 10여 명이 의기투합하자 우선 동맹휴학을 하자고 계획했을 뿐 아직은 그 구체적인 거사일자나 방법을 정하지 않았을 때였다. 적당한 기회를 살피며 예의 주시하던 중 불행하게도 사전에 학교 당국에 의해 거사계획이 발각되어 주모자로 지목된 조성환과 일부 학생들이 체포당하게 되었다. 당시 신규식은 신병 치료차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여서 다행히 체포를 면할 수 있었지만 의리를 소중히 여기던 예관(신규식)이 함께 일을 도모 했던 조성환의 체포로 인해 그가 겪었을 심적 갈등이 얼마나 컸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중에 학교 당국에서 이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주모자 한 사람만 제외하고 관련자 모두 사면되었던 것이다.\n따라서 조성환은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되었다가 무기로 감형되어 진도로 유배되었으며 3년 후에 사면되어 참위로 임관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예관(신규식)은 조성환과 더욱 각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뒤에 의형제를 맺고 고락을 함께 할 정도로 절친해졌으며 이후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할 무렵에도 함께 활동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육군무관학교 시절 신규식은 근대화에 대한 인식이 더욱 심화되었으며 동맹휴학 주동 등을 통해 근대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청년으로서의 입지가 굳어져 있었고 동료사회에서도 지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 특히 그가 신병치료차 향리에 내려갔던 시기에는 이러한 근대화 지향적 청년으로서 문중개화를 지도했던 것으로 보인다.\n육군무관학교를 무사히 마친 예관(신규식)은 1902년 7월 6일 육군보병 참위에 임관됨으로써 정식 군인이 되었다. 이어 1903년 3월 22일 진위대 제4연대 제2대대에서의 견습을 거친 뒤 그해 7월 3일 졸업증서를 받았던 것이다. 이 후 1907년 9월 한국군대가 일제에 의해 해산당하는 그날까지 육군무관으로서 명멸해 가는 국운을 회복하고자 구국대열에 앞장서게 되었다.\n예관(신규식)의 문중인 산동 신씨는 세조대의 영의정이었던 신숙주의 후손으로 조선조의 정치사상으로 보아 초기에는 훈구벌족이었으나 중기에 이르러서는 사림으로 변모했으며 붕당기에는 남인 계열에 속하였다. 이들은 조선 중기에 청주로 낙향해 산동 지역에 문중촌을 형성했는데 이 지역이 바로 노론의 본산인 화양동서원(華陽洞書院) 입구였으므로 서로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조선조 후기에 들어서면서 문중 출신의 과거급제자의 수도 감소하기는 했지만 순조 대 이후의 노론 중심의 세도정치 하에서 중앙정계에로의 진출 자체가 위축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 초의 중앙정계 진출로 화려했던 집안의 광영이 쇠락해 가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고종 즉위 후 세도정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려던 흥선대원군(이하응)의 인재 등용책에 힘입어 남인계인 산동 신씨도 비로소 관직 진출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선진적으로 중앙에 출사한 문중인사들의 개화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이들의 변화에 따라 산동 문중의 유능한 청년들이 신학문 수학과 중앙정계 진출을 꿈꾸며 속속 상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규식·신채호·신흥우 등의 상경인데 이들은 상경과 더불어 문중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서 선구적인 근대화 청년으로 변모할 계기를 갖게 되었다. 예관(신규식) 등은 앞서 중앙에 진출해 있던 문중 어른들의 적극적인 배려 속에서 각각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신식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또한 당시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가 주도해 가던 정치운동으로 인해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사상이 형성, 고양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근대화에 대한 당대의 시급한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근대화인식 및 서구의 근대적인 사상수용에 만족치 않고 한 걸음 더 나가 근대화에의 열정을 심화시키면서 향리에 문동학원·덕남사숙·산동학당 등을 설립하여 문중을 근대화의 대열로 이끌기 위해 열의를 다하였다. 그 결과 1908년 5월에는 보수양반 문중으로는 최초로 문중 내 근대식 교육을 지향하는 영천학계(靈川學契)를 결성할 정도로 전통적인 유림적 사고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체질 개선을 통해 근대화로의 과정 속에서 적극적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n이러한 산동 문중의 변화 과정에 있어서는 그 선구자격인 예관(신규식) 등을 후원했던 문중 내 소수 유력 인사들이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동도서기적인 방식으로 문중 개화를 이끌어 가도록 기본틀을 제시하였다. 산동 신씨 문중이 내세운 근대화의 특성은 영천학계 취지에서도 나타나듯이 서구적인 근대화로의 방향이 아닌 구체신용(舊體新用)의 방향 즉 동도서기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측면은 갑오경장(갑오개혁, 1894)을 비롯한 일련의 급진적인 개혁 실패와 전통 유림의 척사의병 실패를 거울삼은 반성적인 사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n이러한 구체신용적 문중 근대화로의 길은 예관(신규식)이나 신채호 등 산동 문중의 선구적 열혈청년에게도 받아들여졌는데, 예관(신규식)의 경우는 그의 저서 『한국혼(韓國魂)』에 잘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구학문·신학문에 대한 비판을 검토해 보면 양자의 무비판적인 맹종을 모두 정신의 죽음으로 비판하고, 우리의 정신과 이기(利器)를 바탕으로 서양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구체신용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고 파악된다. 다만 이들의 경우에는 구국투쟁을 위한 이념적 바탕으로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 자주적 근대화나 일제에 대한 강력한 민족주의적 성향이 보다 강화되는 모습으로 반전되어 갔던 점이 특정적이다.\n예관(신규식)은 육군무관학교에서 지낸 3년 동안 무관이 갖추어야 할 엄격함과 굳센 기질을 몸에 익힌 덕분에 일평생 몸가짐이 시종 군인의 규율과 단정함을 간직하고 지킴으로써 장엄한 기상을 풍기게 하였다.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하고 근대화에의 열정이 강렬한 청년으로 변모한 예관(신규식)은 육군무관학교 졸업 후 육군 참위로 진위대와 시위대 및 모교인 육군무관학교에서의 견습 과정을 마친 뒤 시위대 제3대대에 배속되고 6품으로 승급되었다. 예관(신규식)은 바쁜 군대 생활 속에서도 구국교육에의 열정을 태워 문중 및 그 지역사회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려는 일념 하에 1903년 겨울 향리에 덕남사숙을 설립하였다.\n“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입니다. 또한 보배입니다.… 우리가 망하게 된 이유는 무(武)를 업신여긴 것과 또한 교육을 등한히 한 탓입니다.… 이순신의 철갑 거북선을 한낱 녹슨 쇠붙이로 만든 후손이 나라 망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요, 또 이 원인은 교육이 철저치 못한 탓입니다.… 이 나라 먼 장래를 내다 볼 때 어린이 교육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n그가 말을 마치자 난데없이 장끼 한마리가 식장에 날아들었다. 신규식의 손에 잡혔던 오색찬란한 꿩이 푸드득거리며 앞산으로 날아갔다. 꿩은 상서로운 짐승이라고 모두들 기뻐했다. 개교식은 즐거움 속에 끝났다.\n이 사숙에서는 산술·측량·한문·일어 등 10여 과목을 가르쳤으며 그 외에도 유능한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 멀리 청주에서까지 선생님을 모셔 오는 등 근대식 학교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예관(신규식)은 이 사숙에 유난히 애착을 가져 늘 발전의 기틀을 굳게 하고자 힘썼으며 틈만 나면 향리에 내려와 직접 강의를 맡곤 했다.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 체결 직전에는 이곳에 내려와 손수 작사·작곡한 노래를 학동들에게 가르쳐 준 일도 있었다.\n서구문명의 이기를 배워 산업을 진작시켜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러한 많은 사업을 슬기롭게 전진시켜 가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선구적이며 충실한 일꾼 양성이 선결 과제임을 깨우치려는 그의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즉 당시 지식인층에 풍미했던 서구의 근대화론인 문명개화에 기초한 산업 부흥과 교육 진흥이란 실력양성론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실력에는 무의 겸비가 포함되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관(신규식)의 이러한 의도에 걸맞는 탓인지 학동들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르며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고 한다.\n1905년 11월 러일전쟁(1904)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해 11월 17일 제2차 한일협약, 소위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 1905)’을 강제로 체결케 하였다. 그 결과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통감정치가 실시되었으니 사실상 모든 주권이 송두리째 일제의 손아귀로 넘겨진 것과 다름없었으므로 당시 2천만 대한의 백성들이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체결에 대한 분노는 장지연의「시일야방성대곡」을 필두로 경향 각지에서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유생들의 구국 상소가 줄을 이었으며 당시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이었던 민영환은 조약(을사늑약, 1905)의 부당함을 천명하는 우국의 피 끓는 유서를 남기고 할복 자결하여 조약(을사늑약, 1905) 반대운동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n“슬프다! 민충정(閔忠正, 민영환)의 피여! 5조목(을사늑약, 1905)의 통감협약(統監協約)이 강제로 협박되어 끝내 이루어지자 서울로 달려 올라와 중문을 두들겨 힘껏 간하였으나 군신 상하의 심리가 일치되지 않고, 사회의 결합이 견고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칼로 자신의 몸을 찔러 목에서 가슴까지 이르니, 피육(皮肉)이 헝크러지고 피가 만지(滿地)를 적시면서 죽어갔다.”\n이즈음 예관(신규식)은 향리에서 천지가 무너지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면서 조약(을사늑약, 1905)반대운동에 참여키 위해 급히 상경하였다. 주위에서 전개되는 저항운동을 예의주시하면서 그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군 조직을 이용해 각 지방의 군대에 연락하고 동지를 규합해 의병을 일으키고자 시도하였으나 아깝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열혈청년의 응어리진 고통을 토해 낼 수가 없었으니 민영환의 뒤를 이어 자결로써 조약(을사늑약, 1905)체결의 부당함을 세상에 널리 밝히고자 음독자살을 꾀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집안 식구들에게 일찍 발견되어 긴급히 치료한 덕분으로 겨우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음독한 약기운이 워낙 강한 까닭에 시신경을 다치게 되어 끝내 바른쪽 시선은 바르게 보지 못하고 흘겨 보게 되었으니 이후 자신의 호를 흘겨 본다는 뜻인 예관(신규식)이라고 자칭하게 되었다. 이는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어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우국지사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n일제의 무력에 의해 강압적인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이 체결된 후 고종은 그 조약(을사늑약, 1905)이 강제로 체결되었음을 외국에 알리려고 노력했으며 그 일환으로 밀사를 해외로 파견하기도 하였다.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세 사람의 밀사도 그러한 의도 하에서 추진되었는데 만국평화회의 자체가 제국주의 열강을 위한 회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 물론 동일한 식민지 문제를 갖고 있는 영국 등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 당하는 국가적 치욕을 당하게 되었다.\n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킨 여세를 몰아 1907년 7월 24일 한국의 내정권을 장악키 위한 정미7조약(丁未七條約, 한일신협약, 1907)을 늑결함과 동시에 군대해산 등을 포함한 비밀각서를 교환했다. 이 각서에는 조약상 명시되어 있지 않은 ‘황궁 시위를 위한 1개 대대만 남기고 한국군 전부를 해산시킨다.’는 내용의 군대해산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일제가 극비로 추진한 한국군 해산계획에 따라 본국으로부터 증원군을 파견되었고, 이들이 각기 대구·대전·용산·평양 등지에 배치되었다.\n그리고 서울에도 병력을 집중 배치시켰을 뿐 아니라 해군까지 동원해 구축함 4척을 대기시키고 한국 연안에 제2함대를 순항케 했다. 일본군의 배치가 완료된 다음날인 7월 31일 밤 일군 사령관 장곡천호도(長谷川好道)는 총리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병무와 함께 창녕궁으로 들어가 미리 작성한 각본대로 순종으로 하여금 강제로 군대해산 조칙을 재가하도록 하였던 것이다.\n이 당시 예관(신규식)은 1906년 1월 정3품으로 위계가 오른 뒤 그 해 4월 시위대 제3대대에 배속되면서 부위(副尉)로 진급하였던 것이다. 이후 기울어 가는 국운과 함께 하는 구한국군대에서 최후까지 남아 강제해산 당하는 수난을 겪는 비운의 군인 중 하나가 되었으니 그가 감내해야 할 고뇌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만하다.\n8월 1일 군대해산이 단행되던 날을 기술한 박은식의 『한국통사(韓國痛史)』는 “이날 하늘은 흐리고 보슬비가 소소히 내리고 있었다. 아! 훈련원은 국가 5백 년 동안 무예를 닦던 곳이요 현재의 군인들 또한 다년간 용약(勇躍)하며 무예를 익히던 곳인데, 갑자기 오늘부터 헤어져야 하니, 하늘인들 어찌 슬퍼하지 않겠는가!”라고 그 처절한 광경을 전한다.\n이날 오전 한국군 시위혼성여단장 양성환 이하 연대장·대대장·각 부대장은 일본군 교관들과 일군사령관 관저로 소집되었다. 여기서 군부대신 이병무가 해산조칙을 낭독하고 이어 일군사령관 장곡천호도의 훈시가 있었다. 이때 일군사령관은 각 부대장들에게 금일 각 훈련원에서 도수훈련(徒手訓鍊)이 있으니 병사들에게 무기를 소지시키지 말고 10시까지 집합토록 명령하면서 해산이 조용히 이루어지도록 당부하였다.\n한편 해산식이 열릴 훈련원에는 군부협판·일본군참모장·군부고문 등이 일찍부터 일군혼성부대를 배치시키고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한국군 기병대의 도착을 시작으로 제1연대 3대대, 제2연대 3대대 등이 도착했다. 예관(신규식)이 속한 시위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 병사들은 강제동원을 거부하고 일군과 교전을 벌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오후 2시에야 겨우 해산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총해산인원 3,441명 중 1,629명이 불참한 중에 진행되었다. 해산명령이 내려져 한국군들은 차고 있던 칼과 어깨의 견장을 해제 당하고 미리 준비된 은금이 주어진 뒤 자유해산이 명해졌다.\n이 날 시위 제1연대 제1대대 및 제2연대 제2대대 병사들은 해산을 거부한 채 일제히 무장봉기해 일본군경과 치열한 시가전을 전개하였는데, 시위 제1연대 제1대대장 창령 박승환(朴昇煥)의 자결이 바로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무엇이 아깝겠는가?”란 유서를 남긴 채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시위대 병사들은 무기고를 부수고 탄약과 총으로 무장한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를 필두로 인접한 제2연대 제1대대는 국권수호를 위해 일치단결하였던 것이다. 당시 부위였던 예관(신규식)은 혼신을 다해 앞장서서 부하들을 이끌고 대한문까지 진출하였다. 이기려던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망국민의 처절한 울분이요 설움의 응결이 이러한 기의를 유발케 한 것이다.\n구한국군의 거사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출동한 일본군은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투입시킨 대병력과 월등한 화력으로 이들을 육박해 왔다. 일본군은 완강한 해산군인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총을 난사하기 시작하였으며 힘의 열세를 어찌할 수 없는 시위 군인들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는 병영을 포기하고 서소문 밖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관(신규식)은 대대장 박성환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고 순국하려 하였으나 동지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군대를 해산당하고 자신도 9월 3일 정식으로 면관됨에 군복을 벗게 되었다.\n이날의 전투에서 일본군 측은 42명의 사상자를 냈고, 시위대는 68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탄약고갈로 516명이 포로가 되었다. 또한 이 날의 항전은 시위대 병사만의 고립된 것이 아니라 상인·노동자·학생 등 각계각층의 서울시민이 합심해서 이들의 항전을 도왔던 것이다. 이들의 항일투쟁은 이후 의병전쟁 전개에도 큰 활력을 제공했다.\n비록 무력투쟁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결단과 행위는 후일 『한국혼』에서 주장하듯이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주검을 할 수 있고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의식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식 속에서 구국에의 열정이 끊임없는 구국적 활동으로 체현된 것이었다.\n예관(신규식)은 이런 무장투쟁적인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른 한편으로 계몽단체에 가입하여 계몽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08년 7월 대한협회의 회원이 되어 공동운명하의 위기적 상황을 각성하고 함께 단결해 실력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취지의 시를 통해 자신의 실력양성론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특히 대한자강회가 해산 당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송자강자(送自强子)」란 시에 담았으며, 이 시에서 자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대한자강회를 계승해 설립된 대한협회에 대해 “같은 배에 타서 풍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지속되는 진력전진의 계몽운동을 전개하도록 독려하는「봉대한자(逢大韓子)」란 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n강제로 군복을 벗게 된 예관(신규식)은 서울 운니동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구국운동에 투신할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군복무 시절 상사였던 윤치성(尹致晠)이 찾아와 실업부흥의 일환으로 회사를 설립하자고 제의했다. 이러한 제의를 받은 그는 늘상 실력양성론을 기본으로 하는 근대화의 큰 줄기 중 하나가 산업진작이란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인 퇴직 장교 10여 명을 규합하여 광업회사(廣業會社)를 발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발기인으로 윤치성·조철희, 무관학교 동기생인 신창휴 및 부친과 친분이 두터운 민영휘의 아들인 민대식 등이 있었다.\n광업회사의 사무실은 지금의 단성사 앞에 있었으며 각 지방에서 생산된 각종 물산을 거래하는 것이 주요업무였다. 광업회사의 경영진은 출자를 많이 했던 윤치성의 형인 윤치소(尹致昭)가 사장을 맡고 예관(신규식)은 경리책임자가 되었는데 예관(신규식) 등의 뛰어난 사업수완 덕분에 다행히도 운영이 잘되어 번창해 갔다고 한다. 직접 회사경영에 참여하는 한편 예관(신규식)은 선조의 이기(利器)를 되찾는 일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선조의 이기를 되찾은 일은 예관(신규식)이 품고 있던 국권회복책 중의 하나로 대한의 혼을 지키는 길에 속하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 실천을 위해 우선 공업전습에 유능한 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분원자기(分院磁器)를 부활시켰다. 그 외에도 그가 관립공업전습소의 학생들이 세운 공업연구회의 주된 후원자로 나섰던 사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즉 1908년 가을 관립공업전습소의 학생들은 조직적인 공업 연구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공업연구회를 만들었다. 이에 공감한 많은 뜻있는 인사들은 후원자(찬성자)가 되어 학생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게 되었으며, 예관(신규식)을 위시한 광업회사 임원들도 공업연구회의 취지에 찬성해 모두들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업연구회의 월보인 『공업계(工業界)』의 발행을 위해 사무실을 빌려 주었고, 예관(신규식)은 월보사장 겸 편집부장을 맡아 월보발간에 힘써 주었다. 그런데 당시 공업연구회 1대회장으로 선출되어 연구회를 주도해 가던 학생은 박찬익이었는데 그와는 이때의 인연을 계기로 친분이 깊어졌으며 구국에의 열정이 가득 찬 예관(신규식)의 진지한 모습은 박찬익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또한 훗날 이들의 관계는 망명 이후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몸담던 시기에도 각별한 유대가 이어졌다. 이 잡지는 당시에 발간된 『상공월보(商工月報)』·『상업계(商業界)』와 더불어 한말 실업계의 계몽에 공적이 컸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1910년 일제의 보안법 공포로 다른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발행이 금지되었다.\n식산흥업을 위한 예관(신규식)의 활동은 국가를 이롭게 하고 국민을 후(厚)하게 하는 일이면 마다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예관(신규식)이 『가정양계신편(家庭養鷄新編)』이란 양계에 관한 책을 역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1908년에 출판되었던 양계에 관한 전문서적인데 역자명이 신규식으로 되어 있다. 그 출판의 기본 취지를 보면 외국양계법에 관한 책을 검토하여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일반 가정에서 쉽게 보고 양계할 수 있게 하여 가정의 긴요한 산업의 하나로 추진시킴과 동시에 거대한 재원으로 활용케 하기 위해 역술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양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외국어를 역술한다는 의미에서만 생각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된다.\n그 밖에 예관(신규식)의 산업발전에 대해 갖는 열의는 대한협회의 활동상에서도 나타난다. 예관(신규식)은 대한협회의 학회활동 당시 실업부에서 업무를 관장하게 되었는데 그가 민족자본의 육성과 독립자존을 위한 경제력 향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말해 주는 좋은 예이다. 예관(신규식)은 대한협회 이외에도 기호흥학회가 결성될 당시인 1908년 8월에 회원으로서 당시로서는 꽤 큰 돈인 일천원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혀 학회를 통한 구국계몽활동에 있어서 물질적·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으로 알 수 있다.\n예관(신규식)은 구한국 군인으로 애국충절한 군인양성과 의병거사 등 무력적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도 1900년대 구국 운동의 또 하나의 흐름인 구국계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이를 테면 예관(신규식)은\n“우리 대한이 망했다 해도 우리 마음속에는 스스로 하나의 대한이 있는 것이니 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 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라고 한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의 혼을 보존하는 것만이 민족과 국가회복의 지름길이라 여기고 있었다. 또한 예관(신규식)은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전술한 바의 식산흥업의 적극적 추진과 더불어 교육구국활동을 중시 하였다.\n일찍부터 교육활동에 눈을 뜬 예관(신규식)은 육군무관학교 시절인 1901년 향리인 인차리에 설립된 문동학원에 관여한 이래 앞서 본 바와 같이 1903년 자신이 직접 덕남사숙을 세워 민족혼을 심는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였다.\n그런데 예관(신규식)이 이처럼 근대적 학교교육에 열의를 보이던 이 시기의 교육 현황을 보면, 근대학교는 대부분이 기독교의 선교학교였으며 그 외 민립학교가 몇몇 있었는데 그것도 유교성향이 약한 북부지방에 치중된 경향이었다. 그렇지만 중부 이남지역은 아직도 봉건적 유풍(儒風)이 강하게 남아 근대학문의 필요를 인식치 못한 상태였으므로 보수적인 유생의 반대가 근대적인 학교경영을 어렵게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예관(신규식)의 집안인 산동 신씨 문중에서는 민립학교인 문동학원이 1901년 설립되고, 1903년에는 예관(신규식)의 덕남사숙이 설립되어 근대교육을 실시한 것은 가히 선구적이라 할만하다. 특히 문중촌에 신식교육의 학교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문중 내의 합의가 전제되었을 터인즉, 신씨 문중의 선구적인 근대화의 열정이 가득 찬 청년과 문중 자체가 상호 보완적으로 근대화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n예관(신규식)은 이처럼 문중촌에 선구적인 근대식 학교를 세워 문중의 근대화로의 진전에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그런 정성 어린 노력에 힘입어 문중은 물론 문중인사들의 교육활동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모되어 갔다. 그 결과 주요한 문중인사들에 의해 문중학계(學契)와 2개의 사립학교가 문중촌 부근에 설립될 수 있었다. 즉 서울에 올라와 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학계결성이 논의되어 1908년 5월 1차 종회(宗會)에서 정식으로 영천학계(靈川學契)가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학계는 총감(總監)·계장·부계장·총무 각 1명·부장 4명·일반부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총감은 관찰사를 역임한 신태휴, 계장은 신흥우의 부친인 신면휴, 부계장은 예관(신규식)의 부친인 신용우, 실무담당인 총무는 예관 신규식이 각각 맡게 되었다. 신규식의 형인 정식(신정식)도 부장으로 선임되어 집안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문중촌이 있는 청주·문의·옥천에 각각 지회를 설립하여 활동을 전개하니 학계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문중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n영천학계의 설립취지는 종중의 사장된 재산을 학교설립에 끌어 들여 재정이 안정된 학교를 세우려는 것이었으며 이들이 지향하는 학교교육의 요체는 구학과 신학을 겸비하면서 덕행을 수양하고 지식을 계발하며 충효를 시상(是尙)하고 지기(志氣)를 바르게 세우자는 것과 의무교육의 실시였다. 말하자면 의무교육과 신·구학문의 장점을 겸비한 구체신용의 교육에 역점을 둔 주체성 있는 근대교육을 지향하였던 것이다.\n이러한 교육이념을 실천하고자 사립학교와 가족구락부를 설치하겠다고 하였으며 그에 따라 청주와 문의지회에 각각 사립학교가 세워졌다. 즉 1909년 6월 신형우(申亨雨)가 청주에 청동학교(淸東學校)를, 신승구(申昇求)가 문의에 문동학교(文東學校)를 설립했던 것이다. 청주의 산동문중학교, 문의의 산동문중학교란 의미에서 청동·문동으로 명칭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관(신규식)의 전기에 의하면 예관(신규식)이 청동학교·문동학교를 설립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두 학교가 문중의 영천학계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되었고 당시 학계의 총무였던 그가 학계의 주도자로 제반 사업을 주관했던 사실 때문에 그렇게 알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가 학계의 대표는 아니지만 당시 학계 참여 인사들의 연배로 보나 근대적 학문과 구학문을 겸비한 학력으로 보나, 학회활동과 실업활동 등의 경력으로 보나 총무였던 예관(신규식)이 영천학계를 이끌어 가는 중추였다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보아 학계설립 당시 산동 문중이 지향했던 근대화의 방향이 구체신용, 즉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과 민족주체성의 강조였다고 한다면 이는 또한 예관(신규식)이 갖고 있던 근대화 지향의 방향과 일치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n예관(신규식)은 문중차원의 교육활동 이외에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1909년 3월 윤치소의 뒤를 이어 현 중동학교의 전신인 중동야학교(中東夜學校)의 제3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중동학교는 당시 계몽단체나 민간인들이 근대적 제도교육의 필요성을 각성하여 설립한 많은 사립학교들 중 하나로 1906년 한어야학(漢語夜學)에서 출발한 학교였다.\n한어학교 출신으로 교육활동에 뜻을 두었던 그가 교장으로 재임하기 이전부터 이 학교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예관(신규식)은 교장에 취임하여 다른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인재양성·실력양성·계몽 등에 역점을 둔 교육을 실시하여 위난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 외세를 구축한 뒤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목적을 앞세웠다. 또한 중동야학교의 설립을 정식으로 인가받게 되어 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그 뒤 1910년 8월 일제의 강압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춘강 조동식(春江 趙東植)에게 교장직을 맡긴 채 혼신을 다해 구국에 몸바칠 인재를 양성하려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중동학교를 떠나게 되었다.\n구한말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구국단체인 각종 계몽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교육 및 실업진흥에도 일신을 아끼지 않고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던 예관(신규식)은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한일강제병합, 강제병탄, 1910)이 강제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라 안 상하는 물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치 친부모를 여윈 듯이 가슴을 조이고 발을 구르며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온 나라 안에 피 끓는 곡성과 원통한 외침이 끊이지 않았으며, 온 국민의 피눈물어린 호소가 온 세계에 퍼졌으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논리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질서 탓에 어느 누구도 귀기울이고자 하지 않았다. 이제 이천만 단군의 후손들이 일제의 노예로 전락하는 순서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n서울에 올라온 이래 줄곧 애국충절의 일념으로 국권회복에 몸바쳐 온 예관(신규식)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예관(신규식)은 다시 한번 목숨을 버리고자 음독자살을 꾀하였으나 다행히도 대종교의 종사(宗師) 나철에 의해 발견되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나철은 당시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창시한 종사였는데 예관(신규식)은 1909년 7월경에 대종교에 입교한 이래 그와 두터운 친교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예관(신규식)은 대종교에 한민족의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확신한 까닭에 우리민족의 부흥은 곧 대종교의 발전에서 가능하다고 인정할 만큼 대종교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 대종교에 대한 확신은 그가 고유한 민족정기를 이었다고 보는 민족지상주의적인 대종교에 귀의한 이후 더욱 강화되었던 것이다. 자살사건을 기화로 나철과 친분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또한 대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망명 이후 상해에서 활동할 때에는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포교에도 심혈을 기울여 매주 예배를 올리는 등 이 지역 대종교를 영도했던 것이다.\n예관(신규식)은 국권상실의 통한을 마음속으로 되씹으면서 와신상담하는 심정으로 나라와 민족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된 근본 원인을 찾아 그 상처를 치유해야만 복국(復國)하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망국으로 치닫게 된 원인을 법치의 문란과 원기의 쇠약, 지식의 빈곤, 외세에 대한 아첨과 한순간의 편안함 추구, 그리고 터무니없이 스스로를 크게 여기거나 스스로를 낮추는 것, 당파를 짓고 사리사욕을 꾀하는 것에서 찾았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하늘이 준 본연의 착한 마음을 송두리째 잊어버린데 있다고 보았으니 “상진천량(喪盡天良)”이 그 의미다. “상진천량”때문에 양심이 마비되고 악한 병에 걸리는데 그것이 바로 선망(善忘), 즉 잘 잊어버린다는 병이었다. 이처럼 백성들이 잊어버리기를 잘하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한국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돌파구는 다름 아닌 선망증을 치유하는 방법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를테면 선조의 교화와 종법, 선조의 공렬과 이기(利器), 국사(國史)와 국치(國恥)를 잊지 말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만 대한의 혼은 간직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n이처럼 “대한혼”의 복구가 국권회복의 최선책이란 생각을 굳힌 예관(신규식)은 새로운 각오로 구국에 몸바치기로 하였지만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더 이상 국내에서의 활동이 진전되기 어려우며 더욱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자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였다. 이즈음 예관(신규식)은 국제정세 특히 중국의 정세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으로 중국에서 전개되고 있던 공화주의 혁명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n어느덧 1910년도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즈음 망명을 결심한 예관(신규식)은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 조성환과 박찬익을 만나 새로운 각오로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며 의형제를 맺었다. 세 사람의 애국청년들은 상호 머리로 맞대고 장래의 구국활동에 관해 논의한 끝에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정하여 조성환과 박찬익은 먼저 떠나고 예관(신규식)은 남아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망명 자금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예관(신규식)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던 광업회사의 돈까지 거두어 2만여 원을 준비하였는데 당시에 쌀 한가마니에 1원 50전이었다고 하니 2만원은 상당한 액수의 자금이었던 것이다. 예관(신규식)은 자금 중 일부를 장질인 신형호에게 주어 먼저 중국에 망명한 조성환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부친에게 고별인사를 드리기 위해 향리인 인차리에 내려가 경부 신백우를 만나 중국으로 망명할 뜻을 비쳤다. 그리고나서 당시 관립외국어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우 건식(신건식)에게 상해로 망명할 것임을 알려주고 연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도록 지시하였다.\n그런데 그가 남긴 한시 중 「속장(束裝)·친구의 체포 소식을 듣고」에 의하면, 예관(신규식)이 중국으로 망명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 민족운동과 관련되어 측근의 친구가 일제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망명을 서두르게 되었다는 내용을 간파해 낼 수 있다. 추측컨대 신민회와 관련된 민족인사의 체포인 듯하며, 이 때문에 그가 어떤 신분상 위협을 감지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망명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진 것은 틀림없었다.\n그런데 1910년 한일합병(한일강제병합, 강제병탄, 1910)을 전후한 시기부터 국내에서는 더 이상 어떤 민족운동도 전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해외에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세워 독립투쟁을 전개하려는 계획이 대안으로 마련되었다. 즉 이 시기 가장 주된 구국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는 1910년 전부터 국외 독립군기지 창건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애국지사 중 다수가 국외로 망명하였으며 한국독립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물론 해외독립운동의 중심지는 만주와 연해주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중국 본토보다 한인의 이주가 일찍부터 시작된 이래 다수의 한인이 정착하여 한인사회가 형성되었으므로 물적 인적자원 활용이 독립운동 기지설치에 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지역으로 건너가 무장투쟁과 교육구국활동을 전개하면서 조국 광복의 꿈을 키우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중국 본토는 교통이나 거리 문제도 있고 한인들의 이주시기도 짧아 그 수가 매우 적어 1911년경에는 상해·북경 등에 불과 수십 명의 한인이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규식이 이와 같이 독립운동을 위한 제반 환경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독립운동가들조차 그야말로 봉모인각으로 드물었던 상해로 망명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n그 동기를 구체적으로 밝힐 만한 자료는 없으나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예관(신규식)은 국제정세 특히 중국정세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의 조짐을 주목하면서 그러한 기운이 한국의 앞길에도 새로운 전환을 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중국정세에 정통할 수 있었던 것은 망명 이전 학회활동 시기에 계몽운동단체의 학회지나 신문을 통해 당시의 외국정황 특히 중국혁명당에 관한 기사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몽운동 시기의 언론에서 중국 혁명당에 대한 기사들이 당시 국가흥망을 염려하던 지식인들 간에 지대한 관심의 초점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열강의 주된 약탈대상이었던 중국에서의 혁명성취 여부가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의 해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n이런 측면은 뒷날 신규식이 중국혁명에 대한 대단한 희망을 가지고 중국혁명의 성공이 바로 한국의 독립·해방으로 연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중국혁명에 직접 참여하는 사실로도 입증되는 바였다. 중국혁명에 대한 그의 신념은 당시 중국이 처한 입장이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판단 하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의 공화주의적 혁명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 독립해방도 영향을 받게 되므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혁명지사들과 연계를 맺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희망을 가진 탓에 중국혁명의 중심지인 상해로의 망명을 결심했다고 추측된다.\n게다가 상해는 동방교통의 요지요, 서구열강의 조계(租界)가 있어 독립운동의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며 구미(유럽·미주) 각국인의 내왕과 거주로 국제여론 형성과 정보수집이 용이한 이점도 있었다. 이런 유리한 여건을 이용해 상해는 당시 중국 혁명운동가들의 중심지로써 이들의 잡지나 신문이 다수 출판되어 있었고 혁명운동단체의 조직도 많아 혁명기운이 만연하였으므로, 중국 이외에 다른 피압박 민족에게도 민족운동의 전략중심이 되어 있었다.\n예관(신규식)이 중국으로 망명한 시기는 대체로 신해혁명(1911)이 일어나게 되는 1911년이지만 정확한 달과 날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동맹회에 가입하고 신해혁명(1911)에 참여하였다는 점과 그가 남긴 시구를 통하여 정리해 보면 이 해 3~4월로 추정할 수 있다. 즉 한시에 능했던 그가 남긴 시집 『아목루(兒目淚)』중 일본인이 친구들을 체포하자 속히 떠날 채비를 한다는「속장(束裝: 聞友人被捕)」에 이어 부모에게 사실을 고하지도 못하고 떠나는 불효를 원망하는 시를 지었으며, 다음에 「한성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며(發漢城渡鴨綠江)」란 제목으로 “큰 강이 저처럼 흘러가는데 언제나 다시 동쪽으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탄식조의 시를 지어 망명객의 심사를 표현하였으니, 이 시 구절처럼 그가 다시는 조국 땅을 밟을 수 없는 불귀의 객으로 순국하게 되었던 훗날의 일을 예견한 듯하다. 이로 보아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널 때에는 이미 해빙기가 되었다는 뜻으로 그 시기가 아무리 빨라도 3월쯤이 될 것이다.\n또한 중국 신해혁명(1911)에의 참가활동과 연관지어보면 상해에서의 신해혁명(1911)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동맹회중앙총회(同盟會中央總會)의 조직에서 비롯됨으로 그가 압록강을 건너 상해에까지 가는 경로를 보아 늦어도 4월 초쯤에는 압록강을 건넜다고 볼 수 있다.\n압록강을 건넌 예관(신규식)은 지나가는 곳마다 그 지역을 보고 느낀 감회를 적은 한시를 남겨 놓아 대체로 어떤 경로로 상해에까지 이르렀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우선 압록강을 건너 안동현을 거쳐 요양(遼養)의 고려문(高麗門)을 지나 심양을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그는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조국에 몸바치자고 맹세하며 의형제를 맺은 뒤 그보다 먼저 이곳으로 망명해 온 청쇠(晴衰) 조성환을 방문하였다. 청쇠(조성환)로부터 당시 중국의 실정을 듣고 나서 이때의 감회를 “서울에서 이별하고 3천리나 와 이 해가 다 저문 북경 땅에 옛친구를 만나서 눈물만 흘리고, 둘은 말도 없이 서로가 한참 동안 쳐다보기만 하다가, 비로소 중국의 사정을 올바로 알게 되었네.”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n예관(신규식)은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과거 우리나라의 공사관이었던 곳을 수소문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스 은행을 그곳으로 잘못 알고 헤매다가 결국 찾기는 하였으나 아무도 없는 적적한 모습만 보았는데 이미 해가 지고 말았다는 서글픔을 시로 표현하였으니 국권상실의 애절함을 공사관을 폐쇄했다는 표현을 빌어 은유적으로 나타내려는 그의 울분 섞인 마음을 읽을 수 있다.\n예관(신규식)은 조성환과 그에게 보냈던 조카 형호(신형호)와 함께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갈 목적으로 천진에 도착하여 프랑스 조계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가 여기를 택하였던 것은 이후 상해에서도 주로 프랑스 조계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프랑스는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또한 일본의 치외법권 지대여서 그들의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n예관(신규식)이 천진에서 묵고 있을 때 “천진다리 위에 고려인이 거닐고 불조루(佛照樓)에서 세상사를 평하고 있는데 주인은 나의 괴로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무엇을 사줄 것이 아닌가 하고 친절만 베푸네.”란 내용의 한시를 지었다. 이 시도 또한 나라를 잃고 후일을 기약하기 위한 망명객의 통한이 담겨진 애절한 내용이었다. 그가 여기에 묵게 된 연유는 아마 국내에 있었을 때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곳으로 사전에 예약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천진에서 산동의 제남(濟南)으로 갔을 때에는 진제전에 머물렀는데, 김선교(金宣喬)가 방문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상해로 가는 그의 여정은 미리 짜여진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사전에 그와 연고 있는 곳에 연락이 닿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n곧이어 예관(신규식)은 여기를 떠나 청도(靑島)에 도착하였는데 청도가 1898년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음을 상기하면서 교주만(膠州灣)에서 영국배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상해로 향하였다. 항해 중 그는 배 내부의 모습을 “이른바 방창(房艙)이라는 안에는 전후 좌우로 모두 아편 흡입자들로 가득찼다. 그러므로 밤에 잠을 다 자도 식사를 얻어먹을 수가 없었고 통증이 있었으나 이를 막을 길이 없었다. 이에 한시나 지어 아편 귀신이나 쫓아야 하겠다.”고 표현한 시를 지었으니 예관(신규식)의 눈에 비친 당시 중국의 실상이 어떠했는가를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중국혁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주는 실례가 되었으리라.\n상해에 도착한 예관(신규식)은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키 위해서는 우선 운동을 전개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다. 당시 혁명운동을 전개하던 중국혁명지사들과의 적극적인 유대 및 협력 체제를 다져 나감과 동시에 한국 독립지사들이 상해로 망명하도록 종용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였다.\n즉 신규식은 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혁명은 모두 중요하며 중국혁명의 성공이 곧 한국의 독립해방을 가져올 것이라는 신념하에 중국혁명파 인사들과의 교류를 시도하였다. 예관(신규식)이 그의 시에서 “내가 일찍이 신해년에 상해에 왔을 때 다음 날로 친교를 맺는 첫 번째 사람”이라고 밝힌 이가 바로 중국혁명파 잡지인 『민립보(民立報)』의 사원 서혈아(徐血兒, 서천복)였다.\n서혈아는 본명 천복[天復(서천복)]으로 당시 중국 혁명파를 대표하는 일간지에서 혁명사상을 보급하고 항일적인 논조를 전개하던 논설작가로 이름난 인물이었다. 이러한 입장의 서혈아(서천복)와 만난 예관(신규식)은 자연스러이 의기투합하여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예관(신규식)의 앞길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던바 서혈아(서천복)는 예관(신규식)과 중국혁명파 인사들과 친교를 맺게 해 준 교량적 역할을 한 것이었다.\n『민립보』란 1910년 10월에 우우임(于右任)이 창간한 신문으로 당시 중국혁명의 주도단체였던 중국동맹회 회원인 송교인(宋敎仁)·여지이(呂志伊)·범광계(范光啓)·서혈아(서천복) 등이 적극 참여해 활동하였으며 진기미(陳其美)가 외신기자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잡지는 중국혁명운동가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혁명운동을 적극 지지하였던 까닭에 혁명파의 기관지 역할을 담당하던 중요한 매체였다. 또한, 그 사무실이 있던 민립보관은 이들의 연락 중심지로 중국동맹회 회원을 비롯한 선구적인 혁명운동가들이 빈번하게 드나들던 왕래 장소이기도 하였다.\n『민립보』는 멕시코·필리핀·인도·터키 등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여 이들 국가들의 민족운동에 관한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또한 그들의 성공을 빌면서 중국혁명당인들에게 이를 배우도록 격려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었다. 이처럼 『민립보』의 논조는 바로 우리 한국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고무적인 입장임에 틀림없다.\n게다가 『민립보』는 창간 후에 독자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어 밤낮으로 인쇄기가 쉬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약 2만 부가 발행되어 당시 중국 내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혁명파의 일간지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 아래 예관(신규식)이 상해로 와 처음 알게 된 중국인사가 앞서 본 민립보사 사원인 서혈아(서천복)였던 것은 의미가 깊다. 예관(신규식)으로서는 서혈아(서천복)와 가까이 지내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되었을 것이다.\n그러므로 예관(신규식)은 『민립보』와 서혈아(서천복)를 통해 중국혁명의 지도적인 인물들과 용이하게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신규식은 송교인과 친분을 맺게 되었고 그를 연계로 비로소 중국혁명동지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니 중국동맹회의 창립동지인 황흥(黃興)·진기미 등과 차례로 친교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신규식은 스스로 이름도 신정이란 중국이름으로 고치고 중국동맹회에 가입한 후 진기미와 더불어 1911년 10월 무장혁명에 참가하여 뒷날 한국지사로는 중국 신해혁명(1911)에 투신한 최초의 인물로 높게 평가되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혁명동지들과의 동지적 유대가 깊어질 수 있었다. 무장혁명의 성공으로 신규식은 조국독립에의 희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자극 받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혁명에 대한 희망을 안고 속속 상해 지역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 후 예관(신규식)은 혁명 동지인 진기미를 통해 오철성(吳鐵成)·거정(居正) 등 중국 각 지역 혁명가들과도 접촉할 수 있었으며, 더욱 더 고무적인 바는 상해에 도착한 중국 혁명의 지도자 손문과도 친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손문이 주도한 중국 혁명은 민족·민권·민생주의를 표방한 민족복권운동이면서 약소민족의 독립·해방쟁취를 지지·격려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아울러 중국혁명이 신속히 진전되었던 까닭에 신규식은 손문과 중국혁명에 대한 기대가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912년 손문이 중화민국 초대 임시 대총통이 되었을 때 이를 축하하며 공화정의 출범을 기리는 시를 지어서 손문에게 바쳤으며 그 후 조성환과 함께 남경으로 가서, 손문을 직접 회견하고 한국의 멸망을 호소한 뒤 조국독립운동에 대한 원조를 요청한 바 있다.\n그런데 중국 측 정국에 변화가 생겼다. 즉 1차 혁명에 성공한 손문이 임시 대총통으로 즉위하고 나서 원세개가 청나라 황제를 퇴위시키고 자신이 총통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소식을 듣자 손문은 원세개와 타협하여 즉시 청제 퇴위와 공화정을 선포하는 조건으로 원세개를 제2대 임시 총통으로 당선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손문의 기대와는 달리 정권탈취에만 급급한 원세개는 북경병변(北京兵變)을 일으켜 북경에서 총통으로 취임한 뒤 제제(帝制)를 복구하고자 획책하여 1913년 3월 반원(反袁)세력의 주도급 인사인 송교인을 암살하였다. 이어 자신의 세력 강화를 위해 외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고 중국혁명파의 힘을 약화시키는 음모를 꾀함에 1913년 7월부터 도원(倒袁)운동인 2차 혁명이 각처에서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규식은 2차 혁명 발발 이전 몇몇 동지와 함께 진기미를 방문하였다가 다시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반혁명적인 원세개를 성토하면서 그를 도와 상해 일대의 2차 혁명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2차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그 주도인물인 진기미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으며 신규식도 북경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되어 외출도 자유롭지 못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n중국혁명운동에 직접 참여하여 중국혁명파들과 함께 활동했던 신규식은 개인적으로도 혁명인사들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해 상호 서신왕래 및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의 혁명운동에 있어 정신적·물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았다고 한다.\n특히 송교인과 진기미 등과는 가장 먼저 사귀었고 우의도 깊은 절친한 관계를 이루어 송교인이 원세개 세력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예관(신규식)은 비분을 가눌 수 없이 극도에 달하여 3일간이나 단식하여 침통한 애도의 정념(情念)을 표시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이어 한국의 몇몇 지사를 규합하여 추도회를 열고 정중히 추도하니, 국민당의 선열이 순난(殉難)을 당하고 외국 인사에게 추도 받은 일도 아마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진기미와는 정의가 서로 투합하고 우의가 두터웠으며 진기미 자신도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더욱 열심히 “마음을 기울여 서로 돕고, 밤낮으로 걱정할” 정도로 진심어린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는 등 가장 절친한 사이로 진전되었다. 후에 그가 피살되었을 때 상해의 분위기가 아주 험악한데도 이를 개의치 않은 예관(신규식)은 자기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먼저 조문하였다. 그 때 진기미의 시체는 침상에 안치된 채 아직 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탄에 맞은 머리와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그 처참한 모습이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고인을 안고 통곡한 뒤 “장쾌하다. 사내대장부로서 나라를 위하여 죽었구나. 살아서는 영웅이요, 죽어서는 신령이 되었으니 당인(黨人) 중에 영사(英士)와 같은 이를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구나.”라고 외쳤다. 그리고 아울러 「벽랑호반 한인담(壁浪湖畔恨人談)」과 「진선생 영사시(陳先生英士詩)」를 지어 고인을 극진히 애도하였고, 그 글과 정이 다 같이 깊어 글자마다 진정이요, 귀절마다 피눈물로써 외국인으로 이토록 훌륭하게 협정(俠情)을 풀어냈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케 했다고 예관(신규식)의 전기는 전한다.\n예관(신규식)과 친교를 나눈 중국혁명인사 중 각별한 관계를 가진 또 한 사람으로 대계도를 들 수 있다. 그는 사천 광한인(廣漢人)으로 청말 일본에 유학하면서 항상 한국 독립지사들과 왕래하던 인물이었다. 귀국 후 상해에서 언론계에 종사하였는데 혁명파에 속하는 언론에서 편집을 맡게 되었다. 이후 동맹회에 가입하여 혁명대열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예관(신규식)과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n대계도가 혁명파 신문인 『민권보(民權報)』를 창간할 때 자금난에 허덕이자 예관(신규식)은 망명 때 가지고 간 자금의 일부를 기꺼이 희사하여 중국혁명사상 전파에 일조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양자간은 더욱 밀접해졌으며 대계도 또한 한국의 현황에 대한 큰 관심을 보여 일본 제국주의의 한인에 대한 잔악상을 규탄하는 논조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예관(신규식)이 맺은 개인적 친분은 한국독립운동에 있어 중국 측으로부터의 정신적·물질적인 지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와 친분 있던 인사들이 죽은 후에도 이들의 협조적인 유대관계가 이어져 중국의 국민당정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관계가 긴밀히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이루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n신규식은 당시 중국동맹회 회원을 비롯한 혁명지사들의 문학단체인 남사(南社)에 가입하였다. 남사는 1909년 11월 13일 발기된 문학단체로서 문자 혁명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만청정부(滿淸政府)를 반대하면서 혁명운동을 도와 혁명사상을 고취시키고자 한 혁명적 성격을 띠었다는 평가를 받던 단체였다. 실제로 남사의 사원 중에는 중국동맹회 회원들이 많았으며 송교인의 가담으로 동맹회와의 관계도 깊어졌고, 서혈아(서천복)·진기미 등도 남사에서 활약하였으며 남사의 본부격인 연락처도 민립보사였다. 이처럼 남사는『민립보』및 중국동맹회와 깊은 관계를 맺은 단체였다. 따라서 신규식은 이런 연관성을 중시하며 1913년 말이나 1914년 초쯤 남사 회원인 주소병(朱少屛) 등의 추천을 받아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사에 가입하여 문학을 통해 중국 혁명지사 및 문인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1914년 8월 신규식이 처음으로 남사의 회합인 아집(雅潗)에 참석했을 때 “이름은 정, 자는 산려(汕慮), 요령인(遼寧人)으로 원적은 조선이며, 삼한이 망국하게 된 비참을 통분하여 집을 떠나 서쪽으로 와 독립운동에 전력을 다하였다.”고 소개되었으며 그의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그 외 남사에서의 문학적인 활동은 그렇게 활발하지 못해 비정기 출판물인 『남사총간(南社叢刊)』에 1915년 3월 부록으로 『신예관과 동사제자서(申晲觀과 同社諸子書)』가 있으며, 시집 『아목루』중 「기남사(奇南社)」와 「남사 11차 아집시아자(南社十一次雅集示亞子)」가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문학에 조예가 갚은 신규식이 남사의 활동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이 단체에 가입한 근본적인 목적이 문학 활동에 있다고 하기 보다는 중국혁명가 및 그 외 중국인들과의 교류를 넓혀가면서 한국독립운동의 지지 세력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이 우선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 시기는 중국혁명에 참가했던 때와는 달리 신규식이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를 조직 운영하면서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하던 시기였으므로 활동이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n그리고 예관(신규식)은 장계란(張季鸞)·호정지(胡政之)·엽초창(葉楚傖)·사양재(史量才) 등 여러 중국 인사들과 공동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한국혁명을 선전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또한 『한국통사(韓國痛史)』·『이순신전』·『안중근전』 등 서적을 출판하였으며 잡지를 발간하고 『진단보(震壇報)』를 출판하여 한국혁명에 대한 대외 선전에 앞장섰다. 『진단보』는 반월간(半月刊)으로 발행되었으며 예관(신규식)은 진단이 세상에 나온 것을 동지를 대신해 축하한다는 의미의 「진단출세억동지대축(震壇出世憶同志代祝)」란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n남사와 관련을 맺으면서 신규식은 환구중국학생회에도 가입하여 이등휘(李登輝)·당문치(唐文治)·주가화(朱家華) 등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학생회는 1905년 이등휘가 상해를 거쳐 출국 혹은 귀국하는 중국유학생들의 취업을 알선키 위해 발기한 단체인데, 1914년 그가 미국으로 떠나자 주소병이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단체는 학생들의 유학알선, 직업지도 및 교육적 기능을 그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그런데 예관(신규식)이 이 단체에 언제 가입하였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등휘와 사귀었다는 『전기』기록으로 보아 이등휘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듯하며, 이 학생회와 같은 목적에서 예관(신규식)이 박달학원을 설립한 시기와 1913년 말인 점을 고려해 보아도 그러한 추측이 가능하다.\n앞서 본 바와 같이 신규식은 망명 이전부터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 국가의 자주독립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중요 방책임을 실천을 통해 알고 있었으므로 망명 이후에도 이를 독립운동의 한 방략으로 채택하였던 것이다. 이를 실행키 위해 환구중국학생회와 같은 성격을 가진 한인학생의 유학알선과 교육기능을 담당할 기구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예관(신규식)은 이 조직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키 위해 환구중국학생회에 가입하여 중국인과 중국인 단체의 조직적인 협조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 한 것이다.\n이상과 같이 독립운동의 불모지였던 상해에 망명한 신규식은 신해혁명(1911)을 비롯한 중국혁명운동을 열렬히 지지, 가담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제고시키는 한편 그들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하여 상호 협력 체제를 형성하면서 독립운동 기지설립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남겼던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n신규식이 상해에서 독립운동 기지마련을 위해 중국혁명운동에 적극 협조하는 동안 독립운동가들도 중국혁명의 진척에 자극되어 점차 상해로 모이게 되었고, 또한 그의 노력으로 조국광복에 뜻을 둔 청년들도 많아지게 되자, 독립투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예관(신규식)은 1912년 5월 20일(음력) 동제사(同濟社)를 발기·결성하였다.\n동제사는 비밀결사였기 때문에 결성 당시의 조직형태나 규모·정강 등을 파악할 만한 자료를 남겨두지 않았다. 때문에 그 실체의 규명은 어려우나, 신규식 이외에 박은식·김규식·신채호·홍명희·조소앙·문일평·신건식·조성환 등이 결성 이후 적극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제사의 결성목적은 동제사의 “동제”(同舟共濟)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반대편에 도달하자는 의미가 말해 주듯 한 인간의 친목융화, 간난상구(艱難相求)를 목적으로 한다고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국권회복이 그 진정한 목표였다.\n그 조직 구성을 몇몇 자료에 근거하여 정리해 보면 본부는 상해에 두고, 지사는 북경·천진·만주 등 중국지역과 노령(러시아령) 이외 구미(유럽·미주)·일본 등지에 설치되었으며 본부조직에는 이사장과 총재를 두며, 지사에는 사장과 간사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조직이 점차 확대되어 최성기에는 300여 명의 회원을 가질 정도로 발전하여 조국광복운동의 중심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동제사에 가입하는 회원은 가입 당시 절대 비밀을 맹약하고 이를 엄수하며 간부 상호간에는 암호를 사용하여 왕래하였던 것으로 보아 상당한 조직력을 가진 비밀 결사였음을 알 수 있다.\n신규식이 본부의 이사장직을 맡고 총재는 박은식이 담당하여 운영의 중추역이 되었다. 그 외 동제사 회원 중 중견 간부로 활약한 사람들을 들어보면, 홍명희(洪命憙)·문일평(文一平)·박찬익(朴贊翊)·조성환·농죽(農竹)·김용호(金容鎬)·신철(申澈)·신무(申武)·민제호(閔濟鎬)·김갑(金甲)·정환범(鄭桓範)·김용준(金容俊)·민충식(閔忠植)·윤보선(尹菩善)·이찬영(李贊永)·김영무(金英武)·이광(李光)·신우창(申于蒼)·한진산(韓震山)·김정(金鼎)·김덕(金德)·변영만(卞榮晩)·민필호(閔弼鎬)·김규식(金圭植)·신석우(申錫雨)·여운형(呂運亨)·선우혁(鮮于爀)·서병호(徐炳浩)·장건상(張建相)·정원택 등이 있다.\n상해에서 조직된 최초의 독립운동단체인 동제사의 성격은 신규식을 위시한 동제사의 핵심 인물인 박은식·신채호·조소앙 등이 시민적 민족주의사상·개량적 사회주의사상·대동사상을 정치사상으로 하며, 국혼(國魂)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역사관과 대종교의 국교적 신앙을 공통으로 가졌던 점으로 보아 그들에 의해 경영되는 동제사의 기본 이념과 독립운동 방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n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한 동제사가 실제는 어떻게 활동했는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록을 미루어 보면 비교적 활발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반을 닦아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1913년 7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남경에서 동제사총회를 개최했다는 기록은 동제사가 각 지부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통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동제사는 주기적으로 각 지부가 모여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그 창립날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식이 해마다 거행되었음도 알 수 있다. 그 외 신입사원을 위한 환영회도 개최하여 동지적 유대감을 심어 주고자 했다. 대체로 상해지역으로 유학이나 구국운동을 위해 망명한 청년들은 대부분 동제사에 가입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중국관내에서 한인들을 결집시켜주는 구심체적 역할을 맡던 단체였다고 하겠다. 또한 구미(유럽·미주)·일본 등지에도 지사가 설치되고, 300여 명의 회원이 있었으므로 각 지사를 중심으로 지역별 투쟁을 전개함과 아울러 지사 상호간의 연락·정보교환 등을 통해 분산된 지역의 독립운동이 통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상해본부가 이를 주도하여 지사의 사원을 통해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던 독립운동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던 핵심적인 단체였다고 보인다. 이를 테면 동제사의 주요인사인 신규식·박은식·조성환 등은 북미합중국과 미국령 하와이 지방에서 보내주는 『신한민보』·『국민보』 등을 받아서 안동현으로 보내면 안동현의 박광(朴洸)·백세빈(白世彬) 등에 의해 국내로 배포되었다는 기록은 각 지역에 세워진 동제사의 지사를 활용하여 해외에서 발행된 신문을 국내로 전하려는 일환으로 취해진 배포 방법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전해진 신문은 국내에 은닉된 조직망을 통해 뜻있는 애국지사는 물론 일반 민중에게도 정확한 정보전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n동제사는 상해에서 결성된 한국 독립운동단체의 효시로서 이후의 단체결성 및 이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전개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동제사의 협력 단체인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통한 중국혁명세력의 지원도 확보할 수 있다.\n동제사가 언제까지 존립했던가는 확실치 않으며, 신규식이 순국한 1922년 9월 이후 박찬익이 동제사의 이사장직을 맡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까지는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했다고 추측된다.\n동제사를 조직한 후 예관(신규식)은 상해에서 진기미 등과 협의하여 비밀결사인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전적으로 한국독립을 위하여 조직한다는 기본취지 하에서 한국과 중국의 혁명운동가를 연결하고 양 국민간의 우의를 증진시켜 상호협조 속에서 혁명운동을 전개하려는 데에 역점을 두었으며, 그 명칭도 동제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동제사의 협력단체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n신아동제사는 1912년 말에서 1913년 초 사이에 창립되었는데, 이 시기는 중국 동맹회의 세력극성기로 그 중심인물인 진기미가 이 단체의 감독을 맡게 됨에 다수의 혁명파가 이에 가입하게 되었다. 회원은 송교인·진기미(陳其美, 일명 英士)·호한민(胡漢民)·요중개(廖仲塏)·추노(鄒魯)·대계도(戴季陶)·진과부(陳果夫)·서겸(徐謙)·장부천(張傅泉)·오철성(吳鐵城)·은여려(殷汝驪)·장계란(張季鸞)·호림(胡霖)·백문위(栢文蔚)·여천민(呂天民)·당노원(唐露園)·당소의(唐紹儀)·황개민(黃介民)·양춘시(楊春時)·장정강(張靜江) 등이다.\n이들 중 송교인·요중개·진기미·대계도·호한민·추노·백문위 등은 중국혁명동맹회 회원으로 신해혁명(1911)에 적극 가담한 인물이며, 후에 손문에 의해 수립된 광동정부에서 요중개는 재정차장, 오철성은 광동대원수부참모, 서겸은 손문의 비서장, 여천민은 사법부장, 당소의는 재정부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진기미의 조카인 진과부·오철성·대계도 등은 국민당정부에서 지도적인 인물이었으며, 호림과 장계도는 상해의 신문인으로 언론 선전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 지지하였다. 이처럼 중국혁명운동의 중심인물들과 중국 언론 등을 통해 한국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아동제사가 어떤 활동을 전개했는가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동제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키 위한 양국 혁명가들의 협력단체였다고 보인다.\n따라서 이 단체가 지닌 역사적 의의는 한국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한 한·중(한국·중국) 양국 혁명운동의 호조기관으로서 최초의 조직이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그 회원인 대계도·호한민·추노·오철성·진과부 등은 당시 중국 혁명세력의 주류로써 중국혁명운동을 이끌어 갔으며 그 외 요중개·당소의 등과 함께 중국혁명정부의 중추세력이 되었다. 이렇듯 신규식이 중국혁명이란 파란 속에 주저함 없이 몸을 던져 혁명대열에 적극 참여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관계를 전개시켜 양국이 공동보조를 맞추도록 터전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즉 선구적인 협조 체제가 구축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중국 혁명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n신규식은 상해 망명 후에도 독립운동의 기반확대와 조직력 강화를 위해 청년교육에 주력하였다. 그는 우선 중국혁명지사들과의 친분관계를 활용하여 한국청년들을 중국 각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면서 유학 및 그에 필요한 제반 여건 마련에 동분서주하였다. 한 예로 1910~20년대 상해지역의 한인들의 활동에 대한 기록인 『지산외유일지(志山外遊日誌)』를 남긴 정원택(鄭元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원택은 처음 중국으로 망명할 때 북경으로 유학하고자 결심하고 길을 떠났으나 이후 목적지를 변경하게 된 이유가 상해에 예관 신규식 선생이 많은 유학생을 통솔하고 계시니 제반사가 용이하리라는 주변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에서 그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또, 1913년 12월에 상해에서 예관(신규식)을 만났던 이광수의 회고에 “예관(신규식)은 우리가 있던 집보다 더 큰 집을 얻어 7∼8명의 학생을 유숙시켰으며… 신채호·김규식 씨도 예관(신규식) 댁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때 예관(신규식)은 상해 뿐 아니라 강남 일대 조선인 망명객의 본거지였다.”고 술회한 점으로 미루어 예관(신규식) 주변에 청년학도들이 모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 신규식은 이러한 열혈청년들의 애국심을 정신적·육체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한 교육알선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고자 체계적인 방안을 모색하여 전술한대로 환구중국학생회에 가입한 뒤 중국인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협조체제를 이루고자 꾀하였다.\n이처럼 예관(신규식)은 청년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러한 애정은 혁명운동의 실천은 청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며, 국가 부흥도 청년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열정과 충절을 가슴에 담은 청년들을 구국교육으로 무장시켜 장차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인재로 양성하여 민족의 광명이 될 밑거름을 만들고자 굳게 다짐하였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n그리하여 “선생은 청년이 찾아오면 식사와 숙소를 마련하여 주었고, 청년이 떠나면 노자를 마련해 주었으며, 청년이 유학가면 여권의 입국수속을 돌보아 주었으며 청년이 학교에 입학하면 학비를 마련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몸소 학생을 데리고 가서 학교에 입학시키고 그들의 학비를 납입하고 책을 사고, 그 밖의 모든 수속절차를 마치는 것을 보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였다.”고 전기에는 전한다. 또한 청년들이 환란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실망하였을 때는 그들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에 대한 지극 정성의 보살핌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박달학원의 설립이었다.\n즉 유학을 원하여 상해 등지에 모인 학생들의 수가 많아지게 되자 예관(신규식)은 보다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교육활동을 위해 동지들과 상의하여 1913년 12월 7일 상해 프랑스 조계내 명덕리에 박달학원을 개설하여 청년들을 수용하고 훈련과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원은 중국·구미(유럽·미주) 유학을 위한 입학 예비교육을 주요 목적으로 하며, 영어·중국어·지리·역사·수학을 교육과목으로 정하고 수학기간은 1년 반이었다. 박달학원의 선생은 중국어 교사인 조성환을 비롯하여 박은식·신채호·홍명희·문일평·조소앙 등 모두 독립운동지사로 유명한 인물들이 담당하였으며 이외에 중국인으로 혁명운동가인 농죽 선생과 미국인 화교인 모대위(毛大衛) 등이 있었다.\n또한 학원 내에 구락부를 조직하고 규칙을 제정하여 각 학생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학원의 기강을 세우는 등 비교적 체계를 갖춘 교육기관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박달학원은 3기에 걸쳐 졸업생 100여 명을 배출하였으며, 예관(신규식) 등은 그들이 지원하는 바에 따라 중국 각 대학과 구미(유럽·미주)에 유학을 보내거나 학자금을 알선해 주었다. 그 중 4·19(4·19혁명, 1960) 후 과도정부의 수반이었던 허정(許政)이 “신규식 선생과 장계(장부천) 씨 간의 협조로 유법검학회(留琺儉學會)의 유학생들 틈에 끼어 1919년 11월 한국청년 6명이 프랑스로 유학갈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여기서도 예관(신규식)이 얼마나 청년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n그밖에 윤보선과의 일화가 있다. 나이 20의 피 끓는 청년 윤보선은 상해로 건너와 여운형의 집을 거쳐 서양인 ‘핏취’란 사람 집에 묵던 중 예관(신규식)을 알게 되었다. 남달리 청년을 아끼는 예관(신규식)은 윤보선의 인물됨을 보고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임정(임시정부)을 위한 재목으로 여기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천거하여 독립운동에 참여케 해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독립운동 자금모집 활동을 맡겨 일본에 건너가도록 하였다.\n예관(신규식)은 윤보선에게 인격적으로 큰 감화를 주었으며 아끼고 여러모로 지도해 주면서 해위 즉 ‘바다의 갈대’라는 아호까지 지어주었다. 이 아호는 바닷가에선 갈대처럼 연약해 보이면서도 그 억센 파도에도 꺾일 줄 모르는 인물이 되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n그런데 예관(신규식)의 청년에 대한 사랑은 국경을 초월하였으므로 한국청년은 물론 중국의 열혈청년들도 그를 추종하고 숭배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 중 대조신(戴朝臣)이란 남경의 한 중국청년은 예관(신규식)의 감화를 받아 그를 친아버지처럼 받들었다. 이때 예관(신규식)은 상해 프랑스 조계에 머물렀는데 일인들이 늘 변복을 하고 와서 인질을 써서 몇 번이나 술수를 쓰니 체포당할 위기에 용감하게 몸을 던져 일인들의 독수(毒水)를 막아주기까지 하였던 것이다.\n상해에서의 망명생활은 매우 고생스러웠다. 그렇지만 대조신은 중국인이면서도 한국독립운동에 참가하여 한마디의 원망도 없고 오직 마음으로 예관(신규식)의 숭고한 인격을 존중하였고 예관(신규식)의 위대한 덕성을 칭찬하고 높였다고 전한다. 이처럼 외국 청년조차 예관(신규식)을 숭배하였으니 그가 당시 청년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가는 가늠할 만하다. 더욱이 한국청년 중 김충일은 예관(신규식)을 너무나 숭배한 까닭에 예관(신규식)이 서거하자 미쳐버리고 말았으니 진실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n이밖에도 신규식은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무력을 중시했으며, 『한국혼』에서 밝힌 대로 피 흘림, 즉 무력투쟁론을 찬성하는 입장이므로 군사교육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상해의 여러 가지 여건상 직접 군사교육을 실행키 어려우므로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중국의 당계요의 협조를 얻어 한국학생을 보정군관학교(保定軍官學校)·천진군수학교(天津軍需學校)·남경해군학교(南京海軍學校)·호북강무당(湖北講武當)·운남군수학교(雲南軍需學校) 등 중국 군사학교에 보내 약 10년간 1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시켜 무장투쟁의 예비군을 양성시켰던 것이다. 이를테면 청년시절 상해 예관(신규식)의 집에서 머물었던 철기 이범석 장군은 다른 4명의 학생과 함께 1916년 가을 신규식과 당계요의 주선으로 운남 육군강무학교에 입교하였으며, 졸업 후 무장 독립군의 중추적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철기 이범석이 예관(신규식) 밑에 있을 당시 예관(신규식)이 보여준 나라사랑과 청년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하는 아래와 같은 일화가 전기에 소개되어 있다.\n“예관(신규식) 선생이 프랑스 조계 어양리(漁陽里)에서 계실 때 저자(민필호)와 철기 이범석과 함께 지냈다. 낮에는 선생은 국민당 요인들과의 공작으로 바쁘시지만 밤이 되면 우리는 2층에서 벼루에 먹 가는 소리와 가벼운 시를 읊는 소리와 연이어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곤 하였다. 철기(이범석)군은 신(신규식) 선생님 또 우시네 하며 눈시울이 벌개졌다. 우리는 태극기가 다시 서울에 꽂히는 날이 오기 전에는 선생의 그 울음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n철기(이범석)군과 청년들이 학교로 떠날 때 선생은 배우기 위해서는 훈련장의 철봉대에서 떨어져 죽거나 강의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죽더라도 도시 상관할 바가 못된다고 하며 다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장 중시할 것과 나라 잃은 삼천만 겨레의 영광인 것을 강조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후 철기 이범석은 운남강무학교에서 번번이 수석을 차지하는 등 코피까지 흘리면서 열심히 학업에 진력하였다고 한다.\n이처럼 신규식은 박달학원의 설립과 유학주선을 통해 이후 독립운동의 중추가 될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실제로 이들은 교육을 마친 후 각지의 독립투쟁에서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항일운동에 지속적인 역할을 담당케 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n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전쟁의 영향권 내에 들게 된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방침이 변화되자 기존에 세워 둔 한인에 대한 정책을 철회하고 합법적인 독립운동단체까지도 해산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 전까지 러시아령, 서북간도 등 각지의 한인독립운동기지에서 독자적으로 한인자치 및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단체였던 연해주의 권업회(勸業會) 및 대한광복군정부, 북간도의 간민회(墾民會)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해 해산당하게 되었다. 또한 서간도의 부민단(扶民團)과 신흥학교(新興學校)도 그 경영상 어려움으로 활동이 봉쇄당할 지경에 처하였다. 이에 따라 1910년을 전후해 해외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이루어 온 국외독립운동기지화계획과 독립전쟁에 대비, 양성해 오던 독립군 양성계획이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n이러한 곤경에 직면한 독립운동계의 일각에서는 오히려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한 뒤 유럽에서 유리하게 전쟁을 강행하던 독일의 승리를 예견하고 이후의 정국이 한국의 독립만회에 유리하도록 전개될 것임을 전망하였다.\n이를테면 1915년 3월 상해에서 결성된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도 이 시기의 국제정세를 독립전쟁론 실현을 위한 적기(適期)로 포착하고 각지에서 해체된 기존 단체의 독립운동 역량을 재정비·결집하여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코자 조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신한혁명당은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 발발과 국외 독립운동 단체들의 해산을 계기로 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n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이 발발하자 이를 기화로 일본은 1914년 8월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중국대륙에 진출한 뒤 1915년 1월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제시하면서 점차 침략의 기치를 드높여 갔다. 그 여파로 중·일(중국·일본)개전설, 러시아내에서의 러·일(러시아·일본)전 재발설 등이 널리 유포되어 표면적으로 중·일(중국·일본), 러·일(러시아·일본) 간의 관계가 악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종전의 결과를 독일의 승리로 전망하고 기대하던 독립운동계에서는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안을 암중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n우선 시베리아지역의 경우 1914년은 러일전쟁(1904) 발발 10주년이 되는 시기이며, 또한 아무르 철도의 준공 예정 등을 이유로 하급군인들을 중심으로 러·일(러시아·일본)전 재발의 항설(港說)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러·일(러시아·일본)전 발발을 독립운동전개의 기회로 삼고자 권업회의 이동휘를 중심으로 무기 및 자금모집을 활발히 진척시켜 나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 이후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는 당초 예상과 달리 상호 동맹관계가 형성되었으며, 그 때문에 한인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권업회를 해산시켜 버린 것이다. 이때 이동휘를 위시한 독립운동가들은 탄압을 피해 간도나 북만주 등으로 이동하였는데 북만주로 이동한 이동휘·이종호 등은 서북간도·러시아령의 운동세력과 상호연락을 취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하였다.\n한편 북간도 간민회원이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시국을 국권회복의 적기로 파악하고 독립회복의 거사를 계획하였으니 1915년 3월경 이동휘·황병길을 주축으로 한 운동세력은 훈춘 방면을 근거로 활동하고, 간민회원이던 이봉우·윤해 등은 국자가 방면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들은 만약 자신들의 예상대로 중·일(중국·일본) 관계가 악화되면 간도가 바로 군사요충지가 될 것이란 판단하에 지금이 생사성패를 결정할 시기라 여겨 거병계획을 세웠다. 이어 4월 하순 중·일(중국·일본) 교섭의 결렬이 임박했다는 보도를 듣고 신속하게 비밀집회를 열어 암살대조직, 군자금모집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또한 훈춘에서도 중국군과 연합해 일제와 대항할 계획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있었다. 일본의 대독 선전포고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고 그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로 독립이 가능하리라 전망한 이들을 중심으로 민중운동 실현계획이 수립되기도 하였던 것이다.\n이런 배경 속에서 각지의 움직임을 한데 모아 보려던 노력이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즉, 권업회의 해산으로 상해로 이동한 이상설을 중심으로 상해지역의 신규식·박은식, 북경지역의 유동열(柳東說)·성낙형(成樂馨) 그외 이춘일(李春日)·유홍열(劉鴻烈) 등과 북간도의 이동휘, 간민회를 이끌던 이동춘(李同春) 등이 합세하여 신한혁명당을 결성한 것이다. 이들은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 발발 및 일본의 참전이란 국제정세를 독립만회의 기회로 포착하여 당시의 정국을 예의 주시한 결과 이후의 전쟁의 추이는 독일이 승리할 것이 분명할 터인즉 ‘구주전쟁’의 승리 후 그 침략의 기치를 동양으로 향해 일본을 공격함이 필연적이며 이에 중국도 연합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아울러 영국·미국·러시아 등도 이에 합세하게 되어 일본은 고립될 것이 분명하니 이때가 바로 독립 쟁취의 기회이므로 우리도 독립군조직을 정열하여 일본에 대한 전쟁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독립전쟁론 실현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n신한혁명당 결성에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이었으므로 주도세력들이 당시 전쟁의 추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종전에 대한 전망은 어떠했나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일본이 청도를 함락한 후 다시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제시함에 따라 중·일(중국·일본) 교섭이 진행되던 당시의 정국을 종합·분석하여 각국의 일본에 대한 대응책을 예상하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운동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런 면은 특히 신한혁명당이 국내에 당원을 파견하여 작전을 전개할 때 국내 동포에게 준 경각서에 잘 나타나 있다.\n경각서에 의하면 중·일(중국·일본)교섭전의 대세를 아래와 같이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강점(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한 후 중국 동삼성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러시아를 유인, 동아시아의 유지를 위해 러·일(러시아·일본) 간 협조체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어 만주·몽골로의 진출야심을 품고 몽골의 독립을 획책코자 3차 러·일협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러시아령의 한인을 밀약국인(密約國人)이라 규정하고 이들의 표면적인 활동을 저지시켰던 것이다. 특히 1913년 8월에는 이상설·이위종(李瑋鍾)을 러시아 수도에 금고하였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제는 “무형적 활동조직”, 비밀결사의 조직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n다음으로 중·일(중국·일본)교섭 후의 대세는 중국인민의 배일행동, 배화열(排貨熱)이 더욱 거세짐으로 인해 각국의 일본에 대한 입장을 아래와 같은 사태로 결말지어지리라 예상 판단하였다.\n러시아는 3차 러일밀약(가쓰라테프트 조약, 1905) 체결 이후 몽골을 독립시켜 보호국화하여 세력권을 확장하려던 중 대전(제1차 세계대전)의 반발로 연합군에 가담하였다. 이에 일본은 러시아의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서 이를 보호국으로 만들려는 야심에서 21개조에 몽골을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일·러밀약을 취소하고 양국은 적대관계로 변화할 것이다.\n② 영·일(영국·일본)관계[영·일(영국·일본)동맹이 위험한 예정이유]: 영·일(영국·일본)동맹에 한국영토, 중국 이익의 공점(共占)의무를 서로 침범치 않기로 약정한 바 있으나 영국이 구주전(제1차 세계대전)에서 주동이 되자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을 겉으로만 지킨다고 공포하였다. 일본이 청도를 함락시킬 때 영국과 연합하고 청도함락이 성공하면 청도 부근 지역인 이가둔(李家屯)을 영국에게 귀속시킨다고 밀약하였다. 그러나 청도가 함락되었어도 이를 이행치 않고 영국군의 무능함을 비난하였다. 또한 21개조 중 영국의 이익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후일 영국과의 문제를 야기시킬 소지가 있다. 일본의 각 신문에 영국에 관한 무해(無楷)의 기사를 게재해 여러 가지로 공략하였다.\n③ 중·독(중국·독일)관계[중·독연합공일(攻日)의 예정이유]: 독일이 전승할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이치며, 전후 러시아의 시베리아철도권리는 독일에 귀속하게 된다. 또한 청도문제에 대한 대일개전은 기정사실이므로 동삼성·산동지역이 전지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중립을 선언한 중국을 경시하고 일본이 중립지대를 침범하면 공법을 문란케 한 연유로 중국이 독일과 연합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때 미국은 중·독(중국·독일)의 원조국이 되고, 영국·러시아는 동족관계로 연합해 일본의 배후로부터 침입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의 혁명은 애원적(哀冤的)외교수단으로 독립만회를 청구하고 일면 혁명의 주동자는 모국(某國)에 명조(明助), 혹은 암조(暗助)를 받아 일군 운반의 요새지를 방어, 상하분열케 하면 일본은 전승키 어려울 것은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중·독(중국·독일)의 내응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교제기관이 급박한 시기다.”라고 함은 한국혁명의 방향 제시, 독일과 중국에게 원조요구를 위한 외교 활동을 전개할 교제기관의 필요성을 제시하려 한 것이다.\n④ 중·독·일(중국·독일·일본)의 관계가 결렬된 후 우리 동포들의 활동방향: 즉, 자유국민의 자격을 얻으려면 외수내응(外受內應)의 힘이 꼭 필요하다. 재외자(국외동포)와 재내자(국내동포)가 함께 기회를 적절히 이용, 협조체제를 이루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n결국 신한혁명당은, 구주전쟁(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귀착됨이 명백하므로 구주전(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 후 그 침략의 기치가 동양으로 향해 일본을 공격함이 필연적이며 이에 중국도 연합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아울러 영·미·러(영국·미국·러시아) 등도 이에 합세함에 일본은 고립됨이 분명하니 이를 독립회복의 적기로 활용하려 한 것이 당의 주된 결성배경이었다. 물론 신한혁명당의 정세판단과는 반대로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으며, 러시아·미국·영국 등도 일본과 적대적인 대응 관계를 초래하지 않았다는 정세판단 상 허점은 있다.\n1914년 말경 상해에서 비밀회의를 열어 각지의 운동 기반을 재정비, 운동역량을 결집키 위해 비밀결사조직을 결의하고 명칭, 조직의 성격 활동방향에 관해 잠정 합의하였다. 이 결정에 의거 성낙형이 중심이 되어 동지규합, 각 지역의 조직기반활성화, 국내조직과의 연결망구축 등 사전 준비작업을 신속히 전개해 갔다. 이를 바탕으로 1915년 3월 이상설 등 각지 독립운동가들이 상해 영국 조계 서북천로 학숙에 모여 조직기구, 임원선출을 완료하고 규칙과 취지서를 작성함으로써 정식으로 신한혁명당이 결성되었고 곧이어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n신한혁명당의 조직은 본부와 지부로 구성되었다. 본부는 북경 서단패루(西單牌樓) 김자순(金子順)의 집에 설치하고 본부에 재정부·교통부·외교부의 기구조직을 두었다. 지부에는 지부장을 두고 각기 당원을 파견해 중국, 국내의 중요지역에 설치하여 재정·통신 연락 및 당원모집 등 주된 업무를 담당케 하였다. 본부와 지부조직 및 임원명단은 다음과 같다.\n구체적인 조직구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당수를 결정해야 하는 보다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신규식을 비롯한 혁명당의 주도세력들은 신중하게 논의한 끝에 장차 동맹관계를 맺게 될 중국과 독일이 모두 군주정치를 표방하는 점을 고려하여 당이 추구하는 목적달성에 보다 유리한 방법을 채택하였으니, 구황실의 한사람을 맹주로 할 것을 결정하고 광무황제(고종)를 당수로 추대한 것이었다. 이들이 광무황제(고종)를 당수로 추대하고 군주정치를 표방한 방략에서 신한혁명당을 일개의 독립운동단체가 아니라 독일·중국과 동맹을 맺고 일본에 대한 독립전쟁을 수행키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정부적인 성격의 단체로까지 발전시키려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종래 주장해 오던 공화정치의 이념도 잠시 유보해 둔 채 보황주의적 방략을 채택한 점은 신한혁명당이 지닌 한계라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민족의 최대 과제인 독립을 위한 또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n혁명당(신한혁명당)의 운영자금은 중국혁명당의 예에 따라 기부나 모집으로 충당하는 방식을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단 부득이한 경우 해적이나 강탈의 방법까지도 허용한 것에서 군자금모집의 절박한 사정을 알 수 있다.\n예관(신규식)을 위시한 신한혁명당을 이끈 주도세력은 대부분 국내에서 한말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주력하다가 국권이 상실되던 시기를 전후해 러시아·만주 등지로 망명해 쉬지 않고 구국투쟁을 전개하던 인물들이었다. 그리하여 북간도·상해·시베리아 등지의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문무겸비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간민회·권업회·동제사 등을 조직, 한인사회의 결속과 자치 및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각지의 지도급 인사였던 것이다.\n그러나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을 계기로 해당국들의 모든 한인 독립운동 단체해산이란 방침으로 인해 기존활동이 저지당하고 공들여 이루어 온 운동기반이 상실당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전황 속에서 이런 국제정세를 적극 활용하는 한편 흩어진 운동단체들의 역량을 재결집할 비밀무형의 결사단체를 결성할 필요성을 통감하였다. 그 결과 운동노선, 이념차이를 극복하고 광무황제(고종)란 상징적 존재를 당수로 추대하고 ‘민족독립쟁취’란 공동목표달성을 위해 신한혁명당을 결성한 것이었다.\n신한혁명당의 주된 활동은 유사시 한국독립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수행에 필요한 군비를 정비해 두는 것과 외교적 측면에서 독일의 보증하에 중국과 군사원조동맹인 “중한의방조약(中韓誼防條約)”을 체결하는 계획이었다.\n우선 독립전쟁 수행을 위한 무장준비계획은 무력준비와 국내 국경지역에 대한 진공계획수립으로 이루어졌다. 이 계획은 구주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한 뒤 동양으로 진출하면 일본에 대한 공략이 시작되며 이 경우 연합체제가 구축될 것이므로 우리의 독립군도 각국과 연합해 독립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전쟁수행에 필요한 군비의 조달은 기존에 정비되어 있던 대한 광복군정부의 독립군과 무기 등을 기반으로 보다 신속히 조성될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n위 자료상의 병력·탄약수 등은 신빙성이 없어 그 실세파악이 어려우나 지역적으로 만주·시베리아·미주 지방을 모두 통할하여 단일 군대를 편성코자 한 의도는 파악할 수 있다. 각 지역에 주무기관, 즉 주무자를 선정해 지역별 독립군예비병력을 관장케 하였는데 그 주무자들이 각기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들이었다. 어느 정도 훈련 무장군대가 편성되었던 것이다. 신한혁명당은 이 무력을 근거로 국내로의 진공계획을 수립하였다.\n이러한 군사 계획을 세운 것은 중국과 독일이 연합하여 일본을 공격할 경우, 미국·영국·러시아도 모두 이를 원조할 것이며, 이때 우리 군대는 일군운반의 요새지를 방어하면 일본군은 상·하 분열되어 전승하리라는 확신에서였다. 그리하여 일본이 산동지역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n당시 일본은 신의주-안동-봉천의 철도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파괴하여 그 후방의 군수품 지원을 차단하고자 계획하였다. 또한 여순·대련이 일본의 조차지였던 연유로 그들 세력하의 항구인 영구를 방비함으로써 해상을 통한 수송 역시 신속히 차단하고자 계획한 것이다.\n신한혁명당은 전쟁수행을 위한 군비조달을 보다 확고히 하는 한편, 각국의 원조를 취득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중국과 ‘중한의방조약’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이 조약은 한국에서 혁명전쟁 즉 독립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 측이 군기 및 병기를 공급한다는 취지의 밀약이다. 아울러 그 실행상 국제적 효력을 보증키 위한 수단으로 독일 보증하에 한국과 중국이 조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선정해 두고 있다. 이 조약안은 전문 21개조로 구성되었는데 그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n첫째, 조약체결 당사자는 양국의 원수로 정하되, 한국혁명 착수 전에는 비밀을 보장해야 하므로 중국·한국·독일의 중요인물 간에 대표로 사결(私結)하고 혁명 성공 후에 각 정부가 이를 계승해 정식으로 세계에 공포하도록 한다. 둘째, 중국은 한국혁명이 발발할 경우 군기(軍機), 재력을 방조(幇助)하고 중급군관을 파견해 전력(戰力)을 원조해야 한다. 만약 재정·군기가 부족하여 이를 독일에 청구할 경우 중국은 독일에 권고하고, 담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한국혁명이 성공한 후 독일이 방조한 것을 계산하여 국채로 30년간 상환하되 무이자상환이란 조건을 설정해 두고 있다. 셋째, 한국혁명이 성공한 후 중국이나 독일의 원조에 대한 대가로 내정을 간섭하려 하거나 한국의 영토를 점령하려는 의도를 사전에 저지키 위한 금지조항도 마련해 두었다. 그 대신 독일에 대해서는 동서의 우등권을 양도하고, 중국 측에는 세관·철도 등 사업상 이권을 주도록 규정하였다. 넷째, 만약 혁명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중국 측에게 신한혁명당의 혁명주도인물에 대한 신분보장을 요구하는 조항도 설정해 두어 사후의 대비책 마련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n‘중한의방조약안’을 마련한 후 밀약체결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임무는 외교부장인 성낙형이 주관하게 되었으며, 중국당국과 밀약체결을 위한 준비과정상 필수적인 것은 우선 당수이자 미래에 세워질 한국 정부의 원수로 추대될 광무황제(고종)로부터 밀약체결의 전권을 위임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n이에 성낙형은 정권위임의 밀지를 받기 위해 국내 잠입을 결행하고 국내 잠입에 앞선 선무공작으로 국내 당원인 변석붕에게 이 거사내용 및 함께 일을 도모할 동지를 규합하도록 미리 통지하였다. 그 뒤 1915년 7월 초 성낙형과 김위원은 밀약안을 가지고 국내로 잠입하여 평양을 거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국내 잠입에 성공한 성낙형은 변석붕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구체적인 세부활동, 방향을 협의하였는데 사전에 통지를 받고 준비를 어느 정도 진척시킨 변석붕의 활약으로 마침내 광무황제(고종)에게까지 계획이 전달될 수 있었으며 성낙형이 조약안을 가지고 알현해 조약체결의 위임을 위한 밀지를 받는 일만 남게 되었다.\n그러나 성낙형이 중한의방조약안을 가지고 알현하기 직전 불행히도 일제 측에게 발각되어 본부에서 파견된 당원 및 국내 활동원 모두가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들을 “보안법위반사건”으로 묶어 재판에 회부하였다. 모든 당원의 체포로 계획은 무산되었으나 신한혁명당의 외교부장이 국내에 잠입해 활동을 신속히 전개하여 단시일에 광무황제(고종)에게 계획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국외의 당 본부와 국내 조직 간의 긴밀한 상호연계 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이었다. 신한혁명당이 ‘중국의방조약’체결을 위한 준비로 국내에서 전개했던 계획은 당원들의 체포로 성사 직전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후에는 활동이 중지된 것으로 미루어 당 조직자체도 무산된 듯하다.\n신한혁명당의 독립운동 방략상 중요한 것을 정리해 보면, 첫째는 민족독립을 위해 실리적인 방략을 중시하여 공화주의를 포기하고 보황주의적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동맹국이 될 독일과 중국과 같은 제정을 표방하고 광무황제(고종)를 당수로 추대하였다. 물론 이 경우 복벽적이라기 보다는 입헌군주적 제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신한혁명당 계획이 실패 이후 복벽주의나 보황주의적 방략은 그 자체의 한계성으로 인해 더 이상 독립운동방략상 주된 노선이 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17년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단계에 이르면 공화주의 노선이 독립운동의 이론으로 정립하게 되는 진척을 가져왔던 것이다. 둘째는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으로 정부의 조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여기서의 정부가 어떤 형태라는 설명이 없어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국내·국외 간 외수내응(外受內應)의 효과적 독립운동을 추진키 위한 중추기관으로 정부를 조직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던 것은 가히 선구적이었으며, 임시정부수립을 위한 단초를 열었다는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는 신한혁명당 이후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서 통일된 최고기관인 정부의 수립을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실시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는데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n물론 예관(신규식) 등 신한혁명당의 주도세력이 내린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이 어긋난 점과 방략상 보황주의적 노선을 채택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그렇기는 하나 1차대전(제1차 세계대전, 1914)으로 국외독립운동 조직의 활동이 봉쇄당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각지의 운동역량을 재정비하여 독립전쟁을 결행할 전략을 세워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려 한 점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신한혁명당의 활동은 이후 독립운동계에서 공화주의적 노선이 이념으로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과 이후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 국내의 민중적 기반 위에 선 정부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해 준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n신한혁명당 계획이 무산된 후 예관(신규식)은 박은식과 함께 상해에서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을 조직하였다. 본부는 프랑스 조계 내 명덕리에 설치하고 시베리아와 간도 방향의 애국동지와 국내의 동지를 단원으로 한 조직으로 단장은 박은식이 맡았으며, 단의 확장에 주력하면서 활동을 전개하였다.\n신규식이 박은식과 함께 대동보국단을 주도해 가는 동안 국제정세도 많이 변화하였으며, 그 변화에 부응하는 새로운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러시아의 2월 혁명과 소수민족의 자유보장이란 기치 아래 핀란드·폴란드가 독립하였으며, 그에 자극받은 이스라엘도 독립에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중국 역시 손문 등 혁명파가 주도한 광동의 호법정부(護法政府)가 세력을 확장시키며 그동안 미미했던 신해혁명(1911)의 전통을 회생시키면서 연합군에 합세하는 등 국제적 환경의 변화가 독립운동에의 결단을 요구하였던 것이다.\n이에 예관(신규식)은 조소앙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과 협의하여 세계 각처에서 일고 있는 피압박민족의 독립이란 해방의 움직임에 편승하며 우리도 독립의 결실을 맺기 위한 첫 단계로 「대동단결의 선언(大同團結의 宣言)」을 작성, 이를 선포하였다.\n신규식은 전술한 대로 중국혁명운동에 직접 가담하였음은 물론 그가 추구하는 운동노선을 보아 모든 이에게 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신한혁명당 계획이 성공치 못한 방법적인 문제점을 깊이 통찰한 바 있으므로 그 일전으로 이 계획을 적극 추진했으리라고 보이며 실제 발기인의 대표격으로 되어 있다.\n「대동단결선언」은 1917년 7월(단기 4250년 7월) 신규식·조소앙 등 14명의 발기자가 제창한 것으로 전문 12면이며 대동단결의 필요성, 국내동포의 참상폭로, 해외동포의 역할, 당시의 국제환경, 대동단결의 호소, 끝으로 제의(提議) 강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선언문은 발기자의 의사를 수렴하여 조소앙이 기초하였는데 우선 그 요지를 검토하면서 선언의 성격을 살펴보자. 선언에 나타난 운동방략을 통해 예관(신규식)이 추구해 가고자 하는 독립 운동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n우선 주권은 민족 고유한 것이며 융희황제(순종)의 삼보(三寶, 즉: 주권)포기는 오인동지(吾人同志, 국민)에게 양여한 것으로 이를 계승하여 상속해야 할 책임이 국민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주권상 제권(帝權)소멸로 인해 민권이 발생되었음을 선언하여 국민주권론을 표방한 것이다.\n그 주권상속의 방법으로 “국가 상속의 대의를 선포하여 해외동지의 총 단결을 주장하며 국가적 행동의 급진적 활동을 표방”하였다. 즉 국가라는 통일 단결된 조직만이 그 권리와 의무의 행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행동의 성취를 위해 통일기관, 통일국가, 원만한 국가라는 3단계 요강을 제시하였다. 조국독립을 위한 전단계로 통일국가 즉 임시정부 같은 조직을 만들고 그 준비 단계로 민족대회 즉 통일기관을 만들자는 것이다.\n끝으로 당시의 국제환경은 유기적 통일을 가능케 해 주는 유리한 조건이라고 파악하여 세계공론을 환기시키자고 주장하였다. 즉 슬라브의 혁명은 반한(反韓)의 본이니 핀란드·유태·폴란드의 독립선언은 선진(先進)이고, 이어 아일랜드·트리폴리 등 피압박민족의 부활과 해방운동이 제고된다고 하였다. 또한 민권연합의 만국사회당 등을 예로 들어 당시의 국제정세가 인류의 화복(禍福)을 재정(裁定)하는 현상이니 “장엄(莊嚴)하고 신성(神聖)한 무상법인(無上法人)이 일대사를 위해 출현할 상서로운 징조”로 보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 “주권상속의 대의와 대동단결의 문제를 들어 먼저 각계 현달한 여러 인사의 찬동을 구하고 특히 일반 국민의 각성을 구하며 세계의 공론을 환기코자 대동단결을 선언”한 것이다.\n마지막으로 제의(提議)의 강령을 덧붙여, 기존의 해외 독립운동단체나 개인이 모여 회의를 거쳐 명실 공히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를 조직하고 지부를 설치하여 이를 통할하는데 대헌(大憲)을 제정하여 법치주의에 입각해야 함을 밝혔다. 독립운동의 실천방략은 국민외교론과 친일적 자치론 및 동화론을 배격하자는 것이다. 대동단결선언의 마지막에 이 제의에 대한 찬동여부를 묻는 통지서가 첨부되어 동포사회 각지의 개인과 단체에게 발송되었으며 그 답서를 요구했으나 적극적인 호응이 없었고 대개 관망한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n이 「대동단결선언」에 나타난 독립사상은, 대동사상을 기초로 하되 당시 세계적인 사상 조류였던 사회주의혁명의 기운을 수렴하여 이를 민족대동사상과 접합시켜 인류 대동의 단계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추구하려 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당장 실천되지는 못하였지만 이를 주도한 세력들이 제시한 방략은 독립운동사상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는 큰 것이다.\n첫째 1915년 신한혁명당 계획 이후 침체된 독립운동계의 상황에서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수립이란 새로운 운동이론과 방향을 제시하여 독립운동의 이론적 결집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 점은 신한혁명당 단계의 망명정부 구상을 계승해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실천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정도로 발전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하여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이론적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이다.\n둘째로 국민주권론의 주장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국민주권론이 이론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복벽적 망명정부의 수립론과의 결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즉 신한혁명당을 결성할 당시 갖던 방법론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사상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n셋째 대동단결을 주장하고 회의를 통해 각계의 의견과 방향을 수렴코자 한 것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분산적 개별적인 투쟁을 지양하고 민족역량을 결집시켜 통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 것이다.\n마지막으로 독립운동노선에 사회주의적인 입장을 수용하여 국제정세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면은 이 선언의 발표와 함께 1917년 8월 신규식이 중심이 되어 조소앙 등과 상의하여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선사회당’의 명칭으로 조선 독립 촉구를 위한 전문을 보낸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전문에서는 지금의 전쟁(1차대전, 제1차 세계대전, 1914)이 발칸반도 문제로 인해 발생되었음을 지적하고 일본의 노예상태에 있는 한국의 문제로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 경고하였다. 이어서 모든 민족의 정치적 균등, 국제정의의 실현, 피압박민족의 원상복귀, 국제적인 독립한국의 실현 등의 문제를 회의에 반영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전문의 주장은 대동단결선언의 주장과 그 궤를 같이 하며 시기적으로나 주동인물로 보나 대동단결선언의 실천적인 행동의 하나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n이처럼 예관(신규식)은 독립운동의 기반이 전혀 닦여 지지 않은 상해로 망명한 이래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동제사를 조직하여 각지의 운동세력을 통할하는 조직으로 발전시켜 가는 한편 장차 독립운동의 주역이 될 청년들에게도 끊임없는 격려와 정신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청년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적 위치를 굳혀갔던 것이다. 아울러 국제정세의 흐름과 걸맞는 독립운동방략을 모색하였으니 신한혁명당의 결성에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분산된 운동역량의 결집을 시도하였다. 동원가능한 민족역량을 한데 모아 독립전쟁을 펼치고자 무력투쟁 계획을 추진하였지만 목적은 달성치 못한 채 무산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예관(신규식)은 이 실패를 거울로 삼아 방법론상의 한계를 극복하여 대동단결선언을 주관할 수 있었다. 이 선언을 통해 독립운동방략상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으며, 마침내 임시정부수립이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다.\n1918년 제1차 세계대전(1914)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1919)에서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함에 피압박민족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 민족해방운동의 기회로 활용하게 되었다. 더구나 1918년 11월경, 미국대통령 특사 크레인이 상해에 도착하여 파리강화회의(1919)는 특히 피압박민족에 대해 그 해방을 강조하게 될 것이므로 약소민족들은 그 해방을 도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연설하고 그 계획추진을 촉구한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활용코자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였다. 우선 여운형(呂運亨) 등은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주축으로 크레인의 협조를 얻어 한국민족대표를 평화회의(파리강회회의, 1919)에 파견할 것을 결의하였다. 젊은 청년층의 지도자였던 예관(신규식)은 자신이 이끌던 동제사에서 회원으로 활약하던 여운형 등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한청년당이 밝힌 결정을 적극 지원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한국 독립에 대한 원조를 요구하는 전문을 발송하면서 천진에 있던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n또한 신규식은 파리강화회의(1919)가 약소민족 및 압박당하는 민족의 장래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리라는 기대하에 조선민족도 권리와 정의를 주장하여 세계공론에 호소할 시기이므로 각지에서 우리 동포는 독립을 선언하고 운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국내외 각 방면의 운동 역량을 결집시켜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확대시키려고 계획하였다.\n“방금 구주 전란(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을 제창하며 파리에서 평화회의(파리강화회의, 1919)를 개최하니 약소민족의 궐기할 시기라 상해에 주류하는 동지들이 미국에 있는 동지와 국내 유지를 연락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하며 일면으로 파리에 특사를 파송 중인데 서간도와 북간도에 기밀을 연락치 못하였으니 군(정원택)이 길림에 빨리 가서 남파(박찬익)와 상의하고 서간도에 있는 동지와 연락하고 각 방면으로 주선하여 대기응변하기를 갈망하노라.”한 것이 그 내용이었다. 예관(신규식)의 서신을 받은 정원택은 상해에서 온 남파 박찬익과 더불어 예관(신규식)의 지시에 따른 구체적인 모의 방안을 마련하고자 여준 선생 댁에 모였다. 상해지역의 움직임을 전해들은 이 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심사숙고한 뒤 그 해 음력 1월 27일(양력 2월 27일)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으며 여기서 상해에 길림대표를 파견하여 연락을 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조소앙이 후일 길림대표로 상해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독립의군부의 활동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대한독립선언서’였는데 예관(신규식)도 39인의 발기자 중 한 사람으로 명기되어 있다. 물론 당시 길림지역 독립의군부의 구성원이 아닌 인사들이 자신도 모른 채 선언서의 명단에 올린 것이기는 하나 그 당시 국외 독립운동계의 명망과 관련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선언서가 1919년 거대한 독립운동 에너지의 분출로 국내외가 혼연일체 되었을 때 외응(外應)의 측면에서 가장 형식이 잘 짜여진 선언서였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길림지방에서 대한독립의군부 조직 및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할 수 있도록 사전 지시를 내린 예관(신규식)의 판단은 탁월한 지도역량의 소산이었다.\n예관(신규식)은 이 서한에서 “…제(弟)는 이미 김규식·조소앙 두 동지들에게 중국 상해로부터 파리강화회의(1919)에 가서 호소할 것을 청하였으니, 여러 형들은 모름지기 때를 맞추어 국내에서 우리 전체의 민중 운동을 일으키게 하여 일제 통치에 반대하고 독립을 요구한다는 굳은 결의를 표시하여 국제적으로 선전에 이바지하시오.”라고 하였다. 이 밀서를 가지고 국내에 들어간 방효상과 곽경은 사전에 발각되어 전달되지 못했으며, 체포된 이들은 일제에 의해 혹독한 형을 받아 곽경은 옥사하고 방효상은 거의 죽을 정도로 폐인이 되었다.\n이와 동시에 선우혁(鮮于爀)은 상해로부터 비밀리에 평북 선천(宣川)으로 와서 그곳에 거주하는 목사 양전백(梁甸伯)을 방문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파리강화회의, 1919)에 조선민족대표자를 보낸 사실과 또한 조선 내에서도 이에 대한 후원과 이에 호응하는 독립운동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해 찬동을 얻었다. 다음 정주군 곽산에 사는 이승훈(李昇薰)을 방문하고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및 기독교계 교회유력자들과 회동해 양전백에게 한 것과 같은 말을 전하여 독립운동과 자금취합에 대한 찬동을 얻고 상해로 돌아갔다.\n이들은 선우혁의 권유로 평양에서 관공 사립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3월 3일 광무황제(고종)의 국장을 기해 독립선언 시위운동을 계획하던 중 천도교로부터의 합동운동계획을 교섭받고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던 것이다.\n한편 조소앙을 동경에 밀파하여 동경 유학생으로 하여금 거사토록 종용하였다. 이어 장덕수(張德秀)로 하여금 동경을 거쳐 국내로 잠입시켜 일본의 운동은 2월 초순, 서울의 운동은 3월 초순에 실행될 예정이니 양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정황을 시찰하고 통신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장덕수는 2월 3일 일본에 도착하여 미리 파견되어 활동하던 조소앙과 접선하여 유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8일을 기해 독립선언을 발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장덕수는 임무를 완수키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드디어 1919년 2월 8일 동경의 2·8독립선언이 결실을 보게 되었으며 곧이어 국내에서 3·1운동(1919)이 일어났던 것이다. 전술한 신규식의 계획과 활동으로 미루어 보아 신규식은 3·1운동(1919)을 유발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n각 지역에 거족적 독립운동전개를 촉구하도록 추진하는 와중에 예관(신규식)은 조카인 신필호(당시 산부인과병원에 근무 중임)에게 연락해 처자를 데려오도록 했다. 조(조완)씨 부인과 장녀 명호[明浩(신명호)]·장남 상호[尙浩(신상호)]를 맞은 예관(신규식)은 십년 만에 다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17세의 과년한 딸을 예관(신규식)이 데리고 있던 청년인 민필호와 맺어 주었다.\n3·1운동(1919)이 대중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징후로 나타난 것이 임시정부 수립의 추진이었는데 이는 3·1운동(1919)의 대중화와 함께 나타난 한국인의 주권적 의지의 결집인 동시에 독립운동을 새롭게 조직화하려는 표현이기도 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독립운동이 전개되던 각처에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상해 그리고 노령(러시아령)이었다.\n상해에서 임시정부수립 추진에 참여한 예관(신규식)도 신한혁명당과 대동단결선언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전부터 구상해 오던 임시정부의 조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여운형·선우혁·한진교(韓鎭敎)·김철(金喆)·현순(玄純) 등과 모의하여, 3월 하순 상해 프랑스 조계 보창로에 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조직 작업에 착수하였다. 준비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침내 1919년 4월 10일 1차 임시의정원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정식으로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 선포하였으며 임시정부의 관제를 의결하여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하고 각부의 국무원도 선출하였다. 드디어 4월 13일을 기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정식으로 국내외에 선포하게 되었다. 이 때 발표된 내각의 각료 명단은 국무총리 이승만,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내무총장 안창호, 군무총장 이동휘,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강화대사 김규식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의 내각 명단에서는 신규식의 이름이 보이지 않지만 4월 23일 서울에서 발표된 한성정부에는 신규식이 법무총장으로 선임되어 있어 국내에서 차지하는 그의 명성과 위치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n한국 임시정부의 조직은 무수 선열(先烈)의 선혈(鮮血)의 관개(灌漑)로 된 것이요 삼천만 자유를 애호하는 한민족의 옹호로 이룬 것이요. 전 세계 정의를 숭상하는 인사의 동정으로 해서 된 것이며, 천만번 불굴 불소하는 혁명지사의 추진으로 된 것이다. 다만 왜구의 매와 개가 국내에 널려 있어 정령(政令)을 순조롭게 시행하고 국권을 펼 수 없으니 형세 부득이 국외에 안전한 곳을 택해 정부를 설치하여, 정권을 안정하고 정령을 관철하는 길을 구하게 된 것이다 … (중략) … 국외 및 동북 등지에서 항왜(抗倭) 무장운동을 격동하고 여러 가지 직접 행동을 지도하여 왜구의 암흑통치를 전복하고 태극기를 거듭 경성에 휘날리게 하려는 것이다.\n이 글에서 단편적으로나마 나타난 그의 정부관은 우선 자유와 정의를 중시하고 있으며, 그 정부조직을 가능케 하는 힘은 피의 투쟁에서 찾고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가 추구하는 목적은 무장투쟁을 직접 지도해 일제의 암흑통치를 퇴치시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분산, 고립된 독립투쟁 역량을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으로의 정부조직의 필요성을 중시하고 그 투쟁방략으로 보다 적극적인 직접 투쟁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n그런데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상해에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예관(신규식)이 제1차 의정원회의는 물론 상해임시정부 초기 각료 명단에서도 누락되고 있어 그 조직과정 중 핵심적인 인물로 표면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그는 신경쇠약증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었다고 한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만으로는 그가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가장 중추적인 조직에서 제외된 원인을 설명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이유는 당시 상해지역에서 임시정부 조직과정 중 이에 참여한 인물들 간의 힘의 역학관계나 방략상의 의견갈등 등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n실제 임시정부조직 당시에 관한 『지산외유일지』의 기록을 보면 참여운동세력간의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앞장에서 본 바와 같이 신규식이 가장 활동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한 시기는 망명 이후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로 나타나며, 그 이후에는 상해방면의 주도권이 임시정부로 넘겨졌으며, 그는 주도권을 상실한 채 임시정부에서 그 임원으로써 활동하게 된 것이다.\n병원에서 퇴원한 신규식은 4월 30일부터 5월 13일까지 개최된 제4회 임시의정원회의에 충청도지역 의원으로 참석하여 손정도 의장과 함께 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구급의연금 모집을 담당할 각도 구급의연금 모집위원 선출을 결의함에 따라 충청도 모집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게 되었다.\n예관(신규식)은 자신이 망명하기 전 서울의 갑부인 정두화가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자금을 댈 용의가 있다는 약속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말 판서를 지낸 정낙용(鄭洛溶)의 아들 정명선도 이따금 자금을 보내주는 터여서 이들에게 자금을 부탁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결정한 뒤 신규식은 5월 초 정원택과 김덕진을 국내에 밀파시켜 그들에게 보내 운동자금을 받아오도록 지시하여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시도하였다. 두 청년은 상해에서 일찍부터 예관(신규식) 밑에서 활동하던 청년들로써 예관(신규식)과 자금 모집방안을 심사숙고한 결과 예관(신규식)이 친필로 운동자금기부를 부탁하는 서신을 써주면 이를 가지고 국내를 잠입하여 모집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이 당시에는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독특한 방법의 서신 작성법이 사용되고 하였다. 즉, 책의 속지에 소금물을 찍어 편지를 쓰면 소금물이 마른 뒤 글씨 쓴 흔적이 전현 나타나지 않아 아무도 알지 못하나 편지를 받은 이가 이를 화롯불에 쪼이면 보이는 방법이었다. 밀명을 받은 두 청년이 밀지를 가지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뒤 정두화를 만나 자금모집에 대한 예관(신규식)의 뜻을 전했으나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설상가상 6월 초 정원택은 체포되고 김덕진은 가까스로 상해로 도피하여 뜻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뒤 신규식은 제5회 임시의정원회의 개최된 7월 14일 부의장직을 사임하고, 의원직마저 사퇴하여 임시정부에서 물러났다.\n한편 이즈음 3·1운동(1919)의 발발에 자극 받은 각 지역에서 각기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니, 1919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일제의 타도와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5개의 임시정부가 그것이다.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3월 21일에, 서울에서 조선민국임시정부가 4월 9일에,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4월 10일에, 철산·신의주에서 신한민국정부가 4월 17일에, 서울에서 13도 대표 국민대회 명의로 한성정부가 4월 23일에 각각 수립되었던 것이다. 이 정부들은 3·1운동(1919)의 열기 속에서 해당 지역의 운동가들이 명망있는 인사를 각료로 추대하여 설립한 과도적 정부체제였다. 때문에 지역적 분산성과 고립성을 극복하고 체계적인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최고지도기관으로서의 단일 중앙정부의 수립이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분산되어 버린 민족역량을 한데 모으려는 움직임이 대두되었다. 임시정부로서의 실체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대한국민의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체가 되어 산하의 의정원과 대한국민의회를 병합해 단일의 입법기관을 형성하고, 이것이 국민적 기반을 가진 한성정부의 법통과 인맥을 계승하여 행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통합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결의에 따라 상해의 임시정부에서는 8월 18일부터 개회한 제6회 의정원 회의에서 임시헌법 개정 및 정부개조안을 통과시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임한 이외에 한성정부를 그대로 승인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9월 11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새로 수립되고 그에 부수하여 임시헌법과 내각명단이 공포되었다.\n1919년 11월 3일 법무총장에 임명된 신규식은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재무총장 이시영, 노동총판 안창호와 함께 내각 취임식을 갖게 되었다. 새로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각 정부들의 노선을 종합해 민주공화정치를 채택하였고 정부형태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절충하되 임시의정원으로 하여금 이들을 탄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은 초기에는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던 민족독립운동을 통괄하는 한편 세계열강에게 우리민족의 독립을 호소하는 외교활동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n하지만 임시정부가 이룬 업적 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제치하의 암흑 속에 잠긴 국민들에게 민족해방과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희망을 불어 넣고 또 국민 개개인이 그런 목표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국가건설의 방략을 앞장서서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즉 임시정부는 수립당초부터 민주공화정치를 내세웠을 뿐 아니라 남녀·귀천·계급·빈부의 차별이 없는 일체평등을 지향했고, 종교·언론·출판·결사·집회·신체·소유의 자유를 주창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명실 공히 통일된 민족대표기관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다.\n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내외 독립운동세력의 최고지도기관으로서의 유일성과 정통성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부터 운영문제나 운동노선을 둘러싸고 각 세력사이에 대립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를테면 독립운동의 처지에서 3권 분립 규정,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절충, 공산주의의 침투문제, 재정원확보, 운동노선 상의 이견, 외교활동의 침체 등 많은 문제를 안고 내부적인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임시정부 내부에서도 정부개편 논의가 대두되어 1921년 1월 국무회의에서 정국쇄신안을 논의하였으나 이승만의 현상유지책 주장이 우세한 탓으로 개편안은 무산되어 버리자 이를 수용하지 못한 국무총리 이동휘는 임시정부를 떠나고 말았다. 한편 임시정부 밖에서도 정부의 개편강화란 현안을 놓고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의 대표자회의를 개최하자는 의견이 속출하였다. 즉 상해에서는 안창호·박은식 등이 국민대표회의를 추진하기에 이르렀고 북경에서는 박용만·신채호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통일회에서, 또한 만주 방면은 여준·김동삼·이탁 등이 액목현회의를 열어 각각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주장하였던 것이다.\n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러한 안팎의 갈등으로 인해 그 존폐의 위난을 당하자 이를 안타까워하던 신규식은 3월 이동녕·이시영과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서 협성회(協誠會)를 조직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절대지지 및 범민족적 옹호를 호소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여 임시정부의 분열을 저지하고자 노력하였다.\n임시정부 지지세력들의 움직임에 대처한 반임정(임시정부)파들도 정구단(正救團)을 조직해 대통령 이승만의 무책임과 무능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럼으로써 상해정국은 더욱 혼란의 와중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독립운동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여론이 기울게 되었다.\n이러한 상황에서 신규식을 비롯한 임정(임시정부)지지세력과 뜻을 달리하는 김규식·안창호가 내각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국민대표회의 추진을 전개하게 되자 대통령 이승만은 이 사태를 수습치 못한 채 워싱턴의 태평양회의(워싱턴회의, 1921)에 참석키 위해 상해를 떠났다. 대통령도 없고 국무총리도 떠나 버린 임시정부를 이끌어 갈 책임을 맡게 된 신규식은 5월 16일 국무총리 대리에 취임한 뒤 이어 26일에는 외무총장직도 겸임케 되었던 것이다.\n그런데 1921년 11월에 세계평화를 위한 군비축소문제와 태평양 및 극동정책을 논의키 위한 국제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5대 강국이 회합을 갖고 세계문제를 협의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원동(遠東)문제를 중심으로 의제가 다루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가들은 파리평화회의(파리강화회의,1919)에서 관철시키지 못한 한국의 독립안을 상정시킨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다. 그리하여 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 결과를 관망하느라 국민대표회의 운동은 소강상태를 들어갔다. 한편, 신규식을 비롯한 이시영·이동녕 등은 태평양회의를 한국국권회복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고자 임시정부의 각료들을 중심으로 그 대책을 협의하고 워싱턴회의에 한국대표단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에게 주권을 되돌려 주어 독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폈다. 아울러 임시정부는 태평양회의후원회와 협의해 각 방면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여 각국으로부터 열렬한 지원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나라 정부와 정식으로 접촉하고 외교적 절차를 따라 각국의 정식승인을 얻고자 하였다. 이 같은 방침 하에 신규식은 신익희와 함께 중국 남방외교에 대한 책임자가 되었다.\n이어 1921년 10월 국무회의의 결정에 따라 예관(신규식)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친선전권대사의 자격으로 임시정부의 정식 승인 문제와 독립운동지원 문제를 교섭키 위해 중국의 호법정부(護法政府)에 급파되었다.\n호법정부란 구약법(舊約法) 즉 신해혁명(1911) 당시 입헌공화제의 약법을 수호하는 정부로 광동에서 성립되어 중국 민의(民意)를 대표하였던 것이다. 즉 1917년 단기서(段棋瑞)가 북경정부의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실권을 잡자 세계대전 참전안에 대해 불만을 품고 구국회(舊國會)에 대신해 따로 참의원을 조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운남독군(雲南督軍) 당계요(唐繼堯)는 이를 반대하고 구국회를 회복하여 구약법을 옹호할 것을 주장하였고 손문도 일본에서 돌아와 구약법옹호의 뜻을 밝혔다. 이리하여 그 해에 비상국회를 열고 호법정부를 수립하고 대원수에 손문, 부원수에 당계요와 육영정(陸榮廷)을 임명하였던 것이다.\n전권대사 파견 때 마침 손문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군벌을 제거하고자 세운 북벌계획을 위한 북벌서사식(北伐誓師式)이 있어 축하도 함께 전하자는 배려도 포함되었다. 임시정부 수립 이래 정식으로 특사를 파견해 우방을 방문한 것은 이것이 최초의 일이었다.\n1921년 10월 26일 새벽 예관(신규식)은 비서인 민필호를 대동하고 애산(涯山) 부두로 가 프랑스 우편선인 에스 스나일(S. Sniel)호에 승선하여 광동으로 향했다. 이 기선은 1만 톤 정도의 배로 빛깔은 초록색으로 아주 경쾌하며 그 모양은 마치 순양함과 같았다. 배안의 시설은 퍽 화려하고 조밀하였으며 식당·응접실·의료실·목욕실 등을 갖춘 까닭에 육지와 다름없이 느껴질 정도였다. 9시에 출발한 배는 서서히 육지를 떠나 바로 오송구(五淞口)를 향해 달렸다. 예관(신규식)은 망망대해에 뜬 일엽고주(一葉孤舟) 위에서 임시정부의 특사란 임무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틀간의 항해 끝에 10월 28일 3시 홍콩에 도착하여 동아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예관(신규식)은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는 옛 친구 당계요(唐繼堯) 장군을 방문하였다. 그는 보통 키에 훌륭한 외모를 가진 풍채 좋은 사람이었는데 예관(신규식)을 보자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두 사람은 함께 최근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의 현황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어려운 현안문제를 거론하였다. 예관(신규식)은 우선 3년 전의 3·1운동(1919)은 전 민족적인 만세운동으로 민중이 이에 참가한 것은 오로지 하나의 애국단심과 자유해방을 얻고자 하는 정의감에서 솟아나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어 그 당시의 일제의 무력진압을 전하면서 비무장한 민중 중 참살자가 7만여 명 투옥자가 3만에 달한다고 하였다. 일례로 소학교 학생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행렬을 따르니 일본경찰이 그 손을 베었고 학생은 왼손에 국기를 다 시 잡고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일본경찰은 다시 그 왼손마저 베어 선혈이 낭자하고 옷은 피로 물들었지만 학생이 계속 만세를 외침에 마침내 그 목을 잘랐던 만행을 설명하면서 마음 아파했던 것이다. 그 외 임시정부의 조직경과와 현재의 군사 경제사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당계요는 임시정부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독립투쟁공작이 용이치 못하다는 말을 듣고 선뜻 자신이 운남으로 돌아가서 은행의 예금 문제가 해결되면 10만원(元)을 찬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계요의 경제적인 지원약속을 받은 예관(신규식)은 고마운 뜻을 전한 뒤 군사적인 측면을 거론하여 독립군이 청산리대첩(청산리전투, 1920)의 전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고정적 근거지를 잃어 앞으로의 발전이 낙관키 어렵다는 것과 사관후보와 혁명 간부 배양문제가 쉽지 않다는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이에 대해 당계요는 자신이 운남에 돌아가서 한국을 위해 최소한 2개 사단의 군관을 양성하여 한국혁명을 원조하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던 것이다.\n그런데 당계요의 경제원조건은 당시 상해 중불은행(中佛銀行)의 파산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으나 군사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증명서를 소지한 청년들을 그가 경영하는 군관학교에 입교시켜 50여 명을 졸업케 하여 독립군 간부양성에 일조하였던 것이다.\n예관(신규식) 일행은 10월 29일 홍콩 떠나 광동에 도착하였다. 광동은 주강(珠江) 북쪽 기슭에 위치하여, 주강을 사이에 두고 하남(河南)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경제에 있어 중국 4대 중요도시의 하나였다. 또한 이곳은 중국혁명의 원천지로 성 밖의 백운산(白雲山) 황화강(黃化崗)에는 72열사의 묘지가 있다. 특히 손문이 비상 대총통에 취임하여 광동성 안에 주재한 후에는 사방의 호걸들이 이곳에 운집해 북양군벌을 전복시키고 중국을 부흥시키려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튿날 예관(신규식)은 민필호를 대동하고 비상 대총통 관부와 각 부회(部會) 및 친지를 방문하였다.\n이를 전후하여 대본영 비서장겸 총참모 호한민과 대리원장 서겸(徐謙), 내정부장 여천민(余天民), 외교부장 도정방, 차장 오조추, 총통부 비서장 사지, 재무부장 요중개 등을 만나 임시정부와 한국광복운동에 대한 물심양면의 원조를 요청코자 특파되었음을 밝히고 이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전방문은 예관(신규식)이 광동특사로 파견된 목적을 달성키 위해 정부차원에서 문제를 거론키 앞서 사적으로 정부요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원만한 해결을 도모코자 한 사전포석이었던 것이다. 이에 호한민은 성심성의껏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약조를 해 주었다.\n“한국과 중국의 두 나라는 역사상으로 말하면, 손과 발의 관계와 같은 정의가 있는 것이요, 지리상으로 말하면, 이와 입술의 관계와 같이 서로 의지하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희비가 상관하며, 환난은 서로 도와야 한다. 뜻밖에도 우리 중화민족이 성립 이래 20년 동안 원세개는 황제를 칭하고, 장훈은 복벽하며, 군벌은 할거하니, 내란은 거듭 일어나고 국가에 평안한 날이 없으며, 국민은 생활을 안정하지 못하여, 국가 민족의 존망이 실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귀국의 광복운동에 대하여 지금까지 아무 이렇다 할 원조를 못하였음을 마음이 아픈 일이고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다. 이번에 선생이 멀리 우리 호법정부를 방문하여 준 두터운 정은 지극히 감명이 깊은 바로, 저는 반드시 선생의 뜻을 손(손문) 총통에 전달하고 시간을 정하여 정식으로 회견할 것으로 약속하며, 한국과 중국의 두 나라의 국시에 대하여 가장 좋은 방법 상의하고자 한다.”\n11월 3일 예관(신규식) 일행은 손문 대총통과 예비접견을 갖기 위해 예의를 갖추고 미리 준비해 온 서류와 각종 선전품을 가지고 관음산 아래에 위치한 비상총통부로 갔다. 거기서 외교부장, 외교차장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때 비서관 민필호는 외교차장에게 준비된 것을 전했다. 즉 미국 지역 한인이 출판한 『한국견문론』한 권, 한글신문 몇 종류 3·1운동(1919) 당시의 참상을 찍은 사진 여러 첩, 예관(신규식)이 경영하는 진단학교 등의 인쇄물을 전하면서 널리 선전하여 한국독립운동의 진상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나서 호한민의 안내로 대총통관저로 인도되어 마침내 손문 대총통과 만날 수 있었다. 예관(신규식)은 손문과의 예비모임에서 광통특사로 방문하게 된 요지를 전하고 임시정부 승인과 독립운동원조를 요청하면서 아울러 임시정부가 마련한 호혜조약(互惠條約) 5관(款)을 전하고 재가를 청하였다.\n이에 손문은 기본적으로 광동정부가 한국독립운동을 당연히 원조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한 후 아직 중국혁명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여력이 부족함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원조는 북벌계획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린 후 시기가 오면 전력을 다해 한국 광복운동을 원조하겠다고 진심어린 약조를 하였다.\n“한국은 동아시아의 발칸으로 한국 문제가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아시아주의 시국 대세가 균형을 잃어 동아의 평화를 유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총통은 몸소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제창하고, 아울러 대아시아주의를 내걸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시아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주의와 사상에 있어서 함께 뭉치어 진정한 평화를 함께 꾀한 후에야 동아의 영구 평화가 비로소 실현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n예비 접견의 성과에 힘입어 손문과 국회비상회의의 적극적인 찬성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정식승인을 얻을 수 있으며, 군사교육건은 각 군사학교에 한국청년들을 수용토록 명령할 것과 이후 북벌계획이 완성되면 한국광복운동을 원조할 것이란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n이날 흑색 대례복을 입고 국민당 당기와 중국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고 주위는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회장으로 나갔다. 손문 대원수와 총통부의 각원 전부, 참의원과 중의원의 의원 전원, 육·해군 장교 천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n식순에 따라 신규식은 축사를 읽고 가져온 국서(國書)를 손문 대총통에게 상정하였으며 손문 대총통은 이를 접수하고 임시정부의 특사파견은 영광이며 여기서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열리어 장차 친선우호의 길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는 답사를 하였다.\n이 중 4~5항은 광동정부로서도 조처할 능력이 없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였으나 그 외의 문안에 관해서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즉 손문과 광동정부 국회비상회의의 적극적인 찬성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정식승인을 얻을 수 있었으며, 군사교육건은 각 군사학교에 한국자제를 수용토록 명령할 것과 이후 북벌계획이 완성되면 전력으로 한국 복국운동을 원조해 줄 것을 약조하였다. 예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예관(신규식)은 “이번 손(손문) 대총통의 정식 접견을 받게 된 것은 비록 일종의 의식에 불과하지만, 그 가운데 의의는 참으로 중대한 것이 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이는 가장 기념할 만한 하나의 큰 사실이라 할 수 있으며, 또 내가 중국에 온 이래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의 큰 사실이 된다. 다만 지금의 중국혁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우리국토 또한 수복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참으로 근심스럽고 초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우리의 책임은 더욱 중대한 바가 있다.”라는 말로써 재차 앞으로의 임무를 다짐하였다. 그리고서 손(손문) 총통의 우대를 받은 것 외에 호한민 등 여러 옛 동지들의 조력에서 큰 의지를 받았다는 것을 감격스러워하였다. 양국 간의 외교관계 성립에 따라 임시정부는 1922년 2월 외무부 외사국장 박찬익을 광동주재 임정대표로 파견하여 외교업무를 관장케 하였다.\n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는 임시정부사상 소련(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성사시킬 수 있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던 배경은 신규식이 임시정부 수립 전부터 중국혁명의 근거지인 상해지역에 기반을 두고 중국혁명에 직접 참여하는 등 중국의 신해혁명(1911)에 대한 열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물심양면으로 중국혁명지사들을 지지 후원하면서 그들과의 혈맹관계를 다져 나갔던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런 관계가 밑거름이 된 위에 혁명에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중국혁명·한국혁명 즉 한국 독립운동에 있어 상호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던 것이다.\n정식접견을 무사히 마친 예관(신규식) 일행은 광동에 머무르던 중 중산현(中山縣)에 있는 당소천(唐小川)의 초청을 받고 잠시 틈을 내어 그가 있는 마카오를 방문케 되었다. 마카오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당가만(唐家灣)에 위치한 당소천의 집에 도착한 예관(신규식)은 그의 환대를 받았다. 당소천은 과거 한국에 있었던 때를 상기하고 한국의 산수와 풍물을 칭찬하였다. 예관(신규식)은 그와의 대담 중에 “이번 한국임시정부가 대표를 파견하여 범태평양회의에 참가하였는데… 중국대표에게 서신을 보내 한국대표를 도와주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여 당소천의 승낙을 받았다. 그는 또한 미국 후버 대통령과도 친하니 후버 씨에게 따로 서신을 보내어 원조를 청할 수 있다고 대답하여 예관(신규식)이 고마움을 전했다. 좋은 성과를 가지고 광동으로 돌아온 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덧 12월 중순이 지나갔다. 이즈음 총통부 요인들은 손문 대원수를 따라 북벌을 위해 북상하였으나 신규식은 계속 머무르면서 한가한 틈을 타서 시내 사면(沙面)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의 영사를 방문하는 등 외교활동을 계속하였다. 신규식은 각국 영사와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임시정부의 입장은 표명키 위해 모임을 개최키로 마음먹고 22일 오전 시내에 위치한 신신호텔에서 사면의 각국 영사를 초대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전개에 대한 각국의 협조를 부탁하였다. 프랑스·미국영사와 총통부의 내빈을 비롯하여 수십 명이 모였다. 이 연회에서 예관(신규식)은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성립되어 많은 독립운동단체를 통괄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현황을 알려주고 또한 삼일운동(3·1운동, 1919) 당시의 실상과 각 지역에서의 한국 민족의 독립운동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울러 중국호법정부가 한국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한 경과를 밝히고 열국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지도를 바란다고 연설하였다. 예관(신규식)의 연설에 이어 프랑스와 미국영사의 협조차원의 답사를 듣고 성황리에 연회를 마쳤다.\n예관(신규식)이 중국 호법정부의 승인을 받은 이후 한국혁명운동은 일대 전환기를 이루었으며 독립운동의 앞길에는 한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성과의 환희도 잠시일 뿐 돌아온 예관(신규식)에게 부가된 일은 또 다시 복잡한 임시정부 내부의 수습과 끊임없는 고뇌뿐이었다.\n즉 임시정부가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를 결성하면서 다각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독립의 기회로 이용코자 했던 태평양회의가 1922년 2월 오히려 일본의 세력 강화와 국제정세의 안정이란 방향으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 결과 이 회의에 기대를 걸었던 독립운동 지도부는 다시 한번 실망을 맛보아야 했으며 외교방략상의 활동노선에 대한 재검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또 다시 임시정부는 안팎으로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n태평양회의 개최기간 동안 그 회의에 거는 독립운동가들의 기대로 인해 잠시 주춤해졌던 국민대표회의의 개최운동이 급속히 재개되었다. 소용돌이 정국 속에서 신규식이 이끄는 내각은 총사퇴를 결의하여 1922년 3월 20일 군무총장을 제외한 모든 국무원이 사퇴하고 말았다.\n당시 임시정부가 약화될 대로 약화되고 혼란에 빠지자 그 수습책을 두고 기존의 임시정부를 개조하자는 주장과 임시정부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이 수립하자는 주장 즉, 개조안과 창조안으로 양분되면서 임시정부의 앞날은 더욱 암울해지기만 하였다. 국무총리직을 사퇴한 예관(신규식)은 파국으로 치닫는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전선의 분열상태를 비관하고 망명 이후 10여 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며 고뇌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5월 이후에는 심장병과 신경쇠약이 악화되어 병석에 눕고 말았다.\n그런데 그를 병석에 눕게 하는데 치명적인 타격을 준 또 하나의 요인은 다름 아닌 중국혁명운동 과정에서 발발한 진형명(陳炯明)의 혜주(惠州)반란이었다. 그해 5월 중국 광동정부 수립의 결정적 힘이 되었던 광동의 군벌인 진형명이 상호협력관계를 깨고 손문에게 반기를 들어 손문 등 혁명세력의 거두에게 체포령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손문을 비롯한 혁명파들은 이를 피해 광동을 떠나고 말았다.\n따라서 손문의 혁명정부의 안위, 나아가 중국혁명의 성패는 한국혁명 즉 한국독립운동의 성패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관(신규식)은 진형명의 반란으로 중국과 한국이 지닌 모든 희망과 꿈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속단하고 좌절의 뼈아픔을 맛보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중국의 불행이 어찌 이다지도 심한가? 중산(손문) 선생이 애를 써서 이룩한 사업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구나! 이것은 비단 중국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한국의 큰 불행이로구나.”하고 탄식하며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되었다.\n중국혁명의 실패, 임시정부 변혁논의를 둘러싼 계파간의 극한 대립, 임시정부 내부에서 전개된 의정원과 대통령의 대립 등 한국독립운동이 운동방략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신규식의 상심은 더욱 깊어졌으며 그로 인해 병도 날로 악화되어 갔다.\n수면과 음식의 양이 날로 줄어 들고 말수도 적어져 갔다. 다만 그 눈초리만은 전과 다름없이 예리하였으며 전보다 더 음울한 빛이 감돌았으나 몸은 날로 여위고 파리해졌다. 그래도 예관(신규식)의 자태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엄숙하고 단정했다고 전한다. 병환 중에 예관(신규식)은 혼자 창 앞에 서서 창 너머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다른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리곤 하였는데 그 때 표정이 몹시 고통스럽고 침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에이게 하였다고 한다.\n그러던 중 8월 초순 찌는듯하게 무더운 어느 날 예관(신규식)은 전처럼 창가에 섰다. 홀쭉히 빠진 양 볼에는 깊게 주름이 잡히고 백지장처럼 하얀 움푹하게 패인 눈으로 창 밖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갑자기 “나는 아무 죄도 없고, 나는 아무 죄도 없소. 그럼 잘들 있으시오! 우리 친구들이요. 나는 가겠소. 여러분들 임시정부를 잘 간직하고 삼천만 동포를 위하여 힘쓰시오. 나는 가겠소. 나는 아무 죄 없소.” 하는 자책하는 듯한 독백을 남기곤 입을 다물었다.\n그 뒤로는 침대에 누워 줄곧 단식하고 말도 없이 눈을 감은 채 누워 있기만 하였으며 음식이라고는 매일 뜨거운 물을 조금 마실 뿐이었다. 우울·병환·기아의 시달림 속에 병세는 더욱 중해졌으며 모습이 아주 야위어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가 되었다.\n아우 건식(신건식)이 달려와서 식사와 약 들기를 권했으나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즈음 그의 고향에서 모친인 최씨 부인이 작고했다는 부음이 전해졌다. 망명한 두 아들을 부르다가 임종했다는 소식이었으나 친지들은 병중에 있는 그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병세가 더욱 악화됨에 동지들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억지로 음식을 들도록 하고 항문에 링게르 주사를 놓아 영양을 보급하였다. 그러나 예관(신규식)은 몸소 반항하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감았던 눈을 뜨고 보는 눈초리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예관(신규식)이 죽음을 결심하고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약도 거부한 지 25일째 되던 9월 25일(음력 8월 5일)에 ‘정부! 정부!’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n이처럼 그는 죽는 날까지 임시정부의 앞날을 염려했으며 독립운동계의 계파 간의 알력과 분열을 안타까워했다. 이천만 동포를 일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모두가 대한의 혼을 간직하고 하나의 지도자 하나의 정부 밑에 단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예관(신규식)은 세상을 등지면서 남은 동지들에게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의미의 말을 남긴 것이었다.\n향년 43세로 슬하에 1남 l녀를 두었으며 딸 명호[明浩(신명호)]는 민필호와 결혼하였고 아들 상호[尙浩(신상호)]는 이 당시 10살이었으나 17세 때 항주에서 요절하여 항주 교외에 안장하였다고 한다.\n즐풍목우(櫛風沐雨)한 일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친 예관(신규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옛 동지, 그를 따르던 애국청년 등 천여 명이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며 본국·중국·미국 등 각지 신문들도 예관(신규식)의 서거를 기사화하고 애도하였다. 당시 예관(신규식)을 추종하던 청년들이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였는데 그중 김충일이란 청년의 경우 큰 충격을 받고 이를 감당치 못해 미치고 말았다니 예관(신규식)에 대한 이들의 충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n“선생의 카이젤식 구렛나루가 넉넉히 선생의 강철과 같은 의지와 강인한 투쟁심과 백절불굴의 담대한 무겁심(無怯心)을 상징해 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용감하고 호매(毫邁)하고 정절이 굳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생의 미려한 턱의 짧은 수염은 즉 결백하고 욕심없는 눈동자와 구레나룻의 엄하고 사나운 기상과 더불어 어떤 종교가의 자애와 관후(寬厚)와 연학(硏學)과 평화를 풍기게 한다.”라고 표현한 『전기』의 묘사는 예관(신규식)의 외모가 군인과 같은 대담하고 엄격한 모습과 학자들의 단정함과 절제된 온유함을 겸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n문무를 겸비한 듯한 예관(신규식)의 장엄한 기상은 타고난 천성 이외에 후천적인 극기와 수양의 결과였다. 예관(신규식)은 낮에는 절대로 자리에 눕는 일이 없으며 아무리 불같은 더운 여름날이라도 웃옷을 벗는 일은 결코 없었을 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항상 장삼(長衫)을 입었으니 땀이 흘러 옷이 흠뻑 젖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평상시에도 결코 흐트러진 몸가짐을 보인 적이 없을 만큼 절제된 생활 속에서 자신을 다스렸음을 엿볼 수 있다.\n예관(신규식)은 과묵하고 쉽사리 노하지 않으며 결코 농담하는 경우도 없었다고 한다. 늘 온유한 가운데 강의(剛毅)한 기품을 지녀서 공손하고 정아(靜雅)하였지만 그 내면에 굳센 의협심과 언제라도 비분강개하는 심정을 숨기고 있었다. 또한 그는 천성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를 중시하였다. 예관(신규식)은 선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병중에 들었는데, 와병 중에도 친히 제문(祭門)을 짓고 분향치제(焚香致祭)하며 제계소식(齊戒素食) 하기를 3개월에 걸치고 아울러 조석으로 유상(遺傷) 앞에 묵도를 올렸던 것이다.\n예관(신규식)은 평생토록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절제를 잃지 않도록 함에 담배·술·바둑과 같은 세속적인 오락은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다만 산수와 시화(詩畫)를 즐길 정도였다. 그가 수많은 세월을 이리저리 표박하면서도 항상 지니고 다닌 것은 한 폭의 단군초상화와 한 권의 한국지도였다. 예관(신규식)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이를 마주 대하여 묵묵히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 모습이 온 정신을 기울여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천만 한국 국민이 지금 일제에게 받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하며, 조국광복 후에 건설한 조국의 미래상을 설계하는 듯하였다고 『전기』에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예관(신규식)은 일생을 두고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였으며 한시라도 사적인 일에 시간이나 마음을 빼앗긴 것이 없었다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n예관(신규식)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 사상체계가 서고 한문에도 조예가 깊다고 평가되었으나 그가 남긴 저작이 거의 산일되어 현존하는 것은 『한국혼』과 시집인 『아목루(兒目淚)』뿐이다.\n『한국혼』은 그가 1912년 동제사 창립 때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글로 옮긴 것인데 국인(國人)에게 민족주의와 복구(復仇)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을 가진 민족운동의 지침서로 예관(신규식) 자신도 피와 눈물로 엮었다 하여 일명 『통언(痛言)』이라고도 한다. 그는 “통언을 쓰려고 하나 나의 마음속에는 한없는 고통이 간직되어 있어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하여야 될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만 나의 느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이를 쓰려고 하나 또한 그것이 피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다. 바라건대 우리 동포로 이 글을 읽는 자는 사람마다, 느끼고 받는 바의 고통을 영원히 여러 사람 마음속에 간직하여 망국의 치욕을 벗어난 다음에 잊어버리도록 하여라.”고 토로하였다. 그리 분량이 많은 저술은 아니지만 이 속에 그의 사상이 압축적으로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한국혼” 사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근대적 한국사 인식이 민족정신, 주체성 확립 등의 민족적 과제 하에서 체계화되던 당시 학계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초기민족주의 사학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n“가령 우리들의 마음이 아직 죽어버리지 않았다면, 비록 지도가 그 색깔을 달리하고 역사가 그 칭호를 바꾸어 우리 대한이 망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하나의 대한이 있는 것이니, 우리들의 마음은 곧 대한의 혼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죽지 않았다면, 혼은 아직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힘쓸지어다 우리 동포여! 다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치 않도록 할 것이며, 먼저 각기 가지고 있는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n즉 복국책의 요체는 한마디로 “대한의 혼”을 지키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전 단계로 우선 망국의 원인을 진단하여 “망국론(亡國論)”을 피력하였다. 망국론은 하늘이 준 본연의 착한 마음을 송두리째 잊어버렸기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고 악한 병에 걸려서 생긴 일종의 마목불인지증(痲木不仁之症), 즉 잊기 잘함을 그 근본 원인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도, 첫째 선조의 교화와 그 종법(宗法)을 잊어버렸고, 둘째 선민(先民)의 공렬(功烈)과 그 이기(利器)를 잊어버렸으며, 셋째 국사(國史)를 잊었고 넷째 국가의 치욕, 즉 국치(國恥)를 잊었음”을 통한하며 이렇게 사람들이 잊어버리기를 잘하니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라고 논하였다.\n이를 좀 더 살피면, 첫째 선조의 교화와 종법이란 생민교화(生民敎化)의 시조인 단군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개국시조이며 주재자인 단군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하늘을 본받아 도를 닦고 나라를 세우며 홍몽(鴻濛)을 개벽하여 자손들에게 전한 것은 5천 년전 동방 태백산에 신으로 강림한 이가 바로 우리 개국시조 단군이었다. 이로부터 성철(聖哲)이 대를 이어 일어나고 토지가 날로 개척되며 문화는 융창하고 무치(武治)는 강성하였다고 논술하였다. 이어 예로부터 우리 선조를 신인국(神人國)·군자국(君子國)·예의동방·해동승국(海東勝國)이라 칭하거나 상국(上國) 신생국으로 불러왔음을 상기시킨 뒤 나라에는 충성하고 집에는 효도하며 벗에게는 신의를 지키고 싸움터에 나가 물러남이 없으며 살생하되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5조목의 가르침은 우리가 지켜야 할 종법인 것이라 논술하였다. 이 종법은 자손만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단군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5조목의 종법을 지켜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신념을 몸소 실천한 신규식은 망명시절 매일 두 차례 단군의 신상을 향해 향을 피워 배례하고 묵념으로서 조국광복을 염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단군숭배 사상은 그가 대종교에 입교한 후 대종교를 독신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n한말에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대종교는 조선민족의 시조이며 국조로 전승되어 온 단군을 받들어 모시며 이에 귀일함으로써 조선민족정신의 순화통일과 민족의식의 앙양을 도모하였다. 동시에 조선민족의 강화에 의해 독립 국가로서의 조선의 존속을 목적으로 한 민족종교로 출발하여, 일제하의 국내외 민족운동에 있어 이데올로기로 역할한 바가 적지 않았다. 그도 이러한 대종교의 현실적이며 목적의식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이를 독립운동의 이념적 지주로 수용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잊혀져가는 단군의 성스러운 전통을 계승하여 진실한 민족의식을 배양하고, 선조의 교화에 대한 긍지를 갖고 이를 신봉해야 한다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예관(신규식)은 평생을 두고 산수와 시화(詩畵)를 즐겨 평생을 객지에서 보내면서도 한 폭의 단군초상화와 한국지도는 항상 지니고 다녀 아침·저녁으로 이를 대하여 기도하였다 한다. 즉 예관(신규식)은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한국지도를 보고 온 정신을 기울여 이를 주시하고 묵묵히 사색하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천만 한국국민이 지금 일제에게 받고 있을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하였고, 조국 광복 후에 건설할 새로운 모습의 국가를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n아울러 아무리 바빠도 매일 새벽과 밤이면 우리나라 개국의 성조인 단군의 신상(神像)을 향해 향을 피우고 두 차례 절하고 나서 묵념함으로써 하루 빨리 혁명을 완수해 조국을 되찾고 노예 상태 하의 동포를 구할 것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극진한 예관(신규식)의 단군숭배는 대종교가 대한의 민족정신이 깃들인 종교로 한국민족의 부흥은 대종교의 발전과 병행된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며, 확신의 차원을 넘어 한국광복운동을 일종의 종교요, 신앙으로 인식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종교란 정신적 이념을 지주로 해 혁명에 헌신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n이러한 단군봉례 즉 단군현양은 곧 민족독립의 실현이란 민족의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양상은 1910년대 단군정통의 역사의식 고양과 단군의식을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대종교의 성장으로 인해 대종교에서 말하는 단군의 중광(重光)과 독립운동에서 말하는 광복을 일치시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1910년대 이후 독립운동가 중 많은 수가 대종교를 믿었으며 비록 입교하지는 않았더라도 대종교의 단군의식을 받아들여 단군숭모 관념과 종교적 의식을 범민족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단군을 민족적 부조위(不佻位)로 인식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n이러한 믿음에서 상해에 도착한 뒤에도 대종교 포교에 주력하였으며, 매주 마다 교우들과 더불어 예배를 올렸다. 매년 3월 15일 어천절(御天節)과 10월 3일 개천절과 8월 29일 국치(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기념일에는 상해의 모든 교포를 모아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하였으며 국치(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의 오욕을 되씹으면서 독립운동에의 의지를 보다 확고히 다져나갔던 것이다. 또한 동북독군(東北督軍) 장작림(張作霖)이 일제의 요청으로 동삼성(東三省)에 있는 한국 교포들이 세운 대종교의 교당과 교포학교를 폐쇄시키고자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예관(신규식)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동분서주하던 중 북양정부(北洋政府)의 국무총리 장요증(張耀曾)이 상해에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사람을 보내 만나기를 청하여 장요증과 면담하게 되었다. 예관(신규식)은 그에게 동북에서 한국 교포들이 받는 학대와 이를 중지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아울러 장작림에게 대종교의 전교당과 한인학교의 폐쇄조치를 중지시켜 줌과 함께 그 보호도 요청하였다. 예관(신규식)의 정성에 감동한 장요증은 이를 쾌히 승낙하고 즉시 명령을 시달하여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n둘째 선민의 공렬과 이기를 잊었다는 가장 중요한 실례로 우리 민족은 만난지형(萬難之衡)을 당해 중흥의 과업을 이룬 대한의 영웅이요 절세의 위인인 이순신을 잊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임진왜란(1592) 당시 삼도(三都)가 함락되고 선조(宣祖)가 수레를 타고 피난하였으며 여러 주군(州郡)은 깨어지고 여러 장수들이 패배하여 흩어져 달아날 때 충무공(이순신)은 한 몸으로써 우뚝히 버티어 연전연승을 거두었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역사에 전함을 인용해 이순신만이 왜구의 침범에 방비해 거북선을 만들었던 것을 높이 기렸다. 그의 사전 예비책 때문에 일본의 10만 수군을 물리칠 수 있었으므로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순신을 높게 평가했는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은 그를 질투하고 시기하여 중죄인으로 취급하였던 과거의 사실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선조의 과업을 정당하게 평가해 이를 본받아 기리는 마음자세가 되어 있지 않음을 비난하였다. 이어 간신이 활개치고 열사가 명분이란 허울 속에서 압살당한 무수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조야(朝野) 모두가 무수한 영웅과 인재를 꺾어 버렸던 우리의 과거사가 망국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였음을 통언하였다. 평생을 두고 조국을 극히 사랑하였으며 거룩한 선조들을 추모하였는데 특히 이순신을 숭모하고 그의 정신을 본받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혁명을 고취하고 국민을 각성키 위해 틈만 나면 이충무공(이순신)의 “바다에 맹서하니 어룡(魚龍)도 움직이고, 산에 맹서하니 초목도 알도다.”라는 시를 읊었으며, 충무공(이순신)의 영웅적인 전공을 기리곤 했다. 그밖에 시집 『아목루』중 「건국기원절후15일 이충무공 한산도기념[建國紀元節後十五日(十月八日)李忠武公閑山島紀念(第三百四回)]」이란 연작시를 지어 그가 세운 은공은 백세토록 잊을 수 없음과 만국이 지금 그를 가장 높이 추앙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충무공(이순신)에 대해 기리는 마음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가 그리는 미래의 조국 상에도 투영되었으니 국권회복 이후 재건된 국가 모습 중 구국원훈인 이순신을 통제(統制) 즉 국권의 우두머리로 상징한 구상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관(신규식)은 “우리조상의 자손들로 어질고 명철한 분이 대대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충무공(이순신)을 드는 것은 충효와 문무로 국궁진수(鞠躬盡廋)한 것은 4천년 사이에 오직 공 한사람뿐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물론 그의 이순신에 대한 흠모가 지나친 면도 없지 않다. 이런 이순신 상이 생겨난 이면에는 이순신이 무엇보다도 대왜 항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승리를 쟁취한 무관이었다는 점과 그가 “문”도 겸비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는 점을 지적해 볼 수 있겠다.\n또한 ‘인재가 이미 모두 꺾어 버림을 당하였는데 이기(利器)가 온전한 보존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면서 선조들의 이기에 대해 논술하며 그 상실의 실상을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은 철판으로 만들어서 거북이 등처럼 만들고 머리와 꼬리도 만들며 그 앞뒤에 모두 포를 장치하였고 그 좌우에는 고르게 포혈(咆穴)을 만들었으며 병사들은 배 속에 숨게 하여 배를 운행하면서 포를 쏘게 하였고 여덟 면에는 모두 창을 꼽았으며 진퇴가 자유로워 빠르기가 나는 새와 같아서 적선(敵船)을 불살아 버림으로써 승리하였다는 역사기록을 인용하여 그 뛰어남을 칭찬하였다. 뿐만 아니라 『영국 해군기』를 인용해 조선의 전선은 철판으로 싼 것이 귀갑(龜甲)과 같은데 그것을 사용해 일본의 목조선을 대파하였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철갑선이 되며 조선인이 창조한 바가 된다고 한 평가를 들었다. 이처럼 타국인도 인정하는 선민들이 발명해 낸 훌륭한 이기 즉 거북선이며, 비행차(飛行車) 등 편리한 기기와 무기류들이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습속에 의해 꺾여 버렸음을 밝혔다. 이어 삼국에서 고려,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상무정신이 쇠퇴하여 오히려 문을 높이고 무를 경시케 됨에 국방을 소홀히 한 결과 입국(立國)의 정신을 상실하고 급기야 망국의 지경에 이른 것임을 통탄하고 있다.\n『한국혼』에서 그가 열거한 선민의 대부분이 역대 이래 이민족의 침략에 항거한 장군이나 의병이었던 점, 그리고 이기라고 지적한 것도 대체로 무리류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신라의 김유신·장보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강감찬·김방경을 열거한 뒤 임진왜란(1592) 당시 권율·곽재우·조천·김천일 등이 몸 바쳐 나라를 구했음을 지적해 두었다. 예관(신규식)의 영웅적인 선민에 대한 가치평가는 위난에 처한 국가를 위한 공업(功業)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선민의 구국적 투쟁과 순국을 높이 평가하여 조국광복이란 당면과제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영웅의 실상을 한국의 역사, 즉 대한의 혼에서 찾고자 한 것이니 이런 입장은 신채호·박은식의 영웅관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n셋째 “국지정신(國之精神)”은 바로 “나라의 문헌”에 깃들어 있으니 이것은 국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국사를 잊었다 함은 곧 나라의 정신을 잊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슬프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다시는 역사가 있을 수 없으며, 지금까지는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고까지 단언하기에 이른다. 국사를 잊게 된 원인은 5천년 이래 수차에 걸쳐 당한 대외적인 침략에 있으며, 후세 역사가들이 조종(祖宗)을 멸시하고 외국에 아첨한 결과 국내의 사서를 무시하는 중국 중심의 전통사학 때문이었다고 파악하였다.\n우선 우리의 5천년 이래의 경적(經籍)과 문자가 당한 화를 살피면, 처음에 당나라 총관(總管) 이세적(李世勣)이 사고(史庫)를 불태웠고, 두 번째는 원의 침략 당시 『고려사』를 깎아 버렸으며 세 번째는 견훤의 군대에 의해 신라의 경적이 소실되고 네 번째 연나라의 난리를 만나 기자의 역사가 흔적 없이 상실됨을 한탄하였다. 이 때문에 『단군사』·『단조사(檀朝史)』·『신지서운관비기(神誌書雲觀秘記)』·『안함노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표훈천사(表訓天詞)』·『지공기(志公記)』·『도증기(道證記)』·『동천록(東天錄)』·『통천록(通天錄)』·『지화록(地華錄)』, 고흥(高興)의 『백제사』, 이문진(李文眞)의 『고구려사』, 거칠부의 『신라사』·『발해사』 등은 그 명칭만 남을 뿐 책을 얻어 볼 수 없게 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게다가 고대 도의(道義) 교화한 경적(經籍) 문자 중 나라의 정수가 남은 것은 이단시하여 버리고 게재하지 않았으며 교린에는 낮추고 겸손함을 본분이라 하였던 사대사상으로 인해 국사가 상실되었음을 비판하였다. 결국 법도에 관한 변칙과 손익을 버리고 거울삼아볼 만한 것은 없애버린 것이 많고 그 중 심한 것은 고래의 사책(史冊) 중 외국을 배척한 것도 고치거나 삭제해 버렸다. 또한 개인의 저술 중 참된 것을 억눌러 전하지 못하게 하니 많은 개인저술이 세상에 펴지지 못하였으니 그 태반이 상실되었음을 탄식하였다. 또한 근세의 이익·정약용·유형원·박지원 등 여러 선철(先哲)들이 찬술한 역사·지리·정치·학술 등에 관한 위대한 논술과 걸작들도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였던 것을 지적하였다. 단지 많은 책이 전할 경우는 한 성(姓)의 가승이며 대대로 내려오는 노비문서일 따름이라고 통언한 것이었다. 이런 문헌상실로 인해 조종을 추념(追念)하고 선열을 빛내고 후인들을 격려하려 해도 잔편단간(殘編短簡)으로 완전을 기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였다.\n그리고 구학문·신학문을 하는 모두를 향하여 자국의 역사는 모르나 중국의 역사는 잘 알고, 서양의 문명은 말하면서 자국의 문명역사는 모르는 사대사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예관(신규식)은 구학을 한 선생들은 도읍의 건설을 말할 때 제요도당(帝堯陶唐)의 산동(山東) 평양(平壤)은 알아도 신조(神朝) 단군의 평양은 모르며,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말할 수 있어도 동명성제(東明聖帝) 고주몽(高朱蒙)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그 사대사상의 병폐를 지적한 것이다. 한편 신지식의 학자는 마니산의 제천단(祭天壇)은 몰라도 애급(이집트)의 금자탑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새로운 기구를 말하되 정평구(鄭平九)가 창조한 비행기는 몰라도 멍물이 발명한 기구(氣球)는 과장하여 말하며 인쇄활자는 반드시 독일과 화란(네덜란드)만 말하지 그보다 수백 년이나 앞서서 창조한 신라나 고려는 아는 이가 적다고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위인을 말할 때 워싱턴·넬슨만을 들었지 우리나라 기왕의 철인걸사(哲人傑士)는 족히 말할 만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도 이들 외국의 훌륭함을 숭배하지 않는 바 아니나 다만 우리 동포들이 자기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만을 좇는 것을 원치 않을 따름이라고 단언하였다.\n“소양(素陽: 주자)에게 무릎 꿇고 감히 스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겨우 남이 뱉은 찌꺼기의 침을 핥는 것이며, 온몸을 백조(白潮: 신문학의 유파)에 적시는 것은 그 껍데기를 입어보기 전에 먼저 나의 정신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 원수가 멸망되지 않는다면 주자의 죄인이 될까 두려우며 문명을 몽상만 한다면 끝내 서양인의 좋은 벗은 되지 못할 것이다.”\n즉 무비판적인 신·구학문에 대한 맹종을 정신의 죽음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대사상과 존화사관에서 벗어나 신채호가『대동사(大東史)』를 기초하고 박은식이 광문회(光文會)를 창설하고 나철이 대종교리를 밝혔으며 주시경은 조국의 문어(文語)를 연찬(硏鑽)하는 등 국사와 한국혼을 찾으려는 시도를 이어받아 국혼(國魂)이 흩어지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n이러한 그의 견해를 분석해 본다면 그가 지향했던 근대화의 방향이 바로 동도서기론적 입장에 섰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구학의 오류에 대한 비판과 그를 넘어서 우리의 본연의 정신과 역사를 찾아 이를 기초로 삼아야 함을 전제한 그 위에 신학에 대한 맹종적 입장을 견지하고 그 중 장점을 취해야만 비로소 근대화도, 복국도 가능하리라는 신념을 견지하게 되었다.\n신규식의 역사인식은 한국혼, 대한의 혼 사상에서 출발한다. 그의 국혼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추측컨대 단군에게 이어 온 민족정신을 의미한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 대한의 혼은 국사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국사를 한국혼의 표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국사관은 지도상의 대한이란 칭호는 망하더라도 대한의 혼과 그 표징인 국사를 잊지 않으면 대한은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사를 잊음”이 망국의 한 원인이므로 국사를 되찾아 대한의 혼을 국인 각 개인의 마음에 보존한다면 외형적인 대한도 복국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n예관(신규식)은 거듭 강조하기를 오늘은 노예 밑에 노예가 되고 옥 가운데 옥에 빠져 있어 그대로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흐리멍덩하고 태만하고 거칠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면 장차 나라가 망할 뿐 아니라 멸종의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단군의 문명은 이미 노장들의 머리 속에는 관념조차 남아 있지 않고 일본의 신무천황(神武天皇)과 명치천황(明治天皇)만이 우리 어린 자제들의 머리 속에 차지하고 있는 것을 한탄하고 분명히 우리의 조상,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글, 우리의 말인 데도 감히 국조니 국사니 국문이니 국어니 하지 못하고 겨우 선사(鮮史)·선문(鮮文)·선어(鮮語)라고 밖에는 부르지 못하니 이러다가 앞으로 선인(鮮人)이란 명사도 또한 절멸되고 말 것이라고 통한하였다. 이와 같은 원통하고 분한 현실을 직시하고 나라의 얼을 얽어매어 흩어지지 않게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n예관(신규식)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실천적으로 발휘되었다. 이를테면 광개토왕의 쇄보(灑寶)가 안휘의 정씨(程氏) 집에 소장되었다는 말을 듣고 1911년 북경에서 알게 된 정가(程家) 성군을 통해 그 유적을 보고자 시도한 일이 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보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던 것이다.\n또한 1915년 셋째 아우 건식(신건식)이 항주(杭州) 적산(赤山) 부근에서 고려사의 옛터를 발견한 일이 있었다. 이 절은 지난날 항주의 명승고적 중 하나로 고려시대에 지은 것인데 매우 광대하고 화려해 사방 각지에서 불공 드리러 오는 이가 그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허물어져 울타리와 무너진 담벽 등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예관(신규식)은 “옛사람들이 남긴 유적을 망쳐 없앤다는 것은 참으로 자손된 사람들의 죄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n그리하여 큰 돈을 모금해 절을 다시 짓고 친히 ‘고려사’란 세 글자를 휘호해 편액을 걸고 「티없이 이 강산과도 같이 고려사를 세우니, 사시로 향불을 피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군왕을 배하도다」그리고 「비로서 깨여 천년 옛 불조를 우러러 만리길 서쪽나라에 와 왕손 눈물짓도다」라는 글을 지어 영련을 걸게 하니 절의 모습이 일신하여 그때부터 고려사란 이름이 유명하게 되었다고 한다.\n신규식은 일제에 대한 투쟁을 상대적인 의미에서 일제가 무력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과 빼앗을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여 전자는 지도상의 대한,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인 영토를 빼앗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정하고 후자, 즉 빼앗을 수 없고 빼앗겨서 안 되는 정신적인 것 이를테면 국가정신, 국혼을 그 대상으로 상정하였다. 그러므로 대한의 혼인 정신적인 유산을 기반으로 빼앗긴 것 즉 물질적인 대한의 국토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 당면한 민족의 과제였음을 통감하였다. 따라서 그의 국사관은 이러한 과제에 잘 부응하는 사상이 될 수 있었다.\n넷째로 지적한 건망증인 국치(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를 잊음이란 불구대천의 원수인 일본을 잊었다는 의미다. 먼저 삼국 이래 무수한 왜구의 침략을 지적하고서 임진년에 우리를 유린하였고 을미년(1895)에는 명성왕후를 시해했으며 1904~5년에는 우리 주권을 빼앗아 버렸고 1907년에는 우리 군주를 협박해 양위케 하고 군대를 해산시켰으며 의병을 학살하고 1910년 마침내 우리를 멸망시켜 우리 동포를, 소·말로 만들어서 완전한 식민지로 떨어지게 했음을 열거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회유·무력·금력에 눈이 어두워 이런 치욕을 잊었음을 병통해 하였다.\n“치욕을 알면 피로써 주검을 할 수 있고,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할 것이며 치욕을 아는 자의 피를 알지 못하니 어찌 치욕을 씻어 버릴 피가 있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아아 동포들이여! 피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고 하여 일제에게 받은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장투쟁론을 밝혔다. “대개 한 사람의 충성과 의분의 기개로도 족히 사나운 오랑캐를 삼킬 수 있거늘 하물며 애국의 마음으로 치욕을 잊어버리지 않은 자에 있어서랴.” 하는 확신을 가지고 몸이 아직 썩지 않고, 기가 아직 꺾이지 않고 피가 아직 식지 않고 마음이 아직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치욕을 앎으로써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동포들에게 소리쳤다.\n그러면서 을미년(1895) 이후 일제에게 주권을 침략당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날들을 열거하면서 그때 받은 치욕을 상기시켰다. 또한 1905년 이후 순국한 여러 선열들의 피를 잊어서는 안됨을 강변하였던 것이다. 민영환이 을사조약(을사늑약, 1905)으로 자결한 사건을 필두로 군대해산 시 대대장 박승환(朴勝煥)도 피 흘림으로 천백세 영웅스러운 귀신이 되었으며, 안중근은 홀로 하얼빈에서 적을 죽여 참으로 통쾌하고 위대한 일을 완수한 뒤 죽음의 길을 찾았던 사실을 열거하면서 이렇듯 선열들이 나라 위해 바친 피 흘림의 값을 깨닫고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n특히 김옥균의 정치개혁을 기울어 가는 국권회복을 위한 혁명으로 판단하고 그를 혁명의 선구자로 평가하고 있음은 특기할 만하다. 김옥균은 명문귀족의 자손으로 명예와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자인데 어찌 모험을 하고 난당의 악명을 뒤집어 쓰면서도 정치개혁을 주창하였겠는가 질문하면서 혁명의 선구자인 그가 일신의 부귀영화보다는 국가발전을 우선시한 점을 기렸다. 따라서 그가 흘린 피는 잊을 수 없으며 그를 낮추는 평가도 버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평가는 신규식 자신의 정치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것으로 망명 이후 그가 중국혁명운동에 적극 가담할 수 있는 사상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추측되며 서구시민혁명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를 수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김옥균이 “문명개화”란 서구중심적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전통적인 종래의 문물을 모두 비판하고 구래의 학문적 전통도 미개화란 명목으로 경시한 점과는 달리 예관(신규식)은 “동도(東道)”를 중시하는 입장에 섰음은 급진적 개혁의 미진한 점을 보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그의 성장배경인 전통유림적인 면모가 급진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의 방향에 서게 했을런지도 모른다.\n혹자는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다고들 하지만 과거 유림과 사문(沙門)에서 대대로 인물이 나왔음을 지적하고서 산천의 옛모습이 그대로인데 인물이 왜 없겠는가 반문한다. 태백산 밑 우리의 아름다운 산수와 우리의 빼어난 남녀 중에 반드시 인물이 있어 사명대사·이율곡(율곡 이이)·조헌·안중근 같은 이가 뒤를 이을 것이며 한반도의 크롬웰과 단테가 일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n마지막으로 당시의 국제 정세를 언급하면서 그에 따른 구국책을 제시하였다. 예관(신규식)은 “오늘의 세기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서로 경쟁하는 철혈세계(鐵血世界)라 파악하고 서로의 경쟁과 세력다툼으로 대전국(大戰局)이 급박했음을 인지하고 이런 세계조류에서는 극단의 사회주의나, 극단의 이상주의는 잠시 접어두어야 하며… 방법은 반드시 현실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널리 세계 각국의 역사를 보면 흥망의 사실이 덧없이 반복되고 있으므로 국민들에게 애국심이 남아 있어 일치 단결해 백번 죽어도 급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사람의 마음은 죽지 않는 것이니, 비록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직 망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의미이니 우리들의 신성한 역사가 또 다시 빛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궐기해서 건망을 회오하여 영원토록 잊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더구나 우리민족의 밑바탕이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을사·병오·정미 등 의병이 봉기하여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고 극단의 일제 압력에도 민심이 굴하지 않음을 보였으며 극단의 궁핍 속에서도 국채보상운동(1907)에 적극 참여한 국민들의 사기가 존재함은 이를 예증한 것이리라.\n또한 나라 세움은 정신에 있는 것이지 넓고 크고 많은 것에 있지 않음을 논하였다. 즉 이백조의 인도인은 영국에 병합되고 7억 평방리의 중국은 일본에 곤욕을 당하였음을 상기시켰다. 구주(유럽)의 몬테가로(몬테카를로)는 겨우 6백 평방리 인구 25만인데도 분용(奮勇)과 선전(善戰)으로 굴하지 않는 것으로 이름 높고 오스트리아에 항거한 세르비아와 독일에 항거한 페르샤(페르시아)와 독일이 혼자 열강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분명한 증거이므로 우리의 이천만 인민이 정신을 차리면 나라 찾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임을 믿었던 것이다.\n비록 우리에게는 전도에 희망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편안히 앉아 스스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런 경우 인민의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국가를 위해 앞으로의 일을 꾸민다면 그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주로 하지 않겠는가. 이미 이것으로 전체와 근본을 삼는다면 서로 전개하는 주장은 비록 다르다 해도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갈 것이니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예관(신규식)은 논한다. 그리하여 단일의 집합점이 바로 국가민족주의라고 주장하였다. 앞서 본 망국의 원인을 깨달아 건망을 회오하여 대한의 혼을 보존하고 만인이 일치단결해서 국가와 민족을 전제와 근본으로 하되 대다수의 국가이익과 국민의 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집합점인 국가민족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목표달성을 위해 가장 해결키 어려운 것이 사견을 희생시키고 인심을 단결해 통솔하는 문제인데, 진실로 오늘날 인물 중 통솔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인물 중 한마음으로 결속시킬 자를 구하는 방안도 있는 것이다. 이를 통솔할 이념적 지도자로 역사 속의 인물인 개국시조 단군을 주재(主宰)로, 구국원훈의 이순신을 통제(統制)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개국시조와 충효와 문무를 갖춘 정신적 지도자 아래서 민족주의를 이상으로 조국광복에 뜻을 두고 실력을 배양하면서 신분·지위·교파·남녀노소·사상을 불문하고 동지가 되어 공복이 될 만한 자를 선출하여 그에게 일임케 하되 감독·애호·찬조·신종할 것이며 다만 부당한 것만을 배척해야 하며 시기하거나 알력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모두 법칙 밑에 다스림을 받도록 하여 아무도 이를 못 벗어나도록 하자는 것이 그가 구상한 국가민족주의였다.\n‘실력준비’운운하는 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국민들로 하여금 상실, 표탕한 정신을 회복시킨 다음 다시 올바르고 굳은 의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며 십 년간 끌어 모으고 십 년간 교훈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임을 강조한다.\n그가 주장하는 ‘국가민족주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대개 국민주권론에 입각하여 개인의 사상이나 주장의 차이도 인정하면서도 민족과 국가를 전제로 하는 합일점을 찾는다는 것, 선거에 의해 공복을 뽑는다는 것, 법치를 주장한 것 등에서 시민적 민족주의 국가를 구상했다고 볼 수 있다.\n『한국혼』을 통해본 그의 민족주의 핵심은 민족과 국가 즉 민족국가인 것이며, 이러한 면은 당시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하에 놓여 있어 당시의 당면 과제인 복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을 중시하며 주창된 것이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우선 잊혀져가는 대한의 정신이 담긴 국사를 재정립하고, 재평가하여 이를 보존해야 하며 그 속에 이어온 선조의 종법과 유혈 항쟁의 기백을 되살려 무력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 그의 독립사상의 요체다.\n이상에서 본 『한국혼』에 나타난 신규식의 사상과 문장은 이 책을 엮어 출간한 민필호의 표현을 빌리면, 독일 피히테의『독일 국민에게 고함』, 프랑스 루소의 『민약론(民約論)』, 중국 문천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와 비견된다. 신규식의 인물상을 쓴 오세창은 예관(신규식)의 사상 및 불타는 애국열이 담긴 『한국혼』은 우리 민족 4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전통을 세계에 선양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진로를 교시한 사상이며 혁명운동의 길잡이로서 ‘자존자신(自尊自信)’·‘자력갱생(自力更生)’·‘일치단결’·‘분발도강(奮發圖强)’을 부르짖은 절실한 민족의 수신서라고 평하였다. 이러한 평가만큼이나 예관(신규식)의 사상과 행적은 민족정기의 함양을 위한 것이 아님이 없고 민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절규가 아닌 것이 없다. 그의 생애는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며 범민족적인 대동단결이 구국운동의 척결이라 여긴 그는 죽는 순간까지 단결을 염려하여 무언의 당부를 남기면서 조국광복의 밑거름이 되고자 하였던 것이다.\n예관 신규식의 생애는 1898년부터 교육과 학회활동을 통해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한 이래 1922년 9월, 무정부상태에 빠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혼란을 비통해 하면서 순국할 때까지 전후 20여 년 동안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의 일생이었다. 이러한 그의 활동시기를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n제1기는 망명이전 1910년까지로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한 시기다.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신분으로서 1905년 의병거사 계획추진과 1907년 일제에 의해 실시된 구한국군의 해산조치에 불응한 무력시위 등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한편으로 민족자존과 자력갱생의 실천방안으로 대한협회에 가입하였으며, 문동학원·덕남사숙을 건립, 경영함과 아울러 중동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인재양성 및 실력양성을 통한 교육구국활동을 폈다. 또한 식산흥업책의 일환으로 광업회사를 발기하고, 『공업계』란 잡지의 창간을 도와 실업계에 기여하기도 하였다.\n제2기는 경술국치(강제병탄, 한일강제병합, 1910)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수립 전까지 독립운동기지를 확립하면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때다. 신규식은 독립운동의 불모지인 상해에 망명하여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한 뒤 중국혁명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중국혁명가들의 인식을 제고시켜 그들을 지지세력으로 확보하고 협력관계를 마련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동제사·신아동제사·대동보국단·신한혁명당 등 독립운동단체를 차례로 조직하였고 대동단결선언도 주도할 수 있었다. 또한 박달학원을 설립하고 유학 등을 주선하여 독립운동의 역군양성에도 힘을 기울이는 등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이다.\n제3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를 위해 활동한 시기다. 신규식은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국무총리대리 및 외무총장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1921년 11윌 임시정부의 특사로 중국 호법정부를 방문해 임시정부의 정식승인과 독립운동 원조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는 그가 중국혁명가들과 맺어놓은 친밀한 유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후 중국 국민당정부와 임시 정부의 관계를 긴밀히 할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이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주도적인 위치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임시정부를 분열이나 갈등 없이 지속시키려는 의도에서 측면 지원의 입장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인다.\n신규식의 사상은 첫째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조선민족의 시조이며 국조인 단군을 민족정신-한국혼-의 모태로 여기는 단군숭배사상이었다. 둘째, 조국광복이란 민족적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구체적이며 실현가능한 영웅의 실상을 국사, 즉 대한의 혼에서 찾고자 하는 영웅사관을 주장하였다. 셋째 그의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은 “한국혼” 즉 “대한의 혼” 사상에서 비롯된다. 즉 한국혼의 표징은 국사이므로 비록 지도상의 대한은 망했다고 해도 국사를 잊지 않는다면 대한은 살아날 수 있다는 논지를 폈다. 넷째 독립운동방략으로 무장투쟁을 주장하였다. 즉 일제에게 받는 치욕은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유혈투쟁이 선열의 피를 이을 우리의 책임임을 밝히고 있다. 다섯째, 복국책으로 국가민족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는 국가와 민족을 전제로 대다수 국리와 민복에 근본을 두고 법칙 하에서 사상·연령·계급·직업의 차별을 뛰어넘어 모든 동지의 결속으로 대동단결하면서 대한의 혼은 보존하고 실력을 배양하면 달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국민주권론·법치주의·입헌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근대적인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n결론적으로 신규식은 독립운동가로서는 선구적으로 상해에 망명하여 중국혁명의 중요성을 한국독립과의 연결선상에서 인식하고 중국혁명에 가담하였다. 그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동제사 등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고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특히 신한혁명당과 대동단결선언의 망명정부 계획은 이후 임시정부 수립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신규식은 선구적인 독립운동의 전개를 통해 1910년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나갔으며 이후 임시정부의 수립과 그 활동터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가 크며 아울러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중중첩첩하고 외외암암 하여 웅장하기는 대단히 웅장한 산이라. 그 산이 금강산 줄기로 내린 산이나 용두사미라. 금강산은 문명한 산이요, 치악산은 야만의 산이라고 이름지을 만한 터이라.\n그 산 깊은 곳에는 백주에 호랑이가 덕시글덕시글하여 남의 고기 먹으려는 사냥 포수가 제 고기로 호랑이 밥을 삼는 일이 종종 있더라.\n하늘에 닿듯이 높이 솟아 동에서부터 남으로 달려 내려가는 그 산 형세를 원주 읍내서 보면 남편 하늘 밑에 푸른 병풍 친 것 같더라.\n치악산은 병풍 삼고 사는 사람들은 그 산밑에서 논을 풀고 밭 일어서 오곡 심어 호구하고, 그 산의 솔을 베어다가 집을 짓고, 그 산의 고비고사리를 캐어다가 반찬하고, 그 산에서 흘러 내려가는 물을 먹고사는 터이라. 때 못 벗은 우중충한 산일지라도 사람의 생명이 그 산에 많이 달렸는데 그 산밑에 제일 크고 이름난 동네는 단구역마을이라.\n치악산 높은 곡에서 서늘한 가을 바람이 일어나더니, 그 바람이 슬슬 돌아서 개 짖고 다듬이 방망이소리 나는 단구역마을로 들어간다.\n달 밝고 이슬 차고 베짱이 우는 청량한 밤이라. 소소한 바람이 홍참의 집안 뒤꼍 오동나무 가지를 흔들었는데, 오동잎에서 두세 방울 찬이슬이 뚝뚝 떨어지며 오동 아래 단장 위에서 기와 한 장이 철썩 떨어진다.\n달은 오동나무 그림자를 끌어다가 홍참의 집 건넌방 동창 미닫이에 들었는데, 서늘한 바람이 오동 그림자로 활동사진을 놀리더라.\n창밖에 눈썹같이 좁은 툇마루가 있는데, 어떤 부인이 혼자 앉았다가 머리끝이 주뼛주뼛하고 겁나는 마음이 생겨서 미닫이를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나이 이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시골구석에도 이런 일색이 있던가 싶을 만한 일색이라. 은조사 겹저고리에 세모시 대린 치마를 입고 서늘한 바람에 추운 기운이 있던지, 겁이 나서 소름이 끼쳤던지, 파사한 태도가 더욱 어여쁘더라.\n(부인)“ 이애, 금홍아 금홍아…….”\n금홍이는 옷 입은 채로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가 본래 영리한 계집이라, 자던 목소리로 대답하여 벌떡 일어난다.\n(부인)“금홍이 잠들었더냐?”\n(금홍)“어젯밤에 송편 빚느라고 늦게 잤더니…….”\n하면서 동창에 달그림자를 보고 새 정신이 나는 모양이라.\n(금홍)“아씨, 아씨께서 쇤네를 여러 번 부르셨습니까?”\n(부인)“이애, 달이 아깝지 아니하냐. 이런 달밤에 잠만 잔단 말이냐.”\n(금홍)“왜 어느새 들어오셨습니까. 또 달구경하러 나가시면 쇤네가 모시고 구경하겠습니다.”\n(부인)“글쎄, 좀더 구경하다가 잘까. 내가 혼자 툇마루에 앉았다가 오동나무 밑에서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무서워서 들어왔다.”\n(금홍) “아직 초저녁인데 설마 도둑놈 들어올라구요.”\n하면서 미닫이를 열고 나서는데, 나이 열다섯이나 열어섯쯤 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어여쁜 얼굴이라. 만일 서울 돌구멍속에 있었던들 남의 종 노릇 아니하고 잘 되러 가고 싶은 마음이 벌써 생겼을 만하더라.\n부인이 다시 툇마루로 나가 금홍이를 데리고 달구경을 하는데, 오동 가지는 의구히 흔드리고 달은 더욱 밝았더라.\n부인이 나무 그림자를 피하여 앉아서 달을 쳐다보다가 혼잣말이라.\n“저 달은 우리 어머니를 보겠지……. 우리 어머니를 보겠지……. 우리 어머니는 지금 무엇을 하시누. 아마 달 쳐다보며 내 말 하시렷다.”\n(금홍)“아씨, 달밤에 친정댁에나 가시지요.”\n(부인)“그렇게 가까우면 작히나 좋겠느냐. 교군을 타고 사흘에 왔으니, 우리가 걸어가려 하면 아마 한 달은 가지.”\n(금홍)“저 달은 오늘밤에 서해 바다까지 갈 터이니, 아씨께서는 저 달만 쫓아가시면 오늘밤에 서울이야 못 가겠습니까.”\n(부인) “하하하, 너는 주둥이를 빵긋하면 고따위 소리만 나오느냐. 내가 친정에 있을 때는 그런 소리를 듣기 좋아하여서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도록 하였으나, 이 댁에 와서는 누구 듣는 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너를 버릇없는 것으로 알 터이니, 내 모양이 수통치 아니하냐. 오냐, 아무도 없을 때는 아무 소리를 하여도 계관없다. 내가 근심이 있을 때에 네 말을 들으면 근심을 잊는다.”\n(금)“상전부모라 하니, 쇤네가 아씨를 부모와 같이 믿는 고로 버릇없이 응석도 많이 하였으니, 이후에는 그런 일이 있거든 꾸짖으시든지 때리시든지 하여줍시오.”\n(부)“하하하, 옆 찔러 절을 받는다더라마는, 꾸짖어달라 때려달라 하는 년은 너밖에 없겠다. 오냐, 네가 나를 부모같이 믿는다 하니 그 마음 변치 말고 있거라. 나는 이 댁에 와서 고생을 하든지 호강을 하든지 내 팔자이어니와, 너는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니 불쌍하다.”\n(금)“쇤네같이 펄펄 나다니는 년이야 근심이 되는지 고생이 되는지 무엇을 지내겠습니까마는, 아씨께서는 근심이 있든지 고생을 하시든지 홍참의 댁 건넌방 한 간 속에만 들어앉으셨으니 오죽 갑갑하시겠습니까.”\n부인이 귀로 금홍의 말을 들으며 눈으로 달을 쳐다보며 말 없이 앉았다가 치마끈을 들어 눈을 씻으니, 금홍이가 하던 말을 그치고 마주 낙루하다가 부인 앞으로 다가앉으며 부인을 위로한다.\n(금홍)“아씨, 그렇게 설워하지 맙시오. 이 앞에 좋은 때가 많습니다.”\n(부인) “언제가 좋은 때란 말이냐.”\n(금)“이애, 꿈 같은 말도 한다. 사십이 못 된 마님이 늙어 돌아가시려면 나는 그 동안에 늙지 아니하느냐.”\n(금)“젊으신 때에 고생을 좀 하시다가 노래에 팔자 좋게 지내시면 좋지요.”\n(부)“이 고생을 하면서 늙도록 살아 무엇하게. 나는 마님도 마님이어니와 제일 작은아씨는 얄미워 못 살겠다.”\n(금) “글쎄 말씀이올시다. 이 댁 작은아씨는 아마 여우가 되다가 사람이 되었지, 나이 열한 살에 눈치는 어찌 그리 빠르던지. 귀신이 무엇을 먹고 사누. 고런 것을 아니 잡아가니…….”\n(부)“요년, 목소리 좀 나직나직 하여라. 안방에 들릴라.”\n(금)“그 소리 들리면 맞아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쇤네도 여기서 볶여 말라죽지 말고 진작 맞아죽었으면 좋겠습니다.”\n부인과 금홍이가 서로 사정을 말하면 서로 위로를 하느라고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는데, 안방 뒷마당에서 건넌방 뒤로 돌아오는 모퉁이에 달빛 없는 지붕 처마 그림자 밑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n“이 개 이 개, 이 빌어먹을 개 들어가거라. 왜 따라나와서 짖느냐.”\n하면서 은근히 개 쫓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그 집 작은아씨의 목소리라. 부인과 금홍이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수군수군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미닫이도 아니 닫고 숨도 크게 쉬지 아니하고 앉았더라.\n별안간에 안방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야단이 난다.\n“이애, 서울 재상의 딸은 시어미도 모르고 시뉘도 모른다더냐. 그런 변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애 네 오라비인가 무엇인가 그 빙충맞은 놈은 재상집 사위가 되어 부모·동생에게 욕을 먹이면서 그것을 아내라고 집에 둔단 말이냐. 아망위는 부마가 되었어도 기를 펴고 지냈단다. 오장육부가 남과 같이 있는 자식 같으면 그런 아내는 당장 교군을 거꾸로 태워서 쫓아보내고 사당에 고유하고 다시 장가를 들겠다. 너의 오라비 댁인가 태상노군의 딸인가 그것은 서울 재상의 딸이나 되는 고로 시어미와 시뉘를 몰라보려니와, 금홍이란 년은 재상집 종년이라고 시골 양반은 제 발샅의 때만치도 몰라 본단 말이냐. 이애, 사랑에 나가서 너의 아버지 여쭈어라. 금홍이란 년을 때려죽이겠다. 원주 사는 홍참의가 아무리 대단치 아니하여도 며느리 종년에게 그까짓 욕은 아니 먹을 터이다.”\n하며 악을 쓰는 소리가 나더니 안마당에서 징 박은 신을 신고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나는데, 홍참의 딸이 홍참의를 부르러 나가는 모양이라.\n금홍이가 발바닥으로 살짝 나가더니 사랑방 옆에 숨어 서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n“아버지, 아버지.”\n부르는 것은 홍참의 딸이라.\n“남순이, 왜 나왔느냐?”\n하는 것은 홍참의 목소리라.\n(남순)“어머니가 금홍이란 년을 때려 죽인댔어요.”\n(홍참의)“금홍이를 왜 때려 죽인단더냐.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때려죽이 나!”\n(남)“그년이 어머니더러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하고, 날더러 여우 되러 가다가 사람 되었다 하며 별소리를 다하여요.”\n(홍)“그럴 리가 있느냐.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n(남)“에그, 아버지두 참……. 내 귀로 들었는데…….”\n(홍)“그래, 금홍이가 너의 어머니더러 어서 죽으라 하고, 너더러 여우 같다 하더냐?”\n(남)“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건넌방 툇마루에 앉아서 말하는 것을 내가 뒤꼍 모퉁이에서 들었소. 더 오래 서서 들었더면 별소리가 많았을 터인데, 그 못된 개가 딸라 나와서 오동나무를 쳐다보고 짖기 때문에 내가 개 쫓는 소리를 듣고 언니와 금홍이가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n(홍)“아서라, 이후에 다시는 남의 말 엿들으러 다니지 마라. 계집아이가 그리하면 사람 못 되느니라. 오냐, 금홍이란 년, 그년 고약한 년이다. 내가 내일 아침에 그년 불러 꽤 꾸짖겠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n(남)“어머니가 아버지 여쭈라셔요.”\n(홍)“오냐, 밤들었다. 네나 들어가 자거라.”\n(남)“아버지도 들어가셔요.”\n(홍)“에고 고년, 들어가라 하면 얼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바득바득 조르고 섰느냐 나이 열한 . 살이나 먹은 것이 저렇게 미거하여 무엇에 쓴단 말이냐.”\n하면서 달그림자가 은은한 방 속에서 남창 미닫이를 열어놓고 가만히 앉아서 담배만 먹는다.\n남순이가 핀잔을 보고 홀짝홀짝 울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어머니 되는 김씨부인더러 홍참의 하던 말을 낱낱이 말하니, 김씨부인이 그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야단을 친다.\n(김)“이애, 만만한 년은 며느리에게 욕을 먹고 며느리 종년에게 악담을 들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구나. 오냐, 그만두어라. 우리 모녀 다 없어지면 홍씨댁이 잘될 터이다. 팔자가 오죽 사나운 년이 남의 후취댁이 되었겠느냐. 남순아, 너도 진작 뒈지거라. 너도 여북 팔자가 사나와서 남의 후실의 딸이 되었겠느냐. 네가 복을 많이 타고났을 것 같으면 남의 전설 마누라의 며느리 종님이 되었을 터이다. 너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의좋은 초취댁 죽을 때에 왜 돌아가시지 아니하였다더냐. 그래 역성을 하더라도 분수가 있지. 초취댁 며느리 종년까지 역성을 들고, 나 같은 년은 전실 며느리에게 소리 없는 총을 맞아죽어도 알은 체하여 줄 사람도 없을 터이로구나. 우리 모녀만 죽으면 이 집안에서 몇 사람이 춤을 출지 모를 것이다. 남순아, 너 주고 나 죽자. 그런 인생들이 살아서 무엇한단 말이냐. 오냐, 그만두어라.\n오늘밤 내로 너를 쳐 죽이고 나까지 죽어서 여러 사람의 소원이나 풀어주겠다.” 하더니 남순이를 쾅쾅 두드리며 독살풀이를 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안방으로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홍참의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오다가 보니 금홍이가 안마당 섬돌 아래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n(금) “마님, 작은아씨를 때리시지 말고 쇤네를 죽여줍시오. 쇤네가 죽을 때가 되어서 죄를 지었습니다. 철모르는 쇤네는 말을 함부로 하였거니와, 건넌방 아씨에게는 아무 말도 아니하셨으니 죄 있는 쇤네만 죽이시고 아씨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두시지 맙시오.”\n하면서 빌고, 건넌방에서는 모기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나는데, 그 우는 사람은 홍참의 며느리라.\n본래 홍참의 초취부인의 성은 박씨니, 소생 아들 하나가 있고, 후취부인의 성은 김씨니 소생 딸이 하나가 있는지라.\n초취부인 소생 아들의 아명은 백돌이요 관명은 철식이니, 일곱 살에 그 어머니가 죽고 여덟 살에 계모가 들어오고, 열네 살에 장가를 드니 신랑 신부가 나이 동갑이데, 그 신부는 서울 사는 이판서의 딸이라.\n백돌이가 자랄 때에는 계모 솜씨에 고생도 많이 하였으나, 장난 몹시 하기로 유명한 아이라. 고생이 되는지 무엇이 되는지 모르고 자라나는 중에 도리어 그 계모가 성이 가시어 못 견딜 때도 많이 있었더라. 백돌이 자랄 때에 계모가 백돌이를 미워하던 마음이 일년 삼백육십 일에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모인 것이 치악산같이 쌓였을 터이나, 무형무적한 사람의 마음이라 남의 눈에 보이지는 아니하였더라.\n백돌이 장가든 후에는 그 계모가 백돌이를 미워하던 마음으로 백돌의 아내에게 예물 주듯 옮겨주었더라.\n금홍이는 이씨부인이 친정에서 데리고 온 종인데, 열 살부터 부인을 따라 와서 일곱 해가 되었는데, 이씨부인이 받는 미움을 같이 받고 있는 터이라.\n이씨부인과 금홍이와 둘이 앉으면 안방 식구의 이야기를 하고, 안방 식구는 건넌방 식구의 흉만 하던 터이라.\n그 날은 금홍이가 절명일이던지 말을 함부로 하다가 남순의 귀에 들어가서 그 야단이 났더라. 금홍이는 죽기를 결심하고 김씨부인에게 대죄하나 김씨 부인이 금홍이는 본체도 아니하고 남순이만 때리다가 홍참의를 보더니 별푸념을 다 하며 독살을 부린다.\n홍참의가 두 볼이 축 처지도록 성이 나서 들어오더니 안방 한가운데에 장승같이 우뚝 서서 김씨부인을 물끄러미 보는 모양이 벼락이나 내릴 듯하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눙치는지,\n(홍) “허허허, 마누라는 종작이 없는 사람이자, 남순이가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저렇게 때려…… 며느리가 잘못하거든 며느리를 꾸짖고, 금홍이가 잘못하거든 금홍이를 꾸짖든지 때리든지 할 일이지, 어린 남순에게 분풀이를 하니 참 이상한 일이요. 남순아, 매맞지 말고 이리 오너라.”\n하며 남순이를 부른다.\n김씨부인이 남순이를 미워서 쳤던지 귀애서 쳤던지 아프기는 일반이라.\n남순이가 홍참의 앞으로 달려들며 아버지를 부른다.\n홍참의가 남순이를 데리고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가서 앉더니 남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n(홍) “남순아, 울지 마라. 너의 어머니에게 맞은 매는 아프지 아니하니라. 허허허.”\n하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는데,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독살이 한층 더 나는 모양이라.\n하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는데,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독살이 한층 더 나는 모양이라.\n(김씨부인) “ 여보, 그러지를 말으시오. 그래, 어미에게 뒈지도록 매맞은 남순이는 아프지 아니하고, 시어미더러 욕하고 악담하던 며느리가 내 소리이에 속이 아플까 염려가 되나 보구려. 내가 며느리에게 무엇을 그리 심히 굴어서 그런 소리를 하시오? 그래, 내 속으로 나온 자식은 매를 맞아도 애처로운 마음이 조금도 없이 그 어린 남순이더러 악담을 하고 있단 말이요. 남순이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 볶는 시어미를 만나서 매보다 더 아프로 쓰린 꾸지람만 듣고 고생을 하면 영감 속이 시원하겠소. 나는 우리 남순이를 시집보낼 때에 계모 시어머니 있는 전실댁 며느리 될 곳으로 시집보내겠소. 남의 전실댁 며느리만 되면 계모 시어미더러 욕을 하기로 계관이 있소 ……. 요년 금홍아, 너는 무슨 요약으로 뜰 아래서 빌고 있느냐. 너의 아씨 같은 상전을 두고 아무 짓을 하기로 겁이 무슨 겁이냐.”\n하면서 야단을 치는데, 홍참의는 본래 실없는 쇠 잘하는 사람이라. 김씨 부인의 하는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남순이를 데리고 허허 웃으면서 실없는 소리만 하다가 다시는 금홍이를 꾸짖는데 호령이 서리 같다.\n“요년 금홍아, 네가 무엇이라, 하였누. 너 같이 요망한 년이 언감생 코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내일 밝은 날은 조년을 대매에 쳐죽일 터이나, 조년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들어 두어라.”\n하면서 윗목에 그뜩 들어선 계집종들에게 말을 이르다가 다시 그 종들까지 생핀잔을 주며 호령을 한다.\n(홍)“이년들, 너희들은 무엇하러 다 이렇게 들어왔느냐, 무슨 구경 났느냐. 냉큼 나가거라.”\n하며 종들을 내어쫓더니, 그 부인 김씨를 돌아다보며 가만히 하는 말아,\n“여보, 남의 눈가림을 좀 하오. 며느리가 그런 일이 있거든 못 들은 체 하고 있다가 나더러만 말할 일이지, 밤중에 야단을 치며 나더러 들어오라 하니 어찌하잔 말이요. 이후에는 금홍이를 쳐 죽이든지 며느리를 쫓든지 하더라도, 이번에도 며느리와 금홍이를 불러서 대강 꾸짖고 그만 용서하여 주오.”\n하며 허허허 웃고 하는 말이 솜씨도 있고 풍치도 있는지라. 부인의 성이 풀어졌던지, 그 밤은 다시 아무 일없이 지냈더라.\n이씨부인이 그러한 시집에서 날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데, 하루 열두 시로 때\n마다 죽고 싶으나 살아 있는 것은 남편 하나만 믿고 세월을 보내더라.\n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를 달달 볶는 솜씨가 날로 늘고, 남순이는 그 어머니 귀에 오라비댁 흉보느라고 속살거리는 솜씨가 날로 늘고, 이씨부인은 고생을 할수록 내외 금슬이 깊어가는데, 그 남편 백돌이가 그 아내를 돌아다보는 체도 아니하면서 마음에만 간절히 불쌍히 여기더라.\n하루는 백돌이가 그 부인의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씨부인을 물끄러미 보고 말없이 앉았으니,\n(부인) “무슨 걱정이 있소? 왜 잠자코 앉으셨소. 에그, 나도 할 말이 많더니, 대하여 보니 말이 깍 막혀서 한 마디도 아니 나오구려.”\n(백) “말을 들으면 젊은 놈이 마음만 상하지 유익한 곳 있소.”\n(부인)“에그, 그렇게 마음이 상해서 어찌한단 말이요. 날 생각 마시고 서울이나 가시구려.”\n(백)“내가 참 집에 있다가는 점점 마음만 좀스러지고 또 속이 상하여 견딜 수가 없어……어디든지 멀찍이 집안 일을 모르고 지낼 작정이요. 이왕 집을 떠날 터이면 아주 멀찍이 가지 서울은 아니 가서 있겠소.”\n(부)“우리 집에 가서 계시면 우리 어머니가 범연히 대접하실 리가 있소.\n우리 어머니는 아들도 없이 양자를 하시고,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 뿐인데 밤 낮으로 나만 생각하시던 터에 사위를 만나보시면 오죽 반가와 하시겠소.”\n(백)“허허허, 장모도 딸만 아시면 양자 들어온 처남은 고생낱이라 하겠수.”\n(부)“우리 어머니께서는 양자한 아들이라도 대단히 귀애하시고 며느리까지도 의뜻이 맞아서 귀애하신다오. 우리 어머니를 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러하지, 누가 양자라고 푸대접하고 전실 소생이라고 미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리 흔하겠소.”하면서 눈이 눈물이 가랑가랑하니 백돌이가 그 눈치를 보고 다시 부인을 위로 한다.\n“여보, 과히 근심말고 지내오. 사람이 살아 있으면 한때를 봅니다.”\n부인이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그 남편의 처음 하던 말을 듣고자 하여 다시 웃는 낯으로 말을 묻는다.\n(부인)“여보, 내 걱정은 마시오. 대장부 몸이 되어 처자에게만 구구한 마음이 있으면 무슨 사업을 하시겠소.”\n(백)“허허허, 개화군의 딸이 다른 것이로구. 무슨 사업을 하는니 못하느니 하는 소리가 참 제법인걸. 나도 어서 신학문 공부나 좀 하여야 마누라에게 업신여김을 아니 보겠구.”\n(부)“여보, 여편네라고 업신여겨서 놀림감으로 말씀하시지 마오.”\n(백) “허허허, 놀리기는 누구를 놀려. 두메 구석에서 자라난 사람이 서울 사람을 놀려, 허허허”\n웃으면서 부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니, 부인이 마주 방긋이 웃으면서,\n(주)“에그, 아무렇게 말씀을 하시던지 듣기 좋소. 내가 시집에 온 후에 오늘같이 마음에 근심 없이 지내본 날이 없었소. 날마다 오늘같이만 세월을 보냈으면 다만 일 년을 살다 죽더라도 소원이 없겠소.”\n백돌이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더니,\n(백)“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집에서 고생을 참고 있어 보오. 나는 타궁에 가서 공부나 하고 있다가 고국에 돌아오거든 그때는 어찌하든지. 미리 말할 것은 아니나 마누라도 차차 기를 펴고 살살이 있을 터이니 부디 과히 근심마오.” 부인이 그 남편이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 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근심하던 빛을 감추고,\n(부) “여보시오, 그런 마음 있거든 하루바삐 서울 올라가서 우리 아버지께 말씀만 하면 아버지께서는 당장이라도 치행도 하여 주실 것이요. 몇 해든지 공부하실 동안에 학비도 넉넉히 대어주실 터이니 하루 바삐 떠나시오. 그러나 여기 아버님께서 허락을 하실라구…….”\n(백)“허허허, 마누라는 개화한 친정 아버지를 자랑하는 말이오그려. 우리 아버지는 완고의 마음이시니 아들더러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말로만 하실 일이 아니오. 아버님께서는 머리만 깎는 것도 대기를 하시는 터에 그 아드님이 머리 깎고 타국 간다는 말을 들으시면 변으로 아실 듯하여 하는 말이요. 그 하루 삼시로 조석 먹으러 들어오는 것만 보셔도 보기가 싫어 못 견디시는 모양인데…….”\n하면서 그 남편의 얼굴을 건너다보니 백돌이가 부인의 얼굴을 마주 건너다보다 서로 기색이 좋지 못하여 마주보며 말이 없다가 백돌이가 먼저 천연한 기색으로,\n(백) “여보 마누라, 우리가 젊은 터에 구구한 생각을 둘 것이 아니라, 마누라는 내가 죽고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나는 마누라가 죽고 없는 사람으로 여겨서, 내가 몇 해 만에 고국에 돌아오는지 다시 만나는 날에는 죽었던 사람을 만나보거니 여겼으면 더욱 반가울 터이니 부디 서로 잊고 지냅시다. 내가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오늘같이 마누라를 생각하면 허다한 염려되는 마음으로 공부에 착심이 되지 아니할 터이니, 나는 내일 우리 집에서 떠나는 길로 부모도 없고 동생도 없고 아내도 없고 미실미가한 단독 일신 같이 마음을 먹고 나설 터이니, 내가 외국에 가서 몇 해가 되든지 편지 한 장 아니 부칠 터이닌 그리 알고 마누라도 내게 편지 부칠 생각을 마오. 옛적에 오기란 사람은 노 나라에 가서 증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공부를 하다가 그 모친이 죽어도 분상도 아니하고 공부만 하오니 증자가 오기를 끊으셨고, 그 후에 노나라에 벼슬할 때에 노나라에서 제나라를 치고자 하여 오기로 장수를 삼고 싶으나 오기의 아내는 제나라 여편네라, 노나라 사람이 오기를 의심하니 오기가 그 아내를 죽이고 장수되기를 구하여 제나라를 쳐서 크게 공을 이루었으니, 어진 도덕으로 말할진대 오기를 옳다 할 수가 없으나, 나는 오기를 배울지언정 증자는 배울 마음이 없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 몸과 제 부모, 제 처자, 제 집, 제 재물만 중히 여기고 제 나라는 망하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 제 손으로 제 발등 찍듯이,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를 망하여 놓고 분하니, 절통하니, 남에게 천대받기가 싫으니, 먹고 살 도리가 없느니 하면서 저물도록 하는 것은 나라 망할 짓만 하니, 그렇게 미련한 일이 있소. 나는 하늘같이 중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바다같이 깊이 정든 아내를 잊고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하려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는 생각에서 나온 마음이요. 내가 타국에 간다 하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필경 변으로 여기시고 못 가게 하실 터이니 나는 아버지 모르게 도망질하겠소. 날만 새면 갈 터이니 나 없는 동안에 부디 몸조심하여 잘 지내오.”\n남편이 큰 뜻이 있어서 만리타국에로 공부하러 간다 하는 말을 듣고 좋은 마음도 한량없고, 자기는 남편 떠난 후에 계모 시어머니에게 무슨 설움을 받든지 그 설움을 알아줄 사람도 없는 것이 더욱 가련한 노릇이라. 그러나 남편에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아니할 작정으로 남편의 위로될 말만 한다.\n(부)“말씀은 다 좋은 말씀이오마는, 사람이 말과 일이 같기가 쉽지 못합니다. 오기 같은 영웅이 세상에 또 있기가 쉽소. 지금 하시던 말씀에는 집을 잊고 나라를 위하겠다 하시면서 나더러 조심하여 잘 지내라 하시니, 오기 같은 영웅이야 노나라에 공부하러 갈 때에 그 아내를 그렇게 못 잊어 하였을 리가 있소. 대장부가 일구이언은 못하는 것이니, 부디 날 생각 마시고 공부 성 취한 후에 고국에 돌아오시오. 나는 집안에는 여간 고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고생을 낙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내 걱정은 조금도 마시오.”\n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작별을 하는데, 초저녁부터 시작한 말이 닭이 두세 홰를 울도록 그칠 줄을 모르더라.\n금홍이는 건넌방 웃간에서 헛잠을 자고 드러누워서 소리 없는 눈물이 베개에 젖었으니, 그 눈물은 제 설움이 아니라 저의 아씨를 불쌍하여 우는 눈물 이러라. 그때 백돌의 내외는 달빛 없는 그믐밤에 불도 아니 켜고 앞뒷문 열어놓고 단 둘이 앉아서 내일 할 이별을 오늘밤에 미리 하느라고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데 백돌이가 , 말로는 그 아내를 조금도 생각지 아니할 듯이 큰 소리를 하나 마음에서 솟아나는 인정이야 어디로 갔을 것이 아니라, 연연한 생각이 한량없다.\n부인은 그 남편이 집에 있어서 마음을 상하기보다 활발한 마음으로 외국에 공부하러 간다 하는 것이 실상 좋아서 간절히 권하였으나, 새는 날은 남편을 이별하는 날이라. 이별의 회포는 오장이 녹는 듯 스는 듯하여 이 밤이 새지 말고 백년 같이 길었으면 좋을 듯이 여기나, 세상 만사가 사람의 소원대로 되는 것 이 아니라. 그날 밤은 다른 날 밤보다 별로 짧은 것 같다.\n적적한 깊은 밤에 안방 식구는 잠이 깊이 들었건마는 이씨부인은 안방 식구가 말이나 엿들으러 나왔을까 의심이 나서 한시 동안에 몇 번씩이나 마당을 내다 본다.\n가을 밤 길다 하던 옛글도 거짓말이라. 어느 틈에 이 밤에 새었던지 주먹 같은 샛별은 동편 하늘에 높이 올랐는데, 하늘에 총총하던 자디잔 별들이 하나씩 둘씩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없어지고 밝은 기운이 차차 생기는데 그 빛은 오늘날 태양빛이라. 백돌이가 먼동 트는 것을 보더니,\n(백)“여보, 날이 새었소. 나는 사랑으로 나가 있다가 아침 식후에 어디로 놀러 간다 하고 그 길로 떠날 터이니 그리 알고 잘 있으오.”\n하면서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는데, 부인이 그 남편 나가는 것을 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쌍창 미닫이 문지방 위에 고개를 푹 수그려 엎드리더니 소리 없이 우는데, 정신을 잃었던지 날이 활짝 밝도록 모르고 있더라.\n“아씨 아씨, 일어납시오. 앞뒷문을 열어 놓고 여기 이렇게 계시면 못씁니다. 안방 마님이 일어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일어납시오. 문 닫겠습니다.\n하면서 부인을 부르는 것은 금홍이라.\n부인이 머리를 들어 금홍이를 보다가 앉은 채로 아랫목을 향하여 툭 쓰러지는데, 금홍이는 다 밝은 날 새로이 앞뒷문을 소리 없이 닫고 부인 앞으로 와서 앉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아니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n부인이 누운 채로 고개를 둘러 금홍이를 보면서,\n(부인) “이애 금홍아, 서방님은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신단다. 서방님도 아니 계시면 우리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이냐.”\n(금홍)“쇤네도 새벽에 잠이 잠깐 깨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 / 서방님께서 타국에 가시면 아씨께서 섭섭하신 마음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마는 아씨께서는 부디 근심말고 계십시오. 서방님이 이런 시골구석에 계시면 아씨께서 이 고생을 면하실 날이 없습니다. 뜻밖에 서방님께서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를 하신다 하니 서방님 내외분은 좋은 운수가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씨께서 눈 끔쩍 몇 해 동안만 고생을 참고 계시면 이후에는 좋은 일만 있을 터이올시다. 서방님께서 귀히 되시면 세상 사람이 아씨를 쳐다볼 터이니, 그때는 마님께서도 아씨에게 그렇게 몹시 구시지 못합니다.”\n(부)“오냐, 말은 좋다마는 나중 일이 어찌될지 아느냐. 지금 내 처지에 근심을 마자 한들 아니할 수가 있느냐. 이에 금홍아, 늦도록 잔다고 마님께 걱정을 들을라. 어서 일어나서 세수도 하고 일이나 하자.”\n하면서 일어나서니, 근심할 새도 없이 분주하더라.\n그날 아침에 홍참의 부자가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왔는데 본래 홍참의 집 가\n규가 그러하던지, 홍참의가 밥을 먹으려면 김씨부인의 고부와 백돌의 남매가\n안방에 모여 있어서 홍참의 밥 먹는 것을 보다가 홍참의가 밥을 먹고 나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홍참의는 말이 드문 사람이나 밥상을 받으면 잔소리를 하는 위인이라.\n(홍)“이애 백돌아, 너는 요새 글 한 자 아니 읽고 왜 편편히 노느냐?”\n(백)“요새는 좀 보는 책이 있습니다.”\n(홍)“응, 보는 책이 무엇이란 말이냐. 쓸데없는 책 보지 말고 다만 한자를 보더라도 경서를 읽어라. 그래, 네 소위 본다는 책은 무엇이냐?”\n(백)“해국도지를 얻어다가 봅니다.”\n(홍)“해국도지, 해국도지, 해국도지가 무엇이냐, 책을 보려 하면 우리 집에도 볼 만한 책이 그득한데, 해국도지를 빌려다가 본단 말이냐. 이애, 너도 개화하고 싶으냐. 어, 저 자식이 서울 몇 번을 갔다오더니 사람 버리겠구.” 하면서 그 부인 김씨를 건너다보니 김씨부인이 홍참의를 마주보며,\n(김)“서울로 장가들었다가 그만한 처가덕도 못 보아서 쓰겠소.”\n(홍)“서울 가서 장가들었다고 난봉이 되려면 서울 사는 사람들은 다 난봉이 되게……. 이애 백돌아, 집안에 못된 책 얻어들이지 말고 오늘부터 맹자를 읽든지 논어를 읽든지 하여라. 사람이 제 마음만 단단하면 어디를 가기로 계관이 있겠느냐마는, 너같이 중무소주한 것이 서울이나 자주 가면 마음이 들떠서 못 쓰는 법이니, 다시 서울 가지 마라. 아비의 말을 아니 들으면 집이 망하는 법이라. 조심하여라.”\n(김)“에그, 영감은 별말씀을 다 하시구려. 집이 망하기는 왜 망해요. 개화한 아들 있겄다, 개화한 며느리 있것다, 집이 잘되지 망할 리가 있소. 나는 벌써 개화한 며느리 덕을 많이 보았소. 욕을 아니 먹을까, 악담을 아니 들었을까……여보, 개화한 며느리가 아니면 무슨 인기에 시어머니더러 욕하고 악담하겠소?”\n하면서 입은 동으로 내리 실그러지고 눈은 서로 모두 떠 홍참의를 보는데, 검은 동자가 반은 웃눈까풀 속으로 들어갔다.\n홍참의 잔소리가 좀더 나올 터이나, 김씨부인의 며느리 말을 내는 것을 듣고 민망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말 없이 사랑에 나가더라.\n아랫목에는 김씨부인이 남순이와 겸상밥이요, 그 옆에는 백돌의 밥상이요, 윗목에는 이씨부인이 밥상을 받고 앉았는데, 아무도 숟가락을 아니 들었으나 백돌이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범 본 놈이 창구멍 틀어막듯이 황황히 밥을 먹으니, 그렇게 급한 것은 어서 먹고 서울 길 떠나려는 마음이라. 그 마음 집작할 사람은 윗목에서 밥상 받고 앉은 이씨부인과 마루에서 왔다갔다 하는 금홍이라.\n백돌잉가 숟가락을 치우고 선뜻 일어나더니 이씨부인을 언뜻 건너다보며 밖으로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이 똑똑 떨어지며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키고 앉았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으로 건너가며 스르 죽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n“이애 금홍아, 내가 별안간에 가슴이 아파서 밥 먹을 수가 없다. 네가 들어가서 내 밥상 좀 치워라.”\n하면서 건넌방으로 들어가다가 안중문간으로 나가는 백돌이를 돌아다보는데, 그 소식을 귀신이 전하였든지 백돌의 마음이 켕겨서 그러하든지, 백돌이가 선뜻 돌아다보다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n이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는 이별이라. 그러한 이별이었으나 이별도 기를 펴고 할 수 없는 사정이라. 백돌이가 주저주저하다가 헛기침을 두 번을 하며 쑥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건넌방 지게문고리를 붙들고 정신 없이 중문간만 바라보고 섰는데, 그 남편은 보이지 아니하고, 안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잠깐 들리거늘, 이씨부인이 돌아다보니 안방 미닫이에 붙인 유리에 시어머니 이마가 꼭 붙어서 내다본다. 며느리가 제 남편에게 미쳤느니, 아들이 그 아내에게 허기를 졌느니 하며 신이 나서 흉보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귀에 펄펄 들어오나, 이씨부인이 그날은 그보다 더한 소리를 듣더라도 그까짓 소리로 근심이 될 것은 조금도 없고 정신이 그 남편에게만 있더라. 빈방에 혼자 있어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커니 앉았다가 혼잣말이라.\n“날개가 돋쳤으면 활활 날아 좇아가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백 리 가는 길에 동행 없이 가느라면 고생인들 오죽 될꼬. 원주에서 서울만 가려 하여도 그렇게 고생이 될 터인데, 만리타국을 가려 하면 그 고생이 어떠할꼬. 남편이 큰 뜻을 먹고 만리타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 하니 아내 된 이 내 마음에 좋기도 한량없건마는, 며느리를 원수같이 달달 볶는 계모 시어머니 솜씨에 내 목숨이 살아 있다가 남편의 얼굴을 다시 볼까.”\n이씨부인은 그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백돌이는 남자의 마음이라. 안중문간에서 그 부인을 돌아다볼 때까지는 발길이 차마 돌아서지 못하 였으나 문밖으로 나서면서부터 그 부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고 외국으로 가려는 경륜에만 골똘하더라.\n떠난 지 수일만에 서울로 올라가서 그 처가로 들어가는데 그 처가는 집도 큼직하고, 문간에 하인 낱이나 있는 터이라. 앞뒤 모양새만 보는 사람 같으면 그런 집에 들어갈 때에 길목이나 빼고 새 버선이나 가아 신고 들어갔을 터이나, 활바랗고 숫기좋은 백돌이는 황토 묻은 길 짚세기 신은 채로 서슴비 아니하고 대문간으로 들어가는데, 비록 짚세기는 신었으나 그 집에는 별상 행차나 들어노는 듯이 온 집안이 떠들더라.\n계집종들은 달음박질하여 안중문간으로 들어가며,\n“마님 마님, 원주 새서방님 오십니다.”\n하는 소리가 백돌의 귀에까지 들린다. 하인청에 있던 하인들은 백돌의 앞을 질러서 절을 꾸벅꾸벅하며,\n“소인 문안드립니다.” 하더니, 일변으로 큰사랑 마당으로 앞서 들어가며 원주서방님 오신다고 노문을 놓는다. 백돌이가 큰사랑 마루 끝에 짚신을 벗어 놓고 황토가 뚝뚝 떨어지는 발로 큰 사랑으로 들어가서 주인 이판서에 절을 하니 주인 이판서가 그 사위를 그렇게 대단히 귀애하던지, 그 사위가 앉기도 전에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부인 박씨와 느런히 앉아서 사위를 데리고 이판서 내외가 돌려가며 말을 묻는다.\n(이)“이애 홍철식아, 너의 아버지께서도 나같이 백발이 나셨느냐?”\n(홍)“…….”\n(박씨부인)“여보게, 자네도 딱한 사람일세. 자네가 오겠다고 편지만 하면 서울서 교군을 보냈지. 그 먼데를 걸어왔단 말인가. 그래 내 딸도 잘 있나. 자네가 하인도 아니 데리고 왔으니 내 딸이 편지도 못 부쳤겠네그려.\n이 사람, 자네가 편지 좀 가지고 오기로 어떠할 것 무엇 있나. 아무리 없으니 말일세마는, 요새는 내 딸이 자네 안부모에게 귀염을 좀 받나”\n하면서 눈물을 씻는다.\n이판서가 그 부인의 모양을 보더니 또한 그 딸의 고생사는 생각을 하고 마음이 좋지 못하여 남창 미닫이를 열고 안석을 문지방 앞으로 바싹 다가 놓더니 머리를 들어 남산을 내다보며 말없이 담배만 먹고 앉았으니, 홍철식이는 그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일변으로 무안한 생각도 있고, 일변으로 장인 장모가 불쌍한 생각도 있고, 일변으로는 자기 집 가간사가 남에게 부끄러울 만한 일이니 홍철식의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터이라. 더구나 그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심히 구는 일로 며느리의 친정 부모가 가슴이 쓰려 하는 모양을 보고 무엇이라 말하리요.\n그러나 그 어머니는 홍철식이도 원망이 철천하던 계모요, 그 아내는 홍철 식이가 정이 찰떡같이 들었던 아내라. 원주서 서울로 떠나올 때는 외국으로 유학하러 가려는 생각만 골똘한 중에 아내를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오히려 적더니, 그 처가에 와서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홀연히 없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n그 어머니가 기를 버럭버럭 쓰며 극성을 부리던 모양도 눈에 선하고, 남순이가 살살 돌아다니면서 말전주만 하던 일도 눈에 선하고, 그 아내가 밤낮 없이 수심이 첩첩하여 세상에 살아 있는 낙이 없이 지내는 모양도 눈에 선하다.\n부모가 자식에게 향한 마음도 간절하다, 부부간에 깊은 정은 영웅 열사가 없는 터이라. 이판서의 내외가 그 딸 생각하는 마음은 일시에 그 사위를 만나보고 생긴 마음이어니와, 홍철식이가 그 아내 생각하는 마음은 운우 무산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마음이라 깊이 솟아나는 정이 부모된 이판서 내외보다 남편된 홍철식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더라.\n집에서 이별할 때에는 무슨 마음으로 큰소리를 그렇게 하였던지. 아내를 단념할 듯이 말하였더니 이러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였던가 싶게 생각이 난다. 한 방에 세 사람이 입을 봉한 듯이 말없이 앉았다가 이판서의 부인이 그 사위 대접으로 먼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의 말문이 열리더니 말끝이 연이어서 이판서도 말을 하고, 홍철식이도 말을 하더니, 이판서 내외도 딸 생각을 잊고 홍철식이도 아내 생각을 잊었더라.\n홍철식이는 백돌의 관명이라. 백돌이라 나이 사오 세 되었을 때는 원주가 감영도로 있던 옛 세상인데, 그때 강원 감사는 이판서라. 감사가 단구역 마을 홍참의 집에 나갔다가 홍참의 아들 백돌이를 보고 어찌 그리 기이하게 보았던지, 당장에 주인 홍참의더러 하는 말이, 내가 조만한 딸이 있으니 저 아이와 혼인을 정하자 하거늘, 홍참의는 지체가 이판서보다 낮건마는 이판서의 감사 바람에 사돈되는 것을 좋게 여겨서 입이 떡 벌어져서 대답하고 정한 혼인이라 그 후 . 십 년 만에 혼인을 지냈는데, 그때는 갑오경장 이후라. 개화를 좋아하던 이판서는 풀기가 점점 더 생기고, 완고로 패를 차던 홍참의는 먼지가 더욱 폴삭폴삭 나는데, 두 사람끼리 뜻이 맞지 아니하나 십년 전부터 면약한 일이라, 선뜻 받듯이 마지못하여 지낸 혼인이라. 그러나 이판서가 그 사돈에게만 마음이 복잡하였고, 백돌이를 귀해하던 마음은 사위 되기 전보다 십 배나 백 배나 더하여 그 사위를 외국에 보내 공부시키려는 생각이 도저하던 터이라.\n뜻밖에 그 사위가 서울 온 것을 보고 아무쪼록 사위를 꾀어서 타국으로 유학시킬 마음이라. 이판서의 생각에는 그 사위를 여간 꾀어서는 아니 들으려니 하고 말을 냅뜨는데, 천리 행용에 묘 한 자리 생기듯이, 세상 이야기를 무수히 하다가 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권하는 말을 하니, 그러한 말은 홍철식의 귀에는 귀신에게 떡 소리 한 것 같은지라. 홍철식이가 대번에 응낙을 하며 그날 그 시라도 치행만 차려 주면 떠나겠다 하니, 말이 그날이지, 시골서 금방 온 사람을 그날이야 어찌 보내리요. 불과 수일에 홍철식이가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러 갔더라.\n그때 원주 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는 날마다 야단이 나는데, 그 야단은 김씨부인의 등살이 아니오 뜻밖에 홍참의 야단이라.\n아들이 도망하였다고 하인을 사면으로 늘어놓아서 찾으러 나섰으나 아들의 간 곳을 몰랐더니, 그 후에 그 아들이 서울 갔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전인하여 이판서에게 편지하되, 내 자식놈이 서울 갔다 하니 곧 내려보내라 하였거늘, 이판서가 그 사위를 권하여 외국에 보냈다는 말은 아니하나 또한 오래 숨기지는 못할 일이라. 홍철이가 제 마음으로 일본 간 것같이 말을 만들어서 편지 답장을 하였는데 홍참의가 그 편지를 보다가 편지를 짝짝 찢으며 야단을 친다.\n(홍) “왜 이가가 홍가의 집을 망하여 준다더냐. 백돌이가 돈 한 푼 없는 것이 제 장인이 돈을 대어주지 아니 하였으면 제가 어찌 간단 말이냐. 가령 철없는 아이들이 일본 가고 싶다 하였기로, 소위 사돈은 낫살 먹은 것이 철 없는 아이들 꾸짖을 일이지…… 가서 꾸짖지는 아니할지언정 돈을 주어서 가도록 하니, 아비 있는 자식을 사돈이 제 마음대로 못된 곳으로 보낸단 말이냐. 개화한 사람은 그따위 버릇을 한단 말이냐. 이애, 원주 구석에 사는 만만한 홍참의는 세력 좋은 사돈 솜씨에 자식 하나도 못 기른단 말이냐. 이 애 고두쇠야, 네 이 길로 다시 서울 가서 이판서 대감께 댁 서방님 찾아 보냅시사 하여라. 나는 편지하기도 싫다. 네가 가서 이판서 대감을 뵙고 지금 네가 듣고 본대로 한 마디 빼지 말고 말하여라.”\n하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당장에 서울로 전인하니, 아무리 사랑에서 야단이 났으나 그 야단은 온 집안이 소요한 야단이라. 김씨부인은 그 아들이 집안에 있지 아니하고 일본 간 것을 좋아하는 터이나, 홍참의가 그 사돈에게 틀려서 야단치는 것이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하여 홍참의가 안으로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앉았다가 홍참의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n(김씨부인) “영감, 영감께서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셨소?”\n(홍)“…….”\n(김)“영감께서 그런 일을 당해 싸외다. 자식 장가를 들이거든 무엇을 복고 배울 것 있는 집으로 보냈으면 그런 일이 날 리가 있소. 그러나 철없는 백돌이는 책망할 것도 없소. 사돈집에서 그런 법이 있단 말이요. 남의 외아들을 꾀어서 대강이를 깎아서 일본으로 들여보내는 그 심사가 무슨 심사란 말이요. 영감은 아무리 시골 사시고 이판서는 아무리 세력 좋은 재상이기로 명색이 사돈이면 그런 법이 있소. 나 같으면 내 집 종의 자식일지라도 제 어미 아비 모르게 대강이 깎아서 일본에는 못 보내겠소. 에그, 영감께서는 오늘 이때까지 요순같이 착하신 마음만 가지시고 개화 속 사람들의 살얼음판 같은 맹랑한 인심을 모르시고 지내시니 팔자가 좋으셨지요마는, 나 같이 팔자 사나운 년은 참 개화 속 사람들에게 설움이 많이 보았소.”\n(홍)“…….”\n(김)“영감도 참 딱하시오. 지금 영감께서 사돈에게 그런 업신여김을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그 세력 좋은 이판서의 따님을 며느리님으로 모시고 있느라고 속도 많이 썩었소. 내 가슴속에 헤치고 보면 두엄자리가 되었을 것이요.”\n하면서 홍참판의 턱 밑에 앉아서 사돈의 푸념을 하는 체 하고 며느리 푸념을 하더니 무슨 할 말이 또 있던지 남순이를 보며,\n(김)“이애 남순아, 너는 상놈의 집으로 시집을 가더라도 시어머니 업신여기지 마라. 이애, 내가 양반 며느리를 얻었다가 참 아니꼰 꼴 많이 보았다. 나는 춘천 김생원의 딸로서 팔자 좋아서 양반 좋은 홍참의 집 후취댁이 되어 들어왔더니, 팔자 좀 더 좋으려면 양반의 서슬이 퍼런 이판서의 딸을 며느리 삼았다가 복에 겨워서 며느리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혼자 속만 썩였다. 춘천 김생원의 딸이 서울 이판서 딸에게 설움을 아니 받으면 되겠느냐.”\n하며 물 퍼붓듯 하는 말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던지 거푸하는 말 한 마디 없이 새록새록 새 소리가 나오는데, 그 소리가 건넌방에 있는 며느리 귀에 낱낱이 들어간다.\n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불러 앞에 앉히고 눈물이 비 오듯 하며,\n(부인) “이애 금홍아, 세상에 이런 년의 팔자가 있단 말이냐. 내가 이 방구석에 숨도 크게 못 쉬고 들어앉았는데, 무슨 죄가 있어서 마님이 저렇게 나를 미워하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은 죽기가 원통하여 아니 죽은 것이 아니라, 서방님의 정을 잊지 못하여 차마 죽지 못하였다. 이애 금홍아, 이제는 내가 믿을 곳이 없구나. 서방님은 언제 오신다는 작정도 없이 만리타국을 가셨으니, 내가 살아 있다가 어느 세월에 서방님을 또 만나 뵈옵겠느냐. 하루바삐 죽어서 이 고생을 아니하면 내 신세가 좋을 것이다. 내가 이 댁에 시집왔다가 내 고생도 많이 하고 부모에게 욕도 많이 먹였다. 이에 금홍아, 너는 대강 아는 일이지, 서방님께서 일본 가시기는 무슨 까닭이라더냐. 서방님 말씀에는 나라를 위하여 공부할 생각으로 가노라 하셨으나, 서방님이 계모어머니에게 설움을 조금만 덜 받으실 지경이면 당초에 집떠날 생각이 날 리가 만무하였을 터이다. 이 댁 마님께서는 그 전실 소생 아드님 한 분 있는 것을 원수같이 여겨서 아드님의 그림자만 보아도 미워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미워하니, 그 아드님된 서방님은 어디로 도망이나 하여 집에 있지 아니할 마음이 있은 지가 오랜 모양이다. 이 댁 마님은 아들을 구박하여 집에서 성을 거느려 있지 못하도록 하여 놓고, 우리 아버지께서 사위를 꾀어 일본 간 것같이 말을 하며 그 미안풀이는 모두 내게만 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있단 말이냐. 우리 댁 대감께서는 나 같은 불효의 딸 하나 두셨다가 사돈 마누라에게 욕만 잡수시구나. 이애 금홍아, 내가 계모 시어머니께는 다섯 해를 볶여 지냈으나 시아버니께서는 나를 귀애하시는지 미워하시는지 모르고 지냈더니, 오늘은 시아버니께 미움을 받나보다. 이 댁 영감마님께사 사돈에게 그렇게 틀려 화를 내시니, 그 미안이 어디로 가겠느냐, 죽을 년은 나뿐이다. 이애 금홍아, 나는 오늘밤 내로 죽어서 세상을 모를 터이니, 너는 이 댁에서 고생하고 있지 말고 어디든지 달아나서 팔자 좋게 잘 살아라.”\n금홍이가 부인의 말을 다 못 듣고 눈물이 비 오듯 떨어지며,\n(금) “아씨, 아씨께서 참 돌아가실 마음이오니까. 맙시오, 그런 마음 두시지 맙시오. 전정이 만리 같은 아씨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씀이 웬 말씀이오니까. 만일 아씨가 돌아가시면 아씨께서는 근심 없이 저승으로 가시려니와, 친정댁 마님께서는 무남독녀를 금옥같이 길러내셨던 그 따님이 자결하여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시면 그 마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가슴을 캉캉 두드리고 진지 몇 끼만 아니 잡수시면 마님께서도 돌아가시기가 쉬운 일이 올시다. 가령 돌아가시지는 아니하더라도 일평생 한이 되어 자나깨나 가슴이 아플 지경이면 돌아가시는 아씨 신세만 못하실 터이올시다. 맙시오 맙시오, 돌아가실 생각을 하시지 맙시오. 부모의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부모의 한될 일을 장만하여 드릴 수야 있습니까. 대감께서는 남정의 마음이 시니 일시에는 비창하시더라도 대범하신 마음이라, 오래되면 잊으실 터이오나 마님께서는 세월이 갈수록 그 따님 생각만 하실 것이니, 아씨께서 그런 어미를 잊으시고 어찌 돌아가십니까. 근심을 하셔도 아씨께서 하실 일이요, 고생을 하셔도 아씨께서 하시는 일이 옳소이다. 아씨 아씨, 아씨께서 참 돌아가실 터이오니까. 참 돌아가실 터이면 쇤네도 따라 죽겠습니다.”\n하면서 폭 엎드러지더니 기가 막혀 우는데, 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삼키고 흘흘 느끼는 소리만 난다.\n(부)“이애 금홍아, 울지 말고 일어나가라. 네가 저러하면 내가 마음을 더욱 진정할 수가 없다. 오냐, 염려 마라, 네 말을 들으마, 내가 꼭 죽기로 결심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생각하니 죽기도 어려운 처지로구나. 이애 금홍아, 일어나거라. 네나 내나 타고난 고생이니 억지로 면하려면 되겠느냐. 내가 오늘부터는 이 설움보다 더한 설움이 있더라도 참고 있어보마. 살아 있으면 우리 어머니를 만나 뵈올 날도 있을 것이요, 서방님도 만나 뵈올 날도 있을 터이니, 고생을 주리 참듯 참아보자. 내가 우리 어머니를 뵈옵든지 서방님을 뵈옵든지, 네가 나로 인연하여 못할 고생 없이 하였다는 말을 하고, 네 몸 하나는 어떻게 하여 주든지 내 마음껏 하여 주겠다.”\n하면서 부인이 자기의 마음만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금홍이까지 위로하고 달래더라.\n부인과 금홍이가 아무 고생이라도 참고 세월을 보내자는 작정이라. 부인이 근심하면 금홍이가 위로하고, 금홍이가 근심하면 부인이 위로하려 서로 마음을 붙이는데, 세월이 갈수록 고생은 점점 더하더라.\n본래 홍참의는 그 며느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후취부인이 방정을 떨 때마다 홍참의 마음에 김씨부인이 너무 심한 줄로 알고 있으나, 만일 홍참의가 며느리 역성하는 모양을 보이든지 며느리를 귀애하는 모양을 보일 지경이면 김씨부인이 세상에 다시없는 방정을 떨며 그날부터는 집안이 더욱 난가가 될 모양이라. 그런 고로 김씨부인이 무슨 방정을 떨든지 홍참의가 들은 체도 아니하던 터이라. 홍참의가 그 후취부인의 잘못하는 것을 그렇게 아나, 내외 금슬은 유명히 좋은 터이라.\n후취부인에게 그렇게 정이 있으면 전취 소생 아들은 잊을 듯하나 그렇지도 아니한지라. 그 아들은 양대 독자인 홍참의가 끔찍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던 터이라. 백돌이 어디를 가든지 날이 저물도록 들어오지 아니하면 문에 의지하여 기다리던 터이라.\n그랬던 터에 그 아들이 어디 간다는 말이 없이 일본으로 도망하여 갔다는데 그 장인이 돈을 주어 보낸 것을 홍참의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지 못하 였으나 본래 이판서는 , 개화를 좋아하던 사람이요, 젊은 사람을 보면 공부하라 권하기 잘하던 사람이라. 이판서가 아무리 그 사위가 일본 간 것을 모른다 하기로, 홍참의가 어찌 곧이들을 리가 있으리요. 홍참의 마음에는 그 사돈이 백돌에게 편지하여 서울로 불러다가 일본으로 보낸 줄로만 알고 사돈을 원수같이 알고 있는데, 그날부터는 그 며느리까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눈치 빠른 김씨부인이 그 눈치를 알고 밤낮 속살거리며 며느리의 흉만 본다.\n홍참의 마음에는 고두쇠가 서울 가서 자기가 야단치던 모양을 다 말하면 이판서가 백돌에게 편지하여 돌아오도록 주선하려니 여기고 있는 터이라.\n며칠만 되면 고두쇠가 서울 들어가고, 며칠만 되면 이판서의 편기가 일본 동경 가고, 며칠만 되면 백돌이가 도로 서울로 오고, 또 며칠만 되면 백돌이가 원주로 내려오려니 여기고 있더라.\n고두쇠가 원주서 떠난 지 이틀만에 서울로 들어가서 이판서 집으로 들어 가는데, 하인청에 늘어앉았던 하인들이 고두쇠 오는 것을 보고 무더기 인사가 간다.\n(하인들)“장서방, 오시오.”\n(하)“장서방, 평안하시오.”\n(하)“장서방, 요새는 서울 자주 다니구려.”\n(하)“장서방, 왜 또 올라오시오.”\n그렇듯 여러 사람의 인사하는 소리가 여간 놈은 정신차릴 수가 없이 들어 오는데, 고두쇠는 미처 인사 대답할 새도 없이 호들갑을 부리면서 홍참의 댁에 야단한 이야기를 하면서 큰사랑 마당으로 들어가니, 이판서 부인은 어찌 몹시 놀랐던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몸이 벌벌 떨려서 이판서 들어오기만 기다리다가 갑갑증이 나서 신랑으로 계집종을 내보내는데, 이판서는 무슨 편지를 쓰는지, 고두쇠가 문안을 하려고 사랑뜰 아래 우두커니 섰으나 불러보지 아니하고 한참 동안을 세워두더니, 편지를 다 썼던지 고두쇠를 불러보니, 고두쇠가 홍참의 야단치던 몇 갑절을 보태서 말을 하였는데, 이판서는 그 말이 귀에 들어가는지 아니 들어가는지, 한편으로 고두쇠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방에 있는 사람을 대하여 무슨 말을 한다.\n(이) “이 사람, 자네 아우가 몇 살 되었나?”\n“…….”\n(이)“어서 외국이나 보내서 공부나 시키게.”\n“…….”\n(이)“자네 어르신네가 아니 보내시거든 몰래 도망이라도 시키지. 완고의 늙은이는 다 어서 죽어야 나라가 되지, 쓸데없이 오래 살아서 젊은 사람에게까지 해가 적지 아니하여……. 어, 내가 실체하였네. 자네 어르신네 말을 하다가 그런 소리를 하여서 되었나……꼭 자네 어르신네를 두고 한 말이 아닐세. 나부터 완고이니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하루바삐 죽고 없어야 나라가 아니 망하느니…….”\n그런 말을 하다가 새로이 미닫이 밖을 내다보며,\n(이) “이애 고두쇠야, 네가 무슨 일로 서울을 또 와.”\n(고)“…….”\n(이)“그래, 너의 댁 영감께서 무엇이라 하셔. 허허, 너의 댁 영감은 딱히 말씀도 많이 하신다. 너의 댁 새서방님이 일본으로 가시든지 조선으로 오시든지 내가 알 까닭이 있느냐. 나더러 너의 댁 서방님을 찾아보내라 하시더라 하니 너의 댁 영감이 못 찾으시는 것을 내가 어찌 찾는단 말이냐.\n그래, 너의 댁 서방님이 참 일본 가셨다느냐. 어, 그것 맹랑하구. 젊은 아이들의 싹이 저러해야 쓰겄다.”\n하면서 미닫이를 툭 닫더니 다시는 내다보지도 아니한다. 가령 홍참의가 서울 와서 해거를 하더라도 이판서가 눈도 깜짝거리지 아니할 사람이라. 고두쇠가 전갈 하인 되어 쓸데없이 호들갑을 피우다가 뒤통수를 툭툭 치고 원주로 내려가며 생각한즉, 홍참의 성품에 그 사돈에게 열이 나서 만만한 이놈 더러 심부름을 잘하였느니 못하였느니 하면서 분풀이는 내게다 하느라고 볼기를 죽도록 맞을 지경이면, 원주서 서울까지 안팎 네 번을 다녀와서 노독도 아니 풀린 놈이 장독이나 나서 죽을까 겁이 나서 중로에서 도망이나 할까 생각한즉 젊은 계집을 내버리고 도망하면 어느 놈의 좋은 일을 할지 모르니 그도 분한 일이라.\n단구역마을을 거진 다 와서 차마 못 들어오고 길가에 앉아서 무수히 생각하다가 싱긋 웃더니 무릎을 탁 치고 일어나며 혼잣말로,\n“오냐, 걱정 없다. 내가 이번에 우리 댁 영감께 썩 잘 보일 도리가 있다.” 하면서 단구역마을로 들어가는데, 만판 흉계 뿐이라.\n석양의 빛은 치악산에 걸려 있고, 저녁 연기는 단구역마을에서 일어나는데, 고두쇠가 해 지고 어둡기를 기다리느라고 동구 밖 막걸리 집에 들어앉아서 돈은 감추어 두고 노자돈 떨어졌다 핑계하고 외자 술만 먹다가 날이 어둡는 것을 보고 슬며시 나가더니, 홍참의 집 행랑으로 들어간다.\n어두컴컴한 행랑방 밖에서 목소리도 크게 못하고 가만히 하는 말이,\n(고두쇠)“이 방에 아무도 없나?”\n하는 목소리가 어찌 그리 은근하던지 방안에서 불도 아니 켜고 있던 고두쇠의 계집이 반색을 하며 대답하는 말이,\n“거 누구요. 최서방이요?”하는 소리가 너무 은근하니, 고두쇠가 의심이 버썩 나서 아무 소리 없이 행랑 부엌 속의 컴컴한 곳으로 쓱 비켜서며 목소리는 아니 내고 빈 담뱃대를 부뚜막 이맛돌 위에 툭툭 떠니, 고두쇠 계집이 행랑 방문을 열며 가만히 하는 말이,\n“거 누구요. 거 누구요, 최서방이지. 왜 아니 들어오고 숨바꼭질을 하여. 들어오기 싫거든 그만두지. 나는 문 닫아걸 터이야.”\n하더니 문을 닫치려는 시늉을 하며 문은 닫치지 아니하니, 고두쇠가 열이 버썩 나서 문 앞으로 썩 나서며,\n(고) “이년, 무엇이야. 최서방이 어떠한 놈이냐. 이년, 바로 대어라. 어름어름하다가는 당장에 뒈질라.”\n그렇게 대드는 서슬이 당장에 사람을 쳐죽일 것 같은데, 고두쇠의 계집은 어찌 그리 안차던지 놀라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n(계집)“여보 요란스럽소. 목소리 좀 나적나적하시오.”\n(고)“이년, 네 정신은 벌써 염라궁에서 빼앗아갔나 보구나, 요란스러운 것이 다 무엇이냐. 나를 종시 최가놈으로 알고 하는 말이냐. 나는 장고두쇠다. 이년, 두말 말고 최가가 어떠한 놈인지 그것만 말하여라. 서슴다가는 한 주먹에 맞아 뒈질라.”\n(계집)“여보 답답한 소리말고 이리 좀 들어와서 조용히 말하시오. 내가 무슨 죄가 있는지 한 주먹에 쳐 죽이느니 두 주먹에 쳐 죽이느니 하니, 죽이려거든 조용조용히 쳐 죽이고 얼른 도망만 잘하구려. 사람을 쳐 죽이지 아니하더라도 우리 댁 영감께서는 날마다 벼르시는 말이, 이놈 고두쇠란 놈이 서방님을 못 데리고 오거든 이 넘을 쳐 죽인다 하시니, 이녁은 죽기는 일반이니 만만한 계집이나 쳐 죽이고 죽구려.”고두쇠가 그 소리를 듣더니 실쭉한 마음이 나서 계집에게 났던 분은 좀 잊었던지,\n(고)“왜 영감께서 나를 쳐죽인다 하실 까닭이 있나? 서방님이 오시고 아니 오시기는 이판서 대감이 하실 탓이지, 내가 어떻게…….”\n(계집)“영감께서는 이번에 정녕 서방님이 오실 줄로 알고 계신데, 서방님 오실 때까지 이녁이 서울 있다가 모시고 오지 아니하고 이녁만 혼자 오슬렁 어슬렁 들어오면 영감 성품에 오죽 대단하시겠소. 모르겠소, 이녁 마음대로 하구려. 그러나 나를 무슨 까닭으로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였소? 마음대로”\n하더니 문을 툭 닫치니, 고두쇠가 본래 겁이 잔뜩 나서 들어온 놈이라. 다시 목소리를 크게 못하고 가만히 서서 들어온 놈이라. 다시 목소리를 크게 못하고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한다.\n‘조년이 나 없는 사이에 정녕 사잇서방을 얻은 것이로구. 최가, 최가가 어떠한 놈이고, 이 동네 최가라고 그런 듯한 놈이 없는데……. 조년을 좀 잘 달달하여야지 어름어름하면 조 여우년이 생시치미를 떼이렷다. 그러나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일이라, 섣불리 왁자지껄하다가는 계집을 초사도 못 받고 떠드는 소리가 영감 귀에 들리면 영감께서 필경 나를 잡아오라 하실 터인데, 조년이 만일 최가와 정이 들어서 나를 떼버릴 생각이 있을 지경이면 요때를 타서 아낙마님께 무슨 알소를 하여 나를 내쫓도록 말할 지경이면 나는 조년에게 분풀이도 못하고 내쫓길 터이라. 내가 어떻든지 천연한 기색으로 참고 있으리라.’ 그러게 생각을 정하고, 허허 웃으면서 계집을 달래는데, 맹세지거리 욕지 거리로만 말을 한다.\n“이년, 이 망한 년, 서방이 어디 갔다 왔으면 반가운 마음도 없느냐. 문은 왜 닫느냐?”\n(계집)“내가 닫고 싶어 닫쳤나. 어디 갔다 왔거든 천연히 들어올 일이지 왜 부엌 구석에 숨어 섰다가 남더러 죽일 년이니 살릴 년이니 하며 생트집은 왜 하여.”\n(고)“요란스럽다. 나는 간신히 해지기를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그리 떠들어.”\n(계집) “왜 대낮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어둔 때를 기다려 들어오기는……. 누가 사잇서방이나 끼고 있는 줄 아오.”\n(고)“허허허, 고년 포달은 웬 포달이 그리 대단하여. 네가 서방을 끼고 누웠으면 그 꼬락서니를 그리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 꼴을 보러 온단 말이냐? 네가 그까짓 짓을 하면 너 하나 내버리고 어디로 가기로 계집 없겠느냐.” 하면서 문을 버썩 열며 들어오더니 새로이 은근히 묻는 말이,\n(고) “내가 서울 간 뒤에는 이 댁에서 무슨 야단이나 아니 났나?”\n서방이 딱딱 으르며 말할 때는 계집이 말대답을 잘 하더니, 서방이 농치는 것을 보더니 계집이 새로이 성이 나서 대답도 아니하고 싹 돌아앉는다.\n(고)“이애, 요새는 네 뒷모양 어여쁘구나. 대강이에 웬 기름을 그렇게 쳐발랐느냐.”\n(계집) “내 대강이에 기름을 바르든지 말든지 걱정이 무엇이야.”\n(고)“너무 어여뻐 걱정이란다.”\n(계집)“어여쁘면 누가 집어삼키는 줄 아나베.”\n(고)“에그, 같지 아니한 것 다 보겠구. 너까짓 년을 어떠한 눈깔 먼 놈이 집어삼키려 하겠느냐. 나 같은 놈은 홍참의 댁 종노릇하기가 좋아서 너를 계집이라고 데리고 있지, 허허 허.”\n(계집)“응, 인제 알겠소. 이댁 하인 되고 싶어서 나하고 살지, 나와 정이 있어서 사는 것은 아니로구려. 그런 계집은 진작 버리는 것이 제일이지 왜 데리고 사오.”\n(고)“이애, 잔소리말고 이리 좀 돌아앉아라. 조용히 물어볼 일 있다.”\n(계집)“물어보기는 무엇을 물어보아. 최가가 어떠한 놈이냐 물어보려고……. 주리를 틀며 초사를 받아보오, 누가 말하나…….”\n(고)“빌어먹을 년 다 보겠구. 누가 너더러 최가 말을 묻느냐. 최가를 붙어 먹든지 박가를 붙어먹든지 강샘할 망할 놈 없다. 나는 오늘까지만 홍참의 댁 종노릇하고 내일부터는 이 집에 아니 있고 어디로 달아나겠다.”\n계집이 그 소리를 듣더니 싹 돌아앉으며 고두쇠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방 속이 컴컴하여 고두쇠의 얼굴이 보이지 아니하거늘, 방바닥을 더듬더듬 더듬더니 성냥을 찾아 불을 켜고 고두쇠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다가 생긋 웃으며,\n(계집)“여보, 바로 말하오. 참 어디로 갈 터이요. 왜 남의 얼굴만 보오.\n어서 대답 좀 하오. 참 무슨 의심나는 일 있소. 말 좀 시원히 하오. 나도 할 말이 있어.”\n(고)“오냐, 너는 아무 걱정말고 다른 서방 얻어서 잘 살아라. 내가 어디로 가려 하는 것은 너를 싫어서 간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하인 노릇하기가 싫어서 가려는 것이다. 심부름을 죽도록 하고 무엇이 겁이 나서 대낮에 들어오지 못하고 어둡기를 기다려 들어와 생각하니, 이런 놈의 신세가 있단 말이냐. 어디 가서 빌어먹더라도 내 마음대로 살다간 죽겠다.”\n(계집)“내 말만 들으면 남의 종노릇도 아니하고 잘 살 도리가 있지. 어서 발감개나 끄르고 부엌에 나가서 발이나 씻고 들어오…….”\n하면서 방글방글 웃는 서슬에 고두쇠가 나중 일은 어찌 되든지 계집 웃는 눈으로 정신이 쑥 들어가며 갓, 망건을 턱턱 벗어 걸고 부엌으로 나가더니 웃통 활짝 벗어놓고, 아랫통 활활 씻고 걷고 활활 씻고 들어오더니,\n(고) “오냐, 내일 경을 치더라도 오늘 좀 편히 쉬자.”\n(계집)“왜 경은…….”\n(고)“죄가 있고 경을 치면 누가 원통하다 하겠나. 그러나 그 동안에 영감께서 마음이 좀 풀리셨나? 내가 서울 떠나던 날 같으면 이 댁 하인도 배길 수가 없으려니와, 제일 건넌방아씨가 어디 살 수 있겠던가.”\n(계집)“쓸데없는 남의 걱정은 왜 하고 있어. 내 걱정이나 할 일이지.”\n(고)“내가 걱정을 하기로 무슨 별수가 있나?”\n(계집)“별수가 있으면 하겠소.”\n(고)“하다 뿐인가.”\n그때 마침 밖에서 헛기침소리가 두어 번 나는데, 고두쇠 계집이 방문을 열어 내다보며,\n(계집)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 아무도 없소, 이리 들어오시오.”\n하며 은근히 불러들이는 모양인데, 그 말이 뚝 떨어지며 어떠한 젊은 남자가 서슴지 아니하고 들어오는데, 나이 이십사오 세쯤 되고, 얼굴이 볕에 익어서 검붉은 빛을 띄었으나 남자의 얼굴로는 어여쁜 얼굴이라. 도래 좁은 통영갓에 갓끈이 어찌 좁던지, 서울 시체에도 너무 지나도록 맵시만 취한 모양이라. 철 찾아 입은 옷이 썩 조하게 입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남의 행랑방으로 돌아다니며 놀 사람은 아니라. 고두쇠가 웬 셈인지 알지 못하여 최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는데, 고두쇠의 계집이 최가 더러 앉으라 하더니 먼저 말을 냅뜬다.\n(계집)“여보 최서방, 마침 잘 오셨소. 우리 영감이 오늘 서울서 내려왔소. 두 분이 조용히 의논을 잘 하시오.”\n하더니 고두쇠 옆으로 바싹 대들며 옆구리를 꼭 찌르고 귀에 말 두어 마디를 소곤소곤하니, 고두쇠가 입이 떡 벌어지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최가를 상전같이 대접하며 수작이 어우러지더라.\n최가의 자는 치운이니, 송도 부자의 자식인데, 저의 부형의 돈냥이나 족히 없애는 사람이라.\n두어 달 전 에 치악산 삼포에 인삼을 사러 내려왔다가 수 삭이나 무고히 단 구역마을에서 두류하는 자이라.\n최치운의 마음이 어찌하여 그렇게 들었던지, 경가파산을 하더라도 소원을 풀 작정이라. 오늘 소원을 풀 지경이면 내일 죽더라도 한이 없을 줄로 생각한다.\n그 소원을 풀고자 하여 홍참의 집 종 옥단이를 꾀되, 내 소원을 풀게 하면 돈을 몇 천 냥이든지 주어서 그 돈으로 속량하고 먹고 살 뒤까지 대어주마 하였는데, 그 원을 풀게 될지는 못 될는지 옥단이가 밤낮 애만 쓰고 있는 터이라.\n본래 홍참의 집 건넌방 뒤에 오동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담이 있는데, 지나간 달 팔월 보름날 밤에 홍참의 며느리가 마루에 앉아 달구경할 때에 오동나무 밑 담 위에서 기왓장 떨어지던 것은 최치운이나 불측한 마음을 먹고 홍참의 며느리 앉은 것을 넘겨다보다가 기왓장을 떨어뜨린 것이라.\n최치운이가 이씨부인이 일색인 줄을 당초에 어찌 들었던지, 그날 저녁에 죽고 살기를 불계하고 양반의 집안 뒷담을 넘겨다보던 터이라. 최치운이가 눈요기를 잘할 수가 뻗쳤던지, 그날 밤에 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데리고 다루경을 하며 시집살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낱낱이 듣고 있다가, 남순의 뒤에 따라 나오던 삽살개 짖는 소리를 듣고 최치운이가 혼이 나서 달아났더라.\n그 후로부터 자나깨나 눈에 삼삼한 것은 달 아래 은은한 오동 그림자 옆에 그림같이 앉아서 뼈가 녹는 듯이 설운 회포를 이야기하던 모양이 잊히지 아니한다.\n생각이 골똘하면 궁흉극악한 계교가 생기는 것인지 최치운이가 아니 날 생각이 없었더라.\n두밤중 가운데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담을 넘어가서 홍참의 집안 건넌방 문을\n썩 도리고 들어가서, 내 말을 들으면 다행이요 아니 듣거든 칼로 푹\n찔러 죽이리라 하던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고이한 놈의 마음이다, 사부가 부녀를 탐내서 이러한 마음을 먹으면 일도 마음대로 될 리도 없거니와, 내가 내 명에 죽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고 오동나무 달그림자 밑에서 보이던 그 모양을 잊어버리자 하던 생각도 있었으나, 그 생각 마자 하던 그날 밤에 꿈을 꾸다가 홍참의 며느리를 만나서 사람을 살려 주오 죽여주오 하며 애를 무수히 쓰던 꿈을 깨서, 단념하려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연연히 헛생각만 난다. 항우가 장사이니 장비가 힘이 세니 하여도 이 세상에는 돈이 장 사이라. 최치운이가 돈을 물쓰듯하는 서슬에 옥단이는 최가가 죽어라 하면 죽고 살아라 하면 살게 되었더라.\n운수 불행한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괴상한 일만 생기는지, 이씨부인의 남편되는 홍철식이가 일본으로 갔다 하는 소문이 나면서 최치운이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옥단의 허리춤에 돈을 퍽퍽 집어넣는데, 옥단이가 저의 서방더러 감히 그 말을 못하였다가 그날은 고두쇠에게 수상한 눈치를 보이고, 잘못하다가는 제가 최가와 상관이나 있는 줄로 의심을 둘 듯하여 고두쇠에게까지 말하였는데, 고두쇠는 그때 신세가 막다른 곳을 당한 자이라, 최가 만나 것을 제 복으로 알고 대들더니, 세 손뼉이 맞으며 하룻밤 내로 별 계교가 생기더라. 사람이 욕심이 불같으면 담이 동이 덩어리같이 커지는 법이라 최치운의 욕심은 본래 , 사생을 돌아다보지 아니하게 된 것이라, 고두쇠와 다시 두 말 할 것 없고, 옥단이는 최치운의 일만 잘되고 보면 돈도 많이 얻어먹으려니와, 제일 속상하여 잘 살 도리가 있다 하는 그 소리에 비위가 어찌 동하였던지, 불인지 물인지 모르고 날뛸 판이라.\n그날 밤에 최치운이와 고두쇠의 내외가 죽고 살기를 같이 할 줄로 상약하고 먼동 틀 때에 헤졌더라.\n그 이튿날 식전에 옥단이가 홍참의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김씨부인을 보고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아니하고 홀짝홀짝 울거늘 김씨부인이 핀잔을 준다.\n(김)“요 방정맞은 년, 식전참에 계집년이 왜 쪽쪽 우느냐?”\n(옥) “쇤네는 마님을 모시고 온 터이오니 죽어도 마님을 위하여 죽고, 살아도 마님을 위하여 살고, 울어도 마님을 위하여 우는 터이오니, 마님이 쇤네 마음을 알아주시지 못하면 쇤네는 죽어도 한을 못 풀고 죽겠습니다.”\n하면서 김씨부인 앞으로 머리를 두르고 눈물을 씻으며 다시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킨다. 본래 옥단이가 치마끈 끝에 고추가루 물을 들였다가 김씨부인 앞에 와서 그 치마끈으로 눈을 홈착홈착 씻으니, 눈에서 불이 나는 듯하며 눈물이 나는지라. 김씨부인이 처음에는 옥단이를 꾸짖다가 옥단의 말을 듣고 이상히 여겨서,\n(부인) “이애 옥단아, 네가 무슨 일이 있어서 식전참에 들어와서 우느냐?”\n(옥단)“쇤네가 이런 말씀을 아니하면 쇤네의 도리가 아니오, 이 말씀을 하고 보면 쇤네의 목숨은 어찌될지 모르는 터이올시다. 마님께서 쇤네를 보아 주실 터이면 쇤네는 아는 대로 말씀하겠습니다.”\n(부인)“이애, 무슨 말이냐. 염려말고 내게만 말하여라. 무슨 말을 듣든지 들은 체도 말고 있으마. 이애 옥단아, 집안에 무슨 일 있니?”\n옥단이가 문밖으로 나가더니 코를 푸는 시늉을 하다가 부엌으로 살짝 내려 가서 찬물에 눈을 씻으며 들어오는 눈이 통통히 부었더라. 부인이 의심이 버쩍 나서 안달을 하며 다그쳐 묻는다.\n(부)“옥단아 옥단아,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 내 귀에만 말하여라.\n내가 네게 들은 체만 말마, 영감께서 요사이 읍내로 자주자주 놀려 가시더니 아마 첩을 두셨나 보구나.”\n(옥)“아니올시다. 영감께서 첩을 두셨기로 그런 일이야 변될 것 무엇 있습니까.”\n(부)“요 방정맞은 년, 보기 싫다. 식전참에 왜 들어와서 그런 소리만 하느냐 그래 네 마음에는 . , 영감께서 첩 두시는 것이 그리도 기쁘냐. 요년, 꼴 보기 싫다, 저리 나가거라. 네 요년, 무엇이든지 나를 속여만 보아라.”\n하면서 입에서 찬 기운이 나고 눈에서 독기가 똑똑 떨어지도록 옥단이를 흘겨보는데, 여간 사람은 소름이 끼쳐서 그 앞에 앉았기가 어려울 듯하나, 옥단이는 겁내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n(옥) “마님, 마님께서 쇤네 말씀을 못 알아들으시나 보이다. 영감께서 첩을 두시느니 보다 더한 일이 있으니 쇤네가 말씀을 그렇게 아니하겠습니까.\n마님 마님, 쇤네가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다가 죽더라도 마님을 위하여 죽는 터이니 한될 것 없습니다.”\n하면서 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거늘, 김씨부인이 아무리 보아도 옥단이 가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은지라. 상전의 요약과 종년의 요약이 같이 모여 마주 요악을 부리는데, 상전은 종의 속을 쏙 뽑으려고 안달하고 종은 상전의 비위를 꼭 맞추려고 애를 쓴다.\n(부)“오냐, 염려말고 말만 하여라. 내가 네게 들은 체만 아니하면 그만이지, 걱정이 무엇이냐.”\n(옥)“마님, 이런 변이 있습니까. 쇤네같이 천한 년도 이때까지 그따위 행실은 없었더니, 양반의 댁에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꿈이나 꾸었겠습니까.”\n(부)“에그, 요년아 갑갑하다. 정작 긴한 말을 아니하고 왜 쓸데없는 설파만 하느냐.”\n(옥)“여간 일 같으면 말씀이 쉬웁게 나오겠습니다마는 그런 일은 참 겁나서 말이 아니 나옵니다. 그러나 마님께야 무슨 말씀을 못 여쭙겠습니까.\n마님 마님, 요사이 건넌방 아씨 일을 아십니까?”\n(부)“응, 무슨 일……어서 말 좀 하여라.” 옥단이 가 남순이를 말끄름 보며,\n(옥) “작은아씨, 철없이 이런 말을 옮기지 마오. 참 큰일나리라.”\n하더니 김씨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부인의 귀에 무슨 말을 소곤소곤 하는데, 김씨부인이 무엇이 그리 분한지 눈에 독살이 잔뜩 들고 숨소리가 색색 나면서 다그쳐 묻더니, 이를 악물고 며느리를 벼른다.\n(부)“저런 망한 년 보았나. 저도 양반의 자식이지. 남의 집에 들어와서 그 따위 짓을 하고 남의 집을 망하여 주어. 그까짓 년이 재상의 딸이야. 제 남편이 일본 간 지 며칠 못 되었는데 벌써 서방 생각이 나서 못 견디던가 보구나. 오냐, 내가 그년을 약사발 안겨 죽이더라도 그년이 내 집을 망하여 놓던 분풀이는 하고 말겠다.”\n(옥) “마님께서 말씀이 그러하시지, 약사발이야 어찌 안깁니까.”\n(부) “너 같은 상년은 그러한 일을 대단치 아니하게 여기나보다마는, 소위 양반의 집에 그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며느리라고 그따위 년이 내 집에 들어와서 남의 가문을 더럽혀 놓으니 그것을 하루바삐 없애 버려야지, 살려두었다가 이 집안에 무슨 변을 또 저지를는지 알 수 있느냐. 이애, 두말 말고 사랑에 나가서 영감 여쭈어라. 며느리인지 무엇인지 그 망한 년을 당장에 불러 앉히고 비상이나 먹여 죽이겠다.”\n본래 옥단의 생각에 이씨부인을 죽으려는 계교가 아니라, 김씨부인을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부인을 들랜다.\n(옥)“마님, 그리하지 말고 쇤네 말씀을 들읍시오. 이런 말씀은 마님을 위하여 여쭙는 말씀이올시다. 이런 말이 온 세상에 벌어지면 홍참의 댁 망신이올시다. 아무리 분하시더라도 참고 계시면 좋을 도리가 있습니다.”\n(부)“네 말이 옳기는 옳다마는 참을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을 어찌 참고 덮어 두느냐. 내가 본래 며느리와 뜻이 아니 맞아서 그것의 꼴을 보면 기가 버럭버럭 나던 터이다. 부르트는 김에 그것을 어떻게 처치하여 버리겠다.”\n(옥)“마님께서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아씨가 죄는 죽어 싼 죄가 있으나, 이 댁에서 약을 먹여 죽이면 청춘의 몹쓸 귀신이 마님게 원수를 맺을 터이니 죽여서는 못 습니다.”\n김씨부인이 옥단의 말을 듣다가 소름이 살짝 끼친다.\n무엇이 겁이 나서 소름이 끼쳤는가. 부인의 마음에 이번에 핑계 좋게 며느리를 불러 앉히고 종들까지 불러 세우고 며느리의 행실 고약한 토죄를 하여 며느리 망신도 시키고 그 끝에 약사발을 안기자는 작정이 다 틀렸더라. 며느리를 어떻게 없애버리자는 마음이 골똘한 중에, 옥단의 말이 며느리가 원귀를 맺는다 하는 소리에 겁이 어찌 몹시 났던지, 등뒤에 며느리 귀신이 따라 선 것같이 싫은 생각이 난다.\n며느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아무리 골똘하나, 제 몸에 원수를 갚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생기더니 악독한 마음이 자라 목 움츠러지듯 오무라져 들어간다.\n(부)“이애 옥단아, 내가 너더러 말이지, 건넌방 아씨인지 무엇인지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여 살 수가 없겠다. 지금 그것이 그따위 짓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니 이제는 그 원수의 년을 아니 볼 도리가 있겠다 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니 난처한 일도 많구나. 내가 만일 며느리의 토죄를 하고 약을 먹여 죽일 지경이면 고 못된 년이 제가 죽을 짓 한 생각은 아니하고 내게다 원수를 맺어서 밤낮 없이 따라다닐 지경이면 내게 그런 두통이 있느냐. 이애 옥단아, 이것을 어떡하면 좋단 말이냐.”\n옥단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김씨부인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짐작할 일이 있는지라. 좋아서 못 견디는 마음에 실눈이 되도록 웃으면서,\n(옥) “마님 , 마님께서 쇤네 말씀만 들으실 것 같으면 며칠이 못되어서 마님께서 평생 소원을 푸실 터이오니 쇤네 말을 들으시겠습니까?”\n(부)“좋을 도리가 있으면 듣다 뿐이겠느냐.”\n옥단이가 김씨부인의 눈치를 할금할금 보며 상긋상긋 웃으며 얼른 말을 아니하니, 부인이 갑갑한 생각이 어찌 대단하던지 옥단이를 눈이 빠지도록 꾸짖고 싶으나 내게 아쉰 일로 옥단의 꾀를 얻어들으려 하는 터에 핀잔을 주든지 꾸짖든지 하는 것이 부지러운 듯하여 옥단이를 살살 꾄다.\n(부)“이애 옥단아, 내가 네 정성껏 나를 위하여 주면 나도 내 마음껏 너를 위하여 주마. 이애, 네 마음에는 건넌방 아씨 하는 일이 온당하게 생각하느냐. 이번에 그 일도 그 일이어니와, 이왕에는 고약을 작게 부렸다더냐, 시부모를 시부모로 알았다더냐, 시뉘를 시뉘로 알았다더냐, 시집 종을 사람 같이 여겼다더냐. 그것이 고약을 그렇게 부리더니 필경 내 집을 망하여 놓는구나. 글쎄 네 생각하여 보아라. 양반의 집에서 그것을 어찌 살려둔단 말이냐. 이애, 어떻게 내게 원귀 되지 아니하게 죽일 수 없겠느냐?”\n(옥) “쇤네를 상급만 많이 주시면 마님께 원귀를 맺지 아니하도록 만들고 감쪽같이 잘 죽여 버릴 도리가 있지요.”\n(부)“요년 앙큼한 년, 네가 전에는 그런 버릇없는 소리를 아니하더니, 그런 버르장이를 건넌방 아씨께 배웠나 보구나. 말을 하려거든 하고 말려거든 말려무나. 네가 무슨 일을 잘한 후에 내가 너를 기특히 여겨서 상을 주면 받으려니와, 네 입으로 나더러 상을 달라 한단 말이냐.”\n옥단이가 부인의 꾸지람을 들으며 생각한즉, 본래 부인의 성품이 남의 공은 반푼 어치도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과 같이 무슨 일을 하려면 미리 알아차려서 바싹 졸라대지 아니하면 나는 헛애만 쓸 터이라. 이번에 아주 단단히 언약을 하여 다짐을 받고 일을 시작하리라 하고 말을 냅뜨려 하다가 또 무슨 생각을 한다.\n‘상전이라고 겁을 내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병신이지. 이번을 넘기면 요런 좋은 기회를 또 만날 수 있나. 마님이 암만 저렇게 날뛰셔도 내 소원을 아니 풀어주면 내가 좋을 도리를 아니 가르쳐 줄걸.’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깜작거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제풀에 놓치며 옥단이를 달랜다.\n(부) “글쎄, 네 들어보아라. 네가 무슨 이을 내 속이 시원하도록 잘하면 내가 너를 범연히 생각하겠느냐. 입던 치마 한 가지를 주더라도 그저 있을 리야 있느냐. 이애 옥단아, 어찌 되었던지 내 소원을 풀어줄 도리가 있거든 풀어다오. 네 욕심껏 상을 주마.”\n옥단의 욕심은 입던 치마 가지에 있는 터이 아니라 부인의 하품 날 소리만 한다.\n(옥)“상을 타면 타고 말면 말지요. 마님 입으시던 치마를 얻어 입고 있어요. 이런 큰일을 하면 마님께서 쇤네를 속량이라도 하여 주시고, 단구역 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다 주시더라도 아까울 것 무엇 있습니까. 마님께서 생각하여 봅시오. 그 일이 좀 큰일이오니까? 이댁 흥망이 달릴 뿐 아니라 마님께서 소원은 혼자 푸시고 나중에 아무 탈이 없이 될 터이니, 그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만일 나라를 위하여 그런 공을 이루면 이화대수장을 타고 대신을 할 것이올시다. 쇤네 같은 양반의 댁 종년은 상전을 위하여 큰 공이 있어서 속량이나 얻어 하면 일들 훈장이나 타고 대신이나 한 것과 다름없겠습니다..”\n하며 사박스러운 옴팍눈으로 부인을 흘끔 건너다보는데, 김씨부인이 며느리 하나를 잘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에 옥단의 소원을 다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n(부)“이애 옥단아, 내나 네나 소원 풀기는 일반이지. 내 속 시원한 일을 하여 주면 나도 네 소원대로 속량은 하여 주마. 그러나 내가 단구역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말하니, 그것은 네가 소갈머리 없는 소리다. 네 생각하여 보아라. 내 임의로 어찌 너를 논 한 마지기를 줄 수가 있느냐.”\n(옥)“쇤네가 논이야 참 바라지 아니합니다. 속량이나 하여 주시면 그런 상덕이 어디 있겠습니까.”\n(부)“옳지 그렇지. 우리 얼른 무슨 작정을 하고 일을 끝낼 도리를 하자.” 하더니 부인은 옥단에게 속량하여 줄 언약을 단단히 하고 옥단이를 건넌방 아씨를 없애 버릴 꾀를 한다.\n(옥)“마님, 마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오. 건넌방 아씨를 치악산 호랑의 이빨로 버석버석 깨물어 먹게 하였으면 좀 좋겠습니까. 아씨가 범에게 물려 죽으면 원귀커녕 아무것도 아니 됩니다.”\n(부인)“이애, 그 말 좋은 말이다. 그러나 치악산으로 보낼 수가 있느 냐.”\n옥단이가 부인의 귀에 무엇이라고 소곤소곤하는데, 부인의 입이 딱 벌어지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라.\n옥단이가 한참 소곤거리다가 남순이를 돌아보면,\n(옥) “여보 작은아씨,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n(남)“그럼, 그것을 못 알아들어. 누구는 귀 없나. 남을 어린아이로 아 네.”\n(부)“이애 옥단아, 너는 작은아씨가 무슨 말이나 옮길까 염려하여 하는 말인가보다마는, 네가 작은아씨를 그렇게 알았다가는 낭패하리라. 그 애가 너 보다 속이 깊다. 아무 염려말고 어서 말하여라.”\n남순이가 저를 추어 주는 소리에 무던한 듯싶어서 옥단이를 흘끔흘끔 흘겨보며,\n(남)“사람을 업신여기네. 내가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더러 그 말을 할 줄 아나베. 건넌방 언니라 하면 나부터 이가 갈려……. 나더러 여우 같다 하던 것이 누구라고. 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한 말이지. 그런 소리하던 사람은 누구든지 치악산 호랑이에게 물려 뒈졌으면…….”\n(옥) “응, 걱정 마오. 작은아씨더러 그런 소리하던 건넌방 아씨와 금홍이는 치악산 호랑이 밥이 되게 하여줄 터이니 누구더러 말만 마오.”\n하더니 다시 부인에게 하던 말을 이어 하는데, 그 말을 다 마치기 전에 부인의 고개를 까딱 하더니,\n(부) “오냐, 다 알아들었다. 나 할 일은 오늘내일 사이에 끝이 나게 할 터이니 너 할 일만 감쪽같이 잘하여라.”\n마침 안중문간에서 홍참의 기침 소리가 나니, 부인이 손을 살살 흔들며,\n(부) “영감 들어오신다. 아무 소리 마라. 이애, 너는 여기 앉았지 말고 이 뒷문으로 나가거라.”\n그 말끝에 옥단이는 뒤창 미닫이를 살짝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앞문으로 들어온다.\n김씨부인이 수심이 첩첩한 모양으로 말없이 앉았으니 홍참의가 그 부인을 흘끔 흘끔 건너다보다가,\n(홍) “마누라, 무슨 걱정되는 일 있소?”\n부인이 한숨을 쉬고 대답이 없거늘, 홍참의가 괴이쩍게 여겨서 다시 남순이를 돌아다보며,\n(홍)“이애, 너의 어머니가 왜 말도 아니하고 앉았는지 네가 아느냐?”\n(남)“나는 몰라요.”\n(부)“그런 어린아이더러 물어보실 일이 아니오.”\n(홍)“응, 그러면…….”\n(부) “눈으로 보지도 말고, 귀로 듣지도 말고, 입으로 말도 말고, 하루바삐 죽어 몰랐으면 좋겠소.”\n(홍)“응, 왜?…….”\n(부)“내가 말을 하기로 영감께서 곧이들으실 리도 없고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은 일이요. 영감이 그렇게 알고 싶으시거든 오늘밤에 일찍이 좀 들어오시오. 그런 것은 영감 눈으로 자세 보셔야 아시지.”\n홍참의가 그 소리를 듣고 의심이 버썩 나서 부인을 물끄러미 다시 말없이 앉았다가 아침밥을 기다려 먹고 사랑으로 나가더라. 홍참의가 종일 궁금증이 나서 부인더러 묻고 싶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묻지 아니하였다가 그날 밤에 안으로 들어오더니, 또한 말도 묻지 아니하고 부인의 눈치만 본다.\n(부인)“이애 남순아, 너는 일찍 누워 자거라.”\n(남)“졸리지도 아니한 사람더러 왜 누워 자라 하여.”\n(부)“어른이 일찍자라 하거든 잘 일이지 웬 말대답을 그리 하느냐.”\n(남)“누구는 모르는 줄 아나베. 나도 벌써 알았어.”\n부인이 한숨을 휘 쉬더니\n(부) “하릴없다, 계집아이란 것은 어렸을 때에 제 집안에서 보고 배울 것이 많아야 쓸 터인데……. 네 눈에 그런 것을 보였구나. 오냐, 하릴없다.\n집안에 운수가 좋으려면 그런 일이 생겼겠느냐.\n여보 영감, 이를 어찌한단 말이요. 집안에 변이 났소그려.”\n(홍)“응, 변은 무슨 변.”\n(부)“영감, 내 말은 나중 들으시고 나와 같이 안뒤꼍으로 나가서 보실 일이 있소.”\n홍참의 마음에 무슨 일인지 집안에 큰일 생긴 줄 아고 아무 소리 없이 그 부인을 따라 나서니, 부인이 홍참의를 끌고 안뒤꼍 건넌방 모퉁이로 돌아가려 하다가 다시 돌아서며 손을 살살 흔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n“이리로 와서 안되겠소. 어렵지마는 나만 따라오시오.”\n하더니 안방 뒤꼍으로 도로 돌아간다.\n(홍참의)“왜 사람을 끌고 갔다왔다 하기만 하오?”\n(부)“에그, 참을성도 없으시오. 오늘밤 내로 영감께서 다 아실 일을 그리하시오. 두 말 말고 이리 좀 오시오.” 하더니 안뒤꼍문을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나간다.\n본래 단구역마을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동네인데 홍참의 집 뒷담 밖은 너른 들이요, 앞에는 단구역마을 대촌이라. 홍참의 집 안뒷담에 조그마한 평중문이 있는데 , 그 문을 열고 나가면 편한 벌판이요, 그 들을 건너가면 병풍 같은 치악산이라. 그때는 깊은 가을인데 농가에서 추수 다 하여 들인 후이라, 보에 물 뚝 떼고 논에 물 한 점 없는 때라. 김씨부인이 홍참의를 끌고 어디로 살살 가더니 어느 논둑 밑에 살짝 쪼그리고 앉으며,\n(부인) “영감, 영감께서도 날과 같이 내 옆에 앉으시오.”\n홍참의가 본래 음흉하다면 음흉하고 미련하다면 미련한 사람인데, 어떠하든지 진중하기는 진중한 사람이라. 부인을 따라서 논 둑 밑에 쭈그리고 앉으니, 그 맞은편은 홍참의 집 건넌방 뒷담에 오동나무 박힌 곳이라.\n부인이 홍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며 이야기 시작을 하는데, 캄캄한 밤이 점점 적적하여지더니 웬 사람 하나 발자취 소리 없이 걸음을 걸어오더니 홍참의 집 안 뒤담 밑에 가서 가만히 섰다가 담을 넘겨다보는데, 그 담은 홍참의 집 안방 뒤꼍이라. 김씨부인은 말 없이 홍참의를 꾹꾹 찌르는데 홍참의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캄캄한 칠야이라, 담을 넘어다보면 사람의 전형을 알 수 없으나, 대체 상투 바람의 남자이라. 홍참의 생각에는 저놈이 저 담을 넘어가려고 넘겨다보는 줄로 알았더니, 그놈이 그 담을 아니 넘어가고 도로 내려서더니 건넌방 맞은편 담으로 돌아와서 오동나무 휘어진 가지를 붙들고 담으로 올라간다.\n그때 오통나무 잎은 다 떨어지고 오동 열매만 동실동실 달여 있는데 그 남자가 오동 가지에 붙어 서서 오동 열매 하나를 따더니 어디로 던지는 모양이라. 조금 있더니 담 안에 무슨 돋음을 놓았던지 웬 여편네가 돋음을 디디고 올라서는데 그 여편네의 고개가 담 기왓장 위로 쑥 올라온다.\n오동나무에 붙어 섰던 남자가 고개를 썩 숙여서 여편네 고개에 대고 무슨 말을 묻는지 들리지 아니하나, 그 여편네 대답 소리는 잠간 들린다.\n(여편네)“여보, 마음도 급하기도 하지, 오늘은 너무 이른걸……. 금홍이가 아직 잠도 아니 들었는데…….”\n하더니 그 뒤의 말은 어찌 가만히 소곤거리는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지라.\n그때 마침 웬 사람 하나가 짤막한 담뱃대에 담배를 붙여 물고 논둑 길에서 길 잃은 사람같이 입맛을 다시면서 혼잣말로,\n“이것이 길인가, 내가 어찌하다가 여기를 왔나.”\n하며 홍참의 집 두의 오동나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담 안의 넘겨다보던 여편네 목을 옴츠러져 들어가고, 담 위의 오동나무 낮은 가지 앉을 자리 편하게 된데 걸터앉았던 남자는 오동나무 등걸에 붙어 선다.\n오동잎이 있을 때 같으면 그 나뭇가지에 사람이 있어도 어둔 밤에 남의 눈에 뜨일 리가 만무하나 , 그때는 엉성한 나뭇가지에 사람이 붙어선 것이 아니 보일 리가 없는지라.\n담뱃대 물고 가던 사람이 그 담 밑으로 지나다가 흘긋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n“에그, 이것이 무엇인고?”\n하여 몸이 움츠러지는데, 오동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오동나무 가지를 놓고 담 위에 우뚝 서더니 담 밖으로 훌쩍 뛰어내려오거늘, 담뱃대 물었던 사람이 거 누구냐 소리를 하니 담 위에서 내려오던 자가 담뱃대 문 자를 발길로 걷어차는데, 담뱃대 물었던 자가 에쿠 소리를 하고 자빠지며 도둑이야 소리를 지르니, 담 위에서 내려오던 자가 나는 듯이 달아난다. 홍참의는 겁이 나서 떠는지 분한 마음에 떨리는지 벌벌 떨고 앉았는데, 김씨부인은 참 겁이 나서 못 견디는 모양같이 홍참의 앞에 폭 안긴다.\n사람 사는 곳에 밤중에 불이야 소리가 나면 사람마다 튀어나오거니와, 도적이야 소리가 나면 다 각기 제 방에서 문을 꼭 닫고 나오기를 싫어하는 법이라. 원래 홍참의 집 뒷담 밖은 그 동네 사람이 오더라도 한참을 돌아나올 곳이라.\n아무도 나오는 살마은 없는데, 담 밑에 자빠졌던 사람이 제풀에 툭툭 털고 일어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n“어, 그것 괴상한 일이로구.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구. 그러나 이 집에서는 나 아니더면 오늘밤에 도적 맞을 뻔하였지. 내 담뱃대는 어디 갔누.”\n하며 다시 허리를 굽히더니 땅을 더듬더듬하며 담뱃대를 찾는 모양이라. 홍참의는 논 둑 밑에서 숨도 크게 아니 쉬고 가만히 앉았는데, 그 사람 지나간 뒤에 집으로 들어갈 작정이라.\n그러할 즈음에 어이서 헛기침 소리가 거푸 나더니 홍참의 집 담 뒤로 웬 사람 하나가 돌아오며 혼잣말로,\n“어디서 도적 튀기는 소리가 났누. 오냐, 내 손에 도적놈만 걸려라. 포도청에 갈 것 없이 이 몽둥이로 대번에 쳐 죽여 버리겠다.”\n그런 헛장담을 하며 몽둥이를 끌고 오동나무 밑으로 향하여 나오는 것은 고두쇠의 목소리라. 오동나무 밑에서 담뱃대 찾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마주 기침을 하며 거 누구요, 소리를 하니, 고두쇠가 걸음을 멈추고 마주 거 누구냐, 소리를 하며 감히 썩 대들지 못하는 모양이라. 담뱃대 찾던 사람이 제가 도적 아닌 줄을 발명하느라고 황급한 목소리로 도적놈에게 발길에 채이던 말을 하니 고두쇠가 정작 도적놈은 달아난 줄 알고 새로이 산목을 쓴다.\n(고) “저런 경칠 놈 보았나. 진작 나왔더면 그 놈을 붙들었을걸. 그래, 그 주릿대를 메일 놈이 어디로 달아났소. 여보, 그놈에게 과히 몹시 채이지 나 아니하였소? 그러나 댁은 웬 양반이요? 발씨 선 길에 길 잘못 들기가 예 사이지요. 처음 뵙는 양반이지마는 너무 가엾은 노릇이요. 나도 타도 타관으로 먼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타관 양반이 저런 일 당하는 것을 보면 내가 당한 것 같습니다. 자, 어두운데 살펴 가시오.”\n“평안히 계시오.”\n하더니 담뱃대 찾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고두쇠는 몽둥이를 끌고 담 밑으로 다니며 순경을 도는 모양이라.\n부인이 겁나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던지 홍참의 무릎 위에 푹 엎드렸던 고개를 들고 가만히 하는 말이,\n“영감 영감, 고두쇠를 부르시오.”\n홍참의가 손을 설설 흔들며 또한 가만히 하는 말이,\n“아무 소리말고 가만히 있어.”\n그러할 즈음에 고두쇠는 담 밑으로 한 바퀴를 돌아서 돌아가는 모양이다.\n홍참의가 부인을 데리고 뒤 중문으로 들어가는데, 그 문은 처음 나갈 때에 지쳐만 두었던 문이라. 그 문은 열 때면 소리가 좀 나는 문이라. 홍참의가 문을 여는데 도둑놈이 남의 집 문을 열 듯 아무쪼록 소리 아니 나도록 하느라고 얼른 열지도 못하고 조금씩 여는데, 문은 다시 열지도 못하고 소리만 나는지라. 고두쇠가 아니 들어가고 어디 있었던지 몽둥이를 끌고 헛기침을 하며 쫓아 나오는 모양이라.\n홍참의가 고두쇠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려고 문을 왈칵 열고 쑥 들어서며,\n“여보 마누라, 어서 들어오.”\n부인이 급히 들어가다가 넘어진다. 홍참으 미처 문을 닫아걸기 전에 고두쇠가 문밖에 서서 거 누구냐 소리를 하니, 홍참의가 솜씨 있는 양반 기침을 하면서,\n(홍) “고두쇠냐, 너 어찌하여 나왔느냐?”\n고두쇠는 문밖에 섰고 홍참의는 문안에 섰으니 서로 보이지 아니하나 목소리는 분명히 서로 알아듣는 터이라, 고두쇠가 가장 무슨 장한 일이나 있는 체하고 호들갑을 부린다.\n“오늘밤에 소인 아니더면 댁에서 도적을 맞을 뻔하였습니다. 아까 웬 도적놈이 담을 뛰어 넘어가다가 소인에게 쫓겨 달아났습니다. 소인이 오늘 밤에는 잠자지 말고 밤새도록 순경을 돌겠습니다.”\n하는 라이 가장 홍참의는 ㅁ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사람같이 여기고 하는 말이라.\n(홍)“오냐, 그만 들어가 자거라. 도적이 들어오려다가 쫓겨갔으면 설마 또 올 리가 있느냐.”\n그때 부인은 혼자 일어나 앉아서 발목을 삐었느니 손목을 삐었느니 하면서 제 입으로는 고두쇠더러 말을 못 이르던지 홍참의더러 하는 말이,\n“영감, 고두쇠더러 옥단이 좀 들여보내라 하여 주시오. 옥단이를 불러서 내 발목이 좀 주물러야 하겠소.”\n(홍)“이애, 고두쇠야. 네 나가서 옥단이를 불러 들여보내어라.”\n(고)“옥단이가 초저녁부터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정신을 모르고 앓습니다.”\n(홍)“오냐, 그만두고 나가거라.”하면서 중문을 닫아걸고 홍참의가 부인의 발을 주물러 주려 하니 부인이 그만두라 하면서 일어서더니, 한 발을 자축자축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들어간다.\n본래 안방에서 나갈 때 불을 끄고 나간 터이라, 부인이 방으로 들어가며 불을 켜고 앉으며 한숨을 쉬니,\n(홍)“여보, 발목을 과히 다쳤소?”\n(부)“발목을 좀 다쳤기로 그까짓 걱정이야 걱정될 것 무엇 있소.”\n홍참의가 그 소리르 듣고 정신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라. 남순이는 가려운 것을 참고 자는 체하고 드러누워서 어른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n(부)“영감, 집이 이렇게 쉽게 망한단 말이요. 이런 일을 남이 알면 홍씨 댁 가문이 결판날 터이요, 이런 일을 덮어두면 이 집안이 무엇이 되오.” 홍참의는 담배를 붙여 물고 아무 소리 없이 담배 연기만 훅훅 뿜고 앉았더라. 그날 밤 일은 다 옥단의 꾀에서 나온 일이라. 오동나무 위에 올라섰던 사람은 고두쇠요, 담 너머로 내다보며 소곤거리던 계집은 옥단이요, 담 밖으로 지나가다가 도적 튀기던 사름은 최치운이라. 고두쇠가 담 위에서 슬쩍 뛰어 내려오며 최치운이를 아프지 아니하게 얼러 차고 달아는 시늉을 하다가 몽둥이를 끌고 기침하며 나온 것이요, 김씨부인이 넘어진 것도 부러 넘어진 것이요, 옥단이가 가슴앓이 앓는다는 것도 백판 거짓말이라.\n양반 좋고 글도 많이 읽은 홍참의는 본래 옥단이 같은 천한 종년이야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하였을 터이나, 그날 밤에 옥단의 꾀에 어찌 빠졌던지, 그 며느리가 행실이 부정하여 어떤 놈이 나드는 줄로만 알고 분이 어떻게 몹시 났던지 그날 밤 , 내로 며느리를 약 사발을 안겨 죽이고 싶은 생각이 버썩 들어가서 담뱃대를 탁탁 떨며,\n(홍)“며느리가 들어와서 내 집을 망해 놓아. 그럴 변이 어디 있을구.여보 마누라, 사당에 고유하고 며느리를 비상이나 먹여 죽입시다.”\n그 말 한 마디에 옥단의 꾀를 다 잘될 도리가 생긴다.\n(부)“여보 영감, 며느리의 행실을 생각하면 약 먹여 죽여 싸지마는, 사람을 어찌 차마 죽인단 말이요.”\n(홍)“응, 못될 말이지, 집을 망하여 놓은 것을 살려두다니…….”\n(부)“여보, 나는 그 노릇을 못하겠소. 남의 자식을 몇 해를 데리고 있다가 내 손으로 죽인단 말이요. 영감, 며느리를 죽이시려거든 나는 우리 친정으로 나 쫓아보내 주시오. 남의 자식을 악착한 죽음을 시키면 나는 평생에 며느리가 눈에 밟혀서 이 댁에 못 있겠소.”\n(홍)“마누라가 그럴 것 무엇 있소.”\n(부) “여보, 딱한 말씀도 하시오.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며느리에게 잔정은 내가 더 들었지, 영감께서 며느리에게 무슨 잔정이 있을 수가 있소.”\n(홍)“그는 그러하지. 그러면 저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n(부)“그런 일이야 영감이 조처하시지 나더러 물으실 일이요? 다시 잘 생각하여 보시오.”\n홍참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았다가 부인을 보며,\n(홍)“여보, 그렇지 않소. 친정으로나 쫓아버립시다.”\n부인이 홍참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n(부) “글쎄, 그것도 난처한 일이오그려.”\n(홍)“응, 무엇이 난처하여.”\n(부)“영감께서 어련히 깊이 생각하고 말씀하겠소마는 나중 일을 좀더 생각하고 말씀하시면 좋겠소.”\n(홍) “응, 나중 일이라니…….”\n(부)“이런 일을 남에게 알리고 보면 내 밑 들어 남 뵈기 같이, 홍씨댁만 망신이니 아무쪼록 소문 없이 조처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n(홍)“그것은 마누라의 말이 옳소.”\n(부)“며느리의 행실 그른 것은 덮어두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으면 애꿎은 시어머니의 심하다는 소문만 나겠소그려. 내가 심하다는 시비를 듣는 것은 하릴없는 일이지마는, 누대봉사하는 아들을 장가들일 도리를 하고 쫓아야지, 무단히 며느리를 쫓고 아들 장가들인다는 수가 있소.”\n홍참의가 그 소리를 듣더니 또 고개를 수그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홍참의가 무슨 말이 나오도록 재촉을 한다.\n(부)“그래 어떻게 조처하실 터이요?”\n(홍)“글쎄 별 수 없어. 약이나 먹여 죽이든지 친정으로 쫓든지 두 가지 중에 어떻게 하든지 정할 터인데, 마누라의 말에 이것저것 다 불가한 줄로 여기니, 마누라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n(부)“내 마음에는 홍씨댁도 보전하고 사돈집도 성하게 보전하도록 조처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하는 말이요. 며느리를 친정으로 쫓으면서 시집에서 그따위 행실 하던 것이 친정에 가면 기를 펴고 서방질을 더할 터이니, 여편네 하나가 두 집을 망하여 놓겠소그려. 싸고 싼 향내도 나는데, 여편네 서방질하는 소문이 어찌 아니 나겠소. 영감께서는 오늘 처음 아시나, 우리 집 안에서는 그 눈치를 다 아는 모양이요. 옥단이가 모르나, 남순이가 모르나.\n이때까지 모르고 있던 사람은 우리 내외뿐이지.”\n(홍)“그래, 옥단이가 그 일을 아나?”\n(부)“아는 체는 아니합디다마는 말하는 눈치가 아는 모양입디다.”\n(홍)“옥단이 가 알았으면 소문이 아니 날 수가 있나. 벌써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내 집이나 사돈 집이나 두 집 모양 좋도록 조처하기는 틀렸지. 마누라 하던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야. 두 말 말고 오늘밤 내로 며느리를 불러 토죄하고 비상이나 먹여 죽여. 하루라도 더 살려두면 모양만 점점 더 수 통하지.”\n하더니 옥단이를 불러라, 금홍이를 불러라, 며느리를 불러라 하며 방울 같은 눈이 두리두리하며 야단이 나는데 본래 골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는 홍참의라. 부인이 여간 말리는 소리는 귀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거조를 차리는데, 온 집안이 다 모여든다.\n헛잠 자던 남순이는 머리를 갉죽갉죽하며 일어나 앉았고, 헛가슴앓이 앓던 옥단이는 누워서 비비대기치던 머리를 쓰다듬지도 아니하고, 가슴을 훔키 어 쥐고 윗목에 들어섰고, 단잠을 깨서 일어나는 금홍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마루에 섰고, 나무 끝에 앉은 새같이 조심으로 보내던 이씨부인은 밤중에 야단나는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건너오며 아니 나는 생각이 없다.\n“무슨 야단이 또 났누. 내가 이 댁에서 아무 때든지 생벼락을 맞으렷다.\n열번 찍어 아니 넘어갈 나무 없다더니, 옛말 하나 그른 것 없구나. 아버님께서는 그렇지 아니하시더니 무슨 모해를 들으시고 저리 하시누. 소금에 절고 장에 절고 절을 대로 절은 이 몸이 왜 살아 있어서 이것을 겪누.”\n하며 안방으로 건너오는데, 비록 근심에 쌓인 얼굴이나 그 모양이 더욱 아름다운 태도가 보인다.\n며느리 얼굴이 일색이니 절색이니 시아비 눈에 걸린다는 말은 상스러운 망발이지마는 홍참의가 , 그 며느리를 흘금 보다가 열이 상투 끝까지 났다.\n무슨 까닭으로 열이 더 났느냐 할진대, 홍참의 마음에,\n(저것이 인물값을 하느라고 남의 집을 망하였지. 조런 요물은 없애 버려야지…….)\n싶은 그 생각에 열이 버썩 더 난 터이라.\n며느리 토죄를 한다 하던 위인이 토죄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만만한 옥단에게 큰소리만 한다.\n“이년, 너는 부르면 즉시 들어오지 아니하고 무엇하느라고 인제야 들어 오느냐. 네 다락에 들어가서 비상 있는 것 찾아오너라.”\n본래 홍참의가 비상 비상하는 것음 몇 달 전에 고두쇠란 놈이 어디서 옴을 올리고 들어와서, 비부장이 옴이 안마누라에게 오른다던 말이 맞느라고 고두쇠의 옴이 옥단에게로 옮아서 그 옴이 안방 식구에게 흡삭 옮아온지라.\n그 옴들을 떼느라고 원주 읍내 장에 가서 비상을 어찌 무식하게 사왔던지, 집안 사람들이 옴은 다 떨어졌는데 비상은 평생 두고 옴만 올려도 그 비상만 가지고 넉넉히 떼일 만하게 있는 터이라.\n그 비상이 아무데도 쓸데없이 안 벽장 구석에 넣어 두었는데, 홍참의가 그 비상은 쓸데없이 된 물건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별안간에 비상 쓸 일이 생겨서 비상만 들쩍거리고 있는 터이라.\n여우같은 김씨부인이 홍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n“여보시오 영감, 영감께서 비상은 찾아 무엇하시려오? 영감께서 내 말을 좀 들으시오, 왜 이렇게 과격히 하시오, 옥단아, 비상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 비상 먹고 내가 죽겠다, 며늘아, 너는 네 방으로 갔다가 있다가 오너라, 금홍아, 너도 건넌방으로 좀 가서 있다가 오너라, 옥단아, 너도 좀 나가거라, 남순아, 너는 언니와 같이 건넌방에 가서 놀다가 오너라, 어서 어서.\n왜 알찐알찐하고 아니들 가느냐.”\n하며 사람을 낱낱이 쫓아 내보내고 안방에는 홍참의와 김씨부인과 단 둘뿐이라.\n(부)“여보시오 영감, 어찌하려고 이렇게 하시오, 이리하실 것 같으면 내가 먼저 그 바상을 먹고 죽겠소.”\n(홍)“어, 마누라도 딱한 말도 하오, 그러면 이 일을 덮어두어야 옳단 말이요”\n(부)“요란스럽소, 조용조용히 말씀하시오, 내 말만 들으시면 좋을 도리가 있으니, 제발 덕분 내 말을 들으시오.”\n하더니 홍참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홍차의 귀에 대고 무엇이라고 그리 수군거리는지 소곤소곤하는 대로 홍참의가 고개를 끄덕거린다.\n부인이 홍참의를 무슨 말로 어떻게 꾀었던지, 열이 상투 끝까지 나서 날뛰던 홍참의가 아무 소리 없이 천연히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더라.\n이씨부인이 홍참의가 사랑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서 윗목에 우두커니 서서 김씨부인이 무슨 말 있기만 기다리고 섰는 모양인데, 금홍이도 안방으로 들어와 섰으나 차마 무슨 말을 못하고 죄지은 사람같이 또한 김씨부인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옥단이는 의구히 가슴 아픈 모양같이 눈살을 아드득 찌푸리고 한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기운 없는 목소리로,\n(옥) “마님, 영감께서 무슨 일로 그렇게 걱정을 하셨습니까. 쇤네는 오늘 밤에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죽도록 앓다가 불려 돌아와서 무슨 죄나 당한 줄로 알았더니 마님께서 잘 말씀을 하여 주셔서 쇤네가 죄를 아니 당하니, 오늘밤에는 마님 덕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쇤네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있으니 마님께서 좀 일러주십시오.”\n(부)“네게는 당치도 아니한 일이다. 뉘게 당한 일이든지 내가 아니더면 오늘밤 내로 참 큰일날 뻔하였다.”\n하면서 며느리를 쳐다보는데, 며느리는 사시나무 떨 듯 전신이 벌벌 떨려서 말을 못하고 섰더라.\n죽어도 옳은 일에만 죽으면 겁은 반푼 어치도 아니 나는 금홍이가 김씨 부인 앞으로 다가서며 .\n(금) “마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영감마님께서 그런 걱정하시는 것이 여간 일은 아닌 듯 하외다. 밤중에 건넌방 아씨를 부르시고, 쇤네와 옥단이까지 부르시고 비상을 가져오라 하시니, 쇤네가 죄가 있어서 쇤네를 먹여 죽이려 시든지, 아씨가 죄가 있어서 아씨를 먹여 죽이시려든지 무슨 죄인지 자세히 토죄나 하여 주시고 한시바삐 죽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죽일 죄가 있는 사람이야 어찌 살기를 바라며, 죄 없는 사람이면 나라에선들 어찌 애매히 죽일 수가 있습니까. 마님, 말씀을 좀 하여 줍시오, 무슨 일이든지 큰일이 있나 보이다. 영감께서 그렇게 대단히 거조를 차리시다가 마님께서 말씀을 잘 여쭈신 고로 일시의 분을 참으셨으나, 진노하시던 그 일이야 잊어버리실 리가 있습니까. 영감께서 잠시 잠깐 참으시고 덮어두시는 것보다 차라리 이 밤으로 죄 주실 일은 결말을 지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님 …….”\n김씨부인이 다른 때 같으면 금홍이를 죽일 년 잡도리 듯이 고런 괘씸한년 보았나 조런 쳐죽여 , 놓을 년 보았나, 조런 버르장머리 없는 년 보았나, 네가 뉘 앞에서 그런 포달을 부르느냐 하면서 팔팔 뛰었을 터이지마는, 그날은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순하여졌는지, 며느리 노주에게 격연한 일이 있는지 헤헤 웃으면서,\n(부) “누가 아니, 영감께서 하시는 노릇을…….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옥단아, 너도 그만 나가 자거라.”\n옥단이가 대답을 하는데, 나비야 부르면 고양이 대답하듯 가량스러운 목소리로,\n“네 ─.”\n하더니, 이씨부인을 건너다보며,\n“아씨, 아씨께서도 건너가 주무십시오 금홍아, 너도 건너가 자려무나.\n”\n이씨부인이 하릴없이 건넌방으로 건너가는데, 금홍이도 다시 무슨 말 없이 이씨부인을 따라서 건넌방으로 건너가고 옥단이는 행랑으로 나가더라.\n그날 그때는 밤이 반 밤은 지났으나 그 이후라도 잠을 잘 것 같으면 한잠을 늘어지게 잘 터이나, 그날 밤에 그 집에서는 아무도 잠자는 사람은 없고 생각으로 밤을 새우는데,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생각은 다 다르더라.\n김씨부인의 생각에는 그날 밤 일이 마음대로 잘된 것이 신통하고 내일부터는 원수같이 밉던 며느리를 아니 보게 될 터이니 시원하겠다 싶은 생각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자고, 옥단이는 고두쇠와 둘이 상전 속일 공론하며 이야기하느라고 잠을 아니 자고, 홍참의는 내일 밝기를 기다려서 며느리 조처할 생각으로 잠 못 들고, 이씨부인은 금홍이를 데리고 앉아서 마주보고 울며 밤을 새우는데, 그 밤이 어느 결에 새었던지 단구역마을 뒤뜰에 개똥 삼태기 메고나선 사람이 갔다왔다 한다.\n홍참의가 먼동 틀 때부터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n“여보 마누라, 어젯밤에 마누라 하던 말이 좋기는 좋으나 내 입으로 고두쇠더러 말하기가 창피한 노릇이오그려…….”\n(부인)“글쎄, 그도 그러하오, 그러면 내가 영감 말씀으로 옥단이더러 일러서 고두쇠에게 이르도록 할 것이니 영감께서는 아무 말씀말고 편치 아니 하시다 하고, 사랑에 손님이 오더라도 못 들어오게 하고 드러누워 계시면 영감 마음에 맞도록 하여 드릴 터이니 걱정말고 나가 계시오.”\n홍참의가 그 말을 어찌 다행히 여겨 듣던지 고개를 끄덕하면서, 옳지 그것 좋은 말이요 “ , , 나는 사랑에 나가서 있을 터이니 마누라가 얼른 잘 조처하여 주오. 자 그 일 조처하기 전에는 내가 아침 먹으러 들어오 지도 아니하겠소.” 하더니 사랑으로 도로 나가서 드러누웠더라.\n김씨부인이 옥단이를 불러들이더니 좋아서 팔팔 뛰는 듯하는 모양으로 손짓을 하며 가만히 하는 말이,\n“이애 옥단아 옥단아, 일 잘되었다. 건넌방 아씨 조처한 일은 영감께서 내게 다 맡기셨다. 네 이 길로 나가서 고두쇠더러 일러서 어제 네 말대로만 되게 하여라. 이애, 이 일이 정작이다. 낭패 아니 되게 하여라.”\n(옥)“염려 맙시오, 쇤네가 맡은 일이야 범연할 리가 있습니까.”\n하면서 살짝 나가더니 어찌 마음이 급하던지 제 행랑방문을 미처 열기도 전에 입이 딱 벌어지며,\n“여보, 업쇠 아버지.”\n하며 문을 펄쩍 여는데, 고두쇠는 그 일이 어찌되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옥단이 얼굴빛을 보고 겉으로 흥에 띄어서 드러누웠던 놈이 벌떡 일어나며 얼굴이 벌개지면서,\n“응, 무엇을 그리 하나, 일 다 잘되었나. 에끼, 넨장, 돈은 없지마는 식전에 나가서 숱이나 한 잔 먹고 오겠네,”\n(옥)“업쇠 아버지는 걸핏하면 술 소리만 하네. 오늘은 술 먹지 마오, 일 낭패하리다.”\n고두쇠가 까닭 없이 흥이 더욱 나서 짓거리가 난다.\n“요 방정맞은 여편네, 업쇠 아버지는 일생 업쇠 아버지란 말인가, 오늘부터는 날쇠 아버지라 하여 주게.”\n(옥)“무엇을 낳아야 날쇠 아버지라지. 건으로 날쇠 아버지…….”\n(고)“못 낳는 것은 태 탓인가, 자네 탓이지. 자식 잘 낳는 사람 같으면 암탉이 알 낳듯이 하루 하나씩 날마다라도 났을 터인데…….”하면서 흥김에 딴 홍이 나는 줄 모르게 나서 지껄이는데, 옥단이가 손짓을 하며,\n“여보,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어서 어디 가서 교군꾼이나 불러오오.”\n(고)“응, 교군꾼. 그래, 교군은 불러다가 어떻게 할 터인가?”\n(옥)“에그, 답답도 하오, 어제 내가 말 아니합더니까.”\n(고)“그래, 참 그 말대로 똑 그렇게 되었나?”\n(옥)“그럼, 내가 하는 일이 범연할라구. 땅 짚고 헤엄하기지. 어서 나가서 교군만 얻어오오,”\n고두쇠가 곰방대 탁탁 떨어서 잎담배 한 대가 타 타기 전에 교군꾼 두 놈을 불러왔는데 원래 , 홍참의 집에서 교군꾼 쓸 일이 있으면 교군은 할 줄 알든지 모르든지 아무 놈이나 함부로 붙들어다 시키는 터이라. 만일 교군을 할 줄 아느니 모르느니 하며 꾀를 부리려 하다가는 엎어놓고 볼기 때리기가 전례가 되었는데, 어떤 놈일는지 매 맞기보다 교군 하는 것이 낫다 하여, 그 동네 백성들은 그럭저럭 교군 질빵 한두 번씩은 다 메본 터이라. 그날 아침에 교군꾼으로 붙들려온 놈은 그 동네 중에도 교군에 제일 서투른 놈이라. 고두쇠가 교군꾼을 부르러 나서는 길에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불러오느라고, 식전참에 개똥 삼태기 메고 나선 놈을 그 삼태기 메인 채 데리고 들어왔더라.\n옥탄이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안방 지게문을 달각달각 잡아당기거늘, 김씨 부인이 가만히 하는 말이,\n“옥단이냐, 어서 들어오너라. 그 문 걸리지 아니하였다. 왈칵 잡아당기려무나.”\n“옥단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n“마님, 이때까지 주무셨습니까. 쇤네는 벌써 교군까지 불러왔습니다.”\n(김)“이애, 내가 어젯밤에 잠잔 줄 아느냐. 그래 교군을 불러왔으면 밥도 아니 먹여서 보낸단 말이야.”\n(옥)“에그, 마님께서는 별 걱정을 다하십니다. 언제 밥을 먹이고 있습니까. 쇤네가 들어올 때에 고두쇠더러 교군을 데리고 술집에 가서 술국이나 뜨뜻이 먹여서 데리고 오라 하였는데, 벌써 술들 먹고 왔겠습니다. 어서 아 씨를 나서게 합시오.”\n옥단이가 이씨부인을 부르러 건넌방으로 건너가는데, 제 입으로는 이씨부인더러 말하기가 싫던지, 금홍이더러 말을 한다.\n“금홍아 금홍아, 아씨 일어나셨니. 마님께서 여쭈시니 얼른 건너옵시사고 여쭈어라.”\n하더니 문을 톡 닫고 나가더라. 이씨부인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겁만 나는지라 한숨을 쉬면서,\n(이) “오늘은 또 무슨 야단이 나누. 금봉아, 너는 이불이나 개고 방이나 쓸어 두어라.”\n(금)“어느새 방은 쓸어 무엇하게요, 쇤네도 건너가 보겠습니다.”\n하면서 금봉이가 먼저 나서더니 살같이 건너가서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로 알고 쳐다본즉 금홍이라.\n부인이 소리를 바락 지르면서,\n“누가 너 불렀느냐?”\n하는 서슬에 금홍이가 깜짝 놀라서 도로 나오려 하는 차에, 이씨부인이 들어오면서 그 시어머니 얼굴을 건너다보다가 시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더라.\n(김)“이애, 너는 사람을 몹시도 본다. 네 눈살에 주눅들려 못 살겠다.”\n이씨부인이 생트집을 만나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다시는 쳐다볼 생의를 못하는데, 김씨부인이 며느리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고 앉았다가,\n(김) “남순아, 너의 아버지께서 왜 안에는 다시 아니 들어오신다더냐?”\n(남)“나는 몰라.”\n(김)“그래도 까닭이 있지 공연히 그러실 리가 있느냐.”\n(남) “어젯밤에 언니 때문에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을 어머니가 말렸다고 그러시지…….”\n김씨부인이 팔팔 뛰며 독살을 부르는데 금방 칼이라도 물고 엎드러져 죽을 듯이 날친다.\n(김)“나는 며느리 하나 위하여 주려다가 남편에게 소박데기까지 되 눈구나. 그래, 너의 아버지께서도 야릇한 성품이시지, 사람이 죽을 죄가 있더라도 용서하는 맛이 좀 있어야지, 온 세상이 다 알도록 떠들어서 비상을 먹여 죽이려 들으시니 내가 그 꼴을 보고 이 집에 있어야 옳단 말이냐. 그만두어라, 며느리도 친청으로 보내고 나도 이 집에 아니 있을 터이니, 그 후에는 너의 아버지께서 안에도 들어오실 터이요, 속도 시원하겠구나. 이애 며늘아, 너 여기 있지 말고 너의 친청으로나 가거라. 낸들 어떻게 하느냐,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옥단아, 네 나가서 고두쇠더러 교군꾼 둘만 얼른 부르고 가마 내어놓라고 일러라. 옥단아, 요년, 너는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아니하고 우두커니 섰느냐.”\n옥단이가 행랑으로 나가더니, 마친 등대하였던 교군꾼 두 놈이 오그랑 벙거지를 숙여 쓰고 가마 한 채를 메고 옥단이를 따라 들어오더니, 가마는 마루 앞에 내려놓고 교군꾼이 슬쩍 돌아서며 엄지손가락을 떡 벌리더니 좌우 옆 어깨 밑에 뚝 떨어뜨려 멘 교군 질빵을 지긋지긋 눌러 보는 모양이 당장에 교군을 메고 나설 것 같은지라, 이씨부인이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망단 중에 눈물이 비 오듯하며 섰는데, 옥단이가 재촉을 하느라고,\n(옥) “마님, 교군을 불러왔습니다. 아니 쓰실 터이면 도로 보내랍시오.”\n김씨부인이 참았던 방정을 나는 대로 다 떠느라고 소리를 바락 지르며,\n“누가 너희들 데리고 어린아이 장난하듯 기롱하는 줄 아느냐.”\n하더니 방정 끝에 진정 말이 나오느라고 그 며느리를 건너다보며,오냐 그만두어라 “ , , 내가 너와 한 집안에는 있을 수 없다.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그래, 지체 좋은 재상의 딸은 시어머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아니한단 말이냐.”\n하면서 웬 담뱃대는 그리 길던지, 제 키만한 담뱃대를 들고 발딱 일어서며,\n“옥단아, 교군꾼더러 교군 갖다가 이 앞으로 놓으라 하여라,양반 며느리를 당할 수 없어서 내가 못 살고 쫓겨가겠다.”\n하며 마루로 나서니, 이씨부인이 기가 막혀서 원통한 말 한 마디 못하고 버선발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교군 속으로 들어가는데, 옥단이가 뜰 아래로 나려서며,\n(옥)“교군꾼, 자 얼른 모시오, 업쇠 아버지, 어서 모시고 가오.”\n교군꾼이 앞채를 끼고 일어서는데 금홍이가 뛰어내려오더니 교군채를 붙들고 울며,\n“아씨, 이것이 웬일이오니까, 아씨께서 시집살이를 못하시고 쫓겨가시더 라도 무슨 죄로 쫓겨가시는 곡절이나 아시고 가시는 일이 옳지, 별안간에 이렇게 가실 수가 있습니까, 어젯밤에 걱정 나던 일은 예사의 일이 아닌 듯 하오이다. 필경 아씨께서 죽어 마땅한 일이 있은 후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오니, 죽어 마땅하신 죄가 있으시거든 어떻게 돌아가시든지 당장에라도 돌아가시는 일이 옳고, 백 번 애매한 일이어든 죄 없는 발명이 되는 것을 보고 계신일이 옳습니다. 어젯밤에 영감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든지, 오는 아침에 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든지, 아씨께서 세상에 용납지 못할 허물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허물을 쓰고 돌아가시더라도 이 댁에서 돌아가시고, 사시더라도 이 댁에서 사셔야지. 이렇게 창황히 가시고 보면 아씨 허물은 벗을 날이 없습니다.” 하며 악을 쓰며 우니, 김씨부인이 팔팔 뛰며,\n(김)“저런 앙큼한 년이 있나, 저런 쳐 죽일 년이 있나, 조그마한 년이 어찌하면 저렇게 담대한구, 요년 금홍아, 너는 법 없이 자라난 년이냐, 조년을 저대로 내버려두어서는 못쓰겠다. 고두쇠야, 네 조년의 아가리를 짓찢어서 기둥 밑에 잔뜩 비끌어 매어 놓아라.”\n고두쇠는 본래 금홍이를 미워 죽으려 하던 놈이라, 무슨 곡절로 그렇게 미워하였던고, 평일에 금홍이를 보면 침을 꽤 흘리고 쫓아다니는데, 꼴 갈지 아니한 놈이 어울리지 못한 말로 지분거려 볼 적마다 핀잔을 보고, 손을 대인즉 뿌리치는지라, 금홍이는 그렇게 내대나 고두쇠는 종시 무슨 여망이 있을까 여겨서 기회만 있으면 지분거리더니, 필경은 바람의 돌부처도 못 볼 듯한 생각이 있은 후로는 저년이 언제든지 내 손에 한 번만 단단히 걸렸으면 저 얄밉던 원수를 갚겠다고 벼르던 터이라.\n김씨부인의 영이 뚝 떨어지면서 고두쇠가 왈칵 달려들어 금홍의 머리채를 잡아 동댕이를 치더니, 다시 달려들어서 주먹으로 쥐어지르고 발길로 안기는데, 금홍이가 입으로 피를 뿜고 마당에 동그라졌다.\n이씨부인은 교군 속에서 금홍이가 맞아죽는 줄만 알고 나가면서 감히 울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때때 느끼는 쇠가 교군꾼의 귀에 들린다.\n교군꾼의 앞에 서서 서울 가는 편 길만 바라보고 가는데, 고두쇠가 뒤에서 쫓아오며,\n(고) “여보세요 교군, 길 잘못 들었네. 내가 앞을 설 터이니 나만 따라오게.”하면서 달음박질하여 쫓아와서 교군꾼을 쭉 지르더니, 사람 그린 지전 몇 장을 꺼내 보이며 눈을 끔적끔적하니, 교군꾼들의 입이 떡 벌어지며,\n“어, 두말 말고 어디든지 자네가 앞만 서게.”\n하더니 이마에서 비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쉬지도 아니하고 달아난다.한 고개 두 고개 훌훌 넘어가서 산 깊고 골 깊고 길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이씨부인이 교군 틈으로 내다보다가 겁나고 의심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고두쇠를 부르는데, 이씨부인이 고두쇠더러 접어가 처음이라.\n(부)“여보게 업쇠 아범, 어디로 가느라고 이 흉악한 곳으로 들어오나?\n가는 곳이나 좀 알고 가세.”\n하는 말이, 철 아닌 꾀꼬리소리가 달달 떨려 굴러 떨어진다. 고두쇠가 갈범 같은 목소리로,\n“네, 조금만 더 가면 좋은 길이 나섭니다. 염려 맙시오, 여보게 교군꾼, 어서 어서 펄쩍 모시게.”\n(교군)“이 사람, 이밖에 더 어찌 급히 가나. 좀 쉬어나 가세.”\n(고두쇠) “쉬기는 무엇을 쉰단 말인가, 쉬지 말고 어서 가세.”\n(교군)“여보게, 교군을 시키며 이런 험한 길로 끌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해가 낮이나 되도록 술 한 잔 아니 먹이고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우리는 교군 못 모시겠네.”\n하더니, 교군꾼이 교군을 내려놓고 달아나니, 고두쇠가 쫓아가는 모양이라.\n고두쇠와 교군꾼은 어디로 갔는지 소식이 없는데, 이씨부인이 기다리다 못하여 교군 밖으로 나서 보니, 첩첩한 산중에 물소리는 그윽하고 낙락장송 휘어진 가지는 이리 뻗고 저리 뻗어서 이 솔가지 저 솔가지가 서로 깍지 끼듯 되었는데, 그 산속에서는 해그림자를 얻어 볼락말락 하고, 머루, 다래덤불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서 그때는 낙엽된 후이언마는 산골은 머루, 다래 덤불로 거멀장식을 하여 봉한 듯이 수풀 천지라, 그 덤불 속에서 범이 기침을 하고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고, 머리 위에 솔 그림자 속에서는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내려오는 듯한데, 이 산중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n나이 젊은 양반의 여편네는 죽어도 얌전한 체만 하지마는 , 사람 없는\n천지에 가면 얌전이 무엇인지, 부끄럼이 무엇인지, 하늘이나 땅만 보고는 얌전도 아니 나고 부끄럼도 없나 보더라.\n이씨부인이 무섭고 설운 마음에 목을 놓아 울며 생넋두리를 한다.\n“하나님, 여기가 어디란 말이요, 죽어도 죽는 곳이나 알고 죽읍시다. 하나님,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기 와서 이렇게 죽습니까, 죄가 있거든 마른 하늘에 벼락을 자끈자끈 쳐서 죽여 주셨으면 내게는 그런 적선이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사람을 이렇게 몹시 죽이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내가 전생에 무슨 흉악한 죄를 가진 짐승이 되었든지 두 발가진 새가 되었든지, 지렁이, 굼벵이 같은 더럽고 작은 벌레가 되었더라도 자유로 활동하여 하루를 살더라도 근심 없이 살다 죽는 것이 좋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만물의 신령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에 다시없는 고생을 다하다가 죽을 때는 이런 몹쓸 곳에서 죽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나를 왜 낳아서 일평생 시집살이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몹시 죽게 하시오, 아버지……. 어머니……. 나를 낳으시거든 첫마디 ‘응아’ 소리날 때에 나를 폭 엎어 죽이시지 아니하고 고생길로만 넣어 주시느라고 홍참의 집 며느리가 되게 하셨소, 에그, 원통하여라, 고 여우 같은 시어머니가 나를 무슨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이 산주에 내다 버리게 하누.미련이 뚝뚝 듣는 시아버지는 여우 같은 후취의 속살거리는 말에 폭 빠져서 무죄한 며느리를 이렇게 원통히 죽게 하단 말인가, 어젯밤에 온 집안 사람을 불러 세우고 비상을 찾을 때에 필경 나를 죽이려고 그러한 것이니, 차라리 그때 비상이나 먹여서 죽였으면 내 방 구석에 편히 드러누워 죽었을 터인데, 고 몹쓸 시어머니가 별 요악을 다 부리더니 이러한 흉계를 꾸미느라고 그리하였구나. 에그, 하늘 밑에 이런 흉악한 곳도 있던가, 범이 있든지 곰이 있든지 무슨 짐승일는지 얼른 나와서 날 잡아먹어라. 한 시를 더 살면 무엇하리. 살아 있을수록 겁만 나고 간만 녹는구나.”\n이씨부인이 분하고 원통하고 겁나고 설운 마음에 하늘도 원망하고 친정 부모도 원망하고, 시부모에게는 못할 소리 없이 욕을 하며 우는데, 별안간에 수풀 속에서 웬 사람의 소리가 나며 뛰어나오더니 이씨부인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n“여보, 걱정 마시오, 사람 살 곳은 곳곳마다 있습니다. 부인이 여기까지 오시게 되는 것도 하늘이 지어 주신 일이요. 절처봉생으로 여기서 나를 만나 신 것도 하늘이 지어 주신 일이니 사람이 하늘이야 어찌 거스르겠소, 여보, 참 희한한 일이요, 만첩청산에서 단 둘이 만나서 동방화촉 인연을 맺고 나를 따라 내 곳으로 갑시다. 나는 송도 사는 최치운이요.”\n하며 홍김에 저 혼자 거드럭거리느라고 남의 눈치를 조금도 아니 보고 제 말만 하는데, 이씨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차려서 귀로 말을 들으며 눈으로 눈치를 보며 속으로 생각을 한다.\n‘이놈이 웬 놈인고,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깊은 산에 천년 묵은 여우가 있어서 재주를 발닥발닥 넘어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을 홀리느라고 이리하나.\n십분 의심이 날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릴수록 의심이 난다.\n암만 자세 보아도 귀신도 아니오 여우도 아니라. 말하는 눈치를 보고 보니 말건 계집에 상성한 놈이라.\n적실히 사람으로 알고 보니, 이놈이 어찌하여 내가 오늘 이 산중에서 이렇게 될 줄 알고 쫓아왔누 싶은 마음이 있다가, 다시 생각하니 이놈의 흉계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실은 생각을 깨달았더라.\n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여도 이 산중에서 저 몹쓸 놈을 만나서 옴치고 뛸 수 없는 터이라. 날개나 돋쳤으면 날아서나 도망을 할까. 힘이 세었으면 저 몹쓸 놈을 쳐 죽여서 한풀이나 하련마는, 섬섬약질이 내 몸이 하릴없이 저 놈에게 욕을 보고 죽을 터이니, 이런 철천지한이 어디 있을까 싶은 마음에 잠시 잠깐이라도 그놈이 얼른 달려들지 아니하도록 꾀를 피느라고, 웃으며 말도 하고 마음에 없는 허락도 하는 시늉을 하며 아무쪼록 이 산에서 욕을 보지말고 저 놈을 속여서 사람 있는 곳으로만 데리고 가면 나는 죽어도 욕을 아니 보고 죽을 도리를 하겠다 싶은 생각이 있어서 최치운이를 꾄다.\n(부인)“여보, 두말 마시오. 낸들 이렇게 흉악한 곳에 와서 짐승의 밥이 될지, 굶어 죽을지, 첫 추위에 얼어죽을지 모르는 터에 사람을 만나 살았으 니, 그 은혜를 어찌 잊어버리겠소. 나를 이 산중에 내버리지 말고 데리고 가신 후에 계집을 삼으시면 계집 노릇을 할 것이요, 종을 삼으시면 종노릇을 할 터이니 어서 바삐 나를 데리고 내려가시오.”\n최치운이가 이씨부인의 말을 자세히 들었는지 건으로 대답만 하는지, 부인이 한 마디를 하면 최치운이가 대답을 두 마디 세 마디씩 하며 부인을 어르고 달래느라고 또 제 말만 한다.\n(최)“여보, 말이 났으니 말이지 부인의 처지를 내가 아는 터이요, 홍ㅊ참의 집 며느리 노릇을 하지말고 감옥서에 들어가서 징역을 하면 오히려 편한 터인데 그 고생을 어떻게 , 하셨소, 옛말에 고진감래라 하였으니, 부인도 그 말과 같이 고생하던 운이 다 진하고 좋은 일만 생기느라고 나 같은 사람을 만났소그려. 사람이라는 것이 고생을 말고 살아야 사람인 듯싶으지, 인간 고생을 혼자 맡아 가지고 일평생을 지내면 주리 한 바퀴를 얼른 틀리고 마는 것이 차라리 편할 터인데, 내가 들으니 부인은 시집살이 고생이 허다한 중에 또 부인의 남편 되는 사람이 만리타국으로 갔다 하니, 청춘 세월에 독수공방하는 그 팔자는 무슨 팔자요. 여보, 두말 말고 나를 따라가면 일평생을 호강으로 지낼 터이요, 우리 집은 송도서 남들이 첫째 쳐준다는 부자라 하나, 실상이야 나만 못한 형세가 어디 있겠소, 그리하나 홍참의 집 산다는 소문을 들으면 참 부잣집 개만도 못하겠습디다. 좀 들어 보시려오, 원주 읍내 푸줏간에서 일 년 열두 달에 홍참의 집에서 고개 한 칼 사 가는 것 못 보겠다 하니, 설마 젯날이야 고깃점이나 맛을 얻어 보겠지마는, 그렇게 먹고사는 재미가 무슨 재미요. 우리 집에는 열두 마리 개가 종일 뼈다귀로 사오. 말이 뼈다귀지, 사람이 갈비를 구워 먹어도 침만 바르고 내어놓지 누가 그질긴 것을 그리 잘 먹소. 자, 이 산에서 이렇게 긴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운 연분을 맺고 내 고향으로 가서 삽시다.\n저 산모퉁이만 나가면 교군꾼이 기다리고 있소.”\n하며 당장 그 자리에서 겁칙을 하려 드니, 부인이 피하려도 피할 수 없고 죽으려도 죽을 수도 없을 지경이라. 부인이 하나님을 부르며 운다.\n“하니님 맙시사. 내가 이 산중에 와서 이 몹쓸 놈에게 이 욕을 보고 죽게 하신단 말이요.”\n최치운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오늘 이때까지 헛애 쓰던 일이 분하게 생각하여 제 욕심 채움이나 하고 볼 작정으로 와락 달려들어서 부인을 얼싸안으러 드는데, 별안간에 고목나무 뒤에서 총소리가 탕 나며 웬 포수 하나가 튀어나오니, 이씨부인이 사람 살려주오, 소리를 지르거늘, 최치운이가 겁이 나서 달아나니 포수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산골이 울린다.\n“이놈 게 있거라.네가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이 총이 천보총이다 ……. 한 발자국 들여놓고 약을 재고 한 발자국 내어놓고 방아쇠를 그으면 노루, 사슴, 토끼, 범이라도 자국을 못 떼고 떨어진다. 네가 몇 발자국이나 가서 내 철환을 받을 터이냐. 날따 길따 네 어디로 갈따.”\n하면서 약 한 방울 어느 틈에 재었던지 총을 번쩍 들고,\n“이놈, 철환 받아라.”\n소리가 나더니, 그 말끝에 총소리가 탕 나면서 앞에 달아나던 최치운이가 폭 거꾸러진다.\n하늘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려면 첫 동네라 할 만한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누구냐 할진대 , 치악산 꼭대기에 사는 장포수라. 장포수는 성이 장가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하고 평생 포수 노릇만 하여 먹고 산다 하여 별호가 장포수라. 미련하기도 첫째 갈 만하고, 고지식하기도 첫째 갈 만 하고, 총 잘 놓기로는 첫째를 칠 터인데, 만일 조선 포수를 모두 모아 놓고 완고 선생님이 꼬늘 지경이면 가상지상에 알관주를 칠 터이요, 개명한 학교 선생님이 시험을 받을 터이면 우등상이 될 터이라. 나이 삼십이 되도록 장가도 못 들고 오십여 세 되는 어미 하나와 단 두 식구가 사는지라. 치악산 꼭대기에 집을 짓고 낙이 무엇이냐 할 지경이면, 문밖이만 나서면 먹을 것이 그득하다.\n만학천봉에 펄펄 뛰어다니는 길짐승을 보면 신이 나서 설설 기어 들어가서 총 한 방만 탕 놓으면 맛 좋고 기름진 짐승을 잡아 들여오는 터이라.\n일 년이 이밥은 몇 번을 못 얻어먹고 도토리밥이나 감자밥만 먹고 살아도, 고기는 어느 날 어느 때에 아니 먹는 날이 없더라.\n긴 총대 둘러메고 좌우 남날개 뚝 떨어뜨리고 석양판에 제 집으로 어슬렁 어슬렁 들어오며,\n“어머니, 오늘은 별 사냥을 하였소.”\n(노파)“호호호, 너는 참 사냥도 잘한다. 어느 날이든지 빈속으로 들어오는 날은 없구나. 참나무 장작불 피워 놓고 어서 구워 먹자. 오늘 배고프겠다.”\n하면서 뒷짐을 지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포수를 등뒤를 보더니 무엇이 그리 좋던지.\n“호호호, 네가 사냥하러 간다더니 어디 가서 계집을 얻어왔구나. 에그, 얌전도 하다. 어서 이리 데려오너라. 좀 자세 보자.”\n하더니 제 며느리나 본 듯이 좋아 날뛰며 며느리를 부르다가 아들을 부르다가, 나중에는 누구더러 하는 말인지 갈피를 알 수가 없이 횡설수설한다.\n“이애, 네가 내 며느리 될 사람이로구나. 이애 며늘아, 시어미 꼴은 이렇다. 이애 딱쇠야, 너는 어디 가서 저런 고운 계집을 데려왔느냐”\n하며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딱쇠는 장포수의 이름이라, 그날 장포수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홍참의 며느리가 곤란 당하는 것을 보고 천진의 분한 마음이 있어서 최치운이를 총으로 놓아 죽이고 홍참의 며느리를 데리고 제 집으로 온 터이라.\n이씨부인은 부모 동생이나 만난 듯이 반가와서 따라왔더니 장포수 어머니의 하는 말을 들은즉 , 범을 피하여 곰의 굴로 들어온 듯한 생각뿐이라, 기가 막히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섰는데, 장포수는 천진으로 말을 한다.\n“어머니는 알지도 못하고 그러네. 누가 장가들려고 데려왔나. 어떠한 몹쓸 놈에게 붙들려서 욕을 볼 지경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며 우는데, 내가 마침 노루 자국을 쫓아 들어가다가 그것을 보고 그 여편네가 불쌍한 고로, 저 여편네 붙들고 날뛰던 놈을 총으로 놓아 죽이고 저 여편네를 데리고 왔소 그러나 그 여편네가 단구역마을에 사는 양반이라던 걸…….”\n호랑이 이야기를 들어도 눈도 깜작거리지 아니하던 장포수의 어미가 단구 역마을 양반이란 말을 듣더니, 실쭉한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그 여편네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그 아들을 보며,\n(노파) “단구역 마을 누구라더냐?”\n(장) “홍참의라든지 박참의라든지,무슨 참의 며느리가 된다나 봅디다. 어머니, 참의니 수박이니 하는 양반을 어떤 양반이요?”\n(노파)“호호호, 가엾어라, 홍참의 댁 며느리 되는 아씨가 어찌하여 저렇게 되셨나. 아씨 어서 이리 들어오시오.”\n하면서 이씨부인의 손을 붙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n방 속인지 굴 속인지, 컴컴한 속으로 들어가는데, 아무리 나무 흔한 산골이기로 불을 어찌 그리 많이 때었던지 찌는 듯한 더운 기운에 사람이 앉아 배길 수가 없는 중에, 거적자리 흙벽에서 냄새는 무슨 냄새가 그리 나던지 욕지기가 날 듯한데, 그렇게 더운 방 아랫목에 앉히더니 노파는 방문 밖으로 나가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 아들을 손짓하여 데리고 어느 구석으로 간다.\n이씨부인 이 더운 방에 앉아 배길 수가 없어서 문 밖으로 나섰더니, 어느 모퉁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늘 부인이 의심이 나선 버선발로 가만가만히 쫓아가는데, 장포수의 모자가 안방에 목소리 아니 들릴 만한 곳에서 말을 하느라고 뒷골목에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뒤로 돌아가서 말을 하는지라.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고 목소리만 들리니, 부인이 감히 가깝게 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그 말을 엿듣는데, 그때는 날이 차차 어둡는 때라. 부인이 자취 없이 숨어 서서 말을 듣는다.\n(노파)“이애 딱쇠야,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구나. 홍참의 며느리가 무슨 까닭으로 혼자 이런 산중에 들어왔단 말이냐. 네가 그 게집에게 속았나 보다.”\n(포수)“누가 알수 있소. 홍참의 며느리라 하니 홍참의 며느리로만 알았지.”\n(노파) “그렇지 아니하다. 그 계집이 정녕 도망꾼이다. 그래, 어떤 놈이 붙들고 날뛰더라 하니, 그놈은 누구란 말이냐?”\n(포수)“낸들 알 수 있소”\n(노파) “네가 눈치가 없어서 그것을 몰랐구나. 그 계집이 서방을 마다하고 도망질을 하다가 본서방에게 붙들려서 아니 가려고 울며 야단을 치는 것을 네가 잘못 알고 그놈을 총을 놓아 죽였나 보다.”\n(포)“…….”\n(노파)“아니다. 네가 잘못 알았다. 그러나저러나 양반이고 무엇이고 계집이 저 지경이 되면 온전한 계집은 아니니라.”\n(포)“글쎄, 어머니 말을 듣고 생각하니 그런 듯하오.”\n(노파)“이애, 그 계집을 길이나 잘 들여서 네가 데리고 살면 어떻겠느냐?”\n(포)“글쎄, 그리하면 좋지마는 만일 홍참의 며느리면 큰일나게.”\n(노파)“계집의 마음이 솔깃하여 살면 그만이지 누가 알기나 하겠느냐.\n그년이 만일 너를 너무 싫다고 왜장을 치거든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리려무나.” 장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욕심이 불같이 생기던지 입이 떡 벌어져서,\n(포)“걱정 마오. 독 안에 든 쥐 같지. 제가 이 산중에 들어와서 어디로 도망을 하겠소.”\n이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다가 겁이 어찌 나던지 도망을 하려고 발자취 소리 없이 어느 구석에 숨어 섰는데, 장포수의 모자가 할 공론을 다하였던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씨부인을 찾느라고 법석을 한다.\n노파가 흉측을 부리느라고 아씨를 부르다가 앞뒤로 돌아다니며 찾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며,\n(노파) “이애 딱쇠야, 그년이 어디로 갔단 말이냐. 너는 애만 죽도록 쓰고 헛일하였구나. 글쎄, 그년이 우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구나. 그런 망한년 보았나. 저를 일껏 데려다가 뜨뜻한 방에 들여앉혔더니 무엇이 부족하여 도망을 한단 말이냐.이애. 일이 분하지 아니하냐. 그물에 걸린 고기를 놓쳤구나.”\n(포수)“그년이 달아나면 얼마나 멀리 갔겠소. 내가 나가서 찾아 데리고 들어오리다.”\n하더니 총 한 방을 재약하여 들고 나가면서 혼잣말이라.\n“고 배라먹을 년, 어디로 갔누, 고년을 붙들어서 만일 아니 오려고 앙탈을 하거든 당장에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려야, 오냐, 너 같은 계집은 고사하고 범강장달이 같은 사나이도 이 밤중에 이 산중을 빠져나갈 놈은 없다 발 한 번만 헛디디면 . 해골도 못 찾을 곳이 몇 군데가 되는지 모르는 터인데, 네 따위 년이 가면 어디로 가, 고 여우 같은 년, 내가 고년에게 속았거든……. 홍참의 며느리니 무엇이니 하는 서슬에 생으로 조심을 하였지……. 그렇지 아니하더면 고년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당장에……. 어 참 절통하거든.”\n하면서 이씨부인을 찾아다니는데, 그때 다행히 어둔 밤이라, 이씨부인이 어느 바윗돌 위에 꼭 붙어 서서 장포수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으나 장포수의 눈에 띄지 아니하였는데, 장포수의 어미가 횃불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이씨 부인 숨어 있는 바위 앞으로 향하여 온다.\n만일 그 산에서 조금만 발씨가 익은 사람 같으면 숨바꼭질하듯 숨어도 찾기가 썩 어려울 터이지마는, 그 부인이 그런 험한 산은 이야기도 못 듣고 자라난 여편네라. 장포수 집을 피하여 도망할 욕심으로 뛰어 나서기는 하였으나 어둔 밤 험한 산에 어찌 달아날 생각을 할 수는 있으리요. 그러나 당장 붙들릴 지경에야 다만 한 발자국을 떼어놓다가 불들리더라도 달아날 수밖에 없는 터이라. 부인이 횃불 오는 것을 보고 기를 쓰고 달아나다가 횃불 든 노파의 눈에 띄었더라.\n노파가 횃불을 번쩍 들고,\n“예 있다, 저리로 달아난다. 딱쇠야, 얼른 가서 붙들어라.”\n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부인이 제 정신이 있고 달아나든지 정신 없이 달아나든지, 여간 남자도 감히 발을 붙여 볼 생의를 못할 험한 곳으로 달음박질하다가, 그곳이 어떻게 된 곳인지 낭떠러지로 한 발을 헛디디며 내리굴러 떨어진다.\n횃불 든 노파는 부인을 쫓아가느라고 제 앞만 보다가 부인 간 곳을 잃고 딴 데로 향하여 가다가 횃불을 들어 딱쇠를 주며,\n“이애 이애, 그년이 저리 갔다. 네가 이 횃불을 들고 얼른 가서 붙들어오너라.”\n딱쇠가 미처 대답할 새가 없이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 횃불을 얼른 받아들더니, 눈에 보이는 물건 집으러 가듯이 살같이 빨리 쫓아가는데, 원래 산에서는 다람쥐같이 날쌘 놈이라. 흥은 무슨 흥이 그리 나던지, 흥김에 정신을 잃었던지 한참을 달음박질하다가 횃불이 툭 꺼지며 지척을 불변이라.\n딱쇠가 제깐에도 어림없는 짓 한 줄 알고도로 제 집으로 가려 하나 어디 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지라. 처음에는 소리를 나직나직하여 어미를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니 마지못하여 군호 소리를 크게 냅뜨다가 원래 짐승 많은 산중이라 겁이 더럭 나서 아무 소리 못하고 어림치고 제 집을 찾아가는 데 발길 돌려놓는 곳이 , 한 치만 틀려도 향하여 가는 곳은 어림없이 틀릴 터인데, 딱쇠 가는 발길은 여간 한 치만 틀려놓은 것이 아니라 사뭇 틀려놓은 모양이라.\n아무리 산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기로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한 어둔 밤에 치악산 중에서 길을 잃고 겁이 아니 난다는 장사가 없을지라. 쳐다보면 하늘에 닿은 듯한 높은 산봉우리 봉우리요, 내려다보면 천 장 만 장 되는 구렁텅이 구렁텅이라.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향방을 찾는 데, 어디서 더운 기운이 확 끼치면서 머리끝이 쭈뼛쭈뼛하여지는데, 딱쇠가 그런 겁결에도 제 장기대로 총 방아쇠에 화승불을 박아 들고 급히 숨을 곳을 찾다가 마른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가락이 방아쇠 걸쇠를 잡아 당겼는데, 방아쇠가 뚝 떨어지며 총소리가 탕 난다.\n마침 그 옆에 범 한 마리가 엎드렸다가 사람의 발자취를 듣고 튀어나오려다가 바람결에 화승 내를 맡고 바위 돌 옆에 납죽 엎드리던 터이라 딱쇠의 헛총이 터지면서 공교히 그 철환이 범의 허리를 맞춘지라. 천 근 대호가 선불을 맞고 왈칵 달려들어서 딱쇠를 물어 죽였는데 치악산 중에 유명한 일방 포수가 호랑이의 밥이 되었더라.\n강원도 금강산 백운사의 수월당이라 하는 중은 나이 칠십이 되도록 몸에 벼룩 한 마리 잡아 죽여 본 일없는 도승이라. 인간에 허다한 사람을 모아 놓고 제일 천진의 사람이 누구냐 할 지경이면 아마 수월당보다 더한 천진이 없는 터이라. 그러나 중의 정도로는 조금 무식한 축으로 가는 고로 이름은 높이 나지 아니하였으나, 제 마음에는 이생에 도를 닦아서 후생에는 정녕 부처님이 될 줄만 알고 있는 중이라. 산삼을 얻어먹었는지, 본래 기운이 그렇게 좋던지, 동지섣달에 눈이 길길이 쌓인 때 먼 길을 곧잘 다니는 사람이라. 십삼 도 강산을 문턱 밟듯 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는데, 나이 칠십에 또 무슨 구경을 하러 나섰던지 원주 치악산 구결을 들어갔더라.\n사람이 수가 좋으면 여간 짐승 낱이나 있는 곳으로 쏘다녀도 관계치 아니 하던지, 수월당이 칠십 년을 산에서 늙고 산으로만 쏘다녀도 짐승 무서운 줄을 모르고 다녔는데 어림없이 믿는 것이 있더라.\n힘이 세서 힘을 믿는 젓도 아니오, 짐승 제어하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부처님 영험으로 짐승이 감히 못 덤비는 줄로 여기고 있는 터이라.\n걸음을 걸으면서 염불에 골똘하여 길을 읽고 향방 없이 갈팡질팡하는데 석양은 말 없이 넘어가고 산은 만학천봉이다.\n만일 범상한 사람 같으면 기가 딱 막혔을 터이지마는, 어림없는 수월당은 일생 믿는 부처님 영험을 믿고 겁은 반 푼어치도 아니 내나, 길 없는 험한 산에서 밤은 되고 날은 춥고 허기는 잔뜩 져서 어찌할 수 없는 터이라. 나무아미타불을 불러도 배는 배대로 고프고 날은 날대로 저물고 춥기는 점점 더 추워지더니 나중에는 염불할 경황도 없는지라. 가만히 앉아서 밤 지내기만 기다렸으면 좋으련마는, 앉으면 더 떨리는 고로 서서 어정어정 다니다가 어느 비탈에 내리구르는데 그 비탈은 과히 위태한 비탈은 아니오, 사태 내린 황토이라. 한 길쯤 되는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들어가며 웬 여편네의 몸뚱이와 마주 부딪치며 마주 소리를 질렀더라.\n그 여편네는 이씨부인이라. 부인이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질 때에는 죽는 줄만 알았더니,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아늑하기가 이를 것 없는데 몸도 다치지 아니한지라. 부인이 잠시 동안이라도 장포수에게 붙들리지 아니하는 것만 다행히 여겨서 그 구렁텅이 속에 가만히 웅그리고 앉았던 터이라.\n중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이씨부인은 장포수로만 알고, 이제는 붙들렸다 싶은 마음에 설움이 북받쳐서 울음이 나오는데, 이씨부인 같이 얌전한 터에 그렇게 망측하게 악을 쓰며 울기는 뜻밖이다.\n(부이)“애그, 이 몹쓸 놈에게 붙들렸구나. 이년의 팔자가 무슨 팔자란 말이냐. 충신과 열녀의 마음은 가마솥에 기름을 끓이고 그 속에 집어넣으며 항복을 받으려 하여도 못 받는 것이라. 나를 기름에 졸이든지 칼로 저미든지 내마음은 못 빼앗을 터인데, 이 몹쓸 놈이 내 마음은 못 빼앗고 내 몸을 빼앗으려 드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이놈, 이 몹쓸 포수놈아, 네가 우악한 힘을 믿고 내 몸을 억지로 욕을 보이고 네 욕심 채움을 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네 총으로 나를 놓아 죽여다오. 만일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네 집에 있는 화약 뭉텅이로 너의 모자를 불씨를 묻게 할 터이다.”\n하며 산골이 울리도록 악을 쓰며 우는데, 생불 같은 수월당이 그 소리를 들을수록 이상하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가만히 앉아 듣다가 염불을 한다.\n“나무아미타불,틀:Break 나무아미타불,틀:Break 나무아미타불.”\n저물도록 하는 소리가 그 소리 뿐이라.\n이씨부인의 마음에는, 저놈이 달려들어서 이 자리에서 나를 욕을 보이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제 집으로 끌고 가서 욕을 보이리라 싶은 생각뿐이라.\n욕은 본 셈 잡고 설운 생각만 하고 우는데, 중의 염불도 그치지 아니하고 부인의 울음도 그치지 아니한다.양반이 대단한 것이니 무엇이 대단한 것이니 하여도 사람의 평생 공부한 심력같이 대단한 것은 없는지라. 수월당이 추운 것도 잊고 배고픈 것도 잊어 버리고 염불만 하는데, 밤이 새도록 그칠 줄을 모르는지라. 필경은 얌전하고 또 얌전한 양반의 집 젊은 여편네가 먼저 냅뜬다.\n(부인)“여보, 웬 사람이요? 나는 포수가 나를 쫓아 들어온 줄로만 알았더니 포수가 아닌가 보구려. 누구요, 말 좀 자세하오.”\n수월당이 그 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입에서 나오느니 나무아미타불 소리뿐이라.\n부인이 도리어 이상한 마음이 나서 가만히 그 동정만 본즉, 대체 포수는 아니오, 늙은 중인 듯싶은지라.\n(부인)“여보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니 아마 어느 절 대사인가 보구려. 관세음보살님이 인간에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려고 자비심 많고 도덕심 깊은 대사를 보내셔서 나를 살려주라 하시더니까.\n나는 아무 죄 없이 사람이 겪지 못할 고생을 하다가 그 고생도 내게 과분하던지, 험한 산중에 들어와 이 고생을 하고 있소. 여보, 날 좀 도와주오.”\n하면서 비는데, 수월당이 염불을 그치고 가만히 앉았다가 부인더러 자세한 말을 물으니, 부인이 일장 설화를 시작하는데, 그 말을 마치지 못하여 동방에 날이 새더라.\n천하에 기이한 산은 우리나라 금강산이라.\n희고 흰 산봉우리는 옥으로 빚은 듯이 결백한데, 그 속에는 아마도 신선이 있든지 생불이 있든지, 인간에 없는 것이 저 속에는 있거니 의심할 만하게 된 곳이라.\n일만이천봉이 하늘에 닿듯이 높이 솟았는데 구름이지 산인지 그림인지 얼론 보고는 자세 알 수 없는 곳이라.\n그 산에 구경이 좋다고 글 짓고 노래하고 술 먹는 구경꾼들이 어느 봉에 발자취 아니 간 곳이 없는 터이라.\n그러한 명산 중에 근래 별 구경 하나가 생겼더라.\n신선도 아니오 생불도 아니라, 새파란 젊은 여승 하나가 생겼는데, 어떠한 일색이던지 여간 돌중들은 그 승의 얼굴 한 번만 본 후에는 염불을 하여도 정신 없이 하고, 잿밥을 먹어도 맛 모르고 먹고, 잠꼬대를 하여도 승의 이야기를 하고, 경쇠를 치려면 법총의 대강이를 두드린다.\n그러나 그 승은 사람이 옆에 지나가도 거들떠보지도 아니하는 승이라. 옛말에 승각시 하더니, 그런 쌀쌀한 승각시는 세상에 없는 터이라. 어떤 젊은 중놈들이 건으로 그 승을 보러 다니느라고 날마다 그 승방 우물 길 근처에서 빙빙 돌다가 그 승이 ,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동지섣달 추운 때에도 냉수 한 바가지씩 얻어서 벌커덕 먹고 가는데, 또 다른 중 한 놈은 그 승방 근처에 와서 돌기는 도나 정작 승이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숫기가 좋지 못하여, 얼른 가서 먹을 물 좀 달라 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발등을 디디어 빼앗기고 도리어 슬슬 피하여 간다. 냉수 바가지나 족히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혜명이요, 냉수 한 바가지도 못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강은이라. 혜명이가 냉수를 켤 때마다 강은이는 눈꼴이 틀려서 혜명이를 벼르고 가더니, 제 동무들에게 말을 내되, 혜명이 가 일색승년과 어우러져서 연놈이 죽자 사자 한다, 내 눈에 세 번이나 들켰다, 어제 저녁에 해지고 어스러할 때에 혜명이가 그 승년을 끌고 법당으로 들어가다가 내게 들켜서, 혜명이는 산으로 올라가고 승년은 판도방 부엌으로 들어가더라 하며, 보는 사람마다 그 말을 하였는데 세상에 그 소문같이 빨리 나는 소문은 없는 것이라. 한 입 건너 두입, 두 입 건너 세 입이라.\n불과 며칠 동안에 금강산 모든 절이 들썩들썩하도록 그 이야기뿐이라. 변으로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혜명의 일이 부러워서 침을 꽤 흘리고 말하는 중도 많이 있는데, 어찌하였던지 그 소문이 너무 왁자하여 해명이 있는 절에서는 혜명이를 벌을 주어 내쫓고, 그 승 있는 승방에서는 승을 벌을 주어 내쫓는데, 혜명이와 강은이가 무릎맞춤이 되어서 혜명의 발명이 되려니 하였더니, 그 몹쓸 강은이란 놈이 혜명이더러 하는 말이,\n“이놈아,너도 사람이지, 그 승년이 우물에 갈 적마다 네가 쫓아다니던 것은 나만 보았느냐. 오냐,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소월당 스님 생신 날 그년이 소월당 스님을 뵈옵고 오는 길에 네가 그 승방 근처에 숨어 있다가 그년을 법당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하 밉살스럽기에 기침 한 번을 하였더니, 승년이 네가 붙든 손목을 뿌리치고 판도방 부엌으로 들어가며 눈깔이 흰 죽사발 같이 나를 흘겨보며 가고, 너는 산으로 비슥비슥 올라가며 나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다가 넘어지던 생각을 못하느냐. 에끼 못된 놈, 그까짓 것을 하다가는 아무 때든지 부처님께 벌역을 입을라.”\n하는 소리 한 마디에, 혜명이는 무슨 말을 하든지 여러 중이 딱딱 으르며 꾸짖으며 경계를 하더니 필경은 내쫓겼더라.\n하지도 못하고 무엇에 무엇 묻힌다는 상소리가 있더니, 혜명 같은 중은 헛소문만 떡 벌어져서 벌을 당하고 쫓겨가니 그런 원통한 일이 없을 터이나, 그러나 그놈은 제가 허덕거리던 죄나 있으니 불쌍할 것이 없거니와, 혜명이와 눈이 맞았느니 배가 맞았느니 하고 늙은 승, 젊은 승이 모여 앉아서 벌을 쓰고 내쫓는 것을 당하는 승의 사정이야 참 불쌍하건마는,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고 ‘그년 그년’하며 욕하는 사람뿐이라.\n그 승의 이름은 수은이고 속성은 이가인데, 머리 깎고 승 된 지가 불과 수삭이라. 그 승의 가문이 어떠한지 사람이 어떠한지 대강 짐작하는 사람은 수월당 하나뿐인데, 대체 그 승은 원주 단구역마을 사는 홍참의 며느리라.\n치악산에서 죽을 것을 수월당의 은혜로 살았다고, 수월당이라는 수자와 은혜은자로 이름을 지은 터이라. 얼음 같은 마음에 행실 부정하다는 말을 듣고 절에도 못 있고 쫓겨가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n죽든지 살아서 어디로 가든지 수월당이나 마지막 가서 보리라 하고 수월당을 보러 갔다.\n(승)“수월 스님, 소승은 죄 없이 죄명을 쓰고 소승이 승방에서 벌을 받고 쫓겨가는 길이올시다.”\n(수월)“나무아미타불, 미련한 인간은 애매한 말을 하더라도 밝으신 부처님은 무죄한 줄 아실 터이니, 사람이 평생에 제 마음만 옳게 가지면 그만이지 무슨 걱정하시오.”\n하면서 눈을 내리 감고 가만히 앉았는데, 수은의 마음에는 수월당을 보면 부모나 본 듯이 원통한 말을 하려 하였더니 수월당이 말이 불과 그뿐이라.\n더 앉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나, 수월당이 눈감고 앉았는 것을 보더니 더 앉았을 마음도 없는지라. 수은이가 그 길로 나서서 절 동구로 나가는데, 먹바지 먹저고리에 먹행전 돋우치고 바랑 짊어지고 송낙 수그려 쓰고 절 동구 밖으로 나가는 뒷모양은 중인지 승인지 언뜻 보며 모르려니와, 꽃 같은 얼굴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어디로 가든지 여편네 태도를 감출 수 없을지라. 빈 산 그윽한 길에 갈 곳 없이 가는 수은이가 혼자 나서서 아장아장 걸어가며 걸음걸음 생각이라.\n기막힌 팔자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오, 첩첩한 설움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오, 마디마디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둘은 속인이요, 둘은 중이라.\n정이 들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같이 미워서 생각이 난다. 속인은 최치운이와 장포수요, 중은 혜명이와 강은이라.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고, 이가 박박 갈리도록 생각이 나는데, 등뒤에서 그런 몹쓸놈이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여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겁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 혼자 나서서 어디로 가든지 그런 놈에게 필경 욕을 볼 것 같은지라, 차라리 진작 죽어서 욕도 보지말고 이런 고생도 아니하는 것이 편하다 생각하고 죽기로 결심하였더라.\n물에 빠져 죽자 하나 산중에 깊은 물도 없고, 약을 먹고 죽자 하니 내 몸에 먹고 죽을 약도 없는지라 . 생각다 못하여 고목나무에 머리나 쾅쾅 부딪쳐 죽으려고 나무 밑으로 가 서서 생각하니, 한 번을 부딪쳐서 얼른 죽으면 좋으련마는, 아프고 지겨운 마음에 설부딪쳐서 얼른 죽지도 못하면 그 고생을 어찌하리 싶은 마음이 나서 부딪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사면을 휘휘 돌아다보니, 산은 구름 같고 구름은 산 같은데, 바람결에 들리는 것은 먼 절의 종치는 소리라.\n수은이가 쇠북 소리를 듣다가 눈물을 씻으며 혼잣말이라.\n“에그, 그 소리야 한가도 하다. 불붙듯하는 이 내 간장이 저 소리 한 마디에 서느렇게 다 식는다. 원수를 맺고 맺어 가슴에 쌓인 원망 수미산같이 크던 것이 바람결에 구름 슬 듯 스러진다. 시어머니 원망말고 내 팔자 한탄할 일이로다. 나도 전생에 우리 시어머니같이 악한 마음을 먹고 악한 일을 많이 많이 하였기로 이런 죄를 받는 것이라. 미련한 인간이 제 죄는 모르고 하나님 원망하는 것이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라. 오냐, 죽지말고 좀더 살았다가 고생을 더하고 전생 죄악을 다 벗은 후에 죽어서 연화세계로는 못 갈지라도 후생에나 복을 많이 타고 나고지고. 나무아미타불, 일월도 다 밝으신 부처님의 마음, 하늘보다 높으신 부처님의 도덕, 일체 중생을 크게 사랑하시고 크게 슬피 여기시는 부처님께서 소승을 도와주소서. 소승이 어디로 가든지 욕만 보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면 이 몸이 이 생에 겁계를 지낼 대로 지내고 부처님 도를 닦을 대로 닦아 보겠습니다. (이 몸이 이 생에 착한 일을 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해에 이 몸을 건너보리 한 뜻이라.)\n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이 절에서 애매히 쫓겨나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다른 절로 갑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n적막한 빈 산주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염불을 하면서 산을 내려가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깍깍 짖으며 빙빙 도니, 고생 많이 한 수은이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슈어 소리를 하다가 까마귀가 무엇을 뚝 떨어뜨려서 수은의 얼굴에 내려지는데, 얼굴이 선득하며 평생에 맡아보지 못하던 흉악한 냄새가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손으로 얼굴에 떨어진 것을 집어 버리는데 무슨 썩은 창자이라.\n수은이가 코를 찡그리고 진저리를 부득부득 치며 세수할 물을 찾아다니나 그 근처는 물도 그리 귀한 곳일는지, 한참을 돌아다녀도 물을 찾지 못하고 길 없는 깊은 골로 내려서서 갈팡질팡하는데, 그 고약한 냄새가 새로이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는 제 얼굴에서 냄새가 그렇게 나는 줄만 알고, 걸음을 걸어도 얼굴에 창자 떨어지던 생각만 나서 한눈을 팔고 가다가 발 밑에 무엇이 물큰 밝히는데 ,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그것도 무슨 창자이라. 에그머니 소리를 지르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옆을 돌아다보니, 웬 송장 하나가 있는데, 까막까치가 오장을 파헤쳐서 끔찍하여 볼 수가 없는지라.\n꿈에 보일까 겁이 나서 고개를 외로 두르고 달아나는데, 대체 언뜻 보아도 송장은 남자의 송장이라. 일부러 길을 찾으러 들었으면 애를 어떻게 썼을는 지 몰랐을 터이나, 정신 없이 가는 길에 길 바로 들어서 해동갑하여 가다가 개 짖고 연기나는 조그마한 동네를 찾아 들어가니, 몇 집이나 되는 동네인지 건성드뭇한 마을집이 띄엄띄엄 박혔는데, 어느 집일는지 이웃집 모르게 떡하여 먹기 좋을 만하게 된 집들이라. 수은이가 어느 집이든지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 잠이나 자고 아침, 저녁 밥 두 끼만 얻어먹고 갈 작정인데, 어느 집으로 들어가면 좋을지 몰라서 주저하다가 아무 집이나 들어갈 작정으로 어느 집으로 향하여 가다가 차마 못 들어가고 도로 돌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길 아래 웬 우물이 있는 것을 보고 우물가로 내려간다.\n사람이 빠지더라도 반 길이 될락말락한 우물인데, 뒤턱은 높고 앞턱을 낮아서 낮은 편으로 물이 넘쳐서 밤낮 쉬지 아니하고 줄줄 흘러 내려가는 물이라. 수은이가 그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세수를 하다가 우물을 내려보고 정신 없이 우두커니 앉았더니, 홀연히 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지며 혼잣말이라.\n“에그 , 저것이 내 그림자인가. 내가 이 모양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꼬.\n우리 아버지가 평안감사로 계실 때는 내가 어리고 철모를 때라. 내가 선화당에 눌러 나갔다가 영명사 중이 우리 아버지께 문안하러 온 것을 보고 내가 무서워서 울었더니 통인이 중이 내쫓던 생각이 지금도 의회하게 나는구나. 에그,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일 있다. 내가 평안 감영 선화당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 꾀꼬리 잡아 달라고 아버지께 응석을 하며 떼거리를 썼더니, 아버지께서 통인을 돌아다보시면서, 저 꾀꼬리를 잡아다가 아기 주어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뚝 떨어지며 통인이 능청스럽게 ‘네’ 하며 나가더니 금세 다시 돌쳐 들어오면서 꾀꼬리를 잡으라고 일렀습니다 하더니, 그날 해지기 전에 눈이 또렷또렷하게 산 꾀꼬리를 잡아 들여왔는데, 우리 아버지께서도 꾀꼬리를 참 잡아올 줄은 모르셨다고 말씀하시던 그 생각도 나는구나. 그렇게 기구 있던 평안감사의 무남독녀로 있을 때에 내가 귀염은 어떻게 받았으며 호강은 어떻게 하였던고. 그렇게 자라나서 이렇게 되었으니, 세상에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친정 부모에게 나같이 귀염받던 사람도 없을 것이요, 시부모에게 나같이 미움받은 사람도 없으렷다 단구역마을 홍참의 . 집 대문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을 교군에 담아서 그 흉악한 치악산에 갖다 버릴 때에 내 마음이 어떠하며 내 고생이 어떠 하였던고. 에그,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할수록 소름이 죽죽 끼치고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는구나. 오냐, 호강을 하였든지 고생을 하였든지 지낸 일은 꿈같이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후에는 또 무슨 고생이 남았는지 생각을 할수록 그것이 근심이라. 에그, 앞일도 앞일이어니와, 오늘 저녁에 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뉘 집에 가서 잠을 잘꼬.”\n수은이가 그 생각을 하다가 기가 칵 막혀서 목이 메어 울며 설운 사정이 새로이 나온다.\n“고생도 분수가 있지. 내가 밥까지 빌어먹으러 다닌단 말이냐. 오늘 낮에 죽고 싶은 생각이 나서 죽으려다가 아니 죽은 것이 내 생각이 잘못 들었구나. 하늘이 죽어라 죽어라 하신 내 팔자가 아니 죽고 살아 있으니 무슨 고생을 아니하리. 오냐, 눈 꿈쩍 죽으면 이것저것 모르고 내 신세에 편할 것이라. 내가 죽어도 잊히지 못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 친정 부모의 은혜를 못 잊는 것도 아니오, 남편의 정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시부모에게 야속한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최치운이와 장포수에게 겁나던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오, 혜명이와 강은에게 미운 마음을 못 잊는 것도 아니라. 자나깨나 눈에 선하게 생각나는 일은 홍참의 댁 마당에서 고두쇠란 놈이 그 무지한 발길로 금홍이를 퍽퍽 걷어차던 그 모양이라. 불쌍하다 금홍이, 참혹하다 금홍이, 죽었는가 살았는가, 오냐, 살았으면 다향하고 죽었으면 저승에 가서 만나리라.”\n하더니 웅그리고 앉은 채로 눈을 깍 감으면서 우물 속으로 뚝 떨어지는데 물 속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조선 천지에 사람 많이 사는 곳은 장안 성중이라. 체바퀴같이 둥그렇게 둘린 성 가운데 흩어진 바둑같이 총총 들어박힌 것이 사람의 집뿐이라.\n고래등간이 큰 기와집도 있고, 달팽이같이 작은 초가집도 있고, 금의옥식을 주체 못하는 부잣집도 있고 생쥐 볼가심할 쌀 한 톨 없는 가난뱅이 집도 있는데, 대체 누구를 도와주려고 그리 따뜻하든지, 섣달 초승이 되도록 물 한 방울 아니 어는 겨울이언마는, 나무 비싼 돌구멍 속에 가난한 사람들 은 삼척 냉돌에 굶어 들어앉아서 얼어 죽느니 배고파 죽느니 하며 부잣집 사람을 보면 신선으로 알고 있더라. 돈이 자가사리 끓듯하고, 남종, 여비가 구더기 끓듯하고 , 청지기, 문객이 줄남생이 따르듯 하는 재동 이판서 집은 누가 보던지 저 집 지니고 있는 사람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런 호강을 하누 하며 부러워한다.\n이판서 집 안방은 말이 안방이지, 허다한 사랑 꾸미듯 하였는데, 안주 수병 둘러치고 화류 문갑 나란히 놓고 갖은 문방 제구에 우리나라 물건과 서양 물건을 간간이 섞어 놓고, 매화분 위에는 파란 새 한 쌍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벽에걸린 자명종은 오후 다섯시를 땅땅 치는데, 아랫목 몽고 요 위에 앉은 부인은 주인 정부인이라.\n그 부인은 평생에 호강만 하고 지낸 터인데, 언뜻 보면 젊은 부인 같으나 자세 보면 얼굴에 잔 살이 많이 잡힌 중늙은이라 대체 누가 보던지 저런 부인 이야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뿐이라.\n그러한 그 부인이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울다가 기가 막혀서 까무러쳤는 데 온 집안이 눈이 둥그래지며 야단이라.\n주인 이판서가 사랑에서 들어오는 길로 안방 한가운데 딱 서서 까무러친 정부인을 물끄러미 보니, 부인의 좌우 옆으로 지네 발 달리듯이 늘어 앉았던 계집종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윗목으로 나오는데, 이판서가 아랫목으로 들어가 앉으며 계집종 하나를 부른다.\n“금홍아, 이리 가깝게 와서 이야기 좀 자세하여라.”\n금홍이가 고개를 수그리고 눈물을 씻으며 윗간으로 나가다가 아랫간으로 돌쳐 들어오는데, 본래 금홍이가 밤벌레같이 살이 찌고 복사꽃같이 곱던 얼굴이러니, 중병을 치렀는지 벼만 남은 얼굴에 혈색이 조금도 없고 왼편 다리를 자축자축하며 걸어 들어오는 모양이 아무리 보아도 전에 보던 금홍이는 아니더라.\n아랫목에 까무러쳐 누웠던 정부인은 청심환 효험인지 여러 종들이 다리팔을 주무른 효험인지 한숨을 휘 수며 돌아눕더니, 기운도 돌리고 정신도 나는 모양이라, 금홍이를 부르더니 금홍의 팔을 붙들고 일어 앉으며 새로이 우는데, 금홍이가 따라 운다.\n(이판서)“여보 마누라, 울지 말고 금홍이에게 이야기 좀 자세 들어 봅시다.”\n부인은 의구히 눈물을 흘리고 앉았는데, 금홍이가 눈물을 씻더니 고개를 수그리고 서서 말을 한다.\n본래 홍참의 집에서 며느리를 죽을 곳에 보내려고 야단이 나던 날에 금홍이가 이씨부인의 교군채를 붙들고 바른말을 하다가 고두쇠 발길에 어찌 채이고 얻어맞았던지 한 달 동안을 몸져누웠다가 한 달 만에 겨우 일어나서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을 찾아보고 말을 솜씨 있게 묻기도 하였거니와, 교군꾼은 금홍이와 단 둘이 조용히 앉아 말하는 것이 용꿈이나 꾸고 선녀나 데리고 앉아서 말하는 듯한 흥김에, 본 대로 들은 대로 아는 대로 그린 듯이 낱낱이 형용을 하여 말하였더라.\n대체 김씨부인의 일동일정을 옥단이 모르는 일이 없고, 옥단이가 아는 일은 고두쇠가 모르는 것이 없는 터이라.\n고두쇠가 이씨부인을 치악산에 내버리고 들어온 후로 고두쇠가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과 한 가지 통정, 두 가지 통정, 차차 통정하는 친구가 되어 술 먹어 얼근하고 흥이 날 대로 나는 때에 술잔을 연하여 권하며 하는 말이,\n“이애, 먹어라, 먹고 보자. 살아 생전 일배주라. 죽으면 못 먹느니라.\n내가 요사이 돈푼이나 넉넉히 쓰고 지내는 것이 다 우리 동무네가 치악산에 가서 애쓴 덕이라. 만일 최서방 치운이가 살았더면 내가 돈더미에 올라앉고 너희들이 내 술에 곯아 죽었을 것이다. 자, 먹어라, 네 주량을 내가 안다, 엄살 말고 먹어라. 술 먹으며 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끼리 못할 말이 무엇 있겠느냐.”\n하면서 제 계집에게 들은 말과, 오동나무 위에서 홍참의 속이던 궁흉극악한 일을 낱낱이 하며, 이런 말은 아무더러든지 말하지 마라 하였는데, 그 교군꾼이 제 계집에게도 말을 아니하고 참았던 말을 금홍에게 한 마디 빼지 않고 다 말하였는지라.\n금홍이가 그 말을 듣고 끼었던 가락지를 팔아서 받은 몇 개와 딱성냥 몇갑을 사가지고 혼자 치악산으로 들어가서 향방 없이 쏘대다가 배가 고프면 흔한 삭정이를 주워서 화롯불을 질러놓고 인절미를 구워 먹고, 밤이 되면 화롯불을 질러놓고 인절미를 구워 먹고, 밤이 되면 화롯불 앞에서 앉아 졸다가 날이 새면 또 방향 없이 다니는데, 그때 금홍이가 이씨부인을 만나지 못하면 죽을 작정이라. 그렇게 이틀을 다니다가 하늘이 불러대었든지 귀신이 가르쳐 주었던지, 가느라 가느라고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쫓아가니, 그 집이 장포수의 집이라, 장포수의 어미가 장포수 죽은 후에 장포수의 대강이와 두 발목쟁이와 총과 화약 통만 주워다가, 대강이와 발은 땅에 묻고 총과 화약통은 방에 두고 보며 자식을 생각하고 청승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감자 섬 있는 것만 다 먹은 후에는 빌어먹으러 나갈 모양이라.\n마음을 잘못 가진 고로 산신령님께 벌역을 입은 듯하여 후회만 하고 있는 중에 금홍이가 찾아 들어가니, 노파가 제 죄를 조금도 감추지 아니하고 낱낱이 말하는데, 수월당이 이씨부인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나갈 때 장포수 집에 들어와서 노파를 보고 경계하는 말이, 그런 몹쓸 마음먹으면 죄를 받으리라고 설법을 하니, 노파의 마음에 하늘에서 부처님이 내려오신 듯싶어서 소름이 작작 끼치면서 겁이 나서 빌었는데, 수월당이 데리고 가는 부인은 홍참의 며느리인 줄 알았거니와, 늙은 중은 어느 절 부처님인지 모르겠다 하거늘 금홍이가 그 , 말을 들은즉 이씨부인이 죽지 아니하고 승이 될 줄로 짐작하고 혼자 나서서 찾으러 다니는데 다른 고생도 허다하거니와 인물 어여쁜 계집아이라, 어디로 가든지 제일 겁나는 것이 남자이라. 금홍이가 사람을 보면 코먹은 소리를 어찌 솜씨 있게 하던지, 건달이 놈들이 얼굴만 보고 쫓아와서 지분거리다가 목소리를 들으면 돌아서 하는 말이, 아깝다고년, 인물값을 하느라고 벌써 종두를 넣고나 하며 달아난다.\n이렇든지 저렇든지, 금홍의 고생은 한량없는 고생이라, 노자는 없고 발을 부르트고, 이씨부인의 종적은 바다에 돌을 집어넣은 듯이 알 수 없는지라, 하릴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하는데, 그것이 다 금홍의 이야기에서 대강 추려 나온 말이라, 이판서 내외가 그 말을 듣고 앉았다가 정부인은 아무 생각 없이 울기만 하고, 이판서는 천연히 앉아서 기침 한 번을 하고 일어서면서 금홍이를 부르더니, 안사랑 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쥐도 새도 못 듣게 무슨 말을 일러 보내니, 그 말은 정부인도 무슨 말인지 몰랐더라.\n금홍이가 그날 그 시로 아무 말 없이 살며시 나가더니 종적을 알 수 없는지라. 정부인이 금홍이 나가던 날부터 때마다 기다리고 날마다 기다리면서 애매한 금홍의 어미 아비를 의심하여 도망을 시켰느니, 빼 팔아먹었느니 하면서 꾸짖고 달래고 어르고 벼르는데, 금홍 어미가 의심을 받을 만한 일도 있더라. 당초에 금홍이가 서울로 들어오던 날 정부인 앞에 서서 목이 메어서 홍참의 집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인의 경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 여린 계집종들이 눈물이 짤끔짤끔 흘리면서 이씨부인의 말만 하고 섰으나, 금홍어미는 제 딸 금홍의 고생하였다는 말에 뼈가 저려서 하는 말이, 남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많았더라.\n“에그, 그런 몹쓸 놈이 있나. 그 무지한 고두쇠란 놈이 우리 금홍이같이 약한 것을 그렇게 몹시 쳤단 말이냐. 금홍이가 한 달만에 땅을 디디고 일어났다 하니 죽지 아니한 것이 이상하고 병신 아니 된 것이 의외이지. 내가 어찌하면 그놈의 원수를 갚을꼬. 에그, 우리 금홍이도 지각없는 것이지. 그렇게 얻어맞고 겨우 살아난 것이 서울로 즉시 오지 그 애를 쓰고 돌아다녀.\n우리 금홍이는 명도 길지. 범이 개 끓듯 하는 그 산중에서 어찌 살아왔누.\n올 겨울이 아무리 춥지는 아니하다 하였으나, 산에서 한둔을 하고 어찌 살아. 그나 그뿐인가, 치악산에서 내려와서 그 길로 또 다른 곳으로 나서서 아씨를 찾으려고 향방 없이 다녔다 하니, 저 혼자 나서서 찾기를 무슨 재주로 찾아, 저만 고생을 하여 싸지. 양반의 댁 종노릇하는 사람이 누가 금홍이 같이 제 몸은 죽든지 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고 상전만 위할 사람이 또 어디 있어 우리 금홍이는 . 그런 공로로 이 댁에서 속량이라도 하여 주실 만 하지.”\n하면서 횡설수설한 말이 있었는데, 금홍이가 달아난 후에 여러 종들 입에서 그 말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 중에 남의 흉 잘 보고 입내 잘 내고 상전에게 긴한 체 잘하는 삼월이라 하는 년이 금홍 어미 하던 말을 정부인의 귀에 낱낱이 까바치면서, 금홍이는 정녕 금홍 어미가 돌려내었다 하니, 부인은 그 말을 꼭 곧이듣고 이판서더러 그런 말을 하며 금홍의 어미 아비를 조겨서 금홍이를 찾을 도리를 하자 하나, 이판서는 들은 체도 아니할 뿐 아니라 도리어 금홍의 어미 아비를 다른 하인보다 별로 귀애하는 모양이라, 그런 고로 금홍의 어미가 금홍이를 도망시킨 줄로 의심하던 사람들이 다시 이판서를 의심하여 수근거린다.\n“정녕 대감께서 금홍이를 첩으로 들여앉히고 집 사 주어서 숨겨 두었나 보다. 옳지 그렇지, 우리도 그 눈치를 보았다. 금홍이가 어디로 가던 날 대감께서 안사랑 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시더니 썩 오랜 후에 내보내시더라.” 하며 , 금홍이는 정녕 이판서의 첩이 된 줄로 말이 퍼지더라.\n그때 금홍이는 두 패 교군을 타고 배선달이 배행을 서서 치악산으로 들어가서 장포수의 집으로 가더니, 교군꾼은 밖에 세우고 금홍이와 배선달만 들어가서 장포수의 어미에게 당부할 만한 말을 다 이르고, 그 길로 장포수의 어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더니 오막살이 집 하나를 사서 주고, 먹을 것입을 것도 넉넉히 대어 주고, 금홍이도 그 집에 있고 배선달은 하루 한 번씩 와서 금홍이와 무슨 은근한 의논을 하는데, 그렇게 지낸 지 한 달만에 금홍이는 배코를 살살 도리고 상투를 끌어올리더니 불치불검하게 남복을 하고 배선달을 따라 나섰는데 돈을 물쓰듯한다.\n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 그 며느리 없애 버린 후에는 그 집안에서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할 줄 알았더니, 며느리 없앤 후에는 무엇이 부족하여 김씨부인의 쨍알거리는 소리가 나는지 한 달 삼십 일에 웃고 지내는 날이 눈살을 아드득 찌푸리고 지내는 날보다 많지 못한 모양이라.\n옥단의 마음에는 김씨부인의 비위를 맞추어서 이씨부인을 없애 버리면 그 공로로 제 소원이 다 잘 될 줄로 알았더니, 제가 바라던 마음과는 틀려도 여간 트리는 것이 아니라, 열 가지를 바랐으면 한 가지쯤 제 마음대로 될락말락하였더라.\n대체 옥단이가 몇 가지 일을 바랐던지 아무것도 아니 되고, 다만 이씨부인의 입던 옷과 쓰던 그릇은 김씨부인이 생색쩍게 옥단이를 불러 내주며, 이것은 네가 다 가지라 하니, 옥단이가 그것을 받아 가지고 팔 만한 것은 팔아서 돈을 만들고 제가 가질 만한 것은 가지니, 그것도 작지 아니한 것이나, 그러나 김씨부인이 옥단에게 주고 싶어서 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입던 옷과 세간에 며느리 귀신이 붙은 듯이 보기도 싫은 마음이 있어서 불에 살라 버리려다가 약은 꾀를 먹고 옥단에게 내주었는데, 옥단이는 이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아랫사람은 유구무언이라고 좋은 낯으로 받았더라.\n대체 옥단이가 태산같이 바라던 최치운이가 죽었으니 최가의 돈 한푼 못 얻어먹고 헛공만 하고 냉가슴만 앓았고, 상전마님을 속량은 하여 주느니 마느 하더니, 일이 끝난 뒤에는 영감마님께서 허락을 아니하시니 좀 참아라 하며 요 핑계 저 핑계하고 날만 보내더니 오래된 뒤에는 말도 없이 그럭저럭 삭아졌더라.\n옥단이가 아무리 골이 나나, 제 죄가 있는 일이라, 그 일은 소문도 낼 수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며 감히 포달 한 번 못 부리고 좋은 체하고 있더라.\n그 이듬해, 정월 초하룻날, 옥단이가 김씨부인의 귀에 좋은 말을 하여 들릴 작정으로 ‘헤헤’ 웃으면서,\n(옥) “마님, 마님께서 올해 설은 참 재미있게 지내십니다.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앓던 이 빠지니보다 시원할 것이올시다. 쇤네가 공치사는 아니합니다마는 말씀은 바루 여쭙지, 쇤네가 아니면 그런 큰일을 하시겠습니까.”\n하더니 다시 남순이를 돌아다보며,\n“작은아씨, 작은아씨를 그렇게 미워하던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시원하지요, 자, 그것이 다 내 덕인 줄이나 아오, 하하하.”\n하면서 공치사를 하는데, 어떻든지 그 해 설은 훗훗이 잘 쇠는 모양이라.\n짓독에 바람이 든다더니,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가 그날 밤부터 눈이 휘둥그래지며 근심을 한다.\n정월 초하룻날 밤에 건넌방 지붕 위에서 휘파람 소리가 휙휙 나니, 안방에 앉았던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머리끝이 주뼛주뼛하여지는데, 남순이가 부인 앞에 바싹 안기며,\n“에그머니, 저것이 무슨 소리요, 건넌방 언니 죽은 귀신이 왔나베.”\n하면서 눈이 둥그래지니,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소름이 더욱 쪽쪽 끼치며 무서운 마음이 나서 견딜 수 없는지라.\n한참 동안은 괴괴하더니, 안방 뒷문 밖에서 휘파람 소리가 두세 마디 나며 안방 뒷문을 달각달각 흔드는데, 부인과 남순이가 에그머니 소리를 지르고 마주 끌어안고 발발 떨고 앉았더라.\n(남순)“어머니 어머니, 그것이 무엇이요?”\n(부인)“아무 소리말고 가만히 있거라.”\n(남)“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이 사랑에 나가서 아버지께 들어옵시사 여쭙시다.”\n(부)“네가 밖에 나가도 무서운 마음이 없겠느냐.”\n(남)“어머니와 둘이 나가면 무섭지 아니하여.”\n(부) “그러면 나와 같이 나가서 옥단이를 부르자, 그러나 내일 너의 아버지 뵙고 이런 이야기 하지 마라.”\n(남)“응, 알아들었소, 걱정말고 어서 옥단이나 부르러 나갑시다.”\n남순이는 앞에 서고 부인은 뒤에 서서 옥단이를 부르러 나가는데, 마당 한 가운데로 막 나서니, 지붕 위에서 무엇이 모래를 끼얹는지라. 부인과 남순이가 간이 콩만 하여지며 정신 없이 행랑으로 나가서 남순이가 옥단이를 부른다.\n“어멈 어멈, 어엄 자나, 어멈 어멈, 어멈 좀 들어와.”\n고두쇠는 술로 설을 쇠었는데, 잔뜩 취하여 자는데, 코 고는 소리가 맷돌질하는 소리 같고, 옥단이는 본래 잠귀가 어두운 년이라, 또한 잠이 깊이 들어서 귀에 왕방울을 흔들어도 모를 지경이라, 남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옥단이는 아니 깨고 옆의 행랑에서 자던 춘심이 추월이가 일어나 나와서 옥단이를 부르니, 그럭저럭 온 집안이 다 깨었더라.\n그 이튿날 밤부터 옥단이가 안방에서 상직잠을 자는데, 그날 밤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더라.\n초사흗날 식전에 안방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였는데, 춘심이가 안마당으로 들어오며 깜짝 놀라는 소리를 지르니, 부인과 옥단이가 급히 일어나서 나가본즉, 안방 지붕 위에 기왓장을 벗겨서 이리저리 늘어놓고 그 위에는 개 한 마리가 죽어 늘어졌는데, 그 개는 홍참의 집 개이라. 며칠 전에 그 개가 어디로 나가서 아니 들어온다고 동네 농군들이 때려 잡아먹었는가 의심하고 있던 터이라.\n개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죽은 것을 보니, 이상한 일이니 괴상한 변이니 하며 온 집안이 수군수군하고 온 동네가 왁자지껄하더니, 단구역마을 아이들이 무슨 큰 구경이나 난 듯이 모여 들어와서 기왓장 늘어놓은 것을 보더니, 그 중에 글자나 배우는 아이가 쳐다보며 수군거리는데,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삽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모두 떠들며 나가더라.무엇을 보고 그 아이들이 수군거리느냐 할 지경이면 별 것이 아니라 홍참의 집 안방 지붕 위의 기왓장을 활짝 벗겨 놓고 그 기왓장을 이상하게 늘어 놓았는데 망할 망자로 , 늘어놓은지라. 그날로 온 동네가 짝자그르 하고 떠드는 말이, 홍참의 댁은 망한다 하는 소리뿐이라.\n그 후 이삼 일 동안은 홍참의 집에 아무 일도 없었더니 초이렛날 밤에 단 구역마을에서 이상한 구경이 있으나 사람 사람이 겁이 나서 여간 담대한 사람이 아니면 문밖에 나가서 보지 못하였더라.\n개피떡같이 꼬부라진 초생달이 치악산 먼 봉우리로 넘어가고 밤이 적적한 데, 단구역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치악산 밑에서 새파란 불빛이 있다가 없다가 하더니, 그 불빛이 차차 단구역마을을 향하여 오더니, 단구역마을 앞뜰에 와서 스러진다. 어디서 계집에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처량한 울음 속에 말이 절반이라.\n“애고 애고, 이런 원통한 일이 있나. 내가 치악산 깊은 곳에 원통한 귀신이 되었으나 물 한 모금 떠놓아줄 사람이 없구나. 요년 옥단아, 내가 네 원수를 갚겠다, 너의 댁 마님 원수를 갚겠다. 새해에는 너의 댁에 좋은 일은 없으리라.”\n하며 우는 소리는 누가 듣든지 소름이 쪽쪽 끼치는데, 그 중에 홍참의 집 사람들에게는 더욱 유심히 들리고, 홍참의 집 사람 중에도 안방에 있는 김씨부인의 모녀와 상직잠 자는 옥단이는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라.\n고두쇠가 그날 어디서 공술 잔이나 푸근하게 얻어걸린 터이라, 얼근한 판에 장비(張飛)를 보더라도 씨름하러 대들 만하게 되었더라.\n정월 초하룻날 밤부터는 옥단이가 안방 상직잠을 자는 터이라, 고두쇠가 빈 행랑방에서 심심하던 판에 그 앞뜰에서 울음소리 나는 것을 듣고, 고두쇠 마음에 정녕 건넌방 아씨가 죽어 원귀가 되어 우는 것으로 알고, 처음에는 실쭉한 마음이 있더니, 나중에는 헛기운니 나서 빈 방에서 혼자 큰소리를 한다.\n“조 방정맞은 귀신, 제가 울면 누구를 어찌할 터인가, 제가 사람을 잡아 갈 수 있으면 벌써 와서 잡아갔지, 몇 달이나 지낸 뒤에 이제 와서 저들 밖에서 께께 울고만 있어, 오냐, 울대로 울어라. 네가 암만 울기로 누가 고뿔이나 들 줄 아느냐, 응, 무엇이고 무엇이야. 마님께 원수를 갚고 옥단에게 원수를 갚아. 치악산에 갖다버리기는 내가 갖다버렸다. 날더러는 감히 원수 갚는 다는 말이 없으니, 제깐에 고두쇠는 좀 딱딱한 것이로구. 대체 귀신이 다 무엇이며 도깨비란 것은 다 무엇인고. 내가 이때까지 내 눈으로 귀신도 못 보고 도깨비도 못 보았다. 술을 억병으로 먹고 캄캄한 그믐밤에 이 앞뜰로 몇 번을 지나다녀도 아니 보이더라. 에그, 저 방정맞은 귀신, 저런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참 뉘게 와서 붙기도 쉬운 것이라, 내가 쫓아나가서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두르며 쫓아 버리겠다. 요것, 누구를 보채면 굿이나 하고 떡조각이나 있을 줄 알았느냐.고 배라먹을 여편네, 나는 고것을 송도 최서방에게 붙여 주려고 그 애를 써서 치악산 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다가 나는 교군꾼을 데리고 어디 가서 슬쩍 숨고, 최서방은 교군 뒤에 멀찍이 따라오다가 최서방이 쓱 나섰으니, 그 깊은 산중에서 제가 옴치고 뛸 수가 있나. 일을 썩잘된 판인데, 웬 포수놈이 최서방을 놓아 죽이고 빼앗아가기에 정녕 그 포수의 계집이 된 줄 알았더니, 아아 또 방정을 떨고 말을 아니 듣다가 포수놈 솜씨게 죽은 것이로구. 그 포수놈은 어디 포수인 고. 최서방 죽던 때에 나와 교군꾼과 사람이 셋이나 숨어 서서 보면서. 그놈의 총이 무서워서 못 쫓아가고 도리어 도망질을 하였지, 내가 도무지 분풀이할 곳이 없더니, 오냐, 잘 왔다. 네가 내게 좀 대들어 보아라. 내가 왼발로 딴죽을 걸면 너까짓 것이 다 무엇이냐.”\n하면서 쫓아다니다가 술김에도 딴 의사가 난다.\n본래 고두쇠가 애만 쓰고 최치운의 돈을 얻어먹지 못한 것이 제일 분한 일이라. 당초 이씨부인이 아무 앙탈 없이 살며시 최치운이만 따라갔더면 옥단이와 고두쇠가 큰 수가 날 터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아니 된 것을 생각하니 열이 버썩 나서 못 견딜 지경이라. 그러나 그것이 다 욕심에서 나온 병이라. 새로이 욕심이 또 나는데, 그 욕심은 김씨부인에게 또 한번 잘 보이려는 흉계이라.\n이웃 행랑방 앞으로 돌아다니며 춘심이, 추월이를 깨운다.\n“여보 꾀쇠 어머니, 여보 점돌 어머니, 이것 큰일났소 말은 차차 하려니와, 두 분이 다 일어나서 나와 같이 아낙으로 좀 들어갑시다. 낮 같으면 내가 혼자라도 들어가겠소마는 밤이라 혼자 들어갈 수는 없소.”\n하며 수선을 피워서 춘심이, 추월이를 일으켜서 아낙으로 들여보내고 뒤에 따라 들어가는데, 그때는 들에서 나던 울음소리가 처음보다 조금 멀찍이 들리는데, 다만 처량한 애고 소리뿐이라, 안방에서는 부인의 모녀와 옥단이가 겁은 다 같이 난 터이라, 이마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떨며 눈이 동그래 앉아서 공론이 부산하다가 춘심이, 추월이를 보고 반색을 하는 판 이라, 고두쇠가 안마당에서 기침을 하며 마님께 여쭙는 말로.\n“소인 고두쇠올시다. 저것 큰일났습니다. 건넌방 아씨께서 정녕 원귀가 되셨나 보이다. 마님께 원수를 갚는다 하니, 저런 탈이 있습니까. 그러면 마님뿐이겠습니까. 작은아씨께는 어떠할는지 알 수 있습니까. 본래 아씨께서 철천한 한을 맺고 돌아가셔서 그 한을 이 댁에 와서 다 푸실 지경이면, 황송한 말씀으로 이 댁은 쑥밭이 될 터이올시다. 그러하온즉 소인은 상전댁을 위하여 소인의 한 몸으로 그 죄를 다 받고 이 댁만 성하게 할 도리가 있으니, 마님께서든지 영감마님께서든지 소인이 이 댁의 충노인줄이나 알아주 시기를 바랍니다.”\n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반짝 띄어서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n“이애 고두쇠야. 네가 참 내게는 충노이다. 전년 겨울 그 일에 내가 애를 좀 썼느냐. 내가 네 공로는 다 알고 있다. 오늘 낮에도 영감마님께 네 말씀을 무수히 여쭙고 별 상급을 주기로 작정한 일도 있다. 이애 옥단아, 내가 너더러는 그 말을 하였지.”\n(옥)“쇤네는 아무 말씀도 들은 것 없습니다.”\n(부)“응, 내가 아직 그 말을 아니하였던가,오냐, 그 말은 천천히 하려니와, 이에 고두쇠야, 네 말을 좀 자세 듣자. 네가 도리가 있다 하니 도리가 무슨 도리냐?”\n(고)“본래 아씨를 치악산에 버리고 오기는 소인이 한 일이올시다. 소인이 이 길로 저 원귀 우는 곳으로 혼자 나가서, 전후의 죄는 모두 소인의 죄로 말씀하고 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간 아씨께서 원수를 갚아도 소인에게 갚을 터이오니, 이 댁에서는 아무 일 없을 터이올시다. 별 수 없이 소인이 혼자 얼른 나가서 죄를 받겠습니다.”\n하면서 문밖으로 나가더니, 어디 가서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울음소리 나는 들로 나가는데, 본래 고두쇠가 겁도 없는 놈이어니와, 대체 술이 장사이라, 종시 얼근한 술기운에 두억시니가 들끓어 온다 하여도 시들한 마음이 있을 때라.\n단구역마을 앞 넓은 들로 비틀비틀하며 걸찍한 목소리로 중얼중얼하며 나간다.\n“귀신, 귀신이 다 무엇 말라죽은 것이냐, 오냐, 대들어라, 검낼 바색의 아들놈 없다. 저 방정맞은 요 귀신 쫓아 버리면 이번에는 우리 댁 마님이 우리 내외를 속량 아니하여 줄 수는 없지, 속량뿐이냐, 이번에는 참 수 난다. 저것 때문에 홍참의 댁이 망할 것을 나 때문에 성하고 보면, 우리 댁에서 나를 논 섬지기나 주어 살려 싸지. 내일부터는 굿은 하여 무엇하게. 날마다 굿에 쓰는 돈만 나를 다 주어도 나는 걱정 없이 살렷다. 오냐, 어찌 되었던지 수날 놈은 나 하나뿐이다. 산 양반은 무섭지마는 죽은 여귀 하나야 겁날 것 없다.”\n하며 별안간에 홍이 나서 나가는데, 울음소리가 차차 멀어지거늘, 고두쇠가 기운이 한층 더 나서 울음소리 나는 곳으로 쫓아가다가, 고두쇠가 사람 살리라는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더니, 처량하던 울음소리는 뚝 끊어지고 파란 불만 반짝반짝하다가 스러지더니 들은 적적하고 밤은 깊었더라.\n홍참의 집 하인이 동네 장정을 풀어 횃불을 들리고 앞 들로 나와서 고두쇠를 찾는다.\n고두쇠는 들 가운데에 엎드러졌는데, 덜미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 피를 퍽 퍽 토하고 죽었더라.\n시골구석의 무식한 사람들이 귀신을 어찌 몹시 믿던지, 고두쇠란 놈은 홍참의 며느리 죽은 귀신에게 죽은 줄로만 알고 온 동네가 수군거리나, 고두쇠 죽기는 귀신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장사패의 손에 맞아죽었는데, 그날 밤에 단구 역마을 앞 들에서 울던 것은 금홍이요,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홍참의 집에서 도깨비 장난같이 하던 것은 장사패이다.\n처음에 그 장상패가 금홍의 지휘만 듣고 홍참의 집에 들어가서 도깨비 장난을 할 때에, 도깨비 장난하기는 조금도 두렵지 아니하였으나 그 전에 미리 그 집 개를 없애느라고 애를 썼는지라. 장사패들이 낮이면 홍참의 집 근처로 돌아다니며 개에게만 눈독을 들이는데, 개가 절명일이 되었던지 홍참의 집 뒤 벌판에 나와 놀거늘 장사패가 맷돌 같은 뭉우리돌로 훔쳐 때려죽이고, 해진 후에 그 개 죽은 것은 치악산 골에 감추어 두었다가 두 번째 도깨비 장난할 때에 지붕 위에 얹었더라.\n금봉이가 장사패들을 데리고 치악산 장포수 들었던 집에 있는데, 낮이면 장사패가 사냥총을 메고 뀡 마리나 잡아 가지고 단구역마을 막걸리 집에 가서 꿩을 굽고, 누구를 보든지 막걸리 잔이나 사 먹이고 까마귀 지껄이듯 하는 농군의 이야기를 듣기로 일을 삼으니,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은 홍참의 집 이야기뿐이라. 홍참의 집에서 고두쇠가 죽은 후로는 날마다 무당만 불러들여서 점치고 굿하기로 세월을 보내는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평생에 읽고 세상에 유식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어니 여기던 홍참의도, 며느리가 죽어 원귀가 된 줄만 알고 굿을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알은 체 아니하고 내버려두는 터이라. 무당들은 제가 들은 소문대로 영절스럽게 하는 말이, 건넌방 아씨가 원귀가 되었다고 원풀이를 하느니, 살풀이를 하느니, 귀신을 쫓느니, 귀신을 잡아 가두느니 하며 굿만 시키고 돈만 빼앗아 가는데, 그 귀신은 화수분인지 이제는 쫓아버렸다. 이제는 가두었다 한 후에도 치악산 밑에 귀신의 불은 밤마다 보이고, 들 밖에 귀신 우는 소리도 밤마다 들린다.\n그 불은 장사패가 밤이면 파란 물들인 유리등에 불을 켜서 들고 감추었다 내들었다 하여, 단구역마을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 고두쇠 죽은 후에 동네 사람도 겁을 내는 터이라. 그 중에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는 꿈을 꾸어도 이씨 부인의 귀신만 보이니 , 굿은 암만 하더라도 그 몹쓸 귀신 때문에 아무 때든지 집이 망하려니 여기고 있으면서 노주가 마주앉아서 귀신 없앨 공론만한다. 29대 무열왕 때(660년)백제를, 30대 문무왕때(668년) 고구려까지 멸망시켜 삼국통일을 이룩하였고, 35대 경덕왕 전후 불교 전성기를 맞아 불국사, 석굴암 창건과 성덕대왕신종 주조 등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룩하였다.\n그러나 36대 혜공왕 이후부터 잦은 왕권쟁탈과 국사태만이 이어지고 각처에서 민란봉기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결국 935년 56대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천년사직을 넘겨주게 되었다.\n기원전 57년 부터 935년 멸망까지 박씨왕 10명, 석씨왕 8명, 김씨왕 38명으로 그중 3명은 여왕이었으며 모두 56명의 왕이 천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n박씨(朴氏) : 10왕(王) / 석씨(昔氏) : 8왕(王) / 김씨(金氏) : 38왕(王)\n56대(代) 992년(年)\n동지역(洞地域) : 29왕(王)/ 읍면지역(邑面地域) : 7왕(王) / 타지역(他地域) : 1왕(王) / 수장(水葬) : 3왕(王) / 불명(不明) : 17왕(王)\n신라왕이야기를 대수, 왕명(王名)/업적, 왕릉정보, 성, 재위년수, 기간, 왕릉이 있는 곳/시대별 특징의 항목으로 나타낸 표\n대수\n왕명(王名)/업적\n왕릉정보\n성\n재위년수\n기간\n왕릉이 있는 곳/시대별 특징\n1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n제1대 :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n서기전 69∼서기 4. 신라의 건국시조. 재위 서기전 57∼서기 4. 신라 박씨(朴氏)의 시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박혁거세라고 지칭된다.\n《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건국설화가 있다. 서기전 69년 3월 1일 당시 사로6촌(斯盧六村)의 촌장(村長)들이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서 임금을 모시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할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때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근처에 신기한 빛이 하늘에서 땅에 닿도록 비추고 있고, 흰말〔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가보니 큰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하늘로 날아가고,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이 아이가 박혁거세이다. 알의 크기가 박〔瓠〕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고, 그 광채로 인하여 이름을 혁거세 혹은 불구내(弗矩內)라고 하였다. 고허촌(高墟村) 촌장인 소벌공(蘇伐公, 혹은 蘇伐都利)가 데리고 가 길렀다. 그리고 6촌의 촌장들은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존경하였고, 나이 13세가 되어 이들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n이때 왕의 칭호는 거서간 또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였고, 나라이름을 서나벌(徐那伐)·서라벌(徐羅伐)·서벌(徐伐) 혹은 사라(斯羅)·사로(斯盧)라 하였다. 서기전 53년(혁거세거서간 5) 알영(閼英)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이 건국설화는 성읍국가(城邑國家) 단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6촌장이란 이미 신라의 개국 이전에 분거(分居)하여 살았던 고조선의 유민들이었다. 따라서, 토착세력을 압도한 유이민(流移民) 박씨집단을 상정할 수 있으며, 말〔馬〕 및 천신하강(天神下降)의 모티프로 볼 때 이들은 말을 토템으로 하는 천신족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혁거세·불구내 등이 광명을 의미한다는 데서도 그들의 태양숭배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이미 개국연대 이전부터 경주지역에 이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n그러나 개국연대가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前漢 孝宣帝 五鳳 元年 甲子, 서기전 57)라는 설은 문제가 있다. 첫째, 《삼국사기》가 신라 중심의 관점에서 신라의 건국을 고구려나 백제보다 먼저 잡은 것이 그러하다. 둘째, 갑자년이라는 간지(干支)가 참위설(讖緯說)의 갑자혁명설(甲子革命說)에 입각한 듯하기 때문이다.\n혁거세는 서기전 37년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서기전 32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이 단계의 사로국은 대체로 경주평야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서기전 28년 낙랑이 침범해 왔으나 국경에 있는 백성들이 밤에 문을 잠그지 않으며 곡식더미가 들에 즐비한 것을 보고 ‘도덕(道德)의 나라’라 하고 스스로 물러갔다. 서기전 20년 마한 왕이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는다고 노하였으며, 이해에 호공(瓠公)을 마한에 사신으로 보냈다. 서기전 19년 마한왕이 죽자 사신을 보내어 조위(弔慰)하였다. 서기전 5년에는 동옥저에서 보낸 사신이 와서 말 20필을 바치기도 하였다. 죽은 뒤 사릉(蛇陵)에 장사지냈다.\n닫기\n탑동(오릉) 박(朴) 61 BC 57~AD 4 1기 터전 확립기\n(제1기~제3기)\n성골 28왕 710년간\n1기\n1.나라싸움\n2.육부촌장과 화백제도\n3.나라 터전이 굳어짐\n(AD 356)\n2 남해왕(南解次次雄)\n제 2대 : 남해 차차웅(南解 次次雄)\n?∼24(유리이사금 1). 신라 제2대왕. 재위 4∼24. 성은 박씨. 혁거세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알영부인(閼英夫人)이고, 비는 운제부인(雲帝夫人) 또는 아루부인(阿婁夫人)이다. 누이동생으로 아로(阿老)가 있다.\n차차웅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왕은 남해왕 뿐이며 《삼국유사》에는 거서간(居西干)과 동격의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무(巫)를 의미하는 신라 방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남해왕 때는 정치장적 성격보다는 제사장적 기능이 농후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n서기 6년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우고 8년 탈해가 어질다 하여 맏딸로 아내를 삼게 하였으며, 또 대보(大輔)의 벼슬을 주어 나라의 일을 맡겼다. 14년 왜(倭)와 낙랑(樂浪)의 침입을 막았으며, 재위 21년에 죽으니 사릉원(蛇陵園)에 장사지냈다.\n닫기\n탑동(오릉) 박(朴) 21 4~24\n3 유리왕(瑠璃尼師今)\n제 3대 : 유리 이사금(儒理 尼師今)\n?∼57(유리이사금 34). 신라 제3대 왕. 재위 24∼57. 성은 박씨(朴氏). 노례이사금(弩禮尼師今)이라고도 한다.\n남해차차웅의 태자이며, 어머니는 운제부인(雲帝夫人)이다. 비(妃)의 이름은 알 수 없고,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딸 박씨,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 또는 사요왕(辭要王)의 딸이라는 세가지 설이 있으나, 일지갈문왕의 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n이사금이라는 왕호는 이질금(尼叱今)·치질금(齒叱今)이라고도 쓰는데, ‘잇금〔齒理〕’을 의미하는 신라 방언이라는 전통적 해석이 있으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이사금시대 왕의 성격은 부족연맹장(部族聯盟長)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떻든 종래의 거서간(居西干)시대보다는 문물제도면에서 향상된 시대였음은 인정할 수 있다.\n28년(유리이사금 5)에 〈도솔가 兜率歌〉를 지었고, 32년에 6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이들에게 이(李)·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의 성(姓)을 주었으며, 17관등(官等)을 마련하였다고 하나 이때에 된 것은 아닌듯하다.\n6부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길쌈을 짜게 하여 8월 15일에 그 많고 적음을 보아 승부를 결정짓는 가배(嘉俳)놀이를 시켰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회소곡 會蘇曲〉이었다.\n낙랑(樂浪)·화려(華麗)·불내(不耐) 등의 사람들이 북변을 쳐들어 왔으며, 맥국(貊國)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삼국사기》에서는 40년에 이서국(伊西國:지금의 淸道)을 멸하였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14대 유례이사금의 기사가 착오(錯誤)된 것이라 한다. 재위 34년 되던 해에 탈해(脫解)의 재능이 그의 두 아들보다 뛰어남을 들어 왕위를 잇게 하고 죽어, 사릉(蛇陵)에 장사지냈다.\n닫기\n탑동(오릉) 박(朴) 34 24~57\n4 탈해왕(脫解尼師今)\n제 4대 : 탈해 이사금(脫解 尼師今)\n?∼서기 80(파사이사금 1). 신라 제4대왕. 재위 57∼80. 성은 석씨(昔氏). 토해(吐解)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 혹은 완하국(琓夏國)의 함달왕(含達王) 등이라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n어머니는 여국왕(女國王)의 딸 또는 적녀국왕(積女國王)의 딸이라고 한다. 왕비는 남해차차웅의 딸 아효(阿孝·阿尼, 또는 남해차차웅의 누이동생 阿老)부인이다.\n부왕(父王)이 비(妃)를 맞아 임신 7년 만에 큰 알〔卵〕을 낳자, 왕은 좋지 못한 일이라 하여 버리게 하였다.\n이에 보물과 함께 비단에 싸서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보냈다. 궤짝에 실린 탈해는 금관가야를 거쳐 계림(鷄林)동쪽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 이때 한 노파에 의하여 건져지고 길러졌다. 그리하여 고기잡이로써 생업을 하며 양모(養母)를 공양하였다.\n그러나 어머니는 탈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공부를 시켜, 학문과 지리에 두루 통달하게 되었다. 당시 이름난 신하인 호공(瓠公)의 집터(뒤에 月城이 됨.)가 좋음을 보고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에 묻어놓고는 자기의 집이라 우기니 관가에서는 주장하는 근거를 요구하였다.\n이에 자신은 본래 대장장이〔冶匠〕였으니 땅을 파서 조사하자고 하여, 과연 숫돌과 숯이 나오자 탈해가 승소(勝訴)하여 그 집을 차지하였다. 이 같은 내용의 설화에서, 첫째 탈해 집단이 경주 동해변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은 그가 죽은 뒤 동악신(東岳神)으로 봉사(奉祠)되었음에서도 확인된다.\n둘째는 석씨부족이 어로를 주요생활수단으로 하였지만, 이미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적어도 철을 다루는 능력이 왕위계승에까지 연결되는 강점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n탈해는 서기 8년(남해차차웅 5)에 왕의 사위가 되고, 서기 10년에는 대보(大輔)의 자리에 올랐으며, 유리이사금의 즉위시에 이미 왕위계승의 물망에 올랐지만, 유리이사금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먼저 왕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으며, 유리이사금이 탈해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n탈해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해차차웅의 사위이니 결국 박씨집단(朴氏集團)의 일원이라는 동속개념(同屬槪念)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또, 철을 이용한 군사력 및 거기에 따르는 실질적인 정치실력파의 등장으로 박씨족과 석씨족이 연맹하였으며, 이것은 왕실세력의 폭을 넓혔다고 본다.\n서기 58년 호공을 대보로 삼고, 서기 64년 백제군이 와산(蛙山)·구양(狗壤)의 두 성을 비롯하여 이후 4, 5회 공격해왔다. 서기 65년(삼국유사에는 60년)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인시켜보니, 금궤(金櫃)가 나무에 걸려 있고 그 아래 흰 닭이 있어, 궤를 열어보자 용모가 단정한 아이를 얻었는데, 이가 김알지(金閼智)이다. 왕은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고치고 이를 국호로 삼았다.\n서기 67년 박씨의 인척(姻戚)으로서 주·군(州郡)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주주(州主)·군주(郡主)라 이름하였다. 서기 77년에는 가야의 군사와 황산진(黃山津)에서 싸웠다. 죽은 뒤, 성북(城北)의 양정(壤井) 언덕에 장사지냈다.\n닫기\n동천동 석(昔) 24 57~80\n5 파사왕(婆娑尼師今)\n제 5대 : 파사 이사금(婆娑 尼師今)\n?∼112(지마이사금 1). 신라 제5대 왕. 재위 80∼112. 성은 박씨. 유리이사금의 둘째아들로 태자 일성(逸聖)보다 인물이 뛰어나 즉위하였다고도 하고, 유리이사금의 아우인 내로(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사요왕(辭要王)의 딸이고 왕비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 혹은 史肖夫人)이다.\n비계(妃系)가 김씨 한기부(漢歧部)의 유력자임은 파사이사금이 유찬(楡飡)의 못으로 사냥갔을 때 이찬 허루가 딸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이어 허루는 주다(酒多:나중의 角干)가 되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n파사이사금이 유리이사금의 직계라면 탈해이사금 이후 왕위를 계승한 것이 문제가 없으나, 그가 내로의 아들일 경우 월성(月城)에 기반을 둔 석씨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즉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n87년(파사이사금 8)에 가소성(加召城)·마두성(馬頭城)을 쌓았으니, 이것은 경주를 벗어난 맨 처음의 축성 기록이다. 94년에 가야 군사가 마두성으로 쳐들어왔을 때 1,000여명의 기병을 사용하였으니, 이미 기마전투의 양상을 볼 수 있다.\n101년에 월성을 쌓아 궁실을 옮겼다. 102년에는 음집벌국(音汁伐國:지금의 安康, 안강 南 또는 울진)과 실직곡국(悉直谷國:지금의 三陟) 사이의 영토분쟁을 가야의 수로왕에게 부탁하여 해결해 준 뒤에 다시 음집벌국을 쳐서 병합하였다. 그러자 실직국과 압독국(押督國:지금의 慶山)도 항복해 왔다고 한다.\n108년에는 다벌국(多伐國:지금의 大丘 혹은 義昌)과 초팔국(草八國:지금의 草溪 혹은 杞溪)을 합병하였다. 이러한 파사이사금의 치적에 근거하여 이 왕대(王代)를 고대국가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재위 33년에 죽자 사릉원(蛇陵園) 안에 장사 지냈다.\n닫기\n탑동(오릉) 박(朴) 33 80~112\n6 지마왕(祗摩尼師今)\n제 6대 : 지마 이사금(祗摩 尼師今)\n?∼134(지마이사금 23). 신라 제6대왕. 재위 112∼134. 지미(祇味) 또는 지마(祇磨)라고도 한다.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고, 어머니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비는 갈문왕 마제(摩帝)의 딸 애례부인 김씨(愛禮夫人金氏)이다.\n아버지인 파사이사금이 유찬(楡飡)의 못으로 사냥갔다가 돌아오면서 한지부(漢祇部)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마제 이찬(伊飡)의 처가 딸을 데리고 나오자 태자 지마가 기뼈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때 혼담이 오간 것을 알 수 있다.\n115년(지마이사금 4)·116년에는 친히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黃山河:낙동강 하류)를 건너 가야를 침공하였다. 125년 말갈군이 대령책(大嶺柵:대관령)으로 쳐들어 왔으나 백제의 원병이 물리쳤다.\n《삼국유사》에는 음질국(音質國:安康)과 압량국(押梁國:지금의 慶山)을 멸망시켰다고 하였으나, 《삼국사기》에는 파사이사금 때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재위 23년에 아들이 없이 죽었다.\n닫기\n배리 박(朴) 23 112~134\n7 일성왕(逸聖尼師今)\n제 7대 : 일성 이사금(逸聖 尼師今)\n?∼154(아달라이사금 1). 신라 제7대 왕. 재위 134∼154. 성은 박씨.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유리이사금, 일지갈문왕, 노례이사금의 형, 지마이사금이라는 네가지 설이 있지만 모두 타당성이 없다.\n다만 148년(일성이사금 15)에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으로 봉한 사실로 미루어 아도갈문왕이 유리이사금의 아들이며 일성이사금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머니는 이간생(伊刊生)부인이다. 비(妃)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혹은 지마이사금의 딸이라고도 한다.\n138년 금성(金城)에 국가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인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하였으며, 여러 차례 말갈의 침입을 받고 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기도 하였다. 144년에는 모든 주군(州郡)이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하였으며, 민간에서는 금은주옥(金銀珠玉)의 사용을 금하였다.\n146년 압독(押督: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이 모반하자 군사를 보내어 평정하였다. 148년에는 박아도를 봉하여 갈문왕을 삼았다.\n닫기\n탑동 박(朴) 21 134~154\n8 아달라왕(阿達羅尼師今)\n제 8대 : 아달라 이사금(阿達羅 尼師今)\n?∼184(아달라이사금 31). 신라 제8대왕. 재위 154∼184.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일성이사금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로 박씨(朴氏)이다. 왕비는 지마이사금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로 8촌 사이의 족내혼이었다. 이와같은 족내혼은 박씨왕족의 힘을 규합하려는 세력연합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n156년(아달라이사금 3)과 158년에는 계립령(鷄立嶺:지금의 문경새재 동쪽고개)과 죽령(竹嶺:풍기 북쪽고개)을 각각 개통하여 소백산맥 이북까지 세력을 뻗쳤다. 167년에는 군사 2만명과 8, 000명의 기병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서북쪽으로의 영토개척을 이루었다. 이러한 서북지역에 대한 영토개척을 석씨(昔氏)세력의 남하로 간주하기도 한다.\n이는 미추이사금의 아버지인 구도(九道) 가 파진찬(波珍飡)이 된 사실을 친석씨계(親昔氏系)의 부상으로 보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위 21년부터 31년 사망할 때까지 기록의 공백이 있어 왕실세력의 교체와 관련하여 주목을 요한다. 결국 아달라이사금은 아들이 없이 죽고 석씨왕계가 즉위하게 되었다.\n닫기\n배리(삼릉) 박(朴) 31 154~184\n9 벌휴왕(伐休尼師今)\n제 9대 : 벌휴 이사금(伐休 尼師今)\n?∼196(벌휴이사금 13). 신라 제9대왕. 재위 184∼196. 발휘이사금(發暉尼師今)이라고도 한다.\n성은 석(昔)씨. 부계(父系)는 탈해왕의 아들인 구추각간(仇鄒角干)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 연대상으로 탈해가 죽은 지 104년 만에 즉위한 것이므로 세대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따라서 이것은 탈해 이후 석씨세력이 쇠퇴하여 그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때문이거나, 벌휴계(伐休系)가 탈해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부회(附會)하였기 때문으로 보여진다.\n그것은 벌휴가 홍수·가뭄 및 그해의 풍흉을 미리 알았고 사람의 사정(邪正)을 알아맞혀 성인(聖人)이라 불린 데에서 시조적 성격이 농후하며, 《삼국사기》 벌휴이사금 즉위조 이외에 구추에 관한 기록이 없음에서도 짐작이 간다. 어머니는 김씨(金氏)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n벌휴가 즉위한 것은 아달라이사금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사람들이 임금으로 세웠다고 한다. 이는 전투능력을 비롯한 문화수준에 있어서 우위를 가진 새로운 세력집단이 경주로 진출하여 종래의 지배층을 압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석씨왕계의 성립 이후 신라는 보다 급격한 영역확대를 실현시켰다.\n185년(벌휴이사금 2)에 구도(仇道)와 구수혜(仇須兮)를 처음 군주(軍主)로 삼아 소문국(召文國)을 치고, 이어 188년 모산성(母山城:지금의 충청북도 진천 혹은 경상북도 의성 부근), 189년 구양성(狗壤城:지금의 괴산 또는 옥천), 190년 원산향(圓山鄕:지금의 예천군 용궁)·부곡성(缶谷城:지금의 군위군 부계) 등지에서 백제와 공방전을 치렀다고 전한다.\n왕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가 김씨인 점으로 보아, 이제 박씨계는 고립되고 석씨와 김씨와의 제휴시대를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13 184~196\n10 내해왕(奈解尼師今)\n제10대 : 나해 이사금(奈解 尼師今)\n?∼230. 신라 제10대왕. 재위 196∼230. 석씨(昔氏).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의 태자인 골정(骨正)과 둘째아들 이매(伊買)가 일찍 죽고 적손인 골정의 아들 조분(助賁)이 아직 어리므로, 이매의 아들 내해가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며 비는 조분왕의 누이 석씨로서, 사촌간에 근친결혼을 하였다.\n자녀로는 태자 우로(于老)와 병마사(兵馬事)를 관장하였던 이벌찬 이음(利音)이 있었다. 그밖에 조분왕의 비가 된 딸 아이혜(阿爾兮)가 있다.\n재위기간 동안 백제와의 전투가 빈번하였다. 199년에 백제군이 국경을 침범한 뒤, 214년에는 요차성(腰車城)에 쳐들어오자 반격하여 백제의 사현성(沙峴城)을 함락시켰다. 그 뒤 백제가 장산성(獐山城:지금의 慶山)을 침입했으나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격퇴하였다.\n또, 222년에도 백제가 우두주(牛頭州:지금의 春川)를 침입하였다고 하나, 당시 이곳은 신라의 영토 밖이므로 믿을만한 기사는 못 된다. 그밖에 가야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은 바 있다. 재위 35년이 되는 해에 죽었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35 196~230\n11 조분왕(助賁尼師今)\n제11대 : 조분 이사금(助賁 尼師今)\n?∼247(첨해이사금 1). 신라 제11대왕. 재위 230∼247. 성은 석씨(昔氏). 제귀(諸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제분(諸賁)의 잘못일 것이다. 벌휴이사금의 손자로, 골정갈문왕(骨正葛文王)의 아들이다.\n어머니는 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딸 옥모부인 김씨(玉帽夫人金氏)이고, 비는 내해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n내해이사금이 죽을 때 사위인 조분에게 왕위를 잇도록 유언하였다고 하지만, 조분은 이미 벌휴의 대손(大孫)이었고 개인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도 왕위계승의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며, 왕비계(王妃系)김씨세력의 영향력도 있었을 것이다.\n즉위 후 영토확장에 주력하여 231년(조분이사금 2) 7월에 감문국(甘文國:경상북도 금릉군 개령면)을 정벌하고, 236년 2월에는 골벌국(骨伐國: 경상북도 영천)을 병합하여 각각 군(郡)으로 삼았다.\n232년과 233년에는 금성(金城)과 변경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쳤으며, 245년에는 고구려가 북변(北邊)을 쳐들어왔다.\n이 같은 대외전쟁을 주도하였던 장군은 내해이사금의 태자인 우로(于老)인데, 그는 244년에 이찬(伊飡)에서 서불한(舒弗邯:이벌찬의 별칭)이 되었고 병마사(兵馬事)도 맡아보았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18 230~247\n12 첨해왕(沾解尼師今)\n제12대 : 첨해 이사금(沾解 尼師今)\n?∼261(첨해이사금 15). 신라 제12대왕. 재위 247∼261. 일명 이해(理解)·점해(詀解)라고도 한다. 조분이사금의 동모제(同母弟)로, 아버지는 골정(骨正)이고, 어머니는 옥모부인(玉帽夫人)이다.\n즉위년(247)에 아버지 골정을 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에 봉하였다. 따라서, 점해이사금의 즉위를 형제상속으로 보기도 하고, 골정계(骨正系)의 독립이라는 점에서 가계내의 계승으로 보기도 한다.\n248년 고구려와 화의를 맺었고, 255년 백제가 봉산성(烽山城:지금의 榮州?)을 공격해왔으나 이를 빼앗기지 않았다.\n한편, 영토의 확장에 노력하여, 달벌성(達伐城: 지금의 大邱)을 쌓았으며 사벌국(沙伐國:지금의 尙州)을 점령하였다.\n그리하여 이때에 이르러 사로국(斯盧國)은 진한의 전 지역을 통일하였다. 261년 12월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16 247~262\n13 미추왕(味鄒尼師今)\n제13대 : 미추 이사금(味鄒 尼師今)\n?∼284(유례이사금 1). 신라 제13대왕. 재위 262∼284. 미조(未祖, 未照) 혹은 미고(未古)·미소(未召)라고도 한다.\n미추의 계보는 알지(閼智)에서부터 비롯하여, 알지→세한(勢漢, 熱漢)→아도(阿道)→수류(首留)→욱보(郁甫)→구도(仇道)→미추로 이어진다. 그러나 문무왕릉비문을 비롯한 금석문(金石文)자료에는 김씨(金氏)왕실의 시조를 성한(星漢, 聖漢)이라 하여, 이를 세한으로 보는 설과 반대의 설이 있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n미추의 조상으로 역사에 나타나는 인물은 아버지인 구도로서 그는 8대 아달라이사금에서부터 9대 벌휴이사금 때까지 활약한 인물이며, 263년(미추왕 2)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追封)되었다. 구도는 이칠(伊柒)갈문왕의 딸인 술례부인(述禮夫人, 혹은 生乎) 박씨(朴氏)와 혼인하였고, 그의 딸인 옥모부인(玉帽夫人)은 골정(骨正) 갈문왕과 혼인하였다.\n미추이사금의 비(妃)는 조분이사금의 딸인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결국 그는 조분이사금의 사위라는 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셈이다.\n백제가 봉산성(烽山城:지금의 榮州?)·괴곡성(塊谷城) 등을 쳐들어왔다는 《삼국사기》의 기사가 있는데,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볼 것인가는 학자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다. 재위 23년에 죽으니 대릉(大陵, 竹長陵이라고도 함.)에 장사지냈다고 한다.\n14대 유례이사금 14년 이서고국(伊西古國:지금의 淸道)이 금성(金城)을 쳐들어왔을 때 귀에 대나무잎을 꽂은 죽엽군(竹葉軍)이 갑자기 신라군을 도와 이들을 물리친 일이 있는데, 이들 병사들이 돌아간 곳을 찾아보니 죽장릉 위에 대나무잎이 쌓여 있어 선왕(先王)의 음덕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설화가 있다.\n닫기\n황남동 김(金) 23 262~284\n14 유례왕(儒禮尼師今)\n제14대 : 유례 이사금(儒禮 尼師今)\n?∼298(유례이사금 15). 신라 제14대왕. 재위 284∼298. 《삼국사기》의 주(註)에는 《고기 古記》를 인용하여 3대와 14대의 두 임금의 이름이 유리(儒理) 혹은 유례(儒禮)로 똑같다고 하였다.\n이른바 신라상고(新羅上古)왕위계승의 허구론(虛構論)에 의하면, 눌지(訥祗)와 위의 두 왕이 같은 왕명(王名)으로서 ‘늙〔老〕’의 의미를 가진 역사시대의 눌지가 상대(上代)로 투사되어 만들어졌다고도 하고, 이들 셋은 ‘누리〔世·享·繼〕’의 뜻을 지녔고 박·석·김의 3성에 각각 이러한 이름을 가진 왕이 병립하여 있던 것을 하나의 계보로 만들어버린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n그러나 최근에는 신라 상고의 기사를 그대로 믿는 경향으로 기울어져서, 유례이사금은 제11대 조분이사금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박씨 갈문왕(葛文王) 내음(奈音)의 딸 □소부인(□召夫人)인데 별빛이 입 속으로 들어와 잉태하였다는 전설이 있다.\n그런데 조분이사금의 비는 내해이사금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므로 조분이사금의 비가 둘일 리도 없으니, 조분이사금은 유례이사금의 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 선왕 미추가 네명의 석씨왕에 이어 조분이사금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왕위는 다시 석씨인 유례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유례이사금의 비는 알 수 없다.\n왜병이 일례군(一禮郡)·사도성(沙道城:지금의 영덕?)·장봉성(長峰城) 등을 공격하므로 왕은 백제군과 연합하여 왜에 원정할 것을 꾀하였으나, 서불한(舒佛邯) 홍권(弘權)의 만류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293년 사도성을 개축하고 사벌주(沙伐州:지금의 상주)의 호민 80여가를 옮겼다. 297년 이서고국(伊西故國:지금의 청도)을 멸하였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15 284~298\n15 기림왕(基臨尼師今)\n제15대 : 기림 이사금(基臨 尼師今)\n?∼310. 신라 제15대왕. 재위 298∼310. 기립이사금(基立尼師今)이라고도 부른다. 조분이사금(助賁尼師今)의 아들·손자·증손이라는 여러 설이 있으나, 나이 차이로 보아서 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림이사금이 조분이사금의 손자나 증손일 경우, 아버지는 걸숙(乞淑)이고, 어머니는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n300년에 비열홀(比烈忽:지금의 安邊)에 순행하였고, 우두주(牛頭州:지금의 春川)에 이르러 태백산을 망제(望祭)하였으며, 낙랑(樂浪)·대방(帶方) 두 나라가 귀속하였다고 하나 모두 믿기 어려운 기술이다.\n307년에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의 뜻을 따라 국호를 다시 신라(新羅)로 정했다고 하나, 실제로 이것은 지증왕 4년의 일이었다. 재위 13년 만에 사망하였다. 장지는 미상이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13 298~310\n16 흘해왕(訖解尼師今)\n제16대 : 흘해 이사금(訖解 尼師今)\n?∼356(흘해이사금 47). 신라 제16대왕. 재위 310∼356. 내해이사금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각간(角干) 수로(水老, 또는 于老)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내해―우로―흘해로 계보가 이어지는데, 생존연대상으로 미루어 보아 우로와 흘해 사이에 2, 3세대가 더 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머니는 조분이사금의 딸인 명원부인(命元夫人)이다.\n기림이사금이 아들 없이 죽자 왕으로 추대되었다. 312년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청하여오므로, 아찬(阿飡) 급리(急利)의 딸을 시집보내어 화친을 꾀하였다. 그러나 그뒤 단교하였고, 왜병이 풍도(風島)와 변방 민가를 약탈하고 금성(金城)까지 포위하였으나 격퇴시켰다.\n《삼국사기》에는 330년에 벽골지(碧骨池:전라북도 김제)를 개착(開鑿)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백제의 기록이 잘못 들어온 것 같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백제병이 처음으로 쳐들어 왔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두 나라가 처음으로 직접 충돌한 것이라고 보아 《삼국사기》의 초기 백제 관계 기사를 의심하게 한다. 재위 47년에 아들 없이 죽었다.\n닫기\n불명(不明) 석(昔) 47 310~356\n17 내물왕(柰勿尼師今)\n제17대 : 나물 이사금(마립간)(奈物 尼師今)(麻立干)\n?∼402. 신라 제17대왕. 재위 356∼402. 성은 김씨.\n1. 계보 및 왕보\n구도갈문왕(仇道葛文王)의 손자이며, 각간(角干) 말구(末仇)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휴례부인(休禮夫人) 김씨이고, 왕비는 미추이사금의 딸인 보반부인(保反夫人) 김씨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미추이사금의 사위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의 왕력(王曆)에는 미추이사금의 아버지인 구도갈문왕의 아들, 또는 미추이사금의 동생인 각간 말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여 미추이사금의 동생 또는 조카로도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계보는 확실히 알기 어려우나, 다만 미추이사금과 일정한 근친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도 이 때문에 흘해이사금이 후계자가 없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 같다.\n왕호는 《삼국사기》에는 ‘이사금(尼師今)’으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는 ‘마립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내물왕 때에 ‘마립간’의 왕호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이해하여 《삼국유사》의 설을 따르고 있다. 마립간은 수석장(首席長) 또는 후세의 군장(君長)에 대한 존칭어인 상감(上監)에 해당하는 왕호로 짐작되고 있다. 왕호가 마립간이었다는 사실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이 국가적 면모를 일신하여 국가체제가 정비됨으로써 왕권이 보다 강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존엄성이 있는 왕호가 필요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n이로써 내물마립간은 신라의 귀족들인 대등(大等)으로 구성되는 귀족회의가 중앙정청(中央政廳)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남당(南堂)’에서 주재하는 명실상부한 최고통치자로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내물마립간 이후부터는 박(朴)·석(昔)·김(金)의 삼성(三姓)이 왕위를 교대로 계승하는 현상이 없어지고, 김씨에 의한 왕위의 독점적 세습이 가능해졌다.이러한 현상도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하여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n2. 중국문물수입\n신라가 고대국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내물마립간의 이러한 체제내적인 정비는 중국과의 국제관계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여, 377년(내물마립간 22)과 382년의 두 차례에 걸쳐서 고구려 사신의 안내를 받아 부견(苻堅)의 전진(前秦)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382년에 전진에 사신으로 파견된 위두(衛頭)와 전진의 왕 부견 사이의 대화는 당시 신라의 사정을 살피는 데 있어서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태평어람 太平御覽》에 인용되어 있는 《진서 秦書》의 기사에 의하면 “그대가 말하는 해동(海東:新羅)의 일이 예와 같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라는 부견의 질문에 대하여 위두는 “중국에서 시대가 달라지고 명호(名號)가 바뀌는 것과 같으니 지금 어찌 같을 수 있으리오.”라고 대답하고 있다.\n이것은 중국사회에 변화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라사회의 변화도 당연하다는 것으로서 신라의 고대국가체제 정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와 같은 신라와 전진과의 외교관계는 곧바로 중국문물 수입의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n3. 국가체제정비의 허실\n내물마립간대에 와서 신라가 고대국가체제를 완성하게 되는 계기는 백제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과 백제군의 낙동강유역으로의 진출이 신라에 자극을 주었을 것이라는 데서 우선 찾아져야 할 것이다. 당시의 백제는 왜(倭)와 연합한 다음 왜병을 끌어들여 364년과 39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신라를 침범하게 되자 이들에 대항할 목적으로 신라 내부를 통합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고, 그러한 결과로서 체제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n그러나 신라 단독으로는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을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신라는 우호적 관계에 있던 고구려의 군사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399년에 내물마립간이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자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그 이듬해 5만명의 보병·기병 군사를 신라의 국경지대로 파견하여 백제군과 연합한 왜군을 크게 격파한 일이 있었다. 한편 이와같은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결과적으로 신라의 자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n즉, 고구려와의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392년에는 내물왕이 고구려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이찬(伊飡)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야 하였으며, 401년에 고구려로부터 귀국한 실성이 내물마립간이 죽은 뒤에 여러 아들들을 배제시키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구려의 압력이 배후에서 작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n이런 만큼 신라가 내물마립간 때에 대내적으로는 비록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대외적으로는 아직 고구려에 대하여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야 하였고, 그 결과 내정간섭을 받을 정도로 자주적인 발전 기반을 확고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n닫기\n교동 김(金) 47 356~402 2기 (AD 356)\n2기\n1.중국문화 수입\n2.왕위계승제도 세움\n3.불교가 들어옴\n(AD 514)\n18 실성왕(實聖尼師今)\n제18대 : 실성 이사금(마립간)(實聖 尼師今)(麻立干)\n?∼417(실성마립간 16). 신라 제18대 왕. 재위 402∼417. 성은 김씨(金氏). 알지(閼智)의 후손으로서 이찬(伊飡)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아간(阿干) 석등보(昔登保)의 딸인 이리부인(伊利夫人)이며, 왕비는 미추이사금의 딸인 아류부인(阿留夫人)이다. 왕은 신장이 7척(尺) 5촌(寸)으로 매우 컸으며, 명민하고 지혜가 많았다고 한다.\n《삼국사기》에는 왕호가 이사금(尼師今)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처럼 내물왕 이래 마립간을 왕호로 사용하였다고 생각되므로 실성마립간이 옳은듯하다.\n내물왕이 죽은 뒤 그 아들들이 나이가 어리므로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추대하여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내물왕 때 실성이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내물왕을 원망하였다고 한 사실과 그가 401년(내물왕 46)에 고구려로부터 귀국한 다음해에 내물왕이 죽자 내물왕의 왕자들을 제쳐놓고 즉위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왕위계승에는 고구려의 군사적 후원이 작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n403년(실성이사금 2)에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서 미사품(未斯品)을 서불한(舒弗邯:伊伐飡)으로 삼고 군국(軍國)의 일들을 위임하여 통치하였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왜와의 화호(和好)를 위해서 402년에는 내물왕의 왕자인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보내고, 412년에는 고구려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서 내물왕의 왕자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실성왕의 인질외교(人質外交)는 왜와 고구려 양국과의 관계개선 내지 관계유지라는 대외적인 명분도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왕인 내물왕이 왕자들을 외국에 볼모로 보냄으로써 내물왕계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실성왕계를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왜와는 관계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 이외에 405년에는 왕이 친히 기병을 이끌고 명활성(明活城)에 침입해온 왜병을 맞아 싸워서 300여명을 참획(斬獲)하는 군사적 응징도 가하였다. 이밖에 413년에는 평양주(平壤州:지금의 楊州)에 큰 다리를 준공하는 치적도 있었다.\n실성왕은 내물왕의 태자인 눌지(訥祗)가 덕망이 있어서 자기의 왕권을 위협하므로 고구려의 힘을 이용하여 눌지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하여 정변을 일으켜서 실성왕은 살해되었다.\n이 정변으로 말미암아 실성왕의 모계인 석씨세력은 김씨계에 의하여 철저히 타도되어 소멸하게 되었다. 실성왕에 뒤이어 내물왕계인 눌지왕이 즉위하였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6 402~417\n19 눌지왕(訥祗麻立干)\n제19대 : 눌지 마립간(訥祗 麻立干)\n?∼458(자비마립간 1). 신라 제19대왕. 재위 417∼458. 성은 김씨. 아버지는 내물마립간이고, 어머니는 미추이사금의 딸인 보반부인(保反夫人)이며, 비는 실성이사금의 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최초로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n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립간이 실제로는 내물왕 때 이미 사용된듯한데도 불구하고 이때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 것은 종래의 왕호인 이사금(尼師今)이 마립간과 더불어 내물과 실성의 양대에 걸쳐 혼용되고 있었던 때문인 듯하다.\n392년(내물마립간 37)에 내물마립간이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었는데, 401년에 귀국하여 내물마립간에 이어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실성이사금은 즉위 후에 자신이 외국에 볼모로 갔던 것을 원망하여 고구려를 이용, 내물마립간의 아들 눌지를 해침으로써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정변을 일으킨 눌지에 의하여 살해되고, 눌지는 실성이사금에 이어서 즉위하게 되었다.\n이처럼 그의 왕위계승에 고구려의 힘이 작용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즉위 후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418년에는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동생 복호(卜好)를 고구려에서 탈출시켰으며, 또한 왜(倭)와의 화호(和好)를 위해서 실성이사금 때 볼모로 보내졌던 동생 미사흔(未斯欣)도 귀국시켰다. 그리고 고구려에 대해서는 424년에 사신을 보내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의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433년에는 종래 적대적 관계에 있던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였으며, 455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자 왕은 나제동맹(羅濟同盟)에 입각하여 군사를 파견, 백제를 지원하기도 하였다.\n미사흔을 귀국시킨 뒤, 왜가 431년·440년·44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신라를 침범하자 이를 모두 막아내었다. 그리고 450년에는 신라의 하슬라성주(何瑟羅城主) 삼직(三直)이 고구려의 변장(邊將)을 살해한 일로 말미암아 고구려의 침범이 있자 외교적인 사과로 해결하였다. 이와 같이, 불안한 대외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왕실 내부의 분쟁을 미리 막기 위하여 왕위계승의 부자상속제를 확립시켰다. 이 때문에 직계인 자비마립간과 소지마립간은 혼란 없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n이밖에도 중앙정청인 남당(南堂)에서 왕이 친히 노인들을 봉양함으로써 민심을 수습하였고, 저수지인 시제(矢堤:위치 미상)를 축조하여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도모하였으며, 또한 백성들에게는 우차(牛車)의 사용법을 가르쳐서 화물유통을 쉽게 하였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42 417~458\n20 자비왕(慈悲麻立干)\n제20대 : 자비 마립간(慈悲 麻立干)\n?∼479(소지마립간 1). 신라 제20대 왕. 재위 458∼479. 성은 김씨. 눌지마립간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실성이사금의 딸 김씨이고, 왕비는 내물마립간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의 딸 김씨로 461년(자비마립간 4)에 맞아들였다. 눌지마립간대에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함으로써 보다 강화된 왕권을 보여주었다.\n당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래의 족제적(族制的)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는 6부(部)를 개편하는 일이 긴요하였는데, 469년에는 왕경(王京)인 경주를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함으로써 왕경의 족제적 성격을 탈피하고 행정적 성격을 강하게 하였다.\n국내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비하여 눌지마립간 때에 체결되었던 백제와의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보다 강화하였다. 이 공수동맹에 입각하여 474년에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백제의 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자 이에 군사를 파견하여 백제를 구원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漢山城)은 함락되고 개로왕은 전사하였다.\n이와같이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이 증대되자 자비마립간은 백성을 징발하여 니하(泥河:지금의 江陵 南大川)·삼년산성(三年山城:지금의 報恩)·모로성(芼老城)·일모성(一牟城)·사시성(沙尸城)·광석성(廣石城)·답달성(沓達城)·구례성(仇禮城)·좌라성(坐羅城) 등 일선지대의 요새지에 새로이 산성을 축조함으로써 고구려의 남하에 대한 방비와 아울러 이미 확보한 점령지의 효과적인 통치를 꾀하였다.\n한편 몇차례에 걸친 왜(倭)의 침입이 있었는데 모두 효과적으로 격퇴하였을 뿐만 아니라 463년에는 삽랑성(歃良城:지금의 梁山)을 침범하고 물러가는 왜병을 크게 격파하였다. 한편, 왕은 연해지방의 두 곳에 성을 쌓아 왜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467년에는 전함을 수리하여 이에 대비하기도 하였다.\n미사흔을 귀국시킨 뒤, 왜가 431년·440년·44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신라를 침범하자 이를 모두 막아내었다. 그리고 450년에는 신라의 하슬라성주(何瑟羅城主) 삼직(三直)이 고구려의 변장(邊將)을 살해한 일로 말미암아 고구려의 침범이 있자 외교적인 사과로 해결하였다. 이와 같이, 불안한 대외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왕실 내부의 분쟁을 미리 막기 위하여 왕위계승의 부자상속제를 확립시켰다. 이 때문에 직계인 자비마립간과 소지마립간은 혼란 없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22 458~479\n21 소지왕((炤知麻立干)\n제21대 : 소지 마립간(照智 麻立干)\n?∼500(소지마립간 22). 신라 제21대왕. 재위 479∼500. 일명 비처마립간(毗處麻立干)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서 어머니는 김씨로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이며, 왕비는 이벌찬(伊伐飡) 내숙(乃宿)의 딸 선혜부인(善兮夫人)이다. 왕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있었으며, 스스로 겸손하고 공손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고 한다.\n487년(소지마립간 9)에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국내의 기간도로인 관도(官道)를 수리하였으며, 490년에는 왕경(王京)인 경주에 처음으로 시사(市肆)를 열어 사방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자비왕대의 경주의 방리명(坊里名)확정과 아울러 족제적 성격(族制的性格)이 강하게 남아 있는 육부체제(六部體制)를 개편하여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n또한, 소지마립간은 비열성(比烈城:지금의 安邊)·일선군(一善郡:지금의 善山)·날이군(捺已郡:지금의 榮州) 등지를 순행(巡幸)하여 병사를 위문하고 재해지나 전쟁지역의 주민들을 위로하여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유식(遊食)하는 백성들을 귀농시키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왕의 치적은 신라의 대내적 결속력의 강화와 아울러 농업생산력 증대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n소지마립간대에는 고구려가 신라의 변경지방을 자주 공격하였다. 이에 대해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거나 혹은 가야와도 연합하여 이하(泥河:지금의 江陵 南大川)·모산성(母山城:지금의 鎭川?)전투에서 격파하였다.\n특히, 493년에 소지마립간은 백제의 동성왕의 결혼요청을 받아들여 이찬(伊飡)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결혼동맹을 맺었다. 그 뒤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는 신라와 백제 양국의 공수관계(攻守關係)는 더욱 공고해져 494년의 고구려의 신라침입 때에는 백제가, 495년 고구려의 백제공격 때에는 신라가 각각 구원병을 파견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강력하게 저지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고구려와의 전투과정에서 변경지방의 요충지에는 삼년산성(三年山城:지금의 報恩) 등을 개축하거나 증축하여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였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22 479~500\n22 지증왕(智證麻立干)\n제22대 : 지증 마립간(智證 麻立干)\n437(눌지왕 21)∼514(법흥왕 1). 신라 제22대 왕. 재위 500∼51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인데 혹은 지도로(智度路)·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n1. 가계\n내물마립간의 증손이며,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눌지마립간의 딸인 조생부인(鳥生夫人)이며, 왕비는 박씨로 이찬(伊飡) 등흔(登欣)의 딸 연제부인(延帝夫人)이다. 왕은 몸이 건장하였으며 담력이 있었다고 한다. 재종형인 소지마립간이 후계자가 없이 죽자 64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n2. 정치개혁과 국명제정\n502년(지증왕 3)에 순장(殉葬)을 금지하는 법령을 내리고, 주군(州郡)에 명하여 농업을 권장하도록 하였으며, 비로소 우경(牛耕)을 시행하도록 하는 일련의 개혁조처를 단행함으로써 농업생산력증대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 무렵에는 벼농사가 확대, 보급되면서 수리사업도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바로 우경이 시작되던 해에 순장을 금지시켰다. 이는 불교적인 의미도 없지 않겠으나 농업노동력의 확보라는 측면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주목된다.\n이러한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에 기반을 두고 일련의 정치적 개혁을 시도하였다. 우선 503년에는 이제까지 사라(斯羅)·사로(斯盧)·신라(新羅)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던 국명을 신라로 확정하였으며, 왕호를 방언인 마립간에서 중국식인 왕으로 바꾸었다.\n이로써 지증왕은 비로소 고대국가로 정비된 신라국의 왕이 되었다. 이때에 제정된 국명인 신라의 의미는 “왕의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을 두루 망라한다(新者德業日新 羅者綱羅四方之義).”는 뜻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n이러한 국명 및 왕호의 한화정책(漢化政策)은 단순한 명칭상의 변경만이 아니라 신라가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왕권과 지배조직을 강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의 고도한 정치조직과 문물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나게 되었다.\n3. 지방제도의 확립\n또한, 505년에는 친히 국내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는데, 지방제도로서의 주군제도(州郡制度)의 실시는 고구려·백제·가야 등의 삼국과의 전쟁에서 얻어진 점령지의 통치와 영토확장의 수단이었다. 즉,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의 수립을 위하여 새로이 신라의 영역내로 편입된 점령지를 행정적 차원에서 일원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효과적인 지방통치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n같은 해에 실직주(悉直州:지금의 강원도 삼척)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신라 최초의 군주(軍主)로 삼은 것도 이러한 지방통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라의 군주제는 군사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이동할 수 있는 군정적(軍政的) 성격을 띠었으며,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중간기구로서 기능하는 외직이었다.\n4. 군사업적과 민생시책의 실시\n한편, 군사적으로는 동북 방면에 파리성(波里城)·미실성(彌實城)·진덕성(珍德城)·골화성(骨火城) 등 12개성을 축조하여 대외적인 방비를 튼튼히 하고, 512년에는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복속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남쪽 방면으로는 신라가 아직 무력으로 완전정복하지 못한 아시촌(阿尸村:지금의 함안?)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여 그곳 주민을 행정적으로 회유함으로써 신라의 직할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사전조처를 취하기도 하였다.\n이밖에도 상복법(喪服法)의 제정, 서울에 동시(東市)의 설치, 선박 이익의 권장 등 일련의 의례와 민생에 관한 시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15년 만에 78세의 나이로 죽었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법(諡法)을 사용하기로는 지증왕이 처음이었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5 500~514\n23 법흥왕(法興王)\n제23대 : 법흥왕(法興王)\n?∼540(법흥왕 27). 신라 제23대왕. 재위 514∼540.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원종(原宗). 지증왕의 원자이며, 어머니는 연제부인 박씨(延帝夫人朴氏)이고, 왕비는 보도부인 박씨(保刀夫人朴氏)이다. 신장이 7척이나 되고 도량이 넓으며 남을 사랑하였다고 한다.\n1. 병부 설치\n법흥왕은 지증왕 때 일련의 개혁정치를 계승하여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서의 통치체제를 완비하였다. 이같은 점에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517년(법흥왕 4)에 설치한 중앙관부로서 병부(兵部)의 존재이다. 신라에서 중앙관부로서는 병부가 제일 먼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권을 왕이 직접 장악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n즉, 517년에 비로소 설치된 병부는 눌지왕 이후에 등장하여 왕의 직속하에 있으면서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군과 같은 직책을 중앙관부로 흡수하여 재편성한 것이다.\n2. 율령제정\n520년에는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공복을 제정하였는데, 이때에 반포된 율령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7관등과 골품제도 등에 관한 규정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율령제정의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율령에 의하여 신라내로 통합된 이질적 요소들이 파악됨으로써 통치가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법에 의한 이질적 요소의 강제적 해소는 상대적으로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권력의 강화를 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n3. 상대등 설치\n그리고 이러한 국가권력, 즉 왕권의 강화를 단적으로 나타낸 제도가 바로 법흥왕대에 비로소 설치된 상대등이다. 상대등은 수상과 같은 존재로서 531년에 이찬(伊飡) 철부(哲夫)가 최초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상대등은 신라의 최고관직으로서 대등으로 구성되는 귀족회의의 주재자였다.\n이러한 상대등이 설치된 배경은 왕권이 점차 강화되어 왕이 귀족회의 주재자로서의 성격을 탈피하게 되자 왕 밑에서 귀족들을 장악할 새로운 관직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n4. 외교관계\n법흥왕은 이와같이 대내적으로 체제를 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영역확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522년에 백제의 적극적인 진출에 반발한 대가야가 법흥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결혼을 요청하므로 왕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동생을 보내어 동맹을 맺었다.\n그 뒤 법흥왕은 적극적인 남진정책을 추진하여 524년에는 남쪽의 국경지방을 순수(巡狩)하고 영토를 개척하였다. 이때 본가야의 왕이 와서 법흥왕과 회견하였는데, 아마도 투항 조건을 타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본가야는 532년에 금관국주(金官國主) 김구해(金仇亥)가 세 아들과 함께 신라에 항복해옴으로써 정식으로 합병되었다. 본가야의 투항은 신라로 하여금 낙동강과 남해안의 교통상의 요지인 김해를 발판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밖에 대아찬 이등(伊登)을 사벌주군주(沙伐州軍主)로 임명하여 서북방면의 점령지를 관리하게 하였다.\n5. 연호사용\n왕권강화와 영역확장 등에 힘입어서 국력이 신장된 신라는 536년(법흥왕 23)에 비로소 독자적 연호인 건원(建元)을 사용하였다. 이로써 법흥왕 이래 신라 중고왕실(中古王室)의 거의 모든 왕들은 자기의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사회에서 중국의 주변국가가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연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일단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의 국가임을 자각한 자주의식의 표현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n또한 521년에는 종래의 외교노선에서 탈피하여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의 북조 대신에 남조인 양(梁)에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이것은 백제의 안내를 받고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n6. 불교수용\n그리고 이때 신라에 사신으로 온 양나라의 승려 원표(元表)가 불교를 신라왕실에 전해준 것이 불교수용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불교가 신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5세기초 아마도 눌지왕 때이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불교전래의 경로는 고구려를 통한 것이었다.\n초기의 전도자(傳道者), 즉 신라불교 개척자로서의 명예를 지니게 된 것은 아도(阿道)였다. 그는 인도의 승려로서 묵호자(墨胡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서 민간의 전도에 힘썼다. 민간에 전파된 불교는 신라귀족으로부터 동두이복(童頭異服)·의론기궤(議論奇詭)의 사교로 비난받았으나 신라와 중국과의 외교적 교섭이 열림에 따라 마침내 신라왕실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n법흥왕은 불교를 크게 일으키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반대를 받아 고민하던 중 527년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국가적 공인이 이루어졌다. 법흥왕에 의하여 국가종교로 수용된 불교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형성에 있어서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여 왕실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n이러한 관계는 법흥왕이 말년에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공(法空)이라 한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재위 27년 만에 죽자 시호를 법흥(法興)이라 하고 애공사(哀公寺)에 장사지냈다.\n닫기\n효현동 김(金) 27 514~540 3기 (AD 514)\n3기\n1.불교를 믿게함\n2.국력이 커짐\n3.낙동강과 한강가를 다시 찾음\n4.백제를 누름\n5.고구려의 힘을 막음\n(AD 645)\n24 진흥왕(眞興王)\n제24대 : 진흥왕(眞興王)\n534(법흥왕 21)∼576(진지왕 1). 신라 제24대 왕. 재위 540∼576.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n1. 가계\n지증왕의 손자로, 법흥왕의 아우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 김씨이며, 왕비는 박씨로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니 왕태후 김씨가 섭정하였다.\n2. 영토확장\n신라의 대외적 발전을 비약적으로 추진시킨 왕이다. 즉위초에는 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551년(진흥왕 12)에 개국(開國)이라고 연호를 바꾸고,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부터 적극적인 대외정복사업을 전개하였다.\n550년에 백제와 고구려가 도살성(道薩城:지금의 천안 혹은 증평)과 금현성(金峴城:지금의 전의)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이듬해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된 이사부(異斯夫)로 하여금 두 성을 공격하여 빼앗게 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한강하류유역의 전초기지를 기반으로 그해에 백제의 성왕과 연합하여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공격하였다.\n그리하여 백제는 고구려로부터 한강하류유역을 탈환하였으며, 진흥왕은 거칠부(居柒夫)를 비롯하여 구진(仇珍)·비태(比台)·탐지(耽知)·비서(非西)·노부(奴夫)·서력부(西力夫)·비차부(比次夫)·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한강 상류유역인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지금의 철령) 이남의 10개 군을 고구려로부터 빼앗게 하였다.\n그리고 553년에는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탈환한 한강하류유역의 전략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고, 동맹관계에 있던 백제를 기습 공격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한강유역의 전부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지역의 통치를 위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阿飡) 김무력(金武力)을 초대 군주(軍主)로 임명하였다.\n3. 정복활동\n신라가 백제로부터 한강하류유역을 탈취한 사건은 백제와의 사이에 맺어졌던 결혼동맹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백제 성왕은 554년 대가야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옥천) 전투에서 오히려 신주군주 김무력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하였으며, 백제군은 거의 전멸되었다.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은 인적. 물적 자원의 획득 이외에도 황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였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564년 이래 거의 매년 중국 남조의 진(陳)과 북조의 북제(北齊) 두 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관계를 공고히 하였다. 또한, 법흥왕의 가야에 대한 정복사업을 계승하여 낙동강유역에까지 정복의 손을 뻗쳤다. 555년에는 비사벌(比斯伐:지금의 창녕)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는데, 이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전의 어느 시기에 아라가야(阿羅加耶:지금의 함안)와 비화가야(非火加耶:지금의 창녕)지방이 신라에 의하여 점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관산성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한 이후에 백제와 연합하였던 대가야는 사실상 신라에 복속된 처지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런데 562년 백제의 신라공격에 힘입어 대가야가 신라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므로, 이사부를 보내어 무력으로 정복하여 멸망시켰다. 이리하여 신라는 가야의 여러 나라를 완전히 정복하였으며, 낙동강유역 전부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565년에 대야주(大耶州:지금의 합천)를 설치하여 가야지역 통치의 본거지로 삼는 동시에 백제에 대한 방어의 전초기지로 삼았다.\n이밖에도 동북방면으로 북상하여 556년에 비열홀주(比烈忽州:지금의 안변)를 설치하고 사찬(沙飡) 성종(成宗)을 군주로 임명하였는데, 이곳을 근거로 하여 568년 이전 어느 시기에는 함흥평야까지 진출한듯하다.\n이와 같은 고구려. 백제. 가야에 대한 활발한 정복사업의 결과로,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은 창녕. 북한산. 황초령(黃草嶺). 마운령(磨雲嶺)에 있는 네 개의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와 최근 발견된 단양의 적성비(赤城碑)가 이를 말하여주고 있다. 네 개의 순수비 중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창녕비는 561년에, 함경남도 함흥군에 있는 황초령비와 이원군에 있는 마운령비는 568년에 각기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으나, 다만 북한산에 세워졌던 북한산비는 건립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진흥왕의 순수관경비는 새로이 신라 영역내로 편입된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수습하고, 확장된 영역을 확인하기 위하여 세워진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n4. 국사편찬과 불교진흥사업\n진흥왕은 이 같은 정복활동뿐만 아니라 대내적인 정치에 있어서도 많은 치적을 남겼다. 우선, 545년 이사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 國史》를 편찬하게 하였다. 《국사》편찬에 관계한 이사부와 거칠부가 모두 내물왕계(奈勿王系) 후예라는 점과 당시 왕족의 혈연의식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중고왕실(中古王室) 왕통(王統)의 정통성을 천명하고, 나아가 유교적인 정치이념에 입각하여 왕자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겼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법흥왕대에 공인된 불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였다. 544년에 흥륜사(興輪寺)를 완성하고, 사람들이 출가하여 봉불(奉佛)하는 것을 허락하여주었다. 549년에는 양(梁)나라에 유학하였던 승려 각덕(覺德)이 불사리(佛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자,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흥륜사 앞에서 영접하게 하였다. 그리고 553년에는 월성(月城) 동쪽에 왕궁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나자 왕궁을 고쳐서 불사(佛寺)로 삼고 황룡사(皇龍寺)라 이름하였는데, 이는 566년에 완공되었다. 황룡사는 신라 최대의 사찰로서 이곳에는 574년에 신라 최대의 불상인 장륙상(丈六像)을 주조하여 모셨다. 황룡사가 완공되던 해에는 지원사(祗園寺)와 실제사(實際寺)도 준공되었다.\n이렇게, 신라왕실의 보호를 받는 불교는 경주를 중심으로 발전함으로써 도성불교적 성격(都城佛敎的性格)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외형적인 사찰건축 외에도 565년에는 승려 명관(明觀)이 불경 1, 700여권을 진(陳)나라에서, 576년에는 안홍법사(安弘法師)가 《능가승만경 愣伽勝槾經》및 불사리를 수나라에서 각각 가져옴으로써 교리적인 발전의 기틀도 마련하였다.\n또한 572년에는 7일 동안 팔관연회(八關筵會)를 외사(外寺)에서 열어 정복전쟁기간에 전사한 장병의 영혼을 위로하였는데, 이것은 신라 불교가 국가의 현실적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호국불교(護國佛敎)임을 나타낸 의식이었다.\n5. 화랑도의 창설\n이와 같이 진흥왕은 불교의 현실적 필요성을 절감하고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편, 그 자신도 불교에 매료되어 만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의(僧衣)를 입고 법호를 법운(法雲)이라 하여 여생을 마쳤으며, 왕비도 이를 본받아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永興寺)에 거처하다가 614년(진평왕 36)에 죽었다. 마지막으로, 진흥왕대의 업적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화랑도(花郎徒)의 창설이다. 진흥왕은 576년에 종래부터 있어오던 여성 중심의 원화(源花)를 폐지하고 남성 중심의 화랑도로 개편하였다. 기록상으로는 576년에 화랑도가 창설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진흥왕 초기에 이미 화랑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562년 대가야 정벌시에 큰 전공을 세운 사다함(斯多含)이 유명한 화랑이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n이처럼, 진흥왕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신라중흥의 군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내적으로는 국가의식과 대외적으로는 자주의식의 상징적 표현이었던 독자적 연호를 세 개나 사용할 수 있었다. 551년의 개국, 568년의 대창(大昌), 그리고 572년의 홍제(鴻濟)가 그것이다. 재위 37년 만인 576년 43세로 죽었다. 애공사(哀公寺) 북봉(北峯)에 장사지냈다.\n닫기\n서악동 김(金) 37 540~576\n25 진지왕(眞智王)\n제25대 : 진지왕(眞智王)\n?∼579(진평왕 1). 신라 제25대왕. 재위 576∼579.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사륜(舍輪) 혹은 금륜(金輪). 진흥왕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박씨(朴氏)로 사도부인(思道夫人)이며, 왕비는 지도부인(知道夫人)이다.\n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이 572년(진흥왕 33)에 죽었기 때문에 진흥왕에 이어서 즉위하여 무열왕계(武烈王系)의 시조가 되었다. 당시의 왕위계승에 있어서는 이미 부자상속제가 확립되어 있었으므로, 진흥왕의 둘째 아들인 진지왕은 진흥왕의 적손(嫡孫), 즉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白淨:뒤의 진평왕)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왕위계승권자가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진흥왕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거칠부(居柒夫)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였을 가능성이 있다.\n이러한 추측은 진지왕이 즉위하던 해(576)에 거칠부를 상대등(上大等)에 임명하여 국정을 맡긴 사실과, 재위 4년 만에 정란황음(政亂荒淫)을 이유로 화백회의(和白會議)의 결정에 따라 폐위되었다는 것과, 또한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n577년(진지왕 2)에 이찬(伊飡) 세종(世宗)이 서쪽 변경의 주군(州郡)으로 침입하여온 백제군을 일선군(一善郡:지금의 선산) 북쪽에서 격파하여 3,700여명을 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내리서성(內利西城)을 축조하여 백제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n그러나 내리서성으로 통하는 길은 2년 뒤에 백제가 웅현성(熊峴城:지금의 보은군내로 비정)과 송술성(松述城)을 쌓음으로써 막히고 말았다. 578년에는 중국 남조(南朝)의 진(陳)나라에 사신을 파견, 진흥왕 이래의 외교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재위 4년 만에 폐위되었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n닫기\n서악동 김(金) 4 576~579\n26 진평왕(眞平王)\n제26대 : 진평왕(眞平王)\n?∼632(선덕여왕 1). 신라 제26대왕. 재위 579∼63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백정(白淨).\n1. 가계와 유년시절\n아버지는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銅輪)이며, 어머니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딸인 만호부인(萬呼夫人)인데, 혹은 만내부인(萬內夫人)이라고도 한다. 왕비는 김씨로서 복승갈문왕(福勝葛文王)의 딸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이 기이하고 몸이 장대하였으며, 의지가 깊고 식견이 명철하였다고 한다. 그는 작은아버지인 진지왕이 화백회의에 의하여 폐위되자 즉위하였다.\n2. 관제의 정비\n진흥왕대를 이어서 왕권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는데, 이것은 관제(官制)의 정비에 힘입은 바가 컸다. 즉위하던 해(579) 8월에 이찬(伊飡)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上大等)에 임명하여 일체의 국정을 맡기고, 580년(진평왕 2)에는 지증왕의 증손인 이찬 후직(后稷)을 병부령(兵部令)에 임명하여 군사권을 장악하게 하였다. 진평왕은 이 두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관제의 정비와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독자적인 왕권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581년에 관리인사를 담당하는 위화부(位和府)를 설치하였으며, 583년에는 선박을 관리하는 선부서(船府署)를 설치하고, 대감(大監)과 제감(弟監)을 각각 1인씩 두었다. 584년에는 국가의 공부(貢賦)를 관장하는 조부(調府)를 설치하고 조부령(調府令) 1인을 두었으며, 같은 해에 또 거승(車乘)을 관장하는 승부(乘府)를 설치하고 승부령 1인을 두었다. 그리고 586년에는 문교와 의례를 담당하는 예부(禮部)를 설치하고 예부령 2인을 두었으며, 591년에는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영객부령(領客府令) 2인을 두었다.\n3. 관제분업체제의 확립\n여기서 진평왕대 초기인 580년대에 위화부·조부, 그리고 예부와 같이 중앙관부 중에서도 핵심적인 구실을 담당하는 관부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이 시기는 신라의 관제발달사상 발전기로서 새로운 행정관부의 창설뿐만 아니라 각 관청간의 분업체제가 확립되었다. 또한, 소속 관원수를 규정함으로써 조직화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진흥왕대의 정복국가체제에서 관부정치체제로의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였다.\n진평왕대 말기인 622년 2월 궁정관부를 총괄하는 내성사신(內省私臣)을 설치하였고,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金龍春)을 처음으로 임명하였다. 이밖에도 623년 정월 병부에 대감 2인을 두었으며, 624년 정월 시위부(侍衛府)에 대감 6인, 상사서(賞賜署)와 대도서(大道署)에 대정(大正) 1인을 각각 설치하였다.\n다음으로 584년에 건복(建福)이라고 개원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천명하는 한편, 581년에 건국하여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의 분열기를 극복하고 589년에 통일왕조로 등장한 중국 수나라와 조공을 통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n4. 외교관계\n그리고 진평왕대에는 중국에서 발달한 고도의 불교문화를 수용하기 위한 고승들의 구법행(求法行)과 귀국행(歸國行)이 빈번하게 있었는데, 고승들의 귀국은 대체로 외교사절의 귀국행차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불교수용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지원을 짐작하게 한다. 진평왕 7년(585)에 남조(南朝)의 진(陳)나라로 구법을 위하여 떠났던 고승 지명(智明)은 602년에 수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상군(上軍)과 함께 귀국하여 왕의 존경을 받아 대덕(大德)이 되었으며, 589년에 진나라로 구법행을 떠났던 원광(圓光)은 600년에 조빙사(朝聘使)인 나마(奈麻) 제문(諸文)과 대사(大舍) 횡천(橫川)과 함께 귀국하였다. 또한, 596년에 수나라로 구법행을 떠났던 고승 담육(曇育)은 605년 수나라에 파견되었던 입조사(入朝使) 혜문(惠文)과 함께 귀국하였다.\n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고승들은 종교적인 불사(佛事)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국가사(國家事)에도 참여함으로써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n5. 고구려·백제와의 관계\n마지막으로, 진평왕대에는 진흥왕대의 고구려·백제 지역에 대한 영역확장의 결과 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빈번한 침입을 받았다. 602년에는 백제가 아막성(阿莫城: 지금의 雲峰)으로 공격하여왔고, 603년에는 고구려가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침입하여왔다.\n이에 진평왕은 양국의 침입을 방어하는 한편, 608년에 수나라의 군사와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여 원광(圓光)에게 〈걸사표 乞師表〉를 짓게 하고, 611년에 이를 수나라에 보냈다. 그 결과 다음해에 수나라 양제(煬帝)의 고구려 정벌이 있게 되었다. 이후에도 백제는 611년에 신라의 가잠성(椵岑城)을 함락시키고, 616년에는 모산성(母山城:지금의 운봉)을 공격하였다.\n그리고 624년 백제의 속함성(速含城:지금의 咸陽)을 비롯한 5성 공격에 대한 신라의 방어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신라는 여러 차례 백제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신라는 수나라를 이어서 618년에 중국의 통일왕조로 등장한 당나라와 621년부터 조공을 통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거의 매년 당나라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였다.\n신라가 당나라와 수립한 외교관계는 고구려에 대한 당나라의 외교적 견제에 이용될 수 있었다. 즉,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한 신라는 625년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고구려의 빈번한 침입으로 말미암아 당나라에 대한 조공로가 막히게 됨을 호소하니, 이에 당나라 고조는 우선 626년에 사신 주자사(朱子奢)를 신라와 고구려에 보내 양국이 화합하라는 외교적 중재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 결과 고구려는 신라에 대한 공격을 일시적으로 중지하기도 하였다.\n진평왕은 당나라에 의한 고구려 견제라는 외교적 노력을 진행시키는 한편, 628년에 가잠성을 포위한 백제군을 격파하기도 하였으며, 629년에는 대장군 김용춘과 김서현(金舒玄)·김유신(金庾信) 부자로 하여금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지금의 청주)을 공격하여 항복받기도 하였다. 재위 54년 만에 죽었다. 한지(漢只)에 장사지냈다. 당나라 태종(太宗)은 조서를 보내어 진평왕에게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를 추증하였다.\n닫기\n보문동 김(金) 54 579~632\n27 선덕여왕(善德女王)\n제27대 : 선덕여왕(善德女王)\n?∼647(선덕여왕 16). 신라 제27대왕. 재위 632∼64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의 장녀로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그를 왕위에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란 호를 올렸다고 한다. 즉,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고 하는 특수한 왕족의식이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n즉위하던 해인 632년에 대신 을제(乙祭)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에는 주군(州郡)의 조세를 일년간 면제해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634년에 분황사(芬皇寺)를, 635년에는 영묘사(靈廟寺)를 세웠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634년에 인평(仁平)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중고왕실의 자주성을 견지하려고 했다. 다만 즉위 이래 거의 매년 당나라에 대해 조공사신을 파견함으로써 당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와 백제의 신라에 대한 공격이 빈번해짐에 따라 당나라와 연합함으로써 국가를 보존하려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n신라는 642년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이해에 신라는 백제의 의자왕의 침공을 받아 서쪽 변경에 있는 40여성을 공취당하였으며, 신라의 한강 방면 거점인 당항성(黨項城:지금의 南陽)도 고구려·백제의 침공을 받았다. 또한 백제장군 윤충(允忠)의 침공으로 낙동강방면의 거점인 대야성(大耶城:지금의 陜川)이 함락당하였다.\n이와 같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선덕여왕은 김유신(金庾信)을 압량주(押梁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에 임명하여 백제의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643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 무렵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자장(慈藏)의 건의에 따라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9층탑(皇龍寺九層塔)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구원요청에 접한 당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여왕이 통치하기 때문에 양국의 침범을 받게 되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편 고구려에 대해서는 644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적 견제를 가하였으나 이는 연개소문(淵蓋蘇文)에 의해 거부되고 말았다.\n그런데 당태종에 의해서 지적되었던 여왕통치의 문제점은 신라 정계에 파문을 일으켜 647년 정월에는 상대등 비담(毗曇)과 염종(廉宗) 등 진골 귀족들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것을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에 의해 진압되었다. 여왕은 이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위 16년 만에 죽으니 시호(諡號)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n닫기\n배반동 김(金) 16 632~647\n28 진덕여왕(眞德王)\n제28대 : 진덕여왕(眞德女王)\n?∼654(태종무열왕 1). 신라 제28대왕. 재위 647∼654.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승만(勝曼). 신라 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이다. 진평왕의 친아우〔同母弟〕인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月明夫人) 박씨(朴氏)이다. 진덕여왕은 자질이 풍만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즉위하던 해(647)에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毗曇)을 비롯한 30인을 붙잡아 처형하고, 알천(閼川)을 상대등에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다.\n그리고 사신의 파견을 통하여 중국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지속시켰는데, 이것은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진덕여왕이 즉위하면서부터 계속적으로 신라를 침공하여왔다. 이에 신라는 압독주(押督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이던 김유신(金庾信)을 중심으로 백제의 공격을 막게 하는 한편, 648년(진덕여왕 2)에는 김춘추(金春秋)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청병외교(請兵外交)와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숙위외교(宿衛外交)를 전개하였다. 이리하여 신라는 지금까지 신라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이던 당나라의 태종(太宗)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는 데 성공하였다.\n또한, 김춘추의 당나라에서의 외교활동은 결과적으로 신라 내정(內政)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여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649년 중조의관제(中朝衣冠制)를, 650년에는 즉위 직후부터 사용하던 독자적 연호인 태화(太和)를 버리고 비로소 당나라 고종(高宗)의 연호였던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중국의 관제와 연호의 사용 등은 김춘추의 건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서 당나라의 선진문물의 수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당나라에 대한 신라의 정치적 예속도가 강화되었다는 부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n또한, 651년에 백관(百官)의 왕에 대한 정조하례제(正朝賀禮制)의 실시와 품주(稟主)를 개편한 집사부(執事部)의 설치는 왕권강화의 의미를 가지는 정치적 개혁으로 김춘추·김유신 일파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재위한 지 8년 만에 죽었다.\n닫기\n현곡면 오류리 김(金) 6 647~654\n29 무열왕(武烈王)\n제29대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n602(진평왕24)∼661(문무왕 1). 신라 제29대 왕. 재위 654∼661. 성은 김씨. 이름은 춘추(春秋). 진지왕의 손자로 이찬(伊飡) 용춘(龍春, 혹은 龍樹)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으로 진평왕의 딸이다. 비는 문명부인(文明夫人)인데 각찬(角飡, 角干) 김서현(金舒玄)의 딸, 즉 김유신(金庾信)의 누이동생 문희(文姬)이다. 김춘추는 의표(儀表)가 영특하고 어려서부터 제세(濟世)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n진덕여왕을 섬겨서 관등이 이찬에 이르렀다. 진덕여왕이 죽었을 때 여러 신하들이 처음에는 왕위계승자로서 상대등 알천(閼川)을 천거하였으나, 알천이 자신의 늙음과 덕행의 부족함을 들어 사양하고 그 대신 제세의 영걸(英傑)로서 김춘추를 천거하였다. 이에 김춘추가 추대를 받아 즉위하여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되니 당시 나이가 52세였다.\n그의 즉위에는 오래전부터 상당히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있었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와 정략적인 측면에서 혼인함으로써 왕위에서 폐위된 진지왕계와 신라에 항복하여 새로이 진골귀족에 편입된 금관가야계의 정치적·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n즉 진지왕계인 김용춘·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이 그들의 배후세력으로 필요하였으며, 금관군주 김구해계(金仇亥系)인 김서현·김유신은 김춘추계의 정치적 위치가 그들의 출세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호이익에 입각한 양파의 정치적 결탁은 신라 중고왕실(中古王室)의 진골귀족내에서 새로운 신귀족 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구귀족 집단의 반발을 받았으며, 선덕왕대 중반기까지는 적어도 신귀족과 구귀족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듯하다.\n그러나 642년(선덕여왕 11)에 신라의 서방요충인 대야성(大耶城: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이 백제에게 함락되고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金品釋) 부처의 죽음은 김춘추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김춘추로 하여금 대외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게 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야성에서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갔다.\n그러나 고구려와의 동맹관계 수립을 위한 이 외교는 진흥왕 때에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공취한 한강 상류유역의 영토 반환 문제로 말미암아 결렬되고, 오히려 김춘추는 고구려에 억류당했다가 겨우 탈출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야성에서의 패배와 고구려에 대한 외교의 실패 등은 김춘추와 김유신계의 정치적 결합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결합을 바탕으로 김춘추는 647년에 일어난 구귀족 세력인 상대등 비담(毗曇)의 반란을 진압시킬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구귀족 집단의 대표자인 비담이 선덕여왕을 옹립하고 있는 신귀족 집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것인데, 오히려 김춘추·김유신계의 신귀족 세력에 의해서 30여명이 숙청당함으로써 분쇄되고 말았다. 이 정변의 와중에서 선덕여왕이 죽자 신귀족은 구귀족과 일시적으로 제휴하여 진덕여왕을 즉위시키고, 구귀족 세력의 대표인 알천을 상대등에 임명하였다. 비담의 반란 진압과 진덕여왕의 옹립 과정에서 김춘추·김유신계는 정치적 실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덕여왕 대에는 김춘추에 의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외교활동과 내정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n김춘추는 고구려와의 동맹관계 수립에 실패하자 다시 당나라와의 관계강화를 위하여 648년(진덕여왕 2)에 당나라에 파견되어 적극적인 친당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당 태종으로부터 백제공격을 위한 군사지원을 약속받았다. 김춘추에 의한 친당정책은 650년에 신라가 중고시대 전기간을 통하여 계속 사용하여 오던 자주적인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 연호인 영휘(永徽)를 신라의 연호로 채택한 데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n한편 김춘추는 귀국 후에 왕권강화를 위한 일련의 내정개혁을 주도하였는데, 649년 중조의관제(中朝衣冠制)의 채택, 651년 왕에 대한 정조하례제(正朝賀禮制)의 실시, 품주(稟主)의 집사부(執事部)로의 개편 등 한화정책(漢化政策)이 그것이다. 김춘추에 의하여 주도된 내정개혁의 방향은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하고 왕권강화를 실제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n이것은 진덕여왕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김춘추 자신이 즉위할 경우에 대비한 정치 작업으로서의 성격이 짙었다.\n친당외교와 내정개혁을 통하여 신장된 신귀족 세력의 힘을 기반으로 하여 김춘추는 진덕여왕이 죽은 뒤에 화백회의에서 섭정으로 추대되었고, 그리고 그와도 일시적으로 제휴하였던 구귀족 세력의 대표인 상대등 알천을 배제시키면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김춘추는 즉위에 있어서 그의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폐위되었던만큼 화백회의에 의하여 추대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구귀족으로부터 신귀족으로의 권력이양과 왕위계승의 합법성 내지 정당성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무열왕은 즉위하던 해에 우선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어머니 천명부인을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추증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이방부격(理方府格) 60여조를 개정하는 등의 율령정치(律令政治)를 강화하였다.\n그리고 655년(태종무열왕 2)에 원자(元子)인 법민(法敏)을 태자에 책봉함으로써 왕권의 안정을 꾀하는 한편 아들 문왕(文王)을 이찬으로, 노차(老且, 혹은 老旦)를 해찬(海飡)으로, 인태(仁泰)를 각찬(角飡)으로, 그리고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자기의 권력기반을 강화시켰다. 656년에는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김인문(金仁問)을 군주(軍主)에, 658년에는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문왕을 집사부 중시(中侍)에 새로이 임명하여 직계친족에 의한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그의 즉위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던 김유신에 대해서는 660년에 상대등으로 임명하여 왕권을 보다 전제화(專制化)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n그것은 태종무열왕이 즉위하기 이전인 중고시대의 상대등은 귀족회의의 대표자로서 왕권을 견제하는 존재이거나 왕위계승 경쟁자로서의 자격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 태종무열왕이 즉위한 이후에 왕의 측근세력인 김유신이 상대등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상대등이 귀족세력의 대표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전제왕권과 밀착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대등 중심의 귀족세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으며 신라 중대사회에서는 전제왕권의 방파제 구실을 하는 행정책임자인 집사부 중시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이다.\n이와 같이 친당외교를 통하여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고 내정에서는 측근세력의 정치적 포석을 통하여 왕권을 안정시킨 다음 고구려·백제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였다. 655년에 고구려가 백제·말갈(靺鞨)과 연합하여 신라 북경지방의 33성을 공취하자 신라는 당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였고, 이에 당나라의 정명진(程名振)과 소정방(蘇定方)의 군사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또한 659년에는 백제가 자주 신라의 변경지방을 침범하므로 당나라의 군사를 청하여 660년부터 본격적인 백제정벌을 추진하였다. 3월에 소정방을 비롯한 수륙(水陸) 13만명이 백제를 공격하여 5월에 왕은 태자 법민과 유신·진주(眞珠)·천존(天存) 등과 더불어 친히 정병(精兵) 5만명을 이끌고 당군의 백제공격을 응원하였다. 7월에는 김유신이 황산벌〔黃山之原〕전투에서 계백(階伯)이 이끄는 5,000명의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과 연합하여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켰다.\n이어서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하였던 의자왕과 왕자 부여 융(扶餘隆)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이는 신라의 숙원이던 백제를 병합함으로써 반도통일(半島統一)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사비성 함락 이후 9월에 당나라는 유인원(劉仁願)의 1만명과 김인태(金仁泰)의 7,000명의 군대로 하여금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 10월에 태종무열왕은 친히 백제지역에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이례성($이01禮城:지금의 論山) 등 20여성의 항복을 받고 11월에 백제로부터 귀환하여 백제정벌에서 전사한 자들과 전공을 세운 자들에게 상을 차등있게 내려 주었다.\n그리고 항복해 온 백제의 관료들에게도 능력에 따라 신라의 관등을 주어 관직에 보임하는 회유책을 쓰기도 하였다.\n신라가 백제를 정벌하는 동안 고구려는 660년에 신라의 칠중성(七重城:지금의 積城)을 공격해왔고, 661년에는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연합하여 술천성(述川城:지금의 驪州)을 공격하고 다시 북한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성주인 대사(大舍) 동타천(冬陁川)이 효과적으로 방어하였으므로 대나마(大奈麻)로 관등을 높여 주었다.\n이해에 압독주(押督州:지금의 慶山)를 대야(大耶:지금의 陜川)로 다시 옮기고 아찬(阿飡) 종정(宗貞)을 도독에 임명함으로써 정복된 백제지역의 관리에 적극성을 보였다. 재위한 지 8년 만에 죽으니 나이 59세였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며,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다.\n닫기\n서악동 김(金) 8 654~661 번창기 (AD 645)\n번창기\n(진골 8왕. 127년간)\n1.당나라의 안동도호부 쫓아냄\n2.백제를 합침\n3.고구려를 합침\n4.평양·원산이남을 통일\n5.국학을 세움\n6.이 두\n7.신라문화의 번창\n8.정전을 나눠줌\n(AD 645)\n30 문무왕(文武王)\n제30대 : 문무대왕(文武大王)\n?∼681(신문왕 1). 신라 제30대왕. 재위 661∼681.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태종무열왕의 원자이다. 어머니는 소판(蘇判) 김서현(金舒玄)의 작은 딸이며,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다. 비(妃)는 자의왕후(慈儀王后)로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딸이다.\n법민은 외모가 영특하고 총명하여 지략(智略)이 많았다. 진덕여왕 때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당(唐)나라에까지 가서 외교활동을 하였다. 부왕 태종무열왕 때 파진찬으로서 병부령(兵部令)을 역임하였으며 얼마 뒤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660년(태종무열왕 7) 태종무열왕과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연합하여 백제를 정벌할 때 법민도 이 전쟁에 종군하여 큰 공을 세웠다. 661년에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미처 통일하지 못하고 죽자 이에 법민이 왕위를 계승하여 삼국통일의 과업을 완수하였다. 그러므로 문무왕이 재위한 21년 동안은 거의 백제부흥군, 고구려 그리고 당나라와 전쟁의 연속이었다.\n문무왕은 즉위하던 해(661) 옹산성(甕山城:지금의 大德郡 懷德面)과 우술성(雨述城)에 웅거하던 백제잔적(百濟殘賊)을 공파하여 항복을 받고 그곳에 웅현성(熊峴城)을 축조하였다. 그리고 663년(문무왕 3)백제의 거열성(居列城:지금의 居昌)·거물성(居勿城)·사평성(沙平城)·덕안성(德安城)의 백제잔적을 정벌하였다.\n이때 각지에서 일어난 백제부흥군의 중심인물은 백제의 옛 장군인 복신(福信)과 승려인 도침(道琛)이었다. 이들은 일본에 가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왕으로 추대하고 주류성(周留城:지금의 韓山, 또는 扶安이라는 설이 있음.)에 근거를 두고 웅진성(熊津城)을 공격하여 신라와 당나라의 주둔군을 괴롭혔다. 이에 문무왕은 김유신 등의 28명의 장군과 함께 당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손인사(孫仁師)의 증원병과 연합하여 부흥군의 본거지인 주류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함락하였다. 이어서 지수신(遲受信)이 끝까지 항거하던 임존성(任存城:지금의 大興)마저 정복함으로써 백제부흥운동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문무왕은 664년 백제왕자였으며 당나라의 지원을 받던 웅진도독(熊津都督)부여 융(扶餘隆)과 화맹(和盟)을 맺었다.\n한편, 문무왕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정벌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즉위하던 해 당나라가 소정방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는 한편, 김유신을 비롯한 김인문(金仁問)·진주(眞珠) 등의 장군을 이끌고 당군의 고구려 공격에 호응하였다. 대동강을 통하여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던 소정방의 당군이 연개소문(淵蓋蘇文)의 굳센 항전으로 고전하므로 662년 김유신을 비롯한 9명의 장군으로 하여금 당군에게 군량까지 보급하였으나 소정방은 물러가고 말았다. 문무왕은 666년 다시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여 한림(漢林)과 삼광(三光)을 당나라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여 667년 이세적이 이끈 당군과 연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고, 668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n당군이 신성(新城:지금의 奉天)·부여성(扶餘城) 등 만주의 여러 성을 차례로 공파하고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을 포위공격하므로 문무왕도 6월 김유신·김인문·김흠순(金欽純) 등이 이끄는 신라군을 당영(唐營)에 파견하여 당군과 함께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이리하여 9월 보장왕(寶臧王)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문무왕은 고구려 멸망에 공을 세운 여러 장사(將士)에게 논공행상을 하고 11월 백제와 고구려의 평정을 선조묘(先祖廟)에 고하였다.\n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점령지의 지배를 위하여 평양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중심으로 9도독부, 42주, 100현을 두고 통치에 임하였다.\n그러나 이러한 행정적 조처는 고구려유민(高句麗遺民)의 항쟁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부흥운동 중에서도 특히 수림성(水臨城)사람으로 대형(大兄)인 검모잠(劍牟岑)의 활동이 가장 두르러졌는데, 그는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安勝)을 왕으로 맞이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670년 안승이 검모잠을 죽인 다음 4천호를 이끌고 신라로 망명하므로 문무왕은 그를 금마저(金馬渚:지금의 益山)에 머무르게 하고, 고구려왕(高句麗王:뒤의 報德王)에 봉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의 부흥운동도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어 좌절하고 말았다.\n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삼국 전체를 자기의 영토로 삼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이리하여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당나라와 새로운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무왕이 옛 백제땅인 금마저에 안승을 맞아들인 것도 고구려부흥운동과 연결하여 당나라 및 당나라와 결탁한 웅진도독 부여 융의 백제군에 대항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n한편, 문무왕은 670년 품일(品日)·문충(文忠) 등이 이끄는 신라군으로 하여금 63성을 공취하여 그곳의 인민을 신라의 내지로 옮기고, 천존(天存) 등은 7성을, 군관(軍官) 등은 12성을 함락시켰다. 또한, 671년 죽지(竹旨) 등이 가림성(加林城:지금의 林川)을 거쳐 석성(石城:지금의 林川 동쪽)전투에서 당군 3천5백명을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다.\n이때 당나라의 행군총관(行軍摠管) 설인귀(薛仁貴)가 신라를 나무라는 글을 보내오자 문무왕은 이에 대하여 신라의 행동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글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사비성(泗沘城:지금의 扶餘)을 함락시키고 여기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여 아찬(阿飡) 진왕(眞王)을 도독에 임명함으로써 백제 고지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였다.\n한편, 같은 해 바다에서는 당나라의 운송선 70여척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옛 땅에서도 신라와 당나라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특히, 신라가 백제의 고지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침략해온 당군과 전투가 가장 치열하였다. 문무왕 672년 이래로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군을 동원하여 침략해옴으로써 신라는 한강으로부터 대동강에 이르는 각지에서 당군과 여러 차례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나라는 674년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대총관(鷄林道大摠管)으로 삼아 침략해옴과 동시에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일방적으로 신라왕(新羅王)에 봉하여 문무왕에 대한 불신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다.\n신라의 당나라에 대한 항쟁은 675년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해에 설인귀는 당나라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을 안내자로 삼아 쳐들어왔으나 신라장군 문훈(文訓)은 이를 격파하여 1천4백명을 죽이고 병선 40척, 전마 1천필을 얻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이근행(李謹行)이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오므로 신라군은 매초성(買肖城:지금의 楊州)에서 크게 격파하여 이들을 물리쳤다.\n이 매초성의 승리는 북쪽 육로를 통한 당군의 침략을 저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676년 해로로 계속 남하하던 설인귀의 군대를 사찬(沙飡) 시득(施得)이 지벌포(伎伐浦)에서 격파함으로써 신라는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당나라는 결국 676년 안동도호부를 평양으로부터 요동성(遼東城:지금의 遼陽)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결과 신라는 많은 한계성을 지니는 것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이남의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함으로써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n문무왕은 이와같이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과정에서도 국가체제의 정비를 위하여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증가한 중앙관부(中央官府)의 업무와 확장된 영역의 통치를 위하여 불가피한 조처였던 것이다. 우선, 문무왕이 재위한 21년 동안 잡찬(迊飡) 문왕(文王)을 비롯한 문훈·진복(眞福)·지경(智鏡)·예원(禮元)·천광(天光)·춘장(春長)·천존 등 8명의 인물이 행정책임자로서 집사부 중시(中侍)를 역임하였다. 문무왕은 이 중에서 특히 문왕·지경·예원과 같이 자기의 형제들을 중시에 임명함으로써 왕권의 안정을 꾀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통일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n그리고 문무왕은 671년과 672년에 걸쳐 병부(兵部)·창부(倉部)·예부(禮部)·사정부(司正府)와 같은 중앙관부의 말단행정 담당자인 사(史)의 인원수를 증가시켜 업무처리를 원활하게 하였다. 지방통치를 위해서는 673년 진흥왕대에 이미 소경(小京)을 설치한 중원(中原)에 성을 축조하였으며, 통일한 후인 678년 북원소경(北原小京)을, 680년 금관소경(金官小京)을 두어 왕경(王京)의 편재에서 오는 불편함을 극복하고 신문왕대에 완성되는 5소경제(小京制)의 기틀을 마련하였다.\n또한, 삼국통일 후의 신라군사조직의 기간은 신라민과 피정복민으로 구성된 중앙의 9서당(誓幢)과 지방의 9주에 설치된 10정(停)이었다. 여기에서 9서당은 대체로 신문왕대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9서당 중에서 백금서당(白衿誓幢)은 문무왕이 백제지역을 온전히 점령한 다음해인 672년에 백제민으로써 조직한 것이다.\n또, 같은해 장창당(長槍幢)을 두었는데 이것은 693년(효소왕 2) 비금서당(緋衿誓幢)이 되었다. 이로써 보면 9서당 편제의 기초는 이미 문무왕대에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 문무왕 672년 기병을 위주로 하는 지방군제의 하나인 5주서(州誓)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문무왕의 체제정비작업은 675년 백사(百司)와 주군(州郡)의 동인(銅印)을 제작, 반포한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시호는 문무(文武)이며, 장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 해중왕릉(海中王陵)인 대왕암(大王巖)이다.\n닫기\n문무대왕면 봉길리 수장(水葬) 김(金) 21 661~681\n31 신문왕(神文王)\n제31대 : 신문왕(神文王)\n?∼692(신문왕 12). 신라 제31대왕. 재위 681∼69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정명(政明) 혹은 명지(明之), 자는 일초(日招).\n1. 가계\n문무왕의 장자이며 664년(문무왕 4)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왕비는 김씨인데 소판(蘇判) 흠돌(欽突)의 딸이다. 왕이 태자로 있을 때 비로 맞아들였으나 오래되어도 아들이 없었으며, 나중에 그 아버지의 반란에 연좌되어 왕궁에서 쫓겨났다.\n683년(신문왕 3)에 다시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n2. 김흠돌 반란사건 진압\n신문왕대는 태종무열왕대부터 시작된 신라의 중대왕실의 전제왕권이 확고하게 자리잡힌 시기이다. 왕이 즉위하던 해에 왕의 장인인 김흠돌을 비롯한 파진찬(波珍飡) 흥원 (興元),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등의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모두 평정하였다.\n김흠돌의 반란은 왕권전제화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것으로서 반란의 원인은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신문왕비인 그의 딸이 아들을 낳지 못한 사실 또는 모반사건 바로 전에 진복(眞福)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사실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사건에는 많은 귀족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신문왕은 주동자뿐만 아니라 말단 가담자까지도 철저한 숙청을 가하였다.\n더구나 문무왕 때 상대등이던 이찬(伊飡) 군관(軍官)도 이 반란의 모의사실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주살하였다. 반란사건에 대한 불고지죄(不告知罪)는 군관과 같이 막중한 지위에 있던 귀족을 숙청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이유로 보인다.\n그러나 신문왕은 이 기회에 상대등으로 대표되는 귀족세력을 철저하게 탄압하려는 의도에서 과감한 정치적 숙청을 단행함으로써 전제왕권의 확립을 꾀하였다. 이러한 신문왕의 의지는 두 차례에 걸쳐 전국에 반포된 교서(敎書)에 잘 반영되어 있다.\n682년에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도 위의 모반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즉 만파식적에는 김흠돌의 반란과도 같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제왕권하의 신라의 평화를 상징하여주는 것이었다.\n3. 국학설립\n같은 해에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인재의 교육과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여기에 경(卿) 1인을 두었다. 이것은 진덕여왕대에 이미 국학에 소속된 대사(大舍)라는 관직을 설치함으로써 국학설립을 위한 준비가 착수되었던 것인데 신문왕대에 와서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되었다.\n한편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685년에는 봉성사(奉聖寺)와 망덕사(望德寺)를 준공하기도 하였다.\n닫기\n배반동 김(金) 12 681~692\n32 효소왕(孝昭王)\n제32대 : 효조왕(孝照王)\n?∼702(성덕왕 1). 신라 제32대왕. 재위 692∼70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이홍(理洪) 또는 이공(理恭). 신문왕의 태자이며, 어머니는 김흠운(金欽運)의 딸 신목왕후 김씨(神穆王后金氏)이다. 691년(신문왕 11)에 태자로 책봉되었다.\n692년에 즉위하여서는 좌우이방부(左右理方府)의 ‘이(理)’자가 왕의 이름과 같으므로 피휘(避諱)하여 좌우의방부(左右議方府)로 관부의 명칭을 고치기도 하였다. 즉위하던 해에 대아찬(大阿飡) 원선(元宣)을 집사부(執事部) 중시(中侍)에 임명하여 국정을 위임하였다. 같은해에는 고승 도증(道證)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천문도(天文圖)를 왕에게 바쳤다. 천문도는 고구려에 전래된 진탁(陳卓)의 성도(星圖)와 같은 것으로서 왕실권위의 상징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이 무렵에 의학 교육기관인 의학(醫學)을 설립하여 의학박사를 두고 《본초경 本草經》·《침경 針經》·《맥경 脈經》 등의 중국 의학서를 교수하게 하였다.\n695년에 서시전(西市典)과 남시전(南市典)을 두었는데 이것은 지증왕대에 설치된 동시전(東市典)과 더불어 왕경(王京)의 3대시전으로서 물화의 유통을 쉽게 하였다. 이해에 자월(子月:음력 11월)을 정월로 정하였다가 700년에 다시 인월(寅月:음력 1월)을 정월로 바꾸었다. 698년에 일본국(日本國)의 사신을 접견하였으며 699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朝貢)함으로써 양국과의 우호적인 외교관계도 유지하였다.\n700년에 이찬(伊飡) 경영(慶永, 혹은 慶玄)의 반란이 있었으며 이 사건에 연좌되어 698년에 중시로 임명되었던 순원(順元)이 파면되었다. 반란의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어려서 즉위한 효소왕의 유약함과 왕자가 없음을 이유로 다음의 왕위계승을 위하여 일어난 것으로 짐작되며 쉽게 평정되었다. 702년 7월에 죽으매 망덕사(望德寺)동쪽에 장사지냈다. 능은 경주 낭산(狼山) 동남쪽에 있다.\n닫기\n조양동 김(金) 11 692~702\n33 성덕왕(聖德王)\n제33대 : 성덕대왕(聖德大王)\n?∼737(성덕왕 36). 신라 제33대왕. 재위 702∼73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본래 융기(隆基)였으나 뒤에 흥광(興光)으로 고쳤다.\n1. 가계\n신문왕의 둘째아들이며 효소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소왕이 아들이 없이 죽었으므로 화백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비는 전비(前妃)는 704년(성덕왕 3)에 승부령(乘府令)이던 소판(蘇判) 김원태(金元太)의 딸인 성정왕후(成貞王后, 혹은 嚴貞王后)를 맞아들였으나 성덕왕 15년에 왕궁에서 내보내고,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를 계비로 맞이하였다.\n2. 내치\n성덕왕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사회전반에 걸쳐서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우선 정치적으로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집사부(執事部)의 중시(中侍)가 일체의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됨에 따라 전제왕권은 보다 강화될 수 있었다. 아찬(阿飡) 원훈(元訓)이 성덕왕이 즉위하던 702년에 중시에 임명된 이래로 원문(元文)·신정(信貞)·김문량(金文良)·김위문(金魏文)·효정(孝貞)·김사공(金思恭)·문림(文林)·선종(宣宗)·윤충(允忠) 등 10명의 인물이 성덕왕대에 중시로서 활동하였다. 특히, 이들 중에서 원훈·사공·선종의 경우에는 천재지이(天災地異)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남으로써 중시가 전제왕권의 안정을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n이러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711년에는 왕이 백관잠(百官箴)을 지어 군신(群臣)에게 제시하였다. 백관잠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전제왕권하에서 신하가 지켜야 할 계명(誡命)을 적은 것으로서 유교적인 충군사상(忠君思想)이 주요내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이, 성덕왕대에 있어서 귀족세력의 약화는 귀족회의의 대표자였던 상대등의 위축된 활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n성덕왕대에는 효소왕 때부터 활동하던 이찬 개원(愷元)을 비롯하여 인품(仁品)·배부(裵賦)·사공 등 4명이 상대등으로 재직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n3. 외교정책\n성덕왕은 국내의 정치안정을 기반으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추진하였다. 703년에 일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도 유지하였지만, 특히 당나라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하여졌다. 703년에 아찬(阿飡) 김사양(金思讓)이 당나라에 조공한 이래 36년 동안 당에 파견된 신라의 사절횟수는 43회로서 신라 중대왕실의 다른 어느 왕 때보다도 많았으며 사절의 내용은 주로 조공과 숙위(宿衛), 그리고 하정(賀正)이었다. 이러한 당과의 빈번한 외교적 교섭은 신라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문물의 수입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n704년에 입당사(入唐使) 김사양이 귀국하여 최승왕경(最勝王經)을 바쳤고, 717년에는 숙위 김수충(金守忠)이 귀국하여 문선왕과 10철(哲) 및 72제자의 화상(畵像)을 바치므로 국학(國學)에 봉안하였다. 이는 전제왕권 안정에 필요한 정치이념으로서의 유교의 적극적 수용의지를 반영한 것이며, 728년에는 왕제인 김사종(金嗣宗)을 당나라에 파견하면서 신라 귀족자제들의 당나라 국학의 입학을 요청하였다.\n4. 위민농본정책\n717년에 의학박사와 산박사(算博士)를 각각 1인씩 두었고, 718년에는 누각(漏刻)을 처음으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기술관계의 관직설치와 시설은 모두 유교적 이상정치인 위민 및 농본정책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성덕왕의 위민 및 농본정책은 특히 705년에 동쪽 주군(州郡)의 백성들이 굶주려서 유망(流亡)하므로 관리를 파견하여 진휼하고, 706년에는 국내에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으며, 6년에는 백성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나누어준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n그리고 722년에는 모든 백성들에게 비로소 정전(丁田)을 지급하였는데, 정전은 정(丁)을 기준으로 하여 백성들에게 지급한 토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가 실제적으로 백성에게 토지를 지급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영농민(自營農民)이 본래 소유하고 있던 토지에 대한 국가적 인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 국가는 농민으로부터 많은 세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재정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게 되었다.\n5. 국방정책\n국방시책으로는 721년에 하슬라도(何瑟羅道:지금의 강릉)의 정부(丁夫) 2, 000명을 징발하여 북경지방에 장성을 축조하는가 하면 722년에는 모벌군성(毛伐群城: 지금의 경주시 외동면)을 축조하여 일본의 침입로를 차단하기도 하였다. 731년에 일본의 병선 300척이 동해변을 습격하자 이를 공격하여 대파시켰다.\n733년에 당나라의 요청을 받고 고구려의 고지에서 건국하여 신라와 사실상 국경을 접하고 있던 발해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735년에는 당나라와의 외교적 현안이었던 국경문제를 패강(浿江:지금의 大同江)으로 확정지었다. 이로써, 신라의 영토는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이남지역으로 결정되었다. 성덕왕은 이 지역의 민심수습과 북방경영을 위하여 이찬 윤충(允忠)·사인(思仁)·영술(英述) 등을 파견하여 평양주와 우두주(牛頭州:지금의 춘천)의 지세를 조사하게 하였다.\n시호는 성덕(聖德)이며, 이거사(移車寺)의 남쪽에 장사지냈다. 왕릉은 현재 경주시 조양동에 있다.\n닫기\n조양동 김(金) 36 702~737\n34 효성왕(孝成王)\n제34대 : 효성왕(孝成王)\n?∼742(경덕왕 1). 신라 제34대 왕. 재위 737∼74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승경(承慶).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태자 중경(重慶)이 717년(성덕왕 16)에 죽었으므로 724년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성덕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어머니는 성덕왕의 계비(繼妃)인 소덕왕후(炤德王后)이고, 비는 739년(효성왕 3)에 맞아들인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 혜명(惠明)이다.\n효성왕은 즉위하면서 사정부(司正府)의 승(丞)과 좌우의방부(左右議方府)의 승을 모두 좌(佐)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승(丞)’자가 왕의 이름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즉위하던 해(737) 3월에 이찬 정종(貞宗)을 상대등에 임명하여 귀족회의를 관장하게 하고 아찬(阿飡) 의충(義忠)을 집사부(執事部)의 중시(中侍)에 임명하여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n739년 의충이 죽자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에 임명하고, 왕제(王弟)인 헌영(憲英:뒤의 경덕왕)의 관등을 파진찬(波珍飡)으로 하여 태자로 삼았다.\n또, 전 왕인 성덕왕 때에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외교적 통로를 이용하여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특히 738년에 당나라 사신 형숙(邢璹)이 신라에 올 때 당나라 현종(玄宗)이 그에게 ‘신라는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일러준 것을 보아도 당시 신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n이때 형숙은 《노자도덕경 老子道德經》을 비롯한 서책을 왕에게 바쳤는데, 여기서 신라의 선진문물에 대한 수용자세를 엿볼 수 있다. 740년에는 파진찬 영종(永宗)의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모두 평정되었다.\n반란의 원인은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이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왕비가 이를 시기하여 그의 족당(族黨)과 더불어 후궁을 모살하였다. 이에 영종이 왕비의 족당을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보면 단순한 여인들의 투기가 정치적 반란을 유발한 것 같으나 실제는 성덕왕대에 전성을 구가하던 중대(中代)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부터 그간에 축적되었던 정치적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n즉, 이것은 전제왕권 하에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이 왕권의 약화를 틈타 다시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741년에 귀족세력의 대표인 상대등 정종과 경덕왕대에 상대등으로 활동하는 사인(思仁)이 왕을 대신하여 열병(閱兵)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n재위 6년째 되던 742년 5월에 죽으매 시호를 효성이라 하고, 유명(遺命)에 따라 법류사(法流寺) 남쪽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뿌렸다.\n닫기\n수장(水葬) 김(金) 6 737~742\n35 경덕왕(景德王)\n제35대 : 경덕왕(景德王)\n?∼765. 신라 제 35대 왕. 재위 742∼765.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헌영(憲英).\n1. 가계·정치제도\n성덕왕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소덕왕후(炤德王后)이다. 효성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비는 이찬(伊飡) 김순정(金順貞)의 딸이다. 743년(경덕왕 2)다시 서불한(舒弗邯) 김의충(金義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n경덕왕 때에는 신라 중대 왕실의 전제왕권이 새로운 귀족세력의 부상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하여, 왕권의 재강화를 위한 일련의 관제정비와 개혁조치가 취해진 시기였다. 개혁정치의 주역은 경덕왕과 신라 중대에서 행정책임자였던 집사부의 중시였다.\n744년에 이찬 유정(惟正)이 중시에 임명된 이래, 대정(大正)·조량(朝良)·김기(金耆)·염상(廉相)·김옹(金邕)·김양상(金良相) 등 7인의 인물이 경덕왕 때에 중시를 역임하였다. 특히, 747년에 중시의 명칭을 ‘시중(侍中)’으로 변경하였으며, 또 국학에 제업박사(諸業博士)와 조교를 두어 유학교육을 진흥시키고, 748년에는 정찰(貞察)1명을 두어 백관을 규찰하게 함으로써, 왕을 정점으로 하는 전제왕권체제를 유지하려 하였다.\n이밖에도 749년에 천문박사 1명과 누각박사(漏刻博士) 6인을, 758년에는 율령박사 2인을 두었는데, 이것은 모두 위민의식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분야에 대한 제도적인 배려였던 것이다. 경덕왕의 개혁적 제도정비는 귀족세력을 제어하면서 전제왕권체제를 강화하려는 일종의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이해할 수 있다.\n2. 제도·개혁에 대한 비판\n그러나 이러한 한화정책 추진은 745년에 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상대등에 임명되었던 김사인(金思仁)에 의해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 756년에 상소를 통하여, 근년의 빈번한 천재지이를 들어 현실정치의 모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시의 시중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n이때의 비판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경덕왕에 의해서 추진되던 한화적 개혁정치가 비판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김사인의 비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757년 병을 표면상 이유로 하여 상대등직에서 물러나고, 왕의 측근 인물인 이찬 신충(信忠)이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755년에 시중으로 임명되어 김사인의 비판을 받았던 김기가 오히려 757년부터는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추진하였다. 즉, 757년에는 지방 9개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759년에는 중앙관부의 관직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덕왕과 집사부 중심의 한화적 개혁정치는 중대의 전제왕권체제를 재강화하여 연장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이었으나 성공한 것 같지 않으며, 다음의 혜공왕 때에 가서 모두 옛 명칭으로 환원됨으로써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은 혜공왕 때에 귀족세력의 정치적 비중이 전제왕권보다 높아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n그리고 전제왕권을 유지하려는 경덕왕의 노력은 전제왕권을 안정시킨 성덕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거대한 성덕대왕신종을 조성하기 시작한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n3. 외교관계와 말년의 정치\n경덕왕은 당나라와의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재위하는 동안 전통적 방법인 조공과 하정(賀正)의 사신을 11회나 당나라에 파견함으로써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일본과의 관계는 즉위하던 해에 일본의 사신이 왔으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또한 753년에 일본의 사신이 이르렀으나 오만하고 무례하므로 왕이 접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것으로 보아, 양국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n757년에 내외관리의 월봉을 혁파하고 다시 녹읍을 부활시켰다. 이것은 새로이 성장하는 귀족세력의 경제적인 욕구가 지금까지 세조(歲租)만 받던 월봉을 혁파하게 하고, 녹읍의 부활을 제도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경덕왕 말기에 정치적으로 성장한 귀족세력은 763년에 경덕왕의 측근세력이었던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을 면직시켰다. 왕당파인 이들의 면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상에 나타나지 않으나, 전제왕권에 대한 귀족세력의 반발의 결과로 보인다.\n이러한 추측은 김옹이 물러난 뒤 약 4개월의 공백기를 거쳐, 764년 만종(萬宗)과 양상이 각각 상대등과 시중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기서, 양상은 나중에 상대등으로서 혜공왕을 시해하고 신라 하대의 첫 왕인 선덕왕으로 즉위하는 인물로서, 경덕왕 때에 이미 귀족세력을 대표하고 전제왕권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경덕왕 말년의 정치는 재강화에 실패한 전제왕권과 귀족세력의 정치적 타협 위에서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n모지사(牟祗寺)서쪽 언덕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왕릉은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에 있다.\n닫기\n내남면 부지리 김(金) 24 742~765\n36 혜공왕(惠恭王)\n제36대 : 혜공왕(惠恭王)\n758(경덕왕 17)∼780(선덕왕 1). 신라 제36대왕. 재위 765∼780.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건운(乾運).\n1. 가계\n경덕왕의 적자(嫡子)로서 760년(경덕왕 19)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서불한(舒弗邯) 의충(義忠)의 딸 만월부인(滿月夫人)김씨이고, 이찬 유성(維誠)의 딸인 신보왕후(新寶王后)가 원비(元妃), 이찬 김장(金璋)의 딸인 창창부인(昌昌夫人)이 차비(次妃)이다. 혜공왕은 태종무열왕의 직계손으로 계승된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마지막 왕이다.\n2. 시대상황\n즉위했던 때의 나이가 8세였으므로 왕태후가 섭정하였다. 혜공왕대에는 집사부(執事部) 중시(中侍, 또는 侍中)를 중심으로 강력한 전제왕권 체제를 구축했던 신라 중대사회의 모순이 본격적으로 노정되었다. 즉 전제왕권의 견제하에 있던 귀족세력들이 정치일선에 등장하여 정권쟁탈전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였다.\n따라서, 혜공왕의 재위 16년 동안에는 많은 정치적 반란사건이 있었다. 먼저 일길찬(一吉飡) 대공(大恭)과 그의 동생 아찬(阿飡) 대렴(大廉)이 768년(혜공왕 4)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의 측근인물인 이찬(伊飡) 김은거(金隱居)를 비롯한 왕군(王軍)에 의해서 토멸되었다. 이 반란은 경덕왕에 이어서 중대의 전제왕권 체제를 유지하려는 혜공왕 초년의 정치적 성격을 부인하려는 최초의 정치적 움직임이었다.\n김은거는 이 반란의 진압에 대한 공로로 그해에 시중에 임명되었으며, 이찬 신유(神猷)는 상대등에 임명되었다.\n3. 전제왕권 수립의 실패\n그리고 769년에 왕은 임해전(臨海殿)에서 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인재를 천거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인재들로써 전제왕권 체제를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770년에는 대아찬 김융(金融)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도 대공의 반란과 마찬가지로 반혜공왕적 성격(反惠恭王的性格)의 것이었다. 김융의 난으로 말미암아 김은거가 시중에서 물러나고 이찬 정문(正門)이 시중에 임명되었다.\n그러나 혜공왕대의 정치적 사건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774년 김양상(金良相)이 상대등에 임명된 사실이다. 즉, 김양상은 경덕왕대에 시중을 역임하였으나 778년에 있었던 대공의 난에 연루되어 시중직에서 물러나고 왕의 측근인 김은거에게 시중직을 물려주었다. 이로써 보면 김양상은 적어도 친혜공왕적(親惠恭王的)인 인물은 아니었다.\n그런데 김양상이 다시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상대등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반혜공왕적인 귀족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였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전제왕권 중심의 중대사회에서 귀족중심의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n이에 대해서 775년에는 김은거 및 이찬 염상(廉相)과 정문의 모반이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제왕권 유지를 지지하는 세력으로서 귀족세력인 김양상의 대두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진압됨으로써 김양상 중심의 정치세력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n이러한 과정에서 혜공왕일파는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상실하고 명목상의 왕위만을 보전하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n4. 무위로 돌아간 정권회복의 노력\n그러나 이들이 정권회복에 대한 노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혜공왕은 재위 16년 동안 11회의 조공(朝貢)·하정(賀正)그리고 사은(謝恩)의 사절을 중국 당나라에 파견하였는데, 이 중에서 8회가 혜공왕 9년(773)에서 12년(776)에 이르는 4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매년 2회씩 파견된 것으로서 774년에 있었던 김양상의 상대등 임명에 따른 신라내정에 있어서의 정권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즉, 보다 친당적(親唐的)인 혜공왕일파가 정권회복을 위하여 당나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였던 것이다.\n그러나 혜공왕일파의 이와같은 외교적인 노력도 777년 상대등 김양상의 상소(上疏)에 의하여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상소를 통한 김양상의 혜공왕일파에 대한 정치적 경고는 친혜공왕파를 자극하게 되어 780년에 김양상일파를 제거하려는 이찬 김지정(金志貞)의 반란이 있었으나 오히려 김양상과 이찬 경신(敬信)에 의하여 진압되고 말았다. 이 반란의 와중에서 혜공왕과 왕비는 살해되었다.\n그리고 경신의 추대에 의하여 김양상 자신이 제37대 선덕왕으로 즉위하였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6 765~780\n37 선덕왕(宣德王)\n제37대 : 선덕왕(宣德王)\n?∼785(선덕왕 6). 신라 제37대왕. 재위 780∼785.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양상(良相). 내물왕의 10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각간 원훈(元訓)이며, 아버지는 효방(孝芳, 혹은 孝方) 해찬(海飡)으로 개성대왕(開聖大王)에 추봉되었다. 어머니는 김씨 사소(四炤, 혹은 四召)부인으로 성덕왕의 딸인데 정의태후(貞懿太后)로 추봉되었다. 비는 구족(具足)부인으로 각간 양품(良品, 혹은 狼品 또는 義恭)의 딸이다.\n왕위에 오르기 전 양상의 행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경덕왕 23년(764) 정월에 이찬(伊飡)인 만종(萬宗)이 상대등에, 아찬(阿飡)인 양상이 시중(侍中)에 임명되었다. 그의 시중 임명은, 전제왕권을 재강화하려던 경덕왕의 한화정책(漢化政策)이 귀족의 반발로 실패하고 왕당파인 상대등 신충(信忠)이 물러난 4개월 뒤에 이루어지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의 정치적 성격은 경덕왕의 왕권전제화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n김양상의 활동은 혜공왕대에 접어들어 두드러졌다.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의 명문(銘文)에 의하면 그는 대각간 김옹(金邕)과 함께 검교사숙정대령겸수성부령검교감은사사각간(檢校使肅政臺令兼修城府令檢校感恩寺使角干)으로서 종 제작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감찰기관인 숙정대(肅政臺)의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위치를 엿볼 수 있다.\n그는 혜공왕 10년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에 임명되었고 동왕 12년에는 한화된 관제의 복고작업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동왕 13년에는 당시의 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전제주의적인 왕권의 복구를 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견제하였다. 혜공왕 16년 2월에 왕당파이었던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범하자, 상대등이었던 양상은 4월에 김경신(金敬信)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지정을 죽이고 혜공왕과 왕비를 죽인 뒤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즉위는 무열왕계인 김주원(金周元)을 경계하고 그들의 반발을 억제하려던 김경신의 강력한 뒷받침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즉위 5년(784)에 양위(讓位)를 결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병석에서 내린 조서에서도 항상 선양하기를 바랐다고 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n선덕왕의 치적은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즉위년(780)의 어룡성(御龍省)에 대한 개편이다. 경덕왕 9년(750) 어룡성에 둔 봉어(奉御)를 경(卿)으로 고치고 다시 감(監)으로 바꾸었다. 또 하나는 패강진(浿江鎭)의 개척이다. 선덕왕 2년(781)에 패강의 남쪽 주현을 안무(安撫)하였고, 782년 한주(漢州:지금의 서울지역)에 순행하여 민호(民戶)를 패강진으로 이주시켰다.\n그리고 그 이듬해(783) 1월에는 김체신(金體信)을 대곡진(大谷鎭)군주, 즉 패강진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개척사업을 일단 완료하였다. 이러한 패강진의 개척은 왕권을 옹호해줄 배후세력의 양성 또는 왕실에 반발하는 귀족의 축출을 꾀하려는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재위 6년 만에 죽으니,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하고 그 뼈를 동해에 뿌렸다.\n닫기\n수장(水葬) 김(金) 6 780~785 쇠퇴기 (AD 645)\n쇠퇴기\n(진골 20왕. 155년간)\n1.왕의 자리다툼\n2.김헌창의 반란\n3.장보고의 해상권 장악\n4.포석정의 비극(서기 927)\n5.임해전의 비극(서기 931)\n6.고려에 항복\n(서기 935)\n38 원성왕(元聖王)\n제38대 : 원성왕(元聖王)\n?∼798(원성왕 14). 신라 제38대 왕. 재위 785∼798. 성은 김(金), 이름은 경신(敬信, 敬愼, 敬則).\n1. 가계\n내물왕의 12세손으로 아버지 효양(孝讓)은 명덕대왕(明德大王), 할아버지 위문(魏文 또는 訓入)은 흥평대왕(興平大王), 증조할아버지 의관(義寬, 義官)은 신영대왕(神英大王), 고조할아버지 법선(法宣)은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어머니는 계오부인(繼烏夫人, 혹은 知烏夫人) 박씨(朴氏)이며 소문태후(昭文太后)로 추봉되었고, 비(妃)는 숙정부인 김씨(淑貞夫人 金氏)로 각간 신술(神述)의 딸이다.\n2. 김주원과 왕위 다툼\n왕위에 오르기 전인 780년(혜공왕 16), 뒷날 선덕왕이 된 양상(良相)과 더불어 지정(志貞)의 난을 진압하였으며, 이때에 혜공왕을 살해하고 양상이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는 양상과 밀착된 인물로서 경덕왕 이래 왕실의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혜공왕 말기의 혼란을 평정한 공으로 780년(선덕왕 1)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그뒤 선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태종무열왕의 6세손인 김주원(金周元)과의 왕위다툼에서 승리하여 즉위하였다.\n《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김주원과의 왕위계승다툼에 대한 설화를 전하고 있다. 당시 김경신보다 서열이 높았던 김주원이 왕위에 추대되었는데, 김경신이 복두(幞頭)를 벗고 소립(素笠)을 쓰고 12현금(絃琴)을 들고 천관사(天官寺)우물로 들어가는 꿈을 꾸자, 여삼(餘三)의 해몽을 듣고 비밀히 북천(北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더니 비가 와서 알천(閼川)이 불어 김주원이 건너오지 못하였으므로 신하들이 경신을 추대하였다는 것이다.\n또, 뒷날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金憲昌)이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보더라도 이 점을 짐작할 수 있다.\n3. 개혁정치\n785년(원성왕 1) 원성왕은 총관(摠管)을 도독(都督)으로 바꾸었으며, 788년에는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였다. 독서삼품과는 유교경전에 능통한 사람을 3품으로 나누어 실력에 따라 관리로 등용한 것으로, 이러한 개혁은 국학(國學)을 설치한 지 이미 1세기가 지난 당시 신라사회에 있어서 무예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관리등용법의 개혁이 요청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n한편, 원성왕대는 하대(下代)권력구조의 특징을 이루는 왕실친족집단원에 의한 권력장악의 전형(典型)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즉, 원성왕은 즉위와 동시에 왕자 인겸(仁謙)을 태자로 책봉하여 다음의 왕위계승권자로 확정하였다. 그리고 791년 1월 인겸태자가 죽자 그 이듬해 8월에는 왕자 의영(義英)을 다시 책봉하였다.\n793년 2월 의영태자가 죽자 왕손(인겸태자의 맏아들)인 준옹(俊邕:뒤의 소성왕)을 이듬해 1월 태자로 책봉하였다. 태자로 책봉된 준옹뿐 아니라 그의 동생인 언승(彦昇:뒤의 헌덕왕)도 정치의 중심부에서 활약하였는데, 이처럼 왕과 태자를 정점으로 한 극히 좁은 범위의 근친왕족들이 상대등·병부령·재상 등의 요직을 독점하고자 하였다.\n또, 이들 근친왕족들에 의하여 왕위가 이어져 하대는 원성왕계로써 특징지어진다. 또, 786년에는 대사(大舍) 무오(武烏)가 병법 15권과 화령도(花鈴圖)2권을 바쳤는가 하면, 왕 자신도 〈신공사뇌가 身空詞腦歌〉를 지었는데, 그것은 인생 궁원(窮遠)의 변화에 대한 이치를 담은 것이라 한다. 이 책들은 모두 전하지 않는다. 791년에 제공(悌恭)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하였다.\n제공은 785년에 시중(侍中)이 된 인물로 그가 일으킨 반란의 성격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같은해에 인겸태자가 죽으니 시호를 혜충(惠忠)이라 하였다. 그리고 제공의 반란이 진압되자 다시 혜충태자의 아들 준옹이 시중이 되었다.\n4. 불교진흥과 외치\n원성왕은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n785년에 승관(僧官)을 두어 정법전(政法典)이라 하고, 795년에는 봉은사(奉恩寺, 혹은 報恩寺)를 창건하였으며 망덕루(望德樓)를 세웠다.처음에는 화엄종(華嚴宗)승려인 묘정(妙正)을 편애하여 내전(內殿)에 맞아들여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뒤 묘정은 왕의 신임을 잃은 듯하다.\n사신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자라한테서 얻은 구슬을 당나라 황제에게 빼앗기고 난 뒤부터, 묘정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바를 잃게 되었다는 설화가 이를 알려준다. 왕의 치적으로 790년 벽골제(碧骨堤)의 증축과 발해와의 통교를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795년에 당나라의 사신이 하서국(河西國)사람 둘을 데리고 와 신라의 호국룡(護國龍)을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잡아가려는 것을 막았다는 설화는 그가 상당한 독자외교를 펴고 있었음을 알려준다.\n798년 12월 29일에 죽으니, 유명(遺命)으로 봉덕사(奉德寺)남쪽 토함악(吐含岳)서쪽동굴에 화장하였고, 능을 추복(追福)하기 위한 숭복사(崇福寺)가 세워졌다. 아들은 태자로 책봉되었던 인겸과 의영과 예영(禮英)이 있었고, 대룡부인(大龍夫人)·소룡부인(小龍夫人)이라는 두 딸이 있었다.\n닫기\n외동읍 괘릉리 화장(火葬) 김(金) 15 785~799\n39 소성왕(昭聖王)\n제39대 : 소성왕(昭聖王)\n?∼800(소성왕 2). 신라 제39대왕. 재위 799∼800. 혹은 소성왕(昭成王)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준옹(俊邕). 원성왕의 큰아들인 인겸(仁謙, 惠忠太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씨 성목태후(聖穆太后)이다. 비(妃)는 계화부인(桂花夫人)으로 숙명(叔明)의 딸이다.\n소성왕은 원성왕의 장손으로서 왕위에 오르기 전 궁중에서 자라면서 789년(원성왕 5)에 대아찬(大阿飡)을 제수받고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며, 790년에는 파진찬(波珍飡)을 제수받아 재상이 되었다. 791년 10월에는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나, 그 이듬해 8월에 병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태자에 책봉된 아버지가 일찍 죽고, 또 그에 뒤이어 태자가 된 숙부 의영(義英)이 또한 794년에 죽자 그가 795년 정월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798년 12월 29일 원성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n소성왕의 치적으로 청주(菁州:지금의 진주)의 노거현(老居縣)을 학생녹읍(學生祿邑)으로 설정한 것을 들 수 있다. 재위 2년째인 800년 6월에 죽었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2 799~800\n40 애장왕(哀莊王)\n제40대 : 애장왕(哀莊王)\n788(원성왕 4)∼809(애장왕 10). 신라 제40대왕. 재위 800∼809.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청명(淸明)인데 뒤에 중희(重熙)라 개명하였다. 소성왕과 계화부인(桂花夫人)김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나 800년 6월 부왕의 뒤를 이어 13세에 즉위하였다. 따라서, 즉위초부터 왕은 작은아버지인 병부령(兵部令) 김언승(金彦昇:뒤의 憲德王)의 섭정을 받았다.\n애장왕의 치적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으니, 805년(애장왕 6) 공식(公式)20여조를 반포하였으며, 808년 12도(道)에 사신을 파견하여 군(郡)·읍(邑)의 경계를 정하였다. 이것은 애장왕의 중앙과 지방제도에 대한 개혁조치로 볼 수 있다. 공식 20여조를 반포하기 1년 전 동궁(東宮)의 만수방(萬壽房)을 새로 만들었으니, 이는 곧 태자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조처로 생각된다.\n이러한 분위기 속에 취해진 공식 20여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 봄이 마땅하다. 805년 위화부(位和府)의 금하신(衿荷臣)을 고쳐 영(令)이라 하고, 예작부(例作府)에 성(省)두 사람을 두는 등의 관제개혁 조처도 같은 성격으로 이해된다. 806년에는 교지를 내려 불교사원의 새로운 창건을 금하고 오직 수리만을 허락하며, 금수(錦繡)로써 불사하는 것과 금은으로 기물(器物)만드는 것을 금하였는데, 이 조처 역시 2년 뒤에 취해진 지방 군현의 경계를 정하는 것과 연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n귀족들은 막대한 토지와 재력을 지니고 지방의 연고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체로 원당(願堂)과 같은 절을 세워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애장왕 7년에서 9년에 이르는 개혁조처는 귀족세력을 왕권에 복속시키려는 것이다.\n그러나 왕권강화를 위한 애장왕의 개혁조처는 중대의 전제주의가 무너지고 귀족세력이 난립하는 하대사회의 풍조 속에서 많은 도전을 받아 성공할 수는 없었으며, 그 결과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애장왕대의 개혁은 이전 경덕왕대의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이은 것으로 왕권강화이지만, 그 개혁의 주체는 애장왕이 아니라 당시 실력자인 김언승과 수종(秀宗:뒤의 興德王)이라고도 추측된다.\n애장왕은 국내정치의 개혁과 병행하여 대당외교(對唐外交)외에 일본과의 국교를 트고 있다. 802년 12월 균정(均貞)에게 대아찬(大阿飡)을 제수하고 가왕자(假王子)로 삼아 왜국에 사신으로 보내고자 하였으며, 803년에는 일본국과 우호하여 수교하였다. 그리하여 804년·806년·808년에 각각 일본국 사신이 내조(來朝)하였다.\n이와는 별도로 802년 순응(順應)·이정(利貞)에 의하여 가야산에 해인사가 세웠졌는데, 해인사는 당시 왕실에서 경영하는 절이었다. 809년 7월 언승이 제옹(悌邕)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궁궐에 들어와 왕을 죽였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0 800~809\n41 헌덕왕(憲德王)\n제41대 : 헌덕왕(憲德王)\n?∼826(흥덕왕 1). 신라 제41대왕. 재위 809∼826.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언승(彦昇). 소성왕의 동생으로, 아버지는 원성왕의 큰아들인 혜충태자(惠忠太子) 인겸(仁謙)이며 어머니는 성목태후(聖穆太后)김씨이다. 할머니는 각간(角干) 신술(神述)의 딸 숙정부인(淑貞夫人)김씨이며, 비는 숙부인 각간 예영(禮英)의 딸 귀승부인(貴勝夫人)김씨이다.\n790년(원성왕 6)에 대아찬(大阿飡)을 제수받아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다음해에는 제공(悌恭)의 난을 진압하는 데 가담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잡찬(迊飡)이 되었다. 794년에 시중(侍中)에 임명되고, 그 다음해에 이찬(伊飡)으로서 재상(宰相)이 되었으며, 796년에는 병부령(兵部令)을 제수받았다. 이로 보면 그는 이미 원성왕 말년에 정치적인 세력기반을 확고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세력기반이 애장왕의 즉위와 함께 그를 섭정(攝政)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애장왕대 그의 세력은 대단하여 그 집안이 당나라의 조정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n801년에 어룡성(御龍省)의 장관인 사신(私臣)이 되었고 이어 상대등(上大等)에 올랐다. 애장왕대에는 정치개혁이 시도되었다. 곧 805년에 공식20여조(公式二十餘條)가 반포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이와 관련해서 불사(佛事)를 금하였으며, 808년에는 군(郡)·읍(邑)의 경계를 정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러한 개혁은 대체로 중앙집권적인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개혁의 주도자가 언승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애장왕대 최고의 실력자였고 또 뜻을 같이하는 수종(秀宗)이 시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n809년에는 동생인 이찬 제옹(悌邕)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으며, 난중에 애장왕이 살해되고 언승이 왕위에 올라 헌덕왕이 되었다. 헌덕왕대에는 뚜렷한 정책이나 정치개혁이 보이지 않으나 애장왕 당시의 개혁정치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에 못지않게 왕권강화에 도전하는 세력 역시 거세었다. 비록 난을 일으켜 왕위를 쟁취하였지만, 헌덕왕은 여전히 반대세력의 반발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 결과 정국은 날로 불안해져갔으며 빈번한 기근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814년(헌덕왕 6)에 서쪽 지방에 큰 홍수가 났으며 815년에는 서쪽 변방의 주(州)·군(郡)에 기근이 들었다. 이후 816·817·820·821년 등 계속하여 기근이 들었으며, 경우에 따라서 초적(草賊)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침 당나라에서는 절도사(節度使) 이사도(李師道)의 반란을 당하여 신라에 출병을 요청하였다. 헌덕왕은 816년에 김웅원(金雄元)으로 갑병(甲兵)3만을 이끌고 반란의 진압을 돕도록 하였다.\n이러한 국내외의 모순이 누적되면서 822년에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녹진(祿眞)의 인사원칙에 대한 제언이고, 또 하나는 김헌창(金憲昌)난의 발발이다. 당시 충공(忠恭)이 상대등이 되어 인사를 처리하는데 갑자기 병이 들었다. 집사시랑(執事侍郎)인 녹진이 충공을 찾아가 인재의 쓰임을 목재의 쓰임에 비유하여 인사처리에 적절한 대책을 제언하였다. 그 말을 들은 충공은 물론 부군(副君)인 수종과 헌덕왕이 모두 기뻐하였다.\n이때 녹진이 제시한 인사원칙은 왕당파에게 유리한 것으로 왕권에 반대하는 귀족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이해된다. 곧 이어 일어난 김헌창의 난은 헌덕왕이 주도한 개혁정치에 반대하여오던 귀족의 불만이 누적되어 일어났다.\n또한, 녹진의 제안이 김헌창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도 난이 일어나는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장지는 천림사(泉林寺)북쪽이다.\n닫기\n동천동 김(金) 18 809~826\n42 흥덕왕(興德王)\n제42대 : 흥덕왕(興德王)\n?∼836(희강왕 1). 신라 제42대왕. 재위 826∼836.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수종(秀宗), 또는 경휘(景暉)·수승(秀升). 헌덕왕의 동생으로, 아버지는 원성왕의 큰 아들인 혜충태자(惠忠太子) 인겸(仁謙)이며, 어머니는 성목태후 김씨(聖穆太后金氏)이다. 할머니는 각간(角干) 신술(神述)의 딸인 숙정부인김씨(淑貞夫人金氏)이고, 비(妃)는 소성왕의 딸인 장화부인 김씨(章和夫人金氏)인데, 즉위한 해에 죽으니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되었다.\n흥덕왕의 정치적 입장은 헌덕왕의 그것과 대체로 비슷하였다. 804년(애장왕 5) 시중(侍中)에 임명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언승(彦昇:뒤의 헌덕왕)과 함께 애장왕대의 개혁정치를 주도하였다고 생각된다. 809년 언승이 애장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웠고, 헌덕왕대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였다. 819년(헌덕왕 11)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고, 822년에는 부군(副君)이 되어 월지궁(月池宮)에 들어감으로써 왕위계승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즉위하면서 흥덕왕은 애장왕대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개혁을 시도하였다.\n827년(흥덕왕 2)에 명활전(明活典)을 설치하였다. 또는 그것이 914년(신덕왕 3)에 설치되었다는 설도 있다. 829년에는 원곡양전(源谷羊典)을 설치하였으며, 집사부(執事部)를 집사성(執事省)으로 고쳤다. 이때의 개혁은 귀족세력의 억제와 왕권강화를 위한 것이었으며, 헌덕왕대의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마무리짓는 조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덕왕대의 개혁은 이에 그치지 않고 834년에 모든 관등에 따른 복색(服色)·거기(車騎)·기용(器用)·옥사(屋舍) 등의 규정을 반포하였다.\n이 규정은 왕이 당시 사치풍조를 금지시키기 위하여 발표한 것이라 하지만, 귀족들의 요구에 의하여 골품(骨品)간의 계층구별을 더욱 엄격히 하고자 취해졌다. 특히 이 규정의 내용은 진골(眞骨)과 육두품(六頭品)을 비롯한 여하의 귀족이나 평민과의 차별을 더 뚜렷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골세력에 대한 배려를 깊이 깔고 있다. 이와 아울러 835년에 김유신(金庾信)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하였다.\n이는 김헌창의 난 평정에 공을 인정받은 김유신 후손들의 현실적인 세력을 배경으로 취해진 조처이다. 그 밖의 치적으로 변방에 진(鎭)을 설치한 것과 불교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우선 828년에 궁복(弓福: 장보고)이 중국 당나라의 서주(徐州)에서 소장(小將)으로 활약하다가 귀국하였으므로 1만명의 병졸로써 지금의 완도(莞島)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게 하였다.\n다음해에는 당은군(唐恩郡)에 당성진(唐城鎭)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827년에는 중 구덕(丘德)이 당나라로부터 경전을 가지고 들어왔으며, 830년에는 도승(度僧) 150명을 허가해주었다. 한편, 828년에는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 돌아온 김대렴(金大廉)이 차(茶)종자를 가지고 돌아오니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여 성하게 되었다. 흥덕왕은 앵무새에 대한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가사는 전하지 않는다. 836년 12월에 죽었다.\n장지는 지금의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장화왕비와 합장된 흥덕왕릉이다.\n닫기\n안강읍 육통리 김(金) 11 826~836\n43 희강왕(僖康王)\n제43대 : 희강왕(僖康王)\n?∼838(민애왕 1). 신라 제43대 왕. 재위 836∼838.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제륭(悌隆 혹은 愷隆·悌顒). 아버지는 원성왕의 손자로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된 김헌정(金憲貞, 일명 草奴)이고, 어머니는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봉된 각간(角干) 충효(忠孝)의 딸 포도부인(包道夫人, 혹은 美道·梁乃·巴利夫人)이다. 왕비는 충공갈문왕(忠恭葛文王)의 딸 문목부인 김씨(文穆夫人金氏)이다. 아들은 뒤에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봉해진 계명(啓明)이다.\n왕이 되기 전 제륭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버지 헌정이 819년(헌덕왕 11)에 병으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왕으로부터 금장식의 자색 단장(檀杖)이 하사되었다. 흥덕왕이 죽자 사촌동생인 균정(均貞)과 5촌조카인 제륭이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다.\n이에 시중인 김명(金明)과 아찬(阿飡)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아찬 김우징(金祐徵)과 조카인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은 균정을 받듦으로써 한때 궁궐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균정은 전사하고 김양은 화살을 맞아 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궁복(弓福:장보고)에게로 달아나 의탁하였다. 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였고, 김명이 상대등(上大等)에, 이홍이 시중에 임명되었다. 838년(희강왕 3)에 불만을 가진 김명·이홍 등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보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자진하였다. 소산(蘇山)에 장사하였다.\n닫기\n내남면 망성리 김(金) 3 836~838\n44 민애왕(閔哀王)\n제44대 : 민애왕(閔哀王)\n817(헌덕왕 9)∼839(민애왕 2). 신라 제44대왕. 재위 838∼839. 민애왕(敏哀王)이라고도 표기한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명(明)이다. 아버지는 뒤에 선강대왕(宣康大王)으로 봉해진 충공(忠恭)이고, 어머니는 선의태후(宣懿太后)로 봉해진 귀보부인(貴寶夫人) 박씨(朴氏)이다. 할아버지는 원성왕의 큰 아들로 혜충태자(惠忠太子)로 봉해졌다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일찍 죽은 인겸(仁謙)이고, 할머니는 성목태후(成穆太后) 김씨이다. 그리고 비(妃)는 각간(角干) 영공(永公)의 딸 윤용부인(允容夫人) 김씨이다.\n본래 김명은 희강왕(僖康王)이 되는 제륭(悌隆)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해왔다. 흥덕왕이 죽자 그 사촌동생인 균정(均貞)과 5촌조카인 제륭(균정과는 삼촌임.)이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다. 이에 시중(侍中)인 김명과 아찬(阿飡)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아찬 우징(祐徵)과 조카인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은 균정을 받듦으로써, 한때 궁궐에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균정은 전사하고 김양이 화살을 맞아 우징 등과 더불어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에게 도망하여 의탁하였다. 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였으나, 불만을 가진 김명이 이홍과 같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자진하고 김명이 왕위에 올랐다.그러나 왕위에 오른 김명(민애왕)은 다시 균정계 세력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n838년 청해진에 의탁하고있던 우징 등이 장보고의 군사 5, 000을 이끌고 민애왕을 토벌하기 위하여 진격해왔다. 김양·염장(閻長)·장변(張弁)·정년(鄭年)·낙금(駱金)·장건영(張建榮)·이순행(李順行) 등이 우징을 받들고 있었다.\n이해 12월 민애왕은 김민주(金敏周) 등을 파견하여 무주(武州) 철야현(鐵冶縣:지금의 나주 부근)에서 토벌군을 맞아 싸우게 하였으나 패배하고, 그 다음해 정월 달벌(達伐:지금의 대구)에서의 싸움에서도 대패하였다. 민애왕은 월유댁(月遊宅)으로 도망갔으나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장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현재 경주에는 민애왕릉이라고 전해오는 왕릉이 있다.\n닫기\n내남면 망성리 김(金) 2 838~839\n45 신무왕(神武王)\n제45대 : 신무왕(神武王)\n?∼839(신무왕 1). 신라 제45대왕. 재위 839년 4월∼7월.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우징(祐徵). 할아버지는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추봉된 원성왕의 아들 예영(禮英)이며, 아버지는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봉해진 균정(均貞), 어머니는 헌목태후(憲穆太后)로 봉해진 진교부인(眞橋夫人) 박씨(朴氏)이다.\n그가 아버지 균정과 함께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부상하게 되는 것은 헌덕왕 때였다. 812년(헌덕왕 4)에 균정은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김헌창(金憲昌)의 난이 일어나자 우징 부자는 왕을 도와 반란군을 평정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828년(흥덕왕 3)에 우징은 시중에 임명되었다. 834년에 균정이 상대등에 피임되자 우징은 아버지가 재상(宰相)이 되었다는 이유로 시중직을 사퇴하고 대신 김명(金明:민애왕)이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균정과 김명간의 대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n흥덕왕이 죽자 그 사촌동생인 균정과 오촌 조카인 제륭(悌隆:희강왕)이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다. 이에 김명과 아찬(阿飡) 이홍(利弘)·배훤백(裵萱伯) 등은 제륭을 받들고 우징과 조카인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은 균정을 받듦으로써 한때 궁궐에서 서로 싸워 균정은 전사하고, 우징은 김양 등과 더불어 청해진(淸海鎭)으로 도망하여 장보고(張保皐)에게 의탁하였다.\n싸움에 이긴 제륭이 즉위하여 희강왕이 되었으나, 838년(희강왕 3)에 김명이 이홍 등과 함께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보전할 수 없음을 알고 자진하였다. 김명은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나, 그뒤 균정계세력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n838년(민애왕 1) 청해진에 의탁해 있던 우징 등이 장보고의 군사 5, 000을 이끌고 민애왕을 토벌하기 위하여 진격해왔다. 김양·염장(閻長)·장변(張弁)·정년(鄭年)·낙금(駱金)·장건영(張建榮)·이순행(李順行) 등이 우징을 받들고 있었다. 이해 12월 민애왕은 김민주(金敏周) 등을 파견하여 무주(武州:지금의 光州)에서 토벌군을 맞아 싸우게 하였으나 패배하고, 그 다음해 정월 달벌(達伐: 지금의 大邱지역)에서 왕군과 토벌군이 맞부닥치게 되었다.\n이때 민애왕을 대신하여 왕군을 이끈 자는 대흔(大昕)·윤린(允璘) 등이었는데, 토벌군에게 대패하였다. 민애왕은 난중에 월유댁(月遊宅)으로 도망갔으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고, 우징이 왕이 되었다. 신무왕의 즉위는 원성왕의 큰아들인 인겸계(仁謙系)와 균정계세력의 대립 중 균정계의 승리를 의미한다.\n균정계가 승리한 데에는 청해진세력과 이미 거세된 김주원계(金周元系)의 후손인 김양의 도움이 컸다. 신무왕은 즉위한 지 반년도 못 되어 죽었기 때문에 별다른 경륜을 펴지 못하였으나, 다만 그는 장보고나 김양에 대하여 배려하고 있었던듯하다. 839년에 장보고를 감의군사(感義軍使)로 삼아 2, 000호(戶)의 실봉(實封)을 내렸다. 반면 장보고도 이에 그치지 않고 딸을 왕비로 세우려 하였다. 이것은 청해진세력의 강대함을 알려준다.\n신무왕은 장보고 등 왕권에 압력을 가하는 세력을 제압하여야 하는 과업을 앞두고 돌아갔다. 능은 제형산(弟兄山) 서북에 있다.\n닫기\n동방동 김(金) 1 839~839\n46 문성왕(文聖王)\n제46대 : 문성왕(文聖王)\n?∼857(헌안왕 1). 신라 제46대왕. 재위 839∼85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경응(慶應)이다. 신무왕의 태자. 어머니는 정계부인(貞繼夫人, 또는 定宗太后, 貞從太后), 할아버지는 원성왕의 손자이며 뒤에 성덕대왕으로 봉하여진 균정(均貞), 할머니는 뒤에 헌목태후(憲穆太后)로 봉하여진 진교부인(眞矯夫人) 박씨(朴氏), 비(妃)는 소명왕후(炤明王后)이다.\n본래 부인으로 박씨가 있었고, 또 뒤에 위흔(魏昕)의 딸로 비를 삼은 일이 있는데, 소명왕후는 이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신무왕은 흥덕왕이 죽은 뒤 계속되어온 왕위쟁탈전에서 승리하여 즉위하였지만 6개월도 못 되어 죽어, 왕위쟁탈과정에서 쌓여온 많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였다.\n그러한 숙제는 그 아들 문성왕대로 고스란히 넘어오게 되었다. 흥덕왕이 죽자 왕위를 둘러싼 균정계와 원성왕의 장자 인겸(仁謙)의 아들인 충공계(忠恭系)와의 대립이 노골화되었다. 이 싸움에서 일단 패한 균정계의 우징(祐徵)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와 김주원(金周元)의 후손 김양(金陽)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신무왕이 되었다.\n그 결과 장보고와 김양 등 신무왕을 도운 귀족세력은 그에 상응한 정치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문성왕은 즉위하자 장보고를 진해장군(鎭海將軍)으로 봉하고, 예징(禮徵)을 상대등(上大等)에 임명하였고 김양에게 소판(蘇判)의 관등을 주면서 병부령(兵部令)으로 임명하였다. 반면, 이와같은 귀족세력은 왕권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n841년(문성왕 3) 홍필(弘弼)의 모반은 그러한 모순의 첫번째 노출에 불과하다. 846년 장보고의 반란이 있었다. 장보고는 딸을 왕의 차비(次妃)로 세우려 하였는데, 조신들이 해도(海島)사람의 딸을 왕비로 맞을 수 없다고 반대하여 일이 성사되지 않자, 청해진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난은 염장(閻長)에 의하여 진압되었다.\n일설에는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데 반대한 인물이 김양이라 하는데, 842년 김양이 그의 딸을 왕비로 세우는 기사가 이러한 추측을 낳게 한다. 장보고의 난이 진압되자 851년 청해진을 혁파하였으며, 그곳 민호(民戶)를 벽골군(碧骨郡)으로 이주시켰다. 궁복(弓福:張保皐의 별명)의 난 이후에도 정치적인 불안은 계속되었다. 847년 이찬(伊飡) 양순(良順)과 파진찬(波珍飡) 흥종(興宗)의 반란이 있었고, 849년 이찬 김식(金式)·대흔(大昕)의 반란이 있었다. 양순이나 대흔은 모두 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전래로부터 계속된 왕위 다툼은 그대로 계속되다가, 857년 문성왕은 숙부 의정(誼靖)에게 왕위를 계승시킨다는 유조(遺詔)를 내리고 죽었다.\n이것은 그 한달 전에 문성왕을 도와오던 김양이 죽자, 상대등인 의정과 시중인 계명(啓明)이 결합하고 왕을 핍박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n닫기\n서악동 김(金) 19 839~857\n47 헌안왕(憲安王)\n제47대 : 헌안왕(憲安王)\n?∼861(경문왕 1). 신라 제47대왕. 재위 857∼861.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의정(誼靖) 혹은 우정(祐靖)이다. 신무왕의 이복동생으로, 아버지는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봉해진 균정(均貞)이고, 어머니는 충공(忠恭)의 딸 조명부인(照明夫人, 혹은 昕明夫人) 김씨이며, 할아버지는 예영(禮英)으로 원성왕의 아들이다. 슬하에 딸이 둘 있었는데 모두 다음 왕인 경문왕의 비가 되었다. 그리고 궁예(弓裔)는 왕의 서자로 알려져 있다.\n왕위에 오르기 전의 행적은 잘 알 수 없으나 아마 아버지인 상대등 균정과 처남인 시중 김명(金明) 사이에 왕위계승문제로 암투가 격심하던 흥덕왕 말년(836)에 중국 당나라에 사행(使行)하였고, 왕위계승쟁탈전이 일단락된 뒤, 즉 문성왕이 즉위한 직후에는 시중을, 그뒤에는 병부령(兵部令)을 거쳤다가 다시 849년(문성왕 11)에는 상대등에 임명된듯하다.\n그리고 857년에 서불한(舒弗邯, 角干)으로서 조카인 문성왕의 유조(遺詔)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초에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자, 제방을 수리하게 하고 농사를 권장하였다. 861년 1월, 병이 들어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었으므로 왕위를 사위인 응렴(膺廉:경문왕)에게 선위하고 그달 29일에 죽었다. 공작지(孔雀趾)에 장사하였다.\n닫기\n서악동 김(金) 5 857~861\n48 경문왕(景文王)\n제48대 : 경문왕(景文王)\n?∼875. 신라 제48대왕. 재위 861∼875. 성은 김씨, 이름은 응렴(膺廉), 혹은 의렴(疑廉). 아버지는 계명(啓明)이며, 어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이며, 할머니는 충공(忠恭)의 딸인 문목부인(文穆夫人)김씨이고, 왕비는 헌안왕의 큰 딸인 영화부인(寧花夫人)김씨이다. 또, 뒤에 헌안왕의 작은 딸도 왕비로 삼았다. 아들은 황(晃:정강왕)·정(晸:헌강왕)·윤(胤)이고, 딸은 만(曼:진성여왕)이며, 동생으로 위홍(魏弘)이 있었다.\n왕위에 오르기 전에 일찍이 국선(國仙)이 되었는데, 헌안왕이 불러 나라 안을 돌아다니면서 본 일을 묻자 선행을 행한 세 사람을 말하였는데, 첫째는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하나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요, 둘째는 부호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은 사람이요, 셋째는 고귀한 세력가이면서 그 위엄을 보이지 아니한 사람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헌안왕이 어짐을 알고 사위로 삼고자 하여 왕의 두 딸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게 하였다. 이에 낭도인 범교사(範敎師:삼국사기에는 興輪寺僧이라고 함.)의 조언을 받아들여 왕의 큰 딸과 결혼하여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n경문왕은 불교에 비교적 많은 관심을 나타내었으므로, 낭도 중에는 승려가 많았다. 864년에 감은사에 행차하였고, 866년에는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구경하기도 했다. 871년에는 황룡사구층탑을 개조하였다. 경문왕은 불교와 아울러 국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864년에는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로 하여금 경전의 뜻을 강론하게 하였다.\n이러한 경문왕의 관심은 즉위한 직후 나라를 잘 다스려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때 왕의 정치를 도운 사람들 중에는 국선출신이 많았는데, 곧 요원랑(邀元郎)·예흔랑(譽昕郎) 등이다. 이들은 국토를 유람하면서 은근히 왕을 위하여 치국의 뜻을 노래로 짓고, 이를 다시 사지(舍知)인 심필(心弼)을 시켜 대구화상(大矩和尙)에게 보내어 〈현금포곡 玄琴抱曲〉·〈대도곡 大道曲〉·〈문상곡 門詳曲〉 등 3수의 노래를 짓게 하였는데, 경문왕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칭찬하였다고 하는데 가사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즉위 초 861년에 대사면을 실시하고 862년 이찬(伊飡) 김정(金正)을 상대등으로, 아찬(阿飡) 위진(魏珍)을 시중에 임명하였으며 866년에는 아버지 계명을 의공대왕(懿恭大王), 어머니 광화부인을 광의왕태후(光懿王太后), 왕비를 문의왕비(文懿王妃)로 봉하고 왕자 정을 태자로 삼는 등, 열의를 가지고 치국에 임하였지만 진골귀족간의 오랜 분쟁은 일시에 바로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중기 이후에는 반란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866년 이찬 윤흥(允興)과 그 동생 숙흥(叔興)·계흥(季興)의 모역과, 868년 이찬 김예(金銳)·김현(金鉉) 등의 모반, 874년 근종(近宗) 등의 모역이 있었다.\n그러나 경문왕은 하대사회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 경문왕은 산 뱀을 가슴에 덮고 잠자는 나쁜 습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당나귀의 귀와 같은 큰 귀를 가졌다는 소문도 퍼져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역시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5 861~875\n49 헌강왕(憲康王)\n제49대 : 헌강왕(憲康王)\n?∼886(정강왕 1). 신라 제49대왕. 재위 875∼886.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정(晸). 아버지는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문의왕후(文懿王后)로 봉해진 헌안왕의 큰딸 영화부인 김씨(寧花夫人金氏)이다.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 계명(啓明)이고, 할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이며, 비는 의명부인(懿明夫人)이다. 동생으로 황(晃: 뒤의 정강왕)·만(曼:뒤의 진성여왕)·윤(胤)이 있었다.\n서자로 요(嶢)가 있어 뒤에 효공왕이 되었고, 딸은 신덕왕의 비가 되어 의성왕후(義成王后)에 봉하여졌다.\n즉위한 뒤 헌강왕은 불교와 국학(國學)에 대한 관심을 아울러 가졌다. 876년(헌강왕 2)과 886년에 황룡사(皇龍寺)에서 백고좌강경(百高座講經)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들었다. 이러한 왕의 사찰행(寺刹幸)은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을 위한 출행이었다.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망해사(望海寺)가 세워진 것도 헌강왕대이다. 879년에는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博士)로 하여금 강론하게 하였으며, 883년에는 삼랑사(三郎寺)에 행차하여 문신들로 하여금 시(詩)1수씩을 지어 바치게 하였다.\n879년에 신홍(信弘) 등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하였다. 그뒤 헌강왕대에는 신라가 태평성대를 누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880년에 왕이 좌우를 거느리고 월상루(月上樓)에 올라 서울의 사방을 바라보면서, 백성들의 집이 볏짚이 아닌 기와로써 이어졌고 밥할 때 장작이 아니라 숯을 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n그러나 이러한 부유함은 신라 전체가 아닌 이른바 금입택(金入宅)과 같은 진골귀족의 부강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오히려 신홍 등의 반란은 하대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헌강왕대에 신라 하대사회의 위기의식을 나타낸 기록이 보이고 있다. 879년에 왕이 나라 동쪽의 주군(州郡)을 순행하였을 때 어디서 온지를 모르는 네 사람이 어가를 따르며 춤을 추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산과 바다의 정령(精靈)이라 하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다. 헌강왕이 포석정(鮑石亭)에 갔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나타나서 춤을 추니, 이 춤을 전하여 〈어무상심 御舞祥審〉(혹은 御舞山神)이라 한다. 또 헌강왕이 금강령(金剛嶺)에 갔을 때 북악신(北岳神)과 지신(地神)이 나와 춤을 추었다. 그 춤에서 “지리다도파(地理多都波)”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미리 알고 도망하여 도읍이 장차 파괴된다는 뜻이라 한다.\n한편, 동해안의 개운포(開雲浦)에 놀러갔다가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는 처용(處容)을 만나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처용가 處容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처용을 지방세력가의 자제로 보아 헌강왕대에 기인제도(其人制度)가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한 886년 봄에는 적국(狄國)인 보로국(寶露國:지금의 안변군 서곡면 ?)과 흑수국(黑水國)사람들이 신라와 통교를 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헌강왕은 중국 당나라와 일본과의 교섭을 꾀하기도 하였다.\n닫기\n남산동 김(金) 12 875~886\n50 정강왕(定康王)\n제50대 : 정강왕(定康王)\n?∼887(진성여왕 1). 신라 제50대왕. 재위 886∼88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황(晃).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로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봉된 계명(啓明)이고, 할머니는 광의왕태후(光義王太后)로 추봉된 광화부인(光和夫人)이다. 아버지는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맏딸로 문의왕후(文懿王后)에 봉하여진 영화부인(寧花夫人)이다. 정(晸:헌강왕)·만(曼:진성여왕)·윤(胤)과 형제간이다.\n짧은 재위기간 동안에 887년(정강왕 2) 정월 황룡사(皇龍寺)에서 백좌강경(百座講經)을 설치하였고, 이찬(伊飡) 김요(金#요49) 가 한주(漢州)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였다. 5월에 병이 들어 시중 준흥(俊興)에게 병이 위급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아들이 없으므로 누이 만으로 왕위를 잇게 하라고 부탁하고, 7월 5일에 죽었다. 보리사(菩提寺)동남에 묻혔다.\n닫기\n남산동 김(金) 2 886~887\n51 진성여왕(眞聖女王)\n제51대 : 진성여왕(眞聖女王)\n?∼897(효공왕1). 신라 제51대왕. 재위 887∼897. 신라 시대 3인의 여왕 중 마지막 여왕이다.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만(曼). 할아버지는 희강왕의 아들로 의공대왕(懿恭大王)에 봉해진 김계명(金啓明)이며, 할머니는 광화부인(光和夫人)으로 광의왕태후(光義王太后)로 봉해졌다. 아버지는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장녀로 뒤에 문의왕후(文懿王后)에 봉해진 영화부인(寧花夫人) 김씨이다. 형제로는 정(晸:헌강왕)·황(晃:정강왕)·윤(胤) 등이 있다.\n진성여왕은 즉위 직후 주(州)·군(郡)에 1년간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皇龍寺)에 백좌강경(百座講經)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887년(진성여왕 2) 2월 숙부(叔父)이자 남편이었던 상대등(上大等) 위홍(魏弘)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대야주(大耶州)에 은거하던 왕거인(王巨人)의 국왕 비판 등이 있었으며, 888년부터는 주·군으로부터 세금이 들어오지 않게 되어 국고가 비게 되었다.\n이에 관리를 각지에 보내어 세금을 독촉하였고, 이를 계기로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하게 되었다. 이때 원종(元宗)과 애노(哀奴)가 사벌주(沙伐州:지금의 상주)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이를 토벌하지 못하였다. 이 난을 계기로 계속해서 적당(賊黨)의 난이 일어났다. 891년에 북원(北原:지금의 원주)의 적수 양길(梁吉)이 부하인 궁예(弓裔)를 시켜 동쪽으로 원정하게 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까지 함락시켰다.\n그 다음해에는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에서 견훤(甄萱)이 스스로 후백제를 건국하니 무주(武州:지금의 光州)동남쪽의 군현이 모두 그에게 항복하였다. 895년에는 영주를 손에 넣은 궁예가 다시 저족(猪足)·생천(生川)을 거쳐 한주(漢州)·철원(鐵圓)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 국가의 실질적인 통치영역은 경주를 중심한 그 주변지역에 그치고, 전국토는 대부분 적당이나 지방호족세력의 휘하에 들어갔다. 또, 896년에는 이른바 적고적(赤袴賊)이 경주의 서부 모량리(牟梁里)까지 진출하여 민가를 약탈하는 등 수도의 안위조차 불안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최치원(崔致遠)은 894년에 시무10조(時務十條)를 제시하였다.\n이 제의는 받아들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진골귀족의 반대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최치원의 개혁안은 육두품 중심의 유교적 정치이념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어서 진골귀족의 이익과는 배치될 수 있었다.\n이 개혁이 시대적 한계성 때문에 시행되지 못함으로써 신라의 붕괴는 막을 수 없었고 후삼국이 정립하게 되었다. 897년 6월 조카인 헌강왕의 아들 요(嶢:뒤의 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해 12월에 죽었다. 황산(黃山)에 장시지냈다. 한편, 진성여왕 때에는 거타지(居陀知) 설화가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할아버지인 작제건(作帝建)이 용녀(龍女)를 아내로 맞이하는 설화와 비슷하다.\n닫기\n불명(不明) 김(金) 11 887~897\n52 효공왕(孝恭王)\n제52대 : 효공왕(孝恭王)\n?∼912(신덕왕 1). 신라 제52대왕. 재위 897∼912.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요(嶢). 헌강왕의 서자이며, 어머니는 의명왕태후(義明王太后, 또는 文資王后)로 추존된 김씨부인이다. 할아버지는 경문왕이고, 할머니는 헌안왕의 장녀 영화부인(寧花夫人)이며, 비는 이찬 예겸(乂謙)의 딸이다. 헌강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길에서 자색이 뛰어난 한 여자를 만났는데, 뒤에 헌강왕이 궁궐을 빠져나가 그 여자와 야합하여 태어난 아들이다.\n뒤에 이 사실을 안 진성여왕에 의하여 헌강왕의 혈육이라 하여 895년(진성여왕 9)에 태자로 봉하여지고, 뒤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재위시 신라는 왕실의 권위가 떨어져서 지방에서 일어난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형세였다. 우선, 지금의 청주나 충주 이북지역은 완전히 궁예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궁예는 901년(효공왕 5)에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고, 904년에 백관(百官)을 설치하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다. 신라는 907년에 서남쪽에서 점점 세력을 키운 견훤에게 일선군(一善郡:지금의 善山)이남의 10여성을 빼앗겼다. 한반도에서 궁예와 견훤의 세력다툼은 점차 열기를 더하여 갔다.\n한편, 궁예의 부하 왕건(王建)은 903년 병선(兵船)을 이끌고 금성(錦城) 등 10여 군현을 공취하였다. 이후 서해의 해상권은 대체로 왕건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909년에 왕건은 진도군과 고이도성(皐夷島城)을 공취하였으며, 견훤이 중국 오월(吳越)에 보낸 사자를 나포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910년에 왕건은 나주를 다시 뺏기 위하여 포위 공격하여 온 견훤군을 대파하였다.\n서해상에서 왕건의 전승은 그가 다가올 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정세 속에서도 신라왕실의 실정(失政)은 계속되어 911년에는 대신 은영(殷影)이 효공왕의 천첩을 죽여 왕정을 경계하기까지 하였다. 죽은 뒤 사자사(師子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도 하고, 혹은 사자사 북쪽에서 화장하여 뼈는 구지제(仇智堤) 동산(東山) 기슭에 묻었다고도 한다.\n닫기\n배반동 김(金) 16 897~912\n53 신덕왕(神德王)\n제53대 : 신덕왕(神德王)\n?∼917(신덕왕 6). 신라 제53대왕. 재위 912∼917. 성은 박씨(朴氏), 이름은 경휘(景暉 또는 景徽), 본명은 수종(秀宗). 아달라왕의 원손으로 아버지는 정강왕 때 대아찬(大阿飡)을 지냈고 선성대왕(宣聖大王 또는 宣成大王)으로 추봉된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다. 일설에는 예겸은 의부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성호대왕(成虎大王)으로 추봉된 순홍(順弘)의 딸 정화부인(貞花夫人)이며, 비는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義成王后 또는 懿成王后)이다.\n슬하에 승영(昇英)·위응(魏膺)이 있었는데, 승영은 경명왕이 되었고 위응은 경애왕이 되었다. 신덕왕대의 신라는 실제로 경주지역을 다스리는 데 그쳤고, 국토의 대부분은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의 세력권 속에 들어가 있었다. 궁예의 부하인 왕건(王建)이 나주를 정벌한 이후 그들의 패권다툼이 더욱 치열해가는 동안 신라의 명맥은 겨우 유지되는 형편이었다.\n916년(신덕왕 5)에 이르러서는 견훤이 대야성(大耶城: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을 공격하여 비록 이를 함락시키지는 못하였으나, 그것은 곧 신라의 심장부에 비수를 겨누는 격이 되었다. 이때의 신라 왕실은 스스로 후백제나 태봉(泰封)의 공격을 막아낼 만한 힘이 없었다. 장지는 죽성(竹城:위치 미상)이라고도 하고 혹은 화장하여 잠현(箴峴)에 묻었다고도 한다.\n닫기\n배리(삼릉) 박(朴) 6 912~917\n54 경명왕(景明王)\n제54대 : 경명왕(景明王)\n?∼924. 신라 제54대왕. 재위 917∼924. 성은 박씨, 이름은 승영(昇英). 아버지는 신덕왕,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義成王后, 또는 資成·懿成·孝資王后), 할아버지는 선성대왕(宣聖大王, 또는 宣成大王)으로 추봉된 예겸(乂謙, 또는 銳謙)이다. 그러나 일설에 예겸은 신덕왕의 의부(義父)이고, 친할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角干) 문원(文元)이라고 한다.\n경명왕 때에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실제 신라왕실은 왕경(王京)인 경주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지역을 다스리는 데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궁예(弓裔)와 견훤(甄萱) 등 지방세력에게 빼앗겼다. 특히, 918년(경명왕 2)에 일어난 현승(玄昇)의 반란으로 신라는 그 운명을 더욱 재촉하게 되었다. 같은 해 궁예 휘하의 인심이 돌변하여 왕건(王建)을 추대하였고, 궁예는 피살되었다.\n그뒤 왕건과 견훤이 패권을 다투게 되었으나, 이들의 패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이들과 신라왕실과의 연결이었다. 따라서 안동이나 합천지역에서 이들의 패권다툼이 치열하였으나, 싸움은 결국 해상권을 장악한 왕건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n또, 경명왕 때에는 여러가지 변괴가 있었다고 하는데, 919년 사천왕사(四天王寺)벽화의 개가 울었고, 927년에 황룡사탑(皇龍寺塔)의 그림자가 사지(舍知) 금모(今毛)의 집 뜰에 열흘이나 머물렀으며, 사천왕사 오방신(五方神)의 활줄이 모두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뜰로 쫓아나왔다는 기록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설화기사의 이면을 생각해볼 때, 당시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져가는 불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재위 7년 만에 죽으니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지냈다(이곳에서 화장했다고도 한다.).\n닫기\n배리(삼릉) 박(朴) 8 917~924\n55 경애왕(景哀王)\n제55대 : 경애왕(景哀王)\n?∼927. 신라 제55대왕. 재위 924∼927. 성은 박씨(朴氏), 이름은 위응(魏膺). 아버지는 신덕왕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義成王后 또는 資成·懿成·孝資王后)이다. 할아버지는 선성대왕(宣聖大王 또는 宣成大王)으로 추봉된 예겸(乂謙 또는 銳謙)이다. 일설에는 예겸이 신덕왕의 의부(義父)라 하여, 친할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며, 할머니는 성호대왕(成虎大王)으로 추봉된 순홍(順弘)의 딸 정화부인(貞花夫人)이라고도 한다.경애왕 때 후삼국의 패권다툼은 이미 왕건(王建)쪽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925년 고울부장군(高鬱府將軍) 능문(能文)이 항복하였고, 927년 강주(康州: 지금의 晉州)의 왕봉규(王逢規)가 관할하는 돌산(突山) 등이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건과 견훤(甄萱)은 잠시 싸움을 그치고 강화하였는데, 견훤이 보낸 질자(質子)인 진호(眞虎)가 고려에서 죽자 견훤은 926년 다시 출병하여 고려를 공격하였다.\n927년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여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궁궐을 노략질하면서 경순왕을 세우고 돌아갔다. 한편, 경애왕 때 황룡사에 백좌경설(百座經說)을 설치하고 선승(禪僧)300여명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이것을 백좌통설선교(百座通說禪敎)라 부르며, 대규모 선승 모임의 시초가 되었다.\n닫기\n배리(삼릉) 박(朴) 4 924~927\n56 경순왕(敬順王)\n제56대 : 경순왕(敬順王)\n?∼979. 신라 제56대왕. 재위 927∼935. 본관은 경주(慶州).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 문성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신흥대왕(神興大王)으로 추봉된 효종(혹은 효종이 할아버지라는 설도 있음.)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桂娥太后)이며, 할아버지는 의흥대왕(懿興大王)으로 추봉된 관○(官○)이다. 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 슬하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은 마의태자(麻衣太子)이고 막내아들은 범공(梵空)이다. 고려에 항복한 뒤에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와 다시 결혼하였다.\n927년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이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되고 난 다음, 경순왕은 견훤에 의해 옹립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931년 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경의 사녀(士女)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시랑과 범을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n935년 그는 신하들과 더불어 국가를 고려에 넘겨줄 것을 결의하고 김봉휴(金封休)로 하여금 왕건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하게 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그가 백료를 거느리고 고려에 귀의할 때 향거(香車)와 보마(寶馬)가 30여리에 뻗쳤다. 왕건은 그를 정승공(正承公)으로 봉했는데, 그 지위는 태자의 위였다. 왕건은 또 그에게 녹(祿)1000석을 주고 그의 시종과 원장(員將)을 모두 채용하였으며, 신라를 고쳐 경주라 하고 그의 식읍(食邑)으로 주었으며, 그를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삼았다. 무덤은 장단에 있다. 이 책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는 그 역사의 한복판에서 활동한 제임스 캐넌이 썼다. 이 책의 무대는 격동의 1920~30년대다. 1917년 러시아혁명과 그 뒤를 이은 세계 혁명의 물결, 1920년대 중반 이후 스탈린주의 권력의 타락, 1929년 대공황과 1933년 히틀러 집권, 1930년대 중반 새로운 노동자투쟁 물결의 등장과 급진화가 이 시기에 일어날 일들이다. 특히 이 책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 미국에서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하는 혁명가들이 탄생했고, 러시아 스탈린 권력과 코민테른이 타락하면서 어떻게 미국에서도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 운동이 분화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올바른 강령을 가지고 노동자운동 속으로 파고들어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을 건설했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레닌 사후의 진정한 맑스­레닌주의자들’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20~30년대에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룬 책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한국에 소개된 책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소중하다. 1920~30년대 격동기의 혁명운동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21세기 세계대공황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시대다. 대기업들에서조차 인력 감축, 임금·복지 축소 공격을 벌이고 있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이 3월에 38.7%로 29년 만에 최저일 정도로 고용불안이 심각해지면서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노조 관료들이 노동자 이익의 수호자가 아니라 줄어드는 자본가 이윤율의 파수꾼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들을 노골적으로 배신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위기가 커지고, 극우 세력은 더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자본가정부는 탄압의 칼날을 곧추세우고 있다. 이처럼 야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대공황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전진할 수 있는가? 진정한 노동자당을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과 실질적 교훈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론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실천적 측면에서도 많은 투사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생각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맑스의 <자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의 세계대공황 국면에서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기 위해 맑스의 <자본>을 꺼내들고 있다. 그런 다음 그들 중에서 가장 의식적이고 용기 있는 이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이 1930년대 대공황 국면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훌륭하게 실천했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계적 상황은 1930년대와 상당히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눈앞으로 다가온 거대한 격동의 현실을 이해하고 제대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진정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사상의 올바름이다.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고 말했다. 트로츠키는 ‘사상의 계승을 통해서만 혁명 전통이 수립된다. 혁명 전통이 없는 당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전투적이었기에 급성장했지만 혁명이론이 취약해 결국 유명무실해진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과 맑스-레닌주의를 포기해 타락해간 스탈린주의 공산당을 통해 혁명이론의 사활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둘째 명실상부한 노동자계급 당은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투쟁과 급진화를 기반으로 할 때 제대로 건설할 수 있다. 1930년대 중후반의 계급투쟁 고양은 미국에서 노동자계급 당 건설을 추동하고 뒷받침한 중요한 배경이었다. 노동자운동이 상대적으로 침체해 있고, 투쟁이 분산적이고 수세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이라면, 이러저러한 당 건설 시도가 무원칙한 대동단결과 분열, 환멸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셋째 노동자계급 당은 혁명가들의 의식적 노력 없이는 건설할 수 없다.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의 고양을 팔짱끼고 기다린 것이 아니다. 강령을 정교화하고, 미래 노동자계급 당의 골간대오를 육성하는 등 필요한 과업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계급투쟁의 고양에 철저히 대비했다. 아무리 고양기라 해도, 아무리 노조 투쟁을 열심히 한다 해도 당이 저절로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의 상승물결을 타고 노동자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하는 한편 당 건설을 위해 매우 의식적으로 분투했다. 머스티 그룹과 통합하고, 사회당에 입당해서 활동하고, 사회당에서 나와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창당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분투의 결과였다. 이 책에는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힘겨운 초기 단계를 지난 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194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를 겪었고, 그 위기의 싹은 1930년대에도 존재했다. 미국 노동자계급에겐 정치적 전통이 약했기 때문에,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조차 자연스럽게 자기 투쟁을 노조 틀 안에 가두곤 했다. 1930년대 중후반에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이 용솟음쳤을 때도 그런 경향이 꽤 강했다. 그래서 1938년에 사회주의노동자당 창당에 함께 한 많은 선진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에 호감을 가진 급진적 노조활동가로 보았을 뿐, 사회주의 정치활동가로 여기지 않았다. 즉 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정치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바라보지 못하고, 노조체계 안에서 전투적 반대파로 활동하는 데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은 스스로를 노조 좌파로 여기면서 점점 더 노조 내 상황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방향으로, 결국에는 미국 노총의 관료주의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약점을 우려한 트로츠키는 노조 상층 간부들을 향하지 말고 평조합원들을 향하라고, 특히 흑인처럼 가장 열악하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향하라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그리고 좌파든 우파든 노조 관료들과 대결하면서, 그 영향력 아래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조 관료들과 타협하는 기회주의 정책 때문에, 결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많은 선진노동자들을 퇴보시켰고, 결국엔 노조 관료들에게 넘겨줬다. 그 결과 사회주의노동자당은 1960년대 초반에 이르면 100~200명 규모로 축소됐고, 뛰어난 트로츠키주의 노동자계급 정치조직이라는 정체성도 잃어버렸다.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1930년대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여전히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자연, 사회, 정신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역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즉 그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경로를 따라 성장했으며, 어떤 변화를 겪으며 발전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할 때만, 오직 그럴 때만, 참된 지식을 향한 길은 명확해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트로츠키가 대표하는 복잡하고 과학적인 사상체계를 이해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지금까지도 부족하다. 그래서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발생과 성장, 발전을 다룬 캐넌의 이 책은 오랫동안 절실했던 요구를 충족시켜준다. 게다가 캐넌은 정규 교육을 받은 학생만이 아니라, 배움의 의지와 열의를 가진 선진노동자라면 누구나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캐넌의 설명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태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 1928년에 공산당에서 초기 트로츠키주의 중핵들이 제명당한 것에서부터 1938년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을 만들 때까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여러 발전단계를 다룬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는 원래 1942년 봄에 뉴욕에서 연속해서 강연했던 것이다. 현학자들이나 속물들은 이 책의 대화체 표현에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지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세계의 트로츠키주의 역사를 정확히 서술하고자 하는 미래의 역사가들은 역사 자료들을 더 탐구해 캐넌이 쓴 역사를 완성할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이 철저한 조사에 기초해 광범위한 기록을 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 책을 자료로만이 아니라 안내서로도 크게 의존해야 할 것이다. 미국 공산주의 역사에 관한 몇 안 되는 과거의 글 중에서 객관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령 벤자민 기틀로우의 책 <나는 고백한다>가 그렇다. 이 책은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창건자들에 대해, 미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가장하면서 개인적 지위와 분파적 이익을 위해 무원칙한 투쟁과 비도덕적 음모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소부르주아들이라고 악의적으로 기술한다. 기틀로우는 미국에 뿌리를 둔 공산주의 운동을 창건한 것이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모든 진보적인 시대적 요구를 희생시키면서, 썩어 들어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스스로를 팔아넘기고 봉사한 자들과, 자신을 포함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대비시키지도 않는다. 기틀로우나 다른 주관적인 자들이 피상적으로 접근한 것과는 달리, 캐넌은 초기 공산주의의 성장을 특징지은 치열한 내부투쟁에 대해 최초로 정치적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설명한다. 캐넌은 개인 간 충돌의 이면에 존재한 정치·이데올로기적 쟁점들을 밝혀낸다. 캐넌이 이런 사상적, 원칙적, 정치적 쟁점들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의 관점은 완전히 객관적이고 돋보일 수 있다. 미국 공산주의의 발전과 퇴보가 특정 개인들의 좋고 나쁜 특성 때문이라고 말하는 피상적이고 잘못된 설명으로 빠져들지 않았던 것은, 그가 원칙적인 정치기준을 따랐기 때문이다. 캐넌은 한때 같이 일했거나 만났던 여러 저명한 노동자계급 정치활동가들의 특징을 설명할 때, “죄를 경감해주지도 말고, 그렇다고 적의를 품고 보지도 말라”는 오델로의 격언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공산당에 지금도 남아있는 캐넌의 옛 동료들과 캐넌 자신 사이에는 피의 강이 흐른다. 그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강연 초반부에 미국 공산주의 운동 초기를 다루면서, 캐넌은 그들을 경멸적으로 낙인찍지 않는다. 그들은 한때 캐넌이 높게 평가했던 공산주의 선구자들이다. 그 뒤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캐넌은 그들에 대해 대충 평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을 평가하는 데서 주관적인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캐넌에 따르면, 미국 공산주의 운동을 창건하고 초창기를 돌파했던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1920년대는 미국 자본주의의 전성기였다. 영리한 사람들은 떼돈을 벌고 있었지만, 미국 공산당의 분파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공장노동자보다도 열악한 생활조건을 견뎌내며 활동했다. 캐넌은 초기 공산당과 그 지도자들을 아주 정당하게 평가한다. 그가 보기에 모든 분파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적절한 국제 지도부가 있었다면, 분파들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다. 가령 레닌과 트로츠키 시절에는, 조언과 지도를 받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져간 미국공산당 내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그 시절에 당은 더 단단하게 결속했고, 목표를 향해 눈에 띄게 전진했다. 내부 민주주의는 지켜졌다. 하지만 스탈린주의 체제는 신생 미국 공산당의 곤경과 성장통을 일부러 치명적 수준으로 증폭시켰다. 미국 공산당을 타락시킨 주된 책임은 미국 지도부 개개인의 특별한 허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탈린주의 사상과 실천 체계에 있었다. 캐넌은 초기 미국 공산주의 운동을 다루면서, 주요 이데올로기 경향들을 대표한 중요 인물들만을 언급한다. 당시 운동에서 저명했던 인물들은 이 역사책에서도 적절한 명성을 부여받는다. 뒤에 스탈린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도록 정치무대 위로 올린 우연적 인물들, 무명의 꼭두각시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면 미국 공산주의운동을 창건하는 영웅적 시기에는 아무도 그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뒷부분에서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던 사회당의 특정 지도자들과 어떤 인물들을 다룰 때는 주저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살루츠키(하드맨)에 대해 균형 있게 묘사한다. 이 인물에 대한 평가 근거는 전혀 모호하거나 주관적이지 않다. 미국 공산주의 창건자들은 많은 오류를 저질렀지만, 살루츠키보다 더 자세히 다룰 가치가 있다. 하지만, 캐넌은 살루츠키가 이도저도 아닌 인물의 전형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를 가장 위험한 정치적 부류로 만든 심각한 약점에 대해 젊은 세대가 경계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캐넌은 한때 좌파 정치에서 잠깐 두각을 나타낸 사회당 ‘전투파’의 지도자들도 자세히 다룬다. 그것은 젊은 세대가 취미 삼아 잠깐 운동에 발을 담그는 악성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놓기 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트로츠키주의를 배반했던 사회주의노동자당 내 소부르주아 반대파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역사 속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세심하고 공평하게 다룬다. 이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들은 선구적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트로츠키주의 역사는 종종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못하던 시절에 중앙 사무실을 지켰던 동지들과 미니애폴리스 동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런 흠 잡을 데 없는 투사들을 평가하면서, 캐넌은 그들이 전체 트로츠키주의 운동 속에서 획득한 지위를 인정한다. 미니애폴리스 동지들은 가난했지만, 당이 굳건히 설 수 있도록 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당에 기부했다. 그들의 정신적 지지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 당시는 의지가 가장 강한 사람들조차 격려와 지지 없이는, 전 세계의 반동적 압력을 견뎌낼 수 없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게다가, 무원칙한 파벌과 무책임한 분파가 당을 위협할 때마다, 그들은 항상 당을 지키기 위해 최선봉에 섰다. 캐넌을 포함해 17명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함께 신념 때문에 지금 감옥에 있는 빈센트 던에게 바친 헌사는, 가장 중요한 트로츠키주의 선구자 중 한 명에 대한 적절한 찬사다. 이 책은 이미 발간된 두 권의 자매편(트로츠키의 <맑스주의를 방어하며>와 캐넌의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위한 투쟁>)과 함께,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사회의 사회주의적 재조직화를 위한 핵심 도구인 노동자계급 정당을 레닌의 방법에 따라 건설하고자 했던 미국의 역사적 경험을 근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분명히 미국의 당 창건자들과 조직가들을 위한 안내서가 됐다. 게다가 전 세계 도처에 있는 우리의 사상적 동지들은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요새에서 펼친 트로츠키주의 투쟁의 과정과 발전에서 가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낼 것이다. 마치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중국, 서유럽, 남미, 그리고 특히 소련 등 다른 나라 제4인터내셔널의 경험으로부터 배웠듯이 말이다. 캐넌 동지가 책에 기록한 교훈들을 열린 마음과 풍부하게 이해하려는 의지로 연구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캐넌은 1942년 뉴욕에서 열두 번의 공개강연을 통해 미국에서 공산당을 건설하기 위해 초기에 영웅적으로 노력했던 과정을 설명한다. 캐넌은 우선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모범이 어떻게 미국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는지를 1, 2, 3장에서 다룬다. 1917년 이후 몇 년 동안 그들이 볼셰비키를 따르는 노동자당을 건설하고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다룬다. 책의 나머지 부분은 1928년 이후의 10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28년은 공산당 지도부가 점점 더 스탈린주의로 기우는 것에 반대했던 베테랑 지도자들과 간부들이 당에서 쫓겨난 해다. 캐넌과 동료들은 미국공산주의자동맹을 건설하는 한편, 레닌의 정치노선과 지도 아래 발전한 코민테른의 세계혁명 강령을 국제적 차원에서 계속 실행해나가기 위해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인 트로츠키와 함께 한다. 오늘날에도 이 세계혁명 강령은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위한 기초다. 대공황의 사회경제적 재앙과 제국주의 전쟁 책동에 맞서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떨쳐나섰음을 보여주는 노조투쟁과 사회투쟁이 1930년대 초부터 벌어지기 시작한다. 캐넌은 이 투쟁에 공산주의자동맹 회원들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서술한다. 미국 중서부 북부지방에서 당 활동가들이 계급투쟁적 노조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선진노동자들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결합했는지를 밝힌다. 이 결합 덕분에 노동자 대중운동의 고양기인 1934~38년에 일부 격렬한 계급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캐넌은 이 노력에서 얻은 교훈을 제시한다. 그리고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했던 1938년까지를 다룬다. 이 강연으로부터 20년 뒤, 캐넌은 <미국 공산주의 첫 10년>이라는 책을 통해 그 운동에 참가한 지도자의 관점에서 미국 맑스주의 운동의 초기 역사를 보다 자세히 다룬다. 1962년의 책을 통해, 볼셰비키가 이끈 1917년 러시아혁명부터 1928년까지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1942년의 강연[즉, 이 책]에서 처음으로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뿌리와 그 선구자들의 성격에 대해 요약해서 결론내렸다는 점을 확인한다. 캐넌은 1890년에 캔자스 주 로즈데일에서 태어났고, 18세에 사회당에 가입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이전과 세계대전 동안에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순회 조직가이자 사회당 좌파의 지도자였다. 그 뒤,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창건 지도자가 됐다. 1922년 6월부터 1923년 1월까지 소련에서 보낸 7개월 동안, 캐넌은 코민테른 4차대회의 대표단이었고, 모스크바에 있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상임간부였다. 뒤에 그는 미국에서 국제노동자방어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 조직은 정치적 소속과 관계없이 노동자운동에서 전투적으로 싸우다 구속된 노동자계급 구속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한 사람의 상처는 모두의 상처다’라는 노동자계급의 깃발을 들고 투쟁한 전국 조직이었다. 캐넌은 1929년에 미국공산주의자동맹의 창건을 이끌었다. 이 조직은 1938년에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발전했다. 그는 1953년까지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고, 그 뒤 당 의장이 됐다. 그리고 1972년부터 1974년에 죽을 때까지 당의 명예 의장이었다. 이 강연이 있기 바로 몇 달 전인 1941년 12월 8일,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산별노조회의(CIO) 544지부(전 팀스터 544지부) 지도부와 중핵 17명과 함께 캐넌은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연방법정에서 조작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학살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을 미국 노동운동 안에서 적극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1940년에 만들어져 최초로 544지부와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부를 기소한 스미스법이라는 사상탄압법 때문에, 그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실상 1957년에 대법원이 뒤집긴 했지만, 그 법은 행동만이 아니라 특정 사상에 대한 옹호도 불법화했다. 어렵게 쟁취한 헌법의 권리장전(이것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금지했다)을 위반한 것이다. 1943년 말에 미국 고등법원은[연방법원] 평결의 선고를 승인했다. 그래서 캐넌은 미네소타 주 샌드스톤에 있는 연방교도소에 16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1945년 초에 풀려났다. 고등법원은 다른 17명의 피고인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비슷한 형량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의 독자들은 이 책이 포괄하는 시기에 캐넌이 쓰고 말한 것을 담은 <미국 좌익반대파, 1928~1931년>, <미국공산주의자동맹, 1932~1934>에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캐넌이 쓴 다른 저작으로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을 위한 투쟁>, <선동가 노트>, <재판대에 선 사회주의>,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 <2차 세계대전기의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을 향한 연설>, <사회주의 연설> 등이 있다. 이 모든 저작과 <미국 공산주의의 첫 10년>, 조셉 한센이 쓴 <캐넌, 국제주의자>는 패스파인더 출판사를 통해 볼 수 있다. <미국 트로츠키주의의 역사> 발간 50주년 기념판이 1995년에 출판됐다. 그때 우리는 사회주의노동자당 지도자인 조셉 한센이 쓴 1944년판 서문도 되살렸고, ‘한 참가자의 보고’라는 원래 부제도 복원했다. 책을 더 읽기 쉽고, 괜찮게 만들려고 본문과 색인을 꼼꼼히 검토해 새로 편집했다. 이 4판에는 최초로 24쪽 분량의 사진을 실었다. 이 사진들은 캐넌이 다룬 세계사의 대사건들과 노동자계급이 이끈 강력한 사회운동을 더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줄 것이다. 이번 판은 또 다른 측면에서 획기적이다. 패스파인더 출판사가 프랑스어판과 스페인어판을 동시에 출판했다. 캐넌의 강연이 있은 지 6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전 세계에서 혁명의식을 가진 수백만의 비영어권 노동자들이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를 통해 공산주의의 연속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캐넌의 이 책은 동시대를 다룬 그의 다른 책들만이 아니라, 1983년에 잭 반즈가 맑스주의 정치이론지인 <새로운 인터내셔널>에 기고한 <그들의 트로츠키와 우리의 트로츠키:오늘날 공산주의의 연속성>과도 단짝이다. 패스파인더 출판사는 이 책의 신판도 새로운 서문을 담아 올해 영어판, 스페인어판, 불어판으로 발간했다. 이 모든 저작은 1928년에서부터 1938년까지의 10년 동안 캐넌과 그 동지들을 이끌었던 볼셰비키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노조 회관은 미국 트로츠키주의 역사를 강연하기에 꽤 적절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적 투쟁을 시작했던 1928년에, 내가 처음으로 공개연설을 통해 트로츠키와 러시아 반대파를 방어했던 곳이 바로 이 강당이다. 당시 스탈린주의자들이 물리적 힘으로 우리 강연회를 깨려고 했기 때문에, 강연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거의 14년 전에 우리가 공공연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공개강연 활동을 사실상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다는 점을 틀림없이 확인할 것이다. 트로츠키주의는 새로운 운동이나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혁명과 코민테른 초기에 상세히 설명하고 실천한 진정한 맑스주의를 복원하고 부활시킨 것이다. 볼셰비즘 자체도,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정부들을 지지하면서 노동자계급을 결정적으로 배신하고 맑스주의를 오염시킨 뒤, 진정한 맑스주의를 복원하고 부활시킨 것이었다. 내가 강연에서 다루는 특정 시기(지난 13년)를 보든, 맑스와 엥겔스 사후의 어떤 시기를 보든, 하나의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그것은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의 부단한 연속성이다. 진정한 맑스주의의 대표자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때때로 온갖 왜곡과 배신이 운동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정통 맑스주의를 복원하고 운동을 바로 세우려는 세력이 항상 새롭게 등장했고, 전면에 나섰다. 이것은 우리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 사회주의노동자당이라는 확고한 형태를 갖춘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갑자기 어디선가 완성된 형태로 불쑥 솟아난 것이 아니다. 이 운동은 미국 공산당으로부터 직접 등장했다. 미국 공산당 자체도 이전의 운동인 사회당과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으로부터 등장했다.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전쟁 이전과 전쟁 시기에 미국의 혁명적 노동자운동으로부터 자라났다. 1919년에 조직적 형태를 갖춘 공산당은 처음에는 사회당 좌파로 출발했다. 공산주의자 대오의 대다수는 사회당 출신이었다. 사실, 1919년 9월에 공산당이 공식 출범한 것은 장기간에 걸친 사회당 내부투쟁이 조직적 정점에 이른 것일 뿐이다. 사회당 내부투쟁 과정에서 강령이 작성됐고, 공산당의 조직적 골간이 형성됐다. 결국 내부투쟁이 분열로 이어져 공산당이라는 독자 조직이 창건된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부터 미국 공산당이 창건될 때까지의 2년, 그 뒤 1~2년에 걸친 초기 공산주의 운동의 공고화 과정에서 주요 임무는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기회주의에 맞선 분파투쟁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정치조직이 타락하는 동시에 혁명적 분파가 탄생하는 경우에 거의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거의 예외 없이 새로운 운동은 공식 분열로 나아가기 전에, 다수를 획득하고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다소 협소한 당내 투쟁으로 초기 활동을 제한한다. 새로운 당은 계속해서 기존 정당에서 조직할 사람을 찾는다. 신생 정당이 제 발로 확고하게 서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1919년에 공식적으로 분리한 뒤에도, 관성과 습관 때문에, 그리고 투쟁이 실제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분파투쟁은 계속됐다. 아직 결단하지 못한 사람들과 새 당에 가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사회당에 남아 있었다. 공산당은 사상을 명료하게 다듬고 사회당원을 추가로 조직하는 작업에 1년 정도 힘을 집중했다. 그런 역사적 사건들에서 늘 그렇듯, 결국 분파의 단계는 계급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활동하고, 새로운 부대를 충원하며, 새로운 조직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발전시키는 단계로 이어졌다. 나중에 공산당이 된 사회당 좌파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직접 고무받았다. 그 전에는 미국 투사들이 진정한 맑스주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회당 지도부는 맑스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맑스주의 문헌은 아주 조금밖에 출판되지 않았다. 그것도 거의 경제서적들로 국한됐다. 사회당은 이질적 조직이었다. 사회당의 정치활동과 선전·선동 내용은 온갖 급진적, 혁명적, 개량적 사상들로 뒤범벅돼 있었다. 전쟁 이전은 물론이고 전쟁 시기에도, 명확한 강령적 지침을 찾아 당에 들어온 젊은 투사들은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미국 사회당의 저명한 지도부는 유럽 사회민주당들의 기회주의 지도부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론을 더 모르고, 더 무시했다는 점만 달랐다. 그 결과, 미국 운동의 수많은 젊은 투사들은 혁명적 본능과 충동을 갖고 있었지만, 혁명운동을 일관되게 펼치기 위해 필요한 맑스주의를 거의 배울 수 없었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러시아에서 노동자계급은 권력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른 모든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혁명 승리의 엄청난 충격파가 미국 운동을 뿌리까지 뒤흔들어놓았다. 러시아혁명에 고무받아 사회당의 혁명적 분파는 엄청나게 강화됐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었다. 전에는 혁명의 이론적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치솟았다. 곧바로 우리는 러시아혁명의 조직가들과 지도자들이 단지 실천적 혁명가가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진정한 맑스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처음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를 설명해 준 것은 레닌과 트로츠키 등 러시아 지도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국제 노동운동에서 왜곡되지 않은 맑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러시아의 승리가 가져다 준 엄청난 권위와 명성 덕분에, 그들은 마침내 모든 나라에서 청중을 갖게 됐다. 모든 진지한 투사들은 그들 주위로 결집했고, 전례 없는 관심과 열정으로 그들의 저작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설명한 사상은 실천적 입증 덕분에 열 배의 권위를 획득했다. 게다가, 세계 자본주의가 그들에 맞서 모든 힘을 동원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위대한 혁명을 발전시키고, 적군(赤軍)을 창설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자연스럽게 우리를 포함해 전 세계 모든 노동자정치운동의 혁명서클들이 볼셰비즘을 권위 있는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토대 위에서 사회당 좌파가 형성됐다. 사회당 좌파는 자체 기관지, 조직가, 강연자, 필진을 갖추고 있었다. 공산당이 공식 출범하기 4~5개월 전인 1919년 봄에, 우리는 뉴욕에서 사회당 좌파의 첫 전국회의를 열었다. 당시에 나는 캔자스 시 대표로 회의에 참석했다. 우리 분파가 미래의 분리를 준비하면서, 당내 당의 형태를 갖춘 것이 바로 이 회의에서였다. 공식 기관지의 이름은 <혁명시대>였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진짜 사상을 미국 노동자들에게 처음 소개한 것이 이 신문이었다. 바로 이 신문의 편집자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볼셰비키 사상을 자세히 소개하고 대중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공산주의 창시자로 역사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의 이름은 루이스 프라이나다. 그의 심장은 그의 두뇌만큼 강하지 못해 투쟁과정에서 굴복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죽음의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그는 뒤늦게 그쪽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불운일 뿐이다. 그가 초기에 했던 일은 모두 유효하다. 그 누구도 그것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당시 운동에서 또 한 명의 저명한 인물로 존 리드가 있었다. 그는 지도자도 정치가도 아니었지만, 도덕적 영향력이 매우 컸다. 존 리드는 미국 사회주의 언론인으로서 러시아로 건너가 혁명에 참여했고, 그것을 진실하게 보도했다.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위대한 책을 썼다. 초기 사회당 좌파의 대다수는 외국 출신이었다. 20년 전 당시에 미국에서 기층 노동자계급의 상당수는 외국 출신이었다. 전쟁 전에는 이민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것은 거대한 노동력을 축적하려는 미국 자본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이들 이민자의 다수는 자국에서 사회주의 정서를 안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외국어를 쓰는 사회주의운동이 급속히 늘어났다. 외국 출신들은 사용하는 언어별로 연맹을 조직했고, 사회당 안에서 자치권을 누렸다. 8~9천 명의 회원들이 가입한 러시아어 연맹, 5~6천 명이 가입한 폴란드어 연맹, 3~4천 명이 가입한 우크라이나어 연맹, 약 1만 2천 명이 가입한 핀란드어 연맹 등이 있었다. 이처럼 당에는 외국출신 당원이 매우 많았다. 이들 대다수는 러시아혁명의 깃발 아래 모였다. 사회당이 분열한 뒤 초기 공산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이 이들이었다. 이 언어별 연맹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정당을 통제하고자 했고, 실제로 통제했다. 자신이 대표하는 언어별 연맹 덕분에, 그들은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서 영향력을 너무 많이 행사했다. 이것은 여러 측면에서 좋은 일이었다. 왜냐면 그들 대부분이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고, 당에 볼셰비즘 사상을 불어넣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배는 다른 측면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그들의 마음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었다. 그들은 운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운동은 처음부터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종파주의에 시달렸다. 자기 뒤에 있는 조직원들 덕분에 실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당을 지배한 그 지도자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미국 노동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초기 운동은 비현실성의 과잉으로 고통받았다. 또한 많은 경우에 당을 미국의 실제 계급투쟁으로부터 분리시켜 사고하고 활동하는 낭만주의적 기운조차 존재했다. 기이하게도, 이 언어별 연맹 지도자의 다수는 자신이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통제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사회당 좌파 안에서, 그리고 뒤에는 공산당 안에서, 미국 공산주의 운동은 이른바 ‘지도권을 둘러싼’ 엄청난 분파투쟁에 시달렸다. 외국출신 지도자들의 지배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미국과 같은 주요 제국주의 국가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는 전체 인구의 소수로서 평등한 권리들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지만 그 권리들을 결코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당 좌파와 초기 공산당에서는 이 관계가 뒤바뀌었다. 슬라브계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대변됐다. 러시아인, 리투아니아인, 폴란드인, 레트인[라트비아인], 핀란드인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압도적 다수였고, 우리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토박이 미국인은 소수였다. 처음부터 우리는 박해받는 소수파로서 투쟁했다. 처음에 우리는 거의 승리하지 못했다. 처음엔 사회당 좌파 안에서, 그 뒤 독립한 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나는 미국인 지도부와 미국에 맞는 길을 추구하는 분파에 속했다. 토박이 노동자들의 운동에 정통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지도부를 세우지 않으면, 미국에서 어떤 운동도 건설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마찬가지로 그들 다수는 미국인이 진정한 볼셰비키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영어로 표현할 때는 우리를 원하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회주의와 중도주의로부터 운동을 지키기 위해 계속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년 동안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 결국 언어별 연맹 지도자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은 미국 출신 지도부를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권을 둘러싼 투쟁은 조직형태에 관한 투쟁으로 나타났다. 언어별 그룹들은 자율적 연맹으로 조직돼야 하는가 아니면 민족적 체계나 자율적 권리를 갖지 않는 지역 지부들로 조직돼야 하는가? 중앙집중적 당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연방정당을 만들 것인가? 당연히 중앙집중적 당이 볼셰비키의 구상이다. 하지만 중앙집중적 당에서는 언어별 그룹들을 단단한 블록으로 쉽게 결집시킬 수 없었다. 반면 연방정당에서 언어별 연맹 지도자들은 당대회 등에서 지지자 표를 확실히 통제함으로써 당에 맞설 수 있었다. 이 투쟁은 1919년 뉴욕에서 열린 사회당 좌파 회의를 교란시켰다. 사회당 전국대회에서 분열이 발생했을 때, 이미 좌파 세력은 자체적으로 분열돼 있었다. 그래서 사회당에서 분리해 나온 공산주의자들은 단일정당을 건설할 수 없었다. 며칠 뒤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공산당이 건설됐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언어별 연맹이 이끈 다수파는 미국공산당을 건설했고, 나머지 소수파는 공산주의노동자당을 건설했다. 후자는 주로 미국 출신과 미국화한 외국 출신들로 이뤄졌다. 당연히 다양한 변수와 개인적 부침이 있었지만, 주요 구분선은 그것이었다. 독립적 공산주의 운동이 같은 강령을 갖고 있으면서도 둘로 갈라져 격렬히 싸운 것은 불길한 출발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갈라진 대오는 끔찍한 박해를 받았다. 미국에서 1919년은 전후 대반동의 해였다. 지배자들은 ‘민주세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1차 대전을 치른 후, 미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픈숍’제도를 추가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모든 노동자조직을 겨냥해 애국주의 광풍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잡혀갔다. 새로운 공산당은 이 공격의 초점이 됐다. 연안 지방의 거의 모든 지역조직이 습격당했다. 전국지도부든 지방지도부든 사실상 모든 지도부가 잡혀갔고, 이런저런 이유로 기소됐다. 외국 출신 투사들은 대규모로 추방됐다. 탄압 때문에 운동은 지하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두 당의 지도부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첫 해에, 우리는 서로 갈라져 갈등하는 두 개의 공산당이라는 불명예, 추문, 조직적 재앙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몇 달 뒤에는 지하 그룹과 지부의 형태로 조직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1919년부터 1922년 초까지 공산주의 운동은 비합법상태로 머물렀다. 탄압의 첫 충격이 가시고, 각 그룹과 지부가 지하에 안착했을 때, 운동은 대중의 삶과 노동조직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됐고, 비현실적 경향의 지도자들이 힘을 얻었다. 여전히 두 당은 서로간의 분파투쟁으로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교리를 다듬고, 사소한 트집을 잡는 것이 취미가 됐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초좌익주의가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이 살아있는 노동운동으로부터 고립될수록, 대중운동과 관계가 약해질수록, 대중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어려워질수록, 문구와 강령을 더욱 급진화하는 것이 고유의 법칙인 듯하다. 이 운동의 역사를 엄밀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당시에 발간된 일부 당 출판물들을 검토해야 한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초좌익이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공개모임을 갖지 못했다. 노동자들에게 얘기할 필요가 없었고, 우리 슬로건에 대한 반응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비공개 모임들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점점 더 운동의 지도부 자리를 차지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급진주의’가 판을 쳤다. 초기 미국 공산주의 운동은 거의 초좌익주의가 지배했다. 1920년 대선 때, 운동은 여전히 비합법 상태에 있었고, 자신의 후보를 내세울 방법이 없었다. 당시 사회당은 유진 뎁스를 후보로 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당과의 격렬한 분파투쟁을 이유로 그를 지지할 수 없다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아주 급진적 방침을 정했다. 노동자들에게 선거 보이콧을 호소하는 단호한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는 후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가령 1940년대에 사회주의노동자당(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렇게 말했다. 기술적, 재정적, 조직적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후보를 낼 수 없었다. 또한 지지할 후보를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사태가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공산당은 무슨 일에 대해서든 입장을 발표했다. 내가 종종 성명서에 관심이 없는 것은 공산당 초기에 성명서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성명서를 내야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적게 내되 더 중요한 일에 성명서를 내는 것이 더 낫다. 그럴 때 성명서는 무게를 갖는다. 어쨌든 선거 보이콧을 호소한 1920년의 성명서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운동에서 강력한 반(反)의회 경향이 성장했고,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레닌의 <좌익 소아병>을 읽었고, 모두가 이론적으로는 선거 참여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선거 참여를 위해 실제로 역량을 투여하지는 않았다. 당이 선거활동에 진지하게 나서기까지는 수년이 흘러야 했다. 또 다른 초좌익적 견해도 초기 비합법 공산당에서 우세했다. 그것은 비합법 상태의 유지를 혁명적 원칙으로 여기는 시각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합법성의 이점을 누려왔다. 사회주의노동자당 안에서 합법정당이 아닌 다른 존재방식을 아는 동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합법주의 편향이 자라날 가능성도 꽤 있다. 당은 지배계급의 태도와 무관하게 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어야 하기에, 탄압받는 시기에 그런 동지들은 어느 정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혁명정당은 비합법 형태로도 활동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것이다. 비합법 정치조직과 공개 정치조직 모두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개 정치조직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유리하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들을 만나고, 당원으로 조직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볼셰비키는 가장 혹독한 탄압의 시기에도 항상 가능한 모든 공개활동의 기회를 붙잡고 활용하고자 노력한다. 만약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다면, 가능한 최대로 말하고, 부족한 것은 다른 방식의 합법적 선전으로 보충할 것이다. 우리가 러시아혁명 지도자들의 저작과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하기 전이었던 공산주의 운동초기에 비합법당을 원칙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라났다. 시간이 흘러 반동의 물결이 가라앉자, 합법활동의 가능성이 열렸다. 하지만 당이 합법화를 향해 약간 전진하려 하자, 엄청난 분파투쟁이 벌어졌다. 1921년과 1922년 초까지 공산주의 운동의 다수는 비합법 상태가 아닌 당은 혁명적일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는 견해를 공유했다. 노조 문제에서도 ‘급진주의’가 팽배했다. 이 끔찍한 초좌익주의적 병균은 고립된 운동에서 가장 잘 자란다. 운동이 대중으로부터 고립돼, 오류를 적절히 교정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언제나 초좌익주의가 자라난다.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분리한 세력들에서 그런 초좌익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주장이 사회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수록, 그들의 입장은 더 극단적이고, 더 비이성적이며, 더 우스꽝스럽게 변한다. 공산주의운동의 첫 비합법 대회에서 노조문제가 의제로 올랐다. 이 대회는 분열과 통합을 낳았다. 언어별 그룹들이 이끄는 공산당에서 루덴버그 분파가 분리했다. 그들은 공산주의노동자당과 함께 1920년 5월에 미시건 주 브릿지맨에서 열린 통합대회에 참여해 새로운 통합공산당을 선포했다(1922년 8월에 브릿지맨에서 경찰의 습격을 받은 또 다른 대회와 혼동해선 안 된다). 통합공산당은 우위에 섰고, 1년 뒤에는 공산당의 남은 절반과도 통합했다. 나는 1920년 대회에서 채택한 노조 문제에 관한 결의안을 또렷이 기억한다.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배운 것에 비추어본다면, 그 결의안은 소름끼치는 것이다. 결의안은 미국노동총연맹(AFL)을 ‘배척’하라는 호소였다. ‘일자리를 얻고자 미국노총에 속해서 일해야만 하는’ 당원들은 부르주아 의회에서 공산당이 활동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즉 미국노총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파괴하기 위해 활동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많은 오류처럼, 이 어리석은 오류는 뒤에 교정됐다. 이런 우스꽝스런 일들을 저지른 많은 이들이 뒤에는 그것을 깨닫고, 정치운동을 더 잘 해나갈 수 있었다. 러시아혁명을 따르는 젊은 세대는 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적 배신에 맞서면서 지나친 급진주의를 선택했다. 1921년 코민테른 3차 세계대회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공공연하게 ‘우파’의 입장에 섰다. 레닌은 의회 활동, 노조 활동과 관련해 독일의 초좌익주의를 겨냥하는 <좌익소아병>을 썼다. 대회 결의안과 함께 이 팜플렛은 초기 코민테른에서 초좌익주의 경향을 정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속물들이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건설 과정을 우스꽝스런 한바탕 소동으로 묘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산주의 운동은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이 많았다. 용기 있고 헌신적인 수천 명의 혁명가들이 운동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했고, 위험을 감수하려 했다. 그들은 오류를 많이 저질렀지만, 미국에서 전례 없는 당을 건설했다. 즉 맑스주의 강령, 뛰어난 지도부, 규율 잡힌 대오를 갖춘 당을 건설한 것이다. 비합법 시기를 견뎌낸 사람들은 규율을 습관화했고, 다음 시기에 위대한 역할을 할 방법을 배웠다. 당시에 우리는 그런 기초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강령을 진지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소송을 처리하듯 사회주의를 다루는 사람들이 권력 장악을 목표로 혁명운동을 이끌 수 있다는 생각과 영원히 단절했다. 구 사회당의 전형적 지도자는 법을 다루는 변호사, 기도하는 목사, 작가 등 이러저러한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가끔씩 나타나 거들먹거리며 연설하곤 했다. 상근자들은 실질적인 당내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궂은 일만 하는 실무자였을 뿐이다. 혁명적 충동과 열정을 가진 평당원들과 최상층 소부르주아 인사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다. 공산당은 초기에 소부르주아 인사들과 완전히 단절했다. 이 과거의 지도자 중 단 한 명도 러시아혁명을 진심으로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절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평당원 중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당을 위해 일하는 직업적 노동자여야 한다는 점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정했다. 지도자는 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삶을 바쳐야 한다. 노동자들을 이끌고 실제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는 당이라면, 다른 형태의 지도부란 생각할 가치도 없다. 비합법 상황에서 러시아 지도자들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교육활동을 계속했다. 레닌,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라덱, 부하린이 우리의 스승이었다. 우리는 태만했던 옛 사회당에서와는 전혀 다른 정신으로 교육받기 시작했다. 사상과 강령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혁명가의 정신으로 교육받은 것이다. 고립되고 쪼그라들수록 운동은 내부활동에 집중했고, 격렬한 분파투쟁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지하의 막다른 골목에 갇힌 운동은 정체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도부 중 일부가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합법적 방식으로 미국 노동자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도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우리는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고, 나와 러브스톤은 긴밀하게 협력했다. 1922년 봄에 루덴버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 우리와 함께했다. 운동의 합법화를 위한 투쟁은 1년 반에서 2년 동안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됐다. 우리는 운동의 합법화를 단호하게 찬성했다. ‘운동의 합법화는 일종의 배신’이라고 확신한 사람들도 똑같이 단호하게 저항했다. 결국 1921년 12월에 우리는 중앙위원회에서 근소한 차이로 다수파가 됐고, 합법화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오 내 저항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에, 당을 합법화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연회를 열기 위한 몇몇 합법 그룹을 조직했다. 그 뒤 이 그룹들을 미국노동동맹이라는 중앙기구에 편제하기 위해 대회를 소집했고, 동맹을 선전조직으로 전환했다. 1921년 12월에 우리는 비합법 공산당을 해산하자고 제안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제안에 다수가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합법 공산당과 공존하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조직으로서 노동자당을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비합법 공산당을 유지하면서 외곽에 합법적 노동자당을 건설하기로 타협한 것이다. 2~3천명의 완고한 비합법 활동가들은 합법화를 위한 이런 임시조치에 대해서도 저항했다. 그들은 분리해서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우리는 합법과 비합법에서 두 개의 당을 갖게 됐다. 노동자당은 매우 제한적인 강령을 가졌지만, 모든 합법적 대중 활동을 펼치는 매개체가 됐다. 통제권은 비합법 공산당에 있었다. 노동자당은 탄압받지 않았다. 워싱턴과 여타 지역에서 반동의 물결이 지나갔고, 자유주의 정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공개 행사와 강연을 열 수 있었다. 신문 발간과 선거운동 등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렇게 불편한 두 개의 당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떠올랐다. 우리는 비합법 조직을 정리하고 모든 활동을 합법정당으로 집중하기를 원했고, 탄압을 받을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새로운 반대에 부딪혔다. 투쟁은 중단 없이 계속됐고, 결국 우리는 1922년 코민테른 4차 대회에 이 문제를 다뤄달라고 호소했다. 대회에서 나는 이른바 ‘청산파’의 대표였다. 이 명칭은 볼셰비즘의 역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1905년 혁명이 패배한 뒤 언젠가, 한 멘셰비키 분파가 비합법 당을 청산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그들은 모든 활동을 짜르 전제군주의 ‘합법성’ 안으로 가두려 했다. 레닌은 그 제안의 지지자들에 맞서 무자비하게 싸웠다. 왜냐면 그것은 혁명활동과 혁명조직을 포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그들을 ‘청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에서 비합법 당을 정리하자고 제안하고 나섰을 때, 러시아의 볼셰비즘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좌파는 자연스럽게 레닌의 표현을 빌려와 우리를 ‘청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정세에서는 합법 공산당이 가능했다. 그게 우리의 주장이었다. 그 올바름은 이후의 모든 경험을 통해 입증됐다. 결국 나와 몇몇 동지들이 트로츠키 동지를 만나 한 시간 동안 우리 견해를 설명할 수 있었다. 설명이 끝나자, 트로츠키는 몇 가지를 물은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레닌을 만나게 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트로츠키는 지금 레닌이 아프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만약 레닌이 자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레닌을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미국 문제를 다루기 위한 코민테른 위원회가 설치됐다. 우리는 논쟁하기 위해 위원회로 갔다. 트로츠키와 레닌이 ‘청산주의자들’ 편이라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다. 그래서 전반적 분위기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위원회 토론에서 지노비에프는 러시아 볼셰비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합법 활동과 비합법 활동에 대해 뛰어나게 연설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연설을 잊지 못한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우리 당에 큰 도움이 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덱과 부하린도 같은 입장에서 연설했다. 이들 세 명은 당시 코민테른에 파견된 러시아 공산당의 대표들이었다. 철저하고 충분하게 토론한 다음, 다른 당의 대표들도 미국 공산당을 합법화한다는 견해를 전면 지지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코민테른 세계대회의 권위 덕분에, 미국의 합법화 반대세력은 곧 잠잠해졌다. 1921년에 공산당의 외곽 합법조직으로 만들어진 노동자당은 대회를 열어 보다 명료한 강령을 채택했고, 비합법 조직을 완전히 대체했다. 1923년 이후의 모든 경험은 그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정세에서는 합법조직이 정당했다. 불필요한 때에 비합법 상태로 남았다면, 혁명활동에 끔찍한 재앙, 낭비, 치명적 손상을 초래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는 혁명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신중한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당의 합법화에 동의하지 않은 한 작은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합법 상태로 머물렀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본부를 보스턴에 두고, 클리블랜드에 지부 하나를 뒀다. 우리는 이 비합법 그룹이 몇 년 동안 이따금씩 일종의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7년 후 우리가 공산당에서 쫓겨나 트로츠키주의 운동을 건설할 때, 이 보스턴 그룹이 트로츠키주의 사상에 어느 정도 우호적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우리는 어떤 도움이든 아주 절실했기 때문에, 이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내가 보스턴에 갔을 때, 지역 동지들이 보스턴 그룹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들은 매우 음모적이었다. 옛 비합법 방식으로 나를 미팅 장소로 데려갔다. 나는 그 조직의 공식 위원회를 만났다. 서로 인사한 다음, 그 조직의 지도자가 나한테 말했다. “쿡 동지, 동지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해 봐요.”‘쿡’이란 이름은 비합법 당 시절에 내가 썼던 가명이었다. 그는 비합법 미팅에서 내 실제 이름을 쓰려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왜 당에서 쫓겨났고, 우리 강령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했다. 그들은 트로츠키주의 강령에 기초해 두 조직을 통합해 새 당을 만드는 문제에 관해 토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먼저 한 가지 점에서 동의를 받고 싶어 했다.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비합법 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몇 가지 농담을 나눈 뒤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여전히 비합법 상태로 있는 것같다. 동지들, 지금까지 다룬 것은 우리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배경이자 서론이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당에서 쫓겨나 트로츠키주의 깃발 아래서 운동을 재건하기 전에 몇 년간 초기 공산당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다룰 것이다. 지난주에 나는 미국 공산주의의 초기 개척시대를 다뤘다. 비록 많은 것을 생략하고 중요한 부분만 다뤘지만, 비합법 공산주의 운동을 합법화하고 공개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1922년 코민테른 4차 대회를 지나칠 수 없었고, 좌익소아병을 포함해 초기 운동의 부정적 측면들에 대해 다뤘다. 좌익소아병, 즉 초좌익주의의 악성 소아병은 운동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늘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여러 활동들에서 비현실적이었던 부정적 측면보다는 미국에서 최초로 볼셰비키의 원칙에 기초해 혁명정당을 창건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 그것은 공산주의 선구자들의 위대한 공헌이다. 당을 건설한 일군의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기본 저작 중 일부를 소화했고, 진지한 노동자당 건설의 필수조건 중 하나인 규율로 무장했다. 그것은 미국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진지한 혁명정당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인 전문적인 지도기구를 창출했다. 초기 공산주의 운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아주 강력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과 젊은 공산당 사이에서 벌어진 주도권 투쟁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IWW는 상당히 큰 전투적 노동자운동이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이 조직은 명백히 가장 많은 노동자투사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반면에 공산당 중핵은 사회당 출신들로서 상당수가 소부르주아 출신이었다. 젊은 공산주의자 다수는 계급투쟁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수천 명 규모의 젊은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에서 계급투쟁에 실질적으로 동화되지 못한 외국 출신 노동자들이었다. 인적 자원이라는 측면만 고려한다면, IWW가 훨씬 더 우세했다. 그 투사들은 많은 투쟁을 통해 검증돼 왔다. IWW의 수많은 투사들이 감옥에 있었다. 그들은 혁명적 어구를 자신 있게 말하며 갑자기 등장한 운동을 무시하듯이 바라보곤 했다. IWW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보여준 행동과 희생이 새로운 혁명운동의 단순한 교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산주의 운동이 경쟁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오판했다.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22년에, 노동자계급 선진층을 주도하는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공산당이 IWW를 대체했다는 사실이 정말 분명해졌다. IWW에는 노동자투사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은 영웅적 투쟁을 숱하게 전개해왔다. 그래도 공산당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통해 자기 사상을 벼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상과 이론을 충분히 중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조직은 퇴보했다. 반면 경험 없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새로운 조직은 기반이 취약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볼셰비키 사상을 붙잡았기 때문에, 몇 년 내에 IWW를 완전히 제치고 훨씬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경험의 위대한 교훈은 혁명정당의 건설에서 다른 것이 올바른 사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상상하며, 사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당은 합법화 문제로 초좌익주의에 맞서 싸운 뒤, 공개 무대로 나왔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당은 미국 노동자계급 선진층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확보했다. 적절하게도 미국 전역에서 공산당을 가장 선진적이고, 혁명적인 조직으로 평가했다. 당은 미국 출신 노조원 일부를 당원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철강파업에서 활약하며 유명해진 윌리엄 포스터와 여러 노조 활동가들(꽤 큰 그룹)이 외국 출신들로 구성돼 다소 이국적이지만 역동적인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렇게 당 전체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골방에서 비현실적인 문제로 논쟁하고 말다툼하며 이론을 지나치게 갈고닦는 작업에서 대중운동으로 당의 활동방향을 바꿨다. 공산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의 실제 문제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당은 점점 더 ‘노조’처럼 변해갔다. 당시 미국에서 거의 유일한 노동조직이었고,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을 향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당의 합법화를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당의 노조 정책을 올바로 교정하기 위해서도 투쟁했다. 이 투쟁도 성공적이어서 애초의 종파적 입장을 극복했다. 공산주의 선구자들은 독자 노조를 선호했던 초기의 종파적 선언을 수정했고, 이제 공산당의 역동적 힘을 반동적 노조에 쏟아 부었다. 이런 방향전환을 주되게 뒷받침한 것도 모스크바, 레닌, 코민테른이었다. 레닌의 훌륭한 팜플렛 <좌익소아병>은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22~23년에는 당이 노조운동으로 잘 파고들 수 있었고, 일부 지역의 몇몇 노조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빠르게 획득하기 시작했다. 특히 광부 노조와 의류 노조에서 그랬다. 다른 노조들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질적이고 전적으로 진보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당은 어느 정도 기회주의적인 모험에 빠져들었다. 어떤 당도 오류를 완벽하게 바로잡기는 어렵다. 오류를 지나치게 수정하려다가 종종 역편향에 빠지곤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생 정당은 정치운동, 소부르주아계급, 노조 관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조운동과도 무관하게, 고립된 지하에서 이론을 정교화하는 데 몰두했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농민 정치의 영역에서 일련의 거친 모험 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동자대중운동의 충분한 뒷받침이나 공산주의자들 자신의 충분한 힘이 없는 상태에서, 일련의 책략과 연합을 통해 갑작스럽게 광범위한 농민노동자당을 만들려 했던 당 지도부의 시도 때문에, 당은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내부 투쟁이 촉발됐다. 당의 합법화를 둘러싼 분파투쟁이 끝난 지 6개월쯤 지난 1923년에 새로운 분파투쟁이 시작됐다. 이 투쟁은 1928년에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당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거의 중단 없이 계속됐다. 우리를 내쫓을 당시 지도부였던 러브스톤 그룹이 쫓겨난 1929년 봄까지도 투쟁은 맹렬하게 계속됐다. 그 뒤, 스탈린주의화한 코민테른은 독립적 개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쫓아냈고, 스탈린주의에 충성스런 지도부를 세움으로써 분파투쟁을 종식시켰다. 그들은 관료적 방식으로 당의 획일적 평화를 확보했다. 그리고 사상적 정체와 쇠퇴의 평화를 확보했다. 당은 이 시기 내내 분파투쟁으로 요동쳤지만, 그 와중에도 여러 분야에서 자기 활동을 펼치며 계급투쟁에서 엄청난 일들을 해냈다. 당은 미국 최초로 혁명적 일간신문을 발간했다. 1,000~1,500명 규모의 당으로서는 상당한 성취였다. 선전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쳤고, 전례 없는 규모로 노동자 방어 활동을 조직했으며, 노동운동에 많은 혁신적인 것들을 도입했다. 또한 사실상 거의 모든 중요한 파업을 지도했다. 특히, 전국에서 주목한 1926년의 위대한 퍼세이익 파업을 공산주의자들이 온전히 지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 노동계급 운동의 다른 어떤 진보적이고 전투적인 경향의 지도자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두각을 나타냈다. 관망하는 많은 전문가들과 논평가들은 미국 공산주의 초기를 어리석음과 오류, 사기, 타락으로 가득찬 시기로 묘사하려 한다. 때로는 환멸을 느끼고 변절한 자들도 그렇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되고,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평가다. 초기 공산당 내 분파투쟁은 단지 개개인이 악의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다. 만약 어느 정도 사실을 파악하고 주의 깊게 사태의 흐름을 연구한다면, 분파투쟁의 일정한 법칙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정치조직에서, 특히 신생 조직에서 그 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분파주의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짐짓 아는 체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말하지 않지만, 분파투쟁이 공산당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 시작된 이래, 모든 정치조직은 분파투쟁을 겪어왔다. 그런데도 초기 공산주의자들의 분파 문제가 유독 주목을 끌어왔다. 그것에는 속임수가 있다. 마치 다른 조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분파문제 중 일부 부정적 측면만을 끄집어내 얘기한다. 유진 라이온스와 맥스 이스트먼 같은 떠벌이들, 노동자계급의 실제 투쟁에 제대로 결합한 적이 없는 경솔한 사람들의 특기가 바로 역사 왜곡이다. 최근에는 벤자민 기틀로우처럼 과거를 반성하는 배신자들이 그쪽으로 합류했다. 아주 철저하게 좌절하고 환멸을 느낀 기틀로우는 젊었을 때 맞서 싸웠던 [부르주아]민주주의 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자기 영혼을 파괴한 주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애처로울 뿐이다. 그들은 분파투쟁을 정말 기형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전혀 칭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발견할 때면, 그들은 특히 열광한다. 공화당이나 태머니홀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우리가 사회당에서 봤던 부정부패와 역겨운 위선으로 점철된 파벌투쟁에 대해서는 눈감고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오직 공산당 초기 기록에서 흠을 발견할 때만 신성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비난을 퍼붓는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찬사를 바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의 고착된 정치조직보다는, 갓 출발해 소아병을 앓고 있더라도 공산당한테 기대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여기에는 진실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수단은 목적에 복무해야 한다. 혁명적 노동자계급 운동에서 진실을 속이고 명예롭게 처신하지 않는 것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목표와 충돌한다. 그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눈에 도드라진다. 체계적인 거짓말, 속임수, 도적질, 표리부동 등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정치조직의 특성들은 그 조직들과 그런 환경에서는 태생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운동 초기 10년의 특징이었던 분파투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서로 손잡았던 깡패들이 전리품을 놓고 싸우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여기에는 전리품이 없었다. 공산주의자들의 대다수는 세계 노동자계급 해방운동을 조직하겠다는 진지한 목적과 동기를 갖고, 공산주의를 개척했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깃발을 들고 1919년 시카고 대회에서 5,000~6,000 명에 이르는 대규모 운동을 조직한 사람들은 정말 그랬다. 엄청난 탄압이 시작된 뒤, 체포와 추방, 비합법 활동의 고난, 재정적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당에 남았던 사람들은 특히 더 그랬다. 그 모든 칭얼대는 사람들(그런 희생과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기에 옆으로 비껴나 있던 사람들)이 공산주의 선구자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분자로 묘사하려 한다. 그들은 그림 전체를 간단히 뒤집어버린다. 공산주의 운동 초기에 당에 매력을 느낀 최상의 분자들은 비합법 활동 시기의 탄압과 고난을 거치며 더 명확하게 걸러졌다. 분파투쟁은 몇몇 개인의 나쁜 의도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물론 몇몇 악한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과상자에서도 썩은 사과 한두 개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오랜 분파투쟁에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나는 첫 강연에서 당의 구성에 내포된 엄청난 모순을 설명했다. 한편에는 아직 동화되지 못한 나라에서 운동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대부분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운동을 통제해야 한다고 맹신했다.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른 한편에는 숫자가 더 적은 미국출신 그룹이 있었다. 이 미국 출신 그룹은 외국 출신들만큼 공산주의 사상을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그것은 사실이다), 운동이 미국 지향성과 현지 출신 지도부를 가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바로 이 모순이 분파투쟁을 추동했다. 다른 요인도 있었다. 경험 많고, 권위 있는 지도자들이 없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뒤, 운동은 거의 하룻밤 새에 급속히 커졌다. 나이 들고 권위 있는 사회당 지도부 전부는 볼셰비즘을 거부했고, 안전한 개량주의의 길을 꼭 붙들었다. 힐큇과 버거를 포함해 사회당의 모든 주요 인사들은 러시아 혁명과 청년 혁명가들에게 등을 돌렸다. 심지어는 그 열망에 공감했던 뎁스마저도 결정적 순간에는 힐큇과 버거의 당에 남았다. 새 운동은 새 지도자들을 찾아야 했다. 전면에 나선 사람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경험도 많지 않았고, 개인적 권위도 갖지 못했다. 당이 더 자질 있는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는 일련의 오랜 분파투쟁을 벌여야 했다. 대회를 거치면서 집행부가 빠르게 바뀌었다. 이 격렬한 분파투쟁을 견디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은 거칠게 떠밀려 나가떨어졌다. 지도력이 있는 듯해서 첫 해에 선출됐던 많은 사람들이 다음 해에는 완전히 밀려났고,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로 대체됐다. 이 모든 과정은 투쟁 속에서 지도자를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지도자를 선발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다른 방법이란 없다. 당으로부터 확고하게 지지받고, 연속성을 유지할 권위를 갖춘 굳건한 지도부를 내부 투쟁 없이 건설한 사례는 없다. 언젠가 엥겔스는 내부 투쟁을 모든 정당 발전의 법칙이라고 썼다. 그것은 확실히 초기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법칙이었다. 공산당만이 아니라, 그 정통 계승자인 트로츠키주의 운동도 초기에 그랬다. 경험, 투쟁, 내부갈등을 통해 폭넓은 권위를 갖고, 서로 협력해서 일할 줄 알며, 정치적 신념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지도부를 구성할 정도로 운동이 성장하면, 분파투쟁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분파투쟁은 더 드물어지고, 덜 파괴적이게 된다. 분파투쟁은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더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갖게 되고, 멤버들에게 더 유익하게 된다. 그런 지도부를 세우는 것은 분파투쟁을 줄이고, 때로는 중단시키는 강력한 힘이 된다. 우리는 결국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서 꽤 안정적인 지도부를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지도부는 당 구성의 모순을 다시 반영해 특별한 구조를 띠었다. 이렇게 4~5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다가,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는 누구인지가 모두에게 아주 분명해졌다. 그들은 1919~20년에 지도자였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초기 지도자 중 극소수만 이 투쟁에서 살아남았다.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서 결국 전면에 서게 된 지도부는 하나의 단일그룹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이것이 그 역사에서 아주 흥미 있는 면이다). 당 자체가 동질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 전체에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단일 지도부 대신, 당 내 모순을 반영해 여러 분파의 지도자들이 당의 중요 지도자들이 됐다. 1923년에 주로 농민노동자운동 내 모험주의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분파투쟁이 시작됐다. 그 다음에 이 분파투쟁은 미국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 노조 활동 방법 등 실제 활동의 모든 문제들로 확산됐다. 장기간에 걸친 이 투쟁은 당의 사회적 구성에 존재하는 모순, 그룹들의 서로 다른 기원 및 배경을 분명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루덴버그, 러브스톤, 페퍼 등 당시 다수파에 맞서 포스터와 내가 그 투쟁을 조직했다. 우리 그룹은 노조에 기반을 둔 노동자계급 분파라는 점이 곧 명백해졌다. 노조 활동가들, 경험 많은 미국 노동자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더 미국화한 외국인의 대부분(사실상 전부)이 우리를 지지했다. 페퍼-루덴버그-러브스톤 그룹은 지식인 대부분과 덜 동화된 외국인 출신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2급 지도자들을 포함해 그 분파의 전형적 지도자들은 계급투쟁 경험이 없는 대학 청년과 젊은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영리했다. 대체로 그들은 다른 분파 지도자들보다 책에 대한 지식이 분명히 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장점을 어떻게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포함해 한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당의 통제권을 둘러싼 이 투쟁은 격렬했다. 어느 쪽도 제어장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투쟁은 당시에 누가 다수인가와 관계없이 해마다 계속됐다. 때로는 중요해보이지 않은 이슈들에 초점을 맞춰 즉각 분파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당의 전국본부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그런 이슈였다. 우리 분파는 시카고에 두자고 했다. 다른 분파는 뉴욕에 두자고 했다. 우리는 그 문제로 싸웠다. 하지만 쓸데없는 참견자들이 묘사하듯이, 우리가 어리석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국본부를 시카고로 옮기면, 당이 더 많은 미국 지향성을 가질 수 있고, 광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며, 미국 노동자운동의 중심부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당을 노동자화하고, 미국화하기를 원했다. 뉴욕에 본부를 두자는 그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 뉴욕은 당 안에서 소부르주아 요소가 강했다. 그곳에서는 지식인들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그곳이 더 편했다. 그래서 당 본부의 위치를 둘러싼 투쟁은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어가 보면 실제로 꽤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미래의 정직하고 객관적인 역사가들은 아마도 이렇게 오랫동안 벌어진 분파투쟁을 전반적으로 당 내 소부르주아 경향과 노동자계급 경향 사이의 투쟁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그리고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노동자계급 경향이 그 의미가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투쟁을 발전시킬 충분히 명료한 강령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시에 우리 모두가 실제로는 신참내기들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볼셰비즘 사상을 겨우 알기 시작했을 뿐이다(아주 잘 알지는 못했다). 우리는 정치적 경험이 부족했다. 우리를 가르칠 지도자가 없었다. 우리는 맨땅에 헤딩하면서 투쟁을 통해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 비틀거린 노동자계급 경향은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그리고 투쟁의 열기 속에서 여러 모순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 견해로는, 이 분파 운동의 정수는 역사적으로 올바르고 진보적이었다. 이 투쟁이 펼쳐지자, (포스터와 캐넌을 한편으로 하고, 루덴버그-러브스톤-페퍼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두 개의 주요 분파가 더 많은 분할을 낳았다. 정말로, 포스터-캐넌 분파 안에도 똑같이 계열이 존재했기 때문에, 분할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했다. 나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그룹은 공산주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당원이었고, 포스터 분파보다 더 일찍 공산주의 원리를 채택했던 사람들이었다. 포스터파는 경험상 더 노동조합주의적이었고, 구상이 더 제한적이었으며, 이론적‧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덜 가졌다. 끝없이 계속되는 분파투쟁 과정에서, 이 암묵적 분할은 공식적 분할로 이어졌다. 그래서 당은 세 개 분파로 나눠졌다. 포스터 분파, 러브스톤 분파(루덴버그는 1927년에 죽었다) 그리고 캐넌 분파. 이런 분할은 1928년에 그들이 나를 당에서 내쫓을 때까지 지속됐다. 이 모든 분파는 자신들에게 완전히 명료하지 않은 사상을 위해 끝없이 싸웠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일정한 경향이 있었고, 원하는 바를 대략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아주 정확하게 강령을 정식화할 정치경험도, 이론교육이나 지식도 없었다. 여러분은 몇 년 전에 우리가 사회주의노동자당 안에서 소부르주아 반대파와 벌인 큰 투쟁을 기억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 투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연구해서 알고 있다면, 옛 공산당 안에서 벌어진 소부르주아 분파와 노동자계급 분파 사이의 더 원시적인 투쟁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더 많이 경험했고, 몇몇 책을 읽었으며, 이론과 정치지식을 더 많이 얻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쟁점들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으며, 버넘과 샥트먼 등에 맞선 투쟁이 과거에 그랬듯이 무원칙한 다툼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언급한 이 지도자들, 루덴버그, 러브스톤, 캐넌, 포스터 이 네 사람은 항상 당의 정치위원회 멤버들이었다. 이 4인이 항상 인정받고 권위를 지닌 당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분파 지도자였고 그 때문에 그들은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각 분파는 꽤 강하고, 비중도 서로 비슷했다. 그래서 어떤 분파도 분쇄하거나 제거할 수 없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 아주 많은 당의 유능한 활동가들이 각 분파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러브스톤파가 코민테른의 지원과 강요로 당의 다수파가 됐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노조 활동과 대중활동을 다른 분파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당 조직가, 저술가, 활동가들이 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고, 대체될 수 없었다. 포스터 분파는 특히 노조 분야에서 훨씬 더 강했다. 그들은 우리를 제거할 수 없었다. 우리를 제거하면 당이 혼란에 빠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은 사실상 세 영역으로 나뉘게 됐다. 각 분파는 거의 무제한의 권위를 갖고, 최소한의 통제를 받으면서 특정 분야들에서 작업할 자유를 확보했다. 포스터 분파는 노조활동의 전 영역을 장악했다. 우리는 국제노동자방어위원회를 조직해서 우리가 거의 원하는 대로 운영했다. 그때는 러브스톤파가 근소한 차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러브스톤파는 당 기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를 배제해도 될 정도로 통제권이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힘의 특수한 균형이 수년 동안 계속됐다. 당연히 볼셰비즘 의미에서 실제로 중앙집중화된 당은 아니었다. 그것은 세 분파의 연합이었다. 정확히 보자면, 그것이 바로 당의 실제 모습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 어떤 분파도 다른 분파들을 결정적으로 패배시킬 수 없었다. 어떤 분파도 당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어떤 분파도 당에서 실질적 다수를 장악하기 위해 자기 강령을 정식화할 정도로 유능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착상태에 빠졌고, 장기간의 힘 빠지는 분파투쟁을 끝없이, 어떤 전망도 없이 벌였다. 당시는 맥 빠지게 하는 시절이었다. 정상적인 혁명가들에게 단지 몇 주, 몇 달이 아니라 몇 해를 분파투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극도로 짜증나는 것이었다. 분파투쟁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모든 분파에는 분파투쟁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에는 깨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았다. 어느 정도 건설적인 활동(시위, 파업 피켓라인[파업 사수대], 신문 배포 범위를 넓히는 것, 계급투쟁을 하다 감옥에 간 구속자를 돕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단조로운 일상활동이라 여기고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분파 간부회의를 소집하기만 하면, 그들은 항상 거기에 참가했고,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모든 운동에는 어느 정도 비정상적인 형태가 있다. 우리한테는 그런 게 많았다. ‘내가 아는 분파투쟁 전문가’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인물에 대해 강의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운동을 지도할 수 없다. 운동이 마침내 숨을 돌리고, 자기 길을 환하게 틔운 뒤에는, 분파투쟁 전문가들이 지도부에서 사라졌다. 우리 옛 분파들의 지도자들은 천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주 거친 투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싸웠다. 하지만 그들이 이기적인 악당이었는가? 유진 라이온스, 맥스 이스트먼 같은 떠벌이들, 운동에서 비켜서 있다가 추상적 도덕의 잣대로 운동을 평가하는 잘난 체하는 자들은 그렇게 묘사한다. 운동의 지도자들은 이기적 악당이 결코 아니었다. 뒤늦게 그 명제를 지지하고 나선 기틀로우조차도 처음부터 악당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그들 중 일부가 처음부터 싹이 안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분파 지도자의 대다수는 이상주의적 목표와 이유로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나중에 타락한 스탈린주의자, 광신적 애국주의자가 된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들의 타락은 오랫동안에 걸친 진화, 압력, 실망, 기만, 환상 등의 결과였다. 1919년의 어려운 시절에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 시기에 러시아혁명 주위로 결집한 사람들이 1919년에 당을 만들었고, 비합법 시절의 박해와 탄압을 견뎌냈다. 그들은 태머니홀이나 공화당 그리고 여러분이 이름을 댈 수 있는 다른 어떤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정치운동의 정치가들보다도 도덕적 측면에서 훨씬 더 뛰어났다.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더 경험 많고 권위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더라면 말이다. 우리가 해결하기엔 문제가 너무 컸다. 중앙에서 쫓겨난 지방 그룹들이 말다툼에 빠지고, 그것이 분파투쟁과 파벌 형성으로 발전하며, 경험 부족 때문에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일은 가장 선진적인 정치운동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난다. 만약 지혜롭고 공정하게 개입할 수 있는 현명하고, 정직하며 성숙한 전국 지도부가 있다면, 십중팔구 이런 지역적 교착상태는 결국 해결할 수 있고, 동지들은 공동활동의 토대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당시에 믿고 기대했던 코민테른과 러시아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우리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분파 지도자들이 선했다. 모두가 재능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상적인 조건에서 코민테른이 올바르게 지도하고 지원할 수 있었다면, 이 모든 분파의 지도자 대다수는 결국 함께했을 수 있으며, 단일 지도부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 분파의 지도부가 뭉쳐서 더 경험 많은 국제 지도자들의 감독과 지도 아래 함께 활동했다면, 공산주의를 위한 강력한 힘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공산당은 크게 전진했을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기 위해 코민테른에 갔다. 하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문제의 실제 원천은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코민테른은 타락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1921년과 1922년에 우리는 노조 문제, 비합법 활동과 합법 활동 문제에 대해 레닌, 트로츠키, 코민테른 전체로부터 정직하고 유능한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낡은 분파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도움을 받는 대신, 우리가 코민테른의 타락 과정에, 코민테른의 스탈린주의화 초기과정에 빨려들어갔다. 코민테른 지도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 당이나 다른 모든 당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온순한 스탈린주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 독립적인 모든 사람,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제거할 음모를 이미 꾸미고 있었다. 우리는 해마다 모스크바에 가곤 했다. ‘미국 문제’는 항상 논의 안건에 올랐다. 코민테른에는 ‘미국위원회’가 항상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위원회 전에 승부를 가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이 사람들을 이용하기가 조금 어렵겠다고 곧 확신했다. 십중팔구 그들은 모든 분파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스탈린의 도구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분파를 빠르게 만들어낼 계획을 이미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스크바에 갈 때마다 ‘우리가 올바른 입장을 갖고 있고, 우리 제안이 올바르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도움과 지지를 좀 얻겠지’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매번 실망했다. 끔찍하게 실망스러웠다. 코민테른은 우리에 맞선 소부르주아 분파를 언제나 지지했다. 항상 그들은 초기에 다수파였던 노동자계급 분파에 타격을 줬다. 우리는 처음으로 1923년 대회에서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분명히 다수를 차지했다. 당원 대다수가 노동자계급 분파의 지도부를 원한다는 것이 매우 분명했다. 포스터-캐넌 분파가 공식적으로 쪼개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러브스톤파에 맞서 대부분의 시기에 하나의 블록을 형성했다. 매번 당원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보장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 블록이 당의 제1 지도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코민테른은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이 블록을 깨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몇 가지 이유로 한 그룹(캐넌 그룹)을 깨는 데 특히 혈안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무언가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제거하려고 특별히 애를 썼다. 그들은 갑자기 1924년 코민테른 5차 대회까지 거슬러 올라가, 내가 했던 약간의 작은 실수를 결의안을 통해 비난했다(그때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당 지도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실수나 더 나쁜 실수를 했다. 하지만 코민테른은 내 위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내가 직무를 유기했다고 몰아갔다. 그리고 해가 흘러 반트로츠키 캠페인이 증가했다. 모든 당에서 지도자의 자격은 이 캠페인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었다. 즉 모스크바가 지도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트로츠키주의와 트로츠키를 누가 가장 소리 높여 비난했는가’였다. 우리는 러시아 당내 투쟁 사안에 대해 실질적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우리는 공식 문서들, 모든 종류의 비난과 비방에 압도당했다. 문제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평당원들의 신뢰를 악용했다. 마찬가지로, 코민테른에 대한 당 지도자들의 신뢰도 거듭 악용했다. 매번 우리는 모스크바에 갔지만, 해결책을 갖고 돌아오지는 못했다. 표면상 당 내 ‘평화’를 위해 준비된 결의안을 갖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곧 분파투쟁을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분파투쟁의 해결 같은 것은 없었다. 어떤 종류의 통일 선언에 사인하는 순간, 분파전쟁이 새롭게 불을 뿜었다. 냉소주의가 기층 당원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평화 합의’ 사인이 ‘이제 분파투쟁이 정말로 뜨거워질 것’이라는 점을 뜻한다는 것은 금언이 됐다. 적대적 분위기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고, 모든 행보를 주의해야 하는 슬픈 상태가 됐다. 무언가에 동의할 때마다 의구심을 갖는 것이 필요해졌다. 아주 나쁜 도덕적 분위기가 안개처럼 당을 감싸기 시작했다. 많은 천박한 사람들은 코민테른의 타락이 우리 당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미국 운동의 비현실주의,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함 등의 증거로 인용한다. 그렇게 칭얼대는 사람들은 국제혁명조직이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모스크바의 영향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의 젊은 당이 러시아 지도부를 신뢰한 것은 러시아인들이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완전히 정당했다. 당연히 러시아 당의 영향력과 권위는 국제 운동에서 다른 당보다 더 크다. 더 현명하고, 더 경험 많은 쪽이 초보자를 이끈다. 어떤 국제조직에서도 그럴 것이며, 그래야 한다. 인터내셔널에서 모든 당이 균등 발전하는 일은 없다. 우리는 이 점을 트로츠키 생전에 제4인터내셔널에서 보았다.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의 모든 경험과 스탈린에 맞선 투쟁을 체화하고 있었다. 트로츠키의 권위와 명망은 제4인터내셔널에서 절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그의 말은 관료적 명령의 힘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도덕적 힘을 갖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곤란과 모든 분쟁에서 자주 드러났듯이, 그는 인내심, 지혜, 지식을 생산적이고 정직하게 쏟아냈고, 그의 개입을 요청하는 모든 당과 그룹을 항상 도왔다. 우리의 공산당 활동 경험은 우리의 모든 일상활동에서, 그리고 제4인터내셔널 안에서 경험이 덜한 그룹들과 교통하고, 관계를 맺는 모든 활동에서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우리 당이 더 폭넓은 정치적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트로츠키 동지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당보다 우리 당이 국제 운동에서 아마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만약 가까운 장래에 제4인터내셔널의 어느 지부가 혁명적 상황을 맞고, 혁명을 성공시킬 역량이 충분히 있다는 지도력을 보여준다면, 그 당이 자연스럽게 뚜렷한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국제 정치운동 불균등 발전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코민테른 전반에 걸쳐 우리의 불행과 비극은 맑스주의 사상을 실제로 체화하고, 혁명을 실제로 완수한 러시아혁명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러시아혁명에 맞선 반동과 러시아공산당의 관료적 타락 과정에서 떠밀려났다는 데 있다. 다른 나라 당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공산당은 위대한 투쟁의 복잡한 사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일국적 문제들만 생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싸웠다. 그것이 이 나라의 분파투쟁을 악화시켰다. 그 때문에 분파투쟁은 결국 무원칙한 말다툼과 주도권 다툼으로 타락해갔다. 오직 제때에 이해해 받아들인 국제 강령만이 미국의 젊은 공산당을 타락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1928년에야 그런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원래의 혁명적 목표를 위해 당의 다수를 구원하기에는 너무 늦은 때였다. 1923년부터 1928년까지 당에 존재했던 세 분파는 각각 자체 진화과정을 거쳤다. 미국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창립 간부는 전적으로 캐넌 분파 출신들이었다. 좌익반대파의 모든 지도자, 사실상 거의 모든 초기멤버는 우리 분파에서 나왔다. 러브스톤파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1929년 스탈린의 악랄한 법령에 따라 당에서 쫓겨났다. 러브스톤파는 1929년부터 1939년까지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민주적’ 전쟁의 지지자가 되어 부르주아 편으로 넘어가면서 결국 해체됐다. 포스터 분파와 다른 일부 분파들의 2급 지도자들은 스탈린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모든 독립성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잡탕처럼 한데 뭉쳤다. 그들은 2열과 3열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실제 투사들이 내팽개쳐질 때까지 그늘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뒤 심부름꾼 소년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할 때가 왔다. 그들은 미국 공산당의 공식 지도자들, 급하게 만들어진 지도자들이 됐다. 그 다음에 그들은 또 자연스런 진화 과정을 거쳤다. 지금 그들은 사회애국주의 운동의 전위가 됐다. 우리의 현대 트로츠키주의 운동이 다른 곳이 아니라 공산당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기억해야 한다. 초기 공산당이 여러 부정적 측면을 갖고 있었고(나는 그에 대해 남김없이 다 얘기했다), 약했고, 서툴렀으며, 소아병을 앓았고,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그리고 분파투쟁과 그 궁극적 타락에 대해 뭐라고 회상하든, 이 나라 공산당의 타락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든 다음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혁명운동을 재건할 세력은 공산당에서 나왔다. 미국 공산당에서 제4인터내셔널 미국지부의 중핵이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 공산주의 운동의 초기는 우리 것이라는 점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끈으로 초기 공산주의 운동과 묶여 있다. 초기 공산주의 운동, 탄압에 맞선 영웅적 투쟁, 희생, 오류, 분파투쟁, 퇴보에서부터 트로츠키주의 깃발 아래 운동을 결국 부활시킨 것 사이에는 부단한 연속성이 있다. 정의와 진실을 따라 우리는 초기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전통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기초해 운동을 건설했다. 지난 번 강연에서는 1927년까지의 미국 공산당 상황을 다뤘다. 맑스주의와 스탈린주의 사이의 근본적 투쟁이 이미 4년 동안 러시아 공산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해 코민테른의 다른 지부들에서도 같은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정말 알지 못했다. 러시아 당에서 벌어진 대투쟁의 쟁점은 처음에는 아주 복잡한 러시아 문제들에 국한돼 있었다. 그런 쟁점 중 많은 것이 러시아 내부 문제들에 대해 거의 모르는 우리 미국인들에게는 새롭고 낯설었다. 그런 쟁점들은 심오한 이론적 성격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웠다(어쨌든 당시까지 우리는 정말로 진지한 이론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정보를 충분히 듣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 컸다. 우리는 러시아 반대파의 문서들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에게 감춰졌다. 우리는 진실을 듣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한테는 체계적으로 거짓말과 왜곡을 일삼았고, 일방적으로 문서를 전달했다. 내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왜 트로츠키주의 깃발을 처음부터 들지 않았는가? 운동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문제가 무엇인지 지금 그렇게 분명하다면, 왜 초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런 큰 논쟁을 당 활동 방식에서 따로 떼어내 바라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들, 단지 학생이나 논평가 또는 뒤로 빠져 있는 관찰자는 주의하거나 자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가 만약 의심하거나 불확실한 점을 느낀다면, 자기 의견을 완전히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혁명당원은 그렇지 않다. 혁명가는 자기 시간, 에너지, 돈, 심지어는 자기 생명까지도 바칠 강령에 기초해 노동자들에게 당에 참여하라고 호소해야 할 책임을 떠맡는다. 그래서 당에 대해 훨씬 더 진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새로운 강령을 공들여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양심상 기존 강령의 폐기를 호소할 수 없다. 불만과 의심은 강령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초로 사람들을 조직할 수는 없다. 1939년, 러시아 문제로 우리가 논쟁을 시작했을 때 트로츠키가 샥트먼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했던 것 중 하나는 다음이었다. 우리 옛 강령의 올바름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샥트먼은 새 강령을 분명하게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자기 의심을 무책임하게 표현해서 당이 시련을 겪게 했다. 당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트로츠키는 말했다. 의심으로 강령을 만들 수는 없다. 진지하고 책임 있는 혁명가들은 이러저러한 문제에 불만을 갖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당에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다른 강령, 당에 대한 다른 대안을 준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그 초기에 내가 공산당 안에서 견지했던 태도다. 나는 크게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러시아 당 내 투쟁에 정열적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부 투쟁이 점점 더 격해지고, 트로츠키, 지노비에프, 라덱, 라코프스키처럼 혁명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대표한 러시아 좌익반대파에 대한 탄압도 증가하자, 내 마음 속에서 의심과 불만이 쌓여갔다. 공산당 안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렇게 의심하고 불만스러워 하는 것은 나와 우리 분파에게 불리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국 차원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있는 잘못이었다. 제4인터내셔널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현대에 한 국가에 기초해서만 혁명정당을 건설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강령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국제운동의 일국 지부를 세워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말하자면, 이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브란틀러파, 런던 사무국 사람들, 삐베르 등 사이에서 벌어진 큰 논쟁 중 하나였다. 트로츠키주의자를 제외하고 다른 세력은 강력한 일국 정당들을 먼저 세우지 않고서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견해를 제출했다. 그들에 따르면, 여러 나라에서 아주 큰 대중정당을 만든 다음에만, 그 당들을 국제 조직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1929년 러시아에서 추방되고, 자유롭게 국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트로츠키는 국제강령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각 나라에 아무리 소수가 있을지라도, 국제강령에 기초해 사람들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각국 지부들을 점차 세워나가야 한다. 역사는 이 논쟁에 판결을 내렸다. 일국 관점에서 시작했고, 국제 조직 문제를 제쳐두고 싶어했던 당들은 모두 난파당했다. 이런 국제 시대에 협소한 일국 강령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일국 정당들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오직 제4인터내셔널만 국제강령에서 출발함으로써 각 나라에서 살아남았다. 초기 공산당에서 우리는 이 원칙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일국 투쟁에 몰두해 있었다. 우리는 코민테른이 우리나라 문제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코민테른의 다른 나라 문제들이나 코민테른 전체 문제들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런 치명적 오류, 이런 일국적 편협함 때문에 우리는 분파투쟁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사태가 우리에게 아주 안 좋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분파도 분리하거나 당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코민테른에 충성스러웠다. 열광적으로 충성스러웠다. 그리고 코민테른을 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맥빠지는 국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희망이 없어보였다. 분파들을 통합시킬 방법을 찾거나 한 분파가 우세해지거나 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더 영리한 사람들 중 일부가, 아니 오히려 더 교활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리고 모스크바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코민테른으로부터 호의를 얻어서 자기 분파의 무게감을 높이는 방법은 정열적이고 적극적으로 반(反)트로츠키주의 투쟁에 나서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스크바가 세계 모든 당에 ‘트로츠키주의’에 맞선 캠페인을 벌이라고 명령했다. 1927년 가을에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를 당에서 쫓아낸 뒤, 즉시 입장을 취하라고 모든 당에 요구했다. 만약 어떤 개인이나 그룹이든 ‘올바른’ 입장, 즉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 제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모스크바가 보복할 것이라는 위협도 시사했다. ‘교육’ 운동도 지속했다. 러브스톤파가 반트로츠키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 시기에 코민테른의 지지를 얻었고 그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교육’ 운동을 조직했다. 회원 모임, 지부 모임, 분파 모임이 당 곳곳에서 열렸다. 이런 모임에는 적군 조직자[트로츠키]와 코민테른 의장[지노비에프]을 제명할 필요성에 대해 회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중앙위 대표들이 파견됐다. 러브스톤파처럼 빠르지도, 교활하지도 못했지만, 같은 의지를 갖고 있었던 포스터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누가 가장 나은 반트로츠키주의자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러브스톤파와 경쟁을 벌였다. 그들은 이 주제에 대해 연설하면서 살았다. 그것을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이런 캠페인 중 어떤 것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상황을 예고했다. 나는 판에 박은 결의안에 찬성 투표했다. 이 점을 나는 후회한다. 하지만 나는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트로츠키주의자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러시아당과 코민테른 다수파의 방침에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만 쟁점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트로츠키주의 캠페인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 러브스톤의 주요 부관이었던 버트램 울프는 가장 열렬한 트로츠키주의 박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걸핏하면 러시아 농업 문제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얼마나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두 시간이나 설명하곤 했다. 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러브스톤파와 포스터파가 이렇게 연설하고, 이 캠페인에 참가한 진짜 목적은 모스크바 권력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물어볼지 모르겠다. “왜 트로츠키에 대해 우호적으로 연설하지 않았는가?” 나는 강령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의심하고 있었고,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가 당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만약 그가 단지 논평가나 관찰자라면, 의심나는 것을 얘기해버리고 끝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지한 정당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면, 아무 말 안 해도 된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은 침묵하는 것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월에 총회를 열었다. 그것이 유명한 1928년 2월 총회다. 이 총회는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 그리고 다른 모든 러시아 반대파들이 제명되고 몇 달 뒤에 열린 총회였다. 스탈린 관료제를 지지하기 위해 세계 당들을 동원하려는 대대적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총회에서 당 내 분파 쟁점들, 정세 평가, 노조 문제, 조직 문제로 싸우고 논쟁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로 격렬하게 싸웠다. 그것이 우리의 진짜 관심사였다. 그 다음에 우리는 마지막 안건인 러시아 문제를 다뤘다. 다수파인 러브스톤파의 보고자인 버트램 울프가 약 두 시간에 걸쳐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 문제가 공개토론에 부쳐졌다. 러브스톤파와 포스터파의 각 멤버들이 한 명씩 차례로 나가 보고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제명에 동의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침묵했기 때문에 당연히 캐넌파의 다른 멤버들도 말하기가 좀 곤란했다. 그들은 그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일종의 압력을 행사했다. 나는 그날 내가 홀 뒤쪽에서 어떻게 앉아있었는지 기억난다. 기분 나쁘고, 씁쓸하며 혼란스러웠다. 뭔가 감춰진 게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빌 던은 당시에 정치위원회 멤버였고, 가장 가까운 내 동료였는데, 다른 두 명과 함께 나한테 왔다. 그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내 입장에서 볼 때 ‘현명한 정책’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볼 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미래를 예측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문제에 대해 내가 느낀 기분이었고, 완고한 개인적 느낌이었을 뿐이다. 우리한테는 제대로 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정말 몰랐다. 바로 그때(1927년), 러시아 당 내 논쟁이 중국 혁명과 영국·러시아 위원회[영러 위원회]라는 국제 문제들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당의 거의 모든 멤버가 중국 혁명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때 이후 아주 많은 자료들이 출판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 혁명의 교훈에 대해 젊은 동지들에게 교육해왔다. 하지만 1927년에 우리 미국인들은 중국 혁명에 대해 전혀 몰랐다. 중국은 너무 멀었다. 우리는 러시아 반대파의 테제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식민지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중국 혁명에 관한 심오한 이론적 문제들과 그에 따른 논쟁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솔직히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할 수가 없었다. 영러위원회 문제는 나한테 좀더 명쾌해 보였다. 그것은 영러위원회 건설을 둘러싸고 러시아 반대파와 스탈린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큰 투쟁 문제였다. 그 위원회는 영국과 러시아 노조 활동가들의 위원회로서 영국에서 독립적인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대체했다. 이 정책은 1926년 영국 총파업이라는 결정적 순간에 영국 공산당의 독자적 활동을 압살했다. 아주 우연히, 그해 여름에, 나는 그 문제에 대한 러시아 반대파의 문건 중 하나를 봤다. 그 글은 나한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나는 적어도 영러위원회 문제에서는 반대파가 옳다고 느꼈다. 어쨌든 나는 그들이 스탈린주의자들이 묘사하듯 반혁명분자들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1928년 2월 총회 이후 나는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해왔던 전국순회에 나섰다. 나는 해마다 또는 2년마다 진짜 미국의 숨결을 느끼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기 위해 해안가를 따라 순회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여러분은 뉴욕에 있는 당 지도자 일부로부터 여러 비현실적인 견해와 오류, 많은 편협한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맨해튼 섬에서 한평생을 살았고, 이 거대한 다양성의 나라를 정말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국제노동자방어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1928년에 넉 달 동안 전국을 순회했다.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분파투쟁의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대중운동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나는 러시아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할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센트 던은 나한테 다음 사실을 기억하게 해줬다. 내가 태평양연안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니애폴리스에 들렀을 때, 그와 스코글런드 동지가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의 제명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러시아혁명의 지도자들을 비난한다면 나는 누구겠는가?”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내가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의 제명에 아주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몇 달 뒤 공개투쟁이 벌어졌을 때 그 얘기를 나한테 들려주었다. 1928년 늦봄과 이른 여름에, 코민테른 6차 대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우리는 그런 경우에는 항상 그랬듯이 모든 분파를 대표하는 대규모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떠나보냈다.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나는 거기에 갔을 때 국제운동의 문제들에 몰두하지 못했다. 한 지부의 대표자들로서 우리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와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말이다. 대신 우리 모두는 주로 미국 당 안의 작은 투쟁에 어느 정도 매몰돼 있었다. 여기에서 편안하게 상대방을 요리하기 위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보려고 세계대회에 갔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사실상 모든 사람의 태도였다. 세계대회를 향해 떠났을 때, 나는 러시아문제, 좌익반대파와의 논쟁에 대해 해명을 명쾌하게 들을 수 있다는 어떤 희망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때는 반대파가 완전히 싹쓸이당한 것처럼 보였다. 지도자들은 쫓겨났다. 트로츠키는 알마아타로 추방당했다. 전 세계에서 지지자들이 당에서 내쫓겼다. 문제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그 문제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 문제로 나는 너무 괴로워서, 모스크바에서 분파투쟁을 할 때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분파투쟁을 계속했다. 우리는 즉시 간부회의에 우리 대표들을 배치하고, 서로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곳의 위원회 앞에서 서로 고발하고, 끝없이 논쟁했다. 나는 그런 일에 어느 정도 시무룩했다. 바로 그 즈음에 그들이 위원회들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각 대표단의 지도자들이 대회의 여러 위원회들에 참가하도록 배정됐다. 노조위원회, 정치위원회, 조직위원회 등에 배정됐다. 거기에 강령위원회도 있었다. 6차 대회는 최초로 강령을, 그것도 완결된 코민테른 강령을 채택하기로 돼 있었다. 코민테른은 1919년에 만들어졌다. 1928년에 이르기까지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령을 완성하지 못했다. 코민테른 초기에 강령 문제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맑스주의자들이 강령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강령을 정성들여 가다듬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1919년에 몇 가지 기본 결의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1920년, 21년, 22년에 또 다른 결의안들을 채택했다. 4차 대회 때 그들은 강령토론을 시작했다. 5차 대회는 강령 작업을 더 진척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1928년에 이르게 됐고, 우리는 부하린과 스탈린이 썼다는 강령 초안을 받게 됐다. 그것이 미국 대표단의 일반적 정서였다. 나는 강령위원회에 떠밀려졌다. 그것은 일종의 실속 없는 명예였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강령위원회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강령위원회에 배정한 것은 그들의 큰 잘못이었다. 포스터, 러브스톤, 다른 분파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탈린도 골치가 꽤 아팠을 것이다. 왜냐면 알마아타로 추방됐고, 러시아당과 코민테른에서 제명된 트로츠키가 대회에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볼 수 있듯이, 트로츠키는 당이 제명했다고 해서 곧바로 일어나 제 발로 걸어나가지 않았다. 그는 제명당한 뒤 곧 돌아왔다. 코민테른 6차 대회 소집이 그에게는 첫 번째 기회였다. 그는 이 대회에 자기 사건을 설명하는 문서를 제출했을 뿐만 아니라 부하린과 스탈린의 강령초안을 비판하는 글을 제출해 이론적으로 엄청나게 기여했다. 트로츠키가 쓴 문서의 제목은 ‘코민테른 강령 초안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었다. 원래 트로츠키의 이 문서는 관료적으로 은폐될 뻔했으나, 모크스바 조직이 조금 실수하는 바람에, 코민테른 번역실에 전달됐다. 그 번역실에는 열두 명 이상의 번역가와 속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직 번역과 속기 일만 했다. 그들은 트로츠키 문서를 집어들고 번역한 다음, 대표단장들과 강령위원회 대의원들에게 배포했다. 그래서 놀랍게도 그 영어번역본이 내 무릎에 놓였다! 캐나다 당 대표자인 모리스 스펙터도 나와 약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령위원회에 배정됐고, 트로츠키 강령 번역본을 받았다. 우리는 간부회의와 대회 회의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 문서를 읽고 연구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모리스 스펙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의심을 해결했다. 맑스주의 진실이 트로츠키 편에 있다는 것이 대낮같이 분명했다. 나와 스펙터는 고국에 돌아가 트로츠키주의 깃발 아래 투쟁을 벌이자고 거기에서 약속했다. 우리는 이미 철저히 확신하고 있었지만, 모스크바 대회에서 투쟁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 문서를 읽은 날부터 나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스스로를 트로츠키의 제자로 여겼다.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망하는 몇몇 순수주의자들은 이렇게 다시 요구할지도 모른다. “왜 6차 대회 때 연단에 올라가 트로츠키를 옹호한다고 발언하지 않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위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가의 문제다. 코민테른은 이미 꽤 많이 스탈린주의화 됐다. 대회는 통제되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완전한 입장을 대회에서 밝혔더라면, 아마 고국에서 극심하게 비난받고 고립될 때까지 모스크바 감옥에서 갇혀 지냈을 것이다. 나중에 러브스톤은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이 모스크바의 덫에 걸렸다. 트로츠키 문서를 본 나의 의무, 나의 정치적 임무는 우리 당 안에서 러시아 반대파를 지지할 토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우선 고국에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스탈린주의화한 코민테른에서 침묵을 지켰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직이 미덕이다. 하지만 부도덕한 적을 상대할 때 정직은 바보짓이다. 그때 우리가 우리 감정을 아주 철저하게 숨기지는 못했다. 나는 특히 점점 더 트로츠키주의를 ‘만지작거린다’고 여겨졌다. 기틀로우는 회개하는, 애처로운 대필 서적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나를 의심했다. 하지만 너무 거칠게 다루는 것은 주저했다. 그들은 아마도 나를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공공연한 스캔들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개투쟁으로 가면 내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그들이 가정할 만도 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왔다(내 생각으로는 그때가 9월이었다). 미국 당 내 분파투쟁에 관한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러브스톤은 모스크바 투쟁에서 이익을 약간 얻었다. 하지만 당시에 스탈린은 나중에 러브스톤파를 제거할 토대가 된 몇 가지 단서를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나는 트로츠키가 쓴 강령초안 비판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몰래 가져왔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즉시 트로츠키주의 분파를 조직하는 확고한 임무에 착수했다. 여러분은 그 일이 아주 간단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 트로츠키는 모든 코민테른 당에서, 그리고 6차 대회에서 다시 한 번 더 반혁명분자라고 비난받고 있었다. 당에서 트로츠키의 공공연한 지지자라고 알려진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당 전체가 트로츠키주의에 엄격하게 반대했다. 그때 당은 질문하고 공정하게 토론할 수 있는 민주적 조직이 더 이상 아니었다. 트로츠키와 러시아 반대파를 옹호한다고 선언하면, 반혁명 배신자라고 비난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떤 토론도 없이 곧바로 제명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충돌이 오기 전에 비밀스럽게 새로운 분파를 조직해야 했다. 크든 작든 이 분파는 제명당할 것이며, 새로운 운동을 만들기 위해 스탈린주의자들과 전 세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나는 임무가 막중하다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환상을 품었다면, 결과에 너무 실망해서 파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하게 개별 활동가들을 찾아서, 본심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로즈 카스너는 첫 번째로 나의 확고한 지지자가 됐다. 그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국제노동자방어위원회에서 나와 함께 활동했고, 정치위원회 멤버는 아니었지만 전국위원회 멤버였던 샥트먼과 에이번은 위대한 새 시도를 함께 하기로 했다. 다른 몇 사람도 결의했다. 우리는 항상 조심해서 활동했지만, 꽤 잘 해나가서 여기저기에서 약간씩 전진했다. 캐넌이 트로츠키주의자가 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공공연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당 상황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내가 언급했듯이 당은 세 분파로 쪼개져 있었다. 하지만 포스터파와 캐넌파는 블록을 형성해서 함께 활동했고, 당시에는 공동 간부회의도 열고 있었다. 이것이 포스터파를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만약 그들이 감춰진 트로츠키주의를 폭로하고 거기에 맞서 정열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스탈린의 동조와 지지를 잃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우리를 거칠게 대해 우리 지지를 잃으면, 다가오는 대회에서 다수파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그들은 망설여서 곤란에 빠졌고, 우리는 그들의 모순을 충분히 이용했다. 우리의 임무는 어려웠다. 우리한테는 트로츠키의 문서가 한 부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복사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한테는 속기사가 없었다. 타자기도 없었다. 등사 기계도 없었다. 돈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의 깊게 선택한 사람을 만나, 충분히 흥미를 느끼게 만든 다음, 집에 가서 그 문서를 읽게 하는 것이었다. 길고 고된 과정이었다. 우리는 몇 사람을 획득했고, 그들은 복음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리는 일을 도왔다. 결국 한 달쯤 뒤에, 우리 동지 중 한 명이 조금 경솔하게 행동해서 우리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포스터-캐넌 분파의 합동 간부회의에서 일찍이 문제에 맞닥뜨려야 했다. 포스터파는 심문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이러저러한 얘기를 들었으므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고, 아직 결단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공세를 취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엄포를 놓고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그 한 주 동안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몇 사람을 우리쪽으로 조직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심문을 계속해보려고 또 다른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이때 해서웨이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왔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이른바 레닌 학교에 다녔다. 사실 그것은 스탈린 학교였다. 그는 스탈린 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서 ‘트로츠키주의’를 어떻게 고발해야 하는지를 지방 제화공들보다 훨씬 더 잘 알았다. 그는, 고발하는 방법은 “이 간부회의는 트로츠키주의가 반혁명적이라고 규탄한다”는 안을 제출해, 모두가 그 안에 동의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방법에 대해 “트로츠키주의 문제는 오래 전에 결정됐으므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드는 것은 의미가 전혀 없다”고 반대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장하기 위한 형식적 전술이었다. 그것은 경찰처럼 행동하려는 스탈린 학교 졸업생을 대하기 위해 필요한 전술이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놓고 네다섯 시간 논쟁했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그들이 ‘트로츠키주의’에 단호하게 맞서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판을 잃는다면 모스크바의 지지를 잃을 것이다. 다른 한편 만약 그들이 우리와 분리한다면, 미국 공산당 안에서 다수파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몹시 다수파가 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캐넌 같은 똑똑한 친구가 결국 제정신을 차리고, 트로츠키를 방어하겠다는 무익한 투쟁에 이렇게 뒤늦게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키워왔다(오, 어떻게 키운 희망인가!).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직접 얘기하지 않고,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여지를 그들에게 약간 주었다. 결정은 다시 미뤄졌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주를 벌었다. 결국 포스터파는 사안이 너무 뜨거워지고 있다고 자기들끼리 결정했다. 캐넌, 샥트먼, 에이번이 당원들을 트로츠키주의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소문을 점점 더 많이 듣고 있었다. 포스터파는 러브스톤파가 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자신들을 공범으로 고발할까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합동 간부회의에서 우리를 허둥지둥 쫓아냈다. 그리고 정치위원회 전에 우리를 고발했다. 우리는 정치위원회와 중앙조정위원회의 합동회의 전에 재판을 받았다. 우리는 <투사> 초기 호들에서 그 재판을 다뤘다. 당연히 그것은 불법 재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연설하고, 포스터파의 증인을 반대심문할 충분한 자유를 누렸다. 그 자유는 당 내 민주주의 때문에 준 것이 아니다. 정치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러브스톤파가 포스터파와 타협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권리’를 준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우리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유를 충분히 이용했다. 재판은 날마다 계속됐다. 점점 더 많은 당 지도자들과 간부들이 참석하도록 초대됐다. 결국 청중이 100명가량 됐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증인을 반대심문하고, 포스터파 사람들의 명예를 떨어뜨리거나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정도로만 대응했다. 결국, 우리가 그 일에 지쳤을 때,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가 당 전체로 퍼졌을 때, 우리는 싸우기로 결정했다. 나는 조용하고, 다소 겁먹은 당 간부들로 이뤄진 청중들에게 모든 원칙적 문제에서 우리가 트로츠키와 러시아 반대파를 100% 지지한다는 선언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그 노선에 따라 투쟁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밝혔다. 정치위원회와 중앙조정위원회의 합동회의가 우리를 제명했다. 바로 다음날 우리는 등사판으로 인쇄된 성명서를 당 전체에 배포했다. 우리는 제명을 예상했다. 우리는 제명에 대해 이미 준비가 돼 있었고, 그래서 곧바로 맞받아쳤다. 약 1주일 뒤, 우리가 <투사> 창간호를 발행해 한 방 먹이자 그들은 크게 질겁했다. 신문 기사는 준비돼 있었고, 우리가 재판을 끌 때 인쇄업자와 인쇄 협의를 했다. 우리는 1928년 10월 27일에 제명됐다. <투사>는 그 다음 주에 11월호로 나왔다. 러시아혁명 기념일을 경축하고, 우리 강령을 소개하는 기사 등이 실렸다. 그래서 미국 트로츠키주의를 위한 공개 투쟁을 시작했다. 확실히 우리가 처음부터 아주 밝은 전망을 가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입장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첫 몇 주 동안 꾸준히 세를 불려나갔고, 처음부터 확고하게 설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이나마이트 폭탄으로 당 내 무원칙한 분파주의 더미를 폭파시켰다. 우리는 국제주의의 원칙적 강령에 기초를 둠으로써 미국 당 분파들의 모든 낡은 오류와 실수로부터 단번에 벗어났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싸우고 있는지 확신했다. 낡은 말다툼 속에서는 그렇게 크게 보였던 모든 작은 조직적 술수들을 낡은 코트 버리듯 던져버렸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진짜 볼셰비즘 운동을, 그리고 미국 공산주의의 재건투쟁을 시작했다. 숫자 측면에서 보면 미래가 아주 밝은 투쟁은 아니었다. 선언에 서명한 우리 세 사람, 에이번, 샥트먼 그리고 나는 미국에서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 새 당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려고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갈 때 약간 외로움을 느꼈다. 우리 셋 모두는 국제노동자방어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월급도 못 받고 거기에서 즉시 쫓겨났다. 우리한테는 돈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구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인쇄비를 치를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사> 창간호를 계획했다. 하지만 우리는 창간호에 대해서는 외상으로 해주겠다고 인쇄업자한테 약속받았다. 우리는 시카고 친구 몇 명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들이 돈을 좀 줘서 신문을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신문을 한 달에 두 번 발행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당에서 쫓겨난 직후, 우리는 1~2년 전에 분파투쟁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당에서 제명됐던 헝가리 동지들의 그룹을 발견했다. 우리와 별도로 그리고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암토르그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러시아 반대파들과 접촉해서 트로츠키주의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에게 백만 대군처럼 보였다. 우리는 뉴욕에 있는 작은 이탈리아 반대파 그룹도 찾아냈다. 그들은 보르디가를 따랐는데, 정말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우리와 함께 활동했다. 우리는 꽤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우리는 비난에 전투적으로 맞서고, <투사>를 통해 트로츠키의 강령 초안 비판 등 러시아 반대파의 새로운 글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칙에 입각한 명확한 강령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를 움켜쥔 분파가 곧 확고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소규모 분파였지만, 이 그룹은 아주 확신에 차고 열정적이고 단호한 분파였다. 우리는 전국에서 회원을 새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대수확을 거뒀다. 미니애폴리스는 팀스터 파업투쟁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트로츠키주의 건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시카고에서도 지지자들을 조직했다.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크게 불리했다. 당에서 제명당하기 전에 뉴욕 밖의 당원들과 별로 소통하지 못했다. 공산당의 대다수 동지들은 우리가 제명당했다는 소식을 통해 우리 입장을 처음 알았다. 당 지도부의 조잡한 전술이 우리를 크게 도왔다. 그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든 위원회와 지부에 캐넌, 샥트먼, 에이번에 대한 제명을 승인하라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질문하거나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비난하고 곧 쫓아냈다. 그것이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은 그런 동지들을 우리가 최소한 대화라도 할 수 있는 처지로 곧장 내몰았다. 우리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좋은 친구들이 있는 미니애폴리스에서 러브스톤파의 정치위원이 그들을 회의로 불러들여 우리의 제명을 승인하는 안에 즉시 투표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거부했다. “우리는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이 동지들의 말을 듣고 싶다.” 그들은 즉시 쫓겨났고, 우리와 소통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투사> 등 문서를 주었다. 결국 우리 제명을 승인하지 않아 쫓겨난 거의 모든 사람이 우리한테 동조했고, 그들 대부분이 우리와 함께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것이 단지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맑스주의 강령이다. 우리가 만약 관료주의에 대한 반감만 가지고 사람들을 조직하려 했다면, 우리는 회원을 더 많이 조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관료주의는 불충분한 기초였다. 우리는 민주주의 문제를 이용해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이게 한 다음, 모든 정치문제에서 트로츠키주의가 옳다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입장을 밝히고, 제명당한 것이 모든 당원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트로츠키는 멘셰비키였다고 수년 동안 당원들은 주입받았다. 그는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제명당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무력한 당원들의 마음은 트로츠키와 러시아 반대파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그때,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듯, 세 명의 당 지도자가 자신들은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선포하고 제명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당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 “모든 원칙적 문제에서 트로츠키가 옳다. 우리는 그것을 동지에게 입증해보이겠다.” 그런 상황에 많은 동지들이 맞닥뜨렸다. 우리 제명을 승인하지 않아 쫓겨난 사람 대부분은 당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에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반혁명적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료들이 그들을 어리석게 내쫓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얘기하고, 토론하며, 그들에게 문건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분파를 최초로 공고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 시절엔 모든 개인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보였다. 처음 분파활동을 시작할 때 네 명뿐이었다면, 다섯 번째 사람이 올 경우 25% 증가한 셈이 된다. 전설에 따르면,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회주의노동당이 텍사스 주에서 선거 득표수가 2배로 뛰었다고 자신만만하게 발표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평상시의 1% 대신에 2%를 얻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최초로 사람을 조직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쫓겨난 지 얼마 안 돼, 당에서 우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을 때, 어느 날 누군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필라델피아에서 모건스턴이 온 것이다. 그는 젊지만 분파투쟁에서 ‘캐넌파’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동지가 트로츠키주의를 옹호해서 제명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을 수 없다. 진짜 내막을 알고 싶다.” 당시에는 같은 분파 사람한테서만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귀중한 트로츠키 글을 뒷방의 숨겨둔 장소에서 꺼내 그에게 건넨 것을 기억한다. 그는 침대에 앉아, 긴 ‘강령초안 비판’(그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고개를 들지도 않고 읽었다. 다 읽고 난 뒤, 그는 결단했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중핵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다른 개별활동가들을 조직했다. 트로츠키 사상은 우리의 무기였다. 우리는 <투사>에 ‘강령초안 비판’을 시리즈로 실었다. 우리한테는 ‘강령초안 비판’이 한 부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우리는 그것을 팜플렛 형태로 발간할 수 있었다. 그 분량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등사판으로 인쇄할 수 없었다. 우리한테는 등사기가 없었고, 타이핑할 사람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돈은 심각한 문제였다. 우리 모두 당 직책을 박탈당했고, 어떤 수입도 없었다. 우리는 정치투쟁하느라 너무 바빠 생계활동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우리에겐 정치활동 자금도 문제였다. 우리는 사무실을 낼 수 없었다. 1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3번가에 허술한, 창문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사무실 하나를 빌릴 수 있었다. 2년째 됐을 때, 우리는 최초로 등사기를 구했고,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우리는 결국 스탈린주의화한 공산당에서 쫓겨나, 트로츠키주의 분파를 만들고 미국 공산주의 재건을 위한 위대한 역사적 투쟁을 시작했다는 데에 이르렀다. 우리 행동은 미국운동 상황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운 빠지게 하고, 운동을 퇴보시키는 일국적 분파투쟁을 국제적 목적을 지닌 위대한 역사적 투쟁으로 사실상 한 방에 탈바꿈시켰다. 이런 급격한 전환을 통해, 사상이, 이 경우에는 진실한 맑스주의 사상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사상은 이중의 장애물을 뚫고 나아갔다. 우선 내가 앞 장들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오랫동안 질질 끈 국내 분파투쟁이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사소한 조직문제에 빠져 있었고, 편협한 일국주의 관점 때문에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다른 한편, 멀리 러시아에서 볼셰비키-레닌주의 반대파가 조직적으로 완전히 궤멸돼버렸다. 지도자들은 당에서 쫓겨나고, 입에 재갈이 물리고, 불법화되고, 기소당했다. 트로츠키는 멀리 알마아타로 추방당했다. 전 세계에서 그를 지지하는 단위들은 흩어져 있었고, 조직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일련의 국면을 거쳐, 상황이 바로잡혔다. 모든 것이 적절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트로츠키가 알마아타에서 맑스주의 문서 하나를 코민테른 6차 대회에 보냈다. 비서 기구의 빈틈을 뚫고 그 문서가 소수 대표자들에게, 특히 미국 당 대표자 한 명과 캐나다 당 대표자 한 명에게 갔다. 맑스주의 사상의 천하무적 같은 힘을 보여준 이 문서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가 보았듯이 빠르고 커다란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하룻밤 사이에 투쟁의 전체 그림, 전체 전망이 바뀌었다. 공식적으로는 죽었다고 선언된 트로츠키주의가 국제 무대에서 부활했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열정,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미국 당 언론이 우리를 맹렬하게 비난했고, 그 기사를 모스크바의 프라우다를 비롯해 전 세계 스탈린주의 언론이 다시 실었다. 감옥과 망명지에 있던 러시아 반대파 활동가들이, 빠르든 늦든 도착하는 신문을 보고, 미국에서 우리가 활동하고 있고 저항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반대파 투쟁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바다 건너 미국에서 신병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됐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힘과 비중 때문에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한 일은 그만큼 더 중요하고 비중이 컸다. 내가 말했듯이, 트로츠키는 알마아타라는 작은 아시아 마을에 고립돼 있었다. [좌익반대파들의] 세계운동은 가라앉아 있고, 지도자가 없으며, 탄압받고, 고립되고,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머나먼 미국에서도 반대파가 등장해 투쟁하고 있다는 이런 고무적 소식이 들려오자, 반대파 그룹들의 작은 신문, 기관지들이 다시 활력을 얻었다. 우리에게 가장 고무적이었던 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러시아 동지들이 우리 목소리를 확실히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1928년에 우리가 펼친 역사적 투쟁에서 가장 기뻤던 측면 중 하나로 항상 다음을 생각해왔다. 모든 감옥과 망명지에 있는 러시아 동지들이 우리 투쟁 소식을 듣고, 끈질기게 버틸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 부딪칠지에 대해 꽤 분명한 통찰력을 갖고 투쟁을 시작했다. 우리는 적절한 생각이나 준비 없이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큰 곤란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예측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빠르게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적 희망을 조금도 갖지 않았다. 우리 신문 모든 호에서, 모든 성명서에서 우리는 투쟁의 근본성격을 강조했다. 우리 강령의 올바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훨씬 멀리 내다봐야 하고,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하며, 사태가 더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신문인 <투사>를 발간하는 것이었다. <투사>는 등사기로 인쇄해 몰래 배포하는 신문이 아니었다. 많은 작은 그룹은 그 정도에 만족한다. <투사>는 보통 크기의 신문이었다. 우리는 일에 착수했다. 그들은 우리 세 사람(에이번, 샥트먼, 캐넌)을 무시하듯이 ‘군대 없는 세 장군’이라고 불렀다. 그 명칭은 곧 유명해졌다. 우리는 그 명칭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인정해야 했다. 우리에게 군대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념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강령을 갖고 있었고, 이 강령 덕분에 우리가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편지 쓰기를 정력적으로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 흥미를 느끼는 누군가에 대해 들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장문의 편지를 쓰곤 했다. 우리의 선전선동 활동의 성격은 필연적으로 바뀌었다. 과거에 우리는, 특히 나는, 꽤 많은 청중에게 연설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제명당하기 얼마 전에 나는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연설하면서 전국을 순회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들에게 말해야 했다. 우리의 선전활동은 주로 공산당에서 또는 공산당 근처에서 우리 사상에 흥미를 느낄 만한 고립된 개인들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날 약속을 잡고, 한 개인에게 몇 시간씩 얘기하고, 한 사람을 조직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원칙적 입장을 긴 편지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미국 운동에서 폭발이 발생하자마자 캐나다에서 스펙터가 제몫을 해냈다. 똑같은 일이 거기에서도 벌어졌다. 상당한 규모의 캐나다 그룹이 만들어져 우리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나왔던 동지들이 시카고, 미니애폴리스, 캔자스시티,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깃발로 모여들었다. 대체로 그룹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시카고가 20~30명 규모로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도 비슷했다. 캔자스시티에는 3~4명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에는 경외할 만한 모건스턴과 굿맨, 이렇게 2명이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혼자서 우리 활동을 했다. 뉴욕 여기저기에서 몇 명을 건졌다. 클리블랜드, 세인트루이스, 일리노이 남부의 광산에서도 사람을 조직했다. 초기에 이 정도의 조직 연결망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한 사람씩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상을 바꿔서 우리쪽으로 조직하는 작업(우리가 IWW에서 개별조직화 선동이라고 불렀던 것)에 열중하고 있을 때, 비교적 발행부수가 많았던 <일간 노동자>가 우리를 집중 공격했다. 날마다 신문 1면 전체에서, 때로는 2면에 걸쳐 우리를 비난했다. 이런 기사들은 우리가 미국 제국주의에 우리 신념을 팔아넘겼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소련을 전복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제국주의 강대국들, 노동자의 적들과 손을 잡은 반혁명 분자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반혁명 부르주아지의 선봉’이 됐다고 비난했다. 우리를 겨냥한 정치 테러와 비방 캠페인 차원에서 그런 기사들이 날마다 실렸다. 그것은 우리가 개별 당원들과 어떤 관계도 지속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술책이었다. 우리와 길거리에서 얘기하거나, 우리를 방문하거나, 우리와 어떻게든 소통하는 것은 제명당할 범죄가 됐다.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모임에 참석했다고, 유니온스퀘어에 있는 공산당 본부 앞 길거리에서 우리가 판매한 신문을 샀다고, 또는 과거에 우리와 일정한 관계가 있었다고 고발돼 공산당 재판대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배척의 장벽이 우리와 당원들을 갈라놓았다. 우리가 수년 동안 알고 있었고,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낯선 사람이 돼버렸다. 우리의 삶 전부가 공산당 운동과 그 주변에 있었다는 점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직업적인 당 활동가였다. 우리는 당 안팎 말고는 다른 곳에 관심도 없었고, 다른 사회단체와 연계도 없었다. 수년 동안 일상활동에서 우리의 모든 친구, 우리의 모든 동료, 우리의 모든 협력자들은 바로 그 층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우리가 그 층에 다가갈 수 없게 됐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됐다. 그런 일은 충성하는 조직을 바꿀 때 흔히 일어난다. 대체로 그런 일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왜냐면 정치적이고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기존 연계망에서 떠날 때, 즉시 새로운 층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동료들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의 한 측면만 경험했다. 우리는 새로운 연계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기존 연계망과 단절됐다. 우리가 참가해서 새로운 친구들과 동료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강령만 갖고 맨손으로 새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초기에 여러 측면에서 가장 끔찍한 반인간적 압력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사람들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크게 보자면, 나는 과거 경험 덕분에 그런 시련에 개인적으로 준비돼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때, 나는 고향에서 내가 평생 알아온 사람들한테서 버림받은 채로 살았다. 그 결과 두 번째 경험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한테 덜 가혹했던 것 같다. 우리한테 개인적으로 동조했던 많은 동지들은 과거에 우리의 친구였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우리 사상에 부분적으로 동조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끔찍한 사회적 배척의 벌에 공포감을 느껴 우리와 함께하지 않고, 우리와 관계 맺지 않았다. 아주 작은 우리 트로츠키주의 그룹한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것은 좋은 학교였다. 견지할 가치가 있는 사상은 그것을 위해 싸울 가치도 있다. 미국 좌익반대파 초기에 전국에서 젊은 우리 운동이 맞서 싸웠던 비방, 배척, 탄압은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가올 사회적 압력과 고립을 견뎌내기 위해 준비하는 데 훌륭한 훈련이 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제 중압이 완고한 반항자와 비판자를 겨냥해 빠르고 강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의 첫 번째 무기는 비방이었다. 우리를 겨눈 두 번째 무기는 배척이었다. 세 번째 무기는 깡패짓이었다. 여기에 수만 명의 당원과 주변층을 지닌 당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당은 일간지를 한 개가 아니라 자그마치 열 개나 갖고 있다. 주간지와 월간지는 수없이 많다. 돈도 많고, 능숙한 노동자들의 거대한 기구도 갖고 있다. 이렇게 꽤나 가공할 권력이 극소수의 사람들을 겨냥했다. 이들은 수단도, 연계도 없으며, 강령, 그리고 그 강령을 위해 싸울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들은 우리를 비방했고 배척했다. 그것으로도 우리를 깨뜨리지 못하자, 물리적으로 우리를 때려눕히려 했다. 그들은 어떤 논쟁에도 답할 필요가 없게 만들려고 했다. 우리가 말하고, 쓰고,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말이다. 우리 신문은 공산당원들을 직접 겨냥했다. 우리는 전 세계인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전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 사상에 가장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람들에게 우리 메시지를 우선 전달했다. 우리는 그 대오에서 적어도 운동의 첫 번째 분대를 충원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우리의 작은 신문을 인쇄한 다음, 조직원들만이 아니라 편집자도 그 신문을 팔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우리는 신문 기사를 썼다. 우리는 다음에 인쇄소로 갔다. 거기에서 첫 호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마지막 오자를 교정할 때까지 인쇄업자 옆을 서성거렸다. <투사>의 새 호, 새 무기는 항상 스릴이 넘쳤다. 그런 다음 팔에 신문 꾸러미를 들고, 우리는 유니온스퀘어에 있는 도로 모퉁이로 신문을 팔러 갔다. 물론 세 명의 편집자가 세 명의 신문팔이 사내가 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일꾼이 부족했기에 그렇게 해야 했다. 항상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렇게 해야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유니온스퀘어에서 우리 신문을 팔기 위해 우리는 물리적 공격에도 맞서야 했다. 나는 오늘 당시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면서 <투사> 합본호 1권을 훑어보았다. 나는 내게 퍼부어진 물리적 공격에 대한 첫 번째 기사를 읽었다. 그 공격은 우리가 쫓겨난 뒤 몇 주 만에 시작됐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처음에 크게 놀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우리 동지들이 인쇄소에서 <투사>지를 가져와, 공산당 본부 앞에서 한 부에 5센트를 받고 팔고 있었다. 신문의 반향은 엄청났다. 몇 주 동안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뒤 그들은 물리적 공격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투사>의 첫 번째 보도에서는 헝가리인 그룹의 두 여성 동지를 다룬다. 그들은 어느 날 밤 신문 뭉치를 들고 가서 팔려고 했다. 깡패들이 그녀들을 습격해, 밀치고, 발로 차고, 큰 도로에서 몰아내고, 신문은 찢어버렸다. <투사>가 이 사건을 우리를 겨냥한 첫 번째 깡패 폭력이라고 보도했다. 그 뒤 그런 깡패짓이 어느 정도 정기 행사가 됐다. 우리는 버텼다. 우리는 크게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도시 전체의 스캔들로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세력을 다 동원해 토요일 오후 거기에 가, 편집자들을 지키는 정당방위대를 만들고 우리를 쫓아내려는 스탈린주의 깡패들에 맞서 싸웠다. 이렇게 하는 데 처음 몇 주가 걸렸다. 12월 17일에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뉴욕시에서 열렸다. 여기서 다시 나는 이 투쟁에서 우리가 구사한 전술의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지적하고 싶다. 즉, 우리는 당에 등을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당으로 곧장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10월 27일에 제명됐는데, 우리는 12월 17일 전원회의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제명에 대해 항소하려고 왔다.” 그들은 시간을 정해서 약 100에서 150명의 당 지도자 앞에서 우리가 항소할 수 있게 허락했다. 러브스톤파가 그렇게 한 것은 민주주의를 고려해서가 아니었다. 규약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은 분파적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제명됐다고 해서 포스터파와 러브스톤파가 분파투쟁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러브스톤파는 다수파가 됐는데, 그들은 우리한테 무대를 주는 것이 자신들이 포스터파를 ‘트로츠키주의자 중재자들’로 몰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교활하게 생각했다. 그 틈을 타 우리는 회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환상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납득시키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포스터파를 겨냥한 러브스톤파의 작은 좀도둑질 전략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호소하고, 우리의 연설을 <투사>에 인쇄해 널리 배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군대 없는 세 명의 장군’이 모든 제명자를 대표해 12월 전원회의에 나타났다. 내가 2시간가량 연설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도록 안내받았다. 다음날 우리는 <투사>의 다음 호에 싣기 위해 ‘당에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문을 인쇄소에 넘겼다. 나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우리를 겨냥해 쓴 비방, 배척, 깡패짓이라는 세 가지 무기를 언급했다. 미국 스탈린주의 지도자들이 무기고에서 꺼내든 네 번째 무기는 도둑질이었다. 그들은 트로츠키의 강령이라는 위대한 사상으로 무장한 이 작은 그룹이 아주 무서웠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그룹이 발언 기회를 얻기 전에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우리는 첫 번째 뉴욕 지부 미팅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다.(이 미팅에서 우리는 12~13명이 모여 진지하게 조직을 구성하고, 미국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를 누군가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샅샅이 뒤진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그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쳐들어온 것이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내 신문, 문서, 기록, 편지 모두가, 그들이 손에 잡을 수 있었던 모든 것이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가 분명히 전에 그들을 놀라게 해서 그들이 도둑질해갔을 것이다. 내가 몇 주 후에 다른 곳에 가고 없을 때, 그들이 와서 도둑질을 마무리 지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가져갔다.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계속 투쟁했다. 우리는 그들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그들의 도둑질, 깡패짓에 대해 소리 높여 외치고, 신문에 알려서 그들이 우리의 폭로에 움찔하며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었고, 침묵하게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우리는 과거 경험을 아주 잘 이용했다. 우리는 고된 훈련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아주 많은 투쟁에 참가했다. 그리고 그들은 몇 가지 도둑질이나 비방으로는 우리에게 엄포를 놓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들에 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았다. 우리는 정치적 무기를 갖고 싸웠는데, 그 무기는 깡패들의 쇠몽둥이나 도둑의 쇠지렛대보다 더 강력했다. 우리는 당원들의 선의와 공산주의 양심에 호소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스탈린주의 방법에 항의해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몇 주 뒤인 1929년 1월 8일에, 우리는 미국에서 최초로 트로츠키주의 공개 강연회를 열었다. 나는 <투사> 첫 번째 합본호를 오늘 훑어보다가 1929년 1월 1일자 신문 첫페이지에서 그 강연회 광고를 봤다. 우리가 뉴욕 좌파운동에 폭탄선언을 한 그때를 되돌아보니, 약간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노조회관 앞에 ‘트로츠키와 러시아 반대파에 대한 진실’을 주제로 내가 연설할 것이라는 큰 광고문구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이 강연회를 방어할 준비를 하고 여기로 왔다. 이탈리가 보르디가주의자 그룹, 우리 헝가리 동지들, 언론의 자유를 중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몇 명의 개별활동가들, 그리고 조직에 새로 들어온 용맹스런 우리 동지들이 강연회를 방어했다. 그들은 강연회가 방해받지 않는지 살피기 위해 노조회관 연단 주변과 문 근처에 배치됐다. 강연회는 방해 없이 진행됐다. 노조회관 강당은 꽉 찼다. 트로츠키주의로 입장을 바꾼 활동가들이나 지지자만 온 것이 아니다. 온갖 동기, 이해, 호기심 등으로 온갖 사람들이 강연회에 참석했다. 강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우리 지지자들은 더 단단해졌고, 몇 명은 새로 조직됐다. 스탈린주의 진영도 더 크게 경각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겨냥해 폭력을 더 휘둘러댔다. 우리는 그 다음에 같은 주제로 전국순회를 계획했다. 나는 뉴헤이븐에서 연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우리는 숫자상 완전히 열세였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우리를 에워싸 강연회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나는 보스턴에서 연설했다. 거기에서는 우리가 더 잘 준비했다. 나는 며칠 전에 도착해서 나의 옛 IWW(세계산업노동자연맹) 친구들 몇몇을 만났고, 부둣가의 사내들을 불러와 우리가 자유롭게 연설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우리는 그런 친구 열 명을 연단 주변에 배치했다. 스탈린주의 깡패집단이 이미 거기에 와서 강연회를 박살내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만약 그렇게 시도했다가는 그들 머리가 박살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보스턴 강연회는 성공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역사적 경우에 내 강연회 사회자는 코니코프였다. 보스턴에서 트로츠키 강령을 중심으로 여덟 명에서 열 명 규모의 한 그룹이 공고하게 만들어졌다. 보아 하니 그것이 신호였다. 스탈린주의 깡패들이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면서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앉아라, 반혁명 분자야”, “반역자야”, “미제국주의의 앞잡이야” 등등. 약 15분 동안 계속 그렇게 하면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속셈은 소란을 일으켜 사람들이 내 연설을 못 듣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 말을 가로막아 문제를 정리하려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생각이 달랐다. 앰터 무리들은 필요하면 밤새 소란을 피우려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우리 부대는 준비된 상태에서 내가 신호 보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결국 “좋아, 해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곧 그들이 앰터와 그 깡패들을 쫓아가 한 명씩 끄집어내 계단 아래로 던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강당을 깨끗하게 만들고, 스탈린주의 분위기를 쳐내버렸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강연회는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진행됐다. 우리는 가장 멋진 평화와 고요를 누렸다. 며칠 뒤, 시카고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은 깡패들을 조금 데려 왔지만, 투쟁을 시작할 건지 말 건지 자기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강연을 성사시켰다. 내가 순회강연을 이어가고 있을 때, 여러 스탈린주의 활동가들이 성경 속 인물인 니코데모처럼 밤에 나한테 왔다. 그 중 한 명은 게버트였다. 그는 몇 년 뒤 공산당의 주요 인물이 됐고, 디트로이트 지역책임자 자리를 맡았다. 그는 나를 보러 시카고에 있는 호텔에 왔다. 그는 상심해 있었다. 그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우리를 겨냥해 사용한 모든 방법을 경멸했다. 게버트는 양심적 공산주의자였고, 우리 투쟁에 동조적이었다. 하지만 당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일생과 단절하고 새 삶을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랬다. 여러 가지 강압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일부는 물리적 공격을 두려워했다. 일부는 비방을 꺼렸다. 다른 일부는 배척을 무서워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런 방법을 모두 썼다. 그것이 누적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라면 이러저러하게 우리에게 동조하고, 우리를 지지했을 수백 명 심지어는 수천 명을 공포에 떨게 했다. 내가 몇 년 뒤 미네소타 북부지역 연방법정에서 진술했듯이, 미니애폴리스 강연회에서는 정당방위대가 없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우리 세력은 꽤 강했다. 던, 스코글런드를 포함해 미니애폴리스 공산주의 운동에서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모두 우리를 지지했다. 그들은 물리적으로도 꽤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를 소홀히 했다. 스탈린주의 깡패들이 그곳에서는 어떤 바보짓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강연회를 조직할 때 특별한 방어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게 실수였다. 우리 사람들은 늦게 도착했다. 스탈린주의 깡패들이 먼저 와서 문에 있던 오스카 쿠버를 쇠몽둥이로 폭행하고, 안으로 쳐들어가 조금 작은 강당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강연하려고 일어서자, 그들은 클리블랜드에서 앰터 무리들이 했던 방식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우리는 기세 좋게 달려들어 육박전을 벌였다. 그러자 경찰관이 들어와 강연회를 무산시켰다. 그 사건은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어처구니없고 맥 빠지는 일이었다. 내가 더 머물러 강연회를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IWW 회관에 가서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그들, 몇 명의 지지자들, 개별활동가들과 함께 우리는 노동자방어대를 만들었다. 강연회는 IWW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노동자방어대가 이 강연회를 보호할 것이라고 광고전단을 통해 알렸다. 철물점에서 구입한 멋지고 편리한 곤봉과 큰 몽둥이를 가지고 정당방위대가 거기에 왔다. 정당방위대는 강연자 앞에 벽을 따라 정렬했다. 일부는 문에 배치됐다. 강연회 사회자가 질문과 토론은 허용하지만, 강연자가 연단에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차분하게 선언했다. 강연회는 아무 방해도 안 받고 순조롭게 끝났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우리 조직은 아주 잘 만들어졌다. 뉴욕에서는 우리가 보다 정기적으로 강연회를 열기 시작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려는 시도를 강화했다. 여기 노조 회관에서 열린 한 강연회는 깨졌다. 그들의 상습적인 계획은 한 무리가 강연자한테 달려들어 강연자를 무대에서 끌어내고, 주도권을 장악해 강연회를 반트로츠키 시위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면 우리가 항상 필요한 도구를 갖춘 정당방위대를 연단에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연단으로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육박전을 시작해, 경찰이 대거 몰려와 강연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 이제 사태가 정말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헝가리 그룹이 모임을 갖곤 했던 이스트사이드 북부의 회관에서 우리가 강연회를 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이 강연회를 깨기 위해 마지막 시도를 했다. 우리는 1929년 5월 1일(우리가 제명되고 난 다음해의 봄이다), 거기에서 메이데이 기념 집회를 열었다. 나는 오늘 <투사>를 훑어보면서 헝가리 회관에서 메이데이 집회를 한다는 광고를 봤다. 거기에는 노동자방어대가 집회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이 집회는 잘 방어됐다. 우리의 전략은 훼방꾼들의 집회 참가를 막는 것이었다. 우리 동지들, 지지자들 그리고 분명히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온 모든 사람은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들어오려고 했을 때, 우리 노동자방어대가 계단에서 그들을 제지했다. 그들은 결국 그 계단으로 쳐들어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물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집회를 평화롭게 치를 수 있었다. 아마 그 다음 금요일이었을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메이데이 집회를 깰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헝가리 그룹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헝가리 동지들 8~10명 정도가 비공개 회의를 하면서 조용하게 지부의 일상활동을 다루고 있었다. 참석자 중에는 베테랑 공산주의자인 루이스 바스키(약 50세 남자)와 그의 나이든 아버지(약 80세)도 있었다. 이 아버지는 자기 아들과 트로츠키주의 운동을 열렬히 지지하는 투사였다. 몇 명의 여성 동지도 거기에 있었다. 갑자기 스탈린주의 깡패들이 회관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곧바로 달려들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바스키의 아버지까지 포함해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우리 동지들은 의자와 의자 다리를 붙잡고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방어했다. 혈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두 명의 스탈린주의 깡패가 노인을 두들겨패는 것을 한 참석자가 보았다. 그 장면을 봤을 때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직업이 목공이었으며, 당시 그의 주머니에는 작업도구들 중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는 두 깡패 중 한 명을 손봐줬다. 그들은 스탈린주의 깡패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는 3주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그런데도 의사는 그를 퇴원시켜도 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우리 집회를 공격하는 일이 중단됐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사태를 끔찍한 비극 수준으로 몰고 갔고, 전체 공산주의 운동을 스캔들에 휘말리게 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이고 말하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 저항할 것이므로 우리를 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에는 우리를 겨냥한 폭력이 띄엄띄엄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스탈린주의 깡패들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다. 그들이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권리를 단호하고 전투적으로 지켰다. 그 사이에 우리는 우리가 보여준 투쟁 덕분에 새 회원과 지지자들을 조직했다. 우리는 극소수였을 뿐이다. 그리고 비방, 배척, 폭력 등 모든 무기가 우리에게 퍼부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신문을 정기적으로 발행했다. 투쟁할 때마다 우리는 더 강해졌다. 그래서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뉴욕 좌파, 공산당 지지자들, 심지어는 일부 공산당원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우리 집회를 지키고자 집회에 오곤 했다. 그들은 우리의 투쟁, 우리의 용기에 마음이 끌렸고, 스탈린주의자들의 수법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 뒤 그들은 우리 글을 읽고, 우리 강령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을 한 명씩 끌어들이고, 트로츠키주의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게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트로츠키주의의 첫 중핵을 실제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조직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마다, 달마다 우리는 여러 도시에서 이런 작은 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 전국 조직의 골격을 세웠다. <투사>는 2주마다 발간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었는지, 지금은 다 말할 수 없다. 거기에 필요한 재정적 임무는 다시 맡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 문제를 충실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우리는 꽤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런 희생보다 신문을 내 우리 메시지를 전파함으로써 우리의 위대한 임무를 의미 있게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얻는 지적, 정신적 보상이 훨씬 더 컸다. 이 시기 내내 우리는 트로츠키 동지와 연락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아프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직접 보거나 어떻게든 직접 연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내가 가져온 문서와 우리가 나중에 유럽 그룹한테서 받은 다른 문서들만이 우리와 그의 연결고리였다. <투사> 매호마다 우리는 1924년에서 1929년까지를 다 다루는 러시아 좌익반대파의 여러 문서와 주장들을 차례차례 싣기 시작했다. 우리는 트로츠키와 그 러시아 동료들의 사상에 대한 차단막을 부숴버렸다. 우리가 제명되고 나서 몇 달 뒤인 1929년 이른 봄에, 트로츠키가 러시아에서 추방됐다는 보도로 세계 언론이 크게 들썩였다. 이 보도는 그가 어디로 보내졌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날마다 언론은 온갖 추측성 기사들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의 행방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이것이 1주일 넘게 지속됐다. 결국 그가 터키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트로츠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초조해했다. 우리는 1929년 봄에 터키에 있는 트로츠키와 처음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이름을 걸고, 그의 사상에 기초한 운동을 우리가 시작한 뒤 4~5개월 만이었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곧 답장을 받았다. 그 이후 그가 노르웨이에 억류돼 있었을 때를 빼고는, 우리는 그가 죽을 때까지 우리 운동의 창시자이자 격려자인 그와 아주 긴밀하게 계속 연락했다. 우리가 제명되고 나서 약 4개월 뒤인 1929년 2월 15일에, 공산당이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분파의 ‘강령’을 발표했다. 이 강령은 당시의 국내외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완전하게 밝힌 것이다. 이 강령을 우리가 일국적 분파투쟁을 벌이며 썼던 결의안과 주장, 그리고 다른 분파들의 글과 비교하면 제한된 영역에서 싸우는, 일국적 정신의 분파주의자들과 국제주의의 이론적 관점을 획득한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깊은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강령은 국제적 차원에서 우리 원칙을 선언하고, 러시아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 러시아 당내 투쟁의 근본원인에 해당하는 거대한 이론적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부터 출발했다. 그 다음 강령은 일국적 문제들, 미국 노조 문제들, 당 조직의 세부 문제들 등으로 나아갔다. 미국 공산주의의 오랜 분파투쟁 역사에서 최초로 정말 균형 잡힌 국제주의 맑스주의 문서가 등장했다. 그것은 러시아 좌익반대파와 그 강령에 충실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우리는 우선 공산당 대회에 대한 우리의 제안으로서 이 강령을 <투사>에 실었다. 왜냐면 비록 제명됐을지라도 우리는 공산당 내 분파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에서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당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원들에게 되돌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당에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당 대회에 제출하는 우리의 강령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대회에서 그 강령을 옹호하도록 관료들이 허용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강령을 채택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공산주의자 평당원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런 노선과 방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 관점을 공산당 평당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러브스톤과 포스터 일당이 그들에게 말했다. “이 친구들, 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코민테른의 적이다. 그들은 당을 깨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당원이다. 당에 더 분명한 원칙적 입장과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강령을 제출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당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갔다. 우리는 우리가 공산주의의 적이라는 비방을 반박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산주의의 충실한 방어자라는 점을 그들에게 납득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들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우리 그룹으로 조직했다. 3월 19일, 우리는 소련이 트로츠키를 추방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노조회관에서 집회를 열었다. 내 노트에서 이것을 확인했다. 이 소식으로 전 세계가 한창 떠들석할 때, 우리가 이 노조회관에서 대중집회를 개최했다. 광고에 캐넌, 에이번, 샥트먼이 연설할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우리는 이 추악한 행위에 항의했으며, 우리가 트로츠키를 지지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다시 선언했다. <투사>는 1929년 5월 17일에 미국 좌익반대파 전국대회 소집 공고를 냈다. 이 대회의 주요 임무는 소집 공고와 그 뒤의 관련 기사들이 알리고 있듯이 강령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캐넌, 에이번, 샥트먼이 작성하고, 공산당에 초안으로 제출한 이 강령은 우리 조직의 강령초안이 되어 우리의 첫 대회에 제출됐다. 대회의 또 다른 임무는 러시아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우리 동지들에게 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1917년부터 오늘날까지 미국 볼셰비즘의 역사를 연구한다면, 모든 단계에서, 모든 결정적 순간에, 모든 전환의 시기에, 논쟁을 지배했던 것이 러시아 문제였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1917년부터 1919년 사회당 분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충성도를, 즉 혁명가인지 개량주의자인지를 결정했던 것은 러시아문제였다. 1928년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제명당했을 때, 그리고 1939년과 1940년에 사회주의노동자당 내 소부르주아 반대파와 싸웠을 때까지를 포함해 우리 스스로 성장하면서 다른 여러 분파 및 그룹에 맞섰던 수많은 투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은 러시아 문제였다. 그것은 항상 제1의 쟁점이었다. 왜냐면 러시아 문제는 노동자계급 혁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혁명 자체의 문제이며, 실제로 발생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문제다. 어제처럼 그리고 처음처럼 오늘도 러시아혁명에 대한 태도는 정치그룹의 성격을 좌우하는 결정적 기준이다. 우리는 첫 대회에서 그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했다. 왜냐면 우리가 쫓겨나자마자 스탈린주의 관료제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갖 사람이 ‘한 가지 작은 조건’만 충족된다면 우리 조직에 가입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공산당에 등을 돌리고, 다른 공산주의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만약 우리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면, 초기에 수백 명의 회원을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산당 내 분파로 활동한다는 견해를 포기하고, 완전히 독자적인 공산주의 운동을 선언하고 싶어 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대회의 임무는 또한 그 사안들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독자정당을 시작하고, 앞으로 공산당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계속 공산당 내 분파로 규정할 것인가? 그 문제에 분명하게 답해야 했다. 첫 전국대회에 상정된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전국조직의 성격과 형태를 정하고, 전국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세 장군’이 지도부 역할을 해왔다. 단지 이들이 투쟁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충분히 좋은 자격이었다. 처음 주도권을 쥔 사람들이 어떤 투표보다 더 중요한 도덕률에 따라 행동의 지도자들이 된다. 하지만 이런 관행을 무기한 지속할 수는 없다. 우리는 대회를 소집해 지도부를 뽑을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알았다. 다행히 우리는 이 대회와 관련해 우리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트로츠키로부터 적시에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답변은, 그의 다른 모든 편지,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우정 어린 조언이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투사>에 따르면,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첫 전국대회에 12개 도시에서 31명의 대표자와 17명의 예비후보가 참가했다. 이들은 전국을 모두 합쳐 약 100명의 회원들을 대표했다. 대회는 1929년 5월에 시카고에서 열렸다. 여러분은 내가 인용한 수치를 통해, 우리 젊은 조직의 회원 중 거의 절반가량이 이 역사적 대회를 치르기 위해 대표자 또는 예비후보로 참가했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대회장에는 우리의 위대한 미래에 대한 일치감, 열광, 무한한 확신이 가득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먼저 스탈린주의 깡패들로부터 대회를 보호하기 위한 실무적 조치를 취했다. 총 48명의 대표자 모두가 정당방위대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스탈린주의자들이 대회를 방해하려 했다면, 우리가 그에 맞게 적절히 반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해 우리는 여러 날 동안 대회를 평화롭게 치렀다. 한 번 더 반복하겠다. 우리 전국조직에서 약 100명의 회원을 대표해, 12개 도시에서 31명의 대표자와 17명의 예비후보가 왔다. 우리는 우리를 ‘미국공산주의자동맹, 공산당 좌익반대파’라고 불렀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확신했다. 우리 강령이 옳다고 확신했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조직하기 시작할 때까지, 미국 공산주의 재건운동의 향후 발전 전체는 1929년 5월 시카고에서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개최한 최초의 전국대회에 그 기원을 둘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면서 대회를 마쳤다. 지난 번 강연에서 나는 1929년 5월에 있었던 좌익반대파의 첫 전국 대회까지 다뤘다. 우리는 첫 여섯 달 동안 어려운 투쟁을 해내고 살아남았다. 우리 힘을 유지한 채 몇몇 새로운 회원도 조직했다. 첫 대회에서 우리는 우리 세력을 전국 조직으로 응집시키고 지도부를 선출했으며, 우리 강령을 보다 명확하게 다듬었다. 우리 조직원들은 단호하고 확고했다. 우리는 숫자도 아주 적고 자원도 빈약했지만, 진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미국 공산주의 재건을 위한 2단계 투쟁을 벌이기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모든 정치 조직의 운명은, 다시 말해 활력 있게 성장할 것이냐 아니면 쇠퇴하다 사라질 것이냐는, 첫 출발 때 다음 두 가지 결정적 문제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달려 있다. 첫 번째는 올바른 정치 강령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강령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정치운동 내 세력 관계, 계급투쟁의 발전 정도, 조직의 규모와 능력 등을 고려해 조직 활동의 성격과 임무를 올바로 결정하는 것이다. 만약 정치 조직의 강령이, 특히 작은 정치조직의 강령이 잘못됐다면, 그 조직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전쟁에서처럼 정치에서도 속임수를 쓸 수 없다. 전쟁과 정치의 유일한 차이는 전시에는 모든 약점이 거의 즉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이 점은 최근 제국주의 전쟁이 새로운 단계마다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 투쟁에서도 법칙은 가차 없이 작동한다.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잠시 동안만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그 기만 때문에 주로 희생당하는 것은 바로 그 속임수를 쓰는 자들이다. 여러분은 확실한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여러분이 살아남아 노동자의 대의에 복무하려면 올바른 강령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령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다 치명타를 입은 사례로 악명 높은 러브스톤 그룹을 들 수 있다. 혁명운동의 신참자인 여러분 중 일부는 한때 매우 중요했던 이 분파를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이 그룹은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당시에 러브스톤 그룹 사람들은 미국 공산당 지도자들이었다. 우리를 출당시킨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6개월 뒤에 그들 자신이 공산당에서 축출당했다. 그들은 우리보다 세력과 자원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출발했다. 그들은 처음에 우리보다 훨씬 더 화려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강령을 갖지 못했고, 그런 강령을 발전시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를 약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원칙을 무시하고, 강령 문제에서 타협함으로써 세력을 더 크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랬다. 그러나 이 그룹은 에너지와 능력이 풍부했고, 몇몇 매우 뛰어난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엔 정치 투쟁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돼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오늘날 이 그룹의 지도자 대다수가, 내가 아는 한 그들 모두가, 제국주의 전쟁에 편승했다. 그래서 그들이 정치 활동을 시작했을 때 복무했던 것과 완전히 정반대되는 목표에 기여하고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강령은 결정적이다. 다른 한편 만약 한 그룹이 주어진 조건에 맞는 자기 임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만약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올바로 답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장점이 많은가와 무관하게 엉뚱하게 노력하고 헛되게 활동하다가 결국 완전히 실패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서두에 말했듯이, 우리의 운명은 이 초기에 강령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답하고, 당시 우리의 임무를 어떻게 분석해내는가에 따라 결정됐다. 미국 노동운동에서 새로 등장한 정치 세력으로서 우리 그룹의 장점은 바로 우리가 그 두 문제에 올바로 답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장점 덕분에 우리 그룹은 진보, 안정성, 더 나은 성장을 보장받았다. 대회에서는 당시 정세가 제기한 모든 정치적 문제를 다루진 않았다. 대회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즉 가장 먼저 답해야 할 문제들만을 다뤘다. 이 문제 가운데 첫 번째는 러시아 문제, 즉 현존하는 혁명 문제였다. 내가 이전 강연에서 말했듯이, 1917년 이후 러시아 문제는 노동운동의 모든 정치경향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라는 점이 거듭 입증됐다. 러시아 문제를 잘못 판단한 사람들은 곧 혁명적 노선을 버렸다. 러시아 문제는 기사, 팜플렛, 책에서 수없이 다뤄왔다. 그러나 중요한 사태 전개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는 거듭 등장했다. 1939년과 40년에도 우리는 러시아 문제를 놓고 우리 운동 안의 소부르주아 경향과 거듭 싸워야 했다. 러시아 문제를 심오하게, 정확하게, 긴급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4인터내셔널의 문헌 속에서 풍부한 자료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밤에 이 문제를 다시 자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그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다루겠다. 첫 대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카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는데도, 소비에트 국가, 즉 소련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당시에 공산당과 단절한 사람 또는 공산당에서 축출된 사람 가운데 자기 자신을 혁명가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련과 러시아혁명의 유산에 등을 돌리고, 반(反)소비에트 정당으로서 ‘새출발’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런 강령과 우리에게 그것을 촉구하는 모든 사람을 거절했다. 만약 우리가 그 문제에서 타협했다면 회원을 더 늘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을 지지한다, 소련을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코민테른을 통해 소련을 개혁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했다. 성급함 때문이든 무지나 주관성 때문이든, 즉 이유가 어떻든 러시아혁명은 죽었다고 조급하게 선언했던 모든 사람은 실제로는 자신의 혁명성이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었다는 점이 사태의 발전과정 속에서 입증됐다. 이런 그룹이나 경향의 사람들은 모두 퇴보하고 산산이 분열해서 옆으로 비켜났으며, 많은 경우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정치적 건강성과 혁명적 생명력을 보존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소련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소련 정부를 장악한 개인들이 우리에게 했던 짓을 포함해 여러 범죄를 저질렀지만 말이다. 항상 그랬듯이 그때 노조 문제는 아주 중요했다. 특히 당시에는 매우 첨예했다. 코민테른과 그 영향력 아래 있던 공산당들은 오랫동안 우익 기회주의 정책들을 실험한 다음, 크게 좌선회해 초좌익주의 입장을 취했다. 이는 스탈린 분파의 관료적 중도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이었다. 맑스주의라는 나침반을 잃어버렸기에, 그들은 극우에서 극좌로 또는 극좌에서 극우로 급선회했다. 그들은 마침내 소련과 그 관료들이 재앙 직전에 이를 때까지 쿨락, 네프맨들과 타협하면서 소련에서 오랫동안 우파정치를 펼쳐왔다. 국제 영역에서도 비슷한 정책들이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그 반작용으로, 그리고 좌익반대파의 끊임없는 비판 때문에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역편향에 빠져 초좌익 정책을 도입했다. 노조 문제에서 그들은 미국노총(AFL)을 포함해 기존 노조에서 탈퇴하고, 공산당이 통제하고 공산당 입맛에 딱 맞는 노조 운동을 새로 시작하자는 입장으로 확 돌아섰다. “적색노조”를 건설한다는 ‘정신 나간’ 정책이 그 시대의 과제가 됐다. 우리는 첫 전국대회에서 이 정책을 단호하게 반대했고, 기존 노조 안에서 활동하고, 독립 노조는 미조직 분야에만 한정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 ‘새로운 공산주의 노조운동 이론’이 분파주의를 부활시킨다고 가차 없이 비판했다. 이런 입장과 우리의 올바른 노조 정책 덕분에 우리는 대중운동에 개입할 때가 오면, 가장 빠른 길을 알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사건들을 통해 첫 번째 대회에서 채택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견지했던 노조 정책이 옳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세 번째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독립 정당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분파로 남아있을 것인가였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스스로 급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공산당에 완전히 환멸을 느끼고,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려 하는 구 공산당 당원들에게 포위됐다. 이들은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공산당에 반대하는 당이면 어떤 당을 만들려는 사람과도 손을 잡으려 하는 생디칼리스트들과 초좌익주의자들이었다. 게다가 우리 평조직원 중에는 우리에게 가해진 관료적 숙청, 비방, 폭력, 추방에 주관적으로 반응했던 사람이 일부 있었다. 이들 또한 공산당을 버리고 새 당을 만들길 원했다. 이런 태도는 얼핏 보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생각에 저항하고 반대했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사고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설명했다. 이것은 공산당 당원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문제이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올바른 전술적 접근법을 찾는 문제라고 말이다. 만약 공산당과 그 당원들이 개선의 여지가 없이 타락했고, 보다 진보적인 노동자 그룹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올바른 방향을 가진 잠재세력이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 그룹을 통해 더 나은 당을 새로 만들 수 있다면, 새 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그룹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다양한 반대파, 개인, 경향 속에서 진정한 진보성, 전투성, 정치적 능력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거의 모두 방관자적 비평가이자 종파주의자들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전위는 러시아혁명이 각성시킨 수십만 노동자 속에 있다. 그들은 여전히 코민테른과 공산당에 충성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점진적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분명하게 밟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 타락의 밑바닥에 놓인 이론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만약 동지가 스스로를 당원으로 여기고 민주적 권리를 가진 채 재입당을 요구하면서, 당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개혁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그들에게 말할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공산당과 코민테른의 분파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했다. 우리는 우리 조직을 미국공산주의자동맹(반대파)이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가 새 당이 아니라 공산당의 반대파라는 점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 노선이 옳았다는 점을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공산당과 코민테른에 남아 당 상층부의 관료적 지도자들에게 반대하며, 평당원들을 옳게 평가하고 만나려고 함으로써 우리는 공산당의 노동자 평당원들로부터 새 회원을 계속 조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존재한 첫 5년 동안 우리 조직원의 절대 다수는 공산당 출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공산주의 재건 운동의 토대를 쌓았다. 반(反)소비에트, 반(反)당 쪽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은 혼란뿐이었다. 당시에 새 당이 아니라 분파를 만든다고 결정하자 또 다른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이는 1928~33년, 즉 우리의 첫 5년 동안 우리가 가장 오래 싸워야 했던 문제다.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이 거대한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100명짜리 그룹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독립 정당을 만든다면, 타락한 공산당으로부터는 등을 돌리고, 노동자계급에게 직접 호소하면서 대중 운동 속에서 일련의 활동을 펼쳐야 했다. 다른 한편 우리가 독립 정당이 아니라 분파가 되고자 한다면, 4천만 미국 노동자들이 아니라 공산당 안팎에 조직돼 있는 전위들에게 우리의 주요 노력, 호소, 활동을 집중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두 문제가 어떻게 딱 들어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서는 여러분이 ‘A’라고 말했다면 그 다음에는 ‘B’라고 해야 한다. 우리는 공산당을 향해 얼굴을 돌리거나, 아니면 공산당은 가만 놔두고 발전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한 미조직 대중을 향해야 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 문제는 당시의 실제 상황과 발전 단계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물론 혁명을 이끌 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중한테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대중한테는 전위들을 통해서 갈 수 있지, 전위를 건너뛰어 갈 수는 없다. 일부는 이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산주의 노동자들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중운동 한가운데로 뛰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이론적으로 발전해 있는 그룹, 즉 전위 중의 전위인 좌익반대파의 후보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개념은 오류로서,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성급한 태도의 산물이었다. 이 대신에 우리는 주요 임무를 선동이 아닌 선전으로 잡았다. 우리는 말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좌익반대파의 원칙을 전위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교육받지 못한 거대한 대중에게 우리가 지금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우리는 우선 수만의 공산당원과 그 지지자로 이뤄진 이 전위 그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야 한다. 그들로부터 당을 개혁할 충분한 간부들을 확고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당을 개혁하기 위해 끝까지 진지하게 노력해보고 실패가 아주 분명해졌을 때만, 그렇게 노력해서 조직한 사람들과 함께 새 당을 건설해야 한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당을 재건할 수 있다. 그때 무대에 나타난 인물이 있다. 아마 여러분에게는 낯선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논란을 많이 일으킨 인물이다. 앨버트 웨이스보드는 한때 공산당원이었고, 1929년에 이런저런 이유로 당에서 제명됐는데, 제명의 이유가 아주 분명하지는 않다. 제명당한 뒤 웨이스보드는 뭔가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타격받으면 그 원인이 뭔지 궁금해 한다. 웨이스보드는 곧 자기 연구를 통해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선언하며 나타났다. 우리 같은 50퍼센트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100퍼센트 트로츠키주의자이며, 자기 소명은 우리를 교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계시는 다음과 같았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선전 서클이어서는 안 되고, ‘대중활동’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당연히 당을 새로 건설하자고 제안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그는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전위, 즉 우리를 향해 먼저 다가오는 전술을 택했다. 개인적 친구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는 25~30명짜리의 작은 우리 뉴욕 그룹을 상대로 내부 와해 작업과 외부 파괴 작업이라는 열정적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중운동에 개입하기 위한 연결고리로서 공산당원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선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웨이스보드는 대중활동 프로그램을 주장하면서 자기 대중활동의 99퍼센트를 대중이나 공산당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트로츠키주의 그룹에게 쏟아부었다. 그는 모든 문제에서 우리와 의견이 달랐고,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잘못 대표한다며 비난했다. 우리가 ‘맞소’라고 말하면, 그는 ‘확실히 맞소’라고 했다. 우리가 75를 말하면 그는 더 높은 수치를 불렀다. 우리가 ‘미국공산주의자동맹’이라고 말하면, 그는 자기 그룹을 더 강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공산주의자투쟁동맹’이라고 불렀다. 웨이스보드에 맞선 투쟁의 본질은 이처럼 우리 활동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공산당을 건너뛰고 대중활동에 뛰어들 만큼 성급했다. 우리는 그의 프로그램에 반대했다. 그는 두꺼운 등사인쇄 회보를 통해 우리를 계속 비난했다.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우리 운동의 역사가가 되거나 적어도 우리 운동의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 되려는 포부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내 강의가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전환점들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은 얼마든지 많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을 파고든다면, 그 등사 인쇄 회보들이 우리 운동 특히 나에 대한 비판과 비난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너무 잦아,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런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우리 운동에서 누군가가 미쳐갈 때마다, 그는 언제나 내가 어떻게 반발하든 전혀 관계없이 무조건 나를 목청껏 비난하기 시작한다. 웨이스보드도 우리, 특히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우리는 우리의 방침을 고수했다. 우리 대오 안에도 조급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웨이스보드의 처방전을 아주 작은 조직이 빠르게 세를 불릴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골방에 갇힌 사람들은 적정한 균형 감각, 분별력, 현실주의를 갖지 못하면 아주 급진적인 제안에 빠져들기가 매우 쉽다. 우리 동지 중 일부도 우리의 느린 성장에 실망해 밖으로 나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대중활동 프로그램만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혹됐다. 이런 정서가 자라나자 결국 웨이스보드는 우리 조직 안에 조그만 분파를 만들었다. 우리는 공개 토론회를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웨이스보드는 정식 회원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에게 토론회에 와서 연설할 기회를 줬다. 우리는 그 문제로 맹렬히 토론했다. 결국 우리는 웨이스보드를 고립시켰다. 그는 뉴욕에서 13명 이상을 조직하지 못했다. 이 작은 그룹은 일련의 제명과 분열을 거쳐 결국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이 문제로 토론하고 싸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엄청나게 썼다. 그러나 웨이스보드만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우리 대오 안에서 성급한 사람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시대의 어려움이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몇 주 동안 그리고 몇 달 동안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망이 싹트면서 더 빠르게 세를 키울 수 있는 방책과 비법에 대한 요구가 자라났다. 실망이 자리 잡았고, 이와 더불어 더 빨리 성장하고자 하는 계획, 무언가 마법 같은 정식에 대한 요구가 자라났다. 우리는 이를 격퇴하고, 설득해서 물리치고, 우리 그룹이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면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곳, 즉 여전히 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산주의 노동자들에게로 활동방향을 돌리게 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좌선회’하자 우리는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 좌선회는 부분적으로는 좌익반대파의 기반을 무너뜨리려고 스탈린이 기획한 것이었다. 좌선회 때문에 스탈린주의자들은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보다 더 급진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러브스톤 그룹을 ‘우파’라고 비판하며 당에서 제명했고, 당 지도부를 포스터 일당에게 넘겨주며 좌파 정책을 선언했다. 이 책략을 통해 그들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혔다. 우리 쪽으로 기울어졌으며 러브스톤 그룹의 기회주의에 반대했던 공산당 내 불만세력이 당과 다시 화해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러시아에서 스탈린 관료체제는 쿨락[부유한 농민]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서 좌익반대파의 기반이 무너져 나갔다. 러시아에서 줄줄이 모두 굴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라덱과 다른 이들은 스탈린이 좌익반대파의 정책을 채택했다는 것을 핑계로 싸움을 포기했다. 과거에 우리쪽으로 기울어졌던 수백 명의 공산당원들이 ‘좌선회’ 시기에 똑같은 인상을 받고 스탈린주의로 돌아섰던 것 같다. 당시는 좌익반대파에게 정말로 어려운 시기였다. 우리는 첫 6개월 동안 어느 정도 꾸준하게 성장해서 부푼 희망을 안고 우리의 첫 전국대회를 열었다. 그 뒤부터는 공산당으로부터 신입 회원을 조직하는 것이 갑자기 중단됐다. 공산당이 러브스톤 그룹을 제명한 다음, 환상의 물결이 당을 휩쓸었다. 스탈린주의와 화해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겐 큰 걸림돌이었다. 그 이후 제1차 5개년계획이라는 빅뉴스가 들려왔다. 공산당원들은 5개년계획에 열광했다. 그런데 5개년 계획은 원래 좌익반대파가 고안하고 요구했던 것이다. 미국 공황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이 매우 컸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은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으로 비춰졌다. 공산당은 성장해 회원과 지지자를 급속히 늘려갔다. 우리는 비판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했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의 눈에 가망 없는 분열주의자, 잔소리꾼들로 비춰졌다. 우리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혁명 운동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이 이론적 문제를 기필코 명확히 정리해야 했다. 1차 5개년계획의 성공에 매혹된 그들은 우리를 보고 말하곤 했다. 자본주의는 엉망진창이 돼가고 있는 듯한 반면, 수만 수십만의 새로운 사람들이 소련을 바라보면서 5개년계획을 지지하고 있는 바로 그 상황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기 문건을 팔에 끼고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연구하며, 토론하자고 했다. 누구도 우리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 고난기에 우리는 모든 접촉을 차단당했다. 우리 운동에서는 친구도 없고, 지지자도 없었으며, 주변부도 없었다. 우리한테는 대중 운동에 참여할 어떤 기회도 없었다. 노동자 조직에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반혁명적 트로츠키주의자라며 쫓겨나곤 했다. 우리는 실업자 집회에 대표단을 보내려고 했다. 우리가 노동자계급의 적이라는 구실로, 우리의 추천장은 거부당했다. 우리는 완전히 고립됐다. 신입 회원은 거의 없었다. 공산당과 그 거대한 주변이 우리한테는 완전히 차단된 듯했다. 그러자 새로운 정치 운동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부류 속에서 새로운 사람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만약 여러분이 또 다시 한줌의 소수로 줄어든다면, 맑스주의자들이 계급투쟁의 변화 과정에서 그랬듯이 상황이 나빠져서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나는 여러분이 조금 골치 아플 것이라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모든 새로운 운동은 ‘극렬분자’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 인자들을 끌어들이게 마련이다.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급진주의를 찾는 괴짜, 이런저런 조직에서 축출된 부적응자, 떠버리, 단골 반대파들이 고립된 우리에게 와서 “안녕하시오, 동지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반대했다. 그러나 그 흐름이 너무 거셌다. 나는 공산주의자동맹 뉴욕 지부에서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맹렬히 반대했다. 근거는 그들의 외모와 옷차림이었다. 내가 농담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미국의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에 알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 조직을 미국 노동자들의 평범한 삶과 관련 없는 별나고, 비정상적이고, 낯선 조직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내 말이 일반적으로 딱 맞았지만, 특히 이 경우엔 더 그랬다. 말쑥한 옷차림의 그 청년은 조직 안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킨 다음 결국 올러파가 됐다. 많은 사람이 공산당의 나쁜 점 때문이 아니라 좋은 점 때문에 우리한테 왔다. 즉 당 규율, 당면 활동을 할 때 당 결정에 개인이 따르는 것에 반기를 들고 우리한테 온 것이다. 운동을 취미 삼아 하는 많은 소부르주아 활동가들은 어떤 규율도 참지 못했다. 그들은 공산당을 떠났거나 제명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트로츠키주의자가 되고 싶었거나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우리 뉴욕 지부에 가입했다. 그들은 우리 조직의 규율에 대해 똑같은 편견을 갖고 들어왔다. 많은 신참자들이 민주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했다. 그들은 공산당의 관료주의를 아주 혐오했기에 어떤 권위나 규율, 중앙집중성도 없는 조직을 열망했다. 이런 사람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당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뉴욕 지부는 끝없이 토론만 했다. 나는 그들 중에서 분명한 사람을 하나도 못 봤다. 나는 괜찮은 사람을 찾아보려 했으나 결코 찾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아니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말하려고 했다. 모든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그들은 어떤 권위도, 운동의 역사에서 결정된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우상파괴주의자들이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처음부터 다시 검증하자고 했다. 공산주의 운동이 대표하는 노동자계급 전위로부터 차단당한 채, 그리고 노동자들의 살아있는 대중 운동과 접촉하지 못한 채, 우리는 우리 내부로 빠져들어갔고 그것을 감수해야 했다.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 때문에 흰머리가 이렇게 많아졌다. 나는 결코 종파주의자나 괴짜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말이 많은 것을 정치 지도부의 자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참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몹시 괴로운 이 그룹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미래 혁명정당의 이 작고 약한 중핵은 하나로 뭉쳐야 했다. 이 경험을 겪어야 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미래를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수다쟁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만약 내가 불신하더라도 그들이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에 무언가가 있다면, 내가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했던 것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는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운동은 내부적 어려움, 분열, 충돌의 시기로 불가피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우리는 매우 자주 아주 작은 것들 때문에 격렬한 싸움과 다툼을 벌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고립된 작은 운동은 결코 이런 상황을 피해갈 수 없다. 작은 고립된 그룹이 자기 안에 갇혀 자신을 짓누르는 전 세계의 무게를 느끼고, 노동자 대중 운동과 아무 접촉도 없고 그로부터 어떤 건강한 교정도 받지 못한다면 가장 나은 경우에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신입 회원들이 최상의 자질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어려웠다. 뉴욕 지부에 가입했던 많은 사람은 혁명조직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취미 삼아 운동하는 사람들이고, 무규율한 소부르주아 분자들로서 결국 혁명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운동은 계속해서 가난했다. 우리는 신문과 일련의 팜플렛을 발간하려 했다. 하지만 필요한 돈이 없었다. 우리가 얻은 돈은 모두 신문 발간비로 즉시 들어갔다. 우리한테 남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당시는 고립, 빈곤, 맥 빠지는 내부 투쟁 등으로 매우 어렵고, 진짜로 힘든 시기였다. 이런 시기가 단 몇 주 또는 몇 달이 아니라 수년 동안 지속됐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지니고 있던 모든 약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작고, 이기적이고, 충실하지 못한 모든 것이 드러났다. 나는 상황이 좋았을 때 몇몇 개인과 알고 지냈다. 이제 나는 그들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 끔찍한 시절에 나는 또한 벤 웹스터와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지지했고,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모든 인류를 해방시킨다는 원대한 프로그램과 가장 드넓은 역사적 전망을 가졌던 가장 위대한 운동이 당시에는 사소한 문제, 질투, 파벌 형성, 내부 투쟁으로 점철됐다. 가장 나빴던 것은 회원 전체가 이 분파투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면 분파투쟁 속에 담긴 중요한 정치 문제들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파투쟁이 단순히 개인적 싸움은 아니었다. 자주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말이다. 그 투쟁의 의미는 이제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그것은 1939~40년에 우리 운동 안에서 노동자계급 경향과 소부르주아 경향이 벌인 거대한, 결정적 투쟁의 전초전이었다. 1929년 시카고 대회부터 1933년까지는 내가 활동했던 시기 중 가장 혹독한 시기로, 끔찍한 고립과 그에 따른 모든 어려움이 존재했던 시기였다. 고립은 분파주의의 자연스런 서식처다. 하지만 대중운동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잔혹한 형벌이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선전 임무를 계속해나갔고, 대체적으로 상당히 잘 해나갔다. 시카고 대회에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러시아 좌익반대파의 메시지 전체를 출간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출판이 금지당한 채 쌓여 있던 모든 문서와 트로츠키가 최근에 쓴 문건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일이 유니온스퀘어[광장]에 나가서 혁명을 주장하거나, 우리를 아직 모르는 수십만 노동자 앞에 우리를 곧장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고 결정했다. 우리의 임무, 우리의 혁명적 의무는 가장 엄밀하고, 가장 집중적인 의미에서 선전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즉 이론적 문건을 출간하고 배포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우리는 중고 식자 인쇄기를 구입하고, 우리 인쇄소를 설립하기 위해 회원들로부터 돈을 모금했다. 당시에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고려해본다면, 나는 우리 인쇄소가 자본주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모든 기업 가운데 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혁명에 관심이 없었다면 순전히 사업이라는 측면에서도 우리가 상당히 훌륭한 사업가의 자격을 갖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우리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서 작업을 많이 해야 했다. 우리는 이제 막 식자인쇄 학교를 마친 젊은 동지에게 기계 운영 책임을 맡겼다. 그는 당시에 일류 기계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한 기계공이다. 뿐만 아니라 당 지도자이기도 하고 뉴욕사회과학학교의 강사진이기도 하다. 당시에 식자기를 돌리는 이 한 동지가 당 선전활동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동지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기계를 잘 알지 못했다. 그 기계는 오래된 폐물이었고, 우리가 속아서 산 중고품이었다. 기계를 돌릴 때마다 그 기계는 지친 노새처럼 작동을 멈추곤 했다. 찰리가 몇몇 장치를 조절해보곤 했다. 만약 그래도 안 되면 망치를 가지고 기계를 몇 번 내리쳤다. 그러면 다시 기계가 돌아가면서 새로운 호의 <투사>가 인쇄돼 나오곤 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우리한테는 아마추어 인쇄업자들이 생겨났다. 뉴욕 지부 회원의 절반 정도가 인쇄소에서 한두 번은 일해야 했다. 페인트공, 벽돌공, 의류공, 서점 직원인 그들 모두가 아마추어 식자공으로 복무했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사람으로 꽉 들어찬 인쇄소에서 우리는 무보수 노동을 통해 조금씩 성과를 냈다. 이것이 트로츠키주의 인쇄 공장의 비밀 전부다. 인쇄소는 다른 어떤 관점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라오 이래로 모든 노예주들이 알고 있었던 다음과 같은 비밀―노예가 있다면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을 통해 유지됐다. 우리한테는 노예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거의 아무 보상도 안 받고, 신문 편집 측면뿐만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서도 밤낮으로 일하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동지들이 있었다. 우리한테는 재정이 부족했다. 모든 결제 대금은 기한을 넘겼다. 채권자들은 돈을 즉시 달라고 압박했다. 우리가 신문 발간비를 겨우 갚고 나면, 건물 임대료를 내지 않을 경우 퇴거하겠다고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 다음 가스 요금을 급하게 내야 했다. 왜냐면 가스가 없으면 식자기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도 내야 했다. 전력과 전등이 없으면 인쇄소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있든 없든 요금을 모두 내야 했다. 우리가 바랐던 것은 대부분 임대료를 내고, 신문을 발행하고, 할부금을 갚고, 식자기 수리비를 내고, 가스와 전기 요금을 내는 것이었다. ‘고용된 일꾼’ 즉, 인쇄소에서 일하는 동지들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하는 우리 운동의 지도자들을 위해 남겨진 것은 거의 없었다. 우리 평회원들도 항상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지도부들이 감내해야 했던 것보다 크지는 않았다. 왜냐면 운동 지도부는 언제나 강한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당 지도자들은 언제나 평회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위치에 있었다. 왜냐면 그들은 귀감이 됐고, 모두가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신문이 나왔다. 팜플렛도 하나씩 인쇄했다. 각양각색의 그룹 동지들이 트로츠키가 쓴 새 팜플렛들을 후원하고 돈을 주고 신문을 샀다. 그 낡은 인쇄소에서 중국 혁명 문제에 관한 책 전체를 인쇄했다. 동양 문제를 알고 싶은 모든 동지는 뉴욕시 10번가 동부 84번지의 그 열악한 환경에서 출간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런 숱한 부정적 측면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조금 전진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예전에는 결코 알려진 적이 없던 위대한 볼셰비즘의 원칙들을 운동에 가르쳤다. 우리는 미국 노동운동에서 위대한 역할을 할 간부층을 교육시켰다. 우리는 부적응자의 일부를 걸러내고 좋은 사람들을 한 명씩 가입시켰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신입회원을 조직했다. 우리는 새로운 접촉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뉴욕 바깥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면 미니애폴리스가 그 경우다. 미니애폴리스의 우리 동지들은 나중에 노동운동 지도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 그들은 석탄야적장에서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 동안 석탄을 들어올리는 석탄 하역 노동자였다. 그것은 가장 힘든 종류의 육체노동이었다. 그들은 <투사>가 계속 나올 수 있도록 한 주에 5~10달러나 뉴욕에 있는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우리는 여러 번 신문 낼 돈이 없었다. 그럴 때 미니애폴리스로 전보를 치면, 그들이 25달러 정도를 보내주곤 했다. 시카고와 다른 지역 동지들도 똑같이 했다. 전국에서 모두 이렇게 노력하고 희생했기에 우리가 살아남아서 신문을 계속 낼 수 있었다. 가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 지지자가 우리에게 25달러를 줬다. 그때는 우리 사무실이 축제분위기였다. 우리에게는 ‘임대료 돌려막기’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필사적인 재정방책에서 최후의 보루였다. 가령 15일에 지불해야 할 방세로 30달러나 40달러를 갖고 있는 한 동지가 있다고 하자. 우리가 인쇄비나 다른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그 동지가 우리에게 10일에 돈을 빌려준다. 그 다음 5일 후에 우리는 두 번째 동지의 방세를 빌려서 첫 번째 동지가 제때 집주인에게 방세를 내도록 돈을 갚는다. 그러면 두 번째 동지는 자기 집주인에게 방세 내는 것을 이러저러한 구실로 늦춘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두 번째 동지에게 돈을 갚기 위해 다른 동지의 방세를 빌린다. 이런 상황이 언제나 계속됐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동자본을 확보했다. 당시는 매우 잔인하고 어려웠다. 그 시기를 통과하고 살아남았던 것은 우리가 우리 강령을 믿었고, 트로츠키 동지와 우리 국제 조직들이 우리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의 저작과 편지들은 우리를 고무했고, 우리가 이론과 정치적 이해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국제서기국의 개입은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우리는 그들의 조언을 구했고, 그들이 조언하면 거기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만큼 분별력이 있었다. 국제적 협력(‘국제주의’란 바로 이런 의미다)이 없다면 이 시대에 한 정치 그룹이 살아남아서 혁명노선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그런 국제적 협력 덕분에 우리가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었고, 우리 조직을 굳게 뭉치게 만들 수 있었으며, 준비된 상태로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다음 강연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기회가 왔을 때 우리가 준비돼 있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고립과 정체의 장벽에 첫 번째 틈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분파주의 서클에서 벗어나 그 틈을 비집고 뛰쳐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정치적 노동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러시아에서 굴복이 일어나고, 전 세계 노동자들이 사기저하에 빠져 있던 시절에, 강령을 명확하게 만들고 용기를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패배에 뒤이어 다른 패배가 전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많은 이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뭘 해야 하지? 무언가를 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사태가 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끈기! 끈기! 끈기!” 이 기사는 라덱과 다른 이들이 굴복한 뒤 사기저하가 널리 퍼지고 있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버티고 서서 끝까지 싸우는 것. 그것은 혁명가의 수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그들이 아무리 고립돼 있을지라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균열이 일어날 때까지 버티고 맞서 싸우라, 그러면 모든 기회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1933년까지 버텼다. 그 뒤에 우리는 여명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 나라의 정치 지도 위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다음 강연에서 나는 그 점을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존경하는 위원님 여러분 그리고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농정해양위원회 위원장 김인영 위원입니다. 먼저 지역구 의정활동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신 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음에도 연일 1일 확진자가 2,000명 내외 규모로 코로나19 감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의회뿐 아니라 공직자 여러분들께서도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 주시기 바라며 회의진행 시에도 방역에 솔선수범해 주시기 바랍니다.\n안건 상정에 앞서 위원회 예산심의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산안 심사는 농정해양국, 축산산림국, 농업기술원 순으로 각각 제안설명과 질의 답변의 시간을 갖고 계수조정 활동을 한 이후 농정해양위원회 소관 예산안을 모두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는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여 요구된 사업인 만큼 심도 있는 심사와 관계공무원 여러분의 성실한 답변을 당부드립니다.\n안건 상정에 앞서 지난 8월 25일 새로 취임한 안대성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님은 나오셔서 위원님들께 인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 안대성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의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 안대성입니다. 존경하는 김인영 위원장님을 비롯해서 농정해양위원회 위원님들 만나뵙게 돼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n(인 사)\n경기도에 이렇게 들어오게 되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단순한 하나의 광역지자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자 대한민국의 심장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중 경기도의 농정과 먹거리 전략을 책임지고 수행하고 있는 이 기관의 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있고요. 또 우리 위원님들께서 따뜻하고 격려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편안하게 잘 연착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도의회의 의원님들과 끊임없이 현장에서 소통하고 또 도 농정당국과 토론하면서 경기도 농정이 대한민국의 농정을 선도할 수 있는 최선두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인사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경기도 농수산업과 농어촌 발전을 위해 안대성 원장님의 헌신적인 역할을 당부드리며 도의회와도 적극 소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1.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경기도지사 제출)\n- 농정해양국, 축산산림국, 농업기술원\n2.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경기도지사 제출)\n- 농정해양국\n(10시12분)\n○ 위원장 김인영 그러면 의사일정 제1항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과 의사일정 제2항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일괄 상정합니다.\n그러면 먼저 안동광 농정해양국장 나오셔서 농정해양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하여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안녕하십니까? 농정해양국장 안동광입니다. 경기도 농정해양 발전을 위한 김인영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2021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과 예산안 제출 이후의 수정내용 그리고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순서로 보고드리겠습니다.\n제안설명에 앞서 농정해양국 간부공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김영호 농업정책과장입니다.\n(인 사)\n황인순 농식품유통과장입니다.\n(인 사)\n김기종 친환경농업과장입니다.\n(인 사)\n김성곤 해양수산과장입니다.\n(인 사)\n박종민 친환경급식지원센터장은 생활치료센터 파견근무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n이상우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입니다.\n(인 사)\n김두식 종자관리소장입니다.\n(인 사)\n이어서 공공기관장을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까 인사한 바 있습니다만 지난 8월 25일 신규 임용된 안대성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입니다.\n(인 사)\n이상 간부소개를 마치고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n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은 중앙부처 신규ㆍ변경내시에 따른 국고보조사업과 먹거리 광장 조성, 고교 학교급식비 지원, 경기창업준비농장 등 192억 원을 추가 반영하였습니다.\n먼저 533쪽 세입예산입니다. 농정해양국 소관 세입예산안은 4,238억 2,100만 원으로 국비 변경내시에 따른 국고보조금 증감액과 보조금 반환 수입 등을 반영하여 기정액 대비 553억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37쪽 세출예산입니다. 농정해양국 소관 세출예산안은 7,140억 6,000만 원으로 기정액보다 192억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부서별 세부내역입니다.\n538쪽부터 540쪽까지 농업정책과 세출예산입니다. 801억 2,200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39억 7,900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n538쪽입니다. 코로나19로 부족한 농촌인력 지원을 위한 긴급인력 파견근로 사업에 2억 2,5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39쪽입니다. 외국인 근로자 주거지원 사업에 8억 1,000만 원을 성립전 및 증액 편성하여 108개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한 예비 창농인에게 제공하는 경기창업준비농장 사업을 기존 70동에서 20동을 추가 설치하기 위한 예산 4억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경기도 먹거리 광장 조성 사업은 지난 7월 지방재정 투자심사 절차를 통과하여 특별교부세 10억 원을 포함한 총 24억 8,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40쪽입니다. 지역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해 지역 단위 푸드플랜 안전, 품질관리 지원에 3,000만 원을 성립전예산으로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41쪽부터 542쪽까지는 농식품유통과 소관 예산입니다. 농식품유통과 세출예산안은 319억 2,400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5억 7,2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41쪽입니다. 국비지원 사업인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과 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이 농식품부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이에 각각 2,400만 원과 2,5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542쪽입니다. 노후화된 수원 농산물도매시장 시설현대화 지원 사업에 3억 8,7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사전 대응 강화를 위해 농수산물 원산지표시 감시원을 현행 129명에서 199명으로 70명을 증원하고 이에 대한 예산 1,6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으로 543쪽부터 545쪽까지 친환경농업과 소관 예산안입니다. 친환경농업과 세출예산안은 3,245억 8,800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32억 4,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43쪽입니다. 2018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실시한 논 타작물 지원 관련 3개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28억 2,4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544부터 545쪽입니다. 4월 이상저온에 따라 사과와 배 등의 꽃눈이 고사되어 이에 대한 피해복구비로 4억 8,8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버섯배지관리센터 지원 사업 공모에 여주시가 선정되었습니다. 따라서 3억 5,4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 상습 침수지역 배수시설을 설치하여 농경지 침수예방을 위한 배수개선 사업에 국비를 추가 확보하여 49억 5,2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46쪽부터 547쪽까지는 해양수산과 소관 사업 예산안입니다. 해양수산과 세출예산안은 605억 1,600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5억 7,8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46쪽입니다. 지난 5월 어촌 유휴시설 리모델링으로 수익사업에 활용하기 위한 어촌 유휴시설 활용 해드림 사업에 1억 5,0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 고령어업인 노후를 보장하고 어촌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경영이양직불제 사업에 2억 500만 원을 성립전예산으로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47쪽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어가 한시경영 지원을 위해 8,100만 원을 성립전예산으로 편성하였습니다. 또한 풍도 해안도로 제방정비공사 사업비 잔액 4억 2,500만 원을 감액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정비가 시급한 육도 마을도로 정비공사에 4억 2,5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548쪽부터 549쪽까지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소관입니다.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세출예산안은 2,083억 1,500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106억 4,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48쪽입니다. 2021년 상반기 학교급식 축소에 따라 친환경 우수농산물과 G마크 우수축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은 54억 3,9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학교급식 중단으로 농가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접경지역 친환경농산물 397t을 군급식에 지원하기 위한 예산 4억 8,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고 유기농산업복합센터 조성사업에 국비 5억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49쪽입니다. 하반기 학교 정상등교에 대비하여 도교육청 고등학교 급식비 지원 예산 151억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50쪽 해양수산자원연구소 소관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사전 대응을 위해 수산물 안전검사 체계 구축 방사능 검사 관련 장비 구입비 예산 2억 7,000만 원을 신규로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이 도의회에 제출된 이후 추가 변경내시된 국고보조사업과 재원변경, 도비 매칭사업 등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추가 예산안 설명자료를 제출해 드렸습니다. 그 자료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자료 3쪽입니다. 추경예산안 제출 이후 국비 추가 교부, 변경사업 등 총 9개 사업 30억 원이 증가하였습니다. 주요내용으로는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주거 지원 108개소 상담관리 및 실태조사를 위한 9,0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고 사업량 증가에 따라 국고보조사업 기초생활 거점 조성과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각각 2억 5,000만 원과 5억 원을 증액하였습니다.\n4쪽입니다. 긴급 가뭄피해 발생 우려 지역을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한발 대비 용수개발사업에 16억 8,7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 또한 유기농산업복합센터 조성 사업에 대한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투자심사가 8월 20일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도비 매칭 5억 원을 증액 요청드립니다.\n사업별 구체적인 내용은 서면으로 보고드리고 계속해서 53쪽 계속비 사업 조서입니다. 유기농산업복합센터 건립 사업에 대한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통해 사업비가 변경되어 총사업비를 170억 원으로 변경하였습니다.\n다음은 21년도 제3회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별도로 배부해 드린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책자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농정해양국 소관 기금은 농업농촌진흥기금 농업발전계정으로 49쪽부터 58쪽까지입니다.\n먼저 52쪽입니다. 2021년 말 기준 기금 총 조성규모는 1,365억 원입니다.\n54쪽 수입계획입니다. 수입계획은 664억 3,000만 원으로 2020년도 결산에 따른 초과 예치금을 반영하여 예치금 회수 104억 8,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5쪽 지출계획입니다. 지출계획은 664억 3,000만 원으로 학자금 지출계획 변경에 따라 농업인 자녀 대학생 학자금 이자 등 지원사업 2억 2,0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 또한 하반기 융자금 추가 수요를 반영하여 시설자금 및 경영자금 44억 1,3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고 예치금 회수 및 지출계획 증감 계획에 따라 도금고 예치금 62억 8,7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이상으로 농정해양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n경기도의 농어업 발전을 위해 애써 주시는 김인영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산심의 과정에서 위원님들께서 제안하고 지적해 주신 의견은 도정에 적극 반영하여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촌 현장의 목소리를 더욱 경청하고 경기도 농어촌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김인영 안동광 농정해양국장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검토보고 순서입니다.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검토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김호원입니다. 농정해양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계속비 사업 조서 변경안,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한 검토보고를 드리겠습니다.\n보고서 1페이지입니다.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 수정안 규모는 37조 5,676억 원이며 일반회계는 33조 6,029억 원으로 기정예산액 대비 17.7%가 증가되었습니다.\n이 중 농정해양위원회 소관 예산안은 1조 1,432억 원으로 기정예산액 1조 1,048억 원보다 3.5%가 증가되었으며 이는 도 일반회계의 3.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21년도 농정해양위원회 소관 본예산 규모는 도 일반회계의 3.98%였습니다.\n다음은 2페이지 농정해양국 소관 예산안 규모입니다. 세입예산안은 4,238억 2,000만 원으로 기정예산액 대비 553억 1,700만 원이 증가하였습니다. 세출예산안은 기정예산액 6,948억 6,400만 원보다 191억 9,600만 원이 증액된 7,140억 6,000만 원입니다.\n다음은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각 부서별, 과목별 세입예산안은 표4와 표5와 같으며 세외수입 및 국고보조금 등 553억 1,700만 원 증액은 자체보조금 반환 수입 및 국비 내시변경 등에 따라 증액을 반영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금번 세출예산안 증액분은 191억 9,600만 원으로 자체재원은 128억 9,300만 원, 의존재원은 63억 300만 원 증가하였습니다.\n5페이지 국고보조사업은 표7과 같이 총 24개 사업에 61억 1,9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습니다. 금회 추경에 국가로부터 용도가 지정되어 성립전예산으로 집행 후 추경예산에 편성한 사업은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주거 지원 등 7건에 11억 800만 원으로 전액 교부 완료하였습니다.\n다음은 8페이지 도 자체사업으로 총 19개 사업에 130억 7,7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으며 주요사업에 대한 증감액 사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경기창업준비농장은 농업분야 창업 예비 희망자들을 위해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교육대상자로 선정되면 전액 도비로 지원되는바 무조건적인 전액 지원보다는 자부담을 일부 적용하여 책임성을 강화하고 우수한 교육생에게는 심화교육과정 등 차별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교육수료 후 대략 50% 정도의 인원만 귀농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교육수료 이후 초기 귀농 또는 창농 정착 단계에서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의 연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먹거리 광장 조성 사업은 지난 2회 추경 시 투자심사를 받지 않아 편성하지 못했던 사업인 만큼 투자심사 조건부 의견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쳐 향후 사업추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접경지역 친환경농산물 군급식 사업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학교급식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환경농가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학교급식용 친환경농산물을 군부대에 우선 납품하고자 하는 사업으로 국방부, 군납조합 등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방안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n다음 9페이지 도교육청 고등학교 급식비 지원 151억 원은 하반기 고교생들의 정상등교 예상에 따른 교육청의 편성 요청에 따라 추경에 반영하였으나 교육청에서 무상급식비 예산액 중 교육비특별회계 미집행 예산을 활용하여 유치원, 초ㆍ중ㆍ고 학생들에게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교육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로 지난 8월 19일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금회 추경에 요구한 고교 급식 151억 원 중 실소요 예산은 54억 원으로 97억 원은 감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n다음은 11페이지 계속비 사업 조서 변경내역입니다. 경기도 광주지역 유기농산업복합센터 조성사업은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조사 용역을 통해 부지면적 축소에 따른 사업비가 재산출되어 10억 원을 감액 반영하였습니다. 한편 금번 추경에 시행계획 수립 등을 위해 국비 5억 원을 반영하였으나 국비사업의 지방비 매칭에 따라 도비 5억 원도 추가 편성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n다음은 12페이지 경기도 농업농촌진흥기금 운용계획 변경안입니다. 금번 변경안은 도금고 예치금 회수에 따른 104억 8,000만 원의 수입을 계상하여 농업인의 수요가 많은 시설자금 및 경영자금은 44억 1,300만 원 증액하고 농업인 자녀 대학생 학자금 이자 지원은 2억 2,000만 원 감액하는 한편 나머지 62억 8,700만 원은 원활한 기금운용을 위해 도금고 예치금으로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농업인 자녀 대학생 학자금 이자 지원의 경우 한국장학재단의 농촌 출신 대학생 학자금 융자와 중복되어 2020년부터 신규 지원대상자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전체 지원사업에 대한 수요파악 등 분석을 통해 농업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에 적기 지원되도록 탄력적인 기금운용방안 마련이 요구됩니다.\n이상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 제3회 추경 및 기금운용계획 변경안(농정해양국))\n○ 위원장 김인영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 답변에 앞서 필요한 자료가 있으신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안동광 농정해양국장은 발언대로 나와 주시기 바라며 질의 답변은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하여 일문일답 방식으로 진행하되 질의 답변 시간은 기본 10분, 보충질의는 5분 이내로 하겠습니다. 보충질의가 끝난 후 추가하실 위원님이 계실 경우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원님들의 질의 사항 중 국장의 답변이 어려울 경우 소관 업무 과장이 답변해도 좋습니다. 다만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은 후 소속과 직ㆍ성명을 밝히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그러면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용복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진용복 위원 안녕하세요? 용인 출신 진용복 위원입니다. 국장님, 고생이 많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어서 몇 가지 여쭤보겠는데요.\n3회 추가경정예산안 세입ㆍ세출 설명서 89쪽이요. 89쪽을 보면 논 타작물 재배 지원, 국비 지원사업이 있어요.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있습니다.\n○ 진용복 위원 이것이 보니까 18년부터 20년까지 3년 동안 계속했던 사업, 맞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런데 지금 3회 추경에서 전액 감액을 요청해 왔는데요. 감액 주요 이유가 뭔지 그것에 대해서 간단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농정해양국장 안동광입니다. 존경하는 진용복 위원님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 이 사업은 국비사업인데요. 국가에서 18년부터 20년까지만 논에서 벼 대신에 타작물, 콩이나 이런 걸 하게 되면 지원해 줬었는데 한시적으로 하고 나서 종료가 되었습니다, 20년까지만 하고. 종료가 됐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반환하는 그런 사업이 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러면 이 사업을 한 목적은 쌀 과잉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했던 사업이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러면 이 문제가 지금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해소가 돼서 이 사업이 일몰된 사업인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국가에서는 위원님 아시는 것처럼 벼가 너무 많이 재배가 되게 되면 가격이라든지 이런 문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쌀 가격도 어느 정도 상승됐고요. 그런 부분에 또 부작용으로는 사실은 저희 경기도보다는 지방에서는 첫해에는 논 타작물을 재배했다가 보조금을 받고 그다음에 요즘 쌀 가격이 좋기 때문에 다시 논을 재배하는 이런 문제들도 좀 있어서 종합적인 판단하에 종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n○ 진용복 위원 지금 제출한 자료를 보니까 이것이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산업과에서 2021년 2월 10일 날 서류가, 경기도로 통보를 보내왔습니다.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진용복 위원 지금은 9월이고 3회 추경입니다. 시차적으로 봤을 때 2월 10날 통보를 받았으니 4월 2회 추경 때 이것의 감액사유가 분명히 있는데, 이 절차를 밟았어도 되는데 그때 안 밟은 이유가 분명히 무엇인지 한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2월 달에 왔고 사실은 조금 빨리한다 그러면 지난번 추경 때 반환할 수 있었는데요. 저희 입장에서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혹시 농림부에서 기준이 바뀐다든지 아니면 사정변경 등의 사유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지켜보다가 최종적으로 정리가 된 게 확정이 돼서 저희가 조금 늦게 반납을 하게 되었습니다.\n○ 진용복 위원 아니, 그거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도 국가에서 공문을 통해서 이 사업은 일몰사업이다라고 공문을 통보해 왔는데도 지금 국장님께서는 중앙정부에서 사업에 또 변동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의해서 지금 4월 2회 추경에 감액을 하지 않고 9월까지 기다린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런 가능성을 좀 염두에 둔 것이고요. 위원님 말씀처럼 일찍 반납했으면 좋았습니다만 실무적으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는 측면이 있었습니다.\n○ 진용복 위원 한편으로는 제가 어떻게 생각했냐면 한 1억 7,400여억 원 정도의, 불용이라 하면 감액한 거잖아요. 만약에 이거보다도 더 큰 많은 예산이었다면 이렇게 행정적으로 느긋하게 반납처분을 했을까라는 의문도 갑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을 하실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지적 타당하신 지적이십니다. 지적이신데 저희 같은 경우 어쨌든 국비를 받은 사업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그런 과정을 거쳤었는데 위원님 말씀처럼 사실 조금 일찍 정리했다면 타 사업으로 쓸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렇죠. 우리 농정해양국에서도 아무리 적은 예산이라도 불요불급하게 예산이 필요한 사업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적재적소에 예산이 투입됐으면 어땠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한번 지적을 해 봤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라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리고 같은 사업설명서 책자 139쪽을 보면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이 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사업은 G마크 우수축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이 있어요.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페이지 수 제가 정확하게 못 들어서…….\n○ 진용복 위원 139쪽하고 142쪽이에요. 이런 두 가지 사업이 있는데 지금 지난 1월 달에 창궐한 코로나19로 인해서 모든 행정도 그렇고 모든 국민의 삶도 그렇고 아마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진용복 위원 코로나19가 우리 곁에서 잠시 머물다 우리가 헤쳐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2년 가까이 지금 코로나와 같이 동행을 하고 있는데요. 그때 2020년도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가 창궐을 했기 때문에 대비가 안 돼서 그렇다손 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사업비 집행률을 보면 2020년도에 69%예요, 전년 대비가 그런데.\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가 준비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다 십분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75% 그래서 사업을 지금 3회 추경에서 얼마예요, 40억 정도를 반납하는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도비, 시군비까지 80억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있는 142쪽에 또 똑같아요, 거기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축산물 부분에 또 14억이 있습니다.\n○ 진용복 위원 72%가 집행률인데 올해는 75% 해서 또 반납을 하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정말 코로나19임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을 위한 정책을 진짜 밤낮으로 힘써 주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더 세심하게 대처를 했으면 이렇게 큰 예산이 불용되지 않았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을 해 줄 수 있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지적해 주신 것처럼 저희가 100% 집행을 못 한 부분에 있어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결국 교육청에서, 교육부에서 학교 등교일수를 어떻게 정하느냐인데 저희가 그 부분에 있어서 사실은 작년에 전체적인 예산을 편성하면서 올해는 그래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갑자기 확산되고 이런 부분이 있어서 저희가 부득이하게 그런 부분이 있고요. 물론 저희가 조금 더 세심하게 살폈으면 좋았겠습니다만 저희가 예측하지 못한 외생변수가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성실한 답변 감사드리고요. 제가 이 2건의 사업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도 제가 이 말씀을 선제에 드린 것은 145쪽 접경지역 친환경농산물 군급식 지원사업이 있어요.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저는 그래서 이 사업은 코로나19에서 학교라는 매개체가 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생긴 거죠. 그래서 경기도가 접경지역의 친환경농산물의 지원을 위해서 우리가 군부대에, 경기도는 특이하게 접경지역이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사업을 정말 잘했다라는 것을 칭찬 좀 드리려고 서두에 길게 늘어놨던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고맙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래서 좀 아쉬운 것은 앞에서 두 가지 사업에 불용이 이렇게 많은데 이왕이면 접경지역에 있는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봤어요. 그래서 친환경농수산물을 좀 더 많이 지원해 주는 그런 사업을 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국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계룡대에서 부실급식 의혹에 대해서 국방부가 그냥 정상적으로 제공했다는 해명을 했는데요. 이게 2021년 5월 17일 날이에요.\n(사진을 들어 보이며)\n그래서 그 제보를 한 장병은 이렇게 도시락에, 진짜 너무나 부실하죠. 이런 도시락을 급식받았다라는 제보를 했었고 그러면서 또 그 사진에는 다른 부대죠. 수송대대, 군사경찰 등등에는 굉장히 충실한 급식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봤을 때 농수산물만 아니라 축산물도, 우리 국에서 직접 하지 못하면 다른 타 부서와 같이 연계를 해서라도 축산물 그리고 농수산물을 더 확대할 의향은 없는지. 지금 예산 4억 추경으로 들어온 거에서 우리 상임위원회에서 증액을 요구한다면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저희도 많이 늘렸으면 좋겠습니다만 이게 군부대하고 협의 같은 것들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저희가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만큼 늘렸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그다음에 축산물 같은 경우에는 조금 시스템이 틀리고 지금 공급량이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이 좀 있어서 그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아직 군부대하고 계속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공급량하고 그다음에 시스템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n○ 진용복 위원 그래서 이 4억 8,000만 원 예산 편성할 때는 군부대와는 사전에 다 깊숙한 논의가 있었던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큰 틀에서 어느 정도는 다 협의가 되어서 추진하는 사항입니다.\n○ 진용복 위원 누구나 다 수동적으로 하면 이런 사업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장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능동행정을 펼쳐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가능하면 더 확대할 수 있으면 확대하는 방안도 한번 모색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내년도에 확대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을 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이상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진용복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박근철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박근철 위원 박근철입니다. 먼저 반갑습니다. 코로나가 계속 아주 상당히 유지가 되고 있어요. 국장님,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과거부터 돌아가면서 이 예산에 대한 얘기를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기준 들고 2021년의 예산을 짤 때 우리 후반기 농정위 위원님들이 많은 고심과 노력 끝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021년도 농정위 예산을 상당히 많이 증액시켰죠. 제가 알기로는 역대 이래 처음으로 많이 시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n○ 박근철 위원 이번 2021년도 예산이 얼마나 되죠, 농정국 예산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농정 전체가 1조, 이번에 추경까지 다 합해서 1조 1,432억 원 정도 됩니다. 축산하고 농업기술원까지 합해서요.\n○ 박근철 위원 그러면 몇 %가 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한 3.4~3.5% 정도 될 것 같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 정도면 어떻다고 봐요? 우리 경기도의 농업인구에 비해서 전국 대비 하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인구 대비로 친다고 그러면 농업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적다고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농업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러면 계속해서 늘려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n○ 박근철 위원 그렇죠. 사실 저희가 올해 예산을 짤 때 충분히, 코로나19가 일정 정도 농업인들에게, 농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계속 유지가 됐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렇지만 거기에 대비를 저희들도 못 했고 우리 농정국도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미스가 있는 건 사실이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추가로 지금 추경예산 1차ㆍ2차를 겪으면서 과거에 비해서 얼마나 예산이 늘었나요, 추경에? 전년 대비.\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전년도에 비해서요?\n○ 박근철 위원 추경예산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추경만으로는 제가 분석을, 지금 정확하게 기억을 못…….\n○ 박근철 위원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본예산이야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추경예산은 그때그때 맞춰서 예산을 짜야 되는 부분이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러니까 거기에 맞는 것이 과연 필요조건으로 그때그때 잘 짜여져 있는가를 우리가 한번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거를 한번 고민 좀 해 봐 주십사, 제가 여기서 뭔가 옳다 그르다로 표현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본예산을 짜는 것은 1년 전체를 밑그림을 그리고 짜는 거지만 추경예산은 현실에 맞게 그때그때 맞춰서 짜야 되는데 제가 이 자료를 보면서 그냥 국비내시에 맞춘 것 외에는 자체적인 것이 별로 보이지가 않아요.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거고 거기에 맞는 걸 한번 앞으로 추경을 짤 때는 본인들 고민들, 우리 집행기관들의 고민들도 중요하고 그리고 여기 계신 관련 위원님들하고도 검토가 한 번도 없어서 추경을 짜기 전에 위원장님이나 또 위원님들과 한 번쯤 이런 검토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현실적인 부분들을 같이 고민하고 또 산하기관하고도 그런 고민들을 해서 관련돼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제 말 무슨 말씀인지 이해 가시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럼 오늘 올라온 자료부터 제가 궁금한 것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올해 더불어민주당 교섭단체의 정책사업 중에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 급식 관련돼 있는 사업이죠. 그건 우리 국장님 잘 아시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어쨌든 이 급식에 관련돼 있는 것을 이제는 아이들의 교육의 급식이 아니라 아이들 건강에 관련돼 있다. 아이들도 이제는 하나의 사람으로 봐야 된다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고 그 아이들을 한 사람으로 본다면 이제는 이것도 도가 어느 정도 아이들의 건강도 책임을 져야 된다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인건비와 급식비는 분리돼야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집행기관도 일리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부분 약속을 지켜 주신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꼭 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립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 측면에서 제가 하나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친환경급식지원센터의 사업 중에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에 대한 부분이에요. 이 사업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설명 좀 해 주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이 부분이 학교 초ㆍ중ㆍ고 학생들에게 우수한 친환경, 건강에도 좋고 우수한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그런데 위원님 아시는 것처럼 친환경농산물이 단가가 조금 더 높습니다. 그래서 그 차액을 저희가 지원해 주는 사업이 친환경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사업이고요. 그 뒤의 우수축산물도 같은 개념에서 저희가 우수농산물에 있어서의 지원을 해 주는 사업입니다.\n○ 박근철 위원 조금 조정이 됐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이게 왜 이렇게 조정이 됐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작년에 예산을 편성하면서 금년부터는 사실 아이들이 100% 등교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저희가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위원님, 올해 상반기 같은 경우에 사실 다 등교를 못 해서 저희가 볼 때 한 75%만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차액 남는 부분을 부득이하게 감액하게 되었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 감액한 돈은 어떻게, 감액한 돈은 뭐예요? 아예 그냥 없애는 거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감액한 돈은 저희가 농업에서는 다른 쪽에 예산도 많이 세우기는 했고요. 창업준비농장이나 그런 것들을 좀 세웠고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유치원 아이들에게 지금 건강과일 쓰잖아요, 알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유치원 건강과일은 저희 예산은 없고요. 아마 교육청…….\n○ 박근철 위원 아니, 그러니까 교육청에만 쓰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교육청에서…….\n○ 박근철 위원 그게 공립 아이들 쓰고 있는데 어쨌든 공립 아이들 쓰는 부분 말고 사립 아이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걔들도?\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도 필요성에 공감은 하고 있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 아이들이 비교가 됐을 때 그런 차이를 좀 지원해 줘야 되지 않을까요, 이런 측면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급식 추세에 따른 감액된 금액을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도가 했으면 어떨까, 어차피 그런 차원이라면.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런데 위원님, 그게 아시는 것처럼 저희도 유치원이라고 해서 건강과일이나 이런 부분이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라는 위원님 생각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원 주체가, 관리 주체가 유치원은 교육청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교육청하고 충분히 논의가 되고 나서 해야 될 것 같습니다.\n○ 박근철 위원 아니,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해 줄 수 없더라도, 인천이나 다른 지역은 해 주고 있거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런데 그런 기준을 자꾸만 교육청에 전가시키는 것은 이제는 우리도 안 하면 어떨까.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아이들의 먹거리를 갖다가 교육으로 자꾸만 넘기지 말고 이제는 그런 부분들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야 되지 않을까 말씀드리고 지금 이 급식이 일정 정도 감액된 부분들도 그런 부분들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좀 도와주면 어떨까라는 말씀으로, 제가 그런 측면에서 조금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 우리 기관에서.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 부분은 저희가 정확하게 여기서 답변은 못 드립니다만 실무적으로 저희도 고민하고 있고…….\n○ 박근철 위원 그러니까 고민을 한번 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린 거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고민하고 검토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n○ 박근철 위원 또 하나는 고등학교 급식에 대한 것도 우리 전체에 묶여가는 것에 대해서 같이 갈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고등학교도 저희가 교육청에 줘야 되는데요. 초등학교, 중학교는…….\n○ 박근철 위원 그러니까 전체 묶을 때 같이. 그러니까 초등학교부터, 유치원부터 급식비하고 인건비 분리할 때 하나로 묶어서 같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초ㆍ중ㆍ고는 일단 같이 가야 되니까요.\n○ 박근철 위원 아니, 그러니까 초ㆍ중ㆍ고는 같이 가는데 유치원하고 묶을 때 같이 하나로 묶을 거지요? 그렇게 제안을 하실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같은 경우도 초ㆍ중학교와 같이 대표의원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급식비하고 인건비는 당연히 구분이 돼야 되고요. 그러한 큰 전제 하에서 같이 검토돼야…….\n○ 박근철 위원 그런 측면에서 제가 고등학교 급식비에 대한 것을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서 분리를 시키자. 이것이 지금 현재 제일 필요한 조건이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박근철 위원 교육청이나 우리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봤을 때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박근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정승현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정승현 위원 정승현입니다. 설명서 56쪽이요. 경기창업준비농장 관련 사업이 있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당초 70동에서 이번에 20동을 더 늘려서 지금 4억을 추가해서 올렸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20동을 더 늘린 배경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보통 일반분들은 농업이라는 것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이고 고도의 교육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창업준비농장을 해 보면서 그런 실습을 충분히 하고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창농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저희가 이 사업을 하게 됐고요. 올해 이것을 해야 저희가 시설하우스 같은 것을 설치하고 내년 초부터 교육을 할 수 있게 돼서 이번 추경에 편성을 하게 되었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니까 이것은 내년을 대비해서 지금 추가로 20동을 설치한다는 얘기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 지금 시설을 해야, 시설 설치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n○ 정승현 위원 그럼 지금 현재 70동은 잘 운영이 되고 있는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상당히 잘 운영되고 있고 만족도도 높고요. 그다음에 귀농하는 비율도 굉장히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n○ 정승현 위원 기본적으로 지금 1년간 무상으로 지원을 하고 사업성과랄지 여러 가지 기여도를 봐서 2년간 연장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지요, 그렇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보통 2년간 더 연장해서 주는 기회는 몇 % 정도 되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퍼센티지는 제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합니다만 대부분 2년 연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목별로 사실 1년에 성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음 해까지 지켜봐야 하는 작목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선택하신 작목에 따라 틀립니다만 대부분 연장을 원하고 계십니다.\n○ 정승현 위원 지금 창농 여기에서 경험을 쌓고 실질적으로 귀농ㆍ귀촌해서 영농을 하고 있는 백데이터는 혹시 확인해 보셨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저희가 수료자가 142명인데요, 여태까지. 그중에서 확실히 귀농을 하신 분들은 78명이십니다. 그래서 55% 정도 되고 46명 정도는 준비 중이어서 그것까지 합하게 되면 한 87% 정도가 귀농을 하셨거나 귀농을 준비 중입니다.\n참고로 이게 사실은 저희가 볼 때 스타트업 같은, 기업에 있어서 창업하시는 분들 지원하는 것과 비슷한 걸로 보시면 되는데요. 창업 정확한 데이터는 기억을 못 합니다만 창업을 했을 때, 실제 교육받고 창업하는 비율은 20%, 30%도 안 됩니다. 그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다고 보시면 됩니다.\n○ 정승현 위원 여기서 지금, 그러니까 최소 1년에서 3년이잖아요. 이거 하고 난 이후에 계속해서 관리가 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분들끼리 저희가 동호회랄까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서로 수료하신 분들이 가서 또 강의도 해 주시고 멘토가 되기도 하시고요. 그런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그러니까 70명이 다 차지 않았을 때, 내년 같은 경우에는 90명이겠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90명이 다 차지 않았었을, 올해 경쟁률이 몇 대 몇 정도 됐었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1.5 대 1에서 2 대 1 정도 됩니다.\n○ 정승현 위원 1.5에서, 내년은 그럼 20명 정도가 더 충당이 된다라고 그렇게 지금 보고 있는 거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런데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가지 성과랄지 그런 것들을 통해서 2년 더 연장을 했을 경우에 그분들을 제외한 나머지만 모집을 하는 건가요? 내년에 그러니까 90명을 다 한다라고 볼 수 없는 거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연장하시게 되면 그분들을 뺀 나머지 쿼터를 하게 됩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면 아까 국장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대부분이 다 연장을 하고 있다라면 실질적으로 내년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20명 남짓 정도 된다고 봐야 되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런데 그 전부터 2년 차이신, 그러니까 올해가 2년 차이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순수하게 작년에 하신 분들이 다 처음부터 하신 분들은 아니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2년 차이신 분들도 있고 1년 차이신 분들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비율은 좀 높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 사업을 언제부터 하게 됐던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2016년부터 시작했습니다.\n○ 정승현 위원 2016년부터. 앞으로 계속해서 이것은 진행할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는 이게 경기도의 대표적인 창농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님. 그래서 늘려가야 된다고…….\n○ 정승현 위원 지속적으로 하시겠다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제가 이걸 왜 여쭤봤냐면 아까 소위 말하는 귀농ㆍ귀촌율이 지금 약 50~55% 정도 되고 나머지는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데 실질적으로 이 사람들이 여기서 경험하고 돌아가서 귀촌ㆍ귀농활동을 하고자 하더라도 여러 가지 자금 사정 때문에 실질적으로 경험을 살리지 못하는 그런 사례들이 지금 많이 있는 것으로 그렇게 파악이 되거든요. 그렇다라면 여기서 1년에서 3년 동안 경험했던 것 또 여기에 보통 1인당 한 3,000만 원 정도가 투입되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시설비까지 포함해서 그 정도 됩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니까 이렇게 투입해서 교육을 시키고 나가는데 실질적으로 이분들이 막상 영농생활을 하려고 하다 보면, 직면했었을 때 여러 가지 예산상의 이유로 사업을 바로 시작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다라는 것들이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는 지적이십니다.\n○ 정승현 위원 그래서 선발할 때 이 이후에도 충분히 이 사업들을 지속해서 영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금 사정이랄지 그런 것들도 좀 감안해 볼 필요가 있겠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 위원님.\n○ 정승현 위원 그런 부분들을 한번 좀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사업이 정말 헛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귀농해서 이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영위될 수 있도록 하자라는 취지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위원님, 그렇게 저희가 준비하고 있고요. 사실 가장 큰 고민이 위원님 말씀하신 것처럼 경기도 같은 경우 지가가 높기 때문에 실제 창농을 하는 데 비용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소모가 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가 계속 보완책을 만들고 있습니다.\n○ 정승현 위원 하려고 하더라도 지가상 여러 가지 그게 높은 단가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땅 구매를 못 하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다 보니까 지금 이 사업을 못 한다라는 것들이지요.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셔서 하여튼 선발할 때 좀 엄중해서 선발했으면 좋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리고 먹거리 광장 조성 사업 관련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이게 지난번에 예산 올라왔었을 때 지방재정 투자심사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해서 사실 예산편성을 못 했던 부분이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조건부로 지금 투자심사를 하셨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정승현 위원 조건부라는 게 사업비나 운영비 그리고 각종 운영 프로그램 관련된 부분들 또 참여자나 개최 횟수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지금 조건부로 해 주셨는데 이런 준비들이 다 되셨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지적해 주신 것은 크게 한 세 가지 정도가 되는데요. 저희가 프로그램 부분은 TF를 만들어서 계속 지금 만들어 가고 있고요. 그다음에 공사 금액에 있어서는 저희가 적정하게 적정가격, 공시가격심의회를 통해서 하는 걸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비 부담 부분을 말씀해 주셨는데 일단 시설 부분에 있어서 시비를 부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쉬운 상황은 아니고요. 왜냐하면 처음 계획 세울 때부터 저희가 국비하고 도비를 통해서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있고 다만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그 부분은 시하고 조금 더 논의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이 시설이 경기도민 전체를 위한 사업이지 수원시민을 위한 사업은 아니거든요. 위치는 그쪽에 있습니다만 다른 지역에서도 그쪽을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차원에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n○ 정승현 위원 조건부로 내걸었던 이 시비를 충족하는 것은 지금 여러 가지 고민들이 필요하겠다는 얘기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현재 행정재산으로 되어 있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정승현 위원 공유재산법 제11조에 보면 행정재산에 대한 용도를 변경할 경우에 투자심사, 공유재산 심의를 또 거쳐야 되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위원님.\n○ 정승현 위원 행정재산을 다른 용도로 변경할 경우에.\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런데 위원님, 이게 공유재산 심의대상이 아닌 것은 저희가 확인을 한 게 이게 기준가격 부분이 있습니다.\n○ 정승현 위원 5억 미만이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그걸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당초 1,000㎡에서 1,099.4㎡로 99.4㎡가 늘어난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99.44㎡입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면 이건 증축한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일부 증축입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런데 이게 5억 미만이어서 심의대상이 아니라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건 확인을 했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거 다시 한번 확인하셔서 나중에 이런 행정절차 때문에 또 지적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만 저희가 사실 두세 번 확인을 했었거든요.\n○ 정승현 위원 마지막으로 기금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아까 기금 설명 시에 대학생 학자금 8,000만 원 감액이 됐잖아요, 당초 3억에서 2억 2,000으로.\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이자 지원 사업이 감액됐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 사유는 여러 가지 장학기관과의 중복 내지 그런 부분들 때문에 신청자가 줄어서 그랬다는 건데.\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신청이 없습니다.\n○ 정승현 위원 당초에 이런 것들을 예측하지 못했었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사실은 저희가 19년도에 1명 그다음에 20년도에는 아예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조금 더 일찍 저희가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조금 더, 혹시라도 이 부분에 있어서 신청을, 예산과목이 아예 없으면 신청을, 원하는데 지원을 못 해 주는 그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하는 차원에서 이번에 하게 되었습니다.\n○ 정승현 위원 내년에도 본예산 편성 또 하실 거 아니에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20년에 수요가 아예 없기 때문에, 작년하고 올해 없어서 내년도에는 이 부분은 없어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업이.\n○ 정승현 위원 그런 부분들을 잘 감안하셔서 예산편성하시는 데 있어서 좀 신중을 기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당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상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정승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양경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경석 위원 평택 출신 양경석 위원입니다. 국장님, 수고 많으시고요. 외국인 근로자 주거지원 사업, 작년도에 포천인가 거기에서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서 어쨌든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 이런 사업을 추진한 것 같은데 이게 경기도에 농촌지역이 아마 8개 시군이 넘어가는데 8개 시군 108개소를 했다는데 여기는 그럼 8개 시군 외 쪽에는 신청을 안 한 겁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다른 지역은 신청이 없었다고 합니다.\n○ 양경석 위원 다른 지역은? 그럼 다른 지역은 거의, 어떻게 보면 동북부 쪽으로 많이 가 있어요, 우연찮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양경석 위원 어떻게 보면 지금 제 지역인 평택도 그렇고 안성도 그렇고 화성도 그렇고 이게 전반적으로 다 현실적으로 농업이 지금 외국인 근로자들이 없으면 일손이 없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리고 어쨌든 그 주거가 열악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 진짜 한 10여 년 이전에 굉장히, 컨테이너 같은 데 어떻게 보면 진짜 냉난방도 안 되는 그런 열악한 데서 했었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처우개선 같은 경우도 굉장히 많이 좋아졌고 또 예전에 포천에서 일어난 것도 그분이 거기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 같은데 그러면 1개소당 한 1,500만 원 정도 되는데 여기에 한 사업이 뭐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기존에 빈집이라든지 아니면 이동식 주택이라든지 외국인이 거주하는 데 있어서 개보수라든지 아니면 아까 말했듯이 냉난방이 혹시 없다고 그러면 설치하는 그런 비용에 대한 지원입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보면 이러한 종사자들이 그런 시설이 있는 근처에서 있어야 될 수밖에 없거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렇지만 지금 현실은 거기가 거의 농업진흥구역이기 때문에 그런 데다가는 어떻게 보면 그냥 농막이나 이런 또 주거시설 같은 경우는 할 수 없는 여건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런 걸 규제를 완화시켜 줘야 되는 게 아닌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 부분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희도 농림부하고 그다음에 중앙부처를 보면 위원님 말씀처럼 예전보다 굉장히 주거환경은 좋아졌습니다만 눈높이가 또 높아진 부분도 있고 또 외국인의 인권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중시되는 부분이 있어서 인력 공급이라는 측면하고 그다음에 인권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이냐는 중앙부처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저희가 계속해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쉽게 답을 내리고는, 저희가 찾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송구스럽긴 합니다.\n○ 양경석 위원 근본적인 해결 대책은, 지금 이런 걸 주택을 리모델링했다고 하지만 아마 현실적으로 이걸 전수조사를 나간다고 하면 불합리한 게 굉장히 많을 거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양경석 위원 현실적으로 거기에서 진짜 외국인 노동자가 사는 건지.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불법을 양산시킨 거예요, 이 사업은. 굉장히 좋은 취지인데.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은 농지 규제 그런 걸 너무 완화시키다 보면 또 그걸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런 게 굉장히 저도 염려가 되지만 어쨌든 순수 농사를 목적으로 하시는 분들한테는 뭔가 줘야 되는데 어쨌든 농업이라는 게 또 시설이 근처에 있고 그게 같이 있어야만 관리가 되는 거거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쪽에다가는 주택 같은 것을 못 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기고 이것보다 더 급한 문제는 인력수급 문제입니다. 어떻게 됐든 지금 현실은 거의 불법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들을 현실적으로 우리가 쓰지 못하거든요. 사람도 없고 지금 인건비는 거의 배 이상 뛰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인건비 대느냐고 하우스를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여건이래요. 뭔가 농사가 잘돼서 수익이 많아서 어쨌든 시설을 확대해야 되는데 시설 확대하는 이유가 인건비 충당시키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인력을 진짜 원활하게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루트로, 우리가 산업인력 같은 경우에는 하지만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그것도 굉장히 단절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외국하고 자매도시나 우호도시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양경석 위원 어떻게 보면 그런 쪽하고 협력을 해서 그게 전국적으로 쓰는 게 아닌 우리 경기도만 인력수급을 할 수 있는, 아마 그러면 그쪽 나라에서도, 그쪽 도시에서도 굉장히 좋을 겁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그걸 합법적으로 그분들을 또 어떻게 보면 대우해 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 나라와 그 도시와 그런 관계 때문에. 서로가 또 믿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농업정책도 그런 쪽으로 한번, 지금 이게 강원도인가 어디는 아마 지자체에서도 그걸 한다고 본 위원도 들었었는데 그걸 협의를 한번 해 보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 문제는 사실 계절 근로자 같은 것도 있습니다만 그 부분에 있어서 사실 신청요건도 까다롭고 해서 신청도 좀 없고 또 계절 근로자 들어왔을 때 이탈하는 그런 경우도 있어서 지자체에서 혼자 하기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검토가 돼야 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조금 더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조금 전에 정승현 위원장님이 먹거리 광장 조성사업도 했지만 이걸 처음부터, 아까 국장님께서는 이거는 하나의 시가 아닌 경기도 사업이라고 그랬지만 현실로 이용하시는 분은 어쨌든 그 지역으로 가면 수원시민, 화성시민, 옆에 있다고 하면 안산시민 그렇지만 주 소재지는 수원이기 때문에 수원시민이 주가 됐기 때문에 이걸 처음부터 사업을 했을 때 인근 시군하고 조금씩 협의만 했으면 이게 가능한 겁니다. 그분들도 당연히 경기도민이기 때문에, 31개 시군 도민이 전체적으로 수혜를 입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주는 90% 이상은 수원입니다. 도청이 수원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거는. 당연히 수원시민들 혜택받아야죠. 그런데 처음부터 먹거리 조성사업을 구상했을 때 같이 거기에 있는, 그 소재지에 있는 시군하고 협의했었으면 이렇게까지, 지금이야 당연히 도에서 주관을 하는데 하다가 “부담 좀 하세요.” 그러면 거기서 “네, 알았습니다.” 하겠습니까? 그건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사업 할 때는 소재지 시군하고도 충분하게 협의를 해서, 꼭 매칭으로 하라는 게 아닌 이런 좋은 거 있는데 어쨌든 시에서도 좀 부담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 아마 안 할 지자체 없다고 봅니다.\n그리고 기금운용인데요. 지금 현실적으로 기금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저렴하게 또 그걸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들 해 주는 건데 실질적으로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어려운 직군의 하나가 농업인입니다. 그런데 농업인은 어느 직군에도 안 들어가요. 아마 지금 몇 차 재난지원금 줬지만 농민들이 받은 거는 거의 없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소상공인들은 몇 차례 해서 어렵고 어렵다 해서, 소상공인 어렵다 해서 계속 뭔가를 자꾸 만들어 내지만 소농민에 대해서는 어디 하나 나오는 게 없습니다, 지원이라는 게. 진짜 어려운 것은 농업인도 어렵지만 거기서 농업을 작게 하는 소농들이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어쨌든 이 기금이란 저렴하게 저기 해 줄 수 있는, 운영자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래서 이번에 사실은 저희가 시설자금을 44억을 늘린 게 그런 수요가 좀 많이 있어서 늘린 건데요. 이 부분이 좀 부족하기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올해 있어서도, 정부에서도 사실은 경영 바우처라든지 이런 형태에서 어느 정도 농민들에게 지원을 했고 그다음에 피해가 큰 분야는 화훼라든지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물론 충분하지는 않습니다만 저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앞으로도 조금 더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 바우처도 굉장히 좋은 저기였었지만 받으시는 대상자 되시는 분들은 괜찮은데 또 대상자가 안 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희가 봤을 때는 조건이 비슷비슷한데 그게 안 되고 본 위원이 말하는 이 기금에는, 이거 기금이라는 것도 그냥 해 주는 게 아니잖아요, 운영자금을.\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빌려주는…….\n○ 양경석 위원 어쨌든 자격이 돼야 되고 어떻게 보면 담보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만 이 소농들은 농협의 대출이 거의 꽉 차서 더 이상 신용으로는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본 위원이 말씀드리는 것은 이러한 소농민들, 특히 어떻게 보면 운영자금이거든요. 어쨌든 한 번 작물을 심었다가 이게 제대로 판매가 안 돼서 갈아엎었을 때는 종자대금도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분들이 뭔가 운영자금을 했을 때는 바우처 같은 거는 너무 작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진짜 한 돈 1,000만 원을 뭔가 융통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거거든. 그런데 우리가 이런 데에서 해 준다 그러면 담보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데서는 신용보증을 그런 걸 인정해 주든지. 그러면 그런 비용에 대해서 우리가 보조를 해 주고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소농민들은 진짜 순박하신 분들이라 떼어먹고 못 사셔요. 그리고 그분들이 여유자금 없는 거 아닙니다. 농협에서도 담보여력의 한 60% 정도밖에 안 해 주기 때문에 여력은 있는데 은행권에서 인정을 안 해 주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소농민들이 어쨌든 어떤 직군의, 어떻게 보면 그런 소상공인은 직군에 안 들어가기 때문에 경기신보 같은 데서도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농정국에서만이라도 이런 분들한테 진짜 편안히 일시적인 돈 1,000만 원의 그거는 그냥 그런 절차 없이 바로 대출할 수 있는, 빌려줄 수 있는 그런 걸 한번 강구 좀 해 주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위원님. 저희가 기금에 있어서의 융자 조건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만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양경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김경호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경호 위원 안녕하세요? 가평의 김경호 위원입니다. 아까 존경하는 정승현 위원님께서 질문하신 건데요. 거기에 덧붙여서 몇 가지 좀 더 질문하고자 합니다.\n경기창업준비농장 관련 사업인데요. 그 사업대상 학교가 인원수에 따라서 균등하게 배분이 되는 건가요, 사업비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1인당 금액은 같고요. 그런데 어떤 데는 하우스, 시설이 많은 학교가 있고, 위탁하는 학교가. 시설이 적은 학교도 있고 그래서 예상금액은 기관별로 차이가 납니다.\n○ 김경호 위원 그런데 몇 개 여기 살펴보니까 2016년도부터 2020년까지 교육수료자가 대략 아까 말씀하신 게 50% 정도밖에 귀농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맞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55%.\n○ 김경호 위원 제가 궁금한 거는 대부분 우리 지원 하우스들이 어디, 학교에 있습니까, 주로? 학교 내에 있습니까? 아니면 어디에다 설치하는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학교에 부지가 있어 가지고 학교 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 좀 떨어진 곳이라도 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그런 토지가 있으면 그쪽에 설치하게 되는데 학교하고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n○ 김경호 위원 그렇죠. 제가 왜 그런 말씀을 드리느냐면 근본적으로 이걸 한번 검토를 해 보시라는, 생각을 해 보시라는 얘기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홍성군 홍동면에 가면 유사한 사업들이 있어요. 유사한 사업이 있는데 거기에는 쉽게 말해서 귀농ㆍ귀촌 하시는 어떤 단체에다가 사업비를 주거든요. 그 사업비를 줘서 운영을 하는데 그런데 왜 이거하고, 제가 왜 그 50%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게 실질적으로 그 대상지역 그다음에 그런 거 공모사업을 통해서나 만약에 예를 들어서 연천이면 연천, 가평이면 가평 그런 대상지역에 가서 귀농교육을 받을 때 정착률이 높아진다는 거죠, 현실적으로. 그런데 이거는 학교 같은 데서 결국은 하니까. 이게 귀농하는 과정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홍성군 홍동면을 보면 그렇더라고요. 거기서 1년이고 2년이고 같이 생활을 하면서 실습을 합니다. 하면서 거기서 생산되는 걸 판매한 것들을 일정 형태로 가져가요, 그분들이. 급여형태로 가져가고 그다음에 그 과정 속에서 그 지역사람들하고 연계가 됩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내용들이 전부 있으면 자기가 작목도 거기서 선정할 수 있고 이거는 비슷하죠. 그런 것들은 비슷한데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귀농, 실질적인 게 높아질 수밖에 없죠. 어떻게 생각하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말씀처럼 이 교육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대학이라는 그런 전문성을 통해서 교육과 실습을 같이 하는 사례이고요. 위원님 말씀처럼 저희도 그런 부분에서 고민을 했습니다. 이게 결국에 시군으로 가서 좀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저희 내년도 사업으로 저희가 시군 부분에 있어서는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김경호 위원 그러니까 가능하면 시군구에서 하여튼 간 그런 식으로 해서 그것들을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문제거든요. 시골에서 실질적으로 여기 아니라도 교육을 받을 데는 얼마든지 있죠. 그런데 정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군에서 직접적으로 시행하고 모집해서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지원하는 시스템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리고요.\n다음에는 경기도 먹거리 광장 조성사업입니다. 먹거리 광장 조성사업인데요. 먼저 구 서울대 농대 자리에다 하시는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맞습니다.\n○ 김경호 위원 그런데 주로 이 사업내용이 뭐죠? 먹거리 광장을 조성하면 어떤 일들을 하죠, 여기서?\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어떻게 보면 농업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이 만나고 농업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런 것들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저희가 지금 그 안에 가칭 농업 라이브러리 같은 것도 꾸며서 농업에 대해서 요즘 관심은 굉장히 많은데 막상 상담받거나 할 데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전문적인 농업기술원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부분에 같이 모이고 또 그쪽에서 약간의 재배라든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n○ 김경호 위원 그 이유는 충분히 아는데요.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런 게 필요하다 그러면 할 필요성이 있는데요. 경기도가 면적이 굉장히 넓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김경호 위원 그래서 이런 사업을 할 때는 거리적인 면 안배도 해 줘야 된다는 얘기죠. 사실 이런 것들을 행사한다 그래서 연천이나 가평 사람들이 수원에 와서 체험하거나 그런 것들을 하려고 하면 현실적으로 굉장히 억울하죠, 우리 입장에서는. 그래서 향후에는 이런 사업을 할 때에는 남북으로 나눠서 배려한다든가 그런 것들을 부탁드리고 싶어서 말씀을 드린 겁니다.\n다음은 청년농업인 영농정착 선발운영인데요. 이게 전부 국비사업이죠, 이번에?\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제가 정확하게…….\n○ 김경호 위원 44페이지요. 그다음에 47페이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국비사업입니다.\n○ 김경호 위원 그런데 청년 영농정착지원 선발운영 사업은 그게 감액이죠, 17억이? 1억 7,000?\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170만 원.\n○ 김경호 위원 아, 170만 원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이거 인건비 남은 부분, 사무관리비 남은 부분.\n○ 김경호 위원 그렇죠. 그런데 이게 왜 된 거죠? 구리시에서 안 해서 그런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거 선발이 안 돼서 그 부분을 감액한 겁니다.\n○ 김경호 위원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될 수 있으면 감액이 없도록 우리가 적극적으로 챙겨 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린 거고요. 왜 그러냐면 청년농업이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농촌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좀 저거 하시고요.\n그다음에 47페이지 농업분야 긴급인력 파견근로 그다음에 농업인 외국인 근로자 주거지원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까 존경하는 우리 양경석 위원님께서 질의를 하셨는데요. 저도 거기에 더 보태서, 왜 우리 도비들 하나도 여기 안 붙어 있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이게 국비하고 시군비 신청받아서 하는 사업이어서요.\n○ 김경호 위원 법적으로 그렇게 돼 있는 건가요, 국비하고 시군비만 하라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국비하고 보통 지방비 이렇게 나오고요. 국비와 지방비가…….\n○ 김경호 위원 그럼 지방비도, 왜냐하면 이게 굉장히 어려운데, 시군들이. 그리고 지금 인력문제는 진짜 심각합니다, 시골에서 농촌에서. 그런데 우리는 싹 빼버리고 시군에만 전가시키면 제가 봤을 때는 좀 아쉽다라는 얘기죠. 경기도가 나름대로 역할을 해 주셔야죠,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어려운 농촌을 생각하면 경기도가.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경기도 인구가 팍 준 거 아시죠, 농업인구가? 28만 명.\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계속 줄고 있습니다.\n○ 김경호 위원 지난 15년간 40%가 줄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계속해서 우리가 농업분야에서 이렇게 지원을 빼고 그런다 그러면 제가 봤을 때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향후에는 특히 인력과 관련된 부분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우리가 도비도 같이 한번 매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주셨으면 생각하는데요. 국장님 의견은 어떠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런데 위원님, 지방비가 저희가 도비로 매칭해서 하는 사업들도 있고 아니면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국비와 시군비만 하는 사업들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내년 본예산에 편성하면서는 지방비가 어떤 식으로 구성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데요. 모든 사업이 다 도비가 들어갈 수 있는, 매칭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시군이 스스로 할 수 있거나 분담률이 작거나 이런 것들은 국비와 시군비만으로 충분하고 또 시군의 재정이 좀 어렵고 분담금액이 커서 부담이 된다고 한다면 도비 매칭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 김경호 위원 특히 제가 이 부분에 아쉬웠던 부분이 가장 지역에서는 노동인력이 진짜 굉장히 심각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한 경기도의 인식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경기도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고요.\n마지막으로, 아까 경기창업준비농장과 관련해 가지고 제가 맨 처음에 물어본 게 각 지원금액이 균등하냐라고 했더니 1인당 지원하는 금액이 같다라고 했는데요. 제가 봤을 때는 성과별 지급이나 그런 것 좀 필요하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각 기관별로. 그러니까 귀농률이 높거나 이런 데 있어서는 인센티브를 줘야지 되는 게 맞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은 데는 과감하게 우리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한번 검토를 부탁드리는데 국장님의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교육비가 사실 최소한의 비용이기 때문에 못 한 데서 교육비를 빼거나 하는 것보다는 잘한 곳은 추가적인 인센티브나 이런 부분을 통해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n○ 김경호 위원 네, 그렇게 좀 부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고맙습니다.\n○ 김경호 위원 이상 질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경호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김철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철환 위원 김포 출신 김철환입니다. 많은 위원님들께서 경기창업준비농장 그다음에 먹거리 광장 조성사업 관련해서 많은 얘기들을 해 주고 계신 것 같아요. 경기창업준비농장 관련해서 좀 여쭤보고 싶은 게 다른 위원님들께서 많은 부분들을 짚었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만 이 4개의 대학에 대한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경기도에서 관여를 하고 있나요, 아니면 자율적인 의사에 맡기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같이 협의를 해서 그쪽에서 일단은 기본적인 안을 전문학교이기 때문에 하고요. 저희도 농업분야에 종사하는 분들하고 같이 논의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만든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n○ 김철환 위원 학교에서. 그럼 네 군데 학교의 프로그램이 다 상이할까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일단 실습을 하는 큰 틀에서는 같고요.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는 구성요소에 있어서는 조금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작목을 어떻게 재배하고 선택하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작목에 대한 선택은 학생들이 정하나요, 아니면 학교에서 정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처음에는 학생들 수요조사를 받습니다. 받는데 그러면서 수요조사가 물론 타당한 것도 있습니다만 너무 유행을 쫓아가거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가 상담을 통해서 현실적인 작목으로 바꿔주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학교별 경쟁률을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특히 여주농전 같은 경우 거의 그냥 경쟁률이 없다라고 보여지는데 이 이유가 프로그램 때문일까요, 아니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지리적인 위치상의 문제도 좀 있고요.\n○ 김철환 위원 지역 위치상의 문제가 제일 큰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위치상의 문제나 그 동네 홍보라든지 아무래도 그 해당 지역에 농민들이 많이 있어야 가는데 그런 부분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n○ 김철환 위원 서울대학교가 제일 셉니다. 그것도 지리적인 걸까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있을 것 같습니다.\n○ 김철환 위원 지금 경기도에서 관련해 가지고 16년부터 지원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인, 그러니까 여쭤본 이유가 사후관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 거예요. 사후관리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경기도에서 하고 있고 그거에 대한 홍보 부분들도 경기도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여쭤보고 싶은 건데 거의 그냥 예산만 지원하고 위탁의 수준으로 가는 것 같아서 경기도가 직접적인 관리를 조금 더 하셔야 될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우선은 졸업하신 분들에 있어서는 저희가 꾸준하게 네트워킹을 하게 하고 있고 거기서 또 우수사례는 강사가 와서 이렇게 하는 프로그램 그다음에 서로 멘토ㆍ멘티가 돼서 하는 프로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홍보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성과라든지 이런 부분의 홍보는 조금 더 강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 김철환 위원 창업률이 상당히 높다라고 얘기를 하셨는데 여기 혹시 연령대별로, 그러니까 연령이 18세부터 만 50세까지로 알고 있는데 연령대별로 혹시 분석을 하신 게 있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 자료는 제가 지금 안 갖고 있는데 분석해서 바로 제출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추후에 한번 프로그램을 진행, 합격을 하고 있는 연령대도 부탁드리고 추후에 대한, 창업률에 대한 부분, 정착에 대한 부분들도 연령대별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아까 프로그램 말씀드렸는데 이 프로그램 과정에서 1년 차, 2년 차, 3년 차까지 얘기하셨는데 사실 1년에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고 국장님께서도 얘기를 하셨어요. 심화과정에 대한 프로그램도 같이, 어차피 늘렸다고 그러면 심화과정에 대한 프로그램도 같이 병행해서 생각해야 될 텐데 그래서 제가 자율적인 부분보다는 도가 제안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고 2년 차, 3년 차의 과정에 대한 프로그램도 좀 같이, 그냥 단순히 농장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존경하는 양경석 위원님께서도 인력 부족에 대한 인건비 상승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셨어요. 얼마 전 제가 도정질의에서 이 인건비 상승과 인력 부족에 대한 부분들을 얘기했고 경기도만의 프로그램이 좀 필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국장님께서 들으셨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국장님 추후, 제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 그거예요. 이번 추경에 도 자체에 대한 프로그램은 하나도 그것에 관련돼서는 없는 현 상황이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없습니다. 국비사업입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니까 지금 거의 대부분의 프로, 좀 아쉬운 게 국가에서 먼저 실행을 하면 거기에 뒤따라가는 경기도 정책이 지금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내년도 이 인력 부족에 대해서 혹시 준비하고 계신 게 있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저희가 아직 보고드릴 단계는 안, 저기 해서 저희가 확정되지 않아서 보고를 못 드렸습니다만 저희도 이 부분에 있어서 도 자체적인 사업계획을 지금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교와의 부분에 있어서 협업을 강화한다든지 이런 부분을 추진하고 있어서 본예산 때는 그 부분을 보고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희가 이 부분이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어서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 부분은 저희도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니까 행정을 하시는 분들께서 고민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고맙지만 사실 이런 부분들도 의회와 아니면 농민단체랑 같이 TF를 구성해서 진행했어야 더 효과가 클 수 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선이 그어졌다 그러면 의회와도 함께 상의를 해 주시고 농민단체와 함께 TF라도 구성하셔서 그것들이 진짜 실질적인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돼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좀 고민해 주시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단순히 외국인 근로자에 한정 지어서 지금 해결이 안 된다고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1년 동안에, 품목별로, 계절별로 다 인력은 필요한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충분히 병행해서 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같이 좀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지난번 도정질의에 말씀드렸던 것을 한 번 더 짚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내년도 예산을 준비하고 계시는 시기여서 여쭤보는데요. 영유아 친환경급식 확대 관련해서 제가 질의를 드렸었습니다. 그 확대방안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거지요? 제가 알기로는 집행부가 이미 전부터 고민을 하고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고민하고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내년에는 조금의 첫걸음을 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계신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지금 친환경 부분을 좀 늘려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농정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 부분에서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있어서는 저희와 그다음에 유치원이라든지 학교라든지 이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제가 제안드렸었던 것은 시범사업이라도 시작하자라는 거였습니다. 그 시범사업을 통해서 보완해야 될 것들이 있다 그러면 전면 시행을 하기 전에 충분히 보완이 가능할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었던 거고 그것에 대한 검토를 부탁드렸고 제가 2019년도 도정질의 때 이미 제안을 드리고 급식시스템에 대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사실 그 이후에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농수산진흥원이 사업을 시행하는 것 외에는, 그건 뭐 자의적인, 타의적인 부분으로 인해서 된 부분이고 그 외에는 변화된 게 거의 사실적으로 없거든요. 내년도에도 사실 전체적인 친환경급식에 대해서는 큰 변화는 없을 거라고 저는 보여지는데 달라지는 것들이 있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내년도에 있어서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쪽으로 저희가 검토하고 있고요. 위원님께서 제안해 주신 부분도 저희가 봤습니다만 사실 깊게, 저희가 심도 있게 논의가 이루어지거나 검토가 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 김철환 위원 제가 제안드렸던 것 솔직히 당장 내년, 후년에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장기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지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실적으로 나중에 시군에 푸드플랜들이 안정됐을 때는 경기도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경기도가 좀 이끌어갈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들을 지금부터, 아마 각자 고민들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정확하게 정책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부분들도 같이 고민해 주셔서 준비해 주셨으면 좋겠고 특히 영유아 친환경급식 확대에 대한 부분들은 빠르게 결정을 내려서 내년에 시범적으로 확대가 될 수 있도록 국장님, 고민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전체적으로, 종합적으로 한번 보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철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백승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백승기 위원 안성 출신 백승기 위원입니다. 국장님, 추경 준비하시느라고 고생 많으셨는데 지금 농민기본소득 진행하고 계시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지금 경기도 6개 시군이 진행하는데 몇 % 정도 신청이 됐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잠깐 확인 좀 하겠습니다, 위원님. 9월 3일 기준으로 저희가 예상하는 인원의 83% 정도가 접수되었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러면 17%가 아직 안 됐다는 얘기네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 이번 주까지 저희가 신청을 받고, 9월 10일까지 받습니다. 그래서…….\n○ 백승기 위원 지금 가짜 농민까지 다 선별해서 이렇게 된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일단 신청을 받고 나서 걸러지는…….\n○ 백승기 위원 심사 별도로 하실 거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심사를 해야 됩니다.\n○ 백승기 위원 심사 철저히 해 주시고 어쨌든 가짜 농민이 부정수급을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공감합니다.\n○ 백승기 위원 이게 경기도만이 시행하는 거니까, 이재명 지사가 야심차게 준비한 거니까. 타 직군에서 계속 바라보고 있고 이거 타 직군에서, 잘못 수령 나가서 문제가 되고 한다고 치면 그 즉시 아마 농민기본소득 차단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조사를 요청드리고. 그리고 아까 추경자료에 보면 외국인 근로자 주거 지원비가 국비가 8억 1,000에 추가로 9,000만 원 해서 9억이 돼서 약 108곳에 하니까 1명당 간다고 치면 830만 원 정도가 되는데 이게 어떤 식으로, 면 단위로 진행되는 거예요, 아니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거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일단 그 부분은 시군에 가면 시군에서 선정하는 절차를 가져가게 되는데요. 기본적으로 그 비용은 대부분 신축이나 이런 부분은 아니고요, 개보수하는 정도의 그런 예산이 됩니다.\n○ 백승기 위원 개보수로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굉장히 문제가, 현장에서는 지금 주로 농지 하우스 쪽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농지다 보니까 지목변경도 어렵고 거기다 새로 신축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거의 다 농막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걸 단위농협하고 해서 농협에서 합숙소를 운영하겠다 그런 얘기도 나오고 하는데 이게 그러다 보니까 또 출퇴근에 문제가 나오는 것도 있고요. 거기는 또 합법하고 불법하고 같이 섞이는 거예요. 합법 근로자하고 불법 근로자하고 같이 섞이는 거지요. 무슨 말씀인지 아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는 합법적인 근로자들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럼 지금 이거 예산 잡은 것은 불법적인 근로자들은 포함이 안 되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 이것은 합법적으로 고용허가를 받아서 주거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개보수 비용이 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이 관리실태를 누가 할까요? 관리실체를 누가 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기본적으로 해당 시군에서 관리를 하게 되는 거고요.\n○ 백승기 위원 제가 생각하기에는 국장님, 이건 해당 시군에서 관리 못 할 것 같은데.\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일단 이 예산이…….\n○ 백승기 위원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 제가 판단하기에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어렵습니다만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행정에서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 백승기 위원 그리고 설명서 보면 기타가 3억 8,900이 나왔는데 기타 3억 8,900은 뭐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제가 정확하게 못 찾는……. 아, 자부담입니다. 자부담.\n○ 백승기 위원 자부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근로자들 자부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농장, 그러니까 농민들의 자부담이 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이해가 안 돼요. 농민들의 자부담이라…….\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러니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서 쓰시는 농장주들이라든지 농민들이 그 부분에 일정 부분 자부담을 하게 됩니다.\n○ 백승기 위원 아니, 지원사업을 보시면 빈집, 이동식 조립주택 개보수 및 설치비용으로 돼 있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런데 과연 이것을 시군에서 관리할 수 있을까. 농장주들이 하는 것 아닌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기본적으로, 1차적으로는 농장주가 하는 거고요. 예산이 어쨌든 국비와 시군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예산이 지원된 부분에 있어서는 해당 시군에서 관리를 해야 합니다.\n○ 백승기 위원 이거 이번 추경에 새로 진행되는 사업이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렇습니다. 성립전에 이미 내려왔고요, 국비로 해서.\n○ 백승기 위원 경기도 8개 시군이 해당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8개 시군 외에는, 이거 수요조사서를 받으신 건가 보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신청이 안 들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n○ 백승기 위원 아, 신청이 안 들어왔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백승기 위원 8개 시군 외. 그런데 이것은 관리주체를 명확히 해야 될 필요가 있네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농장주들도 외국인 근로자들 쓰는 것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없어요. 내 집에 오는 사람들만 고마운 거야. 내 집에 오는 사람들이 진짜 내 일 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왜? 코로나 정국으로 새로 신규 인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합법이든 불법이든 다 받는 거예요. 다 받는 거예요. 이거 실제로 농장주들이 운영하는 것 아닙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운영한다고 치면 불법도 다 받아들인다는, 이 비용이 불법도 다 포함되는 그런 사항인 거지요. 그렇게 생각 안 하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이 부분에 있어서 현실적인 부분과 정책 목적과의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거주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개보수를 일단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러니까 인원은 108명으로 정해져 있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개소 수가 108개소 수.\n○ 백승기 위원 그러면 이게 108명이면 1인당 한 830만 원꼴 돼요. 국비가 830만 원. 지방비까지 포함되면 훨씬 올라가는 거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개소당이니까요.\n○ 백승기 위원 개소당이에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러니까 1개소당, 지금 108개소 지원하는 것이니까요, 위원님.\n○ 백승기 위원 아, 108개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108명을 지원하는 건 아닙니다.\n○ 백승기 위원 108개소라고 치면 1개소에 국비만 한 830만 원이고 거기 지방비가 가면 1,600만 원 정도 되는 거지요? 5 대 5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제가 계산을 좀 해 보고.\n○ 백승기 위원 그렇죠? 맞아요. 계산을 확인해 보니까 그렇게 되네요. 5 대 5니까. 그러면 말 그대로 이렇게 되면 시골 농부들에게 많이 혜택이 간다고 본 위원은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이런 문제로 야기가 된다는 얘기지요. 합법하고 불법 사이에. 이것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 건가? 이것도 문제다 이거지요. 지금 현재 국장님, 대한민국에 불법을 묵시적으로 그냥 승인해 주는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지금 불법 노동자들 추방하지 않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그것은 중앙부처에서 고용노동부가 소관하고 있는데요.\n○ 백승기 위원 그러니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합법적인 부분이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하여튼 고생 많으신데 저희가 합법적인 사항에서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지만 이게 불법을 조장하는 사항이 된다고 치면 문제는 크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고요. 해결을 해야 되는 건 맞아요. 해결을 해야 되는 건 맞는데 이게 합법과 불법의 차이에 참 미묘한 갈등이 생길 수가 있다, 문제가. 그래서 해당 시군의 관리실태를 정말 잘하셔야 된다. 그거 분명히 말씀 좀 드리고 싶고 이게 지원해 주는 거야 어쩔 수, 국비가 지정돼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참 농가들도 그렇고 정말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이거 저희 의회에서 못 하게 한다고 치면 원자폭탄 맞겠지요. 그런데 합법과 불법 사이에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된다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그다음에 아까 존경하는 진용복 위원님이 질의하셨는데 친환경급식이며 친환경축산물에 대해서 지금 반납 불용처리를 하는 그런 사항이 된 것은 금액적으로나 축산물 같은 경우는 ㎏ 중량으로 따져도 적은 양이 아닌데 이런 것은, 국장님! 저희가 친환경급식하는 이유 아시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농가들 소득 증대도 있는 거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렇다 치면 불용 전에 그걸 꾸러미 형식으로 하든 어떤 방식을 찾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국장님 견해는 어떠신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래서 저희가 농가들에 있어서는 납품량이 줄었기 때문에 일반 판매를 통해서 판매를 하거나 아니면 지금 농산물 같은 경우에는 임산부 꾸러미가 있습니다. 과일꾸러미 이런 부분에 있어서 반영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하여튼 친환경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어려움이 많고 또 지금 경기도 친환경급식을 하면서 친환경농산물이 거의 10년이 넘게 다가오다 보니까 연작 피해가 나오고 있는 거 혹시 아세요? 연작 피해.\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 규모나 이런 건 제가 아직 파악을 못 하고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특히 감자에 많이 나오는데 겉은 멀쩡해요. 겉은 멀쩡한데 칼로 배를 갈라보면 안에서 시꺼멓게 곰팡이균이 있는 거지요. 이게 연작 피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토지개량제 보조사업이라든가 이런 것도 신규사업으로 진행을, 지금 현재는 안 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에 대해서는. 일반농산물에는 하고 있는데 일반농산물에 하는 것도 수도작이나 밭작물에 대해서는 정해져 있어요. 그건 국비로 내려오는 것 수도작에는 소석회라든가 그런 것으로 정해져 있는데 친환경농산물에 대해서는 친환경다운 그런 토지개량제가 따로 준비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기도가 친환경급식을 하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그것에 맞게끔 토지개량 지원 사업도 포함을 시켜 주십사 하는 건의를 드립니다. 어떻게 국장님, 생각이 있으신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연작 피해나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한번 실태조사를 해 보고요. 위원님과 상의드리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백승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보충질의 시간입니다. 사전에 위원님들께 공지해 드린 바와 같이 보충질의 시간은 5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계시면, 양경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경석 위원 양경석 위원입니다. 지금 백승기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도 어떻게 보면 시군에서 관리를 해야 된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도가 예산을 투입했으면 당연히 도도 해야 되는데 예산을 투입 안 했기 때문에 지금 도는 그런 면에서는 자유로운 입장인데요. 그래서 도비가 투입돼야 돼요. 그래야 같이 고민을 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양경석 위원 지금 한발 대비 용수개발사업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올해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그래도 비가 적절히 왔고 또 날씨가 도와줬거든요. 그래도 아마 이렇게 물 부족한 곳이 있나 보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일부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번에 저희가 비가 좀 와서, 8월 말 정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위원님. 그래서 상당 부분 해결은 됐습니다만 부분적으로는 그런 곳이 있습니다, 가뭄 피해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2017년도인가 아마 가뭄이 굉장히 심해서 어디는 하천에서 진짜 몇 ㎞를 위에 저수지까지 끌었던 적도 있고 또 하천 쪽에서 한 4㎞ 정도 해서 1,000m 되는 것을 묻어서, 묻은 게 아니고 오픈시켜서 끌어서 한번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예산이 한 10억 정도 들어갔는데 2년 있다가 다시 그것을 갖다 설치를 걷어내더라고요. 그것을 본 위원이 다니면서 쓴 것을 보니까 거의 쓰지를 않았어요. 그러면 그 10억이라는 예산이 어떻게 보면 사업자도 돈을 벌었겠지만 굉장히 효율이 떨어진다고 보거든요. 뭔가 어떤 사업을 했으면 행정에서 하는 것은 몇 년 동안은 폐기처분 못 하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지금 지역에서는 그런 현실이 일어난 거고 또 지금 관정사업을 하는 곳도 있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관정은 관리하는 사업도 하고 있고요.\n○ 양경석 위원 그리고 대공을 1기 파는 데 사업비가 얼마 들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한 5,000만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러면 일반인 개인이 대공을 팠을 때 어느 정도 들어간다고 알고 계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개인적으로 팠을 때요?\n○ 양경석 위원 개인적으로 대공을 팠을 때.\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같은 금액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요.\n○ 양경석 위원 반도 안 들어갑니다. 이게 개인이 대공을 팠을 때는 2,000만 원이 안 들어가요, 전기시설까지 이렇게 다 했을 때. 그런데 관에서 하는 사업은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더라고요, 절차대로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리고 이게 관에서 하다 보니 개인은 하나를 파지만 관에서 할 때는 한 10개를 판다 그러면 그게 5억입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개인이 10개를 팠을 때는, 제가 판다 그러면 한 1억이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행정에서는, 개인은 어떻게 보면 사업자하고 그냥 돈 주고 하면 되지만 이제 관에서는 절차라는 것도 있고 이게 5,000만 원 이상 넘어가고 하다 보면 또 수의계약이 안 되기 때문에 입찰도 해야 하고 해야 되지만 너무 비용이 과다하게 나가는 거 아닌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 부분은 비교 검토를 해 봐야 되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관에서 하게 되면 추가되는 시설들이 들어갑니다. 보안시설이라든지 관리시설이 들어가서 그런 부분도 일정 부분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n○ 양경석 위원 아니, 개인이 해도 컨트롤박스, 안전시설 하는 건 다 해. 그런데 그거는 너무 비용이 과다하고 본 위원이 얘기하는 것도 검토 한번 해 보세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예산이 낭비되는 부분이 있는지.\n○ 양경석 위원 그걸 갖다가 입찰을 해서 한다 그러면 하나하나 하지 말고 그 지역에 10개다, 5개다 하면 턴키로 같이 한다 그러면 아마 예산절감은 될 거라고 봅니다, 이거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이것 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예산 낭비되는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저희가 검토해야 되니까요.\n○ 양경석 위원 그리고 어쨌든 지금 비가, 농작물은 물이 있어야 되지만 이런 걸 갖다가 척박한 땅이라 그러면 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곳이거든요. 그러면 농지로서 가치가 없다고 봐요. 그러면 이런 땅들이 보면 다 진흥구역이나 절대농지 저기인데 어떻게 보면 이런 땅들 같은 경우에는, 어렵고 척박한 땅 같은 경우에는 그런 쪽에서는 규제를 완화시켜 줘야죠. 그러다 보면 이런 시설을 관정을 파다 보면 물속에 수리시설 돼 있으니까 이거는 농지로서 가치가 있다 그런 거밖에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척박한 농지 같은 경우에는 이런 걸 개발해 줄 게 아니라 규제를 완화시켜서 다른 걸로 활용할 수 있게끔.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옆에 있음으로써 농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것도 한번 생각 좀 해 보세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알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만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양경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보충질의하실, 김철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철환 위원 국장님, 장시간 고생 많으십니다. 올해 농업인의 날 행사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올해도 시상만 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저희가 코로나 때문에 대규모로는 못 하고요. 소규모로 모여서 표창 좀 하고 격려하는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 김철환 위원 작년하고 동일하게 시상식만 준비하시는 규모로 가시는 건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코로나 심각해서.\n○ 김철환 위원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듭니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고 나서, 농업인들의 사기충족을 시킬 만한 중요한 날이기도 하고 그리고 경기도에서 준비하는 큰 행사인데 추후의 부분들에 대해서 또 이게 축소되지 않도록 그거에 대한 부분들 계속 고민을 해 주시고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시상식도 시상받는 농민분들이 자부심을 느끼실 수 있도록 다른 쪽으로 더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들도 같이 고민을 해 봐 주십시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알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해양수산 관련해서 하나 궁금해서 여쭤보는데요. 수산물안전검사체계 구축 이번 추경에 예산을 담으셨어요. 이번에 경기도 명품수산물 관련해서 내일 조례 심의도 있습니다만 지금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내일 질문드릴 사안인데 이게 지금 2억 7,000만 원이잖아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김철환 위원 이게 어떤 걸 구입하시는 거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이게 지난번에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오염수 방류한다고 결정하고 나서 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응책을 찾고 지금 시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일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해양수산자원연구소에서 해양수산물, 그러니까 잡히는 어류나 이런 것은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는데요. 해수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가 아직 방사능 검사를 못 하고 있고 그런 장비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저희가 장기적으로 제대로 대응하려면 해수 부분에 있어서도 방사능 검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있어서 분석장비를 구입하는 예산이 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니까 해수의 장비와 기존에 갖고 있는 방사능 검사하는 장비랑은 많이 다른 부분인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장비는 거의 같은데요. 지금 수산물 하는 걸로도 양이 포화되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해소하려고 그러면 별도의 장비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n○ 김철환 위원 추가장비인 거예요? 더 확대를 위한 추가장비인 거예요? 기존에도 어느 정도 검사를 하고 있었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기존에 해수 부분은 아예 못 했습니다.\n○ 김철환 위원 해수 부분은 거의 내수 부분, 양식에 대한 부분들만 하셨었는데…….\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잡히는 것들만 했었는데 바닷물에 대해서도 저희가 검사해야 한다 생각하고 그러려면 기존의 장비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장비를 구입하는 겁니다.\n○ 김철환 위원 소장님, 맞으세요?\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네, 맞습니다.\n○ 김철환 위원 아니, 그러니까 왜 이걸 여쭤봤냐면 지금 세부 사업설명서나 이런 걸 보고 명품수산물 관련해서는 거의 양식장에 해당되는 부분이고 양식업 안전성에 대한 인증 그다음에 그거에 대한 검사 부분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주요 증감사유에 보면 방사능 오염수 관련해서 얘기를 하셨길래 그럼 기존에는 거의 양식에 관련돼 있는 검사였고 안전성 검사였단 말이죠, 항생제나 이런 것 등에 대해서. 그런데 지금 이거는 해수 부분까지 하신다고 하니까 그러면 상당하게 확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명품수산물뿐만이 아니라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수산물에 대한 부분까지 확대된다라고 생각을 해야 되는 건데, 그게 맞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기본적으로는 저희가 대응을 하려고 그러면 사실은 나중에라도 혹시라도, 저희가 막아야 되겠습니다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는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막아야 하는 게 저희의 가장 큰 정책목표입니다만 여러 가지 대응을 하는 차원에서는 데이터를 축적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하는 것이고 굉장히 이 부분은 저희가 확대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확대가 되어야 합니다.\n○ 김철환 위원 아까 제가 인식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요? 명품수산물의 검사에서 경기도의 바다 포함해서 모든 수산물에 관련돼 있는 검사가 가능한 건지, 이걸로. 그렇게 확대가 되는 건지 아니면 명품수산물에 한정되는 건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한정은 아니고 다른 수산물에 있어서도 저희가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n○ 김철환 위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규모예요? 저희가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거의 대부분의 검사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 되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그 부분은 담당 과장님께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해양연구소장 이상우입니다. 지금 현재 안전성 검사라는 건 방사능이나 항생제 이런 것들을, 중금속 포함해서 하고 있는 거고요. 거기 안에 방사능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크게 안전성 검사에. 그런데 이번에 예산을 계상한 거는 방사능에 대해서만 저희가 추가로 하겠다는 겁니다.\n○ 김철환 위원 감마핵종 분석기가 그러면 방사능에 관련돼 있는…….\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네, 방사능만 관계돼 있는데요. 현재는 수산물에 대해서만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해수에 대해서는 못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해수에 대한 검사장비입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럼 소장님 하나 여쭤볼게요. 이게 업무가 하나 늘어나신 상황이 되는 겁니까?\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네, 분석업무가 늘어나는 겁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면 기계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니고 인력도 같이 필요한 상황인 거 아닌가요?\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네, 인력도 같이 조직계랑 협의하고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면 이거는 언제쯤 다 도입완료가 되나요, 이번 추경에 담기면?\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추경에 되면 외자구매이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 구입하고 이게 건당 분석하는 게 이틀 걸립니다, 한 건 분석하는 데. 그런데 이게 방법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준비기간 거치면 하반기서부터 아마 분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일단 추후보고는 나중에 받는 걸로 하고요. 이상입니다.\n○ 해양수산자원연구소장 이상우 이거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철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보충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백승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백승기 위원 안성 출신 백승기입니다. 국장님, 이번 본회의 때 제가 5분발언한 거 들으셨나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태양광 부분.\n○ 백승기 위원 본 위원이 생각하는 건 농지법이 악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기도 농정해양국에서는 고품질 경기미 생산 잘하라고 정책 주고 보조금 주는데 환경국 기후에너지과에서는 그 자리에다가 농사짓지 말고 태양광 설치하라고 하는 이런 이중잣대, 이 경기도 행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국장님 생각이 어떠신지?\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위원님, 이게 설치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만 이게 불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면, 예를 들면 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버섯재배사로 한다고 해 놓고 버섯재배사 하지 않고 태양광시설만 이용한다든지 이런 부분은 저희가 농지이용실태를 하면서 철저히 단속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지금 농지이용실태조사 하고 계신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11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n○ 백승기 위원 11월 30일까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n○ 백승기 위원 너무 늦네. 행정감사 전에 돼야 되는 거 아닌가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7월 16일부터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고 있는데 결과가 최종적으로 저희가 하는 거는 11월 30일까지 해서 위원님 말씀하신 것처럼 좀 심도 있게 보려면 이 기간은 필요합니다.\n○ 백승기 위원 실질적인 실태조사를 하셔야 돼. 그냥 수박 겉핥기로 하시면 안 되고 실태조사 제대로 하셔 갖고 아까 우리 진용복 위원님이 질문하신 경기도 국비로 내려온 타작물 재배지원금이 불용이 되는 건 저는 대단히 환영을 했습니다. 왜냐? 경기도 농지가 그만큼 변하지 않고 경기도 고품질 경기미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게 고마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 농정해양국에서 진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쌀이 경기미예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그렇습니다.\n○ 백승기 위원 경기미를 할 수 없는 재배면적이 더더구나 진흥지역이라는, 이 진흥지역은 누가 임의대로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만큼은 농업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다른 거를 막는 그런 건데 이게 말로만 버섯재배사고 곤충사지 진짜 전부 태양광으로 뒤덮이는 그런 모습에 분개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지이용실태조사 제대로 요청을 드리고 그다음에 대형관정이 지금 인허가만 진행을 하고 있고 관리실태를 제대로 파악을 안 하시는 것 같아. 대형관정으로 인해서 지하수 오염이 상당히 심각하다. 한해대책 차원으로 대형관정 지원해 주는 건 좋은데 반대로 진흥지역 내 버섯재배사 한다 그러고 대형관정 파놓고 사용도 하나도 안 하고 지하수는 오염되고 이런 실태조사 필요합니다. 꼭 해 주시기 바라고 올 행정감사 때는 농지이용실태조사, 대형관정실태조사 위주로 꼭 확인할 거니까 중점적으로 조사해서 대형관정 파놓고 쓰지 않는 대형관정은 과감하게 폐기처분해서, 폐공처리해서 원상복구되게끔 그렇게 요청을 드립니다. 국장님 생각 말씀해 주시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관정 부분은 저희가 지하수 관리 차원에서 계속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사각지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버섯재배사 해 놓고서 대형관정 파놓은 데는 대형관정 쓰지도 않아요. 100% 쓰지도 않아요. 10~20% 한다고 그랬죠. 농업경영계획, 버섯 시작하면 최소한 1년 이상은 걸려야 돼요. 그렇게 해서 시간 버는 거예요. 우리 농정해양국에서는 환경국 기후에너지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하고는 정반대 쪽인 농지 지키려고 하는 그런 정책, 그런 행정, 관리감독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해 주실 거죠?\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이번에 철저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백승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보충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안 계시면 계속해서 추가 답변을 진행하겠습니다.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하여 추가질의는 5분 이내로 시간을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 추가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없으시면 아까 김철환 위원님이 창업준비농장 연령대별 자료를 말씀하셨어요.\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네, 제출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그거는 이따 제출해 주시기 바라고요.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농정해양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에 대한 질의 답변 종결을 선포합니다.\n중식을 위해서 14시까지 정회하고자 합니다. 이의 있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정회를 선포합니다.\n(12시03분 회의중지)\n(14시03분 계속개의)\n○ 위원장 김인영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다음은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나오셔서 축산산림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김성식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농업ㆍ농촌과 축산인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하고 계시는 존경하는 김인영 농정해양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제안설명에 앞서 축산산림국 간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김영수 축산정책과장입니다.\n(인 사)\n김종훈 동물방역위생과장입니다.\n(인 사)\n이은경 동물보호과장입니다.\n(인 사)\n이성규 산림과장은 코로나19 관련 생활치료센터 근무로 부득이 참석하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n최권락 동물위생시험소장입니다.\n(인 사)\n이규현 북부동물위생시험소장입니다.\n(인 사)\n윤하공 산림환경연구소장입니다.\n(인 사)\n안용기 축산진흥센터 소장입니다.\n(인 사)\n이상으로 축산산림국 간부소개를 마치고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예산에 대해서 기 배부해 드린 사업설명서를 중심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n사업설명서 555쪽 세입예산안입니다. 축산산림국 세입예산안은 2,543억 8,324만 원으로 기정액 2,318억 7,318만 원 대비 225억 1,006만 원, 9.7%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부서별 세입예산안입니다.\n555쪽입니다. 축산정책과 세입예산안은 전년도 국도비 사용잔액 및 축산 ICT 융복합 확산 사업 등 5개 사업 국비 변경내시에 따라 총 59억 7,371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56쪽 동물방역위생과 세입예산안은 전년도 국도비 사용잔액 및 살처분 보상금 등 8개 사업 국비 변경내시에 따라 총 145억 4,656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57쪽 동물보호과 세입예산안은 전년도 국도비 사용잔액에 대하여 총 6억 4,503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58쪽입니다. 산림과 세입예산안은 전년도 국도비 사용잔액 및 산지관리 지원 등 2개 사업 국비 변경내시에 따라 총 10억 2,197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59쪽 산림환경연구소 세입예산안은 관사 전세보증금 반환수입으로 2억 4,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60쪽 축산진흥센터 세입예산안은 전년도 국비 사용잔액에 대하여 총 8,279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사업명세서 561쪽부터 582쪽까지 세출예산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축산산림국 세출예산안은 3,742억 2,035만 원으로 기정액 3,563억 1,942만 원 대비 179억 93만 원, 5%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부서별 세출예산안 현황을 주요사업별로 설명드리겠습니다.\n562쪽 축산정책과 세출예산안은 907억 99만 원으로 축산 ICT 융복합 확산 사업 등 국비사업 5건, 고형비료 생산시설 지원 등 자체사업 4건, 국비 사용잔액 반납 등으로 기정액 대비 3.5% 증가된 31억 4,23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65쪽 동물방역위생과 세출예산안은 1,331억 1,383만 원으로 살처분보상금 등 국비사업 8건, 살처분ㆍ사체처리 표준원가 산정 학술용역 등 자체사업 5건, 국비 사용잔액 반납 등으로 기정액 대비 7.2% 증가된 89억 8,358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69쪽 동물보호과 세출예산안은 205억 3,438만 원으로 야생동물생태관찰원 등 자체사업 5건, 국비 사용잔액 반납 등으로 기정액 대비 4.9% 증가된 9억 5,042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71쪽 산림과 세출예산안은 879억 54만 원으로 산림관리 지원 등 국비사업 5건,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관리센터 운영 등 자체사업 6건, 국비 사용잔액 반납 등으로 기정액 대비 0.9% 감소된 7억 7,298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574쪽 동물위생시험소 세출예산안은 104억 1,299만 원으로 예방약품 지원 등 국비사업 3건, 동물위생업무 지원 자체사업 2건, 기정액 대비 0.9% 증가된 5,7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76쪽 북부동물위생시험소 세출예산안은 127억 5,236만 원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정밀검사시설 건립 국비사업 1건, 동물위생업무 지원 등 자체사업 4건으로 기정액 대비 74.3% 증가된 54억 3,754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78쪽 산림환경연구소 세출예산안은 151억 9,705만 원으로 축령산휴양림 운영 등 자체사업 4건, 기정액 대비 0.2% 증가된 2,527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80쪽 축산진흥센터 세출예산안은 36억 817만 원으로 한우젖소 개량 지원 사업 등 국비사업 변경 2건, 흑염소사 및 퇴비사 신축공사 보완 등 자체사업 4건, 국비 사용잔액 반납으로 기정액 대비 2.2% 증가된 7,779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으로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도의회 제출된 이후 추가 변경내시된 국비보조사업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자리에 배부해 드린 추가 세입ㆍ세출안 설명서를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n추가 변경내시된 국비보조사업은 총 8개 사업으로 기쟁액 대비 21억 4,861만 원 감액되었습니다. 축산정책과는 승용마 조련 강화 등 1개 사업에 대하여 기정액 대비 1,560만 원 감액되었습니다. 동물방역위생과는 살처분 보상금 등 5개 사업에 대하여 기정액 대비 26억 2,851만 원이 감액되었습니다. 동물위생시험소, 북부동물위생시험소는 예방약품 등 지원 사업에 대하여 기정액 대비 각각 3억 9,550만 원, 1억 원 증액되었습니다.\n이상으로 축산산림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안에 대한 보고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n오늘 심의과정에서 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서 제시해 주시는 내용에 대해서는 도정에 적극 반영토록 하고 예산 확정 후 사업예산이 현장에 조기 반영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검토보고 순서입니다.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검토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김호원입니다. 축산산림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계속비 조서 변경안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n경기도 예산안 규모는 검토보고서 1페이지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축산산림국 소관 예산안 규모입니다. 세입예산안은 2,506억 4,600만 원으로 기정예산액 대비 225억 1,000만 원 증가하였습니다. 세출예산안은 기정예산액 3,563억 1,900만 원보다 179억 100만 원 증액된 3,742억 2,000만 원입니다.\n다음은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각 부서별, 과목별 세입예산안은 표4, 표5와 같으며 국고보조금 등 225억 1,000만 원의 증액은 도비 사용잔액 등 세외수입, 국고보조금 등을 반영한 것입니다.\n계속해서 4페이지 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재원별로 보면 금번 세출예산안 증액분은 179억 100만 원으로 자체재원은 81억 5,900만 원, 의존재원은 97억 4,200만 원 증가하였습니다. 주체별로는 국고보조사업이 총 24개 사업에 138억 6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습니다.\n다음은 7페이지 도 자체사업으로 총 40개 사업에 40억 9,5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으며 주요사업에 대한 증감액 사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살처분ㆍ사체처리 표준원가 산정 학술용역은 가축전염병에 따른 살처분 및 사체처리 표준원가 산정 등 표준모델을 마련하고자 추진하는 학술연구용역입니다. 살처분ㆍ사체처리 시 표준화된 매뉴얼이 없어 일선 시군에서 혼란을 겪고 있고 전국 차원의 공통 매뉴얼 또한 부재하여 긴급 입찰계약 및 실제 비용처리 등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살처분ㆍ사체처리는 전국 시도 공통사항이므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비용산정 등 표준절차 마련을 건의하고 용역결과가 현장에서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중앙 및 시군과 의견수렴 등을 통한 체계적인 용역 추진 노력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n야생동물원 생태관찰원 조성 및 운영은 계속비 사업으로 21년 10월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관찰원 조성사업의 경우 사업부지 내 국유지가 당초 무상매입에서 유상매입으로 예측지 못한 예산이 발생하였는데 철저한 사업설계와 관계기관 사전 협의를 통해 추가 예산소요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운영사업의 경우 생태관찰원 준공 이후 전시공간 조성을 위한 예산이 필요함에도 2021년 본예산에 편성하지 못하고 추경으로 요구되었는데 본예산 편성 시에는 보다 철처한 사업계획 검토가 요구됩니다.\n흑염소사 및 퇴비사 신축공사 보완사업은 당초 기금사업으로 추진되었으나 물가상승분 반영 및 추가 보완 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자체사업으로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본 사업은 사업방향 설정 변경 및 19년 명시이월, 20년 사고이월로 사업추진이 지연되었고 원자재 가격 급등 등 물가상승과 추가 보완 공사를 위해 자체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는데 당초 사업 추진 시 간척지인 공사부지 특수성 등을 감안하여 정밀한 사업설계가 요구되었음에도 다소 미흡했다고 판단됩니다.\n다음은 12페이지 계속비 사업 조서 변경내역입니다. 먼저 생물자원보존시설 설치는 앞서 설명드렸던 야생동물 생태관찰원 조성사업으로 사업부지 내 국유지를 유상매입함에 따른 것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정밀검사시설 건립은 제2회 추경 시 공유재산관리계획을 심의하지 않아 미편성되었다가 지난 7월 공유재산관리계획 심의 완료 후 금번 추경에 신규 반영된 사업입니다.\n종합의견입니다. 축산산림국 소관 2021년 제3회 일반회계 추가경정예산안 세입예산 증액분은 225억 1,000만 원으로 국고보조금 등 내시변경 및 2020회계연도 사업비 사용잔액을 세입예산에 계상하는 것으로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세출예산 증액분은 179억 100만 원으로 국비사업은 국비내시 변경사항을 반영하여 총 24개 사업에 138억 6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고 자체사업은 40개 사업에 40억 9,5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으며 코로나19에 따른 행사 및 여비 감액, 사업 축소 등을 반영하고 야생동물 생태관찰원 조성 등 일부 자체사업 추진을 위해 편성되었습니다.\n최근 강원도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다시 발생하는 등 가축전염병의 발생 위험 증가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농축산업도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예산 심의 및 행정사무감사 시 도의회의 지적사항과 건의를 적극 수용하여 현실에 맞는 각종 정책을 개발하고 철저한 사업분석을 통한 자구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n이상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 제3회 추경(축산산림국))\n○ 위원장 김인영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 답변에 앞서 필요한 자료가 있으신 위원님께서는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없으십니까?\n없으시면 김성식 축산산림국장은 발언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 답변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하여 일문일답 방식으로 진행하되 질의 답변 시간은 기본 10분, 보충질의는 5분 이내로 하겠습니다. 회의진행 방식은 농정해양국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위원님들의 질의 사항 중 국장의 답변이 어려울 경우 소관 업무 과장이 답변해도 좋습니다. 다만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은 후 소속과 직ㆍ성명을 밝히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그러면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정승현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정승현 위원 정승현입니다. 먼저 국장님 그리고 우리 축산정책과장님, 계신가요? 바쁘신 시간에 하여튼 안산 재개발지역 축산농가를 위해서 안산도 방문해 주시고 또 이곳 의회까지 방문하셔서 저하고 축산농가와 간담회를 해 주셨는데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당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그리고 자체적으로 지금 수원축협하고 논의를 하고 있는데 아마 그게 잘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에요. 한번 그 부분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여튼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요.\n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야생동물 생태관찰원 조성사업 있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 축산산림국장 김성식입니다.\n○ 정승현 위원 그게 당초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하기로 했던 사업들이 늦어져서 올해 10월 달에 준공하는 거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늦어진 사유가 당초 국유지를 무상임대로 사용하기로 했다가 그걸 지금 매입해야 되는 과정에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은 그 국유지가 농림부와 국토부 소유 땅인데요. 그게 구거하고 도로입니다. 그게 저희들은 무상귀속을 시키려고 굉장히 애를 썼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지리원에서 경계측량이라든지 측량을 해 본 결과는 그게 용도폐지를 시켜서 무상매입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걸 저희들이 계상을 했습니다.\n○ 정승현 위원 무상으로 매입…….\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무상으로 하려고 저희들이 애를 썼는데 결국 무상으로 안 되고…….\n○ 정승현 위원 그래서 돈 주고 지금 매입하게 되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유상으로 귀속시키는 것으로 그렇게 결정돼서 저희가…….\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지사님이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이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저희들이 사실 반려동물테마파크라든지 야생동물구조센터라든지 지금 연천에도 있고 평택에도 있고 그런데 그런 사업 중의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n○ 정승현 위원 당초에 사업계획 수립하면서 국유지 사용에 관한 부분들도 좀 명확히 처음부터 해서 출발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고요. 추가로 어쨌든 간에, 이게 그럼 전체 사업비가 당초 출발할 때 30억, 30억 해서 60억이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60억이었습니다.\n○ 정승현 위원 지금 전체 사업비가 얼마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60억에서 우리가 5억 5,000이 추가로 되는 거고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국유지 매입 건 때문에 그런 건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국유지 매입 때문에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러면 이것은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은…….\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때 16년도 공유재산을 받았기 때문에…….\n○ 정승현 위원 2016년 했던 게 거기에 이게 포함이 됐던 건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포함된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지금 21년 10월 달에 준공이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그 뒤에 보면 북부야생동물구조센터 관련해서 4억 예산편성해 놨잖아요, 추가로.\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 그 전시공간을 저희들이…….\n○ 정승현 위원 전시공간하고 또 밖에 조형물.\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조형물 맞습니다. 그런데 애초 저희들이 북부야생동물 같은 경우는 거기가 자산취득비로 회계과목이 섰는데 저희들이 시설비하고 같이 하려고 하니까 좀 회계상 맞지 않아서 이번 추경에 그 과목을 시설비로 다시 변경해서 저희들이 사용하는 겁니다.\n○ 정승현 위원 이게 그런데 10월 달 준공인데 그 안에 다 가능하겠어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충분히 가능합니다.\n○ 정승현 위원 아, 가능합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충분히. 내부시설 공사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이 저희들이 하게 하기 위해서 이번에 넣은 겁니다.\n○ 정승현 위원 하여튼 전체 사업비가 60억인데 이번에 5억 5,000하고 4억 이것만 지금 증액이 됐단 얘기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정승현 위원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정승현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진용복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진용복 위원 안녕하세요? 용인 출신 진용복 위원입니다. 국장님께, 제3회 추경예산안 사업별 설명서 143쪽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정밀검사시설 건립에 대한 것은 지난 2회 추경에서 전액 삭감한 사업내용이지요? 143쪽입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 이게 북부시험소 지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 정밀검사시설 건립인데 그때 저희들이 행정절차를, 공유재산 심의를 못 받아서 전액 삭감됐다가 이번에 다시 계상한 그런 사업이 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렇지요. 그 당시에 행정절차 미이행으로 인해서 2회 추경에서 상임위에서 전액 삭감된 예산 맞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공유재산 심의 등 전 행정절차가 원만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제3회 추경에 이것이 반영되는 거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정말 1년 가까이 참 중요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낭비, 소모적으로 그런 게 많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시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좀 미스했다는 말씀을 전적으로 시인하고요.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래서 행정력의 낭비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축산농가들에 대한 피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경기도민에 전체적인 피해가 많이, 제약이 됐지요, 행동적인 제약도 많이 됐었지요, 그렇지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예산편성 시 행정적인 절차를 완벽히 해서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리고 같은 책 내용의 171쪽을 한번 보시지요, 170쪽. 보셨나요? 흑염소사 및 퇴비사 신축공사 보완이라고 나왔는데 이게 신규사업 맞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신규사업은 아니고요. 기존 우리가 에코팜랜드 내 흑염소사하고 퇴비사 신축공사가 있는데요.\n○ 진용복 위원 아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신규사업이 아니라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신규사업이 아니고 기존…….\n○ 진용복 위원 그러면 이게 언제 사업이 진행됐었나요? 지금 21년…….\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19년 5월 달에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게 저희들이 공사비가 부족해서 추가로 세운 그런 사항이 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러면 공사비가 부족했으면, 19년도에 사업이 시작된 거잖아요. 보니까 19년…….\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19년 추경에, 5월 달에 저희들이…….\n○ 진용복 위원 그래서 그 당시 19년도에 명시이월을 9억 5,000 했고 20년에는 사고이월을 7억 9,000. 그러니까 일부 사업비를 사용하고 다시 사고이월을 한 거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럼 이게 당해 연도에 사업을 했던 것도 아니고 명시이월을 했고 또 사고이월을 했으면 우리가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시간적 여유도 있고 했는데 저희들이 올해 12월 달에 공사를 마무리하는데 이것을 저희들이 그때 당시 계상된 금액하고 지금 비교를 해 보니 거기가 매립지라서 기반공사비가 좀 더 나왔습니다. 최종적으로 저희가 정산해 나가면서 공사를 완료하려다 보니. 그래서 철거값 상승분하고 매립지에 대한 기반공사비가 좀 더 들어가서 이번에 공사비를 저희들이 추가 편성한 경우가 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러면 초기에 사업을 계획했을 때 세밀한 준비가 결여됐다, 그것을 지금 시인하시는 거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한 지적이시고요. 그때 우리가 사업계획을 뺄 때 매립지라는 그런 특수성을 미스했다고 판단이 됩니다.\n○ 진용복 위원 그렇지요. 처음에 산출했을 때의 그 내용하고 물가가 철근 등등 해서 굉장히 많이 올랐잖아요. 40% 이상이 올랐고 인건비 오른 것은 당연한 거고 자재비가 굉장히 많이 40% 이상 폭등해서 요새 건축비가 굉장히 상승하는데 그러니까 처음에 우리 축산산림국에서도 이 정책을 펼쳤을 때 초기에 설계를 잘못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맞습니다. 위원님 지적하신 대로 공사가 조기에 완공됐으면 어쨌든 물가상승분이라든지 그런 것은 좀 세이브가 되지 않았었나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n○ 진용복 위원 그러니까 국장님의 고의성이 담보됐다고는 생각 안 하고요. 이게 그래서 민에서 하는 것이냐, 공에서 하는 것이냐. 거기서 항상 보면 민에서 하는 것을 보면, 민간을 말하는 거지요. 거기에서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어떻게 보면 사업비를 최소화로 들여서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는데 관에서 보면 그런 것을 약간씩 놓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한 지적이시고요. 이제 거기가 매립지 전체 사업공정, 에코팜랜드 사업공정 전체하고 같이 맞물리다 보니까 저희들이 이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하나 더 이것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자면 이것이 경기도 자체사업뿐만 아니라 국비하고 도비하고 50 대 50 매칭이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국비 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에서 이것에 대해서 무슨 이의를 제기한다든가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었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것은 없었습니다.\n○ 진용복 위원 없었습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진용복 위원 충분한 설명을 국가하고 소통을 한 것 같은데…….\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저희들이 충분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n○ 진용복 위원 이런 부분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진용복 위원 이상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진용복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양경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경석 위원 양경석 위원입니다. 설명서 39쪽에 보면 고형비료 사업이 있는데 어쨌든 국비지만 이게 자치단체 보조사업이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우리 도 자체사업이고요. 사실 2회 추경에 저희들이 편성했는데 경축순환농업 관련 총사업비 10억을 편성했는데 시설비를 공모해 보니 좀 남는 부분이 있어 가지고 우리가 연말에 계수조정보다는 이 부분을 추경 때 해서 예산을 활용하자는 지적이 계속 우리 위원회에 있어 가지고 이번에 남는 금액을 삭감한 부분이 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어쨌든 축협에다가 한 건데…….\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맞습니다. 양평 축협이 최종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게 현장에도 아마 가봤지만 어떻게 보면 환경적으로 굉장히 열악하고 또 주변 환경, 그게 주변에서는 굉장히 민원이 많은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거를 고형시설 외적으로 주변 환경개선에는 쓸 수 없는 건지.\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이 사업은 고형비료 시설비로 전액 투입이 돼야 되고요. 방금 위원님이 지적하신 그 민원사항에 대해서는 양평 축협에서 자체적으로 그 시설을 보완하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어떻게 보면 이런 거는 어렵게 우리가 지원을 해 줬지만 예산이라는 게 10% 이상이 불용되는 거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러면 그쪽에서도 참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사업은 굉장히 많다고 보고 우리가 이왕 준 거 그거를 다 100% 활용해서 쓰는 게 맞는 거 아닌지 그런 면에서 물어봤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알겠습니다. 이 사업계획서를, 저희들이 시설개선 거기에 포함됐으면 위원님 지적하신 대로 그렇게 충분히 가능한데 이 시설은 의회에서 확정을 받을 때 고형비료 시설비로 받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시설비로만 쓸 수 있다 그렇게 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축산진흥대회를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축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게 올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또 작년도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작년에도 올해는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되겠지 하고 예산을 세웠다고 보지만 본 위원은 좀 오래 갈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예산을 세웠을 때는 어떻게 보면 지금 축산인들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러면 이런 어렵게 세운 예산을 이렇게 줄일 게 아니고 축산인들한테 도움이 되는, 어떻게 보면 이게 축산인들도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소비도 굉장히 안 되고 본인들도 가축을 키우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러면 자체적으로 비대면이 됐든 어떤 여러 가지 방식이 있어서 그분들한테 어떻게 보면 힘든데 우리가 격려해 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충분히 많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어쨌든 예산을 지금 2억에서 한 1억 5,000을 삭감하고 5,000만 원 갖고 이게 제대로 뭐가 되겠는지 그런 면에서 참 아쉽네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위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부분에 대해서 저도, 이 축산진흥대회가 50년을 거쳐온 그런 행사인데 작년하고 올해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사실 저희들도 4단계만 되지 않았더라면 어떻든 간에 코로나 상황하에서도 이걸 행사를 하려고 준비를 했었어요. 예를 들면 야외에서 그냥 집합으로 마스크를 써서 이렇게 진행을 한다든지 저희 내부적으로도 굉장한 검토를 거치고 거치고 하다가 4단계가 됨으로써 그냥 비대면만 진행을 하자 이렇게 결정이 저희들 내부 그다음에 윗분한테 상의를 드려 가지고 이렇게 됐다는 말씀을 드리고요.\n위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년도에도 코로나 상황은 분명히 있을진대 예방주사가 어느 정도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 행사는 예를 들어서 축산농가들이 어떤 활력을, 화이팅 할 수 있는 그런 행사기 때문에 내년에는 특별한 그게 없으면 진행을 하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내년에는 당연히 올해 같은 상황이 되면 안 되지만 저희들이 농민들, 축산인들을 격려할 방법은 참 이런 거거든요. 있는 예산에서 어쨌든 보지는 못하지만 그분들에 대한 지금까지 가축을 키우면서 이런 대회 같은 경우에는 내가 키운 소가 어떻게 보면 육질이 우수하고 우유 같은 게 굉장히 품질이 우수하고 그런 거는 사명감, 보람이거든요. 그런 거를 좀 넓혀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참 힘들지만 충분히 있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런 게 어떻게 됐든 어려울 때지만 축산물 홍보 같은 경우에도 되고 그렇지만 너무 많은 예산을 삭감한 것 같아요, 이게 기금하고 뭐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n그래서 좀 아쉽고 또 그거랑 똑같은 성격인데 승마대회 활성화 같은 경우에도 지금도 어떻게 보면 이런 대회가 있음으로 해서 또 학생들은 상위 학교 가는 그런 쪽에도 이게 근거가 되는 거기 때문에 타 스포츠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애로사항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이런 거 같은 경우에는 전액 감액을 시켰어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전적으로 이 행사비용은 웬만하면 저희 국에서 어떤 결정할 사항 같았으면, 제가 어떤 결정권자라 그러면 저는 어느 정도 비대면으로 실시를 전체적으로 하려고 그랬어요. 하려고 그랬는데 이게 도 행사, 전국 행사 그게 전부 다 방역규정에 맞추라는 그런 지침이 있어서 부득이 이렇게 취소를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아마 승마협회나 이런 쪽에서는, 특히 수도권은 규제가 강하다 보니까 그런 거를 충청도 가서도 하고, 다른 운동들은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쨌든 이게 올해는 그러면 아예 없는 거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하필 8월 달에 수도권 4단계로 인해서 수도권에서는 전면 행사 같은 걸 취소하라는 그런 지시 때문에 부득이 그렇게 됐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리고 승마라는 게 불특정 다수가 많이 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그럼 이런 걸 했을 때 그쪽 협회에서는 굉장히 애로사항이나 그런 건 당연히 얘기했겠지만 학생들은 이게 문제가 좀 있을 거라고 보는데.\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승마대회가 학생승마대회 이 주관인데 저희들한테도 사실 이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사피력이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이런 거로 인해서 코로나가 다시 그 내에서 발생이 된다는 그런 어떤 줄 수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취소가 됐다 그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 거는 저희들이 적극적인 걸 해야지, 진짜 뭐 무서워서 뭐 못 담근다고. 그러면 행정이 하겠습니까? 다 그냥 무사안일주의로 가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건 좀 아쉽습니다.\n그리고 살처분 표준원가 산정이라는 게 어쨌든 살처분하면 이거는 우리 도에서만 원가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중앙정부에서 있는 거 아니에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살처분 명령권자는 시장ㆍ군수고 시장ㆍ군수가 직접 행해지기 때문에 물론 그 비용은, 살처분 보상금은 중앙에서 80%를 대고 살처분 매몰에 들어가는 비용은 시군ㆍ도 비용으로 전액 지원이 되는데 거기에 지난 5월 달에 일부 언론에서 굉장히 이 문제를 가지고 보도도 하고 취재도 하고 그랬는데 사실 시군별로 이게 굉장히 단가가 틀립니다. 물론 시기적으로 예를 들어서 처음에 발생했을 때는 굉장히 싼값에 되고 확 확산되면 그만치 빨리 처리를 해야 되니까 단가가 비싸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군에서 우리가 객관적인 평가를 했을 때 다른 금액이 소요가 되고 산출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권고사항으로 이걸 저희들이 산출을 해서 이 정도 금액이 합당하다는 걸 기준은 만들어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경기도에서 이걸 책임지고 하기로 했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데 현실은 보니까 살처분 같은 경우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게 일이 많지 않았는데 이게 나중에 여기저기서 급속도로 터졌을 때가 문제가 되더라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때는 어떻게 됐든 인력이나 장비나 이런 게 수급이 안 되니까, 이거는 빨리 또 살처분을 처리해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단가가 올라가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뭐 표준단가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런데 그게 시간적ㆍ공간적 상황도 있겠지만 매몰하는 기준이 또 다른 거, 땅에 매몰하는 것도 있고 FRP통에다 묻는 것도 있고 렌더링 처리시설로 하는 것도 있고 그다음에 호기호열 방식이라 그래 가지고 그냥 썩혀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그걸 시군 공무원들이 참고될 만한 원가를 저희들이 제시해 주는 게 좋겠다. 또 시군에서도 사실 그런 요구가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조사를 한다 그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러면 어떻게 보면 지침이 있으면 그걸 기준으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더 어려운 거는 지역 관내에서도 그러한 처리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밑에 다른 타 충청도 업체들이 거의 다 했다라는 얘기까지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도 ‘왜 그쪽에서 했을까, 이쪽에는 자원이 없나?’ 그랬더니 우리 경기도에도 다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입찰인지 뭔지 이렇게 하다 보면 다 밑으로 가더라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우리 경기도에는 업체가 렌더링 시설업체는 포천하고 연천 두 군데 있고요. 그다음에 살처분을 하는 인력회사는 경기도에도 있습니다. 있는데 저희들이 그것 때문에 내부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사실 처리해 주는 용이성이라든지, 시군 측면에서 볼 때 용이성이라든지 편리성이라든지 사후관리 문제라든지 이런 거는 사실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봤을 때 경기도 업체, 충청도 업체 어쨌든 그거는 확실히 좀 구분이 되는 그런 사항이 있었습니다.\n○ 양경석 위원 어쨌든 그게 경험이 더 있는 데가 밑에라고 치지만 그래도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뭘 해 봐야 경험을 축적하는 건데 그런 걸 안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고 그런 게 또 언론에서도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게 역사적으로는 아무래도 아래쪽 업체가 역사적인 경험은 더 많을 걸로 제가 보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어쨌든 표준원가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도민들이 그런 거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또 도움이 되면 그게 다 우리 지역으로 환원이 되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아니, 거기 매몰하는 데 지침은 앞으로 거기에 있어서 반드시 우리 경기도 업체가 거기에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서 자격조건은 비딩을 하는 데는, 가격을 하는 데는 자기들이 경쟁을 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없고요. 자격조건은 반드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저희들이 조치를 했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럼 그건 지침으로 내려보낸 거예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지침을 내려보냈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만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양경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박근철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박근철 위원 국장님, 수고 많으십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김성식입니다.\n○ 박근철 위원 양경석 위원님 말씀에 저도 함께하는 부분 몇 가지 말씀을 추가적으로 하겠습니다.\n올해 말산업에 관련된 예산이 얼마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말산업에 기금이…….\n○ 박근철 위원 국비예산 빼고 도비예산이 얼마예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기금이 18억이고요. 나머지 관련 예산이 한 45억 정도 됩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러면 그 예산 한 번이라도 제대로 담은 적이 있나요, 우리가?\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우리 도비…….\n○ 박근철 위원 그러니까 도비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예산실과 매일 싸워서 받아냈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그랬고 우리 위원회의 힘이 컸기 때문에…….\n○ 박근철 위원 위원님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됐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작년에도 어렵게 담았고 올해도 어렵게 담았지 않습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n○ 박근철 위원 올해는 어때요? 그 예산의 범위 내에 제대로 쓰여졌습니까, 어땠습니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우리 위원님 관심 속에서 그 예산이 기금은 100% 집행이 될 것 같고요. 나머지 부분 행사 외에는 정상적으로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n○ 박근철 위원 말산업은 계속 유지가 돼야 됩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알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미래산업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고.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이 아니라 미래산업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때문에 못 하는 부분이 안타깝고 에코팜랜드 또한 지금 이것을 현실화시켜야 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늦어지고 있고 그래서 이게 내년에도 완공이 돼야 됨에도 불구하고 아마 예산 때문에 어려움을 분명히 겪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년 예산이 얼마나 필요하죠, 에코팜랜드?\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에코팜랜드를 최종 마무리하는 데는 한 605억 정도…….\n○ 박근철 위원 가능한가요, 예산은?\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저희들은 최대한 반영하려 그러고요. 예산부서에서는 공사가 한쪽으로 너무 많이 치우쳐지는 것보다는 한 해를 늦추면 다른 사업을 많이 하기…….\n○ 박근철 위원 그게 아마 몇 년 전 사업이에요. 이게 아마 2015ㆍ16년도 예산이잖아요, 사업이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런데 저는 이게 에코팜랜드도 중요하지만 그다음 추진해야 될 사업들의 진척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라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생각이 들고 지금 북부에 있는 DMZ 관련돼 있는 쪽도 그렇고 화성이나 이쪽도 말산업에 더 확대를 시켜야 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못 하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계속적으로 먹거리 부분에 대해서 지금 소나 돼지나 닭 외에는 그나마 좀 먹는 게 오리나 양 정도인데 말에 대한 부분도, 식용에 대한 부분도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되고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말산업의 한 축을 더 담당할 수 있도록 우리 경기도가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부탁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분들이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축산에 관련돼 있는 여러분들이 그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들을 다시 한번 좀 부탁을 드린다는 말씀을 드립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당연한 지적이시고요. 식용에 대한 부분은 학술용역으로 해서 저희들이 연구단계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어쨌든 에코팜랜드는 기본적으로 예산을 담아서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그렇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러면 저는 산림 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산림 분야에 두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하나는 전에 제가 한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을 텐데 우리 연수할 수 있거나 많은 도민들이 가서 조금 힐링하고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갈 수 없으니 가족 단위든 개인적으로든 갈 수 있는, 지금 있는 몇 군데 되지 않는 곳을 더 확대시키고 그리고 더 많은 곳을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준비 좀, 한번 고민을 해 달라, 용역이든 그런 고민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한번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어때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때 2회 추경 때 위원님께서 그런 말씀이 계셔서 휴양림을 전체적으로 늘리는 부분하고 그다음에 탄소중립과 관련해서 자원화를 쓰는 부분 이거는 경기원에서 발주를 해서 연구 중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한번 용역을 통해서라도 고민을 해 봐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고요.\n두 번째는 우리 경기숲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경기숲 그저께도 갔다 왔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애초에 저희들이 할 때 좀 소나무하고 활엽수하고 같이 혼효림을 했으면 좋겠다는 주민요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갔을 때는 그 주위가 전부 다 소나무기 때문에 소나무로 변경을 해 달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 사업비 범위 내에서 소나무로 변경하는 작업을…….\n○ 박근철 위원 그거를 저한테 내용적으로 자료를 한번 주시고요. 연락 좀 주셨으면 좋겠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추가적으로 이왕 하는 거 도민들이 많이 가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관광지로서, 세계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알리고 그리고 도와 도 사이에 연결할 수 있는 그런 모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기회에. 그래서 저희들이 어려울 때 타 시도가 저희들을 도와줄 수 있고 또 저희들도 언제라도 타 시도에 지원해 줄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마련됐잖아요. 그런 근거 속에 경기도의 도민들이 어디 가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틀을 이걸 통해서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당연한 지적이시고 저희들도 그런 생각을 지금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열병에 대한 것 좀 묻고 싶어서요. 그거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지금? 어떤가요, 지금 우리나라에?\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서 정리가 될 것이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같고요. 왜 그렇게 되냐 하면 우리 환경 속에 멧돼지가 있기 때문에 멧돼지가 근절되지 않는 이상 이 병은 근절하기는 힘들 것 같고 지금 발생상황은 금년에 5월 5일부터 엊그제까지 강원도 영월, 고양, 인제, 화천까지 지금 4건이 계속 발생되고 있습니다. 집돼지에서 발생된 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n○ 박근철 위원 그렇죠. 제가 묻고자 하는 거는 그런 어려움도 있지만 이걸 통해서 멧돼지의 양이 많이 줄지 않았나요, 어때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멧돼지 양은 전체적으로 우리가…….\n○ 박근철 위원 산멧돼지 양이 많이 줄지 않았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경기도만 따지고 본다면 환경국에서 조사한 자료는 저희들이 한 4만 두, 경기도 전체 면적의 산림면적 대비 4만 두 정도 서식한다고 통계적으로 잡혀 있는데 저희들이 지금 하는 것은 한 2만 두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n○ 박근철 위원 반이 준 거예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반 정도 죽고 많이 엽사들이나 저희들이 포획물 이런 걸 해서…….\n○ 박근철 위원 아니, 그런 거 말고라도 이게 자체적으로 돼지열병 때문에…….\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자체적으로 감염이 돼서 죽어가는 것, 그런데 이제…….\n○ 박근철 위원 DMZ도 그렇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적으로 환경은 온화해서 기존적으로 멧돼지가 5마리 새끼를 낳았다면 지금 10마리씩 놓고 있습니다, 저희들 분석에 의하면. 그리고 DMZ 내는 사냥이라든지 그런 게 안 되기 때문에 거기서 계속 재생산이 된다고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n○ 박근철 위원 제가 그래서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럼 이것에 대한 백신이나 약이 전혀 없어요? 이걸 그냥 이대로 놔둘 거예요, 국가가?\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아니요. 저희들이 다국적기업에서 백신에 대한 문제는 계속 어느 정도 실용화 단계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저희들이 지금 우리 국가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게 멧돼지를 콘트롤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멧돼지가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안 되게 하는 방법 이런 연구를 강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박근철 위원 제가 이 문제를 왜 말씀드리냐 하면 사실 경기도에 있는 공무원들이 참 고생을 많이 하는데 제가 좀 안타까운 게 코로나19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에 비해서 축산에 관련돼 있는 분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관련돼서 그 고생을 하신 분들은 희석돼서 가슴이 좀 아픕니다. 그런데 저부터라도 관련 부서라 이 자리를 빌려서 경기도에 관련돼 있는 모든 공무원들, 여기 관련돼 있는 공무원들에게 다시 한번, 우리 축산에 관련돼 있는 여기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드리고 누군가는 여러분들에게 고맙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n또 하나는 우리 상임위나 또 저희들이 여러분들에게 뭔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서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박근철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철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철환 위원 김포 출신 김철환입니다. 추경예산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요. 또 내년도 예산도 지금 준비하고 계시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지금 저희들 시군에서 사업은 어느 정도 받았고요. 지금 예산부서하고 협의 중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좀 전에 존경하는 박근철 위원님께서도 얘기하셨지만 올해 예산에 대한 증액분 그다음에 내년에 대한 부분들도 잘 편성을 부탁드리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평소 아까 정승현 위원님께서도 얘기를 하셨지만 많은 위원님들과 지역에서 소통을 해 주셔서, 과장님들도 친히 오셔서 소통을 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사실 많은 위원님들께서 과장님을 통해서 내년 예산에 관련돼 있는 부분, 실질적인 축산농가가 원하는 예산에 대한 건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실질적인 농가가, 축산농가들이 공감할 수 있고 또 산림에 대한 부분들을 공감할 수 있도록 예산편성을 부탁드리고요.\n사실 조금 우려했던 것 중에 하나가 상당히 많은 예산이 올해 증액이 됐음에도 축산농가들은 사실적으로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하신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내년에 그런 것들을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예산집행을 심도 있게 논의 부탁드리겠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올해 예산에 대한 부분 중에 G마크 축산물 온도센서 지원 사업을 올해 담았었는데요. 사업설명서 80페이지입니다. 거의 절반 정도를 지금 반납하는 상황이에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이 사업은 콜드체인을 확인하는 그런 검정사업인데요. 학교급식이 안 되다 보니까 수요가 적어서 저희들이 그 수요 대비 남는 부분을 삭감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지금 급식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은 축산물 배송박스에 붙이는 센서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배송박스에 붙여서 몇 ℃ 이하로 올라가지 않는 걸 검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사업…….\n○ 김철환 위원 기존의 배송박스를 주문하는 게 아니라 온도센서만 부착하는 건가요, 이게?\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온도센서만 부착하는 겁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면 배송박스는 지금 현재 수량이 있다라는 거잖아요, 계속적으로 해 오던.\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배송박스는 우리는, 축산물은 축산물 업체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그 내용은 사실 저희들이 알지 못합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면 이것은 업체에다 지원해 주는 건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업체에다가, 공급업체에다.\n○ 김철환 위원 업체에다. 업체에서 요구한 수량이 줄었다는 거라고 판단을 하면 되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김철환 위원 증감사유에 보면 전년도 온도센서 미사용 재고분이 남아 있어 금년도 온도센서 구입 수량을 축소했다라고 되어져 있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작년도에도 남아 있으니까. 작년도에도 학교급식이 정상적으로 안 됐기 때문에 그 수량이 좀 남아 있습니다.\n○ 김철환 위원 작년에 남은 게 얼마 정도 됐었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 양은 제가 지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정확한 양을 저희들이 파악해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래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게 이게 예측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지금 정말 얘기하신 대로, 코로나가 올해 새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부분들의 판단을 잘 하셨어야 되지 않나. 예측이 좀 잘못된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이것은 사실 작년도에 전량 매입을 했기 때문에 그 수량이 남아 있는 것 같고요. 이것은 수량을 파악해서, 재고량을 파악해서 위원님께 보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네, 어쨌든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던 것이었는데 전면적,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거의 다 예산을 소진했겠지만 그러지 못할 것에 대한 예측은 분명히 올초에도 있었던 부분이기 때문에 내년도 예산을 짜실 때 수요에 대한 부분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셔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전체적으로 좀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n○ 김철환 위원 이것에 대한 부분들은 추가적인 자료를 통해서 전년도에 남았던 수량이랑 예측한 거, 내년에도 좀 예측을 하셔야 될 거기 때문에 미리 파악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게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다음에 반려견 놀이터 조성지원 사업도 지금 반납 상황으로 되어져 있어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이게 당초 4개소가 들어왔는데 3개소만 지원하는 걸로 그렇게 됐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니까 내시가 내려갔을 거라고 보여지는데 지금 한 군데가 포기를 한 건가요, 아니면 신청을 하지 않은 건가요? 어떻게 된 거지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애초 저희들이 파악을 했을 때 4개소인 것으로 파악을 했는데 저도 이것을 확인했습니다, 부서에 확인했는데 포기한 게 아니고 4개소를, 저희들이 3개소는 확정이 돼 있었고 1개소가 추가로 들어올 것이다 해서 부서에서 파악한 것 같은데 1개소를 그냥 감액했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러니까 3개소는 희망을 했었고…….\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해서 확정이 된 거고 추가 하나가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보고 4개소를 확정했는데…….\n○ 김철환 위원 예산을 세우면 한 군데 정도는 더 들어오지 않겠냐라고 예측하셨다는 거잖아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게 사실입니다.\n○ 김철환 위원 사실 이게 보니까 시군비가 70% 들어가는 사업이에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n○ 김철환 위원 사실 도비 30%인 부분이고 이걸 하려면 부지도 여유가 있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그렇습니다.\n○ 김철환 위원 시에서, 기초단체에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사실 신청을 할 수 없는 사업으로 보여집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부지를 확보해서 저희들한테 사업을 신청해야 이월이 안 되고 그 사업을 당해 연도에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 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사실 좀 아쉬운 게 반려견 놀이터 같은 경우는 시군에서 원하는 곳들이 지금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군 재정에 대한 부분 그다음에 아까 얘기했던 토지에 대한 부분들이 준비가 안 되다 보니까 못 하고 있는 부분이거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습니다.\n○ 김철환 위원 그래서 30%의 도비로 해서 거의 대부분 시가, 기초단체가 준비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사업인데 이렇게 그냥 놔뒀을 때의 문제점도 사실 있습니다. 많은 도민분들이 지금 반려동물에 대한 부분들에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 많은데 불구하고 사실적으로 기초에서 못 받쳐주면 이걸 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경기도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대안마련이 필요하지 않나. 단순하게 1개 시군이 더 들어오고 1개 정도 예산을 더 확정해 놓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사실 저희들이 놀이터에 대해서는 공원부지를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공원부지 내 또 반대하는 도민들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데 굉장히 민원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하천구역 내 이걸 설치했으면 좋겠는데 하천법에 따라서 설치를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은 이번에 국회의원님들한테 지사님 서한문을 보냈습니다. 이걸 좀 고쳐 주시면 저희들이 방금 위원님 말씀하신 그 부분에 대해서 확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그렇게 보낸 바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이 사업 같은 경우는 점차 늘려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예산도 더 확충해야 되고 그다음에 개소 수도 늘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미리 기초단체와의 사전 교류가 상당히 필요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내시를 내리실 때 너무 단정적인 내시보다는 좀 더 수요가 있을 때는, 그랬을 때 또 예산에 대한 부분들을 의회에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기초단체와는 충분히 협의를 하셔서 좀 확대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행정을 부탁드리겠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군뿐만 아니라 사실 위원님한테도 충분히 요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사전에 내년도 예산이 완전히 확정되기 전에 우리 위원님별로 따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김철환 위원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철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 안 계시면 보충질의하실 위원님 계시면 보충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경석 위원님 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경석 위원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참 많은 게 바뀌었고요. 또 요즘에 우리가 여름휴가라고 생각을 하면 바다나 산으로 이렇게 많이 가는데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잘못되면서 거기서 오염수를 어쨌든 방류하겠다라고 공언을 했기 때문에 이제 방류가 될 것이다. 되면 어쨌든 우리나라는 근접하고 또 조류가 우리 쪽으로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마 그게 나왔다, 방류를 시작했다고 하면 아마 바다로 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사업 아이템을 충북 제천이나 단양 이런 쪽 풍광이 수려한 그런 곳에 아마 캠핑이나 아니면 요즘 같은 경우는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개인적인 게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옛날같이 밀집된 콘도 형식은 사업성이 안 되는 것이고 이제 단독형으로, 아마 이 사업이 굉장히 될 거다 생각을 하거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위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후쿠시마 원전뿐만 아니고 예를 들어서 바다에 대한 미세플라스틱 문제 때문에 다른 축산물이라든지 다른 임산물을 먹어야 된다 그런 요구도 많으시고요. 사실 요즘 우리 산림과 관계된 시장상황을 보면 도내 수목원이라든지 휴양림이라든지 이런 어떤 시설에 대한 인허가라든지 이런 게 좀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래서 어쨌든 이제 경기도민들이 그런 공간을 또 활용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가평 쪽에 그런 휴양림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쪽도 굉장히 위치나 풍광이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쪽의 그런 것을 활용해서 어떻게 보면 저렴한 비용으로 우리 도민들한테 제공하면 그래도 경기도의 도민이라는 게 보람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예산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고 본 위원도 진짜 양평 가니까 굉장히 부럽더라고요. 일개 군에서도 그 정도 하는데 광역단체인 우리 경기도가, 지금 경기도가 하고 있는 휴양림 시설 가보면 굉장히 열악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업은 해야 되는데 어쨌든 우리가 도에서 자체사업으로 하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됐든 그런 민간 예산을 컨소시엄을 하든 또 우리 경기도 같은 경우에는 수익사업을 하는 경기도시공사 같은 곳도 있기 때문에 그런 쪽도 사업을 해서 수익을 내면 어쨌든 지역에다 뭔가 환원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지금 가평도 말씀하시고 도 전체 자연휴양림이라든지 수목원이라든지 산림과 관련된 시설들이 사실 대부분 우리 경기도 같은 데는 북부에 많이 치우쳐 있습니다. 치우쳐 있고 그다음에 우리 산림 전체로 본다면 경기도 같은 경우는 지금 산림이 굉장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줄어들고 있고 전국 평균 산림률을 63%로 본다면 경기도는 한 50% 남짓 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기후 문제, 탄소중립 문제 이런 것 때문에 저희들이 정책적으로 산림을 한정 짓기는 어렵다 그렇게 보고 도시림이라든지 도시숲이라든지 공원이라든지 그런 데 많이, 남쪽은 그런 쪽으로 치우치고 북쪽은 산과 관련된, 남쪽은 공원과 관련된 그런 정책들을 저희들이 입안하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 것을 나눠서, 도유림이라는 것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남쪽에도 용인이나 평택 같은 경우에도 꽤 있더라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것은 치우쳐 있어서 화성 같은 데도 지금…….\n○ 양경석 위원 그런 것을 그 현황에 맞게 밑에는 공원화를 하고 또 북부 쪽은 산림이 더 우거지고 그러다 보니까 휴양림이나 사람들이 더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야 된다고 봅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고요.\n○ 양경석 위원 그리고 아까도 경기숲 얘기했을 때 소나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류로 인해서 멸종할 수 있는 품종인 나무 중에 하나거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가다 보면, 수원 같은 경우에도 가로수가 소나무인데 어느 분이 저거 재선충 걸린 거라고 하더라고요, 붉어지는 게. 그런데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수목도 우리가 선택을 잘해야 돼요. 그냥 저기 저쪽에서 괜찮다 해서 그걸 해 보면 요즘에는 기후환경에 또 안 맞는 게 많거든요.\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일단 소나무 같은 경우는 가로수에, 저번에 위원님께서 지적이 계셔서 저희들이 전수조사를 해서 사실 재선충이 있는 걸, 사실 아주 극소량의 재선충이 나오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조치를 했고요. 그런데 산림 혼효림에 대해서 소나무는 실제적으로 기후변화가 된다면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장기간으로 본다면 멸종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이긴 합니다.\n○ 양경석 위원 이게 요즘에 한 3, 4년 전부터 미세먼지 때문에 굉장히 아마 전국 지자체가, 특히 경기도 내에 있는 지자체들이 숲가꾸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거기에서 어떻게 보면, 이런 말하면 뭐 하지만 업자들만 돈 벌었어요. 그리고 나무라는 것은 심은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심는 예산은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관리하는 예산은 굉장히 예전에 세웠던 것보다 더 늘어나지 않더라고요. 이게 사람이나, 저는 나무는 사람하고 똑같다고 봐요. 가꾸고 쳐다보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저희들이 본예산에 편성된 예산 중에 조림 예산이 한 110억에서 120억 정도 됩니다. 사실 위원님 지적하신 대로 조림 후 가꾸기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숲가꾸기 사업비가 조림 예산의 한 70% 정도 편성되는데 이게 위원님이나 우리 도민들 눈높이에 그렇게 딱 들어맞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조림 후라든지 지금 산에 대한 임업이 워낙 다른 식물하고 접촉이 많이 됐기 때문에 한마디로 굉장히 들어가기가 힘든 지역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 가꾸기 예산은 인건비이기 때문에 위원님 눈높이에 딱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산림조합이나 이런 쪽에다 위탁도 많이 하고 있는데…….\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저는 그런 거예요. 어떻게 보면 가꾸고 해야 가야 되는데 다 사업을 해요. 사업이라는 것은 틀리거든요, 문구 자체가. 사업은 돈벌이 수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것을 산림을 심는 이유가 있잖아요. 굉장히 기후가 안 좋다 보니까 이산화탄소 그런 것도 많이 잡아들이고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후관리 이런 쪽에 더 많이 예산을 편성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양경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추가질의 답변을 진행하겠습니다.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하여 추가질의는 5분 이내로 시간을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 추가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축산산림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질의 답변 종결을 선포합니다.\n회의장 정리를 위하여 정회를 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15시 20분까지 정회를 선포합니다.\n(15시08분 회의중지)\n(15시27분 계속개의)\n○ 위원장 김인영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김석철 농업기술원장 나오셔서 농업기술원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안녕하십니까? 농업기술원장 김석철입니다. 경기농업 발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는 존경하는 농정해양위원회 김인영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n제안설명에 앞서 참석한 농업기술원 간부공무원을 소개하겠습니다.\n박인태 연구개발국장입니다.\n(인 사)\n최미용 기술보급국장입니다.\n(인 사)\n지난 7월 14일 자로 인사발령된 홍동기 행정지원과장입니다.\n(인 사)\n조창휘 작물연구과장입니다.\n(인 사)\n원선이 원예연구과장입니다.\n(인 사)\n정구현 친환경미생물연구소장입니다.\n(인 사)\n박중수 소득자원연구소장입니다.\n(인 사)\n이수연 선인장다육식물연구소장입니다.\n(인 사)\n이기택 지도정책과장입니다.\n(인 사)\n김현기 기술보급과장입니다.\n(인 사)\n조금순 농촌자원과장입니다.\n(인 사)\n이영순 환경농업연구과장은 생활치료센터 근무 후 공가 중으로 부득이 참석 못 한 점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n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농업기술원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예산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배부해 드린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예산안 설명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먼저 사업명세서 585쪽 세입예산안입니다. 농업기술원 소관 세입예산 총액은 204억 326만 원으로 당초예산 197억 4,748만 원보다 3.32% 늘어난 6억 5,577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세입내역은 기타 이자수입 및 시도비보조금 반환수입, 보전수입 등 내부거래 국고보조금 사용잔액 등 6억 5,577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87쪽부터 598쪽까지 세출예산입니다. 세출예산은 당초예산액 537억 142만 원보다 2.4% 늘어난 12억 6,385만 원을 증액하여 549억 6,528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부서별 세출예산을 설명드리겠습니다.\n먼저 587쪽 행정지원과 소관입니다. 행정지원과 세출예산은 32억 1,979만 원으로 시설비인 원내 부지경계 정비공사 실시설계 용역비로 4,600만 원을 증액하였고 코로나19로 해외기술교류 미추진에 따른 국제화여비를 감액하였으며 국고보조금 반환액 2억 4,328만 원 편성 등 당초예산액 29억 8,600만 원 대비 7.8% 늘어난 2억 3,378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588쪽부터 589쪽까지 작물연구과 소관입니다. 작물연구과 세출예산은 40억 1,525만 원으로 농업과학연구관 외벽유리 보수공사 시설비로 4,000만 원, 육아휴직 대체 기간제근로자 인건비 700만 원, 디지털 농업 기반구축 및 활성화 지원에 2억 4,400만 원을 신규 증액하는 등 3개 사업비 증액과 코로나19로 인한 상반기 행사 취소 등으로 삭감한 3개 사업 등 당초예산액 37억 2,500만 원 대비 7.8% 늘어난 2억 9,023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590쪽 원예연구과 소관입니다. 원예연구과 세출예산은 63억 1,193만 원으로 사무기기 운용을 위한 사무관리비에 1,200만 원을 증액하였고 코로나19로 인한 출장 자제와 대면 생육조사 감소에 따른 국내여비와 조사보상금 감액 등 당초예산액 63억 1,543만 원 대비 0.05% 줄어든 3,5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591쪽 친환경미생물연구소 세출예산은 41억 7,782만 원으로 국비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코로나19로 인해 집행이 어려운 국내외여비를 감액하였고 버섯 안정생산기술 개발 시험재료비 2,000만 원 증액 등 총액 내 통계목 간 예산을 조정 편성하였습니다.\n592쪽 소득자원연구소 세출예산은 27억 7,594만 원으로 시험연구용 토지매입 9억, 시험연구 토지기반 조성을 위한 설계용역비 4,50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 당초예산액 18억 3,094만 원 대비 51.6% 늘어난 9억 4,5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593쪽부터 594쪽 선인장다육식물연구소의 세출예산은 33억 5,668만 원으로 선인장다육식물 기술개발 등 시험재료비 800만 원과 민간경상사업보조비인 다육식물 온라인 정보유통시스템 개발 산학협력사업비 1,500만 원을 증액하였고 코로나19로 인해 집행이 어려운 국내외여비 800만 원 감액 등 총액 내 통계목 간 예산을 조정 편성하였습니다.\n595쪽부터 596쪽까지 지도정책과 세출예산은 61억 5,099만 원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현장교육 추진 불가, 비대면 행사로 전환 운영 등으로 당초예산액 62억 2,200만 원 대비 1.1% 줄어든 7,116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597쪽의 기술보급과 세출예산은 154억 94만 원으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교육 및 행사 축소 운영에 따른 감액으로 당초예산액 154억 9,344만 원 대비 0.6% 줄어든 9,25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598쪽 농촌자원과 세출예산은 66억 3,324만 원으로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교육과 행사 축소로 당초예산액 66억 7,124만 원 대비 0.6% 줄어든 3,8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이상으로 농업기술원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보고드렸습니다.\n존경하는 농정해양위원회 김인영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평소 농촌진흥사업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보고드린 농업기술원의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원안대로 가결해 주신다면 저희 농업기술원 전 직원은 계획된 사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김인영 김석철 농업기술원장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검토보고 순서입니다.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검토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김호원입니다. 농업기술원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n경기도 예산 규모는 검토보고서 1페이지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2페이지 농업기술원 소관 예산안 규모입니다. 세입예산안은 204억 300만 원으로 기정예산액 대비 6억 5,600만 원이 증가하였습니다. 세출예산안은 기정예산액 537억 100만 원보다 12억 6,400만 원이 증액된 549억 6,500만 원입니다.\n다음은 3페이지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각 부서별, 과목별 세입예산안은 표4, 표5와 같으며 시도비보조금 반환수입, 국고보조금 사용잔액, 기타 이자수입 등 6억 5,600만 원을 반영한 것입니다.\n계속해서 4페이지 세출예산안에 대한 검토입니다. 재원별로 보면 금번 세출예산안 증액분은 12억 6,400만 원으로 자체재원은 12억 6,500만 원 증액되었고 의존재원은 100만 원 감액되었습니다. 주체별로는 국고보조사업으로 14개 사업에 100만 원 감액 편성되었으며 국비 내시변경 및 기존 세부사업 총액 내 통계목 간 조정을 통해 예산이 변경되었습니다.\n다음은 6페이지 도 자체사업은 총 40개 사업에 12억 6,500만 원이 증액 편성되었습니다. 먼저 디지털 농업 기반구축 및 활성화 지원사업은 신규사업으로 농업과학 기술개발 시험연구 활동과 데이터의 디지털 관리를 위한 디지털 농업 연구플랫폼 구축사업입니다. 본 사업은 농촌진흥청에서 추진하는 농업 연구개발 통합 플랫폼과의 중복성 여부와 양 플랫폼 간 연계방안, 이용자 확대 그리고 플랫폼 구축 이후 소요되는 예산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소득자원 연구기반 조성사업은 인삼 연구 관련 연구소 토지가 지난해 연천군의 도로 및 하천 공사에 따라 일부 수용되었고 현재 농지를 임차하여 사용 중인 사항으로 금회 추경에 시험연구용 토지를 매입하고자 요구한 사업입니다. 다년생 식물인 인삼의 특성과 임차 토지에는 시설투자가 불가한 점을 감안하여 토지매입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지난해 9월 감정평가 시 평균 구매액인 7억 3,000만 원 대비 20% 이상 증액 요구된 사항으로 향후 실제 매입 시에는 정확한 금액을 재산출하여 과다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n금번 농업기술원 소관 제3회 추경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불요불급한 출장, 교육, 행사 등의 예산을 감액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포스트코로나19 시대를 준비하고 농촌 현실에 맞는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그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코로나19 상황을 전제한 사업추진 방향을 세워 효과적인 사업추진 노력을 통해 농업경쟁력과 소득증대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n이상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 제3회 추경(농업기술원))\n○ 위원장 김인영 김호원 수석전문위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 답변에 앞서 필요한 자료가 있으신 위원님께서는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김석철 농업기술원장은 발언대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 답변은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하여 일문일답 방식으로 진행하되 질의 답변 시간은 기본 10분, 보충질의는 5분 이내로 하겠습니다. 회의진행은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위원님들의 질의 사항 중 원장의 답변이 어려울 경우 소관 업무 과장이 답변해도 좋습니다. 다만 사전에 위원장의 동의를 얻은 후 소속과 직ㆍ성명을 밝히고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승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백승기 위원 안성 출신 백승기입니다. 원장님, 추경 준비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n지금 화상병이 2022년부터 지방비를 한 20% 부담하죠?\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현재 금년도에 농식품부에서 시행령ㆍ시행규칙까지 다 변경을 해서 내년부터는 그렇게 시행하는 걸로 저희가 통보를 받았습니다.\n○ 백승기 위원 지금 경기도 과수화상병에 대해서 현재 상황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저희가 2020년도 기준으로 봤을 때 2020년도에 92㏊ 정도가 발생이 됐고 총액 120억 정도가 손실보상금으로 집행됐습니다. 다만 2021년도 8월 말까지 현재 통계를 잡아봤을 때 작년도 대비해서 한 80% 정도가 이미 나왔고 가을 예찰을 통해서 저희가 예찰할 경우에 작년도보다는 조금 더 상회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됐을 때 내년도에 얼마큼 발생할까에 대한 예측은 아직 정확하게 어렵지만 저희는 아마 금년도나 작년도 수준으로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일단 예측은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가 금년도에 과일을 수확하고 나서 가을에 집중예찰을 할 예정인데 그때 최대한 예찰을 해서 조기에 방제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지금 경기도 전역을 다 대상으로 보시나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지금 이미 그동안 경기도의 안성 위주로 발생됐던 게 평택ㆍ이천ㆍ용인ㆍ여주 그다음에 북쪽으로 연천ㆍ파주까지 계속 나왔기 때문에, 올해 특히 남양주에 배가 많은데 남양주도 나왔기 때문에 경기도의 어떤 특정지역에 편중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온다고 이렇게 저희는 평가하고 있습니다.\n○ 백승기 위원 지금 저희가 화상병이 2020년부터 진행하셨다 그랬나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아니요. 초기 발생은 2015년에 초기 발생했고요. 다만 급격하게 늘어난 게 2020년도에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20년, 21년 해서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말씀드리고요. 참고로 그동안 충북지역이 가장 큰 문제였었는데 작년에만 해도 충북이 한 280㏊에 600억 정도의 손실보상금을 집행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우려했던 게 경북의 사과 재배지역인데 올해 경북의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사과화상병이 발생됐기 때문에 아마 이건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저희가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n○ 백승기 위원 그럼 경기도는 2015년도 발생해서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수종변경도, 과수원 하시는 분들이 다른 걸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수종변경 현황은 어느 정도 돼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그래서 저희가 올해 용역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지금 특히 안성지역에서는 이미 5~6년 전부터 폐원을 시켜서 대체작물로 가고 있는데 저희가 그래서 엊그제도 보도자료를 잠깐 냈지만 가장 많은 게 인삼이라든지 그다음에 콩이나 이런 대체작물로 많이 변환을 시키고 일부는 택지로 조성한 지역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삼 쪽으로 많이 전환을 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화상병 매몰지로 인한 2차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서 저희가 매몰지에 대한 전체 리스트를 만들고 지도에다 표시해서 정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수종변경 시 어떻게 됐든 기술원에서, 전문가들이니까 농가들이 생각하는 그런 차원도 또 틀릴 수 있고 농가소득이나 이런 것 담고 또 지역별로 특산품이라든가 이런 거 감안해서 권장할 수 있는 그런 거는 미리 만들어 놓고서 추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쪽도 좀 검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올해 저희가 안성센터하고 같이 공동으로 지금 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현황이 어떻고 그다음에 앞으로 이렇게 대체작물로 갔을 때 어떤 수종으로 가야 될 건지, 지금 일부는 포도로 전환을 시키고 있는데 포도로 전환하는 분 또 인삼으로 전환하는 분, 기타 다른 밭작물로 전환하는 분들에 대해서 정밀한 기술지원이 뒤따라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성센터하고 공동으로 해서 기술지원까지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n○ 백승기 위원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인영 백승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양경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경석 위원 양경석 위원입니다. 요즘에 농업이 1차 산업에서 혹자는 4차, 6차라고 이렇게 얘기를 해서 디지털 농업 기반구축, 어떻게 보면 요즘에는 자료, 데이터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요. 그렇지만 농업인들이 느끼는 디지털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부 농민들, 진짜 한 1%의 농민들만 이런 거를 피부적으로 느낀다라고 본 위원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활성화 지원사업에 2억 4,400인가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그렇습니다.\n○ 양경석 위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아직까지는 지방자치가 확실히 안 됐기 때문에 어쨌든 농업진흥청에서 어떻게 보면 다시 기술원으로 또 일선 지자체는 농업기술센터나 이런 체계죠. 그런데 지금 보면 다 진흥청에서도 이런 사업들을 하고 또 앞서가는 시도 같은 경우에는, 시군 같은 경우에는 거기서 이런 사업들을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런 거하고 지금 우리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하는 기반구축 활성화 사업이 뭐가 틀린 건지?\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위원님 좋은 지적해 주셨는데요. 저희가 일부 농업인이 받는 디지털 농업에 대한 느낌하고 저희 관련된 전문가나 또 공무원들이 받는 느낌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실제 일반 농업인들이 느끼는 디지털 농업이라는 건 다분히 스마트팜이나 첨단농업으로 가는 길인데 저희가 연구 쪽에서 생각한 것, 특히 올해 추경에 반영된 예산은 농업연구라든지 그다음에 농가에서 쓰고 있는 이런 스마트팜이나 이런 것들을 어떻게 디지털로 전환시킬 건가 하는 그런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디지털 농업 기반구축에 관련된 예산은 지금 육종을 할 때, 그동안은 수기로 전부 쓰는 그런 형태의 수기작업 야장을 위주로 해서 연구를 했었는데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전산화시키고 이런 자료들이 밑바탕이 돼서 첨단육종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과 그다음에 저희 연구원들도 지금은 전부 다 연구자료, 기초자료를 수기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전자연구노트를 만든다든지 이런 어떤 디지털 연구로서의 기반을 만드는 사업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통해서 농업인들 입장에서는 좀 더 선진화된 그런 디지털 농업으로 갈 수 있는 어떤 발판을 만든다라는 측면에서 저희가 추진하고 있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러니까 어쨌든 이런 자료는 진짜 농업이나 어떻게 보면 한 가정을 이끄시는 가정주부들도 가계부나 농장일지 같은 것을 다 쓰시거든요. 진짜 어떻게 보면 그런 쪽의 전문가들은 그런 기록이 없으면 요즘 세상같이 굉장히 막 변하는 시대에 그걸 기억을 다 못 하거든요. 굉장히 이게 중요한 건데 본 위원이 말씀드리는 것은 기술원이나 농진청이나 같은 맥락으로서 우리 농민들, 중앙정부에서는 국민들 또 우리는 도민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같이 좀 맞춰줘야 되는 거 아닌지.\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그래서 그것을 지금 현재 농진청에서도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게 시간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향후 한 4, 5년간의 시간 갭이 좀 있고 그다음에 각 지역에서 하고 있는 작물하고 매칭이 안 되기 때문에 일단 각 도별로 먼저 추진하고 그것들을 농진청에서 나중에, 추후에 전체 통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충분히 통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럼 그런 것 같은 경우에는 진흥청 같은 데서 일선 17개 시 광역단체들한테 매칭사업같이 예산을 내려주면, 그래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받아서 종합적으로 데이터를 하면 되는데 지금은 이원화가 되는 거라 그런 문제가 있다라고 본 위원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그래서 지금 저희가 지역특화작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진청이 기본계획을 가지고 각 지역특화, 경기도는 7개 작물인데 그중에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게 벼 그다음에 콩 그리고 장미 이 세 작물에 대해서는 디지털 육종을 기반으로 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내년부터 추진할 것은 집중적으로 세 작물에 대해서 추진하고 나머지는 다른 도별로 역할 분담을 시켰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리고 본 위원도 한 1년 반 동안 농업기술원을 이렇게 봤을 때 예전의 기술원이 어떻게 보면 지금 시대의 흐름하고 같이 간다고 보는데 지금 굉장히 뭔가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옛날의 기술원이라고 하면 농업의 중심이 돼서 뭔가 전반적인 농업을 위해서 처음부터 육종하고 나중에 사업성 이런 것까지 전체적으로 다 했다라고 보는데 요즘에는 그냥 작물, 말 그대로 연구 그리고 예전에는 기술원에서 어떠한 사업을 연구해서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사업성이 있다 해서 본청으로 보내면 거기서 사업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런 과업은 별로 없고 오로지 식물자원 연구 그런 걸로만 가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농수산진흥원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사업이 더 축소된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일선 시군 농업기술센터 같은 경우에도 농정과보다 더 못 한 저기를 받고 있어요. 뭔가 이거 개선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글쎄, 저희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아마 위원님 보실 때는 양이 덜 찬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n○ 양경석 위원 아니, 농민들이 굉장히 기술원에 의존을 많이 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기술원 같은 경우에도 너무 특정작물들에만 막 치우치다 보니까 그쪽에 안 들어가 있는 저기들은 농업기술원을 좋게 안 보는 거예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저희 농업기술원에서 전체를 다 할 수는 없고 결국은 시군 농업기술센터하고 같이 계속 일을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업들은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면서 저희가 국도비를 지원해 주는 형태로 이렇게 공동으로 계속 진행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연구하는 것들이 인력이나 예산에 한계가 있다 보니까 많은 건 못 하고 있고요. 저희가 하는 것들은 중점적으로 하고 안 되는 것들은 농진청이라든지 타 도에서 연구한 것들을 저희가 기술지도자료로 이용해서 그렇게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본 위원이 말씀드리는 것은 아까 콩 말씀하셨고 버섯 말씀하셨고 장미 말씀하셨는데 그게 실질적으로 지역 농민들이 그것을 하는 농민 수, 그것으로 인해서 나오는 농업소득 그게 얼마나 된다고 보세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저희가 특성화 개수를 계산해서 타 지역보다 우위에 점하고 있는 것들, 특히 타 지역보다 좀 특성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7개 작물을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7개 작물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요. 기타 저희가 마이너한 작물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규모 작물들 하는 농가들한테는 저희가 별도로 타 도에서 연구한 것이라든지 그다음에 농진청에서 연구한 자료를 인용해서 다시 재보급하도록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어 가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렇지만 농민들 같은 경우에는 그게 대규모로 하니까 또 그런 게 기본적인 소득이 되니까 그것은 알아서 자생으로 하라는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분들은 그래도 다른 지역같은 경우에는, 조그만 군 단위에서도 어떤 작물을 특성화시켜서 대규모화해서 그런 축제 같은 것을 굉장히 하고 있는데 경기도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게 없다는 거예요, 자체 연구소 같은 경우에.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은 좀 불합리하다고 보는 거지요. 본인들도 어쨌든 그래도 우리 기술원이 있으면 뭔가 의지하고 싶고 거기서도 뭔가를 정보나 이런 걸 공유해서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다른 데 가서 견학 보면 아니, 어떻게 조그만 군 단위에서 이렇게 많은 예산을 지원해서 특정작물을 이렇게 해 주니까 우리 지역 농민들은 그게 부러운 거예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타 도하고 경기도는 농업형태가 조금은…….\n○ 양경석 위원 농업형태가 틀리지만 농민은 다 똑같습니다.\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그건 맞습니다. 맞는데 다만 경기도인 경우에는 소품목, 아니 다품목 소량재배 형태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 지역 같은 경우는 품목 수는 적지만 다량생산하는 체제로 가다 보니까 그것들이 집중화할 수 있는 발판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지역별로는 예컨대 이천의 복숭아를 기반으로 한다든지 안성의 배나 한우를 기반으로 한다든지 이렇게 해서 지역적인 특색을 조금 더 갖출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좀 더 중점돼야 될 거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n○ 양경석 위원 그러니까 그런 것 같은 경우에도 자체적으로 진짜 연구라도 해서 그걸 대량으로 그렇게는 못 하지만 그래도 우리 기술원에서 이런 저기도 우리가 농민들이 저기를 하시는 품종은 거의 다, 뭐 관심은 갖겠지만 그런 것에서 기본적인 것은 역할을 좀 해 줘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같은 경우에도, 경기도 농업은 그래도 굉장히 좋은 여건이에요. 주변에 소비처가 60% 이상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분들도 그 나름대로 굉장히 고심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분들은 본인이 농업 저기 해서 저기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준다, 그게 어떻게 보면 기술원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좋은 지적 감사드리고요. 저희가 열심히 더 노력하겠습니다.\n○ 양경석 위원 그리고 또 이렇게 예전보다 사업하던 것을 많이 뺏겼어요. 원장님께서는 별로 못 느끼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예전에 봤던 기술원하고 현재의 기술원하고는 뭔가가 좀 아쉬운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쨌든 농민들이 기댈 수 있는, 실질적으로 농민들이 누구한테 기대요? 우리 광역 같은 경우에는 그렇다고 농수산진흥원에다, 그쪽은 어떻게 보면 계약재배나 친환경이나 그쪽 농업인들만 저기 할 수 있는 곳이잖아요. 나머지 농민들이 기댈 곳은 기술원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데서 어쨌든 그런 아쉬움, 힘든 그런 것을 얘기를 들어야 되거든요. 저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봐요.\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네, 하여튼 위원님 좋은 지적에 감사드리고요. 관심에 부합하도록 하여튼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n○ 양경석 위원 이만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양경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안 계시면 보충질의 시간입니다. 사전 위원님들께 공지해 드린 바와 같이 보충질의 시간은 5분입니다. 보충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추가질의도 없으시지요?\n(「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농업기술원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질의 답변 종결을 선포합니다.\n위원님들께 금번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계수조정과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번 추경예산안은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및 국고보조금 변경내시를 반영하기 위해 편성된 예산이 대부분이므로 계수조정은 별도의 소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전체 위원님들의 의견을 모아 조정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계수조정을 마칠 때까지 정회를 선포합니다.\n(15시58분 회의중지)\n(17시05분 계속개의)\n○ 위원장 김인영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계수조정은 정회 중 위원님들 간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조정되었음을 말씀드리며 자세한 계수조정 결과는 배부된 자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다음은 예산안에 대한 토론 및 표결 순서입니다. 배부해 드린 예산안 계수조정 결과에 대하여 토론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위원님들께서 별다른 의견이 없으시므로 예산안 계수조정 결과에 대한 토론 종결을 선포합니다.\n이제 예산안을 표결할 순서입니다만 의회에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용항목을 설치할 경우 지방자치법 제127조제3항에 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집행부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안동광 농정해양국장 나오셔서 의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정해양국장 안동광 농정해양국장 안동광입니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모두 동의합니다만 다만 이번에 신규로 편성해 주신 친환경 토지개량제 지원 사업에 대해서는 부동의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n○ 위원장 김인영 네, 알겠습니다. 다음은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나오셔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축산산림국장 김성식 축산산림국장 김성식입니다. 동의합니다.\n○ 위원장 김인영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김석철 농업기술원장 나오셔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농업기술원장 김석철 농업기술원장 김석철입니다. 동의합니다.\n○ 위원장 김인영 수고하셨습니다. 의결에 앞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 시 동의 방법에 대하여 위원님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n경기도의회 회의규칙 제89조제3항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소관 상임위원회의 예산심사에서 삭감한 세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게 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새 비목 설치의 경우 24시간 이내 동의 여부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통지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종전에는 경미한 사항은 위원장에게 위임하고 중요한 사항 변경은 부위원장님들과 협의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견이 없으시면 종전 결정 방식대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통보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러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조정 시 동의 방법은 종전의 방법과 같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표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표결은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하여 이의유무를 묻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의사일정 제1항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및 제2항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은 예산안 계수조정 결과와 같이 원안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이의가 없으므로 원안대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n2021년도 제3회 추경 수정안 및 2021년도 제3회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수정안\n위원님 여러분! 집행부 관계공무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관계공직자 여러분께서는 금번 의결된 예산안을 내실 있고 효율적으로 집행하셔서 코로나19 장기화 등에 따른 농업ㆍ농촌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여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1세기는 아시아시대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서양의 분석적인 것과는 달리 종합적입니다. 많은 성경개론이 소개되었지만 서구식 연구물 중심이었습니다. 첨부된 통섭 성경개론은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가진 통섭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n모쪼록 중국 선교에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야벳의 시대가 셈의 장막에 온전히 거하게 될 때까지, 중국 오지 선교에 열매가 맺는 날까지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n최 목사는 40년부터 해방까지 옥고를 치렀다. 최 목사는 1901년 6월 25일 경남 통영 출생으로 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산 의신학교를 졸업한 후, 진명유치원 보모로 재직하기도 했다. 또한 통영애국부인회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자금 모금과 독립계몽에도 힘썼다.\n1924년 남편과 사별하고 평양여자성경학원을 수학한 후 목회에 투신했다. 최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이기선·주남선 등과 함께 재건운동을 전개해 ‘재건교회’를 창설했으며, 48년 부산에 재건교회와 성경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됐다. 또한 목사안수를 받아 최초의 장로교 여목사가 됐으며, 설교집으로 ‘모든 것 다 버리고’를 남겼다. 본보는 장로교 최초의 여목사이자 참 선지자로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바친 최덕지 목사의 자서전 ‘이 한 목숨 주를 위해’(저자 故 최종규 목사) 전문을 싣는다.\n최덕지 목사는 1910년 음 6월 25일 통영군(현 충무시) 항남동에서 탄생했다. 아버지 경주 최씨 익문씨와 어머니 김해 김씨 처녀씨의 무남독녀로서 태어났다. 당시의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있던 곳이다. 이 가정에 복음의 빛이 비치게 된 것은 조모 때부터였다.\n조모는 서씨인데 40세 때 입신하여 신앙의 씨를 뿌린 것이다.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셨는데 아들 익문씨는 당시 신교를 믿지 않았고 자부만 시모의 권면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다. 당시 익문씨는 갓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셨는데 가정은 언제나 분망했다.\n그때 다닌 교회는 통영 대화정교회였고, 최상림 조사가 시무하고 있었다. 덕지 소녀는 어머님 품에 안겨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민첩했으며, 가정에서는 부군을 많이 도우셨다.\n주일이 되면 성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했으나 가정에서도 일을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일에는 아예 식량을 가지고 교회에서 지낸 분이다. 후일 최덕지 목사가 그 무서운 옥중에서도 성일을 지키었음은 이때 어머니의 신앙이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것이리라.\n덕지 소녀는 유년주일 학교에 열심히 다녔다. 선생님께서 하나님은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하였다. 이 때부터 자기 아버지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아버지를 예수 믿게 해 주세요. 아멘.” 일곱 살 날 어린 딸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익문씨는 들었다.\n아들도 없던 터라 딸에 대한 귀여움과 사랑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조상의 제사는 어떡하나.” 이렇게 말하며 반대했지만 딸의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스쳐갔다. 이렇게 하기를 삼년-덕지 소녀가 아홉 살 때 드디어 아버지는 하나님께 정복을 당하고 예수를 믿었다. 무슨 일이나 성심으로 하시는 분이어서 신앙생활도 역시 그러하였다. 새벽기도회에도 출석하였고, 성경도 매일매일 열심히 읽었다.\n자신과 덕지 소녀는 인도상을 두고 매양 경쟁을 했다. 자기도 매주일 20명 내지 30명씩 안 믿는 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덕지 소녀는 그보다 매주일 4-5명은 더 데리고 왔다. 심지어 어떤 주일은 50여명이 넘는 많은 아이들을 줄지어 데리고 와 교사와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n당시 통영에는 두 계통의 학교가 있었다. 하나는 사립학교이고 하나는 공립학교였다. 공립학교는 당시 일본이 한국을 합방하고 일본식 교육제도로 시행되는 학교로서 통영공립보통학교라 불렀다.\n사립학교는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계통의 학교인데 통영진명학교이다. 덕지 소녀는 신앙과 애국심에서 1912년 4월에 통영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덕지 소녀는 부모의 슬하에서 한문을 읽다가 4년제 국민학교에서 현대식 학교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예배를 드렸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n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모든 학과에 앞서 성경시간이 제일 좋았다. 십계명을 배웠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알았다. 그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인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심을 마음 속 깊이 믿었다. 우상을 섬기면 복 받지 못하고 화 받을 것을 어린 가슴에 고이 명심했다.\n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귀했다. “나는 부모에게 효성을 다해야지.”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평생 위로 하나님 공경 아래로 부모님께 효성”하며 살겠다고 기도하며 맹세했다.\n마냥 즐겁기만 한 어린 가슴에 뜻하지 않은 인생의 슬픔을 맛보게 되었다. 그가 4학년 졸업반이 된 해의 이른 봄 어머니의 죽으심이다. 덕지 소녀의 나이 15세 때다. 학교에서 봄소풍(당시 명칭으로는 원족이라 함)을 학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n덕지 소녀의 어머님 김처녀씨도 딸의 귀여움과 사랑을 잊지 못해 함께 가기로 했다. 통영에서 명승지인 미륵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용화사에 도착했다. 벚꽃이 만발하고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였다. 화창한 봄날이었다.\n“이 곳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에덴’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머님이 덕지 소녀를 보고 말했다. “너 아버지 사랑하지?”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럼 사랑하지 않고.” 의아한 대답이었다.\n“천국은 얼마나 좋은 곳일까?” 어머님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어린 딸은 이상한 예감이 번개처럼 번쩍 스쳤다. 어머니는 머리에 열이 나고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셔서 계속 자리에 누웠다.\n‘나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앞서 간다. 너는 굳세게 살아라. 아버지를 나대신 잘 모셔라’는 부탁을 은밀하게 남긴 것이다. 어린 소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많이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당하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아니다. 내가 울면 어머님 없는 아버지를 누가 위로한담. 이제부터 오로지 믿음만으로 아버지를 섬기리라’고 다짐하고는 굳게 일어섰다.\n그의 나이 16세 때 ‘통영진명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의신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했다. 몸은 마산에 있어도 홀로 계신 아버지를 잊을 수 없었다. 아내 잃은 남편은 아내만을 사모했다. 믿음 깊고 부지런하며 매사에 민첩한 부인, 실로 그는 현처양모였다.\n“홀애비 누가 돕나요. 딸도 객지 공부가고 없잖아요.” 이러한 강요에 부득이 재혼하게 된다. 아버지 나이 43세 여름이었다. 서모님은 역시 김해김씨인 김성심씨, 통영 출신으로 23세의 처녀였다.\n노 홀아비가 꽃다운 처녀아가씨를 아내로 영접하여 사랑의 기쁨이 넘쳤다.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한 아들을 얻었다. 달구라고 이름을 지었다.(이 분은 진주고보를 거쳐 일본 동경 명치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조흥은행 부산 흥아타이어 주식회사 이사 등을 역임하다 작고함.)\n앞서간 부인을 사모한 지도 모른다. 우울함을 느끼던 아버지는 47세 7월경에 별세하였다. 상심 끝에 병상에 누운 아버지에겐 백약이 무효였다. 덕지 소녀는 아버지의 병 때문에 의신학교 졸업을 반년 남긴 채 중퇴하고 집에 돌아왔으니, 실로 마음이 안타까웠다.\n아버지를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옛사람 말씀에 ‘약이 효력이 없을 때 피를 드리면 산다’함을 기억했다. 효성이 지극한 그는 자기의 무명지를 부엌에 가서 도마 위에 놓고 잘랐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의 피를 죽어 가시는 아버지께 드립니다. 살려주세요. 네, 꼭 일어나게 해 주세요.’\n마지막 딸의 단지의 효성도 무심하였다. 덕지 소녀는 생의 슬픔을 두 번째로 맛보았다. 이때부터 덕지 소녀는 ‘이 한 목숨 주를 위해, 나라 위해, 겨레 위해 다 바치리라’ 결심을 굳게 했다.\n당시 나이 19세 때다. 이 유치원은 호주선교회가 경영하는 유치원인데 당시 원장은 신애미라는 여선교사다. 최덕지 선생이 선교회에서 신앙과 인격을 인정받아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보모가 된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은 잊을 수 없다. 역사적인 독립만세가 이 땅 방방곡곡에 메아리치던 때다. 돌이켜 보면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고 그 치욕의 조약이 공포되었다. 대한제국은 조선이라 호칭되고 일본의 통감부는 총독부로 개칭하였다. 헌병들의 무단정치가 시행됐다.\n이때 고문으로 전덕기 목사를 비롯해 김근영, 정희순 등이 사망하였다. 1912년 6월에 105인이 경성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고, 9월에는 전원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5년-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그중 중요 지도자로서 윤치호, 양기택, 안태국, 이승훈, 유동열, 이명룡, 길진형, 양전백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인격자요, 신앙인들이었다.\n전쟁은 비참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은 1918년 1월 8일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전후처리 14개항 중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다. 1918년 11월 독일혁명과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동맹군에 속해왔던 약소민족들이 독립했다. 폴랜드, 헝가리, 체고 등이다.\n전승국인 연합국측은 그들의 속방을 독립시켜 주지 않았다. 영국에 있어 인도가 그러했다. 필리핀은 여전히 미국에 속해 있었다. 프랑스도 베트남을 해방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애국지사들은 독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믿었다. 일본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로 활동했다.\n1918년 12월 28일이었다. 동경 유학생들은 웅변대회를 열었다. 5백여명이 모여들었다. 민족자결 문제를 토론했다. 조국의 독립의 횃불이 가슴마다 타올랐다. 국내에도 이 불이 번져왔다. 간도에서도 비밀리에 전개됐다.\n1919년 1월 21일이다. 고종황제께서 승하하셨다. 원인 모르게 덕수궁에서 운명하신 것이다. 국민 상하는 모두 비분강개하게 되었다. 1919년 2월 1일이다. 상해 신한청년단 대표들이 일어났다. 여운형은 러시아로 갔다. 김규식은 파리로 갔다. 장덕수는 일본으로 갔다. 김철, 서병호는 국내로 왔다. 각각 파견된 장소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n1919년 2월 7일이다. 송진우, 최린 등이 기독교의 이승훈과 합류하였다. 1919년 2월 8일이다. 동경 유학생들은 YMCA에 모였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이 선언서는 이광수씨가 집필했다.\n동경 학생들의 거사는 국내지사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최남선씨는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다. 1919년 2월 25일이다. 천도교에서 민족대표 15명이 결정되었다. 2월 26일에는 기독교 대표 16명이 결정되었다.\n불교에서는 2명이 확정되었다. 독립선언서는 2월 27일 보성사에서 인쇄하였다. 2월 28일은 손병희 집에서 거사를 위한 최종 계획을 세웠다. 3월 3일을 변경하여 3월 1일 거사키로 한 것이다.\n경상남도의 만세시위는 3월 3일 마산과 부산에서 발단되었다. 통영에는 3월 14일 일어났다. 마산에는 의신여학교가 있었다. 최덕지 선생의 스승인 박순천 여사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n2월 28일 구마산역에서 이갑성이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최봉선(의신여학교 학생. 박순천 선생이 이 집에서 하숙하고 있었음. 父·崔道現) 집에서 인쇄하고 태극기를 준비했다. 3월 12일 장날을 이용 만세 시위를 했다.\n이때부터 애국활동을 시작했다. 한영신, 김경희 등이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1919년 6월이다. 이 회의목적이 독립사상 고취와 임시정부 자금조달이었다. 최덕지 보모는 이 사명을 위하여 열심을 다했다. 자신이 먼저 부모에게 받은 출가용 장농을 팔았다. 의복전부를 내놓았다. 통영 가가호호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여서 임시정부를 원조하였다. 그때 조직으로 남자들은 ‘혈성단원’으로 일하였다.\n단원은 백여명, 주로 강상은, 최상림, 배익조 등이 활동하였다. 여성들은 ‘상해독립단 통영원조회’라고 했다. 크게 활동한 이들은 박열순(자유당 때 법무장관 서상환씨 부인), 이학이, 허장완, 김순이, 문복수, 최덕지 등이다. 모두 12조로 구성하였다 한다.\n(예, 제1조 이학이·허장완, 제2조 김순이·문복수 등) 활동한 지역은 통영, 하동, 사천, 고성, 김해, 양산 등이다. 모금된 재정은 통영 김필애, 김해 이갑성 편으로 임시정부에 송금되었다. 상해에는 임시정부가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망명정부가 된 것이다. 젊은이의 가슴에는 희망이 넘쳤다. 자주독립을 위해 일했다.\n학교에서는 일본식 교육이었다. 일본말을 국어라고 하였고, 우리말은 조선어라고 하였다. 많은 부모들이 고의적으로 학교에 자식을 보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또 도덕적으로도 여자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꺼리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최덕지 보모는 집집마다 방문하였다.\n들역에 비바람 불어와서 산위에 나무들 무너져도 오늘은 이동산 꾸며놓고 내일은 저동산 꾸며놓자. 조국을 생각하게 하였다. 애국지심을 불어넣었다. 피곤을 몰랐다. 여성도 알아야 한다. 여성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외쳤다. 1922년 1월에는 교회에서 집사로 피임되었다. ‘오지 믿음, 오직 독립’ 그에게는 믿음이 애국심과 직결되었다. ‘하나님이 독립을 주어야 한다’, ‘조선 사람은 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신념이요, 애국심이었다. 1922년 4월에 통영교회 여전도회 회장에 피임되었다. 그의 신앙은 날로 깊어갔다.\n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다. 통영사회에서는 애국청년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여자는 약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일이 없어 논다고 할 수 없었다. 당시 퇴폐적이고 무기력한 남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목표를 보여주고 빛이 있는 길로 안내했다.\n최덕지 보모는 그의 나이 20세 때 결혼하였다.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김정도씨가 그의 남편이다. 이 분은 아버지 김명광씨, 어머니 정찬영 씨의 장남이며 김정실씨(동아일보 논설위원 단국대학장, 국회의원 역임)의 형님되는 분이다.\n당시 일본 왕래 교통은 이러하다. 고성-통영까지는 버스나 배를 이용했고, 통영-부산은 배편이 있었다.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라는 하관까지 소위 관부연락선을 운행했다. 김정도씨가 방학 때 통영을 드나들게 되면서 그 당시 교회와 사회에서 소문난 처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n단지의 효성을 다한 소녀’, ‘철저한 신앙 처녀’, ‘억세게 일 잘하는 처녀’, ‘애국심이 강한 처녀’ 이런 이야기가 향학열과 애국심에 불타던 유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명유치원을 찾아갔다.\n김정도씨의 첫눈에 비친 최덕지 보모는 의지적이었다. 확실히 그녀는 특출한 여성이었다. 처녀의 눈에 비친 김정도씨도 준수했다. 당시 드문 사각모에 끌렸다. 많은 여성들이 흠모하는 동경 유학생이었다.\n외로웠던 최덕지 보모는 부군을 의지하고 사랑했다.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을 남편에게받았다. 나날의 생활이 기쁨과 은혜로 충만했다. 시댁이 있는 고성은 아름다웠고, 은월리 산과 들이 정다웠다.\n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게는 감시가 심했다. 부산 부두에는 한국의 형사들이 조사가 심했다. 일기장, 책, 소지품 등 샅샅이 뒤졌다. 의심나면 경찰서로 연행했다. 일본 시모노세키 부두에 내리면 감시를 또 받았다.\n일본 헌병 형사들이 두 줄로 서서 감시의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이상하면 손끝으로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한다. 말을 묻고 말이 막히면 소지품 조사나 몸을 수색한다. 동경이나 일본 유학생 치고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은 학생은 없다. 잘못 걸리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한다.\n본국에 소환되기도 한다. 혹은 본집에 형사진들이 들이닥쳐 수색을 한다. 부모를 불러 괴롭게 한다. ‘사상 불온’, ‘불온한 책 소지’ 등 온갖 트집을 잡았다. 일경의 가시가 바로 유학생이다.\n3주 후에 어린 딸을 본 아빠의 기쁨 비길 데 없었다. 혜수는 아빠와 엄마를 골고루 닮았다. 시부모님도 기뻐했다. 온 교우들도 축복해 주었다. 보는 이마다 행복한 부부라 했다. 이상적인 가정이었다.\n김정도씨가 그해 방학에 왔다가 고성본가에도 미처 가지 못했다. 어린 딸이 너무 귀엽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학창에 시달린 몸 휴식도 제대로 못한 탓인가, 장질부사에 전염되어 눕게 되었다.\n최덕지 선생에게 청천벽력이었다. 하늘같이 의지하는 남편이 아닌가. 당황하고 염려했으나 시댁에 병고를 알리면 부모님의 심려가 클까보아 감추었다. 한편 본가에서는 방학이 다 지나도록 소식도 없고 오지도 않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n당국에서는 전염병이라고 통영 피병막으로 옮겼다. 장질부사는 여자가 간호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남편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정성을 다바쳤다. 백약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n일찍 연락했으면… 집에서 치료했으면… 한약을 썼으면… 땀을 내어 주었더라면 죽음을 건지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명이 재천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하랴. 어릴적 부모 잃은 한이 있더니 또다시 부군을 잃은 한이 사무침을 어이할 것인가.\n동양 성인의 말에도 ‘하늘이 대임을 맡기려 할 때 먼저 그 심지를 괴롭게 한다’하였다. 인생의 삶이 뜻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 최덕지씨를 장차 일본제국과 싸우기 위해 일찍 그 심신을 연단하심을 깨닫는다.\n통영읍 장로회 대화동교회에서 유치원을 경영코자 했다. 사람이 필요했다. 김 장로란 분이 사람을 찾고 있었다. 변두리 도천리에 도천리 유치원이 있었다. 이 유치원을 설립한 이가 최덕지 선생이다.\n나라 빼앗긴 백성들은 고아같이 불쌍했다. 기름진 옥토도 일본인에게 빼앗겼다. 농사마저 자유가 없었고 자기들의 정책에 이용되었다. 쌀이 없었다. 농촌은 가난했다. 많은 아이들이 굶주렸다.\n사내아이는 7-8세 때 쯤이면 산에 갔다. 풀을 베거나 죽은 소나무가지를 주웠다. 낙옆을 긁어(갈비라고 함) 오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온돌방에는 이 땔나무가 필요했다. 이나무들을 지게에 지고 시장에 팔아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농민이 많았다.\n최덕지 선생은 우리가 가난해도 몸마저 더러워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아이들의 때묻은 손발을 손수 씻어주었다. 청결부터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쳤다. 한글을 가르쳤다.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은 먼저 실천했다. 해야할 일은 어떻게 하든지 실천하도록 훈련시켰다.\n수업을 마친 후에도 교실을 깨끗하게 정돈해놓고 집에 돌아갔다. 차츰 도천리 유치원과 야학교가 읍내에 알려졌다. 그리고 여러 마을에도 알려진 것이다.(지금은 이곳에 훌륭한 교회가 세워져 있음)\n이리하여 김장로가 최덕지 선생을 만났다. 교회가 유치원을 운영코자 하는 뜻을 최선생에게 설명했다. 이를 추진할 인물이 최선생 밖에 없음을 말했다. 자신이 자란 모교회를 섬기지 않을 수 없었다.\n당시 주일학교에 저축해 둔 헌금이 있었다. 이것을 기금삼아 동부유치원을 설립했다. 1927년 10월이다. 도천리 유치원이 서쪽이라 명칭을 동부유치원이라 하였다. 설립과 동시 보모가 되었다.\n1.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 차별 철폐 2.일체 봉건적인 인습과 미신타파 3.조혼방지 및 결혼의 자유 4.인신매매 및 공창 폐지 5.농촌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6.부인노동의 임금차별 및 산전산후 임금지불 7.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노동 및 야업폐지\n그 사상은 근대적 여성관에 토대하고 있다. 최덕지 선생은 이 근우회의 여성지위 향상에 앞장선 분이시다. 자기는 여성임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과부가 되었다고 비관한 적이 없다. 딸자식만 가졌다고 기가 꺾인 때가 없었다. 딸자식을 천대하는 그 시대에서 천금같이 소중이 여겼다.\n그는 여권신장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봉건적 인습타파와 미신타파는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인신매매 공창폐지는 그의 임종 때까지 기도 제목이었다. 남녀의 차별 대우는 철저히 반대하며 투쟁했다. 연후 그가 출옥 후 재건교회를 세우고 여성직(여자 장로, 여자 목사)을 확립시킴은 이때 받은 사상의 영향이라고 믿어진다.\n이때 교회로서는 큰 시련이 닥쳐왔다. 다름아닌 12월 25일 탄일송을 당국에서 금지하도록 했다. 이는 1926년 12월 25일 일본의 대정천황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1879년 8월 31일 소위 명치천황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2년 이후는 대정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1926년 이후를 소화천황 시대라 한다.\n1927년 구주성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그 세력이 점점 강해갔다. 교회가 늘어가고 교인이 불어났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기독교인은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이다.\n로마시대 박해가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진리에 강한 자들이다. 그러나 한 번 시험에 보자는 그 의도가 바로 한국 기독교회에 성탄송을 금한 조처였다. 12월 25일이 바로 ‘대정천황의 붕어일’이니 근신하라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반대할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이다. 한국 기독교가 ‘예’했다. 그래서 ‘탄일새벽송’을 부르지 아니했다.\n이것을 본 최덕지 선생은 가슴이 아팠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일본 대정 천황이 죽은 날은 일본 국가의 근조일이다. 그러나 예수탄일은 온 우주의 축일이다. 전 세계적 경축일이다. 온 교회는 이 탄일송으로 교회의 존재를 인식시켜 왔다. 불신자들도 이 날만은 기뻐했다. 죄악에 잠든 영혼들이 이 새벽송을 듣고 깨어났고 살아났다. 만백성이 맞이할 구주 나셨음을 알리는 새벽송이다.\n이렇게 부르짖고 두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일본 당국은 쾌재를 불렀다. ‘강한 것 같으면서 약하군. 목숨을 걸고 반대할 줄 알았지. 인간은 비겁해. 예수쟁이들 큰소리쳐도 별거 아니군.’ 이리하여 차츰 자기들 마음대로 기독교를 요리해 갔다.\n여기 최덕지 선생은 일어섰다. “내가 죽은 한국 교회를 살려야 한다. 병든 한국교회를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성이다. 약한 자다.” 에스더를 보라. 그는 금식하고 조국을 구하지 않았느냐.\n주를 사랑하는 간절한 그 심령은 살아 울부짖었다. 한국교회의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한국교회의 장래를 내다보았다. 역사를 지배하고 섭리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인간을 그 역사의 기관으로 삼으신다.\n최덕지 선생의 금식하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많은 남자교회 지도자들이 교권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마음은 탐욕과 지배욕에 눈이 어두웠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일본의 군벌을 본 그들은 비겁했다.\n몇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금식으로 준비한 최덕지 선생을 하나님은 택하셨다. ‘우상국 일본하고 준비한 너가 가서 싸우라’하는 소명감을 받았다. 다음 한국 3,000교회와 50만 신도가 일본 신사당에게 굴복할 때 신사당은 물론 동방요배(궁성요배), 국기배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도 등 일본의 사상과 의식에 철두철미 반대하고 투쟁하여 완전 승리를 한 이는 오직 최덕지 선생 한 분이다. 이 승리가 이때 준비된 것이다.\n동부 유치원에서 최덕지 선생의 희생적인 봉사와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안겨주었다. 이를 도우고 싶어 하는 선교사가 한 분 있었다. 호주 여선교사 신애미씨다. 1930년 4월에 진명 유치원으로 최덕지 선생을 다시 초빙하였다.\n동부 유치원에는 마산에 있던 최봉선 선생을 모셔왔다. 이 분은 박순천 여사의 제자이다. 의신학교 고등과를 나와 일본 히로시마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수재이며, 모든 일에 열성이 있는 처녀였다.\n최덕지 선생은 그녀를 청빙하여 자기 후임으로 동부유치원을 맡겼다.(이 분은 3/1운동 만세사건으로 옥고를 당했고 해방 후 의신여학교를 재건하여 교장으로 봉직하다 정년퇴직하고 마산 문화동에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계심)\n최덕지 선생을 진명유치원으로 청빙한 신애미 선교사는 그의 신앙과 생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사는 그를 가리켜 ‘최선생은 보통 여성이 아니오, 비범한 인물이오, 주를 위해 크게 일해야 할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최덕지 선생을 평양여자신학교에 추천하였다. 신애미 여선교사는 통영에서 장래성 있는 인물에게는 교육의 길을 열어 주었다 한다.\n그러한 분 중에 공덕귀 여사도 있다. 이 분도 두뇌가 우수해 동래 일신여학교에 보내주었는데 졸업반 때 송창근 목사 부흥회에 참석하여 그 신앙을 인정받았으며, 이로 인해 일본 횡빈여자신학교에 유학하여 졸업하게 되고 졸업과 동시 김천의 송창근 목사 교회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그 후 송창근 목사는 한국신학대학 설립과 동시 학장이 되고, 공덕귀 선생은 이 신학교 교수직을 맡았다.\n1932년 4월 최덕지 선생은 평양여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의 나이 33세 때다. 가슴이 뛰었다. 마치 병사가 전쟁을 위해 부름받아 입영하는 감회였다. 33살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속을 십자가로 완성하였고, 최덕지 선생은 그 나이에 예수의 뒤를 이어 십자가 전선으로 나가는 것이었다.\n최덕지 선생이 신학교 입학하기 전해인 1931년 7월에 만주 만보산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군인이 비적을 소탕한답시고 우리 한국인을 사살한 것이다. 집과 재산을 불태운 사건이다. 그리고 1931년 9월 18일에는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한국을 침략한 그들은 만주마저 침략한 것이다. 1932년 9월 일만의정서에 조인하였다.\n일본은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실상은 평화를 교란했다. 동양 전체를 침략하려는 악마의 나라였다. 바로 세기의 사탄이다. 최덕지 선생은 이 사탄과 싸우기 위해 신학교에 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신학은 ‘신앙을 조직하는 것, 신앙을 체계 세우는 것,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신교의 신학은 성경말씀을 토대하고 그 위에 세우는 것이다.\n말씀은 곧 검이라 했다. 좌우의 날센 검이다. 그는 이검을 잘 갈았다. 일본국 사탄과 싸우기 위해서다. 한국인의 신앙은 이 말씀을 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다른 피선교국보다 발전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선교사가 들어가서 그 다음 성경을 번역했으나 우리나라는 다르다.\n우리말 성경 번역은 처음 만주에서 이루어졌다. 다음은 일본 요꼬하마에서다. 만주 것은 1880년에 만주 목단에 와 있던 죤 맥킨타이어(스코틀란드의 연합장로교 선교사)와 존 로스가 있었다.\n이분들이 서상륜과 이응찬에게 복음진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1881년). 서상륜이 두 선교사에게 우리말을 배워주었다. 1883년 1월에 존 로스는 “한국의 글자는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문자”라고 경탄했다. 그래서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했다.\n최초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1882년에 나왔다. 1883년에는 요한복음과 사도행전 3,000부가 간행되었다. 1884년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1887년에 이르러 ‘예수교성교전서’라 하여 신약 전부가 번역 간행되었다. 서상륜은 성경을 만주 동포에게 전하였다.\n그러다가 그의 집 병풍에 한문 산상보훈을 보고 감탄했다. 이분에게 기독교 교리를 배우고 신앙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음 동경에 있는 야스가와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때 일본 주재 장로교 선교사 조지 녹스와 감리교 선교사 매클레이 목사와 함께 성경연구에 정진했다.\n때마침 녹스 목사의 친구인 헨리 루미스가 그를 방문했다. 이 분은 일본주재 영국 성서공회 총무였다. ‘복음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번역을 시작했다.\n1884년 한한신약성서에 토를 달아 영국 성서공회에서 출간했다. 다시 1885년 마가복음이 미국 성서공회를 통해 1,000부가 출판되었다. 한국에 최초의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목사가 1885년 1월 동경에 왔다. 한국엔 갑신정변으로 입국하지 못하고 있었다. 3월까지 머물면서 한국말로 번역된 성경을 보고 놀라와 했다. 그리하여 번역된 이 ‘마가복음’을 가지고 4월 25일 입국한 것이다. 우리 겨레는 진리에 대한탐구심이 강했다. 우리의 한글이 우수했다. 복음을 준비하고 선교사를 맞이했다.\n최덕지 선생이 신학교에 입학할 때 학비는 대여장학금을 받았다. 기숙사에 있기로 했다. 한국에서 유일한 신학교였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기숙사에는 한 방에 두 사람이 합숙하였다. 최덕지 학생은 김택정 학생과 동거하였다.\n그는 평안도의 의주 출신이었다. 합숙과 동거는 지역간 감정과 생활습성을 이해시켜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남과 북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동과 서의 파벌을 융화시켰다. 학업에도 정성을 다했다. 당시 쟁쟁한 교수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도 교회사의 윤필성과 선지서의 김인준 두 교수에게 감화를 많이 받았다.\n기독교 박해사를 배울 때는 가슴이 뛰었다. 로마시대 박해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바울로 인해서다. 기원 3,000년까지는 박해에 박해가 거듭되었다. 기독교회사는 로마의 십대 박해라 한다.\n네로 황제는 자신이 로마시에 방화하여 그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뒤집어 씌웠다. 이로 인해 교도들이 네로 자신의 생일연에 촛불을 대신하는 화형을 당했다. 베드로와 바울도 순교를 당했다. 그뿐 아니라 ‘나라 안에 딴나라 만든다. 비밀결사를 한다. 황제 예배를 안 드린다. 사람을 잡아 먹는 놈들이다(성찬식 때 예수님 말씀 ‘떡을 내 몸이라, 포도즙 잔을 이는 내 피라’한데 대한 오해). 지진과 흉년이 기독교로 인함이다’라고 미워하며 모함했다.\n그들은 교도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관직을 박탈했다. 고문하고 투옥케했다. 맹수의 밥이 되게 했다. 투기장에 몰아 넣고 사자에게 찢기는 것을 로마시민의 구경거리로 삼았다. 못을 박아 숨지게 하고 불로 태워 죽였다. 먼 섬에 유배시키기도 했다. 많은 교우들이 순교했다. 그 중에서 트라야노 황제 때(97-117) 맹수밥이 된 익나디오가 남긴 말에는 깊은 감명을 받고 고이 간직했다. ‘침묵하고 진실한 신자는 변호하고 진실치 못한 신자보다 낫다’ ‘검을 두려워 않는 자는 하나님과 가깝고, 맹수와 같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한다’ ‘철주같이 굳게 서라’ ‘상함을 받으면서도 승리를 얻는 것은 진정한 무사의 본분이다.’\n또한 라틴교부터 툴리안(160-234)의 말도 잊을 수가 없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다’ ‘기독교는 풍속이 아니라 진리다’ ‘진리는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이성에 불합한 고로 믿음이 있다.’\n김인준 교수는 원어(히브리어 헬라어)에도 능통하였다. 그리고 선지서를 가르침에도 권위가 있었다. 더욱 다니엘서에 크게 은혜를 받았다. 바빌론 제국이 큰 세력을 가졌다. 유다를 멸망시키고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등도 포로였다. 이들은 우상국에서도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로 뜻을 세웠다.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의 신상을 상징하는 금우상을 만들었다. 이를 두라 평지에 세워 그 제막식에 모든 국민을 참배케 했다.\n그러나 유다에서 잡혀 온 세 소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절하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그들이 믿은 그대로였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아옵소서(다니엘 3장 17-18절.’ 이렇게 구원되었다.\n또 다리오 왕 때다. 우상국 갈대아가 망하고 메데가 대신한 것이다. 127도로 방백을 세우고 그 위에 세 총리를 두었다. 다니엘은 그 중에 하나다. 악한 자들이 다니엘의 정직과 진실을 시기했다.\n다니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알았다. 악법을 만들었다. 한달을 정하여 다리오 왕만 섬기게 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했다. 이 법령이 공포되고 다니엘은 동방 예루살렘을 항하여 문을 열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n이 법을 어긴 죄로 사자굴에 던져 넣었다. 사자는 무죄한 다니엘을 해하지 아니하였다.(다니엘 6장 참조) 이와 같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신도 뜻을 굳게 세웠다. “내 몸이 불 가운데 들어가도 우상 섬겨서는 안 된다” “내 몸이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는 안 된다”\n그러나 이 풀무 불이 바벨론 두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땅에 있다. 일본은 바로 로마제국과 같다. 우상국 바벨론과 같다. 언제 어디서 시험의 풀무와 사자굴이 닥쳐올지 모른다. 교회사에 나타난 교부처럼 싸우리라. 다니엘과 같이 승리하리라. 세 소년과 같이 풀무불을 견디어내리라.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배움이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확신이 섰다. 용기가 솟았다.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맞이할 불시험을 이길 힘을 달라고 빌었다.\n학교 생활하는 동안 유명한 산정현교회로 파송받았다. 장년반 주일학교를 담당하였다. 주일 오전 예배드리기 앞서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매사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라는 교훈을 그대로 지켜 충성하였다.\n그의 열심은 주일학교에 출석치 아니한 이를 반드시 예배 후에 심방하는 정도였다. 어떤 부인이 있었다. 이 부인은 심방을 가도 잘 출석하지 않는 부인이었다. 어느 주일날 그가 자진 출석하자 너무 반가와 물었더니, 그 집에 일하는 이가 있었는데 “최 선생이 열심히 심방해 주심에 감동을 받아 주일이 되면 신까지 깨끗이 씻어주고 밥까지 시간 전에 지어주고 교회 가도록 독촉하여 이렇게 출석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n최덕지 선생은 무슨 일을 하거나 무엇을 맡으나 최선을 다했다. 남보다 앞섰다. 그의 기질의 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1933년 4월 신학기가 되었다. 2학년 때다. 그의 신앙의 철저함이 교수들에게 인정받았다.\n평안도는 열성이 대단하고 함경도는 억세고, 황해도는 아담하고, 강원도는 대범하고, 전라도는 영리했다. 충청도는 얌전하고, 경상도는 무뚝뚝하면서도 끈덕지다. 서로 돕고 사랑하고 학원은 평화롭고 은혜로왔다.\n어떤 신학생이 있었다. 평양 출생이다. 용모가 아름다웠다. 이 학생에게 먼 친척되는 청년 한 사람이 있었다. 학교에 종종 찾아왔다. 허물없이 만났다. 하루는 모든 학생이 다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 학생은 학생실에서 청년과 단 둘이서 지냈던 것이다.\n공교롭게 그 후에 배가 아프다고 며칠 결석을 하였다. 이 일을 학생들이 문제를 삼은 것이다. 수업시간에 신학생이 청년을 만나다니 수업을 받지 않고 그 시간 단둘이서 무슨 짓을 했느냐. 왜 배가 아프냐. 왜 결석했느냐 등으로 동료 학생을 정죄하고 학교당국에 퇴학을 요구했었던 것이다.(학생들은 아기를 잉태했다고 주장함)\n이에 학우회장 최덕지는 어찌하여 동료를 그렇게 의심할 수 있으며 정죄할 수 있느냐고 변론했다. 보지도 못하고 추측으로 퇴학을 요구하는 무정함과 잔인함을 성토한 것이다. 진상을 조사했으나 하등 의심할 것이 없었다.\n가정상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청년과 의논한 것을 신학생이 부정하다, 불륜하다고 논란한 것이다. 많은 학생은 동료를 동정하지 않았다. 다들 분노했다. 학교 당국도 학생편에서 해결코자 했다.\n이에 대해 최덕지 학우회장은 신학교가 잘못 가는 학생이라도 선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님은 현장에서 잡힌 음행한 여인도 용서했다. 죄를 주지 아니했다. 많은 학생을 진정시키고 설득했다. 그러나 군중심리에 휩싸여 많은 학생들이 더 발악하고 계속 소요 사태를 벌이자 학교당국은 그 학생을 결국 퇴학시키고 말았다. 많이 울었다. 예수를 따르겠다는 저희들이 동료를 억울하게 돌을 들어 친단 말인가.\n이용도 목사는 감리교 출신이다.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를 졸업했다. 젊은 시절(25세 때) 폐병으로 고난을 겪었다. 그리하여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체험을 지녔다.\n‘나는 주의 사랑에 삼킨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킨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바라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라’고 그는 고백했다.(변종호씨 ‘이용도 목사전’에 의함)\n그는 항상 검은 무명 두루마기와 검은 동정을 달아 입었다. 거리에 헐벗고 굶주린 아이를 보면 자기 숙소에 함께 데려와 먹이고 재워주었다. 최덕지 선생이 이용도 목사님댁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n된장국과 비지장으로 잡수셨다. 저명한 부흥사의 식탁이 그렇게도 초라함에 놀랐다. 그의 청빈에 목이 메었다. 그뿐 아니다. 이 목사의 부인은 감기로 아파 누워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도 사주지 않았다.\n찬물 한 대접을 떠 와서는 눈물로 기도하였다. ‘오 주님이시여. 사랑의 주님이시여. 능력의 손길로 나의 처를 어루만져 주소서. 이 찬물을 마시고는 일어나게 하소서. 오 긍휼의 주님을 믿고 구합니다.’ 이 기도로 사모님이 일어나심을 보았다.\n드디어 1933년 9월 22일 총회 때에 이단으로 단정하고 말았다. 이 바람이 평양여자신학교에 닥쳐왔다. 모든 학생이 이용도 목사를 의심하고 이단을 단죄할 때 최덕지 회장은 싸웠다.\n그의 신비주의를 단죄했다. 설움 당한 민족을 위해 함께 울어준 자가 누구인가. 한국의 양떼들이 어디에서 이 좋은 풀을 먹을 수 있겠는가. 누구의 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n이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과 실천에서만 얻어진 것임을 최덕지 학우회장은 역설했다. (물론 뒤에 여러 사람으로 인해 잘못된 점이 있었으나) 옳은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일에 자신이 믿는 사람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n최덕지 학생은 존경하는 목사님이 있었다. 최봉석 목사이다. 그는 1870년 정월 5일 평양 장경문 안에서 출생하였다. 16세까지 한문을 공부하였다. 자기 집에 귀신당집들이 많이 있었다. 부모 없는 틈을 타 그 곳에 오물을 퍼부었다.\n이 사실은 윤산온 선교사가 미국 신문에 발표하여 전 세계에 전해졌다. 그러나 1944년 4월 19일 그는 신사참배를 거절, 평양감옥에서 순교했다. 최덕지 선생은 많은 감화를 받았다.\n세월은 흘러갔다. 신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대개 신학교는 입학하고 계속 공부하는 이가 적었다. 그러나 최덕지 학생은 계속 공부하였다. 새봄이 왔다. 졸업 때가 되면 일할 목장을 구하기 여념이 없었다.\n최덕지 학생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있었다. 청빙이 왔다. 마산지구 미순회 여선교사 태매시 선교사가 불렀다. 졸업과 동시 전도사로 일해달라는 부탁이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허락하였다.\n1935년 4월 평양여자신학교 제22회 졸업생으로 교문을 나섰다. 새로운 임지 미순회 마산지방 전도사가 되어 마산으로 부임했다. 당시 노비산(속칭 제비산)은 선교사들의 거주지역이다. 마산 합포만이 굽어보이고 뒤에는 상남천이 흐르고 있었다.\n미순회 마산지구는 그 산하에 83개교회가 있었다. 함안군, 창원군, 김해군, 의령군 일대에 산재해 있는 교회들이다. 미순회 소속으로 함께 일한 전도사는 윤도일, 염애나, 이복순, 이술연, 김택정, 박경애 등이 있었다.\n복음의 사자로서 일선에 나왔다. 양떼들을 잘 먹이고 잘 가르쳐야 한다. 또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파수꾼은 경성하고 있어야 한다. 경찰해야 하고 경고해야 한다. 마치 나라에 징집된 병사가 교육을 다 마치고 일선에 배치된 것과도 같다.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보람과 긍지와 감격이 함께 했다.\n이는 학교에 못가는 농촌 아이들을 가르치는 임시학교였다. 최 전도사가 가는 교회마다 많은 일거리가 생기고 많은 성도들이 모여 들었다. 그의 설교는 철저한 신앙의 고백이요. 생활 속에 우러난 간증이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감화케 하였다.\n이러한 일화도 있었다. 어떤 가엾은 여노인이 한분 있었다. 몸이 불결해 악취가 났다. 방바닥에는 청소를 안해 변이 말라 붙었다. 이를 보고 매주일 찾아가서 물을 데워 노인을 목욕시켜 드리고 방바닥변(똥)은 칼로 긁어 깨끗하게 청소하여 주었다. 남이 할 수 없는 더럽고 어려운 일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었다.\n순회가 끝나면 몸이 몹시도 피곤했다. 의신학교 기숙사에는 마산교회 교인 중 한글을 모르는 부인들이 언제나 찾아오고 있었다. 이들에게 애써 한글을 가르쳐 주고 이분들이 모두 성경을 읽도록 이끌었다. 많은 분이 집사가 되었다.\n이 무렵 마산 경찰서장 초청으로 교회 목사, 전도사, 장로 그 외 각 학교교장 등 지도자의 모임이 있었다. 소위 종교 간담회라는 것이다. 서장의 인사와 시국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신사참배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안식교, 각 목사, 장로 조사 중 문창교회 한상동 목사에게 감상을 물었다. 성경상으로 신자는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고 거절함으로써 이 모임은 끝났다. 여기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교회가 수난을 당하기 앞서 많은 학교들이 수난을 당했다. 그럼 과연 ‘신사’란 어떤 것인가.\n일본은 신도로서 설명된다. 일본의 국체는 개국신 천조대신(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과 800만 야호요로주노가미로 성립된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태양신을 중심한 다신국가이다. 이는 미개한 나라들이 다 가지는 원시종교에 불과하다. 즉 원시신이며 자연신이며 인간신이다. 그리고 역대 천황은 현인신(아라비도가미)이라 하여 신으로 올려받든다. 이 신들은 생산신이요 수호신이었다.\n일본에서 대표되는 것이 이세신궁이고 한국에는 조선신궁이다. 일본에서 전쟁을 하다 죽으면 다 수호신이 되어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일본에서 참배하는 것은 호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이것을 한국에 실시코자 한 자가 바로 제6대총독 우가끼다. 그는 조선을 일본화하기 위하여 한국 방방곡곡에다 신사를 짓게 하였다.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라고 우겨대는 교회 지도자가 있는데, 분명 일본 국신이니 우상이고 참배는 바로 계명을 범하는 죄다.\n1932년 평양서 춘기황영제의 제례에 각종 학교의 참석을 요구한 데서부터 시작된다.(이는 만주사변 전몰 장병위령제임) 학교 책임자는 기독교 교리에 있어 제례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때 일본 관리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제2단계로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한 교활한 계획을 서서히 굳혀갔다.\n당국은 전국 각급학교에 ‘신사참배 여행 명령’을 시달하였다. 학교는 교리신조와 관계됨으로 상회지시가 있기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장로교 총회 학무부에 자문을 요청하였다. 1932년 9월 제21회 총회는 ‘교회학교 학생이 신사 및 여러 제식에 참배할 수 없다는 것을 총독부 당국에 교섭할 것’을 결정했다. 차재명, 유억겸, 마포삼열 세분을 교섭위원으로 선정하였다.\n그러나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1933년 전북 노회장이, 1934년은 황해 노회장이, ‘기독교학교의 신사참배문의서’를 제출하였다. 평남 순천 자산교회 목사의 ‘지방관청의 신사건축비징수문제’ 문의서도 제출되었다. 1934년 12월 6일 총회장 이인식 목사가 전 총독부 교섭위원과 함께 재청원키로 했다.\n“총회 산하에 있는 유치원, 간이학교, 보통학교, 중학교, 전문학교, 신학교, 성경학교의 생도 및 학생의 신사불참배 허용’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여기 총독부는 아무리 교회경영의 학교들이라도 조선총독의 교육령에 의하여 운영되는 학교들이다. 반드시 총독의 교육정책에 따라야 한다. 참배를 부인 불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들의 이름을 지명하여 청원하라.” 이것이 총독부 종교과장의 엄명이다. 청원서는 또다시 퇴각되고 말았다. 결국 신사참배 문제는 각 학교 당국의 신앙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게 되었다.\n신사참배를 기독교 학교에 강요한 최초의 사람은 평남도지사 야스다께였다. 1935년 11월 14일 도내 공사립중등학교 교장회의를 소집했다. 개최벽두 참석자 일동에게 평양신사 참배를 명령했다.\n이 자리에 숭실중학 윤산온 교장, 숭의여중학 정익성 교장 대리는 명령에 불응했다. 교장회의가 끝난 후 ‘신사참배는 국민교육상의 요건이므로 금후 참배에 응하지 않을 때는 단호히 처치한다’는 공문이 야스다께 지사 명의로 발송되어 왔다.\n윤산온 교장은 1935년 12월 13일 미북장로교 선교실행위원회(회장 허대전, 위원 소열도, 위원 로해리)와 의논한 바, 참배 거부키로 결정했다. 동년 12월 14일 총독부는 외사과 촉탁인 김인옥을 새벽에 윤산온 교장댁에 보내어 그 결정을 내사하였다.(김인옥은 윤교장과 사제지간이었음) 윤교장은 제자에게 사실을 알려주었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답서를 야스다께 지사에게 보냈다.\n“신사의 제식에 있어서 종교적인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과 또한 신사에서 신들을 경배하고 있는 사실이 확실함으로 기독교 신자인 나로서는 신앙양심상 신사에 참배할 수 없음.”\n여기 평남지사는 다른 방도가 없음을 깨닫고 이 사건의 처리를 총독부 학무국에 의뢰하였다. 총독부는 그 뒤 독 전국 지사 경찰부장 및 경찰서장 회의를 소집하고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당국의 태도를 결정했다.\n1936년 1월 16일 야스다께 지사는 숭전교장 윤산온 박사와 설립자 마포삼열 선교사를 도에 불렀다. 신사참배 문제에 최후 확답을 요구했다. 18일까지 태도를 결정하되 불참시는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n그러나 각 학교 이사들의 의견은 학교 존폐문제를 고려했다. 학교 전체가 아닌 대표자 참배로 당국에 응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학교 전체 참배 거부와 대표자의 파견은 교장의 재량에 일임키로 하였다.\n신사참배 학교 대표자는 반드시 교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학감이나 과장 중 한사람이 희생됨으로써 학교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역사 깊은 교육기관은 폐쇄를 면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한 윤산온 교장은 ‘대표자의 신사참배를 용허’하는 답서를 도지사에게 내기로 작정했다.\n답서를 제출하기 앞서 신사참배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형룡 박사, 주기철 목사에게 찬부를 문의했다. 그들은 대표자 참배 역시 기독교 학교 전체의 굴종을 의미하므로 불가하다는 의견을 강하게 내세웠다. 윤산온 교장은 드디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그 답서를 난로 속에 던져버렸다.\n총독부에서 윤산온 선교사는 교육자로 부적당하니 숭실전문학교 교장직을 취소해달라고 상신했다. 1936년 1월 20일부로 총독부는 그의 숭전교장직의 인가를 취소하였다. 1월 21일 숭의여중학교장 스누크에게도 같은 조처를 내렸다.\n북장로교 선교부는 폐교를 각오했다. 그러나 교회지도자 및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폐교를 반대했다. 이에 따라 선교부는 폐교를 일단 보류하고 다음과 같이 후임을 총독부에 보고했다. 2월 26일이었다.\n3월 4일, 숭전교장 마우리선교사, 부교장 이훈구 박사(농과과장) 3월 5일, 숭중명예교장 마우리선교사, 교장 정두현(숭전 교수) 3월 12일, 숭의여중교장(사무취급) 김승섭 교사. 1936년 3월 21일 윤산온 교장은 귀국하였다. 귀국 후 신사참배 부당성 논문을 선교부에 제출했다. 학교정책에 남장로교와 보조를 같이할 것을 권고하였다.\n이때 미 남장로교 외지선교국 총무인 훌톤 성명이 나왔다. 1937년 2월이다.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남장로계 기독교 학교는 일제이 폐교할 것을 결정”하고 이를 전주선교총회를 소집하여 발표한 것이다.\n1937년 9월 4일 전남북도 지사들은 학교장을 소집하고 애국일 행사 사전협의를 하였다. 남장로교계 남녀중고등학교 교장은 애국일에 궁성요배 행사는 참여할 수 있으나 신사참배는 교리에 위반되므로 시행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n한편 학교 직원, 생도에게도 이 뜻을 발표했다. 9월 6일이 애국일로 정해졌다. 각급학교에 신사참배 시행을 요구했다. 이날이 지난 후 각 지역의 여러 학교에 폐교명령을 내렸다. △광주=숭일남자중학교·수피아여자중학교△목포=영흥남자중학교·정명여자중학교△순천=매산학교△전주=신흥학교·기전여학교(폐교 명령이 내리기 전 자진 폐교함)△군산=영명학교 그 외 10여학교 모두 폐교.\n“아국의 신사는 황실의 조선 혹은 국가의 원훈을 제사하는 곳인데 여기에 참배하는 것은 제국 신민된 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고래로 경신숭조는 아국교육의 근본 방침이다. 하물며 이번 애국일 당일의 참배는 황국의 융창과 황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중요한 국가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계 학교장들은 용허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였고, 학생들에게까지 비국민적 행위를 강요한 것은 제국교육의 근본을 교란하는 것으로 절대로 묵과할 수 없어 도로서는 단호한 처분을 내리게 되었다.”\n이 성명은 신사가 종교이건 아니건 일본국민된 자는 신사에 참배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 신자는 죽음으로 항거하는 외에는 딴 도리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훌톤 성명과 남장로교 처사에 용기를 얻은 북장로교 선교회본부는 1937년 다음 결정을 내렸다.\n그 후 대구의 계성, 신명, 재령의 명신, 선천의 신성, 보성, 강계의 영실 등 여러 학교가 차례로 문을 닫았다. 이와 같이 학교를 폐쇄시킨 여세를 몰아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할 계획을 세웠다. 총독부가 각도에 시달한 교회에 대한 시정방침은 다음과 같다. 1938년 2월이다.\n1. 시국인식 철저를 위하여 기독교 교역자 좌담회를 개최하여 지도계몽에 힘쓸 것. 2. 시국인식의 철저를 위한 지도 및 시설. (1)교회에 국기게양탑을 건설할 것. (2)기독교인의 국기경례, 동방요배, 국가봉창, 황국신민서사제창을 실시할 것. (3)일반신도의 신사참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여행에 힘쓸 것. (4)서력년호의 사용을 삼갈 것. 3.찬송가 기도문 설교에 있어 내용 불온한 것은 엄중 취체할 것. 4. 당국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신자는 법적 조치를 취할 것. 5. 국체에 맞는 기독교의 신건설운동은 이를 적극 원조할 것.\n1. 민족으로 하여금 일본신들에 대한 봉제와 민족 정신의 말살에 있었던 것. 2. 일본의 식민정치의 기본책인 정치의 실현을 위한 것. 3.신사참배로서 민족 정신을 유린하고 해체시켜 한국인을 소위 일본황국 신민으로 만들려 하는 것. 4. 한국교회의 신앙생명을 송두리째 말살해 버리는 것.\n한국에 있어 최초로 신사참배를 결의한 노회는 평북노회다. 1938년 2월 9일이다. 한국장로교 23노회 중 17노회가 평북노회의 전철을 밟았다. 비록 강요했다 할지라도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라고 체념했다.\n한편 당국은 장로교의 유력한 지도자를 몇 사람 선택했다. 이들을 일본에 보내 신사참배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시켜 교회를 유도하도록 했다. 신사참배 반대자 이승길 목사를 포섭했다. 5월 24일 오문환, 김응순, 장운경 목사 등을 일본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다음 6월 29일 평양기독교친목회(친일 단체)의 초청으로 일본기독교 대회장 도미다 목사를 소치했다. 그의 강연을 통해 신사참배의 종교성 부인과 신사참배는 애국적 국민의례임을 역설케 했다.\n이 자리에 많은 교역자들 불러 모았고 경관이 수십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주기철 목사가 일어나셨다. “우리는 도미다 목사의 강연을 듣고 그 풍부한 지식을 흠모하는 바이나, 성경에 비추어 신사참배하라는 말은 용인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박하였다. 원래(遠來)의 도미다씨는 의외의 반박에 얼굴이 붉어졌다. 경관은 독한 눈초리로 주목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청중은 놀라고 또한 통쾌하였다. 주최자는 무색하였다.\n1. 총회에 출석하면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동의할 것. 2. 신사참배 문제가 상정되면 침묵을 지킬 것. 3. 전기 양조를 실행할 의사가 없으면 총대를 사퇴하고 출석하지 말 것.\n이외에도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불응하는 사람은 검속 투옥할 것도 아울러 지시했다. 총회 개회 전일 평양 경찰서장은 평양, 평서, 안주 3노회 대표를 불러 다음과 같이 각본을 짰다.\n본래 총회 장소가 신의주에서 평양 서문밖 교회로 옮겨졌다. 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역사적인 제27회 총회가 막을 올렸다. 그 익일 오전 9시 30분 총회 속회날 수백명의 사복경관으로 교회가 완전 포위되었다. 강대상 아래는 평남경찰부장을 위시하여 고위경관 수십명이 긴 검을 차고 앉았다. 총대들의 좌우에는 지방경찰관 2명씩이 끼어 앉았다.\n실내 후면과 좌우에는 무술경관 100여명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당시 저들의 압력에 끌려온 27노회(만주의 4노회 포함) 대표는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합 206명이었다. 9월 10일 10시 50분 총독부가 짠 각본대로 평양노회장이 신사참배결의 및 성명서 발표의 긴급제안을 했다. 평서노회장과 안주노회장이 동의와 재청을 했다. 총회장은 전신을 떨면서.\n“이 안건이 가하면 예라고 대답하십시오.”라고 묻자 제안자 재청자 10여인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하고 전원이 침묵을 지켰다. 이는 신사참배 부당성을 표시한 것이다. 이때 수백명 경관이 일제히 일어나 일대 위협을 표시했다. 당황한 총회장이 ‘부’를 묻지 않고 그대로 만장일치 가결을 선언하였다. 이는 회무처리상 불법이다.\n이때 선교사 30여명 전원이 일어나 “불법이요” “항의합니다”라고 외쳤다. 이때 봉천노회 한부선 선교사는 무술경관에게 옥외로 축출까지 당하였다. 이 소란 속에 서기는 성명서를 낭독했다.\n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를 솔선여행하고 추히 국민정신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하에서 총후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 소화 12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장 홍택기\n이때 평양기독교 친목회원 심익현이 총회원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하였다. 부회장 김길창의 안내로 전국 노회장 23명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신사에 참배했다. 한국 보수교단을 자처하는 장로회 총회가 불법 강요 앞에 비참히도 굴복하고 말았다.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 신앙의 정조를 보전함이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동일 하오 1시에 선교사들은 따로 모여 다음의 항의서를 총회에 제출했다.\n총회의 결의는 하나님의 계율과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 발언을 허하지 않고 강제로 회의를 집행한 것은 일본 헌법에 부여한 종교자유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라는 요지다. 그러나 이것마저 경찰의 강압에 각하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신사참배 문제는 자진굴복의 치욕 속에 일단락을 고하였다. 여기 잠간 다른 교단의 신사참배 결의를 살펴보자.\n“한국천주교 장정에는 신사는 다른 신들을 위하는 곳이므로 참배할 수 없느니라”고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태리와 일본과의 친선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황청포교성의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애국적 행사이므로 그 참배를 허용한다”는 성명에 따라 신사참배, 수난을 면했다.\n“연전에 총독부 학무국에서 신사참배에 대하여 조회한 바를 인쇄배부한 일이 있거니와 신사참배는 국민이 반드시 봉행할 국가의식이요 종교가 아니라고 한 것을 잘 인식하였을 줄 압니다. 그런고로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지 신사참배가 교리의 위반이나 신앙의 구애됨이 추호도 없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소화 13년 9월 3일 기독교조선감리회 총리사 양주삼\n강압에 못 이겨 성결교회 해산, 신사참배 승인하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신구교 모든 교파가 공격적으로 다 범죄했고 여기 신앙투쟁사가 전개되었다. 따라서 많은 신사불참배운동이 일어났다. 숨겨진 역사를 밝히면서 최덕지 목사의 본격적인 투쟁을 알아보자.\n그는 미순회 여전도사로 재직하면서 경남 여성경학교 교사에 임명됐다.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나선 것이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시초는 평양신학교에서 부터이다. 신학생 장홍련이 김일선(평북노회장. 제일 먼저 신사참배를 결의한 노회)의 기념식수를 벌목한 데서부터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다.\n당시 평양신학교 교장, 교수들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 선교사들 간에도 의견의 일치가 없었고 연전학교는 오히려 신사참배를 지지하였다. 최덕지 전도사는 1936년 4월부터 진주에서 경남 각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여성경학생들을 가르쳤다. 처음 2, 3년 간은 성경 말씀 자체에 대한 강의에 열중하였다.\n하나님의 계시는 3가지가 있다. 첫째가 양심계시다. 양심은 사람마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양심에 따라 살 때 실수가 적다. 둘째는 자연계시다. 곧 천연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지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셋째는 성문계시다. 곧 성경말씀이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이 성경으로 천지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심을 안다.\n또 성경은 인류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나 사탄의 유혹으로 배신하고 타락하고 만다.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님이시다. 범죄한 인간을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여기 믿음이 필요하다. 곧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요 준비다. 신약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 오심과 그의 가르치심과 생활의 기록이다.\n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다. 곧 팔레스틴(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복음이 지리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석권한 역사다. 또한 당시 지식의 그리시아를 정복하고 힘의 로마를 복음이 정복한 역사다. 편지서들은 기독교의 해석이요 설명이다. 중심 인물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 바울이다. 그 중에 바울이 대표적이다. 그에 있어 기독교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 사실이 모든 시대, 모든 민족, 모든 종교를 능히 구원하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이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이 있다. 이는 인류의 구원과 회복, 모든 완성을 다룬다.\n이와 같이 성경은 구약이 39권이요 신약이 27권, 모두 66권이다. 기록한 연대로 보아서 약 2천년에 미친다. 또 기록한 사람은 44인이란 다수다. 이 모든 것이 한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류 구원의 계획’을 기록했기 때문이다.\n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 감동에 의해서 기록된 사실이다.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저자는 한 기자인 것이다. 지금도 성경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참조 ‘사람이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 베드로후서 1장 12절) 또한 성경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승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성경처럼 많은 핍박과 공격을 받은 책은 없다. 많은 사람이 이를 없애버리려고 했다. 많은 나라에서 불태우고 보는 자를 죽이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없어지지 아니했다. 그 사람을 정복하고 그 나라를 지배했다.\n위자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불행한 사람이 많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압제당하고 소외당하고 멸시당하고 범죄한 자들이 방황하고 슬퍼하고 있다. 이들에게 성경은 새로운 소망과 용기와 기쁨과 위자를 주고 있다. 감동과 변화케 하는 힘이 있다. 사람 잡아먹는 미개인이 성경으로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n해적국이 성경으로 문명국가가 된 영국을 보라. 실망의 나라 덴마크가 성경과 믿음으로 이상국이 된 것을 보라. 로마를 보라. 미국을 보라. 스위스를 보라. 오늘도 어제 탕아가 오늘 성자가 된다. 지금도 신약과 구약만 먹으면 산다. 이 약을 먹으면 참 지혜자가 된다. 성경은 신앙의 표준이 된다. 어떤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믿느냐 그 표준이 성경이다. 인간과 우주의 원리가 있다. 여기 신관, 인생관, 죄악관, 그리스도관, 종말관까지 다 밝혀주고 있다.\n성경은 실행의 표준이 된다. 우리가 실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적 원리 뿐 아니라 교육·정치·경제·사회·법률까지 향상케 할 원리와 표준이다. 칼빈 신학은 4대주권을 말씀했다. 우주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주권, 생활에 있어서 성경의 주권, 성경해석에 있어서 양심의 주권이다. 최덕지 교수는 자기가 이렇게 믿고, 기초를 성령과 신앙에서 철저히 가르쳤다. 당시 성경학교는 일년 일차 4월 개학하여 5월까지 2개월 계속하였다.\n1938년 9월 10일 총회적으로 범죄한 후에 성경학교는 양상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학문을 중심한 수업이 반대 투쟁장으로 변모했다. ‘신사참배’, 이는 하나님 앞에 제일 큰 죄됨을 인식시켰다. 십계명 1, 2계명을 위반함을 말했다. 성경의 우상에 대한 계명을 증거해 주었다.\n1.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 20장 4절) 2. 타신에게 경배치 말라(출 20장 5절) 3. 우상숭배는 멸한다(신 4장 26절) 4. 우상을 네게 두지 말라(신 5장 7절) 5. 자손에게까지 책벌하신다(신 4장 25절) 6.우상제물 먹지말라(행 15장 29절) 7. 우상숭배에 불참할 것(고후 6장 16절)\n우리는 하나님만 공경하자. 계명을 지키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나같은 죄인을 택하신 하나님 사랑. 나의 죄를 위해서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지신 예수의 사랑. 어려울 때 나를 도와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성령의 사랑.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 14장 21절). 나와 여러분은 예수 위해 목숨을 바칩시다. 나의 목숨보다도 부모보다 세상부귀 영화보다도 주를 사랑합시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킵시다. 증거하는 교수도 비장했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도 눈시울이 뜨거웠다.\n밤에는 뒷산으로 올랐다. 비봉산이었다. 기도하기 위해서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했다. 알지 못하고 신사에 굴복한 자는 회개의 기도를 했다. 범죄한 한국교회를 위해 울었다. 우상국 일본이 진노받을 것에 마음이 아팠다. 끝까지 승리하도록 힘달라고 매달렸다. ‘신앙만능’ ‘기도만능’을 체험시키고자 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기도할 때 침략한 ‘불레셋’을 하나님은 물리쳤다.\n아랍군대가 엘리사와 그 제자를 포위했을 때 기도로써 불병거와 불말로 지켜 주었다. 영호사반의 기도 때 모압·암몬·세일을 물리쳐 주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앗수르 군대를 정복시켜 주었다. 박관준 장로는 믿음과 기도로 일본갈 때 도항증 없이 가서 일본의회에 진정서를 투척하지 않았는가. 그럼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어떤 조직망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했는가 잠간 살펴보기로 하자. 최덕지 전도사는 개인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조직과 함께 협력하여 보조를 같이했고, 자기 신앙과 사상을 굴하지 않고 더 굳세게 철저하게 지키며 싸웠다. 신사 불참배운동 분포지역 및 지도자는 이러하다.\n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자기가 목회하던 교회(의주 북하동교회 8년)를 사면하고 1939년 4월 평양 채정민 목사와 더불어 신사참배 결사반대 동지를 규합토록 했다. 동지를 확보하면 전국적으로 신사불참배 교회를 설립할 것을 다짐했다. 다음 김의창 목사와 함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일대를 순방하며 동지를 얻었다. 신의주에는 김화준 전도사 이광록 집사 김창인, 영변에는 박관준 장로(다음 평양으로 나옴), 박천에는 안이숙 선생(후에 평양으로 옮김), 강계에는 고흥봉 목사, 서정환 전도사, 장두희 집사, 선천에는 김인희 전도사, 김의홍 전도사, 박신근 집사, 정주에는 김영악 등이 활동하였다.\n1. 신사참배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지 말 것. 2. 신사불참배 운동을 일으켜서 현실교회를 약체화 내지 해체시킬 것. 3. 신사불참배 신도를 규합하여 가정예배를 가지며 그것을 육성하여 교회를 신설할 것.\n(2)평안남도 평양을 중심 : 주기철 목사 주도 신사불참배 운동의 본거지는 바로 평양 산정현교회요, 주동 인물이 주기철 목사이다. 주 목사는 1938년 2월에 1차검속, 1938년 8월에 2차검속, 1939년 8월 20일에 3차검속, 1940년 5월 4차검속 당하고 1944년 4월 25일 순교를 당하였다.\n거창에는 주남선 목사, 함안에는 이현속 전도사, 남해에는 최상림 목사(옥중 순교), 진주에는 최덕지 전도사, 통영에는 최덕지 전도사, 김영숙 전도사, 고성에는 최덕지 전도사, 전라남도에는 손양원 목사, 만주에는 한부선 선교사, 봉천에는 박의흠 전도사(순교), 안동에는 김영악 전도사, 최용삼, 계성수, 김성심, 무순에는 박연지 집사, 할빈에는 김윤섭 집사.\n1939년 12월에 밀양 출신 이인재 전도사가(당시 평양에 있었음) 평북 평남 신사불참배운동 현황을 자기가 시무하던 밀양교회에 임시로 시무하는 한상동 목사에게 보고하였다. 두 사람은 마산의 최덕지 전도사를 만나 경남 신사불참배 운동 방법을 의논키로 하였다.\n1. 신사참배한 현 노회는 해체토록 한다. 2. 신사참배한 목사에게 세례받지 않는다. 3. 신사불참배주의 신도들만의 산노회를 조직한다. 4. 신사불참배 동지의 상호원조를 도모한다. 5. 신사불참배 그룹 예배를 드리고 동지획득에 주력한다.\n1940년 3월 5일엔 경남부인 전도회가 부산 항서교회에서 회집됐다. 새 임원을 선출한 것이었다. 만일 신사참배를 긍정하는 자가 선출되면 경남부인 전도회는 죽고만다. 신사불참배자가 임원으로 선출되어야 한다.\n이 싸움을 위해 최덕지 전도사는 다음과 같은 전략활동을 폈다. 동년 3월 1일 진영 거주 염애나 전도사를 방문했다. 한상동 목사님도 오게 하셨다. 경남노회 산하인 부인전도회 임원선거가 중대함을 설명했다. 각 회원을 설득키로 했다. 진주, 부산 방면은 한상동, 김해 방면은 염애나, 마산 방면은 최덕지. 이렇게 분담했다.\n이 자리에서 자기의 신앙사상을 피력했다. 3월 5일 여전도회가 모이면 애국적 행사라고 동방요배를 할 것이다. 신사참배는 물론 못하거니와 동방요배나 궁성요배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때 많은 지도자(목사, 선교사)가 신사참배는 못할 것이라고 반대하면서도 동방요배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멀리 계시는 산 임금에게 절하는 것이니 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전도사는 일본의 국체는 산 임금이나 사람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도가미 즉 ‘신’이라 했다. 사람이라도 신이라고 하여 섬기면 분명히 성경에 위배된다. 계명을 범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국기 배례도 성경위반이다.\n절한다는 것은 산 인격을 의미함이다. 고로 존경의 대상이나 종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순국령의 묵도도 못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복 빌수 없다. 이것도 다 성경위반이다. 다음 경남여전도회 임원선거는 전원 불참배자로 뽑아야 함을 역설했다. 마귀의 세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여성도들의 가슴은 뛰었다. 얼굴에는 결의가 엿보인다. 드디어 3월 5일이 왔다. 애국행사도 예배 전에는 못했다. 임원선거가 시작되었다. 최덕지 씨가 회장에 당선되었다. 총무 기타 간부 모두 불참배자가 당선되었다. 하나님은 진리의 편이시다.\n최덕지 전도사는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했다. 그의 강철같은 믿음이나 중인을 앞서는 영지는 기도에서 얻어진 것이다. 한번은 동지 김영숙, 박경애, 태매시 등과 비밀기도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한상동 목사, 이인재 전도사로 방문했다. 평양 산정현교회를 중심한 운동의보고를 이 전도사가 했다.\n그리고 우리도 일치단결하여 조선의 파수병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그때 평양측이나 한상동 목사 등의 신앙노선은 궁성요배는 죄가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해방 이후에는 긍정했다). 이는 민족적 감정으로 고집하면 순수한 신앙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최전도사는 다시 한번 궁성요배를 토의하고 반대할 것을 권면했다. 궁성요배 반대에 대한 그 이유와 설명은 전술한 바와 같다.\n박인순이란 아가씨가 있다.(이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자로 해방후 부산 영도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다 현재 미국에 가 있음) 진주 여성경학교에 가기 위해 마산에 왔다. 당시 성경학교에는 신사참배 찬반 두 세력이 있었다.\n마산의 최덕지 선생도 진주에 갔다. 당국에서 성경학교를 인가없다는 구실삼아 수업을 못하게 하였다. 최덕지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에 사람의 방해를 받을 수 없다 했다. 이렇게 하여 1940년 4월 초순 경남여자성경학교는 개학을 하였다. 주일이 되었다. 박인순은 진주 옥봉교회를 가고자 했다. 마산지방 학생과 함께 가기 위해 기숙사에 들렸다. 그러나 최덕지 선생은 타협한 교회에 가지 말고 기숙사에서 예배드리게 했다.\n기숙사는 보통 밤 10시에 소등하고 새벽 6시에 기상함이 규칙이다. 기숙사엔 학생이 없었다. 전에 기도하던 옥봉 뒷산을 가 보았다. 이곳에는 최선생과 30여명의 학생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n당국에서 진주여성경학교를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경찰서에서 선생과 학생을 송환해 갔다. 기숙사에 있는 모든 소지품을 가져가 개인별로 챙겨 고향집으로 압송했다. 최덕지 선생은 마산경찰서에서 4월 9일 검속해 갔다가 4월 26일 석방시켰다. 이것은 제1차로 당하는 경험이다. 왜정 말기에 민족적 탄압이 극심하였다.\n앞서는 ‘수양동우회’ 및 ‘흥업구락부’ 사건을 일으켜 민족지도자들을 검거하여 투옥시켰다. 또다시 평양산정현교회를 폐쇄하고 평양신학교를 폐쇄하고 아울러 전국 각 도시 200여 교회의 문을 닫게 했다. 2000여 성도를 구속하고 50여 순교자를 내었다. 전시 하 한국교회의 수난이 막심하였다.\n1. 신사참배가 국민의식이냐, 종교의식이냐. 2. 천조대신이 높으냐, 그리스도가 높으냐. 3. 국가가 제일이냐, 종교가 제일이냐. 이 물음에 대하여 자기네에게 만족한 대답을 하지 않는 성도는 가차없이 구속, 투옥시켰다.\n“여러분!” 최선생 입을 열었다. “죄를 짓지 맙시다.” 눈을 감고 경찰서 유치장을 연상한다. “나는 지옥을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합시다.” “끝까지 승리합시다.” 이 간단한 예배시간에 은혜와 감명이 넘쳤다. 최 전도사는 많은 사람이 죄를 짓고 유치장 속에 갇혀있는 군상을 보았다. 만일 우리가 약하여 신사참배를 했을 때 지옥갈 것을 생각했다.\n당시 전쟁말기 왜경의 단말마적인 광란이 증오의 대상인 기독교인들에게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상상에 맡긴다. 이 무서운 고문과 포악을 최 전도사는 오직 하나의 무기 ‘금식기도’ 이것으로 종국에 승리를 얻었다.\n모이는 곳이면 이 기도를 부탁했다. 석방이 되면 ‘금식기도’를 준비하였다. 검속이 되면 ‘금식기도’로 항거하였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 한목숨 주를 위해’ 다부어 바친 결사적 기도-여기 힘이 솟았다. 주님이 지켜 주었다.\n1940년 6월 23일 진주에 왔다. 이곳에서모 김성심씨와 동생 최달구씨가 있었다. 그 동안 통영읍 조봉연 집을 순방하였다. 통영 성도 십여명을 모았다. ‘가정기도회’를 개최하여 신사불참배 운동을 전개하였다.\n5월 25일이다. 6월 초순에는 창원 북면 신촌교회를 순방했다. 창령군 영산면 학포교회를 순방했다. 창원군 대산면 모산교회를 순방했다. 김해군 진영면 사산교회를 순방했다. 신사참배는 바로 우상예배다. 가만이 집에 피해 있을 수가 없었다. 태양신과 싸워야 했다.\n최선생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주변성도들이 모여 들었다. 박내복, 강신애, 문경업 등 십여명이었다. 예배를 드렸다. ‘예수를 사랑합시다’ 주제로 설교했다. “우리가 신사에 절하고 계명을 범치 아니하려면 예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방안에는 사랑의 열기가 감돌았다. 하늘에는 은혜의 문이 열렸다. 가슴마다 뜨거웠다.\n이때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 긴장했다. 예배를 마쳤다. 보이는 얼굴은 바로 진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김을도였다. 최덕지 선생을 위시해서 예배드린 전원을 진주경찰서에 구속했다. 이때 구속된 것은 김을도 형사와 의형제를 맺은 목사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다.(이분은 현재 서울에서도 큰 교회의 유수한 목사로 재임하고 있다)\n최 선생이 이 때 당한 고문은 전 감옥생활을 통해서도 가장 혹독했다 한다. 그 중에도 더 가슴아프게 한 일이 있다. 교인들이 당하는 고문이다. 그 고문보다 더한 아픔이 있었다. 이는 고문당한 교인들이 ‘신사참배하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면서 고문에 이기지 못하고 변절함이다.\n이 아픔을 이기기 위해 드디어 21일 장기간 금식기도를 하였다. 현대 많은 교단과 교인이 금식(단식)을 한다. 그 일수에 있어 40일 금식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물을 마시고 과일즙을 마신다.\n최덕지 선생은 전연 물 한모금 삼키지 않았다. 21일은 구약성경 다니엘서 다니엘이 조국을 위한 21일 금식에서 본받은 것이다. 금식도 성경대로 모든 것이 주님 뜻 안에서가 그의 신앙의 기본태도다.\n김을도 형사 배후를 목사가 조종한 고로 더 악독했다. 낮에는 XXX목사에게 성경을 배워 밤에만 고문했다. 유치장 안에서 주는 밥에다 소독약을 뿌려서 가져왔다. 최 선생은 금식기도할 때 소독약 뿌린 저들이 “삼계탕 가지고 와 먹게 하소서” 했다.\n21일의 장기금식을 보고서 포악한 일경도 잔악한 김을도 형사도 이 위력 앞에 자신들이 굴하고 말았다. 가족들을 소환, 최선생을 석방하여 진주 공의집에 머물게 하였다. 죽을까 두려워 저들은 삼계탕까지 가져와 먹게 하고 회복을 빌었다.\n1.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할 것. 2.전 조선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3. 옥중동지가 진리를 증거하고 승리하여 석방되도록 4. 이 나라가 기독교국이 되도록 5. 천황과 위정자가 회개하고 기독교도에게 자유를 주도록.\n1. 신앙은 만능이다. 2. 예수를 사랑하라. 3. 자녀의 명분을 중시하라. 4. 안식일을 존종하라. 5. 신은을 감사하라. 6. 아무 염려하지 말라. 7. 복 받는 길 8. 흩어진 바벨탑 9. 재림을 준비하라.\n그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있어 여러 지역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통영은 자기의 출생지요, 고성은 시댁이 있는 곳이요, 진주는 새어머니와 성경학교 까닭이요, 마산은 바로 자기의 목회지역인 이유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상과 같이 활동하였다.\n1942년 8월이 왔다. 최덕지 선생은 자기의 시가인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교회에 와 있었다. 이 기회가 한때나마 가족이 단란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의 하나뿐인 ‘혜수’따님과도 사랑의 정을 나누었다.\n태평양 전쟁이 치열해 갔다. 정권에 가담한 노회가 신사참배 반대자를 가시처럼 여기게 되었다. 드디어 노회가 신사참배 반대성도를 일제구속케 한 것이다. 최 선생에게는 삼천포에서 노회원이 피하도록 권면의 편지가 왔다.\n그러나 피할 것이 아니라 옥중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혜수(19세)를 숙부되는 김정수씨께 맡기려 했다. 부산에 있었다. 고성을 떠나 부산가는 길에 통영에 들렸다. (2006. 6. 8. 크리스천신문)\n조봉련 선생 댁이다. 주일이 되어 최선생 오셨다고 많은 사람이 모였다. 예배를 드렸다. 이때 구속이 되었다. 함께 구속이 된 사람은 송복득, 윤갑득, 김조금, 김순연, 정모열, 황의조 등이다. 이 날로 통영에서 도감방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구속한 죄목은 ‘비밀결사죄’다. 항상 비밀리에 기도회를 가진 까닭이다.\n이때 도감방에는 모두 6감방이 있었다. 제1감방에는 최덕지, 송복덕, 박인순, 배학수 등이 수감되었다. 제2감방에는 최달석, 강말식, 제3감방에는 김영숙, 염애나, 이술연, 조복희, 강성화, 김야모, 제4감방에는 김수영, 제5감방에는 이약신, 제6감방에는 손명복이 있었다.\n최덕지 선생은 ‘예배’를 신앙의 생명으로 삼았다.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마귀에게나 사람에게 빼앗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고로 그는 유치장이나 형무소나 어디에서나 하루 4차 예배를 드렸다.\n새벽, 오전 11시, 오후 3시다. 그런데 최덕지 선생이 11시에 드린 것은 12시는 일본인이 죽은 귀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므로 이를 피해 앞당겨 11시에 드린 것이다. 정식 고문 당한 것 외에 유치장이나 형무소에서 예배로 인해 맞은 매와 당한 수모는 이를 헤아릴 수 없다.\n간수가 ‘야까마시’하면서 제지하고자 했다. 시끄럽다면서 격검막대기로 최 선생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배를 다 마치기까지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감방에서는 규칙을 어기면 밥을 안 주거나 벌을 가하거나 매를 때린다.\n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에 힘을 써 궤휼과 권세로 제군물 삼으니 천하에 적수 없도다. 하고 찬송이 나왔다.\n간수는 ‘야까마시’하고는 물을 퍼부었다. 1감방에도 3감방에도 찬송이 계속되고 물도 계속 들어왔다. 예배를 다 마치기까지 두 방에 모두 33통의 물을 퍼부은 간수는 드디어 포기했다. 얼마나 차가왔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러나 예배를 꺾이지 않은 승리의 기쁨은 그 고통을 참게 한 것이다.\n3감방에 있던 강성화 집사(이 분은 해운대 교회 구재화 조사 부인이다. 구재화 조사는 경남노회 15교회를 개척설립하고 그 둘째 아드님은 서울대 수학과를 거쳐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미국의 대학교수로 있음)는 그 물에 세탁을 하며 찬송하기를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 찬송합시다. 찬송합시다. 내 죄를 씻으신 주이름 찬송합시다.” 하였다.\n여기에 대해서 최덕지 선생은 첫째, 나는 다른 사람과 면접해야 하고, 둘째, 전도해야 하고, 셋째, 도 감방에 있는 모든 성도를 다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석방을 거부했다. 내가 석방되면 나를 만나는 사람까지 고통을 준다. 고로 이곳이 편하니 나갈 필요없다. 또 나가면 재차 구속할 것이니 나갈 필요없다는 것이다.\n당국은 죄인 아닌 이 억센 죄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최 선생과 당시 친한 한상동 목사 부인 김차숙씨가 모시러 왔다. 한상동 목사는 도 감방에서 평양으로 압송되어 가고 이미 없었다.\n죄인이 마치 귀인처럼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석방된 최덕지 선생은 우선 김차숙씨 댁에 와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원근 각지에서 많은 성도의 위로가 있었다. 정성을 다하여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해 온 그 고마움 앞에 모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n평양으로 옮기기까지 몇가지 일화를 적어 본다. 최 선생은 예배할 때 너무도 부동의 자세라 하부장(취조 형사)이 말하되, “너희는 벼룩도 없느냐.” “물로써 씻어주니 없어요.” 마산서 김야모 씨가 도 감방으로 오자 “아베느고 오신다”(이는 최 선생이 구약에 불 가운데서 승리한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베느고와 같이 승리한 종을 가르침.)\n최 선생이 공판정에서 심문받으면 감방에 함께 있던 죄수들이 11시가 되면 “지금은 예배시간입니다” 하였다. 또한 옥중의 소식을 이 예배기도 시간을 통해 방청석 사람에게 연락하였다. 하부장은 “동방사람을 보내 최선생 옥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다.(이는 바벨론 제국을 동방의 고레스 왕이 멸하고 유다를 석방시킨 역사의 기도를 듣고 조롱한 말) 이 때도 최 선생은 기도의 무기를 들었다.\n마침내 22일 장기금식을 하였다. 이도 본래 작정은 20일이었다. 20일을 마치고 당국이 해금을 원했다. 당시 3감방에 수감되어 있던 김영숙 전도사를 자기 방에 오게 하면 해금하기로 하고 김영숙씨를 오게 하였다. 예배를 인도케 하였으나 두려워 사랑함으로 해금을 연장했다. 드디어 최 선생을 위해 예배를 인도하였으므로 2일이 연장되어 결국 22일의 장기금식을 마치게 된 것이다. 당시 감방에서 예배인도는 많은 매와 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인도할 수 없었다. 이때 같은 남감방에 최범술이란 분이 수감돼 있었다.(해방 후 동래지구 국회의원으로 당선) 최 선생의 신앙과 투쟁을 보시고 “불교에서는 석가를 위해 저렇게 싸울 자 없다.” “기독교 역사에도 장기간 저렇게 굳세게 싸울 자 없다.”하고 자기에게 차입된 과일 등을 몸소 가져와 도왔다 한다.(간수 및 같은 방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에서)\n1943년 정월 초순도 감방에서는 소문이 나돌았다. “내일 모레면 최 선생 평양 간다”는 말을 듣고 최 선생은 기도했다. ‘주를 위해 바친 몸’ 주님 뜻대로 하소서. 주일이 왔다. 예배드리기 위해 옷을 입으라 했다. “최선생 나오시오” 했다. “평양 갑니다” 하부장의 말이다.\n“오늘은 주일이니 여행 못합니다” 최선생의 말이다. 그러나 강제송환이다. 머리 푼 그대로 버선 벗은 대로 속옷차림 그대로 평양행 열차에 강제승차되었다. 종일 식음을 전폐하였다. 종일 앉지 않고서 그대로 갔었다. 이때 인솔하던 형사들도 종일 식사를 안했다고 한다. 최선생 생애에 있어 이 때처럼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때가 없었다고 한다.\n그때 함께 이감되는 남조사 한 분이 있었다. 최선생 모습을 보고도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사식을 주니 굶주린 몸이라 최선생분까지 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 형사에게 또 사달랬다. 이를 본 형사들도 ‘양심이 있소’ ‘욕심많은 개’라고 욕하였다.\n평양형무소에 최 선생이 수감될 때 앞서 와 있던 성도들이 많았다. 그 중에 안이숙 선생, 조수옥 선생 등이 있었다. 조수옥의 눈에 비친 최 선생의 속옷차림 모습은 몹시도 초췌하여 저분에게 영양을 도와야겠다고 느꼈다.\n최 선생이 평양형무소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제5감방에 수감되었다. 모든 사람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다. 최 선생은 고함을 쳤다. “지금 우리 다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n찬송을 우렁차게 불렀다. 모든 감방에 있는 자가 놀랐다. 그 보다 당황한 자는 지키던 간수였다. “멈추라, 멈추라” 고함쳤다. 그 소리보다 찬송은 힘 있게 온 감방에 울려퍼졌다. 이렇게 하여 평양에서의 싸움은 시작되었다.\n최 선생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배는 빼앗기지 않았다. 시간도 어기지 않았다. 그 예배형식은 찬송, 신앙고백, 성경(요절암송), 기도, 주님기도로 마친다. 이 예배가 출옥 때까지 계속되었다.\n처음 평양에서 간수가 교체될 때마다 최 선생은 온갖 매질과 욕설을 다 당하였다. 세월이 갈수록 그의 진실이 인정되었다. 변치 않은 신앙의 충절을 존경하였다. 당시 사상범을 다루는 무서운 모리검사가 있었다.\n최 선생 예배는 이 모리 검사에게 취조를 받다가도 예배는 허용되었다. 그 때 판사는 가마다였다. 평양형무소의 많은 사상범 성도를 다루던 분이다. 이 분이 증언하기를 최덕지 선생만은 그 신앙이 참되고 그 사상을 존중한다고 하였다. 그의 사위되는 김진택씨가 면회갔을 때 당신은 훌륭한 어머니를 가지고 있다면서 예배 시작 전 면회를 허락하였다.(판사 허락이 있어야 사상범 면회가 되었음)\n형무소에서 일어난 일 몇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한 번은 간수장이 순시하러 감방에 왔다. 당번인 간수가 5감방 최선생 앞에 와 똑바로 앉았다. 최 선생이 예배드리려는 시간이다. 간수가 그의 기질을 알고서 3분만 허용하니 빨리 마치라고 했다.\n최 선생도 간수의 입장을 고려하여 빨리 끝내려고 했다. 그러나 예배시간을 침해 받을 수 없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어 정상적인 예배를 드렸다. 간수장이 당도했을 때 예배가 계속되었다. 예배 후 당한 고문, 맞은 매는 평양형무소에서는 가장 혹심한 것이라 하였다.\n그리고는 최 선생을 더욱 괴롭게 하고자 정신이상 여자를 최 선생 방에 함께 있게 했다. 방해하고자 보낸 이 여자가 예배를 도왔다. 입에 씌운 마스크를 풀어 변기에 던졌다. 다음 간수가 왔다. 변기통에 있는 마스크를 주어 씻어 다시 최선생에게 씌웠다. 이 여자가 또 다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후에는 고무 마스크를 씌우지 않았다.\n어떤 날 예배로 인해 옷이 모두 찢겨 홑저고리만 입은채 시멘트 바닥의 독방에 가두었다. 조수옥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그날 밤은 영하 36도로 내려갔다고 했다. 다음 간수장이 최 선생을 향해 독방에 온 감상을 물었다.\n“내가 일본천황의 법을 어겼다고 이곳에 넣었으니 만일에 만유의 신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는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겠는가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더욱 굳어집니다”라고 했다. 고문이 약해서 산 것이 아니요 명이 길어서 산 것이 아니라 대일본제국에 ‘진리의 증언자’로 삼았으므로 살아남은 것이다.\n이러한 일도 있었다. 주일이다(성일). 자기 감방에 변기를 소제하려고 했다. 그의 신앙은 주일에 일하는 것은 성일을 범하는 것이므로 금하고 있다. 변기를 들어내려 하자 할 수 없이 변기통을 안고 누워 스제 못하도록 막았다 한다.\n이렇게 옥중에서도 범죄나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한다.1945년 8월 15일,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일본은 반드시 이긴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미군이 필리핀을 되찾을 때 겁이 났다. 그리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n일본천황 히로히도(유인)는 8월 15일 정오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일제의 36년 그 포악과 탄압의 정치도 종말이 왔다. 어둡고 슬펐던 밤이 지나고 찬란한 아침이 찾아왔다. 8월 18일 일제는 옥중성도 최덕지 선생을 죽이려 했다.\n8월 17일 밤, 옥문이 열리고 출감했다. 꿈 같은 일이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 누가 막으랴. 그 비밀을 누가 알았으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다. 여러 옥중 성도와 함께 출영 나온 성도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n많은 옥중 성도 중 순교하거나 병보석이 되고 최후까지 남은 자가 평양은 14명이었다. 이 분들이 안이숙씨 모친 집으로 안내되었다.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대했다. 밤 예배는 은혜와 눈물과 감격의 도가니가 되었다. 멀리 고향의 신앙동지들을 생각하며 한밤을 지냈다.\n그러나 그때에 아직 일본군이 무장해제를 하지 아니하였음으로 무기를 가지고 난동을 부리며 사람이 모인 곳에 와서는 행패를 부린다고 예배는 드리되 찬송은 하지 말자고 제의함으로 그 뜻 깊은 출옥 감사예배 때 찬송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n엉겁결에 예배를 마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쇠고랑을 차고 물을 둘러쓰고 매를 맞아 가면서도 찬송을 빼앗기지 아니하였는데 자유로운 몸이 되어 찬송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분하고 괴로워 밤잠을 자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영지가 혼미해졌는가 반성하며 가슴 아파했다.\n돌이켜 보면 최덕지 선생은 부산에서 평양으로 이감된 후 신사참배 거부는 물론이고 비신앙적이요, 비진리적인 궁성요배도 반대했다. 야수구니진자(청국신사) 위령 묵도까지도 생명을 걸고 항거했다.\n시종일관 투옥된 지 7개 성상 그 능욕 그 고초를 감수했다. 이 나라 기독교 진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초지일관 신앙정조를 지켰다. 수절한 그는 해방과 함께 승리의 개가를 부른 하나님의 사자이다.\n일제에 항거한 종교인이 없었다 하겠는가마는 완전하고 철두철미 반대투쟁한 자는 최 선생밖에 없다. 완전 승리는 그를 제외하고는 없다. 이는 함께 투옥된 이나 일본관헌이 함께 공인하는 바다.\n종국에 그들은 ‘최덕지가 믿는 신이 참신이다’고 말하고 증거했다. 나는 분명히 믿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1일 4차 기도가 정의는 살고 진리가 종국적으로 승리함을 믿는 최덕지 선생의 충정이 그를 살린 것이다.\n이때 영남에서는 손양원, 김영숙, 염애나, 이술연, 김야모, 김두석 등이 출옥하였다. 평양의 출옥성도들은 순교제단 산정현 교회를 중심하여 집회를 가졌다. 강사는 최덕지, 이기선, 주남선, 한상동, 박신근 등이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회개의 눈물을 흘린 줄 안다. 최덕지 선생을 황주에서 초청하여 그곳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n또 한편에서는 평양에서 큰 여관을 경영하는 옛 친구가 찾아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이 분은 다름 아닌 평양여자신학교 때 누명으로 어려움 당할 때 도움받은 사람이다. 정의는 살아있고 외롭지 않은 것이다. 해방의 자유와 광란 속에 한 해가 기울었다. 1946년 정월이었다.\n남한에서 잊을 수 없는 김영숙 동지와 서모 김성심씨가 찾아왔다. 이 땅에는 해방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이 생겼다. 바로 38선이다. 종전 6일 앞서 즉 8월 9일 소련군이 일본에게 선전포고했다. 미국은 일본군벌을 해체하기 위해 소련군이 필요한 줄 알았다. 드디어 소련군이 만주와 북한에 침입한 것이다.\n최 선생은 월남 길에 올랐다. 이북의 재건은 이북인에게 맡겼다. 밤을 틈타 야행 길에 올랐다. 험하고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요. 가고보니 소련군 사령부로 간 것이다. 최 선생은 기도하였다.\n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부산에 온 최덕지 선생은 자기 친정인 최달구씨 집에서 첫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부산을 위시하여 경남 일원에서 사모하는 성도들이 모여 왔다. 그 기쁨과 감격은 헤아릴 수 없었다.\n그 동안 피신한 성도들도 자유와 해방과 함께 차차 나타나게 되었다. 출옥한 성도들이라도 사상과 노선이 같을 수 없었다. 일부는 고신측이요 일부는 재건이다. 왜 이렇게 분리되었을까? 잠깐 밝혀두고자 한다.\n일반은 옥중성도라 하면 무조건 동일시하나 사실은 신앙에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이 신앙사상에 따라 투쟁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즉 평양형무소의 출옥성도 13명 중 1명은 신사참배를 인정하고 모교회로 돌아갔다.\n최덕지 선생, 박신근 집사, 이광록 집사 등은 신사참배는 물론 동방요배(황거요배라고도 함) 청국신사, 위령묵도까지 전부를 죄악으로 인정했다. 거부반대 투쟁을 한 자와 이를 추종하는 자는 재건교인이 되었다.\n기타는 신사참배가 죄이나 동방요배, 묵도, 국기배례는 양심문제로 삼았다. 그들은 동방요배란 산 임금에게 절하는 것으로, 평민이 황제를 대할 수 없으니 다만 거리관계로 가까이서 하나 먼 곳에서 하나 하여간 산 임금에게 절하는 것이다.\n우리의 진리만을 위해 싸우는 민족적 관념에서 안 된다는 해석이다. 그런고로 이는 죄 아니라 해도 좋고, 안 해도 무방하다 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최덕지 목사는 이는 죄 되는 이유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n일본 임금은 사람이나 그들의 국체에 의하면 천조대신을 현인신으로 위하고 있다. 즉 사람이라도 사람으로 섬기라 함이 아니고 사람을 신으로 경배하라는 것이니 이는 곳 제1, 2계명을 범하는 것이다.\n따라서 성경에도 사람을 신이라고 할 때에는 절하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이고 우리도 그를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장 5-6절)\n“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하니.”(요한계시록 20장 4절)\n이리하여 옥중에서도, 같은 동료 중에서도 최덕지 선생을 고집쟁이로 생각했고, 일제에는 다른 사람은 동방요배하는데 너는 왜 아니하는가고 형벌을 더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출옥 당시까지도 최덕지 목사는 여자라고 해서 그 신앙과 사상에 반대하였으나 마침내 그려신학의 교수이던 한부선(미국인 선교사) 목사가 이를 죄로 규정함에 따라 비로소 고신측도 굴했던 것이다.\n최덕지 목사와 한상동 목사가 월남하여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경남노회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 방법에 있어서 재건운동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대하여 최 목사는 ‘밖에서 불러내자’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한상동 목사는 ‘안에 들어가 건지자’는 방법이었다.\n최 목사가 본 한국교회는 전부 사탄의 회로 화하고 그들의 지도자는 해방이 되었으나 신사참배 죄악을 회개하지 아니했고 악의 세력이 강하니 먼저 구분부터 하고 죄악을 경책하여 양떼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상동 목사는 이제 우리가 들어가면 저들은 물러가고 말 것이니 안에 들어가자는 것이다.\n이에 반해 한상동 목사는 이제 우리가 들어가면 저들은 물러가고 말 것이니 안에 들어가 일해 보려고 몇 번이고 기도하고 주의 뜻을 기다렸으나 종내 허락 없어 결국은 밖에서 회개운동을 일으킨 것이 재건교회를 설립하게 된 동기이다.한상동 목사가 들어가 건지려던 그 결과는 과연 어떠했던가.\n그가 출옥성도의 자랑을 무시해 가며 관대하게(?) 그 노회 안에 들어가 일해 본 보상은 무엇이었는가. 마침내 1946년 12월 3일 경남노회, 제48회 진주노회 때에 진리의, 승리의 종으로서 최대의 모독을 당하고 자신의 입으로 탈퇴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고신측 교단이 생긴 것이다.\n이때 모인 교우로는 작고한 박부준 장로, 박열순 장로, 조복희 장로를 위시하여 하수봉 집사, 유사덕 집사, 강선희 집사, 장봉기 집사 등으로 이분들이 재건교회 창설 때 대표적인 교인들이다. 이때부터 최덕지 목사님의 회개운동이 한국교회에 전개되었다.\n최초의 재건교회 부흥집회가 시작된 곳은 경남 창원군 ‘하구지’교회다. 강사로는 최 목사와 이광록 집사였었다. 이 집회에 경남노회 원로 목사이던 마산 강상은 목사가 재건하고 재건운동에 가담하였다. 따라서 진해교회 장로였던 이성출 장로가 회개 재건하였고 하구지교회 이용실 전도사가 회개 재건하였다.\n1947년 1월에는 경남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교회에서 재건부흥 집회를 가졌다. 이때 조용술 장로 일가가 모두 재건하였다. 당시 조용술씨 백씨되는 조용화 집사가 전적으로 회개하고 일제시 범죄한 교회를 회개의 표상으로 불태우고 신축성전을 위해 자기 거처하는 가옥, 전답, 소 한 마리까지 재산 전부를 송두리째 바쳤다. 전국 각지에서 은혜를 사모하여 모여든 성도들이 과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과 충성하지 못한 것과 배신배도한 모든 범죄를 회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때 동래군 기장면 대변에서 왔던 장봉기씨는 크게 은혜를 받아 조용화 집사가 자기 재산 전부를 주께 바침에 감동입어 그 재산을 다시 사서 주께 바치고 그 소와 그 전답으로 농사 짓게 한 일화도 있었다. 초대교회의 유무상통하는 사랑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n계속하여 경남 함안군 강명리교회에서 재건부흥집회를 가졌다. 이곳에서도 불같은 은혜가 충만했다. 회개의 눈물과 통곡은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이 곳은 조용덕 영수(다음 재건교회 장로)가 피신, 성도와 사자들을 숨겨 섬겼다. 이 집회에 크게 은혜를 받았다.\n강명교회 건물은 일제 때 문을 닫아서 더럽히지 아니하였음으로 그대로 쓰기로 하고 거기에서 집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 선생이 예배인도 시간만 되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어 이광록 집사로 인도케 하였는데 조금 몸이 나은 듯하여 다음 시간 강단에 서게 되면 또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n몇 번 되풀이하는 동안 기도를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단 문제인 듯하여 그 교회건물에 대하여 물어보니 일제 때 문은 닫았으나 빈집이라 하여 동리에서 이용하면서 일본 가미다나를 차려 놓고 절을 하였다는 것이다.\n그 사실을 안 즉시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마당에다 자리를 깔아 예배장소를 옮겼다. 그리고는 우상섬긴 곳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동리 사람들은 그 집을 버리면 자기들이 사용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의논하여 그 집을 헐어서 불태웠다. 이 집회 때 함안교회 박또석 목사가 회개 재건하고 조광제 장로가 재건하였다. 1947년 2월은 김해군 진례면 담안교회에서 집회를 가졌다.\n집회과정에서 새벽예배는 십계명을 강의하였고 낮 공부는 계시록의 소아시아 7교회를 해석하였다. 구구절절 그의 설교는 생명력이 있었고 말의 설교가 아니라 생명을 걸고 진리를 위해 투쟁한 산 체험이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심령 골수를 찔러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고 과연 하나님의 사자로서 권위를 실감케 하였다.\n누가 과연 저토록 한국교회의 죄를 책망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저만큼 조국을 위하는 열렬한 애국충정을 외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가 죄에 물든 가련한 심령을 구원하고자 이토록 사랑을 베풀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집회에 참석하여 성일관과 십일조에 대한 신앙을 확립하였고 죄를 철두철미 책망하는 능력에 감화되어 회개하고 재건하게 된 것이다.\n나는 이 집회에서 삼일금식을 처음 시작하였다. 이때 출옥성도 염애나 조사도 함께 고신측에서 회개 재건하였고 또한 진해의 주상수 목사가 참석, 은혜를 받았고 자기 교회의 집회를 청한 것이다. 1947년 3월말 진해에서 재건부흥집회가 개최되고 주상수 목사 일가가 재건되었다. 당시에 장로였던 주상수씨는 일찍이 오산고보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만주 전도를 위해 만원(현 화폐가치로 일억원 상당)을 헌금한 분이다.\n1947년 4월 18일에는 마산교회에서 재건부흥 집회를 가졌다. 마산은 과거 일제시 강상은 목사님의 가정을 중심한 구별된 제단을 쌓아 예배를 드렸다. 1946년 11월 22일 마산시 회원동 340번지 정우순씨 집에서 마산, 석전, 중리, 용담 등지 교인 18명이 합하여 ‘예수교재건 마산교회’를 창설한 것이다. 이 마산 집회 당시 특이한 것은 현실교회 목사의 고발로 외암과 광명 두 교회를 불태운 것에 대해 방화죄로 몰아 최덕지 목사와 광명교회 조용덕 장로, 외암교회 집사 등 7, 8명이 구속되어 마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재판을 받고 무죄석방된 것이다.\n성경시대에도 예수님과 그 외 사도들에게 죄를 씌우려하고 처벌하려 한 자가 다름 아닌 교권가진 자 종교인 자신이 아니었던가. 일제시 진리를 파수하고 교회를 지키는 충성된 주의 종인 순진한 양들을 잡아준 자들도 권세와 야욕에 불타던 거짓 목사들이 아닌가.\n해방된 오늘에도 성경대로 살고 진리를 사랑하는 재건교회나 교인들을 이단시하고 또는 반국가적이라고 악선전하고 고발하는 자는 다름 아닌 자기 출세만, 자기 교권만 위하여 권력에 아첨하는 거짓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일본제국 때 범했던 죄악을 지금도 그대로 범하고 있으니 참으로 누가 국가의 번영과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자인가.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 진리대로 행하며 국가를 위해 하루 4차례 기도하는 재건교회와 재건성도들이 아닌가. 당시 법관들도 참 기독신자와 거짓 기독신자를 그 지도자의 생활과 모습에서 판단하고 최덕지 목사를 존경하였다.\n이리하여 부흥의 불길은 방방곡곡 번져 나갔다. 계속하여 부흥집회는 제단마다 불붙기 시작했다. 부산집회에서는 김갑진 집사와 최 의사가 돌아오고, 모산집회에서는 최달석 목사, 윤석천 장로 등이 재건하였고, 부목집회에서는 윤의섭, 김판동 두 장로가 돌아오고, 진영집회에서는 박용대 장로와 김태금, 신우 두 집사가 돌아오고, 통영집회 때에는 방 집사 가정, 조필연, 윤갑득, 황또순 집사 등이 재건하고, 남해집회 때 최일구 목사 가정, 이상철 장로, 강덕순, 강주천 장로 등 여러 가정이 재건하고, 삼천포집회에서는 김수성 조사 자매들, 최종범 선생 등이 재건하고, 여수집회에서는 김기성씨 가정, 홍정희씨 가정 등이 재건하였다.\n이렇게 하여 50여처 교회가 허물어진 제단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속화된 한국기독교를 재건하기 위해 진리운동은 더욱 뜨겁게 전개되고 전국 방방곡곡 집회 때마다 신앙으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 모여들었다.\n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평신도도 일제시대 범행을 뉘우치고 잘못된 과오를 회개했다. 진리의 사자, 신앙의 참목자들 우러러 보며 앞을 다투어 나아왔다. 그의 지도를 받으며 그의 재건 노선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자가 되었다.\n출옥성도 중 한 분은(성명을 밝히지 않음) 최 목사의 따님(김혜수 집사)이 어머니 뫼시러 평양에 갔을 때 하는 말이 “정신과민이 되었으니 너희집에 잘 뫼셔라”라고 했다. 이는 누구보다도 철저히 싸웠기 때문에 가까이 있으면 자기들이 흠이 드러나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n최덕지 목사를 위시하여 평양형무소에서 출감한 경남출신 성도들이 월남하기 전 부산, 광주, 대구 등지에서 출옥한 성도는 주남고, 손양원, 김영숙, 김야모, 염애나, 이술연, 김두석씨 등 여러분이었다.\n출옥성도와 함께 산간과 암굴 골방에서 피신하고 있던 황철도, 이참수씨 등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당시 경남노회는 1945년 9월 9일에 부산에서 신앙부흥운동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대표 최재화 목사, 심문태 목사 그 외 20여명 명의로 선전문을 발표하여 그들의 범죄와 과오를 회개하며 경남노회를 재건하려는 준비를 하고 출옥성도들의 지도를 바라고 있었다.\n그러나 그 모임은 빗나가고 말았다. 출옥성도인 모씨를 중심으로 마산 문창교회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과거 한국교회 죄악을 책망하지도 않았고 회개를 권고하지도 않았다. 진리를 구분하고 양떼를 미혹에서 건져낼 영지도 능력도 없었다. 마침내 범죄한 현실교회의 불의의 세력에 타협하고 말았다.\n한 때는 출옥성도 주남고 목사를 노회장으로 추대하였다가 그 다음 해는 역시 부패한 세력에 교권이 되돌아 갔다. 이에 경남노회도 나아가 한국교회도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만 평양 출옥성도들의 월남만을 기다리고 있었다.\n월남 성도 일부가 기성세력에 흡수되고 오로지 신앙재건, 진리재건을 부르짖는 최덕지 목사에 대하여 경남노회는 가음정교회에서 “정신이상자니 조심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 죄악을 너무 공격하고 또한 그의 의로움이 너무도 강하여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n이는 복음의 원리보다 봉건주의 남존여비사상의 잔재의식이 아니겠는가. 여자목사 장립에 대하여 최 목사 자신은 몇 번이나 사양하고 또 기도하고 주님 뜻과 진리를 밝힌 후에 재건교회 헌법에 순종하였다.\n재건교회가 지향하는 길은 ‘신앙은 보수, 정치는 진보’ 이것이다. 재건교회가 이 땅에 공헌이 있다면 ‘여권의 확립’이다. 이것은 재건교회가 한국교회에 있어 효시오, 한국 기독교사에 있어서 대서특필할 사건이다. 필자가 마산여자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다.\n그 때 창원서 통학하는 3학년 재학중인 이경애라는 학생으로부터 1947년 1월에 박윤선 목사를 모시고 창원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참석했다. 낮 시간 계시록 강의가 끝나자 자유질의 토의시간이 있었다. 창원교회 장로와 영수들 중에서 재건교회와 최덕지 선생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과 박윤선 목사의 대답은 이러했다.\n나는 이 때 재건교회 재건집회가 있는 줄 알고 1947년 2월 담안집회 때 달려가 재건한 것이다. 내가 재건교회에 헌신한 것은 1950년 10월 7일 밤 요한복음 10장 36절 말씀으로 소명 입은 것이거니와 그에 앞서 최덕지 목사를 죄인으로 몰고 이단자로 취급하고 광신자로 비난함에 의분을 느껴온 터였다. 그는 의인이요, 그의 주장이 참되고 옳은 길을 가르치지 않았는가.\n조국이 해방과 동시 정치도 재건, 산업도 재건, 교육도 재건해야 했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범죄한 신앙재건, 민족의 양심재건, 이것 없이 모든 수포라고 외쳤으니 이들 외치는 자 이 땅의 참선지자가 아닌가. 의인을 핍박하는 나라는 민족이 협동치 못하다.\n최덕지 목사의 재건노선이 옳다고 공명추종하는 교회가 날로 늘어감에 따라 이에 대한 통일된 지도방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본래 최 목사에 있어서는 조직이나 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급선무였다.\n성직(목사, 장로, 집사)을 가지고 범죄한 자는 그 직명까지 부르지 못하게 하며 평교인과 아울러 다 일년 이상 자숙하게 하고 제각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과 충성하지 못한 것과 배신배도한 모든 범죄를 회개하도록 이끌기에 여념이 없었다.\n드디어 1948년 2월 18일 동래군 기장면 대변리 대변교회에서 임시 중앙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참가교회 30여 교회 50여 대표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예수교장로회 재건교회 중앙위원회’ 규약과 재건운동의 목표인 3대주의와 5대주장이 채택, 통과되었다.\n제1회 회집 당시 규칙 통과 때 본 초안과는 달리 ‘예수교장로회 재건교회’라고 했다가 제2회 중앙위원회를 진해교회에서 소집했을 때 명칭문제가 논의되었다. 우리가 장로교인들이나 우리 단체가 무슨 교단이나 별개체를 조직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국교회가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다 범죄했으니 재건하게 함이 목적이다.\n그렇다면 장로교란 명칭 아래 운동이 전개될 경우 장로교인 이외 성결교인이나 감리교인 기타 등이 교파로 인해 재건하기를 꺼리게 되고 각 교파마다 재건교회가 생길 수도 있을 터이니 아예 장로교란 특수한 명칭을 사용하지 말고 ‘예수교 재건교회 중앙위원회’라는 명칭으로 개칭한 것이다. 재건교회라 할 때 교회사적 의미도 분명해지는 것이다.(2006. 5. 17. 크리스찬신문)\n당시 개회 표어 성구는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장 2-3절) 한대로 재건교회가 하나님의 경영과 섭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n재건운동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우리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인생관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국교회나 우리 자신들이 그 영광을 짓밟았다.\n고로 재건교회의 출발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다. 일찍이 이사야는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 하리라’(이사야 42장 8절) 하셨다.\n과거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이가붓 시대가 되었으니 이 영광을 다시 찾아 하나님께 바치자는 것이다. 고로 재건운동은 인위적인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일이다. 이를 누가 막으리요. 3대주의를 다시 논의해 보자.\n이는 하나님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제일, 국가제일주의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이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인생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n과거 국가제일주의에서 신앙을 팔았으니 이제는 하나님 제일주의에서만 살자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에 충성함은 하나님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다. 하나님께 진정 충성할 수 있는 자만이 국가를 위해서 살 수 있고 진정한 애국적 행위라는 것이다.\n과거 일제가 하나님께 바칠 충성을 국가에 바치게 강요하여 국가도 망하고 종교도 망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국가도 제2, 제3의 문제인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자는 정신이다.\n이는 신사참배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자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근본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 거역, 분리인 것이다. 기타는 다 이 죄의 결과로 이루어진 범행들이다. 고로 과거 신사참배나 동방요배나 청국신사 위령묵도한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다른 범행의 죄는 회개할 수 없고 따라서 온갖 범행을 다 행한다는 것이다.\n재건운동은 회개운동이다. 죄악을 경책하는 운동이다. 회개가 없이는 한국의 부흥이나 참다운 행복은 바랄 수 없는 것이다. 회개가 깊으면 은혜가 많고 회개가 클수록 사명이 크다. 과거 성직자는 물론 50만 신도나 삼천만 동포 모두가 회개하여 우리의 살길을 찾아보자는 정신이다.\n이스라엘의 통일군주 다윗이 자기의 궁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성전 없음을 탄식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바치기를 소원함에 하나님은 그에게 피 많이 흘린 자손이라 허락지 않았으며 그 아들 솔로몬 때에야 비로소 그 염원이 성취되었다.\n총 경비 20억과 인부 18만과 만7년의 공사로 완성한 솔로몬 성전의 헌당식에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과 맹세하기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 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 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여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n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복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김으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열왕기상 9장 3-9절) 솔로몬의 성전에도 이같이 하셨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과거 한국교회가 가미다나 제조공장, 일본군인 환송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그 건물들을 다 버리고 이제 한국의 땅 위에는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정성과 우리의 물자로 깨끗한 새 성전을 지어 바쳐 하나님의 영광을 찾자는 정신이다.\n이상 3대주의의 정신을 다 갖추어 한국교회가 완전 재건할 것을 주장하고 실천사항으로서 과거 우상당으로 바뀌어진 건물은 일체 포기하고 허위를 가장하는 위선과 불의에는 절교하여 죄에 대한 단절의 태도를 취할 것이며, 이 나라 우상도 일체 타파하기로 하고 이 운동을 전개 실천함에는 직업적 종교가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재건한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명으로 생각하여 활동하기로 다짐한 것이다.\n그러므로 한국교회를 재건하고 조국의 운명을 구원하려면 그들과 결탁하고 타협하여서는 생명있는 일을 할 수 없음을 밝히고 사람이야 무어라 하든지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이 하는 일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할 것임을 그 후 최덕지 목사는 분연히 선언한 것이다. 1948년 5월에 부산교회 신축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고, 아울러 재건교회 성경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n광주에서도 최덕지 목사의 집회를 요청했고 참지도자의 말씀을 따랐으며 이 당시 주상주 목사가 최 목사를 도와 함께 집회를 인도하였다. 경남지역에서는 창원 집회 때 성령의 역사하심이 크게 증거 되었다. 이 곳은 출옥성도 염애나 조사가 목회하고 김덕순, 김을수 두 장로가 재건하여 충성된 종으로서 모든 것을 다 바쳤다.\n또 잊을 수 없는 집회는 가락(김해)교회 집회인 줄 안다. 이 곳은 최복덕 장로가 집회 중 한 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계속하며 강사인 최 목사와 주상수 목사를 받들고 진정한 주의 종을 위해 극진히 봉사하였다.\n그때 김해읍에는 정찬성 조사(현재 목사) 김명전 집사 댁에서 재건제단을 쌓고 있었다. 다음 김명전 집사는 해운대교회로 이사하여 장로장립을 받았었고 해운대교회 새성전 짓는 데 중심인물이 되었다.\n첫 부흥집회가 하구교회에서 개최되어 신령한 은혜가 풍성했다. 감화감동을 일으킨 부흥사였다. 그의 야고보서 강해는 참으로 많은 은혜가 있었다. 또한 성가도 잘 불렀다. 그러나 이북 제단에서 내어몰린 자를 우리 측에서 받아들였다고 말썽이 오갔다.\n바바바 버버버 밥목사야 법복종 하다가 신사참배 보보보 부부부 보배잃고 분한줄 모르는 밥목사야 한국교회는 신사참배하고 마귀당이 되었으니 재건신자들아 목숨을 바쳐 재건제단 지키자-이렇게 외칠 때 그 누가 감격하지 않겠는가. 그러던 그가 1년도 채 못 되어 재건교회를 이탈하니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n6·25사변은 이 민족에게 처참한 상처를 안겨준 전란이다. 이로 인해 이 민족이 입은 인명의 손실이나 물질의 피해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요, 무신론과 유신론의 싸움이다. 따라서 유물론과 유심론의 싸움이다.\n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동시 이북에서는 기독교가 새로운 적을 만나 수난을 당했다. 신사참배로 인한 수난 성도가 다시 공산세계에서 순교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월남하여 신앙의 자유세계에서 주 섬기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n6·25. 이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회개하도록 일깨우기 위한 민족적 시련인 줄 안다. 이로서 신앙의 진위가 나타났다. 교회를 지키고 순교한 자도 있고 환난과 재난으로 참혹하게 된 사람도 많았다.\n당시 최덕지 목사는 서울 충무로 교회에 머물고 있었다. 2층은 교회, 아래층은 박 선생이 주택으로 사용했다. 교회 건너편이 괴뢰군 내무서였다. 매일같이 드리는 예배를 괴뢰군은 못마땅해 했다.\n이렇게 최 목사와 괴뢰군이 다투는 동안에도 교회 안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괴뢰군은 총부리를 치켜들고 찬송 부르는 아가씨 목에 대고, “지금 찬송 부르면 쏜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 아가씨의 찬송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괴뢰군이 쏘지 못한 것이다. 그 아가씨는 지금 서울 대방동교회에 시무하는 김복명 조사의 따님 백금자이며 그 후 결혼하여 해운대교회 이정덕 집사의 부인이 되었다. 한참동안 무거운 시간이 흐른 후 괴뢰군은 최 목사에게, “그럼 미국 비행기 다음 주일 못 오게 하시오. 만일 비행기 한 대라도 오면 그 때는 여러분 모조리 총살입니다”하고 물러갔다.\n“다음 일요일에는 총알 좀 준비해야겠군”했다. 신을 믿지 않는 그들은 매일 오는 비행기가 왜 다음 일요일엔 안 온단 말이냐하고 예수쟁이 죽일 구실이 생겨 기뻐했던 것이다. 드디어 죽느냐 사느냐, 최 목사의 승리냐 북괴 내무서의 승리냐를 판가름하는 결단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성도들 중에도 ‘최 목사님이 그런 약속은 왜 하실까’, ‘옥중에서 지키신 하나님의 종, 아마 지켜 주실 거야’ 반신반의 조바심이 가슴을 울렁이고 있었다. 새벽부터 한시간 한시간 시간이 흘렀다.\n오전 예배 드리고 오후 예배 드리고 저녁 예배 드리기까지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 밤이 다가도록 종시 나타나지 아니했다. 내부서 괴뢰군들도. “하나님은 있는가 봐”했다. 왠걸 이제 비행기는 안날아 오는가 했더니 월요일에는 전보다 배나 많이 날아와 서울을 폭격했다. 이 폭격에 견디지 못하고 괴뢰군은 후퇴했다. 교회 주변에 불을 질렀다. 다시 교회는 위기를 당했다. 최 목사가 또 간절히 기도했더니 교회를 향해 다가오는 불길이 멈추어 다른 방향으로 타들어갔다. 재건교회는 공산주의도 물리치고 승리한 것이다.\n1951년에 ‘최덕지 선생님’은 ‘최덕지 목사님’으로 세움을 받았다.(목사님 칭호에 앞서 보모 때는 보모, 신학생 때는 학생, 전도사, 때로는 최덕지 전도사 등을 사용했다. 다소 혼돈이 있음을 양해하기 바람)\n이 땅에 신앙재건 진리운동이 일어난 후 회개 자숙 기간으로 3년이 지났다. 예수교 재건 중앙위원회를 두어 본격적인 신앙재건의 회개운동을 하여 오던 바 경남 일원의 국한된 운동이 그 후 전남, 경기, 경북, 강원 등지에 재건교회가 세워지게 되자 드디어 1952년 5월 13일 중앙위원회 만 4년, 재건활동 시작 후로 따지면 만 7년 만에 부산시 수정동 예수교 재건부산교회당에서 전국 각지 50여 교회대표 70여명이 참집한 가운데 예수교재건중앙위원회는 발전적 해산을 하게 되고 역사적인 예수교재건교회 남한지방회가 발족하게 되었다.\n이로서 질서 있는 유법적 행동통일을 본 한 단체가 조직된 것이다. 이때 명칭을 남한지방회라 한 것은 이북 재건교회와 앞으로 완전한 총회를 형성하기까지 잠정적 명칭으로 삼았기 때문이다.\n이때 최덕지 목사는 강상은 목사에 의해 안수를 받고 명예 목사에서 장립목사가 되었다. 여기에 대해 그때의 사실을 좀 더 분명하게 밝혀 두고자 한다. 최덕지 선생을 최 목사로 허락한 것은 1951년 4월 3일 예수교재건교회 중앙위원회 제6회 정기총회 때였다.\n그 당시 총회장인 강상은 목사가 “여자에게 목사 주는 것이 아니라, 최덕지 선생에게 준다. 승리의 종이니 앞으로 50년 후 1백년 후에 이런 인물이 나면 몰라도…”하면서 그때 목사의 명칭을 허락한 것이다.\n그러나 중앙위원회가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재건교회 남한지방회가 되고 보니 다시 안수문제를 거론하게 되었다. 이에 강 목사는 최덕지 목사 같은 이가 기독교 역사상 또는 성경인물 중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줄 수 있다고 말할 때 최덕지 목사 자신이 기립하여 이렇게 분명히 말했다.\n“오늘 이 총회 석상에서 나 일개인 최덕지에게 목사 안수한다면 안 받겠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성직을 줄 수 있는 것이 성경적으로 진리냐 아니냐, 줄 수 있느냐 줄수 없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발언하여 그때 여러 사람들의 찬반토론 끝에 결론이 여성들도 성경적으로 줄 수 있다고 내려졌기 때문에 총회와 성경을 순종하여 안수를 받았던 것이다.\n그리하여 우리 헌법을 만들 필요가 있어 그 자리에서 헌법기초 위원으로 강상은, 최덕지, 김영숙, 주상수, 최종규, 박성규, 최일규 제씨가 위촉된 것이다. 총회에서 위촉받은 헌법위원은 그 조직에 있어서 위원장에 강상은 목사, 서기에 최종규 전도사를 선정했다.\n헌법위원 모임을 부산은 최덕지 목사댁에서 마산은 정학진 집사댁에서 가졌다. 주로 범죄하기 전 장로교 헌법(1934년 수정함)을 모법으로 기준하고 신조, 성경요리문답, 예배모범, 권징조례를 그대로 채택하고 다만 정치 부문에만 수정키로 방침을 정하고 무려 5, 6차나 모여 연구수정 하였다.\n주로 수정된 부분은 ‘제직회’를 ‘교직회’로 ‘당회’를 ‘장회’로 고쳤으며, 정치 제5장 치리장로 제3조 장로의 자격 ‘27세 이상’을 ‘30세 이상’으로, 입교 5년 이후 무흠 1년으로 수정되고 ‘남자 중’하는 ‘남자’를 삭제하고 남녀 다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동시에 정치 제6장 집사 제1조 집사의 직은 무흠한 ‘남자교인’으로 되어 있는데 ‘남자’를 삭제, 남녀 모두에게 집사 안수 임직하도록 했다.\n1954년 3월 9일 예수재건교회 남한지방회 제3회 정기총회가 부산교회에서 회집되었다. 특히 11일에는 전기 헌법기초위원들이 장기간 연구한 것을 헌법기초위원회 서기인 최종규 전도사가 헌법토안을 본회에 상정, 보고함에 축조통과 채용키로 가결하였다. 이리하여 전기 정치 남녀성직에 종전에는 남자에 한한 것을 여성직(여집사, 여장로, 여목사)을 허락한 것이다.\n그리고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재건교회 남한지방회 총회 산하 동부지방부(부산지방)회장 최덕지 목사, 서부지방회(마산지방)회장 강상은 목사로 감독 지도하게 되었다. 더욱이 3월 11일 밤은 해방 이후의 자숙도 마치고 6·25사변도 마무리 지어졌고 헌법도 제정되었음을 감사하기 위하여 감격에 넘치는 첫 성찬식이 강상은 목사 집례로 거행되었다.\n1956년 1월 27일은 최덕지 목사가 창설하고 가르친 성경학교 제1회 졸업식날이었다. 영광에 빛난 졸업생은 구태옥(남), 김혜수(여, 최 목사 따님), 박현숙(여, 당시 여전도사), 황보 일생(여, 집사) 등이었다.\n이때 최덕지 교장의 훈사는 감명적이었다. “여러분은 재건성경학교 제1회 졸업생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연구나 배움엔 졸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학교에서 배운 방법으로 한 평생 학도로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각오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은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배울 뿐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을 생명삼아 바른 생활이 필요합니다. 즉 성경말씀대로 사는 삶이 바로 배운 목적입니다.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 빛나느 학교가 되느냐, 또 발전하고 번영하는 학교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바로 여러분의 활동과 생활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성삼위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시기를 빕니다.”\n한편 1956년 2월 23일은 재건교회에서 최초로 장로 장립을 가진 날로서 의의가 깊은 날이다. 이날 예수교 재건창원교회 염재로 조사가 장로 장립을 받았다. 이를 위시하여 부산교회에서는 박열순, 박부준 두 집사의 장로 장립이 있었다.\n초순부터 새벽예배 출석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56년 3월 22일에 당시 예수교 재건 부산교회 최덕지 목사 밑에 시무하던 최종규 목사를 자택으로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교훈과 해명과 유언을 남겼다.\n첫째 자신의 병에 대한 말이 있었다. 배를 다쳤던 일을 말하고는 병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 치료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니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지금까지 기도로서 다 치료되었다고 말하였다.\n둘째는 금식 등에 대한 해명이다. 옥중에서의 금식은 주로 진리투쟁과 신앙파수를 위한 것이나 해방 후 계속 금식에 대한 그 하나의 동기는 자기 시동생 되는 김정실씨(전 국회위원 당시 단국대학장)가 자기를 만나러 왔다가 성일을 범하고 상경한 것이 마음 아파 그 시동생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교회와 한민족의 죄악을 사함받기 위해서라고 했다.\n몸이 너무나 쇠잔하였으나 금식은 항상 계속되어(다음 그의 신앙사상과 생활에서 금식을 다시 밝히겠음) 해금을 권했더니, “이제 얼마 안 가 영원히 해금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의 영원한 나라로의 부르심을 의미한 것이다.\n셋째는 나에게 준 유언이었다. 굳게 서기를 원했다. 모든 사람이 다 물러가도 부산교회를 떠나지 말고 재건제단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동안 나에게 여러 가지 난관과 시련 속에 오늘까지 재건교회를 지키게 된 것은 이 유언에 힘입고 영향받은 바 컷음을 이 기회에 밝혀둔다.\n다섯째는 재건진리를 서울에 널리 외치고 국회와 대통령에게 증거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러한 유언을 남길 때 옆에는 부산교회 조복희 전도사와 마산교회 김야모 집사(출옥성도. 현 장로)가 지켜 보았다.\n1956년 3월 26일에는 재건교회 제7회 남한지방회 정기총회가 부산교회에서 회집되고 아울러 재건교회 창설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식장에도 최 목사는 출석하지 못했다. 그가 늘 소원하던 부산전역에 재건전도지 5만매가 살포되었고 전도대원에 의한 전도강연이 실시되었다. 이 보고를 듣고 기뻐하던 그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4월이 되자 대지엔 봄의 생기가 넘치고 만물이 소생하여 푸름이 짙어갔으나 최 목사의 병세는 더하여 점점 쇠잔해 갔다.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위문하는 성도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고 따라서 최 목사의 병이 낫기를 간구하기 위해 금식기도를 하는 성도들의 수효가 날로 늘어갔다.\n5월 들어 최 목사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때로는 아픔을 참으려는 표정을 그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떤 때에는 담요 위에 누운 최 목사를 교우들이 받들어 들고 빈방과 마루를 돌기도 하면서 그 아픔을 잊게 하려고도 했다. 일제 때 고문당하고 무수히 매 맞은 몸의 살과 뼈마디에 그 상흔이 나타난 것이다.\n슬프다. 1956년 5월 13일, 최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날은 주일이었다. 최 목사는 새 옷을 갈아입었다. 주일에는 예배를 위해 항상 토요일에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최 목사댁으로 모여 들었다. 밤 마지막 예배를 다 마친 후 최 목사는 성도들의 찬송소리를 들으며 한국 기독교 진리파수의 오랜 투쟁 속에 꿋꿋이 외길을 걸어온 생애를 마치고 영화롭게 웃는 모습으로 떠났다. 가신 주의 사자는 기쁜 얼굴이었지만 간호하며 기도하고 지켜보던 성도들은 뜨거운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다.\n이 부음이 전국교회로 알려지고 임원회와 재건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예수교 재건교회 남한지방회장으로 결정하고 장례는 5일장으로, 그 일시는 5월 17일에 거행키로 하였다.\n부산교회당에 최 목사의 영구가 운구되었고 장례절차는 사회에 강상은 목사(지방회장. 현 총회장)가 맡고 설교는 김영숙 목사(지방회 부회장)가 하였다. 본문 디모데후서 4장 7-8절과 제목 ‘하나님의 종 최 목사’라는 주제로 설교하여 많은 감명을 주었으며 최종숙 조사의 애도사에 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사회 유지들이나 전국교회 교우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별식은 엄수되었다. 화훼는 3일 동안이나 성도들이 꽃을 손수 만들어 준비된 것으로 3층 흰 꽃송이에 붉은 십자가를 붙인 것이다. 장례행렬의 상여는 남녀 청년들이 메고 교우들이 뒤따랐다. 부산 원예고교 악대가 동원되어(당시 조광제 장로가 이 학교에 근무함) 이 악대의 주악 속에 영구는 부산 시내를 일주하고 그 유해가 초량동 뒷산에 안장되었다. 이 장례 행렬을 보고 혹자는 그 때 떠난 신익희 선생의 장례인 줄로 안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최 목사의 위대한 생이 56세를 일기로 하여 그 육신의 생활을 마친 것이다.\n하나님의 사람이 가신 이날이여. 오늘 최덕지 목사님의 고별식에 임하여 한국교회 재건을 위하여 고락을 함께 하던 신앙동지 여러분과 진리의 후계인 불초는 목사님의 가심을 애통하는 전국 재건성도와 함께 삼가 애도사를 드리옵니다.\n우리들은 죽음에 대하여 일찍 생리학에서 배운 바 있사옵고 이를 또한 시인의 애가 속에 들은 바 있사옵고 이를 또한 전기자의 기록에서 본 바 있사오니 어찌 타 죽음이 이날처럼 슬프오니까.\n아 나는 죽음과 사후에 대하여 강단에서 소리높이 외쳤고 인생의 죽음을 듣게 될 때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영웅열사의 죽음들을 말하여 저들을 위로하고 만일에 나의 설교와 위로에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는 자를 볼 때에는 마음 속 그들의 신앙이 부족함을 탄한 바 아니었던가. 부활의 소망을 말하고 내세의 행복을 찬미하지 아니 하였던가.\n그리하여 죽음은 인생의 공도라 우리가 슬퍼할 것 아니라고.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없는바 아니고 내세의 행복을 모르는 바 아니옵니다만 우리의 최대의 애모이신 목사님께 이 죽음이 임하시니 그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비로소 맛볼 수 있나이다. 하물며 우리 전 교도들이 연야로 계속하던 열혈의 금식기도에도 또한 칠팔십 노인들이 생명을 바쳐놓고 대신 죽어 목사님을 구해보려는 희생의 성심에도 아 어찌 무참히도, 무자비하게도 우리의 생명이신 주의 사자는 가시었나이까.\n오호애재, 사랑이 생명일진데 우리의 사랑이신 당신의 가심은 우리의 생명을 잃음입니다. 아 이제는 천공에 반짝이는 뭇 별들도 그 빛을 잃어 흑암이 되고, 춘절이라 자랑하던 만화방초도 그 향기를 잃어 아름다움이 없고 공중의 종달새의 노랫소리도 마음만을 아프게 할 뿐입니다.\n국가는 공의가 없어 아직도 다난하고 한국 교회는 여전히 부패하여 죄악이 관영한 때 우리의 진리재건에도 반란이 그 훼방을 끝마치기 전, 아 하나님의 충복이요 나라의 충민이신 당신의 장서는 진실로 통석함과 애도됨을 형언할 수 없습니다.\n소녀 15세 다감한 때 자모를 잃어 엄친 이모의 슬하에서 자라나시다 엄친마저 병드시니 단지의 효성을 다하였으나, 천도도 무심한 듯 19세 때는 아버지마저 여의었으니 가정적으로 이미 한이 많았으며 또한 결혼한 지 4년 만에 부군의 그 홍지를 이루시기 전 또한 사별의 쓰라림을 겪었나이다. 독수공방에서 어버이 얼굴도 알지 못하는 딸을 안고 무심한 달빛을 바라보고 한숨지음이 그 몇 번이시며 아버지를 찾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고 눈물지음은 그 몇 번이었겠습니까.\n또한 뜻에 있어 동지요 정에 있어 벗이요 육친으로는 여서인 고 김진택 선생을 앞서 보낸 것은 또한 자녀의 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위에 아버지 없는 손남손녀를 아버지 대신 양육할 때 뼈 속에 사무치는 한이 오죽하였겠나이까. 당신은 부모의, 한 남편의, 한 자식의 한 많은 세상에 그 생애 실로 박행과 고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n오호감사여. 그러나 당신의 불행은 이 민족과 한국교회에 행복을 주기 위함이였사오니 부모에게 효를 다함은 하나님께 충성을 위한 준비였사옵고, 남편에게 열을 다함은 진리를 위한 싸움의 준비였사옵고, 자녀에게 인자를 다함은 오늘 양떼를 사랑하는 준비가 되게 함이였사오니 오직 하나님 그 사자를 이 땅에 보내심에 일하기 위해, 투쟁하기 위해 보내시고 세상에는 모든 것 다 빼앗으므로 그 심신을 단련시켜 전심전력 오로지 당신께만 충성하는 기관이 되기 위한 준비이었습니다.\n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가가호호 방문하여 독립정신 고취하며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원조함은 애국지사로서 조국에 바친 충성이 위대함을 자랑할 바이요. 1938년 한국기독교회가 신사참배 결의로서 공적으로 범죄타락함은 생명보다 귀중한 진리를 배반하고 신앙정조가 유린된 것입니다.\n아, 그러나 오로지 당신만은 결사적 투쟁으로 일제의 총검 앞에 진리를 파수하고 한국기독교 생명을 보전하였으니 과연 사자는 여호와의 충복이요, 나라에는 지사요, 신앙에는 영웅이요, 생명에는 은인이었나니 당신이 이 땅에 있음을 우리는 삼천만 온 겨레와 한가지로 세계에 자랑할 바이었습니다.\n오호통재. 하루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잡수지 못하시며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던 십일조의 정성, 성일을 범치 않기 위하여 변기를 안으시며 울던 모습, 하루 일곱 번 끊임없이 부르던 찬송에 고무 마스크를 차시던 심회, 무수한 철퇴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던 예배, 우상숭배 일본제국이 망한다 외치던 애국적 용기, 조국해방을 위해 7개성상 기도하던 불굴의 신앙, 이 모든 것 회상할 때마다 성경의 위인이나 사상인물 그 누가 당신을 비견할 자 있으며 추종할 이 있겠나이까. 천우신조! 8월 18일 사형당할 당신의 몸이 조국해방으로 8월 17일 밤 기적적 회생으로 평양형무소를 출감하였나이다.\n아, 조국은 양단되고 전 국민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출옥성도 신앙동지마저 노선을 달리하니 비탄과 우수는 여전히 가실 날이 없어 눈물로 예레미야의 생애를 다시 계속하였습니다. 오호통재. 우리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있으니 당신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고 성결하여 죄 밖에 무서움 없고 모든 사람 사랑하는 신앙의 사표로서 충성 밖에 모르시는 사자에게 어찌 하루도 마음 평안한 날이 없고, 한 일도 쉬운 것이 없고, 이 땅 위에 눈을 뜨실 때로부터 눈을 감으실 때까지 불행간난의 연속이며 마지막도 장구한 고통 속에서 가셨나이다.\n아, 나라에는 의무를 다하고도 파괴분자라는 지목을 받고, 교회에는 진리를 파수하고도 이단자란 낙인이 찍히고, 일가친척에는 효열을 다했건만 고집쟁이란 누명을 받고, 양떼를 사랑하여 생명을 주였건만 내가 세운 교회와 내가 기른 양들에게 배신을 받았으니, 오호통재. 불의와 허위의 세상에서 의인이 당하신 고난이 얼마나 심하였나이까.\n“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것은 환단은 안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는 줄 앎이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물 붓듯 하심이라”하였사오니 땅 위에 당신이 당하신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게 하심인 줄 알았습니다.\n주께서도 독생자로서 땅 위에 강림하사 당하심은 역시 고난이었고, 마지막 전 인류를 대속하신 죽음인 십자가를 지심에도 그 고통은 절정에 달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애통을 발하였사오니 당신이 병듦은 한국교회가 병듦을 상징함이요, 당신이 마지막 그 숨을 모우기까지 신음하심은 한국교회 조짐을 담당하신 희생의 제물 됨을 알았나이다.\n진실로 생애는 주님 생애 그대로 따랐나이다. 오호 슬프다, 이날이여. 당신이 가심에 우리는 창자를 끊는 아픔과 가슴을 치는 후회의 통곡을 또한 금할 수 없나이다. 재건은 특사의 선물이요, 은총의 기업이건만 이 은혜 감당치 못하는 에서와 같이 망녕됨이 있었고, 주고 싶은 당신의 마음에 받을 자격 못 되어 주지 못하던 그 심정은 누가 알 것이며 당신의 절대신앙에 우리는 미치지 못해 오해함이 또한 얼마던고. 우리가 연약하여 범죄할 때 당신이 금식하였으니 우리의 자신이 당신의 살을 찢고 피를 뽑았음은 또한 얼마입니까.\n당신이 우리의 죄를 깨우쳐 생명과 진리로 인도할 때 원망과 불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함 또한 헤아릴 수 없나이다. 반란군에 상처입고 병석에서도 각 개인과 교회와 국가를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하시며 우리에게 기도를 청하자 무정하게도 당신의 곁을 떠난 불실한 사람들입니다.\n오호통재. 우상을 파괴하고 매를 맞음에 당신 홀로 이를 당하셨고 모든 잘못은 당신 어깨에만 책임을 돌리던 비겁한 저들입니다. 우리는 진리싸움에 당신을 뫼시다 곤욕을 당하게 하였고 어려운 일과 무거운 짐을 당신께만 맡기고 우리는 방관하던 자들입니다. 당신이 가심에 잘못이 기억나니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금할 수 없나이다. 보답하고자 하나 당신 없고 용서를 청하오나 말이 없습니다.\n당신의 풍부한 덕망, 철저한 사랑. 절대의 신앙, 발군의 지모. 그 어느 것이나 광세의 사표로서 우리의 지도자임에 틀림없는 주의 사자여. 어찌 차마 재건교회를 두고서 가셨나이까. 한국교회를 잊고 가셨나이까.\n백만실양을 누구에게 부탁하고 어이하려고 가셨나이까. 어지러운 조국과 이 겨레를 어이 잊고 가셨나이까. 마지막 진액이 다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어질 때까지 이 강산과 재건의 발전을 위해 간구하시던 그 불변의 기도를 누구에게 부탁하고 가셨나이까.\n재건이 어려워도 당신 계셔 안심했고, 마귀 방해 많아도 당신 있어 평안했소. 앞으로 오는 환난 누가 막아주리까. 당신이 월남할 때 소련군 앞에서도 예배할 때 하나님이 지켜 주셨고 6·25동란 때 서울이 잿더미가 되어도 당신이 계신 곳에는 피난처가 되었사오며, 남한이 재난의 불바다를 이루었으나 중공 괴뢰가 부산만은 침범치 못함은 하나님의 사람 의인 당신이 계신 연고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자없음을 울고 울어도 시원치를 않습니다.\n오호애재 목사님의 일생은 기구불행한 그대로, 싸우기 위해 오셔서 싸우기 위해 살다가 이제는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키었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면류관을 예비하여 두셨으니 주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사 그 날에 내게 주시고”라고 말씀을 하신대로 면류관 받으실 것을 기뻐하나이다.\n목사님의 불변의 신앙과 열심의 기도로써 이미 우상철퇴 명령은 내려졌고 공사창도 완전히 폐지되었사옵고 중첩문제도 완전 해결은 못되었으나 대한민국 형법에 쌍벌주의가 채택되었사오니 국가와 재건을 위해 일생을 통해 분투로써 뿌리고 간 씨는 반드시 결실이 있어 조국이 전리 위에 확립되고 세계가 우리 재건을 취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n지난 번 3월 22일 오후 5시 30분 마지막 유훈으로 주시던 대통령각하께와 국회에 진리 증거할 것과 신학과를 필수하여 목사 장립 받아 당신의 뒤를 후계할 것과 아울러 성경학교, 신학교 잘 경영하여 진리 후계의 인재양성을 할 것을 깊이 명심하오며 진리를 분석하여 재건제단 파수할 각오를 이제 굳게 하나이다.\n모세를 느보산에서 부르심에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케 하시던 만군의 여호와 우리와 함께 하며 엘리야를 승천케 하시매 엘리사에게 성신을 갑절이나 주시던 하나님, 오늘 저희들에고 성신 충만하게 주셔서 당신의 뒤를 따름에 부족이 없게 하소서. 뿌리고 가신 씨 가꾸고 거두어 추수의 기쁨을 주 앞에서 만날 때 함께 나누기를 영원하는 바입니다. 오호통재. 지난 5월 13일 성일을 맞이하여 저녁예배까지 마지막 마치던 때 해금을 권하자 “이제는 영원히 풀 것이다”하시던 마지막 말씀대로 지금은 저 황금보석 꾸민 집에 그 아픔도 그 고통도 그 금식의 괴로움도 죄악 보고 우심도 없는 이제는 주와 같이 그립던 모든 가족과 성도와 친구를 다 만나서 할렐루야 찬송하실 것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영원의 사표 당신을 잃은 저희는 슬픕니다. 말은 한이 있거니와 정은 한이 없어 소리를 삼켜 울며 삼가 이 애도사를 올립니다.\n신약 성경에서 예배로 보는 종교관이 히브리서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그로부터 교통하는 가운데서 그 종교심의 만족을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지상의 종교임을 증명하려 할 때 예배 문제를 다룬 것이다. 종교의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길을 열어주며 그로부터 교통할 방침을 가르쳐 주는 데 있다.\n구약(유대교)에 있어 예배(제사)가 모든 짐승을 잡아 그 피로서 죄 많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예배 방식에 대해 신약(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번 드린 제물, 대속의 피로 인해 우리가 영구적 효력을 가지고 직접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된 것이다. 이는 모든 종교의 예배 방식과 대조할 때 우리 기독교가 온전한 예배를 드린다는 증명이 되었고 또한 모든 종교의 목적이 우리 기독교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대 최고의 종교가 된 것이다.\n최 목사에게 있어서는 그의 생명은 이 예배에 있었던 것이다. 고로 예배를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축복은 전부가 이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n악한 마귀는 이 예배를 빼앗고 우리의 신앙생명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배는 절대적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 예배는 빼앗길 수가 없었다. 고로 최 목사님은 일제 때 이 예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투쟁한 결과 한 번도 예배를 꺾이지 않고 완전 승리한 것이다.\n6·25사변 당시 서울서 공산 괴뢰군에게도 예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 승리한 것이다. 그가 창설 인도한 재건교회는 우상에게 빼앗긴 이 예배를 다시 찾아 하나님께 바치자는 것이다.\n에스라, 느헤미야 등이 파사의 고레스왕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바벨론 70년 포로에서 석방됨에 조국재건에 앞서 성전을 재건하고 황폐한 제단을 다시 쌓고 잃어버린 여호와의 경배를 찾음과 같이 우리도 조국 해방과 아울러 조국 재건에 먼저 오천만 민족이 다 이 예배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있어 실제 예배생활은 이러하였다.\n1. 새벽예배=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잠깐 감사기도가 있은 후 바로 교회로 간다. 교회 새벽예배를 인도한다.(대개 여름은 4시, 겨울은 4시 반 시작) 이 예배 때 교인 각 가정을 호명기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한다.\n이 예배 때 죄를 참회하는 통곡의 눈물이 마루를 적시고 국가 민족의 사죄와 공의를 부르짖는 소리에 먼동이 튼다. 많은 부녀자들이 철야기도했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일터에 갔다. 한국교회가 이 새벽예배로 생명이 유지되고 한국의 아침은 밝아졌다.\n2. 오전예배=평일에는 이 예배시간에 은혜 받으려고 최 목사집에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11시가 되면 사도신경을 봉송하고 찬송을 하고 성경요절을 주며 계속 설교하고 기도하였다. 이 기도는 전국 교회와 국가 민족을 위해 하였다.\n참석한 성도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었다. 지금 재건교회 성도들 중에는 주일은 성일이니 교회 나가 엄수하나, 평일에는 각자 가정에서 바쁘다 핑계하고 일만 한다. 핑계하고 가정예배를 외면하지 아니 하는가 반성해야 한다.\n3. 오후예배=최 목사는 12시 오전 예배 마치고 식사(이 식사시간에는 언제나 3, 4명 많으면 5, 6명은 동참하게 된다)를 한 시간 정도로 마치고 모든 교회 문제를 상담 처리하고 개인의 신앙상담 등 맡아 의논하며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곧 오후 3시 예배를 시작한다.\n혹 신앙 동지가 오면 3시 예배를 인도케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친히 자신이 인도한다. 언제나 그의 예배시간은 늘 부흥회와 다름없이 많은 성도들이 모여 들었다. 아무리 바쁜 손님이라도 이 예배 시간에는 예배 안 드리고는 보내지 않았다. 그만큼 예배를 존중시하였다.\n이 정신 그대로 재건교회는 주일에 오후 예배 시간이 있다. 현대 교회가 도시인의 시간편리를 보아 6시, 혹 9시 1부 예배, 11시 2부 예배, 오후 1시에 3부 예배하는 그런 따위의 형식이 아니라 일일 4차 예배드림을 말함이다.\n처음 재건교회 출석하는 자 중에는 오전예배 드리고 계속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예배드립니다” 할 때 의구심을 가지거나 지금 같이 바쁜 시대 예배 한 번이면 족하지 계속 무슨 예배냐고 한다.\n또는 재건교회를 염려하는 층에서도 재건발전에 저해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교회가 오전 예배 드린 후 대부분 나가버린다.(안 그런 교회도 있다) 혹 젊은층이 남아 있다면 부모님의 체면, 목사님의 안면을 위함이 많다.\n어떤 이는 오전예배 폐회 무렵에 와 그대로 가기 민망해 오후예배 참석하고 가는 자도 있다.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시대 과연 오후 예배가 시간낭비인가. 우리가 외면해도 되고 소홀해도 되는가. 또 계명이 아니니 맘대로 해도 되는가.\n최 목사는 성경대로 생활하였고 또 우리를 그렇게 가르쳤다. 본래 유대인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즉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다. 시편 55편 17절에는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하였다.\n다니엘 6장 10절에도 하루 세 번 기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신약 사도행전 3장 1절에도 “제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라고 하였다. 이 9시는 오후 3시를 말한다.\n우리 재건교회 부산노회 측은 이 성경 원리대로 실천한다. 주일에도 교회에서 하루 네 번 예배드림으로 오전 예배, 오후 예배가 계속되거니와 평일에도 가정이나 직장에서까지 심지어 여행 중 배 안에서 열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까지 그 어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가민족과 재건교회를 위해 예배드리는 그 경건하고 열심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n4. 밤 예배=최 목사에 있어서 밤 예배는 대부분 가족들의 예배요, 한 날을 지켜 주신 감사의 예배다. 손자손녀를 위해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그 잠자리 옆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바로 그의 신앙생활의 기본 자세인 것이다.\n일제박해 시 마산에 거주하는 호주 미순회 여선교사 태매시 선생 댁에서 시간예배를 드릴 때다. 김영숙, 염애나 조사(현 여목사) 등이 마산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6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나와 있었고 최덕지 목사도 도경에서 12일 금식기도 후 출감되어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n사유인 즉 당시 의신학교 기숙사 사람들이 이 옥중에 있는 종들을 주기 위해 찰떡을 굽는다고 예배시간을 안 지켜 최 목사가 그 떡 철판을 뒤집어 엎었는데 떡은 재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n“이 떡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종들이 먹을 것인데 예배시간 안 지키고 떡판에 떡부터 굽는다니 될 말이냐. 예배시간 어겨가며 굽는 떡 먹고는 싸움에 실패한다”하고 최덕지 선생이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김영숙과 최덕지는 울며 자복기도 하느라고 늦게 오신 것이다.\n또한 최 목사는 어떤 가정에 가셔서 예배 드릴 때 대접하기 위하여 예배시간 불참하거나 혹은 예배드리다 다 안 마치고 음식 준비한 것은 그 대접 받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함은 그것이 바로 불경이었다. 성도를 죄 짓게 하고 그 음식 먹을 수 없다고 교훈해 주었다.\n고 최덕지 목사가 남긴 위대한 예배의 유산은 고이 간직되어야 한다. 재건교회가 이 한국교회에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위대한 신학이 아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두드러진 사업이 아니다.\n최 목사는 우상 타파를 그의 최대 사명을 생각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지상명령으로 자임하였다. 그는 이 땅의 생을 받은 것이 우상과 싸우기 위함이오, 우상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신 분이다. 이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상 섬기면 망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십계명 그 중에서도 1, 2계명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그대로 살았고 그대로 싸운 것이다. 만일 이 사상이 철저하지 않았다면 일제 신사참배로 범죄할 때 그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볼 때 제1계명이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을 금했고 경배의 대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하였다. 제2계명은 “참 하나님을 그릇된 방법으로 섬기지 말라”고 명한 경배의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격성, 신령성, 불멸성, 무형성을 강조하였다.\n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천지창조의 무형의 실재로서 무소부재하고 무한하신 영이신데 우리가 그 형상은 오직 그리스도로만 알 수 있으며 그를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긴 우상이나 아무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우상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n“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레 26장 1절)\n“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역대하 33장 3-7절)\n“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민수기 33장 52-53절)\n“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곁에 아무 나무로든지 아세라상을 세우지 말며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신명기 16장 21-22절)\n“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제단과 산당을 없이 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역대하 14장 2-5절)\n“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들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출애굽기 32장 4절)\n“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쫓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n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항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민수기 21장 4-9절)\n“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에스겔 8장 12절)\n“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가 하노라. 또 두렵건데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여 섬길가 하노라.”(신명기 4장 15-19절)여기 분명히 금하고 있는 것은 우상과 형상이다. 이를 어떻게 금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n2.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이는 그 뜻이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땅에’ 대는 행동이다. 옛날 느부갓네살은 금 우상을 세워 놓고 전 국민으로 하여금 엎드려 절하게 했다.(단 3장 7절) 보이지 않는 신령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절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다.\n3. 섬기지 말라. 이는 ‘노동과 봉사’ 등의 종교적 행동을 말한다. ‘섬긴다’는 히브리말의 뜻은 외모로 경의를 표하는 것, 향을 피우는 것, 물건을 봉헌하는 것, 순복하는 것 등 종교적 경배, 제사, 또는 입을 맞추는 행위를 말한다.\n“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스가랴 1장 14절) 이는 자기 백성을 눈동자 같이, 신부 같이 사랑하는 까닭이다.\n둘째 우상 섬기면 망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하여 자기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장 5절) 우상 숭배자에게는 반드시 벌이 내린다. 고대, 애굽, 바벨론, 앗수르, 메데파사, 그리스, 로마 등 우상섬긴 나라들이 다 망하였다.\n“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장 6절) 우상 숭배자에게는 벌을 내려도 하나님 섬기는 자는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노를 능가한다. 벌은 삼사대까지이나 은혜느니 수천대까지이다.\n최 목사는 이 말씀의 원칙에서 우리나라를 돌아볼 때 너무나 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월성신을 섬기는 일, 산제불공 하는 일, 용왕 먹이는 일, 조상에게 제사하는 일, 사주관상 보는 일, 무당 데려다 굿하는 일, 점치는 일, 토정비결 보는 일, 택일하는 일 등 우리 일상생활 속에 미신과 우상이 얼마나 많은가.\n이 나라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망국민의 우상숭배가 너무 심하다. 그는 이 국가가 번영하고 이 민족이 복을 받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실제 우상 타파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n그 구체적 생활은 길을 가다 어느 집 문전에 ‘건구 친 것’을 보면 가는 길을 멈추고 그 집 문전에 가 기도하고 그 집 주인을 불러 전도하고 반드시 건구를 손수 뜯어 그것을 꼭 변소에 던졌다.(지금은 새 개량주택이 되어 옛날처럼 큰 변소가 없다)\n또는 길가에 사주책을 내어 놓고 보는 자가 있으면 그 곳에가 “왜 이런 것을 봅니까” 말을 걸어 “인간의 생사존망 길흉화복은 만유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이런 것 보면 나라도 망하고 당신도 복 받지 못합니다”하고서 모조리 빼앗아 변소에다 던져 버린다. 이런 파괴로 인해 매를 맞음도 한이 없고 거리의 많은 군중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능욕도 말할 수 없이 많았다.\n또는 동네에서 마당 경 읽는 소리, 징 소리 나면 교인을 대동하고 반드시 습격하여 설명하고 북을 빼앗고 징을 빼앗아 파괴하고 우상 차린 상을 뒤엎고 못하게 하였다. 우상 섬기는 자에게 붙들려 옷을 찢기우고 머리채를 잡히며 매를 맞으며 온갖 수치를 감수해 가면서도 우상 타파를 행하심은 조국을 위하는 열성과 복 받게 하려는 일념으로 이 우상 섬기다가 망함을 일깨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n최 목사에게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다. “건구하나 몸소 타파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까”고. 그 때 한 말이 “나도 육을 가진 인간인데 불편하고 수치 안 당하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적은 것(건구 하나) 안 하면 더 큰 일이 내게 오고 또 안 하면 양심에 가책이 되므로 이것인 나의 받은 사명입니다”라고. 그런고로 최 목사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우상 숭배자들과 싸움이 있음을 본다. 그 싸움의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적은 것은 현장에서 해결되기도 하거니와 사주책을 찢거나 혹은 무당 경 읽는 것을 파괴한 것은 기물파괴라고 그 값을 변상하라고 집까지 찾아와 소동을 벌이는 일들도 한 두 번이 아니다.\n그러나 최 목사는 사랑과 인내로 그들을 설득시키거나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때 따라 징계하셔서 해결해 주었다. 최 목사가 악한 자로 인해 곤욕을 당할 때 하나님이 징계하여 도와주신 일화 한두 가지를 여기 기록한다.\n1949년 5월경이다. 마산교회가 교방동에 있을 때다. 마산교회 가는 길목에 아기를 난 한 가정이 건구를 쳐 두었다. 마산교회에 잠시 다니러 왔던 최덕지 목사는 이것을 보고 뜯어 교회 변소에 던졌다.\n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교회 주변 동민이 일어났다. 아기 할머니 되는 이가 최 목사의 머리를 마구 뜯었다. 그리고 교회 앞에 있던 동민 한 사람이 변소에 던져진 건구를 거두어 그것을 교회 제단 앞 전기줄에 갖다 걸고서 최 목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렸다. 참으로 마산교회나 최 목사가 당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아, 누가 알았겠는가. 머리를 뜯었던 아기 할머니는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건구를 교회에 가져다 걸었던 남자도 수일 후에 죽었다.\n부산시 초량동에서 구역 예배 가다가 경 읽는 것을 보고 말렸다. 그 집 할머니가 구역 예배 드릴 집까지 따라와 목사님 치마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죽어도 놓아주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다.\n최덕지 목사의 애국심은 실로 강한 것이었다. 선지자적 애국심이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민족의 구원’이 애국심의 중심 사상이었다. 최 목사의 국가관은 시편 127편 1절에 나타난 대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한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축복하여야 그 나라가 형통한다고 증거했다.\n“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장 34절)함과 같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정치가의 수완, 외교가의 활동, 군대의 강함에 있는 것보다 그 국민의 신앙과 도덕적 능력과 정신에 있다고 했다.그 국민 도덕이 고상하고 신앙과 진리를 사랑하며 성별된 백성 공의가 실천되는 진실한 나라가 될 때 그 나라가 번영하고 부강하고 행복하리라고 믿었다. 그의 애국심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n“예수께서 제자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태 10장 5-6절)\n“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 23장 37절)\n이는 그 나라를 구원하려는 애국심의 간절한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모세의 기도를 보면,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쭈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우상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장 31-32절)\n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아론으로 더불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범죄한 자기 동족을 향한 애국심에서 자기 자신 하나님께 버림당할지라도 그들의 사죄를 위한 애절한 기도이다. 그 누가 모세의 이 기도에 접할 때 그의 그 위대한 애국심을 의심할 수 있으리오.\n“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로마 9장 1-3절)\n이는 바울이 유대인을 향한 애국심을 보인 것이다. 유대인은 선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들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태도는 노여움에서가 아니라 슬픔에서 시작한다. 분노와 저주와 추방이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애절한 슬픔이다.\n그는 자기 동족을 그리스도만 믿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던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죄는 미워해도 죄인을 사랑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모세의 기도와 마찬가지임을 보게 된다. 바울은 그의 생애에 있어 아무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였다.\n그러나 만일 그것이 자기 동족을 구원하는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감수하려는 심정이다. 여기 바울은 죄인을 구원코자 하면 죄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n최 목사의 애국심은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서, 모세에게서, 바울에게서 배운 그대로 ‘이 백성의 죄를 회개케 하여 성별된 백성, 심령과 생활이 재건된 정의의 나라를 이룩’하고자 함이 그의 애국정신이다.\n이 거짓 선지자들은 당시 애국자들이다. 나라의 이익을 주장하고 국위의 선양을 부르짖고 국가의 부강을 도모하려 함을 겉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권력자에 아부하고 정치가와 결탁하고 세력을 잡고 백성의 칭송을 받고자 한다. 이런 자는 종교와 신앙도 국가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고로 그들은 정의나 공도에 있어 여호와 하나님보다 일시적 이익이 앞섰다.\n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는 용기 있는 결단은 거짓 선지자는 못하는 것이다. 백성의 반대가 무서웠거나 나라를 사랑하는 인정이 그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가 이 인정을 초월해 대담하게 그 죄와 허물을 책하고 드러낼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참선지자 대 거짓선지자의 예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n열왕기상 22장에는 참선지자 미가야와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를 볼 수 있고 에레미야 28장에는 참선지자 에레미야 대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나타나고 아모스 7장에는 아모스 대 아마샤를 읽을 수 있다. 그 대조되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n참선지자 미가야가 원하는 바는 다른 나라를 공략함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개혁에 있었다. 라못의 왕을 정복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의 회개를 외쳤다. 거짓 선지자는 나라의 팽창을 원했지만 참선지자는 백성의 개심을 원했다.\n거짓 선지자는 국위를 밖으로 떨치기를 원했으나 참선지자는 안으로 거룩되기를 바랐다. 거짓과 참은 여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국위냐, 진실이냐, 부냐, 깨끗함이냐는 그 원함에 따라 진위가 나타난다.\n같은 일을 아모스 대 아마샤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과를 경계하여 너희가 회개치 않으면 그 벌로서 ‘이삭의 잔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다.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아모스 7장 9절)\n여기에 대해 아마샤는 여로보암 왕에게 불경된 말로 고하기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아모스 7장 10절)라고 했다. 아모스를 배반자요, 국적이라고 모함했다.\n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거짓 애국자)의 눈에 비친 아모스는 백성을 문란하게 하고 왕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선지자(참애국자) 아모스의 눈으로 볼 때 아마샤야 말로 역신국적이요, 하나님의 뜻과 그 의를 따르지 아니한 자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을 두려워했다. 그 당시 거짓 선지자(거짓 애국자)는 무력을 상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나라를 유지하고자 한 자들이다.\n고 최덕지 목사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본처를 버린 죄악을 책망했고 성일을 범하게 한 것, 국기배례 강요 등 모든 죄악을 직언으로 책망하였다. 그의 우상 파괴나 기도나 전도나 이 모든 것이 민족의 죄악을 회개시키고 구원코자 한 애국심의 발로였다.\n또 강한 애국심과 약한 애국심이 있다. 군대나 병기만을 의지하는 애국심은 약한 애국심이요, 만군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과 용기는 강한 애국심이다. 누가 최 목사의 애국심을 따를 수 있으리오.\n그가 순국령에 묵도하지 않은 것으로, 국기배례하지 아니했다고 비국민이요, 사이비 종교라고 하는가. 이런 것으로 애국심을 판가름 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얕은 애국심이요, 우주의 주재 복의 근원 힘의 원천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죄에서 멀리하여 공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신앙의 국민, 거룩한 국민이 된다면 이 국가는 만세반석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영원토록 번영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n최 목사는 이렇게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가르쳤다. 재건교회 성도들은 이 애국심을 이어받아 이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되고 보존되고 번영되기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n최 목사는 외국의 선교비나 구제품을 일체 거절하였는데 이는 그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하겠다. 한국교회에 있어서 해방된 후 외국 달러의 도움 없이 운영한 교회가 있는가. 세워진 신학교가 있는가. 모든 학교기관이나 병원이 외국의 원조 없이 세워지거나 운영되어 졌는가.\n그리고 자선사업, 고아원이나 양로원, 모자원, 이 모든 것이 외국이 원조하는 금품에 의해서 운영되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선교사의 신앙과 인격을 존경하기 보다는 물질에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가. 물질에 의한 불미한 사건들이 그 얼마나 많이 전해지고 있는가.\n또 한편으로 신앙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나라의 재건은 외국의 군사나 경제적 원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적 독립은 경제적 독립이 선행하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경제의 자립에는 민족의 자주정신이 요구되며 따라서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가능한 것이다.\n그 동안 많은 선교 단체에서 원조코자 했으나 거절했으며 이 정신에서 자라온 재건교회는 전국 어느 교회에서도 6·25동란 후 그 많은 구제품도 다 거절하고 신앙의 독립심과 우리의 자주 정신을 나타내었다.\n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행 3장 6절)한 대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뛰어서서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여 하나님을 찬미한 것처럼, 이 민족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 것을 모르는 앉은뱅이처럼 구걸하는 가련한 내 동포가 외국의 구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재건되어 자주·자립·자행하는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이다.\n진리의 토대 위에 서서 이 강산을 믿음으로 개발하고 한 손에 진리 싣고 한 손에 구제품 실어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빚을 갚고 물질의 빚도 다 갚는 축복받은 백성이 되자는 것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외국의 구제를 거절한 정신이요, 애국심이다.\n국가 안보는 기도에 의해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신념이 그의 애국심이다. 최 목사는 국가의 위기나 환란에 대한 구원은 기도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믿었다. 그리하여 매일 일일 4차 때를 정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였다.\n칼빈이 “인간성은 부패하였으므로 규칙, 제제가 없이는 도무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함과 같다. 따라서 옛 성도들도 때를 정해 놓고 기도한 줄 안다. 기도로 나라 구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n첫째는 사무엘의 기도와 승리(삼상 7장 7-12절)이다. 사무엘이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 미스바에 모여 지난 날의 우상 섬긴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등 불레셋이 치러왔으나 사무엘이 전심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우뢰’를 발하여 이 불레셋을 진멸하였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에벤에셀’ 즉 도우심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n둘째는 여호사밧의 기도와 승리(역대하 20장 1-4, 18-23절)이다. 여호사밧왕 때 모압, 암몬, 세일 삼대 연합군이 치러왔으나 여호사밧은 믿음으로 찬송하며 진군하니 여호와께서 암몬과 모압이 세일을 치고 세일이 멸한 후 암몬과 모압이 피차 쳐 살육당하게 하였다.\n셋째 히스기야왕의 기도와 대승리(열왕기하 19장 1-19, 35-37절)이다. 앗수르 왕의 참모장 랍사게가 와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항복을 청할 때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이사야가 전해 주는 말을 믿고 자신이 성전에서 기도하였더니 하룻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에서 치시니 십팔만 오천이 다 송장으로 변하였다.\n이렇게 기도의 위력은 크시다. 최 목사는 국가 안보를 미국의 군대가 지켜 준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군이 현대병기로 지켜준다고 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모든 것이 세력균형상 필요하다), 우리가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그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면 위기에서 구원하심을 분명히 보아 왔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의지하는 자를 구하고 찾는 자를 도와주신다.\n6·25당시 많은 유엔군이 죽었다. 우리나라는 생명에까지 빚을 지게 되었으니 언제든지 복음의 빚, 생명의 빚을 한 손에 구제품 들고 한 손에 복음 들어 세계만방에 전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고 최 목사는 거듭 강조하였다.\n앞의 부문에서 그의 신앙 사상을 중심으로 설명했으나 여기 다시 최 목사와 함께 생활하며(1951년 9월부터 1년 동안 최덕지 목사의 댁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지켜 본 것임)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밝혀 보고자 한다.\n역사상 많은 위인이라든가 또 우리가 일시적으로 만나든가 혹 강단에서 설교나 외부에서 존경되는 인물이라도 함께 접하여 생활해 보면 흠이 나타나고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일이 많다.\n일찍이 서울교회 청년회 회지 ‘엠마오’ 제6호에(1975년 10월 광복 30주년 기념특집) 최 목사에 관한 기사를 부탁받고 집필한 ‘내가 본 최덕지 목사님’이란 주제를 중심해서 간추려 적고자 한다. 그는 한말로 표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다.\n그가 재건운동을 시작하고 그렇게 철저하게 죄를 책망하고 진리로 인도할 때 ‘하나님의 참사람’, ‘하나님의 사자’의 참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 그가 과연 하나님의 사람임을 살펴보고자 한다.\n성경에는 의인이 없다고 하였다.(로마 3장 10절) 그러나 신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로마 4장 25절) 이와 같은 이신득의의 교리적인 의인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생활로 보아서 의인이라는 것이다.\n그 사람의 인격이나 교양이나 덕망을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말인 줄 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다(야고보 3장 2절)” 한대로 최 목사는 말에 실수가 없었다.\n그와 함께 기식하면서 또한 수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재건 부산교회 목사로 있을 때 나는 전도사로 함께 일함) 한 번도 남의 허물이나 악평함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떤 성도의 평이나 허물된 말이 들리면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본인을 만나 알아보고 벌 내릴 자 벌하고 책망할 자 책망하고 충고할 자 충고할 따름이었으며 자기를 악평한다고, 비난한다고 혹은 잘 따르지 않는다고 또는 허물이 있다고 남의 면전에서 상대방을 절대로 허물하거나 명예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었다.\n나는 재건 초창기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일할 때 대부분이 동지를 악평하기 예사고 파벌의식이 있었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가려놓고 자기파 세력,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두둔하고자 체면도 인격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에 절제를 가지지 못함을 목도했다. 그래서 남의 명예를 깎고 성도의 교제를 흐리게 하고 전도의 문을 막는 불순을 겪어 왔다. 이러한 속에서 고 최덕지 목사 같이 위대하신 인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n최 목사의 생활 중에는 어떤 일을 당할 때(예 성경학교, 신학교, 전도집회 등) 거기 적임자를 바르게 찾아내어 일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일할 때 믿음으로 하지 않거나 무슨 잘못이 있거나 앞서의 실수를 최 목사에게 자복하지 않았거나, 하여간 허물됨이 보이면 절교했다. 한 번은 성경학교를 열고 있을 때 최 목사가 다른 분과 절교했다. 그 사이에서 딱하게 여긴 나는 “왜 절교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고 물었다. 그때 나는 최덕지 목사가 절교하는 상대방과 더 친하고 최 목사를 못마땅히 생각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지도자는 상대방과 절교하는 이유와 함께 그 사람의 허물을 말한다.\n그러나 최 목사는 절대 침묵을 지키고 그의 허물이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되물었더니 부득불 하는 말이 “일후 나 없으면 함께 일해 보시오”라고 했다. 그 후 최 목사가 떠나고 그 분들과 함께 일할 때 너무나 인간적이요, 인위적이요, 감정적인 인간성을 접하고 나서 과연 그는 의인이요, 그와 같은 인격의 소유자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증언하게 되었다.\n그의 옥중 승리는 바로 신앙의 용사요, 투사였음을 증명한다. 그가 믿음의 사람인 사실 두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모세가 믿은 대로 옥중에서 믿은 사실이다. 모세의 신앙 표현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출애급 3장 20-21절)” 하였다.\n‘빈손’으로 나가지 않게 함이 바로 모세의 신앙이다. 최 목사의 신앙도 이것이다. 옥중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 거역하는 일본은 망한다”고 외치며 사생결단의 신념과 신앙으로 싸웠다. 믿음으로 잘 싸우면 반드시 우리 강토는 찾는다고 믿은 것이다.\n모세에게 빈손으로 나가지 않게 하심 같이 나도 절대로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이스라엘이 금은 패물을 찾아 그 자녀들이 꾸미고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는 것처럼 우리 한국도 진리로 승리하는 날, 이 옥문이 열리는 날 빼앗겼던 금수강산을 찾고, 우리의 농토를 찾고, 우리의 산업을 찾고, 우리의 문화재를 찾아 올 것을 믿은 것이다. 이 절대적 신앙이 그를 살리고 내 강토도 빛을 본 것이다.\n또 하나는 부목교회에 집회와 심방을 마치고 마산교인 몇몇과 마산을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 시간마다 버스가 다니고 또 야간 버스도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버스가 흔하지 않았다. 석양이 되고 어두워왔다.\n최 목사는 매우 피곤했다. 마산까지 걸어서 가기는 너무도 힘겨웠다. 철원 못 미쳐 길가에 앉아서 기도했다. “종이 피곤하오니 차를 보내 주옵소서.” 아마 이렇게 기도한 줄 안다. 기도했으니 차가 올 것이라고 하면서 앉아 있었다.\n“그대로 믿고 구하면 이루리라”는 그대로의 믿음이었다. 믿음이 작은 나는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 칠원이라도 가야 하겠기야 “예, 가면서 차가 오면 타면 되잖아요”하면서 가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최 목사는 “아니, 기도했으면 올 것인데 가기는 왜 가”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안타까웠다. 한 6, 7분 만에 차 한 대가 왔다. 빈 트럭이었다. 최 목사를 보고 타라했다. 물어 보았더니 남지에서 왔다고 한다. 운전기사 말이 대구 갈 차인데 남지 왔다가 우연히 마산 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핸들을 돌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이 차를 보내심이구나.” 즉각 느꼈다. 이와 같이 최 목사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또 기도하면 그대로 믿었고 그대로 받았다.\n최 목사 기도의 특징은 금식기도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영어에 있어 ACTS(행동)를 의미하고 그 한자, 한자를 대표한다. ACTS는 A-Adoration(찬양), C-Confession(고백), T-Thanksgiving(감사), S-Supplication(기원)을 대표하는 것이다.\n즉 그의 기도는 이 전형적인 형식에다 금식하고 불철주야 기도한 분이다. 그는 옥중에서 21일 금식기도를 세 번이나 했으며 그 위력은 조국의 해방을 가져온 것이다. 보통 그의 기도는 교회 새벽예배 때 그 교회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어린아이 하나라고 빠짐없이 기도하였다. 오전에는 아침 금식을 평생 동안 하였고 밀실에 들어가서 오전 예배시까지 기도하였다.\n국가를 위한 그 간절한 기도는 눈물의 애국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연상케 했다. 또한 성도나 교인이 범죄나 실수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는 일찍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함을 생각하게 한다.\n그의 기도에는 능력이 많았다. 그는 옥중에서도, 재판장 심문 자리에서도,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예배와 기도를 하여 꺾을 자가 없었다. 심문하던 검사도 굴하고 심판하던 재판관도 함께 기도해야 그 재판을 계속할 수 있었다.\n재건교회 원로 교우들은 그가 마지막 운명하기까지의 그 간절했던 기도에 감동과 감명과 인상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매주 3일간, 혹은 일주일간 금식기도하였고 매월 초생 금식을 하였다. 실제 한 주일 2일 식사가 어려웠다. 그는 금식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또 금식하였다.\n이 금식기도로 인해 많은 비난이 있었다. 혹은 이단시하고 혹은 율법주의라 했다. 만일 최 목사에게 이 금식기도가 없었더라면 그 무시무시한 일본 관헌의 고문을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곧 이 금식기도가 아니었는가. 그러면 해방된 후에도 왜 금식을 그렇게 하시는가고 비난했다.\n이스라엘이 미스바의 금식기도로 대부흥을 이루었고 사무엘의 금식기도가 불네셋의 화를 면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회개하지 않은 백성을 보고 국가의 환난을 생각할 때 조국을 위하는 심정이 내 육신의 안일만 생각하고 금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n최 목사는 3가지 의미에서 금식하도록 권면했다. 첫째는 죄를 깨닫고 자복하기 위하여 이고, 둘째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이며, 셋째는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교회의 범죄가 그로 하여금 금식기도를 하게 하였고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금식기도를 계속한 것이며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금식 기도를 한 것이다.\n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 28장 19-20절)” 하였다. 이는 전도하라는 유훈이다. 이 말대로 꼭 실천하고 쉬지 않고 전도했다. 그의 전도 방법은 주로 개인 전도이다.\n첫째 구술 개인 전도를 하였다. 가정에서 예배당에 갈 때나 예배드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한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십시오” 하는 말씀을 꼭 전한다.\n만나는 사람마다 모여 있는 무리마다 다 찾아서 전도했다. 혹 욕하는 사람은 참았고 반대·반발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붙들고 깨닫도록 설득했다. 그에게는 설득력이 강하였고 굴복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n“경모하는 동포 여러분, 지금 나라를 위하여 예배드리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시는 분은 담배 불을 꺼 주시고 모자를 쓰신 분은 모자를 벗으시고 함께 예배드립시다. 여러분의 자유를 막으려 함이 아니라 우리 함께 나라의 번영과 축복을 위해 참여를 바랍니다.”\n이렇게 전제한 다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요절 한 구절 암송한 후 전도설교를 하고 주기도로서 예배를 끝낸 후 “대단히 감사합니다”하고 열차일 경우 매 호차마다 다 전도를 마친 후에야 자리에 앉는다. 먼 곳까지는 잠깐 앉아 기도할 시간이 있지만 가까운 곳에는 전도를 마치고 내리기가 바쁘다. 배 안에서도 배 칸칸을 돌며 복음을 전하였다.\n이 전도 때 이상한 것은 현실교회 성직자나 또는 신앙사상이 다른 자가 있으면 꼭 훼방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다 최 목사에게 정복당하였고 일반은 그 열렬한 전도에 감동받았다. 부산교회에서 인도할 때는 매주일 밤 예배 마친 후와 수요예배 마친 후 노방전도를 계속했다. 대개 초량시장과 역전(지금은 그 역이 없어졌음) 고관 입구에서 주로 전도를 했다.\n모든 교인이 함께 찬송 부르고 전도 강연도 한다. 최 목사도 하고 다른 이도(주로 내가 하였음) 하였다. 이때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손을 들어 결신자가 나온다. 이 전도는 비가와도, 눈이 와도 계속되었다. 전도의 대상은 남녀노유, 유무식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 전도하였다.\n그 다음은 전도지 전도이다. 최 목사의 전용 성구를 기입한 전도지를 사용하였다. 보통 때도 사용하고 주로 동네를 다니며 축호 전도를 하였다. 또는 구정 때 전도대원(교인들)을 모집해 3일간 금식하고 민족의 우상 섬김을 회개하는 금식기도를 한 후에 정월 초하루에는 부산시내 가가 호호 구역을 정하여 전도했다.\n우상 섬기면 망합니다.(신 7장 26절) 하나님 섬기고 복 받으십시다. 구원의 길(행 16장 31절) 흥국의 길(잠언 14장 34절) 복 받는 길(요 3장 16절) 사는 길(요 14장 6절) 산 부모를 공경합시다(엡 6장 2절) 이 민족이 사는 길(이사야 1장 19-20절) 대개 이런 제목과 성구를 써 붙인 것이다. 또 성경학교 학생들을 동원해서 사주책이나 그 외 우상들을 파괴하는 데 젼력을 다했다.\n그에게 있어서는 미신이나 우상을 섬기면 나라가 망하고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성서관과 역사관이 투철하여 열심히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전도하지 않으면 “나라 멸망의 유기죄이며 겨레 멸망의 방관죄”라고 하였다. 때로는 우상을 파괴하고 전도할 때 많은 곤욕을 당하였지만 이로써 무지몽매한 이 민족에게 깨우침을 주었고 죽을 영혼, 망할 영혼이 주께 돌아와 구원받게도 한 것이다.\n이 전도와 기도는 자유당 때 이 겨레를 망하게 하는 ‘우상 철퇴 명령’이 내렸으나 지금은 오히려 더 팽창하니 이 나라 모든 것이 정화되나 이 사신우상만은 아직 정화되지 않으니 더욱 한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n이는 곧 주의 사자 최 목사가 즐겨 외우던 성구요, 또한 그 분의 기도였다. 그는 무슨 일을 당할 때 먼저 기도로 ‘주의 뜻’을 물었다. 또는 일을 할 때 ‘주의 뜻대로’하기를 기도했다. 그리하여 최 목사에게는 주의 뜻을 찾는 방법으로써 3가지 원칙이 있었다. 성경, 기도, 천기가 그것이다.\n그는 매일 기도하며 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다. 성경말씀에 주의 뜻이 어떻게 명하시는가를 상고하였다. 그리고 어디를 가야 할 때 구름 낀 날은 되도록 출입하지 않았다. 최 목사가 출옥성도로서 명예를 탐내 목사직을 받았으므로 출옥 승리자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n그러나 실은 당시 지방회장 강 목사가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뇨 가정에 전도 간 베드로의 사실을 들어 “하나님이 깨끗게 하심을 네가 속되다 하느냐(행 10장 15절, 11장 9절)”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승리한 종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심이라는 권면과 주장에 오로지 과연 주님의 뜻이 어디인지 그 뜻에 복종하겠다는 일념에서 목사안수 받음을 거듭거듭 사양하다가 종국에 허락한 것이다.\n주의 사자가 오로지 주의 영광과 주님의 뜻만을 받들고 순종하던 생활은 그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사랑의 방면이나 인물의 기용이나 적재적소에 그 일을 맡기는 관용이나 모든 사람을 뛰어넘는 지혜 등은 여기에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혈기나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오래 참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오래 참음’이라면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즉 ‘오래 참음’보다 넓은 의미로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n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에 대해 잠잠히 참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선만 행하셨는데도 악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참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참으신 사랑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지요.\n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 하나님이 참 신임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만약 “너는 불의가 가득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 가망이 없구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n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한 영혼 한 영혼이 변화될 때까지 얼마나 사랑으로 기다리며 오래 참아 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언젠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며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결국 많은 성도가 좋은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n상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모든 것을 믿어 줍니다. 설령 허물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기에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지요.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는 사랑으로 더욱 결속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는 사사건건 다투며 의심하지요.\n믿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신실했던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셨습니다.\n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지요.\n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n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n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나를 놓지 않으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자신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n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치약을 위에서 짜느냐, 밑에서부터 짜느냐 하는 등의 사소한 습관조차 바꾸지 못해 다투는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상대를 변화시키기 전에 내가 변화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며 기다려 주면 되지요.\n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됩니다. 장차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세세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달려갑니다.\n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없으니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투지요. 하지만 아무리 갖고 누린다 해도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지요.\n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세상과 구별된 좁은 길을 갑니다. 왜 좁은 길이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오락을 즐기지 않고,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등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기도합니다. 이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n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 고생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에 힘들지 않고 행복하지요. 아름다운 천국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설레고 즐겁겠습니까? 이처럼 사랑은 믿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입니다.\n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큰 힘이 있습니다.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못하는 자녀라도 부모가 “잘할 수 있어!” 하며 믿어 주고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 주면 얼마든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에도 자신의 생각 가운데 상대를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하거나 ‘여전히 그 모습이구나.’ 하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격려하며 끊임없이 기도해 주어야 하지요.\n1.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이 ( )이라면, ( )는 것은 오래 참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한다.\n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인 고린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분쟁, 소송 문제, 은사 나눔 문제, 부활 논쟁,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까지 문제 삼았다.\n또한 거짓 선지자가 훼방하며, 음행 같은 세상 문화가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 빈부 격차에 제사 음식 먹는 것 가지고도 싸웠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 고린도전·후서이다.\n‘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다는 뜻이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행위로 드러나는 불의한 일들을 기뻐하지 않으며,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n그런데 그 친구의 회사가 부도났을 때, “잘산다고 뽐내더니 고소하다.” 하면서 쾌재를 부른다면 이는 불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악한 일에 동조하고 가담했다면 적극적으로 불의를 기뻐한 것이지요. 불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n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불의라 여기는 ‘일반적인 불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법과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쌓아나가는 것은 불의입니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려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한 처벌을 받았다면 이 또한 불의이지요.\n역대하 19장 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의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정당한 대가 외에는 바라지 않지요.\n주 안에서의 불의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세상의 법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온갖 죄가 다 불의입니다. 불의는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온 죄이며, 죄 중에서도 특히 육체의 일에 해당합니다. 즉 마음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악이 다툼, 폭행, 사기, 살인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온 것입니다.\n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n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불의는 구원과 직결됩니다. 그러니 불의를 행하는 형제를 본다면 애통하며 사랑으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나도 적당히, 좀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다.’ 하며 부러워하거나 함께 동조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지요.\n주님은 흠과 티도 없으신 분인데 불의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벧전 3:18).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을 헐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지요. 바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런 큰 사랑을 깨닫는다면 결코 불의를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n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단순히 불의를 행하지 않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5장 14절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말씀했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애통하는 사람은 그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아 사랑이 많은 것입니다.\n복음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찾기 위해 사상과 철학, 학문을 탐구하며 여러 종교 교리에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 6절에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나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지요. 즉 참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n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삶의 목적을 알아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복음을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뜻을 알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해 구원받는 이들이 더해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신보다 더 충성해 열매 맺는 사람을 보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며, 부흥하는 교회를 볼 때도 함께 기뻐하지요.\n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선, 사랑, 공의 등 진리에 속한 것을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에 ‘섬기라, 이해하고 용서하라.’ 하셨으니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 판단, 정죄하는 것이 너무나 싫어지지요. 그래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상대가 잘되면 함께 기뻐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되었으면’ 하고 악한 생각을 하거나, 상대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불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애통합니다. 또한 변개하지 않는 마음, 진실함, 정직함 등 선의 마음을 좋아합니다. 선한 말과 행실을 기뻐하지요.\n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랑을 마음에 가득 채움으로 진리에 속한 일들을 볼 때 더욱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n처음부터 진리만 기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어둠과 비진리가 있을 때는 악한 것을 생각하고 불의를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츰 변화되어 비진리의 마음을 온전히 벗으면 진리만 기뻐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따르지요.\n예를 들어, 초신자의 경우에는 예배드리는 것이 무조건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진리의 맛을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피곤해하거나 마음이 다른 데 있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어찌하든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진리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기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천국에서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다르다는 것도 알지요. 그러니 더 열심히 성결을 이루며 충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진리와 함께 온전히 기뻐하지는 못한다 해도,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n1. 사랑은‘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 )에 악은 ( )도 품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 )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행위로 드러나는 어떤 불미스런 일들을 기뻐하지 않고 거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n아간은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전리품을 숨겨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당한 사람이다. 여호수아는 전리품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했는데 아간은 시날 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취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결국 아간은 그의 가족들과 소유물들과 함께 돌에 맞은 후 불살라졌다.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곳이 바로 아골 골짜기이다(수 7장).\n무슨 일이든 좋은 뜻으로, 선한 동기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생각을 하며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본인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면서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일으킵니다. 또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주위와 격리시키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악한 생각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n사랑의 속성 중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악은 모양도 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잘사는 친구를 보면 시기, 질투가 나고 괜히 뽐내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친다면 이것이 바로 악한 생각입니다.\n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결코 악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요.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자녀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원합니다.\n혹여 남의 험담에 귀가 솔깃해진다면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부모를 헐뜯는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으며 당장 나무랄 것입니다. 혹 상대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사실을 알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닌데도 남의 말이 궁금하고 솔깃해진다면 대개 험담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n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말씀했습니다. 선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또 마음에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남이 잘될 때 시기 질투하지도 않으며 상대가 잘되고 사랑받기를 바랍니다.\n어떤 성도가 크리스천으로서 가서는 안 될 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겠습니까?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안 좋게 생각합니다. 좀 더 선하다면 ‘왜 저런 곳에 갈까?’ 의아해하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바꾸지요. 그러나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처음부터 악한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설령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전해 듣는다 해도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지요.\n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재판장으로서 판단하시기에 사람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악입니다. 설령 상대가 잘못했을지라도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상대가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릴 길을 생각하지요.\n영적인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할 뿐 아니라 상대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가도록 진리를 알려 주고 변화되도록 감동을 줍니다. 허물 많은 사람도 사랑하기에 어찌하든 믿어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하지요.\n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덕이나 양심은 선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도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주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악이며 죄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4).\n그러면 죄와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둘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습니다.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입니다. 뿌리가 있으므로 줄기와 잎, 열매가 나오듯이 죄는 악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즉 악은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뿌리와 같이 마음 안의 ‘속성’입니다. 이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n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가시 돋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마음에 있는 미움이라는 악이 욕이나 가시 돋친 말, 폭력이라는 행함 곧 죄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다고 반드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교양이 있거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절제한다면 죄를 짓지는 않지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 속의 악까지 다 버려야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n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도 압축하면 ‘사랑’이지요.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이며 죄입니다. 하나님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만큼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n악한 것을 보고 듣지 않으면 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만일 보고 들었다면 떠올리거나 기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쉽게 통제되지가 않습니다.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욱 잘 떠오르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불같이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지요.\n요한이서 1장 10~11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그리스도의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철저히 악을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n사람은 타고난 죄성과 성장하면서 보고 들은 비진리를 바탕으로 자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죄성과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죄성과 비진리를 버리는 데에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리보다 비진리가 더 익숙하고, 비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버리기는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n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악은 무익한 것이요, 악을 심으면 재앙을 거둘 뿐입니다(잠 22:8).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에게 질병이 오거나 사고를 당하고 가난을 겪으며 가정불화가 일어납니다.\n우리가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하면서 ‘말씀’과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선한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되새길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실 속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에 마음의 악을 버릴 수 있지요.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신속히 악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n“사흘 굶어서 남의 집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온전히 성결을 이루기 전에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악이 드러나는 것이다. 파리 똥이 아무리 작아도 똥인 것처럼 설령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에 비할 때 온전하지 않은 것이 모두 악의 모양이다.\n현대 사회는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일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단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갓난아이들이 먹는 분유에 유해성 화학물질을 첨가하는가 하면, 국가적으로 중대한 원천 기술을 빼돌려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n많은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서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령, 여러 사람이 함께 식당에 갔다고 합시다. 이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 같지만 마음은 불편해합니다. 반면 다수가 선호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해당합니까?\n또 직장에서 자기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상대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설령 자기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기쁨으로 따라 주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에 얼마큼 영적인 사랑이 있느냐에 따라 나오는 현상이 다릅니다.\n만일 의견 대립이 심해져서 다툼이 생기고 화평이 깨진다면 이는 바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 자꾸 부딪치고 마음에 상처만 깊어지지요. 서로 양보하고 상대 입장을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화평할 수 있는데도 자기 입장만 고집하므로 화평이 깨집니다.\n우리가 상대를 사랑하면 늘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인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가축에게 먹일 물이 부족하여 다투게 되지요.\n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여 떠나라고 하지요(창 13:9).\n그러자 롯은 한 번의 사양도 없이 자기가 보기에 좋은 요단 들을 택하여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유익만 구하여 떠난 롯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고 잘살기만을 바랐습니다. 그가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하니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며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고 기쁨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따릅니다.\n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사에 나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이웃, 나보다 하나님, 주님, 교회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요. 가정에서도 나보다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ㅇㅣ렇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n어떤 사람은 교회 생활에 치우쳐 가정, 일터, 학교 등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금식하여 힘이 없다며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교회 일을 한다고 가족을 등한시합니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을 게을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자신은 놀거나 쉬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의 일에 충성했어도 온 집에 충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과 같지요.\n그렇다면 범사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성령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주관 따라 행하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면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악이 없어야 마음에 참사랑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n많은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배려합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고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는 맞춰 주려 하지 않고 희생하기를 꺼린다면, 이는 내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영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n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0%가량 높다고 합니다. 습관성 분노가 일시적으로 기분을 망치게 할 뿐 아니라 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사람의 신체는 권투선수의 강펀치를 맞는 것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합니다.\n그런데 화를 참고 살면 병이 된다며 직장이나 가정에서 화를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원망을 듣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지시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쉽게 화를 내지요.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심신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확대시킬 뿐이지요.\n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을 내도록 부추기지요. 미움과 성냄은 원수 마귀 사단의 덫입니다.\n그렇다면 의분과 성냄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쓰일 가축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이들의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인들이 성전 뜰에 좌판을 펴고 돈을 환전해 주거나 가축을 사고팔았기 때문입니다.\n이에 대해 ‘예수님이 혈기를 내시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분을 내신 것입니다. 비록 좋은 목적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성냄과 의분은 전혀 다릅니다. 성결하여 죄가 없을 때 의분이나 책망을 통해서도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n흔히 ‘감정이 상한다’ 하면 성냄의 전초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19~20) 말씀했습니다.\n그러면 성을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꾹 눌러 참으면 될까요? 스프링은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이 생깁니다. 참아서 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폭발하지요. 성내게 하는 감정 자체를 온전히 뽑아 버려야 합니다.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을 것이 없도록 선과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지요.\n하루아침에 감정을 버리고 선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됩니다. 우선 화가 나면 기도하며 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성내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생각하면서, 후회하거나 부끄럼을 당하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n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남보다 우월하다 느끼고 쉽게 교만에 빠집니다. 또 일이 술술 풀리고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거나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악 중에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이 땅의 언어가 혼잡하게 나뉘었던 바벨탑 사건도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고자 하는 교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n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깁니다.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가르치려 하지요. 자신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나 질서상 윗사람까지도 무시합니다.\n윗사람이 어떤 권면이나 지적을 해 주어도 “뭘 모르고 저렇게 말씀하시네.”라고 불평하거나 “그 정도는 나도 다 아는데…. 잘할 수 있는데.” 하고 귀찮아합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곧잘 변론으로 이어집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혈기를 내니 결국 다툼과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있지요.\n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 확신이 있다 해도 만에 하나 자신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그만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에 비해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요. 모든 영혼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로서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n교만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체로 눈에 띄게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교만을 육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진리를 알면 육적인 교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버려집니다. 하지만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버리기도 어렵습니다.\n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말씀을 들어 많이 압니다. 직분과 사명을 받아 위치가 높아지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아는 말씀을 마음에 이룬 것처럼 착각합니다. 또 상대를 지적하고 판단, 정죄하면서도 자신은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 하지요. 마음이 높아지니 꼭 지켜야 할 절차도 무시해 버립니다. 명백히 질서를 거스르는 행동인데도 ‘나는 이만한 위치에 있으니 괜찮다. 나는 예외다.’라고 생각하지요. 이처럼 높아진 마음을 영적인 교만이라고 합니다.\n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즉 낮아지면 주님께서 높여 주시지요.\n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지만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끝을 알 수 없는 대양에 이르러 생명의 보고(寶庫)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큰 자, 존귀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n식사 매너, 대화 매너, 전화받는 매너,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등 우리의 생활 속에는 다양한 예절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소한 것 같지만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지요. 바른 몸가짐과, 때와 장소에 맞는 언행은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합니다. 반대로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되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줍니다.\n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이 무례히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지요.\n가령, 예배 시간에 좁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이나 상사 앞에서 조는 것도 무례한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존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진실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n예배 시간에 대화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것도 매우 무례한 일입니다. 예배 도중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돕는 사명 때문에 나가는 경우를 빼고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묵도나 사도신경으로 시작해서 축도나 주기도문으로 마칠 때까지 모든 순서를 마음 다해 드려야 하지요. 찬양이나 기도 시간은 물론 헌금이나 광고 시간에도 집중해야 합니다.\n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무례한 행동입니다. 사람들과의 약속 시간에도 늦으면 민망한데 예배에 지각한다는 것은 너무 불손한 행동이지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입니다.\n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바로 오는 경우에는, 예배 시간에 맞춰 서두르다 보면 작업복 차림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쁜 일과 중에도 어찌하든 예배에 참석하려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n하나님께서는 예배와 기도를 통해 사랑의 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특히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상대가 기도하고 있는데 다급한 일로 툭툭 쳐서 기도를 중단시킨다면 마치 윗사람과 대화할 때 불쑥 끼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기도하는데 누가 자신을 부른다고 곧바로 멈춘다면 하나님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는 것이지요. 마무리 기도까지 마친 후 응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n성전에서도 무례히 행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성전은 예배실뿐 아니라, 마당과 부속 시설 등 모든 공간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큰소리로 다투거나 사업이나 연예인, 드라마, 오락 등 세상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n또한 성물을 함부로 다루어 상하게 하거나 헌금봉투를 임의로 사용해서도 안 되지요. 성전 부속 사무실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고 물건을 받는 것 역시 명백한 매매입니다. 교회 마당에서 바자회 같은 행사를 여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n보통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다 보니 무례함이 나옵니다. 가령, 밤늦게 전화를 한다거나 바쁜 사람에게 전화해서 장시간 붙들고 있다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또 약속 시간에 늦는 것, 남의 집에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가는 것도 무례한 일입니다. 내 편에서는 친해서라고 여기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지요. 가깝고 편한 사이일수록 더 조심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n가까운 사이라 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여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족 또는 절친한 친구에게 예의 없이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 쉽게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고 명령하는 태도는 불쾌감을 줍니다.\n하나님의 뜻은 사람 사이에도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세상의 법과 질서도 잘 지켜서 무례히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침을 뱉고 교통 법규를 어기는 것도 무례한 행위이지요.\n그런데 같은 업종이나 경쟁 관계에 있을 때에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근처에 동일 업종의 음식점을 경영하는데 상대 쪽이 잘되면 싫고 불안해집니다.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리면 말리고 싶어지지요. 이처럼 가까운 사이나 경쟁 관계에 있을 때 시기 질투가 심해지고 여기서 더하면 투기가 나옵니다.\n투기는 마음의 시기 질투가 심해져 남에게 악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시기,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보다 지식이 많고 부유하며 능력이 많은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같이 입사한 동료는 고속 승진을 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말단이니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힘이 빠지고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지요.\n이렇게 시기 질투가 있으면 낙심이 됩니다. ‘저 사람은 인정받고 사랑받는데 나는 뭔가? 왜 나는 이 모양인가?’ 하고 주저앉습니다. 상대와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만 깊어지지요. 만일 영적인 사랑이 있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해 줄 것입니다. 상대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n남보다 더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자아가 살아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시기심이 생깁니다. 이런 시기 질투가 심해져 악한 말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상대에게 해를 입히거나 심지어 살인하는 일까지 생기지요.\n사울왕은 다윗을 투기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에게서 나라를 구한 은인이었습니다. 3미터 가까운 장신(長身)에 청동갑옷으로 무장한 블레셋 최고의 전사 골리앗이 40일 동안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좌불안석 떨고만 있었지요.\n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다윗이 하나님을 모욕한 적장을 물맷돌로 단번에 쓰러뜨립니다. 이스라엘은 대승리를 거두고 다윗은 일약 국가적 영웅이 되고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지요. 사울왕은 다윗이 맡기는 일마다 지혜롭게 해결하므로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습니다.\n그런데 사울의 시기 질투를 자극하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어느 날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노래를 하였지요. 이 노래를 들은 사울왕은 심히 불쾌해하며 분개합니다.\n“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며 그날부터 다윗을 주목합니다. 이튿날 악신으로 고통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하지요.\n또 블레셋 사람의 손에 다윗이 죽도록 음모를 꾸미고, 이스라엘 최고의 무사들을 시켜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집요한 사울왕의 투기는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야 그칠 수 있었습니다.\n욥기 4장 8절에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말씀했고, 잠언 14장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n자신이 행한 악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악을 뿌린 대가로 병을 얻거나 가정과 일터에 재앙을 당하기도 하지요. 시기, 질투, 투기는 백해무익하며 영으로 들어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n자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남보다 자신이 더 나은 분야가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드러나 칭찬받고 싶기 때문입니다.\n이런 부류의 특징은 다른 사람이 잘한 것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데에는 몹시 인색합니다. 남이 드러나는 만큼 자신이 가려지기 때문에 상대를 깎아 내리려고 하지요. 그러니 자랑이 다툼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자랑하면 높아지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존경이나 사랑을 받기는 어렵습니다.\n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했습니다.\n육의 사람들은 가문이나 명예, 권세, 고급 승용차, 집이나 보석 등을 자랑합니다. 권세자나 유명인과 친분이 있으면 으쓱해지고 자랑스러워하지요. 이들은 인생의 가치를 세상적인 것에 두기 때문입니다.\n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자랑한들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전 1:2~3),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이 지나가 버립니다(시 103:15). 이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으로는 참된 가치와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망의 길로 갈 뿐입니다.\n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응답받은 것을 간증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육 간에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n그런데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면서 자기를 자랑합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축복받을 수 있었다”며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지요. 결국에는 자신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니, 사단의 송사를 받아 이런저런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도 볼 수 있지요.\n하지만 우리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 나가면 이생의 자랑을 뽑아 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마치 어렸을 때는 그렇게 좋았던 장난감이 어른이 되면 너무 시시해지는 것처럼,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가면 육적인 자랑이나 세상적인 것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입니다.\n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고백한 것처럼,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주신 주님을 더욱 높이며 자랑해야 하겠습니다.\n“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3~24)\n심리학자 ‘하아로우’ 교수가 젖먹이 원숭이들 앞에 두 개의 어미 원숭이 인형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었지요. 그리고 각각 우윳병을 꽂아 두었습니다.\n첫날 아기 원숭이들은 두 인형에 있는 우유를 모두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는 철사로 만든 인형에는 한 마리도 가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한 인형한테만 모여들었지요. 이처럼 동물들도 차갑고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날카롭고 매정한 사람보다는 온유한 사람을 선호하고, 그런 사람 품에 깃들여 쉼을 가지려고 합니다.\n영적으로 온유함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솜을 떠올려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솜은 아무리 단단한 물체가 부딪쳐 와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딪쳐 오는 것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버리지요. 또한 온유한 마음은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와도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땀을 식히기 위해 사람들이 나무 그늘로 모여들듯이, 온유한 마음에는 많은 사람이 깃들이기 마련입니다.\n세상에서는 흔히 성품이 유순해서 화를 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온유하다 합니다. 나름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온유하다.’라는 자기 기준이 있지요. 그러나 사람 편에서 온유하다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함은 다릅니다. 아무리 순하고 착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이 아니면 온유하다 할 수 없습니다. 가령, 본래 성품이 소극적이고 유약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따르거나 마음에서는 부글부글하는데 눌러 참는다면, 이런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지 않지요. 마음속에 악을 버리지 않고 참고만 있기 때문입니다.\n진정 온유한 사람은 마음에 악이 없고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랑으로 어떤 악한 사람도 대적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그렇다고 잘못했는데 무조건 용서하고 덮어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는 반듯하고 위엄 있게 다스리지요. 따라서 영적인 온유함이란,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적으로도 덕을 갖춘 상태를 말합니다.\n영적인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솜털과 같아서 누가 부딪혀 온다 해도 소리가 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안습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지요.\n만일 우리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자기 의와 틀이 있으면 상대를 품지 못합니다. 딱딱한 돌이나 쇠에 물체가 떨어지면 깨지거나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는 것처럼, 자기가 있으면 누가 조금만 불편하게 해도 감정이 상합니다.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기보다 판단 정죄하고 수군수군합니다.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발끈하고 마음이 상합니다. 누가 귓속말을 하면 내 험담은 하지 않나 힐끗힐끗 쳐다보고 판단하지요. 이는 소인배와 같아서 그 마음 안에 더러운 비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진리의 마음을 더 이상 넓힐 수 없는 것입니다.\n그러므로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은 온유함의 기본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결해야 ‘온유하다’ 인정해 주십니다. 마음에 악이 없어야 상대를 선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매사에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봅니다. 판단 정죄가 없고 선과 사랑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라도 그 따스함에 마음이 녹아나지요. 온전히 성결되면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을 수 있고 양 떼의 상황을 잘 분별하여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n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올바르고 공정하며 도리에 합당하게 행합니다. 잘 갖추어진 인격으로 남을 다스리지요. 상대를 물리적인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바른말과 행동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며 사랑을 받습니다.\n덕은 우리 몸에 입는 옷과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지저분하고 남루한 차림으로 있으면 격이 떨어져 보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온유해도 외적인 덕이 함께 갖춰져 있지 않으면 내면의 온유함을 발휘하지 못합니다.\n가령, 마음은 온유한데 대화할 때마다 불필요한 장광설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양이 결여되어 있으니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지요. 또 마음이 온유해서 나쁜 감정을 품거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고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면, 이런 사람 역시 덕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n만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장난치고 농담을 하시며, 복장이 단정치 않고 신발을 질질 끌면서 다니셨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존경받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외모에서부터 영적인 위엄과 권세가 흘러나왔기에 제자들은 물론 어떤 사람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셨지요. 마태복음 12장 19절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n꽃에 아무리 꿀이 많아도 꽃의 고운 빛깔이 잘 드러나지도 않고 향기도 나지 않는다면 벌이나 나비가 날아오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라 해도 말과 행실에 덕이 없으면 그 온유함이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말과 행실에 덕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이 온유하지 않으면 외모만 포장한 것에 불과하지요. 내면의 온유함과 외면의 덕을 함께 갖출 때 온전하다 할 수 있습니다.\n우리가 마음에 악이 없고 덕을 겸비하여 온유해지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복을 내려 주실까요?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또 시편 37편 11절에는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말씀했지요.\n여기서 땅은 천국의 처소를 뜻하며,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럴까요?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에게 힘을 주고 은혜를 끼칩니다. 온유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 안에 깃들이고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지요.\n많은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그만큼 낮아지고 섬겼다는 뜻입니다. 하늘나라의 권세는 이처럼 섬기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23장 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신 대로 섬길수록 큰 자가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큰 권세를 누리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영혼이 잘되니 범사가 잘되고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무수한 영혼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n하나님께서는 죄와 악이 없는 성결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 성결을 이루어, 내면의 온유함과 함께 외적으로도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처럼 덕과 사랑으로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어서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을 품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n많은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참사랑, 곧 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참사랑은 우리 편에서 가지려고 애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마음에서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n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통해 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오래 참음이 부족하면 종종 상대를 절망케 합니다.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다가 성과가 더디면 참지 못하고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그러면 상대는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할 수 있지요.\n고린도전서 13장 4절 이하를 보면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데 필요한 15가지 항목이 나옵니다. 그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에 담긴 영적인 뜻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하는 데 있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시련들과 ‘나 자신’에 대해 오래 참으라는 말씀입니다.\n가령,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누군가 시기 질투하며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사랑스럽기는커녕 피하고 싶고 우연히라도 만나고 싶지 않지요. 그러니 ‘어떻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n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하려면 이런 사람들까지도 참고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가 이유 없이 나를 헐뜯고 미워할지라도 마음을 다스려 참고 상대를 사랑해야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고자 할 때 만나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의 사랑입니다.\n그런데 사랑장의 ‘오래 참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오래 참음’에 비하면 작은 범주의 사랑에 속합니다. 성령의 열매의 ‘오래 참음’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범사에 오래 참음인 반면, 사랑장의 ‘오래 참음’은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참는 개인적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장의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 오래 참음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요.\n마태복음 5장 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시고 핍박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인생들은 오직 선한 일만 행하신 예수님을 오히려 조롱하고 멸시 천대했지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며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n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생들을 오래 참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n이처럼 오래 참는 사랑의 힘은 위대합니다. 마태복음 5장 39~40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랑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입니다.\n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라 할지라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며 선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죽인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n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아무리 큰 해를 끼치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생명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주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지요.\n어떤 사람은 미움, 혈기,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다가 자기 한계점에 다다르면 폭발해 버리고 맙니다. 또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화병까지 얻는 사람도 있지요.\n하나님이 원하시는 오래 참음은 변함없이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즉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는 참음이지요. 미움, 서운함 등을 마음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기게 하는 근본 악을 빼내 버리고 자비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영적인 의미의 오래 참음입니다.\n마음에 악이 없고 영적이 사랑만 가득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애당초 원수 맺을 일이 없지요. 아무리 이해 못할 사람이라도 사랑스러워 보이고, 허물이나 단점이 있어도 상대가 싫지 않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해도 밉지가 않지요.\n반면, 마음 안에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비진리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보아도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단점이 보이고 싫은 마음이 앞섭니다. 또 자기가 거짓말을 잘하면 상대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거짓말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n그렇다면 내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얼마나 오래 참아 주어야 할까요? 이에 대해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n그러자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시지요. ‘7’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수로, 완전히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즉 무한대의 용서와 사랑을 말하지요.\n우리가 하루아침에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을 베풀고자 노력해야 하지요.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서 감정이나 혈기가 나더라도 그것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참고 노력하면 점점 진리로 바뀌고 영적인 사랑이 자라갑니다. 마음 깊이 뿌리내린 죄성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 버릴 수 있습니다.\n이처럼 행해 나가면 어느새 마음에서 미움이 사라지고 상대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와도 걸림이 없고 미운 사람이 없으니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 때 ‘천국 같다’고 합니다. 마음에 천국이 있다는 것은 모든 비진리를 버리고 선과 사랑만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오래 참을 일이 없고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행복하지요. 마음에 악이 없고 선한 사람일수록 오래 참을 일도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룬 만큼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평안함 가운데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다려 주지요.\n그렇다면 천국에도 오래 참음이 있을까요? 그곳에는 눈물, 슬픔, 고통, 악이 없고 오직 선과 사랑만 있습니다. 상대를 미워할 일도 없고 화를 내거나 짜증 낼 일도 없지요. 어떤 감정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일 자체가 없으며, 당연히 오래 참을 일도 없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 편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신 것입니다.\n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만일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한다고 정죄할 것이 뻔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닥에 그들에게 해당되는 죄목을 하나하나 써 내려가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목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났고 여인만 남았지요.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n여기서 ‘사람의 방언’이란 방언의 은사가 아닌 영어, 일어, 불어 등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의미합니다. 또한 ‘천사의 말’이란 매우 아름다운 말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운 말을 할 때 “천사같이 말한다.”고 하지요.\n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아무리 유창하고 아름다워도 참 기쁨과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가볍고 속이 비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리나 꽹과리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n사람도 영적인 사랑이 없으면 쭉정이와 같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 차서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때라야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알곡으로서 가치가 있지요. “무슨 말로 상대에게 힘이 될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진리로 나오게 할까?” 기도하며,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생명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상대를 무조건 말씀으로 설득시키려 하거나 지적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려 듭니다. 설령 그 말이 백 번 옳다 해도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상대를 변화시키거나 참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n그러므로 말을 할 때 내 의와 틀 속에 하지는 않는지, 그 말이 생명을 살리는 사랑에서 비롯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어떤 유창한 말보다 영적인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됩니다.\n‘예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받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n여기서 ‘예언하는 능’이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진리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차 일어날 일을 알아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장차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사람은 휴거되어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7년 환난을 겪고 백보좌대심판 후 지옥에 갈 것 등을 알고 선포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언하는 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n‘비밀’이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섭리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여 사망으로 갈 것을 아시고 만세 전에 구세주가 될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섭리를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은 비밀로 붙이셨습니다. 구원의 섭리가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여 성취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6∼8).\n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면 아담의 범죄로 넘겨받은 권세를 영원히 가질 줄 알고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도리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만들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비밀을 알아도 사랑이 없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n‘모든 지식’이란 단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다면 만나고 체험하여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데 그칠 뿐, 그 지식이 남을 판단 정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영적인 사랑이 없는 지식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n또한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것도, 죄를 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한 것도 아니므로 영적인 사랑이 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생명의 위협이 오자 예수님을 부인하였지요.\n이처럼 체험이 있을 때 믿음은 성장할 수 있지만 영적인 사랑은 죄를 버리려는 노력과 헌신, 희생이 따를 때 임합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사랑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에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지요. 그러나 사랑을 이루려는 행함이 없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n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형식적으로 구제하는 사람은 칭찬받을수록 마음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의롭다 착각하여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자신에게 해만 되지요. 그러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구제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3~4).\n희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는 것은 완전히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생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즉 실컷 수고해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과 정성, 시간, 물질을 다해 일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합니다. 열심 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어쩜 저럴 수 있지?” 판단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과 화평을 깨니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n그렇다면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 없는 희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는 중심에서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농부가 자기 밭의 일을 할 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남의 일을 할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지요.\n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처럼 형식적으로 일하고, 당장 대가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23~24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n참된 희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영적인 사랑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알아주든 몰라주든 묵묵히 헌신합니다. 마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 아낌없이 자신을 내줍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도 참사랑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n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생명 다하기까지 그분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올리셨지요.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어떤 욕심이나 거짓이 없이 자신을 희생한다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의 자리로 이끄십니다.\n계시 -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에게 성령의 감동함 속에 환상이나 음성 등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시는 것, 또는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영의 일들을 풀이해 주시는 것.\n한 케이블 방송에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만약 결혼을 다시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를 다시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겨우 4%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왜 그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바로 영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육적인 사랑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n사전을 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곧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이지요.\n다윗과 요나단은 영적인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는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이 임한 용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신도 군대를 이끄는 장수였기에 그의 용맹함이 흠모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어떠한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지요.\n그는 사울왕의 장남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지만 사심이나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는 직책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위를 지키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구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랑이 죽을 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n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식음을 폐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왕궁에서 자신의 아들처럼 돌봐주었습니다.\n이처럼 영적인 사랑은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가 될지라도 생명 다하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나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하게 자기를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한결같이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n혹여 여러분은 육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겪어 본 적이 있습니까? 쉽게 변하고 마는 사랑에 아파하고 외로워할 때 우리를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아무 죄와 허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으셨기에 누구보다 우리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늘 영광을 뒤로하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가심으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참된 사랑을 주셨지요.\n우리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회장님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7년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병든 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철저히 외면당하고 멸시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이 죽음의 문턱에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회장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단번에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새 생명을 얻었지요. 그 후 주님은 당회장님의 전부가 되셨고, 당회장님은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 다해 달려오셨습니다.\n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값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하지요.\n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갖 아름답고 값진 것들로 천국 처소를 예비하시고 하루를 천 년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하나님의 섬세하고 풍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n자신에게 잘해 주고,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악한 사람도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나 실제로는 참이 아닌 가짜 사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어 조그만 일에도 쉽게 깨지는 육적인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은 세월이 흐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변해 버립니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받아야 주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야 베풉니다.\n이처럼 내가 준 만큼 상대에게서 받기 원하고, 상대가 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를 뒷바라지하면서도 힘들다 하지 않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는 것보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대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지요.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n그런데 자기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거나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자녀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부모의 뜻과 다르면 반대하며 서운해하지요. 결국 자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사랑이었음을 말해 줍니다.\n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떨까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부모가 늙고 병들면 무시하고 귀찮아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데도 인색합니다. 내 자녀, 내 생활 중심적이고 점점 부모님한테는 무관심해집니다. 더구나 부모에게 재산이나 돈을 요구해서 거절당하면 미워하고 심하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인 자녀도 있습니다.\n그렇다면 친구 간에 사랑은 어떻습니까?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친구에게 목돈을 부탁하거나 담보를 서 달라고 합니다. 만일 친구가 거절하면 배신감을 느끼며 사이가 소원해지고 말지요.\n정말 사랑하는 친구라면 그에게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부도가 난다면 담보를 서 준 친구와 가족들은 고통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형제간에 돈거래나 담보, 보증서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이에 불순종할 경우 사단의 역사가 따르고 불통할 수밖에 없습니다.\n이웃 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철저한 경비 시스템을 이용하여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이웃끼리 고소하고 주차 문제 등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육적인 사랑은 자신의 실리를 따지고 유익이 없으면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n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뜻을 모른 채 단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해를 맞아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물론, 마음의 할례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n누가복음 5장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낡고 오래된 가죽은 신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여 결국 터지고 맙니다. 하지만 새 부대는 신축성이 좋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먼저, 새 포도주와 묵은 포도주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n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면 그 열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사역하시면서 맺은 모든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신 모든 일들이 곧 포도나무의 열매들이지요. 또한 포도즙은 포도 열매를 짜낸 액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시는 사랑으로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 신약이며, ‘새 포도주’라고 하는 것입니다.\n‘묵은 포도주’란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전, 율법에 매인 삶의 방식이지요.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본체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합니다.\n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사함 받으려면 짐승을 잡아 그 피로 행위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율법적인 삶의 방식이 바로 묵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입니다.\n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신 신약 시대에는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새 포도주를 마심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n그러면 구약의 묵은 포도주와 신약의 새 포도주의 차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었으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냐고 반문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십니다.\n하나님께서는 결혼한 남녀가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율법에 이혼을 규정하신 것은 인간의 변질되고 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음행한 사실을 남편이 알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괴로운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함께 삶으로 인해 더 불행해져서는 안 되겠기에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해도 가하다고 규정해 놓았지요.\n따라서 묵은 포도주는 하나님의 근본 뜻인 사랑보다는 율법적인 틀에 매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면 새 포도주를 마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n누가복음 5장 39절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묵을수록 비싸고 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인정받지요. 세상에서 묵은 포도주를 귀히 여기는 것처럼 구약의 율법을 신약의 새 법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n대표적으로 예수님 당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 외에도 다른 규칙까지 만들어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에다 부수적인 규칙들을 만들어 지켰지요. 즉 안식일에는 음식을 만들 불도 피워서도 안 되고, 몇 킬로미터 이상은 여행하면 안 되며,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도 안 된다는 등 여러 규례를 만들었습니다.\n본래 하나님의 뜻은 뒤로하고 자신들이 안식일에 대해 만든 규정들을 지키며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새 법이 옛 율법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배척했습니다. 마치 묵은 포도주에 길든 사람들이 새 포도주를 싫어하는 것처럼, 자기적인 율법의 틀에 얽매인 이들은 예수님의 새 교훈을 싫어했습니다.\n이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합니다(마 23:23). 아무리 구약의 율법을 좇아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와 금식을 드린다 해도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십니다. 드러나는 행위만 옳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n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합니다. 세상 것을 취하고 남을 판단 정죄하며 미워하는 등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마음은 낡은 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욕심, 잘못된 지식과 틀 등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해야 하지요. 그럴 때라야 우리 마음이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n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으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묵은 포도주를 고집하지요. 하나님 뜻이 아닌 육신의 생각 속에 틀을 만들고 사랑보다는 율법에 매여 판단 정죄합니다.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가 쏟아져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구습을 고집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지요.\n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죄악을 신속히 벗고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아야 합니다. 진리와 선으로 마음을 변화시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n새해에는 말씀과 기도로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하신 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n따라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곧 예수님께서 때가 되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실 것을 나타내며 이를 믿는 사람은 죄 용서를 받고 구원에 이를 것을 뜻한다.\n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n지금부터 약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n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n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죄를 범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n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n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n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n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n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는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n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n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n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n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곧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n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n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n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n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n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n몰약은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n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n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그릇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한 데 주인은 어떤 것을 골라 쓰겠습니까?\n영적으로 용도에 맞는 그릇이 된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이면 주의 종, 교사면 교사, 찬양 사역자면 찬양 사역자의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기술직이라면, 더 나은 기술들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명이든지 가장 기본적으로는 영적인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곧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를 쌓아야 하지요.\n다음으로, 주인의 손에 맞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달란트가 뛰어나고 능력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으로 가는 것인데 자기 뜻대로 서쪽으로 간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n마지막으로,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깨끗한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이란,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된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기왕이면 많이 담아지는 큰 그릇이 좋고, 귀한 금그릇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큰 그릇이라도 씻지 않아 더럽다면 쓸 수가 없습니다. 성결되어 깨끗한 그릇이 되는 만큼 사명 감당할 능력도 더 받을 수 있고, 순종도 더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n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n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ㅇㅣ루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이므로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힘과 능력은 죄를 버리고 성결된 만큼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성결되어 영적인 힘이 있는 일꾼들을 항상 찾으십니다.\n성결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뤄야 할 본분입니다. 특히 직분을 맡은 일꾼이라면 성결에 대한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노력한다 했는데 더디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n막연하게 성결되고 싶을 뿐, 낱낱이 자신을 해부하여 죄를 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결되게 해 주세요, 죄 버리게 해 주세요, 선한 마음을 주세요.” 하면서 막연하게 기도한다면 변화가 늦습니다. 어떤 죄가 있고 어떤 악한 마음이 있는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n습관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육의 속성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싫게 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비슷한 상황이 와도 절대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늘 근신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하나 버려 나가면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모습이 달라집니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발견한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견해서 버리기로 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데, 버리는 작업을 어느 정도 하다가 맙니다.\n어떤 계기로 모르고 있던 자신의 비진리를 발견한 것도 큰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왜 그런 비진리가 자기 안에 심어졌는지 성령께서 과거를 떠올려 주시며 깨닫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깨우침이 올 때나 또 그것을 회개할 때는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마치 그 순간에 다 버리고 변화된 것 같지요.\n그러나 한 번 회개했다고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잡초를 제거할 때 뿌리를 남겨두면 금방 다시 자랍니다. 죄성도 발견하여 한 번 회개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의 죄성까지 뽑아야 하지요. 다 뽑아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발견되는 것이 너무 많다면 그중에 큰 뿌리부터 먼저 뽑아야 합니다. 큰 뿌리가 뽑힐 때 많은 잔뿌리도 함께 뽑혀나가지요. 자기 안에 가장 크고 버리기 어려운 것 몇 가지만 집중적으로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쉽게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n이 경우는 자신에게 어떤 비진리가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스스로도 속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의와 틀을 깨지 못하므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n한 일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화평을 깨는 일이 생겼지요. 내 고집과 자기주장이 상대에게 부딪힐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럴 때도 자기 틀과 의가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랬으니까,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n그러나 정말 화평을 깨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자기가 더 옳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에 맞춰 줍니다. 때론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지요. 더구나 윗사람이 지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지으라는 명령이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아니고 죄가 아니라면” 먼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라는 것입니다.\n내가 더 옳기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화평을 깨도 좋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내가 너무나 이것이 하고 싶기 때문에 윗사람이 “그러지 말라” 해도 여전히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윗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화평을 떠나서 기본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변명만 합니다.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화평하고 싶지만 상대에게 맞춰 줄 수는 없다” 합니다.\n이는 진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머리로는 화평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는 화평을 깨도 할 수 없다”라는 마음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혀로만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나는 화평하려고 했다”고 스스로를 좋게만 생각하므로 신속하게 성결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n이사야 6장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성결된 사람을 찾고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고, 불같은 기도를 통해 발견된 모든 비진리의 뿌리까지 뽑아냄으로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n그릇의 재질은 사람의 중심과 연관되며, 그릇의 크기는 진리에 속한 것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는지와 상관이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n그러나 타고난 그릇이 작거나 재질이 좋지 않다 해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성결을 이루어 곧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인에게 쓰임 받을 수 있고, 또 마음 씀을 넓히고 그릇을 키워 더 큰 일들을 감당해 갈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는 만큼 그릇의 재질도 바뀔 수 있다.\n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배우고 그 요령을 좇아 응답의 열매를 딸 때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며 응답이 더뎌도 낙망치 않고 더욱 뜨겁게 간구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n어떤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찾아와 원한을 풀어 달라 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뇌물을 바랐지만 과부는 너무 가난하여 그것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과부가 자주 찾아가 간청하였더니 얼마 동안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과부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간청할 것을 생각하니 의롭지 못한 재판관일지라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n예수님께서는 응답의 비결을 깨닫게 하고자 이 비유를 들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그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떤 문제에 응답받고자 작정하여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어찌 신속히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n시편 50편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할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셨으니 기도에 응답이 없을 리 없습니다.\n단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거나, 기도 양이 부족해서, 또는 아직 때가 아니므로 응답이 오지 않은 것뿐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인내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도록 회개의 은혜를 주어 응답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의 양이 차서 받을 만한 때가 되었을 때에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낙망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n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충만함도 잃게 되니 하나님과의 교통이 점점 끊어져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마치 자주 대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 하나님 뜻을 깨우쳐 그 뜻대로 살게 되니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습니다. 또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둠의 세력, 곧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엡 6:12). 그럴 때 하나님 능력과 권세에 힘입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n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빈 들이나 산, 어디에 계시든지 기도했고 새벽이나 밤중, 어느 때든지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 뜻대로 행했습니다.\n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하고 격려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므로 기도 쉬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면 육신의 생각이 틈타고 하나님 뜻을 좇지 못하므로 어려운 문제가 닥치거나 형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멀리하는 요인이 됩니다.\n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고,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지 말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범사에 형통함을 입어야 하겠습니다.\n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항상 기도하되 낙심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둡니다. 만약 농부가 씨앗을 심고 조급해하며 땅을 파헤친다거나, 싹이 났어도 정성껏 가꾸며 기다리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n기도 역시 응답받기까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조국의 장래를 이상 중에 보고 세 이레, 즉 21일 동안 슬퍼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첫날 듣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응답을 가져오는 천사를 방해하였으므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고 그는 천사가 깨닫게 해 주므로 그때서야 하나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단 10:12~14).\n다니엘은 이상을 보고 근심하여 힘이 없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이같이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보내 응답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온 천사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한 것입니다.\n여러분은 어떠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십니까?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그는 자기가 본 이상을 깨달으려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여 좋은 떡을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않으며 기름을 바르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작정하여 기도하니 하나님은 첫날부터 듣고 응답하신 것입니다(단 10:1~12).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듣고 첫날에 응답하셨으나 그에게 응답이 오기까지는 21일이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n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루 이틀 기도해 보고 응답이 없다며 쉽게 낙심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믿음이 적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듣고 분명히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n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는 분이십니다(렘 5:24). 그러므로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n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만약 응답이 없다고 낙망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므로 응답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믿음이 있다면 현실을 보지 않고 항상 기도하며 결코 낙망치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n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신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과 인내로써 간구하여 항상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n만약 집안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면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금식한 후에 능력자를 청하여 예배드리고 물리치면 즉시 귀신이 나갑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먼저 가족이 우상을 섬긴 것이나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한 것 등 하나님 앞에 담이 되었던 것을 철저히 돌이킨 뒤에 한마음으로 금식해야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질병에 걸리기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은 이유를 알아서 회개하고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n이 외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먼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금식해야 합니다. 어떤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담이 된 것이 있다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기도하고 금식할 때라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n우리가 죄를 버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면서 어떻게든 진리로 변화하려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형제와 걸려 불편함과 미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금식을 한다면 이런 것은 회개 금식도 될 수 없습니다. 회개 금식은 자신의 목숨을 드려서라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겸비한 행함인데 마음에 악을 품고 한다는 자체가 이미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회개하고 온전히 마음의 악을 벗어 버리기 위해 기도해야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마음에서부터 미움이나 감정을 버릴 수 있습니다.\n어떤 사람은 금식을 하니 힘들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금식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금식하면서 올려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향입니다. 즉 곡기를 끊고 생명을 다해 드리는 중심의 기도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하는 동안에는 할 수 있으면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며 평소보다 더 많이, 더 불같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더구나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금식에 들어가기 전에도 충분히 기도를 쌓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금식 중에는 하루에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 부르짖어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장기간 곡기를 끊을 때 몸이 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금식할 때에는 기도를 통해 강건함과 능력을 받습니다. 이때 기도의 내용은 육적인 제목이나 개인적인 소원이 위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또한 교회와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n이사야 58장 3~5절에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n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주고받다 보면 무익한 말이나 악한 말이 나오고 농담도 나옵니다. 금식 중에 주변 사람과 다투어 마음이 상하고 혈기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 은혜를 구하는 지극히 겸비한 행함입니다. 그런 만큼 마음과 뜻과 힘, 정성 다해 하나님 뜻 가운데 행하며 정녕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금식을 드려야 합니다.\n일반적으로 단기 금식을 할 때에는 일상적인 집안 일이나 직장 일을 병행합니다. 온 집에 충성해야 하니 그렇게 하지만 장기 금식일 때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장기 금식하는 동안에는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세상 것을 접하지 않고 온전히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며 근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n이렇게 근신하고 절제하면서 금식할 뿐 아니라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마음에 요동 없이 오직 진리 안에 서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금식, 곧 형제에게 선을 행하는 가운데 드리는 금식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사 58:7).\n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금식을 하면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으로 금식한다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는 해야 합니다. 금식을 하고 그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절제의 능력이 생길 뿐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더욱 강건하며 영이 맑아집니다.\n어떤 사람은 “나는 건강하여 소화가 잘되니 굳이 보호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호식을 온전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위가 연약한 사람이라도 튼튼하게 하고 사소한 질병도 그 기간에 치료해 주십니다. 아무리 금식을 잘했어도 보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만큼 기가 빠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n보호식 중에는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힘든 일을 피해야 합니다. 혹 금식한 뒤에 시험이 찾아올 수도 있으므로 금식할 때 미리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기뻐 받으셨을 때에는 보호식도 잘할 수 있도록 주관하십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은 먹지 않도록,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절제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절제하여 아름답게 드리는 보호식까지도 온전한 금식에 포함됩니다.\n보호식을 할 때 과식하면 얼굴이 붓고 위에 부담이 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보통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지만 미음이나 죽으로 보호식을 할 때에는 한 컵 정도의 적은 양으로 네 번에 나누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육류, 계란, 빵, 음료수, 기름기가 많은 음식, 매운 것, 짠 것, 단 것, 신 것 등 자극적인 음식이나 화학조미료, 향신료는 피하고 가급적 채식을 하는 것이 좋지요.\n3일 금식을 한 뒤에는 처음부터 묽은 죽을 먹어도 되지만 장기 금식을 한 후에는 위장이 아기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틀 정도는 거의 물처럼 묽은 미음을 하루에 네 차례 정도 마셔야 하며, 과일은 사과 한쪽 정도 즙을 내서 마시되 하루 네 차례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부터는 미음을 조금씩 진하게 끓여 마시고, 점점 쌀가루나 익은 호박을 넣은 묽은 죽이나 콩나물 죽 등으로 이어 가며 양도 조금씩 늘려 갑니다.\n반찬은 육류는 피하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말아야 하며, 굳이 고기를 먹고 싶다면 생선류를 조금 먹되 간은 싱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고춧잎이나 들깻잎, 무 잎, 배춧잎과 같은 야채에 멸치를 넣어 끓인 것이 좋고, 특히 들깨를 갈아 껍질을 벗겨 내고 쌀죽에 섞어 끓여 먹으면 기가 빨리 회복되고 건강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n이렇게 절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보호식을 하면 붓지도 않고 피부색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됩니다. 이처럼 금식에 이어 보호식까지 잘 마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금식이 되어 신속한 응답을 체험합니다.\n우리가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작정하여 기도하거나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금식한다 해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 금식을 하고도 응답이 없고 여전히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금식을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지요.\n성경을 보면 금식기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길을 예비하였고, 모세의 40일 금식은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에스더는 3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민족 전체가 멸망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고 오히려 대적을 멸함으로써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그 밖에도 죄를 범하여 멸망할 위기에서 금식을 통해 용서받기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 만큼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더 신속하게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지요.\n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는데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간절히 구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따라서 질병 치료를 위해 금식했다면 반드시 치료의 응답이 와야 하고, 시험 환난 때문에 금식했다면 그것이 물러가야 합니다. 축복이나 권능을 놓고 금식했다면 축복이 임하고 권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지요.\n성경을 보면 40일, 21일, 3일 금식 등이 나오는데 그에 합당한 금식의 제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40일 금식은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며, 개인의 유익이나 사업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우, 구세주로서 큰 사명을 이루기 위해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한 금식은 하나님 백성을 위해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큰 사명을 위한 것이었지요.\n에스더의 경우, 자기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으니 장기 금식을 해야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민족과 더불어 단 3일을 금식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응답받을 문제가 있을 때에도 그저 불같이 기도하는 것만으로 족한 경우가 있고, 3일만 금식하거나 길어야 7일 정도면 족함을 알아야 합니다.\n회개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돌이키면 족한 경우가 있고 금식을 해서라도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기도를 쉬었다 해서 10일이나 21일을 회개 금식 한다면 합당치 않습니다. 앞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면 되지 장기 금식을 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n그런데 육체의 일을 행한 경우라면 먼저 철저히 통회자복을 한 뒤에 회개 금식을 해야 합니다(갈 5:19~21).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로 인한 담이 가로막고 있으면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n또한 마음에 여전히 죄를 품고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3일을 금식해도 회개하여 완전히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21일 금식을 해도 돌이키려는 마음 없이 금식만 했다면 받지 않으십니다.\n특히 장기 금식은 반드시 성령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해야 합니다. 주의 종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이루고자 권능을 사모하는 사람 중에는 장기 금식을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아무리 40일, 그 이상을 드린다 해도 권능을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n고린도전서 14장 1절을 보면 은사를 구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서 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물며 권능을 받으려면 합당한 그릇을 준비한 다음에 구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도록 성결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장기 금식을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n아직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뜨거움과 열심으로 금식을 작정한 것이라면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응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사모함이 있다 해도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그릇을 준비하는 기도와 금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에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금식하면 응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n장기 금식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니 목적과 기간, 그리고 시기가 과연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서 정한 것이라면 목자도 동일한 주관을 받을 것이니 기꺼이 금식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이며, 그럴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n그래서 목자와 상담해야 하고 또한 교회 측에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장기 금식 기간에는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므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양 떼를 관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교회 측에 상의도 없이 임의로 장기 금식을 결정해 버린다면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지요.\n우리가 하나님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육의 질서를 좇아 행해야 합니다. 몸도 쉬어야 할 때에는 쉬고 과식이나 폭식 등을 삼가야 하듯이 금식도 절제 없이 무리하게 할 때에는 몸을 상하게 하므로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장기 금식의 경우, 마음에 주관이 왔다 해도 먼저 건강을 잘 관리하여 충분히 준비된 상황에서, 또 영적으로도 기도를 잘 쌓은 기반 위에서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n금식은 육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곡기를 끊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구나 장기 금식은 실제로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반드시 성령의 주관 가운데 해야 하며, 또 성령의 주관을 받았다 해도 신중히, 하나님 앞에 준비된 자세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영육 간에 합당한 질서를 좇아서 드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금식이 됩니다.\n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했으니, 비진리의 마음으로 금식한다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n물질의 축복을 구할 때에도 믿음이 아니라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금식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의 축복 분야도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심을 때에 응답받는 것입니다. 또 크게 심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적 축복을 주기 원하므로 때를 기다리시지요.\n영적으로 여러 은사를 구한다 해도 먼저 마음에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안이 열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의 세계를 사모하며 마음을 정결케 하고 기도해야지,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으면서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n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중심으로 불같이 기도하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식으로 인해 몸이 상하기도 하고 오히려 금식 후에 교만해져서 사단의 역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 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목으로 금식하며 바른 마음으로 구하는 것인지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n바사 제국의 왕후였던 에스더는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절시키려 하는 위기 앞에서 잠잠히 있으면 평안할 수 있음에도, 살아도 죽어도 자기 민족과 함께하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3일을 금식하고 담대히 왕에게 나아갔다(에 5장).\n에스더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멸절의 위기에서 구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n“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각 사람이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지요(유 1:20).\n그렇다면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며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과 뜻을 가지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를 행하면 기뻐하며 죄 가운데 행하면 애통해하시는 등 독립적인 인성을 가지셨지요. 이러한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마음이 하나 되어, 곧 두 마음이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n이런 합심기도를 드릴 때라야 주님이 우리 기도에 함께하시며 신속히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기도를 하려면 성령의 마음을 알아서 성령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곧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와 죄악이 없어진 만큼 성령께서 우리를 밝히 주관하고 음성을 들려 줌으로써 그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 순종해 나갈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으며 우리 마음과 성령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n성령으로 기도할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에 따라, 또 하나님 방법대로 이룰 수 있도록 진리로 기도하지요. 이렇게 기도할 때에 이것이 영적 의미의 합심기도이며, 그 기도의 위력과 역사하는 힘이 큰 것입니다.\n하나님께서 합심기도를 기뻐하고 속히 응답하며 크게 역사하시는 까닭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내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한다면 엘리야처럼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n두 사람 이상이 모여 어떤 일을 계획하고 의논할 때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의견이 분분하다면 그 일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혼자든 둘이든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과 마음이 하나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응답받는 데 중요한 관건입니다.\n그러니 합심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과 충만을 받아 기도해야 합니다(엡 6:18).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지녔으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고전 2:10)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는 분입니다(롬 8:27). 그러므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하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n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였거나 꾸준한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을 기도하고자 해도 억지로 생각을 짜내며 힘들어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 속에서 임의대로 하는 기도는 생각의 기도, 혼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성령의 충만함도 없고, 쉽게 잡념이 틈타거나 피곤해져 졸음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없고, 중언부언하며 기도 후에는 자신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n이러한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혼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낙망하는 까닭은 혼의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외면한다는 것은 아니며, 듣고 계시지만 응답하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n어떤 사람은 ‘나는 성령의 감동함을 받지 못하니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기도라도 열심히 부르짖을 때 기도 문이 열리고, 능력을 받아 영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예 기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혼의 기도라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며, 때가 되어 기도 문이 열리면 성령과 연합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게 되고 예전에 쌓아놓은 것까지 모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n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하여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지요.\n그러나 각 사람이 마음을 모으지 않는다면 목표를 정해 놓고 한다 해도 중심을 다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에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사회자는 찬송을 충만히 부르게 하고 회개케 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영으로 기도하면 조금도 피곤치 않고 졸음이나 잡념도 틈타지 못하며 믿음과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주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n사도행전 12장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출하셨습니다.\n헤롯이 베드로를 잡아내려 하던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서 쇠사슬에 매여 잠들었고 파수꾼들은 문 밖에서 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를 얽어 맨 쇠사슬이 벗겨지고 굳게 잠긴 쇠문이 저절로 열려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행 12:1~10).\n베드로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 이를 때까지 그곳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이 기적의 역사는 합심기도의 위력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를 위해 교회가 한 일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뿐이었습니다.\n이처럼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성도들에게 아픔이 있을 때에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심기도를 기쁘게 받고 응답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n물론 기도하는 사람의 수만 많다고 해서 합심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같은 성령의 주관을 받으며 동일한 목적을 갖고 열심으로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한자리에 모여 있어도 중언부언하고 잡념과 졸음 속에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없지요. 합심기도란 말 그대로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기 위한 구심점은 바로 성령이며, 모든 사람이 성령의 주관에 따라 하나 되어 기도할 때라야 참된 합심기도가 됩니다.\n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성령 충만함으로써 영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고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힘써 함께하여 합심기도의 위력을 체험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귀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n2.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 )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 )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신다.\n또한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나 되었으며(행 2:41) 사도들을 통해 갖가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더해졌고 성도들 삶이 변화되었다(행 2:43~47).\n이같이 합심기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임하고, 눈먼 사람이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갖가지 질병을 치료하며, 귀신을 내쫓음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n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n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n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n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n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n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n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n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n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n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n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n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n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n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n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n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n“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n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n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n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 중에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면 응답을 받아 즐거워하며 찬송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약 5:13). 또한 병든 사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거나(약 5:14)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n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분류된다 했는데 육적 믿음은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믿는 것이므로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반면 영적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과 기사와 표적을 체험합니다.\n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했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하셨습니다.\n과연 어떻게 해야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을 옳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모든 생각과 이론은 다 깨뜨리고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n믿음에도 분량이 있어 사람마다 다릅니다(롬 12:3). 처음에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지만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면 영적 믿음이 성장합니다. 영적 믿음이 커지는 만큼 표적도 따릅니다(막 16:17). 병든 자를 일으키는 기도는 이러한 영적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곧바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5~13).\n또한 담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기도할 때에 더욱 크게 역사하십니다. 서로 죄를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면(약 5:16) 혹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과 영적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n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n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n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라면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진리를 좇아 행함으로써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인정하며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n누가복음 18장 2~8절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억울한 사연을 지닌 과부가 끊임없이 간청하니 그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하셨습니다.\n그런데 주변을 보면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하며 금식하는 것 같은데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일에 충성한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집에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어찌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주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셨습니다.\n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좇아 구하게 하고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1~11). 은사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므로 성령의 주관 속에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의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요.\n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각각 하나님께 쓰이는 분야가 달랐습니다. 크게 능력을 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행함은 없이 예언만 하거나 가르침만 베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갖출수록 큰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n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쳐 죽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단을 거치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자 큰 권능을 받아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n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약 5:17~18). 또한 그의 기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n이같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정녕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갖가지 은사와 권능을 주어 큰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갓 구원을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데에서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만큼 더욱 온전한 의인이 되어 갑니다.\n우리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하는 만큼 의인이 되는 것이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정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며, 의인의 간구를 올림으로 항상 형통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n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이게 한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말하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n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였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일곱 번을 기도하였으니 능히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졌다.\n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함께 기도하려고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n이는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 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n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입니다.\n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n성경을 보면 육, 육신,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 비슷한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영적인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이란 영과 반대되는 썩고 변하는 것을 총칭합니다. 진리로 변화되기 전 인간이나 식물, 동물 등 세상 모든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반면 영은 영원한 것이며 진리요, 참을 말합니다.\n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자범죄’라 합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합니다.\n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의 ‘육신’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으로 거짓, 시기, 질투, 미움 등 아직 행하지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육신의 일이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육체의 일’(갈 5:19)이라 합니다.\n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것은 성령 받기 전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n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정도로 담대하였습니다. 이전의 연약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하고 권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지요.\n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의 질고와 가난, 연약함까지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문제가 해결되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n간혹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육신이 약해서’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은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밖에서 밥을 사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n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약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던 성도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철야예배에 나와 한밤을 충만하게 하나님께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n그러므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신이 약하여 기도를 못한다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n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하였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n만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면 먼저 나무를 흔들어 볼 것입니다. 나무가 굵고 뿌리도 깊어서 도무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골라 흔들겠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흔들리며 뽑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한번 뽑아 보자.’ 하며 더욱 세게 흔들 것입니다.\n마찬가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 올 때 전혀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가져와 어떻게든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별하여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나가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n예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모든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의 힘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40일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으며 공생애 중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여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기 때문에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결국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n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하시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 6:13)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n이와 같이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옳은 길을 가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 마귀 사단이 범접하지 못합니다.\n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n1.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 )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 )라 한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 )이라 한다.\n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n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n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n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말씀합니다.\n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n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n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n야고보서 1장 13~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입니다.\n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1~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오직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n따라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에 들지 않으며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는 영이 살기 위해 반드시 영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n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에 살아나는데 이때의 영적 상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영이 자라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압니다.\n아이들은 곧잘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곤 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시작’ 하면 숨 쉬기를 멈춥니다. 처음 한동안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견디지 못하고 숨을 내쉽니다.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n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영의 호흡인 기도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그다지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집니다. 그 원인을 깨달아 즉시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니 다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계속 쉬면 마음이 더욱 곤고해지며, 중단한 시일이 오랠수록 다시 기도하거나 충만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숨을 쉬듯 습관을 좇아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n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살아 있는 영, 즉 생령이 되게 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하여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니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n사랑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n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n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 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대비케 하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n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세상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 가운데 살아가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죄를 짓는 만큼 사단이 송사하므로 시험에 빠지며 보호받지 못합니다.\n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n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범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n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시험을 받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 시험을 이길 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n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했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하셨습니다.\n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배우고 입력시켜 놓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며 진리에 순종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해 주십니다.\n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사고,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정립시켜 놓은 논리를 말한다. 이론은 각 사람의 체험과 생각,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론을 낳으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n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요령 중 첫째로,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n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던 모습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셨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요.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시며 응답을 약속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n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줄 알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거나 밤에 집에서 기도할 때에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입니다.\n교회 역사상 가장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난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n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그만큼 간절한 중심으로 소리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하고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므로 응답을 받고 나아가 신령한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n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까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59~60) 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성령이 행하시는 권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명령이며 땀을 흘려야 소산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땀 흘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n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 굳이 부르짖어 구해야 하는가?” 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였는데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 반문하기도 합니다.\n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보십시오. 골방과 같이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면 세상 사람과의 대화나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음으로써 외부와 차단되듯 기도할 때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 근심 걱정을 끊어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n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길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큰소리로 기도하자 예수님은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많이 하는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직 우리 중심과 모든 형편을 아시며, 구하는 바를 다 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마음과 중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n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n이렇게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와 싸워 버림으로 주님 모습을 닮아가고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한 믿음에 이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하신 말씀이 온전히 임합니다.\n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n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되어 능력 있는 믿음이 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n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합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하므로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회의하며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을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n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n“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신 말씀대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됨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간절한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n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소유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단지 습관을 좇아 한다면, 겉으로는 사랑의 기도 같으나 실제로는 아닌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 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마음에 온전히 영적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n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n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상대에 대한 영적 사랑이 있다면, 상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지요.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에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원하는 목자의 간절한 마음, 영혼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사랑의 기도가 됩니다.\n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져 마른땅으로 건너는 체험을 하고도 수르 광야를 지날 때 물을 얻지 못하자 모세를 크게 원망하였다. 이에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종 모세를 비방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린 사건이 나온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n누가복음 22장 39∼44절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자세와 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기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질 수 있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또 어떻게 하나님의 사자가 도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셨을까요?\n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나님 뜻을 알려 주시며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흔히 기도하고 싶을 때나 해결할 문제가 있을 때에만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고,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n이처럼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계속하면 위장이 상하여 점차 몸이 쇠약해집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공급하지요. 따라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여 육적인 힘을 공급받듯이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써 영적인 힘이 끊이지 않고 공급되도록 해야 합니다.\n반면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결국 마음을 지킬 수 없으므로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시고,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축적된 영적인 힘이 있으므로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n그러니 예수님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구하는 새벽기도나 일과를 마친 후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밤 기도는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므로 큰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n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게 됩니다. 또한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무릎 꿇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솔로몬왕도(왕상 8:54), 사도 바울도(행 20:36), 스데반 집사도(행 7:60) 마찬가지입니다.\n우리가 부모나, 이 세상의 권세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구할 때에도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삼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자세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n물론 성전 의자에 앉아 하는 경우와 같이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릎 꿇고 기도하는 노력을 하면서 시간을 늘려 가면 나중에는 1~2시간 무릎 꿇고 해도 힘들지 않습니다.\n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을 알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좇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신 것입니다.\n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구하기 때문에 정작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한다든지,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합니다.\n이러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라 할 수 없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니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약 4:2~3). 그러므로 응답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되심을 믿기에 어떤 결과가 온다 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n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유월절 즈음의 밤 날씨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겠습니까?\n왜 이렇게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까요? 창세기 3장 17절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저주를 받기 이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풍족하게 살았으나, 불순종하여 죄가 들어오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기고 땀 흘려 수고해야만 소산을 먹게 되었다는 뜻입니다.\n세상에서 얻는 것도 이처럼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얻으려면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그러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n중심의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바른 자세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한다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충만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녀를 바라보고 그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심에서 기도가 나오지요.\n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내 편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n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항상 중심의 기도를 하여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바랍니다.\n불의 응답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킨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2)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3년 반 동안 타는 가뭄 끝에 큰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냈다.\n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다 보니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받아 저절로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켜 응답받고 크게 영광 돌릴 수 있다.\n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난, 질병과 연약함 등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생명까지 내어 주셨지요. 이처럼 오직 영혼들을 위해 사신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천국 소망 가운데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n그런데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분이 계신지요? 살아가면서 어떤 시험 환난을 만났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신앙을 잘 점검해서 그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도록 이미 모든 조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 환난도 만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n에스겔 36장 3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셨습니다.\n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이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을지라도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n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 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n하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 자세이지요.\n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 전혀 장애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살던 왕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대치하고 있었지요.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으나 여호수아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나아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진멸했습니다.\n또한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지요. 그 적군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여호수아 11장 4절에는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라고 기록돼 있습니다.\n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연합군의 힘이 강했는지 알 수 있지요. 여호수아가 만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두려움으로 인해 낙심하며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결과는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n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n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듯이 믿음 안에서도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응답의 열매가 다릅니다.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n그런데 많은 사람이 믿고 구하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어도 아직 응답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열매를 거둘 줄 믿지만 즉시 수확하지는 못합니다. 종자마다 열매 맺는 기간이 달라서 참외나 수박은 1년이 채 안 되어 수확할 수 있지만, 사과나 배, 인삼 등은 수년이 지나야 비로소 열매 맺습니다. 오랜 시간 인내한 만큼 수확의 기쁨도 크게 마련이지요.\n이같이 우리가 응답받는 데에도 심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혹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든 모든 것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n어떤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했다면 때가 이르러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기도했다 하여 즉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키고 그 후에 응답해 주십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기도한 대로 잡념 없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십니다. 열심히 행하는 만큼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시지요.\n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치료되는지,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발견하여 회개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미움으로 인해 병이 왔다면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하며, 과식 때문에 병이 왔다면 절제할 수 있는 힘을 받아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을 주시고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킨 뒤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n사업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경우에도 다를 바 없습니다. 사업을 통해 축복받기를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축복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연단하십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어 사업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고 사업이 확장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도움의 손길을 통해 거래처도 늘어가게 하시지요. 그리하여 때가 이르면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n이같이 심고 가꾸는 과정을 거쳐 영혼이 잘되게 하고 연단하여 받을 만한 그릇이 되면 무엇이든 구하는 바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조급해하지 말고 의심하지도 말아야 하지요. 오직 하나님 생각에 맞추어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으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n하나님은 영계의 법칙을 좇아 공의 가운데 응답하시는 분이며 그의 자녀가 믿음으로 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신 것입니다(히 11:6).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매우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n히브리서 11장 5절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n에녹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빛 가운데 살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녹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땅에서 300년간이나 동행하다가 일찍 곁에 두고자 수명이 다하기 전에 하늘로 옮기셨지요.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한 에녹에게 이 땅에서도 얼마나 넘치도록 부어 주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습니다.\n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기 앞서 열두 명의 대표자들을 보내어 40일간 가나안 땅 곳곳을 정탐하게 하셨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n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n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n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n갓 시집 와서 살림이 아주 서투른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랴, 살림하랴 하루하루가 벅찼습니다. 특히 맛있게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녀가 버겁다, 힘들다 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어 주시고 부족한 부분도 어여쁘게 바라봐 주시는 시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n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진밥을 해 놓으면 “얘, 아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진밥이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 된밥을 할 때면 “아가야! 진밥도 좋지만 때로는 된밥도 먹기가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n또 어느 날은 밥 속에 돌이 들어 있었는데도 며느리 모르게 휴지에 싸서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돌이 있다며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민망하게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쌀에 돌이 있는 것 같다며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매사에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시는 시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 섬기고 배려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n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n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말씀했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n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n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n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나와 화평을 깬다.” 할 때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닌데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n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n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화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n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n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n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n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위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회의는 지난 7월 출범한 경기도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업무보고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의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임시회에 상정된 안건처리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1,380만 경기도민 여러분께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우리 위원회에서는 도민 복지와 민생경제 회복에 초점을 두고 모든 위원님들이 한마음이 되어 지혜를 모으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n회의에 앞서 안내말씀드리겠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위원회 윤용수 위원님께서 코로나 확진으로 인하여 신병치료 중입니다. 빠른 쾌유와 건강한 복귀를 기원합니다.\n오늘 의사일정은 경기도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업무보고와 경기도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균형발전기획실, 자치행정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경예산안 등 2건의 안건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업무보고는 남부경찰위원회,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순으로 받도록 하고 제3회 추경예산안은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는 일괄 심의하고 균형발전기획실과 자치행정국 순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위원회 소관 전체 예산안에 대한 의결은 다음 주 9월 6일 회의 종료 후 위원님 간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n1. 경기도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업무보고\n(10시04분)\n○ 위원장 김판수 그럼 의사일정 제1항 경기도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업무보고의 건을 상정합니다.\n김덕섭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나오셔서 소속 간부소개와 함께 업무보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입니다. 도민의 안전과 도정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는 김판수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을 모시고 경기도 자치경찰 발전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우리 남부자치경찰위원회는 경기도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n그러면 업무보고에 앞서 간부공무원을 소개하겠습니다.\n김병화 사무국장입니다.\n(인 사)\n남상은 남부기획조정과장입니다.\n(인 사)\n박진성 남부자치경찰협력과장입니다.\n(인 사)\n지금부터 2021년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 보고내용은 21년도 비전과 목표, 주요업무계획을 위주로 보고드리겠습니다.\n먼저 4쪽입니다. 2021년도 남부자치경찰위원회의 비전과 목표입니다. 새로운 경기, 안전한 세상, 도민과 함께하는 경기도 자치경찰이라는 비전으로 다섯 가지 정책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첫째 안정적인 자치경찰제 정착 지원, 둘째 도민과 소통ㆍ공감하는 자치경찰위원회 운영, 셋째 공정하고 든든한 경기인권경찰 구현, 넷째 도민이 체감하는 치안정책 발굴ㆍ지원, 다섯째 합리적인 인사운용 체계 구축이 되겠습니다.\n다음은 5쪽입니다. 주요업무계획입니다. 안정적인 자치경찰제 정착 지원을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자치경찰제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며 시행에 따른 홍보 또한 적극 추진하겠습니다.\n6쪽입니다. 자치경찰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습니다. 우선 자치경찰사무에 대한 지휘ㆍ감독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가 도 경찰청장을 지휘ㆍ감독하는 범위와 절차를 정하는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ㆍ감독 및 위임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고 자치경찰제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경찰청에서 폐지한 아동안전지킴이 운영규칙 등 5건에 대한 규칙을 제정하겠습니다.\n7쪽입니다. 경기도형 자치경찰제의 비전과 전략 수립을 위한 연구를 추진하겠습니다. 경기도 치안현황 분석을 토대로 남ㆍ북부 지역실정에 적합한 경기도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시책을 발굴하여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8쪽입니다. 자치경찰제 시행에 대한 도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버스 랩핑광고, G버스 TV광고를 실시하고 시군 행정복지센터에 자치경찰 홍보 포스터를 제작ㆍ배포하겠습니다. 또한 자치경찰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경기도 평생학습포털사이트 지식(GSEEK)을 통해 자치경찰제 동영상을 제공하여 도민 교육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n다음은 9쪽입니다. 도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남부자치경찰위원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n10쪽입니다. 자치경찰제 안착을 위한 자치경찰위원회 기반 조성입니다. 도민과 함께하는 위원회 운영을 위해 찾아가는 현장 주민간담회와 자치경찰제 도민 홍보를 실시하고 자치경찰위원회와 도ㆍ시군-도 경찰청 간 협력적 치안파트너십 형성을 위해 일선 경찰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을 추진하여 상호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n11쪽입니다. 남부자치경찰위원회 실무협의회 구성ㆍ운영입니다. 실무협의회는 국가경찰사무와 자치경찰사무 간 주요정책의 수립과 협력방안을 조정하기 위해 구성하여 운영됩니다. 실무협의회는 위원회 사무국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남부경찰청 경무부장, 자치경찰부장 등으로 구성하고 협의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안건 관련 유관기관 부서장도 참석을 요청하여 운영할 계획입니다.\n12쪽입니다. 경기도 자치경찰 정책제안 공모 추진입니다. 도민 정책공모를 통해 도민 의견을 수렴하여 도민이 원하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선정된 정책은 도와 도 경찰청 관계부서가 검토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n13쪽입니다. 공정하고 든든한 경기인권경찰 구현을 위해 공정감사를 추진하고 생활치안 확보를 위한 경찰서장 평가 등을 추진하겠습니다.\n14쪽입니다. 적극행정을 이끌어내는 도민공감ㆍ공정감사 추진입니다. 경찰공무원의 적극행정을 유도하고 자치경찰사무 추진의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기남부경찰청과 합동감사를 실시하며 경찰공무원의 개인비위 등 제보ㆍ민원사항에 대하여 복무감사를 실시하거나 경기남부경찰청에 감찰요구를 하겠습니다.\n15쪽입니다. 반부패ㆍ청렴문화 정착 및 인권가치 실현입니다. 31개 경찰서의 인권 진단을 통해 인권침해 예방교육과 제도개선을 실시하고 인권보호 역량 강화를 위해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겠습니다.\n16쪽입니다. 도민중심 생활치안 확보를 위한 경찰서장 평가입니다. 생활안전, 교통, 여성ㆍ청소년 분야 주요시책에 대한 정책추진의 노력도, 목표달성도, 정책홍보 등을 평가하여 경찰서장의 적극적인 지휘활동을 지원하고 경찰서별 자치경찰사무의 정책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n17쪽입니다. 도민이 체감하는 치안정책 발굴을 위해 주민밀착형 경찰활동을 전개하고 통학로 안전관리를 통해 아동 교통안전을 강화하겠습니다.\n18쪽입니다. 현장중심ㆍ주민밀착형 생활안전 경찰활동 전개 계획입니다. 치안서비스 향상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유관기관과 지역주민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순찰제도를 운영하여 위험요소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해소해 나가겠습니다.\n19쪽입니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협력강화 및 홍보 추진입니다. 아동학대 사건에 긴밀하게 대응하고 효과성 있는 학대 예방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공동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피해아동 전담의료기관이 확대되도록 협의해 나가겠습니다.\n20쪽입니다. 빅데이터 분석 및 현장진단을 통한 통학로 안전관리 계획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 보행량과 주행속도 분석을 통해 위험구간에 대한 무인단속 카메라와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등 교통감속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주민이 참여하는 통학로 안전진단으로 사고우려 구간의 교통여건을 개선하여 통학로 안전관리에 힘쓰겠습니다.\n21쪽입니다. 안정적 조직운영을 위한 합리적인 인사운용 체계 구축입니다.\n22쪽입니다. 효율적인 인사시스템 구축을 통한 안정적 조직운영입니다. 경기남부경찰청장과 자치경찰위원회의 임용권 충돌 방지를 위해 인사권 적용대상자 범위를 확정하였으며 자치경찰위원회의 임용권 범위를 확정하여 안정적인 인사운영을 추진하겠습니다.\n23쪽입니다.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관의 업무역량 강화입니다.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관의 고충해소를 위해 고충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경찰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하겠습니다. 아울러 업무 유공자에 대한 표창을 추진하고 이를 근무성적평정에 반영해 나가며 직무교육을 마련하는 등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관의 업무역량을 강화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n이상으로 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업무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남부자치경찰위원회)\n○ 위원장 김판수 김덕섭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 답변은 효율적인 의사진행을 위해 본질의는 10분 이내, 보충질의는 5분 이내로 제한하여 일문일답 형식으로 실시하고 추가질의는 별도 신청을 받아 진행하겠사오니 위원님들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n우리 위원장님께서는 의회에 처음 오시는 거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경찰사무와 관련해서는 평소 경찰 그쪽 출신이기 때문에 사무에 관련해서는 해박하실 테고 그다음에 저희 위원님들께서는 처음 접해본 거거든요. 그래서 위원님들이 질의하실 때 좀 더 상세하게 답변해 주시기를 주문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알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질의하실 위원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중현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국중현 위원 수고 많습니다. 안양 출신 국중현 위원입니다. 자치경찰이 생활밀착형 경찰서비스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시작이 됐는데요. 생활밀착형 경찰서비스 주요내용이 무엇무엇입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거를 단정적으로 뭐뭐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는 것 같고요.\n○ 국중현 위원 일반적으로 교통, 또 뭐가 있습니까? 생활밀착형이 일반적으로 강력범죄, 국가보안 이거 빼고는 다 포함되는 거 아닙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대강 그런 식으로 이해하셔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수사업무는 기본적으로 국가경찰사무고요. 그리고 자치경찰에는 제외가 됩니다. 그 이외에 여성ㆍ청소년, 교통, 아동 관련 문제.\n○ 국중현 위원 그렇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주로 경찰업무로 보자면 범죄 예방 그런 쪽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아마 쉬울 겁니다.\n○ 국중현 위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고서 6페이지 보시면 자치경찰체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제도 정비를 하시겠다고 이렇게 계획을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 필요성 부분에 자치경찰사무와 자치경찰위원회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19조에 따라 도 경찰청에 대한 지휘ㆍ감독 및 위임 범위를 위원회 규칙으로 제정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이거 구체적으로 설명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러니까 지금 자치경찰사무에 대해서 우리 자치위원회가 도 경찰청장을 지휘ㆍ감독한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그거를 갖다가 법에는 그렇게 제정이 되어 있는데 이거를 구체적으로 지휘ㆍ감독할 때에 어떤 절차와 어떤 내용으로 이렇게 할 것이냐 그 부분이 아직까지는 명확하게 규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위원회의 규칙으로 제정해 나가겠다 이런 말씀입니다.\n○ 국중현 위원 지금 현재 조직이 일원화돼 있어서 이제 이원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도 조례에 추가를 해서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지금 위원회 규칙으로 개정을 하겠다는 말씀이신데 위원회 규칙에 넣는다는 건 좀 약한 거 아닙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아니요, 일원화하고 이원화하고는 조금은 개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원화모델은 아시다시피 그 조직이나 인원 이런 게 경찰에 그대로 있으면서 그중에 자치경찰사무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 대한 지휘ㆍ감독을 위원회에서 한다 그런 의미거든요. 그래서 이걸 굳이 조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물론 도 경찰청하고 우리가 협의를 통해서 하겠지만 위원회 규칙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도 조례로 하는 게 과연 옳으냐 그런 것도 조금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n○ 국중현 위원 그래요. 이런 규칙을 정할 때 저희 위원회하고 좀 상담을 하고 또 소통을 해서 위원회와 우리 자치경찰위원회가 항상 소통이 되도록 그렇게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알겠습니다.\n○ 국중현 위원 저희 위원회에서도 자치경찰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알겠습니다. 위원님들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사전에 초안이라든지 이런 것도 보내드리고 자료도 드리고 하겠습니다.\n○ 국중현 위원 네, 이상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국중현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김원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원기 위원 의정부 출신의 김원기 위원입니다. 우리 김덕섭 위원장님께 질문합니다. 마침 처음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안정이 안 돼 있습니다. 일단은 저희들이 알고 있는 현실적인 사항으로는 자치경찰은 그 지역에 맞는 치안서비스를 해야 된다는 것이 원칙적인 겁니다. 그래서 가장 주민과 밀접한 것은 일단 생활안전 여기에 노약자를 포함한 아동, 청소년, 여성이 되겠죠. 그다음에 교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교통에 관련된 거 그다음에 지역사회의 소규모 축제라든가 지역사회 주민들을 보호해 주는 경비에 관련된 세 가지 업무를 일단 저희들이 자치경찰업무 사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산을 보니까, 아직 저희들이 예산심의하는 과정은 아니지만 일단 자치경찰이 업무를 수행하려면 거기에 걸맞는 어떤 사업이나 행정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그 사무나 행정서비스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이 수반되는 거죠. 그렇다면 경기남부자치경찰위원회에서는 경기남부에 있는 지역 주민들의 치안서비스를 위해서는 교통과 관련된, 청소년과 관련된, 생활안전과 관련된 이런 밀착형의 사업이 필요하다 해서 이 사업을 발굴해 낼 수 있는 그런 의지는 갖고 계신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예산 부분은 국비로 지원할 것인지, 지방비로 할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중앙에서 아직 정리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기로는 경찰청에서 2023년부터 지방비로 지원하는 걸로, 이렇게 연구용역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 그 세 가지 기능에 대한 예산 이 부분은 당연히 저희들이 그런 사업도 발굴할 것이고 앞으로 위원님들께 부탁도 드리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예산에 지방비로 한 29억 원 정도 도에다 요청을 해서 지금 도에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조금 아이러니한 문제입니다, 아직도 결론이 안 났기 때문에. 그렇다면 남부경찰자치위원회에 소관되는 일선 이하 경찰서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하 기관까지 이 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저희들이 발굴해 낸 사업이기 때문에 이것이 도비로 이루어진 사업 예산이 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경찰청에서 기존에 경찰서를 운영하기 때문에 내려온 국비를 가지고 운영하느냐 이게 굉장한 저희들은 관심사이고 이게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저희 의회의 소관 감사라든가 여러 가지 업무보고라든가 그것이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빨리 매듭이 되어야만이 명확한 행정의 책임 구분이 정해질 것 같아요. 맞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n○ 김원기 위원 그렇다면 저희들이 지금 아주 적은 예산이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사업이라면 자치경찰이 위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그 예산이죠, 현재는요. 그래서 일선 경찰서에서 자치경찰과 관련된, 업무와 관련된 예산은 아니고 자치경찰의 위원회 내부적인 예산 이게 정확히는 맞는 거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지금은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내년도, 당장 22년도 예산은 과거의 국가경찰 시절에 이렇게 국비로 예산 지원되던 그 부분이 자치경찰 쪽으로도 온 부분이 있거든요. 그게 202억 정도 되는데 그거는 그대로 집행을 하고 거기에다 플러스 해서 추가로 저희들이 개발한 몇 가지 사업에 대한, 자치경찰 사업에 대한 예산을 29억 정도 지금 요구하고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이게 국비로 내려온 사업이라면 기존의 경찰관들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거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습니다.\n○ 김원기 위원 그렇지만 이제 저희 경기도에 맞는 자치경찰사무에 관련된 사업예산을 또 경기도에서 만들었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찰관 한 명이 수행해 낼 수 있는 그 업무의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죠.\n○ 김원기 위원 늘어나다 보면 또 인력이 부족한 그런 상황도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그 인력이 충분히 사업을 수행해 내지 못하는데 사업비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우리 위원장님께서도 심도 있게 연구를 하셔 가지고 저희 경기도형 자치경찰의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궁극적인 목적은 전라남도라든가 경상남도나 거기에 있는 인구와 지역적인 특색과 경기도는 또 수도권이기 때문에 과밀도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니까 사업의 특성이 많은 변화가 있고 틀린 점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것을 구체적으로 연구해 주는 것을, 자치경찰위원회 내에서 그 사업을 좀 준비해 주셨으면 하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경기도형 자치경찰 사업 모델을 연구하기 위해서 경기연구원에다가…….\n○ 위원장 김판수 위원장님, 잘 안 들리니까 마이크를 좀 앞으로 해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경기도형 자치경찰 행정 모델, 사업 모델 이런 걸 발굴하기 위해서 경기연구원에 의뢰해서 경기도형에 맞는 그런 치안시책 이걸 지금 연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자치경찰사무에 맞는, 경기도형에 맞는 그런 사업도 개발하고 또 위원님들께 그런 필요한 예산도 부탁드리고 하겠습니다.\n○ 김원기 위원 일단은 지금 처음 시작하기 때문에 저희 도민들과 위원님들은 많은 관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처음 시작이 힘들지만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부탁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잘 알겠습니다.\n○ 김원기 위원 본 위원은 여기까지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김원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천영미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천영미 위원 안산 출신의 천영미 위원입니다. 먼저 위원장님 되신 것 축하드리고요. 우리가 자치경찰제라고 하면 아직도 도민들이나 시민들은 이게 와닿지가 않거든요. “그게 뭔데?” 이런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게 된 궁극적인 목표가 어찌 됐건 주민들하고 밀착형의 생활안전 경찰활동을 하고자 하는 게 주잖아요, 사실은. 그렇게 분리를 해서 하자고 했던 거기 때문에 제가 한 가지 조금 당부를 드리고 싶은 것은 아까도 무슨 경기도형을 만들기 위해서 경기연구원에다가 용역을 위탁하셨다고 하셨는데 가장 시급한 것은 지자체하고 거기에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마다 보면 통장협의회도 있고 주민자치회도 있고 많은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런 단체들의 의견을 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시군하고의 계획이 지금 서져 있는 게 어떤 게 있나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앞으로 간담회도 하고 의견수렴도 하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참고가 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데는 사실 자치경찰 이런 거도 굉장히 옛날부터 해 왔고 아주 훈련이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거 고려ㆍ조선 시대부터 해서 지금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 체제였거든요. 그리고 치안에 대해서도 국가경찰서, 국가에서 당연히 해 주는 걸로 생각하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러고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이제 자치경찰제가 도입이 됐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도민들께서도 자치경찰이, 자치경찰이 되었다는 거는 도민들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이렇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치경찰위원회가 어떤 의견수렴을 물론 적극적으로 하겠습니다마는 그런 것도 있지만 각 주민들께서 우리 동네에는 이러이러한 치안 불안요소가 있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좀 치안을 해 달라 이렇게 많은 참여와 요구 이런 게 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훈련이 되고 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렇게 돼야지 자치경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n○ 천영미 위원 그렇죠.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경찰 하면 일반 시민들은 어렵고 불편한 대상이었지 편안한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 자체를 경찰위원회에서 우리가 해야 된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먼저 다가가고 우리가 먼저 문을 열어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주민들하고 그 지역에 맞는 현안, 우리 지역은 뭐가 강화가 돼야 된다 이런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을 하기 위해서는 자치경찰위원회가 먼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이제 그냥 시민들이 ‘아, 진짜 자치경찰위원회가, 경찰이 우리와 같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런 활동에 적극행정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우리 위원회가 먼저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n○ 천영미 위원 네, 그렇게 해 주십시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리고 차차로 서로 잘 알려지고 또 홍보도 되고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도민들께서도 참여하시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n○ 천영미 위원 네, 그렇게 적극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천영미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서현옥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서현옥 위원 평택 출신의 서현옥 위원입니다. 위원장님, 이런 업무보고 처음 하시는 건가요? 의회에서는 처음 하시는 거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도의회에서는 처음입니다.\n○ 서현옥 위원 업무보고 준비하시느라고 고생 많으셨고 지금 자치경찰제가 출범이 되었지만 저희 위원들조차도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은 부분이고 또 더군다나 경기도민들도 자치경찰제가 출범이 됐다고 하는데 피부로 와닿거나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앞으로 홍보하는 데 주력을 기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각 지역의 행복복지센터라든가 이런 데 가서 말씀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굉장히 홍보에 주력을 해 주셔야 되고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까지 일반 도민들께 알릴 필요성이 있다 이렇게 생각이 되고요.\n아까 우리 국중현 부위원장님께서 자치경찰사무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질문을 주셨는데 위원장님께서 답변을 정확하게 못 하신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 또 김원기 위원님께서 오히려 답변을 해 주신 부분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를.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제가 보면 실제적으로다가 저희들이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어떤 것인지 또 저희들조차도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은 부분이어서 정확하게 저희들은 위원장님께서 보고를 해 주시길 바랐고 그런 부분이었는데 자세한 설명이 좀 부족했다 이렇게 생각이 들거든요.\n그리고 7쪽에 보면 경기도형 자치경찰제 비전과 전략이라든지 이렇게 경기연구원에서 용역을 진행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11월 달에 최종 보고가 되는 건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지금 그럴 예정입니다.\n○ 서현옥 위원 그러면 전반적으로 자치경찰의 안정적인 조기 정착을 위한 이런 용역 결과물이 나오겠네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서현옥 위원 그것을 토대로 우리 경기도민들에게 어떤 치안서비스를 해 주실 건가를 굉장히 꼼꼼히 챙겨야 될 부분도 있고 한 가지 당부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제가 지나가다 본 광경인데 지금 무질서 이륜차 집중단속을 한다고 이렇게 3쪽에 보니까 있어요. 지나가다가 보는데 비 오는 날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본 상황은 오토바이가 신호위반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그거는 못 봤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오는 오토바이가 역주행을 해갖고서는 도망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뒤에 오는 순찰차가 그거를 쫓아오면서 거기서 역주행을 해서 그 오토바이를 받았어요. 그래서 오토바이가 쓰러지면서 그 오토바이 탄 사람도 쓰러져서 좀 아픔을 호소했던 것 같고 그 순찰차의 앞에 범퍼가 떨어지는 상황까지 제가 지나가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물론 집중단속하는 것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이잖아요. 이런 과잉 단속하는 거 정말 제한해 주셔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각 경찰서나 이렇게 업무보고 때나 아니면 회의 때라든가 그런 걸 좀 단속할 수 있게끔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다시 한번 당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희 의회하고의 소통 또 저희들도 마찬가지고 위원회와 소통하면서 자치경찰제가 우리 경기도민을 위한 이런 서비스 차원에서, 치안 차원에서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아까 자치경찰이 뭘 하는 거냐 이런 질문을 하셨는데 그거는 경찰법 제4조에 경찰의 사무 해 가지고 그게 딱 명시가 돼 있거든요. 먼저 지역 내 주민의 생활안전 활동에 관한 사무, 세세한 건 제가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역 내 교통활동에 관한 사무, 지역 내 다중 운집 행사 관련 교통 혼잡 및 안전 관리 그다음에 수사를 하기 위한 초동조치…….\n○ 서현옥 위원 그러면 위원장님, 그런 자료를 좀 만들어서 우리 위원님들께 이렇게 주시면 업무파악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리고 그다음에 두 번째, 이륜차 단속 그 부분은 최근에 배달문화가 발전하다 보니까 워낙 배달하기 위해서 이륜차 운행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륜차 단속도 참 여러 가지 다각도로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중앙분리대가 있고 차도가 있고 그다음에 이륜차 자전거 다니는 길이 있고 그다음에 인도가 있고 이런 완벽한 구조가 되어 있으면 우리 단속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에 부담이 덜하고 또 그 사람들한테도 “너희들은 이륜차 다니는 길로 잘 다녀라.” 이러면 좋은데 우리나라 도로여건이 그렇지를 못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차도, 인도 이게 막 구분도 불명확하고 이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 그대로 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강제하는 것 자체가 경찰에서도 과연 그대로 하는 게 옳냐 이런 판단도 듭니다.\n그러나 지금 워낙 이륜차 문제가 생기고 사고도 많이 나고 안전문제도 생기고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단속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지금 시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n○ 서현옥 위원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단속 필요합니다. 굉장히 위험해요, 오토바이. 요즘에 정말 배달서비스 거의 다 오토바이로 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데 역주행을 하면서까지 추격을 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이런 부분들은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 배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차가 차도에 역주행을 하다 보면 반대편에서 오는 차하고의 충돌도 있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될 수 있으니 그런 부분을 좀 주의해야 되지 않느냐 저는 그 부분 말씀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서현옥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 양운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운석 위원 안성 출신 양운석 위원입니다. 앞서 우리 위원님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하셨고요. 저는 업무보고 7쪽에 보시면 비전과 전략 수립이 있죠. 이 비전과 전략 수립이 나와야 우리 자치경찰위원회의 예산 범위 윤곽이 나온다고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반드시 그거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n○ 양운석 위원 그건 아니고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지금 현재에도 자치경찰사무에 관련된, 저희들이 열심히 지금 발굴하고 추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나오면 좀 더 도움이 되겠지요.\n○ 양운석 위원 그럼 경기도에 지금 29억, 아까 보고하실 때 29억 요청하셨다고 그랬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29…….\n○ 양운석 위원 29억.\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29억. 네, 지금 현재…….\n○ 양운석 위원 지금 요청하신 거, 그렇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양운석 위원 아까 우리 존경하는 김원기 위원님이 질의를 하셨던 건데 그 예산서에는 경상비도 있을 테고 사업비도 있을 거 아니에요. 사업비는 주로 아까 서현옥 위원님이 말씀해 주셨지만 자치경찰제도에 대한 인식 부재, 홍보 아니면 정책제안 공모 이런 것도 실려 있는 건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 이거는 나중에 예산 보고드릴 때 할 걸로 생각했는데 하여튼 간에…….\n○ 양운석 위원 지금은 업무보고니까 제가 지금 포괄적으로 한번 질의를 해 본 겁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되겠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러면 15쪽에 한번 보실까요? 15쪽에 보면 우리 자치경찰제 업무 실행이 7월 1일 자로 시작이 됐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양운석 위원 그런데 여기 보면 거기에 남부경찰서 감사대상 5개 서라고 지금 나와 있어요. 그렇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양운석 위원 무슨 감사를 하는 겁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이거는 각 경찰서에서 우리 위원회가 지시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내지는 그에 따른 행동강령 이런 거.\n○ 양운석 위원 아니, 이게 왜냐하면 7월 1일 날 자치경찰제가 실행이 됐는데 감사일정이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 기간에 무슨 내용을 가지고 감사를 하는 건가 제가 궁금해서 질의를 드리는 거예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지금까지 자치경찰 관련된 여러 가지 지시라든지 이런 거, 지침 같은 거 이런 게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이행을 하고 있는지 그런 부분을 보는 겁니다.\n○ 양운석 위원 그러면 이게 지금 5개 서면 차후 31개 지자체에 있는 각종 경찰서에 그 감사를 실행할 계획인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게 할 겁니다. 남부에 31개 경찰서가 있는데 3년에 한 번 하는 것을 지금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3년에 한 번씩 돌아간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러니까 대강 1년에 한 10개 서 정도. 이것도 상반기에 이미 6개 서를 했고요. 하반기에 15개 서를 하는 겁니다.\n○ 양운석 위원 아, 상반기에…….\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6개 했고요.\n○ 양운석 위원 아니, 자치경찰…….\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아니, 그전에도 자치경찰 관련된 업무는 준비하는 이런 단계가 조금씩 있었거든요.\n○ 양운석 위원 아, 준비하는 단계에서?\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양운석 위원 그러면 전체적으로 현재 진행된 상황은 상반기에 6개 서를 한 거고 하반기에 다시 5개 서를 지금 진행하고 있는 거고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내년, 후년 해서 한 10개 서씩 해서 3년에 한 번 정도 할 수 있도록 그렇게.\n○ 양운석 위원 31개 서에 관련해서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양운석 위원 잘 알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양운석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위원장님, 그러면 감사를 하겠다라고 하는데 기존에 경찰청에 하던 감사를 연장선상에서 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새롭게 만들어낸 거예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래서 그 부분이 사실은 경찰에서도 과거부터 계속 감사 내지 감찰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위원회에서도 나가면 일선에 있는 직원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도경 그러니까 감사팀하고 우리 팀하고 미리 사전에 협조를 해서 합동으로 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그렇게 가야 될 것 같아, 이 케이스가.\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합동으로 하고 있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경찰 남부청장하고 협의를 하게 돼 있죠, 이런 업무들은?\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위원장 김판수 그래서 협의과정에서 기존 하고 있는 감사에, 결국은 기존에 하고 있는 감사도 자치경찰위원회 감사를 지금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그분들도. 그렇잖아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죠.\n○ 위원장 김판수 범주가 그러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을 그러면 결과적으로 7월 1일 이후에 발생했던 것을 하는 건 아니고 지속적으로 해 왔던 것을, 그러니까 이제 해 왔던 것 중에서 자치경찰사무와 관련된 감사는 이쪽에서 요구해서 진행을 하겠다 그런 얘기로 이해하면 되겠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습니다. 그것도 우리 위원회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도 감사하고 같이 합동으로 그렇게 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위원장 김판수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면, 권락용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권락용 위원 성남의 권락용 위원입니다. 먼저 위원장님 처음으로 제대로 뵙는 것 같아요. 자치경찰위원회 지금 첫 보고인데 그래서 이해를 못 하는 부분도 있고 또 우려되는 바도 있고 그것이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아마 여러모로 혼란, 답변하시는 데에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그게 지금 첫 수순이다, 그래서 그렇다라는 말씀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n제가 궁금한 게 어느 조직이나 조직을 운영하려면 두 가지는 꼭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첫 번째는 인사권이고 두 번째는 예산권입니다. 그게 있어야 조직은 굴러가거든요. 지금 위원장님한테 그 두 가지,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많이 부족합니다.\n○ 권락용 위원 인사권이 있는 상태입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인사권이 지금 법상으로는 저희들이 도지사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있는 걸로 되어 있으나 일원화 모델로 출발하다 보니까 이게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최대한 우리 인사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를 해 봤는데요.\n○ 권락용 위원 그럼 지금 상황에서는 인사권이 없는 상황입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완전히 없다고…….\n○ 권락용 위원 있긴 있으나 지사가 임명하는 대로 가게 되는 상황인 겁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아니요, 지사님이 하는 것이 아니고 경찰에서 기본적인 인사를 하는데 거기에 우리 위원회가 꼭 필요한 부분에는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는 그런 정도 수준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게 왜 그런가 하면…….\n○ 권락용 위원 저도 질문을 하다 보면 헷갈리는 게 인사권이 있다라고 말을 다 못 하는 거예요. 뭐 물어보면 “기여한다. 도움을 준다. 추천을 한다.” 이렇게 인사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지만 확정하지 않은 그런 애매한 문구들이 전부 다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게 가능한가. 그래서 우려가 나타나는 게 물론 위에서 법령으로 딱 정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과도기적 성격이라서 이렇게 첫발에 만족할 순 없으니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있는데 정확하게 그러면 인사권을 가진 과나 담당이 있습니까, 우리 위원장님한테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게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요. 이게 근본 일원화 모델로 출발했기 때문에 기본 조직이나 인원 이런 게 다 경찰에 이미 그대로 있거든요. 그대로 있고 또 자치경찰이라서 경찰 안에 있다 하더라도 자치경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국가경찰 의무를 하다가 자치로 올 수도 있고 자치에서 또 국가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지금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인사권이 있다, 없다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는 것보다도 근본적인 한계가 많이 있다 그런 정도입니다.\n○ 권락용 위원 네. 그럼 다음으로 질문드리는 게 예산권은 보니까 5억 정도가 나간 거죠, 도에서? 2021년 9월 1일 기준으로 지금 저희한테 보고된 게 5억 정도로 보고돼 있는데 맞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권락용 위원 그럼 5억 예산인데 이 안에서도 예산권이 따로 우리 위원장님한테 가지고 있는 게 있습니까? 지금 보니까 전부 그냥 사무실 공사, 사무실 비용 하는 데 거의 한 4억이 들어갔어요. 그럼 결국 1억 갖고 뭘 하는 건가 싶은 거예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건 사업비가 아니고요. 우리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여러 가지 경상경비라든지 사무실 비용이라든지 약간의 출장비 그런 정도로 해서 5억이 들어간 겁니다. 사업비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렇죠? 그럼 결국 예산도 5억 도에서 내려간 것 중에 4억이 사무실 공사나 이런 것으로 썼으면.\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n○ 권락용 위원 결국 쓸 수 있는 돈도 거의 없다. 그러면 제가 생각했을 때는 어느 조직이 굴러가려면 인사권과 예산권 없이는 굴러가질 않아요, 기본적으로.\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렇죠.\n○ 권락용 위원 돈이 없으면 어딘가 꿔오든 빌리러 다녀야 되고 인사권이 없으면 인사 할 때마다 뛰어다녀야 되고. 이 조직이 제대로 되겠는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겁니다. 첫 출발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는데.\n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알지만 그래도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출발을 했으나 점점 시간이 가서 정리가 되면 또 도의원들도 저희뿐만 아니라 다음 도의원들 오게 되면 정리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부탁드리는 건 지금 여기서 보고해 주신 위원장님은 초대입니다. 다른 분 2대, 3대는 나중에 기억도 안 날 거예요. 그런데 초대 위원장은 이렇게 했다라고 상징성이란 게 있습니다.\n그래서 제가,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경찰 입장을 많이 대변하는 것도 사실이고 다만 처음이다 보니 또 위원회에 상징성과 내용들을 포함하려다 보니 또 시도해야 되는 것들도 있고 그런 많은 책임감과 노력이 저는 있으실 거라고 예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어서는 좀 수고해 주십사라는 그런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이거 정답이 없습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고 조직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닙니까? 그 안에서도 꽃피울 수 있도록 정립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게 있으면 위원장님이 말씀해 주시고, 위원장님이 저희 위원들한테.\n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는 남부경찰청장이셨어요, 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 배용주 청장님이라고 계셨어요. 그분도 이거 할 때 좀 많이 정립하는 데 힘써 달라고 개인적으로 또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참 경찰조직이 안정화 되는 데 많은 부분을 노력해 주고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지켜보고 있다라는 그런 사명감을 꼭 좀 가져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알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이건 제가 부탁의 말씀인 거고 또한 우려스러운 점은 사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고할지 모르겠지만 이 보고서를 읽으면요. 그간 추진하고 어떻게 하고 하겠다는 게 전부 연구, 홍보 딱 이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조금 안타까운 거예요. 뭐가 됐든 어떤 과가 돼서 뭘 해야 되는데, 범죄를 잡든. 이거는 경찰에서도 바라보는 게 연구와 홍보 쪽에 치중해서 결국 핵심은 내놓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이 강해요. 그래서 쉽진 않을 겁니다. 어렵지만 여러분들도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이해도 되고 그렇지만 연구, 홍보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이거는 그렇게 하라고 출발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은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점차적으로 지역 생활밀착형 범죄에는 권한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또한 저희도 위에 법을 만드신 분들이나 더 많은 분들한테 그런 노력을 읍소할 테니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 연구, 홍보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형 범죄에 밀착할 수 있는 제도나 권한을 가져와야 된다. 그 노력을 함께해야 된다 그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권락용 위원 이어서 위원장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말씀하신 대로 어떤 조직이든지 제대로 굴러가려고 하면 인사, 예산이 기본이거든요. 거기다가 조금 더 보태자면 감사 내지 감찰 권한이 필요한데 사실 이게 출발부터가 우리 자치경찰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완전하게 또 국가경찰에서는 나름대로 국가경찰이 작동하는 데에 자기들이 대미지랄까? 그게 최소화되도록 이런 범위 내에서 타협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은데 그래서 인사, 예산 이 부분은 사실 우리 경기남부위원회만의 힘으로는 될 것이 아니고요. 중앙에서 행안부 내지는 BH, 경찰청 이런 데다가, 아니면 우리 전국 위원회 전체의 의견을 모아서 계속 건의도 하고 하다 보면 또 구체적 어떤 사안이 나오면 개선 건의도 하고 이렇게 앞으로 해 나갈 계획입니다.\n그리고 지금 연구, 지금 이건 오늘 업무보고가 처음이기 때문에 이랬는데 아주 규모가 작지만 내년 예산을 지금 29억을 요청해 놨거든요. 거기에 사업비가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건 혹시 구체적으로 필요하면 다 드리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네, 알겠습니다. 저도 그래서 우려 내지 또 기대도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많이 힘써 달라 그런 부탁의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권락용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김용찬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용찬 위원 용인 출신 김용찬 위원입니다. 먼저 이제는 지방자치 완성이 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경찰제가 도입되면서 이제는 지역주민들이 풀뿌리민주주의 완성의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감사권하고 인사권에 대해서 확실하게 부여된 게 별로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벌써부터 지방경찰과 중앙경찰과의 마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저는 아직까지 별로 과문한지 못 들어봤습니다.\n○ 김용찬 위원 그러면 중앙경찰과 지방경찰과의 업무가 좀 나눠져 있죠, 구체적으로?\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업무는 나눠져 있습니다.\n○ 김용찬 위원 그렇죠? 교통민원이나 기타 이런 건 지방경찰이 하는 거고 범죄 수사나 이런 건 또 중앙경찰이 하고 그러는데 이렇게 또 중간에 있는 그런 사건에 대해서 서로 마찰이나 이런 게 분명히 생길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아직은 그런 사례를 제가 인지한 바는 없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거기에 제일 먼저 달려갈 사람들은 112 신고 출동을 한 지구대ㆍ파출소 직원들이거든요. 거기서 판단해서 만약에 이게 수사사건이다 할 것 같으면 수사 쪽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이게 자치경찰사무다 하면 자치 쪽 오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그런 건 제가 못 들어봤습니다.\n○ 김용찬 위원 그러셔요? 자, 여기 내용 보면, 2021년 비전과 목표내용을 보면 참 내용이 다 좋은 내용입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제가 볼 때 현재는 자치경찰 관련된 법, 조례 이런 건 만들어놨지만 거기에도 상당히 미비한 부분이 있거든요, 제가 쭉 위로 훑어보니까. 거기에 플러스해서 아직까지는 이걸 운영해 본 바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도, 시스템, 관행, 반드시 법이나 조례에 없다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국가경찰하고 자치경찰하고 업무 처리하는 여러 가지 관행이랄까 이런 것, 이게 하나도 정립된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근차근 그런 걸 앞으로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n○ 김용찬 위원 제가 생각하기에는 법이나 이런 것보다도 아까 존경하는 천영미 위원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홍보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주민에 대한 도민의, 지금 현재 도민들이 지방경찰제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지역에 가도 물론 마찬가지고.\n위원장님, 우리 31개 시군에 경찰서가 몇 곳이 있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31개입니다.\n○ 김용찬 위원 경찰서가 31개인가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김용찬 위원 그럼 1개 시에 하나씩 있는 건가요?\n(관계공무원,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에게 설명 중)\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남부에 31개입니다, 남부에.\n○ 김용찬 위원 남부에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김용찬 위원 그럼 제가 물어봤을 때는 31개 시군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 위원장님도 지금 경찰서가 몇 개인지도 잘 모르고 계시고 그리고 또 이렇게 보면 이 내용은 다 좋은데 일단은 31개 시군의 시장ㆍ군수하고 그리고 또 주민과의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그리고 홍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일단은 주민들이 알아야지 뭘 하든지 이렇게 내용이 될 거 아니에요.\n그리고 또 그간에 지역에서 저도 의원 생활을 하다 보면 제일 민원이 많은 게 교통민원이 제일 많아요. 그리고 특히 지역주민들의 신호등 개설 이게 굉장히 많아요. 그것 때문에 경찰하고 주민들 간에 문제가 많이 발생되는 경우가 굉장히 있어요. 그리고 또 신호등 하나 만들려고 하면 주민들은 일단 구청에다가, 시청에다 민원을 제기하면 시청은 또 그 민원을 자기네들 스스로 해결을 못 하기 때문에 경찰에다 또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에서 “No.” 하면 또 안 되고 이렇게 절차가 되게 복잡해서, 심지어 어느 지역에는 주민들이 경찰서 앞에 가서 데모도 하고 그런 것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런 게 이제는 지방경찰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많이 소통이 되고 조금은 지역주민들의 얘기가 많이 경찰에 반영되고 그런 모습으로 변할 것 같습니다.\n아무튼 처음 하시는 거니까 이게 처음이 또 힘들잖아요. 좀 힘드시더라도 여기 말씀하신 2021년 비전과 목표 내용대로, 참 좋은 내용인데요. 이렇게 잘 하셔 가지고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경찰의, 아주 안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주민들 입장에서 불만이 많으셔요. 잘 소통이 되고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위원장 김판수 김용찬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최갑철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최갑철 위원 부천 출신 최갑철 위원입니다. 업무보고 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업무보고의 비전과 목표대로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n일원화냐 이원화냐, 이게 자치경찰을 담당하시는 분들도 중요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도민이 더 불편함이 없어야 되겠죠. 하루빨리 경기도형 자치경찰제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하시면서 그 불편함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체크리스트 해서 하루빨리, 빠른 시일 내에 경기도형이 나오게끔 서로가 좀 노력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여하튼 7월 1일부터 출범을 했어요, 자치경찰제가. 본 위원은 그렇습니다. 이게 하루빨리 성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여러 위원님께서 말씀드렸지만, 교통민원 이런 것도 많이 말씀드렸지만 일상생활의 불편한 것들을 하나하나 잡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n코로나19로 인해서 지금 팬데믹 상황이 계속 돼 가고 있는 상황에 의식주에 대한 불편함들이 굉장히 많이 있잖아요. 아까도 여러 위원님들이 말씀하셨다시피 배달업무가 어마어마하게 증가됨으로 해서 시민들의 불편함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고요. 차량배달은 그나마 참을 수가 있는데 아까 얘기한 이륜차, 오토바이 배달은 참 너무 사람들하고 부딪히다 보니까 이게 이제 가장 불편한 걸로 대두가 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차도로 다니는 건 그나마 이해를 하는데 이게 속도전이다 보니까. 아시잖아요. 배달 몇 개를 해야지 내가 수입이 들어오고 하나라도 더 배달을 하기 위해선 속도를 낼 수밖에 없으니까, 지름길을 찾다 보니까 갈 수 있는 데가 인도하고 산책로, 운동장, 심지어 진짜 개인 사도까지 점령을 하고 다녀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나다니고. 이러니까 이게 굉장히 불편하고 또 시간제한이 없다 보니까, 24시다 보니까 자는 시간에 이면도로 막 소음 내서 다니고 있고 이런 것들이거든요. 이게 기존에 해 왔던 주민밀착형 이런 업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서 아마 지금 시행을 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다라고 생각하는데 이 코로나19로 인한 변화하는 일상의 불편함들을 찾아서 하루빨리 진짜 생활안전에 불편이 없도록 해야 되는 거 아니냐.\n아까 다시 본론으로 와서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잡아가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요. 많은 위원들이 그런 것들을 말씀하셨고 실질적으로 그게 다 다가오는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아까 발굴을 하고 여기 보고에 의하면 공모도 받고 정책제안도 받고 막 여러 가지 하셨는데 이런 얘기를 저뿐만이 아니라 많이 들으셨을 거라고 예상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는 건지, 계획이 있는 건지 말씀을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이륜차 단속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그런 데 착안을 해서 저희들이 현재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륜차 문제는 제가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옛날에 제가 경찰 현직에서 할 때 단속도 해 봤고 홍보도 하고 교육도 하고 많이 해 봤지만 참 우리나라 교통여건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차도, 이륜차, 자전거 길, 인도 이게 땅이 넓어 가지고 딱 정비가 돼 있으면 단속하면서도 부담도 없고 확실히 할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 도로여건이 사실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분들이 대부분 생계형이지 않습니까? 생계형인데 이걸 다니는 걸 그것도 일일이 단속하는 게 과연 또 옳으냐, 그게 정의에 맞느냐 사실 그런 고민도 있습니다. 하여튼 최대한 단속하고 그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법규도 지키고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유도해 가도록 하겠습니다.\n그리고 자치경찰이 빨리 될 수 있느냐,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그렇게 금방 될 상황은 아니다. 왜냐? 지금껏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국가경찰에서 나름대로 치안활동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또 다들 우리 국민들이 그냥 ‘치안은 경찰에서 하는가 보다.’ 이래 갖고 가끔 가다 민원사항이 있다든지 이런 식으로 왔기 때문에 그게 어느 날 갑자기 자치경찰제 제도를 도입했다 해서 갑자기 바뀔 그런 상황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주민들이, 예를 들어서 미국 같으면 자치가 발전돼 있고 그 사람들은 건국하기 전부터 서부로 몰려 가면서 곳곳에서 국가권력이,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런 지역에서 자기들 스스로 자체적으로 보안관 제도 만들고 거기서 치안을 하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그런 문화의 사회하고 우리하고는 상당히 사정이 다르고 그래서 제가 홍보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주민들이 꼭 필요한, “이러이러한 치안활동을 해 주세요.” 이렇게 하면서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관련된 예산도 만들어서 주고 그러면서 이런 치안활동을 해 달라, 이렇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고. 그런데 그런 문화가 형성되는 게 과연 하루, 이틀 만에 되겠느냐, 빨리 하자 하는 게 그게 과연 되겠느냐, 사실 저는 그런 솔직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차로 저희들도 노력하고 또 많이 알려드리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볼 때는 여기 계신 위원님들께서 그런 역할을 잘 해 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래서 만약에 지역의 교통 문제라든지 생활안전 문제라든지 있으면 그에 대한 의제를, 어젠다 이런 걸 저희들한테 던져 주시고 거기다가 예산을 수반해서 “우리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까 이런 치안을 해 달라.” 이게 자치경찰제가 도입됐기 때문에 이제는 가능해지지 않았습니까? 과거에는 국가경찰 하는 대로 거기 가서 “아, 좀 해 달라.” 이렇게 요청만 했었지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자치경찰 도입됐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위원님들 그런 부분에 앞으로 많이 저희 위원회를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n○ 최갑철 위원 그래요. 하여튼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그런데 자치경찰제가 출범을 했는데 그런 것들이 문제점이 있다 해서 여기서 많이 할 수도 없는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합동점검, 인력도 많은 문제가 되겠고요. 이게 되면서 그런 얘기들도 많이 나왔어요. 과연 각 31개 시군에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자율방범순찰대라든가 어머니폴리스, 녹색어머니회, 여러 가지 단체들이 있잖아요. 지금 그분들에 대해서도 어떤 계획이 나와 줘야 되고 하여튼 고민할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앞으로. 그래서 함께 노력해서 이런 문제들을…….\n지금 위원님들도 시행을 처음 해 봐서, 물론 제주도 벤치마킹도 다녀왔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실질적으로 해 가면서 우리형, 경기도형을 찾아나가는 데 서로가 의견을 내고 좋은 정책들을 내서 하나하나 맞춰 가서 실질적으로 경기도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해 나가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이 문제점들을 서로 다가가서 풀 수 있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최갑철 위원 이상 질의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최갑철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n우리 위원장님, 처음 의회에 오셨는데 위원님들은 현실 경찰업무를 얘기하고 있고 또 일부는 기초적인 말씀을 드리고 그러는데 좀 헷갈리실 거예요. 지금 이렇게 보고 있어요. 저도 동료 위원들을 많이 만납니다마는 자치경찰위원회가 대단한 걸 안고 지금 출범한양 이렇게들 보고 있어요. 아까 위원장님께서 답변하셨지만 진짜 법은 만들어 놨는데 이 태동 자체가 참 명쾌하지를 못하고 어느 정도 정리정돈이 돼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급하게 출범한 거예요. 그래서 위원회도 참 답답할 테고 남부경찰청도 진짜 답답할 거예요. 또한 저도 안행위 위원장으로서 진짜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치경찰 자체가 태동은 했는데 태동과정에서 엄청나게 미비한 점이 많다. 준비 부족으로 해서 일단 태동부터 시켜놓고 본 이 부분에 대해서 몹시 좀 안타깝고요.\n일단 조직과 관련해서 그다음에 자치경찰과 국가경찰 이 부분이 불분명한데 지금 경찰 출신이잖아요, 위원장께서. 원만하게 그 부분을 정리정돈을 해야 될 것이다. 그러니까 기초적인 조직 플러스 분장사무 이런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찰청하고 서로 협약이 돼 있죠? 그다음에 인사권과 관련해서 경위라든지, 뭘로 돼 있죠? 지사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인사권이 어디까지죠, 범주가?\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건 설명이 조금 필요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그 직급만 얘기하세요, 직급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도지사가 경위ㆍ경감 승진 임용을 할 수 있고요.\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경감까지죠? 경위, 경감. 그러니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경찰청하고 원만하게 좀 정리를 하세요. 그러니까 본 위원장이 하는 얘기는 정리정돈이 좀 돼야 된다, 기초적인 것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 수행을 하려고 보면 엄청나게 다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도 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자치경찰위원회도 마찬가지고 경찰청도 마찬가지고 결국은 도민의 안전을 위해서 봉사하시는 분들인데 각자가 갖고 있는 기득권을 좀 내려놓고 도민만 바라보고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저도 남부청 공무원들한테도 얘기하고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일단 기초적인 부분부터 좀 정립을 해 나가세요. 지금 무슨 사업을 하고 뭘 하고 이것도 중요한데 기초적인 정리정돈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가다 보면 엄청나게 의견충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하여간 업무를 보고 계신 우리 자치경찰위원회도 참 답답한 상황이 올 거예요. 저는 이런 상황으로 가다 보면 남부경찰청의 한 부서 정도, 산하기관 이렇게 전락할 공산이 아주 크다고 보는 거예요.\n그리고 경기도는 교통 관련해서 시설비 정도 지원을 하는 이런 부서로 전락할 공산도 아주 크다. 그래서 자치분권에 대한 기본적인 자치경찰제가 위축되는 이런 결과가 분명히 올 거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위원장님께서 경찰 출신이니까 좀 더 남부청장님하고 협의를 하셔 가지고 경기도다운 자치경찰을 진짜 만들어줘야 된다, 노력에 의해서. 전국 다른 데도 물론 그렇게 하겠지만 특히 수도권에 인구가 많은 경기도형 자치경찰이, 서로 화합하는 자치경찰이 될 수 있도록 하고 법 문제는 주기적으로 건의를 하셔야 될 거예요, 자치경찰위원회에서. 이것은 전국적으로 연대해서 바꿔야 될 부분들은 좀 바꾸고 해서. 이걸 과도기에 새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원만히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업도 중요하지만 기초적인 틀부터 좀 하시도록 노력해 주시고.\n그다음에 자치경찰위원회 회의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회의?\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저희 자치경찰위원회는 “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을 통해서 도 경찰청장을 지휘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큰 그림, 자치경찰 업무에 관련된 큰 지침, 정책 이런 것은 우리 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을 통해서 도 경찰청장을 지휘하고요. 회의 부분은 월 1회 정기회의가 있고 또 필요할 때는 수시로 소집해서 할 수가 있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지금 처음 시작하다 보면 정리정돈이 안 돼 있다 보니까 위원장님, 자주 회의를 하셔 가지고 진짜 현안사업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를 하시고 이걸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를 해 가지고 남부청하고도 대화를 해서 하여간 빠른 시간 내에, 과도기적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주시길 주문을 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법이나 대통령령, 경찰청 훈령, 행안부령 이런 데 조직이 필요한 부분은 전국의 위원장들 협의회, 얼마 전에 회의를 한 번 했습니다. 그런 걸 통해서 계속 건의도 하고 해서 미비한 부분이나 고칠 부분이나 개선할 부분 이런 건 계속 건의를 해 나가고 그다음에 우리 남부위원회와 도경하고의 관계 이 부분은 지금도 대화가 잘 되고 있고요. 충분히 협조하면서 하고 있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네.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죠?\n(「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업무보고에 대한 질의 답변을 종결하겠습니다.\n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n위원 여러분!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잠시 정회코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그럼 잠시 정회를 선포합니다.\n(11시14분 회의중지)\n(11시35분 계속개의)\n○ 위원장 김판수 좌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다음은 신현기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나오셔서 소속 간부소개와 함께 업무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 신현기입니다. 경기도민과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항상 노력하시는 김판수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2021년도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n보고에 앞서 간부공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정용환 사무국장입니다.\n(인 사)\n강현석 북부기획조정과장입니다.\n(인 사)\n김평일 북부자치경찰협력과장입니다.\n(인 사)\n이상으로 간부소개를 마치고 배부해 드린 업무계획을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업무보고는 일반현황, 그간 추진성과, 비전 및 목표, 주요업무계획 순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n7쪽입니다. 기구 및 인력현황입니다. 경기북부 자치경찰 소관 사무를 처리하고 실질적으로 자치경찰사무를 관리ㆍ감독할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는 1위원회, 1국, 2개 과, 5팀으로 북부기획조정과는 북부기획예산팀, 북부자치총무팀, 북부감사평가팀 등 3개 팀으로, 북부자치경찰협력과는 북부정책지원팀, 북부자치경찰인사팀 등 2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의 인력현황은 위원장, 사무국장, 도 20명, 경찰 10명 등 총 32명입니다.\n8쪽입니다. 예산현황 및 부서별 주요기능입니다. 먼저 예산현황입니다. 북부차치경찰위원회 소관 예산은 그간 남부자치경찰위원회에 편성되어 있던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예산 이체액을 포함한 3회 추경안 기준으로 북부기획조정과 1억 3,000만 원, 북부자치경찰협력과 3,200만 원 등 총 1억 6,200만 원으로 이는 자치경찰사무 사업예산을 제외한 사무국 운영비입니다.\n다음은 부서별 주요기능입니다. 북부기획조정과는 자치경찰사무에 관한 목표 및 정책 수립, 북부자치경찰위원회 및 실무협의회 운영, 자치경찰사무 감사 및 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북부자치경찰협력과는 생활안전, 여성ㆍ청소년, 아동, 교통 분야 정책 지원 업무와 자치경찰사무 인사 관련 주요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n다음은 11쪽 그간 추진성과입니다. 지난 5월 20일 사무국 구성 이후 추진성과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북부기획조정과의 추진성과입니다. 사무국 신설에 따른 인력배치, 업무계획 수립, 사무공간 정비,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 등 북부자치경찰위원회의 조기 정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도의회, 경찰위원회 등 각 기관별 추천을 통해 위원을 추천받아 북부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을 추진하였습니다. 지난 6월 30일 남ㆍ북부위원회가 공동 출범식을 개최하고 7월 1일 제1회 회의 개최 등 현재까지 총 7회에 걸쳐 위원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법제사무 처리규정 등을 제정하고 반부패ㆍ인권 정책 협력방안 논의 등 관련기관과 업무 협력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n12쪽입니다. 북부자치경찰협력과 추진성과입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7월 22일부터 8월 31일까지 노래연습장 등 관내 유흥시설 3,786개소를 점검하여 총 47건 263명을 적발하는 등 경기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가 합동으로 유흥시설 밀집지역 단속을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오는 10월 21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주정차를 전면 금지하는 도로교통법 시행에 대비하여 보호구역 교통안전시설 정비, 어린이 승하차구역 선정ㆍ홍보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자치경찰공무원 인사운용과 관련해서는 자치경찰위원회 임용권의 한시적 위임을 추진하고 임용권 행사 대상 자치경찰 규모 파악, 인사권 시행절차 마련 등 인사운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n15쪽입니다. 2021년 비전 및 목표입니다. 2021년도 경기북부자치경찰위원회의 비전은 “안전한 경기북부, 자치경찰이 함께 합니다.”로 세부목표는 지역특성에 맞는 자치경찰제 안착, 소통하고 공감하는 위원회 운영, 공정한 자치경찰사무 감사문화 정착, 자치경찰사무 정책 지원, 합리적인 자치경찰 인사운영으로 도민이 신뢰하는 안전한 경기북부를 위해 관련 업무를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2021년도 주요업무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n먼저 22쪽 북부기획조정과 소관 업무입니다. 자치경찰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겠습니다. 자치경찰제 시행에 따른 행정적ㆍ제도적 기틀을 정립하고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을 연계한 성공적인 자치경찰 모델의 조기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자치경찰사무 관련 규칙의 제정ㆍ개정ㆍ폐지에 관한 절차를 체계화하고 법제사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표준 규정을 마련하였습니다. 정책의 균형성과 효용성을 제고하고 지역특화 치안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역사회 각계각층 자치경찰사무 전문가 풀을 활용하여 정책자문단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북부자치경찰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위원회 위원 및 사무국 직원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하고 비전과 중장기 전략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 등을 추진하고자 합니다.\n23쪽입니다. 도민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자치경찰 홍보입니다. 도민과의 적극적 소통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치안서비스에 대한 도민 체감도 및 만족도를 제고하겠습니다. 지역실정에 맞는 치안서비스 제공과 도민의견 수렴을 위해 리서치 전문기관을 통한 도민여론조사, 위원회 홈페이지 내에 도민의견 수렴 코너 개설, 정책제안 도민 공모 등 소통창구를 마련하겠습니다. 자치경찰제 홍보를 위해 위원회의 슬로건 선정 및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경기북부 시군 홈페이지, 전광판 등에 홍보를 실시하였으며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BI 제작을 의뢰하였습니다. 향후에도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변화되는 치안서비스와 주민밀착형 치안활동 등을 적극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n25쪽입니다. 북부자치경찰위원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지원하겠습니다. 위원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연간 운영계획을 수립하였고 7월 위원회 구성 이후 현재까지 총 7회에 걸쳐 정기회의 및 임시회의를 개최하여 대표적인 발굴 논의 등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였습니다. 앞으로 경기북부 지역특성을 반영한 그런 자치경찰사무 안건 발굴과 심의ㆍ의결을 통해 북부 도민이 공감할 수 있는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저희 사무국에서는 최선의 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n26쪽입니다.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실무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하겠습니다. 위원회, 도, 경기북부경찰청, 교육청 간 자치경찰사무 협력ㆍ조정을 위한 협의체를 구축하고 자치경찰사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협력방안을 논의하겠습니다. 현재 관계기관 간 협의와 의견조회 중으로 9월 중 실무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자치경찰사무와 국가경찰사무의 체계적 협력과 조정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습니다.\n27쪽입니다.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 처우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 경기도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지혜택이 적은 자치경찰 공무원에 대한 사기진작 프로그램 발굴 등 처우개선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사기진작 TF팀을 구성하였고 경기북부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현행 법령 및 제도, 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사업을 중심으로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 처우개선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n29쪽입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자치경찰사무 감사업무를 추진하겠습니다.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감사 규칙 제정 등 경기북부 자치경찰사무 감사업무를 제도화하고 고양경찰서, 포천경찰서, 가평경찰서, 경기도북부경찰청 등 감사계획에 따른 종합감사를 실시하겠습니다. 고양ㆍ포천ㆍ가평경찰서 감사는 9월 중 완료 예정으로 사전협의를 통한 중복감사 방지 등 위원회와 경찰청 간 유기적 감사 협력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경기북부경찰청 종합감사는 11월 추진 예정으로 감사역량 강화교육 이수 등 자치경찰사무 감사역량을 강화하여 도민이 신뢰하는 감사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n30쪽입니다. 청렴과 인권 지향의 북부자치경찰을 실현하겠습니다. 자치경찰사무를 수행하며 발생하는 부패ㆍ청렴도ㆍ인권 분야 침해요소를 파악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패방지 추진체계 분석, 위원회와 경기북부경찰청 간 청렴 협력체계 구축, 청렴도 인식 제고 등을 위해 부패방지ㆍ청렴도 향상 추진 종합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또한 인권 향상을 위한 인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경기북부경찰청과 합동으로 인권진단을 추진하겠으며 온ㆍ오프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인권교육도 실시하겠습니다.\n31쪽입니다. 안전한 경기북부를 책임지는 경찰서장 평가입니다. 경찰서장의 자치경찰사무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지휘활동을 평가하고 환류하기 위해 의정부, 고양 등 경기북부경찰청 소속 13개 경찰서장에 대한 평가를 추진하겠습니다. 도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서장의 자치경찰사무 활동을 평가함으로써 업무와 평가 간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n다음은 34쪽 북부자치경찰협력과 소관 업무입니다. 도민이 공감하는 경기북부형 자치경찰제를 운용하겠습니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경기북부형 자치경찰제의 정착으로 경기북부 도민의 만족도를 제고하겠습니다. 먼저 생활안전 분야입니다. 셉테드(CPTED), 즉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을 추진하고 지역정책협의체 운영으로 도민의 정책 참여를 유도하여 고위험 정신질환자 대응을 위한 관계기관 간 유기적 연계협력 등 예방치안 인프라를 구축하겠습니다. 여성ㆍ청소년 분야에서는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안전대책을 마련하여 지역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통 분야에서는 어린이, 노약자 등 교통약자중심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안전속도 5030’ 등 교통사고 감소대책, 경기북부 지역특성을 고려한 교통안전종합계획을 추진하여 교통소통과 도민 안전을 함께 도모하겠습니다.\n35쪽입니다. 경기북부 지역맞춤형 자치경찰 시책을 추진하겠습니다.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에 맞춰 도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수요자중심의 지역맞춤형 치안시책을 적극 발굴하겠습니다. 먼저 학대피해 등 위기아동에 대한 실질적 보호를 위해 위기아동 원스톱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주취자 응급센터의 권역별 신설, 정신질환자 공공병상 확보 등 주취자 및 정신질환자 대응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차박캠핑이 활성화됨에 따라 대두되는 문제점 해소를 위해 차박캠핑지 안심환경 조성사업을 발굴하였고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른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 전면금지 시행 대비 종합대책 준비 등 주요 사회적 이슈, 적시성, 효과성 등을 고려한 시책을 적극 발굴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민ㆍ관ㆍ경 지역공동체 치안협의체를 운용하고 유관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사회적 약자 보호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입니다.\n37쪽입니다.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체계를 확립하겠습니다. 경기북부 자치경찰사무 담당 경찰공무원의 인력현황과 자치경찰위원회에 위임된 임용권 범위 등 제반사항을 검토하여 자치경찰 공무원에 대한 인사운용 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인사운용 방향 제시, 인사절차 구체화 등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인사운용 규칙을 마련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운영으로 공정한 인사체계를 정립하겠습니다. 아울러 설문조사, 관계기관 논의 등 현장 의견을 반영한 자치경찰 인사제도를 마련하여 자치경찰 만족도 향상 및 조직 안정화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n38쪽입니다. 자치경찰 공무원의 직무 만족도 향상 시책을 운영하겠습니다.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에 대한 도지사 표창을 추진하고 자치경찰위원회 자체 표창을 위해 업무 유공자에 대한 위원회 자체 상훈권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한 고충상담창구를 통한 현장직원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인사고충 해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마음건강 치유, 직무스트레스 해소과정 등 직무 만족도 향상을 위한 시책들을 발굴ㆍ도입하여 자치경찰제 만족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n이상으로 2021년도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주요업무계획에 대한 보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직원 모두는 촘촘한 주민밀착형 치안서비스 제공으로 경기북부 도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위원장님과 위원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n업무보고서(북부자치경찰위원회)\n○ 위원장 김판수 신현기 북부자치경찰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질의하실 위원께서는 거수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원기 위원님 질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 김원기 위원 의정부 출신의 김원기 위원입니다. 먼저 위원장님의 취임과 북부자치경찰위원회의 출범을 축하드린다는 말씀드리고요. 우리 신현기 위원장님 오랫동안 경찰행정에 대한 업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수행해 오셨던 또 학생들 지도했던 그런 교수님 출신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학문적,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자치경찰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그런 소신을 갖고 계시겠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출범을 해 보니까 좀 전에도 우리 권락용 위원님이 말씀을 주셨는데 인사와 또 감사와 예산이 없는, 그런 권한이 없는 자치경찰위원장으로서의 일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거 저희 상임위 위원님들 똑같이 공감하고 있습니다.\n우리 남부에는 31개의 경찰서가 있고 그 소관 업무를, 자치위의 소관 업무를 자치남부가 하고 있는데 북부에는 13개 경찰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부와 북부의 차이점이 딱 한 가지가 있어요. 거의 다 똑같은데 한 가지가 뭐냐, 북부는 접경지역이 있다는 겁니다. 접경지역이라는 것은 연천과 파주, 고양 이쪽 지역에 북한과 맞닿아 있는 그런 지역이 있어서 저희 자치경찰의 업무가 일반적으로 교통이나 생활안전이지만 경비업무 중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는 그런 역할도 일부는 있습니다, 일부는. 그렇지만 여기 부서별 주요기능을 보니까, 8쪽에요. 기획조정과와 자치경찰협력과의 주요업무내용이 자치경찰들을 관리하고 운영하고 지원하는 그런 역할이 업무분장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들이 요구하는 것은 북부에 맞는 북부 주민들의 주민밀착형 치안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러한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부서가 어디에 있는지. 지금 이 기능에 보면 2개 과가 있는데 그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좀 답변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감사합니다. 저희가 자체적으로도 연구를 열심히 해야 될 그런 과제를 가지고 있고요. 지금 위원님 질의 주신 그 부분은 북부자치경찰협력과 쪽에서 많은 영역을 담당해 줘야 되는 그런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현재 여기 책자에 보면 예산현황 약 1억 6,200만 원이 아마 사무공간, 차량 움직인 경비밖에 없어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맞습니다.\n○ 김원기 위원 이런 상황에서 주민밀착형 치안서비스를 할 수 있는 그런 예산이나 또 인력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경기북부 주민들에게 이러 이렇게 자치경찰업무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거거든요, 인력도 없고 예산도 없는데. 또 그리고 실질적으로 우리 직원들이 이 업무를 하고 있을 때, 물론 지방청장과의 협조 속에서 감사를 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감사를 하기가 어려운 것은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지금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광역시도 경찰청장을 지휘ㆍ감독하도록 그렇게 자치경찰위원회가 법에 만들어져서 출발을 한 그런 게 굉장히 강한 모델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예산도 지금 저희가 86억인데요. 이게 이제 73억은 내년의 경우, 기존으로 볼 때 73억은 기존에 국가에서 광역시도 경찰청으로 내려오던 그런 사업비라서 저희가 예산만 잡고 도로 지방경찰청으로 보내야 되는 상황이고요. 저희 도비는 13억 정도를 이번에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지금 법적으로 저희가 이렇게 작은 사업들을 많이 벌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그런 예산도 경찰청의 의견을 듣고 도에서 편성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돼 있고. 그런데 법상 굉장히 지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앞으로 관련 법들을 개정해야 될 과제들이 굉장히 많은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어떻든 애매모호한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애매모호한 내용이 많아요. 경찰청에서 국비로 내려온 사업을 가지고 또 저희들이 거기에 대해서 왈가불가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고 또 지방비가 이 사업에 투여된다면 저희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이것은 또 지방경찰청장과 자치경찰위원장님의, 갈등은 아니겠지만 서로의 협조 없이는 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이거든요. 어쨌든 이러한 내용들을 저희 자치경찰 행정업무를 소관하고 있는 우리 안전행정위 위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만들어 나간다면 좀 더 순조롭게 진행이 될 것 같아서 부탁의 말씀을 드린 겁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알겠습니다.\n○ 김원기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김원기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국중현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국중현 위원 안양 출신 국중현 위원입니다. 먼저 신현기 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님 취임과 사무국 여러분들 출범을 축하드리면서 또 기대를 많이 하게 됩니다.\n우리 자치경찰은 지방정부시대에 맞추고 또 자치분권시대에 발맞춰서 경기도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지역맞춤형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렇게 출범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앙정부행정과 자치행정의 조화로운 연계 속에서 도민들이 안전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적, 물적 범죄 예방 안전대책을 추진하는 운영계획을 갖고 계셔야 되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경기북부 자치경찰이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가장 현재 시급한 거는 홍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n○ 국중현 위원 아니, 그 내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치경찰이 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무엇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저희 자치경찰은, 위원님들 다 아시다시피 국가경찰은 정보, 보안, 외사를 맡게 됐고요. 그다음에 자치경찰은 생활안전 또 여성ㆍ청소년, 교통 이 분야 그다음에 국가수사본부는 형사과, 외사 이쪽으로 3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서 맡게 됐고요. 저희 자치경찰은 도민ㆍ시민과의 가장 가까운 접점에서 안전을, 가장 가까운 업무를 담당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생활안전과 교통과 여성ㆍ청소년 영역이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이념에 맞게 이렇게 업무가 분배돼서 진행이 된 걸로 이렇게 됐습니다.\n○ 국중현 위원 신현기 북부위원장님께서 아주 상세히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됩니다. 그중에 하나 좀 사소한 질문인데 질문드리겠습니다. 교통 분야에 관해서 지금 우리가 5030을 운영하고 있죠. 그런데 그 5030이 과연 효율적인 교통 속도인지 한번 우리 위원장님한테 질문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제가 알기로는 특히 어린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차하고 부딪혀서 사망하는 그런 사건들이 많이 나왔었고요. 거기에 민식이법 이런 것도 대안으로 나오고 그랬는데 30㎞ 정도면 나와서 차에 부딪혀도 크게 다치지 않는 그런 속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주변 이외에서는 50㎞ 정도 그리고 학교 주변에서는 30㎞로 해서 시행하게 된 걸로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n○ 국중현 위원 그렇다면 우리가 국도나 지방도에 지금 60㎞입니까? 현재 60㎞로 내가 알고 있는데 60㎞ 속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60㎞가……. 굉장히 정체가 아마 많이 일어날 걸로 이렇게 보여지고요.\n○ 국중현 위원 그래요. 지금 국도나 지방도에서 정말 속도들이 10~20㎞씩 다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께 그 속도에 대해서 제가 질문을 드렸는데 아무튼 앞으로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반드시, 사고도 중요하죠. 안전에 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경제 속도라는 게 있다. 천천히 달리면 사고 안 나는 거 맞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경제적으로 갈 수 있는 속도를 연구해서 이렇게 지정을 해야 되는데 지금 현재 있는 속도들이 좀 낮은 감이 있지 않나 이런 말씀을 드려봅니다.\n다음은 제가 좀 궁금해서. 업무보고서 31페이지 보시면 안전한 경기북부를 책임지는 경찰서장을 평가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계시지요. 경찰서장을 평가할 수 있는 어떤 법률 기준이 있습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경찰서장을 평가할 수 있는 조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그 대신 자치경찰제가 실시됐기 때문에 자치경찰의 업무에 경찰서장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적극적으로 했느냐 여부를 평가해서 인사권자인 경찰청장에게 보내면 경찰청장이 10%를 인사에 반영하도록 그렇게 명시가 돼 있습니다.\n○ 국중현 위원 제가 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위원회가 어떤 권한이 없어서 자치경찰제가 조기에 정착되는 게 좀 우려스러웠는데 다행히 경찰서장을 평가해서 자치경찰제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는 방법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평가를 잘해서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감사합니다.\n○ 국중현 위원 이상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국중현 부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 권락용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권락용 위원 성남의 권락용 위원입니다. 우선 처음 인사드리는 거라 반갑다는 말씀드리고 저희가 방금 전에 남부자치경찰위원회의 보고를 받았는데 그때 저희 위원님들 의견 내시는 거 혹시 들으셨습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봤습니다.\n○ 권락용 위원 방청하고 계셨습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권락용 위원 그럼 뒤에 있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인가요,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대부분 같이 봤습니다.\n○ 권락용 위원 사실 중복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저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 다만 말씀을 드리자면 보고는 똑같이 받았는데 어떻게 보면 남부가 좀 더 크고 북부가 조금 작은데도 불구하고 자료는 더 충실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감사합니다.\n○ 권락용 위원 그래서 위원들이 이해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라는 평가를 드립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료 취합이나 내용들이 뭔가 하겠다는 비전이 정확하게 나와 있어서 이렇게 되겠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오히려 남부보다 나아서 저는 어쨌거나 자료를 만드신 분도 잘했겠지만 위원장님이 뭔가 신경을 더 쓰시는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은 고생하셨다 이 말씀을 좀 드리고요. 어떻게 보면 연구직에 더 계셨던 분이시기 때문에 자료의 충실도와 앞으로의 비전 그리고 그동안 생각했던 고민과 이런 내용들을 저는 자료에 담았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n다만 제가 우려하는 바는 뭐가 됐든 아까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인사권과 예산인데 그게 충실하지 않으면 뭔가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좋은 생각이 있더라도 권한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래서 인사권과 예산권이 없는 걸 알지만 예산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저희 위원회가 힘닿는 데까지는 돕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또한 인사권의 문제는 중앙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있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점차 해결이 된다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드리면서 그 안에서 좀 분투를 해 주시라. 또 북부만 뭐가 잘 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남부랑 협의를 해야 되고 이런 어려운 과정. 어떤 거는 경찰청 본청하고 이야기해야 되고 어떤 거는 북부청하고 얘기해야 되고 어떤 건 또 경기도랑 얘기해야 되고 아마 혼란스러울 겁니다.\n그리고 감사 평가도 물론 이거를 인사권자인 경찰청장이 받아서 적용하면 다행이지만 “너희가 한 거 무시할래. 나는 나대로 할 거야.” 하면 이건 그냥 날아가는 평가예요. 참 이게 여러 가지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 위원들도 그런 평가를 해요. 그 비슷한 평가를 받지만 평가와 관계없이 뭔가 인사권자 하려면 또 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참 세상이란 게 저도 보니까 정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가운데서도 어려운 거 알고 제도가 안 돼 있고 예산이 없는 것 알고 있지만 그 안에도 꽃피울 수 있는 게 있더라. 저는 그거를, 누군가는 또 알아줍니다. 자료 이거 하나 갖고도 벌써 비교해 보면 ‘여기가 좀 더 낫구나.’란 평가를 위원들이 하는 것처럼 저는 위원장님이 처음 되셨으니까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경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의 가족이시긴 하지만 경찰은 또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하면 그걸 돕는 누군가는 있을 것이고 또 그 안에서 방법을 찾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시작하는 겁니다.\n제가 이 내용을 쭉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여성과인가요? 여성과, 교통하고 한 군데 더 있던데 이것만큼은 점차 챙겨나가겠다라는 의지로 저는 봤습니다. 맞습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권락용 위원 뭐 어떻게 그러면 점차적으로, 직속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직할이라고 해야 되나요? 어떻게 하면 이거를 제대로 된 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저는 그걸 잘 몰라서 질의를 드립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그동안 위원님들 잘 아시다시피 저희 문재인 정부에서 이원화 자치경찰안을 추진해 오다가 갑자기 방향이 틀어져서 일원화로 이렇게 진행이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예산이 많이 소비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자치경찰제에 3조 6,000억 정도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게 어려웠기 때문에 아까 보고드렸던 국가경찰과 자치경찰과 국가수사본부 세 영역으로 나눠서 일단 자치경찰제를 출범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게 아마 정부의 입장이었던 걸로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거를 국가경찰이 자치경찰의 업무를 대신 수행해 주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 일단 급하게 출범을 했기 때문에 아무튼 18개의 광역시도 경찰청에 보면 자치경찰부가 경무관급으로 부장이 만들어져서 서울은 치안감급으로 이렇게 한 계급이 더 높은데요. 그렇게 해서 자치경찰부장 밑에 방금 이렇게 보고드렸던 생활안전과 그리고 여성청소년과, 교통과 3개 과가 자치경찰로 이렇게 조직이 만들어져 있고요. 저희 자치경찰위원회가 광역 시도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권한이 주어져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아까 말씀드렸던 경찰서장은 또 저희가 관여를 못 하고 다만 그래도 10%의 평가의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경찰서장들도 자치경찰업무와 관련된 생활안전, 여성청소년과, 교통과의 직원들을 잘 관리감독해서 협조가 잘 이루어질 걸로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경찰서장을 평가한 다음에 그 결과를 도지사한테 통보합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저희 위원회가…….\n○ 권락용 위원 뒤에 자료 듣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통보가 되나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경찰청장에게 공문으로 이렇게 심의 의결한 결과를 보내게 됩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러니까 경찰청장한테 가는 거는 당연히 아는 것이고 도지사한테도 보고가 가냐 이 얘기예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통보를 심의 의결된 결과를 통보해 드리는 겁니다.\n○ 권락용 위원 지사한테는 간다. 그리고 담당 위원회인 저희 위원회에도 오게 됩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위원회에는 보내진 않지만 아마 업무보고 때 저희가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n○ 권락용 위원 왜냐하면 그거는 제가 들어가시면 다시 한번 확인을 좀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감사 잘했어요, 훌륭하게 했어요. 그런데 인사권자가 안 받아들이면 그냥 끝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다음 해에는 감사하기도 싫을 겁니다. 감사를 한 다음에 그 결과가 반영되어야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뭔가는 했구나라고 될 텐데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가 없으면 그다음부터 사람은 무기력해집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지사와 나중에 의회에 보고가 되면 의원들도 일단 알아요. 누가 잘했구나, 못했구나. 그런데 인사가 그것과 반대가 되면 말들이 나올 겁니다. “이거 왜 못했는데 이 사람은 됐다.” 아니면 “이 사람은 잘했는데 왜 인사는 안 되냐.” 뭔가 여러분들이 한 게 그냥 폐쇄적으로 가면 갈수록 여러분들의 힘은 약화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감사했던 그 결과가 많은 의원들의 공유가 되고 그 내용이 전파가 되면, 이걸 신경 쓰고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여러분들의 감사 권한은 점차 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공개가 되느냐라고 스페시픽(specific)하게 들어갔던 이유는 여러분들이 했던 결과가 인정받으려면 공유가 돼야 된다 그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권한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제가 모르기 때문에 여하튼 지사에게 보고됐으면 즉시 위원장님께 보고가 되든 의회에 보고가 되면 그다음에는 여러분들이 생각 못 하는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들의 권한과 힘과 그런 내용들이 더 발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뭐든지 자료가 공개되지 않으면 힘은 약해집니다. 근데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그 영향은 커집니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가셔서 그 권한이 어디까지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고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내용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 주십시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알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래서 북부에서도 지금 초대 위원장님이시기 때문에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는가가 곧 그대로 방향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분까지도 고민을 좀 해 주십사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나중에 보고해 주십사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알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권락용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김용찬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용찬 위원 용인 출신 김용찬 위원입니다. 간단하게 한 가지만 질의하겠습니다. 업무계획서 27쪽이요. 이 내용을 보면 처우개선을 위해서 어떤 복지포인트 이런 거 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자치경찰과 지방경찰과 이제는 차이가 생기는 거네요, 만약에 이렇게 한다고 하면? 그러니까 자치경찰은 여기 복지포인트나 이런 건 혜택을 누리고 그리고 국가경찰은 여기서 배제되고. 같은 경찰이면서도 좀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건가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복지 분야요?\n○ 김용찬 위원 네. 그러니까 이 내용인즉슨 도 공무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치경찰 공무원의 후생복지가 좀 필요하다 이런 내용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치경찰만 이렇게 하게 되면 국가경찰 쪽에서도 또 처우에 대해서 같이 하지 않고 따로따로 이렇게 한다고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드립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현재 지금 연구해서 대안을 찾아야 될 사안입니다. 지금 국가경찰은 행정안전부에서 만든 대통령령으로 돼 있는 법을 따라서 복지 분야가 이렇게 혜택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그다음에 자치경찰의 경우에는 도 조례에 의해서 마치 경기도 공무원들같이 우리 조례에 따라서 복지가 서로 다르게 돼 있습니다, 법상. 그래서 이거를 앞으로 법을 개정해야 되는 그런 과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먼저 설문조사 이런 거를 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될지를 지금 연구하고 있습니다.\n그래서 그 대응계획으로는 도 자치경찰사무 등 조례 개정을 추진해야 될 걸로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17조에 보면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 등에 대한 지원 이게 “예산의 범위 내에서 복지, 처우 개선 등을 지원할 수 있다.” 그래서 “도지사는…….” 이렇게 우리 조례에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경찰들이 지금 자치경찰업무를 담당하는데 법상 이 혜택을 볼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저희가 지금 준비 중인데 이 17조 자치경찰사무 담당 공무원 등에 대한 지원을 “도지사는 법 제35조제2항에 따라 자치경찰사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경기도 공무원 후생복지에 관한 조례에 따라 경기도 소속 공무원이 적용받는 후생복지에 관한 사항 등 예산의 범위에서 복지, 처우 개선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이게 저희가 경기도의회에 이런 개정을 요청드릴 계획입니다.\n○ 김용찬 위원 법률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이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일부 조례에 이제는 개정이 되어야 되겠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지금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모든 직원들이 국가경찰 신분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지금 행정안전부에서 마련한 대통령령에 따라서 적용을 받기 때문에 저희 도 조례에는 도 공무원한테만 이렇게 지원을 하게 돼 있어서…….\n○ 김용찬 위원 근데 거기에 경찰공무원도 포함이 된다 이런 내용이든지 하여튼 조례가 있어야, 지원 근거가 마련되어야지, 선행되어야지 얘기를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맞습니다.\n○ 김용찬 위원 그렇게 된 다음이라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과 처우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서로 불만이 있지 않을까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현재 업무는 수행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경찰들의 업무수행을 50% 이상 하느냐, 이하냐를 기준으로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이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요. 이게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의 차이점 이런 걸 좁혀나가야 되는 그런 과제가 앞으로 있는데 이제 법을 개정해야 되는 이런 큰 과제가 또 있고요. 앞으로 이 차이가 이렇게 발생된 상태에서 양 업무를 진행할 때에는 아마 자치경찰을 지원하는 그런 경찰관들이 기피할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유인책, 좋은 의미의 유인책 차원에서 그런 관련법을 개정해서 동등하게 지원을 함께 해 주는 이런 쪽으로 풀어가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n○ 김용찬 위원 무슨 내용인지 잘 알았고요. 앞으로 초창기에 자치경찰제를 하는 건데 처음부터 좀 잘 돼 가지고 도민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자치경찰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알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김용찬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아까 우리 위원장께서 조금 전에 답변하실 때 복지와 처우개선에 관련해서 국가경찰하고 자치경찰하고 차별화를 두겠다는 얘기예요, 같이 가야 된다는 논리로 말씀하신 거예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도 공무원들이, 이게 복지제도가 도…….\n(관계공무원,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에게 개별설명)\n도 공무원하고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관들하고 117만 9,000원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도 공무원이 많이 받고 있는데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국가경찰들도 같이…….\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도 공무원하고 자치경찰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공무원하고 복지, 처우개선에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끌어올리면 될 일이고 아까 우리 김용찬 위원님께서 질의하실 때 그럼 국가경찰하고 지방경찰하고 괴리가 생기는 거 아니냐.\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맞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이 부분도 그럼 국가경찰은 우리가 지원할 수가 없잖아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못 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니에요, 그렇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위원장 김판수 국가경찰하고 자치경찰하고 구분이 돼서 갈 수밖에 없다, 처우개선, 복지 문제는.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되죠, 저희들이?\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현재는 그렇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렇게 명쾌하게 좀 해 주셔야지 아까 답변하실 때 본 위원장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질의를 드린 것이고.\n그다음에 얘기 나온 김에. 지금 감사를 가게 돼 있죠, 감사?\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위원장 김판수 감사 하신다 그랬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위원장 김판수 기본감사 중에서 자치경찰 감사와 국가경찰 감사가 구분이 된다는 이런 정도이지 감사 기준이 바뀌고 별도로 가고 이런 건 아니죠, 자치경찰위원회에서?\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그동안…….\n○ 위원장 김판수 감사를 감에 있어서 자치경찰위원회 소속 감사위원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포함이 됩니까, 기존 경찰이 하고 있는 감사관만 가게 됩니까? 감사를 함에 있어서.\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경찰청에서 18개 시도 경찰청 감사를 하고 또 그 시도 경찰청이 경찰서를 감사하고 이런 건 기존에 계속 그렇게 진행이 되어 내려왔고요. 이번에 저희가 7월 1일 날 출범을 해서 자치경찰과 관련된 내용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쨌든 기존에 이렇게 해 내려오던 걸 기준으로 해서 저희 감사팀에서 참여를 하고 시도 경찰청, 다시 말해서 북부경찰청에서도 함께 나가서…….\n○ 위원장 김판수 자, 그러면 이렇게 본 위원장이 이해하면 됩니까? 기존 감사를 하는 기준대로 하고 그다음에 자치경찰위원회 쪽에서 감사위원이 가서 같이 하게 되는 거예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같이 나갑니다.\n○ 위원장 김판수 같이 나가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위원장 김판수 그렇게 나가야 될 겁니다. 그래야지 자치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위원회에 관련된 업무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궁금한 게 기존 경찰청이 하는 감사위원들만 나가서는 자치경찰위원회가 소외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업무파악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다라고 해서 같이 가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신다는 얘기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저희 감사팀이 지금 같이 나가서 시작이 됐습니다. 감사를 하고 있고요.\n○ 위원장 김판수 네, 그럼 잘 하신 것 같아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향후에는 자치경찰위원회의 독립적인 자체 감사규정을 현재 만들고 있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러면 경찰청하고 아예 분리를 해서 향후에는 자치경찰만 감사권을 갖고 하겠다는 이런 계획도 갖고 계신다는 얘기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위원장 김판수 참고로 알았습니다. 서현옥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서현옥 위원 평택 출신의 서현옥 위원입니다. 업무보고 준비하시느라 굉장히 고생 많으셨던 것 같은데요. 우리가 느끼기에는 다 똑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직전에 남부경찰위원회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좀 답답함이 있었는데 북부경찰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여기는 용역을 혹시 진행하셨나요, 용역?\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서현옥 위원 남부경찰위원회는 지금 경기도형 자치경찰제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걸 가지고 용역을 수립하고 있거든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서현옥 위원 혹시 여기에 나온 비전이라든가 여러 가지 앞으로 지향하는 북부경찰의 실현이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게 용역결과로 이렇게 나온 건 아니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용역이 지금 8월 달부터 11월까지 도의회 예산으로 경기연구원에 의뢰를 해서 자치경찰제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들 이런 것들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 연구용역에 남부와 북부를 함께 담아서 11월에 나오게 될 예정으로 있습니다.\n○ 서현옥 위원 제가 왜 묻냐면 남부는 지금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고 북부는 같이 지금 진행 중이라면 거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여기 업무보고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보면 용역에서 진행돼야 될 이런 내용들이 벌써 담아져 있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굉장히 업무보고 철저히 준비해 주신 것 같고 실제적으로 우리 위원장님께서는 연구를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경찰의 업무를 수행하시진 않아서 이론과 실무를 병행해야 될 부분이 사실 있잖아요, 위원회는. 그런데 굉장히 적절하게 소통하면서 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이 되고 그래야지 조금 더 노력해 주시면 빨리 조기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n지금 보면, 업무보고 자료 34쪽을 보면 사업내용부터 생활안전, 여성ㆍ청소년, 교통 이런 걸 굉장히 자세하게 이렇게 명시를 해 주셨어요. 이걸 보면서 ‘아, 이게 자치경찰의 업무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이렇게 와닿게 저희들이 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셨는데 굉장히 잘하신 것 같고요. 시책 추진에서도 보면 사회적 이슈라든가 테마 시책, 적시성 이런 걸 굉장히 자세하게 여기 명시를 해 주셔서 저희들이 업무 파악하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고요.\n국중현 위원께서도 교통에 관한 이런 질문을 주셨는데 사실 저도 실제적으로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게 스쿨존에서는 30㎞ 이하로 가야 되는 게 맞는데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하교하는 시간이 대부분 6시면 거의 다 고학년들도 하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속도는 계속해서 30㎞로 가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일반 시민들께서 통행하는 데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고 예를 들면 밤 12시가 되든 밤 10시가 되든 속도는 계속 30㎞로 달려야 되는 이런 불편함이 굉장히 있는데 이거에 대한 개선책이라든가 이런 게 나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부분들은.\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경제적인 분야, 아까 위원님이 지적해 주신 대로 경제적인 측면 또 생명의 소중함 이걸 어디에 중점을 더 둘 것인가에 아마 이 법을 만드신 의원님들의 고민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살리자 여기에 아마 중점이 더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n○ 서현옥 위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인정을 하는데 특히나 초등학교 주변, 학교 주변의 스쿨존 지역에 30㎞ 이하로 운행을 해야 되는 이런 기준이 있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면 제가 말씀드린 것도 초등학생들 하교 시간이 고학년까지 하면 6시 이후로는 거의 다 할 거예요. 그 이후에라도 적정하게 조금, 아주 속도를 세게 하는 게 아니라 적정수준을 유지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좀 해 보고요.\n그리고 신호체계 같은 경우도 경찰서보다는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와닿거든요. 본인들이 출퇴근 시간이라든가 여기는 동시신호를 줘야 된다든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 본인들이 느끼고 있는데 경찰서에 민원을 넣어도 그게 시정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좀 나와서 보고 밀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신호체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실제적으로 느끼는 시민들의 민원이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으로다가 느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그냥 차단하고 이건 그냥 한 번 해 놨으니까 규정대로 돼야 된다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유도리 있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시민들에게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게 변형을 해 주셔야 된다는 생각을 해서 이런 말씀도 드렸고요.\n하여튼 업무보고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저희들이 느끼기에 굉장히 잘 업무보고를 준비하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조기 정착될 수 있도록 저희 의회하고도 소통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감사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이렇게 탄력운영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저도 필요하다고 보고요. 시간대별 소통대책, 신호체계 이런 것까지 종합적으로 저희 위원회에서 검토해서 개선해 나가는 데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n○ 서현옥 위원 이상입니다.\n○ 위원장 김판수 서현옥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죠?\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업무보고에 대한 질의 답변을 종결하겠습니다.\n위원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n위원 여러분! 중식시간을 갖고자 정회코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그럼 14시까지 정회토록 하겠습니다.\n(12시35분 회의중지)\n(14시08분 계속개의)\n○ 위원장 김판수 좌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2.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경기도지사 제출)\n- 경기도 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균형발전기획실, 자치행정국\n○ 위원장 김판수 다음은 의사일정 제2항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을 상정합니다.\n안건을 처리하기에 앞서 간단히 안내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심사할 제3회 추경안은 당초 8월 20일 제출된 안건에 이어 수정안을 8월 25일 제출한 관계로 수정안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수정안에는 우리 위원회 소관 예산안이 포함돼 있으며 주요내용은 안전관리실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관련 내용과 자치행정국의 지방세 부분이 되겠습니다.\n그럼 먼저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와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예산안에 대해 심사하겠습니다. 김덕섭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님 나오셔서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입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시는 존경하는 김판수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선 업무보고에서 간부공무원 소개는 드렸으므로 생략하고 바로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배부하여 드린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중심으로 보고드리겠습니다.\n예산안 425쪽입니다.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일반회계 세입예산은 없으며 세출예산은 기정예산액 10억 49만 원 대비 1,845만 원을 증액한 10억 1,894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n부서별 세부내역입니다. 426쪽입니다. 남부기획조정과 세출예산입니다. 남부위원회에 일괄 편성된 남ㆍ북부위원회 운영비 중 북부 몫을 감하고 북부위원회에 이를 다시 편성하고자 자치경찰제 도입 운영 지원예산 7,405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427쪽입니다. 남부자치경찰협력과 세출예산입니다. 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자치경찰 정책 홍보 등을 위해 9,250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존경하는 김판수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의 2021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은 예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불요불급한 사업은 배제하고 반드시 필요한 사업만을 편성하였습니다. 원안대로 심의하여 주시면 효과적인 예산운영을 통해 계획된 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김덕섭 남부자치경찰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위원장님, 자리로 앉으시죠.\n이어서 신현기 북부자치경찰위원장님 나오셔서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제안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입니다. 도민의 안전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는 존경하는 안전행정위원회 김판수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제안설명에 앞서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간부공무원의 소개는 앞서 업무보고에서 드렸으므로 양해해 주신다면 생략토록 하겠습니다.\n그럼 지금부터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하여 기 배부해 드린 사업설명서를 중심으로 제안설명드리겠습니다.\n사업명세서 431쪽과 432쪽입니다.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제3회 추경 세출예산은 기정액 대비 7,405만 원을 증액한 1억 6,175만 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북부기획조정과 1개 과에 추경예산이 편성되었으므로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사무실 임차비, 공용차량 임차비, 위원회 운영 등을 위해 필요한 자치경찰제 운영 지원 사업에 7,405만 원을 신규 편성하였습니다.\n이상으로 2021년도 제3회 추경예산안 제안설명을 모두 드렸습니다. 저희 자치경찰 업무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 주시는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금번 예산안을 원안대로 의결해 주신다면 안전한 경기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제안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위원장 김판수 신현기 북부자치경찰위원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다음은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경기도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추경예산안에 대해 검토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전부열입니다. 지금부터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 안전행정위원회 소관 검토보고를 드리겠습니다.\n2021년도 제3회 추경 안전행정위원회 소관 전체 예산규모는 5조 3,824억 원으로 2021년 기정액 대비 7,658억 원이 증가하였습니다.\n다음은 경기도남ㆍ북부경찰위원회 소관 제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하여 검토보고드리겠습니다.\n2021년도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은 10억 1,893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1,845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검토의견으로는 자치경찰 정책 추진사업으로 남부자치경찰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아동ㆍ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생활안전에 관한 정책 홍보를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경기도 자치경찰을 홍보하기 위한 신규사업입니다. 라디오나 G버스, TV 등 도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방송매체 홍보와 온라인 홍보를 위한 영상제작, 자치경찰제도 기반 구축과 도민 소통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방법의 홍보를 위해 9,250만 원을 편성 요구하였습니다. 자치경찰위원회의 출범을 모르는 도민들에게 자치경찰위원회의 출범을 알리고 도민과 소통하기 위해 홍보예산 편성은 필요해 보이나 정책토론회의 경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국가기념일 행사 등 각종 기념식을 포함하여 설명회, 토론회 등 행사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3단계에서도 실외행사 50인 미만만 허용되는 등 행사 개최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예산의 불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황에 따라 온라인 개최방안을 검토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n다음은 2021년도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은 1억 6,175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7,405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주요 증액사유는 남부자치경찰위원회에 편성되어 있던 북부자치경찰위원회 예산 7,405만 원을 이체받는 것으로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기타 세부내역은 검토보고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이상으로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도 제3회 추경(남북부자치경찰위원회))\n○ 위원장 김판수 수석전문위원 수고하셨습니다.\n위원님 여러분께 안내말씀드리겠습니다. 예산안을 심의함에 있어 남부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가 지금 한자리에서 답변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질의하실 때 남부면 남부, 북부면 북부라고 호명을 하시고 나서 질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남부ㆍ북부위원장님께서는 앉은 자리에서 답변을 하셔도 좋습니다. 원래는 서서 해야 되는데 식사도 하고 그러셨으니까 앉아서 차분하게 위원님들이 질의하시면 아는 대로, 혹시 또 미리 숙지 못 한 부분이 있으시면 뒤에 계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충실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n그럼 질의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께서는 거수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 국중현 부위원장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국중현 위원 수고 많으십니다. 안양의 국중현 위원입니다. 남부ㆍ북부 공히 질의드리겠습니다. 이게 자치경찰제가 도입될 때만 해도 초기에, 도입된다는 초기에 ‘모든 재정은 국비로 지원이 된다.’ 이렇게 도민들이 알고 있고 저희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경기도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여기에 어디까지 국비로 하고 있고 또 어디까지는 도비로 하고 있는지 남부위원장님 한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 예산 문제가, 아까 오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고요. 그리고 이 자치경찰위원회의 사무성격이 국가 위임사무인지 자치사무인지 그것까지도 아직 정리가 제대로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금년, 내년까지는 기존의 자치경찰사무에 해당하는 여ㆍ청, 생안, 교통 이 기본적인 예산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 경찰청에서 일괄적으로 각 지방에 배부를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고요. 그다음에 거기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지방비를 요청드리고 있는 그런 상황이고 그리고 23년부터는 전액 지방비를 지급하는 쪽으로 지금 경찰청에서 용역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n○ 국중현 위원 북부도 마찬가지겠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그렇습니다.\n○ 국중현 위원 그렇다면 이게 도비로 계속 증액이 될 공산이 큰데 우리 도에서 예산이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비를 더 많이 활용해야 될 텐데 거기에 대한 방안은 있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방안이라기보다는 사실 저희들도 큰 영향력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 법에 보면 국가사무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국비를 지급한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BH나 경찰청 이쪽에다가 적극적으로 지급해 달라, 지금 거기다 건의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n○ 국중현 위원 네. 적극적으로 국비를 지원해 달라는 그런 계획에 대해서 저희 도 광역단체장 도지사와 많은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또 해당 안행위 위원들과 소통을 통해서 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연구하고 좋은 의견이 있거나 방안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광역단체장 또는 안행위의 위원들에게 소상히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국중현 위원 이상 질의를 마치겠습니다.\n(김판수 위원장, 최갑철 부위원장과 사회교대)\n○ 부위원장 최갑철 국중현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소영환 위원님 질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 소영환 위원 고양 출신 소영환 위원입니다. 우리 남부위원장님께 질의 좀 드리겠습니다. 지금 정책토론회 2회를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 토론회는 어떤 토론회입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우리가 자치경찰사무를 하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가장 시급하다고 보이는 교통정책토론회 그리고 고위험 정신질환자 관련 토론회 이것 2개를 현재 생각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네. 그런데 아까 전문위원 검토보고도 했지만 지금 4단계고 저희 의회에서도 토론회를 개최 못 하고 모든 걸 줌토론회로, 줌으로 해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런 토론회를 하려면 줌을 통해서 하든지 비대면으로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 부분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혹시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조금이라도 완화된다든지 하면 그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보고 아니면 만약에 4단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 지침으로는 50인 이하로 하는 건 괜찮거든요. 그래서 50인 이내로 참석하는 그런 토론회, 그것도 연구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것도 안 되겠다, 힘들겠다 싶으면 온라인 쪽으로 이렇게 해서 거기다가 한 2개 정도 교통정책토론회, 고위험 정신질환자 토론회 거기에 플러스 해서 범죄예방환경설계 셉티드 그다음에 아동학대 근절 이렇게 한 2개 정도 추가해서 그렇게 온라인상으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네. 만약에 진행을 온라인으로 하든 비대면으로 50명 이하로 해서 할 때 우리 위원회에 꼭 좀 알려 주셔 가지고 동참할 수 있으면 동참할 수 있게끔 해 주시기 바랍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이상입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소영환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권락용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권락용 위원 성남의 권락용 위원입니다. 남부가 지금 하고 있는데 임차료, 임대료 보증금이 1억 5,000이 들어갔는데 맞습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액수는 제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튼 맞습니다.\n○ 권락용 위원 지금 사무실이 어디에 있어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장안구 송죽동 행정동우회 사무실에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행정동우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n○ 권락용 위원 아, 그러면 남부청 근처에 있거나 이런 것도 아닌 거네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장안구청 근방입니다.\n○ 권락용 위원 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장안구청 근방이고 수원공설운동장 북문 쪽에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러니까 남부청은 저쪽 가다가 있는 거고 이거 거리가 좀 있네요, 그렇죠?\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경기도행정동우회관 4층 전체를 쓰고 있고 도청, 경기남부청하고는 차로 한 10분 정도 거리가 되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가까이 있는 데도 아니구나. 저는 또 가까이 있어서 뭐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결국 따로 있는 조직이네요, 진짜로, 경찰하고는. 왜냐하면 운영하는 걸 저희가 직접 눈으로 안 봤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돼 있는지 몰랐는데 지금 남부 같은 경우는 보증금이 1억 5,000 들어왔는데 북부는 보증금 개념은 없어요. 그렇죠? 있어요, 북부도?\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저희 북부가 1억 5,000입니다, 보증금.\n○ 권락용 위원 북부가 1억 5,000이에요? 잠깐, 제가 반대로 봤구나. 잠시만요. 남부도 1억 5,000인데, 임차보증금.\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그 예산이 남부에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러니까 실제로는 북부가 나가 있는데 집행은 전체를 남부에서 하니까 남부로 잡았다 이 얘기입니까?\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권락용 위원 그러면 이 내용은 실제로는 북부 내용이에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보증금만.\n○ 권락용 위원 이게 뭐가, 양쪽으로 돼 있으니까.\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그 보증금이 1억 5,000…….\n○ 권락용 위원 자, 제가 정리할게요. 정확하게 누구 한 명이 정리를 해 주세요. 남부에서 책임지고, 이게 도대체 서류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이 1억 5,000이 어디 거예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보증금 1억 5,000이 있는데 그 예산은 우리 남부 쪽에 편성돼 있지만 북부 보증금으로 나가고 있습니다.\n○ 권락용 위원 아니, 이 서류를 보고 위원들이 어떻게 알아요? 그러면 여기 비고란이나 다른 데다가 이건 실제 북부지만 집행은 남부에서 하기 때문에 남부에서 잡혔다 이런 게 있어야 잡히지, 이것만 보면 남부 예산인데. 이게 맞습니까? 제가 틀린 것 없죠? 그러면 북부가 지금 1억 5,000이 보증금으로 나가 있고, 그렇게 나간다는 거고요.\n그래서 저는 남부랑 북부랑 조금씩 다르길래 확인을 좀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이게 뭔가. 큰 틀에서 문제 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다만, 두 곳 다 그러면 실제로 의정부 북부경찰이라고 하나요? 거기랑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지금 북부 같은 경우는?\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저희 사무실은 의정부역에서 약 6~7분 정도 걸리는 근처에 있습니다, 의정부역.\n○ 권락용 위원 근처에. 그러면 실제로 교류는 회의 말고는 거의 없겠네요, 현실적으로.\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 맞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렇죠?\n○ 경기도북부자치경찰위원장 신현기 네.\n○ 권락용 위원 남부도 마찬가지고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장 김덕섭 네, 그렇습니다.\n○ 권락용 위원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자주 보는 상황도 아닌데 그렇다. 저도 운영하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이해는 되는데 다만 걱정은 솔직히 됩니다. 사람이라는 게 무조건 만나야 누군지도 알게 되고 일을 할 때는, 저도 똑같아요. 우리 공무원 조직, 경기도청이 공무원 조직이지만 아는 과장님한테 전화했을 때는 즉각즉각 바로 되지만 모르는 과장님일 때는 일일이 해명하고 만나고 이런 절차가 더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이건 위원들이 전혀 지금 모르는 상황이라 그냥 임차보증금 확인하면서 좀 내용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n앞으로는 자료 할 때, 모르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남부에서, 중앙에서 정리를 하더라도 북부에 대한 내용은 북부라고 표시를 하나 안 해 주면 이 같은 문제는 계속 발생합니다. 그래서 북부에 대한 내용은 북부라고 적어주시든가 뭔가 방법을, 우리 위원들이 알 수 있게끔 정리를 해 주세요, 앞으로 내실 때. 이거 누가 취합해서 정리합니까? 어디에서 취합해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남부기획조정과장 남상은 남부에서 합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러니까 남부 어디?\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남부기획조정과장 남상은 남부기획조정과에서 합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러면 기획조정과에서 앞으로는 북부ㆍ남부 할 때는 조금 정리해 주십사 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 경기도남부자치경찰위원회남부기획조정과장 남상은 네, 잘 알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이상입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권락용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n(「없습니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님이 안 계시므로 경기도남ㆍ북부자치경찰위원회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질의 답변을 종결토록 하겠습니다.\n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 잠시 정회코자 하는데 이의 없으시죠?\n(14시32분 회의중지)\n(14시43분 계속개의)\n○ 부위원장 최갑철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n다음은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추경예산안에 대해서 심사하겠습니다. 우리 류인권 균형발전기획실장님 나오셔서 간부소개와 함께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입니다. 평소 도정 발전을 위해 애써 주시고 특히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는 존경하는 최갑철 위원장님과 안전행정위원회 위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특히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셔서 북부청사의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는 연결통로 공사가 지난 7월 30일 날 완료되어서 직원들이 아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제안설명에 앞서 균형발전기획실 안전행정위원회 소관 간부공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이순구 비상기획관입니다. 올해 7월 1일 자 신규임용되었습니다.\n(인 사)\n박상일 행정관리담당관입니다.\n(인 사)\n변상기 회계담당관입니다.\n(인 사)\n이준영 비상기획담당관입니다.\n(인 사)\n김춘기 군관협력담당관입니다.\n(인 사)\n이상으로 간부공무원 소개를 마치고 미리 배부해 드린 사업명세서를 중심으로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n먼저 407쪽 세입예산입니다. 세입 추가경정예산안은 528억 2,963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8억 2,679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 세부내용은 먼저 비상기획담당관은 도비 보조금 집행잔액 및 이자반납 등으로 2억 9,791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 군관협력담당관은 도비 보조사업 집행잔액 및 이자반납으로 5억 2,888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n다음은 409쪽부터 410쪽까지 세출예산입니다. 균형발전기획실 제3회 일반회계 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은 694억 2,058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6,804만 원을 감액하였습니다.\n409쪽 비상기획담당관 세출예산은 41억 8,122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2,086만 원을 감액하였습니다. 그 세부내역은 코로나19 감염 확산 등으로 예비군의 날 행사와 현장중심 비상대비 직무교육 2개 사업이 취소됨에 따라서 4,000만 원을 감액하였습니다. 또한 다중이용 건물용 민방위 경보 통제시스템 등 2개의 국고보조사업 및 페이퍼리스 촉진 시범사업으로 시행되는 민방위 모바일 전자고지 집행잔액 반납에 따라서 반환금으로 1,914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n410쪽 군관협력담당관 세출예산은 526억 1,395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4,718만 원을 감액하였습니다. 그 세부내용을 말씀드리면 군장병 위문공연과 군부대 작은공연 2개 사업은 낙찰차액 4,718만 원을 감액하였습니다.\n이상으로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존경하는 최갑철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제출된 예산에 대해 원안대로 의결해 주신다면 저를 비롯한 집행부 모든 직원들이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류인권 균형발전기획실 실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추경예산에 대해서 검토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전부열입니다. 지금부터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검토보고를 드리겠습니다.\n2021년도 경기도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입 추가경정예산안은 528억 2,963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8억 2,679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2021년도 경기도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은 694억 2,058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6,804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검토의견입니다. 한미친선 교류사업은 경기도 주한미군 주둔 지역 등 피해방지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 지역에 도민들과 미군 간 교류행사를 통해 상호 이해와 지역사회 안정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이번 추경예산안에서 평택시는 편성한 예산의 82%를 집행하고 18%를 반납하였으나 동두천시는 2020년 예산 대부분을 불용하여 98%를 반납하는 상황입니다. 집행부에서는 한미친선 교류협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교류 프로그램이나 비대면 소통행사 추진 등 다각적인 방안 모색을 통해 향후 예산이 불용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며 부득이 예산의 미집행이 예측될 경우 감액 추경을 통해 가용재원을 확보,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이 편성될 수 있도록 사업추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타 세부내역은 검토보고서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n이상으로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도 제3회 추경(균형발전기획실))\n○ 부위원장 최갑철 수석전문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다음은 질의 답변 순서입니다. 기획실장님께서는 자리에서 그냥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하실 위원님께서는 거수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원기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김원기 위원 의정부 출신의 김원기 위원입니다. 균발실장님 이하 북부에서 오신 공직자 여러분, 고생 많이 하셨고요. 별 큰 게 없지만 궁금해서 질의하는 내용입니다.\n세입세출안 3차 추경설명서가 있어요, 설명서. 얇은 책자요. 여기 1쪽에 보면 비상기획관 도비 이자반납금 이 내용이 나와 있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n○ 김원기 위원 아마 비상기획관님이 오신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균발실장님이 간단하게 답변하실 수 있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습니다.\n○ 김원기 위원 거기 보면 접경지역 주민대피시설 확충 20억 4,000 이렇게 나가네요, 맞죠? 액수가 20억 정도가 맞습니까?\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총예산은 25억 6,000만 원인데요. 이번에 집행잔액으로 하는 것은 204만 8,000원이 되겠습니다.\n○ 김원기 위원 네. 그러면 현재, 이 액수 때문에 질문드린 게 아니고 접경지역 주민대피시설 확충사업이 어느 곳에서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과거에 연천 쪽에서 진행이 된 적이, 제가 보고를 들은 것 같아요. 이거 혹시 상세내용을 아시나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현재 지금 주민대피시설은 접경지역에 대해서만 국비지원을 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 지금 접경지역 7개 시군에 75개가 설치돼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자세한 내용 한번, 과장님이 옆에 주셔 가지고. 날짜부터 언제 시행을 해서 어디까지, 금년 9월 2일까지 어떻게 진행이 됐는지요.\n(관계공무원, 균형발전기획실장에게 개별설명)\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위원님, 현재 지금 접경지역 같은 경우는 국가에서 국비지원을 50% 해서 지원해 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 같은 경우는 설치기준이 1인당 1.43㎡입니다. 그래서 설치기준은 대피시설로부터 5분 거리 내에 있는 주민들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데 현재 그래서 접경지역은 75개가 설치돼 있고 전체적으로는 인구 대비해서 한 350% 정도 초과 설치돼 있는데 문제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읍면동 단위로 보면 없는 지역이 있어서 그 부분은 저희가 계속해서 지금 국비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행안부에서는 그거를 다 설치해 주기에는 재정부담이 너무 많다 이런 입장이어서 전체적으로 모든 1인당 5분 거리 내로 설치하는 것은 조금 무리, 아직은 좀 부족한 상태입니다.\n○ 김원기 위원 접경지역의 주민대피시설이 과거에 보면 1등급, 2등급, 3등급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해 가지고 제가 알기로는 연천에만 지금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용어를 말씀드리면 그게 1등급이 맞습니까? 그 용어가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연천 같은 경우는 지금 인구 대비해서 130% 설치가 되어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파주 쪽은 어떻게 되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파주 같은 경우는 지금 579%입니다.\n○ 김원기 위원 579%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n○ 김원기 위원 그럼 금년도에 계획했던 것들은 몇 %나 지금 이행이 됐나요, 사업 실적으로 볼 때? 금년도의 계획으로 볼 때.\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올해 설치하는 거요?\n○ 김원기 위원 네.\n(관계공무원, 균형발전기획실장에게 개별설명)\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지금 북부지역 7개 접경지역에 올해 2개소 설치하고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저희들이 아마 금년 초에 이거에 관련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현재 9월 2일인데 어디까지 진행이 됐는지 그게 궁금해서 질문을 드린 겁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위원님, 그 질문에 감사드리면서 제가 추가로 말씀드리는 건 저희 균발실에서 내년도에 중점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업은 적정 필요한 그런 주민대피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거기에 아울러서 지금 북부지역 같은 경우는 주민대피시설이 그냥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사시에 정말 필요할 때 주민들이 내가 어디로 대피해야 될지를 모르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 그거를, 주민대피시설을 평상시에 주민들이 체육시설이라든지 회의장이라든지 어떤 주민편의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런 사업들을 진행하려고 하고요. 아울러서 주민대피시설이나 그다음 비상급수시설을 평상시에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통신사와 협의해서 앱 기반으로 그 위치를 알려줄 수 있는 그런 사업을 내년도에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n○ 김원기 위원 과거의 사례를 보니까 일부는 사용할 수가 있는데 일부는 지정만 돼 있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위치도 모르고 또 실제 문을 개방해 들어가 보니까 환기가 안 되어 곰팡이도 끼어있고 여러 가지를 볼 수 있었거든요.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곳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주민들도 잘 모르고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 주민시설로 이용하게 되면 위치도 쉽게 찾게 되는 거고 또 공기도 순환이 되기 때문에 아까 실장님 말씀하셨던 내용들을 빠르게 지도점검도 하셔 가지고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이용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내년도에 예산 신청할 때 다시 한번 설명드리고 부탁 말씀드리겠습니다.\n○ 김원기 위원 네, 수고하셨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김원기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질의하실 위원님, 권락용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권락용 위원 성남의 권락용입니다. 확인만 할게요. 제가 북부생활관 준비해라 그랬는데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지금 저희 담당 과장이 설명드린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현재로서는 우리 도에서 직접 건축한 생활관하고 그다음에 아파트형 그다음에 원룸형 이렇게 해서 총 349명에 대한 수요는 다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가로 지금 생활관 리모델링 공사는 하고 있고요. 이제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추가로 도에서 직접 건축하는 생활관 건축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에 추가 수요라든지 또 공무원들의 선호도조사라든지 활용 부지, 비용 등을 검토해서 중장기적인 과제로 검토를 해 나갈 생각입니다.\n○ 권락용 위원 물론 장기적인 것도 알고 내용도 알고. 그런데 거기 들어가시는 분이 우리 이사관님이 아니시잖아요. 보통은 직원들이고 남부에 있다가 북부 한번 어떻게든 가야 돼서 1년, 2년을 버텨야 되는 분들 때문에 제가 하는 건데 그런 분들 때문이라도 이거는 좀 적극적으로 하셔야 돼요, 의회에서 이렇게 명분 만들어주실 때. 저 성남 살아요. 이거 한다고 뭐 도움이 되겠습니까? 제가 뭐라고 여기서 하겠어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맞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관급에서는 남부에 있다가 한번 북부로 가야 되는데 그럼 생활이라도 안정이 돼야 가라고 보내지, 생활도 안정 안 돼 있는데 어떻게 가라고 얘기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번 얘기한 이상 금액도 많이 들고 그 내용은 알지만 돈이 투입이 돼야 나중에라도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냥 장기적으로 한다 그럼 뭐 안 하겠다 이 얘기밖에 안 돼요. 이걸 모아 냈으면 계획을 해 갖고 부지라도 어디 해야 되고 우리가 이런 계획이라도 해 두면 나중에 실장님 이후에 다른 실장님이 오셔서는 그거에다 뼈대 세우고 세우다 보면 지어지고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실장님 보고 다 지어라 이 얘기 아니에요. 적어도 ‘부지는 어디에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계획들은 준비를 해야 다음 지사가 오건 다음 의원이 오건 다음 실장이 오건 뭔가 추진이 이루어질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부터 그냥 안 하겠습니다, 다음 사람이 합니다 그러면 이건 안 돼요. 못 해요, 그러면.\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위원님, 너무…….\n○ 권락용 위원 내용은 알겠고. 왜냐하면 제가 자꾸 이렇게 얘기드리는 게 뭐냐 하면 이거 안 하면 편해요, 아무도. 뭐하러 건드립니까? 건드리면 토지 잡아야 되죠, 예산 들여야 되죠, 지사님한테 뛰쳐가야 되죠. 힘들어요. 그런데 의회에서 명분을 만들어드릴 때 그리고 우리가 세금을 잡았는데 지방세가 많이 들어와서 1조 이상 예산이 늘어났어요. 그럼 예산도 생겼겠다 뭐라도, 1억이라도 투입하면 그럼 진짜 시작이에요. 제가 단순히 안 된다가 아니라 예산에 얼마라도 좋으니 기본계획이라도 할 수 있는 예산을 잡든 아니면 자산관리과 해 가지고 부지를 잡든 뭐라도 출발점은 만들어 주셔라, 그것만 하시면 된다. 몇 년 뒤에 만들 거를 걱정하지 마세요, 실장님이. 그렇지만 일단 추진할 수 있는 단 1원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끔 명분을 만드시라는 거예요. 그것마저도 안 하시면 이거 실장님 안 하시는 것밖에 안 됩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위원님, 지금 답변을 드리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위원님, 저희 원거리 이동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그런 편의제공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희도 그런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주거시설을 만드는데 저희가 선호도조사를 하면 요즘에 젊은 직원들은 원룸형을 더 많이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재는 아파트 형태, 원룸 형태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제공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선호도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현재로서는 지금 저희가 수요에 대비해서 100% 공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로 되는 수요라든지 이런 것들을 저희가 면밀히 파악을 하면서 위원님 그런 지적사항에 부응하도록 노력을 좀 하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의회에서 그 지적이 나왔던 것은 그 당시에 계약할 때 계약이 되느냐, 마느냐, 누가 도움이 됐었냐 문제가 불거졌어요. 발단이 그거였어요. 특혜가 있었네, 없었네 기사까지 나오고. 의원들이 그런 것까지 뭐하러 신경 씁니까, 사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맞습니다.\n○ 권락용 위원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약 문제가 나오고 지금도 수원에서 임차하고 8개 하는 데 14억이 들어가요. 경제적인 면하고 직원들의 근무적인 조건을 다 따졌을 때 생활관이 필요하다 했고 북부에 계신 의원님들도 동의를 했고 다 모든 사람들이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그 얘기를 강하게 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니라 출발할 수 있는 출발점만 준비해 달라 그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기서 그거에 대해서 논하고 따지고 이럴 사안도 아니고. 대신 좀 적극적으로 뛰셔라. 이거 실장님이 안 하겠다 하면 저는 할 수 있는 방법 없어요. 그렇지만 실장님께서 의지를 갖고 했을 때는 방법이 생기니 한번 추진해 보십사라고 말씀드리는 거고요. 이 사안까지만 딱 말씀드리겠습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n○ 권락용 위원 이상입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권락용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죠? 소영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소영환 위원 고양 출신 소영환 위원입니다. 군장병 위문 관련해 가지고 질의 좀 드리겠습니다. 입찰하고 나머지 금액은 반납하셨는데요. 지금 행사는 하고 있나요? 아직 못 했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군장병 위문공연은 지금 계약만 한 상태고요. 저희가 지금 코로나 상황을 봐가면서 올해는 가급적이면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9월 달 또는 10월 달 이렇게 상황을 봐가면서 지금 하려고 합니다.\n○ 소영환 위원 지금 군부대에서는 얘기하는 게 있어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지금 군부대 위문공연은 다섯 군데 부대 그다음에 작은공연은 두 군데 부대하고 지금 서로 협약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시기만 좀 조율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지금 코로나 사태 때문에 군장병들이야 예방접종을 다 했지만 군부대에서 이거 적극적으로 할 의지가 있나요? 어때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지금 다섯 군데, 두 군데 해서 일곱 군데 부대가 하고 있고 그리고 현재 보니까 96% 이상이 예방접종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지금 방역당국의 코로나 상황을 봐가면서, 거리두기 단계 이런 것들을 봐가면서 시기를 정하려고 합니다.\n○ 소영환 위원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이 행사는 다 할 수 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가급적 하려고 합니다.\n○ 소영환 위원 하여튼 일이 없도록 잘 좀 관리해 주시기 바랍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소영환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죠?\n실장님, 아까 북부청사 연결통로가 준공이 됐다고 그랬어요. 언제부터 통행을 하게 된 거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7월 30일 날 준공이 됐고요. 8월 1일부터 통행이 시작됐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한 달 됐네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통로 그게 규격이 어떻게 되죠, 가로하고 높이하고? 충분한가요, 사람들이 이렇게?\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n○ 부위원장 최갑철 그러니까 규격이 어떻게 되는지? 폭이?\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폭이 3.2m여서요.\n○ 부위원장 최갑철 3.2m.\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래서…….\n○ 부위원장 최갑철 3.2m에 높이가 좀 높아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높이는, 길이는 59m고요. 높이는…….\n○ 부위원장 최갑철 그러면 휠체어가 2개가 교차를 하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원활하게 넓게 이렇게 됐네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코로나도 있고 해서 오는 길과 가는 길 이걸 다 구분해놨습니다. 그리고 특히 장애인들을 위해서 장애인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과 계단이렇게 다 설치했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그러니까 나와서 턱이 없도록 다 그렇게 된 거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올 이번 하반기에 행감 가면 볼 수가 있겠네요?\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위원님들께서 만약에 북부에서 행감이나 예산을 하신다면 거기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아시다시피 8월 달에 우기였지 않습니까. 비가 많이 왔는데 별관에 있는 직원들이 본관의 지하 식당을 이용하는데 아주 편리하게 사용했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아, 식당이 있어서.\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없을 때는 건너다니고 막 그랬는데, 그렇죠?\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연결통로가 생기면서 1층에 그 밑에도 길이 하나 또 생겨서 그쪽에 약간의 쌈지공원도 만들고 1층도 통로가 생긴 그런 셈이 됐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하여튼 불편한 사람들이 일단은 좋아하고 그다음에 지속적으로 북부 쪽의 불편한 점들을 계속해서 찾아서 우리 북부 쪽 도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찾아서 계획을 세워주시고 그러는 데 만전을 기해 주시길 당부드리겠습니다.\n○ 균형발전기획실장 류인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균형발전기획실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질의 답변을 종결토록 하겠습니다.\n이어서 자치행정국 소관 예산안을 시작할 텐데요.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서 협조를 당부드리겠습니다. 회의 바로 이어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n(관계공무원 입장 및 퇴장)\n좌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자치행정국 소관 추경예산안에 대해서 심사토록 하겠습니다. 오태석 자치행정국장 나오셔서 간부소개와 함께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자치행정국장 오태석입니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을 해 주시는 존경하는 최갑철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n제안설명에 앞서 자치행정국 간부공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먼저 이의환 총무과장입니다.\n(인 사)\n박근균 자치행정과장입니다.\n(인 사)\n정영호 인사과장입니다.\n(인 사)\n김병만 열린민원실장입니다.\n(인 사)\n조추동 세정과장입니다.\n(인 사)\n기이도 자산관리과장은 생활치료센터 근무 관계로 불출석하였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n권석필 경기도자원봉사센터장입니다.\n(인 사)\n이상 간부소개를 마치고 자치행정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 세입ㆍ세출예산안에 대하여 배부하여 드린 추가경정예산안을 중심으로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n먼저 393쪽 일반회계 세입예산입니다. 자치행정국 소관 세입예산은 기정액 대비 1조 9,186억 972만 원이 증액된 16조 7,440억 8,946만 원입니다. 주요 세부내용을 말씀드리면 총무과는 경기도 생활치료센터 운영 국고보조금 집행잔액 1,277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고 자치행정과는 시군보조사업 정산에 따른 도비사용잔액 및 민간위탁금 등 도비보조사업 정산에 따른 집행잔액을 포함하여 총 5건에 32억 7,105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 세정과는 취득세 등 지방세 수입증가에 따라 기정액 대비 1조 8,900억 원이 증액된 14조 5,261억 원을 편성하였고 금고 출연금 252억 5,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395쪽부터 일반회계 세출예산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치행정국 소관 일반회계 세출예산은 기정액 대비 523억 1,449만 원이 증액된 9,095억 7,984만 원이 되겠습니다.\n부서별 주요 세부내역을 말씀드리면 396쪽 총무과는 신청사 후생복지시설 설치 및 장비구입에 18억 6,494만 원, 신청사 청사방호시설 조성 관련 1억 2,205만 원 등 총 5건에 20억 238만 원을 증액하였습니다. 아울러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추진이 불가한 모범공무원 국외선진지 시찰 등 총 18건에 12억 295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399쪽 자치행정과는 경기도 주민자치 경연대회 1,350만 원과 주민자치 우수사업 지원 2,500만 원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업 추진이 불가하여 감액하였습니다.\n다음은 400쪽 인사과입니다. 인사과는 채용인원 확대에 따른 공무원 면접 실비지원금 6,000만 원을 증액하였고 코로나19 지속 확산에 따른 집합교육이 축소됨에 따라 공무원 교육훈련비 등 총 3건에 12억 5,65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401쪽에 열린민원실은 민원조정위원회 심의를 서면으로 진행함에 따라 2,400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 402쪽에 세정과는 지방세 수입 1조 8,900억 원 증액에 따른 도세징수교부금 480억 9,000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아울러 차세대 지방세세입정보시스템 분담금 조정에 따라 3억 3,369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404쪽에 자산관리과는 계약만료에 따른 생활관 임차료 추가 확보분 14억 원과 신청사 이전에 따른 신청사 관리물품 구입 및 노후집기 교체비 등 36억 3,835만 원을 증액하였고 코로나19 지속 확산으로 작은동물원을 미운영함에 따라 청사 조경관리 인부임 등 총 2건에 6,973만 원을 감액 편성하였습니다.\n존경하는 최갑철 위원장님과 여러 위원님 여러분! 자치행정국의 2021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은 코로나19 총력 대응을 위해 행사성 사업은 삭감하고 기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위원님들께서 원안대로 심의 의결해 주시면 예산집행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n이상으로 제안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오태석 자치행정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나오셔서 자치행정국 소관 추경예산안에 대해서 검토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 수석전문위원 전부열 수석전문위원 전부열입니다. 지금부터 자치행정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 검토보고를 드리겠습니다.\n자치행정국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입 추가경정예산안은 부동산 거래 증가 등으로 인한 세액 증가분 1조 8,900억 원, 경기도금고 출연금 252억 원 등을 반영, 기정액 대비 1조 9,186억을 증액한 16조 7,440억 원으로 편성되었습니다. 2021년도 자치행정국 소관 제3회 일반회계 세출 추가경정예산안은 9,095억 7,984만 원으로 기정액 대비 523억 1,449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n다음은 검토의견입니다. 첫 번째, 추경안의 지방세 수입경정예산은 14조 5,261억 원으로 당초 12조 6,361억 원 대비 1조 8,900억 원이 증액되어 증액 규모가 15%에 달하고 있습니다. 지방세의 정확한 추계가 지방재정의 안정적인 운영과 도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사업 추진의 중요한 요건인 만큼 집행부는 지방세 추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이번 추경안과 같은 대규모 경정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방세 추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n다음은 신청사 후생복지시설 설치 사업입니다. 광교신청사 이전 시기를 고려하여 2021년 말까지 후생복지시설 내부공사와 장비 구입을 위해 총 18억 6,494만 원을 증액 편성하였습니다. 경기도는 2021년 본예산에 후생복지시설 디자인개발 및 실시설계 용역 예산을 편성해 지난 7월 15일부터 오는 9월 12일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추진 중에 있으며 용역 결과를 반영해 신청사 후생복지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나 용역이 준공되지 않은 시점에서 내부공사를 위한 예산 11억 3,073만 원을 시설비로 편성한 것에 대해서 정확한 산출근거가 무엇인지 집행부의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n다음은 생활관 임차료 예산입니다. 경기도는 원거리 출퇴근 직원의 안정적인 거주 확보를 위해 총 55호의 아파트와 원룸을 임차해 직원생활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추경안은 아파트 전세 보증금 급등에 따른 2021년 계약만료 예정 생활관 임차료 부족분과 전곡항과 탄도항에 근무하는 해양수산과 직원의 거주공간 확보를 위한 신규 생활관 임차를 위해 14억 원을 편성 요구하였습니다. 집행부에서는 아파트 전셋값 폭등 등 부동산 시장여건의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아파트와 원룸에 대한 직원의 이용만족도 조사 등 의견수렴을 거쳐 생활관 운영방식의 변화를 모색하는 등 기존 생활관 운영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타 세부내역은 검토보고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n이상으로 검토보고를 마치겠습니다.\n검토보고서(2021년도 제3회 추경(자치행정국))\n○ 부위원장 최갑철 수석전문위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질의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오태석 국장님, 그 자리에서 그냥 답변해 주십시오.\n질의하실 위원님 거수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이, 소영환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소영환 위원 소영환 위원입니다. 402쪽에 위원회 운영수당 있지 않습니까?\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소영환 위원 이게 어떤 위원회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이게 지방세심의위원회입니다.\n○ 소영환 위원 몇 분으로 구성돼 있어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35명인데요. 풀로 운영하면서 그때그때 운영할 때마다 15명 내외에서 선정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여기는 9명으로 기준을 해서 잡으셨네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런데 요즘 지방세 불복을 청구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의신청이나. 이런 부분을 하다 보니까 월 2회 정도는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원회 운영에 따른 참석이 한 9명 되고 구성은 12명 내지 15명 선에서 하는데 그 수당하고 주니까 좀 부족함이 생겨서 추가로 요구하게 됐습니다.\n○ 소영환 위원 2020년도에 5,700만 원이었는데요. 지금 21년도에는 9,000만 원이 넘어요. 왜 이렇게 회의가 많아진, 건수가 많아져서 회의가 많이 늘어나는 겁니까? 아니면 이게…….\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불복하는 납세인들의 불복 건수가 많다 보니까 저희가 그것을 한 번에 많은 양을 하기는 좀 어려움이 있어서.\n○ 소영환 위원 20년도에도 한 달에 두 번 하시지 않았어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 정도 했습니다. 25회 했습니다, 20년도에.\n○ 소영환 위원 그러면 지금 몇 회 하셨어요, 지금까지?\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건 자료로 좀 설명드리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네, 아무리 많이 늘어났다 해도 지금 2020년도에 5,700인데 여기 거의 1억 가까이 늘었으면 상당히 많이 늘어났거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좀 보충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그래서 인원수는 9명으로 해서 제가 좀 이해가 안 돼서. 9명으로 했다 해서 1인당 따지면 거의 돈 천만 원 꼴이 돼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니, 그러니까 이게 건별로 건에 대한 심의수당을 주는 게 있고 참석수당 주고 이렇게 세 건으로 적용을 하는데요. 그거는 자료를 가지고…….\n○ 소영환 위원 그게 그러면 건당으로 하신다 그러면 여기에 보면 건수가 319건이네요. 그러면 거기에 한 건당 위원들한테 1만 5,000원씩 더 주는 거예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러니까 심의수당은 1만 5,000원이 있고 또 진술해서 하면 2만 원씩 주고 있어요, 건당. 그런데 작년도 같은 경우는 1만 원을 주다 보니까 작년보다는 좀 상향이 된 부분입니다.\n○ 소영환 위원 이게 319건이면 그러면 한 번 회의할 때마다 몇 건 정도 되는 거예요, 평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한 30건까지 나오고 그럽니다.\n○ 소영환 위원 그러면 심의수당만 한 45만 원 되는 거네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 정도 됩니다.\n○ 소영환 위원 그리고 참석수당 10만 원 받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소영환 위원 그러면 한 번 나와서 하면 55만 원 정도 된다는 소리네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집행을 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이게 다른 위원회랑 틀려 가지고 따져보면, 산술적으로 따져보니까 한 위원당 돈 1,000만 원씩 가져가는 것 같아요, 회의수당하고 뭐 하면.\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런데 그거를 위원님, 아까 위원들이 30명이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냥 고정적으로 가지 않고 순회적으로 돌기 때문에 많이 가져가시는 분은 그렇게도 나올 수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그럼 이분들은 어떤 분이세요, 서른다섯 분은?\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지방세 전문가들 위주로 공인회계사도 있고 세무사도 있고 또 교수층도 있고 또 전직 공무원에 세무전문가도 있고 그렇습니다.\n○ 소영환 위원 여기서 기각되거나 취소, 각하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런 경우는 그거에 불복하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할 수 있고 또 소송도 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로 감면받고 이런 것에 대해서 자기들이 또 그 감면을 적용한 기간 동안에 다른 행위를 해 가지고 우리가 추징해서 부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거에 불복해서.\n○ 소영환 위원 그러면 진술수당은 뭐예요?\n(관계공무원, 자치행정국장에게 개별설명)\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지금은 저희가 온라인 회의를 하고 이렇게 하는데 집합으로 할 때 진정인이, 민원인이 진술을 해서 그거에 대해서 심사하고 심의하고 심문하는 그런 것에 따른 수당을 2만 원 주고 있다고 그럽니다.\n○ 소영환 위원 그럼 여기에 이의신청하는 사람한테 주는 돈이에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 심문에 따른 수당을 별도로 또 지급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진술을 하냐고, 이걸.\n(관계공무원, 자치행정국장에게 개별설명)\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위원님, 좀 양해해 주시면 세정과장이 답변드려도…….\n○ 소영환 위원 네, 세정과장님이 해 주세요.\n○ 세정과장 조추동 세정과장 조추동입니다.\n○ 소영환 위원 진술 심의수당이라고 2만 원으로 돼 있는데 그건 어떤 경우에 받나요?\n○ 세정과장 조추동 그건 청구인이 직접 와서 진술을 하시겠다고 신청을 할 경우에 본인이 와서 진술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건 시간도 좀 오래 걸리고 또 질의응답도 하고 그러기 때문에 그건 건당 2만 원씩을 저희가 심의수당으로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올해 회의를 다 온라인으로 하셨죠?\n○ 세정과장 조추동 처음에는 대면으로 하다가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저희들이 지금 영상회의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그런데 이 심의수당도 1만 원이었는데 1만 5,000원으로 올리신 거 아니에요?\n○ 세정과장 조추동 네, 맞습니다.\n○ 소영환 위원 이게 상당히 맞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n○ 세정과장 조추동 저희들이 당초에 인상을 할 때 다른 위원회 수당이라든가 타 시도도 저희들이 다 확인을 해서 어느 정도 적정하다고 판단을 해 가지고…….\n○ 소영환 위원 건수도 있고 또 지금 비대면으로 이거 다 진행하는 거 아니에요?\n○ 세정과장 조추동 그 대신 참석수당 10만 원씩은 저희들이 지급을 안 하고 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참석수당은 지급을 안 하고 있다?\n○ 세정과장 조추동 네.\n○ 소영환 위원 그런데 올해 몇 %나 늘어나서 이렇게 수당이 늘어난 거예요? 이게 1만 5,000원으로 5,000원 올리는 바람에 이렇게 많이 올라간 거죠?\n○ 세정과장 조추동 네, 그런 것도 있고 건수도 지금 상당히 많이 늘고 있습니다. 금년도에 세제 개편으로 인해서 세율 중과에 따른 이의신청이 지금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건수가, 통계자료는 저기 있습니다마는 많이 증가됐습니다.\n○ 소영환 위원 내가 봤을 때 건수보다는 이거 심의수당을 올려서 올라간 돈이 더 많은 것 같은데.\n○ 세정과장 조추동 물론 그게 맞습니다. 보면 50% 정도 인상이 된 걸로 지금 돼 있기 때문에.\n○ 소영환 위원 이거 예상이 안 되셨나요, 처음에 예산 세울 때?\n○ 세정과장 조추동 저희가 전년도도 대비를 해 가지고 세웠는데 막상 하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고 그래서 조금 예측을 못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경에 추가로 좀 요구를 했습니다.\n○ 소영환 위원 이런 수당 올릴 때나 이런 건 좀 심도 있게 과에서 검토하셔서 해야 될 것 같은데요.\n○ 세정과장 조추동 네, 알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늘어난 이유가 처음에는 그거 갖고 예상했는데 또 수당을 거의 50% 올리다 보니까 이런 현상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n○ 세정과장 조추동 네, 두 가지 요인이 다 맞습니다.\n○ 소영환 위원 그래서 앞으로 이런 심의위원회 이런 거 할 때는 한 번 더 생각을 하시고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n○ 세정과장 조추동 네, 알겠습니다. 내년도 심의위원회 수당 할 때는 금년도 자료를 근거로 해서 좀 더 정확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n○ 소영환 위원 이상입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소영환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자리에 앉으시면 되고요. 다음 질의하실, 서현옥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서현옥 위원 서현옥 위원입니다. 후생복지시설 설치하는 거 예산이 지금…….\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18억 정도.\n○ 서현옥 위원 18억 정도 편성했는데 내부공사 11억 이거 올린 건 후생복지위원회에서 회의 결과 필요한 게 있어서 이만큼 올리신 건가요, 뭐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가 신청사로 이사를 가게 되면요. 지금 의무실이라고 저희 의원이 하나 있고 또 양방이 있고 한방이 있고 그다음에 치과를 저희가 새롭게 만듭니다. 치과하고 체력단련실 또 상담실 그런 걸 하다 보니까 거기에 이렇게 구획만 돼 있고 내부적인 건 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게 11억 정도 들어가고요. 또 거기에 대한 물품들 이런 것을 하고 기존의 약품이나 이런 것은 가서 활용을 할 겁니다.\n○ 서현옥 위원 어쨌든 여기 검토보고서에서도 나왔듯이 물론 지금 용역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을 또 증액을 올렸잖아요, 내부공사를 위한 이런 예산을.\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용역은 저희가 9월 10일, 며칠 후면 나오고요. 저희가 세종청사나 서울청사 단가 이런 걸 적용해서 큰 무리는 없을 걸로 예상합니다.\n○ 서현옥 위원 지금 어쨌든 여기 11억 3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또 올리셨는데, 물품구입비로 올리셨는데 이거에 대한 견적서라든가 다 받으신 건가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런 시장조사를 했습니다.\n○ 서현옥 위원 아, 그럼 세부내역 좀 이렇게 올리신 거 있잖아요. 견적서를 받은 거라든가 이런 게 있으시면.\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서현옥 위원 잠깐만요. 자료로 한번 주시고 그리고 예를 들면 지금 저희 자산취득이 있는데 사무기기라든가 이런 걸 다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도 저희가 쓰던 걸,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잖아요. 코로나로 굉장히 힘든 시기인데 굳이 이걸 다 새것으로 살 필요가 있는지. 내구연한 같은 거 확인해 보셔서 재사용할 수 있는 건 재사용하는 걸로 해야지 무조건 다 새 청사, 신청사로 들어간다고 해서 새것으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도 그걸 고려했고요. 적외선 치료기나 러닝머신 같은 건 좀 사용을 해서 교체의 필요성이 있고 이런 건 저희가 상담테이블도 그렇고 감안해서 위원님이 걱정하시는 부분 다 적용했습니다.\n○ 서현옥 위원 다 적용하신 거라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서현옥 위원 다 확인하셨어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걸 우리가 감안해 가지고 필요한 물품만 하고 기존 것도 활용하는 부분하고 같이 포함돼 있습니다.\n○ 서현옥 위원 그 자료를 좀, 견적서를 받은 거라든가 아니면 여기에 나와 있는 금액대로 한번 자료를,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니까 한번 주시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n○ 서현옥 위원 한번 주시고요. 그리고 저희가 신규 직원들 예산을 공무원 면접실비, 면접시험 실비지원이 있는데 저희가 연초에 예를 들면 채용인원이 정해지지 않나요? 어느 정도 퇴직하실 분, 뭐…….\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건 응시율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렇고요. 저희가 설계는 처음에 3만 원을 지원하려고 했었는데 청년면접수당을 5만 원 주고 있거든요, 6회를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도 그거를 동일한 금액으로 또 경기도민한테는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40세 이상 서울시에 거주하거나 타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은 현금 지급하는데요. 출원 인원이 2,200명 되다 보니까 예산이 좀 부족해서 증액 요청하게 됐습니다.\n○ 서현옥 위원 그러니까 예를 들면 채용인원을 어느 정도 우리가 채용해야 되겠다라는 계획이 연초에 나오지 않나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당초는 저희가 계획인원의 한 70%로 봤는데 출원한 인원이, 응시인원이 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어서요. 그걸 딱 예측하기는 쉽진 않습니다.\n○ 서현옥 위원 그래서 어쨌든 처음에는 3만 원으로 예상을 했는데 청년면접수당 이런 것 때문에 5만 원으로 전체적으로 다 올렸다는 거예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서현옥 위원 사실은 이런 예산을 당초에, 인원에 대한 이런 증원이라든가 이런 건 당초에 계획이 거의 나올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예를 들면 퇴직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렇잖아요. 그럼 그 인원에 맞춰서 또 채용을 해야 되는 거고 이렇지 않나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건 채용계획은 수립을 했고요. 그거의 한 70% 선으로 봤는데 시험에 응시하는 인원들이 많다 보니까 저희가 면접수당도 3만 5,000원 계획했다가, 아까 3만 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잘못, 수정하고요. 3만 5,000원으로 계획했던 게 청년면접수당을 5만 원 주니까 저희가 형평성의 원칙에 의해서 맞춰 가지고 5만 원을 집행했어요. 그러다 보니까…….\n○ 서현옥 위원 아니, 그러니까 당초 계획은 3만 5,000원이었는데 청년면접수당 때문에 전체적으로 면접수당을 다 5만 원으로 올렸다는 건 좀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거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가 설계는 3만 5,000원을 지원금으로 주려고 했는데, 실비보상으로. 청년면접수당도 청년들 면접하는 데에 따른 비용으로 5만 원씩 6회를 주니까 그거에 좀 맞춰서 금액을 업을 시킨 거죠.\n○ 서현옥 위원 아니, 그러니까 당초 계획대로다가 어쨌든 예산을 세울 때는 3만 5,000원으로 세운 거 아니에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서현옥 위원 그런데 청년면접수당 5만 원을 준다고 해서 다른 분들까지 다 거기 형평성에 맞춰 갖고 굳이 5만 원으로 줘야 될 이유가 있는 건가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도가 어떤 정책은 또 3만 5,000원 주고 같은 내용의 저기인데 금액에 차등을 두는 건 좀 그래서 형평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n○ 서현옥 위원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셨어야지. 청년면접수당을 언제부터 준 건데요? 청년면접수당을 언제부터 줬는데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청년면접수당도 그 전년도에 예산을 세웠다가 집행을 못 했고……. 양해해 주시면 인사과장님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n○ 서현옥 위원 네, 대신 답변해 주세요.\n○ 인사과장 정영호 인사과장 정영호입니다. 당초 청년면접수당이 청년복지정책과에서 면접을 실행하는 청년들한테 3만 5,000원씩 지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가 예산을 다 쓰고 올 연초에 3만 5,000원에서 5만 원으로 지급기준을 상향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공무원 면접 실비보상도 청년면접수당의 보조에 맞춰서 진행하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똑같이 단가가 5만 원으로 상승되게 됐고요. 그다음에 인원도 당초에 저희가 전체 채용인원의 한 70% 선만 예산을 세웠었는데요. 그거는 혹시나 저희 쪽에 신청을 안 하고 청년면접수당을 신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부분을 감안해서 70%만 했는데 지금 청년면접수당을 지원하는 청년정책복지과에서는 공무원 면접실비 지원하는 게 인사과에서 지원하다 보니까 중복지급이나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공무원 면접시험 대상자는 면접실비를 지원을 안 합니다, 면접수당을.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100% 다 지원하다 보니까 인원에 약간의 착오가 좀 있었습니다.\n○ 서현옥 위원 어쨌든 인원의 착오도 있고 당초 계획에서는 3만 5,000원이었는데 예산 책정도 잘못했다는 거네요, 결국은.\n○ 인사과장 정영호 네, 결국에 저희가 그 부분은, 저희가 또 기준을 정하던 부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따라가다 보니까 그런 불찰이 좀 있었습니다.\n○ 서현옥 위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국장님, 제가 9월 1일 날 본회의장에서 도정질의를 했었잖아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서현옥 위원 청년기숙사에 대한 거 또 푸른미래관과 연결된 부분, 경기도장학관은 우리 자치행정국 부서가 아니지만 푸른미래관에 대해서는 저희 자치행정국 소관이잖아요. 5분발언도 했고 이번에 도정질의까지 했는데 거기에 대한 어쨌든 대안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좀 검토하시고 월요일 날 공유재산 심의가 있어요. 그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계속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는데 거기에 대한 대안이라든가 계획을 전혀 내지 않고 있어요, 지금까지. 그 부분에 대해서 답변 부탁드리고 월요일 날 다시 한번 질문 드리겠습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알겠습니다.\n○ 서현옥 위원 이상입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서현옥 위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은 양운석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양운석 위원 안성 출신 양운석 위원입니다. 세입ㆍ세출안 설명서 11쪽을 참고 자료로 한번 보시고요. 제가 자료에 보니까 세목별 도세 징수현황이, 7월 말 기준이에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양운석 위원 차이는 있겠죠, 지금 추경이니까. 지금 시점을 보니까…….\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제출한 시점하고 좀 차이는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래서 보니까 전년 7월 말하고 현 올해, 전년 동기 대비해서 징수액 자료를 지금 제가 보고 있는데 보니까 등록세, 등록면허세 같은 경우는 전년도하고 비교해서 한 400억 정도 징수액 목표에 감소가 돼 있고 그다음에…….\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감소는 아니고 증액이……. 400억 정도가 더 걷혔습니다.\n○ 양운석 위원 네. 그러니까 이게 목표액은 1년 치를 두고 목표액을 설정하는 거고, 그렇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양운석 위원 징수액은 현재 징수된 금액을 넣은 거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양운석 위원 맞습니다. 그다음에 레저세 같은 경우는 사업설명서 11쪽에 보면 1,200억으로 돼 있는데.\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감액을 하는 부분입니다.\n○ 양운석 위원 여기서는 한 1,500억 정도로 나와요, 7월 말 기준으로 보면. 이게 전년에 비해서 세액이 덜 걷혔다는 말씀이시죠, 지금 자료가?\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위원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코로나19 확산에 따라서 집합으로 관중 입장이 안 되다 보니까 세액이 조금밖에 못 들어왔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렇죠? 그다음에 지역자원시설세도 마찬가지로 한 800억 정도 전년 대비해서 지금 감소가 돼 있고. 제가 지금 궁금한 건 이게 연 목표니까, 연 징수액 목표니까 지금 세액이 감소된 이 부분에 관련해서 전체 예산에 미치는 영향이 혹시 어떤 안 좋은 영향이 있느냐 이게 궁금해서 지금 질의를 드리는 거예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지금 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레저세 부분은 지금 경마장이나 경륜장 이것이 개방을 안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운영을 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저희가 1,579억은 목표를 잡았는데 들어온 건, 실제 수납된 건…….\n○ 양운석 위원 63억.\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100억도 안 되고 63억뿐이 안 돼서 앞으로 코로나 단계가 좀 하향이 돼서 운영하는 걸 감안하고 나머지 1,200억은 안 들어올 게 예상이 돼서 1,200억 원을 삭감한 겁니다, 이번에.\n○ 양운석 위원 국장님 취지 설명은 충분히 이해하고요. 다음에 그러면 지역자원시설세 이거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지역자원시설세 이건 지금 저하고 위원님하고 약간 자료상 시기의 문제는 있는 것 같긴 한데 7월 말보다는 지금 현재로 보면 한 200억은 더 들어와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래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제출한 시점하고 지금 좀 차이는 있는데 현재는 200억 정도가 더 들어와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럼 전체 도 예산 관련해서는 큰 영향은, 그렇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되겠습니까? 전체적인 예산에.\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저희가 물론 위원님들이 저번 추경에서도 지적을 해 주시고 해서 세수 추계의 정확성 부분, 이런 부분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요. 사실 저희도 전망을 지금 상황에서 할 때는 목표 12조 6,100억보다 한 3조 원 정도는 더 예산이 예상돼서, 이번에 1조 8,900억을 지방세 수입이 증액돼서 예산이 편성됐고요. 나머지 부분은 저희가 마지막 추경에 세출요인을 또 반영하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렇죠. 그런데 국장님, 재난사태나 재난에 준하는 어떤 사회적 현상이 있으면 예산 관련해서 보수적으로 편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선제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건 저 개인 견해로 말씀을 드리면요. 일단은 저희가 세입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게요. 일단 세입에 따른 세출을 편성하고 어떤 세출이 원인행위나 설계라든지 이런 것이 어느 정도 집행되면 삭감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입부서의 입장은 보수적으로 가는 거고 또 재난이 있다든지 하면 예비비라든지 이런 여유적 재원을 우선 투입하고 부족하면 우리가 증수에 대한 그런 예상 부분을 투입하는 그런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n○ 양운석 위원 그래서 제가 서두에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재난사태나 재난에 준하는 어떤 그런 사회적 영향이 있었을 때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건 공격적인 어떤 선제적 대응을 해야 된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제가 국장님의 의견은 어떤 것인가 한번 들어보려고 질문을 했고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양운석 위원 그래야만이 이게 뭐라 그럴까, 예를 들어서 지금 사태로 말하면 소상공인이라든가 아니면 일반 국민의 어려운 점에 선순환 구조가 돼야 된다고 그런 가치관으로 접근을 하다 보니까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제 의견을 말씀드리는 거고 이게 국장님 의견도 맞고 제 의견도 맞고 그건 아니고 단지 국장님 의견을 한번 들어보려고 여쭤봤던 겁니다. 이상입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알겠습니다.\n○ 부위원장 최갑철 양운석 위원님 수고 많으셨고요. 권락용 위원님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 권락용 위원 국장님, 성남의 권락용 위원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예산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예산이 줄 줄 알았더니 3조 이상 늘더라. 그래서 이번 추경에 3조 한꺼번에 털 수 없으니 1조 8,000억 털고 나머지 추경 때 또 1조 2,000억 털겠다 이 얘기입니까?\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가 예상을 지금 8월 말 기준으로 분석을 한 거니까 이것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정도는 저희가 예상을 한 거고요. 하고 지금 이번 3회 추경에 1조 8,000억의 지방세를 조정했고 나머지 1조 2,000억 부분은 저희가 마무리 추경에 예산부서하고 협의해서 편성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n○ 권락용 위원 당연히 국장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 또 얘기하면 지금 2021년 9월이에요. 9월인데 예상을 해 보니 3조 이상 남으니, 추계가 틀려서. 한꺼번에 처리가 안 되고 이번 추경 때 1조 8,000억 털고 나머지 1조 2,000억은 4차 추경 때 또 해서 털겠다. 이 얘기로밖에 안 들려요, 제 입장에서는. 그것도 이 예산이 그냥 한 게 아니고요. 지난번 제가 이 위원회에 들어가 가지고 1조 이상 올려라라고 그래서 그 당시에 5,000억 이상 올려놓은 거예요. 올려놨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안 올렸으면 3조 5,000억이에요. 그 당시에 제가 얘기했던 것도 1조 이상 올려라 그렇게 말씀드렸고. 예측이 틀렸다니까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그러니까 저희도…….\n○ 권락용 위원 자, 들어보세요. 항변을 계속 하시는데 예측이 틀렸다면 틀린 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정리가 되고 변화가 있는데 자꾸 인정을 안 한다는 거예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니, 저희가 예측이 맞았다고 말씀드린 건 아니고요.\n○ 권락용 위원 제가 다 말씀드린 다음에 답변하시면 되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권락용 위원 자, 이건 우리가 숫자로 나오는 거예요. 예측을 했는데 예측을 해 보니 취득세 부분이 우리 예상보다 많이 나오더라. 이것 아닙니까, 결론은? 그럼 결국은 취득세 부분은 우리가 예측을 잘하면 돼요.\n그리고 지금 우리 레저세는 1년에 보통 평균적으로 경기도에 5,000억 정도 들어와요, 평균적으로 코로나 이전에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렇죠.\n○ 권락용 위원 이전에는 5,000억이 들어왔다고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니까 작년에 보니까 한 1,600억인가, 제가 정확하게는 기억 안 나는데 2,000억 조금 안 돼요. 그렇게 들어왔고 그냥 그걸로 예상하니까 ‘그러면 2,000억은 들어오겠지.’ 해 가지고 대충 그렇게 했는데 또 그보다 적게 들어온 거예요. 이건 당연한 거예요. 왜 그러냐? 5,000억을……. 코로나 터진 게 2020년 3월이에요. 그러면 3월 동안 들어온 게 1,600억에서 1,700억이에요. 그 이후부터는 안 들어왔고. 그런데 올해 같은 경우는 아예 0이에요, 안 열렸기 때문에. 우리가 1,600억 잡은 거 그건 2020년도 1ㆍ2ㆍ3월 달에 들어온 돈이란 말이에요. 앞으론 안 들어와요, 이것 더.\n그래서 앞으로 내년에, 제가 예측할게요. 2022년에는 코로나 이 상황 되면 레저세 200억에서 왔다 갔다 할 거예요. 그러니까 예측을 저같이 러프하게 잡는데도 대충은 맞아떨어지는데, 대충 하는데도.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왔다는 데가 잘 못 맞히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n그래서 제가 그 당시에 말씀드린 건 핵심이 여러 개가 다 틀렸다면 이건 뭐 방법이 없구나인데 중요한 건 해 보니 나머지는 우리가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고 취득세만 하나 제대로 잡고 레저세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니 이건 잡을 수가 있다, 예산을. 우리 범위 안에 가능하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공무원, 지금 국장님 답변은 결국은 “예측이 잘 안 되니 그냥 추경 때 털겠습니다.” 이 답변만 나오니 제가 답답하다는 거예요. 이제 답변해 보세요, 국장님.\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위원님 지적하신 사항에 제가 동의는 하는 겁니다. 동의를 안 하고 변명하는 게 아니고요.\n○ 권락용 위원 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지금 위원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주택 부분에 대한 거래는 전년보다 35% 정도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취득세는 증가를 하고 있어요, 금액적으로는요.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여러 가지 조정지역도 설정하고 지금 금리라든지 이런 부분도 올려 가지고 억제를 하고 있는데, 대출제한이나. 지금 거래는 토지나 또 이걸로 옮겨갔습니다, 건물이나.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 과표가 거래 가격들이, 수도권의 가격들이 전부 올라가다 보니까 이게 취득세가 많이 걷혀서 저희도 이 부분을 좀 상당히 어렵게 보고 있어요. 그게 제일 어려운 문제고요.\n위원님 러프하게 예측하는 부분은 저희도 하는데 저희도 코로나 상황과 연결도 되고 예측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이번에는 위원님들이 많이 지적해 주셔서 저희가 예측한 여러 가지 건을 가지고 전문가들한테 자문도 구해 보고 이렇게 해 보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희도 송구스럽게는 생각하는데…….\n○ 권락용 위원 그러니까 저는 전문가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자, 결론적으로 그래서 전문가, 저도 그때 참여했으니까 들은 거잖아요. 전문가라고 불러왔더니 쓸데없는 얘기만 하더라. 그러니까 전문가면 앞으로 정확하게 예측이 이 정도는 될 것이다, 이걸 예측해야 진짜 전문가이고 실력자인데 “부동산 대충 오르겠습니다.” 이 얘기는 누가 못 해요? 전문가도 하고 일반 주민들도 하고 다 하는데. 그랬으면 그만큼 해서 우리 경기도가 과연 세금이 얼마나 걷힐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전문가인데 그거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여러분 선배밖에 없더라. 세정과 출신의 그 선배님 한 분밖에 없더라,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전문가를 아까 보니까 55만 원씩 그렇게 돈은 드리는데 필요한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한국은행이건 뭐건 좋은 데서 다 모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건 가려운 데 긁어달라는 사람이 없어. 어쭙잖은 얘기만 하고. 이 얘기는 무슨 전문가냐 이거죠. 그래서 제가 제대로 전문가를 모시든 아니면 좀 제대로 된 데를 찾든, 뭘 하든 방법을 때려 맞히든 뭐라도 맞혀라. 3조 차이 나는 건 이건 전문가 아니에요. 뭐가 됐든 전문가는 그런 걸 예측을 다 해서 맞히는 게 전문가지, 전문가 얘기 들었는데 3조 이상 틀린 게 뭐가 전문가입니까? 제가 1조, 2조 차이 나는 건, 이건 너무 차이가 크잖아요. 적절히 차이 나야 예측범위,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자꾸 이런, 저 이거 얘기하기도 민망해요. 이거 맨날 얘기하니까 사실은 안 하고 싶은데 계속적으로 바뀌지 않으니 이걸 어떡할까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n하여튼 국장님께서 이번에 또 회의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제가 빠졌어요. 들어가지도 않고, 권락용이 오면 피곤하니까, 자꾸 따지니까 안 넣은 건 제가 알겠는데.\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n○ 권락용 위원 아니, 이건 웃자고 얘기한 거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9월 16일 날 저희가 개최하는데…….\n○ 권락용 위원 네, 알겠어요. 의원들과 돌아가면서 가야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특별전문 게스트로 제가 모시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괜히 권락용이 들어갔다가 자꾸 따지고 드니까 저 안 넣은 것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니, 특별히 모시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저도 가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아는데 중요한 건 전문가라고 정말 55만 원, 뭐 돈 더 드려도 좋아요.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된다 해도 취등록세가 부동산이 잡히건 금리가 오르든 뭘 해도 결국은 여기서 더 올라요. 더 들어옵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우리가 할 것이냐를 예측 가능한 전문가 얘기를 들어야 그게 진짜죠. 그런데 지금은 또 내년에 이렇게 와 가지고 보면 “위원님, 코로나가 계속 길어져서…….” 이 얘기밖에 못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답변드린 건 정확하게 취득세 예측, 모델 만들면 금방 나와요, 사실은. 이 모델 하나 잡고 나머지 모델 잡으면 잡힙니다. 그래서 제가 취득세 이것 관련된 것만 좀 더 세밀하게 보셔라라고 아예 결론까지도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신 다음에 안 되면 그다음에 저한테 찾아오세요. 지금 시도도 안 했기 때문에 말씀드려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지금 내부적으로는 조세연구원이나 추계, 시군하고의 물량 같은 그런 추계로 해 놓긴 했는데 고민을 하고 우리 실무진하고 머리를 맞대고 더 할 겁니다. 하고…….\n○ 권락용 위원 내가 어떤 생각까지 했느냐? ‘어? 이거 지사님이 시켰나?’ 내가 이 생각까지 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최대한 예산 적게 해 놓고 이렇게 예산 많으면 지사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거든. 그래서 제가 ‘어? 이거 처음부터 이렇게 됐나?’ 이 생각까지 한 거예요. 제가 이런 생각이 안 들게끔 예측 모델로서 맞히시면 돼요. 결론은 수술 잘 했는데 환자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 이거예요. 의사선생님이 수술 성공적으로 했대요. 이쁘게도 꿰매 놨어. 그런데 환자가 죽어버리면 이게 뭔 상황입니까?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건 이리 꿰매든 저리 꿰매든 살려만 놓으면 그게 낫다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제가 비약적으로 너무 이상한 비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결론만 맞히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클루는 분명히 등록세와 레저세는 5,000억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그런데 다만 0%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200억~300억에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예측이 가능해요, 부분이. 이렇게 단서까지 드렸기 때문에 한번 국장님께서, 저는 이제 더 이상 이거에 대해서 얘기 안 드릴 겁니다. 제가 담당과장님께 너무 죄송한 상황이라. 대신 이제는 정리를 좀 해 주십사, 국장님. 부탁을 드린 겁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도 최대한 고민하고요. 지금 분석적인 6개 자료도 세부적으로 보고 해서 최대한 저희도 세입 추계 정확성을 기해 보려고 하는데요. 진짜 저희 입장도 좀 생각해 주셔야 할 부분은 저희도 세입을 팽창ㆍ확장적으로 잡아서 예산을 많이 편성하면 좋은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다 목표가 달성 안 됐을 때의 위험성은 또 저희가 져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좀 감안해 주시고요. 최대한 저희가 노력하고 연구해서 접근성을 좀 더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n○ 권락용 위원 네, 이상입니다.\n(최갑철 부위원장, 김판수 위원장과 사회교대)\n○ 위원장 김판수 권락용 위원님 수고하셨습니다.\n그런데 우리 국장님!\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위원장 김판수 공무원 입장에서는 하여간 보수적으로 잡아야만 뒤탈은 안 생기는 것이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저희가 그런 측면도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예요.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 반복.\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n○ 위원장 김판수 본 위원장이 봤을 때는 3년 전부터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계속 앵무새처럼 답변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은 똑같고. 그러면 지금 조세연구원이라든지 기타 전문가를 대동하면 100% 맞지는 않겠지만 좀 근사치에 가깝게끔 뽑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쪽 핑계를 대면서 세입을 잡는 것은 똑같단 얘기예요. 그러니까 추계액보다 훨씬 많이 들어온 거예요. 지금 한 1조 7,000억 정도 더 들어온 것 같은데, 7월 달까지.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서야, 참……. 저는 효율적인 예산 편제를 못 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행정을 하시면서 공무원들 책임 때문에 그렇게 과소 세입을 잡아 가지고 가서 보니까 계속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에요, 지금 보면. 그러면 한 3년 그 얘기를 했으면 이제는 너무 보수적인 것보다는 하여간 현실에 가깝게끔 접근해 보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어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런데 우리 국장님이 지금 답변하시는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사고에 접해 보면 이건 5년 후에도 똑같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서 좀 추계에 가깝게끔 세입을 잡을 수 있도록, 편성할 수 있도록, 추계액을 산정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생각 전환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그래서 저희도 지금 내년도 추계를 위해서 9월 16일 날 예정은 돼 있습니다, 세수추계자문위원회가. 그래서 저희가 시뮬레이션에 의해서 한 6개 그룹의 자료는 받아서 지금 검증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고민을 좀 하고 있고요. 아까 위원장님이나 권락용 위원님이나 여러 위원님들이 지적해 주시고 염려해 주시는 부분을 저희도 좀 갭이 적게 하려고 노력을 더 하겠습니다. 하고 사실 전문가라고 그래서 누구 하나가 딱 맞힌다 이건 사실 쉽지 않고, 경제상황이 제일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런 건 좀 어려움은 많이 있습니다. 있는데 저희도 좀 세밀한 데이터도 나온 것만 갖고, 결과 갖고 반영을 하지 않고요. 좀 더 세밀하게 다시 분석해서, 또 6개 기관이 금액이 다 들쭉날쭉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고 노력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이 추계는 저도 하겠어요. 전문가 돈 안 들이고 저한테 주세요. 제가 해 드릴게, 그냥.\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위원장님, 그런데 이게…….\n○ 위원장 김판수 제가 해 드릴게, 그냥.\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물론 저희가 갭이 커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합당치는 않은데요. 이게 한 번 IMF 지났을 때 마이너스가 있었을 때는 저희가 아주 힘들었고 그런 부분이 있었다 보니까 공무원이 좀 보수적으로 가는 측면도 있는데요. 좌우간 최대한 접근할 수 있도록 저희도 지혜를 모아서 잘 한번 편성하도록 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예산의 연속성이라든지 사업의 연속성 이런 것들이 지금 결여되게끔 예산편성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그때 맞춰서. 그러다 보니까 실제 그런 거예요. 지출해야 될 예산들은 실제 본예산에 반영을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못 하고 또 못 한 대신 세수가 추계액보다 더 세입이 잡혔을 때 생각지 못한 쪽으로 나가는 경우들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획일성이 떨어진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 권락용 위원님이 말씀하신 얘기를 충분히 감안하셔서, 뭐 하자마자 돈 들이고 전문가, 전문가 하는데 전문가라는 용어를 쓰려고 그러면 정확성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근사치의, 그러니까 갭을 최소한 줄일 수 있게끔, 격차를 줄일 수 있게끔 이렇게 돼야 되는데 과대하게 나와버리니까 지금 이런 얘기가 나온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의견을 들으시고 세수추계액이 될 수 있으면 큰 편차가 나지 않도록 내년부터는 각별히 유념해서 추계를 잡으시길 제가 주문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죠?\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최대한 저희가 고민도 하고요. 여러 가지 데이터 같은 것을 다시 한번 검증해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노력은, 그러니까 데이터 갖고 여태 해도 이런 수치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데이터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여태 나온 데이터, 전문가 의견 들어 갖고 해도 이런 차이가 난다니까요, 계속.\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아니, 그런데 저희가…….\n○ 위원장 김판수 그러니까 생각을 바꾸란 얘기예요, 생각을.\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분양이라든지 입주물량 이런 기초데이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하는 건데도 좀 편차는 있는데 저희가 약간 보수적으로 잡은 측면도 있고 또 이런 경제상황이 조금 변화가 너무 큰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쉽지는 않은데 좌우지간 열심히 노력해서 그 갭이 적게 편성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네, 그렇게 각별히 해 주시길 주문을 드리겠습니다.\n○ 자치행정국장 오태석 네, 알겠습니다.\n○ 위원장 김판수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십니까?\n(「네.」하는 위원 있음)\n더 이상 질의하실 위원이 안 계시므로 자치행정국 소관 2021년도 제3회 경기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질의 답변을 종결하겠습니다.\n위원 여러분 그리고 관계공직자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 주 9월 6일은 인재개발원, 공정국, 안전실, 소방재난본부, 북부소방재난본부, 소방학교 소관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원님께서는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원고는 교원 노동조합이 허용되지 않던 1989. 5. 28. 전국의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교원을 조합원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원고의 규약 제6조는 “본 조합원은 전국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문교부 및 기타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교직원으로 하되,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를 제외한다.”(제1항), “교육부나 시도교육청, 재단의 부당한 처사에 의하여 해직(파면, 해임, 직권면직 등), 임용제외된 교직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제2항)라고 규정하여 조합원의 자격에 관하여 ‘현직 교원’뿐만 아니라 ‘해직 교원’도 포함하고 있었다. 2) 그 후 그동안 제한되어 왔던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보편화된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방안을 존중하여 그 보장 범위와 단체교섭의 구조 등을 정하려는 목적에서 1999. 1. 29. 법률 제5727호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이라 한다)이 제정되어 1999. 7. 1. 시행됨에 따라 실정법상 교원 노동조합의 설립이 허용되었다. 교원노조법은 교원 노동조합에 관하여 일부 특례를 규정하면서, 그 밖의 사항에 관하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라 한다)의 규정을 따르도록 하였는데(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라)목]’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교원 노동조합에 해직 교원 등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은 허용되지 않았다[교원노조법 제2조는 법상 ‘교원’을 ‘현직 교원’으로 한정하고(본문), 다만 ‘해고된 사람으로서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단서). 한편 교원노조법 제2조 본문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5헌가38 전원재판부 결정) 취지에 따라 2020. 6. 9. 법률 제17430호로 일부 개정되었는데, 이하 ‘교원노조법 제2조’라 함은 개정 전 조항을 의미한다]. 3) 이러한 내용의 교원노조법이 제정·시행됨에 따라 원고는 1999. 6. 27.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규약 제6조에서 제1항은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제2항은 삭제하기로 의결하였다. 원고는 1999. 7. 1. 피고(당시에는 ‘노동부장관’이었다가 2010. 6. 4. 법률 제10339호로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어 현재의 ‘고용노동부장관’으로 변경되었다)에게 설립신고를 하면서 위와 같이 개정된 규약을 제출하였다. 피고는 원고가 제출한 개정규약을 기초로 원고가 교원노조법 및 노동조합법상 설립요건에 위배되는 점이 없다고 판단하여 1999. 7. 2. 설립신고를 수리하고 원고에게 신고증을 교부하였다. 1) 위 설립신고 수리 이후 피고는 원고의 규약 부칙 제5조에 “규약 제6조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부당해고된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있다.”(제1항), “종전 규약에 의거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던 해직 교원 중 복직되지 않은 조합원 및 이 규약 시행일 이후 부당해고된 조합원은 규약 제6조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제2항)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2) 피고는 2010. 2. 12.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원고의 규약 중 노동관계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사항에 대하여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하였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0. 3. 10. 원고의 규약 중 제9조, 부칙 제5조 등이 교원노조법 제2조에 위반된다고 의결하였다(서울2010의결6호). 이에 피고는 2010. 3. 31. 원고에 대하여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21조 제1항, 제3항에 따라 원고의 규약 중 제55조 제4항과 부칙 제5조 등 일부를 2010. 5. 3.까지 시정할 것을 명하였다(이하 ‘1차 시정명령’이라 한다). 3) 원고는 2010. 6. 29. 1차 시정명령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1차 시정명령 중 원고의 규약 제55조 제4항에 관한 부분만 취소하고 부칙 제5조를 비롯한 나머지 부분에 관한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은 원고의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됨으로써 그대로 확정되었다(서울행정법원 2010. 11. 5. 선고 2010구합27110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9. 9. 선고 2010누43725 판결 및 대법원 2012. 1. 12.자 2011두24231 판결). 1) 원고는 2010. 8. 14. 규약을 개정하면서 부칙 제5조의 제1항을 삭제하고 제2항을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규약 제6조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라고 개정하였다(이하 이와 같이 개정된 부칙 제5조를 ‘이 사건 부칙 조항’이라 한다). 2) 피고는 2012. 8. 3.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원고의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하였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2. 9. 3. 원고의 규약 중 이 사건 부칙 조항 부분이 교원노조법 제2조에 위반된다고 의결하였다(서울2012의결7호). 이에 피고는 2012. 9. 17. 원고에 대하여 1차 시정명령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부칙 조항을 2012. 10. 18.까지 시정할 것을 명하였다(이하 ‘2차 시정명령’이라 한다). 1) 피고는 2013. 9. 23. 원고에 대하여 ‘두 차례에 걸쳐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시정하도록 명하였으나 이행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이유로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 제2조 제4호 (라)목 및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교원노조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9조 제1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이하 ‘노동조합법 시행령’이라 한다) 제9조 제2항에 의하여 2013. 10. 23.까지 이 사건 부칙 조항을 교원노조법 제2조에 맞게 시정하고 조합원이 될 수 없는 해직자가 가입·활동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요구하였다(이하 ‘시정요구’라 한다). 피고는 그 시정요구서에 원고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해직 교원 9명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만약, 위 기한까지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할 예정이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기재하였다. 2) 그러나 원고는 시정요구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았고, 이에 피고는 2013. 10. 24.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 제2조 제4호 (라)목 및 교원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1항,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에 의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였다(이하 줄여 쓸 때에는 노동조합법 또는 교원노조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을 ‘법상 노동조합’, 법상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을 ‘법외노조’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법 또는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는 것을 ‘법외노조 통보’, 원고에 대한 위 2013. 10. 24.자 법외노조 통보를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라 한다). 3) 교육부장관은 2013. 10. 25. 각 시·도교육청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노조아님 통보’에 따른 휴직사유 소멸 통보 및 후속조치 이행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그 주요 내용은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에 따라 원고가 노동조합 명칭 사용, 단체교섭 등과 같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 및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으니, 각 시·도교육청은 ①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휴직허가 취소 및 복직 발령, ② 원고에게 지원한 사무실 퇴거 및 사무실 지원금 반환 요청, ③ 기존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2013. 10. 24. 이후 효력 상실 및 현재 진행 중인 단체교섭의 중지, ④ 조합비 급여 원천징수 금지, ⑤ 각종 위원회 위원 중 단체협약에 의하여 원고 조합원이 위원으로 참여한 경우 단체협약의 효력 상실로 인한 위원 자격 상실 등과 같은 후속조치를 이행하고, 2013. 12. 2.까지 이행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1) 교원노조법에 의하면, 교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피고에게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여야 하고(제4조 제2항), 교원 노동조합에 관하여 교원노조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제14조 제2항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동조합법에서 정하는 바를 따른다(제14조 제1항). 2) 노동조합법에 의하면, 노동조합이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하며(제2조 제4호 본문), 다만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라)목]’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제2조 제4호 단서, 이하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다만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를 ‘이 사건 법률 규정’이라 하고, (라)목을 포함하여 “다만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를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이라 한다]. 설립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이 제2조 제4호 단서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행정관청은 설립신고서를 반려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 제1호). 3) 교원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1항은 교원 노동조합에 관하여 교원노조법 시행령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제9조 제2항에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4)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해당 노동조합에 대하여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이하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라 한다). 1)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법치주의는 법률유보원칙, 즉 행정작용에는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의 근거가 요청된다는 원칙을 그 핵심적 내용으로 한다. 나아가 오늘날의 법률유보원칙은 단순히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 특히 국민의 기본권 실현에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행정에 맡길 것이 아니고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 스스로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요구, 즉 의회유보원칙까지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여기서 어떠한 사안이 국회가 형식적 법률로 스스로 규정하여야 하는 본질적 사항에 해당되는지는, 구체적 사례에서 관련된 이익 내지 가치의 중요성, 규제 또는 침해의 정도와 방법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하지만, 규율대상이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한 중요성을 가질수록 그리고 그에 관한 공개적 토론의 필요성 또는 상충하는 이익 사이의 조정 필요성이 클수록, 그것이 국회의 법률에 의하여 직접 규율될 필요성은 더 증대된다. 따라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은 국회가 정하여야 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에는 적어도 그 제한의 본질적인 사항에 관하여 국회가 법률로써 스스로 규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0. 12. 선고 2006두14476 판결, 대법원 2015. 8. 20. 선고 2012두23808 전원합의체 판결 및 헌법재판소 2009. 2. 26. 선고 2008헌마370 등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2)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만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으므로, 법률의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에 의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나 법률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을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만을 규정할 수 있을 뿐, 법률에 의한 위임이 없는 한 법률이 규정한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변경·보충하거나 법률에 규정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1990. 9. 28. 선고 89누2493 판결, 대법원 1995. 1. 24. 선고 93다3734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법외노조 통보는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중대한 침익적 처분으로서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스스로 형식적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할 사항이고, 행정입법으로 이를 규정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법률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위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아니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헌법상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무효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법외노조 통보는 적법하게 설립되어 활동 중인 노동조합에 대하여 더 이상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이 아님을 확정하는 형성적 행정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에 관한 설립신고 제도를 두고 있고, 법상 노동조합이 되려면 법이 정한 설립요건을 갖추는 외에 설립신고도 함께 구비하여야 하므로,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은 설립신고서를 소관 행정관청에 제출하고 그 행정관청으로부터 그에 대한 신고증을 교부받음으로써 성립한다(대법원 1979. 12. 11. 선고 76누189 판결, 대법원 1996. 6. 28. 선고 93도855 판결 등 참조). 예컨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곧바로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가진다거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다고 하여 그 즉시 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사건 법률 규정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은 그 자체로 법률효과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인지에 관한 판단 기준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행정관청은 법상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단체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는데, 이러한 반려는 설립신고의 수리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해당 단체의 법적 지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처분이다. 즉 결격사유가 있는 단체는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나, 그러한 법적 효과는 위와 같은 설립신고서의 반려를 통하여 비로소 실현된다. 법외노조 통보는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설립되어 활동 중인 노동조합에 대하여 행정관청이 더 이상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이 아님을 고권적으로 확정하는 행정처분으로서, 단순히 법률에 의하여 이미 법외노조가 된 것을 사후적으로 고지하거나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통보로써 법외노조가 되도록 하는 형성적 행위이다. 즉 법상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의하여 곧바로 법외노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유로 한 법외노조 통보가 있을 때 비로소 법외노조가 된다. 2)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에 대하여 특별한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즉 법상 노동조합은 법인격을 취득할 수 있고(제6조),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의 조정 및 부당노동행위의 구제를 신청할 수 있으며(제7조 제1항), 조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제8조). 무엇보다도 법상 노동조합만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제7조 제3항).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수리는 법에서 정한 설립요건을 갖춘 노동조합을 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함으로써 노동조합법이 정한 권리와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고, 법외노조 통보는 이미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그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와 같은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하더라도 적절히 대응할 수 없게 되는 등 노동조합으로서의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된다. 물론 법외노조가 되더라도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므로 노동3권의 일반적인 행사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나(대법원 1997. 2. 11. 선고 96누2125 판결, 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1두921 판결 및 헌법재판소 2012. 3. 29. 선고 2011헌바5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제약과 불이익을 피할 수는 없다. 노동3권은 노동조합을 통하여 비로소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데,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조차 사용할 수 없는 단체가 노동3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법외노조 통보는 형식적으로는 노동조합법에 의한 특별한 보호만을 제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노동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보아야 한다. 노동조합법 제1조가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노동3권 중 단결권은 결사의 자유가 근로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것으로서(헌법재판소 2012. 3. 29. 선고 2011헌바5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연혁적·개념적으로 자유권으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에 의한 자유’가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관계법령을 입법할 때에는 이러한 노동3권, 특히 단결권의 헌법적 의미와 직접적 규범력을 존중하여야 하고, 이렇게 입법된 법령의 집행과 해석에 있어서도 단결권의 본질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한편 헌법은 위 제33조 제1항과 달리 제2항에서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교육공무원인 국공립학교 교원은 물론 사립학교 교원 역시 노동3권의 행사가 제한된다(사립학교법 제55조, 헌법재판소 1991. 7. 22. 선고 89헌가106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이에 노동조합법 제5조는 본문에서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면서도, 단서에서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교원의 노동3권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고(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1두921 판결, 헌법재판소 2008. 12. 26. 선고 2005헌마971 등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이에 관한 법률이 바로 교원노조법이다. 교원노조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및 사립학교법 제55조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5조 단서에 따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교원에 적용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교원 노동조합에 대하여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는 것은 단순히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노동조합’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3) 이와 같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되는지 여부는 헌법상 노동3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위한 필수적 전제가 되고,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설립된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아직 법상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에 대한 설립신고서 반려에 비하여 그 침익성이 더욱 크다. 따라서 이처럼 강력한 기본권 관련성을 가지는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는 법률에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부합한다. 그런데 현행 노동조합법(1997. 3. 13. 법률 제5310호로 제정되고, 2020. 6. 9. 법률 제17432호로 최종 개정된 것)은 그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설립신고서 반려에 관하여는 이를 직접 규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침익적인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다. 원래 구 노동조합법(1953. 3. 8. 법률 제280호로 제정되고, 1996. 12. 31. 법률 제5244호로 폐지된 것)은 제32조에서 행정관청이 규약의 취소, 변경명령을 내린 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규정하고 있었다(제정 당시에는 ‘노동위원회의 의결’만을 제한조건으로 하였다가, 1986. 12. 31. 개정을 통하여 ‘규약의 취소, 변경명령 불이행’이라는 제한조건을 부가하였다). 그러나 이미 적법하게 설립되어 활동 중인 노동조합을 행정관청이 임의로 해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과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1987. 11. 28. 위 제도는 폐지되었다(법률 제3966호). 그런데 위와 같은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의 폐지 이후 불과 약 5개월 만인 1988. 4. 15. 법정요건을 결여한 노동조합이 존립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이유에서 구 노동조합법 시행령(1953. 4. 20. 대통령령 제782호로 제정되고, 1997. 3. 27. 대통령령 제15321호로 폐지된 것) 제8조 제2항으로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새로이 도입되었고(대통령령 제12429호), 이 제도가 바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통하여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행정관청이 규약의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함으로써 법상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그 주체, 대상, 절차 및 효과 등이 모두 동일하다. 오히려 구법과 달리 노동위원회의 의결 절차를 두지 않음으로써 행정 내부적 통제의 가능성이 축소되어 행정관청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확대되었을 뿐이다. 즉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본래 법률에 규정되어 있던 것으로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의 결단에 따라 폐지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행정부가 법률상 근거 내지 위임 없이 행정입법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위헌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제도의 연혁을 마땅히 고려하여야 한다. 4) 요컨대, 법외노조 통보는 이미 법률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된 것을 사후적으로 고지하거나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통보로써 비로소 법외노조가 되도록 하는 형성적 행정처분이다. 이러한 법외노조 통보는 단순히 노동조합에 대한 법률상 보호만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그런데 노동조합법은 법상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단체의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침익적인 설립 후 활동 중인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명문의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더욱이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입법자가 반성적 고려에서 폐지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률이 정하고 있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법률의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위임도 없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을 규정한 것으로서 법률유보원칙에 반한다. 피고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유효함을 전제로 이에 근거하여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그 자체로 무효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유효하다고 보아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김상환,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이 있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노동조합법 시행령은 이 경우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다(이 사건 시행령 조항). 교원노조법과 그 시행령은 위와 같은 노동조합법과 그 시행령 규정을 교원 노동조합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과 시행령에 따르면,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교원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통보해야 한다는 해석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다만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설립된 이후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했다고 해서 노동조합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 노동조합이라는 의미에서 법외노조(法外勞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면, 교원노조법에 따라 원고를 교원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에게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은 적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판단이 법령의 규정을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는 법률적 삼단논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에 해고 근로자가 한 사람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그 노동조합을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법률이 정당한가? 이 사건에서 전체 약 6만 명의 조합원 중 단 9명이 해직 교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원고로부터 교원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타당한가? 조합원으로 활동하던 중에 교원의 지위를 잃은 이들을 교원 노동조합의 구성원에서 배제하지 않았다고 해서 원고를 교원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활동을 묵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규약에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의 조치는 타당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이 사건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령의 문언에 따른 해석과 그 적용이 과연 정당한 결론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헌법상 노동3권에 중대한 제약을 초래하는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특별한 법률의 근거 내지 위임 없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따라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법에 따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은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고 법외노조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위와 같은 법률 규정에 따른 효과를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의 관건은 법외노조 ‘통보’의 당부가 아니다. 만일 원고가 ‘법외노조’에 해당한다면 그러한 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피고가 당연히 할 일이고 오히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원고가 법상 노동조합인지 아닌지, 즉 법외노조인지 여부에 있다. 이 사건은 로널드 드워킨이 표현한 대로 이른바 ‘어려운 사건(hard case)’이다. 어려운 사건에 관하여는 그에 걸맞는 숙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오랜 시간 이 사건을 검토하였고 공개변론도 열었다.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여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이 바로 그러한 사건이다. 항을 바꾸어 이 사건 법령의 해석상 난점을 살펴보고 이 사건의 본질과 그에 대한 정당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 의미는 명백하다.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했다면 행정관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기한 내에 시정되지 않는 경우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교원 노동조합이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것이 발견된 경우 행정관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기한 내에 시정되지 않았다면 법외노조라고 통보해야 한다. 이는 ‘법이 요구하는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법에 의한 노동조합이 아님’을 통보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규정이다. 이러한 통보는 단순히 그러한 사정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 특별한 형성적 의미가 없다. 오히려 통보의 의미는 해당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관련 당사자와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이 아님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는 결국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지만 적법한 노동조합이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직접 근거를 두고 법률의 취지와 의미를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적법·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사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조항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법외노조 ‘통보’를 하지 않더라도 법률에 정한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을 더 이상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리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일정한 시정절차를 거치고 이에 불응하는 것을 법외노조 통보의 조건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정하고 있는 시정요구 절차는 행정법의 일반 법리 또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법외노조 통보에 관한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제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이를 통하여 위법사항이 발생한 노동조합에 자율적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법외노조 통보 이전에 시정요구를 하고 이에 불응하는 것을 통보 조건으로 하는 것은 법외노조 통보의 정당성을 강화할 뿐이다. 2)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가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을 비로소 법외노조로 만드는 형성적 행정처분이고, 이러한 중대한 침익적 처분은 마땅히 법률에 근거가 있거나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그러한 근거나 위임 없이 독자적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여 무효라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따른 노동조합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므로, 이를 행정처분으로 보더라도 확인적 행정작용에 불과할 뿐 새로운 권리·의무를 창설하는 형성적 행정작용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노동조합이 법률에 따라 법외노조가 된 이상 반드시 이를 통보하지 않더라도 그 노동조합은 법외노조인 것이고, 결격사유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설령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가 이를 취소·철회하더라도 그 노동조합이 법외노조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 규정에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부분이 그 자체로 법률효과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에 따른 노동조합인지에 관한 판단 기준이 될 뿐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간주규정을 위와 같이 해석한 예는 없다.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조합이 성립하려면 설립신고가 수리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 법외노조 통보가 있어야만 비로소 법외노조가 된다고 볼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에 관해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법외노조 통보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노동조합의 성립요건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노동조합의 지위를 부정하는 데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라는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가령 어떤 노동조합이 문서를 위조하거나 행정관청을 기망하는 등의 방법으로 설립신고를 했다면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부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행정관청이 시정명령, 그리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벌금 500만 원 이하의 형사처벌(노동조합법 제93조, 제21조)만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와 같은 노동조합을 제재하는 데 불충분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거나 아예 없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행정관청은 법외노조 통보 등과 같은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는 선언 외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지, 이 사건의 구체적 법률관계는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문제의 핵심을 비켜 가는 것이고 실질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다. 3)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즉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한 것은 아니고, 수익적 행정처분의 직권취소·철회 제한 법리에 따라 비로소 위법하게 되는 것인지 문제 된다. 원래 행정행위를 한 처분청은 그 처분에 하자가 있는 경우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스스로 이를 취소할 수 있고, 비록 그 처분 당시에 별다른 하자가 없었고 또한 그 처분 후에 이를 철회할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원래의 처분을 존속시킬 필요가 없게 된 사정변경이 생겼거나 또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상실시키는 별개의 행정행위로 이를 철회할 수 있다. 다만 당초의 행정행위가 수익적인 것이었다면 그에 따른 처분상대방의 기득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뿐이다(대법원 1986. 2. 25. 선고 85누664 판결,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두10251, 10268 판결 등 참조). 노동조합의 설립신고 수리는 법률상 설립요건을 갖춘 노동조합을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인정함으로써 노동조합법에 따른 특별한 보호를 부여하는 수익적 행정처분이므로, 결국 법외노조 통보는 이러한 설립신고 수리를 사후적으로 직권취소하거나 철회하는 것에 해당한다. 따라서 행정관청은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기존의 수리처분을 직권취소·철회하는 의미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고, 다만 그 과정에서 해당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고려해야 하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시정요구에 불응하면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이 노동조합의 적법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에 위반되는 경우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직권취소 또는 철회의 예외적 제한을 불허하는 취지라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직권취소·철회의 제한을 부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의 위헌 또는 위법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수익적 행정처분의 직권취소·철회 제한에 관한 일반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 그리고 위에서 보았듯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직접 근거한 것으로서, 해당 노동조합에 자율적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를 무효로 볼 이유도 없다. 4) 요컨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위 조항은 이를 기속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재량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따르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행정관청은 시정요구 절차를 거치되 시정되지 않는 경우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를 하여야 한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의미는 위와 같이 매우 명확하며, 법률이 규정한 바를 구체화하는 것으로서 합헌적이고 정당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아니라 이 사건 법률 규정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에 있다. 1)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것은 이른바 간주규정으로서 추정규정과 달리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민법 제28조에 관한 대법원 1995. 2. 17. 선고 94다52751 판결 등 참조). ‘본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규정이든 ‘보지 아니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규정이든 모두 간주규정에 해당하고 이 둘을 달리 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을 법상 노동조합을 판단하는 기준이고 그 기준에 따라 법외노조 통보를 하게 된다고 하면서, 결격사유가 발생하더라도 법외노조 통보를 하지 않는 한 그 노동조합은 아직 법외노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간주규정은 일정한 전제요건이 충족되면 법률이 정한 사실이나 효과의 존재 또는 발생을 예외 없이 인정하는 것으로서, 이는 설령 실제 사실이나 법적 상태와 맞지 않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이러한 무조건적 의제(擬制)에 간주규정의 본질이 있다. 법조항이 법률의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의미와 효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간주규정이 법률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관한 정의(定義) 부분에 있다고 해서 그 의미와 효력이 달라진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따르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그 노동조합은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다. 위와 같은 상황은 설립신고 전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조합법의 어느 규정을 보더라도 노동조합의 개념을 설립신고 전후에 따라 달리 취급하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법 제2조는 노동조합에 관한 정의규정으로서 그에 따라 법률의 적용대상이 결정되므로 설립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노동조합법 제2조는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라고 하면서, 제1호에서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정하고, 제4호 단서 (라)목[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합법의 규정에 따르면, 해고된 사람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하여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재심판정 이후에는 더 이상 근로자가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따르면,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더 이상 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이 노동조합법의 문언에 따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2) 위에서 보았듯이 간주규정은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간주규정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따르면,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이 해직자를 단 한 명이라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법에서 말하는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과연 타당한가?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단순히 일부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묵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규약을 통하여 이를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규약에서 정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떤 노동조합에서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두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면 그러한 노동조합은 법외노조가 아닌 것인가? 반대로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해직자 조합원이 없는 경우라면 어떠한가? 해직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이 법외노조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 그것이 규약에 정해져 있는지 여부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이 해직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것을 규범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를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라는 관점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노동조합 설립신고 단계에서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것이 드러난 경우에는 설립신고를 반려해야 하지만(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 참조),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그로 말미암아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훼손된 경우에 한하여 결격사유의 존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법률의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부족하다. 우선 노동조합법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예외 없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이 허용되는 경우 그 즉시 또는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한 예방적 조치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달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더욱이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관할하는 행정관청은 설립신고 이후에는 설립신고 단계와 달리 자주성 심사를 위한 별도의 조사 권한이나 특별한 조사 방법도 없다.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법외노조 통보를 위하여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별도로 심사·판단하도록 한다는 것은 노동조합법이 예정한 바가 아니고 노동행정의 현실에도 맞지 않는다.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서 ‘가입’ 부분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규정은 해직자를 포함하여 근로자가 아닌 자가 조합원으로 신규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취지일 뿐 기존에 조합원이었던 자가 해직된 경우 그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 들어간다는 ‘가입(加入)’의 사전적(辭典的) 의미에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단체의 가입 요건과 탈퇴 요건을 반드시 동일하게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견해를 따른다면, 원고가 해직자의 조합원 지위를 유지하도록 했을 뿐 해직자의 조합원 신규 가입을 허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고는 법외노조가 아니라는 결론을 쉽게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신규 가입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를 허용하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단서가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정하고 있으므로, 해직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여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근로자에 해당하고, 그 밖의 경우에는 근로자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근로자가 아닌 해직자가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이 해직 교원을 교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에서 배제하고 있음을 전제로 판단하고 있다(위 2013헌마671 등 결정).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본문의 ‘가입’이라는 문언을 신규 가입으로 한정하는 해석은 같은 목 단서의 존재와 의미를 설명할 수 없어 채택하기 어렵다. 3)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관한 종래의 견해에서는 해석론으로써 원고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다른 결론을 내릴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는 설령 현행법에 부당한 부분이 있더라도 입법으로 개선할 문제이지 법률의 해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해직 교원을 교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를 합헌으로 판단하면서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교원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교원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자격 없는 조합원의 수, 그러한 조합원들이 교원 노동조합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 자격 없는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 또는 제한하기 위한 행정당국의 적절한 조치 여부, 해당 노동조합이 이를 시정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하여 행정관청과 법원이 재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위 2013헌마671 등 결정). 그런데 해직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것이 합헌이라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허용하는 노동조합은 적법한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재량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법외노조임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국회 입법은 수년째 답보 상태에 있다. 정부는 스스로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도 이 사건에서 원고가 법외노조라는 입장은 거두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을 기다리고 있다. 법률은 법률규정의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법률 제정 당시에 입법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되지 않았거나 불충분하게 규정된 경우도 있고, 법률에 명문의 규정이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짐에 따라 법률과 실제 생활 사이에 불가피하게 간격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만일 명문규정의 엄격한 적용만을 고집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는 있어도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적응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를 실제 생활에 부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형식적인 자구 해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법률이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 목적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입법 목적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 명문규정의 의미를 확대하거나 축소·제한하는 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법형성적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법규정의 의미와 본질을 바꾸는 정도가 아닌 한도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뒤쳐진 법률을 앞서가는 사회현상에 적응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그 뒤쳐진 법규정의 전통적 해석·적용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입법기관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1978. 4. 25. 선고 78도24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8. 4. 23. 선고 95다3646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법규범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규율할 수는 없다. 법은 그 일반적·추상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본질적으로 흠결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률의 해석은 단순히 존재하는 법률을 인식·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경우 유추나 목적론적 축소를 통하여 법률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요청이다.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 법을 해석·적용할 때에는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만일 해석의 결과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러한 해석을 배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통상 이를 위하여 문언적 해석 외에 논리적·체계적 해석,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 등 여러 해석방법이 동원된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부당함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 때로는 법의 문언에 반하는 정당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방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형법 제55조 제1항 제6호의 “벌금을 감경할 때에는 그 다액의 2분의 1로 한다.”라는 문언에서 ‘다액의 2분의 1’을 ‘금액의 2분의 1’이라고 해석하여 그 상한과 함께 하한도 2분의 1로 감경된다고 보았다(대법원 1978. 4. 25. 선고 78도246 전원합의체 판결). 어음법 제75조 제6호가 어음의 요건으로 “발행일과 발행지”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대법원은 ‘어음면상 발행지의 기재가 없더라도 기타 어음면의 기재 자체로 보아 어음이 국내에서 어음상 효과를 발행시키기 위하여 발행된 것임이 인정된다면 무효의 어음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대법원 1998. 4. 23. 선고 95다36466 전원합의체 판결). 법률의 해석은 헌법 규정과 그 취지를 반영해야 한다. 어떤 법률조항에 대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우선 그중 헌법에 부합하는 의미를 채택함으로써 위헌성을 제거하는 헌법합치적 해석을 해야 하고, 나아가 헌법에 부합하는 해석 중에서도 헌법의 원리와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의미를 채택하는 헌법정향적 해석을 해야 한다. 어떤 법률조항을 그 문언, 체계와 입법 경위 등에 비추어 해석한 결과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이와 같이 헌법을 고려하는 합헌적 해석을 통하여 교정할 수 있다. 가) 헌법은 제33조 제1항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정하여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노동조합법 제1조는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정하여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단결권에는 개별 근로자가 노동조합 등 근로자단체를 조직하거나 그에 가입하여 활동할 수 있는 개별적 단결권뿐만 아니라 근로자단체가 존립하고 활동할 수 있는 집단적 단결권도 포함된다(헌법재판소 1999. 11. 25. 선고 95헌마154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따라서 노동조합의 단결권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고, 그 경우에도 단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입법자는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을 입법할 때 이러한 헌법 규정과 원리를 존중해야 하고, 법원 역시 노동관계법을 해석할 때 그러한 헌법 규정과 원리가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결성과 가입은 단결권의 행사 그 자체이고 노동조합은 노동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한 필수적 토대가 되므로 노동조합의 설립과 존속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적용해야 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법이 오히려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편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사항은 위와 같은 단결권 이전에 결사(結社)의 자유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있다. 헌법 제21조는 제1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제2항에서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결사란 자연인 또는 법인의 다수가 상당한 기간 동안 공동목적을 위하여 자유의사에 따라 결합하고 조직화된 의사형성이 가능한 단체를 말한다(헌법재판소 2002. 9. 19. 선고 2000헌바84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결사의 자유는 단체의 목적에 대하여 중립적이므로, 결사의 목적과 관계없이 모든 단체의 결성이 보호된다. 결사의 범위와 형태를 정하는 것 역시 자유이므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단체를 결성할 것인지는 국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결사의 목적, 범위, 형태를 이유로 한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기본권 제한의 엄격한 한계를 준수하고 그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노동3권 중 단결권은 이러한 결사의 자유가 근로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것이다(헌법재판소 2008. 12. 26. 선고 2006헌마518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따라서 근로자의 단결에 대한 허가는 인정될 수 없고, 그 목적, 범위, 형태 역시 헌법상 한계를 넘지 않는 한 함부로 제한할 수 없다.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를 결사에 대한 허가제로 볼 수는 없다(헌법재판소 2012. 3. 29. 선고 2011헌바5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결국 현직 근로자와 해직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현직 근로자와 해직 근로자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노동조합의 형태로 단체를 결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 될 수 있다. 결사의 자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목적, 범위, 형태에 따라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현직 근로자와 해직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일 뿐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를 결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이 노동3권과 같은 특별 규정을 두어 별도로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결사의 경우와 달리 특별한 보장을 해준다는 취지이다(위 2011헌바53 결정 등 참조). 그 실질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단체’일 수밖에 없는 결사를 단지 현직 근로자 외에 해직 근로자가 구성원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단결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고 결사의 자유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와 같은 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마치 단결권만을 제한하는 것 같은 외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결사의 자유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현직 근로자와 해직 근로자의 단결을 예외 없이 제한하는 것은 결사의 목적, 범위, 형태를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사의 자유란 누구든지, 어떤 목적으로도,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형태로 단체를 결성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개인은 자유롭게 단체를 결성할 수 있고 단체 스스로 그 활동이나 존속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결사를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과 활동이 보장된다. 결사는 인정하되 그 결사가 추구하는 목적을 불허하는 것은 결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단체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 위와 같은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정하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결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자 결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위협하는 것이다. 헌법상 노동3권의 충실한 보장을 위하여 존재하는 노동조합법이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을 통하여 결사의 자유마저 침해하게 되는 결과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나) 노동조합의 존재의의를 고려할 때 해직자를 노동조합의 조합원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해직자는 일시적 실업자 또는 구직자일 뿐 사용자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노무공급자들 사이의 단결권 등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고,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 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그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단서(“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해직자의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 가입을 인정하였는데(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두8568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원래 조합원이었던 근로자를 단지 해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법률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과 관련하여 일정한 예외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불허하는 것은 헌법에서 직접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에 따른 입법정책적 선택일 뿐이다. 만일 노동조합법이 없다면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도 정당한 노동조합으로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법의 존재로 말미암아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은 그 지위가 부정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결론을 그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법의 존재이유와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불허하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는 해고자나 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지 않다. 더욱이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했다는 이유로 그의 조합원 지위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해당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아예 부정하는 입법례는 역사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가)목, (나)목, (다)목, (마)목과 유사하게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단체의 운영을 위한 경비의 지출에 대하여 사용자의 경리상 원조를 받는 경우’, ‘공제사업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주로 정치운동 또는 사회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나,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즉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는 노동조합의 개념에서 배제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노동 관련 국제기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의 실정법 차원에서도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인정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즉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원래 조합원이었던 자가 해직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단서와 교원노조법 제2조 단서의 문언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위에서 본 헌법재판소 2013헌마671 등 결정의 취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결정은 해직 교원을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를 합헌으로 보면서도, 교원노조법 제2조 단서에 해당하지 않는 해직 교원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는 없고, 그러한 이유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하는 것은 위헌적이라고 한다. 이는 결국 교원노조법 제2조 단서에 해당하지 않는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 결정은 비록 외형상으로는 ‘법외노조라 하더라도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적 취지는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외노조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외노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명백히 부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교원노조법 제2조 단서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의 특별규정이라는 점에서 위와 같은 법리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의 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법체계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위헌적인 결과를 배제하는 해석이다. 다) 일반 노동조합의 경우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하고(노동조합법 제2조 제1호),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으며[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 본문],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 단서]. 교원 노동조합의 경우 ‘교원’이란 초·중등교육법 제19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하고(교원노조법 제2조 본문), 다만 해고된 자로서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보며(교원노조법 제2조 단서),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교원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 본문]. 일반 노동조합과 교원 노동조합에 관한 위 규정들은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일반 노동조합의 경우 해고된 자는 근로자의 정의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가 아닌 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배제된다. 그런데 교원 노동조합의 경우 해고된 자는 아예 교원의 정의에서 배제된다. 즉 교원노조법은 해고된 자의 노동조합 가입에 관하여 노동조합법보다 더 불리하게 규정하고 있다. 일반 노동조합의 경우 해고된 자라 하더라도 일정한 경우 해석에 따라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될 여지가 있지만(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의 경우 해고된 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인정한 위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두8568 판결이 그 예이다. 한편 1996. 12. 31. 폐지된 구 「노동조합법」은 “다만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자를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정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었다), 교원 노동조합의 경우 해고된 자는 교원이 아닌 자로 간주되므로 원칙적으로 위와 같은 해석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부당한 차별이다. 교원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이상, 헌법상 교육의 중요성 또는 교원지위의 특수성 등을 감안하여 일반 노동조합과 달리 단체행동권 등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해고된 자의 조합원 자격에 관하여 일반 노동조합과 달리 규율할 만한 별다른 이유나 근거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법문의 차이를 강조하여 해고된 근로자의 일반 노동조합 가입은 허용될 여지가 있으나 해고된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해석할 것이 아니다. 그러한 법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해고된 근로자의 일반 노동조합 가입이 허용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고된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도 허용될 여지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부당한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해석방법이다. 교원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라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관한 노동조합법의 규정 및 관련 판례의 법리와 유사하게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해석이 필요하다. 라) 어떤 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취급하는 것은 결국 그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금지하거나 해당 노동조합에 일정한 제재를 하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까지 박탈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법인 또는 비법인사단은 그 인적 구성원과는 독립하여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고, 구성원의 가입·탈퇴에 따른 변경과 무관하게 단체 그 자체로서 존속한다(대법원 1992. 7. 10. 선고 92다2431 판결, 대법원 1997. 12. 12. 선고 97누11027 판결, 대법원 2005. 7. 15. 선고 2003두5754 판결 등 참조). 노동조합법 제6조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법인격을 취득할 수 있고(원고는 1999. 7. 7. 설립등기를 마치고 법인격을 취득하였다),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제10조, 제11조 등을 종합하면 법인격을 취득하지 않은 노동조합은 비법인사단의 실체를 가진다(노동조합의 정의, 설립신고사항, 규약기재사항 등에 비추어 보면 노동조합의 단체성과 독립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이러한 법인 또는 비법인사단의 일반 법리에 반한다. 마) 이 사건 법률 규정에서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상 이 조항에 근거하여 결격사유가 있는 근로자단체는 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법외노조’라고 부른다. 그러나 법률 규정에 엄밀하게 따른다면 결격사유가 있는 근로자단체는 ‘노동조합’이 아닌 것이지 법외노조인 것이 아니다. ‘법외노조’라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미 이 사건 법률 규정의 엄격한 적용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하여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법문언을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바) 결격사유의 존재를 이유로 노동조합을 법외노조화하는 것은 해당 결격사유에 관한 시정명령 불이행을 이유로 노동조합법 제93조, 제21조에 따른 형사처벌을 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가혹한 침익적 처분이다. 따라서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을 단순히 그 문언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을 부득이한 결론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원래 조합원이었던 근로자가 해직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론적 축소가 헌법 규정과 법의 원리에 부합하고 이를 최대한 실현하는 합헌적 해석이다. 이와 달리 ‘원래 조합원이었던 근로자가 해직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우’ 역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이를 이유로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원천적으로 박탈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일반 노동조합과 교원 노동조합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단체 또는 법인에 관한 일반 법리에도 어긋난다. 5)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본다. 이 사건 부칙 조항은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규약 제6조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원고는 교원이 아닌 제3자를 제한 없이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 교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원래 조합원이었던 교원이 부당하게 해고된 경우에 한정하여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부당해고’의 의미에 다소 불분명함이 있고, 이 사건 해직 교원들은 사법적 판단에 따라 그 직을 상실하였거나 부당해고가 아님이 확정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고가 이 사건 해직 교원들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해서 원고로부터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 부칙 조항과 일부 해직 교원 조합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고는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은 기존 법해석의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른바 ‘어려운 사건’이다. 그 어려움은 법령의 난해한 문언이나 복잡한 구조에 있지 않다. 단순하고 명확한 규정을 그 문언과 구조에 따라 해석할 때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야기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법률의 해석은 그 해석의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 법률을 문언대로 해석한 결과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것이 정당한 해석인지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는 판단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쟁점에 대한 실질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 사건의 진정한 쟁점은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규정한 시행령에 있지 않다.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즉 이미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설립된 이후에도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순간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정한 법률 규정에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가 있다. 헌법은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고 노동조합법은 이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은 노동3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위한 근본적 토대를 허물어 버리는 것으로서 노동조합법의 존재이유에 배치된다. 이 경우 법원은 헌법 규범과 법의 원리에 따라 정당한 해석을 통하여 이러한 부당한 결과를 시정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3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할 수는 없다. 한때 근로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헌법상 노동3권, 특히 단결권의 의미와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된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고, 이를 이유로 해당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까지 박탈해서는 안 된다. 도덕의 잣대로 이 사건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교원 노동조합으로서 원고의 활동 전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원고가 노동조합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법조항에 대하여 헌법을 비롯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정당한 해석이 무엇인지가 문제 될 뿐이다. 원고는 교원과 무관한 제3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거나, 모든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해직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원고의 이러한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의 보장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이 위와 같은 행위까지 금지한다고 보는 것은 헌법 규범에 반하는 해석이다. 요컨대, 원고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의 당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원고를 ‘법외노조’로 보는 것 자체에 잘못이 있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하다.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한다. 1) 다수의견의 요지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무효이고,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그 법적 근거를 상실하여 위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견의 태도는 오랜 기간 동안 사회적 논란이 되어 온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 문제를 정면으로 대처하여 판단하지 않고 헌법상 일반원칙을 들어 그 결론을 내린 것으로서 ‘헌법 원칙으로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다수의견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여 민주적 기본질서로 표현되는 국가운용질서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국민의 대표가 만든 이성적인 법’의 존재를 대전제로 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대통령령의 규정만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하는 것은 법치행정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무효임은 널리 알려진 원칙이다. 이러한 일반원칙을 바탕으로 법률적 근거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지극히 타당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효력 여부에 관하여 이러한 헌법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는 그 조항의 성격과 관련하여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수의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위헌성의 근거로 ‘강력한’ 기본권 관련성과 ‘중대한’ 침익성을 들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는 것이고,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허용될 수 없다. 즉,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시행령 조항이라면 기본권 관련성이 강력하든 그렇지 않든, 침익성이 중대하든 그렇지 않든 그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제한의 정도에 따라 그 결론을 달리할 수 있는 양(量)의 문제를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의 위반 여부라는 질(質)의 문제로 본 것으로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다수의견에 따라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여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교원노조법 제2조가 위헌이 아닌 이상(헌법재판소 2015. 5. 28. 선고 2013헌마671 등 전원재판부 결정), 원고의 법률위반 문제는 해소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2) 노동조합 설립신고가 있는 경우 행정청은 법상 설립요건에 부합하는 한 이를 수리하여야 한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노동조합 설립신고가 일단 수리되었다면 현행법상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헌법상 설립이 자유인 정당도 그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해산될 수 있다(헌법 제8조 제4항)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노동조합의 권리도 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헌법 질서 아래에서 보장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어떠한 법위반행위를 하더라도 현행법상으로는 그 법적 지위를 부인할 수 없다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행정청을 기망하여 설립신고 수리를 받아낸 경우에도 이미 설립신고가 수리된 이상 절대로 그 수리처분의 효력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것인가?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사용자의 경비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 노동조합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문제는 제쳐 두고 오로지 정치적 이념을 추구하면서 정당활동·선거운동 등에 전념하는 경우 등과 같이 해당 노동조합의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라면 어떠한가? 아무리 중대한 결격이 있더라도 일단 한번 부여된 지위는 절대로 회수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는 매우 사소한 결격사유가 있을 뿐인데도 일단 위법이 있는 이상 무조건 그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법외노조 통보는 노동조합에 대한 불이익한 처분이고, 이 사건과 같이 10여 년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존속해 온 원고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외노조 통보는 행정청의 시정명령 위반이나 시정요구 불이행에 대한 제재가 아니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수리하는 처분을 하였다가 법이 정한 노동조합의 요건을 결여하였다는 이유로 그 처분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일 뿐이다. ‘법외노조 통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실질은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직권취소 또는 철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이 사건 처분사유는 설립신고 수리 이후 법상 결격사유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므로, 이하 철회를 중심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되는 조항이 아니라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 철회의 ‘절차’를 규정한 조항에 해당하게 된다. 즉,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행정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는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철회를 제한하는 것으로서, ‘시정요구’를 통하여 행정절차법상 불이익 처분에 관하여 요구되는 사전통지와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고 이로써 해당 노동조합에 자율적 시정의 기회를 제공하는 가중적 절차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한지 여부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유·무효 문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철회의 적법성 문제라고 봄이 타당하다. 3) 행정청이 어떤 처분을 한 경우 사후에 그 효력을 존속시킬 수 없는 새로운 사정이 발생하였음을 이유로 이를 철회할 수 있는지, 특히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에도 철회가 가능한지 문제 된다. 비록 당초 처분에 의하여 부여한 지위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임의로 기존 처분을 철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근거는 가급적 명문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대국가의 복잡하고 다양한 행정작용 속에서 모든 경우에 명문의 규정을 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법원 판례는, 비록 그 처분 당시에 별다른 하자가 없었고, 또 그 처분 후에 이를 철회할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처분을 존속시킬 필요가 없게 된 사정변경이 생겼거나 또는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상실케 하는 별개의 행정처분으로 당초 처분을 철회할 수 있고, 다만 수익적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경우에는 이미 부여된 처분상대방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므로, 수익적 행정처분을 철회하여야 할 중대한 공익상 필요와 그 철회로 인하여 처분상대방이 입게 될 기득권과 신뢰보호 및 법률생활 안정의 침해 등 불이익을 비교·형량한 후 공익상 필요가 처분상대방이 입을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강한 경우에 한하여 철회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1986. 2. 25. 선고 85누664 판결,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두10251, 1026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다수의견은, 입법자가 반성적 고려에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것을 강조하면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무효이므로 법외노조 통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헌법이 근로자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법외노조 통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다수의견의 태도에도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에 불가침의 절대적 효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취지를 고려하더라도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을 직권취소·철회할 수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 행정행위 직권취소·철회 법리는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고, 처음부터 근거가 없었던 경우이든 원래 있었던 근거가 없어진 경우이든 달리 볼 이유가 없다. 이는 ‘입법의 미비’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정의 법적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래 판례가 개별 법령에서 취소·철회 사유를 명시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 법정사유가 아닌 다른 공익상의 필요 등을 이유로 한 직권취소·철회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1두2874 판결, 대법원 2007. 2. 8. 선고 2006두6505 판결, 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3두7025 판결 등 참조). 한편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무효라고 한다. 법률은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바 없고, 이를 시행령에 위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 직접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다면 그 자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다수의견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과 법률상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의 폐지 연혁을 강조하는 것을 고려하면, 만일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면 그에 따른 법외노조 통보가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다수의견이 법외노조 통보의 중대한 침익성을 강조하면서 이는 결국 헌법상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한다고 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설령 법률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단결권을 침해하는 법외노조 통보는 허용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다수의견의 난점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법외노조 통보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 근본적 문제인 것 같지만, 설령 법률에서 직접 규정하더라도 법외노조 통보 자체가 가지는 실질적 위헌성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 것이다. 노동조합법이 노동조합의 적법 요건과 결격사유를 규정하면서 설립신고 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법외노조 통보의 직접적인 근거가 법률에 있는지 시행령에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과연 어떤 경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지에 있고, 여기서 분명한 것은 결격의 실질과 정도, 추구하는 공익의 존부와 성격, 침해되는 노동조합의 기득권과 법적 안정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수익적 행정행위 직권취소·철회 제한 법리이다. 법외노조 통보를 법률에 규정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 법외노조 통보가 허용될 수 있는지를 규명하여야 한다. 설령 법외노조 통보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그것이 결격사유의 발생만을 이유로 아무런 제한조건 없이 일률적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라면, 아마도 다수의견 역시 그러한 법률은 위헌적이라고 보게 될 것이다. 요컨대, 법률이 노동조합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적법 요건과 함께 결격사유를 명백히 규정하면서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설립신고 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입법자가 법률상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채 별도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한 법률 규정을 두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격사유의 발생이 인정되는 한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직권취소·철회로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수리는 수익적 행정처분이므로 수익적 행정행위 직권취소·철회 제한 법리에 따라 일정한 제한이 가해질 뿐이다. 문제는 통보의 ‘가능성’이 아니라 통보의 ‘타당성’이다. 즉, 과연 어떤 경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4) 결국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유·무효와 무관하게,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없더라도 현행 법률규정과 행정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을 철회하는 의미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무효로 보는 의미는 없어지거나 반감되고,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 여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 주어야만 분쟁이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는 수익적 행정처분인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사후적 철회 절차를 규정한 것으로서 무효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온당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이 사건 법률 규정에 근거한 것으로서, 행정청이 법외노조임을 통보하기 전에 반드시 시정요구를 거치도록 하는 절차적 가중요건을 규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무효로 보는 것은 위와 같은 시정요구 절차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노동조합에 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와 같이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법적 성질을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철회라고 본다면,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유효한지 여부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상 필요와 이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형량할 때 과연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지 여부로 옮겨 가게 된다. 이러한 공익과 사익의 비교·형량은 비례의 원칙으로 표현되고, 불이익 처분인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하는 경우에도 비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따라서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즉시 법외노조 통보의 요건이 충족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성은 원고 내 해직 교원의 수와 그 해직 교원들이 원고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 원고가 해직 교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헌법 질서에 반하거나 노동조합의 본질을 훼손하는지 여부, 원고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통하여 달성되는 공익, 법외노조 통보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되는 불이익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1)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특히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노동3권을 구성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각자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면서 상호 유기적 일체로 작동한다. 노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은 이러한 단결권의 행사 그 자체로서 노동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현실적 토대가 되므로, 근로자가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지되거나 제한되어서는 아니 되고,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설립신고 제도는 이러한 노동조합의 헌법적 의미와 기능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해되고 운용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그 단체로서는 이 점에 대한 저항이 당면한 주요 목표가 되고, 이념에 충실한 투쟁적인 사람들이 단체의 주도권을 잡게 되며, 아울러 모든 정책 방향도 과격하게 될 수 있다. 눈앞에 강력한 장애물이 있으면 단체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은 사라지고 오로지 그 장애물 제거에 온 힘을 쏟게 되는 것이다. 어떤 단체가 이념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념 문제가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합리적 의견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의 정착에도 도움이 된다. 선진 각국과 국제사회는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있고, 해직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당 노동조합의 지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동료였던 조합원을 단지 사용자로부터 해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하도록 강제하는 법제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찾기가 쉽지 않다. 이는 노동조합의 본질과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보편적 기준은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지만 건강한 사회라면 언젠가는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는 2020년 6월 현재 전체 190개 협약 중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에 관한 4개 분야의 8개 협약을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으로 지정하고 모든 회원국에 대하여 그 비준 및 준수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협약)」은 제2조에서 “근로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이나 사전 허가 없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을 조건으로 단체에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체의 차별과 정부의 사전 허가 없는 단결권의 보편적 보장 원칙을 국제노동기준으로 확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 제320차 이사회는 2014. 3. 26. 우리나라 정부의 결사의 자유 위반에 관한 권고를 담은 결사의 자유 위원회 제371차 보고서를 채택하였는데, 여기서 위원회는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의한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금지가 결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위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7. 6. 17. 제382차 보고서에서 이 사건과 직접 관련하여 같은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해직자가 조합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법률의 관련 조항을 지체 없이 폐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한국 정부에 다시 한번 강력히 요청한다’고 권고하였다. 한편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은 2011년 발효된 「대한민국과 유럽연합 및 그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하는 등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정부에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2019. 7. 4. 유럽연합은 우리나라 정부에 위 자유무역협정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 제14조 제1항에 따른 전문가 패널의 소집을 공식 요청하여 우리나라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자유무역협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따라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해당 노동조합의 자격을 부인’하는 점을 주요 위반사항의 하나로 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한 이후 국내법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협약을 비준하여 왔는데, 아직까지 위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 관련한 4개 협약(제29호, 제87호, 제98호, 제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소관: 고용노동부)는 2019. 5. 22. 위 4개 협약 중 제87호 협약을 포함한 3개 협약에 관하여 비준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고, 현재 그 후속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실업자·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인정하는 관련 법률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고,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다시 제출한 상태이다.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은 앞서 본 확립된 국제기준과 헌법상 단결권의 가치에 비추어 볼 때 입법적·정책적으로 조속히 인정되어야 할 문제이지, 형식적인 법적용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와해시킬 문제가 아니다. 관련 입법적·정책적 개선이 지연되고 있는 이상 이 사건의 사법적 판단을 통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된 해직 교원은 9명으로서 원고의 전체 조합원 약 6만 명 중 극히 일부인바, 위 해직 교원 9명으로 인하여 원고의 활동이나 자주성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 오히려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해직 교원 9명 중 원고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원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한편 원고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라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에 대응한다. 그런데 교원이 아닌 일반 근로자의 경우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은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둘 수 있다(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두8568 판결 등 참조).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단결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해직 교원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것이 헌법 질서에 반하거나 노동조합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통하여 달성되는 공익도 불분명하다. 피고는 헌법 제31조 제6항의 교원지위법정주의와 교원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교원지위의 특수성과 직무의 중요성에 비추어 교원과 교원 노동조합에 요구되는 특별한 도덕성과 사회의 신뢰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오히려 기존 조합원이 해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위와 같은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없지 않다. 반면에,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로 인하여 원고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매우 크다. 노동조합법상 명시적으로 규정된 내용만 보더라도,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제7조 제3항), 법인격을 유지할 수 없으며(제6조),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의 조정 및 부당노동행위의 구제를 신청할 수도 없고(제7조 제1항), 조세를 면제받을 수도 없다(제8조).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가 노동조합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원고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로써 사실상 노동조합으로서 존재의의와 가치를 상실하였다고 할 것이다. 한편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법외노조 통보는 분명 현행 법령상 제도이지만 과연 이 제도가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지, 규범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관하여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피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실제로 피고가 행한 법외노조 통보는 현재까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2009. 10. 20.자 통보와 이 사건 2013. 10. 24.자 통보 외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법정요건을 결여한 노동조합이 존립할 수 없도록 한다’는 이유에서 1988. 4. 15. 도입된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대통령령 제12429호),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나도록 피고가 행한 법외노조 통보가 오직 2건뿐이라는 것은 이 제도의 사문화 또는 자의적 선별적용을 시사한다. 우리 산업계에서 현직 근로자가 아닌 해직자가 가입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조합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비례·평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4) 헌법은 우리 국민이 자유롭고 문화적인 민주복지국가를 이룩하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을 그 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기본법은 제2조에서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특히 제6조 제1항에서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육은 조직화·제도화된 학교교육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학교교육을 수행하는 사람이 교원이라는 점에서 교원은 사용자에 고용되어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 등 반대급부를 받는 일반 근로자와 다른 특성이 있다. 이에 교원노조법은 교원 노동조합 및 그 조합원의 일체의 쟁의행위를 금지하고(제8조), 교원 노동조합의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며(제3조), 그 밖에 교육공무원법 제51조 제1항, 국가공무원법 제78조 제1항, 제65조, 사립학교법 제55조, 제58조 제1항, 정당법 제6조,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등에서 교원의 정당가입, 선거운동 등 정치적 행위를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행법 체계를 감안하면 교원 노동조합의 활동은 사실상 교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단체교섭에 한정되고, 교원 노동조합의 정치화 또는 그로 인하여 교육의 공공성이나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가 저해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은 이미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하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성 문제를 교육의 중요성이나 교원지위의 특수성 문제로 치환하거나 이를 중심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다. 우리 법제는 교원 노동조합이 국민 전체의 이익과 어긋나지 않도록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고, 우리 사회는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수용할 만한 충분한 저력이 있다고 본다. 5) 법위반행위를 장려할 일은 아니다. 실정법이 존재하는 한 지켜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그 위반행위를 한 자에게 제재가 가해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제재가 적절한 수준을 넘어 해당 단체의 단결권 자체를 제약하는 것이라면 이는 다른 문제이다. 법은 언제나 합법적이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법은 자기목적적일 수 없으며 그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또한 법은 영원할 수 없다. 법이 처음부터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잘못되게 된 경우도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국민은 불합리한 법령이나 제도에 반대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이러한 개선요구를 위하여 폐지 청원을 하거나 폐지를 구하는 소송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법위반행위가 발생한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다투는 과정에서 잘못된 법이 바로잡아지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는 부당한 노동조합 법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 사건 부칙 조항을 시정하지 않고, 해직 교원 9명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원고가 목전의 제재만을 피하고자 하였다면 형식적으로 규약을 개정하거나 일시적으로 해직 교원을 배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고는 시정명령에 대한 불복소송은 물론 이 사건에서도 심대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노동조합의 가치와 관련 법제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원고는 ‘법률’이 아닌 ‘법’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이를 이유로 단체의 존재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문제 되는 행위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법적 제재를 통하여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 미래 세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과 관련하여 교원 단체의 과격성향이나 이념편향이 문제라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사상의 경쟁시장을 통하여 그리고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단체의 단결권을 제한함으로써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법적 판단은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법적 평화를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을 지향하여야 한다. 법외노조 통보는 수익적 행정처분인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직권취소 또는 철회를 의미하므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무효 여부와 관계없이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즉, 원고의 위법사항이 과연 원고의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 자체를 박탈할 정도의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사건의 핵심적 쟁점은 여기에 있고, 이 사건 판결의 규범적 의미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헌법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3권의 행사를 위한 기본적 토대가 되고, 해직자 역시 스스로 사용자가 되지 않는 한 근로자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노동3권의 보장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해직자를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법제는 현재로서는 물론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이미 국제사회의 확고한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우리나라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문제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법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고 그 위반사항에 대한 시정명령과 시정요구까지 거부하고 있는 원고에 대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은 적법하며,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철회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이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의 의견도 경청할 점이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세계 보편적 기준은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립되어 있다. 이는 교육의 중요성과 교원지위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해직 교원의 교원 노동조합 가입을 불허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고가 해직 교원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원고의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 자체를 박탈할 것은 아니다. 원고의 노동조합으로서의 정당성은 그 활동에 따라 평가할 문제이지 해직 교원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한 것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고의 위법사항에 비하여 과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적법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수익적 행정처분의 철회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원심판결은 파기되어야 한다. 위와 같이 원심판결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과 같이하나, 그 파기이유는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혀둔다.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에 의하여 교원 노동조합에 적용되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본문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이 경우 행정관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기간 내에 노동조합이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규정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는 이미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으로서 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법률로 규정하여야 하고, 행정입법으로 규정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법률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위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도 아니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무효이고,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이와 같이 무효인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기초한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규정에 의하면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다면 더 이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고, 이를 시정하지 않는 이상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 이러한 명확하고 일의적인 법령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설립신고 당시부터 규약을 통하여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본문에 해당하고, 이에 관한 피고의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피고가 앞서 본 규정에 따라 원고에게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은 적법하다. 그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법은 불특정 다수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하고,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다른 해석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판결, 대법원 2013. 1. 17. 선고 2011다83431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그 취지는 모든 대통령령의 제정에 있어서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 등 헌법이 반드시 법률에 의하여서만 규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법률의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법원 2007. 1. 11. 선고 2004두10432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법률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은 그 법률에 의한 위임이 없으면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변경·보충하거나 법률이 규정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정할 수는 없지만, 법률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내용이 모법의 입법 취지와 관련 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살펴보아 모법의 해석상 가능한 것을 명시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거나 모법 조항의 취지에 근거하여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 때에는 모법의 규율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모법에 이에 관하여 직접 위임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14. 8. 20. 선고 2012두19526 판결,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5도16014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2)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본문은 ‘노동조합’을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정의한다. 노동조합법은 위와 같이 근로자가 노동조합의 주체라고 명시하면서, 제2조 제1호에서 근로자에 관하여 직업의 종류를 묻지 않고 임금·급료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별도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에 있으면서 노무에 종사하고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말하고,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한 노무제공계약이 고용, 도급, 위임, 무명계약 등 어느 형태이든 상관없는 것이지만(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9두33712 판결 등 참조),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는 노동조합법이 정한 적법한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없는 것으로 귀결된다(대법원 1992. 5. 26. 선고 90누9438 판결 등 참조). 나아가 노동조합법이 제2조 제4호 본문에서 규정하는 ‘자주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라 함은 대내적으로 근로자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하여 조직하고 대외적으로는 그 운영에서 사용자를 비롯한 제3자의 간섭이나 개입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사건 법률 규정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가)목]’,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나)목]’,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라)목 본문]’를 열거함으로써 이에 해당하는 단체를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노동조합법 제5조는 본문에서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동조합 조직·가입을 허용하면서도, 그 단서에서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교원노조법은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교원에 적용할 노동조합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하면서 그 제2조에서 ‘교원’을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교원노조법이 적용되는 교원의 범위를 정함과 동시에 교원 노동조합의 설립 주체 및 그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강행규정이다. 따라서 교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교원은 현실적으로 교원으로 근무하고 있거나, 해고되었지만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하고 그에 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기 전인 사람에 한정되고(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대법원 2016. 1. 14. 선고 2012도10066 판결 등 참조), 그 외의 사람은 교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없다. 교원 노동조합이 위와 같이 조합원 자격이 없는 자의 가입을 허용하게 되면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본문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하게 된다. 교원노조법상의 ‘교원’을 원칙적으로 위와 같이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아직 교원으로 임용되지 않은 교사자격 소지자나 해고된 교원 등에 대하여까지 폭넓게 문호를 개방할 것인지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법은 교원 노동조합의 활동과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재직 중인 교원’에 한정하여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교원이 아닌 사람들이 교원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현직 교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어 교원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이므로, 적어도 현시점에서 이를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해고된 교원’은 조합원 가입이 허용될 경우 도리어 부당한 간섭 내지 개입을 통하여 교원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3) 이 사건 법률 규정은 법상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면서, (라)목 본문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여기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노동조합이 아닌 것으로 본다’는 취지이다. 그리고 법에서 ‘본다’는 규정은 원칙적으로 추정과 달리 반증이 허용되지 않는 간주를 의미하거나 적어도 위 규정이 직접적으로 대외적인 효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조합은 명칭과 달리 더 이상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이 될 수 없고, 이른바 ‘법외노조’에 해당할 뿐이다. 행정관청이 이를 간과한 나머지 설립신고를 수리하였더라도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의하여 처음부터 노동조합이 아닌 것으로 보게 되는 법적 효과가 발생·유지되고, 이와 달리 설립신고가 수리된 이후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사후적으로 노동조합이 아닌 것으로 보는 효력이 발생하여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의 지위가 그 무렵 상실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효과는 이 사건 법률 규정이 ‘정의규정’이라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간주규정’이라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다. 즉 이 사건 법률 규정이 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그에 따른 법률관계가 즉시 형성되고, 이것이 간주규정이 가지는 의미이다. 이 사건 법률 규정이 정의규정이라고 하여 위와 같은 간주의 효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이 이 사건 법률 규정이 직접적으로 대외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새겨야 하는 것은, 위 단서 부분이 같은 호의 본문 부분과 결부되어 근로자가 노동조합의 주체인 지위를 상실하거나 노동조합이 자주성을 상실하는 것을 실효성 있게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만일 어느 노동조합이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가)목]’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나)목)]’에 해당하는 경우, 이는 그 자체로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본질적 요건인 자주성을 심각하게 흠결한 것이어서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가 부여되어서는 아니 되고, 행여 그 노동조합의 설립신고가 행정관청에 의해 이미 수리되었다고 하여 수리 전과 다르게 보아서는 아니 된다. 이와 같이 이 사건 법률 규정 (가)목 또는 (나)목에 해당하는 경우를 놓고 도출되는 해석은 (라)목 본문인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라)목도 (가)목 또는 (나)목과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아닌 제3자가 부당한 간섭 내지 개입으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규정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1997. 10. 14. 선고 96누9829 판결에서 무자격 노동조합의 설립신고가 수리된 경우 해당 회사는 항고소송으로 위 수리처분 자체를 다툴 수 있는 원고적격은 없으나, 신고증을 교부받은 노동조합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등 법이 허용하는 절차에 구체적으로 참가한 경우에는 그 절차에서 노동조합의 무자격을 직접 주장하여 다툴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법은 이 법에 따른 보호는 ‘노동조합법에 의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에 한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하면서(제7조 제1항, 제3항), ① 행정관청은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또는 규약이 기재사항의 누락 등으로 보완이 필요한 경우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2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보완을 요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제12조 제2항), ②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제2조 제4호 단서 각 항목의 결격사유가 있는 단체의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12조 제3항 제1호), ③ 노동조합의 규약이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한 경우 행정관청은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시정을 명할 수 있고(제21조 제1항), 이러한 시정명령을 받은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이를 이행하여야 하며(제21조 제3항), 이에 위반한 때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93조 제2호). 이와 같이 노동조합법에 의하면 행정관청은 결격사유가 있는 단체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여야 하고,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그 시정을 명할 수 있는바, 노동조합법 제12조 제2항의 위임에 따라 노동조합법 시행령은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에 대하여 보완을 요구하여야 하는 사유 중 하나로 ‘설립신고서에 규약이 첨부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설립신고서 또는 규약의 기재사항 중 누락 또는 허위사실이 있는 경우’를 들고 있다(제9조 제1항 제1호). 그리고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인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법문 중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까지의 부분은, 앞서 본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 및 제21조 제1항, 제3항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거나 이를 정확히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체계를 종합하여 보면, 노동조합법은 설립신고가 수리된 후 활동 중인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설립 단계의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이 허용되지 아니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이 되려면 그 설립 당시뿐만 아니라 설립된 이후에도 법이 정하고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면 그때부터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경우 앞서 본 대법원 96누9829 판결의 판시에 따라 해당 회사가 그 노동조합은 무자격 노동조합이라는 주장을 직접 개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정관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단체를 노동조합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오히려 노동조합으로 취급하면 그것이 위법이라고 볼 수 있다. 4) 이와 같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이 허용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게 되는 효과는 이 사건 법률 규정, 즉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 자체에 기하여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법의 규정은 매우 명백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조합이 현재 법외노조인지, 언제 어떠한 사유로 법외노조가 되었는지 등은 그리 명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그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이에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을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취급하지 않을 책임이 있는 행정관청이 관련 법률관계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에 관한 규정이 바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다. 즉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노동조합법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되는 효과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관한 규정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집행명령에 해당한다. 다만 노동조합법과 시행령은 위법한 규약 등의 시정명령 제도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법외노조 통보 이전에 위법한 규약 등에 대한 시정요구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또한 행정관청이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율적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려는 취지로서 순리에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정 기회가 부여되었음에도 끝내 시정되지 아니한 채 법위반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에 비로소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른 효력이 확정적으로 발생하고, 이때에는 해당 회사와 같은 이해관계인은 물론이고 행정관청 역시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더 이상 노동조합법에 따른 보호가 주어지지 아니한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즉 법상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법외노조가 되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효력은 시정명령 및 시정요구의 절차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추상적·잠재적이었다가 결격사유에 대한 시정명령 및 시정요구에 응하지 아니한 때에 비로소 구체적·확정적인 것으로 된다. 행정관청은 이러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효력의 확정에 따라 법외노조가 된 노동조합을 상대로 더 이상 노동조합법에 따른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법외노조 통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건 시행령 조항 중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해 노동조합에 대하여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부분은, 비록 모법인 노동조합법에서 구체적인 위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법에 위배된다거나 무효라고 할 수 없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법률의 시행령은 그 모법에 의한 위임이 없으면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변경·보충하거나 모법이 정하지 아니한 새로운 내용을 정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행령은 모법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뿐만 아니라 모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도 규정할 수 있으므로, 해당 시행령 규정이 개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내용을 직접 변경·보충하는 것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법을 시행하거나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 내지 지침이나 준칙으로서의 규정을 두는 것은 모법의 규율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얼마든지 허용되고, 나아가 시행령의 내용이 모법의 입법 취지와 관련 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살펴보아 모법의 해석상 가능한 것을 명시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거나 모법 조항의 취지에 근거하여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인 때에는 모법의 규율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 구체적으로 앞서 3)항에서 본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체계에 비추어 살펴보면, 행정관청이 법상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시정요구 등을 하였으나 끝내 시정되지 아니한 경우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통보를 하도록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규정하는 것은,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게 되는 법적 효과가 이미 발생하였고 행정관청도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주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이는 행정관청의 노동조합에 대한 효율적인 조직체계 정비·관리를 위하여 필요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조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보호·육성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설립신고를 마친 단체가 이 사건 법률 규정 각 항목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여 노동조합의 본질에 반하거나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행정관청이 시정명령 또는 시정요구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보게 되면, 노동조합법에 따른 법적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고 받아서도 아니 되는 단체가 노동조합임을 자처하면서 난립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법이 법외노조 통보에 관하여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직접 위임하는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발생하는 효력이 현실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행정관청이 위 조항에 따른 효력의 발생 사실을 알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은 적법한 노동조합의 판단 기준일 뿐이므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한 것은 법이 규정하거나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새로이 규정한 것이어서 무효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 규정은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님을 규정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요건과 효과를 모두 명시하고 있는 완결적 규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법규정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된 노동조합에 그 사실을 통보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항이고 특별한 위임이 필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마치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어떤 미비나 흠결이라도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이에 기초하여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법률상 근거 내지 법률의 위임이 없는 전혀 새로운 규정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다수의견의 입장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이 그 자체로 완결적인 규정임을 간과한 것이거나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라는 결론을 위하여 법규정의 의미를 임의로 축소하는 편의적 해석일 뿐이다. 5) 한편 노동조합법 제12조 제1항에 의하면, 행정관청은 설립신고를 접수한 때 설립신고서 또는 규약의 기재사항 누락 등으로 보완이 필요하거나 설립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에 법이 정한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설령 어떤 노동조합이 법외노조 통보를 받더라도 그 결격사유를 시정하여 다시 설립신고를 하면 늦어도 3일 내에 적법한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일반적으로 건축허가의 취소 등과 같이 수익적 행정행위를 취소하는 처분은 그 취소처분으로 인하여 비로소 효과가 발생하고, 처분의 효력이 종국적이어서 설령 처분상대방이 처분사유를 해소하더라도 다시 종전과 같은 수익적 처분을 받게 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처분상대방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법외노조 통보의 경우에는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게 되는 효력이 기정사실로서 이미 발생하였고, 그 노동조합에 법에 맞게 규약과 조직을 정비할 때까지는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알리면서 합법으로 회귀할 것을 촉구하는 데 그칠 뿐이므로 일반적인 수익적 행정행위 취소처분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이는 철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법외노조 통보가 침익적인 속성을 가진다는 시각에 매몰되어 이를 가급적 자제하여야 한다는 쪽으로 치우쳐 바라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노동조합이 이 사건 법률 규정 중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가)목]’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나)목]’에 해당하는 경우, 행정관청으로서는 그와 같이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추지 못한 단체에 대하여 법외노조임을 통보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상기하여 보더라도 그러하다. 노동조합법상 법외노조 통보의 침익적인 측면은, 노동조합법이 정한 요건이 흠결되었을 뿐 아니라 그에 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과 시정요구에도 끝내 불응함으로써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효력이 발생하게 된 단체가, 스스로 노동조합법이 정한 요건을 다시 갖춤으로써 얼마든지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에도 이를 거부한다는 자가당착에서 비롯되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위와 같은 단체가 노동조합법이 정한 법의 보호만 선별적으로 받기 위한 요량으로 이 사건 법률 규정이 없는 셈치고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으로 취급하여 달라는 식의 모순된 요구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것이지, 침익적 행정처분으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로 치환하여 살펴볼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6)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된 것이고,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따른 법외노조 통보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된 것이 아니므로 법외노조 통보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지만, 설령 이와 달리 보더라도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법외노조 통보는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행정행위를 한 처분청은 그 처분에 하자가 있는 경우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스스로 이를 취소할 수 있고, 비록 그 처분 당시에 별다른 하자가 없었고 또한 그 처분 후에 이를 철회할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 하더라도 원래의 처분을 존속시킬 필요가 없게 된 사정변경이 생겼거나 또는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상실케 하는 별개의 행정행위로 이를 철회할 수 있다. 다만 당초의 행정행위가 수익적인 것이었다면 일정한 경우 수익적 행정처분의 취소·철회 제한 법리에 따라 그러한 취소·철회가 허용되지 않을 여지가 있을 뿐이다(대법원 1986. 2. 25. 선고 85누664 판결,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두10251, 10268 판결 등 참조).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수리는 크게 보아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에서 정한 설립요건을 갖춘 노동조합을 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함으로써 노동조합법이 정한 권리와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수익적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특별한 제한사유가 없는 한 별도의 법령상 근거 규정이 없더라도 철회 사유가 발생한 교원 노동조합에 대하여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수리를 사후적으로 철회하는 의미에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고,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이러한 행정법의 일반 법리에 따라 당연히 도출되는 행정관청의 철회 권한을 주의적·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가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단체에 대하여 이 사건 법률 규정의 각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하여 이에 해당하는 경우 그 설립신고를 반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위 규정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노동조합의 난립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결권 행사를 보장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고, 이에 따라 행정관청은 해당 단체가 이 사건 법률 규정의 각 항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 참조, 다만 위 대법원 2011두6998 판결에 의하면 설립신고 단계에서의 실질적 심사권한은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일부 제한된다), 이러한 실질적 심사권한은 노동조합의 설립신고가 수리된 이후에도 노동조합법 제21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행정관청에 지속적으로 유보되어 있어, 행정관청은 심사 결과 이 사건 법률 규정 각 항목의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는 시정명령 등을 통하여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복귀하도록 조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끝내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행정관청이 가진 위와 같은 실질적 심사권한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모습을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는 결격사유가 있는 단체의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행정관청이 수리하기 전과 수리한 후의 각 상황을 규범적으로 비교·평가하여 보더라도 그러하다. 만일 행정관청이 설립신고서가 접수된 후 이 사건 법률 규정의 각 항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항목 소정의 결격사유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최종적으로 그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하거나 그 수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면, 이러한 조치는 앞서 본 노동조합법 제12조에 기초한 것으로서 적법하고, 따라서 설립신고의 수리가 거부된 해당 단체에 대하여는 노동조합법에 따른 법적 보호 내지 이른바 법내노조로서의 지위가 부여되는 법적 효과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사안에서 행정관청이 결격사유가 있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머지 설립신고를 그대로 수리하였으나 곧바로 그 결격사유를 발견하여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정하여진 절차를 거쳐 법외노조 통보를 하게 되었다고 상정하면, 이는 설립신고가 수리되기 전에 결격사유가 발견된 경우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상황이므로 그와 균형 잡힌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적법·타당한 조치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지, 이와 달리 설립신고가 수리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마치 해당 단체의 실체가 변화하여 설립신고가 수리되기 전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달라졌다거나 특별한 법적 보호가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사법심사의 기준을 훨씬 엄격하게 설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설령 행정관청이 설립신고를 수리한 것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해당 단체의 기득권 내지 설립신고 수리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더라도,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결격사유가 발견되는 경우 곧바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30일의 기간을 정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비로소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법외노조 통보 이전의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해당 단체의 기득권 내지 종전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적인 보장은 충분히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욱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경우, 그 처분의 하자가 당사자의 사실은폐나 기타 사위의 방법에 의한 신청행위에 기인한 것이라면 당사자는 그 처분에 의한 이익이 위법하게 취득되었음을 알아 그 취소가능성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그 자신이 위 처분에 관한 신뢰의 이익을 원용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행정청이 이를 고려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도 재량권의 일탈·남용이 되지 않는다(대법원 1991. 4. 12. 선고 90누9520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설립신고 당시 해직 교원의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설립신고서에 그와 같은 내용이 삭제된 허위의 규약을 제출하여 설립신고가 수리되었고, 그 후 피고가 이를 확인하여 시정명령과 시정요구를 하였음에도 이에 불응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앞으로도 노동조합법이 정하는 노동조합의 요건을 갖출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다. 즉 원고는 처음부터 노동조합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않았고, 행정관청을 의도적으로 기망하여 설립신고가 수리되었으며, 그것이 문제가 되어 두 차례의 시정명령과 한 차례의 시정요구를 받았음에도 그 시정을 거부하였고, 앞으로도 시정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원고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처분사유를 가지고서 행정에 대한 자신의 신뢰 내지 법적 안정성이 저해된다고 다툴 수 없다 할 것이다. 오히려 이와 같이 당초의 설립신고가 처음부터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경우, 이를 수리한 뒤에 발견한 행정관청으로서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문언에 따라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를 하여야 하고, 위와 같은 통보 이후에도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언제든지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므로, 여기에 수익적 행정처분의 취소·철회 제한 또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관한 논의는 처음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다. 대법관 안철상의 별개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차원에서 입법을 위한 논의로서는 경청할 만한 것이지만 현행법의 해석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건 법률 규정은 결격사유가 있음에도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예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되 이에 불응하는 노동조합에 대하여는 반드시 법외노조 통보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그 전제가 되는 시정명령 내지 시정요구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필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관하여 보면, 이 사건 1차 시정명령의 적법성이 다투어진 행정소송에서 그 적법성을 인정하는 대법원판결이 확정되었고(서울행정법원 2010. 11. 5. 선고 2010구합27110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9. 9. 선고 2010누43725 판결, 대법원 2012. 1. 12.자 2011두24231 판결), 위 1차 시정명령의 불이행에 관한 형사 유죄판결도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으며(서울남부지방법원 2011. 12. 1. 선고 2011고단131 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2. 7. 26. 선고 2011노1798 판결, 대법원 2016. 1. 14. 선고 2012도10066 판결), 이 사건 시정요구 직후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교원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교원의 범위를 초·중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원으로 한정하고 있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관하여 청구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및 해직 교원들의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합헌결정(헌법재판소 2015. 5. 28. 선고 2013헌마671 등 전원재판부 결정)을 하였다. 즉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것이 위법함은 이미 수차례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의 기득권 주장을 허용하는 것은 현행법에 의한 규율을 포기하는 것이다. 7) 이 사건 처분사유는 원고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9명의 해직 교원이 원고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행정관청인 피고가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하였음에도 불응하였다는 것이다. 우선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 당시 9명의 해직 교원이 원고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원고 역시 이를 부정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 처분사유만으로도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적법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원고는 위와 같은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이 사건 부칙 조항을 통하여, 즉 규약으로써 공식화하고 있다. 정관 내지 규약은 단체의 설립과 존속 및 활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서 그 단체의 동일성을 식별하고 정체성을 형성·유지하는 핵심적 사항이다. 원고는 바로 이러한 규약 자체에서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과거 한때의 일이거나 현재의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장래에 대하여 앞으로도 계속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하고, 조합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이 단순한 업무착오 등에 기하여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명시적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그와 같은 노동조합은 법에 의한 노동조합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하나의 법을 두고, 그 법에서 정한 요건은 갖추지 않겠다면서, 그 법에 의한 효과만을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비단 노동조합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법이든 사법이든, 실체법이든 절차법이든 모든 법에서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의료법이 규정하는 필수적 설비는 갖추지 않겠다면서 의료법에 의한 병원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해 달라고 하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모순된 입장을 허용하는 법질서는 애당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 사건에서 원고는 단순히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소극적으로 묵인한 것이 아니다. 원고의 진정한 의사와 달리 일시적으로 해직 교원이 조합원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다. 원고는 공식적인 규약을 통하여 교원이 아닌 자의 조합원 가입을 명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교원노조법상 설립요건을 정면으로 위반하였고, 피고의 반복적인 시정명령과 그 시정명령의 적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규약의 보유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으며, 앞으로도 교원이 아닌 자의 조합원 가입 문제를 시정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명백히 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고는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와 보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율배반적인 주장은 늘상 배척되어 왔고 또 그래야만 한다. 준법의사가 없는 단체를 그 단체가 거부하고 있는 법에 의하여,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음에도 그 법에 따라 적법한 단체라고 인정해 줄 수는 없다.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은 일반론으로서는 타당할 수 있으나 이 사건에 관한 해석론으로서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노동조합법 및 동법 시행령은 해직자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면서도, 부당해고와 관련한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고, 예기치 못한 부당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시정명령 제도와 시정요구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사후적 시정 기회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자의 명확한 의사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상황은 위 별개의견이 전제하는 바와 같이 ‘상식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아니다. 즉 ‘법령에 의한 단결권의 보호가 미흡한 상황’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현행법을 준수하지 않는 상황’일 뿐이다. 이 사건에서 법문과 다른 해석은 필요하지 않다. 한편 설령 이 사건에서 법문과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더라도,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기속’이 아닌 ‘재량’으로 해석하거나, 이 사건 법률 규정에 의한 ‘간주’의 효력을 완화하거나,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본문을 노동조합의 ‘자주성’ 훼손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또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신규 가입만으로 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위 별개의견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위 별개의견은 위와 같은 해석의 가능성은 ‘명확한 법문에 반한다’는 취지로 모두 배척하면서, 유독 해직 조합원의 조합원 자격 유지에 관하여만 ‘법문과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결론을 전제하여 두고 이에 맞추어 법을 자의적·선택적으로 해석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8) 다수의견은 현행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대통령령에 의하여 구법상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가 존재하던 당시의 법은 노동조합을 정의하면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등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에 관하여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현행법의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것은 단순히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는 쪽에 가깝고 그로부터 적극적인 효력이 발생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아니하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것은 그 자체로 적극적인 효력이 부여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 해산명령의 사유는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인데 반하여[구 노동조합법(1987. 11. 28. 법률 제396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2조], 법외노조 통보의 사유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규정한 바대로 “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즉 “법 제2조 제4호 단서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하고, 결국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 제2조 제4호). 이와 같이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는 그 위반의 성격이나 경중을 따지지 아니한 일체의 법위반, 나아가 심지어 단순히 공익을 해할 염려가 있다는 사유만으로도 해당 노동조합의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으나,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노동조합법의 정의규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될 수 없는 경우, 즉 애당초 법의 적용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경우만을 통보의 사유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여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법외노조 통보는 그 통보로써 비로소 법외노조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노동조합법에 의하여 법외노조가 되었음을 사후적으로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태어 보면, 과거의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하에서는 행정관청이 자의적으로 적법한 노동조합의 지위를 부당하게 박탈하거나 침해할 위험이 있었으나, 현재의 법외노조 통보 제도하에서는 행정관청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게 된 단체에 대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쳐 법 자체에 의하여 발생한 효과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줄 뿐이어서 여기에 그 어떤 부당한 자의가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다. 입법자가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취지는 노동조합의 단결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지하는 데 있는 것이지, 불법 노동조합의 영구적 존속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하여 적법 요건을 결여한 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까지 금지된다고 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현행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노동조합에 관한 정의규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필수적 장치로서 노동조합법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이를 구법상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같은 평면에 놓거나 입법자에 의하여 폐지된 제도를 행정부가 임의로 부활시킨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9)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어느 단체가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요건을 갖추면 적법한 노동조합이 되고, 해당 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에는 법외노조가 되며, 이는 이 사건 법률 규정 자체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법적 효과임을 알 수 있다. 행정관청으로서는 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단체의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하여야 하고, 설립신고가 수리된 이후 그와 같은 사정이 밝혀지면 시정명령과 그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을 통하여 시정을 유도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시정요구 절차를 거쳐 법외노조 통보를 하여야 한다. 이는 법이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그 의무위반에 대한 대처방법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노동조합법 및 동법 시행령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위반의 효과를 명백히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설립신고 반려와 법외노조 통보를 규정함으로써 위와 같은 법률효과의 실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부분 법체계에는 전혀 흠결이 없다. 오히려 법령 자체를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벽한 규정이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이와 같이 아무런 흠결이 없는 완벽한 법체계에 흠결이 있음을 기본 전제로 하여 해석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위헌법률심판이 아니고, 입법론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에서는 사법(司法)이 문제 될 뿐이다. 법원으로서는 완결된 법체계를 그 자체로 해석·적용하여 요건이 충족된 경우 그에 관한 법률효과를 부여하면 된다. 다수의견은 불필요하게 문제를 복잡하게 보고 있다. 만일 법에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본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거나 국회에 법개정을 청원하여야 할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은 법학방법론의 관점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사건의 해결은 이 사건 법률 규정, 즉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의 해석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런데 위 규정은 노동조합법이 정한 결격사유에 해당할 경우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것으로서 너무도 명확하다. 즉 노동조합법이 정한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요건’을 충족한 경우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족적이고 완결적인 규정에 대하여 더 이상 해석의 여지는 있을 수 없다. 이를 달리 보는 것은 법해석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명백한 문언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위 규정을 적법한 노동조합의 판단 기준에 불과하다면서 분명한 해석을 회피한 채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유·무효를 논하고 있다. 어떤 사항에 관하여 헌법, 법률, 대통령령이 있는 경우 대통령령의 정당성이 문제 될 때에는 먼저 대통령령이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살피고, 만일 위법사항이 없다면 다음으로 대통령령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애당초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 더욱이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서(갑 제5호증)에는 근거 법령으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과 함께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 분명히 적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무효 여부는 기본적으로 이 사건 법률 규정의 해석을 통하여 도출되어야 한다. 모법의 의미를 확정하지도 아니한 채 그에 관한 대통령령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다수의견의 입장은 설립신고 이후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결과적으로 이 사건 법률 규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노동조합의 설립신고 단계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에 의하여 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되므로 행정관청은 그 설립신고를 반려하여야 하고, 여기서 위 규정은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설령 다수의견과 같이 위 규정을 단순히 적법한 노동조합의 판단 기준이라고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설립신고가 수리된 이후 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다수의견과 같이 해석하면 위 규정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행정법의 일반 법리에 의하면 행정관청은 기왕의 행정행위를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철회할 수 있고, 이는 노동조합의 설립신고 수리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이 없더라도 행정관청은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동조합에 대하여 기존의 설립신고 수리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다수의견 역시 이 사건에서의 취소·철회는 반대할지언정 행정처분의 취소·철회에 관한 일반 법리와 이에 기초한 대법원의 확립된 선례마저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수의견과 같이 위 규정이 가지는 독자적 의미를 부정한 채 단지 적법한 노동조합의 판단 기준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에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기존의 설립신고 수리처분을 취소·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 되고, 이는 당연한 내용을 굳이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결과적으로 위 규정은 아무런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법을 문언에 반하여 해석하는 것도 부당하지만, 이와 같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해석 역시 부당함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건에서 이상적인 법질서를 찾아가는 것은 법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하지만 이는 법원만의 몫이 아니다. 헌법 질서에 따라 국회, 정부, 헌법재판소와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입법, 대통령 및 행정부의 법집행과 행정입법,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등과의 조화 속에서 더 이상적인 법질서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 있고, 대통령 및 행정부가 법집행을 보류하거나 행정입법을 개선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재판소가 그와 같은 법령과 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다면 이러한 상황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법원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러한 법령과 제도에 의하여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기존의 법상태를 일거에 뒤집는 것은 설령 그와 같은 해석이 결과적으로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에 있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욱이 그것이 명확한 법령의 문언과 완결적인 제도의 체계를 도외시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법원이 합헌적인 법령과 제도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정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다른 국가기관에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은 사법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서 오히려 입법에 가깝다. 다수의견은 법을 해석하지 않고 스스로 법을 창조하고 있다. 설령 다수의견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곳을 가리키고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로서는 다수의견의 이유와 결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10) 요컨대, 법은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원칙적으로 그 문언에 따라 객관적 타당성과 일관성을 유지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을 근로자로 구성된 단체로 정의하고 있고, 노동조합법의 특별법인 교원노조법은 교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교원’을 정의하면서 해직 교원을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 규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설립 중인 노동조합은 물론 설립 후의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므로, 이미 설립신고를 마친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게 되면 더 이상 적법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하는 법적 효과가 위 규정 자체로 인하여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의 집행을 위하여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그 노동조합에 시정을 요구하되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설립 후 활동 중인 노동조합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그에 관한 행정관청의 시정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청은 그 노동조합에 재량의 여지 없이 법외노조임을 통보하여야 하고, 만일 통보하지 않는다면 근로자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단결권 행사를 보장하여야 할 책무를 오히려 방기한 셈이 되어 위법하다. 이러한 명확하고 완결적인 법령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으며, 현행 규율 체계 및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입법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일 것이다. 다수의견은 완벽한 법체계를 애써 무시하면서 입법과 사법의 경계를 허물고, 이 사건 법률 규정에 관한 분명한 해석을 회피한 채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한편 행정관청은 행정법의 일반 법리에 따라 법률에 명시적 근거 규정이 없더라도 결격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하여 그 설립신고의 수리를 사후적으로 취소·철회할 수 있고, 이를 주의적·확인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모법인 노동조합법의 구체적 위임이 없더라도 적법·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원고는 규약을 통하여 해직 교원의 조합원 가입을 정면으로 허용하고 있고, 설립신고 당시 그러한 규약의 존재를 숨긴 채 행정관청을 기망하여 수리를 받았으며, 이를 지적하는 피고의 반복적인 시정명령과 시정요구에도 응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고에게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기득권 내지 신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정한 요건은 지키지 않으면서 그 요건을 충족하였을 경우에 주어지는 법적 지위와 보호만 달라는 식의 억지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법체계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현대 문명사회에서 존재한 바 없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피고가 원고에게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은 정당하다. 이것이 관계 법령의 문언과 그에 관한 합헌적 해석에 의하여 도출되는 법의 마땅한 요구이자 정의이다.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고, 원고가 이 사건 부칙 조항을 통하여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한 것은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 해당할 뿐 아니라,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받기 전에 사전통지와 충분한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받았으므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에 실체적·절차적 하자는 존재하지 아니하며, 판시 사정들에 비추어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실권의 법리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 및 관련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죄형법정주의, 노동조합의 소극적 설립요건,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 및 의견청취,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실권의 법리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원심이 위와 같은 취지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것은 정당하다. 원고의 상고는 기각되어야 한다.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헌법 제107조 제2항에 근거하여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위헌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위헌 여부가 이 사건의 선결적이면서도 중대한 헌법적 쟁점임에 주목하면서 헌법이 대법원에 부여한 본연의 역할 중 하나인 행정입법의 통제에 충실함으로써 이르게 된 결론이다. 아래에서는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의 문제 제기와 논증을 경청하면서, 다수의견의 취지와 의미를 보충하고자 한다. 1) 법에 구속되어 재판하는 법관에게, 그 법의 위헌·무효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헌법 제107조 제2항이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부가 제정한 법규명령(이하 ‘행정입법’이라 한다)의 위헌·위법 심사권한을 법원에 부여한 것은 다른 한편으로 법원이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헌법적 임무를 맡게 되었음을 뜻한다. 2) 법원에 주어진 위 권한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갖는 헌법적 의미와 기능을 이해하고 그에 따를 필요가 있다. 가) 헌법은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이 설정한 권력분립의 체계 내에서 작동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령 법률유보원칙은 행정작용의 통제원리로서, 행정작용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만든 법률에 근거를 둘 것을 요구한다. 행정입법의 경우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한하여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헌법 제75조, 제95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헌법은 자신을 최고규범으로 하여 행정입법에 대한 관계에서 국회입법(법률)의 우위를 정하고 있다. 나) 결국 헌법 제107조 제2항이 법원으로 하여금 행정입법이 헌법과 법률에 반할 경우 이를 무효로 선언하여 법질서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①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지키고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라는 법규 상호 간의 관계를 유지하여 법의 통일성과 정합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② 행정입법을 통하여 국회입법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없앰으로써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를 헌법이 상정한 견제와 균형의 권력분립관계로 회복시키고, ③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합헌적 제한은 민주적 입법자인 국회가 숙고와 토론을 거친 의결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자의적인 행정작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든든한 토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 즉 규범통제가 객관적 법질서 보호의 측면을 중시하는 일종의 객관소송의 특징이 있다고 언급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편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갖는 위와 같은 헌법적 중요성은, 현대국가에서 행정의 역할과 기능이 확장되고 이에 따라 행정부에 의한 입법기능 또한 강화되는 상황에서 그만큼 행정부가 혹여나 자신의 행위를 법치행정(법률에 근거한 행정)으로 분식하면서 실제로는 헌법이 상정한 규범질서를 어길 가능성도 생긴다는 점에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다) 다음과 같은 점을 특히 주목하여야 한다.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행정입법에 의하여 법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 국민 스스로가 공개된 법정에서 행정입법의 헌법적 정당성에 관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개진하고 중립적 심판기관인 법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제도적 공간이다. 모든 국가권력의 원천인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응당 자신의 기본권과 관련된 법률 및 행정입법의 제정 과정에 관여할 정치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법원의 위와 같은 재판과정을 통해서는 더 나아가 행정입법의 헌법적 정당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툴 수 있는 규범적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그 실천적 의의가 작지 않다. 법원이 재판 당사자가 제기한 의미 있는 주장에 귀 기울이고 나아가 헌법과 법률의 정당한 해석을 근거로 행정입법의 문제점을 확인하여 그 효력을 배제하면, 결국 법원의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타당한 의견이 국가기관에 전달되는 셈이 되고 이로써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규범들이 헌법적 가치에 보다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런데 법원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재판을 하면서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갖는 헌법적 의미와 기능에 충실한 재판이 되기 위해서 법원은 무엇보다도 헌법이 보장하는 핵심인 국민의 기본권 및 기본권적 가치를 중시하여 ‘기본권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 제101조에 근거하여 사법권을 부여받은 법원이 헌법 제10조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법원이 재판을 할 때 헌법을 으뜸의 준거로 삼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대표적으로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제목하에 여러 기본권을 예시하면서 헌법의 핵심 구성요소로서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결국 법원은 ‘입법과 행정이 간과하기 쉬운 기본권 및 기본권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주목과 평가’를 그 중요한 권한이자 임무로 삼아야 한다. 1) 2013. 10. 24.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가 이루어진 후 현재까지 벌어진 원피고 사이의 법정 공방 중 주된 부분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 자체의 근본적 문제점에 관한 것이었다. 2) 어떤 행정입법이 과연 상위규범인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 근거 법률에 대한 정당한 이해에 터 잡아 이루어진 것인지, 나아가 그 내용 자체가 헌법과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상이한 관점 및 이해에 따라 달리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노동조합의 단결권 등 기본권적 가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법률의 위임 없이 입법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시행령 조항에 근거한 피고의 조치는 헌법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다투었고, 피고는 다양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3) 규범통제의 측면에서 이 사건 처분의 법률적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된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 자체의 위헌 여부와 별개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위헌 여부는 법원이 중시하여 그 당부를 판단하여야 할 의미 있는 헌법적 쟁점이자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를 판가름하는 선결적 쟁점이다. 따라서 법원은 헌법 제107조 제2항에 따라 이 사건 재판의 전제가 된 쟁점, 즉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여야 한다. 4) 원고가 이 사건 법률 규정의 문언에 반하여 해고 등에 따라 교원의 지위를 상실한 사람을 노동조합의 구성원으로 유지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법률의 엄격한 준수’라는 관점에서 비난할 여지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의견의 지적처럼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한 원고의 위와 같은 문제 제기가 이율배반적이거나 모순된 태도라고 평가할 수는 없으며, 법원은 의연히 원고 주장의 당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뿐이다.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객관적 법질서 보호의 측면을 중시하는 일종의 객관소송의 특징이 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1) 다수의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법률유보원칙에 반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밝혔다. 아래에서는 그러한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몇 가지 사정들을 강조의 의미로 반복하거나 덧붙이고자 한다. 가)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하여 근로자의 노동3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3권 중 단결권은 다른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위하여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우선적인 권리로서 자유권의 성격이 가장 강하다. 그리고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 개인의 단결권만이 아니라 단체 자체의 단결권도 보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근로자 개인의 단결권만을 보장하고 조직된 단체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단결권 보장은 무의미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헌법 제33조 제1항의 단결권은 조직된 단체의 권리이기도 하므로, 위 규정은 근로자단체의 존속, 유지, 발전, 확장 등을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개입으로부터 보호하고(단체존속의 권리), 근로자단체의 조직과 의사형성절차에 관하여 규약의 형태로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보장하며(단체자치의 권리), 근로조건의 유지와 향상을 위한 근로자단체의 활동, 즉 단체교섭, 단체협약 체결, 단체행동, 단체의 선전 및 단체가입의 권유 등을 보호한다(단체활동의 권리)고 보아야 한다(헌법재판소 1999. 11. 25. 선고 95헌마154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나) 이와 같이 헌법은 결사의 자유의 특수한 형태인 자유권으로서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함으로써 국가가 법률·시행령 등을 통하여 근로자단체인 노동조합의 결성뿐만 아니라 존속에 대하여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노동조합의 결성과 존속 등이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의 자주적인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노동조합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태도가 다를 수는 있지만, 헌법이 제21조에서 결사에 대한 허가 금지를, 제33조에서 단결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명시하여 보장하고 있다는 점 자체의 규범적 의미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할 목적으로 제정된 노동조합법과 같은 법 시행령을 해석할 때에는 이와 같은 단결권 보장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이 최대한 존중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 한편 헌법 제33조 제2항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노동3권을 가진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담당하는 업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규정이지만, 공무원의 노동3권은 헌법상 원칙적으로 부인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정한 범위 내의 공무원은 노동3권을 가짐을 전제로 그 구체적인 범위를 법률에 위임한 것이다(헌법재판소 1993. 3. 11. 선고 88헌마5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이는 공무원인 교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의 위와 같은 명시적 위임에 따라 제정된 교원노조법은 기본적으로 교원의 단결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실제로 교원노조법은 교원노조법상 특칙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동조합법을 준용하고 있어(제14조) 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법의 특별법의 지위에 있다고 이해된다. 결국 공무원인 교원에 대한 헌법 제33조 제2항 등의 규율 형태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교원노조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의 해석에서도 마땅히 앞서 본 단결권 보장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교원의 단결권이 최대한 존중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라) 이는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하여 단체존속의 권리를 해치는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정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을 준수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법외노조 통보는 적법하게 설립되어 활동 중인 법상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것으로서 강한 기본권 관련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적용되면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가 전면 부정된다. 행정관청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근거로 결격사유의 경중과 그 밖의 구체적인 사정에 대한 그 어떠한 고려도 없이 일률적으로 법외노조임을 통보한다. 노동조합과 구성원이 받는 불이익과 피해가 심대할 것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행정관청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적용을 위해 조사권한을 발동할 것인지, 법외노조 통보의 효과가 무엇이고 통보의 실효성은 어떤 방법으로 확보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법외노조 통보 권한의 발동 여부와 후속 집행이 모두 행정관청의 임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관청이 그동안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 근거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한 사례가 매우 드문 것은 행정관청이 신중하게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였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으나,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행정부의 입장이나 해석 여하에 따라 자의적으로 혹은 과도하게 남용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가) 행정입법이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중대할수록 그 행정입법은 그에 비례하여 보다 명시적인 국회입법에 근거하여야 한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서 규정한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구성원 각각의 헌법상 기본권인 단결권을 제한함은 물론 단결권의 향유 주체로서 인정되는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하는 제도임이 명백함에도, 법률에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규율 사항을 위임하는 명시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 그 신설 경위까지 함께 참작하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법률의 위임 없이 제정된 것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폐지되기 전 구 노동조합법의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는 그나마 법률에 명문의 근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신중히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규정하였는데, 이 사건 시행령 조항에서 정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경우에는 법률에 명시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립적이고 공정한 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도 없이 행정관청의 선언만으로 과거 해산명령과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1988년 ‘행정부’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신설하여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마련한 것은 반성적 고려에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1987년 ‘국회’의 분명한 의사를 사실상 저버린 것으로 볼 수 있는 유력한 정황이다. 가) 헌법 제75조가 상정한 행정부의 집행명령이란, 법률에서 정한 내용을 단순히 집행하기 위하여 제정되는 명령, 즉 법률의 집행에 필요한 구체적 절차나 방법 등 세칙을 정하는 행정입법이다. 법률이 정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나 국민의 새로운 권리나 의무를 집행명령이 규정할 수는 없다. 입법자가 법률에서 이미 구체적인 행위지침을 행정부에 제공하였음을 전제로 행정부로서는 단지 위 행위지침의 범위 내에서 이를 집행하기 위한 세칙만을 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행정부에는 법률에 담긴 국회의 의사를 집행명령을 통하여 독자적으로 보충하거나 구체화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적법한 집행명령으로 평가할 수 있으려면, 법률에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규율이 먼저 존재하여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긍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항을 각각 나누어 밝히고자 한다. 나) 반대의견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법률에 규정된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을 집행하는 적법한 행정입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이나, 이는 정의규정의 의미에 관한 보편적인 이해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1) 이 사건 법률 규정이 포함된 노동조합법 제2조(정의)는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제4호에서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노동조합’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의(定義)’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분명하게 정하여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법제이론에서도, 정의규정은 해당 법률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을 명확히 밝혀 법률 해석과 적용상의 혼란 및 분쟁을 방지하고, 법률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미리 하나의 조문에서 설명하여 둠으로써 법령문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기능을 하는 규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각종 법률에서 대상의 본질적인 성질을 밝히는 방식의 정의규정과 함께 대상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적극적, 소극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의 정의규정도 드물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즉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는, 헌법 제33조 제1항에 근거하여 그 집단적 단결권이 보장되는 근로자단체의 본질적 성질을 구체화하면서 노동조합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단체인 노동조합을 ‘정의’함으로써 그 실질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그중 본문은 법상 노동조합이 갖춰야 할 적극적 요건의 하나로서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였을 것을 규정하고, 이 사건 법률 규정은 그 단서 (가)목, (나)목, (라)목을 통하여 근로자단체가 위 주체성, 자주성을 결여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2) 노동조합법은 이러한 정의규정에서 정한 기준, 즉 실질적 요건을 기초로 그 입법 목적에 따라 노동조합의 설립신고의 수리와 반려, 규약의 시정명령과 위반 시의 벌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즉 노동조합법은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실질적 요건을 갖춘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를 수리하되 소극적 요건이 확인되는 경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도록 하고(제10조 제1항, 제12조 제1항, 제12조 제3항 제1호), 노동조합의 규약이나 결의가 소극적 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위법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해당 규약이나 결의에 대한 시정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제21조) 등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는 이 사건 법률 규정을 포함한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정의규정에서 정한 기준을 전제로 그에서 나아가 행정관청에 의한 사전, 사후심사의 내용과 절차, 효과 등을 법률에서 별도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만에 의하여 곧바로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노동조합에 관한 정의규정의 일부에 불과한 이 사건 법률 규정 자체만으로 법상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 상실 여부가 즉시 확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이 사건 법률 규정만에 의하여 행정관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에 대한 수리나 반려 권한이 주어진다고 할 수 없듯이, 이 사건 법률 규정의 직접적인 법적 효과에 기하여 행정관청의 법외노조 통보 권한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 법률 규정은 법상 노동조합인지에 관한 판단 기준을 밝히고 있을 뿐이라는 다수의견은 이러한 점에서 옳다. 다) 위와 같이 노동조합법이 설립신고제를 채택함으로써 법상 노동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등에 의한 실질적 요건 외에 형식적 요건, 즉 설립신고의 수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실질적 요건을 갖추었더라도 설립신고를 마치지 못한 노동조합은 법상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없고, 한편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노동조합은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더라도 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되지 아니할 수 있음은 반대의견이 언급하는 바와 같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3도855 판결, 대법원 1997. 10. 14. 선고 96누9829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법이 정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의 자격 등이 문제 되는 경우 노동위원회, 최종적으로는 법원에 의한 실질적 요건의 심사를 거쳐 그 법률관계가 확정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를 들어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라 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게 되는 법률효과가 곧바로 발생하므로 행정관청은 이 사건 법률 규정만에 의하여도 얼마든지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법상 노동조합의 성립요건에 관한 체계적 이해를 도외시한 것이다. 또한 행정관청이 이 사건 법률 규정에 따른 추상적·잠재적 법률효과를 법외노조 통보의 사전절차로서 시정명령과 시정요구를 통하여 구체적·확정적인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이는 결국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형성적 행정처분성을 긍정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라) 반대의견은 이 사건 법률 규정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간주규정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 규정의 ‘보지 아니한다’는 표현은 1963. 4. 17. 개정된 구 노동조합법에서부터 1997. 3. 13. 현행 노동조합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에서 사용된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표현이 변경된 것이다. 이러한 입법 변천에 담긴 입법자의 의사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에서 ‘보지 아니한다’라는 표현으로 입법된 기간 동안에는 설립되어 활동 중인 노동조합이 이 사건 법률 규정에서 정한 소극적 요건에 해당하면 그 즉시 당연히 법외노조가 되고,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간 동안에는 그와 같이 곧바로 법외노조가 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에서 ‘보지 아니한다’는 규정 형식을 취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여 왔다. 위와 같은 입법 연혁을 보더라도 이 사건 법률 규정이 간주규정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사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주의적·확인적 규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 법률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제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관해서는 별도로 규율하지 않은 차별적 상황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관한 법률 차원의 규율 공백은 입법자의 의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1) 정의규정에 담긴 입법 취지를 실현할 입법정책은 다양할 수 있다. 정의규정에 반하는 사유, 위반의 경위와 정도 등은 다양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입법 취지가 침해되는 수준도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입법자는 그에 대응한 입법정책을 강구하게 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제도가 법률(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에 규정된 것도 노동조합에 관한 정의규정의 입법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자의 정책 모색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위 반려 제도를 정의규정의 단순한 집행으로 보기는 어렵다. (2) 이처럼 입법자가 법률을 통하여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제도를 구체적으로 형성한 사정에 주목하면, 만일 입법자가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의사 또한 가졌다면 더구나 위 통보 제도와 유사한 기능의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즈음에 위와 같은 입법의사를 가졌다면, 입법자는 아마도 법률 자체에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기본적인 윤곽 즉 법외노조 통보라는 행정권한 발동의 요건과 한계 및 그 절차와 효과의 핵심적인 부분을 따로 정하였을 것이라고 봄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제도와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규율대상 등의 특성에 있어서 의미 있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3) 즉 노동조합의 설립신고 단계에서는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서 정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행정관청은 설립신고를 반려하여야 하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으로 인하여 실제로 그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훼손되었는지를 별도로 심사할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 참조). 이는 이 단계에서는 아직 해당 단체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자주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 심사의 대상과 범위를 설정하기도 어려우므로 행정관청의 심사의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자의를 방지함으로써 자칫 자주성 심사를 빌미로 노동조합의 자유설립을 전제로 한 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이 허용되면 그 자체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부정된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적법하게 설립되어 활동 중인 노동조합의 경우에는 그 실체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구체적인 조직구성·활동내역 등을 통하여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이 허용됨으로써 실제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훼손되었는지 여부를 충분히 심사할 수 있다. 설령 심사의 과정이나 결론에 다툼이 발생하더라도 법원의 판단 등을 통하여 충분히 시정이 가능한 이상 이 경우의 심사는 노동조합의 자주성 및 노동조합의 자유설립에 관한 헌법과 법률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도 크지 않다. (4) 사정이 위와 같다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관한 법률 차원의 규율 공백은 입법자의 분명한 의사 내지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법원은 이를 비중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6) 수익적 행정처분 직권취소·철회에 관한 일반 법리가 뚜렷한 법률의 위임 없이 시행령을 통하여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입법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가) 별도의 법률적 근거가 없어도 수익적 행정처분의 직권취소·철회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법률로부터 자유로운 시원적인 행정권력을 인정한다는 취지가 아니라, 입법자가 법률로써 행정청에 수익적 행정처분을 발급할 권한을 부여하였다면 그 수권규정에는 이미 발급한 수익적 행정처분을 더 이상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사정이 확인되었을 때 직권취소하거나 철회할 권한까지도 묵시적으로 포함하여 부여한 것으로 입법자의 합리적 의사를 추단한 결과이다. 통상의 경우에는 입법자의 합리적 의사를 그와 같이 추단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나) 그러나 입법자가 반성적 고려에서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폐지한 연혁 등 앞서 본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면, 입법자는 설립신고서 반려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직권취소·철회로서 법외노조 통보라는 방식을 통하여 행정관청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 다수의견은 법원의 행정입법 통제가 갖는 헌법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이 사건 분쟁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 쟁점이 ‘원고가 주장하는 헌법상 기본권의 의미 등에 비추어 국회입법과 행정입법의 관계가 헌법에 부합되게 설정되어 있는지 여부’에 있음을 중시하여 헌법 제107조 제2항을 근거로 그에 대한 판단을 하는 데 집중하였다. 2)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만듦으로써 주권자의 의사가 집약되어 있는 법률에 의하여, 다시 말해 직접 법률에 근거하여 또는 법률의 위임에 따라 구체화된 행정입법에 근거하여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법률유보원칙이 실현되어야,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가 만든 정당한 법에 의하여 기꺼이 구속되는 ‘국민의 자기지배’가 가능해진다. 3)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의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노동조합과 구성원의 단결권에 미치는 불이익이 매우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국회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 법률의 수권 없이 행정입법을 통하여 도입된 것이다. 이는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국회입법과 행정입법의 상하관계를 어긴 것이다. 즉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그 내용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반하는 행정입법이므로 이를 국민에 대한 기본권 제한조치의 법적 근거로 삼을 수 없다. 4) 법률유보원칙에 반하는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무효로 선언됨에 따라,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자격을 심사하여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상실된다. 이제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설계한 바와 같은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법률적 근거를 부여할 것인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법률의 차원에서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도입한다면 어떤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어떤 사유가 있을 경우에 어떠한 절차를 거쳐 법외노조로 평가하도록 할 것인지, 법외노조에 대하여 어떤 수준의 제재를 가하는 것이 비례적일 것인지 등은 결국 관련 헌법 규정에 관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관계인들의 공개적 토론과 숙고를 거쳐 국회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그야말로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전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5) 법원이 하는 헌법재판의 의의를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국민들의 헌법, 특히 기본권에 기대는 주장이 그 어떠한 제한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관철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법원이 기본권에 근거한 국민의 주장을 그 소리가 강력하든 미미하든 빠짐없이 늘 진지하게 경청하고 검토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보장될 가능성이 항시 확보되어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이로써 헌법이 법원에 부여한 기본권 보장의 과제는 실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원심과 반대의견은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의 처분사유를 오해하고 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수익적 행정처분의 ‘직권취소’와 ‘철회’는 구분하여야 한다. 행정처분의 직권취소는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행정처분을 그 처분에 위법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소급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키는 행정처분을 말하고, 행정처분의 철회는 그 처분 당시에 적법 요건을 구비하여 완전한 효력이 발생한 행정처분을 사후적으로 그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장래에 향해 소멸시키는 행정처분을 말한다. 행정처분의 ‘취소 사유’는 원칙적으로 행정처분의 성립 당시에 존재하였던 하자를 말하고, ‘철회 사유’는 행정처분이 성립된 이후에 새로 발생한 것으로서 행정처분의 효력을 존속시킬 수 없는 사유를 말한다(대법원 2018. 6. 28. 선고 2015두58195 판결 등 참조). 2)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은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제1호에 해당하는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고, 이 사건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 교부 후에 비로소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이유로(이하 ‘당초 처분사유’라고 한다)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을 적용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다. 따라서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는 후발적 사유를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을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키는 ‘철회’에 해당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피고의 소송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노동조합 설립신고 당시 이미 이 사건 법률 규정 (라)목에서 정한 사유가 있었음에도 원고가 허위 규약을 제출하여 설립신고가 수리되었다고 판단하였는데(이하 ‘추가된 처분사유’라고 한다), 이는 이 사건 법외노조 통보를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처분의 원시적 하자를 이유로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취소’로 파악한 것이다. 위와 같은 당초 처분사유와 추가된 처분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실질적 법치주의와 처분상대방의 신뢰보호라는 견지에서 처분사유의 추가·변경이 허용되지 않으며, 법원은 추가된 처분사유의 당부를 심리·판단할 수 없다(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0두868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원심판단에는 처분사유의 추가·변경 제한 법리도 오해한 잘못이 있다."}